** 모든 저작권은 윌리칼럼 저자인 이위식 (Wi Sik, Lee)에게 있으므로 저자의 서면 동의 없는 무단 전재 및 복제를 금합니다. 모든 윌리 칼럼은 미국 Korea Phila Times (주간필라) 신문에 매주 해당 날짜에 출간된 것임을 밝힘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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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게 하소서 (12-31-2021)
2021년 한해를 온전히 떠나 보내야 하는 시간이다. 떠나 보내야 또 새로운 한해를 맞이할 수 있음을 이제는 지친 삶의 세포 하나 하나가 기억한다.
여느 해 못지않게 참으로 지루하고도 긴 한해 였다. 지구촌의 많은 생명들이 코로나-19이라는 바이러스로 병들고 죽어갔다. 살아남은 자들도 두려움과 초조함으로 하루하루 긴장하며 살았던 세월이다. 그런데도 끝나질 않는다. 새로운 해에도 코로나와 오미크론, 어쩌면 또 다른 질병 바이러스로 함께 싸우며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지구 기후 온난화 위기와 함께 인간의 욕심이 불러온 재앙의 서곡 인지도 모른다. 신이 창조한 자연과 함께 <공생(共生)>하지 않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무지가 초래한 <생태계 파괴 현상>의 일부다. 살아온 세대가 살아갈 세대에게 용서를 빌고 함께 생태계 복원에 힘써야 한다.
먹고 사는 일이 힘들기만 한 한해였다. 장사가 안된 가게들은 장사가 안되어서 힘들었다. 장사가 안되니 돈이 안되고, 돈이 안되니 종업원을 고용할 수가 없다. 렌트비도 낼 수가 없으니 생업의 전부다시피한 가게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 모아둔 돈이 없고, 다른 업종에 대한 경험이 없으니 섣불리 장사가 잘 되는 업종으로 쉬이 갈아탈 수도 없다. 젊은 나이라면 몰라도 다 늙은 나이에 다시 남의 집 종업원 생활이 생각처럼 쉬운 일인가?
장사가 잘 되는 가게라고 쉬웠겠는가? 종업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니 종업원 인건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기존 종업원들은 상전이 따로 없다. 물가는 물류대란으로 계속 오르니, 종업원을 더 늘릴 수도 없다. 도와줄 자식도 없으니, 죽으나 사나 부부가 죽도록 일해야 하고, 몸 구석구석 아프지 않는 곳이 없다. 새벽에 가게에 나가서 밤 늦도록 일해야 하루가 끝난다. 식사도 가게에서 모두 해결한다. 돈을 모으면 뭐해. 살아도 사는게 아니다. 무슨 놈의 행복이고 즐거운 우리 집 인가.
장사하는 주인이 살기 어려운데 종업원 생활이라 낫겠는가? 종업원의 삶이란 경기가 좋든 나쁘든, 어느 시대에 살든, 상관없이 힘든 것이다. 오십보 백보다. 가장 단순한 공식이다. <경상 순수익= 총 매출액-상품 매입액- 인건비- 렌트비 등 고정 지출액- 유틸리티 등 일반 지출액>이다. 기업체 사장이든, 가게 오너이든, 물가와 인건비가 오르면 오르는 대로, 소비자 물가도 올리게 된다. 손해보는 장사를 하는 바보가 어느 있는가? 종업원이 잘 살 수 없는 자본주의 구조다. 그렇다고 연봉 높은 첨단 업종이라 편한 것만은 아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어쩌면 적자생존의 더 무서운 정글의 법칙이 상존하는 곳이다.
2021년 한 해라고 특별한 해가 아니다. 산다는 자체가 오만 가지 <고통>이고 <상처>인 것이다. 그 <고통>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하고, 실 날같은 <희망>을 품어야 하고, 낮은 자로서의 <감사>를 표해야 하고, 이웃과 함께라는 <나눔>의 공동체 의식을 잃지 말아야 하며, 이것만은 지키겠다는 <소명>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선한 믿음>이 되고, 이 모든게 모여 <행복>이 되는게 아닐까?
그래서 2021년 올 한해를 보내는 마지막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아버지, 나를 울게 하소서>.
힘들어서 만은 아닌, 아파서 만은 아닌, 가난해서 만은 아닌, 행복하지 않아서 만은 아닌, 감사하지 않아서 만은 아닌, 슬퍼서 만은 아닌,
왜소하고 보잘것 없는, 노구의 병들고 지친, 죄 많고 흠 많은, 그래도 또 내일이면 새로운 한해를 맞이 해야 하는, 또 하루하루 힘든 나날을 살아가야만 하는, 서로의 상처를 감싸주고 위로해 주어야 하는, 그래서 서로 사랑하며 기도하는, 너와 나를 위해, 우리 모두를 위해, 오늘 하루만이라도 <아버지, 나를 울게 하소서>.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 (Lascia ch’io pianga)”를 들으며 울자. 오페라 <리날도>는 11세기 제 1차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사라센의 왕 아르칸테에게 점령되어 있던 성지 예루살렘을 점령하려는 십자군 사령관 고프레도의 딸 <알미레나>와 장군 <리날도>의 사랑 이야기다. 십자군의 영웅 리날도를 납치하려고 사라센왕은 리날도의 약혼녀 <알미레나>를 마술 궁전에 납치한다. 사라센왕이 알미레나의 환심을 사려 하지만, 이때 <알미레나>가 부르는 노래가 <울게 하소서>이다.
“비참한 나의 운명! 나를 울게 하소서 (Lascia Ch’io pianga la Dura sorte) /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E che sospiri la liberta) / 이 슬픔으로 고통의 사슬을 끊게 하소서 (E che sospiri, e che sospiri la liberta) /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Lascia ch’io pianga la dura sorte) /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E che sospiri la liberta) // ~ 한번 더 반복됨.
여러분, 우리 모두 2021년 한해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도 살아 남아잖아요. 새해에는 좋은 일이 많을 거예요. 우리에게는 <희망>이라는 그분의 선물이 있잖아요. 모든게 잘 될 거예요. 우리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고, 의지하며 그렇게 살아요. 오늘은 포도주 한잔 마시며, 혼자라도 소리 내어 울어요. 당신은 울 자격이 충분하답니다. <남 몰래 흐르는 눈물>을 그분은 아십니다. 그분이 당신을 꼭 품에 안아 주실 거예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가족 모두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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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의 지혜 -2편 (12-24-2021)
<탈무드에서 배우는 68가지 지혜>가 지난주에 이어 계속된다. 각 항목별 주제에 나의 사견을 부언 했으므로 독자 여러분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시길 바란다.
- 시간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쓰는 사람이 있고, 시간에 맨날 쫓기는 사람이 있다. 같은 일을 해도 맨날 <바쁘다, 바뻐>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도 있다. 나는 바쁘다는 말을 어지간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가치 공학의 모든 함수에는 시간(t)값이 적용된다. 시간을 어떻게 얼마만큼 사용할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 국제화는 행동으로 성취하라. – 우리는 국제화, 세계화, 첨단화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우리 세대는 스스로 배우지 않고, 직접 행동으로 생활에 적용하지 못하면 <꼰대>가 된다. 메가버스, AI 시대다.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무지가 자랑은 아니다.
- 사람은 과오를 범하는 존재다. –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있으면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인간이기에 누구나 실수를 하고 죄를 짓는다. 죄를 지은 당사자는 처절한 자기 반성과 통렬한 죄값을 치루어야 한다. 반면에 상대방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과 긍휼한 마음으로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곳에서 벗어야 밝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라. – 예측 가능한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함은 자신의 게으름 때문이다. 위기 예상 대책 비용보다 위기로 인한 피해 보상 금액이 훨씬 크다. 특히 화재 등, 안전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라.
- 지위가 높을수록 과실에 대한 책임은 무겁다. –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지위가 높다는 것은, 어른이라는 것은 대접받는 만큼, 책임도 무거운 것이다. ~~장(長)이라는 자리는 맡고 있는 조직의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이다. 가장(家長)은 자기 가정의 모든 책임을 지는 자이다. 가족의 잘못도 가장의 잘못이다. 유별날 것도, 신세 한탄 할 것도 없다. 다들 그래 산다. 그런데 가장(家長)이 잘못하면 가정은 깨진다. 언제나 책임은 무겁다.
<상대의 선의를 역으로 이용하지 말라>
- 원인을 제공했다면 반드시 책임을 져라. – 모든 사업성 분석에는 <문제점 분석>과 <원인 분석>이 전제된다. 그래야 정확한 사업 평가와 인사 평가를 할 수 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는다. 내가 원인 제공자라면 내가 책임져야 한다. <인과응보(因果應報)>, 좋은 일에는 좋은 결과가, 나쁜 일에는 나쁜 결과가 따르는 법이다.
- 처음부터 지침을 명확히 하라. – <알아서 적당히 하라>가 가장 무책임하고 무서운 지시 사항이다. 지침이 불명확하거나 불확실하면 합의나 동의가 될 때까지 묻고 따져야 한다. <정성화(定性化)>된 지침 보다는 <정량화(定量化)>된 지침이 더 좋다. 명령하는 자나 명령을 수행하는 자가 일심동체가 됨이 목표달성의 최적화다.
- 예견할 수 있는 위험은 책임져라. – 설마, 어떻게 되겠지 등의 막연함과 책임회피는 더 큰 피해를 불러온다. 토네이도가 불어오고 있는데 곧 닥칠 위험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책임 소재를 파악하라. – 모든 조직의 시설, 비품, 장비 등 일체 고정자산과 작업에는 책임자 정(正)과 부(副)가 명기되어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한다.
- 현인을 먼저 구출하라. – 유대인 다운 사고방식이다. 현인이나 지도자나 전쟁터의 명장이나 평민 보다는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인권주의, 인본주의, 민주주의에 과연 맞는 이야기인가? 각자의 가치관이 다르니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 이익의 절반을 얻고 싶거든, 직접 사업을 하라. – 각종 <돈 버는> 책이나 강의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관된 지침이다. 기업체에서 프로젝트 장(長)을 맡다 보면 해당 프로젝트에서 막대한 이익을 남기게 된다. 물론 경상 수익이 적자가 되거나 목표 미달이 되면 인사 징계를 받겠지만, 대부분이 목표 수익을 얻는다. 그래서 나도 10년간의 대기업 월급쟁이 생활을 마감하고, 1989년부터 10년간 나의 사업을 시작한 동기다. 현대 자본주의는 종업원이 돈을 벌거나 부자가 될 수 없는 구조다. 장사도 모든 인건비와 경비를 제외하고 순수익이 종업원 보다 못하다면 누가 자기 사업을 하겠는가? 월급쟁이가 월급만 모아 부자 되었다는 소리를 들어 보았는가? 한국이 부정부패가 만연한 원인은 각계각층의 월급쟁이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려는 욕심 때문이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자기 사업을 하라. 지상 명제다.
- 상대의 선의를 역으로 이용하지 말라. – 양심을 속일 수는 없다. 비즈니스 컨설팅 일을 하다 보면 나의 선의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가끔 본다. 결코 성공하리라 보장되지 않는다. 선의는 선의로 받아들여야 또 다른 선의를 얻을 수 있다.
- 변화를 포착하라. – 세상 이치는 변화무쌍하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정보에 민감해야 한다. 사업은 파도와 같다. 파도를 탈 수 있어야 바다에 빠져 죽지 않는다. 고집과 우직함은 별개다. 변화되는 현실에 목표를 변경 수정하고 신속히 대처하는 자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다. 특히 현대 미래사회는 급변한다. 스스로 공부하고 개선해야 발전한다.
온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탄신과 성모 마리아의 은총으로 여러분 가족 모두 즐거운 성탄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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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의 지혜 <1편> (12-17-2021)
혹시 새해에 여러분의 사업 계획 수립이나 새로운 마음가짐에 도움이 될까 해서 인터넷에 떠도는 <탈무드에서 배우는 68가지 지혜>를 소개할까 한다. 출처도 불분명하고 내가 직접 탈무드를 읽은 것도 아니며, 68가지 항목만 나열되어 있어서, 항목마다 한인 비즈니스에 한정하여 나의 사견을 부언한다. 흘러가는 이야기로 부담없이 생각하면 좋겠다. 인간이 만든 철학에 <진리>란 없음을 부언한다.
나는 14년전 2008년 신문 칼럼에서 육동인의 저서 <유대인처럼 성공하라> 등 몇 권을 책을 기초로 <유대인 탐구>에 대해 몇 회에 걸쳐 기술한 적이 있다. –유대인 개요, -유대인 역사, – 유대인 사고방식, – 유대인의 교육열, – 유대인의 10개 분야별 힘 (금융시장, 유동자산 시장, 부동산 시장, 경제시장, 언론시장, 미디어 시장, 의류 및 창의력 시장, 석유 곡물 시장, IT 시장, 의료 시장)에 관해 썼다.
유대인 삶의 교과서는 토라, 바이블, 탈무드 세가지로 압축되는데, 토라는 모세5경을 말하며, 바이블은 구약 전체를 일컫는다. 예수를 유대인들의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신약은 성서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탈무드는 5~7세기 랍비들이 토론을 통해 법적, 윤리, 정신, 신학, 예식, 역사적 통찰을 기록한 63권의 책을 말하며, 그후 수세기 동안 유대인 학교에서 교과서로 활용되기도 한 생활 지침서인 것이다.
<정보에 대한 감성이 비즈니스를 좌우한다>
- 가난해도 부자의 줄에 서라. – 현대는 정보전이다. 1970년대 초반 내가 컴퓨터 공학을 공부할 때 “Garbage in, Garbage out” 문구가 머리 속에 박혀 있다. 쓰레기를 입력하면 쓰레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입력 데이터 신뢰와 처리 과정이 데이터 정보 공학의 핵심이다. 부자가 모이면 부자가 되는 이야기를 한다. 누구를 만나서 무슨 정보를 듣느냐가 현대 사업 승패의 핵심이다. 일류 학교, 일류 기업, 일류 조직에 들어가기 위해 기를 쓰는 이유도 결국은 <정보와 인맥> 전쟁을 하기 위함이다.
- 정보에 대한 감성이 비즈니스를 좌우한다. – <유유상종(類類相從)>, 비슷한 무리들 끼리끼리 모이기 마련이다. 정보의 가치와 신뢰성이다. 누가 <~~카더라>는 허위 내지 과대 포장된 정보이기 십상이다. 사기 당하기 십상이다. 비즈니스 컨설팅 비용이란 고급 정보, 정확한 정보에 대한 지불 대가이다. 고급 정보 비용이 아까워 쓰레기 정보에 자신의 모든 재산을 건다? 어리석다.
- 최후의 경제 수단까지 빼앗지 마라 – 쪽박까지는 깨지 마라. 원한 사는 짓거리는 하지 마라. 상도(商道)에 어긋나지 마라. 나에게는 일부이지만, 상대에게는 전부일 수 있다. 손님들 중에 2,30년전 사기 당한 일로 지금도 당사자를 죽도록 원망하는 경우도 본다.
- 위험이 클수록 이익도 증가한다. – <High Risk, High Return>, 장사에 세 부류가 있다. 장사 잘 되는 가게를 사서 망쳐놓는 사람. 살 때 매상이나 팔 때 매상이 비슷한 사람, 장사 안되는 가게를 사서 장사 잘 되는 가게로 만들어 되파는 사람. 누가 돈을 많이 벌까? 20년을 한 가게만 운영했다는 것은 자랑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다. 매년(단기) 그리고 3년(중기)마다 사업평가를 해서 Go-Stop을 결정해야 한다.
- 철회는 하더라도 취소는 하지 말라. – 실패는 할 수 있어도 포기는 하지 말라. 인간 관계도 만나지는 않더라도 원수로 헤어지지 말라. 우리 한인사회는 바닥이 너무 좁다. 좋은 소문보다 나쁜 소문이 더 많다. 기회와 만남은 반복된다.
- 고객을 끝까지 안전하게 보호하라. – 고객에게 거짓과 속임수로 장사하지 말라. 고객과 싸우지 말라. 원수진 고객 한사람을 잃는 것이 아니라 몇배, 몇십배의 예비 고객까지 잃는다. 고정 고객, 우수 고객이 사업의 70%를 차지한다.
- 상품을 확인한 후 장사를 시작하라. – 사업 평가는 내가 직접 확인해야 한다. 지인, 교인, 인맥, 가격, 계약조건에 앞서 사업 자체의 정확한 분석이 전제되어야 한다. 일년 매상 체크는 기본이다.
- 나보다는 우리를 소중히 생각하라. – 사업은 혼자 하는게 아니다. 종업원은 나와 같은 팀이다. 상하 관계가 아니라 Win-Win 협력 관계다. 상호 존중과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사업의 3대요소인 자본, 기술, 인력 중에서 인력 관리가 가장 기본이다.
<시간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은 없다>
- 신속하게 소유권을 확보하라. – 현대 자본주의에서 종업원이 부자될 수 없는 구조다. 주급을 많이 받더라도 종업원(Employee)은 종업원일 뿐이다. 내 소유의 비즈니스를 시작하라. 자본은 은행에서 빌리면 된다. 해당 업종의 기술과 노하우를 얻었으면 작게라도 당신 소유의 비즈니스를 시작하면 된다. 시작이 반이다.
- 장사에 너무 빠지면 현명해 지지 못한다. – 죽기 살기로 일하지 마라.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지기 원한다. 가족과 함께 하는 즐거운 삶이 전제되어야 한다. 죽기 살기로 일하면 돈은 조금 더 벌 수 있겠지만, 잃어버리는 것이 더 많다. 신은 공평하다. 얻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 자신의 힘으로 생활하라. – 자신의 분수에 맞게 계획하고 생활하라. 대박이나 일확천금을 노리지 말라. 검소와 자족을 생활화 하라. 근면과 성실이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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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해를 보내며 (12-10-2021)
또 한해가 저물어간다. 한해를 돌아보고 정리해야 한다. 기업체에 몸담고 있을 시 12월은 해당 년도 총결산 및 사업평가. 신년도 사업계획서 수립과 승인, 인사 고가 및 승진 심사 등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달이었다. 3,40대 젊은 시절 그런 전쟁 같은 삶을 20여년 살았다. 이민의 삶도 마찬가지다. 자영업을 하든, 종업원이든, 스스로 한해를 되돌아보고, 원인 분석을 하고 평가하고 반성과 개선 사항을 찾아야 새해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물론 무념무상(無念無想: 일체의 상념을 떠나 마음이 빈 듯 담담한 상태), 어제가 오늘 같고, 그러니 내일도 오늘 같은,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사는 삶도 있겠지만, 그런 범부의 삶은 게으름과 무능함을 감추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 사람이 생각없이 계획없이 살 수 있겠는가?
먼저 2021년 사업성 분석부터 해보자. 현재 하고 있는 사업이든, 종업원 생활이든, 계획(목표)이 있었을 것이고, 결과가 있을 것이다. 2021년도는 2020년과 유사하게 Covid-19 특수 상황이었다. Covid 질병은 <환경 영향분석>에 해당한다. 코비드로 인해 더욱 장사가 잘 된 업종들도 있었을 것이고, 코비드로 인해 최악인 업종들도 있다. 장사가 잘된 업종이라고 해당 사업자가 모두 잘 된 것도 아니고, 죽을 쓴 업종이라고 모두 죽을 쓴 것만도 아니다. 2022년 새해라고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지 않는다. 신종 바이러스 오미크론도 변수다. <위드 코로나 with Corona> 시대가 계속 될 것이다.
<자사(自社) 분석>을 해야 한다. 동종 업종의 <경쟁사 분석>도 해야 한다. 나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개선사항은 무엇인지 밝혀내야 한다. <현상 분석>과 <문제점 분석>이다. 2021년 <Food Business>, 특히 <Breakfast business>는 대부분 상종가를 때렸다. 가게 매매도 가장 많이 된 해이기도 하다. 원인은 Covid가 아니라 <실업급여>와 정부 보조금 때문이었다. 정부는 엄청난 달러를 풀었다. 부동산과 주식 가격들이 폭등했다. 한인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돈을 번 사람들은 한국에 부동산들을 사 둔 사람과 주식을 한 사람들이다. 한인사회의 부자 서열도 바뀌었다.
새해에도 그럴까? 미국 재정 부채는 한계에 이르렀으며, 더 이상 돈을 풀 여력이 없다. 새해 문제는 첫째, 실업급여 덕분에 일들을 하지 않으니, 극도의 인력난으로 대부분의 업종이 <인건비 상승>의 부담을 떠 안았다. 플랫폼(platform) 배달 업종에 취업한 사람도 많다. 시간당 $19불이다. Breakfast 주방 주급이 $1,000로 시작한다. 심지어 주급 $1,500 주방장도 있다. 주급 5~6백불 시대는 종말을 고한다. 둘째는, 소비자 물가 상승(인플레이션) 폭이다. 특히 Food관련 단가들이 두배, 많게는 3배 인상한 품목들도 있다. 자연스레 소비자 가격을 인상해야 하지만 만만치 않다. 거기다 새해에는 앱 배달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배달 비용 (15%~30%)은 소비자 가격 상승을 부채질 한다. 셋째는 변동 금리 인상이다. 영세 맘엔팝 비즈니스들은 대부분의 융자를 안고 있다. 금리가 인상되면 임대료도 인상된다. 코비드 특수 상황으로 아직까지 건물주와 임차인 간에 렌트비 조정이 안되거나, 정산되지 않은 곳들이 적지 않다.
새해는 영세 맘엔팝 사업주에게 적지않은 사업 부담이 주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매물로 팔기도 쉽지가 않을 것이다. 첫째, 이제 경제적으로 잘 사는 한국인들은 미국으로 먹고 살기 위해 이민 오지 않는다. 이민을 오더라도 전문 직종의 취업이민으로 오니 죽기 살기로 일해야 하는 영세 맘엔팝 비지니스를 하지 않는다. 둘째는 이민 2세들은 부모들이 하는 기존의 맘엔팝 비즈니스를 하려 하지 않는다. 이민 1세대인 6,70대는 은퇴를 위해 가게를 팔아야 하는 입장이고, 맘엔팝 가게를 매입해야 할 4,50대는 이민을 오지 않거나 사업자금이 영세하고, 신규 2,30대는 돈 벌기 쉬운(?) 새로운 업종을 원한다. 특히 부모와 자식 모두가 함께 고생해야 하는 페밀리 비즈니스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새해에는 업종별 재조정이 될 것이다. 세탁 관련 업종들은 2020년, 2021년 대비 매상이 많이 정상화 될 것이다. 또 코비드 기간 동안 자체 정화작업 기간을 거치면서, 버티지 못하고 문 닫은 가게들이 많다. 그로 인해 어부지리 빨리 매상이 정상화 된 가게들도 있다. 하지만 세탁 업종의 매력도는 많이 상실되었다. 매매가격도 인하되었다. 10년전 봄날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Food 관련 업종들은 코비드 이전 시대로 되돌아 갈 것이다. 동일한 매상이라도 순수익이 줄어들었다. 네일 업종들은 여전히 인력난으로 고충을 받을 것이다. Stock 관련 업종은 플렛폼 배달 사업 발달로 점점 더 쇠퇴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이 할 수 있는 업종 또한 한정되어 있다.
결론은 이제 선진 국민이 된 한국인들은 자의식이 높아져, 죽기 살기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자의 분수에 맞게, 집집 마다의 사정에 맞게, 각자의 능력에 맞게, 알맞은 사업체를 찾아서 하시면 된다. 남이 잘 되니까 나도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못하는 것을 인수해 내가 잘 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자다. 나는 언제라도 여러분의 충직한 <무료 참모>로 도와 드릴 준비가 되어 있다.
2021년 당신의 사업성 분석 (성공요인, 실패요인, 기회요소, 위협요소, 문제점 분석과 대책)을 꼼꼼히 정리하시어, 새해에는 보다 성공적인 사업 계획서를 수립하고 추진하시기 희망한다. 올 한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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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노래 (12-03-2021)
가을이 떠나간다. 숲 속의 낙엽들이 대부분 떨어져 나목(裸木) 모습 그대로 겨울을 맞이한다. 무거운 삶의 무게를 내려 놓은 너의 지친 모습이 아름답기만 하다. 수고했다. 고생했다. 이제 너 자신의 삶에 충실하여라. 본연의 네 자신을 바라보고, 사색하고, 그분과 더욱 은밀한 대화도 하여라.
가을이 떠나면 혼자 살아가는 모습에 익숙해야 한다. 그동안 나의 무성한 잎사귀들로 가리워졌던 주변의 나목들과도 여유로운 관계를 맺으려무나.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눈과 비. 그리고 날짐승들과 새들의 얘기도 들어 주려무나. 혼자 됨은 좋고 나쁨이 아니다. 쓸쓸함과 고독도 내 삶의 소중한 부분이다.
이제 마지막 달력 한 장만 걸려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다. 모든게 유한하다. 최소한의 예를 갖추고 올 한해를 돌아보고 참회하고 반성하고 감사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일지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남은 한달도 잘 정리해야 또 새날을 소중하게 맞이할 수 있음을 안다. 감사할 뿐이다.
떠나가는 가을이면 나는 가을의 노래를 부른다. 힘든 세월 마다 각기 다른 가을의 노래로 위로 받았다. 잊고 있었던 노래가 우연히 흘러나오면 나는 그 시절의 눈물이 난다. 그 시절의 인연들과 사연들로 나만의 추억에 잠긴다. 그리움과 아쉬움과 미안함으로 흥얼거리는 노래에 묻혀 목이 잠긴다.
많은 가을의 노래를 불렀다. 대학 자취생 시절에는 김민기, 양희은, 트윈폴리오, 박인희, 팝송 등을 많이 불렀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기타 치면서 자취방에서 혼자 불렀다. 대학촌과 무교동 막걸리집에서도 불렀다. 독재 정권의 엄혹한 시절이라 소리 죽여 흐느끼며 부르곤 했다. 김민기의 <친구>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공군 기술장교들은 시험 합격 후, 6개월 훈련을 받아야 임관한다. 3개월은 군사훈련, 3개월은 특기 훈련을 받는다. 3개월 군사훈련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인내 훈련이라 할 수 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조영남의 <제비>라는 노래 한 곡만으로 3개월을 버텼다. 20대 내 인생 계획에는 30살이면 미국 박사학위까지 마치는 거였고, 당연히 군인이 된다는 계획도 없었다. 훈련 기간은 좌절의 시간이었다. 나 자신에 대한 분노와 고통을 <제비> 노래 한 곡에 의지했다.
며칠 전에 운전하다 우연히 유익종의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을 들으면서 눈물이 흘렀다. 23년전 IMF 때 사업실패로 전 재산을 날리고, 아내와 자식들은 미국으로 떠나고, 무일푼으로 혼자 <성남 쪽방촌>에서 일년여를 살았다. 그 쪽방촌에 산 것은 나 이외에 지금까지 아무도 모른다. 가족도 형제도 친구도 회사 직원들도 그 누구도 모른다. 상상도 못한다. 낮에는 밴처회사 월급쟁이 사장을 하면서 바삐 일하느라 견디는데, 저녁 퇴근 후가 문제다. 허구한 날 술이다. 거의 매일 밤 혼자 술만 마셨다. 살기가 싫었다.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때 지겹도록 부르고 듣던 노래가 <유익종>의 노래들이다. 가족이 죽도록 보고 싶었던, 그래서 살고 싶었던, 나를 위로한 가을의 노래들이다. 그 외에도 소리새의 <그대 그리고 나>,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 등등, 나의 가을 노래는 수도 없이 많다.
그렇게 많은 <가을의 노래>들이 <가을의 시>가 되어 나를 다시 살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있는게 기적이다. 더 이상 무얼 바랄까? 욕심이다. 과욕이다. 사는 동안 나는 참회하고 엄마에게, 가족들에게 미안해 해야 하고 그래서 더 잘 해야 한다.
31살에 요절한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박인희 노래)의 가사 중 일부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 그 벤치 위에 / 나뭇잎은 떨어지고 / 나뭇잎은 흙이 되고 / 나뭇잎에 덮여서 / 우리들 사랑은 사라진다 해도 /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가을에는 그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달라는 고은 시인의 <가을 편지>(최양숙 노래)도 생각난다. 내 회사 운영 시절 즐겨 불렀다. 나와 함께 일했던 그 당시 직원들 모두가 <보고 싶은 얼굴>들이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 낙엽이 쌓이던 날 /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 / 낙엽이 흩어진 날 /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 낙엽이 사라진 날 /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김대규 시인의 <가을의 노래>로 이 가을을 떠나 보내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면 가을이다 / 떠나지 않아도 / 황혼마다 돌아오면 가을이다 // 사람이 보고 싶어지면 가을이다 / ~~ // 가을에는 마음이 거울처럼 맑아지고 / 그 맑은 마음 결에 /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떠보낸다 // 주여! 하지 않아도 / 가을엔 생각이 깊어진다 / 한마리의 벌레 울음소리에 / 세상의 모든 귀가 열리고 / 잊혀진 일들은 / 한잎 낙엽에 더 깊이 잊혀진다 // 누구나 지혜의 걸인이 되어 / 경험의 문을 두드리면 / 외로움이 얼굴을 내밀고 / 삶은 그렇게 아픈거라 말한다 / 그래서 가을이다 // 산자의 눈에 이윽고 들어서는 죽음 / 사자들의 말은 모두 시가 되고 / 멀리 있는 것들도 / 시간 속에 다시 제자리를 잡는다 // 가을이다 / 가을은 가을이란 말 속에 있다.”
여러분도 떠나가는 가을 잘 보내 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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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가 되는 법 <후편> (11-26-2021)
전두환 독재자가 역사와 국민 앞에 한점 사죄도 없이 오늘(11/23/2021) 죽었다. 그렇게 잔인하게, 추잡하게 살다 죽으면 무죄인가? 독재자 전두환과 그 일당은 죽어도 영원히 유죄다.
지금도 지구촌의 40개 내지 70개 지역에서 국가간에 혹은 독재자의 정부군과 민중 세력인 반군 간에 전쟁과 살인과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민중도 부귀영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하루 세끼 밥 걱정하지 않고 가족들과 오손도손 평화롭게 안전하게 살기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독재자들은 그들만의 권력을 위해 민중을 억압하고 강제한다. 지난주에 이어 <독재자가 되는 법>을 이어간다.
<전술 10: 역사를 다시 써라>.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현실은 외부에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 속에만 있는 것이다. 당이 진실이라 주장하면 그게 바로 진실이다.”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문구다. 이 말을 스탈린은 그대로 실천했다. 1922년 공산당 서기장에 임명된 스탈린은 자신의 욕망을 숨겼다. 레닌의 후계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한다. 히틀러도 패배한 독일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유럽에 있는 <1차 세계대전 기념관>들을 파괴한다. 김일성도 6.25 한국전쟁을 남한이 먼저 북침한 전쟁이라 주장한다. 마오쩌뚱도 <대장정>동안 4천5백만명이 굶어 죽었지만, 굶어 죽은 인민은 없다고 부인한다. 윤석열과 가족은 20가지 이상의 범죄 수사를 받고 있다. 훗날 무엇으로 위장할까?
<전술 11: 모든 것을 검열하라>. 정보를 통제해 소수만이 진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전달 통로를 철저하게 감시해 던져준 정보만이 진실인 것처럼 믿게 하여야 한다. 우리 세대에게도 익숙한 문화다. 편지 검열, 전화 통신 도청과 감청, 언론 통제 및 사전 검열 등등.. 불과 20세기 한국 정치의 통상적 독재 문화였다. 그런데 지금도 기레기 언론들은 뉴스를 조작하고 감추고 왜곡하여 민중을 혹세무민(惑世誣民) 개돼지로 만들려 한다. 그래서 이제는 민중 한 사람 한사람이 언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전술 12: 외부인을 유혹하라>. 외부인은 레닌이 말하는 <쓸모있는 멍청이>다. 외부인을 돈으로 매입해 자신들의 스토리에 동참시켜 유용한 선전도구로 활용했다. 1930년대 자본주의 대공황을 레닌의 소련 사회주의는 잘 대처하고 있다는 둥, 스탈린은 좌익 작가 조지 버나드 쇼, 장 폴 사르트르, H.G. 웰스, 뉴욕타임스 지국장 월터 듀란티 등을 초청(매수)해 사회주의 미화작업에 동원한다. 히틀러도, 쿠바의 카스트로도,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윤석열도 기득권 지식인층을 매수해 정권교체의 정당성과 필연성을 미화할 것이다.
<전술 13: 신을 무너뜨려라>. 종교는 대부분 답할 수 없는 문제에 답을 한다. 순교자 예수에 견줄만한 인물로 독재자를 미화한다. 국민이 신을 외면하게끔, 종교의 자리에 그들의 신조인 마르크스 레닌주의, 김일성 주체사상, 나치주의, 모택동 사상 등을 심어준다. 세뇌교육이다. 독재자 그들이 곧 신이다.
<전술 14: 과학을 부패 시켜라>. 이데올로기가 아닌, 객관적 사실에 입각해 정확한 결론을 추구하는 과학 연구 문화는 독재자에게 불편한 대상이다. 스탈린의 과학은 이데올로기 신조에 좌우됐다. 과학의 진실을 왜곡한 과학자를 과학의 천재, 영웅으로 만들고, 진실을 말하는 과학자는 숙청하고 연구소를 폐쇄한다. 독재자에게는 진실보다는 충성심이 더 중요했다. 스페인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국가과학연구위원회를 폐쇄하고 진화론을 거부했다. 이명박은 4대강 이론을 고집했다. 독재자에게는 변절한 과학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전술 15: 신뢰를 없애라>. 민중들간의 결속 혹은 믿음은 독재자에게 큰 위협이다. 민중들간의 상호 불신은 아무도 못믿게 되며, 결국 국가권력에 맡기게 된다. 스탈린의 소련은 대공포시대(1936~1938년)을 거치며 75만명이 죽었다. 누구나 반역할 수 있다는 논리로 서로를 감시해 반란음모자를 색출하게 한다. 북한의 5가구당 감시체제 같은 경우다. 박정희 유신 비상계엄 시대도 그러했다. 서로 감시하고 서로 신고한다. 그러면서도 박정희 군사독재시대가 좋았다고 그리워한다. 민중은 길들여진다.
<전술 16: 법이 되어라>. 최빈민국 리비아에서 가다피는 가난한 무학(無學) 부모 밑에서 자라서 성공하기 위해 군에 들어간다. 26세때 무혈 쿠데타로 군주제를 무너뜨리고 해방자로 환영 받는다. 4년차 1973년부터 표현의 자유 및 집회권 금지, 술 금지, 노동조합 금지, 파업 금지 등,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하기 시작한다. 반정부 인사들을 처형 하기 시작한다. 가다피 자신이 법이 되고, 그의 지시사항이 법의 기준이 된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 시대 때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많은 민중들이 체포되고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했던가? 그놈의 빨갱이 타령은 지금까지 계속된다.
나머지 전술들은 북한 김일성 독재에 해당하며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므로 생략한다. 처음부터 절대권력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민중의 삶이 힘들고 지치고 어려울 때, 그림자의 영혼처럼 국민들의 마음과 육체를 빼앗아 그들만을 위한 세력을 만들어 독재하고 강제하고 공포로 몰아넣는다. 이제는 더 이상 독재자를 허락해서는 안된다. 누구나 살아온 과거를 보면 현재가 보이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학력, 경력, 엘리트로 포장된 기득권 세력에 현혹되면 안된다. 민중 만을 위해, 민중에 앞장서서, 민중을 대신할, 민중의 일꾼을 뽑아야 한다. 신이시여, 조국 대한민국을 보호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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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가 되는 법 <전편> (11-29-2021)
독재자(獨裁者, dictator, autocrat)의 사전적 정의는 절대권력을 가지고 독재정치를 하는 사람을 통칭하며, 국가주의(國家主義)는 국가의 이익을 위주로 하며, 계급의 질서가 엄수되고, 독재자가 출현하여 자유주의적 활동이 금지된다. 폭군(暴君, tyrant, despot)은 전제군주에 해당하며, 다른 사람을 힘이나 권력으로 억누르며 사납고 악한 짓을 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73년 중에서 26년을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살았다. 북한은 아직까지 3대에 걸쳐 김일성 부자 세습 독재정권으로 통치한다. 한민족의 기구한 운명이다. 윤석열과 이재명 두사람 가운데 누가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높을까? 윤석열은 평생을 거대한 <검찰 권력>으로 살아왔다. 윤석열 정치검찰들은 민중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탈탈 털어 수사하고, 기소하고, 구속하고, 감옥에 쳐 넣고, 봐주고, 무마하고, 기존 기득권과 야합하며, <권력의 향연>을 벌여온 무지한 자 들이다. 군사 독재가 <군사 무기>로 민중을 억압했다면, 정치 검찰은 <법 무기>로 민중을 옭아맬 것이다. 이에 비해 이재명은 세력이라 내세울 것도 없다. 민중이 세력이 되어주지 않으면 이재명은 권력을 잡을 수도, 통치할 수도 없다.
역사의 독재자들이 <권력을 잡은 후> 어떤 전술로 독재자로 변모했을까? 전술 별로 요약만 해 본다. 앤드류 셀리번의 <폭군이 되는 법>에서 인용한다.
<전술 1: 지배력을 확고하게 한다>. 경쟁 세력들을 철저히 부셔버린다. 경쟁 지도자는 끝내 죽여버린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정적에 대한 확실한 경고인 동시에, 추종자에 대한 충성 요구서다. 우리 세대는 남산 대공분실, 칠성판, 아오지 탄광, 정치범 수용소 등을 기억한다. 수많은 민주 의사들이 고문당하고 죽었다. 독재 세력에 빌 붙어 출세한 기득권 독재 끄나풀들이 문재인 정부를 독재 정권이라 공격한다. 소가 웃을 일이다.
