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저작권은 윌리칼럼 저자인 이위식 (Wi Sik, Lee)에게 있으므로 저자의 서면 동의 없는 무단 전재 및 복제를 금합니다. 모든 윌리 칼럼은 미국 Korea Phila Times (주간필라) 신문에 매주 해당 날짜에 출간된 것임을 밝힘니다. **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12-31-2020)
2020년 끝자락에 서서 올 한해를 되돌아본다. 3월부터 본격적으로 우리 일상을 위협한 코로나 팬데믹의 <설마>가 해를 넘기면서까지 <설마>로 우리 모두를 두렵고 힘들게 한다.
미국이나 한국 모두 올해 1월20일 첫 확진자가 발견된 이후, 올 한해를 마감하는 12월28일 기준, 미국 확진자가 1,945만명, 사망자가 34만명이며, 세계는 확진자 8,090만명, 사망자가 177만명이다. 코로나 잠식 예정인 내년 상반기까지 얼마나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할지 짐작할 수도 없다. 미국은 국민을 방치한 상태다. 내 주변의 지인들과 손님들 중에도 여러분이 코로나 확진으로 고생하신다. 인류의 대재앙이다.
대부분의 한인 영세 자영업자들이 입은 경제적 피해는 예측조차 할 수도 없다. 마치 영화 <디어 헌터>에 나오는 <러시안 룰렛> 게임처럼 나의 운명을 코로나에게 맡기는 형국이다. 많은 것을 잃어버린 2020년 한해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을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고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세월이다. 혹시나 나로 인해 피해가 될까 봐 자식들도 집에 오지 못하게 하고, 우리 부부도 이번 달부터 각자 방을 쓰기로 했다. 결혼 이후 처음이다. 아무리 부부싸움을 해도 잠자리는 같이 했는데 이게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다.
혼자가 된다. 혼자인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너는 왜 혼자가 되었는가? 결국은 누구나 혼자가 되지.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부와 명예, 출세와 신분 상승, 성공과 안락, 지식과 정보, 사상과 이념, 신념과 가치관, 공동체와 관계, 사랑과 우정 등등.. 그 무엇 하나 가벼이 소홀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그래서 그 무엇을 얼마만큼 얻었으며, 설령 가지고 있다 한들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인가? 그것들을 얻으려 얼마나 바쁘게 살았으며,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는가?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들이다. 죽음이 한발치 바로 앞인데 그것들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는가?
지금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며, 죽는 날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마르셀 프루스트 (1871~1922년)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소설처럼 나의 과거로 되돌아가 보아야 한다. 나의 의식과 무의식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사라지는 <시간>이라는 하루살이 삶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아보아야 한다. 삶은 <표면적 자아>와 <심연의 자아>가 혼합되어 살아가지만, 대부분의 시간들은 <망각> 속에서 묻혀 있다. 잊혀진 <무의식 속의 기억>들에서 소중한 보물들을 아주 우연한 기회에 발견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를 이 자리에 서 있게 만든 그 무엇, 그 소중한 그분의 선물을 우리는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내가 진정 하고 싶었던 일, 보람 있었던 일, 감사했던 일, 사랑했던 일, 순수한 나의 열정을 다한 일.. 그런 기억들을 망각 속에서 찾아내어야 한다. 그런 일들을 나의 남은 시간 동안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얀 연기를 내품던 소독약 차를 무작정 쫓아다니던 어린 시절처럼, 군중들의 휩쓸림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나의 본연을 들여다 보는 시간들을 가져야겠다.
프루스트의 제자 칼 융의 친구이기도 한 세계적 문호 헤르만 헷세(1877~1962년)는 산문집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에서 “ 세상 모든 것을 모방하고 위조할 수 있지만, 사랑만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사랑은 자신을 전부 내줄 줄 아는 마음에만 깃들기 때문이다.” “모두 입을 모아 비난하는 것에 침묵하고, 서로 적대시하지 않는 인간과 제도에 미소하고, 개인의 작은 영역에서 사랑을 쌓아서 세상 전체에 사랑이 줄지 않게 하는 것, 일에 충실하고 인내하며, 조롱이나 비판, 싸구려 복수를 중지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헷세도 힘든 삶을 살았다. 어려서는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퇴학당하고, 자살기도도 하고, 청년시절에는 서점 견습원, 시계공장 견습공.., 그리고 세번의 결혼, 정신병원 요양, 나치정권의 박해, 히피들의 우상 등등.. 누구에게나 삶은 만만치 않다.
노인이 좋은 이유는 <자유의지>가 많아지는 것이 아닐까? 무엇을 먹든, 어디서 살든, 무엇을 하든, 뭐가 그리 대단할까? 노인이 걸어가는 길에 장애물이나 구속하는 인연들은 하나 둘씩 놓아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참 나>를 찾는 연습을 해야 한다. 자신의 자아를 자기가 찾지 않으면 누가 찾는다는 말인가? 불교에서는 <대상이 없는 마음>을 부리는 힘을 <선정력(禪定力)>이라고 한단다. 육조단경에서는 밖으로는 상(相)을 떠나는 것이 고요할 선(禪)이요, 안으로는 어지럽지 않음(不亂)이 정(定)이라고 했다. 이 마음의 힘을 키우기 위해 참선을 하고 마음 수련을 한다. 선한 마음은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인간만이 그분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그런데 나의 마음을 잘못 쓴다면?
김수영 시인의 <거미>라는 시를 소개한다. 먹이도 없는 늦가을 거미줄만 드리운 채 죽을 날을 기다리는 늙은 거미가 되기 싫어서..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
올 한해 힘든 시간 동안 우리 모두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해에는 뜻하시는 모든 일들이 잘 될 것입니다. 기도하고 소망합니다. 여러분 가족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나의 쉼터 (12-24-2020)
오늘도 하루의 끝이 지나나 보다. 각자가 어디서 무엇을 했건 하루의 밥벌이를 마감하고 집으로 향한다. 해가 서산에 지고 어둠이 찾아오면 이름 모를 수많은 군중들의 모습을 본다. 어디로 저리 종종걸음으로 부산스레 가는 걸까? 창조주가 만드신 모든 피조물들은 누구에게나 돌아갈 곳이 있다. 하루의 고단한 육신과 지친 영혼을 쉬게 할 그곳을 향해 발길들을 재촉한다. 우리는 그곳을 집, 주거지, 쉼터, 안식처, 피난처, 휴식처, 쉘터(Shelter).. 그 무엇이라 불러도 좋다. 그곳에 가면 나만의 공간이 있다. 누구의 눈치나 간섭 없이 오늘 하루만이라도 마음 편이 쉴 수 있고 잠들 수 있다. 그곳에는 나만의 자유가 있고 나만의 평화가 있다. 그래서 그곳으로 가는 것이다.
휴식(休息)의 쉴 휴(休)는 나무(木)에 기댄 사람(人)이다. 나무에 기대어 자연의 품에서 편히 쉰다는 의미일 것이다. 쉰다는 것은 고요한 마음으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식(息)은 숨쉴 식(息)이다. 숨은 누구나 쉰다. 격한 일을 하면 숨은 거칠고 가빠진다. 마음이 여유롭고 평화로우면 숨쉬기도 느긋하고 길고 깊어진다. 길게 숨을 쉰다는 것은 마음을 비워내는 과정이다. 하루 동안 겪었던 온갖 삶의 무게들을 비우는 것이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내가 그리워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숨쉬기는 모든 수행 과정의 기본이 된다. 부처님 말씀에 “숨 한번 쉬는 호흡지간에 생사가 놓여있다” 하셨다. 현대인들은 너나없이 얼마나 바쁘게 사는가? 생존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바쁘게, 힘들게 고단하게 사는 것이다.
그래서 휴식이란, 편안하게 쉬는 시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성찰의 시간, 자신과의 대화하는 시간,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 힐링의 시간, 자유의 시간,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회귀의 시간이다. 그곳이 어떤 곳이든 상관없다. 그곳이 화화주택이든, 아파트이든, 단칸방이든, 고시원이든, 쪽방이든, 하숙방이든, 임시 쉼터이든, 자택이든, 전세이든, 월세이든, 그곳에 가면 나만의 공간이 있고 내 육신을 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구별에서 사는 동안 영원한 안식처는 없다. 우리 모두는 잠시 유한에 머물기 때문이다.
나도 나의 쉼터를 찾아서 평생 동안 참으로 많은 이사를 했다. 한번 기억을 더듬어 그곳들을 가본다. 태어나서 고둥학생 때 까지는 부산 부모님 댁에서 살았다. 나는 대학생부터 객지생활을 했다. 일학년 때는 학교 앞 행당동에서 2명이 한방을 쓰는 하숙 생활을 했다. 4학년 선배 하고 같은 방을 썼는데, 허구한 날 여자친구를 번갈아 데리고 오니 방을 비워줘야 했다. 갈 곳이 없으니 학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때는 유신 독재시절 이었으니 시국 토론이니 뭐니 하면서 하숙집이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래서 2학년 때부터 부모님 모르게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난생 처음으로 혼자 밥해 먹고 연탄불 갈고 빨래하고 살았다. 그때부터 지금 이 나이 될 때까지, 아니 남은 날까지 나는 자취생의 마음으로 산다. 밥, 요리, 빨래, 설거지, 청소, 장보기 등등.. 생활의 기본 아닌가? 친구들은 자취방에 부르지 않았다. 이놈들은 한번 오면 며칠이고 갈 생각을 안하는 것이다. 방학 때마다 배낭여행도 혼자 다녔다. 자취생 그때 나의 기도 제목은 ‘24시간 뜨거운 물이 나오는 곳에서만 살게 해 주시면 뭐든 하겠다’는 거였다. 3학년때 동생들(이란성 쌍둥이)이 모두 재수를 하게 되어 나의 자취방에서 동거가 시작됐다. 아버지는 재수를, 아니 <한번만 더 기회를> 용납하지 않으셨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라는 것이다.
그 뒤 부모님 도움으로 강남 삼성동 AID 아파트에서 함께 살며 졸업했다. 공군 장교 시절은 대전 자취방, 서울 여의도 자취방에서, 결혼 후 아버지의 도움으로 압구정동 한양 아파트, 대기업 부산 지사장 시절에는 사택으로 광안리 아파트에서 살다가,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처와 가족들은 어머니가 계신 부산 본가에 두고 혼자 서울 본사에 올라와 2년동안 자취생활을 하였다. 그후 어머니를 모시고 가족이 합하여 여의도 아파트, 분당 아파트 등에서 살았다.
IMF 때 사업실패로 가족들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나 홀로 기러기 아빠로 남아 월급쟁이 사장을 했다. 그때 처음으로 성남 쪽방촌에서 2년 자취를 했는데, 그때의 정신적 외로움과 힘든 생활은 잊을 수가 없다. 그 쪽방촌은 나 이외에 아무도 모른다. 회사생활 하는 낮 동안은 일하느라 견딜 수 있었는데, 퇴근 후 밤이 찾아오면 하루하루의 두려움이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나도 미국으로 건너가 몇 년 동안 단칸방 아파트에서 다섯 식구가 뒤엉켜 살았다. 그때 나만의 쉼터는 아파트 베란다 구석의 작은 공간이었다. 그래도 단칸방 그때가 좋은 추억이 많고 그래서 미안하다. 힘든 시절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선생이다. 나만의 서재도 있고, 곳곳에 나만의 쉼터가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노인 아파트로 이사 가고, 언젠가는 혼자가 되고, 더 늙으면 요양원으로,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져 나의 지친 생을 마감할 것이다.
남은 생을 어디에서 살든, 혼자가 아닌,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고독과 외로움만 견딜 수 있어도 무엇을 하든, 무엇을 먹든, 어디에서 살든, 나는 감사하며 살 것이다. 그분께 나의 영원한 안식처를 맡긴다. 나의 별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나와 함께 하소서.. 여러분, 수고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 하루의 끝에서..
어른으로 산다는 것 (12-18-2020)
산다는 게 참 힘들다. 삶 자체가 힘든데, 삶의 무게가 천근만근인데, 행복하게 산다는 것, 어른으로 산다는 것, 잘 산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나 같은 늙은이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살 날이 구만리인 젊은이들에게는 무언가 용기와 격려를 하고 싶은데 무슨 말로 격려해야 하나?
올 한해를 뒤돌아보면 온통 코로나 사태가 우리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의 잘못도 아닌,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도 없이, 어떻게 해 볼 재간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망가져버린 2020년이었다. IMF때도 그랬고 금융위기 때도 그랬다. 이민자 여러분들이 이민 와서 어떻게 가게를 마련하고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잘 아는 나로서는 ‘힘내시라’ ‘견디시라’ ‘이겨 내시라’라는 말 조차 공허하게 느껴져 마음 속으로만 위로하고 기도할 뿐이다.
더군다나 ‘어른답게 살아라’고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른>의 사전적 의미는 1.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사람(長者). 3. 결혼한 사람, 4. 집안이나 마을 집단에서 나이 많고 경륜이 많아 존경받는 사람 등으로 규정한다. 어른은 선택의 자유와 결정권을 가지되, 반드시 책임도 져야 하는 것이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의 뒷모습은 언제나 쓸쓸한가 보다.
정신분석 전문의인 김혜남 교수의 <어른으로 산다는 것> 책에서 인용한다. “세상에는 무수한 종류의 어른이 있다. 그들은 각자 자기 방식을 유지하며 서로 어울려 살아간다. 어른은 별다른 게 아니다. 어른이란 제 인생의 짐을 제가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이다. 그 짐은 무겁지만 내가 그 짐을 드는 순간, 나는 나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어른의 나잇값은 얼마인가? 어른이 짊어진 삶의 무게는 얼마인가? 내가 선택한 삶인데, 타인을 원망하거나 시절을 원망하고 좌절하면 나잇값도 못하는 어른이 될 수 밖에 없다.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노인은 될 수 있지만, 누구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살다 보면 힘들고 지친다. 권태와 무력감은 자신의 목표와 이상이 너무 높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자신이 처한 현실이 이상에 비해 너무 초라할 때 자족하지 못하고 외부를 차단해 버리는 것이다.
누구나 각자 마음 속에는 상처 입은 아이가 살고 있다. 그 아이는 과거 어느 순간 깊은 상처를 입고 마음 속으로 들어가 성장을 멈추어 버렸다. 우리는 가끔 한밤중에 흐느끼는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진정 그 아이의 고통을 어루만져 달래고 멈추어 버린 성장을 계속 하려면 그 아이가 마음껏 울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성장통은 어린 아이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어른도 죽는 날까지 성장하면서 성장통을 앓는 것이다. 그래야 어른이다.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행복하고 싶다면 이제 그만 떠나 보내라. 모든 상처에는 흉터가 남기 마련이다. 남겨진 흉터는 이겨낸 내 삶의 훈장과 같은 것이다. 과거를 떠나 보내야 미래가 찾아온다. 삶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고 멈추어 서 버리면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 슬픔 앞에서는 굳이 어른인 척 하지 마라. 슬프면 울어라. 울고 또 울어 눈물이 마르면 슬픔을 강물처럼 바람처럼 흘려 보내라. 슬픔은 억지로 잊으려 한다고 잊혀지는 것이 아니다. 슬픔을 끌어안고 살지 마라. 슬픔은 나도 모르게 그냥 흘려 보내라.
너무 나의 이미지를 너무 좋은 사람으로 과대 포장하지마라.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 좋은 자식, 좋은 이웃으로 나의 모습을 너무 치장하고 가리우면 슬픈 삐에로의 눈물이 된다. 나의 모습 있는 그대로 살아라. 용서할 건 용서하고 살아라. 나도 다른 누구에겐가 상처가 되었듯이 내가 받은 상처는 빨리 용서 하고 빨리 잊어라.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하여라.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꿈을 꾸어라. 노인은 꿈을 꾸지 않지만, 어른은 꿈을 꾸는 자이다. 때론 어린 아이처럼 유쾌하고 즐겁게 놀아라. 유머러스하고도 따뜻한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아라. 세상은 살만한 그분의 소중한 선물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이 순간순간의 삶 속에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느끼고 감사할 수 있다면, 내가 세상 떠날 때, 어린아이처럼 우는 나를 다독여주며 나의 손을 잡고 사랑한다는 작별인사를 나눌 사람이 있다면, 나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나의 삶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과정일 것이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 내 마음을 우울하게 하고 두렵고 공포스럽게 하는 것, 증오하고 비난하고 질투하는 것, 우월과 열등, 차별과 분노, 욕망과 허세, 거짓과 위선 등등.. 내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더욱더 무겁게 하는 그 모든 것을 버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랑과 배려, 용서와 화해, 감사와 나눔, 지혜와 성찰, 웃음과 유머 등등.. 나의 짐을 나누어 질 수 있는 것들을 얻으려 애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책을 읽고 사색을 하고 별을 헤고, 바람 소리를 듣고, 산과 바다와 강과 길 위에서 나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나는 나의 길을 가야 하고, 나의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죽는 날까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나는 왜 쓰는가 (12-11-2020)
어김없이 또 한해가 저문다. 반복되는 일상이고 변화 없는 연속이지만 삶의 과정에는 일단 매듭을 짓고 마무리를 지어야 할 빚과 같은 아쉬움이 있다. 일년이면 적지않은 시간들이다. 그 지나간 시간들 속에서 만난 적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한 일들과, 그로 인한 감사함과 미안함이 늘 상존한다.
특히 나는 매주 <주간필라(Korea Phila Times)>라는 지역신문에 칼럼을 쓰는 일이 가장 미안하고 부담스럽다. 물론 누가 강요하는 일도 아니고 돈이 되는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나 자신이 전문 작가도 아니고 글을 쓰는 훈련이나 교육을 받지도 못했다. 한인 지역사회의 공인도 아니고 성공한 사업가도, 전문가도 아니며, 더군다나 대단한 식견이나 사상가는 더더욱 아니다. 내일 모레면 70인 나이지만 아직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생이며, 그저 지극히 평범한 범부(凡夫)에 지나지 않는다. 남은 세월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 육신이 움직이는 날까지 일해야 먹고 살 수 있으며, 그걸로 그분께 감사한다. 누구처럼 작가가 된다던가, 책을 낸다는 생각은 애당초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런 자가 2008년 1월1일부터 지금까지 13년간을 한번도 빠지지 않고 매주 2천~2천5백자 분량의 칼럼을 써오고 있다. 13년 x 52주 = 총 676편의 칼럼이고, 글자수로도 최소한 676편 x 2,000자 = 총 1,352,000 글자다. 참으로 뻔뻔하고도 부끄럼을 모르는 위인이다. 신문사의 인내심도 대단하고 애독자들의 긍휼함과 자비심도 대단하다. 나 스스로도 매주 글을 쓴다는 일은 고욕이자 고통이다. 주로 글은 저녁 자투리 시간에 쓴다. 토요일까지는 주제와 줄거리를 선정해야 되고, 글은 일요일 저녁에 주로 쓴다. 월요일 저녁에 최종 원고를 정리하고 화요일 오전까지 신문사에 송부한다. 매주 제일 괴로운 것은 ‘이번 주에는 무슨 주제로 쓸까?”이다. 나는 적어도 과거에 썼던 나의 칼럼을 되새김질하거나 재탕 하지는 않는다. 매주 쓸 새로운 주제를 고민한다.
그러면 <나는 왜 쓰는가>. 이 제목은 조지 오웰의 산문집 제목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에서 글 쓰는 동기를 네 가지로 분류한다.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이다.
<순전한 이기심>은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를 말한다. 나도 부정하기 쉽지않은 주석이다. <미학적 열정>은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그것도 맞는 이야기다. 나중에 은퇴 후 내가 진정 글쓰기에 전력하고 싶은 유혹이기도 하다. <역사적 충동>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 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그것도 맞는 이야기다. 내가 알지 못했던, 잘못 알았던, 부족했던 역사 인식을 서적과 자료를 찾아서 내 나름의 올바른 역사적 가치관을 갖고 싶음이다. 어제를 바로 알아야 오늘을 바르게 살 수 있고, 내일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자식이나 그 누가 내 글을 읽게 되면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싶음도 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목적>은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수정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모순에 대한 극치점에 살고 있다. 특히 가난한 자, 소외 받는 자, 불평등과 차별 받는 자에 대한 옹호와 변호와 격려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나 자신도 가난한 소시민이고 이민 사회의 비주류이고 미국이라는 사회에 부적응자로서 조그마나마 그들의 편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싶은 바램이 있다. 또한 우리 세대가 살아온 대한민국과 조선이라는 조국이 험난한 독재와 탄압과 부정부패의 100년사를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변방에서라도 한 목소리 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이것도 굳이 정치적이라면 정치적이겠지만..
조지 오웰은 “좋은 산문(글)은 유리창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책을 쓴다는 것은 고통스런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 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아마 그 귀신은 아기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마구 울어대는 것과 다름없는 본능일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함이다. 글 속에서 나 자신을 <유리창>처럼 들여다 볼 수 있고, 유리창으로 들여다 본 내 자신이 부끄러웠고, 적어도 내가 쓴 글처럼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나와의 약속이 있기 떄문이다.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반복적 질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유리창을 통해 내 자신을 끊임없이 감시 감독하는 것이다. 앞으로 더 글이 성숙되려면 글을 통해 자신을 속속들이 다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글, 나를 둘러싼 세상을 있는 그대로 성찰하고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나 자신과 단 한사람의 영혼만이라도 위로가 된다면, 나는 언제까지일지 장담할 수 없지만, 글 쓰는 작업을 멈추고 싶지 않다. 여러분도 매주 자신의 글을 써 보시길 권면합니다.
루저(Loser) (12-04-2020)
루저(loser)의 사전적 의미는 ‘말이나 행동, 외모가 볼품없고 능력과 재력도 부족하여 어디를 가건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개인간의 은유적 의미는 <패배자, 실패자, 낙오자, 좀도둑, 전과자, 범죄자, 찌질이>.. 등등으로 상징된다. 더 심하게는 상대방을 <인생 패배자>로 비하할 때 쓰는 단어다. 미국 트럼프는 여러 전장에서 미국을 위해 숨진 미군 참전 용사들을 <패배자들(loser)>, <호구들(suckers)>라고 불렀다. 그 정도의 가치관을 가진 인간이 미국의 대통령이었다니..
루저? 실패자? 패배자? 그 성공과 실패의 가치기준은 무엇인가? 지금 현대를 살고있는 우리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성공하기> 위해 살아간다. 성공의 가치 기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성공하기 위해 올림픽 슬로건처럼 <더 많이,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 얻기 위해 살아왔는지 모른다. 태어나서부터 유아교육, 유치원, 초등학교(나는 초등학교도 시험을 쳐서 입학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의 입학시험, 졸업시험, 장교 임관 시험, 대기업 입사시험, 관리자 등급별 승진 시험, 국가 자격증 시험.. 등등, 매주 월요일은 시험 보는 날로 머리에 각인이 될 정도였다. 무엇을 위해? <성공하기>위해? 그러면 성공했는가? 시험에 낙방한 사람들은 실패한 루저들인가?
현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는 인간의 두뇌를 <돈>으로 온통 오염시키고 말았다.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다. 돈이면 죽은 자도 살린다.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살 수 있다. 돈이 하나님이고 신이다. 돈만 있으면 유명 대학의 졸업증명서, 경력 증명서, 성형, 배우자, 결혼, 각종 인체 부위, 건강, 지위, 권력, 죄와 벌.. 과연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무엇인가?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 황금만능주의. 돈이 돈을 만들고 사람을 만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평등한 세상이 아니다. 정의가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다. 부(富)의 양극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벌어진다. 가난한 자가 부자의 반열에 들어가는 것은 결단코 불가능하다. 한국 강남의 그렇고 그런 40평형 아파트 한 채 가격이 40억원(4백만불)이다. 두 채만 있어도 80억원(8백만불)이다. 그렇다고 한국의 부자 반열에는 들어가지도 못한다. 미안한 비교일지 모르지만, 미국 교민들 집이 수백만불 된다면 우리 같은 서민은 상상도 못한다. 교민들 중 진짜 부자는 큰 사업체를 가진 자가 아니라 서울 강남에 똘똘한 아파트 한 두채 가지고 있는 자다. 비교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게 노력한다고 될 일인가? 그러면 우리 같은 서민은 루저인가?
<기회의 평등>이 주어지면 성공할 것 같은가? 평등한 기회는 허울 좋은 개살구다. 아이 한 명에 대한 출생부터 교육, 취미, 특기, 교우관계, 주거, 학교와 교사 선정, 상속재산, 등등.. 돈의 규모가 다른데 어떻게 <기회>가 공평할까? 인간의 종(種)이 다르고 사는 방법이 다른 것이다. 지금 세계 각국은 코로나19 팬데믹 2차, 3차 확산으로 가난한 민중들의 데모가 한창이다.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불평등>에 항거하여, <밥>을 위해서, 배가 고파서 투쟁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가난한 민중은 <성공>의 가치 기준을 <돈>이 아닌 <그 무엇>으로 바꾸어야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인용한다. “옳고 그름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이든 사고 팔 수 있는 <시장지상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시장과 도덕이 분리되는 상황에서 도덕의 상실은 모든 것을 상실한다. 시장은 <효율성>을 강조한다. 이전에는 경계를 가르는 기준이 도덕이라는 <양심의 잣대>였다.”
거래 만능시대는 <불평등과 부패>의 확산이다. 돈이 모든 차별의 근원이 된다. 불평등과 부패에 맞서는 방법은 <정당하고 용감>해 지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당하게 행동함으로써 정당해지고, 용감하게 행동함으로써 용감해진다” 라고 했다. 부당, 부정, 불의에 맞서는 뜨거운 용기가 필요하다. 이타주의, 관용, 결속, 시민정신은 사용할수록 고갈되는 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하면 할수록 발달하고 강해지는 근육과 같다. 공공의 삶을 회복하려면 좀더 부지런히 미덕을 행사하여야 한다.” 돈의 노예로 살지 않으려면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 그 가치의 발견이 이타적 삶의 추구이며, 우리 모두가 공공선(公共善)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갈 때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다.
진리란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분의 <사랑>이 그것이다. 사랑은 인간의 도덕적 가치이며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 나누면 나눌수록 커지고, 베풀면 베풀수록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부자들이 행복한가? 부자가 아니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 호화주택, 고층빌딩, 고급 승용차, 산해진미, 아름다운 여자들, 술, 마약, 매춘, 도박, 권력, 명성, 호화 여행, 등등.. 그러면 당신은 행복하겠는가? 어느 시대나 왕, 고관대작, 귀족, 기업체 총수 등등.. 과연 그들은 초가삼간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착한 자식들과 좋은 이웃을 가진 서민들보다 행복했다고 호언장담 할 수 있을까? 가난한 민중은 루저(loser)가 결코 아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그런 행복한 세상은 내가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11-27-2020)
11월4째주 목요일은 추수감사절이다. 미국 개신교 3대 명절인 부활절, 크리스마스와 함께 북미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추수감사절을 국경일로 정했다. 연휴인 금요일은 블랙 프라이데이 (Black Friday)로 미국 최대의 소비의 날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번 추수감사절은 많은 미국인들에게 가장 우울한 추수감사절이 될지도 모르겠다. 미국 코로나19 팬데믹 확진자가 1천2백2십만명, 사망자도 25만6천명을 넘어섰고, 하루 확진자도 매일같이 2십만명을 육박한다. 우리 지역도 이미 지난주부터 년말까지 Lock Down에 들어갔다. 장사가 안되는 곳은 더 안되니 폐점 고민은 더 깊어가고, 흑인 실업급여 등 특수 효과로 장사가 잘 되는 곳도 코로나 감염 우려로 걱정은 걱정이다. 실업급여로 겨우 생활하는 사람도 언제까지 실업급여를 받을지 걱정이다. 이리저리 서민들의 삶은 고달프기만 하다. 유럽 OECD 시민들 27%가 자살 충돌을 느낀 적이 있다고 한다. 모두가 힘든 시기다. 미국이 어쩌다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
우리집도 자식들 가족들이 추수 감사절이라 모두 오겠다고 하고 손녀들이 추수감사절을 학수고대하니 무사히 잘 지내고 가기를 소망할 뿐이다.
당신은 삶이 힘들고 지칠 때 무엇으로부터 위안을 받는가? 가족, 하나님, 교회, 친구, 반려동물, 음식, 운동, 음악, 여행, 영화, 드라마, 취미생활, 봉사 활동, 등등.. 무언가 다른 걸로부터 위로와 위안을 받으려 한다. 하지만 때로는 도저히 앞이 보이질 않는 절망과 좌절을 느낄 때도 있다. 나는 살아온 세월 동안 IMF 때 사업실패로 모든 재산을 몽땅 잃어버렸던 시기였을 것이다. 나는 모든걸 잃어버렸다고 자학하고 절망했다. 자살도 심각하게 고민했다.
절망은 더 큰 절망을 데리고 온다. 자포자기(自暴自棄)가 그 괴물이다. 신을 원망하고 시절을 원망한다. 매일매일 술이다. 술은 마약이다. 몸도 망가뜨리고 영혼도 파괴시킨다. 그러던 어느 날 비몽사몽 중에 아내와 어린 자식 세명이 흑백사진으로 눈에 어른 거른다. 흑백사진 속의 아내는 어린 자식들 손을 잡고, 낡은 무명 치마 저고리를 걸친 채 허허벌판에서 계속 울고 서있다. 그 사진 속 얼굴들이 내 잔상에 계속 어른거린다. 그래, 저들은 나를 남편으로, 아버지로 만난 인연 이외에 아무런 잘못도 없다. 그래, 죽더라도 저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 보고 나서 죽자.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도 내가 살아 있는 <존재의 이유>이자 <희망>이다. 언젠가 가족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 인디언 풍습처럼 담요 한장 들고 신이 가까운 곳으로 떠날 것이다. 이것은 무슨 공갈? 협박? 애원?
인간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누구나 꿈꾸고 희망한다. <희망>, 참으로 아름답고도 허망한 단어다. 인간을 포기하지 않게 하고 욕망하게 하고 괴롭힌다. “잘 될 것이다. 좋아질 것이다. 나아질 것이다. 기다리면 될 것이다.” 이런 희망으로 자신의 삶을 옥죄이고 바스러지도록 애를 쓰게 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수많은 인간들은 <희망>이라는 <신의 사탕>으로 삶을 이어간다. 심지어 희망이 없는 삶 속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꿈꾼다. 즉 <인간의 삶은 희망>인 것이다.
한인 최초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인 한동일 교수가 쓴 <라틴어 수업>에서 인용한다. 라틴어 명구 중에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Dum vita est, spes est)>, <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 (Dum spiro, spero)>. 즉 살아 있는 사람만이 희망을 말 할 수 있고, 살아 있어야 다른 것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모든 희망과 꿈은 삶이 전제되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그 죽음이 모든걸 끝내지는 않는다. 내가 그동안 살면서 꿈꾸어 왔던, 그래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만들어 놓은 <그 무엇>은 내가 죽어도 후세에게 남겨진다는 것이다.
<인간의 시간>과 <신의 시간>은 다르다. 인간은 <영원>으로부터 와서 <유한>을 살다 <영원>으로 돌아가는 존재다. <영원>이 신의 시간이라면, <유한>은 인간의 시간이다. 당신이 지금 여기서 겪는 고통의 시간은 신의 시간에서 보면 한 점도 되지 않는 찰나일 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성실히 하고, 우리 앞에 놓인 시간이라는 공간을 채워 갈 뿐이다.
작가는 말한다. “제 희망은 삶이 죽음이라는 선택을 강요할 때, 죽지 않고 사는 것 입니다. 그게 저의 최고 희망입니다. 저에게 희망이란 이루고 싶은 무언가, 어떤 것에 대한 기대와 그것이 충족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그저 <희망> 그 자체로 저를 살게 하는 것이고 살아 있게 하는 것 입니다. 그것이 제가 죽음을 마주했을 때 얻은 깨달음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희망을 말해 보라고 한다면 ‘살아 있되, 바람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인간이 구분 지은 경계, 신의 뜻과는 무관한 인간의 욕망들, 불합리하고 불가해한 세상의 모든 것을 스쳐가는 바람처럼 살면 참 좋겠어요. 제가 인간인 한, 이 세상에 속해 있는 한,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꿈을 꿉니다. 그래서 <희망>이라고 하겠지만요.”
넷플릭스 드라마 <오자크(Ozark)> 중 대사다. “신은 내가 내일 죽는다는 걸 알고 있다. 내일 내가 죽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일, 해야만 할 일을 하는 사람과, 내일 죽으면 어떡하지 고민하며 불안해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당신의 <희망>을 포기하지 마라. 당신의 <희망>을 지금 행동하고, 그런 후에 신께 이루어지길 간구하라.
그대 그리고 나 (11-20-2020)
참 살기 어렵다. 서민들에게 삶이란 놈이 언제는 만만한 적이 있었던가?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나 <가난>이라는 놈은 민중들을 못살게 굴었다. 그들은 남들처럼 부귀영화를 원하지도, 입신양명(立身揚名) 출세를 원하지도 않았고, 부자로 살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육신이 부서져라 일해서 자식들과 먹고 살기만 해 달라고 소원했다. 그런데도 서민들은 <밥>아래 무릎을 꿇어야 하고, 가진 자들에게 비굴 해야만 했다. 서민들의 삶 자체가 <투쟁>이어야 했다.
끝나기는 커녕 더욱 확산되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 지역의 많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가게 문을 닫는다. 거의 무일푼으로 이민와서 어떻게 마련한 가게인데 문을 닫아야 하는 지역 한인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그대도 나도 우리 모두가 힘든 엄혹한 시기다. 어떡하든 견디어 내길 기도할 뿐이다.
11월13일은 <전태일 열사>의 서거 50주년이 되는 해였다. 1970년 11월13일, 22살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어 분신했다.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한국의 노동 운동은 전태일 열사 분신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정도다.
나는 나보다 여섯살 많은 그를 잘 알지 못한다. 살아온 세월이 다르니 이해하기 조차 벅차다. 그는 1948년 대구 출생으로 2남2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재단사인 아버지는 서울로 이사한 후 봉제공장을 운영하지만 4.19혁명 직후 사기를 당해 망했다. 전태일의 어린 시절은 밥을 굶는 날이 더 많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잦은 아버지의 폭행과 파출부로 일하는 어머니(이소선 여사, 훗날 노동자의 어머니로 존경받음), 세명의 어린 동생들.. 결국 그는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잡노동으로 전진하다가, 17세 무렵 무일푼으로 청계천 평화시장 피복공장에 <시다>로 취직하게 된다. 그 당시 <시다>라는 일은 재단사 보조로 15세 전후의 어린 여자아이들이 바로 서지도 못하는 1.2미터 높이의 다락방에서 하루 일당 50원(당시 다방 커피 한잔 값)을 받고 휴일도 없이 하루 15시간의 중노동에 혹사당한 것이다. 많은 여공들이 폐결핵에 걸려 피를 토해도 숨겨야 하는 노동 현장들을 목격한다.
그는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누이동생 같은 여공들을 위해 자신의 버스비로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집까지 걸어간 일화나, 평화시장에서 여공들에게 감자탕을 사주면서도 자신은 굶은 일화는 유명하다. 그가 우연히 <근로기준법>에 대해 알게 되고, 해설서를 구입하여 독학하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중퇴한 그가 법률 해설서를 이해하기가 결코 용이하지 않았을 것임은 쉬이 짐작할 것이다. 그는 <노동운동>에 눈을 뜨게 된다.
1969년 6월 평화시장 최초 노동운동 조직인 <바보회>를 창립하여 노동 부당성을 주장하나 해고되고 공사장 막노동을 하게 된다. 1970년 재단사로 재취업 되어 동료들과 <삼동친목회>를 조직하여 더욱더 강도 높은 노동운동을 전개하나,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다. 근로기준법은 유명무실한 법률에 지나지 않았으며, 노동청이나 근로감독관 모두가 외면하기 일쑤였다. 그 시기가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의 <3선개헌과 유신헌법>을 위한 폭정의 최정점을 향해 치닫던 시기였다. 그는 깊은 좌절과 비애를 느낀 나머지 누군가 죽어야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의 조그만 관심이라도 받을 수 있겠다고 결심한 끝에,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근로기준법 책자를 불태운 후, 자신의 몸도 불태워버린다. 마지막 유언이 어머니 이소선 여사에게 “내가 못 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이뤄주세요”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가 “배가 고프다” 였다. 결국 어머니는 남은 일생을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운동에 헌신한다. 여동생 전순옥 박사도 노동운동가로 활동, 2012년 민주통합당 19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남동생 전태남 씨도 노동운동가로 활동 중이다.
<전태일 열사 분신>은 전국 대학교의 <박정희 군사 독재정권 타도>, <유신철폐>로 이어지고, 훗날 <YH 사건>, <부마 민주 항쟁>, <인천 5.3 운동>, 19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지고, 그 이후 한국 노동운동의 기폭제가 된다. 1991년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 발간으로 인해 지식층과 노동계에 폭넓게 알려진다. 매년 11월13일은 <민중총궐기>집회, 민주노총의 <전국 노동자 대회>가 열리게 된다. 2020년 11월13일 문재인 대통령은 전태일 50주기를 기념하여 노동자 최초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50년 전, 아니 훨씬 더 먼 그 언제부터인가 누군가에 의해 시작된 민중들의 외로운 투쟁은 이어져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민중들의 삶은 별반 달라진 게 무엇인가? <빈곤과 굶주림>, <가난과 질병>, <차별과 짓밟힘>, <불공정과 불평등>.. 가난의 종말을 고하는 그날까지 민중의 투쟁은 반복되고 계속되어야 하며, 무너지면 또 쌓아야 한다. 지금도 어디엔가 어느 건물 옥상이나 굴뚝 위에서나, 크레인 위에서, 혹은 길거리에서 나홀로 투쟁하는 <소금꽃>이나 <눈물꽃>이 되어가는 저들에게 관심과 응원을 보내야 한다. 그대에게는 우리가 <함께> 있다는 걸 알려야 한다.
<그대 그리고 나>, 아내가 좋아하는 나의 애창곡 중 하나다. <그대> 그리고 <나>는 <우리>가 된다. 아무리 어려운 삶 속에 내팽개져 낙심하더라도,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만 있으면 살아 남을 수 있다. 하나님의 복(福)은 “Blessed are the poor”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다. 가난한 자, 부족한 자, 모자란 자, 어려운 자에게 주시는 게 그분의 복이다.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고 간구하면 차고 넘치게 주시리라..
작은 기쁨 (11-13-2020)
산다는 것이 어찌 보면 그날이 그날이다. 어제의 삶이 오늘 같고, 내일의 삶도 오늘 같을 것 같은 평범함이다. 삶이 늙어가는 것인가? 내가 늙어가는 것인가? 큰 희망도 설레임도 없으니 큰 기대도 없음인가? 목표가 없으니 목적도 없고, 그래서 두려움이나 불안감도 덜 한 것인가? 나 가진 것이 적어도 자족하니 감사하고 나의 기쁨이 작아도 작은 기쁨들이 이어지니 그것으로 족하다.
그래도 간밤에 깊은 잠을 자서 좋고, 오늘 하루를 눈 뜨니 밝은 세상과 아내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좋다. 함께 나누는 모닝 커피 냄새가 좋고, 빵 굽는 냄새가 좋다. 아내는 십 수년째 아침마다 야채 주스를 만들어 주니 정성이 대단하고 고맙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여러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지만, 아직은 우리 부부 모두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있어서 감사하다. 아침에 아내를 가게에 모셔 드리고 사무실로 출근하는 차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니 좋다.
내가 미국이 좋은 이유는 물 좋고 공기 좋고 어딜 가도 풍광이 좋고 어디나 걸을 수 있어서 좋다. 지연, 혈연이 별로 없으니 비교 안해서 좋고 비교 안 당해서 좋다. 운동할 장소가 많아서 좋고 산과 바다가 가까이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 요리할 식자재가 저렴하고 종류가 풍부하고 신선해서 좋다.
나는 미국에 이민 와서는 손님들과 식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나 홀로 점심 시간은 거의 한시간이 소요된다. 나의 점심 메뉴는 언제부터인가 <야채 샐러드> 오직 한가지다. 말이 한 가지지, 종류가 하도 많아 한번 세어 보았다. 고구마, 바나나, 각종 혼합 야채, 버섯, 당근, 브로콜리, 퀄리 플라워, 새우, 아보카드, 스윗 어니언, 아스파라가스, 레드 페퍼, 레러쉬, 홍당무, 아몬드, 호두 등등.. 기억조차 할 수 없는 많고도 많은 풀 쪼가리(?)들, 그리고 사과, 감, 오렌지, 방울 토마토, 포도, 망고, 파인애플 등등, 아내의 욕심이다. 주는 대로 먹는다. 매주 토요일은 아내와 함께 여러 장을 보는데, 야채 과일 값만 $40불에서 $50불어치 구매한다. 나는 본시 육식 동물이라 풀 쪼가리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풀만 먹어도 배가 부르는 채식 동물은 상상도 못했는데, 남자는 여자가 길들이기 나름이라는 것을 다 늙어서 알게 되었다.
점심 먹고 잠시 일하다 보면 퇴근 시간이다. 코로나로 인해 출퇴근이 한 시간씩 줄어들어 그 또한 좋다. 퇴근 길에 아내 가게에 들려 아내를 픽업한다. 늘상 빠지지 않는 나의 화두는 <오늘 저녁에 뭐 해 먹을까?>이다. 우리 집에는 세 부류의 인간이 사는데, 육식 동물인 나와, 채식주의자인 아내와, 잡식 동물인 막내 아들놈이다. 세명 모두 각자의 음식 요리에는 일가견(?)이 있다. 음식점에서 만드는 요리 보다는 더 맛있다고 자부한다. 왜냐하면 최고의 재료들을 아낌없이 쓰기 때문이다. 특히 막내 아들놈은 각종 빵, 케익, 비스켓, 스파게티 등 각종 서양요리를 만드는데, 적어도(?) 요리만큼은 실망시키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미국 국경일 음식은 막내 아들 혼자서 모두 만든다. 작년 추수감사절에도 12가지 음식을 이틀 동안 혼자서 모두 만들었다.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리라 소망한다.