<전술 2: 충성심을 사라>. 죽음에 대한 공포가 확실한 위협이고 몽둥이라면, 금전적 보상, 제한적 특권은 추종자에 대한 보상이다. 독재자를 따르면 쉽고 간단하게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실행한다. 전두환 독재자가 아직도 목을 쳐들고 죄를 뉘우치지 않는 이유도 자기 혼자 다 해 먹지 않고, 그 추종 세력에게도 골고루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다. 5공 세력 모두가 큰소리 치고 잘 살고 있다는 게 대명천지에 말이 되는가? 과거가 청산되지 않는 나라다. 정치 초보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면 나누어 주어야 할 보상 금액이 엄청 클 것이다.
<전술 3: 심리 작전에 통달하라>. 최측근이라도 상습적으로 굴욕을 주어라. 권력자는 나 뿐이고, 당신들은 나를 위해 존재할 뿐이라 걸 항시 각인 시켜야 한다. 북한이 이 분야는 전문이다. 수시로 강등시키고 급 승진시킨다. 독재자의 눈 밖에 나면 언제라도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공포심이다.
<전술 4: 누구나 희생시킬 수 있다>. 폭군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과격한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혈연이라도 관용은 없다. 북한의 김정은도 자신의 절대 권력을 위해서는 고모부 장성택과 이복 형 김정남을 살해했다. 피도 눈물도 없다는 것을 민중들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전술 5: 난폭함을 숨겨라>. 언론을 철저히 통제하고, 허위 정보로 언론을 조작하라. 히틀러도 강제 수용소를 건실하게 운영되는 유대인 거주지로 유엔에 연출했다. 스탈린도 우크라이나에서 수백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한 사실을 언론 통제로 조작했다.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시절의 언론 통제와 탄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래서 그 때 길들여진 언론 기레기들이 오늘날의 한국 언론들이다.
<전술 6: 희생양을 선택하라>. 히틀러는 유대인을, 스탈린은 부를 축적한 부농들을, 카다피는 이탈리아계 재산 몰수를, 우간다의 아민은 인도계 아시안들을 목표로 삼았고, 결국 그들을 몰살시키거나 추방해 버렸다.
<전술 7: 법을 무기화 하라>. 독재자의 목표는 권력을 견제하는 모든 기관과 가드레일을 무력화 하는데 있다. 헌법의 일부 권한을 정지 시킨 뒤, 법령 통과 권한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박정희 <유신 헌법>이 그러했고, <통일주체 국민회의>가 그러했고, 10여차례 <국가 비상계엄령>이 그러했다. 법도 모르는 무식한 군바리들도 그러 했거늘, 평생 법을 공부하고, 법으로 출세한, 평생 법 밖에 모르는 윤석열 정치검찰들이 권력을 잡은 후, 법으로 민중을 강제하면 그 누가 당하겠는가? 지금도 걸핏하면 <법대로 하라> 판 인데..
<전술 8: 고통을 주어라>. 고문은 저항을 단념시키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한국의 고문 기술은 일본 제국주의 시절 일본 경찰에게서 배운 고문 기술이 한국전쟁과 군사 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날로 발전하여 이미 세계적 수준이다. 어느 놈이든 걸리면 죽는다.
<전술 9: 전쟁을 일으켜라>. 앞에 거론한 여러 방법들이 효과가 없다면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라. 독재자에 대한 분노를 희석시키고, 국민을 결집시킬 수 있다. 전쟁을 하는 것은 최후 수단이므로 이길 수 있는 상대를 골라야 한다. 김일성이 남침을 한 이유도, 이승만이 역이용 한 이유도 권력 욕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제 때 <빨갱이 타령>이 아직도 빨갱이 타령인가? 같은 민족끼리 한국전쟁이 끝난 후 68년이 지나서도 아직도 종전선언을 하지 못하는 나라가 한민족이다. 정치하는 놈들의 민중에 대한 <전쟁 공포심>을 유발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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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잡아라 (11-12-2021)
이제 불과 4개월 뒤면 민주당의 이재명 혹은 국민의 힘 윤석열, 둘 중 하나가 20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것이다. 미국이나 한국처럼 대통령제 국가는 막강한 권력이 대통령에게 주어진다. 핵심은 권력을 잡은 후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민중의 대통령이 되느냐, 폭군이나 독재자가 되느냐는 독재정권을 살아온 한국 민중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작가이자 정치 평론가 앤드류 설리번의 <폭군이 되는 법(How to become a Tyrant)>이 2021년 넷플릭스 시즌 1의 6회차로 방영되었다. 그 중 1회 <권력을 잡아라>를 소개한다. 세기적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 이디 아민, 사담 후세인, 이오시프 스탈린, 무아마르 카다피, 김일성을 매회 대표급으로 설명한다. 먼저 1회 <아돌프 히틀러> 편이다.
작가의 결론은 민주사회에는 언제든지 독재자 폭군이 등장할 개연성이 크다. 설리번은 “인간 역사상 자유는 표준이 아니다. 민중은 자유를 원하지만, 실제로 민중은 지배 받기를 원한다. 민중의 삶이 힘들고 지치면, 민중은 강력한 지배자를 원한다. <나만이 전부 해결할 수 있다>, <위에서 아래까지 전부 바꾸어 버리겠다> 등등의 강력한 메시지를 원한다”. 히틀러는 어떻게 전 유럽을 지배하는 잔혹한 독재자가 될 수 있었나? 20대의 히틀러는 사회 불만과 환멸에 찬, 무일푼의 친구도 없는 실패한 화가에 불과했다.
<전술 1: 자신을 믿어라>.
과대망상적이라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먼저 가져라. 자신들만이 세상을 구하고 세상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히틀러는 독재자 (1932년8월)가 되기 16년 전, 1918년 1차세계대전의 여러 죽음의 전투에서 유일하게 생존하는 경험을 한다.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독재자는 심한 자아도취자이다. 자신이 우주의 중심자이며, 자신의 의지에 따라 무슨 일이든 일어난다고 믿는 것이다.
<전술 2: 추종자가 있어야 한다>.
완벽한 사회는 폭군에게 끌려가지 않는다. 완벽한 사회는 없다. 민중의 격분은 잘 팔린다. 민중은 화가 나 있으며, 비난할 대상이 필요하다. 현대 한국은 부의 양극화 현상, 기회와 공정의 불평등, 부동산 가격 폭등, 젊은이들 꿈의 상실 등으로 분노한다. 히틀러의 독일은 1차세계대전 패망으로 천문학적 전쟁 피해 보상금, 대량실업, 살인적 물가 폭등, 전쟁 후유증 등으로 민중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히틀러는 분출구를 유대인으로 돌렸다. 미국 금융세력의 배후와 소련 공산주의 배후에 유대인이 있다고 조장하는 것이다.
민중의 분노와 불만에는 민중의 영혼을 동요시킬 강력한 메시지가 필요하다. “그들의 적은 당신의 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어라”. 분노의 일체감은 추종자들을 결집시킨다. 히틀러는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당 당수로 취임한다.
<전술 3: 국민의 남자가 되어라>.
국민이 느끼는 대로 느끼고, 국민이 꾸는 꿈을 함께 꾸는 지도자보다 더 잘 국가의 꿈을 실현할 지도자가 있을까? <나는 당신이고 당신은 나 입니다>. 민중과 나는 일종의 집단 유기체임을 주입시키는 것이다. 일종의 서민 코스프레이다. 평생을 귀족으로 모범생으로 사회 엘리트로 대접받고 부귀와 권력을 누렸던 윤석열이가 시장에서 오뎅 몇번 먹는다고 민중의 밑바닥 민심을 알까? 헛소리다.
히틀러는 연설 중 자주 “나는 오로지 독일 국민에게만 관심이 있습니다. 오로지 나는 국민의 일원이며, 국민을 위해 나를 바칩니다.” 히틀러는 절대 화려한 옷을 입지 않는다. 항상 제복을 입는다. 김일성도 그러하다. 카이제르 수염을 당시 독일 서민층의 심볼인 칫솔 모양의 일자형 콧수염으로 바꾼다.
<전술 4: 세력을 브랜드화 하라>.
히틀러는 이미지의 힘, 브랜딩의 힘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세계 역사상 가장 강력한 나치 문양인 <하켄 크로이츠: 붉은 깃발에 흰색 만(卍)자 표시>는 독일 노동당 당기로 제정되었다가, 1935년 독일 국기로 제정되었다. 또한 독일군 <제복>은 희생과 의무, 복종과 충성을 의미한다. 제복은 <한 팀(One Team)>이라는 상징이며, 복종이 아니라 단결이라고 세뇌시킨다.
<전술 5: 진영을 키워라>.
누구도 혼자서 통치할 수 없다. 조직을 키워야 하고 올바른 인력을 채용해야 한다. 자신을 대신해 일을 꾸미고 만들어 나갈 사람을 선택하고 팀으로 키워야 한다. 혁명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각 분야에서 충성도가 높은 자들을 채용해야 한다. 대표적 인물이 요제프 괴벨스이다. 그는 히틀러를 최후 죽는 순간까지 흠모했다. 한국 대선도 마찬가지다. 이재명은 윤석열의 조직력에 비하면 깜도 안된다. 한국 정치사 70년 동안 <검찰 법조권력>은 실로 막강하다. 육군사관학교 <군사 권력>으로 25년 군사 독재정권이 가능했다면, 윤석열의 <검찰권력>은 민중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전술 6: 공격의 때를 택하라>.
모든 거사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덤벼들기 전, 코브라처럼 참아야 한다. 장기전에 따른 인내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윤석열은 기다리지 못했다. 약점이 많기 때문이다. 정치 인생 불과 4개월만에 대권후보가 되었다. 주변에 하이에나 떼, 파리떼, 구린내 나는 기득권 세력과 적폐 세력들이 모두다 모여 들고 있다. 그들에게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윤석열은 그들에게 먼저 잡혀 먹힐 것이다. 그래서 윤석열은 반드시 실패한다. 민중을 두려워해야 한다. 때를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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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할 권리가 없다 <후편> (11-05-2021)
지난주에 이어 김누리 교수의 신간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에서 원문 그대로 인용함을 밝힌다. 나의 사견을 달지 않음이 김교수 원작에 누가 덜 될 것 같아서이다.
한국 사회는 <방관 사회>다. 시민들은 참여하지 않고 방관한다. 방관은 군대 내무반이나 세월호 선상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네 일상이다.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한 것이 ‘나만 빼고’,’나와는 상관없다’는 사고방식이다. ‘공적 정의’를 위해 참여하는 시민은 극소수다. 대학의 학생회이든, 기업의 노조이든, 시민단체이든 공적 이해를 위한 기구에 참여하는 시민의 수가 우리처럼 적은 나라는 드물다. -방관 사회 p33
장관, 재벌, 정치인, 교수 등 <지도층 노예들>은 자신이 지배하는 조직에선 절대 권력자들이다. 그들은 윗사람에게 노예로 행세하듯, 아랫사람에게는 잔인한 주인으로 군림한다. 이들의 지배를 받는 공무원, 노동자, 당원, 학생들은 노예처럼 행동하기를 강요 받는다. 권력에 굴종하는 노예근성은 다시 굴종을 강요하는 폭력성으로 나타난다. 권위주의적 성격을 가진 자들이 지배하는 사회는 결코 민주주의 사회가 될 수 없다. 민주공화국을 선포하고, 선거를 치르고, 법치를 외친다 해도, 그건 허울 뿐이다. 권위주의와 노예근성에 의해 굴러가는 사회는 <노예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노예 민주주의 p40
200만 촛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촛불은 부패하고 파렴치한 <구체제 전체>에 대한 탄핵이고, <새로운 나라>에서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절규이며, 더 이상 타락한 기득권 집단의 노예로 살지 않겠다는 결의다.
그렇기에 200만 촛불의 명령은 <정권교체>가 아니라 <체제 교체>다. 정권 교체가 ‘포악한 주인’을 ‘온화한 주인’으로 바꿀 수는 있지만 국민을 주인으로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 국민은 최근 역사를 통해 배웠다. 촛불은 해방 이후 지난 70년간 이 나라를 지배해 온 구체제의 낡은 의식, 제도, 관행을 타파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라는 명령이다. ‘국가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아온 구체제를, ‘인간 존엄’을 국가의 존재 이유로 삼는 ‘신체제’로 교체하라는 것이다. -200만 촛불의 명령은 <체제 교체>다 P43
1,000만 촛불의 기적은 한국 민주주의의 엄청난 잠재력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광장 민주주의>가 아직 <현장 민주주의>에 도달하지 못한 현실을 처연하게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광장’에서 위대한 민주주의 혁명을 이루었지만, 정작 실제 삶이 영위되는 ‘현장’에서는 지극히 비민주적인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민주주의자’로 살아가고 있으며, 얼마나 민주적인 제도와 문화가 실행되고 있는가. 광정에서 당당하게 대통령을 비판하듯이, 삶의 현장에서 교장, 총장, 사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가. 광장 민주주의와 현장 민주주의는 여전히 비대칭적으로 괴리되어 있다.
광화문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헬조선의 현실은 변한 게 없다. 이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제 광장 민주주의가 현장 민주주의로 확장되고 심화 되어야 한다. 삶의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실천하고, 실현해야한다. -광장의 촛불, 삶의 현장에서 타올라야 P47
<가면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가 불안이 지배하는 사회, 연대가 실종된 사회, 감시가 전면화된 사회임을 폭로한다. 가면은 또한 우리 자신의 거대한 무력감에 대한 자기 연민이며, 우리 일상의 비민주성에 대한 자기고백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면 민주주의는 한국 민주주의 현주소인 동시에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가면 쓴 민주주의 P68
한국교육의 패러다임을 경쟁과 우열, 승자독식의 원리에서 교감과 평등, 연대의 원리로 전환하지 않는 한 한국 사회는 오만하고 이기적인 엘리트들이 대중을 깔보며 자신들의 특권수호에만 매진하는 <엘리트 특권 사회>로 굳어져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교육부는 교육문제를 단지 입시 문제로 보며 경쟁을 부추기고 있으니, 그 무능과 단견에 절망할 뿐이다. <총체적 파국>의 책임은 물론 문재인 정부의 몫은 아니다. 그러나 총체적 파국을 타개할 책임은 현 정부의 몫일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혁명 정부라는 자의식을 되살려 총체적 파국의 현실을 근본적 변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총체적 파국을 넘어서 P71
독일은 아우슈비츠의 나라다. 비극적 과거에 대한 진지한 청산이 새로운 독일을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아직 제주의 나라, 광주의 나라, 남영동의 나라가 아니다. 과거는 여전히 우리에게 도착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새로운 100년의 문은 <과거 창산>이라는 열쇠로 열어야 한다. -오늘의 독일을 만든 건 아우슈비츠다 P80
새로운 100년을 맞은 대한민국의 최우선 과제는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뿜어내는 <백 년 동안의 악취>를 걷어내는 일이다. 더 이상 과거 청산을 유예할 수 없다. 법원, 검찰, 경찰, 국정원, 국회, 학교 등 사회의 각 영역에서 과거에 대한 단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냉철한 평가 작업은 이루어져야 한다. 과거를 둘러싼 투쟁은 미래를 향한 투쟁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한국 민주개혁 세력의 거듭된 실패는 바로 <과거 투쟁>, <역사 전쟁>을 방기한 데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100년, 청산 없는 역사 P109
이 정도에서 마치며, 우리 모두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이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함께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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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할 권리가 없다 <전편> (10-29-2021)
한국은 20대 대통령 선거로 벌써부터 온 나라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19대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만료가 2022년 5월9일이므로, 대선 선거일은 70일전인 2022년 3월3일~9일 사이에 실시하게 된다. 과연 누가 20대 한국 대통령이 되어야 할까?
나의 개인적 사견임을 전제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역대 한국 대통령 중에 가장 선하고 좋은 사람이다. 나는 그를 믿는다. 나는 그를 일방적으로 나의 친구로 생각한다. 나의 짝사랑이다. 그는 연배나 고향이나 학교나 살아온 여정이나 사상이나 언행이나 가족사나, 친구로써 많은 동질감을 느낀다. 그는 정직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정치할 사람이 아니다. 친구이자 정치 동반자인 17대 노무현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마음의 빚으로, 18대 대선에 출마하여 박근혜 51.5%, 문재인 48%로 낙선하고, 19대 대선은 촛불 혁명의 힘으로 문재인 41%, 홍준표 24%, 안철수 21%의 압도적 표차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촛불혁명으로 일어난 <개혁>에 대한 민중의 욕구는 거대 하였으며 반드시 실행해야 할 지상명령이었다. 한국 정치사 70년 동안의 거대한 부정부패와 기득권 세력을 뒤엎을 <혁명가>가 필요했다. 물론 문대통령은 훗날 역사에 기록될 훌륭한 업적도 많다. 세계 정치인들이 존경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하지만 문재인은 <혁명가>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부패한 <관료주의>사회다. <꼴통 조직>사회다. 문재인의 인사 탕평 정책은 너무 점잖고 유순했다. 문재인 정부의 관료세력들은 문재인을 이용했을 뿐, 민중을 위해 목숨 걸지 않았다. 그래서 민중은 좌절하고 분노한다.
혁명은 목숨 걸고 해야 한다. 그중 가장 실패한 정책이 <부동산 정책>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은 민중들의 꿈과 희망을 앗아갔다. 20대 한국 대통령은 목숨 걸고 <혁명>을 할 수 있는 자를 선출해야 한다. 살아온 <조직>에 빚진 것이 없는 자이어야 한다. 사법고시 9수나 하고 30대 새파란 나이 때부터 <영감님>이라는 극존칭으로 27년간 검사 생활하면서 온갖 기득권의 혜택을 누린 놈이, 더 해 먹겠다고 깜도 안되는 놈이 그와 유사한 기득권 부패세력 (법조, 재계, 정치, 언론 등)들과 하나가 되어, 민중을 개 돼지로 보고, 또다시 대한민국 국정을 농단 하게 해서는 안된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한국 민중은 위대하다. 불과 70년전의 최저 극빈국가에서 세계 7위의 선진국으로 만든 국민이다. 세계인이 인정하고 부러워한다. 한국 민중은 촛불혁명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민중이 깨어 있어야 한다.
김누리 교수의 신간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에서 원문 그대로 인용함을 밝힌다. 책을 직접 사서 구독하길 권한다.
“이 시대에 희망을 말하는 자는 사기꾼이다. 그러나 절망을 설교하는 자는 개자식이다 -<볼프 비어만>”
“능력주의 숭배가 빚어낸 무한 경쟁과 극단으로 치닫는 불평등, 끝없는 생존 절벽과 정치사회 혼란까지, 지난 7년간 한국 사회의 적나라한 실상을 복기하며, 오랜 절망과 무기력, 타성을 깨부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한다.”
“우리는 함께 환멸의 땅을 건너가야 한다. 넘어지고 부서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꿈꾸던 그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난 세기 이 나라 이 민족은 너무도 큰 고통과 희생을 치렀다. 역사에 빚진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쉬이 희망을 말하지 않되 가벼이 절망에 빠지지 않는 것, 유토피아와 멜랑콜리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 – 이것이 이 환멸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녀야 할 최소한의 윤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서문>중에서
“하나의 세계가 무너지고 있다. 당연하다고 여겨온 많은 것들이 낯설어지고, 견고하다고 생각해 온 수많은 것들이 흔들린다. 영원하다고 믿어온 것들이 하릴없이 부서져 내리고 있다. 폐허 속에서 공포가 엄습한다. 우리가 이 세계를 통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덮쳐오는 공포의 정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하나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미국 헤게모니가 이울고, 자본주의 시대가 기울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수명을 다하고, 서구의 지배가 종말로 치닫고 있다. 물질 지상주의, 경쟁 이데올로기에 의문부호가 박히고 있다. 구시대가 급속히 스러지는 가운데, 새로운 시대의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불안한 과도기를 우리는 건너고 있다.” -<프롤로그-포스트 코로나, 무너지는 세계 앞에서> 중에서
“불안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본원적인 힘이며, 사회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숨은 지배자다. 불안은 인간을 길들이고, 소진 시키며, 예속시킨다. 불안은 비인간적인 체제를 유지시키고 강화하며, 변혁을 차단하고 저지한다. 불안은 무한 경쟁의 논리 속에서 심화되고 일상화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불안은 생명을 죽인다.” -<불안 사회>, 거대한 기만에 갇힌 대한민국 p27
“<무례 사회>는 돈만 벌 수 있다면 인격 모독 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사회, 인간을 경시하는 사회다. 성형 광고 주체인 ‘의사선생님들’의 경우에서 보듯, 이 사회를 지배하는 기득권 집단의 인식은 지극히 천박하다. 이들은 대게 이 사회의 교육과정을 가장 성공적으로 이수한 ‘우등생들’인 까닭에, 이들의 천민성은 그대로 사회의 성격을 대유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모르는 자를 ‘모범생’으로 길러내는 무례사회에 미래는 없다.” -무례사회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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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사랑 (10-22-2021)
가을 햇살이 따사롭다. 가을 바람이 소슬하다. 아내와 숲길을 걷는다. 매주 일요일이면 걷는 길이지만 매주 다가오는 느낌이 다르다. 날씨가 쌀쌀해졌다. 아직 단풍은 한창 물들지 않았지만, 곳곳의 나무들이 하나 둘 갈무리 하고 있다. 작년 옷장에 묵혀 두었던 가을 옷으로 입으니 가을의 온기가 느껴진다. 아내의 목에 두른 머플러가 가을의 향기를 전해온다.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도 두 사람 모두 별 말이 필요 없다. 서로가 서로의 가을과 대화하는가 보다.
가을은 사랑의 계절인가, 이별의 계절인가. 사랑에 무슨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이별에 무슨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을까 만은, 왜 가을의 사랑은 더 애틋한것 같고, 가을의 이별은 더 애잔한 것 같을까? 무슨 놈의 사랑이 꼭 봄에 만나서 여름에 뜨거운 사랑을 하고 가을에 이별을 하여 겨울에 그리워해야 하나? 그런데 유달스레 가을만 되면 찻잔의 은은한 향기처럼 나의 마음도 순화되어 간다.
일년 열두달을 사람 나이로 나누면 10월은 몇 살에 해당할까? 인생 90세로 보면 10월은 60대부터 70대까지가 해당되지 않을까? 정년퇴직을 할 나이고, 자식들은 장성해서 독립하거나 결혼을 하고, 60년 이상의 인생을 살아온 나의 성적표로 스스로의 평가를 받는, 성공했든, 못했든, 부자이든, 가난하든, 존경을 받든, 잊혀진 사람이든, 다복(多福)하든, 외롭든,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나이일 것이다. 더 이상 무슨 욕심을 낼 것이며, 더 이상 무슨 미련이 있을까?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갈꽃처럼, 저녁 노을에 드리워진 억새처럼, 담담하게 소박하게 겸손하게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
현대인의 60대, 70대는 노인 축에도 끼이지 못하는, 중년 세대라고 한다. 올해 초 UN과 WHO가 발표한 <새로운 연령 구분>이라는 가짜 뉴스가 나돌아 화제가 되었다. 가짜 뉴스 내용은 0~17세를 미성년자, 18세~65세를 청년, 66세~79세를 중년, 80세~99세를 노년, 100세 이상을 장수노인으로 구분한다는 것이다. 물론 틀린 가짜 내용이다. 사회복지 기금이 부족하니 79세까지 죽도록 일을 하라는 이야기인지, 70대 노인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는 충분히 있다는 것인지, 앞으로의 미래 세상은 노인 대접 받기도 힘든 세상이 되나 보다. 각 나라마다 청년층의 저출산과 1인가구 증가와 노인 수명의 증가로 노인이 노인으로 대접 받기는커녕 사회의 짐으로 취급되니 노인 개개인은 각자도생 할 수 밖에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나도 이제 7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노인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노인으로 대접받기도 싫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건강만 허락한다면 10년은 더 할 생각이다. 돈을 번다는 생각보다 사람(고객)을 만나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하는 긴장감이 좋다.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해야 할 사무실이 있고, 만날 사람이 있고, 방문해야 할 업소들이 있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걸로 자족하며 산다. 아직은 별다른 병이 없고, 먹는 약도 없고,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는 건강이 있고, 가려야 할 음식도 없으니 그걸로 감사하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중년이 됐든, 노년이 됐든, 나의 사랑에 대한 열정은 어떠한가? 이 나이에 무슨 사랑 타령은? 불타는 청춘도 아니고, 사랑의 대상이 바뀌는 불륜도 아니고, 그냥 의리(?)로 사는 거지 뭐.. 할 수도 있겠지만 그분께서는 죽는 날까지 사랑하라 하셨는데, 아직은 성기능도 정상(?)인데, 아직 마음만은 이팔 청춘인데, 왜 자신의 사랑을 하대하지? 다시 사랑을 하자. 10월이면 시월의 사랑을 하자. 인생의 황혼기에 별 바쁜 일도 없는데, 별 급한 일도 없는데, 먹여 살려야 할 식구도 없는데, 그동안 사는게 바쁘다는 핑계로 인생의 구석 더미에 내팽겨쳤던 사랑이라는 놈을 다시 만나 사랑이나 해 보자.
시월(10월)의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 <시월애(時越愛)>처럼 시간을 초월하는 사랑을 해야 하나? 사랑은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방(One Side Love)으로 주는 것이라면 함께 사는 사람(아내)이 나를 사랑하든, 정으로 살든, 의리로 살든, 상관없이 내가 사랑하면 되는 사랑이 아닐까? 소실적 중학생 시절 동네 여고생을 일방적으로 짝사랑했던 기억이 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레고, 길에서 마주치기만 해도 잠 못 이룬 밤들이 기억난다. 짝사랑은 말이 필요 없는 사랑이다. 낮과 밤의 구분이 없는 사랑이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사랑, 생각만 해도 좋은 사랑, 눈빛만 마주쳐도 좋은 사랑, 무엇이든 해 주고 싶은 사랑, 그래서 가을에는 시월(時越)의 사랑을 하나 보다.
넷플릭스에 노년의 우정과 사랑을 묘사한 인기 드라마 마이클 더글라스의 <코민스키 메소드>를 추천한다. 노년을 함께 할 남자친구 한 사람, 사랑하는 여자 한 사람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고 감사할 일이다. 거기다 자신이 몰두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더 이상 무얼 바래. 노인들이 겪어야 할 질병과 정신적 결핍도 다룬다.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은 환상일 수 있다. 환상은 집착을 만든다. 환상이 깨어지면 허무하고 실망한다. 욕망은 아쉬움을 남긴다. 부족함은 원망을 하게 되고 또 다른 새로움을 찾아 방황한다.
시월의 사랑은 그리움이다. 시월의 사랑은 소박한 넉넉함이다. 시월의 사랑은 자족과 감사로 시작한다. 시월의 사랑은 놓아 버림이다. 시월의 사랑은 나 홀로의 사랑이다. 그래서 시월의 사랑은 가을의 노래가 되고, 가을의 시가 되고, 가을의 기도가 되고, 가을의 그림이 되고, 가을의 편지가 된다. 10월에는 시월의 사랑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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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 바람 되어 (10-15-2021)
가난한 민중의 삶에 힘들고 지치지 않는 날이 그 며칠이나 있나? 여러분 가게에서 일하든, 길거리에서 마주치든, 내 가족이든, 내 이웃이든, 주변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보면 가난하고 지친 그들을 어디서나 언제나 찾을 수 있다. 한국인이든, 흑인이든, 라틴 아메리칸이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남자든, 여자든, 하루의 삶의 무게가 감당조차 하기 힘들어 비틀거리는 민중들을 본다.
참 살기 힘든 세상이다. 열심히, 몸이 부서지도록, 죽을 만큼 일을 해도 하루의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매주 받는 주급이라 해봐야 세금 떼고, 집세(방세) 내고, 자동차 할부금, 기름값, 자동차 보험료, 의료 보험료, 전기, 개스, 전화 인터넷 통신비 내고, 얼마 남는 돈으로 식비 내고 나면 남는게 별로 없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이런데다 아픈 가족이라도 있다면, 어린아이까지 있다면, 부양할 가족이 있다면, 무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야 끝이 날까? 무슨 말로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고 격려가 될까?
최성봉 성악가가 부른 <내 영혼 바람 되어>를 불후의 명곡이라는 음악 프로에서 들은 적이 있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 (A Thousand Winds)>로도 알려져 있다. 그날 이후로 이 노래만 들으면 눈물이 난다. 엄마가 생각난다. 위로가 된다. 위로가 되고 싶다.
“그곳에서 울지 마오 / 나 거기 없소, 나 그곳에 잠들지 않았다오. / 그곳에서 슬퍼마오 / 나 거기 없소, 그 자리에 잠든게 아니라오.
나는 천의 바람이 되어 / 찬란히 빛나는 눈빛이 되어 / 곡식 영그는 햇빛 되어 / 하늘 한 가을비 되어
그대 아침 고요히 깨나면 / 새가 되어 날아올라 / 밤이 되면 저 하늘 별빛 되어 / 부드럽게 빛난다오.
그곳에서 울지 마오 / 나 거기 없소, 나 그곳에 잠들지 않았다오 / 그곳에서 슬퍼마오 / 나 거기 없소, 이 세상을 떠난게 아니라오.”
사랑하는 사람은 떠나도 떠나는게 아니다. 저 하늘의 별이 되든, 천개의 바람이 되든, 눈빛이 되든, 햇빛이 되든, 새가 되든, 별빛이 되든, 항상 나와 함께 한다. 주님도 천국에 계신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 속에 항상 나와 함께 계신다. 울고 싶으면 울어야지, 힘들면 고함이라도 쳐야지,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야지, 살아 내야지. 당신은 혼자가 아니니까.
“아직 살아 있잖아요”
22살(1990년생) 최성봉이 한 말이다. 3세때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성장한다. 5세때 고아원에서 구타당하고 고아원을 도망쳐 나온다. 그 이후로 껌팔이 소년으로 노숙생활을 한다. 잠은 지하철, 공중화장실 등에서 잔다. 어린 나이에 술과 마약에 빠지기도 한다. 나이트클럽에서 껌을 팔기를 반복한다. 조폭들 눈을 피하기 위해 야간학교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한다.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대학생이던 스승 박정소를 만나 교회를 다니고 성악을 배운다.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장을 따고, 대전예술고등학교에 꼴찌로 입학한다. 2011년 ‘코리아 갓 탤런트’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준우승이 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유튜브 조회수가 3억건을 넘기도 했다. “무조건 살아 단 한번의 삶이니까”라는 책도 베스트셀러가 된다.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여러 상도 수상한다. 2020년 건강검진을 통해 대장암 3기, 전립선암, 갑상선암 판정을 받고, 그해 12월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병원 수술비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공연이 없으면 건설현장에서 일한다. 2021년 9월 불후의 명곡에서 나는 그를 처음 알았다. 그의 소망은 살아있는 날까지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고 한다. 일명 “한국의 폴 포츠”라고 불린다.
어찌 비단 <최성봉>이라는 젊은이 뿐일까. 미국의 젊은이 4명 중 1명이 빈민층에 해당한다. 하물며 지구촌에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지금 이순간에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삶의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암흑과도 같은 현실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신음소리 조차 내지 못하는 수많은 젊은 영혼들이여. 대부분이 그러하듯 아직도 살아 있으니까 사는 것이다. 좌절하고 자학하고 원망하고 비난한다고 해서 나아질 게 없음을 알면서도 그런다.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 영혼이 피폐해 짐을 알면서도 그런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별 나은 것도 없다. 돈이 좀 많다고, 최고 학부를 졸업했다고, 부자라고, 고급 자동차에 비싼 음식을 먹는다고.. 그들 중에는 더 많은 인간들의 영혼이 썩어빠지고 병들어 뭉그러진 자들이 더 많다.
누구에게나 사는게 만만치 않다. 창조주 하나님이 그렇게 단순한 분이 아니다. 돈 많고 공부 잘해서 출세하면 행복하다 라는 단순한 공식을 만드실 분이 아니다. 살아있는 동안 나의 영혼을 갈고 닦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 사는 동안 잘 살아야지. 그래야 나 죽고 나더라도, 내 영혼이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난한 영혼들에게 천개의 바람이 되고, 햇빛이 되고, 별빛이 되지 않을까. 내가 지금 길을 걸으며 맞고 있는 이 신선한 가을 바람과 따사로운 가을 햇빛은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의 아름다운 영혼이지 않을까? 우리 엄마의 영혼이 천개의 바람이 되어 나를 감싸 안으시는구나. 하루 하루에 감사하고 사랑하자. 우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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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인의 하루 (10-08-2021)
가을 하늘이 참 좋다.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파아란 하늘에 구름 한점이 없다. 민중의 하루가 저렇게 파아란 날들이 며칠이나 될까? 넘어지고 부딪히며, 상처 받고 상처 주며, 한숨 쉰 세월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가을 바람을 타고 지친 육신의 노인 한 분이 내 사무실을 방문하셨다. 미국의 <총기 규제와 인종차별 반대 1만명 서명 운동>을 하러 다니신다고 한다. 한인 사회의 그렇고 그런 단체에 소속된 것도 아닌, 어르신 혼자서 하는 운동이라고 한다. 단체 감투를 쓰고 하는 것도 아닌, 후원 협회의 지원이나 후원금이 있는 것도 아닌, 80세가 다 되어가는 연세에, 자비로 자의로 아침 9시에 집에서 나와서 저녁 해 떨어질 때까지 혼자서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시는 것이다.
이민 오신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흑인 동네에서 여느 한국인들처럼 이런 저런 장사를 하셨다고 한다. 이민으로 살아온 세월 동안 우리 지역의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장사하다가 흑인들의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그들의 영혼을 달래 주기 위해 자비로 조촐한 동판 기념비 라도 세울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갖고 계신다고도 한다. 먹고 살기 위해 일가친척 모두 두고, 정든 고향과 조국을 버리고 이민 온 민중들의 삶에 편안한 날이 얼마나 있었을까? 허허벌판에 내던져진 듯한 이민생활에 사연이 없는 집이 어디 있으며, 상처 없는 가족이 어디 있을까?
우리 지역 한인들 영세 비즈니스는 대부분 흑인 동네에서 흑인들 대상으로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장사하는 모습이 대동소이하다. 나도 20년전 9.11 사태 떄, 먹고 살기 위해, 아이들 교육이라도 제대로 시키기 위해, 몇 푼 안되는 돈으로 무작정 이곳 필라델피아로 이민 왔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식 3명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기에, 장사 경험도 전혀 없고 남의 집 종업원 생활도 해보지 않은 채, 무작정 흑인동네에서 그로서리 & 정육점을 했다. 그곳은 내가 미국 출장이나 컴퓨터 엔지니어링 교육 연수로 방문한 미국이 아니었다. 어느 가난한 지구촌의 흑인 마을에 불과했다.
고객들 대부분이 미국 빈민층의 정부 보조 가정이 많았고, 각양각색으로 병든 가정들이 많았다. 퇴근 후 흑인 집집마다 일일이 배달을 했기에 흑인 가정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배달하면서 총기 강도도 두 번이나 당했다. 가게 물건들을 몽땅 털어간 도난 사고도 두 번이나 있었다. 깜깜한 겨울 밤에 흑인 동네에 배달 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모한 일인지 짐작조차 못했다. 그냥 자식 새끼들과 먹고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 밖에 없었다. 그 가게를 5년이나 했다. 어느 겨울날 저녁 여느때 처럼 고기 쓸고 주문 페키지 만들고 정신이 없는데, 밖을 내다보니 온 세상이 눈에 쌓여 아름다운 겨울 왕국이 되어 있었다. 나는 왜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런다고 과연 나아질까? 점점 거칠고 지쳐가는 나의 모습을 보았다. 이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지금의 비즈니스 컨설팅 및 부동산 중개업으로 바꾸었다. 주변에서는 무모하다고 했다. 몇달 안에 문을 닫을 거라도 했다. 어쨌던 여러분의 도움으로 15년을 하고 있다.
미국은 철저한 인종차별 국가다. 4백년에 불과한 미국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2020년 8월부터 매주 칼럼을 통해 미국의 인종차별을 11회에 걸쳐 쓴 적이 있다. 미국이 다시 위대한 국가, 세계 모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백인 우월주의 망상에서 벗어나서, 인종차별을 철폐하고, 이민 문호를 적극 개방해서 세계 유수의 고급 인력 뿐만 아니라, 세계 양질의 노동력을 받아드려야 한다. 또한 미국인 빈민층 들에게 양질의 일자리와 무료 대학교육 기회와 저가 의료 보험 등, 복지국가와 인권국가의 면모를 되찾아야 한다.
집집마다 각종 총기류와 무기를 가지고 사는 국가가 정상국가인가? 세계 총기의 3분의 1을 미국 가정이 보유하고 있다면, 자기방어를 위해 무기 소지를 허용해야 한다면, 그렇게 불안한 국가에서 목숨 걸고 살아야 한다면, 그게 무슨 안전한 국가이고 평화로운 국가인가?
흑인동네에서 흑인들 고객을 통해 먹고 사는 한인들은 흑인 커뮤니티를 통해 봉사와 후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고객들이 가게를 찾을 때 흑인 동네는 싫고 백인 동네에서 장사를 하고 싶다고 한다. 한국인이 백인동네에서 할 수 있는 소자본 맘엔팝 업종이 얼마나 될까? 세탁 업종, 네일 업종, 델리가게 정도가 전부다. 흑인들을 통해서 벌었으면 흑인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 흑인들을 위한 한인 봉사 단체나 후원 행사가 얼마나 있나? 한국의 인종차별도 미국 못지 않다. G7급에 해당하는 한국이 외국인 근로자들이나 망명자들에게 어떤 대접을 하고 있나? 한국은 대부분의 분야에서 미국과 너무 닮아가고 있다. 자본주의의 모든 병폐와 악습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혼자서 <인종차별 철폐 서명운동>을 묵묵히 하고 다니시는 어르신의 뒷모습을 배웅하며, 아무런 도움도 되어드리지 못하는 나의 초라한 모습을 보며, 부족한 칼럼으로 대신한다. 인터넷 기독교 방송의 몇 분 목사님이 기도하고 계신다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어르신의 소신은 미국인 모두의 소망이 되어 황혼녁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벌써 5천명 이상의 서명을 받으시고 곧 1만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어르신, 아무쪼록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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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사람들 (10-01-2021)
요즘 (2021년 9월26일 기준) 넷플릭스 드라마 세계 1위, 미국 1위, 세계 76개국에서 시청률 1위인 한국 드라마가 있다. <오징어 게임 -1부작 9회분 방영>이다. 세계 언론들도 “자본주의 사회의 강력한 축소판”, “ 충격적인 계급의식에 대한 비판, 한국사회와 자본주의의 어두운 부분을 스릴러 장르로 파헤친 드라마” 등 호평이 이어진다. 아직 시청하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꼭 보시기를 추천하며, 스포일러(spoiler)가 일부 포함되지만 간략한 줄거리만 소개한다.
나는 어린 시절 <오징어 게임>이라는 놀이가 생소하다. 드라마 주제는 우리 세대의 머리 속 깊이 뿌리 박혀있는 ‘적자생존, 생존경쟁, 약육강식, 승자독식’ 등으로 발생하는 사회 불평등, 빈부의 양극화와 같은 현대 자본주의 모순과 벼랑 끝에 내몰리는 사회 빈민 계층들의 울부짖음을 어린아이들 <놀이 게임>을 통해 적나라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시나리오 작가의 예리함을 높이 산다.
본 드라마의 <오징어 게임> 동의서에는 다음과 같은 항목이 있다. 1. 참가자는 임의로 게임을 중단할 수 없다. 2. 게임을 거부하는 자는 탈락으로 처리한다. 3. 참가자의 과반수가 동의할 경우 게임을 중단할 수 있다. 매번 게임의 내용은 아무도 모른다. 팀 경기는 누구와 짝을 지을지 각자가 <선택>한다. 게임의 내용을 모르니 선택은 각자의 운명을 좌우하는 <책임>이 뒤따른다.
첫번째 게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다. 등수에 들지 않으면 죽고, 술래가 뒤돌아볼 때 움직이면 죽는다. 두번째 게임은 <달고나 게임, 일명 설탕 뽑기>, 세번째 게임은 6명씩 팀을 짜서 <줄 당기기>, 네번째 게임은 <2인1조 구슬치기> 게임, 일명 홀짝 게임이다. 2명중 1명은 죽는다. 다섯번째 게임은 <징검다리>게임이다. 일반 유리를 밟으면 떨어져 죽고 강압 유리를 밟으면 산다. 문제는 일반의 눈으로는 식별할 수가 없다. 복불복 게임이다. 여섯번째가 <오징어 게임>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 직접 시청해야 한다.
본 게임의 참가자 456명은 각자 나름대로의 사정으로 더 이상 막대한 채무로 살 수 없는 사회의 낙오자들이다. 사람 한 명당 1억원씩, 총 456억원을 최종 게임 승리자가 독식한다. 게임은 총 여섯 게임으로 각 단계마다 탈락자는 즉석에서 총살시킨다. 당연히 게임 참가자들은 <딱지치기>로 본인들이 원해서 자의로 참가한 자들이다. 게임에서 탈락하면 죽는 줄 알면서도 눈 앞에 보이는 456억이라는 일확천금(?)의 로또를 위해 456분의 1이라는 희박한 확률을 알면서도, 설마 내가? 혹시 내가? 라는 위험과 기적을 안고 살아가는 가난한 현대인들의 군상이다.
하루하루 사는 삶 자체가 숨 조차 쉬기 너무 힘들고 벅차니까, 죽도록 일해도 끝이 보이지 않으니까,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자식으로서 이렇게 사는 것은 사람으로 할 노릇이 아니니까, 스스로 목숨을 끊느니 목숨을 걸고 마지막 도박을 하는 심정일 것이다.
<벼랑 끝에 선 사람들>. 한발짝만 헛디뎌도 천길 절벽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을 판이고, 눈 앞에는 괴물과 같은 부자 기득권자들이 잡아먹으려 달려드니 이대로 죽느니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 보는 심정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오늘도 삶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들이 가난한 나라, 분쟁 국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날 때 그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는가? 가난한 국가에서 가난한 부모를 만나서,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고, 죽도록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날 길은 보이지도 않고, 가난은 자식 대대손손 이어진다면, 이게 무슨 정의와 공정과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세상인가?
이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다. 드라마를 아직 안보신 분들을 위해 구체적 설명하지는 않겠다. 다만 세상에는 삶이 재미없는 두 부류가 있다. 한 부류는 돈이 너무 많은 부류다.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돈이 돈을 벌고, 돈을 써도 써도 돈이 줄지 않는다. 온갖 지랄(?)을 해 봐도 사는게 재미가 없다. 그래서 사람을 죽이는 도박 게임을 하면서 재미를 찾는다. 심지어 직접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다. 두번째 부류는 죽도록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돈을 모아 보려고 빚을 내어 보지만 빚만 쌓인다. 아니면 큰 부자가 되어보려고 큰 사업에 뛰어들어 실패하고 파산한 자들이다. 나도 한때 그랬다. 사연 없는 사람들이 없다. 무엇을 해도 삶의 재미가 없다.
과연 그럴까? 오징어 게임에 참석한 456명 중에 455명이 탈락하여 죽음을 당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최종 우승자인 주인공은 455명의 목숨 값으로 456억원 상금을 받았지만 과연 행복할까? 돈 한 푼도 쓰지 못하고 좌절하고 괴로워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듯, 부자 순도 아니다. 저개발 도상국 시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가 뭘까? 삶의 큰 부분이 비어(空)있기 때문이다. 비어 있어야, 부족해야, 채우고 싶은 욕망이 있고 살아야 할 희망이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서 비어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셨다. 비어 있으니 간구하고 기도한다. 그렇게 빈 공간이 가득 채워지면 인간 스스로가 나눔과 사랑과 자비로 비워야 한다. 그것이 감사의 기도다. 채움은 욕망의 끝이 아니라 자족(自足)이다. 가득 채워져서 가 아니라 스스로 넉넉하다고 만족하는 것이다. 당신의 삶이 벼랑 끝에 섰다고 비관하지 마라. 신은 당신이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 만을 주신다. 신은 당신이 정말 힘들 때 날 수 있도록 날개를 숨겨 놓으셨다.
What A Wonderful Day!! What A Wonderful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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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한가위 (09-24-2021)
1년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번주 일요일은 온 가족이 우리 집에 무조건 모이는 날이다. 온 가족이라 해봐야 우리 부부, 큰 딸네 가족 3명, 작은 딸네 가족 3명, 막내 아들, 총 9명이 전부다. 일년에 무조건 모이는 날은 추석, 추수감사절, 설날(新正, 양력설) 세번이다. 아버지(자식들에게는 할아버지, 손녀들에게는 증조할아버지) 제삿날, 어머니 제삿날, 장인어른 제삿날, 장모님 제삿날, 아내 생일날은 시간 되는 자식들만 모인다. 나의 생일은 추수감사절(11월4째주 목요일)에 대충 묻어 함께 지내기를 강요한다.
우리 집은 아버지 어머니 모두 1.4후퇴 때 홀로 피난 내려온 월남가족이다. 그래서인지 유독 설날과 추석 명절에 차례 의식은 어느 집 못지않게 정성스럽다. 33년전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부터는 우리 5형제 온 가족과 조카들 모두 우리 집에 모여 차례를 지낸다. 정말 잔칫집이 따로 없다. 20년전 미국에 나 혼자 이민을 온 이후로는 한국의 형제들은 차례 풍습이 없어졌다고 서운해 한다.
하지만 나는 고집한다. 가족은 함께 모여야 한다. 내가 죽더라도 내 아들이 한국 전통 차례 풍습을 이어받아 적어도 일년에 두차례 설날과 추석은 조상님과 부모님들에게 열과 성을 다하여 소망과 감사의 제사를 드릴 것을 권고한다. 단 명절날 음식은 각각 집마다 두 가지씩 준비하고, 설거지 등 뒷정리는 모두 남자들 중심으로 한다. 또한 객지에 나간 자식들을 모두 참석하기 위해 해당 주간의 일요일 오전 9시에 치룬다. 제식(祭式) 또한 제주(祭主)인 내가 먼저 한해 동안 한국 형제들을 포함하여 집집마다 감사한 일과 새해 새로운 소망을 조상들께 고한 다음에, 자식 가족 단위 별(부부, 손주들)로 제상 앞에 나와 향을 피우고 제주(祭酒)를 올리고, 역시 한해 동안 자기 가정의 감사한 일과 새로운 계획과 소망을 고하는 형식으로 돌아가면서 고한다. 손녀까지 가족 모두가 제사에 참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형제들 간에, 조카들 간에 고민과 이해와 기도가 되게끔 하는 것이다. 우리 집만의 유별난 차례 방식이다.
추석(秋夕)은 음력 8월15일 치르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중추절(仲秋節), 가배일(嘉俳日), 한가위, 팔월 대보름 등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시작되었을 한가위의 <한>은 <크다>, <가위>는 <가운데>를 나타내는데, <가위>는 삼국시대 여인들이 실을 짜던 길쌈을 <가배(嘉排)>로 부른 것에 유래한다.
현대 한국의 추석은 유교 사상에서 유래한다. 유교 핵심인 모든 덕(德)의 으뜸은 <효(孝)> 사상이다. 사자소학(四字小學)에 “아버지 날 낳으시고(父生我身 하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며(母鞠我身 하시며), 배로써 나를 품어 주셨고(腹以懷我 하시고), 젖으로 나를 먹여 주셨으니 (乳以哺我 하셨으니), 은혜의 높기가 하늘과 같으시고(恩高如天 하시고), 덕의 두텁기가 땅과 같으시다(德厚似地 하셨다)” 하며, 부모님 두 분 곧 아니시면 내 어이 살았을까? 효의 근본사상은 가장 귀한 생명을 조건없이 주시고 극진한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신 부모와 선조에 감사하는 것이다.
잘 살고 못살고 가 아니라, 출세하고 못하고 가 아니라, 자기 부모를 섬기고 효도함이 또 자신의 자식들에게 효심과 섬김을 이어받게 함으로써, 명문 집안이며 뼈대 있는 집안이라, 내 부모를 홀대하는 놈이 자기 자식의 효도와 사랑을 받겠다 함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심보라는 것이다.
유교의 모든 제사 의식은 자손들이 죽은 조상들을 생시와 같이 정성껏 섬기려는 효성의 상징적 표현이며, 하늘에서 자손들에게 복을 내려준다. 신령한 복을 받은 후손의 자세는 그 복을 독점하지 않고 이웃과 나누며, 더 나아가 삶 자체를 향기로운 제물이 되게 함으로써 신령에 화답하는 것이다. 대표적 음식 송편도 한해 농사의 추수는 음력 9월로 한달 이후이지만, 가장 먼저 잘 영근 벼 햅쌀로 만들어 조상에 대한 감사와 이웃과 함께 나눔에 의미를 둔다. 한해 동안 온 가족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과 조상님들에 대한 감사와 형제와 이웃과의 나눔과 공유를 근간으로 하는 셈이다.
천주교도 선조를 공경하는 민속적 풍습인 제사와 차례가 교리에 어긋나는지 의문이 일자, 교황 비오 12세는 1939년에 “제사 의식은 그 나라 민속일 뿐, 교리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라는 훈령을 내려 제사에 대한 교리를 정리하고, 제사를 허용하고 있다.
추석(秋夕)은 월석 이라고도 하는데, 추석날 밤 달빛이 가장 아름답다고 유래된다. 가을을 초추(初秋), 중추(中秋), 종추(終秋)로 나눌 때, 가을의 한가운데에 해당한다. 이제 가을 밤이 하루하루 깊어간다. 내 자신과 내 주변을 되돌아보자. 모나고 상처 입은 내 영혼을 위로하고, 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게 해 주심에 감사하자. 내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기도하는, 성숙되어 가는 가을 밤이 되자.
이해인 수녀님의 <달빛 기도>를 소개한다.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 /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 / 좀 더 환해 지기를 / 모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 / 좀 더 둥글어 지기를 / 두 손 모아 기도 하려니 / 하늘보다 내 마음에 /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 /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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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잘 하세요 (09-17-2021)
9월11일, 2001년 미국 9.11 테러가 발생한지 20년 되었으며, 미국의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년 10월7일~2021년 8월30일) 20년을 실패하고 철수한 지 11일 되는 날이다.
9.11 테러 사건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테러 사건인 동시에 미국의 가장 수치스런 날이다. 2,996명 사망(뉴욕 세계무역센타 사망자 2,500명 포함), 최소 2만5천명 이상 부상, 그 외 직, 간접적 피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경제적으로도 100억달러 이상의 재산 피해, 400억달러(52조원) 테러 응징을 위한 긴급 지출액, 재난 극복 연방 원조 111억달러(약 12조원) 등이다.
내 개인적으로도 9.11사태는 내가 미국으로 이민 온 결정적 원인이다. IMF 때 나의 사업실패로 2000년 8월 아내와 자식 3명은 무작정, 무대책, 무일푼, 여행자 신분으로 언니가 살고 있는 미국 뉴저지로 이사를 왔다. 나는 미국에 연고도, 인맥도, 자금도, 사업 경험도, 정보도 없기 때문에 한국에 남기로 했다. 비록 내 사업은 망했어도 한국에서는 IT 회사의 사장이라는 직책과 적지않은 월급이라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년이 막 지나 9.11이 터진 것이다. 세계 최강, 최고 부유, 지상낙원, 아메리카 드림이라는 나라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테러가 발생한 것이다. 한국 TV에서는 시시각각 사건 보도로 난리인데 일체 미국과의 전화통화가 두절된 상태다. 며칠이 지나 겨우 아내와 통화를 했는데, 날이면 날마다 아내는 전화로 계속 울기만 한다. 무조건 미국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어찌 설득해 볼 재간이 없다. 한달 뒤에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것이 나의 이민사 첫 페이지다. 9.11사태가 나의 얄궂은 운명을 바꾼 셈이다.
모든 사건에는 원인과 배경이 있다. 왜 알 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 여객기 4대를 납치하여 두대(테러법 각 5명씩)는 뉴욕 세계 무역센타(제1, 제2)를, 한대(테러범 5명)는 워싱턴 펜타곤 국방부 건물을, 나머지 1대(테러범4명)는 비록 실패했지만 국회의사당을 무모하리만큼 자살 폭파하려 했을까?
알 케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은 1998년 파트와를 통해 미국과의 성전(聖戰)을 선포하였다. 성전 동기는 –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 – 소말리아 무슬림에 대한 공격 지원 – 필리핀 무슬림에 대란 공격 지원 – 이스라엘의 레바논 무슬림에 대한 공격 지원 – 러시아 체첸 공화국에 대한 공격 지원 – 중동에 무슬림에 반하는 친미 정부 수립 –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사우던 와치 작전 수행 (미군의 사우디아라비아 주둔) – 이라크 개입 등이다. 알 카에다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영구히 살 수 있는 민족은 무슬림 뿐이라고 주장한다.
알카에다는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항한 이슬람 의용군(무자헤딘)이 연대한 조직이 기원이다. 그 후 걸프 전쟁(1990년~1991년, 미국 주도로 34개국 다국적 연합군에 의해 이라크가 쿠웨이트 침공 및 병합의 반대를 위한 전쟁)으로 사우디에 미군을 상주시킨다. 사우디는 이슬람교 2대 성지인 메카와 메디아가 있는 곳이다. 소련의 아프간 10년(1979~1989년) 주둔 동안, 미국은 알카에다를 군수 지원했다. 미국이 알카에다를 키운 셈이다. 그런 알카에다가 반미투쟁으로 돌아서서 결국 9.11사태를 일으킨 것이다. 미국의 가장 긴 전쟁인 아프가니스탄 전쟁 20년 동안 얻은 것이 무엇인가?
어느 제국주의도 마찬가지지만,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일으킨 여러 전쟁에서 승리한 전쟁이 없다.
<한국전쟁> 1950년~1953년: 군인 294,000명, 민간인 406,000명, 총 700,000명 사망, 부상 1,820,000명, 실종 800,000명.
<베트남 전쟁>: 1963년~1975년: 미국의 1만명 베트남전 참전(1963년), 1964년 통킹만 사건, 북베트남 폭격, 1965년 미 해병대 2십만명 파병, <1969~1972년>: 미국 존슨의 <베트남화> 정책, 무차별 폭격, 1968_1969년, 미국의 수백만명 베트남 반전 시위, <1973년~1975년> 사이공 함락, 미군 철수. 미군 및 동맹군 사망자 282,000명, 월맹군 444,000명, 민간인 627,000명. 총 1,353,000 사망, 월남 정부 통계는 총 사망자 3,595,000명, 부상자 부지기수.
<이라크 전쟁>: 2003년~2011년: 군인 48,000명, 민간인 114,000명, 총 162,000명 사망.
<아프간 전쟁>: 2001년~2021년: 미군 2,400명, 아프간 민간인 16만명 사망, 미국 원조 금액 2조달러(약 2,230조원). 부상자 부지기수. 아프간 테레반 승리. 2021년 8월 미군 완전 철수.
20세기 100년동안 유혈 분쟁, 민족 분쟁, 무장 분쟁, 독립 투쟁, 테러 전쟁 등등, 여러 크고 작은 전쟁으로 죽은 사람은 적어도 1억명에서 1억8천명으로 추산된다. 노벨문학상의 영국 소설가 윌리엄 골딩은 20세기를 가장 <폭력적인 세기>라 낙인 찍었다.
<사랑과 평화>, <사랑>은 기독교의 근본 교리이고, <평화>는 이슬람교의 근본 교리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고, 평화로울 수 없는 사람과 평화롭게 사는 것이 평화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추구하며, 무엇을 위해 사는가? 21세기 미국의 가장 위험한 테러단체는 미국내 극우 백인우월주의 테러 조직이다. 9.11사태는 ‘남의 눈에 눈물 흘리게 하면 내 눈에도 피눈물이 흐른다’라는 경고다. 위대하지도 자랑스럽지도 않는 미국이여, 남의 나라 내정에 참견하지 말고, 너나 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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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자의 미국 (09-10-2021)
다른 세상이다. 지난주 화요일 오전 9시경, 손님이 매물로 내놓은 가게를 방문하러 필라델피아 상가가 밀집한, 어느 지역을 오랜만에 방문했다. 지금은 상권이 많이 쇠락하였지만, 한때는 유명 상권이었고, 지금도 적지않은 한국인들이 그곳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나는 내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들을 의심했다. 지금 이곳이 정녕 세게 제1의 부자나라 미국의 모습인가? 거리 곳곳에 쓰레기들은 휘날리고 도로 위에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본다. 노숙인 같은 사람도 있고, 평범한 시민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길가에 널브러져 있다. 길을 걷는 사람들도 바로 걷는 사람들이 없다. 남녀 모두가 비틀거린다. 출근하는 활기찬 모습들이 아니다. 어떤 여자는 속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 채 비틀거리며 걷다가 주차된 차를 들이받는다. 차에서 내릴 수가 없다. 술에 취한 군상들이 아니다. 마약에 취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곳곳에 경찰차들이 보이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평일 날 아침 출근 시간에 마약에 찌든 미국의 <죽음의 거리>를 목격한 것이다. 가게 문도 열지 못하고 조그만 창문으로 To- Go만 한다. 코로나 사태로 매상은 증가했지만, 이런 지역의 가게를 매물로 소개할 수 없어 되돌아섰다.
마리화나 연기가 거리에 자욱하다. 지난해 코로나 전쟁의 최대 진앙이었던 뉴욕은 불황으로 세수로 150억달러나 급감했다. 재택근무로 부동산 세가 급감했다. 그러자 너도 나도 세금을 쉽게 걷을 수 있는 <죄악세(Sin Tax): 마약, 술, 도박, 매춘 등 바람직하지 않는 서비스에 부과하는 세금)> 신설을 추진했다. 2021년도에 내가 사는 뉴저지 뿐만 아니라, 뉴욕시, 뉴욕주 등 지난해 10개주에서 올해 17개 주가 마리화나 합법화를 승인했다. 공원에서도, 해수욕장에서도, 70대 노인들도 카드놀이를 하면서, 20대 애기 엄마도 유모차를 끌고 가면서 마리화나를 피운다. 뉴욕시 고등학생 5명중 1명이 마리화나를 피운다. 일부 판매상은 경품으로 마리화나를 공짜로 준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 절반 이상의 주(州)가 주류세, 담배세를 올렸다. 주류판매 매상이 코로나 기간 동안 급증했다. 또한 온라인 매춘도 당국의 묵인 아래 급증한다. 코로나로 실직한 젊은 여성이나 싱글 맘들이 생계를 위해 자신의 벗은 나체사진을 온라인 사이트에 올리면 각 주정부는 누드 판매자들에게 자영업자 세율 15.3%를 매겨 과세한다. 물론 개인 만남으로 하는 매춘행위는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죄악 소비 욕구는 사회 경제적으로 침체될 때 더욱 증가하며, 조세 저항이 낮아 입법부터 과세까지 걸림돌이 거의 없다. 카지노 신설도 마찬가지다. 뉴욕은 지난해 금융기관이나 글로벌 기업들이 재택근무 등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최대 세원인 빌딩 부동산 세수가 초토화 되었다. 그 여파로 음식 레스토랑, 명품 옷 가게, 유명 프렌차이저, 숙박업 등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거나 고전을 면치 못한다. 거기다 실업급여 등으로 근로자들이 일하지 않는다. 그러니 세수를 충당할 곳이 <죄악세> 뿐인 것이다.
세계 제1위 부자나라, 인권 모범국가인 미국의 민낯을 살펴보자. 2018년 유엔인권 고등변무관 사무소와 알스톤 교수(빈곤과 인권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 뉴욕대학 교수)의 보고서에 기초한다.
미국 국민 8명중 1명(약 4천만명, 미국 전체 인구의 12.7%)가 빈민층이며, 그 중 약 절반인 1,850만명이 극도의 빈곤상태에 해당한다. 특히 미국 젊은이들의 빈곤율은 OECD 국가들 중(평균14%)에서 가장 높으며, 미국 젊은이들 25%(4명중 1명)이 빈곤한 상태다. OECD 국가 37개국 중에 빈곤과 불평등의 관점에서 미국은 35위다. 특히 놀랄 수치는 미국 아동의 18%(약 1,330만명)가 빈곤 상태에 있고, 미국 빈곤자 4천만명 중에 아동이 차지하는 비율은 32.6%를 차지한다. 빈곤 어린이 중 31%가 백인이고, 24%가 흑인, 라틴아메리카 히스패닉이 36%다. 현실은 흑인보다 백인의 빈곤자가 8백만명 더 많다는 것이다.
알스톤 교수는 “미국의 빈곤은 특정 인종, 연령, 집단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자동화와 로봇에 의한 많은 중년층 근로자들이 과거에는 안전하다고 여겼던 고용으로부터 버려진 것이다. 미국이 그 어느 풍요로운 나라보다도 사회적 유동성이 떨어져, 아메리카 드림은 아메리카 환상으로 되어가고 있다”
특히 미국 미혼모 가정의 빈곤 아동 수가 급증하고 있다. 미국은 연간 약 1,100만명이 지방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고, 하루 73만명이 구속되고 있다. 그 중 3분의 2가 공판 대기 상태다. 미국은 거액의 보석금 제도가 있다. 보석금 낼 돈이 없는 가장은 구치소에 수감 되어야 하고, 엄마는 아이들과 방치 상태가 되어 결국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악순환이 된다. 일자리를 잃고 자녀들이 방치되고, 임대료를 낼 수 없고, 빈곤의 나락으로 점점 떨어지는 것이다. 미국 여러 사회 제도는 <빈곤자들을 악인>으로 만드는 여러 악법들이 존재한다.
미국은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서 탈퇴했다. UN보고서가 트럼프 행정부의 부자 감세를 거론하며, 빈곤층의 사회 안전망은 사라지고 부자들만이 혜택을 누리고 있다면서 미국 청소년 빈곤율, 아동 빈곤 문제, 노숙자 문제 등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더 이상 세계 최고의 인권 국가도 아니고, 미국인 모두가 공평하게 잘사는 복지 국가는 더더욱 아니다. OECD 국가 중 국민 의료보험 제도가 안되어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아메리카 드림을 위해 미국 이민을 왔던 우리 이민자들은 이제 꿈에서 깨어나 각자 도생(圖生) 해야 한다. 참으로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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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는 소리 (09-03-2021)
바람이 분다. 가을 바람이 분다.
집안의 모든 창문을 열고 가을의 소리를 듣는다. 이름 모를 풀벌레들의 소리를 듣는다. 가을 바람에 사각거리는 나뭇잎 소리를 듣는다. 맨발로 뒤뜰을 걸으니 가을이 나의 품에 안긴다. 산들거리는 가을 바람이 책장 넘기는 베란다 소파에도 내려 앉는다. 가을의 음악을 듣는다. 가을에는 엄마의 흥얼거리는 가을의 소리가 들린다. 아, 가을인가..
떠나가는 이번 여름에 나는 미안하다. 이번 여름에는 주변 바다에 한번도 가지 못했다. 아니 집 앞 수영장 조차 물에 몸 한번 담그지 못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바다를 병적으로 좋아한다. 특히 여름 바다는 나를 나에게 허락하는, 나만이 즐기는 철저한 게으름이다. 허구한 날 바삐 살던 시절의 며칠 되지도 않는 휴가 기간 동안에도, 몇 날 며칠이고 바다만 바라보고 지내던 시절도 있다. 바다야, 나는 너를 결코 잊지않아. 조금 늦어질 뿐이야. 미안해..
1년반이나 계속되는 코로나 사태로 사람 모이는 곳은 의도적으로 피하는 <나 혼자만의 삶>에 익숙해져 가는 보다. 내가 코로나에 감염되는 두려움 보다, 나로 인해 혹시 감염될 불안함이 관계의 거리 두기로 고착되는 과정인가 보다. 오늘도 내 머리를 혼자서 깎는다. 평생 상상해 본적이 없다. 물론 아내가 뒷머리를 도와주지만 벌써 5회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혼자 머리 깎기>가 자연스럽다. 남은 세월 동안도 생활화 될 나홀로 코로나 징후군이다.
가을이 오면 저녁 먹고 동네 한바퀴 30분 여름 산책이, 저녁 먹기 전 1시간 공원 가을 산책으로 바뀐다. 걷기에서 달리기로 바뀐다. 아내는 걷고 나는 달린다. 해 떨어질 무렵의 호수가 있는 저녁 공원은 가히 환상적이다.
가을 바람에는 가을 냄새가 있다. 입추에서 입동까지 부는 가을 바람은 소소하고 슬슬한 바람, 선선하고 서늘하여 <갈바람>이라고도 하고 <소슬바람>이라고도 한다. 25줄의 거문고 소리와 같이 쓸쓸하다 하여 소슬(쓸쓸할 소, 검은고 슬) 바람이라 한다. 가을 바람에는 성숙한 여인의 향기가 품어 있다. 엄마의 냄새와 같은..
가을 바람은 애절함이 아니라 그리움이다. 대선사 경허 선사는 “노을 물든 텅 빈 절 / 무릎 안고 졸다 / 소슬한 가을바람 놀라 깨어보니 / 서리 맞은 단풍잎만 뜰에 차누나” 처럼 그립다고 만날 수도, 갈 수도 없는, 막연한 기다림이다. 그래서 가을 바람에 뒤돌아보고 후회도 하고 하나 둘 갈무리도 해야 한다. 누구를 위한 내가 아니라, 나를 위한 나로 사색하고 숙성하게 한다.
윤동주 시라고 알려진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을 소개한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 나는 지금 많은 사람을 사랑하겠습니다. //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 온 힘을 다하여 살겠습니다. //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 그때 기쁘게 대답할 수 있도록 /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겠습니다. //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 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
가을은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고, 나를 생각하는 시간이고, 나를 소중히 하는 시간이고, 나를 완성해가는 시간이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움켜쥔 손을 펴고 가슴을 활짝 열고 가을의 소리를 들어보자. 가을의 냄새를 맡아보자.
나는 나를 위한 가을의 작은 욕심을 한가지 가져본다. 본시 나라는 인간은 나를 위한 기호품은 거의 사지 않는다. 요구하지도 않는다. 옷도 내가 고르거나 사지 않는다. 주는 대로 입고, 주는 대로 먹는다. 그런데 이것만은 사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학창시절 수제 오디오에 미쳤던 것처럼.
원두커피 제작기 이다. 거금 1천불이다. 가까이 사는 조카가 자기 집에 초대하여 원두커피를 직접 갈아서 카페라테 한잔과 에스프레소 한잔을 만들어 주는데, 그 과정이 너무 정성스럽고 귀하게 대접받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물론 나는 커피 마니아가 아니다. 이민 오기 전에는 일회용 커피 믹스 중독자였고, 이민 온 첫날부터 코로나 이전까지는 매일 출근길에 WaWa 편의점 커피 한잔이 하루 전부였다. 코로나 이후부터는 딸들이 사다 준 즉석 일회용 커피 기계로 부지런히 마셨는데, 조카가 만들어준 커피는 품격 자체가 달랐다. 커피 향도 커피 맛도 내가 이전에 맛본 어떤 커피보다 월등했다. 그래, 이번 가을은 나를 위한 커피 사치품(?)을 하나 장만할까 한다. 아내의 허락만 떨어진다면 말이다. 잘 되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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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밥벌이 (08-27-2021)
누구나 하루 밥을 벌어야 하루 밥을 먹는다. 하루 밥을 먹어야 또 하루 밥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 먹고 살기 위해 밥을 벌든, 잘 살기 위해 밥을 벌든, 하루 밥을 먹어야 또 하루를 살 수 있다. 인간은 먹지 않고 살 재간이 없다. 비단 사람뿐이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생명체는 하루 밥을 위해 하루 밥벌이를 해야 한다.
밥벌이의 사전적 의미는 ‘밥을 먹고 살아가기 위해 버는 노릇 (making a living)’다. 겨우 하루 밥이나 먹고 살기 위하든, 한달치, 일년치, 10년치 밥을 벌기 위해 살든, 밥벌이는 삶 자체이며, 그래서 밥벌이는 엄중하고 두려우며 불안하다. 밥벌이가 안되면 밥을 빌어먹어야 한다. 빌어먹을 놈이라 하대해서는 안된다. 음성 꽃동네 노숙인 요양원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다. 빌어먹어야 할 사정이 있고 빌어먹을 힘이라도 남아있음에 감사한다. 누구에게나 하루 밥은 귀중하고도 필연적이다. 더구나 나 혼자만의 하루 밥이 아니라 먹여 살려야 될 식솔들이 있다면 나의 뼈가 부서지더라도 밥벌이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 누가 그들을 폄하하고 조롱할 수 있는가?
하루 밥을 비싼 음식으로 먹든, 호화스런 장소에서 귀한 음식을 먹든, 누구에게나 하루 한끼의 밥이며, 한사람이 먹는 양 또한 많지 않다. 많이 먹으면 비만이 되고, 결국 배 터져 죽는다. 내가 오늘부터 100년동안 먹을 밥을 비축해 두었다 하더라도 내일 그 밥을 먹을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내일 살지 죽을지도 모르는 놈이 100년치 밥을 모아놓았다고 자랑하면 무얼 하나?
그래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동물은 <하루살이>다. 오늘 아침 눈을 뜨면 산 것이니 밥을 벌기 위해 아침 밥을 먹고 일하러 나갔다가 잠자리로 돌아와서 저녁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면 하루가 마감된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고 말고는 내 의지가 아니라 그분의 결정이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는 하루를 산다.
하루의 밥벌이를 하고 지친 하루의 무게를 짊어진 채 터덜터덜 비탈길을 올라가는 우리의 자화상을 바라본다. 하루 벌지 못하면 하루 먹지 못하니 밥벌이의 지겨움과 두려움은 살아있는 자 모두의 신음소리다.
어쩌면 하루 밥벌이는 엄숙한 제례의식인지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 최대한 깨끗한 모습으로 ‘오늘도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자기 체면을 걸고,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슬로건을 가슴에 달고 밥의 현장으로 간다. <밥 버러지>가 되지 않으려 밥의 현장에 모인 사람들과 관계도 잘 맺어야 한다. 적당히 눈치도 봐야하고 적당히 비굴 하기도 해야 하고, 적당히 양보도 해야 한다.
밥보다 더 소중한 철학이나 가치관은 없다. 밥보다 높은 계급은 없고 밥보다 높은 상전은 없다. 밥은 <갑 중의 갑>이다. 밥벌이를 계속 하기 위해서는 나의 몸뚱어리도 잘 관리해야 한다. 내 몸이 망가지면 나의 밥은 물론, 내가 책임진 식솔들의 밥도 허망하다. 열심히 해야 하고 최선을 다 해야 한다. 그래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석양에는 가끔 돌아가신 아버지의 지친 모습이 보인다. 하루 밥벌이를 하고 돌아가는 모습에 한숨이 베인다. <하루만이라도 쉬고 싶다>..
하루를 쉬면 나아질까. 열흘을 쉬면, 일년을 쉬면, 무엇이 달라질까. 알면서도 그랬으면 하는 허망한 기대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오늘 하루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분의 축복이다. 내일 할 일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매일매일 일을 할 수 있다면 엄청난 호사이며 기적이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감사하자.
평생 먹을 밥을 비축해 두었다면, 그래서 하루 밥벌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면 무엇을 할까? 밥벌이를 하지 못하는, 하루 밥을 빌어 먹지도 못하는 불쌍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나? 세상에 그런 선한 사마리안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호화 저택에서 호화 음식을 먹고, 호화 자동차를 타고, 호화로운 세계여행을 다니고, 맨날 골프치고 호화 명품들을 사들이고.. 그래서 무엇이 달라지나? 그 모든 것에 만족이 있을 수 없다. 매일 젊은 여자들을 사 들이고, 허구한 술에 취해 있고, 그것도 만족이 안되니 마약에 빠져서 영혼마저 병들어 죽은 자들이 역사 속에 어디 한둘인가? 많이 가질 수는 있지만 나누지 않으면 패망의 길이다. 모든 피조물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아무리 강한 권력을 가져도, 하루 밥의 양과 횟수는 소량으로 정해져 있다.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다. 욕망의 끝은 사망이다.
코로나 사태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여러 형태로 변이되어 미국 하루 확진자가 다시 15만명을 넘나든다. 미국이 그 지경이니 세계 가난한 나라의 민중들은 오죽할까? 우리 지역 자영업자들은 일하는 사람을 구하지 못해 그야말로 <구인 전쟁>중이다. 자영업자 가족들이 모두 총 출동이다. 미 정부에서 지급하는 <실업급여>와 여러 혜택으로 하층 근로자들이 하루 밥벌이를 하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평생 하루 밥벌이를 해야 하는데, 쉴 수 있을 때 쉬어 두자는 배포 큰 <하루살이> 철학은 아닐까? 어쨌거나 하루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 각자가 각자의 밥벌이 일터로 돌아갔으면 하는 소망이다. 모두 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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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성과 종속성 (08-20-2021)
오늘은 광복 76주년이다. 광복절의 의미는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빼앗긴 나라와 민족을 되찾은 날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대한민국은 일제 항거 <35년 독립운동사>를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독립운동가들은 극히 일부다. 독립운동으로 일제 법정에서 형을 받고 감옥에 투옥된 독립운동가만으로도 부지기수다. 하물며 역사의 그늘에 묻혀있는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은 기억조차 없다. 비단 독립운동가들뿐 인가? 그들을 뒷바라지한 가족들은 가난과 국가로부터 소외되는 3대에 걸친 고통을 받고 있다.
북한은 100가지 중 99가지는 잘못했다 하더라도, 한가지 잘 하고 있는 것은 아직도 독립운동가 집안은 금수저 집안으로 대우 받는다. 왜 남한만 독립운동가 집안을 외면할까?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무엇인가? 대한민국 건국 이념은 무엇인가? 오늘날 경제대국 10위인 선진국 대한민국이지만, 전시작전권도 없이 명실공히 독립국가인가? 어느 나라 민중도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이지만, 국가와 민족의 정통성에 역행되면 투쟁하여야만 한다. 그런데 묵인하고 방조한다면? 오히려 역사의 무지로 친일 기득권들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면?
김원웅 광복회장의 광복절 기념사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인하고 국가를 분열시킨다고 난리다. 그의 기념사에서 인용한다. “독립운동가들이 꿈꿨던 나라는 일제에 빌붙어 동족을 배반한 자들이 입법, 사법, 행정의 최고위직을 차지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특히 “친일파들은 대대로 떵떵거리며 살며,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지금도 가난에 찌들어 살고있다. 이보다 더 혹독한 불공정이 어디 있나”, “4.19혁명으로 이승만 친일 정권은 무너졌고, 국민 저항의 정점에서 박정희 반민족 군사정권은 자체 붕괴되었다. 전두환 정권은 6월 항쟁에 무릎 꿇었고, 박근혜 정권은 촛불혁명으로 탄핵 됐다. 국민들은 친일에 뿌리를 둔 역대 정권을 무너뜨리고 또 무너뜨리며 처절하지만, 위대하고 찬란한 투쟁의 반복된 승리로 이렇게 우뚝 선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촛불혁명으로 친일에 뿌리를 둔 정권은 무너졌지만, 이들을 집권하게 한 친일반민족 기득권 구조는 아직도 철의 카르텔을 유지하고 있으며, 친일반민족 언론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거짓 왜곡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틀린 말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 기득권들은 이제 <친일청산> 구호는 그만 하자고 한다. 지긋지긋하다고 한다.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어 미래로 나아가지 못할 것인가 항변한다. 전혀 틀린 말이다. 대한민국은 <친일청산>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 법의 심판을 받은 적이 없다. 독일과 프랑스는 지금도 세계를 뒤지어서라도 나치 전범들과 국가 반역자들을 찾아내어 중형으로 다스린다. <국가의 정통성>이다. 왜 대한민국은 못할까? 친일 세력들과 그 후손들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 기득권 세력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죄를 지을 수 있다. 죄를 지으면 죄값을 치루고 참회하며 조용히 살면 된다. 개과천선하여 민족과 민중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면 된다. 그런데 그들이 권력을 끊임없이 탐하니 일본과 미국에 종속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정통성을 상실하고 종속성에 매몰되는 것이다.