우리 부부가 만들어 먹는 한국요리를 이번 기회에 정리해 보자. 음식은 같은 명칭을 쓰더라도 요리 절차와 재료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눌 수 있고, 맛의 품격도 달라짐을 전제한다. 나는 요리하는 것 또한 내 삶의 <작은 기쁨>이다.
<김치>: 배추김치, 열무김치, 깍두기, 총각김치, 백김치, 오이소박이, 나박김치, 얼카리 김치
<탕>: 육개장, 닭개장, 닭도리탕, 감자탕, 갈비탕, 추어탕, 함경도식 곰탕, 사골탕, 도가니탕, 대합탕, 조개탕, 생선 매운탕(흑도미, 생태, 홍도미, 아구, 메기 수제비, 조기), 삼계탕, 꽃게탕, 백숙, 알탕
<찌게>: 된장찌개, 청국장, 김치찌개, 순두부찌개, 버섯찌개, 동태찌개, 꽁치찌개, 비지장찌게
<조림>: 제주도 갈치조림, 고등어조림, 꽁치김치조림, 장조림,
<구이>: 고등어구이, 삼치구이, 조기구이, 갈치구이, 꽁치구이, 삼겹살, 바베큐(소고기 안심, 주물럭 등심, 닭똥집, 감자, 옥수수, 소시지, 핫도그)
<찜>: 소갈비찜, 돼지갈비찜, 아구찜, 홍어찜, 생선찜, 고추장 찜닭(함경도식), 소고기 가지찜(함경도식),
<전골>: 샤부샤부, 불고기전골, 춘천 닭갈비, 의정부 부대찌개, 해물전골
<무침>: 해파리 냉채, 게장 무침, 골뱅이 연어 무침, 각종 나물 무침, 청포묵, 도토리묵
<볶음>: 제육볶음. 닭볶음(매움, 간장), 두루치기, 양념치킨, 간장치킨, 수육, 편육, 족발, 불고기 낙지 볶음, 돼지고기 오징어 볶음,
<부침개>: 동래파전, 빈대떡, 부추전, 해물파전, 감자전, 녹두전
<튀김>: 닭날개 튀김, 해물 새우튀김, 야채 튀김, 탕수육, 생선튀김, 군만두, 찐만두
<국>: 소고기 무국, 미역국, 콩나물 무국, 선지 해장국, 북어국, 사골국, 떡국, 떡만두국, 시래기국, 아욱국, 오이냉국, 수제비, 김치국, 오뎅국
<국수>: 짜장면, 해물 짬뽕, 칼국수(명동 닭, 해물), 회국수(광어, 연어), 비빔국수, 잔치국수, 평양냉면, 함흥냉면, 콩국수, 잡채, 메밀국수, 라면(참치, 치즈, 해물, 소고기, 일본식 돼지 수육, 떡, 오뎅)
<밥> 김밥(캘리포니아, 꼬마, 충무), 소고기 콩나물밥, 잡곡밥, 쟈스민밥, 볶음밥, 각종 비빔밥
오늘 저녁 부부가 함께 요리하세요. 술과 함께.. 이 밤이 뜨거워집니다. ㅎㅎ
혼돈의 시대와 보편적 가치 (11-06-2020)
우리는 지금 혼돈(Chaos)의 시대에 살고 있다. 11월1일 기준 코로나19(Covid) 미국 상황은 하루 감염자가 10만명을 넘어섰다. 세계 수치와 비교하면 미국 누적확진자는 9백43만명, 사망자 23만6천명이고, 세계는 4천6백64만명(미국 비중 20%), 사망자 1백2십만명(미국 비중 19.6%), 사망률 2.6%(미국 2.5%)이다. 불과 두달 전, 7월27일 <미국의 민낯>이라는 칼럼을 쓸 때 미국 확진자는 4백3십만명, 사망자 15만명이었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 봄에는 하루 2만명의 사망자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불안과 혼돈의 시대, 미국에서 지금 살고 있다. 중국도 아니고 북한도 아니고, 일등 할 것이 없어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로 세계 일등을 하는가? 자국민의 생명조차 보호하지 못하는 미국이 무슨 최고의 민주 국가이고 복지국가이며, 위대한 아메리카인가? 미국은 국민들의 복지와 의료가 방치된 국가다. 코로나에 걸리거나, 아프고 돈이 없으면 죽어야 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11월3일은 미국 대선 투표일이다. 나도 미리 사전투표를 했지만,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미국은 엄청난 혼돈의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제2의 팬데믹, 폭동과 소요, 개표 불인정과 국론 분열, 부의 양극화와 인종 차별 등, 특히 서민들은 혹독한 겨울을 맞이 할 것이다. 렌트비를 못 내어 쫓겨나야 할 자영업자들이 주변에도 수두룩하다. 이민 와서 수십년을 피땀으로 일구어 낸 사업체가 한순간의 물거품이 되게 생겼다.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트럼프 같은 인간 말종을 경멸한다. 그런 부류의 인간들을 사는 동안 적지 않게 만났다. 공부를 잘했던 못했던 간에, 잘 살던 못살던 간에, 잘 났던 못 났던 간에, 자신의 이익과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출세와 성공을 위해서는 영혼까지도 파는, 후안무치 하고도 철면피인, 흔히 말하는 <보편적 가치>가 상실된 인간들 말이다. 미국의 가치를 상실하고, 미국민의 자부심과 품격을 떨어뜨리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거짓 정보로 혼란 속에 빠뜨리고, 동맹을 급박하고, 인종 차별하는, 그런 트럼프를 미 국민 40%이상이 지지한다는 사실 자체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물론 투표권은 각자의 권리이자 취향이 다르니 나의 사견임을 전제한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란 무엇인가? 이런 거대 담론을 짧은 지면에서 거론한다는 자체가 무리이지만, 적어도 인간이면 지켜야 할 기초적 윤리이자 양심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나 통용되는 공통된 가치나 기준을 말한다. 물론 시대와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보편적 가치 기준도 달라지지만, 현대 사회는 정치 체제는 <자유 민주주의>이고, 경제 체제는 <자본주의>가 대세다. 그런 이념적 가치보다는 인간의 <존엄, 자유, 평등, 인권존중> 등이 보편적 가치를 대표한다. 한국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헌법 10조에는 국민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정의한다.
<보편적 가치>는 모든 종교와 스승과 부모의 <인본적> 가르침이었다. 핵심가치인 <인권존중>은 예수의 <사랑>이라는 최고 가르침 이후, 로코와 루소 등, 계몽사상가들의 천부인권론(天賦人權論)과 사회계약설, 계몽사상으로 이어지고, <자유, 평등, 박애>정신의 프랑스 시민혁명(1789년)과 미국 독립선언(1776년)의 기초가 되며, 이후 바이마르 근대헌법(1919년), 유엔의 세계인권선언(1948년)으로 계승, 발전된다. <천부인권 사상>은 ‘모든 사람은 생명유지, 행복 추구, 평등, 신체의 자유, 신념에 근거한 의사 결정 및 행동의 권리를 타고 났으며, 이는 어떤 권력에 의해서도 침해되지 않을 인간의 기본 권리’ 라는 것이다. 계몽사상은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여 민주적 사상을 전파한다.
<보편적 가치>와 대비되는 것이 <상대적 가치>다. 어느 국가나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며, 민족주의가 선행되고, 자국 문화, 종교 이념 등 다양한 가치가 상충될 수 있다. 하지만 가치의 일반적 기준은 보편적 가치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상대적 가치를 수용하는 것이다. <자유>도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전제하에 개인의 자유를 추구할 수 있다. 코로나의 <마스크 착용>도 나로 인해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면 <마스크 미착용>을 개인의 자유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의 <사랑>이 그러하듯이, 민주주의의 <인권 존중>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전제되어야 한다. 내 종교가 귀하듯이 상대 종교도 귀하고, 내 민족과 문화가 소중 하듯이 상대 민족과 문화도 소중하다. 나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려면 상대의 자유와 평등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극단주의, 근본주의, 독재주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이 생기는 것이다. 자신이 강하고 상대가 약하다고 얕보니까 침략하고 약탈하고 살육하는 것이다. 이제 미국은 세계의 전쟁국가가 되어서는 안된다. 세계의 경찰국가가 되어서는 안된다. 세계의 깡패국가가 되어서는 안된다. 향후 인공지능 세계는 하나의 국가다. 미국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국가, <자유, 평등, 인권 존중>을 몸소 실천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국민을 계몽하고 <진선미(眞善美)> 사상을 교육하고 실천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과거를 사죄하고 반성하여 세계인들로부터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 지도자부터 바로 서야 한다. 자고로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 미국, 너나 잘 하세요..
가을 속 그리움 (10-30-2020)
바람이 분다. 가을 바람이 분다.
언젠가 나의 기억 속에 머물었던 낯익은 가을 바람이다.
바람 한줄기 마다 보고 싶은 얼굴들이 하나 둘 스쳐간다.
어린 시절 동무들, 학창시절 친구들, 사회에서 만난 벗들, 사랑했던 여인들,
이제는 이름조차 가물거리는 수많은 인연들이 저 바람결에 지나간다.
얼굴 마다 마다 가을의 풍경이 그려진다.
만날 기약조차 할 수 없기에 그래서 이 가을이면 미안하다.
나를 만나서 나로 인해 상처가 되었을 나를 사랑한 사람들에게
나는 용서를 구한다. 차라리 만나지나 말 것을.. 사랑 하지나 말 것을..
이제 다시 만난들 미안하다 라는 말 한마디일 뿐,
그 무엇 하나 해 줄 수 없음을 알기에
그래서 더욱 그리워한다.
눈물이 난다. 자꾸 눈물이 난다.
가을 가곡을 들으면서 혼자 운전을 하는 가을날이면
눈물이 난다. 그래서 소리내어 꺼억꺼억 운다.
가을이 오면 우리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 엄마.. 목이 터져라 부르고 싶다.
나는 엄마 살아 생전에 엄마라고 부르지 못했다.
나는 어머니라고 쓰고 어무이라고 불렀다.
엄마를 땅에 묻던 날, 목이 터져라 엄마라고 처음 불렀다.
가을은 엄마 향기가 많아서 그래서 좋다.
엄마가 즐겨 부르시던 가을 가곡들을 흥얼거린다.
엄마가 보고 싶다. 시도 때도 없이 보고 싶다.
그래서 가을은 노래가 된다.
나는 살아생전 아버지께 가까이 다가가지 못함이 늘 죄송하다.
모범생, 공부 잘하는 자식,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자식이 되려 할 뿐,
마음이 따뜻한 자식이 되지 못했다.
엄마 아버지 두분 모두 20대에 이북에서 홀로 피난 내려 오신 외로운 분들인데,
나는 두 분의 외로움을 따뜻하게 나누지 못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큰 산이고 큰 바다로, 나는 바라다 보기만 할 뿐,
그 산과 바다의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함이 두고두고 후회하게 한다.
길을 걷는다. 가을 길을 걷는다.
아내와 나는 매일같이 사시사철 길을 걷는다.
가을이 오면 언제나처럼 가을의 길을 걷는다.
가을 길에서 겸손함을 배운다.
후회도 아쉬움도 미련도 모두모두 내려놓는
저 낙엽들의 처연(悽然)함을 배운다.
발 아래 저려 밟히는 낙엽 하나에도 조심스러워 사뿐히 걷는다.
가을 햇살에 눈이 시리다.
그분이 부르시면 언제라도 홀연히 떠날 준비를 하자.
남겨진 나의 사람들에게 더 이상 슬픔을 남겨서는 안된다.
좋은 기억만을 갖도록 남은 시간을 소중히 살아야 한다.
주어진 오늘을 허투루 보내면 안된다.
사색하고 독서하고 사유하고 내 자신을 들여다 보자.
그분이 귀하게 주신 나의 본연을 하나씩 찾아가자.
사랑하자. 이 가을에는 더 많이 사랑하자.
내 남은 뼈 한 조각마저도 모두 주어 버리자.
나와 가장 많은 세월을 함께 한, 하나뿐인 나의 아내를 사랑하자.
나의 모든걸 태워버려 재로 만들자.
내가 떠난 후 티끌만큼의 미련도 없을 만큼 더욱 사랑하자.
두 사람도 아니고, 열 사람도 아니고, 예수처럼 전 인류도 아닌,
단 한사람 조차 사랑하지 못했다면,
그분 앞에 가서 사나이 대장부가 이보다 더 창피한 일은 없을 것이다.
아내와의 인연은 전생에 못 갚은 죄가 너무 많아 이생에서 만났으며.
이생에서 모두 갚지 못하면 또 내생에서 만난다고 했으니, 삼생의 업보로다.
내생에 다시 만난다면 아내도 못할 짓이고, 나도 못할 짓이다.
사랑으로 모두 불태워 재가 되어야 천국 가서도 못 찾을 것이다.
내가 죽으면 섬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지리산 정상에서,
내 육신의 재를 남김없이 뿌려달라 유언했다.
깊어간다. 가을 밤이 깊어간다.
가을에는 가을만의 기분 좋은 냄새가 있다.
영롱한 가을 달빛과 풀벌레 소리와 가을이 익어가는 냄새를 맡아보자.
가을은 낮은 자의 기도가 된다.
초로(初老)의 나이에 그분께 그 무엇을 바란다면
그건 기도가 아니라 아직도 철없는 과욕이다.
이 가을에는 감사만 하자. 나에게 주신 모든 것에 무조건 감사하자.
가난이든, 병약함이든, 어리석음이든, 그 무엇이든, 그럼에도,
감사의 기도만 하자. 향기로운 사람이 되자. 변함없는 사람이 되자.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자. 내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되자.
마음이 따뜻한 자가 되자.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
설령 그 길을 다 가지 못하더라도 애쓴 흔적이라도 남겨보자.
가을의 기도는 남은 생애의 애절함이어야 한다. 간절함이어야 한다.
가을에는 나의 기도를 하자. 나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재미 한국인의 정체성 (10-23-2020)
<나는 누구인가?> 평생토록 살면서 누구나 스스로에게 반복적으로 묻는 본질적 화두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의 뿌리와 가치기준은 무엇인가? 나의 정체성은 나의 과거이자 나의 현재가 되고, 나의 미래로 이어지는 실존적 가치다. 10회에 걸쳐 <미국 역사와 인종차별>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미국은 400여년 짧은 역사의 다민족 다문화의 이민국가이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공감하여야만 미국은 위대할 수 있다. 미국인 각 개체는 각자의 민족 뿌리가 있고, 조국이 있고, 민족 문화가 있고, 민족 언어가 있다.
반면에 미국은 철저한 <자국 우선주의> 국가다. 미국 국익에 위반되는 민족이나 국가가 있으면 언제라도 적국으로 간주하고 공격한다. 향후 가속화되는 <미-중 무역전쟁>은 이슬람 국가 출신들이 차별 받았듯이, 중국계 미국인들도 심각한 적대적 차별을 겪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에 사는 어느 민족도 차별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며, 미국인 상호간의 인종차별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다민족이 섞여 하나가 되는 <Melting Pot>이 아니라, 각 민족이 결코 섞일 수 없는 <Salad Bowl> 국가임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재미 미국인은 누구라도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조국>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반드시 <조국의 언어, 역사, 문화>를 알아야 한다. 미국 흑인(아프리카 아메리칸)들의 인종차별 근간은 그들이 노예로 끌려온 후, 되돌아 갈 그들의 조국을 잃어버린 점이다. 조국 아프리카의 언어와 문화와 역사를 잊어버린 것이다.
그러면 미국에 사는 <재미 한국인>, 특히 이민 2세와 3세들의 <정체성>은 어떻게 확립해야 하는가? 사전적 의미의 <정체성>은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라고 명기되어 있다. 논리적으로는 동일률을 근본 원칙으로 하며 모순을 배척하고 자기 동일을 원칙으로 한다. 즉 우리 이민자의 입장에서 보면 <한민족> <조국 대한민국> <한민족의 역사> <한국어> <한류 사상과 문화>의 의미와 필요성, 당위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나는 한국인인가, 미국인인가> <나는 향후 어떤 기준과 가치관으로 살아야 하는가> 등등 우리 청소년들이 그 본질을 이해해야 각자의 정체성을 갖고 흔들림없이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
재미한국인 이민 1세들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민 와서 무엇을 하였는가? 이민 와서 한 것이라곤 먹고 살기 위해 죽기살기로 일만 한 죄로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특히 주된 목표가 <자녀 교육>이었는데 만족 하시는가? 자녀들이 명문대학을 졸업하여 주류사회의 의젓한 일원이 되기만을 소망했다. 하지만 자식들의 <정체성>은 제대로 확립되었는가? 부모로서 자식으로부터 존경은 받는가? 아니 부자간에 사이는 좋은가? 그들은 한국인인가? 미국인인가? 한국어와 한국 역사와 한국 문화를 모르는 <바나나>로 만든 것은 아닌가? 이민 가정의 부모와 자식들 간에 겪는 갈등은 대부분 문화적 갈등이다.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제대로 훈육할 시간도 없었고, 무엇을 가르칠지도 무지했다. 그런 한인 교육기관도 없었다. 이민의 삶은 언제나 <밥>이 우선이었고, 경제적 <안정과 성공>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미국 이민사에는 국제결혼이 다반사다. 특히 이민 2세들의 재미 한국인 혼혈 비율은 25세 이상이 9%, 9세~25세가 26%, 8세 이하가 43%이다. 2세들이 3세를 갖게 되면 혼혈 비율은 점점 더 높아질 것이다. 혼혈 한국인도 이민1세와 같은 한국인이다.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 후손들의 <한국인 정체성>을 누가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2009년 봄부터 가을까지 <남부 뉴저지 통합 한국학교> 설립을 위해 기획 총괄 이사로 일한 적이 있다. 미 동부지역에서 유일하게 각 교회마다 흩어져 있던 한국학교를 하나로 통합하는 프로젝트였다. 13개 교회 목사님들과 성당 신부님들이 함께 모여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키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약 6개월간 한마음으로 일하였던 사명감과 자부심이 있다. 물론 지금도 잘 운영되고 있다. 설립목적은 한국인 청소년이면 누구나 양질의 한국어, 한국 역사 교육, 한국 문화 체험학습 등을 가르쳐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질의 교사 확보, 정당한 교사 보수 지급, 안정적 재정과 지원금 확보, 이사회의 역할과 지원, 한국학교 건물 선정, 양질의 교육 칼리큘럼과 교재의 지속적 개발, 대형교회의 기득권 양보, 정기 감사제도, 제반 행사.. 등등으로 기억된다.
<한국 통합학교> 설립이 어려운 점은 대부분의 이민 청소년과 유아들은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에 부속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영세 한인 교회들은 <양질의 교사, 정당한 보수, 양질의 교재, 안정적 재원> 확보가 어렵다. 그보다 대형교회 한국학교에 귀속되면 교회 소속의 부모 교인마저 빼앗긴다는 두려움이다. 그 당시 남부 뉴저지 지역 목회자님들은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이민2세들의 <한국인 정체성 교육>에 일심단결 하셨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당초 설립 목적과 비교할 때 아쉬운 점도 많다. 이민 1세와 이민 2세들이 함께 하는 행사도 많아져야 한다. 한인 사회 단체들도 젊어져야 한다. 허구한 날 노인들 끼리 모여, 이상한 모자 쓰고 성조기 들고 사진 찍는 단체가 아닌, 젊은 세대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단체가 되어야 한다. 이왕 만리 타향 머너먼 미국 땅에 와서 살다 갈 인생이라면 무언가 이민 후세들을 위해 흔적이라도 남기고 가셔야 하지 않겠는가?
미국 한국인 이민사 (10-16-2020)
400년에 불과한 미국 역사에 한국인 이민사는 타민족들의 인종차별과 항쟁의 역사와 비교할 때 극히 미흡하며, 이민 역사도 불과 1백17년에 불과하다. 명칭은 한국계 혈통을 가진 미국인(시민권자)인 <한국계 미국인(Korean American)>과, 한국 국적을 소지한 <재미교포 혹은 재미동포>로 분류되고, 통틀어 <재미한국인>이라 칭한다. 재미한국인 수는 2019년 기준 254만7천명(한국 외교부 통계)이며, 미국 인구의 0.6%에 해당한다. 그중 160만여명이 한국계 미국인이며, 그중 3분의 1이 미국 태생이고, 3분의 2가 한국에서 태어나 이주한 사람이다. <재미 한국인 이민사>를 간략히 살펴보자.
<제1기>: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갑신정변(1884년,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 개화사상을 바탕으로 한 급진개화파의 정변) 실패, 서재필(한인 최초 시민권자) 등 도미, -1893년 1월8일 한국인 한약상 몇 명이 하와이 도착, -1903년 1월13일(재미 한국인의 날 지정) 122명(87명 제물포 내리교회 개신교 출신) 한국인 <최초 이민>, 사탕수수 임시 계약 노동자로 하와이 도착, -1905년까지 7,291명 이민자 하와이 도착, 거의 대부분 남자 노동자들임. -1905년 을사조약으로 일본의 한국인 미국 이민 저지, -1904년~1907년: 1천명 한국인 건설 노동자 샌프란시스코 도착, -1924년까지 일명 <사진 결혼> (신랑 사진만 보고 결혼이주) 여성 1천명 개별 이민, -1909년: 한국인 최초 정치조직 <한인협회> 샌프란시스코에 설립, -1912년 안창호 선생 <대한인 국민회> 활동, -1913년 유길준의 <흥사단>을 안창호가 미국에서 계승, -1909년 박용만의 하와이 무장 독립군 양성 조직인 <한인소년병학교 설립>, -<재미한국인 독립운동사>는 추후 별도 게재함. -1945년까지 하와이 4천5백명, 미국 본토에 3천명 정도의 한국인들이 거주함.
<제2기>: 1945년~1965년 – 8.15 해방과 미군정 시대와 한국전쟁 전후 6만명의 미군이 상주하였으며, 미군과 <국제결혼>한 한국 여성들이 미국 이민의 주류를 이룸. 1950년~1964년 6천명 여성이 미군과 결혼, 2000년까지 10만명의 한국 여성이 미군과 결혼 이주함. 1950년대는 전체 한국 이민자의 36%, 1960년대는 전체 42%를 차지할 만큼, 한국 이민사의 중요 집단으로 형성됨. – 또한 한국정부는 수많은 전쟁고아들을 대상으로 <해외입양사업>을 시작했고, 그로 인해 <전쟁고아>들과 미군 <혼혈아>들이 <미국 입양>됨. -1970년대 이후는 미혼모의 아이들이 많이 입양됨. 1954년부터 2002년까지 해외로 입양된 아이는 15만명으로 추산, 그중 약 10만명이 미국 가정에 입양됨. -해방 후 1965년까지 약 6천명의 <한인 유학생>들이 미국 유학함.
<제3기>: <1965년~1992년> – 1965년 <미국 이민법 개정>으로 민족별 쿼터제가 폐지됨. 미국 최고 번성기로 <아메리칸 드림>의 본격화, 실질적 한인 이민의 시작인 동시에 한국 중산층 이민자가 급증함. <가족 초청>등 이민 문호 개방으로 1970년대 년간 3만명이 미국 이민을 오게 되며, 1985년~1987년에는 년간 3만5천명 이상으로 증가함으로써, 멕시코, 필리핀 다음의 3대 이민국이 됨. 1998년에는 13,691명으로 급감함. 1965년 이전의 한국계 미국인 수는 2만5천명, 1970년에는 5만명, 1980년에는 35만 7천명, 1990년에는 70만명까지 급속도로 증가함. – 1980년 제5공화국(전두환 정권)시 <해외유학 자유화 방침>에 따라 재미유학생 급증하여, 한때 10만명을 능가하기도 함. 1990년 후반에는 미국 속지주의 법을 이용하여 <원정출산>이 대유행을 함. 한해 5천명의 신생아들이 미국 원정출산으로 태어남.
<제4기>: 1992년~21세기 – 20세기보다는 미국 이민자 수가 감소추세이지만, 1997년 한국의 IMF 외환위기와 고용 위기로 한국의 다양한 계층(전문직, 중산층, 노동자 계층 등)들이 대거 미국 이민을 선택함. 2000년대에는 <조기유학> 열풍이 불어 <나홀로 유학>, <기러기 아빠>등 신조어를 낳기도 함. 매년 2만여명의 한국인들이 미국 영주권을 취득함. 그중 약 75%는 미국 체류기간 중 신분변경으로 영주권 취득함. 최근에는 60% 이상이 취업 이민이며, 연령층도 40대 이하의 청장년층과 가족들이 주류를 이룸. 이민1세 시민권 취득도 매년 1만5천~2만명으로 추산된다.
<재미 한국인 기여도>: 미주 한인들 대부분은 언어의 한계와 재산의 한계 등으로 흑인지역에서 맘엔팝 비즈니스를 운영하며 성실, 근면으로 열심히 생활함. 높은 교육열로 1.5세, 2세들의 자녀 교육에 혼신의 열정을 쏟은 결과, 대부분의 재미 한국인들은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미국 주류사회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반면에 이민 100년사를 되돌아보면 한국 현대사와 직결된다.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 일제 식민지 시절 독립운동, 한국전쟁으로 인한 노동자, 국제결혼 여성, 전쟁고아, 군사독재정권 시절과 IMF 외환위기 등의 생존형 이민, 경제개발에 따른 유학파 등.. 각자의 아메리카 드림을 위한 한국인들의 자위적 이민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유럽 백인, 흑인, 히스패닉, 중국인, 아시안 등이 겪은 <미국 인종차별>과 <교육 불평등>, <기회의 불공정>에 따른 빈부의 격차를 상대적으로 적게 겪었으며, 400년 미국 역사 후반기에 무임 승차한, 상대적 기여도가 낮다고 할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재미 한국인은 미국 사회에 혜택을 받은 만큼 되돌려 주어야 한다. 미국의 각 개체들로써 미국 발전과 투쟁에 기여하여야만 한다. 인종차별을 하면 안된다. 미국의 가난한 자들을 외면하면 안된다. 다른 민족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내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해야 한다. 백인 우월주의와 기득권에 맞서 싸워야 한다. 밥값은 해야 한다. 미국은 과연 언제 다민족 국가로서 <인종, 교육, 경제, 문화, 기회>의 차별과 불평등에서 벗어나 세계 일류 국가가 될 수 있을까?
미국 아시안 인종차별 (10-09-2020)
미국은 불과 400년 역사의, 가난한 이민자의 나라다. 미국인들은 너도나도 모두가 이민자들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차별하고 차별 받는다. 지금까지 8회에 걸쳐 가난한 미국 백인(WASP)들이 어떤 방법으로 미국 원주인인 인디언들의 땅을 빼앗고, <인종말살> 시켰는지,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다가 저소득층 하류 노동자층으로 전락시키고, 흑인들 스스로 그들의 인권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투쟁과 분노로 살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러면 미국 백인들은 유색인종 아시안에게는 인종차별 없이 관대했을까?
미국 이민자 출발은 영국 청교도 출신들로 시작하여, 1870년 이전까지는 영국, 아일랜드, 독일 등 북서부 유럽 출신의 가난한 저소득층, 계약직 노동자, 유배된 죄수들로 전체 이민자의 75%를 구성하였다. 이를 구(舊)이민자로 칭한다. 1880년대를 기점으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그리스, 러시아 등 유럽 남동부 저소득층 백인 이민자들이 대거 급증한다. 이들 신(新)이민자 비중이 51%, 1890년대 한해 이민자 수가 100만명 이상 증가하며, 1900년대는 70%를 넘어섰다. 1907년에는 한해 동안 무려 1백3십만명의 유럽인들이 이민을 와 1910년에는 이민자 수가 1천3백만명을 넘어서게 된다. 결국 1924년에 개정 이민법을 통과시켜서 동유럽, 유대인, 이탈리안, 슬라브 민족의 이민 수를 제한하게 된다.
미국은 독립전쟁 이후 동부에서 서부로 영토 확장과 함께 많은 이민자들을 필요로 한다. 1821년 멕시코 정부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여, 멕시코 영토였던 텍사스에도 미국 백인들 거주를 허락했다. 1836년에는 텍사스의 미국 거주민이 2만5천명으로 텍사스 인구의 84%를 차지함으로써, 무력으로 텍사스 독립공화국을 선포하고, 1846년 <멕시코 전쟁>을 치룬다. 1848년 미국 승리로 과달루페이달고 조약 체결, 텍사스,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애리조나, 뉴멕시코, 콜로라도의 광활한 영토를 푼돈 1500만 달러로 명목상 지불하고 강탈한다. 멕시코로서는 천추의 역사적 굴욕이다. 미국은 타민족 이민자의 증가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몸소 체득한다.
1845년 아일랜드에 가뭄으로 감자 기근이 발생하여 연평균 25만명의 아일랜드 사람들이 미국 동부로 이민을 온다. 수많은 카톨릭교인 아일랜드인들은 이민 도중 배 안에서, 미국 도착 후 WASP 백인들의 무차별 폭력으로 사망한다. 보스턴에 가면 아일랜드인들의 눈물 어린 이민 기념비가 서 있다.
1850년대 미국 서부에는 일자리를 찾아 입국하는 저임금의 중국인들이 급증한다. 이들을 쿨리(Coolie, 苦力)이라 하칭(下稱)한다. 중국은 1차 아편전쟁(1840년~1842년), 2차 아편전쟁(1856~1860년)으로 영국의 동인도회사에 패배한 이후, 세계 각지에 저임금 노동자들을 내보낸다. 특히 노예제도 폐지 이후 유럽 식민지 국가와 미국은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미국 서부 금광개발 사업 이후, 미국 <첫 대륙횡단철도>는 캘리포니아주와 네브래스카주를 잇는 2826Km구간이며, 6년간의 공사를 거쳐 1869년에 완공된다. 그후 미국 <미대륙 횡단열차>는 동서부를 연결하여 미국 산업 발전과 도시 형성에 크게 기여하지만, 많은 중국 노동자들의 희생과 죽음을 강제한다. 뿐만 아니라 중서부 지역 인디언 땅들을 무상 몰수함으로써 수많은 인디언들을 학살하게 된다. 이때 투입된 중국인 노동자(쿨리)는 한해 1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링컨 터널 공사, 후버 댐 공사 등, 미국의 대형 토목 공사에는 수많은 중국인 쿨리들이 착취당하고 죽는다. 살기 위해 그렇게 모여 산 곳이 <차이나타운>이다.
중국인 노동자들은 <노동자 노예 신분>이라 생각하면 된다. 유색인종은 모두 마찬가지 신세다. 하지만 미국 백인들은 중국인들이 백인 노동시장과 흑인 노예 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로 경멸과 증오의 대상으로 경계한다. 결국 중국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은 1882년 <중국인 이민 금지법>으로 제정된다. 중국인은 미국 시민권자가 될 수 없었다. 불법 체류자 신분인 것이다. 1924년 국적별로 이민자수를 제한하는 <이민 할당법>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런 차별이 계속되다가 2차세계대전으로 일본과 태평양전쟁을 치루게 된다. 당연히 미국은 중국정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니 1943년 중국인 이민차별법을 일부 해제한다. 최종적으로 미국은 1965년 <이민 차별 금지법>과 <이민귀화법>, <민권법> 발효 이후, 아시안 들에게도 이민 문호가 개방되었고 이민 차별 정책은 없어졌지만, 실질상 <백인우월주의>는 미국 곳곳에 뿌리 박혀 있다.
<아메리카 드림>은 무엇인가? “자유 평등 정의의 나라 미국에서 힘든 일을 열심히 하면 누구든지 종교, 피부색, 인종, 문화, 언어 차별을 받지 않고, 자신의 재산과 자유가 넉넉한 향상된 삶을 살 수 있다”라는 미국 이민자들의 믿음이자 소망이 있었기에 부강할 수 있었다. 과연 <아메리카 드림>은 아직도 유효한가? 미국은 차별 없는 평등한 자유국가인가? <백인우월주의>는 무지와 욕망에 기인한 <백인열등주의>일 뿐이다.
세계인구는 77억명, 중국 인구는 14억3천(1위), 인도 13억6천(2위), 인도네시아 2억7천(4위), 파키스탄 2억2천(5위), 방글라데시 1억6천(8위)다. 신자본주의 정책(대량 생산, 대량 소비)으로 부국이 된 미국이다. 세계 인구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소비 시장과 세계 대규모 생산공장들을 갖고 있는 신흥개발 지역 아시안들을 무시하고 히스패닉 인종들을 무시하는 인종차별 국가 미국은 저물어가는 석양일 뿐이다. 코로나 이후 세계는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입증한다. 미국은 아직도 인종차별과 종교와 이념적 차별 논쟁이라는 구석기 유물로 세계의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미국 흑인들의 분노 (10-02-2020)
1964년 발효된 미국 민권법은 인종, 민족, 출신국가, 종교, 여성을 차별하는 일체의 차별을 불법화 시킨 기념비적 법안이다. 하지만 21세기를 살고 있는 유색인종들은 전적으로 차별이 없는 <평등한 미국>이라 인정할 수 있을까? 유엔 인종차별 철폐 위원회(CERD)는 2020년6월15일 “체계적이고도 구조적인 차별들이 미국 기관들에 번져 있어 흑인들에 대한 인종적 차별을 조장하고 있으며, 즉각적인 개혁을 단행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 흑인의 역사는 미국 백인(WASP)의 역사, 더 나아가 미국 건국 역사와 같이 한다. 다만 흑인 노예 신분에서 미국 빈민층(경제적 노예)으로 전락한 것뿐이다. 이곳 한인들 맘엔팝 비즈니스는 대부분 흑인들 대상으로 먹고 산다. 그러면서도 <깜둥이>라 하대하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필라델피아 흑인 빈민가에서 17년 동안 목회하고 계시는 이태후 목사의 기고문에서 인용한다.
“미국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강해진 나라가 아니다. 네이티브 아메리칸과 아프리카 노예들의 피와 땀으로 부강해진 나라다. 내가 사는 빈민가 이웃들은 구조적이며 제도적인 차별에 희생을 당한다. 가난하기에 모든 물건에 가장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한다. 슈퍼마켓에서 3불하는 물 한 케이스가 빈민가에서는 12불까지 한다. 그래서 ‘It’s expensive to be poor’(가난하면 돈이 많이 들어)라는 표현도 있다.
빈민가에는 은행이 없다. 대신에 체크를 현금으로 바꾸어주는 <Check Cashing>이라는 업소가 있다. 은행은 계좌 잔고가 $500이상 유지하면 수수료를 면제해 주지만, 대부분의 빈민가 흑인은 그만한 돈이 없다. 개인 체크를 현금으로 바꾸는데 수수료가 10~20% 고리 이자다. 갑자기 돈이 필요하면 <Pay Day Loan>이라는 사채업체를 이용하는데, 100불을 2주동안 빌릴 경우, 수수료가 20~30불이다. 급전 $200불을 빌릴 경우, 이자와 수수료를 포함하면 $1,000불 이상 지불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대부분의 빈민가 흑인들이 사는 거처는 열악하기 그지없지만,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또 다른 사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3명중 1명은 감옥에 간다. 백인은 17명중 1명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은 전체 인구의 6.5%이지만, 수감자의 40%를 차지한다. 미국 형법에 따르면 1년 이상 선고받으면 중형(felony charge)으로 처리되는데, 평생 기록이 남으며, 중형 전과자는 취직이 안되고, 투표할 권리를 박탈당한다. 주택 보조와 푸드 스템프 등, 미국 모든 사회복지 혜택에서도 제외된다.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감자로 만드는 죄목 중 하나가 <마약 소지죄>다. 마약 소지죄로 최소 형량 5년을 선고받으려면 크랙(가난한 유색인종이 주 소비자임)은 5g 인 반면, 코카인(부유한 백인이 주 소비자)은 500g 이다. 마약은 많은 흑인들을 중범죄자로 만든다”
이러한 인종차별 사례는 부지기수다. 흑인이기에 빈민가에서 살 수 밖에 없고, 빈민가의 가정 환경이 열악하니 교육 환경이 열악하고, 제대로 된 인성교육이 안되니 상급학교로 진출할 수 없고, 미국대학 등록금이 세계적으로 비싸니 신분상승 할 엄두도 못내고, 가난은 되물림 되니 범죄에 취약하고, 한번의 실수가 평생을 인생의 전과자로 만드니, 흑인 사회는 <빈곤의 악순환>이다. 이것은 미국 벡인 주류 사회의 의도된 <인종차별> 정책이다. <Separate, But Equal>가 아니라, <Separate, and Not Equal>이다.
미국의 인종차별은 비단 흑인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왜 유독 흑인들은 분노하는 것인가? 매년 2월은 <흑인 역사의 달>로 제정되어 기념한다. 버럭 오바마 대통령을 위시하여 미국 상,하원에는 50여명의 흑인 의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사회 각 계층의 흑인 지도자들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흑인들은 미국 다인종사회에 분노한다. 흑인들은 미국 역사 400년과 함께 하는 동안 노예로서, 극빈민층으로서, 노동자로서 백인들로부터 학대받고 수많은 죽임을 당하고, 차별 받으면서도, 흑인들의 인권을 찾으려 부단히 싸워왔다. 미국 헌법으로 평등을 보장받은 것은 불과 50년도 되지 않는다. 미국 이민사의 기득권으로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기득권에 대한 <차별의식>과 <소외의식>과 <열등의식>이다.
하지만 흑인은 백인과의 인종차별 갈등만이 아니다. 미국 태생의 흑인들은 20세게 이후 이민 온 교육받은 아프리카 흑인들과 기득권으로 갈등한다. 20세기 이후 아프리카 흑인 이민자들은 흑인 노예 출신이 아니라는 자부심이 있다.
또한 자신들의 근로자 일자리를 대부분 빼앗아 간 히스패닉과도 갈등하고 분노한다. 흑인은 미국 인구의 13%를 유지하지만, 히스패닉은 현재 20%를 차지하며, 점점 30%대로 증가한다. 히스패닉은 그들만의 스페인어를 사용하며, 그들만의 공동체 보호를 받는다. 흑인들은 히스패닉에게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피해의식>이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백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동북 아시안에 대해서도 분노한다. 중국, 한국, 일본, 인도 등은 대부분의 고학력과 백인 수준의 고소득자들이다. 또한 대부분의 흑인 지역에 비즈니스 오너들이기도 한다. 동북 아시안들의 이민 역사는 1960년대 이후부터 붐을 이룬다. 영어도 못하는, 눈이 찢어진(칭챙총 이라 놀림), 체구도 왜소한 동양인들이 400년 미국 역사에 기여한 공로도 전혀 없는 그들이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종차별 폭동이 일어나면 아시안 특히 한국인 상가들이 약탈당하는 이유이기도 한다. 1992년 <LA 폭동>, 2014년 <퍼거슨 소요>,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등, 폭동만 일어나면 미국 공권력 조차도 외면하는 아시안들이 흑인 분노의 대상이다. 미국은 언제 진정한 <자유와 평등>의 국가가 될까?
미국 흑인 인종차별 역사 (09-25-2020)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 1863년 1월1일 선언. 남북전쟁(1861년~1865년)- 노예제 폐지, 미국 수정헌법 13조를 발효시킴. 20만명 이상의 아프리카 미국인들이 북부군에 종군, 4만명 이상의 흑인들이 사망함. 링컨의 정치적 의도는 남부 노예 해방을 주장하여 남부 경제를 붕괴시키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함.
<미국 인종차별 법: 1790년 귀화법>: ‘자유로운 백인’에게만 시민권 보장. 다른 모든 인종(흑인, 중국인, 인디언 등 모든 유색인종)은 시민권에서 제외. 백인은 오직 영국 신교도 혈통(WASF)만 해당, 19세기까지 카톨릭 신자들, 서부, 동부 유럽인, 아일랜드인 이민을 받지 않음. 1920년대까지 유대인은 미국 대학에 들어가지 못함.
<노예제도 관련 미국 수정헌법>: <수정헌법 13조 1항 (1865년 비준)> -노예제 폐지 “노예제도 또는 강제 노역 제도는 당사자가 정당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아니면 미국 또는 그 관할에 속하는 어느 장소에서도 존재할 수 없다.” <수정헌법 14조 1항(1868년 비준)>-“미합중국에서 태어났거나 미국에 귀화한 자들은 모두 미국과 자신이 거주한 주의 주민이다.” (이민자 법에 의한 동일한 보호, 시민 신분과 시민권 보장), <수정헌법 15조 1항(1870년 비준)>- 미국 흑인 투표권 보장.
<짐 크로법, (1876년~1965년까지 시행)>: – 노예해방 이후에도 흑인들을 동등한 시민으로 대하지 않음. -<1875년 시민권법(Civil Rights Acts of 1875) 짐 크로법>: 모든 공공시설에서 흑인에게도 동등한 권리가 제공되어야 함.
<1896년 플래시 대 퍼거슨 대법원 판결>: <“분리하되 평등하다(Separate But Equal)”>, 현대 미국 인종차별의 근간이 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고정 이념임. –백인과 흑인의 동등한 기회 균등을 인정하지만, 백인과 흑인은 분리되어서 그 기회를 제공받아야 함. 이로서 대중교통, 학교, 병원, 교회 등, 모든 공공 시설에서 백인과 흑인의 공간이 분리됨. 흑인은 노예에서 해방되었지만,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주택, 무자본, 무교육>으로 사회 저소득층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원인이 됨.
<피 한방울의 원칙(One-Drop Rule)>: 1910년 테네시 루이지애나 주에서 ‘흑인의 피가 한방울이라도 섞이면 흑인으로 분류’하는 주법을 도입함. 이어서 텍사스, 알칸소,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앨라배마(KKK 본부 및 활동 중심지), 조지아 주도 채택함. 플로리다, 인디애나, 켄터키는 흑인의 피가 1/16, 혹은 1/32가 섞여 있으면 흑인으로 간주한다는 법률 채택. 이 법은 1967년(불과 43년전) 인종간 결혼을 금지한 버지니아 주법을 위헌이라 판결한 연방 대법원의 판결로 종결됨. 결과적으로 흑백 혼혈인들은 자신을 스스로 흑인으로 규정하여 흑인 세력이 확산됨. 또한 남부 혼혈인들은 북부로 대거 이주, 남부지역 경제가 낙후되는 계가가 됨.