<해방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사> : 2016년 한국 근대사 윌리칼럼 (22편~32편) 참조.
- 1912년 연해주에는 이범윤의 <권업회>와 이상설, 이동휘의 <대한광복군- 최초 조선 망명정부 (1914년)>,
- 1919년 김원봉의 <의열단>과 <신흥무관학교>, 북간도에는 의병장 출신의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 서간도에는 신민회가 주축이 된 <경학사><부민단>, 미주 지역에는 안창호, 박용만의 <대한인 국민회>등이 결성됨.
- 1920년 ~1925년: 6년간 두만강, 압록강 연안에서 조선 독립군과 일본군 3,929회 전투.
- 1930년: <항일 무장부대> 16만명 활동, 이청천 한국 독립군, 양세봉 조선 혁명군, <조선 광복회> 20만명 (조선 북부, 만주 조선 농민 주축), 1930년 중반 김일성 독립부대, 1931년 김구의 <한국 애국단>.
- 1931년 만주사변: 일본제국이 중국과 동아시아를 식민지 하기 위해 벌인 전쟁, 보급 물자 및 군대 이동 전초기지로 조선반도 통제가 필수요건임.
- 1931년 ~1932년 봄: 간도 조선인 4만명 학살.
- 1932년 3월1일: 일본 만주국 괴뢰 정부 수립. 1931년 만주사변을 기점으로 민족 개량주의자들의 친일파로 변신함.
- 1931년 ~ 1936년: 항일 독립군 전투 참여 인원 총 136만9,027명, 출몰 횟수 2만3천928회.
- 1937년 중일전쟁
- 1938년 4월: 한국어 사용금지, 창씨개명, 신사참배 강요, 일선동조론 (조선인은 일본민족과 동일함)
- 1938년7월: <국민 정신동맹 연맹> 결성- 조선민중을 애국반으로 강제 편입, 지원병, 학도병, 정신대 강제 차출. 공출, 헌금 감시.
- 친일파로 대거 전환: 지주, 매판 자본가, 일본군 경찰 하수인, 조선, 동아 언론인, 기독교 종교인, 학자, 법조, 문인 등 지식층 대거 친일파로 변절.
- 1938년 대기근: 조선인 9할이 농민, 8할이 무학, 조선 3백만 농가의 80% 이상이 소작인, 최고 9할대의 소작료, 친일 지주, 고리대금업자 횡포, <보릿고개> 생겨남, 2만명 조선인이 굶어 죽음.
- 1938년 ~ 1940년: 일제 조선인 대토벌 작전 시행
- 1940년: 김구의 <한국 광복군>창설.
- 1940년 ~ 1945년: 조선인 일본 강제 노동 동원 (탄광, 철도, 조선, 철강, 토목 등), 1940년 110만명에서 1945년 236만5천명 강제노역 차출 당함. 일부는 군사 비밀 이유로 강제 노역 후 집단 학살시킴.
- 1941년: 진주만 공습 – 미국과의 전쟁 선포.
- 1942년 중국 연안에 <조선독립 연맹> 결성. -1932년 12월 상하이에서 <한국 민족혁명당> 조직 (김원봉 의열단 +이청천의 무장세력) ->1937년 <조선민족 혁명당>으로 바꾸고 <조선의용대> 조직 -> 김두봉 주석과 무정 조선의용군은 만주에서 활동.
- 1944년 8월: 여운형 주도로 서울에서 <건국동맹> 결성.
- 전쟁말기: 조선인 독립투사 3만명 투옥함. 조선반도에 일본군 23만명 주둔, 일본경찰 3만5천239명 주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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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연습 (08-13-2021)
아내가 은퇴한지 두 달이 지났다. 이민 와서 20여년을 대부분 함께 다녔는데, 이제부터는 각자의 생활에 익숙해져야 할 시작점인가 보다.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고, 오전 8시에 아내 가게에 내려다 주고, 내 사무실에 출근했다가, 오후 5시면 아내 가게에 들려서 함께 퇴근하고, 함께 저녁 해 먹고, 함께 산책하고, 함께 시장 보고, 함께 교회 가고, 함께 모임에 참석하고.. 거의 모든 생활을 아내와 함께 하여 주변에서도 <껌딱지>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였다.
그런데 아내가 딸아이들 집(집에서 1시간 30분거리)에 이틀간 다녀 오겠다더니, 1주일이나 있다 왔다. 또 다음달에는 한국에 2개월 동안 다녀오겠다며 일방적으로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물론 장인어른 연세가 97세이고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 생전에 작은 효도라도 하겠다는 마음에 기꺼이 동의는 했지만 2개월은 쫌? 이러다가 자유부인(?)으로 선포하시는 건 아닐지 심히 우려되는 바이다..
나는 40년전 결혼 당시에도 결혼의 목적을 분명히 천명했다. 돈은 내가 번다. 밥과 요리도 내가 한다. 집안일도 내가 한다. 동성동본이니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된다. 원하면 입양하기로 한다. 처갓집에 바라는 것도 없다. 오로지 하나, <내 옆에 있어만 주면 된다>는 조건이었다. 내가 벌어온 돈을 함께 쓰면 되고, 내가 만든 요리를 함께 먹으면 되고, 함께 여행가고, 함께 사랑하고, 함께 운동하고, 함께 술 마시고, 함께 별을 헤이면 된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지금도 내 마음의 변함이 없다. 그런데 <사랑이 식으면 언제라도 떠나도 된다>라는 마지막 조건이 내 노년의 발목을 잡는 것은 아닐까? 이러다 만약 내가 노년에 혼자가 된다면?? 나는 낙동강 오리 알? 아, 괴롭다. 이건 아닌데..
나는 독신으로 사는게 싫다. 하기야 독신이 좋아서, 독신으로 살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래서 이 글이 독신으로 사시는 분들께 혹시 일말의 누가 될까 염려도 된다. 일본은 이미 1990년대 <잃어버린 20년> 이후부터 독신이 심각한 사회 문제이지만, 한국도 5가구중 2가구가 1인가구 즉 독신가구라는 것이다. 내 주변에도 적지않은 분들이 독신으로 살고 있다. <지구 온난화 사태>만큼이나 심각한 사회문제다.
미혼 세대 뿐만 아니라, 결혼하고 있지 않는 비혼(非婚)세대도 구분된다. 첫째, 결혼을 포기한 세대: N포 세대, 빙하기 세대, 사토리 세대, 당평 세대(바닥에 드러누운 세대)라 불리우고, 둘째는 결혼에 관심이 없는 세대 : 초식남, 절식남, 건어물녀 등으로 불리우고, 셋째는 결혼 자체가 싫은 세대 : 혐혼파, 비혼 비출산파 등으로 불리운다. 젊은 세대들의 독신 열풍은 다양한 사회 문제에 기반한다. 남녀 경제 불평등과 소득 갈등, 2세 필요성과 육아 분담, 부동산, 직장 스팩, 승진, 자기계발, 부모에 대한 유교적 의무감과 갈등, 종교 문제, 사회보장 제도, 조기 이혼 증가 등 다양하다.
또 다른 독신은 조기 이혼, 황혼이혼, 사별, 기러기 아빠, 별거, 독거 노인, 주말부부 등등 여러가지 사연으로 오래지 않아 1인가구 숫자가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인간의 수명은 길어져 노년층 인구는 늘어나고, 이미 출산률은 1.0이하로 점점 줄어드니, 국가 존재 자체를 위협할 수준이다. 비지니스도 1인용에 초점을 맞춘다. 혼밥, 혼술, 1인용 배달음식, 1인용 여행상품, 1인 거주 주택, 1인용 가전제품, 1인용 가구, 아이돌 성인용품, 독신 프로그램 등등, <1인가구>시대는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현대인은 <혼자 사는 연습>을 해야 한다. 무슨 연유이든지 간에 언제라도 혼자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혼자서라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연습은 실전(實戰)처럼> 하고 살아야 한다. 법정 스님의 <혼자 사는 즐거움>처럼은 아니더라도, 다음은 나의 노년 삶의 의지 이자 목표이기도 하다. – 첫째, 평생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가능한 빨리 선택한다. 즐기는 일이 아니라면, 혼자서 관리 가능한 일을 선택하라. – 둘째, 의식주(衣食住)는 내 스스로 해결한다. 부부인 경우 가사 업무분담을 별도로 정하지 마라. 내가 모두 하면 된다는 의지로 살면 귀여움도 받는다. – 셋째, 아내가 번 돈을 탐하지 마라. 아내의 돈은 아내의 것으로, 내가 번 돈도 아내의 것으로? 그러면 사랑받는다. – 네째, 내가 혼자서 즐길 취미생활을 만들어 지금 실행하라. 운동, 그림, 음악, 글쓰기, 사진, 요리 등등.. 혼자 즐겨라. – 다섯째, 내가 남은 여생 동안 할 봉사활동을 지정하고 실천한다. – 여섯째, 마음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독후감을 쓴다. – 일곱째, 자연을 가까이 한다. 등산, 산책, 정원 가꾸기, 화초 가꾸기 등등, – 여덟째, 신앙생활과 공동체 생활을 꾸준히 유지한다. – 아홉째, 애완동물(나는 개와 고양이 모두)을 기른다. – 열번째: 언제라도 홀가분히 떠날 수 있도록 항상 신변정리를 해둔다.
톨스토이의 <세가지 질문>에서, “-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이다. –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지금 내 옆에 함께 있는 사람이다. –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다.” 그 옆에 있는 사람이 아내라면, 더 이상 무얼 바라겠는가? 그런데 지금 옆에 함께 있는 사람이 외간 여인이라면?? 육보시를 하나? 혼자 살든가, 몽둥이로 맞아야지 뭐..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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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과 지도자 (08-06-2021)–
현대국가는 지배 받지 않으려는 피지배 그룹인 민중들과 그 민중들을 이끌고 가야할 국가 지도자로 구분된다. 과연 이상적인 지도자 상은 어떠한가?
흔히들 약 500년전 15세기 마키아벨리(1469~1527년)의 <군주론>을 인용한다. <군주론>의 핵심은 인간의 성악설을 바탕으로 한다. “민중은 사랑받는 것 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 원래 인간은 은혜를 모르고, 변덕이 심하며, 위선자인데다 뻔뻔스럽고, 신변의 위험을 피하려고만 하고, 물욕에 눈이 어두워지기 마련이다.” 이런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인간들을 무력으로 통제하고 조직을 장악하는 것이 더 큰 선을 이루는 지름길이라 주장한다.
마키아벨리즘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스페인의 이탈리아 침공, 프렌체 공화정 몰락, 메디치 가문 집권 등, 이탈리아 혼돈 시대가 배경이 된 정치철학이다. 끊임없는 정치적 분쟁, 불안한 정국, 중세 카톨릭의 <고전적 목적론> 통제를 완화시키기 위한, <다수의 행복, 자유, 평등>을 증진시키기 위한 현실주의 대안이었다. 그가 말하는 지도자는 영예와 명예를 목표로 삼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역량(virtue)>과 <사려 분별(prudence)>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지도자의 목표는 국가 안정뿐 만 아니라 개혁과 혁신을 강조했고, 그 결과가 영예와 명예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군주론>은 현대사회 지도자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청와대 종합행정센터 서영석 행정사의 “리더란 모두의 대표자로서 공동의 목표를 현실화 시키는 자이다” 글에서 인용함을 밝힌다. 그의 <군주론>을 요약하면 첫째, <지도자라면 어떻게 나라를 통치할 것인가?> 1. 민중의 요구를 간파하는 자가 통치할 수 있다. 2. 자유로운 도시를 정복할 때는 먼저 말살해라. 3. 지배는 협력이 아닌, 독자적인 힘으로 이루어라. 4. 민중을 설득하는 말보다 무력을 지녀라. 5. 기초공사가 권력 유지로 이어진다. 6. 타인이 자신에게 갖는 과거의 원한을 잊어서는 안된다.
둘째, <지도자는 당근과 채찍을 어떻게 구분해 사용할 것인가?> 1. 잔혹성은 한번만 실행한다. 2. 잔혹성이 나라를 재정립한다. 3. 포상은 조금씩 나누어 주어야 한다. 4. 민중으로부터 신뢰를 우선으로 생각하라. 5. 평화로울 때 군중의 모습을 믿어서는 안된다.
셋째, <지도자는 어떻게 군사를 사용해야 하는가?> 1. 용병을 너무 신용하지 않는다. 2. 너무 강한 지원은 의뢰자의 멸망을 초래한다. 3. 국가의 평화는 강력한 무력을 전재한다. 4. 평소부터 전투를 상정하여 지세를 파악하라.
넷째, <지도자는 악평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는가?> 1. 때로는 악평을 신경쓰지 말고 실행한다. 2. 선심은 때로 내 목을 죈다. 3. 지도자는 두려움을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4. 승리를 위해서 희생은 불가피한다.
다섯째, <지도자는 교활함과 용맹함을 어떻게 구사할 것인가?> 1. 교활함과 용맹함을 겸비하라. 2. 때로는 냉혹하고 불성실한 인간이 되어라. 3. 직접적인 원한이 자신에게 오지 않도록 교묘함을 가져라. 4. 신뢰할 수 있는 부하보다 적대한 인간을 고용하라. 5. 누가 우리 편이고 누가 적인지 표명하라.
여섯째, <지도자는 측근과 어떤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가?> 1. 자신의 측근을 극진하게 대해야 한다. 2. 측근의 수준은 지도자의 수준을 반영한다. 3. 소수의 현자에게만 진언을 허락하라.
일곱째, <지도자는 힘과 운(運) 중 어느 쪽에 의지해야 할 것인가?> 1. 현명한 지도자는 운에 몸을 맡기지 않는다. 2. 때로는 분별을 버리고 과감히 행동하라. 3. 위대한 지도자는 난세에 등장한다.
마키아벨리 <군주론>은 박정희, 전두환 군사 독재 시대나 전제정치와는 다르다. 국가를 안정시키고 개혁과 혁신으로 번영 시키기 위해서는 민중의 심리를 잘 파악하여 민중과의 공존(共存)정치를 주장한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들은 퇴임 후 왜 계속 민중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지 못하고 말로가 비참 한가? 나는 개인적으로 친구 같은 문재인 대통령을 좋아한다. 그는 선한 사람이다. 업적은 다소 부족하거나 미진한 일들이 있을지라도, 누구들처럼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국민을 속일 자가 아님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노무현, 박원순, 노회찬 등도 같은 부류로 본다. 그런데 그런 선함이 강한 지도자로서의 약점이 된 것은 아닐까?
<군주론 124쪽>에는 “군주는 짐승의 방법을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 중에서도 여우와 사자를 모방해야 한다. 사자는 함정에 빠지기 쉽고, 여우는 늑대를 물리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함정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혼내 주려면 사자가 되어야 한다.” 모든 민중이 선한 것만은 아니다. 아직도 어리석은 민중은 박정희 독재 시절을 그리워하고 피 터지도록 싸운다. 길들여진 <노예 습성>이다. 가장 마키아벨리즘에 부합되는 인물이 박정희 라 할 수 있다. 유신 체제와 30년 장기 집권을 위한 사자의 무력과 여우의 간계함을 동시에 구사한 인물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무질서한 상황에서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나라가 붕괴될 수도 있다. 단기적 소악(小惡)이 장기적 거악(巨惡)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한줌도 안되는 거대한 기득권 세력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나 잔인하고 무모한지 잊었다는 말인가? 진보 세력들은 정권을 잡더니 촛불 국민들의 피와 눈물과 여망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어리석은 자들이다. 이제 <정치군인>들이 <정치검찰>로 가면을 바꾸어 쓰고 또 다시 한국을 지배하려 한다. 다시 한번 민중이 현명해야 하고 엄중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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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주의 (07-30-2021)
엘리트주의(Elitism)는 소수의 엘리트 집단을 중심으로 사회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사회는 권력을 가진 엘리트(elite, 선량 選良)와 그렇지 못한 대중(mass, 大衆)으로 구분되며, 소수 관료나 저명인사 등 사회지배계급인 엘리트에 의해 무능한 일반 대중을 지배한다는, 계층적 하향적 사회 통치 질서를 중시한다.
고전적 귀족형 엘리트주의는 시민혁명 후 민주주의 발달로 <다원적 엘리트주의>가 등장한다. 즉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대중을 대표하기 위해 선출된 엘리트 간에 공개적 경쟁관계가 계속되며, 결국 현대 대중사회는 각 지역별, 계층별, 직업별 다원화되고, 각 분야를 대표하는 소수 엘리트 권력들이 국가 주요 정책 결정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전문 엘리트 분야가 정치분야이다. 따라서 대중은 이들 엘리트들을 엄격히 선출, 감시 감독해야만 한다. 대중의 역할을 못하면 무능한 대중이 되고, 사회는 엘리트 독재 사회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대중의 권리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 흘려 쟁취하는 것이다.
엘리트주의 역사는 플라톤으로 시작하여, 15세기 마키아벨리 군주론, 19세말 유럽의 고전적 엘리트 이론, 1950년대 미국의 엘리트 이론, 다원주의, 신엘리트이론(무의사결정론), 신다원론(정책망모형), 반엘리트주의(대중주의)으로 이어진다.
2500년전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충격 받아,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가장 비효율적인 이념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본 민주주의는 중우정치, 선동, 야합, 분열, 반목, 외세와의 결탁, 전쟁 사주, 이적행위,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보았다. 그는 소수 엘리트에 의한 <철인정치>를 주장했다. 그는 가장 우수한 인재 집단을 선발 육성하기 위해 기발한 과정을 만들었다.
<플라톤의 엘리트 선발, 육성책>: 1. 국가의 여자들은 남편을 공유한다. 2. 뛰어난 자질을 가진 아이를 낳기 위해 우수한 남녀를 선발하여 집단 섹스를 하는 날을 만든다. 3. 이를 통하여 누가 자신의 아이이고, 누가 자신의 부모인지 절대 알 수 없게 한다. 4. 선별된 아이는 국가의 어른들이 공동으로 양육한다. 5. 소년들 중 강인하고 용맹스런 자들을 뽑아서 2.3년 동안 체력훈련을 시킨다. 6.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산수와 기하학, 음악, 천문학 등을 가르친다. 7. 20세가 되면 평가하여 소수 인재를 거른다. 8. 30세가 되면 학문과 전투, 통찰력을 기르게 한 다음 다시 평가한다. 9. 5년간 철학 교육을 받은 뒤, 15년간 현실 세상에서 실무경험을 쌓는다.
다소 끔찍한 내용들이지만, 한국의 대통령 후보자들 면면을 보면 대부분이 서울대, 사법고시 출신들이다. 자칭 최고 엘리트로 착각하고 설치는 꼴이니 이런 망상도 해 본다. 향후에는 인공지능으로 최우수 정자와 난자들을 선별하여 전문 대리모를 통해 태어난 아이들은 고도의 전문 교육과정과 엄격한 훈련과정을 거쳐, 해결 능력으로 평가받은 뒤, 지.덕.체를 갖춘 국가지도자로 국민들이 선출하는 방법이 나오지는 않을까?
한국은 20대 사법고시에만 패스 되면 어린 나이에 벌써 <영감님>으로 대접받는다. 정부 고위직 직업 관료로 출세하려면 행정고시 출신들이 태반이다. 고시출신들은 출발선부터 다르다. 의사 등 전문직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타 엘리트 의식과 특권의식으로 집단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다. 비단길만 걷던 샌님, 모범생이었던 그들이 무슨 대중의 고통과 아픔을 알겠는가? 대통령 후보가 되기 전에 국민 선출직 정치가로 충분한 기간 동안 검증 받은 뒤, 후보 자격을 주어야 한다.
한국의 엘리트주의는 권력 기제를 고착화하는 <게이트 키핑(gate keeping)> 현상이다. 첫째, 학벌주의는 사람의 능력을 말한다는 교육 이데올로기가 그 뿌리다. 입시 승리자는 인생 승리자이라는 선민의식을 조장한다. 입시 결과에 따라 승리자와 패배자, 계급 서열화로 20대부터 차별된 사고로 살아간다. 하지만 한국의 입시는 부모의 경제능력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시작부터 차별화 된다는 것에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둘째, 보상심리다. 학벌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에 따른 보상도 달라야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우월의식과 능력주의 의식이 함께 공존한다. 셋째 끼리끼리의 선민의식이다. 대표적으로 결혼시장이다. 결혼 배우자는 나와 유사하거나 나보다 더 조건이 좋아야 한다는 열등의식이다. 이런 사고방식의 엘리트주의자들이 무슨 민중을 위한 정치가가 되겠는가?
현대는 단순 기능 사회가 아니다. 소수 특정 계층을 위한 사회는 더더욱 아니다. 소수 엘리트 계층이, 히틀러와 같은 선동가가 민중의 희생을 제물로 국가를 이끌어 가는 시대가 아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나 기후 온난화 현상에서 보듯이 지구 전체의 문제이고 국가 전체의 문제다. 능력주의를 통해 생겨난 상위 1% 엘리트 집단과 그들의 겉모습에 의심없이 동조하는 대다수 민중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기회의 평등에만 관심을 두고 결과의 평등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 사회는 기회마저 불평등한 사회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부의 불평등과 계층 이동이 불가능한 사회는 더 이상 선진국가로 존재할 수 없다.
민중을 위한 지도자는 민중과 함께 한 세월이 길어야 하고, 민중을 위한 업적이 분명해야 하고, 민중에 대한 선량함이 사고와 행동에서 흘러 넘쳐야 한다. 경천애민(敬天愛民)! 하늘을 숭배하고 민중을 사랑하는 사람, 그런 자가 모든 국가의 지도자가 되면 좋겠다.
정치란 무엇인가? (07-23-2021)
정치란 상호 대립하여 발생하는 부득이한 <갈등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모색하는 과정이다. 첫째는 개인의 이익 추구에서 발생하는 갈등, 즉 먹고 사는 문제이며, 이를 <경제론>이라 하고, 둘째는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갈등 즉 자신의 재산과 신체를 지키는 문제, 이를 <정치론>이다. 어느 시대나 경제론을 통해 개인과 국가가 부강해지고, 이를 지키기 위해 정치론이 필요하다. 한국은 경제는 자본주의, 정치는 민주주의를 택했다.
자본주의는 공급자와 소비자의 자유시장경제 체제다. 자본주의 아버지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은 ‘보이지않는 손’에 의해 정부의 개입없이 자유시장경제가 유지될 때 개인은 물론 국가도 부유해진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생산의 3대요소인 재료, 시설, 노동 3대 요소 중 재료, 시설은 수명이 제한적이고 한정되어 있으니, 생산성(이윤)을 높이기 위해서는 생계 유지의 최저 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수 밖에 없다. 즉 노동은 자본의 종속이며 생산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신흥 자본 세력과 국가는 점점 부유해지지만, 노동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가난한 이유이며, 점점 <부의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에 <성장과 분배>의 양대 지축을 어떻게 조화롭게 만드느냐가 정치가 해야할 몫이다.
이에 반기를 든 이론이 칼 마르크스의 저서 <자본론>이다. 노동자의 반란으로 자본주의는 붕괴되고 공산주의가 출현할 것을 예고 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부의 불평등과 정부의 역할에 대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했다. 그것이 케인즈의 <수정자본주의>와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이며, 작금의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진다.
<진보>는 큰 정부로서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과 복지정책을 추구한다. 기본소득 등 분배에 비중을 두는 반면, <보수>는 작은 정부, 정부의 시장개입을 제한하고 소극적 복지정책을 추구한다. 분배보다 성장에 더 비중을 둔다. 무엇이 옳고 그름이 아니다. 경제와 시대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여 결국은 <민중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다. 아담스미스나 칼 마르크스 철학의 목표는 <만인이 행복한 삶을 누려야 한다> 이다. 소련 공산주의 몰락은 독재를 위한 정치 철학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철학과 법 그리고 역사는 하나의 톱니바퀴다. 민중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정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신의 권능에 가까운 행위이자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본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정치가를 민중이 투표로 직접 선출하도록 막대한 권한을 부여한다. 민중이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잘못된 정치가를 뽑는 순간, 국가와 민중은 수렁에 빠지고 만다는 역사적 증거를 대한민국은 수도 없이 겪어왔다. 민중이 정치가를 위임했으면 감시와 견제를 게을리 하면 안된다. 민주주의가 입법, 사법, 행정으로 구분하여 입법부는 법을 만들고 사법부는 법대로 심판하고, 행정부는 법 범위 내에서 전반적인 국가 살림을 살게끔 구분했다. 따라서 정치가는 재정, 치안, 국방, 외교, 내무, 산업, 과학 기술, 통일 등 제반 분야에 충분한 식견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 물론 전문직인 직업 관료들이 있지만, 그 관료들을 감시 감독 통제하는 자는 국민이 선출한 선출직 공무원과 정치인들이다. 그래서 정치가 중요한 것이다.
한국은 5년마다 대통령 선거로 홍역을 앓는다, 아니 대통령 임기 내내 치고 박고 싸운다. <대통령 만능론>에 빠져있다. 대통령을 <절대권력>으로 착각하고, 대통령이 모든걸 해결할 수 있고, 해결해야 하고, 그러기에 모든게 대통령 책임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대통령은 퇴임 후가 대부분 불행하다. 이승만 유배 망명, 박정희 살해, 전두환 감옥, 노태우 감옥, 김영삼 아들 비리 구속, 김대중 아들 비리 구속, 노무현 자살, 이명박 감옥, 박근혜 탄핵과 감옥. 이런 나라가 어디 있나? 그래서 한국 대통령은 로또와 비슷하다고 한다. 첫째 확률이 극히 낮고, 둘째 일단 터지면 대박, 셋째 말로가 비참하다.
그런데도 개나 소나, 지나깨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야단이다. 야권 대선주자가 벌써 17명이다. 여권이 8명에서 2명 탈락, 6명이다. 대한민국 수립 후 지금까지 대통령 후보자 수를 보면 1대-간접선거, 2대-4명, 3대-2명, 4대-1명(사퇴): 이승만, 5대(박정희)-7명, 6대-7명(박정희), 7대-6명(박정희), 8대-통일주체 국민회의 간접선거(박정희), 9대- 간접선거(박정희), 10대-간접선거(최규하), 11대-간접선거(전두환), 12대-대통령선거인단 간접선거(전두환), 13대-7명(노태우), 14대-8명(김영삼), 15대-7명(김대중), 16대-6명(노무현), 17대-12명(이명박), 18대-7명(박근혜), 19대-15명(문재인)이다.
출마자의 성분과 경력은 백양백색이지만, 명분은 모두가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다. 정치인은 고도의 전문가이자 직업인이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정당 정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에 가입해서 오랜 세월 정치를 배워야 한다. 국정 양대 축인 경제 복지와 외교 안보 분야에 대해 참여하고 평가 받아야 한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민중을 위해, 민중에 대해, 민중에 의해 아는 것이 없고. 민중과 함께 봉사한 경험도 없다.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해서 서울대학교 졸업하고 사법고시, 행정고시 패스해서 지금까지 엘리트의식으로, 특권의식으로 대접받고 호의호식 한 죄 밖에 없는 자들이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고 헌법에 명기한 법조인 현직 검찰총장, 감사원장등이 마지막 로또를 잡기 위해 대통령 직에 도전을 한다. 내가 누군데? 내가 아니면 누가 감히? 권력에 미친 자들, 민중을 개 돼지로 보는거지..
나는 나로 살기 (07-16-2021)
베이비붐 기성 세대가 살아온 세상과 젊은 세대가 살아갈 미래 세상은 다르다. 세상이 다르니 살아갈 가치와 방식도 달라야 한다. 행복이 성적순이었던 세상, 전교 1등부터 전교 꼴찌까지 명단을 학교 교무실 입구에 전시했던 세상, 개인의 삶이 무엇이든 숫자로 등급을 메겼던 세상, 출신 학교가 평생의 꼬리표가 되어 차별 받던 세상, <노력=능력=성공>이라는 등식은 <게으름=무능=가난>이라는 등식으로 자동 연산 되어서 가난의 이유를 노력이 부족한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차별과 계급을 정당화 한 세상에서 살아왔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부자 부모를 만난 것도 능력이다 등.. 돈이 많은 자는 불법과 착취를 해도 당당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았어도 부끄러워한다면 그건 공정한 사회가 아니다.
미래의 세상을 살아갈 젊은이들은 우리처럼 이렇게 살면 안된다. 대량생산의 제조업 위주 세상은 <근면과 성실>이 슬로건이었다면, 급변하는 미래 세대는 <창의와 개성>이 가치기준이다. 미래 세계를 행복하게 살기 위한 전제조건은 <타자(他者)와 비교>를 해서는 안된다. 자신을 <수치(數値)화> 해서도 안된다. 내가 남들과 비교하는 순간, 나는 내가 아닌 타자가 된다. 비교한 타자를 이긴다 하더라도 또다시 다른 타자와 비교하게 된다. 나는 나를 점점 잃어간다.
법정 스님 말씀에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충실할 때, 그런 자신과 함께 순수하게 존재할 수 있다. 진달래는 진달래 답게 피면 되고, 민들레는 민들레 답게 피면 된다,” 나는 진달래인데 민들레가 되고 싶다고 민들레가 될까? 어리석음이다.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을 닮은 나를 만드실 때 다른 누구와 비교해서 그보다 더 잘 하라고 세상에 보내셨을까? 아니다. 각자의 삶을 사는 동안 그분이 주신 각자의 사명이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겠지만, 가장 먼저 전제되어야 할 덕목은 <선함>이다. 무엇을 하든, 무엇이 되든, <선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그분께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고백할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양극화 현상, 불평등, 불공정 세상에 살면서 <될대로 되라>식의 자포자기 삶을 사는 것에 대해 너무 안타깝게 생각한다. <나는 나로 살기>는 <내 멋대로의 삶>이 아니다. 나의 <정체성>을 찾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나의 <자존감>을 지키면서 <선한 마음>으로 좋은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사랑하며 재미있게 사는 것이다. 타자와 비교할 필요도 없고, 더구나 험담하거나 미워할 필요도 없다. 아니면 안보면 되고 다름을 인정하면 된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정보와 다른 가치관의 사람들이 상존한다.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나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유(思惟)해야 한다.
세상의 삶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모순이고 부조화이고 불확실이다. 그런 세상 속에서 나를 찾아야 하고 사랑해야 하고 정의로워야 하며 행복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나로 아름답게 살기로 선한 마음만 먹는다면 많은 필요 조건들(돈, 출세, 학벌, 성공, 미모, 건강 등등)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젊은 작가 김수현의 베스트셀러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를 추천하며 일부 인용한다. “목표: 보통의 존재가 내가 아닌 것을 시기하지 않으며, 차가운 시선을 견디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살아가기.” 작가는 어른으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 모두가 어른이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 각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공동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라는 것이다. “바닷물이 썩지 않는 이유가 3%의 소금 때문이듯, 만약 세상이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면 우리 각자의 3% 노력이 부족해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각자의 몫을 하자.”
그러면서 각자가 해야 할 <to do list>를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예시한다. 첫번째, 나의 삶을 존중하며 살아가기 위한 to do list, 두번째,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 세번째, 불안에 붙잡히지 않기 위한 ~~, 네번째, 함께 살아가기 위한 ~~, 다섯째, 다 나은 세상을 위한 ~~, 여섯째, 좋은 사람, 의미있는 삶을 위한 to do list”로 구성되어 있다.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to do list를 예로 들면, – 단단한 자존감을 다질 것, – 나다운 삶을 찾을 것, – 더 이상 사람의 질문을 유예하지 않을 것, – 당연했던 것에 질문할 것, – 누구의 기대를 위해서 살지 않을 것, – 나 외엔 무엇도 되지않을 것, – 세상의 정답에 굴복하지 않을 것, – 안목을 기를 것, – 스스로 선택할 것, – 개인의 취향을 갖출 것, – 진짜 내 자신을 대면할 것, – 자신이 빛날 수 있는 자리에서 살아갈 것 등이다. 그 외 – 인생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지 않을 것, – 인생에서 숫자를 지울 것, – 스스로에게 변명하지 않을 것, – 지금의 관계에 최선을 다할 것, – 그럼에도 누군가와 함께 할 것, – 너그러운 개인주의자가 될 것, – 희망의 근거를 만들 것 등등이 인상적이다.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데 누가 나를 사랑하겠는가? 내가 행복하게 살아야 가족도 살고 이웃도 살고 세상도 산다.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 당신 스스로를 열심히 사랑하세요.
공정과 상식 (07-09-2021)
<공정과 상식>, 윤석열 대권 도전자가 내세운 정치 슬로건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자신을 키워준 주인을 물어뜯는 이런 양아치 류의 인간들을 경멸한다. 철저한 기수 서열 검찰세계에서 사법고시 9수 낙오자를 5기수나 앞당겨 검찰총장까지 시켜준 주인에게 칼을 들이대? 자신의 주변은 시궁창이면서 선별적 수사로 기득권의 주구 노릇을 하는 그는 한낱 망나니 칼잡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공정한 사회>란 무엇인가? <정의로운 사회>란 무엇인가? 과연 <공정>이 가능한 사회인가? 공정의 의미는 <기회의 균등>과 <배분의 균형>을 말한다.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기회 균등은 동일한 능력과 의지를 가졌다면 비슷한 사회 경제적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라 했다. 기회 균등은 절차와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촛불 혁명이 검찰이, 사법부가, 언론이 공정 해서 <검찰개혁, 사법 개혁, 언론개혁>을 외쳤겠는가? 민중에게는 결코 공정할 수 없는 사회다. 1% 소수 사회 엘리트들의 기득권자들이 말하는 <공정>은 <능력주의>를 통칭한다. 그들만의 특권의식과 철저한 차별과 비교 우월주의다.
베이비붐 세대인 우리 세대는 현대 젊은이들에 비하면 그나마 <기회의 균등>, <기회의 공정>시대였다 할 수 있다. 해방 이후 너도나도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이었고, 균등한 공교육 기회만이 주어졌기에 학교 공부만 잘 하면 전국의 일류 중학교, 일류 고등학교, 일류 대학교만 졸업하면 출세가 보장되었다. 당시에는 서울대학교 합격자 숫자로 전국 중, 고등학교 서열이 매겨졌다. 그래서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자칭 전국 서열 4위, 한강 이남 1위)에서도 서울대학교 합격자 수를 높이기 위해 농과대학에 무더기 합격시킨 웃지못할 사연도 있다. 특히 서울대학교 졸,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의사고시에 합격하면 부와 명예가 평생 보장된다고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런 국가의 수혜와 은총을 받은 자가, 평생 기득 세력들을 위해 선별 수사하고 칼잡이 노릇을 한 자가 <공정과 상식>을 외치다니 가소롭기 짝이 없다.
그래도 우리 세대가 말하는 <성공>에는 공통점이 있다. 과거의 비참한 환경에서도 엄청난 노력과 불굴의 의지로 딛고 일어서서 오늘날의 성공과 부를 차지 했다는 신화를 우상처럼 여기고 각자의 목표가 되었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등식이 성립되던 시절이다. 그래서 우리 세대는 <학력 콤플렉스>가 있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더라도 서울대학교 우선이다. 같은 판, 검사라도, 같은 의사라도 그들끼리의 학벌 서열이 정해지고, 조직이라는 세력이 형성되고 권력이 된다. 권력은 자연스럽게 부자들과 연계된다. 그들만의 사조직이 평생의 부귀영화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윤가는 ‘개인에 충성하지 않고 자기 조직에 충성을 다한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 민중들은 고학력 친일파에 속았고, <이승만>의 하버드와 프린스턴 박사 학력에 속았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엘리트 군부 학력에 속았고, 김영삼 서울대 운동권에 속고, 이명박의 재벌 성공 신화에 속았고, 박근혜의 <박정희 신드롬>에 속은 것이다. 고졸 출신인 <김대중, 노무현>과 이류 대학 출신 <문재인>을 업신여기고 깔보는 것이다. <독재, 부패, 무능, 무법>의 기득권 세력들이 <공정과 상식>을 앞장세워 수구 언론을 통해, 진보 개혁 세력을 <독재, 부패, 무능>정권으로 반복 세뇌시키는 것이다. 민중을 개 돼지로 보는 거지? 두고 볼 일이다.
현대 젊은이들은 그마저도 허용되지 않는다. 우리 기성세대들은 일류 대학을 안 나와도, 고졸 출신 이어도 지금처럼 임금 격차가 크지 않았고 많은 차별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취직하기가 어렵지도 않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연봉 차이도 지금처럼 두배 이상 차이는 아니었다. 비정규직도, 임시직 개념도 없었다. 평생 직장 개념이 보편화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 젊은이들은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자격증도 몇 개씩 따야 하고, 인턴과 임시직 등으로 스팩 쌓기도 해야 하고, 토익 점수도 높아야 하고, 취직하기 위해 수십 군데 이력서 제출과 면접을 보아야 한다니 무슨 말로 격려를 해야 하나? 힘내라? 열심히 해라? 최선을 다 해라?