<KKK, Ku Klux Klan, 백인우월주의 단체 등장>: 1865~1866년 5천명의 남부 흑인들 대상으로 살해와 테러 자행, 1920년대는 백인 순혈주의에 따라, 흑인 뿐만 아니라 카톨릭, 유대인, 외국이민집단 등에도 수많은 폭력과 테러 자행. 미국 공권력이 배제되고 묵인함. 마을 축제처럼 총살, 화형, 교수형 후 흑인들 사체 조각들을 전리품으로 소장, 현재도 활동 중.
<1차 세계대전과 북부로의 흑인 대이동>: 1910년~1930년 동안 약 1백만명 이상의 남부 흑인들이 북부로 이동, 1차 세계대전 동안 3십6만명의 흑인들이 미군에서 복무, 수십만명 흑인들이 군수 공장에 일함. 하지만 대부분의 흑인들은 교육 부족과 기술력 부족으로 빈민가에 거주(게토, 할렘이라 부름). 빈곤, 범죄, 절망의 상징이 됨.
<2차 세계대전>: 남부 흑인 1백만명이 북부로 이주, 루스벨트 대통령 인종차별 금지 명령, 1백만명 이상의 흑인이 전쟁에 참가, 하지만 백인과 분리된 부대에서 근무, 1948년 군대내 인종차별 폐지, 흑인을 전투부대 배치.
<로자 파크스 인권운동>: 1955년 12월1일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백인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버스 운전기사의 지시를 거부, 경찰 체포, 382일 동안 버스 보이콧 및 인종차별에 반대 시위, 1957년 마틴 루터 킹 목사 주도로 흑인 인권운동 시작됨.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1929~1968년4월4일)>: 침례교 목사, 부유한 집안 출신, 보스턴대학 신학박사. 흑인 인권운동가, 민주사회주의자. 1960년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간디 비폭력주의 지향, 학생 비폭력위원회 결성, 백화점, 슈퍼마켓, 도서관, 극장 등에서 인종차별제도 폐지. 1963년 8월 워싱턴에서 20만명 흑인 대규모 집회 및 행진, 흑인 인권운동 통합적 주도, 1964년 노벨 평화상, 베트남전쟁 반대운동, 공민권법, 투표권법 개정 및 흑인 권리 증진, 맬컴 엑스의 폭력주의 노선 반대, 1968년4월 백인 우월주의자에 의해 암살. 유명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미국에는 그의 꿈이 실현되지 않음.
<맬컴 엑스(1925~1965년2월21일)>: 흑인 침례교 평신도 설교자 아버지와 흑백 혼혈 어머니 사이에 출생, 아버지는 백인우월주의자에 의해 살해당하고, 13세때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 불우한 성장과정, 흑인 부당 대우에 병역거부, 1946년 불법침입으로 징역형,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 가입, 제 2인자로 불림. 흑인 우월주의, 흑인 국가 건설 주장, 1964년 블랙 모즐렘(Black Moslem) 지도자 일라이저 무하마드와 불화, 탈퇴함. 흑인 민족주의자, 흑인 인권 운동가, 범아프리카주의자, 이슬람 지지자, 사회주의자로 활동, 1965년 2월21일 블랙 모즐렘 소속 3명으로부터 암살됨.
미국 흑인 노예 역사 (09-18-2020)
오늘도 흑인 인종차별 반대 시위는 계속 되고 있다. 미국의 인종차별은 과연 흑인에게만 국한된 것일까? 미국의 모든 유색인종인 흑인(아프리카 미국인), 히스패닉(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계 미국 이주민), 동북 아시안(중국, 일본, 한국), 동남 아시안, 무슬림 중동인, 인도, 아랍인, 유대인, 심지어 WASP 백인(앵글로색슨계 백인 신교도 약칭, 미국 전체 인구의 약 30%가 해당)을 제외한 기타 백인들도 모두가 인종차별의 대상이 된다. 그중 대표적인 미국 인종 차별 역사와 흑인 인권운동사에 대해 몇 회에 걸쳐 간략히 살펴보자. 한국인들은 뻑 하면 흑인을 <깜둥이>라 비하하고 하대한다. 무슨 무지에서 오는 열등의식인가? 한인들은 미국 주류사회에서 차별 받지 않고 존중 받는다고 생각하는가? 백인 우월주의자이자 인종차별론자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얼마전 “한국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허락(allow)을 받아야 한다”는 망발을 듣고서도 일언반구(一言半句) 조차 못하면서 말이다. 한국은 진정 미국의 속국인가?
미국은 1991년 이후에야 비로소 다문화주의 정책을 수용하고, 매년 10만명의 난민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 인종별 구성>은 <2019년> 총 332백만명 기준, 백인이 199백명(60%), 흑인이 44백만명(13%), 히스패닉 63백만명(19%), 아시안 19백만명(6%)이다. 하지만 <2040년> 총379백만명 기준, 백인은 194백만(51%), 흑인 14%, 히스패닉 25%, 아시안 7%이며, <2060년> 420백만명 기준, 백인 43%, 흑인 15%, 히스패닉 31%, 아시안 9%로 주류 백인의 분포는 급격히 줄어든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위기의식이다.
<미국 흑인의 문화적 배경>: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조상은 대부분 서수단(서아프리카) 지역 출신들이다. 기원후 300년~1591년까지 아프리카에 3개 제국이 있었는데, 가나 제국(AC 300~1000년대), 말리 제국(1235년~, 이슬람교), 송하이 제국(1493~1528년, 이슬람교)임. 모로코 침략(1591년)으로 아프리카 제국 몰락.
<아프리카 노예무역>: 1500년대 초반 포르투갈이 브라질에 식민지를, 스페인이 서인도 제도에 식민지를 세우고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아프리카 노예를 매매함. 1600년대 영국,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가 아메리카 식민지를 만들고 아프리카노예들을 이주시킴. 노예무역은 두가지 삼각형 항로로 이루어짐. 첫번째는 유럽 상선들이 제조품을 아프리카 서해안으로 싣고 가서 노예들과 교환, 노예들을 배에 싣고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 식민지, 서인도제도에 팔고 설탕, 커피, 담배를 사서 유럽으로 돌아감. 두번째 항로는 미국 뉴잉글랜드 상선들이 럼주 등 상품들을 싣고 아프리카로 가서 노예들과 교환하여 서인도 제도로 와서 노예들과 설탕과 당밀 등으로 교환, 뉴잉글랜드 노예상인들에게 매각함. 노예선에 강제 상선한 노예들은 긴 항해와 열악한 환경에 항해 도중 수없이 사망함.
<미국 식민지 시절 흑인 노예 제도>: – 1619년: 최초 흑인 노예 20명이 버지니아 식민지 제임스타운에서 매매. 초기 흑인 노예는 <무임금 노동자 계약 관계>였음. 4년~7년 무임금 노동을 하면 자유 신분이 가능함. 백인도 임금 계약 노동자로 일함. 1650년대 <노예 법전>이라는 법률 제정. – 무기 소유 금지, 교육 금지, 이주 금지 등. 1750년대부터 흑인 노예들 20만명, 1770년대 <자유 흑인>은 4만명으로 급증, 대부분의 노예들은 남부의 쌀, 담배, 사탕수수, 목화 농장에서 일함. 자유 흑인들은 영국의 통치 반대. 남부 지역 식민지 지주들은 <종신 노예제>, <세습 노예제>로 전환. 1800년대 초반에 남부에는 70만명의 흑인 노예가 살았으며, 사우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메릴랜드에는 노예들이 인구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노예 통제 시스템> 남부지역의 대규모 흑인 노예가 필요하게 되자 첫째, 흑인 노예를 아프리카에서 직수입함. 그들은 영어 소통이 안되므로 조직화가 어려움. 또한 언어와 문화가 다른 부족 흑인들을 섞어 소통치 못하게 함. 둘째, 남부 농장은 대규모라 노예들끼리 왕래가 어려움, 셋째, 백인들의 강력한 군사력과 엄격한 통제 시스템으로 노예 반란을 최대한 억제함.
<미국 독립전쟁(1775~1783)>: 북부 자유 흑인과 노예 5천명은 식민지 군에 복무하고, 남부 흑인노예들은 영국에 호의를 가짐. 1790년 인구조사에서는 북부에 2만7천명을 포함하여 약 5만9천명의 자유 흑인이 살고 있었음. 독립전쟁 후 북부 식민지 대부분은 노예제도 폐지 검토. 몇 개 주들은 자유 흑인들에게 투표권도 줌.
<노예해방 선언>- 1775년11월7일 영국 총독 던 모아가 노예해방 선언, 하지만 이 선언은 지주들 반란을 무마하고 노예 노동력을 약화시켜 독립을 저지하기 위한 수단 이었음. 실현되지 못함.
<미국 독립 선언서>- 1776년7월4일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태어났다.” 하지만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미국 헌법 기초자 토마스 제퍼슨 조차 노예제도 폐지를 반대함.
<아메리카 식민지 주의 회사> 설립: 1816년 자유 흑인들이 급격히 증가하자 두려움을 느낀 노예 지지자 백인들이 회사를 설립, 아프리카 서부지역에 <라이베리아> 미국 흑인 식민지를 설립, 첫 아프리카 자치정부 공화국을 만들고 1만2천명의 자유 흑인들을 송출했다. 그래도 1860년대 미국에는 49만명의 자유 흑인이 존재했다.
<반노예주의 운동> 1820년 미주리 협정을 계기로 북부는 노예제도 패지 12개주, 남부는 노예제도 찬성 12개주로 나뉜다. 1848년 <멕시코 전쟁> 이후,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외 4개주가 연방에 포함되지만, 노예제도 찬반 투쟁은 남북부로 나뉘어 점점 더 가열되어 남북전쟁으로 이어짐.
인디언 인종 청소 (09-11-2020)
미국 인디언 전쟁과 인종말살 정책은 이번 칼럼으로 마치고자 한다. 분명한 것은 수백년 동안 이어져온 유럽 각국 간 식민지전쟁으로 인해, 세계 각국의 원주민들은 80%가 세균에 의해 죽고, 20%는 총과 대포의 신종 무기 앞에 무참히 살해 당했다. 전쟁의 목적에 정당성과 정의를 부여할 수는 없지만,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유럽 백인들의 욕망과 탐욕에 의한 <침략전쟁>이자 <약탈전쟁>이었다. 또한 기독교의 선민 의식과 이원론적 이분법 사고방식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기독교 근본 교리와는 정반대 되는 <인디언 인종말살> 정책을 강행했다는 점이다.
우리 세대는 미국 서부 영화를 많이 보고 자란 세대다. <작은 거인>과 <늑대와 춤을>이라는 영화 이전의 모든 영화에 나오는 인디언들은 선한 백인들에 맞서는 잔인하고 야만적인 악마들로 구성된다. 백인 침략자들의 자기 변명이고 기만이다. 특히 미국 백인들은 인디언들에게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고, 진정한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노예로 끌려 온 흑인들에 대한 반성과 용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인종차별> 흑역사를 미국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한, 미국은 결단코 <인권>에 대해 세계 어느 나라에게도 말할 자격이 없다. <정의가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더구나 인디언 문화와 언어, 정체성 마저 송두리째 말살시킨 <인디언 보호구역>에 기독교 선교활동을 보내는 무지하고도 잔인한 일체 행위를 중지해야 한다. 적어도 역지사지로 일본 식민지였던 한국인이라면 말이다.
연도별 <미국 인디언 침략 전쟁사>를 간략히 집어보자. 전쟁 지역은 미국 동부에서 중부, 서부로 이어지고, 영국과 인디언,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과의 식민지 전쟁에서 인디언 부족들을 동맹으로 끌어들여 부족간 전쟁으로 확산됨. – <제임스타운 학살: 1622년3월22일>-백인이 평화 협약을 어기자, 버지니아 식민지 공격 347명 사망, – <피쿼드 전쟁:1636~1638>, -<필립왕 전쟁: 1675년>, -<윌리엄왕 전쟁:1689~1702년, 영국과 프랑스 미국 식민지 최초전쟁>, <앤여왕 전쟁: 1702~1713년>, -<터스카로나 전쟁: 1711~1715년>, – <야마시 전쟁: 1715~1717년>, – <치카소 전쟁: 1720~1760년>, – <프렌치 인디언 전쟁: 1754~1763년>, – <폰티악 전쟁: 1763~1766년>, – <틴모어 전쟁: 1773~1774년>, <미국 독립 전쟁: 1775~1783, 영국과 미국 동부 13개주 식민지 사이의 전쟁, – 1776년 7월4일 <미합중국 독립선언>, 그 이후 <미시시피강 동부 전쟁: 1775~1842년>, – <미시시피강 서부 전쟁: 1823~1890년), – <운디드 니(Wounded Knee) 대학살: 1890년12월, <상처 입은 무릅>이라는 성지에서 <영혼의 춤>의식 거행, 1시간동안 무차별 총 난사로 300명 이상의 인디언 살육>, 인디언 전쟁 사실상 종결.
<조지 워싱턴의 인디언 말살 명령: 1775~1783년>, 이로쿼이 연맹과 뉴잉글랜드 전역의 모든 인디언들을 말살하라는 명령 하달>
<인디언 이주법: 1830년> – 토마스 제퍼슨이 제창, 미국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이 서명하여 효력이 발생한 인디언 강제 이주법. – “인디언을 백인이 없는 서부 인디언 준주(현 오클라호마)로 강제 이주시키고, 연방정부가 지정 신탁한 <보호구역(Reservation)>에서만 살게 하고, 백인 사회체제를 확립하고, 백인사회에 강제 동화시키는 인종청소 정책임. 이 법에 따르지 않으면 인디언 부족은 멸족된다.”
<눈물의 길> : 1830년에서 1850년까지 치카소 족, 촉토 족, 머스코지 족, 크릭 족, 세미놀 족, 체로키 족, 그리고 아프리카 흑인 자유민과 노예들을 미시시피강 서쪽 지역으로 강제 이주 시킴. 1829년 조지아 주 금광이 최초 발견된 후 서부의 골드 러시 역사가 만들어짐. – <촉토 족 눈물의 길>: 1831년에 이주 시작, 1833년까지 1만7천명 촉토 족은 오클라호마로 이주. 이중 6천명이 <눈물의 길>에서 얼어서 죽고 굶어서 죽음. 하루 음식 배급은 삶은 옥수수 한줌, 순무 한 뿌리, 끊인 물이 전부였음. – <체로키 족의 눈물의 길>: 1838년 17,000명 체로키 족과 2천명의 흑인 노예들은 그들이 살던 집에서 끌려 나와 집결지에 수용됨. 이때 사망자는 대부분 이질 등 질병으로 사망함. 그후 8월28일, 1천명씩 13개 그룹으로 나뉘어져 1,900km 떨어진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걸어서 강제 이동 시킴. 이동 중에 죽은 자에 대한 애도로 <어메이징 그레이스> 찬송가를 부르게 함. 체로키 족은 이 눈물의 길에서 약 8천명이 굶주림과 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됨.
<인디언 보호구역>: 물 한 방울의 우물도 만들 수 없고, 자체 농사나 일체 경작, 생산이 금지된 사막의 불모지임. 인디언 자체 문화와 자립 능력을 말살하고, 인디언 아동들은 백인 가정에 강제 입양시키고, 집에서 수백마일 떨어진 기독교 기숙 학교에 10년 이상 강제 입교 시켜 백인 기독교 문화를 세뇌시킴. 인디언 보호구역내 카지노를 만들어서 성인 남자들은 종업원으로 근근히 생활케 하고, 알코올 중독자, 마약 중독자로 전락시킴. 1970년대는 인디언 가임 여성 40% 이상을 강제적 불임 수술을 받게 하여 인디언 인종말살 정책을 획책함. 이 당시 2십만명에 불과했던 인디언 숫자는 자구 노력으로 2020년 2백만명으로 늘어남.
<미국 정부의 사죄>: 훗날 2004년 공화당 캔자스 주 상원의원이 ‘인디언 부족에 대한 미국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미국을 위해 원주민에게 사죄한다”라는 공동 결의안 발의하였으나 2009년에야 상하원 통과, 2009년 12월 버럭 오바마 대통령이 결의안에 서명, 2010년 5월20일 미국정부의 인디언 부족에게 공식 사과함. 이 정도로 정산될까? <용서받지 못할 자>, <서로 사랑하지 않은 자>, 최후의 심판 날 그분은 누구를 심판할까? 미국의 기독교 역사는 다시 쓰여져야 한다.
미국 인디언 전쟁 배경 (09-04-2020)
미국 인디언 전쟁은 <1622년 3월22일 제임스타운 대학살 ~ 1890년12월 운디드니 (Wounded Knee) 대학살)> 약 280년간의 미국 백인 식민지인(정착민)과 미국 원주인 인디언과의 미국 영토 정복(약탈, 침략, 수호)전쟁을 일컫는다. 또는 미국 식민지 독립전쟁 (1775년4월19일 ~ 1783년9월3일: 대영제국과 미국 동부 13개주 식민지 사이에 발발한 전쟁), 미합중국 독립선언(1776년7월4일) 전후로 나누기도 한다. 17세기 미국에는 세가지 부류의 인간이 존재한다. 미국 원주인 인디언, 유럽 제국 군인, 식민지 소속의 영국 백인 개신교 이민자이다. 방대한 미국 인디언 전쟁사를 연대별로 간단하 정리해 보자.
17세기 유럽 열강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스페인의 쇠퇴>와 함께 신흥 유럽 제국국가들이 탄생한다. 미국 식민지도 동부는 영국령, 중부는 프랑스령, 서부는 스페인령으로 나뉜다.
<영국>: -1600년: 동인도회사 설립, – 1607년: 북미 대륙 버지니아 식민지 설립, -1619년: 버지니아 담배 농장 운영을 위해 흑인노예 수입, – 마드리드(1639년), 뭄바이(1661년), 캘커타(1690년) 식민지화.
<프랑스>: 프랑스 왕국 (987년~1792년)이 신흥 강대국으로 등장, 스웨덴, 영국, 덴마크, 노르웨이 등이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로 세계 진출, -보헤미아 반란(1618~1621년) – 유럽 600년을 지배한 합스부르크 가문(1438년~1806년, 이 가문에서 신성로마제국 제위들이 대부분 배출됨)과 프랑스의 대결 구도.
<유럽 30년전쟁(1618년~1648년)>: 로마 가톨릭교회 지지 국가들과 개신교 지지 국가들 간의 전쟁, 인류 전쟁사에서 가장 잔인하고 사망자가 가장 많은 (사망자수만 약 8백만명), 최대 최후의 종교 전쟁임.
<9년전쟁(1688년~1697년), 대동맹전쟁, 일명 윌리엄왕 전쟁>: 서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인 프랑스 루이14세의 야망과 영토 확장에 맞선 유럽 동맹국(영국, 네덜란드, 신성로마제국, 스페인, 사보이아 공국(북부 이탈리아)간의 전쟁임.
<제2차 백년전쟁(1689년~1815년): 유럽 각국의 국경분쟁, 왕위계승, 북아메리카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해외 식민지 쟁탈, 그로 인한 미국 독립(1776년), 프랑스 혁명(1789년5월5일~1799년11월9일), 나폴레옹 제국(1804~1815년)을 배경으로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전쟁을 총칭함. 이후 영국은 <팍스 브리태니커>, <대영제국>이라는 번영의 시대로 접어듦.
<북미 식민지 전쟁>: 영국과 프랑스는 그들과 동맹을 맺은 인디언들을 북미 식민지 전쟁에 참여시킴으로써 인디언 동족간의 전쟁으로 유발함. – 1689년 <윌리엄왕 전쟁>, – <앤 여왕 전쟁>(1702~1713년):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 때 일어난 영국-프랑스 식민지 전쟁. 영국 승리로 뉴펀들랜드, 허드슨만 지역을 확보함. – <조지왕 전쟁>(1744~1748년): 북미 아카디아와 뉴잉글랜드 경계를 둘러싼 영국-프랑스 식민 전쟁, – <프렌치 인디언 전쟁>(1754~1763년): 유럽의 7년 전쟁(1756~1763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간의 전쟁)때, 북미 오하이오강 주변 영토로 영국과 프랑스 간의 식민지 쟁탈 전쟁. 영국, 프랑스 모두 지역 인디언들과 동맹을 맺었지만 영국 입장에서 프랑스-인디언 동맹이라고 규정함. 프랑스는 스페인에게 미시시피강 서쪽 루이지애나를 할양, 영국은 스페인 식민지 플로리다를 비롯해 미 동부 절반을 식민지로 차지함.
-<1763년 파리조약>: <영국-프랑스 전쟁, 일명 프렌치 인디언 전쟁>으로 프랑스가 영국에 대패하지만, 양국간의 기나긴 식민지 전쟁으로 인해, 영국도 국고를 탕진하고, 프랑스도 국고가 바닥이 남. 영국, 프랑스, 스페인 3국간의 강화조약 체결함. 프랑스는 퀘벡 등 캐나다 영토와 미시시피 강 동쪽 루이지애나를 1천5백만불에 영국에 통째 할양하고, 서쪽 루이지애나를 스페인에 할양. 영국은 필리핀 마닐라와 쿠바 아바나를 스페인에, 대신 플로리다를 획득함. 프랑스는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완전히 철수함.
<미국 독립전쟁의 시발>: 따라서 영국과 인디언(프랑스와 스페인의 우호 동맹 인디언)간의 전쟁이 시작됨. 시발이 <폰티액 전쟁(1763년): 인디언의 불참 가운데 맺은 파리 조약과 영국의 오대호 지방 통치에 불만을 품은 인디언들이 일으킨 전쟁이지만 영국에 패배함)임. 영국은 인도와 북미 식민지 패권을 확립함으로써 거대 시장을 확보함. 영국 산업혁명(1760~1820년)의 전진기지가 됨. 단 프렌치 인디언 전쟁으로 영국과 프랑스는 막대한 전쟁 빚으로 심각한 경제난을 초래함. 결국 영국은 미국 식민지에 대한 강력한 경제 제재, 세금 포탈 등, <보스턴 차 사건(1773년12월16일)>을 시발로 <미국 독립 전쟁(1775~1778년)>을 초래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함.
<아메리카 드림>: 유럽 각국간의 오랜 전쟁으로 국고는 바닥이 나고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진다.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 간의 종교 전쟁은 종교탄압으로 이어지고 인종차별은 더욱 심해지니 새로운 기회의 땅, 아메리카로 이민 행렬이 이어진다. 1700년 이전까지 미국 식민지 백인 인구는 25만명에 불과했으나, 미국 독립(1776년)당시 300만 인구로, 1800년대 곧바로 3800만명으로 급증한다. 이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미국 원주인인 인디언 말살 정책으로 이어진다. 빼앗은 자와 빼앗긴 자, 침략한 자와 쫓겨난 자, 살인자와 죽임을 당한 자, 번창하는 자와 멸망하는 자.. 신은 자비하지 않다. 언제나 역사의 냉혹한 아이러니다.
미국 식민지 서곡 (08-28-2020)
역사는 승자의 이야기(픽션)이다. 불과 400년에 불과한 미국 역사에서 미국 인디언들은 어떻게 지구에서 사라졌을까? 유대인 말살의 나치 히틀러도 미국 인디언 인종말살 정책을 모방했다고 그의 자서전에서 고백한다. 인디언의 모든 것을 말살하고 <인종청소>한 WASP (영국 백인 앵글로 색손 청교도) 중심의 그들은 누구이며 왜 그랬을까? 먼저 유럽의 중세 말부터 근세 역사를 알아야 한다.
유럽 백인들은 11세기 십자군 전쟁을 시작으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료까지 거의 1천년 동안 유럽 국가끼리 끊임없이 수많은 전쟁을 치룬 민족들이다. 그들의 역사는 피의 역사다. 반면에 미국 인디언들은 수 만년 동안 풍요와 평화를 지킨 민족이다. 미국 어디를 가나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비옥한 땅과 천연자원, 풍부한 동식물과 어류, 자급자족이 가능한 땅이다. 그러니 국가도, 대규모 성곽도 필요 없는 조그만 부족사회이면 족하였다. 대규모 전쟁을 한번도 한 적이 없는 민족이다. 풍요의 땅, 은혜의 땅, 신천지에서 사는 인디언들은 어디를 가나 풍요롭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데, 굳이 화폐, 무기, 무역, 국가, 절대군주, 노예, 계급, 서양 종교가 왜 필요하겠는가? 수많은 전쟁과 무서운 질병과 기아 속에서 악을 쓰며 대를 이어 죽도록 싸워야만 겨우 먹고 살 수 있던 침략과 약탈의 유럽 백인들과는 품격이 다르다. 누가 하나님 말씀에 부합되는 민족인가?
중세와 근세 유럽을 알아보자. 9차에 걸친 교황청 주도 십자군 전쟁(1095년~1291년)은 몇가지 결과를 초래한다. 첫째 결국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함으로 교황의 권위는 실추되었고, 둘째 영주와 기사 기반의 <장원 경제>가 붕괴되고 <중앙집권적 근대국가>가 탄생, 셋째, 지중해 무역이 활성화 되고, 대항해 시대(15세기 초~17세기 중엽) 서막이 열린다. 넷째, 동로마 제국이 몰락하고 르네상스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된다. 다섯째 흑사병과 유대인 학살이 지속되었다.
반면 중동의 막대한 부와 위탁 받은 영주들 재산을 획득한 가톨릭 교회는 사치와 향락으로 급속도로 부패한다. 또한 대규모 마녀 사냥으로 신자들을 무참히 처형하여 공포 정치를 조성한다. 성베드로 대성당 건축기금 명목으로 1506년 독일에서 면죄부 판매가 도화선이 되어 1517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작된다. 그의 뒤를 이은 장 칼뱅은 신흥 브로주아 계급(자본가, 기업가, 숙련 노동자 등)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운다. 성실과 근면, 절약으로 열심히 일하여 경제적 안정을 이루고 성공한 브로주아는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이라 주입한다. 이들 주체가 훗날 미국 청교도 정신으로 이어진다.
현대 미국 주류 세력의 뿌리는 1620년 11월 11일 메이플라워(May Flower)를 타고 뉴잉글랜드 보스톤 남단에 도착한 102명 중, 영국의 청교도인 35명(자칭 성자 Saints라 칭함)이 원조다. 그들의 의식구조를 알아보자. <영국의 종교전쟁>은 영국 국왕 헨리8세의 이혼을 교황이 승낙하지 않자, 1534년 수장령을 선포한다. 즉 영국 교회의 수장은 로마 교황이 아니라 영국 국왕이며, 영국 교회 재산몰수, 사제 임명권도 국왕 권한으로 선포함으로써, 영국 성공회(국교회)가 탄생하게 된다. 이에 반대한 신흥 개신교가 <청교도>이며, 1609년 종교의 자유를 찾아 네덜란드로 이민, 그러나 유럽이 신교와 구교의 종교전쟁 중이었으므로 10년뒤 1620년 미국 신천지로 이민을 가게됨.
청교도인들은 극단적 배타주의자들이다. 자신들만이 선민이며, 청교도 이외의 모든 종파, 종교는 사탄이다. <도덕적 선>을 추구하되, 도덕적 선은 구약성서를 바탕으로 엄격한 계율에 따르는 삶이며, 계율과 율법을 어길 경우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 칼뱅 교리를 바탕한 신정일치(神政一致) 사회를 꿈꾼다. 내서니얼 호손의 <주홍글씨>처럼, 극보수, 가부장, 비민주적이며, 사회법과 종교법을 동일시한다. 이들 종교 이념이 현대 미국의 보수 극우주의, 백인 우월주의, 기독교 근본주의, 인종차별주의의 근간이다. 독선과 배타, 아집, 자신들만이 선이고 그 외에는 모두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인디언 말살정책>의 근간이자 현대 미국의 <인종차별주의> 뿌리다. 부시, 트럼프를 예로 들지 않아도 대부분의 백인들 의식구조가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 수 없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과 상충되면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19세기 이후 세계와 200회 이상의 전쟁을 하였다.
1607년 시작되는 미국 식민지 역사를 알기 이전에, 유럽 근세 시대를 알아보자. 아메리카는 1492년 10월12일 콜럼버스가 바하마 제도(쿠바, 아이티)를 신대륙으로 최초 발견한 이후, 4차 항해(1502~1504년)때까지 북아메리카를 알지도 못했다. 콜롬버스 군대의 원주민에 대한 살해와 잔인함과 악랄함은 글로 차마 쓸 수 없을 지경이다. 그 진실을 안다면 미국 학생들에게 미국 국경일로 가르칠 수 있을까?
16세기 유럽 각국 정세를 살펴보자. 먼저 <스페인의 쇠퇴기>다. -1571년: 스페인은 오스만 제국을 격파하고 마닐라 건설, – 1580년 포르투칼 병합, – 펠리페 2세 (1556~1598년);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무적함대 스페인 건설, – 1568년; 스페인 영토인 네덜란드 독립전쟁, 일명 <80년 전쟁(1567~1648년)>, -1581년: 네덜란드 독립선언, 스페인 몰락 계기, – 1588년: 영국 상륙작전 실패, 스페인 쇠퇴기로 접어듦.
인디언 문화 (08-21-2020)
현대인들은 미국 인디언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또 좁은 지면에 칼럼을 쓴다고 얼마나 쓸 수 있을까? 내가 즐겨 읽는 책 중에 류시화 시인이 쓴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가 있다.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법>이라는 부제의 총 918페이지 방대한(?) 분량이지만, 인디언의 사상과 문화는 포스트 코로나의 현대인들이 살아가야 할 신선한 지침서와 같다. 흔히들 미국은 <인디언 전쟁 (1622년~1890년)>이라고 한다. 하지만 미국은 인디언과 전쟁을 한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 인디언의 땅을 침략하고 강탈한 것이며, 인디언들은 속수무책 송두리째 빼앗기고 말살 당한 능욕의 역사다. 미국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죄나 용서 없는, 역사의 천박한 욕망 덩어리다.
미국 인디언들은 누구였으며, 왜 백인들에게 그렇게 처참하게 당했을까? 사상과 문화의 차이다. 몇가지 원인 별로 분석해 보자. 아메리카는 수 만년 전부터 원주인이 살고 있었던 평화로운 땅이었다. 정확한 수는 자료마다 다르지만,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라틴아메리카 역사>에 보면 맥시코 지역만 5500만명이 살았는데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이후 절반으로, 1605년에는 1백만명이 되었다. <미국 민중사>에는 아메리카 전체에 1500만명에서 2000만명이 살았고, 북아메리카에는 약 500만명의 인디언이 살았다고 추정한다.
201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는 2백만명 정도의 인디언들이 생존하고 있는데, 19세기말 인디언 학살이 극에 달했을 때는 20만명 정도의 멸종 위기일 때도 있었다. 남북 아메리카 전 지역의 인디언들의 90%가 몰살한 이유는 전쟁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 장티푸스, 천연두, 홍역, 수두, 성홍렬, 폐렴 같은 전염병 세균들 때문이었다. 청정지역에 살던 원주민들에게는 전염병에 대한 자가 면역세포 (항체 바이러스)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총.균.쇠>에서 지적했듯이, 유럽의 중세,근세,근대 역사는 유럽 중심, 백인 중심의 지배 구조로, 다른 민족들은 정복과 지배의 대상이 된 것이다. 총과 칼, 강철 대포와 활, 세균과 무감염.. 싸움이 되지 않는다.
인디언은 인종학적으로 2만년전 한국인과 같은 몽골 계통에 속한다. 1만4천년전 베링해를 거쳐 북아메리카에 도착한 후 수천년에 걸쳐 남 아메리카까지 이동한다.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은 수 만년 동안 살면서 다양한 종족과 언어, 문화를 발전시켰다. 북미 지역에만 2000여개의 서로 다른 언어가 존재했다. 기본적으로 농업사회 였으며, 사냥과 수렵을 병행한다.
북미 인디언들은 <부족사회>였다. 여기에 백인들의 <추장에 대한 오해>가 있다. 백인들은 아프리카의 추장이 지배하는 <수장제 부족사회>로 착각했지만, 북미 인디언 사회는 왕이나 수장과 같은 개인 권력자는 존재하지 않았던, <합의제 민주주의 사회>였다. 인디언 사회의 <추장(Chief)>는 중재자, 봉사자 라는 의미이며, 지도자나 부족장의 의미가 아니다. 상명하복의 권력 사회가 아니며, <상호 합의 사회>였다. 부족원들의 합의를 거치지 않는 부족의 총의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미국 백인들은 글자도 모르는 추장 혼자와 일방적 사기 계약을 하고서는 <계약 파기>라고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인디언 사회는 사람과 동물조차 차별되지 않는 <위대한 신비>의 나라였으며, 신이 창조한 모든 것은 평등하게 공유하는 <평등사회>였다. <토지에 대한 오해>는 인디언들은 땅은 신이 만물을 위해 주신 것이므로 사고 팔 수 없는 <공유의 개념>이었다. 그래서 초기 백인 식민지인들에게 경작해서 먹고 살 수 있도록 땅을 무상으로 준 반면에, 백인 식민지인들은 더 싸고 더 넓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말도 되지도 않는 저렴한 가격이나 선물이라는 물물교환으로 <매매 행위>를 한 것이다. 미국영화에서처럼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에 돌아올 때까지 깃발 꼽은 모든 땅이 내 소유의 땅이라 생각했던 백인들의 의식구조를 인디언들은 상상도 못한 것이다.
인디언들은 평화의 맹세를 할 때, <회합의 불>을 둘러싸고 <거룩한 파이프> 담배를 돌려 피우며, <커다란 신비>에 맹세를 한다. <커다란 신비>에 대한 맹약은 결코 깨서는 안되는 언약이다. 그렇게 해서 백인들에게 살기 위한 땅을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백인들은 그렇게 인디언들로부터 빼앗은 땅에서 나가달라고 하니 전쟁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북미 인디언들은 조그만 부족사회 혹은 씨족 사회로 각기 뿔뿔이 흩어져 살았고, 대규모 외부 공격에 대비할 필요성도 못 느끼고 살아온 것이다. 반면에 남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중미의 <아스테카 제국(1200년~1521년), 남미의 <잉카제국(BC 1000년? ~AC 1571년)>처럼 고유의 문자 체계, 화폐제도, 계급제도, 전국적 통신 및 행정체계, 10만명 이상의 전시 병력을 보유한 국가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결국 WASP (백인 앵글로 색손 청교도) 중심의 백인들 의식구조와 북미 인디언들의 의식구조가 다름으로써, 상호 이해관계가 상충한 것이다. 유럽 백인들의 중세부터 근세, 근대 역사는 허구한 날 전쟁과 기아, 질병의 연속이었다. 말만 기독교인이지 예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삶과 역사였다. 오죽했으면 북미 인디언 추장들이 말하길 “너의 하나님 예수의 말씀은 우리 생각과 같으니, 분명 우리와 같은 형제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왜 당신들은 예수의 말씀과 정반대로 사는가?”라고 했을까? 현대를 사는 우리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국 인종차별 (08-14-2020)
<Black Lives Matter>,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동시에, 미국 전역 200여개 도시에서 <인종차별 종식> 동맹파업 시위가 연일 확산되고 있다. 인종차별주의 혹은 인종주의(Racism)는 특정 인종에 대한 배타주의 신념 혹은 사상이다. 자신 이외의 다른 인종은 자신들보다 못하거나 열등하다고 의식하는 인종분류주의다. 세계 역사에 인종차별 정책은 민족주의가 됐든, 우월주의가 됐든, 어느 국가에서나 있어왔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민의 나라>다. 세계 각계각층에서 청운의 꿈 (America Dream)을 갖고 기회의 땅, 천연자원 보물의 땅, 꿈의 땅으로 이민을 온 것이다. 미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주의 국가이며 평등주의 국가다.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여 성실과 정직으로 일하면 차별없이 평등하게 스스로의 꿈이 실현되는 <Great America>로 자부해 왔다. 그래서 미국을 <인종의 용광로(America Melting Pot)> 라고도 한다. 하지만 21세기를 미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이민자들은 과연 그러한가?
미국 역사는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영국 청교도인들로부터 오늘까지 불과 400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미국 인종차별> 흑역사는 오늘을 사는 이민자들이 너무 모른다. 반성하지 않고 교육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야만과 문명의 이중성. 여러분은 미국에서 살면서 인종차별을 받은 경험이 없는가? 나만 그런가? 나만 무지한가? 그래서 몇회에 걸쳐 공부하고자 한다.
미국의 인종차별은 미국-인디언 전쟁, 미국 프렌치 전쟁, 미국 독립전쟁, 미영 전쟁, 미국-멕시코 전쟁, 하와이 병합, 미국-스페인 전쟁 등으로 미국 주도권을 쥔 영국계 백인(WASP)의 백인 우월주의에 기인한다. 와스프(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s)는 백인 앵글로 색슨 개신교도의 줄임말로 비영어권 백인(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아일랜드, 러시아 등)에 대한 백인 차별, 흑인 인종차별, 히스페닉 및 라티노 인종차별, 유대인 인종차별, 중동계 및 무슬림 인종차별, 중국 및 아시안 인종차별, 인디언 인종차별로 실로 그 범위가 광대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차별 피해를 받은 민족은 미국 대륙의 원주인(원주민)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인종차별이다. 인디언 인종차별은 차별의 차원을 뛰어넘은 <인디언 인종말살>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다음주 칼럼은 미국 인디언들의 피의 역사를 살펴볼 것이다.
2020년 7월9일 월스트리트저널 & NBC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71%가 인종차별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흑인 78%, 히스페닉 60%, 백인도 51%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트럼프의 인종 대처 정책에 대해 63%가 동의하지 않았다. 미국은 대표적인 다문화 국가다. 하지만 미국의 이민정책을 보면 이민 신청자의 대부분을 불법체류자로 전락시킨다. 미국 시민권 따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우리 모두 경험자이다. 특히 트럼프 정부의 이민 인종차별 정책은 극에 달한다. 멕시코 국경 장벽 세우기, 난민 신청자들의 아이와 부모 격리, 미국이민(ICE) 세관단속국의 무차별 단속과 이민비자 발급 중지 등, 인종차별 정책은 도를 넘는다.
세계에서 가장 미국 다운 대한민국의 인종차별도 만만찮다. 2015년 독일은 시리아 난민 1백2십7만명을 받아들였다. 같은 해 한국은 예민 난민 500여명 중 단 2명만 난민으로 받아들였다. 다문화 가정을 인정하면서도 조선족, 중앙아시아의 한국 해외동포에 대한 차별은 가혹하다. 하물며 동남아시아 이민 가정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이루 말을 다해 무엇 하겠는가?,
인종차별의 인과관계에 대한 여러가지 이론 중에, 첫째, <권위주의적 인성 이론(authoritarian personality)>은 프로이드 정신분석학에 근거한다. 권위주의적 인성의 소유자는 편견과 차별에 사로잡히는데, 아동 시절의 억압적 경험으로부터 기인한다. 이들은 강력한 이드(id-자아)의 충동에 대처할 수 없는 취약한 에고(Ego-자존심)를 통제하는 엄격한 초자아(Superego)를 갖고 있다. 이에 따른 정신 내부적 갈등은 개인적 불안을 야기하여 인습적 규범과 이를 부과한 권위적 사람에게 집착하게 만든다. 이로 인해 편견과 차별을 야기하는 것이다.
둘째, <집단 갈등 이론(realistic group conflict theory)이다. 다문화 국가에서는 여러 이해 집단이 상존하기 마련이다. 집단들이 경쟁적으로 상호의존적일 때, 한 집단의 성공은 다른 집단의 실패를 야기한다. 제로섬 게임이다. 집단 이기주의를 가속화 한다. 상대 집단에 대한 편견, 오해, 부정, 고정관념을 유발한다. 상대 집단에 대한 이해 부족과 무지에서 비롯된다. 가장 대표적인 집단이 이념집단과 종교집단이다. 이로 인해 인류는 얼마나 많은 전쟁을 치루었던가? 한국은 아직도 빨갱이 타령이다. 세계 동일 민족 중, 유일한 분단국가이고 서로를 주적으로 적대시하는 휴전 국가다. 창피한 것도 모른다. 그 이외 사회 범주화 이론, 집단 간 접촉 이론 등 인종차별 이론은 다양하다.
미국은 원주인인 인디언들로부터 강제로 빼앗아서 만든 국가다. 미국 최초 이민자들은 영국,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의 식민지 평민들이었다. 400년 미국 역사 중에서 인종차별 역사는 가혹하리만큼 처참하다. 그래서 인종차별에 대한 규제나 법률은 어느 선진국 못지않게 엄격하다. 하지만 왜 21세기인 지금도 미국은 세계 제일의 인종차별 국가로 몸살을 앓고 있나? 위대한(?) 미국 역사를 알아보자.
야수 자본주의 (08-07-2020)
미국이 무너지고 있다. 코로나 비상자금 3조 달러를 퍼부어도 미국 서민경제는 더욱 힘들기만 하다. 만약 달러가 기축통화가 아니고 미국이 마음대로 달러를 찍어낼 수 없었다면, 코로나19 팬데믹과 포스트 코로나를 견뎌낼 수 있을까? 달러 가치는 급락하고, 국가 부채는 급증하고, 미국경제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이후 최악인 지옥 상태다.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나라 대한민국도 민중 사회가 지옥인 것은 마찬가지다. 세계 <30:50 클럽- 인구 5천만명 이상이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 이상> 국가는 총 7개국에 불과하다.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한국이다. 자랑스럽고도 대견하다. 전쟁 잿더미에서 기적을 이룬 민족, 문맹률 0%인 고도의 국민 교육수준, 첨단 디지털 문명국가, 세계 혁명사에 유래가 없는 1천만명 무혈 촛불 혁명, 코로나 기간 동안 일체의 봉쇄조치, 이동금지, 이동제한, 사재기도 없이 국민 전체가 희생과 봉사로 하나되어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 성숙된 한국인의 민주 시민의식은 세계인의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16년째 자살률 세계 1위, 세계 불평등 국가 1위, 25년째 OECD 국가중 노동자 사망률 1위, 2년 연속 출산율 1 이하인 유일한 국가, 행복지수가 최하위권인 나라가 한국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에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고 시작한다.
김누리 교수는 <야수 자본주의>에 기인한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1920년대부터 세계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거대한 체제(이념)전쟁을 해 왔다. 하지만 1980년대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됨으로써, 인간의 욕망을 훨씬 더 충족시키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우월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 시작된 미국식 <신자유주의>는 시장중심의 자유경쟁, 무한경쟁, 약육강식의 논리에 치우친 나머지, 각종 규제 완화를 강행하였다. 그 결과 경제적 불평등, 기회의 불평등, 인권의 불평등, 분배의 불평등으로 서민의 삶은 파괴되었고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무역자유화는 제3세계의 민생경제를 모두 망가뜨림으로써 국가간 양극화도 더욱 심화되고 있다.