어떻게 <공정>할 수 있나? 개인의 <능력>과 죽을 만큼의 <노력>을 하면 남들만큼 <중산층> 수준으로 잘 살 수 있나? 한국 중산층 기준은 서울 기준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10억 이상, 단 집 융자 없는 상태), 현금과 주식 1억원 이상 보유, 4인기준 연봉 9천만원 이상, 중형 자동차, 퇴직 연금 보장, 기타 부채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고 한다.
기득권들이 말하는 <공정>은 <능력주의>다. 능력 있는 자가 잘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한 능력주의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기회의 평등>이다. 대한민국은 기회가 평등하지 않다. 한국사람은 초면에 첫번째 질문이 <어느 학교 출신이고?> 두번째는 <아버지 뭐 하시노?> 세번째는 <어디 사노? 아파트 몇 평이고?> 이란다.
이러니 가난한 집 출신의 <계층 이동 사다리>는 없어졌다. 부모의 재산과 부모 직업과 배경에 따라 출발선이 완전 다르다. 사교육의 기회가 다르다. 성장 배경이 다르다. 가난한 집 출신이 죽도록 열심히 노력해서 되는 사회가 아니다. 서울대 입학생 절반이 특목고, 과학고, 특수 사립고 출신들이다. 고학력은 고액 투자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시대다. 이것이 기득권 세력들이 말하는 <공정에 대한 상식>이다. 출신 성분이 다르니 그만큼 더 우대 받고 차별 받아야 되는게 <상식>이라는 <내로남불>이다. 억울하면 출세를 하던가? 라는 놀림이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다음 칼럼에서 생각해 보자.
마음 편히 살기 (07-02-2021)
누구나 마음 편하게 살고 싶어 한다. 현대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살지만, 적지 않는 인구가 병원에 등록된 우울증(정식명칭: 우울 장애) 환자이거나 우울증 약을 먹고 있는 우울증 예비 환자이기도 하다. 한국인은 약 1백 2십만명 (WHO 추정 약 2백만명)이 우울증 환자로 예상된다. 또 우울증은 정신분열, 불안장애(강박장애, 공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망상장애와 같은 정신병과 복합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우울증은 높은 자살률은 물론이거니와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으로도 이어진다.
만병의 근원인 우울증은 이제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통계적으로 정신과 진료의 4분의1 이상이 우울증 환자 치료이다. 평생 한번 이상 우울증 발병률은 남성이 5~12%, 여성이 10~25%다. 또한 우울증 환자의 3분의2는 자살을 생각하고, 10~15%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다고 하니 현대인 우리 모두의 고민이자 각자가 풀어야 할 심각한 과제이다.
가바사와 시온(일본 정신과 의사이자 자살 예방 활동가, 관련 서적 30여권 집필)이 쓴 <나는 이제 마음 편히 살기로 했다>(코로나 시대 필독서 베스트 셀러)에서 인용함을 밝힌다. 현대인 누구나 겪는 <스트레스>는 없앨 필요가 없다. 오히려 스트레스 없는 것이 더 문제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뇌 기능을 활성화하고 집중력을 강화하고 기억력을 높인다. 문제는 과도한 스트레스와 지속적 노출, 누적이 문제다. 과제는 첫째, 스트레스 없는 상태서 잔다. 둘째, 스트레스와 피로를 다음 날까지 끌고 가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트레스에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유연한 사람>이 되라. 즉 <회복 탄력성(resilience), <마음의 유연성>을 강조한다.
나쁜 스트레스의 원인을 제거할 필요는 없다. 스트레스를 5개 주제로 나눈다. 인간관계, 사생활, 직장생활, 몸 건강, 마음 건강. 이 다섯 가지 스트레스 주제별로 <사실(Fact)>를 파악하고, <할 일(To Do)>를 알면 고민의 90%는 해결할 수 있고, 이제 실천(just Do)하기만 하면 된다. 이런 문제 해결 기법은 내가 대기업 재직시 지겹도록 활용했던 비즈니스 컨설팅 기법과 너무 유사하다. 즉 모든 일에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상 분석>, 즉 <Fact>를 알아야 한다. 각 Fact에 대한 <원인과 대체 방안>, 즉 <해결방안>을 찾고, <실행(Just Do it)에 옮기고, <평가>를 받는 것이다. 여기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략(Strategy)>과 세부 <전술(Tactics)>이 필요하다.
스트레스를 제거할 그의 전략을 살펴보자. 첫째, <불안은 행동하면 사라진다>. Fact -1. 불안은 노르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상태다. 노르아드레날린은 싸울까, 도망 갈까를 결정한다. 뇌가 예민해져서 집중력이 올라가고,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혈액이 빨리 돌아가는 흥분상태가 된다. -2. 불안은 가만히 있으면 커지고, 움직이면 작아진다. 인간의 가장 근원적 감정은 공포와 불안이다(토마스 홈스, 영국 철학자). 불안을 없애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행동>하면 된다. -3. 행동하면 현실이 달라진다. 세상에는 <input>형 인간과 <output>형 인간이 있다. 지식과 정보를 아무리 열심히 받아드려도, 소리 내어 <말하거나>, 글로 <쓰거나>, 몸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현실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세가지 행동강령을 말한다. 말하기(누군가와 수다떨기), 글로 쓰기, 행동하기다.
두번째 전략은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다. 누구나 고민을 안고 산다. 즉 공통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의 고민에 <대처법과 해결법>을 <알아내서(Know)>, <실행에 옮기면 된다(Do it)>. 고민을 없애는 <처리 절차(processing procedure)>는 4단계 방법을 쓴다. -1. 고민을 상담하듯이 글로 쓴다. -2. 대처법을 알아본다. 실제로 할 수 있는 일 세가지(이상)을 찾아본다. -3. 일단 해 본다. 하다가 아니면 수정해서 다시 한다. -4. 평가한다. (성공요인 3가지, 실패요인 3가지, 추후 실천사항 3가지).
– 전략 3: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서 해결하는 방법>, – 전략 4: <생활 습관을 바로 잡아 건강하게 살자>. 가장 좋은 우울증 예방법은 <규칙적인 생활>이다. 질병을 예방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수면>, <운동>, <식사 습관>이다. 이와 관련된 내용들은 유투브에 흘러 넘친다. 다만 실천(행동)하지 않을 뿐이다. -1. <수면>: 만성 불면에 시달리는 사람은 숙면하는 사람보다 우울증에 걸리는 확률이 40배 이상 높다. -2. <운동>: 하루 20분 이상, 일주일에 150분 이상 유산소 운동을 하면 약물치료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볼 수 있다. -3. <식습관>: 하루 세끼, 영양소를 골고루 갖춘 제대로 된 한끼 식사. 음식물을 10분 이상 씹으면 세로토닌(우울증은 세로토닌 저하로 발생)이 활성화, 패스트푸드는 가급적 금지, 녹차와 커피는 하루 한,두 잔이 적당.
–전략 5: <최고의 아침 습관, 산책을 하자>. 마음 건강을 유지하는 데는 <아침 산책>이 가장 효과적이다. 세로토닌은 각성, 기분, 의욕에 관여하는 신경전달 물질이다. 세로토닌이 오전에 충분히 분비 되어야 수면 물질인 멜라토닌이 밤에 충분히 분비되어 잠을 푹 잘 수 있다. 나는 퇴근 후 매일 산책을 했는데, 이제부터 아침 산책으로 바꾸어야 하나? 그 외 타인과 비교하지마라, 화내지 마라 등등.. 지면상 모두 소개할 수는 없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세상 만사 모든 것은 오로지 내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는 <화엄경>의 중심사상이다. 실천하고 안하고는 내 마음 먹기에 달렸다. 세상 사는게 힘들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가? 작은 것에 감사하고 작은 것에 행동하면, 큰 행복이 되어 올 것임을 그대도 알고 나도 아는데.. 우리 모두 마음 편히 살자.
참 좋은 당신 (06-25-2021)
결코 짧다고는 할 수 없는 세월 동안, 살아온 길을 뒤돌아 보면 <참 좋은 당신>이 내 곁에 계셨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어찌 살면서 내 인생이 언제나 밝은 햇살만 비치는 날이었을까, 바람 불고 비 오고 눈 오고, 거센 태풍이 부는 날도 많았었지. 넘어지고 서있기 조차 힘든 날도 있었지만, <참 좋은 당신>에게 기댈 수 있어서 고마웠고, 내 손을 잡아줘서 바로 설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참 좋은 사람>들은 내가 기억하는 사람들과 내가 잊어버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참 좋은 당신>은 나의 어머니, 아버지, 외할머니, 장모님, 장인어른, 양가 형제들과 배우자들, 그리고 가족들 한사람 한사람 모두, 나의 자식들과 친 손녀들.. 그리고 나와 함께 평생을 동행하는 늘 벗 나의 아내.. <참 좋은 당신>들이 없었다면 나는 어느 음침한 골짜기에서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어머니의 어머니>로 다시 태어나서 당신이 제게 베풀어 주셨던 넘치고도 넘치는 사랑들을 두배 세배 아니 그대로 만큼이라도 되돌려 드리고 싶습니다. 나이 칠십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도 <엄마> 소리만 들으면 길을 가다가도 운전을 하다가도 그냥 눈물이 납니다. 제가 최선을 다 해 선한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사는 이유도 우리 엄마가 그러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아버지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서 당신께 가까이 다가가 다 하지 못한 사랑을 마음껏 드리고 싶습니다. 언제나 별 말씀 없이 저를 믿어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지켜 주시던, 당신은 나의 태산이요 바다였습니다. 저는 왜 아버지를 그렇게 어려워하고 사랑의 표현을 못했는지 후회하고 또 후회합니다. 다시 아들로 태어난다면 다정 다감한 아들, 친구 같이 제일 가까운 아들이 되려 합니다.
또 <참 좋은 당신>은 시절 시절 마다 친했던 친구들이다. 그들과의 끈끈한 우정이 있었길래 방황하고 고민하던 시절에 서로 의지하며 큰 꿈을 꿀 수 있었으리라.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알 길은 없지만, 굳이 알려면 알 수도 있으련만, 이제 나 홀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니, 마음만으로 모두들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나와 사랑했던 <참 좋은 당신>들도 있다. 사춘기 시절부터 지금의 아내와 사랑하기 전까지 만났던 시절 시절 마다의 여인들에게도 미안함과 감사함을 간직하고 있다. 헤어질려고 헤어진 것도 아니건만, 헤어짐에 이유와 변명을 한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 살아 생전 다시 만날 날이 없기에 더 잘 살고 행복하시길 믿고 소망한다.
살면서 학교의 좋은 선생님들, 군대 선후배들, 직장과 사회 선배와 상사들, 동료와 후배들도 <참 좋은 당신>이었다. 서로 의지하며 날밤을 세운 날도 많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모두 십시일반으로 힘을 모으고 응원해 주던 사람들이다. 나는 주변 사람들도 부러워할 만큼, 인복(人福)이 많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들의 도움과 격려가 없었다면 성공적인 사회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신세만 지고 갚지 못한 마음이 빚으로 남아있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란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인연>따라 만나고, <인연>따라 헤어진 수많은 <참 좋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웃 사람들, 밥집 술집 사람들, 운동으로 만난 사람들, 여행길에 스치며 만난 사람들, 일로 만난 사람들, 고객으로 만난 사람들.. 나에게 따뜻한 말과 덕담을 주시던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다. 스쳐가는 인연이든, 평생 할 인연이든, 나와 맺어진 인연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혼자 살아도 혼자 사는게 아니다. 함께, 더불어 모여서 살아온 세월이다.
이리저리 되돌아 보아도 나는 수많은 <참 좋은 당신들>로부터 넘치는 복을 받았지만 되갚을 길이 막연하다. 어쩌면 누구나 산다는 게 <빚쟁이> 인생인지 모른다. 독일의 경제학자 알렉산더 뤼스토는 신자유주의가 사회를 비인간적으로 만들고 인간을 소외시킨다고 말한다. 자기부터 먼저 생존하려는 생존 사회, 과도한 경쟁 사회, 과잉 정보 시대가 상호 신뢰를 상실하고 공동체 의식이 희박해져 가는 것이다. 현대인은 고독하다. 누구나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면서도 사람을 불신하고 의심하고 미워한다.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풍경이다. 내가 마음의 문을 열면 세상에는 <참 좋은 사람들>이 어느 곳에서나 만날 수 있다. 송정림 작가는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에서 “세상이라는 망망대해에서 그래도 내가 닿을 섬 하나, 그것은 사람입니다. 바람 부는 세상을 걸어가다가 지친 마음을 기댈 언덕 역시 사람입니다.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 나를 나아가게 하는 힘도 결국 사람입니다.”
우리 각자 스스로가 <참 좋은 사람>으로 다가가 보자. 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나의 작은 친절한 행동 하나가, 나의 선한 도움 한가지가 어쩌면 힘들고 지친 내 이웃의 기댈 의지가 되고 희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과 함께 한 시간이 내 생에 가장 행복했습니다.” 아니 “당신과 함께 한 시간이 참으로 즐거웠고 소중했습니다.” 라고만 해도 나는 잘 산 세월이 될 것이다. 사람은 사람 인(人)인 이유가 기대어 사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나의 어깨를 내어 주자. 나의 등을 내어주자. 서로서로 기대어 함께 살면 얼마나 따뜻한 공동체가 될까?
그러라 그래 (06-18-2021)
올해 70세 (1952년생), 가수 데뷔 51년차인 양희은 씨가 <그러라 그래> 수필집을 출간했다. 그녀가 힘들게 살아온 삶과 노래, 일상의 소중했던 순간들을 책에 담아 우리 민중들을 위로한다. 나보다 두 살 많은, 19세라는 나이에 <아침이슬>로 데뷔한 양희은 가수와 김민기 작곡가가 만들어 함께 불리워진 시대의 노래들은 지금도 우리 세대의 상징이자 낭만 어린 추억들이다.
경기 여중, 경기 여고, 서강대 출신이라는 학력도 그러했지만, 긴 생머리, 청바지, 통기타, 포크 송은 암울한 박정희 군사독재와 삼선 개헌 저지, 유신 철폐로 대학 4년 내내 데모를 했던, 암울했던 우리 세대들에게는 그녀의 노래가 위로였고 지금까지도 나는 그녀의 <찐팬>이다.
그녀 애창곡만 나열해도 <아침이슬, 세노야 세노야 -1971년, 아름다운 것들, 작은 연못 -1972년, 내 님의 사랑은 -1974년, 한사람, 세월이 가면 -1975년, 들길을 따라서, 늙은 군인의 노래 -1976년, 친구, 들길을 따라서 -1976년,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1978년, 이름 모를 소녀, 빗속을 둘이서 -1980년, 하얀 목련,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1983년, 한계령 -1985년, 그해 겨울,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1991년, 내 나이 마흔살에는 -1995년, 당신만 있어준다면 -2006년> 등등 이다. 그녀의 노래 중 30여곡이 금지곡으로 지정된다. 20년 군부독재 기득권들의 미친 짓거리다. 좋은 노래와 좋은 가수는 지치고 힘든 민중의 삶에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지 모른다. 나는 하루 일과 중에서 적지않은 시간 음악을 듣고 흥얼거린다.
그녀의 평소에도 잘 쓰는 한마디.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러라 그래” 이 말 한마디가 많은 민중들에게 위로가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든게 <과잉 시대>다. 정보와 지식, 자원의 홍수 시대, 무한 경쟁, 무한 비교, 무한 차별, 불확실, 불공정, 불평등이 만연한 시대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는 태생부터 다르게 시작한다. 노력한다고 따라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공부 잘 한다고 계층별 사다리를 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연봉이 조금 많은 <을>에 불과하다. <을>은 결코 <갑>이 될 수 없다. 양반과 상놈의 <신분 세상>이 된 것이다.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시대적 아픔을 지금의 2030 세대들은 겪고 있다. 물질의 풍요 속에 정신적 빈곤은 더욱 깊어만 간다. <비교와 좌절과 분노>다.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젊은이들이 부모 잘못 만나서, 평생 월급을 모아도 아파트 한 채 조차 가질 수 없다면? 죽어야 하나? <근면과 성실>이 기성세대의 답인가?
그녀는 그녀가 살아온 <삶의 결핍>이 오늘의 그녀를 만들었다고 한다. – 그녀는 어릴 적 상당히 유복한 집안이었다. 아버지는 육사4기 포병 장교로, 어머니는 서울예대 성악과 출신 디자이너로, – 그러다 아버지가 육군대령으로 39세 나이에 그녀가 13살 때 암으로 작고하고 가세가 점차 기울게 됨, – 엄마의 장사 실패로 빚을 갚기 위해 19세 때부터 노래를 부르게 됨. 집안 빚과 여동생 둘의 뒷바라지로 20대를 바침. 대학도 8년만에 졸업함. – 1982년 30세에 난소 암으로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두번의 수술을 함. – 미국으로 건너 감. 1987년 뉴욕 한인교회에서 한인 사업가를 만나 3주만에 결혼함. – 1989년 난소암 재발, 불임 판정. – 1993년 사업을 정리하고 남편과 함께 귀국, 가수로 복귀. – 남편의 류마티스성 관절염으로 약물 과다 복용, 가수 포기, 남편 간병 올인, 서로가 서로를 간호하고 위로하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함. 즉 그녀의 노래와 그녀의 글은 그녀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그녀 인생을 이렇게 함축한다. – 20대는 “늘 흔들렸다”, – 30대는 “달라진 건 없었다” – 40대는 “겁이 조금 없어졌다” – 50대는 “여유가 생겼다” – 60대는 “흔들릴 일이 드물어졌다”, – 70대는 “모래알처럼 덧없어졌다”.
누구나의 삶이 그렇듯이 아픈 과거가 없는 삶이 어디 있으며, 상처 없는 행복이 어디 있을까? 아프고 병들고 상처 난 삶들을 꿰매고 감싸 안은 채 살아가는 게 민중의 삶이다. 그러니 나는 <나의 삶>을 찾아야 한다. 주변의 삶에 상관하지말고 나는 <나로 살아가야 한다>. 나의 삶을 과장하고 꾸미지 마라. 그러는 순간 타인의 삶이 되어버린다. 나의 삶에 진솔하고 진지해야 한다. 비교하지 말고 비교할 이유도 없다. 나의 삶이 좋아하는 일을 찾고, 열정을 다하고, 감사하면 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누가 나를 도울 것인가? 나를 가장 잘 도울 사람은 나 자신이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기에 앞서 내 자신의 상태를 살펴 보아야 한다. 가족의 기대, 주변의 시선, 타인과의 비교와 열등의식, 불합리한 인내와 친절 등은 나의 삶이 타인의 삶으로 변모하는 요소들이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그 누구도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할 수 없다. 따라서 그들 누구도 내 삶을 보장 하지도 책임지지도 않는 것은 당연하다. 살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고 좌절할 수도 있다. 가능한 빨리 털고 일어서야 한다. 그대로 묵혀두고 쌓여가면 <무기력>이라는 병이 생긴다. 나는 왜 하는 일 마다 이 모양이지? 하는 <자책>은 타인을 <원망>하게 되고, 결국 자신을 <포기>하게 된다. <사는게 다 그런거야>,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러라 그래>, 그리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내 인생은 내 것이고,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도 나 자신이니,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OK? 젊은이 힘내시게..
아내의 명예 은퇴 (06-11-2021)
2021년 6월30일 부로 드디어 아내가 은퇴하기로 결정했다. 마침 아내는 올해로 메디케어가 시작되었고, 다운타운에서 14년동안 하던 Drop Store 가게도 리스기간이 만료되었다. 아내는 14년전에 12만불 주고 산 가게를 빈손으로 문을 닫기 속상하니 몇 년 더 하겠다고 고집이다. 하지만 이제 은퇴할 충분한 자격이 된다는 나의 설득으로 밀어 부친 것이다. 아내처럼 팬데믹으로 가게 문을 닫는 여러 사람들의 섭섭한 마음을 위로할 겸 이 글을 쓴다.
우리 부부는 결혼생활 40년, 이민생활 20년이다. 나와 함께 산 세월 동안 내 영혼의 동반자였고, 나의 친구이자 나의 변함없는 응원자 이었다. 한국에서 사는 동안 부모님 잘 모신 효부였고, 형제들 우애의 연결자로 부족함이 없었다. 1남2녀 자식 세명을 남부럽지 않게 잘 키워서 최고 학부들을 마치고, 모두 원하는 직장생활 잘하게 하고, 딸 2명은 각자 원하는 상대와 결혼해서 손녀딸 1명씩 낳고 독립된 가정을 꾸며 잘 살고 있으니, 이 모든 것이 아내의 덕이고 노력이고 사랑 이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일본에서 대학을 마치고 직장생활 하다가 한국에 나와 잠시 일본어 선생을 하였다. 그때 우연히 공군본부 번역실 장교들의 일본어 선생님이 되어 제자이자 첫사랑인 나를 만났단다. 장담 하건데 내가 만나본 많은(?) 여자들 가운데서 최고 쑥맥 이었다. 세상물정을 너무 몰라 북에서 일본으로 남파한 간첩 인줄 의심한 적도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내는 별로 말이 없다. 주로 듣는 형이다. 오죽하면 지금 다니는 교회 생활 15년동안 아내가 말하는걸 처음 들었다는 신도도 있을 지경이다. 그런 분과 2년간 불같은 사랑을 하였고, 동성동본으로 양가 집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만을 믿고 결혼한 대찬 여자다.
결혼 초부터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 회사 일에 미쳐 사는 남편과 만만찮은 시어머니 시집살이에도 잘 견디어 주었다. 승승장구 하던 남편 사업과 남부럽지 않은 결혼 생활 20년을 하다가 IMF를 만난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내 인생에 <가난>이라는걸 한번도 상상조차 해 보지 않았다. IMF로 전 재산을 탕진하고 남편은 삶을 자포자기 하려 하자, 먼저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2000년 아내 혼자 몸으로 자식 3명을 데리고 무작정 언니가 사는 미국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001년 9.11 사태가 터지자 무조건 나를 미국으로 들어오라고 강제호출령이 떨어졌다. 지은 죄가 많으니 거역할 재간이 없었다.
2001년 미국에 올 때 나의 전 재산은 전세 값으로 받은 5만불이 전부였다. 그 당시 내 나이가 48세였다. 미국 이민 생활에 대한 아무런 정보나 지식도 없이, 가족 모두는 여행자 신분으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단칸방 원룸 아파트에서 고3, 중2, 초1 세명의 자식과 부부 다섯 식구가 몇 년간 그렇게 뒤엉켜 살았다. 무엇을 해서 먹고 사나 눈앞이 캄캄했다. 지연 학연이 전혀 없는 더 넓은 황무지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었다. 지금처럼 무료로 비즈니스 컨설팅 해 주는 업체도 없었다. 그렇다고 김씨, 이씨, 아저씨 등으로 막 대하는 주급 생활은 도저히 못할 것 같았다. 명색이 전국 대리점만 200개 넘는 회사 사장이었다는 헛된 아상(我相)도 문제였지만, 영어를 거의 못하는 아내도 문제였다. 남의 집살이에 구박 받을게 뻔했다. 그렇다고 가진 돈도 얼마 안되니 제대로 된 가게를 할 형편도 못되었다.
그래서 시작한 자영업이 조그만 <정육점 – Meat & Grocery> 이었다. 그 당시 <정육점>을 결정한 단 한가지 이유는 아무리 장사가 안되어도 자식들 굶기지는 않을거라는 막연한 환상 때문이었다. 생각대로 고기는 실컷 먹었지만 규모가 작다 보니 돈이 모이지 않았다. 마침 동네 한국인이 음식 경험이 많다 하여 <Breakfast>를 동업으로 하게 되었다. 역시 가게 규모가 작으니 의견 충돌이 잦아 결별하게 되었다. 가게 두개를 아내와 내가 각각 맡아 하게 되니 아내는 거의 탈진상태가 되었다. 이건 아니다 라는 결론으로, 아내가 좋아하는, 바느질이 많은, 지금의 Drop Store를 전 재산을 털어 사 주었다. 그리고 나는 고물 밴 한대로 사무실도 없이, 경험도 없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지금의 <비즈니스 컨설팅 부동산>일을 무모하게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14년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그분께 감사할 따름이다. 잠 잘 곳과 일용할 양식과 입을 것을 그분께서 모두 준비해 주셨다. 가족 모두 건강하게, 가족 모두 자신이 원하는 일들을 하며, 가까운 곳에 모여 오손도손 살게 해 주심은 모두 그분 덕이며, 또한 내 아내의 수고와 노력이다. 이제 아내는 <명예로운 은퇴>를 하고 세번째 인생을 행복하게 즐길 자격이 충분하다.
이제부터 아내는 천천히 사유하고 고민해야 한다. 첫째, 어떻게 건강을 잘 유지할 것인가? 둘째, 좋아하는 어떤 일을 하며 만족해 할 것인가? 셋째, 사회활동과 봉사활동은 무엇을 할 것인가? 넷째, 하루의 일과를 어떻게 구성하고 실천할 것인가? 다섯째, 꼭 해 보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며 당장 하고 싶은 일을 실행하라. 생활비와 경비는 아직까지 은퇴하려면 10년이나 남은 남편이자 영원한 머슴인 내가 책임지면 된다. 아내를 10년 이상 지켜줄 친구 같은 강아지를 한마리 알아봐야겠다. 이제 당신은 자유의 몸입니다. 자유의 날개를 활짝 펴세요.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대여..
미래 별에서 온 여자 (06-04-2021)
여러분은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면 어느 시대 어느 곳으로 가고 싶은가? 만약 당신과 함께 살고 있는 분이 미래 별에서 온 사람인데 나만 모르고 살고 있다면? 살다 보면 여느 부부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해 못할 일도 많고, 의견 충돌이 있거나 부부싸움도 할 것이다. 결혼생활 40년을 함께 살아온 나도 가끔은 아내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그게 삐칠 이유인가? 그럴 때마다 저 사람은 <미래의 별>에서 온 사람이라 생각하면 모든 오해와 불만이 풀리지 않을까? 어쩌면 오히려 더 귀엽고 사랑스럽지는 않을까? 내가 문제인가? 일년 넘는 코로나 격리 사태로 주변에서 부부싸움이 늘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본 망상이다.
만약 시간적 여유가 되시면 넷플릭스 장편 드라마 <Outlander (아웃랜더, 이방인)>를 추천하고 싶다. 정말 재미있다. 영국과 미국이 합작해 스코틀랜드,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의 배경이 되는 역사, 정치, 로맨스, 판타지 통합드라마다. 야한(?) 애정 장면들이 많으므로 꼭 부부가 함께 이불 뒤집어쓰고(?) 보면 더 재미있을 거라 확신한다. 2014년 시즌 1- <아웃랜더>를 시작으로, 2016년 시즌 2- 호박속의 잠자리, 2017년 시즌 3- 여행자, 2018년 시즌 4-가을의 북, 2020년 시즌 5- 혈화의 십자가 까지 방영되었고, 곧 시즌 6, 시즌 7이 마지막 방영될 것이라 한다. 한 시즌마다 십 수편씩 구성되어 있으므로 내용이 방대하며, 하루에 두 편씩, 족히 한달은 금방 갈 것이다.
<시간여행>은 상상만으로도 모든 사람을 흥분시킨다. 드라마의 여주인공 클레어는 1945년 전직 영국 간호장교로 제대하고 역사학자 교수 남편을 따라 여행하다가 스톤헤지 유사한 신령한 바위를 만지게 된다. 그 순간 1750년대 스코틀랜드 독립전쟁 시대로 시간 여행을 혼자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곳에서 새로운 시대와 사람들을 만나고, 남자 주인공 제이미를 만나 새로운 사랑을 하고 결혼하게 된다. 만약 당신에게 시간여행의 기회가 주어져서 어느 과거로 돌아가 낯선 사람과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된다면? 죽도록 사랑했는데 피치못할 사정으로 현실로 되돌아 간다면? 현재로 왔는데, 과거의 사랑을 못 잊어 다시 과거로 되돌아간다면?
그래서 있을 때 잘 해야 한다. 지구별에 사는 우리 모두는 각자가 다른 미래의 별에서 살다가 그분의 명령에 따라 이 시대에 잠깐 와서 사는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일백년도 안되는 시간은 별똥별이 지나가듯 찰나(刹那) 인지도 모른다. 불가에서 찰나는 한 생각 일으키는 일념(一念)의 시간이다. 불교 승가율의 계산으로는 0.018초다. 어쨌거나 지구별에 잠깐 머물다가 갈 것이라면 못해줄 것은 무엇인가? 서로 싸우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결국 원수가 되어 헤어지고.. 과연 당신의 시간 여행은 그 정도 가치 밖에 되지 않는가? 해달라는 거 다 해주고 사랑하다가 홀가분하게 떠나면 될 일이다.
아내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 주어야 한다. <아웃랜더> 드라마에서도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과의 좋은 추억을 잊지 못해 다시 과거로 되돌아간다. 현재->과거->현재-> 과거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사랑하는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잘해주는데 무슨 법칙이 있나? 열과 성을 다해 최선을 다하면 될 일이다. 굳이 남녀에 관한 공부가 필요하면 존 그레이 저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참조하라.
그 책은 남자와 여자는 각자 다른 별에서 왔음을, <차이를 인정하라>는 걸로 시작된다. <화성에서 온 남자>는 목적을 이루는 능력을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한다. <목표 지향>적이다. 조언을 싫어한다. 기를 쓰고 해결책을 찾으려 애쓴다. <금성에서 온 여자>는 남들과 자신의 느끼는, 함께 나누는 관계를 통해 자신에 대한 만족을 느낀다. <관계 지향>적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를 원한다. 화성과 금성은 종(種)이 다른 곳이다. 여자는 이해와 공감을 필요로 할 때, 남자는 늘 해결책 제시에 급급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스트레스 대응법도 다르다. 남자는 혼자 마음 속 동굴 안으로 들어가 해결책을 찾고 나서야 기분이 좋아진다. 문제 해결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다른 일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냉랭하고 무반응, 건성, 망각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반면에 여자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이해받음으로써 위안을 얻고자 한다. 그러기에 남녀가 함께 평화롭게 살려면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여야 한다. 서로 화성과 금성 다른 별에서 왔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남녀는 같은 어휘이지만 서로 다른 언어로 사용한다. 나는 특히 부산 남자이어서 말이 짧고 거칠다. 묻는 말에 거의 단답형이다. 미사여구가 없고 형용사가 별로 없다. 나는 별 생각없이 평소처럼 하는 말이라도 아내는 화났느냐고 묻는다. 오해는 즉시 현장에서 풀어줘야 한다. 그대로 시간이 지나면 더 큰 화와 오해를 불러 일으킴을 40년 살아봐서 안다.
그 외에도 화성인과 금성인이 다른 점은 많고도 많다. 따지지 마라. 국가의 운명이 걸린 위급한 일이 아닌 다음에야, 무조건 여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여자가 하자는 대로 해 주어라. 각자의 별로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구별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헤어지기가 정말 싫다면 기대하시라. 아내가 <아웃렌더> 마법의 바위에 손을 대는 순간, <시간여행>을 타고 다시 당신이 사는 화성으로 되돌아 올 것이기 때문이다. 설마 그렇게까지 원할 남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ㅎㅎ
시간 속에 길을 잃은 자 (05-28-2021)
<더 파더 (The Father)> 영화를 보았다. <양들의 침묵>의 안소니 홉킨스 주연으로 2021년 아카데미 6개 부문 후보로, 그중 남우 주연상과 각색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특징은 치매 환자(안소니 홉킨스)가 바라보는 세상을 다룬 점이다.
영화를 보는 누구나 나도 남자 주인공처럼 저렇게 치매환자가 될 수 있겠다는, 처절할 만큼 분명하고도 냉정함을 느낄 수 있다. 영화는 치매노인 안소니의 여러 과거 기억의 파편들로 시작된다. 마치 퍼즐을 맞추어 가듯이 기억의 혼돈이 진행되다가 영화 후반에 진짜 현실을 보여준다. 영화 초반에 자신의 집으로 착각하고 집착했던 집은 딸의 집이었으며, 10년동안 아빠의 병수발을 들던 착한 딸 앤은 자신들의 행복을 찾기 위해 아빠를 요양원에 맡기고 남편과 함께 이미 프랑스로 떠났다는 사실과, 자신은 요양원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걸 간호사에게서 듣고 깨닫는다. 어느 집이나 겪는 장기간의 병 간호는 자식 부부와 가족간의 갈등을 야기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고약하고 완고한 치매 노인 안소니가 간호사의 품 안에서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며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물기 하나 없이 말라가는 나뭇잎처럼 애잔하다 못해 두려움으로 침묵하게 된다. 너도 나도 멀지않은 시간에 저 길을 걸어야 할지 모르기에..
<생로병사(生老病死)>,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거쳐야 할 과정이다. 누구나 늙어야 하고, 병들어야 하고, 죽어야 한다. 피해갈 수 도 없고 건너 뛸 수도 없다. 죽음은 피안의 땅을 건너기 위한 마지막 통과의례이다. 그분이 오늘 당장이라도 나의 별로 돌아가라 명하시면 전혀 억울함이 없는 나이다. 다만 죽어가는 과정이 병들고 치매 들면 잔인하게 망가져가는 나의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들의 고통과 비참함이 염려된다. 하지만 어쩌랴, 이 또한 겪어야 할 과정이라면..
죽음에는 많은 종류가 있다. 자연사, 자살, 재해 사고사, 과로사, 각종 별의별 질병, 암, 치매 등등, 죽음의 원인은 많고도 많으며, 그 중 나의 사망 원인은 무엇일까? 세상만사(世上萬事)가 인과응보(因果應報)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내가 살아온 세월이 결코 무병장수(無病長壽)할 팔자가 아닐 것임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40년 이상 담배 예찬론자로 매일 한 갑 가까이 흡연을 했으며, 한국에서 직장생활 20년 동안, 새벽에 나가서 밤 늦게 귀가하는, 하루 세끼를 모두 밖에서 해결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셨으니, 술과 담배에 쩔어 산 세월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슨 나라를 구하는 일도 아니었는데 맨날 바쁘기는 왜 그리 바삐 살았으며, 자신의 육신은 왜 그리 학대 하고 살았는지, 지금 되돌아 생각해도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반면에 이민 생활은 성직자 생활이라 감히 단언한다. 삼시세끼 알뜰한 집밥에, 건강식만 챙겨 주시는 마님의 잔소리에 감읍할 따름이다. 또한 집과 사무실만 오가는 규칙적인(?) 생활, 교회 공동체 일원이자, 14년 동안 매주 지역신문에 칼럼을 썼으니 얼굴은 알려질 대로 알려지는 우(愚)를 범하고 말았다. 그러니 일거수일투족 꼼짝달싹 할 수도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 문란(?)하게 산 과거의 업보가 있으니 멀쩡하게 곱게 죽지는 못할 것이라 마음의 각오는 이미 하고 있다. 노인 3명 중에 한명이 암 환자라고 한다. 노인의 10%~20%는 치매 환자라고 한다. 거기다 무슨 노인 질병은 그렇게도 많은지, 허구한 날 SNS에는 먹지 말라는, 먹으라는, 하지 말라는, 하라는, 별의별 장수 비결 등등.. 많고도 많은 글들이 올라온다.
나는 많고도 많은 노인성 질환 중에 치매가 가장 싫다. 치매의 종류에는 알츠하이머가 50%~70%, 혈관성 치매가 20%로 가장 흔하다. 치매는 기억력 장애, 인지 장애, 단기 기억상실, 언어 능력 장애, 시공간 인식 혼란, 판단력과 통찰력 저하, 반복되는 언행 등을 꼽을 수 있다. 혈관성 치매는 뇌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발생하며, 거의 뇌졸증을 동반한다. 흡연, 고혈압, 높은 콜레스테롤, 당뇨, 심근경색, 협심증 등 혈관성 질환 등이 원인이 된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무슨 질병이 있는지, 건강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이민 온지 20년이 지났지만, 나는 미국의 종합병원에 한번도 가보지 않았고, 종합건강검사도 받아보지 못했다. 아니 받지 않았다. 만약에 나에게 불가역적 질병이 있거나 대형 수술을 받아야 할 질병이 있다면 그 비싼 미국 병원의 수술비를 감당할 돈도 없거니와, 가난한 가장이 쓰러지면 우리 가족 모두가 무너진다는 염려 때문이다. 사는 날까지 열심히 일하다가 죽을 병에 걸리면 죽으면 된다는 단순한 논리다. 그래서 나는 먹는 약도 없다. 심지어 비타민제도 먹지 않는다. 약 자체를 불신하고 싫어한다. 명색이 병원집 아들이었고 아버지가 의사였는데, 병원 자체를 싫어한다. 그 대신 요리하기 좋아하고, 잘 먹고,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운동 하고, 걷고, 땀 흘리기를 좋아한다. 말년에 여유가 되면 하고싶은 취미 활동도 하고 싶다. 그렇게 살다가 잠깐 아프고 죽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치매는 정말 싫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추억들을, 아름다운 기억들을 산산조각 파편으로 부수어 엉망진창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 싫다. 죽을 때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공감과 위안으로 마지막 이별을 하고 싶을 뿐이다. 치매. 너 정말 싫다. 나에게 오지마.
오늘은 죽기 좋은 날 (05-21-2021)
오늘은 죽기 좋은 날.
모든 생명체가 나와 조화를 이루고 / 모든 소리가 내 안에서 합창을 하고 / 모든 아름다움이 내 눈 속에 녹아 들고 / 모든 사악함이 내게서 멀어졌으니 /
오늘은 죽기 좋은 날.