즉 <야수 자본주의>가 된 것이다. 미국식 자본주의를 자유롭게 놔두면 <야수가 인간을 모두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야수 자본주의는 생산과 소비를 어느 하나도 멈출 수가 없다. 미국은 <과잉생산, 과잉소비> 국가다. <자전거 이론>처럼, 달리던 자본주의가 멈추면 경제는 넘어진다. <규제와 조절>이 없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를 하게 되는 과정에서 친환경적 생태계는 무너지고 있다. 이번 코로나19 팬데믹도 결국 인간의 무한 욕망이 자연 생태계를 파괴했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는 것이다. 세균 바이러스로 인한 세계적 재앙은 그 주기가 50년, 10년, 5년, 이제는 3년 단위로 점점 더 빨라진다는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인류에게 22세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구 종말론적 종언이다.
김누리 교수 글에서 인용한다.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거대한 전환의 시대가 될 것이다.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 시장중심사회에서 인간 중심사회로, 경쟁사회에서 연대사회로, 신자유주의 국가에서 복지국가로, 인간의 자연지배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생으로, 능력주의(Meritocracy,메리토크라시)에서 존엄주의(Dignocracy, 디그노크라시)로 전환해야 한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3 Life>를 파괴한다. <인간의 삶, 존엄(Life)>의 조건인 인간성을 파괴하고, <인간 생존(Life)>의 조건인 사회를 파괴하고, <인간 생명(Life)>의 조건인 자연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김누리 교수는 새로운 대안으로 <라이피즘(Lifism)>을 제안한다. 그 이유는 다섯가지다. 첫째, 라이피즘은 자본주의의 <안티라이프(Anti-life)>를 직격한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삶, 생존, 생명에 적대적 체제임을 폭로한다. 둘째, 라이피즘은 이데올로기적 유산에서 자유롭다. 20세기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정파를 아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인간 소외에 맞서는 자율주의자든, 사회적 착취를 비판하는 사회주의자든, 자연 파괴에 저항하는 생태주의자든 모두 라이피스트 우산 아래 모일 수 있다. 셋째, 현대 사회의 최대 현안이자 인류의 미래가 걸려있는 생태의 중요성을 효과적으로 강조할 수있다. 넷째, 인간과 사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근대 휴머니즘 전통의 현대적 적자임을 주장할 수 있다. 다섯째, 자본주의가 파괴하는 삶, 생존, 생명의 영역을 총체적으로 겨눈다는 점에서 주로 사회적 착취와 불평등을 문제 삼는 사회주의보다 포괄적이고 진취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제 미국의 종속국에서 벗어나야 한다. 1945년 해방 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진정한 독립국가가 아니다. 전시작전권도 없는 나라가 무슨 독립국가인가? 이해는 할 수 있다. 워낙 가난한 나라였으니까 군사, 정치, 교육, 경제, 문화, 이념, 제도, 등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을 모방하고 추종하고 맹신하였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부터는 그러면 안된다. 한국은 독립해야 하고, 자립해야 하고, 자주해야 한다. 충분히 할 수 있다. 위기가 기회다. 왜냐하면 미국식 야수 자본주의는 무너지고 있으니까..
미국의 민낯 (07-31-2020)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인해 세계인들은 미국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게 되었다. 7월27일 기준, 전세계 코로나 확진자 수는 1천6백3십만명, 사망자 수는 65만명, 반면에 미국은 4백3십만명(세계 1위, 26%), 사망자 수는 15만명, 사망률은 3.5%, 하루 확진자 수는 7만명 이상이다. 거기다 무정상 감염자 수가 10배라고 하면 미국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수는 4천만명이 넘을 수 있다는 결론이다. 또한 일인당 병원 치료비가 3~4만불 이라면, 병원 치료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 소시민은 코로나에 걸리면 파산하거나 죽어야 한다.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서 세계인들은 <세계의 미국화>라는 <미국식 자본주의> 이념에서 <패러다임 전환 –인식 변환>을 해야만 한다.
무슨 놈의 나라가 이 모양인가? 맨날 뉴스가 대통령이 마스크를 했네, 안했네, 미국인들의 마스크 쓰는 것이 개인의 자유를 침범하네 마네로 싸우니 미국인들의 민도(民度)가 한심할 따름이다. 트럼프는 인종차별주의와 백인 우월주의자, 흑백론자, 천박한 이념론자 인데다가, 말만 하면 거짓말이고, 철학도 없고 역사관도 없는 무지랭이다. 오로지 돈, 돈, 돈(?)통령에 불과하다. 자신을 반대하는 모두를 적으로 간주한다. 그런 자에게 무슨 인류공존이나 지구 생태 보호를 논할 것인가? 사람이나 국가나 과거를 알면 현재를 알고, 현재를 보면 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 트럼프 등 어지간한 인물들의 과거 행적은 구글 등 검색엔진에서 손쉽게 알 수 있다. 민중은 아는 것이 힘이다.
오늘의 미국은 심각하다. 미국인들 절반 이상이 제3세계 수준의 삶을 살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4천만명이 실업자다. 길거리에 노숙하는 거지가 백만명에 육박한다. 인구의 4분의 1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인종차별 국가다. 백인이 아니면 모두가 열등국민이다. 미국 지도자가 하나 같이 그 모양이니 미국에는 그렇게도 인물이 없나? 미국 민중들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 미국은 군사대국 일뿐, 이미 최강 국가도 아니고 최고 국가도 아니다. 미국은 무너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을 말하다>의 김누리 교수 강연 편에서 일부 인용함을 밝힌다. 미국은 한국인의 가장 선망 대상이었고, 무조건 모방 하고픈 나라 이었다. 한국은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나라, <과잉 미국화>, <총체적 미국화>된 나라다. 오죽하면 태극기 부대 데모 때나, 보수 단체들 행사를 하더라도 미국 성조기를 흔드는 나라가 지구상에 한국 말고 어디 또 있는가? 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꼬마 때는 미군 트럭이 지나가면 <Give me, chocolate.. Give me, gum>하면 쫓아 다녔다. 미제 구호물품을 서로 살려고 안달이었다. 우리 세대에서 가장 성공한 놈은 사법고시 패스하거나, <5.16 장학금 – 훗날 정수장학금> 받고 미국 유학 가서 미국 박사 되는게 꿈이었다. 미국인은 모두 한국을 지켜주는 수호천사라고 생각했다. 미국에 이민 간다고 하면 천국 선민인 마냥 모두가 부러워했다. 미국이라면 무조건 무조건이야 ~~ 가 우리 세대 뇌리에는 깊이 박혀있다. 그래서 결국 나도 20년전에 이민을 와서 우여곡절 끝에 미국 시민이 되었지만, 살면 살수록 이건 아니잖아? 라는 번민과 자괴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이제는 싫던, 좋던 미국 땅에 뼈를 묻어야 한다. 그러기에 미국은 변해야 한다.
한국의 거의 모든 제도는 미국식이다. 미국을 선진국의 모범국가로 맹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은 일찍이 미국 제도를 경멸한다. 미국식 자본주의(Capitalism)는 <신자유주의>다. <자유 시장 경제의 무한 경쟁 원리>다. 개인의 모든 것은 시장에서 사야 한다. 교육이든, 의료든, 주거(住居)든, 국가가 보호하지 않는다.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수상은 “미국은 사회적으로 보면 지옥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미국식 자본주의를 <야수 자본주의>라고 한다. 미국식 야수 자본주의는 결국 민중을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보장해 주어야할 3대 과제는 <교육>, <의료>, <주거>다.
미국의 교육제도 문제는 대학의 엘리트 서열 시스템, 대학 경쟁 시스템, 높은 등록금 등이다. 한국이 똑같이 따라한다. 세계에서 1인당 국민소득 대비 가장 높은 대학 등록금 나라가 한국이다. 대학의 서열화로 국민 1인당 사교육비가 가장 높은 나라도 역시 한국이다. 일류 대학을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대학 출신 성분에 따라 삶과 성공이 차별 받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첫번째 궁극적 질문은 어느 대학 출신이냐? 이다. 인간의 등급이 매겨지는 것이다. 출세와 연봉이 달라진다.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지름길이다. 미국이라고 과연 다를까? 유럽은 <68혁명>이후 대학입시 제도도 없고, 학비도 없고, 일류 이류 등 대학 서열화, 차별화도 없다. 오히려 대학을 다닐 때는 생활보조금 명목으로 매달 1천불씩 지원 받는다. 즉 누구나 대학에서 공부하기를 원하면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렇다고 유럽인들의 지적 수준이 미국보다 떨어지는가?
그런데 왜 한국 의료보험 제도만은 미국을 모방하지 않았을까?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북한 김일성 체제와의 경쟁에서 북한의 사회적 의료시스템에 뒤쳐져지 않기 위함이었다. 유일하게 미국 제도를 모방하지 않는 것이 한국의 의료제도이다. 그것이 오늘날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K-방역을 만든 근간이다. 아이러니다.
한숨 (07-24-2020)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들린다. 코로나19로 인해 오히려 장사가 잘 되는 곳이 있는 반면, 가게 문을 못여는 사람도 있고, 가게 문을 열어도 손님은 없고 몇 달치 렌트비가 연체되어도 낼 엄두 조차 못내는 곳도 있다. 언제 폐업을 해야 할지 세입자는 두렵고 건물주도 불안하다. 일자리를 잃어 망연자실 하는 사람도 많고, 실업급여와 연방 보조금이 평소 급여보다 많으니 일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장사가 잘 되어도 종업원 구하기가 어렵다. 이리저리 서민들의 한숨 소리만 깊어진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한숨을 내쉬다가 선친으로부터 큰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이후로 타인 앞에서 결코 한숨을 쉬지 않는다. 나의 감정을 외부에 표현하지 않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받은 것이다. 특히 슬프거나 힘들거나 화가 날 때 나의 감정을 숨겨야 했다. 그리고 선친께서는 나의 결정을 존중해 주시되, 내가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지도록 훈련도 시키셨다. 그래서 나는 남들 다하는 재수(再修)도 한번 해 보지 못했다. 내 인생에 One more Time은 없다. 인생에 똑같은 기회는 없다.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스스로 고민하고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담배를 어린 나이(고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피웠는지 모른다. 물론 핑계 없는 무덤이 없지만, 나에게는 속상할 때 담배 만한 친구가 없었다. “담배는 우자의 입을 틀어막고 현자의 머리를 맑게 한다”라는 중국의 문호 임어당(林語堂)의 담배 예찬론을 읊조리면서 말이다. 그 긴 세월 동안 깊이 내뱉는 담배연기에 얼마나 많은 한숨을 실어 보냈을까? 살면서 담배를 끊었다 피웠다 여러 번이었지만, 담배 한 모금과 긴 한숨은 나의 큰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깊은 한숨은 폐에 산소를 공급하지만, 담배는 백해무익한 일산화탄소와 각종 발암물질을 폐에 집어넣으니 권할 일도 아니고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다.
<한숨>에는 두가지 상반된 의미(同音異義語)가 존재한다. 전자의 <한숨>은 ‘한숨 돌리다’. ‘한숨 쉬고 하자’, ‘한숨 놓이다’ 등의 <한>은 <하나>의 뜻이고 ‘돌리다’는 호흡을, ‘한숨 쉬다’는 휴식을 의미한다. 반면에 근심이나 설움이 있을 때 길게 몰아서 내쉬는 <한숨>의 <한>은 <크다>를 의미하며, 한자어로 <태식(太息)>이라 한다. ‘자꾸 한숨을 쉬면 복이 달아난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다’ 등이 해당한다. 사전적 의미의 후자 <한숨>을 보자. <탄식(嘆息)> – 한탄하여 한숨을 쉼. 통탄(痛歎) – 몹시 탄식함, 호탄(浩嘆)- 크게 탄식함, 궁탄(窮嘆) – 궁한 나머지 탄식함 등이 있다. 전자의 한숨은 들어 쉴 수도 내쉴 수도 있지만, 후자의 한숨은 내쉴 수만 있다.
의학적으로 <한숨>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거나 마음 속의 응어리를 풀지 못하 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라 설명한다. 한국인의 고유 질병으로 국제적 병명으로 인정받은 <화병(火病)>도 땅이 꺼져라 내쉬는 한숨의 특징이다. 하지만 <한숨>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한숨은 스트레스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려는 자발적 행동, 즉 한숨을 쉬게 되면 심호흡의 효과를 가져와 긴장을 완화시킨다. 실제 심호흡을 반복하면 긴장 완화는 물론, 혈액의 산도를 떨어뜨려 산성을 알칼리성으로 바꾸는 효과도 있다. 그래서 기 수련이나 명상 훈련 시 단전호흡을 할 때,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들숨을 천천히 넷, 일시 호흡 중지 넷, 날숨 일곱을 쉬게 하는 이유다. 사람은 스스로 깨닫지도 모르는 동안, 한시간 동안 12번까지의 한숨을 쉰다고 한다. 인간의 뇌는 매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호흡의 유형을 결정한다. 신경 신호라 불리는 두가지 유형의 신경 세포들은 문제를 즉시 인지하고 한숨을 쉬도록 지시한다. 우리가 깨닫기도 전에 공기 주머니를 열어 두배 많은 양의 공기를 폐 속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피로의 원인인 활성 산소를 제거하고 들이마신 산소가 부교감 신경을 자극하여 스트레스를 해소 시키는 것이다. <한숨>은 우리 생명의 신성한 생명의 순환 주기인 것이다.
누군가의 한숨, 처절한 절망과 깊은 스트레스로 본인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 소리는 그만의 살기 위한 카타르시스임을 알아야 한다. 가난한 민중들의 한숨 소리도 들어야 한다. 아무도 모르는 민중들과 나의 한숨 소리는 미세한 신음소리 조차 놓치지 않으시는 그분만이 들으신다. 그분은 내 안에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마음을 편히 갖자. 이보다 더 힘든 시기도 잘 버티고 살았는데.. 죽고 싶을 때도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데.. 설마하니 굶기기야 하시겠어? 가자. 저 거친 광야로 달려가자. 깊은 숨 들이 쉬고 길게 한숨 내쉬고 저 피안의 땅으로 달려가자.. 가다가 가다가 다 못가면 어때? 멈추어서 긴 한숨 내 쉬고 그곳에서 영원히 쉬면 되지..
이하이의 <한숨> 노래 가사 일부를 소개한다. “숨을 크게 쉬어봐요 / 당신의 가슴 양쪽이 저리게 / 조금은 아파올 때까지 / 숨을 더 뱉어봐요 / 당신의 안에 남은게 없다고 느껴질 때까지 // 숨이 벅차 올라도 괜찮아요 / 아무도 그댈 탓하진 않아 / 가끔은 실수해도 돼 / 누구든 그랬으니까 / 괜찮다는 말 / 말뿐인 위로지만 // 누군가의 한숨 / 그 무거운 숨을 /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을까요 / 당신의 한숨 / 그 깊일 이해할 순 없겠지만 / 괜찮아요 / 내가 안아 줄게요 / 정말 수고했어요 //
인생 이력서 (07-17-2020)
누구나 한번뿐인 인생을 살다가 생을 마감할 즈음이면 <인생 이력서>를 써야 한다. 굳이 회고록이나 참회록 같은 거창한 집필은 아니더라도 지구별에 내려 보내 주신 그분의 뜻에 얼마나 부합되는 삶을 살았는지 스스로 정산은 해야 한다. 천국에 갈지 못 갈지 <천국 입국심사>는 그분만이 심판하시겠지만, 스스로 살아온 생애를 반추하고 회개하여야 한다. 자신의 생애는 하나님 이외에 자신만이 제일 잘 알 수 있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 살았든, 죄 없는 자 그 누구인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아무리 순간적 잘못을 했더라도 목숨마저 바쳐 그분께 용서를 구한 것일까? 나는 그를 1983년 그가 인권 변호사 초년 시절 서초동 그의 사무실에서 처음 만났다. 가난한 시민 운동가이며 인권 변호사라고 친구 몇 놈들이 모여 후원회를 만들었던 기억이다. 허름한 사무실과 싸구려 집기류, 앉기에도 불안한 낡은 소파 등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는 선한 사람이라 믿는다. 나보다 학번은 2년 후배이지만 민생 이념이 투철했고 올곧았다. 200여개 시민단체 결집 운동, 국회의원 불법 낙선운동, 아름다운 재단 설립, 결식아동 결식제로 운동, 과거사 청산 운동, 국가보안법 철폐운동, NGO 운동, 희망학교 운동, 2030 희망 프로젝트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흔한 말로 돈도 되지도 않는 그런 운동들을 그는 한평생 가난한 민중들의 편에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 항상 멀리서 마음으로나마 응원하고 격려했는데..
시민운동가나 인권 변호사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배고픈 극한 직업이다. 40여년 이상을 가난한 민중의 입장에서만 한길로 걸어온 사람이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한다. 특히 정치권은 많은 유혹이 존재한다. 권력은 돈과 직결된다. 그러나 그는 <정직>한 사람이었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명예>를 소중히 생각하고 <용기> 있는 정치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몇 안되는 정치인들 중에서, 노무현, 노회찬, 박원순 3명이 벌써 스스로 운명을 달리 했다. 범부들에게는 대수롭지 않는 사소한 결함 마저도 스스로가 용서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살기가 참으로 힘든 세상이다. 안타깝고도 비통할 뿐이다. 참으로 수고 많았고 이제 편히 잠드소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나는 요즈음 코로나19로 본의 아니게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넷플릭스의 역사 드라마나 다큐를 즐겨본다. <로마제국>, <라스트 킹덤>, <아르나우의 성전>, <오스만 제국의 꿈>, <쿠바 리브레 스토리>, <프런티어>, <마지막 차르>, <더 크라운>, 등등 도움 되는게 너무 많다. 인간은 누구나 역사의 한 순간에, 지구별의 어느 한 구석에서 잠시 피었다가 지는 인생들이다. 만약 내가 그 영화의 시대에 그곳에서 지금처럼 이름없는 가난한 민중으로 살았다면 나는 나의 이력서에 무엇을 기록하고 죽었을까?
내가 젊은 시절 대기업에 근무하던 시절, 나를 각별히 총애했던 사업본부장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기업은 치열한 생존경쟁의 전쟁터이다. 너의 이력서에 6개월 단위로 새로운 이력을 기록할 수 없다면 너는 조직에서 도태될 것이다. 승진을 하든, 상을 받든, 자타 공인할 업적을 세우든, 끊임없이 변해야 하고 향상되어야 한다.”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누구보다 빨리 승진했고, 많은 상을 받았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여러 핵심 부서의 장도 되었다. 하지만 고속 승진의 반대급부는 동료들의 시샘과 모함도 있기 마련이다. 나의 인생 이력서에 한 줄 첨가하기 위해 얻는 만큼 잃는 것도 많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 것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각자의 선택이다.
시간이 되시면 넷플릭스의 <아르나우의 성전>을 보기 권한다. 14세기 스페인 바르셀로나가 시대적 배경이다. <바다의 성당>이라는 별칭의 <산타 마리아 데 라마르>성당의 역사다. 이름도 빛도 없이 모진 삶을 감내하며 살아간 힘없는 민중들의 이야기다. 신에게 절대권력을 부여 받았다던 중세 봉건 영주들과 귀족들, 농노의 신부는 결혼 초야를 신랑이 아닌 영주에게 처녀성을 강간당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영주와 농노 간의 불평등, 유럽을 휩쓴 페스트 병,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로 학살당하는 유대인 공동체, 종교재판소의 잔혹한 이단 심판과 성직자들의 위선, 자식만큼은 영주의 종이 아니 자유인으로 키우겠다는 아버지의 일념, 주인공 아르나우를 아들이라 부르지 못하고 창녀가 된 어머니의 기구한 운명,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는 결혼 제도의 모순, 전쟁으로 인한 영주와 귀족들의 빚을 사채놀이하는 유대인들의 상술, 주인공의 인생 반전, 사랑, 우정, 음모, 배신 등등.. 하루하루 먹고 사는게 삶의 전부인, 그때나 지금이나 민중들의 삶이 고달프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 주인공은 농노에서 자유인으로, 채석장 인부에서 환전상으로 부자가 되지만, 그는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고, 민중들의 편에서 일하면서 시민들의 영원한 안식처 <바다의 성전, 산타 마리아 성당>을 건축하고 생을 마감한다. 그는 어려울 때면 항상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기도하고 간구한다.
정직과 성실! 명예와 용기! 사랑과 믿음! 이것만이 돈 없고 권력 없는 민중들의 가치관이다. 그렇게 살 수는 없었더라도 살려고 노력했다는 삶의 여정들이 우리의 이력서에 기록되기를 소망할 뿐이다.