나를 둘러싼 저 평화로운 땅 / 마침내 순환을 마친 저 들판 / 웃음이 가득한 나의 집 / 그리고 내 곁에 둘러앉은 자식들 / 그래, 오늘이 아니면 언제 떠나겠는가. – <타오스족 인디언들의 노래> (낸시우드가 받아적음)
나는 인디언들의 사상과 사유가 좋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시간 여행할 수 있다면 기원전 대평원 인디언들의 평화 시대로 가 보고 싶다. 지구별에 살고 있는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죽음, 오늘, 아니면 내일, 아니면 언제일지 몰라도 누구나 자신의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만약 누구라도 죽는 날을 알고 있다면 미리 청산하고 정리해야 할 일들이 많을 것이다. 아직까지 처리하지 못한 수십, 수백 가지 일들의 목록을 작성해서 하나 둘씩 모두 처리하려 할 것이다. 죽기 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한점 남김없이 나누어 주려 할 것이다. 그래야 평화로운 죽음, 안도하는 죽음, 편안한 죽음, 그분께 덜 미안한 죽음, 덜 부끄러운 죽음,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운 죽음,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내 남은 생애를 더욱 더 가치 있게, 보람 있게, 더 소중하게 살기 위함이다. 잘 죽는다는 것은 잘 사는 것이다. 아내는 대화 중에 내가 나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가끔은 눈물을 글썽이고 삐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민의 삶은 누구도 내일을 보장하지 않기에, 특히 이민 가장(家長)은 언제나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나의 인생은 이만하면 잘 살아온 세월이라 스스로 위안한다. 인생의 변곡점 마다 내 스스로 판단하고 내 스스로 결정한 세월이다.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다. 나로 인해 가족들 고생한 것 말고는 후회할 것도 미련을 둘 것도 없다. 하루하루가 정리된 삶이어야 했다.
그렇다면 남은 세월이 하루가 될지, 일년이 될지, 십년이 될지 그분만이 아신다. 남은 세월 동안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고, 하고 싶은 일 하고, 맛있는 음식 만들어 함께 나누어 먹고, 욕심 내지 말고, 운동 열심히 하고, 아내가 좋아하는 일 찾아서 먼저 하고, 내 가족과 좋은 이웃들에게 더욱 선한 마음으로 행동하고 실천하고, 더 많이 웃으며 살아야 한다. 행복한 죽음은 행복한 삶이 전제되어야 하며, 행복한 삶은 누구도 아닌 내가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 자체는 슬픈 일이 아니다. 그분이 주신 임무를 지구별에 와서 수행하고 다시 나의 별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진정한 슬픔은 <서로 사랑하라>는 그분의 미션을 수행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일 것이다.
존 이조가 쓴 <오늘은 죽기 좋은 날>책이다. 그는 미국의 유명한 기업 문화 혁신가이자, 대기업 컨설턴트, 베스트 작가, 유명 강연자이다. 그는 미국, 캐나다 전지역의 1만5천명에게 <당신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인생의 스승은 누구입니까>라는 설문조사로 각계각층의 235명(59세에서 105세 연령 분포) 스승을 뽑아 인터뷰한 내용이 이 책의 주제들이다. 인생 스승들의 주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의 유사하다는 점이다. 책의 영문 제목은 <죽기 전에 발견해야 할 다섯 가지 비밀(The five secrets you must discover before you die)>이다. 책의 주제만 살펴 보아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움이 될 것이다.
<첫번째 비밀: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라>. – 깨어있는 삶을 살아라, – 삶이 과녁을 벗어나지 않았는가? – 자신의 데스티나(운명)를 찾아라, – 가슴이 이끄는 대로 사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 우주가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두번째 비밀: 후회를 남기지 말라>. – 위험을 감수할수록 후회는 줄어든다, – 엘사의 캐나다행 티켓, – 용기 있는 선택으로 최고의 이야기를 만들어라, – 오늘을 생의 마지막 날처럼, – 후회를 놓아버리는 기술.
<세번째 비밀: 스스로 사랑이 돼라>. – 사랑은 선택이다, – 선한 늑대에게 먹이를 줘라, – 시골 이발사의 교훈, – 매순간 사랑하는 마음을 선택하라, – 리아의 아침 기도.
<네번째 비밀: 지금 이순간을 살아라>. – 순간 속에 존재하라, – 강아지 몰리와의 산행, – 모든 ‘쇼’가 마지막 ‘쇼’다, – 걱정은 내일의 슬픔을 씻어주지 않는다, – 행복을 위한 마음 훈련.
<다섯번째 비밀: 받기보다는 주는데 힘써라>. – 십분짜리 장례식과 열시간짜리 장례식, – 삶의 큰 과업, 자신을 내려놓기, – 세상을 위해 울어라.
<다시 길 위에 서서: 비밀을 실천하는 방법>. – 삶 속에서 변화를 이뤄내는 법, – 몰입이 변화를 부른다, – 질문으로 시작하는 변화, – 함께 하면 변화도 쉬워진다, – 커피 한잔의 의식.
주제별 제목만 봐도 내용을 짐작할 것이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가치의 우선순위가 잘못된 것이다. 죽음이 바로 내 옆에 와 있다는 걸 모르기 때문이다.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알았던걸 그때 알았더라면..>, 후회가 후회를 부른다. 모두 모두 오늘 행복하세요. 마치 내일 죽을 것처럼..
미나리 가족 (05-14-2021)
5월은 가정의 달이라 부른다. 어린이날, 어버이 날(어머니 날)이 모여 있다. 굳이 왜 아버지 날은 6월20일로 잡혀 있지? 아버지는 남인가? ㅋㅋ. 이 세상에 <가족>이라는 단어처럼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되는 말이 또 있을까?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손자, 손녀, 사위, 며느리, 남편, 아내..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의 <가족> 구성원들이다.
<가족>의 사전적 정의는 “부모, 자식, 부부 등의 관계로 맺어져 한집에서 생활하는 공동체이다. 인류 발생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집단이며,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다. 또한 가족은 혈연 공동체, 거주 공동체, 운명 공동체, 애정 결합체, 가계 공동체로 분류되기도 한다.
얼마전 지인이 유튜브로 보내준 <미나리>라는 영화를 공짜로 보게 되어 미안함을 먼저 고백한다. 윤여정이라는 한국 여배우가 아카데미 조연상을 수상한 덕도 있지만, 미국 이민 가정사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특히 재미 한국인들은 더욱 현실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냥 강물 흐르듯이 어느 이민 가정에서도 겪었을 법한 가족간의 주제를 다루었기에 오히려 담담하게 보았을 것이다.
나는 직업상 많은 이민 한국 가정 (대략 3천여 가정)들을 만나게 된다. 언제 어디로 이민을 왔건 간에, 집집마다 사연 없는 집이 없고, 비슷한 사연도 없는, 결코 평범 하지도 않는, 그래도 각 가정이 살아왔고, 견디어 냈고, 앞으로도 굳건히 살아가야 할, 모든 이민 가정들이 각기 다른 한편의 <미나리> 영화와도 같다.
<미나리> 줄거리는 정이삭 감독(이민 2세)의 어린시절을 실화한 자전적 영화다.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 시절, 아메리칸 드림의 꿈을 갖고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로 이민을 와서 10년동안 병아리 감별사로 주급 생활을 한다. 하지만 비젼이 없자 남편(스티브 연)의 꿈인 농장을 경작하기 위해 아칸소 주 어느 시골 마을(깡촌)로 이주하여, 바퀴 달린 임시 콘테이너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들 부부에게는 초등학생 큰딸(앨런 김)과 심장병 환자인 여섯살 아들(노엘 조)이 가족 구성원이다. 아빠는 농장을 개간하느라 바쁘고, 엄마(한예리)는 맞벌이 부부의 생활방편으로 병아리 감별사 일, 가정 일, 아들 병간호로 지쳐 가자, 한국에 사는 엄마(윤여정)에게 도움을 청하여 함께 사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한국 할머니(한국인 기성세대)와 미국 이민 2세 손자 간의 이질화된 사고와 그에 따른 각종 에피소드, 예로 화투 놀이(우리집도 아내의 열성으로 7살 손녀까지 모였다 하면 모두 화투를 친다)다. 부부가 겪는 가족간의 갈등, 결혼할 당시 이민 가면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자고 다짐을 했지만,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농장에 대한 성공과 돈의 집념에 빠진 남편에게 실망하여 이혼까지 결심하는 아내, 힘들게 사는 딸에게 자신의 모든 돈을 주어 버리는 엄마, 뇌졸증(심장쇼크?)으로 반신마비가 된 엄마(윤여정), 잠깐의 방심으로 농산물 저장소를 모두 불태워버린 할머니, 사위와 딸에게 명목이 없다며 괴로워 하다가 집을 떠나는 할머니, 못 떠나게 막는 손녀와 손자, 할머니 덕분에 심장이 회복되는 손자, 화재사고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다시 단합하는 가족, 거기다 양념으로 순례자 코스프레를 하는 액소시즘 광신도이자 이웃인 일꾼 월 패튼, 등.. 결국 할머니가 농장 근처에 심어둔 미나리를 발견해 수확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미나리는 아무데서나 잡초처럼 자라고, 모든 요리 다 해서 먹어. 약도 해서 먹고..” 라는 할머니 윤여정의 대사와 같이, 미국 이민 생활은 <미나리>와 같은 지도 모른다. 물 설고 낯설고, 말도 통하지 않는 이민생활, 결코 화려하지도 않고, 누구도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이민 생활, 각자의 이름은 있지만, 이름으로 불리우지 않는 이름없는 이민생활,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내 가족을 돌보아 주지 않는 이민 가족,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흔들리는 이민 가족이지만, 척박한 땅에서도 햇살 비치고 바람 불고 비만 내리면 미나리는 미나리 끼리끼리 모여 잘 살아간다. 우리 집 텃밭 미나리 처럼..
그래서 이민 온 우리 모두는 <미나리 가족>이다. 가난이 지겨워 먹고 살기 위해 왔던, 부자가 되기 위해 왔던, 출세를 하기 위해 왔던, 죄를 짓고 도망을 왔던, 대부분이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머나먼 미국 땅 이곳에서 살다가 이곳에서 생을 마감해야 한다. 내 주위에 그 누가 있는가? 뭐니 뭐니 해도 <가족>뿐이다. 서로 사랑하자.
몇가지 가족 명언을 소개한다. “가족에게 자상하지 않으면 헤어진 뒤 후회한다 –주희”, “모든 행복한 가족들은 서로서로 닮은 데가 많다. 그러나 모든 불행한 가족은 그 자신의 독특한 방법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 “어머니란 스승이자 나를 키워준 사람이며, 사회라는 거센 파도로 나가기에 앞서 모든 풍파를 막아주는 방파제 같은 존재이다 –스탕달”,
미나리 OST <비의 노래(Rain Song)>가 너무 좋다. 가사를 소개한다. “늘 한결 같은 밤 / 속삭이는 마음 / 어우러지네 / 작은 발자욱 위로 / 한 방울씩 또 / 비가 내리네 / 고개를 들고 떠나가는 / 계절을 배웅하네 / 긴 기다림 끝에 / 따스함 속에 / 노래를 부르네 // 겨울이 가는 사이 / 봄을 반기는 아이 / 온 세상과 숨을 쉬네 / 함께 맞이하는 / 새로운 밤의 품 /
가정을 지켜야 한다. 가족을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 모두를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그분이 우리를 지구별에 보내신 첫번째 미션이자 사명이다.
늘 행복하자 (05-07-2021)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께서 4월27일 향년 90세(1931~2021년)로 선종(善終) 하시면서 우리에게 남기신 말씀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늘 행복하세요. 행복이 하느님의 뜻입니다.”이다.
<늘 행복하라>는 말씀은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무엇을 하든(못하든), 무엇을 가졌든(못 가졌든), 건강하든(못하든), 어디서 살든(좋은 곳이든, 가난한 곳이든), 누구와 살든(사랑하는 사람과 살든, 웬수와 살든, 혼자 살든), 조건없이 행복하라는 말씀이다.
나 같은 공학도 엔지니어(공돌이) 출신들은 이런 화법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인문계 출신들 보다 인간적 매력이 없는가 보다. 어느 누구도 <늘> 행복할 수 없지 않은가? 추기경님 당신도 항상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완벽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많은 신들 중에 그리스 신들에게 가장 인간적 매력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공학도들이 가장 경계하는 단어들이 <항상>, <절대>, <불변>, <무조건>, <완전>, <영원>, <무한> 등등, 수치로 표시할 수 없는 단어들일 것이다. 그래서 종교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전제를 다는 것일까?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행복하려면 <행복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행복의 기준에 맞기 위해서는 <행복의 조건>이 필요하다.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며, 무엇을 가져야 하며,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가? 나는 참 피곤한 타입이다.
작년 초에도 <행복의 기준(01/10/2020)>이라는 칼럼을 썼다. 요약하면 먼저 조지 베일런트의 7가지 <행복의 조건>이다. – 첫째 조건, <고통을 수용하고 극복하는 성숙한 삶의 자세> 즉 자신의 삶에 대한 < 긍정적 방어기재>에 대해 논한다. –둘째, <교육 년수>, -셋째, <안정된 결혼생활>, – 넷째 <금연>, -다섯째, <금주>, -여섯째, <운동>, -일곱번째, <알맞은 체중>이다.
또 <하버드 행복 수업>의 작가 유키 소노마는 ‘행복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 한다. 행복하기 위한 여섯 가지 습관은 1. 감사 일기 쓰기, 2. 친절한 행동하기, 3. 남의 이야기 경청하기, 4. 잠들기 전 하루 세가지 좋았던 일 기록하기, 5. 5분간 마음 챙겨 호흡하기 (명상 훈련), 6. 자신의 최고 모습 상상하기 등이다. 하바드 총장을 지낸 데릭 보크는 ‘행복함의 차이는 결혼생활, 인간관계, 일, 건강상태, 종교, 사회제도의 질’ 6가지로 설명한다.
지난달에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 <행복이란?> 주제로 서은국 교수가 강연한 내용을 요약한다. “행복의 본질은 생각이 아닌 감정의 경험이다. 행복은 긍정적 경험의 강도가 아닌 빈도다. –미국 심리학자 에드 디너. <불쾌(Unpleasure)>는 두려움, 불안, 슬픔, 역겨움 등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감정이라면, <쾌(Pleasure)>는 즐거움, 사랑, 성취, 편안함 등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추구하는 감정이다.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행복한 가정(31.8%), 건강(26.3%), 돈, 명성(12.7%), 적성에 맞는 일(10.4%), 기타 여가생활, 자녀교육, 자기발전 순이다. 2021년 세계행복보고서는 1위 핀란드, 2위 아이슬란드로 시작해서 덴마크, 스위스, 네덜란드, 스웨덴.. 14위 미국, 40위 일본, 50위 한국, 52위 중국 등이다.
여러 행복의 조건들이 행복을 영원히 약속하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 새로움은 사라지기 마련이고, 둘째, 개인적으로 차이가 심하고, 셋째, 예측불허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부자가 반드시 행복하다 보장하지 못한 이유도 한번 커다란 <쾌>의 자극을 받은 사람은 소소한 작은 즐거움을 놓치기 때문인 것이다. 또한 판단이나 결정을 내릴 때 감성(즐거움)보다는 이성(실익)을 더 중시하는 <일반인의 합리주의>를 말한다. 작은 행복, 소소한 즐거움을 잊고 사는 것이다.
놀랍게도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짓는 두가지 요소는 첫째가 <유전>적 요소이며, 둘째가 <사람과의 관계>다. 서은국 교수는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라고 한다. 그러면 <유전>이라는 조건을 벗어나 행복감을 잘 느끼려면 유전적 <외향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향성 수치가 낮으면 <내향성>이 된다. 외향적 사람의 특성은 1. 자극 추구, 2. 활동성, 3. 높은 사회성을 들 수 있다.
두번째가 <사람>이다. 노후에 <혼자>인 그룹과 누군가와 <함께> 하는 그룹의 비교 실험결과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람은 혼자 살면 안된다. 고독과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나의 뇌에 경고를 내리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가 적을수록 심장질환, 비만, 뇌졸증, 치매 등의 질병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생존의 문제다. 생존 필수품이 <사람 관계>다. <공동체 생활>이다. ‘인간의 뇌는 인간관계를 잘 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인간은 뼛속까지 사회적이다’ (뇌 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
행복감을 예측하는 중요한 문화적 특성은 두가지다. 첫째, 나의 의견과 생각이 존중 받는가? <자유도>, 둘째, 언제든 믿고 도움 받을 수 있는가? <신뢰도> 이다. 이런 신뢰가 높은 사회일수록 행복감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예로 아이가 앉아있는 유모차를 길거리에 두고 부모들은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덴마크 사회 분위기를 소개할 때에는 충격이었다.
일상에서 <행복 전구>가 잘 켜질 수 있는 상황은 <좋은 사람>과 <밥 먹는 것>이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일상 속의 즐거움, 행복은 어떤 무엇이 아니라, <감정의 경험>, 행복과 불행의 차이는 이런 장면이 가득한 인생과 그렇지 않는 인생의 차이다. <행복 전구>를 켜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우리 모두 늘 행복하자..
꽃비 처럼 축복이 (04-30-2021)
봄 햇살이 너무 곱다. 봄볕이 너무 따스하다. 사랑하는 여인의 젖가슴 같아 나도 모르게 얼굴을 파묻는다. 눈물이 난다. 그래서 봄꽃에 주저없이 안긴다.
긴 겨울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하루들이라 힘들고 지쳤다. 과연 내 생애 다시 봄날이 올까, 봄날을 볼 수는 있을까, 두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였다. 상처 받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아픔이 없는 삶이 있을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다림은 지쳐갔다.
그렇게 기다리던 봄이 왔건만, 동백꽃이 피어나고 동백꽃 송이채로 떨어져도 아직 봄이 아니라고 외면했다. 봄꽃은 그분이 지정하신 순서대로 피어나건만, 나는 나의 봄을 먼 발치에서만 기다렸다.
동백꽃 피고 나면 버들 강아지 피고, 이른 봄 추위도 가시기 전, 잎이 나기 전, 꽃부터 피우는 노란 산수유는 봄의 전령이다. 옥매화, 황매화 피면, 우리 엄마 닮은 하얀 백목련, 자주빛 자목련이 피고, 학교 언덕배기에 한아름 피어나던 개나리와 풋풋한 햇병아리 연애시절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 동무들과 뛰놀던 뒷동산 진달래꽃을 따다가 먹던 시절, 집 앞 뜰의 철쭉은 피어난다. 장엄한 벚꽃들 향연이 생각난다. 진해 벚꽃, 일본 도쿄 우에노 공원의 벚꽃, 미국 워싱톤 포토맥 강변의 벚꽃 대축제 등이 기억난다. 하지만 나는 한국 야산에 피어나는 야생 벚꽃이 더 정감 간다. 고향집 라이락 나무 꽃 향기와 내 방 앞 치자나무 꽃 향기는 여인의 유혹처럼 혼미하다. 하얀 조팝나무 꽃과 아카시아 꽃, 배꽃, 민들레, 제비꽃, 연꽃, 찔레꽃, 수국, 달맞이꽃, 도라지꽃 등등, 그리고 기억조차 못하는, 이름조차 모르는 수많은 야생화들이 나의 봄을 스쳐 지나간다.
나는 무슨 봄을 기다리는가? 봄이 와도 모르고 봄이 스쳐 지나가도 모르고, 봄이 저 멀리 떠나가도 모르니 나는 한치 앞도 보지 못하는 바보이구나. 봄꽃들은 스쳐 지나가는 존재가 아니라 그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자리에서 꽃을 피웠고,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하며, 그 자리를 지켰고, 그 자리에 존재할 뿐이다. 단지 내가 모르고 살았고, 잊고 살았고, 지나가는 삶을 살았을 뿐이다.
도종환의 <다시 오는 봄>처럼,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이 납니다 / 살아 있구나 느끼니 눈물이 납니다 / 기러기 떼 열지어 북으로 가고 / 길 섶에 풀들도 돌아오는데 / 당신은 가고 그리움만 남아서가 아닙니다 / 이렇게 살아있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 //
오늘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존재의 의미가 있다. 꽃은 신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우리말에 <꽃비 – 꽃잎이 비가 내리듯 가볍게 흩뿌려지는 현상>와 <꽃보라 – 떨어져서 바람에 날리는 많은 꽃잎>, <꽃바람 – 꽃이 필 무렵에 부는 봄바람>과 같은 아름다운 단어들이 있다.
불경에는 부처님이 계신 곳이나 부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는 범천(불법을 수호하는 수호신)이 <꽃비>를 내려 부처님 주위를 장엄하게 한다고 한다. 법화경에는 부처님이 왕사성 영취산에서 8만명 보살과 1만2천 대중 앞에서 <무량의경>을 설하신 다음, <무량의삼매(無量義三昧) – 한가지에만 마음을 집중하여 마음이 고요해진 상태, 만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경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일심불란(一心不亂)의 경지>에 들어있는 동안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는 것이다.
나는 꽃비가 내리는 봄날이면 지리산 쌍계사나 구례 화엄사 산길에 내리는 꽃비를 잊지 못한다. 또한 내 머리에 화석처럼 박혀있는 꽃비는 33년전 우리 아버지 돌아가신 4월의 봄날이다. 당시 64세 젊으신 연세에, 평소 지병도 하나 없이, 주무시다가 별나라로 돌아가신 것이다. 선산으로 올라가는 상여꾼들의 구성진 상여 소리와 꽃상여 위로 그날도 그렇게 꽃비가 휘날렸다. 그래서 내 유언도 어느 계절에 죽든, 나의 육신을 화장해서 꽃비가 내리는 어느 따뜻한 봄날에, 섬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지리산 정상에서 한줌의 재도 남기지 말고 바람결에 뿌려 달라는 것이다.
하루하루 가슴 저이며 소망하고 소원하며 열심히 간절히 살면 된다. 무엇을 더 바래서가 아니라, 무엇을 더 원해서가 아니라, 주신 하루하루에 충실하게 사랑하며 살기를 소망할 뿐이다. 코로나 사태로 지구 상에 수많은 인류가 지금도 병들고 죽어간다. 부자나라, 강대국 미국에서 사는 이유로, 자국에서 개발 생산했다는 이유로 나와 주변 모두가 백신 주사를 맞을 수 있었음에 감사만 할 수 없는 이유다. 세계 지구인들이 공평하게 골고루 백신을 맞지 못함에 나 스스로 부끄러워한다. 지구인 모두가 함께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온 인류에게 당신의 축복과 자비를 꽃비 처럼 내려 주소서.
봄은 생각보다 길지가 않다. 꽃샘 추위로 긴가 민가 망설이다가 훅 더워져 초여름이 되어버린다. 나의 봄을 즐기자. 따사로운 봄 햇살, 봄의 각종 향내, 여인의 실루엣 같은 봄바람, 속살거리는 봄비 소리, 산이고 들이고 동네 산책길이고 간에 봄 길을 그녀와 함께 걷자.
그렇다고 무리는 하지 말자. 작년에는 텃밭 농사가 시원치 않아, 어제는 호기롭게 밭 전체를 뒤엎어 갈고, 비료를 뿌리고, 묘종을 심고, 멀치를 깔고, 봄꽃을 심고.. 난리버거지를 쳤더니, 밤새 허리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오로지 아내에게 잘 보이고 싶은, 아직은 쓸 만 하다고 인정받고 싶은 유아 심리가 70을 바라보는 내 명을 재촉할 수도 있음을 깨달은, 어느 봄날의 하루였다. 아이쿠..
매물 매입은 언제? (04-23-2021)
가게는 언제 매입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어찌 보면 우매한 질문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 첫째, 먼저 주급(월급) 생활을 하는 것 보다, 나의 비즈니스(자영업)을 해서 돈을 빨리 많이 벌어 노후를 안락하게 살고 싶다는 결심이 가장 먼저다. – 둘째, 내가 적어도 10년 이상은 하고 싶은 <업종 선정>이 되어야 한다. 동종 업종을 장기간 하다 보면 <업종 노하우>가 축적되기 때문이다. – 셋째, 년중 매입 시기는 장단점이 모두 있다. 성수기 때 매입하면 당장 년중 최고 수익을 가져갈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종업원이나 손님에 대한 업무 미숙으로 문제가 발생할 시 치명적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 반면에 비수기에 매입하면 가게 시스템과 조직 안정화에 시간적 여유가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매입하고 싶은 좋은 매물이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융자가 있을 경우, 특히 요즘 같은 코로나 시기에는 클로징 시기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결론적으로 가게 매입 결심이 서면 주저할 필요가 없다. 흔히들 가게를 팔고 백수가 되면 한달에 <최소 생활비>가 월 5천~1만불은 지출되는게 미국 생활이다. 일년 놀면 대충 견적이 나온다. 거기다 일하지 않은 <기회 손실 비용>이 있다. 만약 가게를 운영했다면 월 최소 1만불~2만불의 순수익이 들어 왔다고 가정하면, 가게를 할 때 보다 년 최소 5만불~20만불의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백수가 되면 돈 쓸 곳도 많아진다. 여행도 가야 하고, 맛집도 가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놀러 다니기도 해야 한다. 장사를 하면 돈을 쓸 시간이 없다. 그래서 장사를 해야 돈을 모으는 것이다. 그리고 장사를 하다 보면 움직이는 운동량이 많아 건강에도 좋다. 100세 시대에 60,70대는 노인 취급도 받지 못한다. 노니 염불한다? 집에서 노니 가게 나와 돈을 번다?
투자 관점에서 업종별 매입 시기는 언제가 좋을까? 참으로 컨설팅하기가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코로나 이후 가장 침체된 한인 업종은 <세탁소>, <Drop Store>, <Nail & Spa>일 것이다. 그러면 향후에도 계속 침체될 것인가? 아닐 것이다. 년내, 적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상당부분 회복될 것이다. 예상이 맞다면 지금이 세탁소 매입 적기(적기)인 셈이다. 왜냐하면 지금 세탁소 급매물 가격은 2019년 대비 절반 가격, 아니 4분의 1 가격이면 매입할 수 있는 좋은 매물들도 있다. 급매각 이유는 대부분의 셀러들이 고령이거나 병환 중이거나 경제적으로 버틸 여력이 없는 경우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한다. 하지만 투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미리 보고 예측하여 투자하는 것이다.
Buyer들 중에는 나는 죽어도 <Food 관련 비즈니스>는 못하겠다고 단언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그러면 남는게 <세탁 관련 업종>, <Beauty 관련 Stock 업종>, <Car Wash, Laundry 등, 장치 사업>, <Nail>만 남는다. <장치 사업>과 <Stock 사업>은 <투자 규모>의 돈 싸움이다. 소자본이면 경쟁 대상에서 제외된다. <Nail>은 <종업원 전쟁>인 <특수 서비스 업종>이다.
재미 한국인이 그동안 왜 <세탁업>으로 생존할 수 있었는지 업종별 <3C Analysis>를 하면 답이 나온다. 백인 동네에서, 잘 꾸며진 쇼핑몰에서, 저녁이 있는 삶이고, 주일날 교회 갈 수 있고, 영어를 잘 못해도 되고, 부부가 함께 할 수 있고, 다른 민족에 비해 유별스레 깔끔 떨어 경쟁력도 있고, 초보라도 주변 한인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몸이 힘들어도 당장이 아닌, 작업시간의 여유가 있어 견딜 수 있는 업종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겠지만, 과거처럼 고수익을 올리지는 못 할 것이다.
관건은 <Drop Store> 생존이다. 한인 여성 혼자서 백인 지역에서 비교적 편안하고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인기 업종이 <Drop Store> 였다. 큰 수익은 아니지만, 주급 생활 보다는 훨씬 낫고, 일 자체가 단순하니 책보고 음악 듣고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어서 선호의 대상이었다. 아무쪼록 미국 경제가 정상화 될 때까지 잘 버티어 내시길 소망할 뿐이다. 세탁소와 마찬가지로 매물 가격들이 절반 이하로 많이 떨어진 상태다. 코로나 이전에 Drop Store 1개 살 돈이면 지금은 3개도 살 수 있다.
가장 편한 업종으로 인기 있던 <Beauty Supply> 등 <Stock> 비지니스도 좋은 가격에 매입할 수 있다. 코로나 사태와 인종 차별에 대한 흑인 폭동으로 흑인 지역 가게들이 약탈당하고 화재까지 당하니 진절머리 치는 셀러들이 많다. 따라서 매물 가격이 하향 조정 되어 좋은 조건으로 매입할 수 있다.
<Nail>가게도 매상 감소로 가격이 많이 인하되었다. 본인이 네일 기술자라고 하면, 언젠가는 본인의 네일 가게를 운영하고 싶어 한다면, 지금이 최적기 일 수도 있다.
<Food> 관련 비즈니스는 계속 호황을 맞을 것이다. 또한 <배달 문화>의 확산으로 매상은 더 증가하지만, 과다 경쟁이 될 경우 실제 수익은 떨어질 위험도 상존한다.
<위기가 기회다>라는 교과서적 말을 하지 않더라도, 무차별 코로나 백신 투여로조만간 코로나 정국이 안정되고, 미국 정부가 제2의 경제 부흥을 위해 무차별 달러 살포로 올 인을 하니 향후 자영업 비지니스 시장과 부동산 시장은 계속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매물 가격이 바닥인 지금이 매입할 적기는 아닐까? 준비 됐나요? 준비 됐어요.
가족 같은 Seller (04-16-2021)
Covid-19 사태 이후 바이든 정부의 막대한 2조 달러 방출로 최소한 2~3년 동안은 미국 경기가 호전될 것으로 전망한다. 아무쪼록 우리 지역 한인 자영업들도 덩달아 호전되기를 소망한다.
향후 사업체 매매 시장은 어떠할까? 매물은 많고 Buyer가 적은 <Buyer Market>이 될 것이다. 정확한 통계치가 없어서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한인사회도 부의 양극화가 심각하다. 굳이 분류하자면 – 첫째, 경제적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민 1세들로 60대 이후 노령층들이다.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한국에 부동산을 가지고 있거나 물려받은 신흥 부자 계열도 있다. 이들은 힘들고 위험한(?) 자영업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냥 편히 살려는 <현실 만족 형>이다. – 둘째, 경제 빈곤층(?)은 빈손으로 이민 와서 주급 생활을 하거나,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가게 문을 닫거나 큰 손해를 본 층들이다. <의욕 상실 형>이다. – 셋째, 기존의 자영업을 손절매 하고서라도 빨리 새로운 업종으로 전환 하고 싶지만 기존의 사업체가 팔리지 않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안절부절 형>이다. – 넷째, 봄날은 지나갔는데, 아직도 지나간 화려한 시절을 잊지못하고 곧 봄은 다시 돌아온다고 믿는 <과거 집착 형>이다.
– 다섯째, 새로운 구매(Buyer)층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자영업을 시작하려는 이민 1.5세 혹은 2세들의 <젊은 층>이다. 그런데 자영업에 대한 새로운 도전 의지가 너무 꿈만 같다. 절박하지가 않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부모님의 재정적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 돈의 눈물 젖은 사연은 망각한 듯 하다. 자영업은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지, 직장생활 보다 결코 편안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이민 와서 돈을 번 이유는 영어를 잘 해서가 아니라, 경영 전문 지식이나 사업 전문 지식이 있어서가 아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영어도 못하니까, 전문 지식도 없으니까, 자본금도 없으니까, 세상천지 아는 인맥도 없으니까, 바보같이 죽기 살기로 정말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흑인 고객들에게 욕을 들어도 못들은 채, 적당히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손님에게 친절하게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그나마 그 정도 성공한 것이다. 부모 보다 영어 좀 잘 한다고, 미국 물정을 좀 더 안다고 성공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근면, 성실, 친절>이 자영업의 필수 기본조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영어 잘하고, 젊고, 미국 물정을 잘 알면 <플러스 성공 요인>이 되는 것뿐이다.
여섯째, 신규 이민이 감소세로 나타난다. 또한 이민 의식이 바뀌었다. 우리 이민 1세들처럼 먹고 살기 위해 생계형 이민을 더 이상 오지 않는다. 한국의 중,상류층들은 이제 재미동포와 등급이 다르다. 한국 아파트 한 채만 해도 수백만불 자산가들이다.
흔히들 <인지부조화(인지부조화) 이론>을 말한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또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생각과 다른 모순이 생길 때, 이것을 불편하게 여겨 자신의 모순과 차이를 감소시키려는 현상, 일종의 자기 합리화 현상을 말한다. 해결방법은 – 기존의 행동을 바꾸거나, – 자신의 인지를 바꾸거나, – 새로운 인지를 통해 정당화 하거나, – 기존의 믿음에 의한 정보를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소수민족이 자영업이라는 사업을 하는 경우는 – 첫째, – 사업 컨설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먼저 바꾸고, – 둘째, 행동으로 옮기고, – 셋째, 자신의 인지 능력을 축적하고, – 넷째, 정기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Seller에게 하고 싶은 부탁>이 있다. 향후 신규 한인 Buyer들은 특히 젊은 층들은 한인 자영업에 대한 경험이 없다. 우리 지역 한인 사회는 너무 작다. 흔히들 한 다리 건너면 모두가 아는 조그만 시골 동네와 같다. 가게를 사는 사람은 누구나가 사정이 급박하다. 먹고 사는 문제가 직결되므로 불안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게를 팔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안했으면 좋겠다. <가족 같은 마음>으로 가게를 팔았으면 좋겠다.
첫째, 매상(년매상, 월매상, 주매상)을 속여서는 안된다. 2주일동안, 컨설팅 업체가 명기한 매출과 지출에 관련된 제반 자료를 제시하고, 증명해야 한다. 입증할 수 없으면 가게를 팔아서는 안된다.
둘째, Buyer가 가게를 충분히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통상 클로징 후 2주일 트레이닝을 하지만, Buyer의 숙련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계약 조건에 명기하고 파기하는 경우가 없게끔 법적 조치를 취함은 물론이지만, 선한 마음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내 경험으로도 초보자를 몇 개월 동안 가르치는, 선한 Seller들도 많다.
셋째, 가족처럼, 형제 자매처럼, 매매 이후에도 서로 정보도 주고 받고, 도움도 주고 받고 하는 관계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매매 과정에 트러블이 많으면 결과도 좋지 못하다. 매매 후에도 원수처럼 서로를 원망 해서야 되겠는가? 서로가 정직하면 된다. 서로가 자비로운 마음으로 한발 양보하면 된다. 내가 먼저 이해하고 수고하면 된다. 서로가 불편한 이야기는 직접 하지 말고,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이야기 하면 된다. 법적인 문제는 변호사를 통해서 해결하면 된다. 정해진 절차를 지키면 된다. 가능한 한 끼리끼리 직접 매매하지 마라. 이득보다 손실이 크다. 힘들고 외로운 이민 생활이다. Seller, Buyer 모두모두 <가족처럼> 행복했으면 좋겠다.
자영업의 사업의지 (04-09-2021)
왜 사업을 하려 하는가? 왜 장사를 하려 하는가? 돈을 많이 벌기 위함이다. 칼럼에서 몇번 인용한 적이 있지만, 로버트 기요사키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4권의 책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내용이 있다. 세상에는 4분류의 인간으로 구분된다. 봉급생활자(E; Employee), 자영업자(S; Self-Employed), 사업가(B; Business Owner), 투자가(I; Investor)이다. 그의 명언 중에 “가난한 사람들과 중산층 사람들은 돈을 위해 일한다. 하지만 부자들은 돈이 자신을 위해 일하게 한다.” 즉 부자는 경제적 자유인이 되기 위함이다. “교육을 많이 받은 가난한 아버지(대학 교수)는 직업의 안전성이 모든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영적 부자 아버지는 배움이 모든 걸 의미했다. 배움은 실패를 전제한다.”
물 설고 낯 설은 미국으로 처음 이민 온 이민 1세들은 피부색과 인종 차별을 받으면서도 자식새끼들 교육시키고 좀더 잘 살아보려고 죽으라 일만 했다. 전문 기술이나 첨단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언어도 서투니 미국의 고임금 전문 회사에 취업할 형편도 못된다. 그렇다고 대다수 한인 2세들은 고임금을 받으며 유리천장까지 고속성장하여 부자가 될 확률이 있을까? 기요사키 말대로 “월급 모아서 부자 된 사람은 없다.” 직장인이든, 주급 생활자이든, 돈을 벌기 위해 내가 일한 몸값으로 부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생활을 선호하는 이유는 <안전>하다고 믿는 착각 때문이다.
나도 군 장교 시절과 대기업 시절 총 십수년 월급쟁이였다. 그 이후 지금까지 30여년 동안 나는 월급을 주는 사장 입장이었지 월급을 받아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월급쟁이 시절이 가장 <안전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흔살도 안된 나이에 사업가로 뛰어들었고, 비록 IMF때 실패해서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사업들을 내가 결정해서 도전 했으니 후회는 없다.
내가 젊은 세대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은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선택해서 최선을 다해 지금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평생 동안 월급쟁이? 여러분에게 평생 동안 월급 줄 회사도 당연히 없겠지만, 나의 평생 사업을 위한 전문 기술을 배울게 아니라면 지금 다니는 직장을 과감히 때려 치워라. 지금의 주급 생활도 나의 사업을 위한 전초단계이어야지, 처자식 먹여 살리려는 궁여지책으로 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 “시간에 맞춰 일하면 알바(아르바이트)이고, 돈에 맞춰 일하면 직업이다. 하지만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일하면 성공 사업가가 된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내 사업을 할 수는 없다. 흔히들 사업의 3대요소를 <자본, 기술, 인력>이라고 한다. 특히 미국사회에서의 소수인종인 한인들이 할 수 있는 사업은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한인들이 <자영업>을 시작한다.
<자영업>의 첫 단계가 <사업 의지>이다.
자영업의 기본 전제는 해당 자영업의 순수익이 내가 받고 있는 주급(월급)보다는 많아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혹은 하고 싶은 업종 선정이 결코 쉽지는 않다. 하지만 한인 자영업 자체가 대단한 노하우나 기술을 요구하는 업종도 아니다. <편하기>, 혹은 <안전하기> 위해 자영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백인 동네에서, 주 6일 일하고, 저녁 5시에는 퇴근하고, 힘든 일 하지 않는 자영업을 찾는다면 차라리 평생 주급 생활 하는 것이 낫다. 자영업을 하는 <사업목적>은 열심히 일해서 빨리 돈을 모으면 첫째, 더 큰 동종 업종 가게를 사거나, 둘째, 동종 업종의 다른 가게를 사서 늘리거나, 셋째 부동산을 함께 사서 부가 임대 수익을 늘리기 위함이다. 물론 돈을 벌어 주식이나 펀드 투자나, 임대 부동산에 투자할 수도 있다. 그 역시 사업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함이다.
하지만 적지않은 Buyer (Prospector)들은 사업 의지가 불분명하다. 하면 좋고 안해도 되고.. 사업 의지와 진정성이 분명하면 컨설턴트인 나는 공짜로 무조건 도와드린다. 내가 귀찮을 정도로 계속 미팅을 가져야 한다. 나의 고객들 중에 젊은 분들이 비지니스를 성공적으로 잘 하고 계시는 분들도 많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도저히 비전이 없자 7만불을 들고 나를 찾아온 분이 있다. 무슨 업종을 해야 할지, 어느 정도 규모로 해야 할지, 사업 경험도 없이, 아내와 같이 해야 할지 등등.. 결론적으로 35만불 Food 관련 To-Go가게를 사서 잘 하고 계신다. 클로징 하기 전 3개월동안 유료 주급으로 그 가게에서 일을 배우게 했다. 물론 Seller도 서로 믿고 많은 노하우를 전수해 주었다. 그런 성공 사례는 많다. 문제의 손님은 이것 저것 주워들은 풍월은 많은데, 정작 본인의 사업 의지가 불명확한 사람이다. 몇 년이 지나도 가게를 못 사거나, 믿는다~ 믿어라~ 속아서 사는 경우도 많다. 한인사회에도 별의별 사람들이 많다. 사람을 믿지 말고, 오로지 해당 업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분석한 데이터를 근거로 스스로 결정하라.
사업의 3대요소인 <자본, 기술, 인력>은 본인의 사업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 자본은 내 형편에 맞게 시작하고, 기술은 열심히 배우고 지속적으로 개발 창조하고, 인력은 내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남들(경쟁업체)보다 더 인격적으로, 인간적으로, 대해주면 된다. 세상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똑 같다. 여러분은 아직 젊지 않은가? 도전이 두려워 안주할 나이는 아니지 않는가? 하고 싶은 사업을 열심히 해 보시길 응원한다. 기꺼이 도와드리겠다.
Buyer 분석 (04-02-2021)
흔히들 컨설팅 기법의 첫 단계가 <현상 분석>이다. <3C 분석>이라고도 한다. <3C>분석은 <자사 분석: Company>, <경쟁사 분석: Competitor>, <환경 분석: Circumstance>을 의미한다. 컨설팅을 의뢰하는 모든 고객의 현재 상황을 파악하는 작업이다. 의뢰한 프로젝트의 현상을 파악하고, <문제점 분석>을 하고, 그에 대한 <issue 별 대응방안>을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서 제시하는 단계 까지다.
아무리 작은 가게를 사더라도 가게는 비즈니스(사업체)를 매입하는 것이다. 동네 복덕방을 찾아가서 집을 보러 다니는 것과 전혀 다르다. 나는 Buyer가 찾아와서 무작정 매물을 보여달라고 하면 보여주지 않는다. 가게를 살려고 하는 Buyer는 다음과 같은 나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스스로 검증 과정, 일명 <자사 분석(自社 分析)> 과정을 거처야 한다. 컨설턴트(Consultant)인 나는 당신의 무보수 참모이자 부하 직원이라 생각하면 된다. 나는 전적으로 Buyer를 도와주는 도우미다. 경영자가 무보수 참모 조차도 설득하지 못하면서 무슨 사업체를 매입하려 하는가? 그것도 빚(융자)까지 얻고 전 재산을 투자하면서 말이다.
첫째: <자금계획>
- 현재 귀하의 은행에 입금되어 있는 잔고 총액, – 현금으로 가지고 있는 돈, – 융자 받으려는 금액, – 융자 종류: SBA Loan, 개인 융자(Personal Loan –사채, 친척 돈, 한국 가족 돈 등), 오너 융자(Owner Loan-Seller Loan), 공동투자 등이다.
- 모든 자금의 출처와 융자 방법과 자금 계획은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이 자체가 불분명하거나 융자 자격이 안되면 매물을 내놓은 Seller에게도 결례가 될뿐더러, 컨설턴트인 나도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은행의 SBA Loan도 기간이 두배(평소에는 2개월, 지금은 4개월 예상) 가량 늘었다. 거기다 심사 자체가 많이 까다로워졌다. 돈은 언제나 냉정하다. 사채업자이든, 가족이든, 지인이든, Seller이든, 당신을 무조건 믿고 그냥 돈 빌러 주는 착한 사마리아인은 내 경험상 없다. Buyer 자신이 자격이 되어야 한다. 자금 계획과 크레딧 점수를 컨설턴트인 나에게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가족 친지에게서 빌리는 돈은 자신의 은행 구좌에 입금되어 있어야 한다. 입금 예정은 예정일 뿐이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사람이 거짓말하지 돈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
둘째: <업종 선정>
- 한인 위주의 소규모 자영업에는 16가지 정도의 사업체 종류가 있다. 자금 계획이 분명하면 무슨 업종을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왜? 에 대한 분명한 목적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 업종마다 장단점이 있다. 업종에 대한 마켓 트렌드도 있다. 모든 업종이나 매물에는 4가지 요소로 구분될 수 있다. <강점>과 <약점>, <기회 요소>와 <위협 요소>이다. 남들(제3자)에게 좋다고 해서 반드시 나에게도 좋은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약점>이 나에게 <기회 요소>가 될 수 있고, 상대방의 <강점>이 나에게는 <위협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동종 업종의 매물이라고 똑 같은 조건은 아니다. 매물 마다 사람(Buyer와 Seller)마다 특징과 성격이 다르다.
셋째: <매물 분석>과 <매물 선정>
- 해당 업종 매물들의 <사업성 분석>을 각 항목별로 철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한다. <년 매상>, 특히 코로나 시대에는 2019년 매상과 코로나 이후 매상을 같이 비교해야 한다. <렌트 비용과 리스 조건>, 세부 인건비, Payroll Tax, 재료비(상품 매입비), 재고 손실률, 제반 유틸리티와 공과금, 크레딧 카드, 제반 배달업체 수수료, 제반 Tax, 설비 감가상각비 (업종마다 5년 단위, 10년 단위로 구분), 초기 투자 비용, 월 순수익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 물론 가장 중요한 항목이 <년, 월, 주 매상>과 <월 순수익(Net Income)>이다. 이 두가지 항목에 해당 사업체의 모든 의미가 담겨있다. <매상>에는 <3C 환경분석>에 관한 스토리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고객(Customer), 경쟁사(Competitor), 고객 서비스 품질, 업종 매력도, 매상 증가 가능성 등이다. <월 순수익> 항목은 모든 지출 내역이 포함된다. Buyer의 동종 업종 경험과 투입 가족 인원 수 등이 중요 변수다.
- 우리 지역 자영업 사업체는 3년 혹은 5년 단위로 평가해서 매각을 결정해야 한다. 한 가게를 10년 이상, 20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 장사이든 잘 되던 <위대한 미국>은 다시 오지 않는다. 거기다 우리 지역의 한인들은 너무 광범위하게 흩어져 산다. 반면에 대부분의 사업체는 다운타운과 대학가, 번화가 주변에 몰려 있다. 하루를 길에서 소비하는 교통 시간이 너무 길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한인들의 학군에 대한 교육열과 그림같은 집에 대한 로망이 크기 때문이다.
<결론>: 가게를 살 때에는 내 돈으로 내가 결정해서 사는 것이니 누가 말릴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가게는 항상 팔 때를 생각해야 한다. 소비자(고객)가 많은 곳에 매물도 많고 Buyer도 많다. 언제라도 팔기 쉬운 가게를 사야 한다. 모든 문제에는 대안과 해답이 있기 마련이다. 누구라도 저에게 컨설팅을 의뢰해서 좋은 가게를 찾아달라 하시면 제 신의를 걸고 반드시 찾도록 도와 드린다. 컨설턴트와 Buyer는 <One Team>이어야 한다. 함께 분석하고 고민해야 한다. <We can do it!!>
공짜 컨설팅 (03-26-2021)
미국에서 비즈니스 매매를 할 경우, 매매 중계 수수료(Commission)는 Seller가 전액 부담하며, Buyer는 매매 관련 일체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그런데 막상 비즈니스 중개인(Broker) 입장에서 보면, 클로징(Closing, Settlement) 할 때까지 업무의 90%이상이 Buyer와 관련된 일이다. 같은 부동산 매매 업무이지만, 집과 사업체 매매는 천양지차이다. 엄밀히 말하면 집은 부동산(不動産)이지만, 사업체는 권리금에 해당하는 동산(動産)이다. 또한 집은 대부분의 자료들이 검증 가능한 공개된 상태다. 하지만 사업체 자료와 인적 정보는 숨겨진 숫자들이 너무 많다. 매도자(Seller)가 자료를 왜곡하거나 숨기기도 한다. 그것을 매수자(Buyer)가 찾아내야 한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숫자 뒤에 숨은 내용을 찾아내는 일이 <비즈니스 컨설팅(Consulting)> 업무이다. 그러면 이런 막중한 업무인 <컨설팅 비용>을 구매자(Buyer)는 중개인에게 얼마를 지불해야 하나? 일체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공짜>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20대 후반부터 20여년 동안,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사업 계획/분석/평가/컨설팅> 관련 일을 했던 것 같다. 40여년 전인 LG 전자 시절의 만 10년 동안은 컴퓨터 사업부에서 경영 기획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관공서 과장, 부산 경남 지사장, 마케팅 부장 등의 일을 했다. 그 시절 컴퓨터란 대형컴퓨터(수억원~수십억원), 미니 컴퓨터(수천~수억원)를 말한다. 마이크로 컴퓨터나 퍼스널 컴퓨터는 한참 뒤의 이야기다. 그 당시 중견, 중소 기업들 대부분은 업무 전산화가 되어 있지 않았다. 모든 부서의 업무가 가망 고객(Prospector) 회사에 컴퓨터를 납품하기 위해서 해당 회사를 분석하고 전산화의 필요성, 경쟁사 비교, 전산화 효과 등, 사업제안서를 만들고, 상대 기업 사장단에게 사업설명을 하는데 전력을 다 할 때이다. 미국 메켄지 컨설팅 그룹과 일한 경험도 있다. 나는 재직 당시 LG 전자 사장상, 아시아 최고 세일즈 상 등, 많은 상들을 수상했다.
LG전자 퇴직 후 10년간 내 회사를 경영했다. 어학 학습기(닥터위컴), 회화 번역기(일본 후지 제록스), 라벨 프린터(일본 부라더 상사) 등과 계약, 한국 총판 회사를 운영하면서, 온라인 교육사업(수학, 영어, 컴퓨터)을 시작하다가 IMF를 맞았다. 전국 대리점이 총 200개가 넘었다. 신사업 계획서와 전국 사업 설명회가 끊이지 않았다. 받은 어음들이 부도가 나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 없었다. 사업을 정리하고 파산했다. 미국 이민 오기 전까지도 월급쟁이 사장 노릇을 하면서도 여러 신규 사업들의 컨설팅을 했다. 물론 적지않는 컨설팅 비용을 받았다.
나는 미국으로 이민 와서 몇 년간 자영업을 하다가, 14년전부터 우리 지역 비즈니스 컨설팅 및 매매 일을 하고 있다. 처음 손님(Buyer)이 저에게 신규사업에 대한 비즈니스 컨설팅을 의뢰 하셨다. 향후 업무 추진도(Job Flow)를 설명 드리고, 컨설팅 커미션을 나로서는 아주 저렴한(?) 가격인 $3,000(매물 가격의 1%도 안됨)에 제안했다. 그분은 그 뒤로 연락이 없으셨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미주 한인사회 물정을 너무 몰랐다. 주변에 알아보니 이곳 한인사회에서는 비즈니스 컨설팅 개념 자체가 없고, 오로지 매물만 소개하고, 중개 수수료만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매물을 속고 사는 경우가 많고, 모든 판단과 결정은 구매자(Buyer)가 하며, 그러다가 비지니스가 시원찮으면 모든 잘못은 중개업자가 뒤집어쓰고, 결국 사기꾼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필히 <컨설팅>을 해 주되, 모든 비즈니스 컨설팅 비용을 <공짜>로 하기로 결정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나의 컨설팅 비용은 공짜다.
컨설턴트(Consultant)는 의사 결정권자가 아니다. 주변 참모들 중의 한명일뿐이다. 대기업에 우수 인력이 없어서 외부의 고가 컨설팅 업체에 컨설팅을 의뢰하는 것이 아니다. 외부 전문가의, 제 삼자의 냉정한 조언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미국 한인 사회에서 소규모 자영업을 하시고자 하는 분(Buyer)들은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입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은행으로부터 3~4배의 빚(융자)를 얻어서 하는 분들이다. 집은 아무리 잘못 산다고 해도 반토막이 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자영업은 잘못 사면 반토막이 아니라 쪽박을 차기 십상이다. 자신과 가족의 인생이 걸린 막중한 투자를 결정하는데 전문가의 도움(컨설팅)을 받지않고 나 혼자만의 독단과 아집으로 결정한다면 너무 무모한 것은 아닌가? 당신 주변에 한마디씩 거드는 사람들이 컨설팅 전문가가 아님은 당연하다. 해당 업종을 오래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전문가라 할 수도 없다. 자기 가게에 대한 데이타만 있을 뿐이다.
대형사업 프로젝트든, 소규모 자영업이든, 비즈니스에는 예측불가능한 가변 요소들이 많다. 코로나 사태를 누가 짐작이라도 했던가? IMF나 금융위기나 모두가 예측하지 못했다. 그런 특수 상황을 제외하고는, 내 자신과 매물과 지역과 경쟁업체와 고객 상황, 마켓 트랜드, 자금 현황 등은 항상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처음 비즈니스를 하는 젊은 층 고객들은 전문 컨설팅을 받아야 한다. 대기업 신입사원 심사 때나 내 회사 직원들 면접 심사 때,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만 하면 떨어뜨렸다. <열심히>는 누구나 한다. <무엇을, 왜, 어떻게> 열심히 할 것이라는 구체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젊은 고객들을 위해 다음 칼럼에서 몇가지 팁을 드리도록 하겠다.
코로나 종말과 한인 자영업 (03-19-2021)
코로나19로 지구상 모든 인류가 고생한지 만 일년이 지났다. 미국도 코로나 백신 주사가 시작되었다. 나도 그렇고 주변에도 백신주사를 맞으신 분들이 점점 늘어난다. 이놈의 코로나는 언제나 종말을 고할까? 많은 분들이 코로나 감염으로 고생하시고,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시고, 많은 분들이 사업체 문을 닫았다. 모두가 하루빨리 코로나 이전 상태로 돌아가길 소망할 뿐이다.
일년이라는 코로나 기간 동안 장사가 잘 되었던 한인 업종과 버티기도 힘든 업종이 양분되다시피 나뉘어졌다. 장사가 잘 된 업종은 주로 흑인 동네의, 흑인 대상의, To–Go 위주의 <먹는 업종>이었다. 대표적으로 Breakfast, Deli, Pizza, Seafood, 튀김 가게, Beer & Deli, 맥주 도매상, Sushi-to-go, Convenience 가게 등이다. 2019년 대비 매상이 적게는 10%, 많게는 50% 이상 증가한 가게들도 많다. 또한 흑인 대상의 Beauty Supply, Dollar store 등 Stock Business도 도난 피해는 입었지만, 평년 대비 매상은 늘었다.
반면에 한인들의 꽃이자 선망이었던 백인 지역, 백인 대상 비즈니스인 세탁소, Drop Store, Laundry, Nail & Spa, Hair Shop, 각종 레스토랑, Bar, Salad Bar, 각종 프랜차이즈, 커피 샵, Car Wash, 자동차 관련 사업 등은 모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한인들의 주종 사업이었던 세탁소, Drop Store는 직격탄을 받았다. 또한 다운타운과 대학가 비즈니스들은 몇 가게들을 제외하고는 업종에 관계없이 대부분이 힘든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주된 원인은 첫째, <재택근무>와 <원격 수업>이다. 회사원들이 출근을 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학교를 가지 않는다. 어린 자녀가 있는 가정은 엄마도 덩달아 집에 있어야 한다. 재택근무와 원격 화상회의를 하면서 실적 관리를 하고, 일주일에 한두번 출근하여 관리자와의 미팅으로 가능하였다. 일반 기업뿐만 아니라 관공서 공공 기업도 많은 부분이 재택근무가 가능함을 입증하였다. 이 문제는 코로나 종말 이후에도 우리 사회가 받아드려야 할 큰 변화 요소가 될 것이다. 20년전부터 대두된 <제3의 물결> 이슈가 코로나 시대에 <재택근무>시험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피스 임대 사업도 직격탄이다.
둘째는 <마스크 신드롬>현상이다. <비대면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을 만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직장에도 안 나가고, 학교도 안가고, 교회도 안가고, 친목 모임도 없고, 외식도 할 수 없고, 특히 여성들은 화장을 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여성의 주요 즐거움은 <아름다움의 추구>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하고 염색하고, 화장하고 립스틱 짓게 바르고, 손톱에 네일 하고, 예쁜 옷 사 입고, 멋있는 모자에 구두 사 신고.. 이 모든 정성이 사람을 만나서 예쁘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함이다. 그런데 마스크로 온통 얼굴을 가려 버렸으니 누가 누구인지 알 도리가 없다. 화장을 하지 않으니 옷도 편한 옷으로 바뀌어 버렸다. 천하무적(?) 레깅스를 입고 다녀도 흉보는 사회가 아니다. 비싸고 화려한 옷을 입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세탁소나 Drop Store가 잘 되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화장을 하는 날부터 일 것이다. 하물며 여성이 그러할진데 남성이 비싼 옷과 정장으로 멋을 낸다? 패션이 편리함 위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자고로 인류 역사상 남녀 관계는 만남으로 시작된다. 인터넷으로 채팅 수다는 떨 수 있겠지만 신체 접촉은 없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술집에서, 식당에서, 어디서든 만나야 사건이 생기는 것이다.
셋째는 <배달 문화>다. 배달 사업이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아마존은 물론이거니와 한국 쿠팡의 미국 주식시장 상장 금액은 삼성전자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핵심은 소비자의 소비 패턴이 <인터넷 배달>로 바뀌어 간다는 것이다. 물건을 쌓아놓고 단순 판매하던 장사들은 저물고 있다. <부가가치> 사업을 해야 한다. 고객이 내 가게에 찾아오지 않으면 안되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음식>사업도 <배달 음식>과 <레스토랑 음식>으로 양분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별의 별게 다 배달이 된다. 화두는 “왜 고객이 굳이 내 가게를 찾아와야 되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넷째는 <파이 이론>이다. 코로나 종말 이후라고 반토막 난 매상이 다시 원상복귀 되지는 않는다. 삶의 패턴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아닌 것이다. 버티기 힘들면 손절매(損切賣)하고 다른 업종으로 바꿔 타야 한다. 살아남는 자가 줄어든 전체 파이를 나누어 갖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탁 업종 전체 파이 크기(분자)는 코로나가 끝나도 예전보다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문닫는 세탁소와 Drop Store가 늘어나기 때문에 세탁소(분모)의 숫자도 함께 줄어드는 것이다. 따라서 생존하는 세탁소의 매상은 어느정도 회복 가능하리라 예상한다.
다섯째, 바이든 정부의 <최저 인건비> 상승과 강제성이다. 시간이 갈수록 주인이 놀고먹는 자영업은 없다. <진입장벽>, 함정은 거기에 있다.
과거는 흘러갔다. 매상이 높은 가게가 아니라, 부가가치가 높은, 순수익이 높은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전문가와 상담하라. 업종별로 정확하게 가치분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편협한 쪼가리 정보로 당신의 전 재산을 탕진하지 마라. 먼저 당신 자신을 정확하고 냉정하게 평가 받아야 한다. 듣기 좋은 소리에 현혹되지마라. 자신을 알아야 한다. 좋은 가게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자격이 안되는 것이다. 현 위치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건투를 빈다.
더 위험한 미국 –후편 (03-12-2021)
미국 46대 대통령 조 바이든은 누구인가? 인간은 누구나 그가 살아온 과거를 보면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하루 아침에 개과천선한 위대한 영웅은 없다. 그래서 민중은 지도자를 뽑을 때 그의 과거를 반드시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그들의 과거를 너무 몰랐기에 민중이 죽도록 고생한 것이다.
정치인 조 바이든은 언제나 웃는 모습과 좋은 사람의 인상을 가진 유순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는 집요하면서도 꺾이지 않는 뚝심의 정치인, 정치경력 50년, 정치 9단의 정치 고수다. -1942년생, 78세 역대 최고령 대통령, – 민주당 7선 상원의원, 미국 역사상 18번째로 오랜 기간 상원의원으로 재임, – 29세 나이로 1970년 최연소 상원의원, –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무려 37년 재임, -오바마 행정부 8년간 부통령직 수행했다.
바이든은 “정치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정치를 올바르게 하면 사람들의 삶을 더 좋아지게 만들 수 있다. 정치가 미국 국민과 전세계 아이들의 미래를 <희망>으로 바꾸어 놓아야 한다. –자서전 <지켜야 할 약속>에서” 라는 강한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있다.
바이든의 정치 전략은 <빠르게! 대담하게!>이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수십개의 파격적인 법안들을 쏟아냈다. 그는 37년간 의회활동을 하면서 맺어진 문어발 인맥들을 앞세워 긴급 정책들을 일사천리로 진행한다.
그의 가정사를 보자. -1942년 11월20일 펜실베니아 아일랜드계 가정에서 2남2녀중 장남으로 출생, -케네디에 이어 두번째 카톨릭 신자 대통령, – 증조부는 도시공학자로 큰 부를 일굼, 펜실베니아 상원의원을 지냄, – 아버지의 여러 차례 사업실패로 유년시절 외가에서 더부살이 할 정도의 빈곤한 흙수저 생활을 함, – 10살때 보일러 청소공 아버지를 따라 델라웨어로 이주, – 유년시절 말더듬이, 열등생 – 델라웨어 대학에서 역사학과 정치학 전공, 성적은 최하위권, – 어머니와 여동생의 도움으로 도전정신을 키움, – 20세때 첫번째 아내를 만나 결혼을 위해 그녀가 다니는 대학 시라큐스 로스쿨에 입학하여 변호사가 됨. -1966년 결혼, 세 아이(2남1녀)를 갖게 됨, – 1970년 지역의회 의원으로 정계 입문, – 1972년 미국 최연소 상원의원(델라웨어주) 당선, – 당선 한달만에 트레일러와의 자동차 충돌사고로 아내와 13개월 딸은 현장에서 사망, 아들 둘은 중상, 자살을 생각함.(지금도 12월18일 아내와 딸이 사망한 기일날은 휴일로 추모함) – 여동생의 도움으로 델라웨어에서 워싱톤까지 왕복 세시간을 기차로 출퇴근하며 의정활동과 육아를 동시 책임짐, – 장남 역시 2015년 46세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남. – 바이든은 1988년 뇌동맥류 파열로 13시간 대수술, 3개월뒤 두번째 뇌수술, 그의 잦은 말실수로 치매 루머에 시달림, 그는 그의 장애와 말더듬이를 신의 선물이라고 회고함. 그는 장애를 짊어짐으로써 더 강해졌고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믿음. – 1977년 질 바이든(현재 영부인)과 결혼, 둘 다 재혼이며, 가족을 잃은 사고와 두번의 대선 도전 실패 등, 늪에 빠진 바이든을 영어교사였던 질이 사랑으로 구해 줌. 바이든의 다섯번 청혼 끝에 결혼 성사됨.
조 바이든의 별명은 <엉클 조>다. 바이든은 무엇보다 <미국적 가치>를 다시 복원시켜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전세계인의 사망과 경제 대공황, 급증하는 불평등, 중산층의 붕괴, 인종차별과 인종간 불화, 첨단기술 패권주의, 민주주의 후퇴와 가치상실, 인류의 대재앙 기후변화 위기, 동맹국들간의 불신과 자국 우선주의 등등.. 트럼프 정권에서 무시하고 잃어버렸던 미국적 가치와 미국인이라는 자긍심을 다시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와 <더불어 함께>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야 한다.
바이든은 <그린 뉴딜>정책을 추진한다. 상당부분 샌더스 의원 공약을 승계한다. 모든 신축건물 온실가스 방출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시한은 2030년으로 5년 앞당겼다. 미국 발전소에서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15년 앞당겨 2035년까지로 수정했다. 친환경, 환경보호 정책들이 강화된다. 석유 자동차는 전기, 수소 자동차로 모두 대체된다. 이는 4차산업, 빅데이타 산업, AI산업 등 미래 산업의 1등자리를 2030년까지 미국이 장악하며, 향후 100년의 먹거리 산업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야망이다.
물론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 정책을 제시한다. 미국 제품을 우선 구매(BAA법)하고, 미국내 제조 생산을 적극 장려한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폐기하고, 자유무역 통상 정책과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다자주의 협력을 강화한다. 결국 통상정책은 첫째, 자유주의 국제질서 회복, 둘째, 동맹 복원, 셋째, 미중관계 재정립이다. 중국의 10대 국가 전략 정책은 미국의 신산업 정책과 모두 중복된다. 세계 석학들은 중국이 2028년까지 제1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 예상한다. 미국 코가 석자다.
미국은 세계 우방 결속과 한국에게도 강력한 혈맹을 요구할 것이다. 조선의 지리적 역사는 언제나 마찬가지다. <미국과 일본> 대 <중국과 러시아>의 중간이다. 남한은 전자, 북한은 후자를 선택해야 하지만, 영원한 우방도 동맹도 없다. 내가 강하면 선택 주도권을 내가 갖지만, 약하면 종속 노예가 될 뿐이다. 조선은 언제나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북한은 남한이 주체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남한과 북한은 함께 자립, 자강해야 한다. 서로가 함께 잘 살아야 서로를 지킬 수 있다.
더 위험한 미국 –전편 (03-05-2021)
2021년 2월 28일 CDC 통계 기준, 미국 코로나 누적 확진자 수는 28,355,420명, 사망자 수는 510,777명이며, 신규 하루 확진자 수는 7만명이다. 불과 두달 전 2020년12월 31일 기준 사망자 수는 30만3천명이었다. 하루에 미국 국민 약 2천명씩 죽어나간다.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 사망자 수가 50만명이 넘어서자 모든 관공서에 성조기를 조기 게양 하도록 지시했다.
사망자 50만명의 의미는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혀있는 사상자가 총 40만명인것과 비교된다. 1864년 남북전쟁 전사자를 위시하여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 등 모든 전쟁의 미국 군인 사망자와 각종 테러 희생자들을 합한 숫자 40만명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아직도 매일 2천명씩 죽는다. 언제까지 얼마나 코로나로 인해 죽을지 알 수 없다.
심지어 텍사스에는 폭설 한번 왔다고 위대한 미국 국민 30명 이상이 얼어 죽었다. 한달 전기료로 8천불 이상을 청구하는 나라다. 국민의 죽음을 방치한 국가가 무슨 <위대한 미국>인가? 입만 열면 인권? 국민을 위한? 민주국가? 창피하다.
새로 출범한 바이든 정부에 희망을 건다. 바이든 정부 정책들을 알아보고 한인들 각자의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 최은수 박사의 저서 <더 위험한 미국이 온다>에서 일부 인용함을 밝힌다. 여기서 더 <위험한> 미국은 더 <강력한> 미국을 의미한다.
“여러분의 인생 어느 대목에서 실패를 피할 순 없겠지만, 절대 포기를 용인해선 안됩니다.” 2008년 민주당 전국대회에서 조 바이든의 연설 내용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의 핵심 정책만을 요약 소개한다.
첫째, <큰 정부(Big Government)>다. 국가가 직접 시장에 개입해 시장의 역할과 기능을 똑바로 세워야 한다는 영국 경제학자 <케인즈주의> 회귀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의 신자유주의(중도보수) 경제가 만들어낸 양극화, 빈부격차, 중산층 붕괴 등의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시장에만 맡겨 놓기 보다 정부가 강력히 개입해야 한다는 <수정자본주의>다.
둘째, 불평등 해소와 인프라 투자를 대폭 확대해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1. 최고 소득계층에 대한 최고세율 인상(소득세율 인상), 법인세율 인상 등을 통한 조세 수입을 늘리는 한편, 2. 러스트 벨트 지역 등에 인프라 확충, 3. 오바마 케어 건강보험에 연방정부 예산을 투입 등, 결론은 붕괴된 중산층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바이든의 대표적 경제공약 슬로건은 <Build Back Better- 더 나은 재건>이다. 미국의 영광을 기존보다 더 강력하게 만들어 세계를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제2의 경제대국 중국(중국은 2026년까지 세계1위 경제 대국임을 공헌함)을 따돌리고, 1945년이후 75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Pax America 시대>를 부활시키겠다는 속내다. 그러기 위해서는 트럼프로 무너진 국가 신뢰도 회복이 급선무다.
셋째, <Can-Do 경제학>, 바이든의 경제 멘토 재러드 번스타인의 주장이다. 미국의 상존하는 위험요소인 불평등, 인종차별, 기후변화, 임금정체, 재정지출, 공공재 투자 등에 대해 <할 수 없다(Can’t-Do)>가 아니라 정부가 적극 개입해 <할 수 있다(Can-Do)>정책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제2의 루스벨트가 되라>.
넷째, <돈은 무제한 푼다>. 통화 완화주의 (비둘기파)인 재닛 예런(전 연방준비제도 FED 의장)이 바이든 정부 재무장관으로 화려하게 귀환했다. 현재 연준 의장을 맡고 있는 제롬 파월과 긴밀한 관계다. 달러는 세계 기축통화다. 돈을 무제한 풀어(일차 2조달러) 미국 경제를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현대통화이론(Modern Monetary Theory)>. 정부가 <완전고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 국채매입을 통해 무제한 돈을 풀어야 실업,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동성 공급과잉으로 유발되는 <인플레이션>은 증세와 국채발행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추락 위기의 미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2023년까지 제로금리 유지>를 발표했다. 하지만 달러 과잉 공급은 달러가치 하락으로 이어지고, 부동산 등 자산가치 상승과 해외 투자 확산되고, 실물경제는 버블 경제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여섯째, <고압(High Pressure) 경제 모델>. 수요와 공급의 균형 사이에서 수요의 압력이 매우 강해진 상태를 말한다. 완전고용 상태로 일자리가 창출되고 소비와 투자도 활발해져 경기가 활성화되는 것이다. 하지만 경기과열로 인플레이션 촉발과 금리 인상으로 신용 경색 위험도 높지만, 일단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 비둘기파 옐런의 주장이다. 하지만 부양책 재원을 확보하려면 법인세, 소득세, 급여세 인상에 대한 반대 여론과 국가 채무 부담도 문제다. GDP 대비 연방정부 채무 비율은 급격히 불어날 전망이다.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 미국 국가채무는 심각한 이자 폭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곱째, <전환의 대통령 바이든>. 참신한 젊은 인재들을 고루 등용해 미국 정치를 혁신하고 세대교체를 이루고자 한다. 사례로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에 40대 초반의 브라이언 디스다. 그는 블랙록(Blackrock –세계최대 자산 운영사) 전무 출신이다. 세간에는 골드만삭스 출신(관료주의, 전통산업 위주)들은 저물고, 블랙록 등 신산업세대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재무부 차관(부장관)인 30대 후반 월리 아데예모도 블랙록 CEO 래리 핑크의 비서실장 출신이다. 어느 시대나 혁명과 혁신에는 항상 젊은 피를 원한다.
노나메기 세상 (02-26-2012)
민중 운동가, 통일 운동가, 민중 사상가, 행동하는 씨알, 문필가, 백기완 선생(1932~2021년)깨서 2월19일 향년 89세에 별나라로 귀천(歸天)하셨다. 수많은 한국 노동운동과 통일운동 현장에는 선생이 함께 계셨기에 오늘을 사는 민중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 선생은 평생을 반독재 민주화 투쟁(1960년~1980년대)에 헌신했고, 힘없는 농민 노동자 곁에서 민중운동(1990년대~2021년)에 헌신했다. 스스로를 <불쌈꾼>이라 자처하신 <거리의 투사>였다.
“나는 아무것도 못되는 사람이다. 그저 사람이다. 민중이다. 민중은 민초(民草)라니 풀 같은 것이다. 나는 풀이다.” 함석헌 선생의 말씀처럼, 백기완 선생은 언제나 삭풍의 초원에 서 있었다. 민초이자 들풀이었기 때문이다. 이 땅의 소외된 자와 고단한 자의 소박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는 지친 민중들의 심신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자 좌절하는 민중들을 다시 전사로 나서게 만드는 <민중운동의 사상가>였다. 그는 초등학교 중퇴라는 학력 뿐이었지만, 평생을 공부하고 집필하면서 큰 사상과 울림을 민중들에게 전하셨다. 그는 <재야>, <동아리>, <새내기>, <달동네> 등의 새로운 어원도 만들었다. “나는 학력과 권력, 재산 아무것도 없으니 손해 볼 것도 없는 그냥 사람”이라는 그의 <무지랭이>론이 재야 운동의 기본정신인지도 모른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노나메기>세상이다.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되, 함께 올바르게 잘 사는 세상”인 <노나메기> 세상은 어느 종교에서도 말하지 않는 동양의 유토피아로 불리는 <대동사회(大同社會)>로 귀일(歸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선생은 “내 거라는 건 거짓이라는 것이야. 내 거는 끊임없이 내 거를 요구해.” 하셨다. “<나의 것>은 거짓이며, 소유이며 욕망이자 헛것일 것이다. 내가 일하지 않고 남의 것을 얻는 것은 착취이자 강탈인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이론에 극대치 되는 사상이다. 각자가 열심히 일하여, 얻으면 나누고, 함께 더불어, 올바른 일을 위하여 모두 잘 사는 세상을 말한다. 누구나 꿈꾸면서도 과연 그런 세상이 아니 그런 작은 시도라도 하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
선생의 사상적 모태는 백범 사상과 함석헌 선생의 씨알 사상이다. 선생은 1932년 황해도 은율군에서 태어났다. 백범이 1898년 황해도 치하포 사건(일본인 살해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탈옥했을 당시 백선생의 조부(황해도 대지주)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이런 계기로 1984년 통일문제 연구소(백범사상연구소 전신)를 설립, 백범일지 외 민주화 관련 책자들을 출간한다. 선생은 30세에 함석헌 선생(61세)를 만나 씨알의 동지이자 실천가가 된다. 다석 류영모(1890~1981)선생은 함석헌의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가 되니, 씨알 사상의 계보를 잇는 씨알 실천가들인 셈이다. 씨알의 근본 실천 강령이 <노나메기 세상>만들기다.
이미 전세계에 널리 불리우는 민중운동가요이자 5.18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민중가요인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선생의 <젊은날> 시집에 나오는 장시(長詩) <묏 비나리>를 황석영 시인이 약간 개사한 내용이다. 원문이 너무 길어 지면에 모두 옮기지는 못하고 서두와 중간, 마지막 부분만 옮긴다.
“맨 첫발 / 딱 한발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 목숨을 아니 걸면 천하 없는 춤꾼이라고 해도 / 중심이 안 잡히나니 / 그 한발띠기에 온몸의 무게를 실어라 / 아니 그 한발띠기로 언 땅을 들어올리고 / 또 한발띠기로 맨바닥을 들어올려 / 저 살인마의 틀거리를 몽창 들어엎어라 // ~ 중략 //
천추에 맺힌 원한이여 / 그것은 자네의 마지막 한의 언저리마저 / 죽으려는 가진 자들의 모진 채쭉소리라 / 차라리 그 소리 장단에 꿈틀대며 일어나시라 / 자네 한 사람의 힘으로만 일어나라는게 아닐세그려 / 얼은 땅, 돌뿌리를 움켜쥐고 꿈틀대다 / 끝내 놈들의 채쭉을 나꿔채 / 그 힘으로 어영차 일어나야 한다네 / 치켜뜬 눈매엔 군바리가 꼬꾸라지고 / 힘껏 쥔 아귀엔 코배기들이 으스러지고 / 썽난 뿔은 벌겋게 방망이로 달아올라 / 그렇지 / 사뭇 시뻘건 그놈으로 달아올라 / 벗이여 / 민중의 배짱에 불을 질러라 // ~ 중략 //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 세월은 흘러가도 /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 일어나라 일어나라 /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 앞서서 가나니 / 산 자여 따르라 산 자여 따르라” // ~ 중략 //
이 썩어 문드러진 놈의 세상 /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벅,벅, / 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리다 / 마지막 심지까지 꼬꾸라진다 해도 / 언 땅의 어영차 지고 일어서는 / 대지의 새싹 나네처럼 // 젊은 춤꾼이여 / 딱 한발띠기에 일생을 걸어라.
선생의 저서로는 <항일민족론>(1971),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1979), <젊은날>(1990), <백기완의 통일이야기>(2003), <장산곶매 이야기>(2004)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2009), <두 어른>(2017), <버선발 이야기>(2019) 등 다수다.
우리 시대의 민중들은 선생께 많은 빚을 지고 살았다. 부디 조국이 평화 통일되는 그날, 천국에서라도 흥겨운 한바탕 춤을 추소서. 영면하소서.
기다림 (02-19-2021)
어제 밤사이 내린 얼음비로 세상 천지가 얼음 왕국이 되었다. 지난 한주 동안 폭설이 내리고.. 눈을 치우고 나면 또 꽃눈이 또 내리고.. 또 치우고 나니 얼음비가 내렸네..
매일 아내와 길을 걷는다. 일요일 아침이라 동네 공원 길을 걸었다. 한바퀴 도는데 30분, 평소처럼 두 바퀴를 걷는다. 그 넓은 공원에 사람이 없다. 모든게 꽁꽁 얼어버렸다. 겨울의 한숨 소리가 깊어간다. 곧 봄이 오겠지.. 어둠이 깊어가면 새벽이 오듯이..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기다리면 돌아올 것이라 믿기에.. 겨울 나목들은 묵묵히 서 있다. 앙상한 가지들이 처연하다 못해 아름답다. 어쩌면 벌써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기다림의 미학인가? 저들은 나보다 그분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한게 분명하다.
산다는 것은 기다림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든, 때를 기다리든, 기회를 기다리든, 기다림은 희망이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바램이며 기대다. 희망이 없으면 기다림도 막연하다.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고통이며 고난이다. 어느 삶이든 만만한 적 있었던가? 코로나 사태로 너나 없이 그렇지 않아도 힘든 삶이 더욱 힘들다. 빨리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기를 기다릴 뿐이다. 기다린다고 모든게 해결되나? 막연한 기다림을 희망이 있는 삶이라 할 수 있을까? 때와 기회를 기다림은 만남을 계획하고 실행할 준비해야 한다. 기다림 속에서도 실행이 결정되면 행동에 옮겨야 한다. 막연한 기다림은 망부석 돌과 같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어쩌면 이미 와 있는지도 모르는 기회의 상실이다.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포기하는 것이다. 와신상담(臥薪嘗膽 – 원수를 갚으려고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섶에 눕고 쓸개를 씹는다는 뜻), 고진감래(苦盡甘來 –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 좋은 시절이 온다는 뜻) 모두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에는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을 전제 한다. 봄을 죽을만큼 그리워하고 기다린 자에게만 봄의 진정한 가치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기다림은 그리움이다. 부모는 자식을 기다리지만 자식은 부모를 기다리지 않는다. 기다리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지, 기다림의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남아있는 사랑은 떠나간 사랑도 기다린다. 그리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엄마에게 참으로 불효 자식이었다. 다 늦은 나이에 후회한다. 중 고등학교시절 도서관을 마치고 마지막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는 엄마가 항상 기다리고 계셨다. 대학 시절 학기 마지막 시험을 보자마자 나는 혼자 배낭을 메고 여행을 떠났다. 방학이 거의 두달이면 한달 반 이상을 떠돌아 다닌 셈이다. 아무런 연락도 없이 고향집에서 애타게 기다리실 엄마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엄마가 한국 요양원에 계실 때도 전화 통화만 했을 뿐, 엄마한테 간다 간다 하면서 가지 못했다. 위독하시다는 전갈을 받고서야 부리나케 나가서 엄마 안아드리고 입맞춤 해 드린 다음날 돌아가셨다. 평생을 엄마는 나를 기다리셨는데, 나는 언제나 내가 우선이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불법 신분이든, 가난하든, 엄마를 모시고 함께 살았어야 하는데..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나는 죽어도 죄인이다.
나를 기다리는 또 다른 여인이 내 아내다. 결혼할 수 없는 동성동본이었는데 나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 사람이다. 언젠가 연애시절 다방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3시간 늦게 다방에 도착했다. 그 시절에는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어서 기다리다 오지 않으면 다방 벽에 메모지를 남겨두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자리에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너무 당황해서 언제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나 물어보니 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IMF때 사업실패로 자살을 생각했는데 매일 밤 꿈속에 아내가 아이들 손을 잡고 허허벌판에 울면서 서 있는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가라고 고함을 질러도 가지를 않는다. 기다린다고만 한다. 나는 죽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살고 있다. 무작정, 무조건, 무한정.. 이런 사람이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이 세상에서 내 아내가 제일 무섭다.
기다림은 그리움을 사이에 두고 사랑을 한다. 그리움은 사랑하는 사람을 내 마음에 담아두는 것이다. 그리우면 만나야 한다. 만날 날까지 그리운 대로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이 허망할 수도 있겠지. 그리움이 잊혀질 수도 있겠지. 그래도 그리워 기다리는 삶은 아름답다.
나는 고향이 부산이라 청소년 시절 혼자 태종대에 자주 갔다. 태종대에 가면 자살 바위가 있고 그 옆에 구명사(救命寺)라는 절이 있었다. 나는 절벽 바위에 서서 바다를 보기 좋아했다. 절벽 아래로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삷과 죽음이 한 경계에 있음을 알았다.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죽는다. 자살은 삶의 포기다. 그런 죽음에 어떤 의미도 가치도 부여할 수 없다. 살아야 한다. 어떤 삶이든 살아야 가치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낭떠러지 아래 격랑 하는 파도가 현재 나의 삶이라면, 바다의 끝없는 수평선은 나의 희망이자 위로와 안식이다. 포기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나를 위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한다.
기다림의 최고 지존은 그분이시다. 그분은 하늘에 계신 것도 아니고 내 마음 속에 살아계심을 나는 믿는다. 나를 야단치실 만도 다그치실 만도 한데 그래도 그분은 나를 기다리신다. 내 아들아, 내 딸아, 내가 너를 진정 사랑하노라.
혼란의 이념시대 (02-12-2021)
프레데릭 왓킨스가 현대사회를 <이데올로기 시대>라 정의한 이유는 민중들의 신념이나 사상이 정치나 지배 권력을 움직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지배 권력의 안정된 정치적, 경제적 지배와 존속은 일정한 이데올로기를 민중들의 의식 속에 주입 세뇌시켜야만 한다. 결국 권력 투쟁은 이데올로기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이데아(Idea- 이념)과 로기이(Logie –논리)의 합성어다. 현대인들은 시간이 갈수록 불확실성 시대에 살고 있다. 민중들은 빈부의 양극화, 불평등, 불공정, 불예측, 불확실 시대에 살면서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념과 사상의 이데올로기 동지들 집단을 필요로 한다. 더구나 인터넷 시대다. 가짜 이념과 가짜 뉴스가 흘러 넘친다.
효과적 이데올로기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 권력과 민중에게 쉽게 전달되도록 간단하고도 체계적 논리를 갖추어야 한다. 둘째, 대중 신앙처럼 대량 살포 되어야 한다. 셋째, 인간적, 사회적 가치 구현이 되어야 한다. 이데올로기 종류는 몇회 칼럼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분야별로 수십가지 다양하다. 철학 지식분야, 정치 경제 분야, 사회 문화 분야, 종교 분야, 창작 분야별로 세분화된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이념 타령인가? 할 수도 있지만, 민중이 권력을 선택하는 유일한 기회는 선거 투표권이다. 이데올로기는 보수와 진보, 좌익과 우익,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등등 이분법적 사고로 단순 분류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다원주의 시대다. 그래서 민중은 알아야 하고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 이념 전쟁의 역사는 불과 200년에 지나지 않는다. 18세기 산업 혁명 이후 민중들의 삷과 밥이 이념을 만들고 무너뜨렸다. 기계화, 산업화, 대량 생산 등으로 부의 재분배 방식에 따라 수많은 정치 이념들이 생긴 것이다. 현대 미국과 유럽의 백인 민중들의 반란도 일맥 상통한다. 백인들이 주류일 때는 값싼 노동력으로 흑인, 라틴계, 아시안들을 수입해 노예처럼 부리다가 1970년대 신자유주의 물결로 무한 경쟁 시대에 돌입한다. 하지만 2010년부터 시작된 경기 대침체로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긴 꼴이 되니 기득권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문제는 현대의 젊은 세대다. 우리 세대와는 달리 <평생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지금의 험난한 여정이 언제까지 얼마나 가야할지 아무도 알려주지도 보장해 주지도 않는다. 그러니 과거의 빛 바랜 이데올로기 이념들로 회귀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대표적 기득권 반란 이념이 <대안 우파>와 <큐어넌>이다. 온갖 잡동사니 극우 불만세력들이 다 모여 트럼프를 지지했다.
<대안 우파>도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뉜다. 서양 사회 정체성 대 백인 정체성, 이슬람 유입 반대 대 유대인 음모론, 성별 차별 대 인종 차별, 자유지상주의 대 전체주의, 시장 중심의 내셔널리즘 대 인종 중심 내셔널리즘, 반 페미니즘 대 반 평등주의, 다문화주의 반대 대 혼혈까지 반대.. 등등으로 나뉜다.
백인우월주의, 네오 나치즘(나치즘 추종주의), 반이민주의, 안티페미니즘, 파시즘, 반공주의를 추구하는 백인 <대안 우파>의 근간은 <반 다문화주의>와 <백인 민족주의>다. 미국은 백인 국가인데, 다문화, 다인종들로 인해 미국이 망해가고 있다는 분리주의자들이다. 그들은 미국의 상징인 <신자유주의 세계화 노선>에 강력히 반발한다. 경제학자 제프리 터커는 “대안 우파는 개인주의 보다 집단주의 성향이 강하고, 자유무역과 자유이민에 회의적이며, 개인의 자발성과 역사의 진보도 불신한다.” 그들은 시장 질서 하에서의 자율경쟁이 아닌, 국가가 나서서 강력한 시장개입과 폐쇄적 보호주의를 통한 강력한 백인 국가를 원한다. 이민 반대를 통한 노동인력 확보와 기업의 해외진출 조차 강력한 관세폭탄(40%)으로 막아야 한다는 논지다. 그래서 자유무역, FTA도 반대한다.
불과 400여년의 역사 밖에 되지 않는 미국이 세계 최강 국가가 된 저변에는 아인슈타인과 같은 세계 각국의 우수한 두뇌들과 양질의 노동인력이 미국으로 이민 오면서부터다. 자유주의와 친이민주의, 개인주의로 누구나 열심히 성실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국가 이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과학자들의 대다수가 민주당 지지자인 것과 일맥 상통한다.
그러나 시장 자유화의 부작용이나 코로나19 같은 비상시국으로 인한 경제 대공황이나 대침체를 겪게 되면 정치 극단주의와 대중 영합주의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때 주적의 대상은 이민자, 소수계층, 비주류층을 공격하게 된다. 이민생활 동안 ‘너희 나라로 꺼져라’라는 협박은 누구나 한번쯤 겪어 보았을 것이다. 대안 우파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애국, 조국, 국가, 국민통합 등이다. 태극기 부대와 유사하다. 국가주의가 지나치면 전체주의가 된다. “모든 것은 국가에 있으며, 국가 외에는 어떤 것도 없으며, 국가에 반대하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베니토 무솔리니.” 자유주의와 반대되는 전체주의는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즘, 소련의 스탈린주의, 북한의 주체사상이 대표적이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되지 않으려면 미국은 자유 민주국가에서 자유 복지국가로 한걸음 더 나아가야만 한다. 그래야 너도 살고 나도 산다.
미국 백인 민중들의 반란 (02-05-2021)
헨리 조지는 불평등한 사회를 이렇게 정의한다. “부의 평등한 분배사회에서는 애국심, 덕, 지성이 존재하며, 민주화 될수록 사회도 개선되지만, 부의 불평등한 분배 사회는 정부가 민주화 될수록 사회는 오히려 악화된다. 부패한 민주사회에서는 최악의 인물에게 정권이 돌아가며, 비양심과 거짓이 성공을 거둔다. 최선의 인물은 바닥에 떨어지고 최악의 인물이 정상에 오른다. 자유롭던 민족이 노예로 타락하고 탐욕의 정치가 주를 이룬다. 그런 다음에는 민중을 현혹하는 <선동가>가 나타난다.”
어느 시대나 민중이 어려우면 <선동가>가 등장한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여 막대한 전쟁 보상금이라는 국가 부채를 안게 된다. 당연히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경제 불균형으로 가난한 민중들의 반란이 일어난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희대의 선동가 <아돌프 히틀러>다. 레닌과 스탈린은 러시아 황제 짜르의 무능이, 푸틴도 러시아 개혁 실패가, 모택동은 황실 무능과 장개석이, 김일성은 미군정과 이승만으로, 박정희와 전두환은 일본제국주의 환상으로, 역사의 수많은 독재자들은 민중의 고통을 등에 업고 혁명이라는 환상을 앞장세워 민중의 피를 빨아 먹으면서 권력을 찬탈한 것이다.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 최상의 부자나라, 최강의 군사대국, 안전한 경찰국가, 인권과 자유가 보장된 나라, 누구나 평등하고 차별 없는, 성실히 일하면 누구나 잘 살 수 있는 <아메리카 드림> 미국.. 너나 할 것 없이 이민자라면 누구나 이런 믿음과 환상을 갖고 이민을 왔을 것이다. 그런 미국의 치부가 곪아 터져 환부가 드러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일성이 <통합(integration)>이다. 트럼프는 4년전 취임사에서 미국과 세계를 살육(carnage)과 황폐(disrepair), 슬픔(sad)이 흐르는 곳이라 선동한 것과 극히 대조된다. 나는 <트럼프> 유형의 인간을 혐오한다. 박근혜는 모자라서 그렇다 치더라고, 돈 밖에 모르는 잔머리의 대가 이명박 같은 인간도 싫어한다. 민중의 등골을 빼먹고 거짓과 위선과 독재로 나라를 팔아먹는 그런 인간들에 비하면, <친구 같은 대통령> 문재인은 선한 사람이다. 비록 일등은 아닐지라도, 촛불 혁명의 기대에 못 미칠 수는 있어도, 나는 그를 믿는다. 그렇다고 나도 대깨문?
2020년 미국 대선 결과도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인 절반 가까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트럼프가 비록 선거에서 졌지만 미국 공화당 역대 최다 득표 낙선 기록을 남겼다. 심지어 2021년1월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 사건은 미국인의 수치이자 세계인들을 경악시킨 진상이다. 왜 절반 가까운 미국 민중들은 이런 미치광이 선동가 트럼프에 미쳐 있을까?
이를 <트럼프 현상(트럼피즘, Trumpism)>이라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고립주의, 반세계화, 내셔널리즘 (국가주의, 미국 우선주의), 반공주의(특히 혐중국주의), 포퓰리즘, 백인우월주의, 인종차별주의, 남성우월주의(마초이즘), 기독교 근본주의, 반지성주의적이다. 굳이 딱 하나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배경은 2020년 선거에서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2000년 집권한 조지 부시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화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추진했지만, 국가 부채만 증가 시켰다. 신자유주의 강화는 양극화 현상만 더욱 가속시켜, 백인 중저학력자들 빈곤만 가중시켰다. 미국 제조업이 붕괴된 시기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대침체 기간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 마저도 금융계와 대기업 지원이 최우선이었으며, 민중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백인 중산층 몰락이 가장 큰 이유다. 고졸 학력이어도 큰 제조 회사에 다니면 평생 직장이 보장되고, 꼬박꼬박 월급 나오고, 집 모게지 다 갚고, 착실히 교회 신앙생활 하면서, 정년 퇴직하면 퇴직금과 사회 보장 연금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보통사람으로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었는데 그 꿈이 무너진 것이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불안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양극화 현상은 OECD 대부분의 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나는 백인이고 미국은 백인의 나라이며, 그래서 위대한 미국이라 자부했는데, 백인들 노예였던 <흑인>들이 치고 올라오고, <히스패닉> 준노예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모두 빼앗아 가고, 영어도 못하는 <순진한 (바보같은) 아시안>들이 자신들보다 학력은 더 높고 더 좋은 집에서 더 좋은 자동차를 몰고 더 좋은 비즈니스를 하고 있으니 배알이 뒤틀리겠지. 그렇다고 고학력 고수익의 잘 나가는 백인 엘리트 그룹을 시비할 배짱도 없지. 트럼피즘은 전형적인 중하위층 백인들의 열등의식과 피해의식과 반지성주의 무지가 결합된 기형적 이념이다. 대표로 <대안우파>와 가짜 뉴스의 총 산실인 <큐아넌(QAnon)>이다. 한국의 <태극기 부대>와 일맥 상통한다.
<대안 우파(Alternative Right)>는 21세기 들어서 미국 및 유럽 서양권에 등장한 극우운동으로, 백인우월주의, 네오 나치즘, 반이민주의, 안티페미니즘, 파시즘, 반공주의 등을 추구하는 정파들을 아울러 일컫는 단어다. 기존 보수주의와 달리 20대, 30대 백인 남성들이 주 지지 세력들이다. 미국의 극우 백인 우월주의자, 백인 민족주의자로 자칭하는 리처드 스펜스가 2010년 3월에 고안한 단어이지만, 특별한 이념 단체이라기 보다는, 오합지졸 불만세력이다. 이런 자들이 미국 주류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니 참으로 한심할 지경이다. 미국이 어쩌다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
진보와 빈곤 (후편) (01-29-2021)
“땅은 아주 팔아 넘기는 것이 아니다. 땅은 내(하나님)것이요, 너희는 나(하나님)에게 몸 붙여 사는 식객에 불과하다” –레위기 25장23절, “어떻게 당신들은 하늘과 땅을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는 이 땅이 사람에게 속해 있는게 아니라, 사람이 이 땅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1854년 스쿼미쉬 인디언 추장 ‘시애틀의 편지’ 중에서. “상위 계층 소득의 태반은 지대(렌트)에서 나온다. 지대는 하위 계층에게는 손실을, 상위 계층에게는 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시장을 왜곡해 왔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에서.
미국의 현대 자본주의는 시장 경제, 상업중심주의로 지주(건물주)에게 집중되어 있다. 자본과 노동은 생산에 기여한 정당한 대가이지만, 토지의 지대는 단지 법적 소유권만으로 착취하는 무노동 불로소득인 것이다. 토지는 자연성, 고정성, 영속성, 희소성, 외부 영향성, 개별성, 경직성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토지는 개인 소유의 대상인 동시에, 국토의 일부이므로 공공복리와 공익추구의 <토지 공개념>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문명의 주기적 흥망, 제국의 성쇠, 혁명과 전쟁은 결국 토지 소유 사유화에서 비롯되었다. 지주와 소작농의 불평등 이윤 배분, 개인과 국가간의 분쟁(토지 사유와 공유), 국가와 국가간의 영토분쟁 등등, 수많은 사례들이다. 세계적으로도 경기의 주기적 불황은 부동산(토지) 거품이 붕괴되었을 때다. 로마 제국의 멸망도 대규모 <토지 사유화>에 기인한다.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로 잃어버린 30년, 미국의 인종차별, 리먼 브라더스 금융위기 등이 그러하듯, 작금의 한국 부동산 광적 거품 현상은 머지않은 시일 내에 국가적 재앙이 될 것이 자명하다.
문재인 정부는 모든 정책을 다 잘하고도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토지(부동산) 정책은 혁명과 같은 것이다. 적당한 타협으로 부동산 기득권의 강한 권력을 절대 꺾을 수 없다. 한국이 해방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일제 적산 토지와 친일파 대지주 소유 토지를 무상몰수 하여 인민들에게 토지 무상 재분배한 정책 때문이었다.
토지소유권에 따라 <토지 사유제>, <토지가치 공유제(일명 지공주의)>, <토지국유제>로 나눌 수 있다. 토지 <사용권, 처분권, 수익권>을 <토지 사유제>는 모두 개인이, <토지 공유제>는 수익권만 정부가, <국유제>는 모두 정부가 갖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토지, 자본, 배분 주체를 개인과 시장에 일임하고, <토지공유제>는 토지만 공유하고 나머지는 시장에, <정통사회주의>는 토지, 자본은 공유, 배분 주체는 계획, <공산주의>는 토지, 자본, 배분을 모두 국유화 하는 제도인 것이다.
<토지 공유제(지공주의)> 특징은 지대 수익에 대한 엄청난 세금을 물림으로써, <지대수익-지대세액=제로>에 가까워진다. 따라서 1. 부동산 투기억제와 토지의 효율적 사용을 촉진하며, 2. 토지 배분과 소득 분배의 평등화, 3. 주택난 해결, 4. 실업률 감소와 노동자의 정당한 노동대가 지불, 4. 생산활동 활성화, 5. 생태계 보호와 환경세 토대 효과를 볼 수 있다.
<토지공공임대제>를 적용하는 나라는 중국, 홍콩, 싱가포르, 베트남, 영국, 인도,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호주, 말레이시아, 이스라엘 등이며, 홍콩 지방 정부의 수입원 35% 이상은 토지세에서 나온다. 또 토지공유제가 헌법에 명시된 나라는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이다. 독일 바이마르 헌법 제 155조 “토지의 경작과 이용은 토지소유자의 공동체에 대한 의무다. 노동과 자본 투하없이 이루어지는 토지 가격 상승은 전체 이익을 위해 이용되어야 한다”
OECD 주요국 토지보유세 실효세율은 미국이 1%, 캐나다 0.87%, 영국 0.76%, 일본 0.52%인 반면에 한국은 0.16%이다. 이러니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는 것이다. 미국의 우리 지역 토지세와 부동산세는 년 2~3%에 해당하니, 한국은 새발의 피(鳥足之血)일 뿐이다.
핸리 조지 토지 공유제 사상은 미국의 제퍼슨 데이비스, 링컨,영국의 처칠, 톨스토이, 중국의 쑨원(삼민주의 사상의 기초가 되어 훗날 대만 헌법에 명시됨), 아인슈타인 등 세계적 지도자와 사상가들이 지지한다.
헨리 조지는 “토지 사유제를 인정하는 한, 자유는 필연적으로 노예제도와 연결된다.” “토지사유제가 철폐되기 전에는 미국 독립선언서도 노예 해방법도 아무 소용이 없다.” “ 토지 사유제는 맷돌의 <아랫돌>이며, 물질적 진보는 맷돌의 <윗돌>이라면, 노동자인 노예 계층은 맷돌 가운데서 갈리고 있는 존재다” 미국의 흑인 노예들이 노예해방법에 의해 해방되고 자유를 얻었지만, 그들이 소유할 땅이 없었으므로 다시 노예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장 비참하고 가장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상태의 인간을 보려면 초원지대나 농촌이 아니라, 한뼘의 땅만 소유해도 큰 재산이 되는 대도시로 가면 된다.” “임대료, 이것은 매일매시 자본과 노동자로부터 계속되는 반복적인 절도에 해당한다. 이런 절도는 자본가의 정당한 보수와 발명가의 인내 어린 노력의 열매를 빼앗아 간다. 지대는 사람을 타락시키고 포악하게 하며 비참하게 만든다. 지대는 지속적으로 노동에 부과되는 부담이다.”
즉 헨리 조지의 개념은 토지세를 우선 과세하고, 토지공개념 초과이익 환수제, 종합 부동산세, 토지 보유세를 가중함으로써 토지 투기는 사라지고 토지 임대로 발전하여야 한다는 취지다. 되돌아 보아야 한다. 민중이 살아야 국가가 산다.
진보와 빈곤 (전편) (01-22-2021)
코로나19와 같은 세계적 대재앙을 겪게 되면 부자와 가난한 자의 양극화는 더욱 가속화 된다. 왜 그럴까? 우리 지역 한인 업종들 가운데서도 부자동네 쇼핑물에서 영업하거나 다운타운 번화가에서 비싼 렌트비를 내는 업종들의 타격이 제일 심하다.
한인들 3분의1 이상이 운영하는 세탁소 업종을 예로 들어보자. 좋은 세탁소는 대부분 백인 부자 동네 쇼핑몰에서 영업한다. 평균 면적이 2,000 SF이고 SF당 $25이면 월 렌트비가 $5,000이며, CAM과 R/E Tax를 포함하면 $6,000 ~$7,000이다. 주매상이 $7,000하면 $400,000에 매매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매상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 2주 매상이 렌트비로 지불되는 셈이다. 장비 감가상각비와 인건비, 유틸리티를 어림잡아도 월 순수익은 형편없다. 매상이 언제 정상으로 돌아올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하물며 주매상 3,4천불 하던 가게들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으려나?
다운타운 사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렌트비는 비싸지만 매상이 많기 때문에 사업 능력이 되는 한인들은 비싼 권리금을 주더라도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대부분의 고객인 회사원들은 재택근무를 하고 다운타운 거리는 유령의 도시처럼 황량하기 그지없다. 아파트 렌트도 상점들도 곳곳이 비어있다. 고객들은 언제 돌아오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반대급부로 렌트비가 저렴한 흑인 지역 Food Business와 To-Go Business만 성업중이지만, 정부의 긴급 지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경기가 회복되지 않으면 모두가 몰락하는 것은 자명하다. 결국 주식투자와 건물주와 같은 자본이득을 얻는 자들만 승승장구한 셈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은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정설에 가깝다. 그렇다고 흑인동네 허름한 단독 건물 한채 가지고 있다고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부가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3권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의 결론도 “돈이 스스로 일하게 하라”이다. 그는 인간을 4등급으로 분류한다. 근로자, 자영업자, 회사 오너, 건물 임대사업자이다. 그도 임대주택 수백채를 지속적으로 구매해서 리모델링하고 임대 주고를 반복하면서 부자가 되었다. 돈이 돈을 벌고, 나는 일하지 않아도 돈이 스스로 일하여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트럼프나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도 본시 악랄한 아파트 임대 사업자 이었음을 넷플릭스 등에서 볼 수 있다. 한국도 부동산 광풍으로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욕을 듣는 가장 큰 이유도 부동산 가격 폭등이다. 2016년 보유 부동산 가격기준으로 상위 1%(13만9천명)가 보유한 주택은 일인당 6.5채씩 소유했으며, 2007년 상위 1%가 3.2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또한 주택 보유 자산 규모는 2016년 대비 2020년 기준 2배 이상 상승했다. 내 경험으로도 1980년 대비 강남 동일 아파트 가격이 불과 40년 만에 현재 가격은 약 100배 인상한 셈이다. 이런 세상에 무슨 정의가 있고 공평과 평등이 존재할 수 있는가?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1897년 출간한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Progress and Poverty>이라는 책에서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이 책은 19세기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판매된 책이며, 그동안 수많은 경제이론들이 등장하지만 아직도 조지파가 존재할 정도로 미래경제의 큰 화두임은 분명하다. 나는 경제학 전공도 아니고 전문 지식도 없지만, 유시민의 알릴레오와 <진보와 빈곤> 책자에서 일부 인용함을 밝힌다. 여기서 <진보>는 보수 진보가 아니라, 물질적 진보, 경제적 성장을 의미하며, 검토할 내용은 토지공개념, 토지가치 공유제(지공주의, 地公主義, 조지주의, Georgism), 토지사유제, 토지국유제, 토지이윤 분배제도, 토지 단일세 등에 대한 것이다,
생산의 3대 요소는 <토지, 자본, 노동>이라고 하면, <토지>는 자연이 제공하는 모든 기회와 힘을 의미하며, <지대>(地代, Rent- 토지 사용료, 토지 소유자(Landlord)가 그 토지의 사용자(Tenant)로 부터 징수하는 보수)를 말한다. <노동>은 모든 인적 노력을 의미하며, <임금>은 노동이라는 생산요소 제공에 대한 보수다. <자본>은 더 많은 부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되는 모든 부를 의미하며, 이자, 설비, 기술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자>는 금전 또는 기타의 대체물을 사용한 대가로서 원금액과 사용기간에 비례하여 지급되는 보수다.
따라서 <생산량=지대+임금+이자>이며, <생산량-지대=임금+이자>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만약 <생산량>보다 <지대>가 더 빨리 증가할 경우 <임금+이자>는 감소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자본과 노동이 힘을 합하여 토지 지대와 싸워야 하므로 방법은 <지대>에 높은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이론이 성립하는 것이다. 이것이 헨리 조지가 주장하는 <토지 단일세>, <토지 이윤 분배제도> 개념이다. 미국은 <지대, Rent> 상승률이 매년 3%~5%인 반면, 임금 상승률은 거의 변동이 없는 이유이다. 시간당 $8불이 언제 때 이야기인가? 물론 한국의 비정규직은 더 하지만 말이다.
<왜 민중은 가난한가?> 의 답이 여기에 있다. 지대는 토지 자체가 생산물을 낳고 상품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다. 지대는 토지에 투하된 인간 노동의 결과로서 생산 가치의 일정분이 토지 소유자에게 지급되는 것이다. 불로소득인 셈이다. 답은 빤하다. 토지 소유주의 지대 수익을 세금으로 빼앗고, 자본의 이자를 낮추어 노동자의 임금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다.
걱정말아요 그대 (01-15-2021)
아직도 끝나지 않는, 언제 끝날지 기약도 할 수 없는 코로나 사태로 세계 민중들은 살기가 더욱 힘들다. 1998년 IMF 때나, 2008년 금융위기 때나, 2020년 코로나 사태 때나, 그 이전의 역사적 대재앙 때나, 그 결과는 극심한 <양극화 현상>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빈부의 양극화, 불평등의 양극화, 정치 이념의 양극화, 종교 이념의 양극화, 교육의 양극화, 기회의 양극화 등등, 흔히 <K 현상의 양극화>가 그것이다. 중간 계층이 무너지는 것이다. 가진 자는 더 많이, 못 가진 자는 더 없이, 간격은 더 벌어지는 것이다. 계층간 <이동 사다리>가 제거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같은 가난한 민중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비단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었지 않은가? 그런 시련 속에서도 행복했고, 사랑했고, 감사했으며, 그분을 의지하며 믿고 살았다. 그 삶의 속에는 우리를 위로하는 노래들이 있다. 나는 그래서 노래가 좋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 전인권 씨의 <걱정말아요 그대>를 여러분과 함께 한 소절 별로 나누어 불러 보길 원한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 우리 함께 노래 합시다 /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 버리고”
나의 아픈 기억들은 나의 가슴에 묻어야 한다. 잊으려 한다고 잊혀질까? 그런다고 허구한 날 아픈 상처들을 끄집어내어 곱씹는다고 나아질까? 한국인은 한 많은 민족이다. 기나긴 아픈 역사 속에서도 살아남았으며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도 독재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그렇게 살아왔다. 우리도 살 수 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 그런 의미가 있죠 /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 후회없이 사랑 했노라 말해요”
의미가 없는 과거는 없다. 떠나간 사랑은 사랑이 아닌가? 떠난 사랑은 오죽하면 떠났을까? 잃어버린 재산은 내가 잘못한 것인가? 내가 사랑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내가 게으르고 무능 해서도 아닌데, 그렇게 떠나고 잃어버렸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런 시절을 만난 것이다. 떠난 것은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남는다. 그래서 사랑은 후회없이 해야 한다. 그래야 또 다시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노래하자, 그리고 감사하자. 2020년 작년 한해 동안 감사할 일들을 생각해 보자.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 새로움을 잃어버렸죠 / 그대 슬픈 얘기들 모두 그대여 /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버리고”
물론 너나 없이 많은 것을 잃어버린 한해였다. 나의 고객들 중에는 가족을 잃어버린 분들도 적지 않다. 피땀 흘려 만든 사업체 문을 닫은 분들도, 닫을 예정인 분들도 적지 않다. 그래도 지금 현재 살아남지 않았는가?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자. 또 다시 시작하면 된다. 살면 된다. 살다 보면 또 희망이 보인다. 살다 보면 또 살아진다. 세상 모든 것은 유한하다. 모든 이별과 상실은 내 탓으로 털어버려야 한다. 누굴 위하여? 나를 위해서다. 그래야 원망이나 분노가 없다. 상대의 탓으로 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나?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 그런 의미가 있죠 /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지나간 삶에 후회가 없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 열심히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내일의 사랑도 열심히 할 수 있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래야 내일의 일도 열심히 할 수 있다. 젊은이여, 괜찮아요. 그대에게는 경험한 지난 날 보다 경험할 새로운 날이 더 많아요. 지레 겁먹지 말아요.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훨씬 많으니까요. 새로운 꿈을 꾸어요. 당신의 내일을 위하여..
<카르페 디엠> – “현재를 잡아라(즐겨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으라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 한 구절이다. 우리에게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존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겨라, 소년들이여, 삶을 비상(飛上)하게 만들어라”라는 명대사로 더 알려져 있다.
키팅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지.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하지. 하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 사랑이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인 거야. 오늘을 잡아야 해.”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으로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네 길을 가라, 사람들이 무어라 비웃든 간에.”
얼마나 멋있는 가르침인가. <이 순간에 충실하라, 그리고 이 순간을 즐겨라, 카르페 디엠>.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요. 오늘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일에 감사하고 즐기며 후회없이 살아가도록 해요. 그러다 보면 더 좋은 날도 오겠지요..
허락 하신다면 (01-08-2021)
허락하신다면
새해에는 아프지 말게 하소서.
코로나든, 뭐든 간에,
내 한 몸 아프는거야 내가 견뎌내면 되겠지만,
나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음 아파할까 그게 마음에 걸리네요.
사랑하는 사람들도 아프지 말게 하소서. 지켜보는 내가 더욱 힘들 것 같네요.
허락하신다면
새해에도 작은 꿈과 희망을 품고 살게 하소서.
허망한 바램이라도 그것마저 없다면 사는게 너무 삭막할 것 같네요.
모두 이루어지라라 믿을만큼 순진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소망하며 기도하면 의지할 곳이 있어 따뜻할 것 같네요.
살아생전에
아내와 사랑을 나누었던, 내 뼈를 뿌려 달라던 지리산 노고단 정상과,
설악산 대청봉을 거쳐, 금강산, 명사십리 해금강을 들러,
꿈에도 못잊어 하시던 엄마 고향인 흥남 마전리, 아버지 고향인 함흥에 들러,
한줌 유골이라도 뿌려드리고,
개마고원과 백두산 천지 못에서 목놓아 울고 싶었는데.. 그런 날이 오려나..
자식들 손주들 하나하나 모두모두 하는 일 잘 되었으면 좋겠고,
행복했으면 좋겠고,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네요..
또 저와 인연 맺어준 모든 분들
새해에도 건강하고 사업 번창하고 가족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허락하신다면
새해에도 하던 일을 계속하게 하소서.
이 나이에 다른 일을 하기도 그렇고, 놀기에는 형편이 녹록치 못하니,
허락하시는 날까지 열심히 일할 테니, 끼니 걱정은 안하게 해 주소서.
좋은 음식도 필요 없고 우리 두 내외 많이 먹지도 않으니,
빌어먹지는 않게 하던 일 계속하게 해 주소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감사와 나눔과 배려를 잊지 말게 하소서.
허락하신다면
새해에는 제 마음의 평화를 잃지 말게 하소서.
저의 못된 성질 머리를 고쳐 주소서.
별 것 아닌 일로 섭섭해 하고 화내고 삐지고 독한 말로 상처 주는..
저를 가여이 여기시고, 당신의 미소로 짓눌러 주소서.
못된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으니,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 개똥 같은 철학, 이념 등은 흐르는 강물에
흘려 보내고, 주신 나의 본연을 되찾도록 기도하게 하소서.
정화수 한 그릇 떠놓고 천지신명께 빌던 외할머니의 간절한 소망에
발끝도 못 미치면서..
세상 걱정은 왜 그리 많은지,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허락하신다면
새해에는 땀 흘려 운동하게 하소서.
무슨 운동이든 좋으니 좋은 사람들과 운동하게 하소서.
테니스, 골프, 탁구, 배드민턴, 수영, 산행, 헬스, 조깅..
그 무엇이든 땀만 흠뻑 흘릴 수 있다면 좋겠네요.
그 놈의 코로나 때문에 지레 늙어 죽겠네요..
이번 여름에는 바다에 자주 가게 하소서.
뜨거운 태양 아래 모래밭에 너부러지게 있고 싶소이다.
내 평생에 가장 게을렀던 시간들이 바닷가에 텐트치고 살던 때 이외다.
생선회와 소주가 없는게 아쉽지만..
그것도 안되면 집 앞 수영장에서 책 보다가 졸다가 수영하다가..
이번 여름은 그렇게 살 것이외다.
허락하신다면
새해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본시 쫌생이라 많은 사람을 사랑할 위인은 애당초 아니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만이라도 아프게 하지 말고,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면서 후회할 짓 하지 말고 사랑만 하게 하소서.
그래봐야 결국은 한사람인데 그게 뭐 그리 힘들까 하면서도,
사랑은 끝없는 사랑을 하라 하셨으니 참으로 당신은 대단하십니다.
새해에도 같이 장 보고, 맛있는 음식 만들어 먹고, 산책하고, 산과 바다 가고,
같이 드라마 보고, 한 이불 덥고 자고, 별 보고, 정원에 꽃과 채소 가꾸고,
아이들 손녀들 재롱 보고, 친구들 만나서 저녁 먹고, 여행가고..
그러면 좋겠네요. 과한 욕심인가요..
허락하신다면
새해에는 당신과 더욱 많은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워낙 믿음이 약한 자라 나무라실 생각은 하지 마시고
내 곁에서 항상 동행하시고 내 속에 언제나 살아 계신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으니,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언제나 저와 함께 하소서.
당신이 볼 때에는 속이 터지시겠지만,
그래도 사람 많이 되지 않았나요? 제가 봐도 대견하네요.
죽는 날 까지 사랑하라 하셨으니 그러려고 애는 쓸 것입니다.
죽은 후 천국 갈지 지옥 갈지는 온전히 당신의 권한이니 상관없지만,
살아생전에 나를 사랑한 사람들에게 사랑하지 못한 빚이 있다면
죽어서도 편하지는 못할 것 같네요.
어찌하오리까? 나의 길잡이가 되어 주시고
제가 묻거들랑 대답 좀 빨리빨리 해 주세요. 속 터져 죽어요.
새해 한해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