만약(if) (07-10-2020)
어느 시대보다 많은걸 누리고 사는 현대인들은 왜 점점 더 우울해져 가는가? 갖고 싶은 욕망의 팽창과 불확실한 내일이 오늘의 비교와 열등의식을 만들고, 지나가 버린 어제의 후회와 원망으로 자학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 어쩌면 현대인의 삶 자체가 불안의 연속 인지도 모른다. 누가 내일을 예단하고 보장할 수 있는가? 그래서 인간은 신을 찾게 되고 신에게 의지하며, 함께 모이기를 힘쓰고 기도하고 간구한다. 그런데 언제 끝날지 기약 없는 코로나19로 인해 서로 만날 수 없고, 끼리끼리 두려움과 외로움을 함께 공유할 수 없으니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는 것은 아닐까?
우울증(depression)은 세로토닌, 멜라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등, 신경전달 물질의 화학적 불균형으로 일어나게 된다. 세로토닌은 감정표현과 밀접하여, 부족하면 감정이 불안정하고 근심 걱정이 많아져서 충동적 성향을 나타내게 된다. 멜라토닌이 부족하면 수면 부족, 불면증에 시달린다.
우울증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다. 첫째 자존감의 결여다. 자존감(self-esteem)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서울대병원 윤대현 교수는 “자존감은 <내가 이룬 것>에서 <내가 목표로 한 것>을 뺀 값이 클수록 높아진다. 자신의 목표가 지나치게 높으면 수치가 마이너스로 떨어져 비록 이룬 것이 많다 할지라도 자존감은 낮은 것이다.” 자존감은 주관적이다. 현대인은 물질적 목표만을 너무 높게 둔다. 내 삶의 가치 기준과 목표를 어디에 둘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우울증은 뇌졸증, 관절염, 암, 당뇨병, 고혈압, 심장질환 등을 동반할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를 약으로 다스리든, 마음 수련으로 치유하든, 스스로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면, 누구나 한번은 <만약, if>을 생각한다. <만약>에는 <과거형>과 <미래형>,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살아온 지난날에 대한 <if>, 즉 <과거형 만약>은 <만약 ~~ 했었더라면>과 <만약 ~~ 하지 않았더라면>일 것이다. 삶은 수많은 <선택과 결정>의 과정이다. 살아온 세월이 길면 길수록 삶의 흔적들은 곳곳에 상처를 남긴다. 후회와 연민, 착오와 실수, 아쉬움과 미안함, 원망과 고통, 무지와 게으름, 아집과 독선 등등.. 특히나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잘못된 판단과 결정은 두고두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후회하는 것이다. 하지만 학창시절 막걸리 마시며 많이도 불렀던 <과거는 흘러갔다>의 가사처럼, 과거는 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잘못된 과거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잘못을 반추하고 자성하여야만, 유사한 <미래형 만약>에서 반복되는 실수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나의 벌거벗은 과거 모습을 직시하고 사유하게 한다. 나의 과거는 내가 제일 잘 볼 수 있다. 참회 속에 감사와 은혜가 있다. <만약 ~~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내가 있었을까?
<미래형 만약>은 희망과 소망이다. <만약 ~~ 할 수 있다면>은 기도가 되고 기다림이 된다. <미래형 만약>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사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모든 과학과 신화는 <만약>이라는 가설로 시작된다. <만약>이 없다면 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이 존재한다고 믿기에 염원과 바램이 있는 것이다. 지금은, 현재는 <~~ 임에도 불구하고>, <Even if ~~>의 삶을 살고 있지만, 미래의 <만약>을 그분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라 믿기에 오늘을 견디는 것이다. 오늘의 삶이 그대를 힘들게 하고 속일지라도, 내일의 <만약>에 믿음과 소망을 걸고 있으면, 힘들어도 살아진다. <미래의 만약>은 신이 인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시는 선물이다. 미래의 만약을 준비하고 기다리자. 가자, 이 거친 황야를 지나 저 푸른 꿈의 나라로..
두 편의 시를 소개한다. 2013년 칼럼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에밀리 디킨슨의 <만약 내가>라는 시다. “만약 내가 한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 나 헛되이 사는 것이 아니리. / 내가 만약 누군가의 아픔을 덜어줄 수 있다면, / 만약 내가 누군가의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 혹은 기진맥진 지쳐있는 한 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정글북의 저자 러디어드 키플링이 아들에게 쓴 <만약(if)>라는 시다. “만약 네가 모든걸 잃고 모두가 너를 비난할 때 / 냉정을 유지할 수 있다면 / 만약 모든 사람이 너를 의심하고 또한 그들의 의심을 인정해야 할 때 / 네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다면 // 만약 네가 기다리면서 기다림에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 속임을 당하더라도 속임으로 답하지 않는다면 / 그리고 너무 선한 체 너무 현명한 체 않는다면 // 만약 네가 꿈을 꾸면서도 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 또한 어떤 생각을 하면서도 그 생각을 목표로 삼지 않을 수 있다면 // ~~ // 그리고 만약 네가 용서할 수 없는 1분간을 / 60초의 춤추는 시간으로 채울 수 있다면 / 이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너의 것이며 / 그리고 더욱이 너는 한사람의 어른이 될 것이다. 내 아들아!” 마음을 활짝 열고 푸른 하늘을 보세요..
타인의 고통 (07-03-2020)
6월 27일 기준, 코로나19 세계 확진자 수가 1천만명, 사망자 수는 5십만명, 치사율은 5%인 반면에, 미국은 확진자 250만명, 사망자 12만 5천명, 하루 확진자 4만명을 넘어섰다. 믿을 수 없다. 자칭 최강 선진 국민이라는 트럼프 행정부와 미국인들의 의식 구조를 말이다. 코로나19 감염은 육체적 고통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해고와 실직으로 경제적 고통을 당하고 있다. 미국인 3명중에 한명은 우울증세를 앓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해수욕장 인파는 미어터지고, 술집이 북적거리고, 마스크는 안쓰고, 기를 쓰고 모이기에 힘쓰니.. 이건 무슨 광적 우월주의인가? 미국 국립 전염병 연구소장 앤서니 파우치 박사는 “여러분이 궁극적으로 취약한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에게도 책임이 따릅니다. 우리가 이 전염병을 끝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전염 과정의 일부임을 알고 사회적 책임을 함께 느껴야 합니다.”
현대인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또 무관심하며 또 무지하다. 수전 손택(1933~2004)의 저서 <타인의 고통>에서 인용한다. 그녀는 1955년 22살에 하버드 대학 박사가 되고 파리대학, 옥스퍼드 대학, 소르본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투쟁적 삶>을 살았다. 아버지는 폐결핵으로, 어머니는 폐암으로 고아가 된 이후, 본인 스스로도 43세에 유방암과 많은 질병으로 고생한다. 그녀의 대표작 <타인의 고통>도 1998년 자궁암 선고를 받고 구상한 작품이다. 그녀는 이후 골수성 백혈병으로 고통 받다가 2004년 사망했다. 그녀는 싱글맘으로 고달픈 삶을 산다. 밥벌이로 글을 쓰면서 소설가, 영화감독, 문학비평가, 사회운동가로 열정적인 삶을 산다. 세상의 전쟁과 야만, 폭력과 빈곤, 차별과 테러리즘에 저항하면서 “우리 아닌 다른 사람이나 우리의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에 감응할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1960년대 미국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에 적극 참여 하면서 “미국은 대량학살 위에 세워진 허깨비”라고 비난했다. 1988년 서울을 방문해, 군사독재에 항거하다 구속된 김남주 시인 등, 문인들 석방을 세계에 호소했다. 1993년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벌어지자, 전선에서 불과 300미터 떨어진 극장에서 사뮈엘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했다. 2001년 9.11 테러사건 이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 선포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공격하자, 이를 애국심으로 포장된 <사이비 선전포고>라고 비판했다. 2011년3월 다국적군이 리비아를 공습할 때, 많은 사람들은 안방에서 실시간으로 시청했다. 사람들은 전쟁의 실체를 알지 못하고 테크노 전쟁을 감상할 뿐이라고 했다.
전쟁의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들은 구경꾼이 된다. 재탕 삼탕으로 미디어가 전쟁 장면을 보여주는 동안, 영화가 줄 수 없는 리얼리즘과 스릴, 흥분을 느끼게 한다. 남의 집이 불타는 장면을 먼 발치에서 팔짱을 끼고 바라보는 팔자 좋은 구경꾼이 되는 것이다. 남의 불행에 대한 연민, 잔학함에 대한 동정만큼이나 인간에게는 자연스런 것이라는 것이다. 수전 손탁은 “남의 고통에 대한 <관음증적 향락>이야말로 인간을 도덕적 괴물로 만든다”고 비판했다. 그녀에게는 약자에 대한 따뜻한 연민과 강자에 대한 분노가 있다.
손탁은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있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고통이 있고,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공감 능력>이다. 타인의 고통으로부터 외면한다면 더는 <우리>라는 말을 당연시해서는 안된다.” 그녀는 <소멸될 존재>에 대한 무한한 연민을 느끼고 그들을 옹호했다. 문제가 생기면 죽기살기로 고민하고, 성찰하고, 그리고 곧장 행동에 나섰다. 그녀가 사는 방식이다. <공감>과 <새로운 관심>이 우리가 지금과 다르게 더 나아지려는 열망을 가지게 하고, 우리를 변화하게 한다고 말한다.
손탁은 전쟁과 기아를 주제로 한 사진들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사진 <프레임 안>에 있는 기만과 <프레임 밖>에 있는 진실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사진들은 작가의 의도와 정치권력, 미디어 세력에 의해 의도된 조작이라는 것이다. 언제나 전쟁의 참혹함에 노출된 사진들은 아프리카인, 아시아 소수인종들일 뿐, 백인들의 참혹한 얼굴들은 노출되지 않는다. ‘사진을 찍다’와 ‘총을 쏘다’는 같은 단어인 쏘다(shot)라는 단어를 쓴다. 1994년 퓰리처상 수장작 ‘수단의 굶주린 소녀’을 우리는 기억한다. 고개를 떨구고 몸을 웅크린 소녀, 죽음을 앞둔 소녀 뒤에서 응시하는 독수리 사진. 그리고 나체의 몸으로 폭탄이 떨어지는 전장터를 울며 도망치는 월남전 소녀 사진, 제국주의 거대 자본의 노동 착취에 시달려 뼈만 앙상한 아프리카 소년의 사진 등등.. 그런 사진들의 조작 여부를 떠나, 대다수의 우리는 연민을 느끼는데 멈추거나, 열악한 환경에 살지 않는 우리의 삶에 감사와 안도로 곧 잊어버린다. 전쟁과 기아의 폭력적이고 참혹한 순간의 사진만 기억할 뿐,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무감각해 지는 것이다.
손탁의 말처럼 “타인과 공유하는 이 세상에 인간의 사악함이 빚어낸 고통이 얼마나 크고 많은지 인정하고, 그런 자각을 넓혀 나가야 한다.” 우리가 고민없이 매일 먹는 농수산물들과 커피가 어떤 경로를 거쳐 왔는지 윤리적 고민도 해야 한다. 수많은 타인의 고통이 나와 관계하고 있음을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교훈으로 자각해야만 한다.
위기와 기회 (06-26-2020)
6월26일부터 펜실베니아 66개 카운티가 모두 그린 단계로 바뀐다. 대부분 업종의 정상 영업이 가능한 것이다. 3~4개월 동안 한인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맘엔팝 비즈니스들의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특히나 인종차별 폭동과 약탈로 뷰티 서프라이 등 대규모 스탁 비즈니스 업체들은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하지만 미국의 코로나19 사태가 안정화는 커녕, 남서부 지역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미국 확진자 2백3십만명, 사망자 12만명을 넘어섰다. 향후 한인 맘엔팝 비즈니스들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유일하게 코로나19 기간 동안 매상이 늘어난 곳은 먹는 업종들(Food Business)이었다. 대표적으로 Breakfast, 튀김&Seafood, 과일, Beer&Deli, 맥주도매상, Convenience & Deli 등의 업종은 코로나 이전 2019년 매상 대비 70%~130% 수준을 유지했다. Pick & Delivery를 전문으로 하던 동종 사업체들은 200%까지 대박이 난 곳들도 있다. 물론 각종 레스토랑이나 Bar, 셀러드바 등, 앉아서 먹는 업종들이 매장을 오픈할 수 없었던 반대급부일 수도 있다. 또 대형 슈퍼마켓들이 일시적 영업 제한을 한 영향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회사원들이 재택근무, 임시 휴직, 실직 등으로 집에 머무는 탓에 세탁소나 Drop Store등도 결정적 피해를 보고 있다. 네일 가게도 직격탄을 받았다.
아마도 향후 상당 기간은 사람이 모이는 곳을 피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더구나 재선에만 미쳐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 사태를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방치한 상태나 다름 없기에, 얼마나 상황이 더욱 악화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코로나 백신이 개발되어 보급되는 그날 부터가 정상 영업의 D-Day일지 모른다.
역사적으로나 시대적으로나 위기 상황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는가? 나의 삶을 되돌아 보아도 몇번의 크나큰 위기 상황을 피할 수 없었다. 어쩌면 삶의 하루하루가 순간순간이 위기를 동반하고 있다면 과장일까? 케네디 연설문 중에 “중국인은 <위기(危機)>를 두 글자로 씁니다. 첫 자의 위(危)는 위험(Crisis)의 의미이고, 둘째의 기(機)는 기회(Opportunity)의 의미입니다. 위기 속에 위험(Danger)을 경계하되, 그 속에 기회가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또 처칠은 “낙관주의자는 위기 속에서 기회를 보고, 비관주의자는 기회 속에서 위기를 본다.” 라고 했다. 즉 위기와 기회는 항상 함께 상존하는 것이며, 어떻게 대응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라는 의미다.
공부 삼아 <위기와 기회>와 관련된 사자성어(四字成語)를 사업 측면에서 살펴보자. <부위정경(扶危情傾)> – 위기를 맞아 잘못됨을 바로 잡고 나라(사업)를 바로 세운다는 뜻. <전화위복(轉禍爲福)> –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 어떤 불행한 일이라도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힘쓰면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 손자병법의 <병형상수(兵形象水)> – 흐르는 물처럼 주변 형세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해야 전투에서 이길 수 있다는 뜻. <자강불식(自强不息)> – 자신의 목표를 향해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쉬지 않는다는 뜻. 이순신 장군의 <선승구전(先勝求戰)> – 전쟁 상황(사업환경)을 면밀히 파악하고,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핵심기술을 확보하는 등, 사전에 이길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도전해야 한다는 뜻. <역지사지(易地思之)> – 사업환경이 급변할수록 고객의 입장에서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뜻. <호시우행(虎視牛行)> – 목표를 세웠다면 호랑이 눈처럼 부릅뜨고 목표를 향해 황소처럼 묵묵히 매사 신중하게 걸어가라는 뜻. <우공이산(愚公移山)> – 남이 보기에는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지만, 한가지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뜻.
결국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병형상수의 지혜와, 역지사지의 고객에 대한 배려와, 자강불식의 의지를 갖추고, 우공이산의 자세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도 매년 한인 맘엔팝 비즈니스 트랜드에 대해 나 나름대로 분석 예측하였다. 크게 잘못 판단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한인 각 사업체의 이익과 직결된 문제들이고 극히 예민하고도 조심스러운 부분이라 더욱더 냉정하게 말하지 못함도 있거니와, 사업 트랜드는 시간과 환경, 고객에 따라 여러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High Risk, High Return>도 있지만, 나는 결코 권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여러분 각자가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주식이나 부동산이나 사업체나 모두 결정해야만 할 시기와 기회가 있다. 결심이 서면 손절매(損切賣)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도 필요하다. 어쩌면 삶이나 사업도 타이밍인지도 모른다.
조선말기 민초들의 슬픈 노랫자락이 있다. “갑오세(甲午)세 가보세, 을미(乙未)적 거리다 병신(丙申)되면 못가리.” 갑오년(1894년) 제폭구민(除暴救民) 기치로 <동학혁명>에 나서니, 수세에 몰린 지배층들이 수습책으로 갑오개혁을 추진한다. 을미년(1895년) 일제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을미사변>이 발생하고, 병신년(1896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난(아관파천)을 간다. 민중의 혁명도 결국 타이밍이다. 때를 놓치면 모든게 헛되도다. 손님들 중에도 매매 타이밍을 놓쳐서 크게 후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대는 어쩔거나, 어쩔거나..
그저 사랑한다면 (06-19-2020)
화양연화(華楊年華).. 꽃다운 시절, 꽃다운 나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말함이다. 당신의 화양연화는 언제인가?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순간일 것이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은 언제일까?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랑과 이별이 있었을까?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데는 셀 수도 없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평소에 보지않던 드라마 <화양연화>를 보았다. 오늘로 종영되었는데, 작가의 섬세함과 서정적인 연출로, 아내와 오랜만에 흘러간 우리만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스라히 기억에서 묵혀 두었던 불 같은 연애 시절이 새삼스러움이다. 아내는 그 당시 내가 했던 연애 대사들을 놀랄만큼 모두 기억하고 있음에 소름끼칠 정도였다. 무서운 분이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잊지못할 추억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지금 사랑하는 내 아내와 40여년 전, 사랑을 하였고 언제라도 항상 이별할 준비를 하였다. 내가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20대 공군본부 번역 장교 시절이었다. 아내는 공군본부 번역장교실의 일본어 선생님이었다. 그 당시 번역실 위관장교들은 모두 미혼이었고, 선생님도 일본에서 10년만에 막 귀국한 미혼이었다. 당연히 젊은 장교들에게 여선생님의 인기가 많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첫 수업시간에 각자 통성명을 하는데 나와는 동성동본이었다. 날이 샌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동성동본(同姓同本)은 법적으로 결혼을 할 수 없었다. 당연히 서로 관심 대상에서 열외였다.
그런데 수업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이 동향이어서 같은 버스를 타게 된다. 자연스레 부담없이 서로 대화를 하게 되고, 만남이 이어지고, 그러던 어느 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당연히 고통도 깊어진다. 일본어 선생님은 내가 첫사랑 (본인의 고백?)이었지만, 나는 여러 번의 사랑과 여러 번의 이별을 한 사랑의 전과자(?)였다. 나는 마지막 여자와 이별을 하면서 내 스스로와 약속을 했다. 다시 또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만약 다음에 또 누군가와 사랑을 하게 된다면 결코 내가 먼저 이별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다시 사랑하게 된 여자가 동성동본 여자라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사랑해서도 안되고 사랑할 수도 없는 여자가 아닌가? 주변 친구들도 모두 헤어지라고 야단이다. 하루하루의 만남과 헤어짐이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
양가 부모님에게도 허락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양가 집안에서는 사정도 모르고 맞선을 보라고 성화였다. 선도 많이 보았다. 우리 두 사람은 사랑하는 날까지 사랑하다가 헤어지기로 한다. 하지만 사랑과 이별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건가? 마지막 이별 선고를 하고 돌아서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 다시는 당신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 결혼이 안되면 해외에 나가 살면 되고, 아이는 입양하기로 했다. 최종적으로 나는 양가 부모님을 설득하고, 결국 부모님의 이해와 도움으로 결혼을 하였다. 그날로부터 지금까지 40년이 흘렀다. 지금도 나는 습관처럼 매일매일 사랑을 하고 매일매일 이별 연습을 한다.
나는 사랑에 대해서만은 지금까지 자유로운 영혼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이별해야 한다는 지론이다. 사랑과 이별에 무슨 핑계와 변명이 필요하단 말인가? 누구나 살다가 사랑이 식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모든 재산은 아내 이름으로 해 놓는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이 구차스러운게 싫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내가 떠나면 된다. 내 몸뚱어리 하나면 그것으로 족하다. 오늘 사랑한다고 내일의 사랑을 누가 보장할 수 있는가? 사랑은 현재형이다. 사랑했기에 의리로 미련으로 아쉬움으로 살기는 싫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현재의 사랑을 할 뿐, 매일매일 이별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참 세월이 빠르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세월 같은데 어느덧 60대 중후반의 늙은 청춘이 되어 버렸네. 20대 청춘에 만나 서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 셋을 낳고, 그 아이들이 또 결혼을 하여 아이의 아이를 낳고, 우리는 어느덧 노부부가 되었네. 질풍노도와 같은 삶을 살면서 아프고 미안한 일도 많았고, 잘못 해준 일도 많았고, 후회스런 일도 많았는데.. 그래서 고맙고,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헤어지는 그날까지 더 많이 사랑하리라. 아직도 나의 심장은 청춘이며, 뜨겁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산다는게 별건가? 코로나가 아니라 그 할애비가 온다 해도 삶의 고통은 담담하게 받아드리면 된다. 누구나 그런 것처럼, 살다 보면 살아진다. 그저 지금 사랑할 수만 있다면.. 삶이 꽃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족하고도 감사할 뿐이다.
<화양연화>의 OST 한동근의 <그저 사랑한다면> 일부 가사를 소개한다. “하늘의 별은 나를 닮아서 /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죠 / 난 오늘도 어제 같아서 / 그대 곁에 맴돌죠 / 그저 사랑한다면 / 망설이지 말아요 / 그대 나와 같다면 / 아픈 내일이 와도 / 함께 있는 / 그 모든 순간들을 / 안아줄 수 있겠죠 / 그저 사랑한다면 //
개미 인생 (06-12-2020)
흔히들 민중들의 삶을 개미의 일생과 비교한다. 가느다란 개미허리를 질끈 동여매고 평생을 온 육신이 부스러지도록 반복되는 일만 하다가 죽는 인생이라 푸념한다. 우리 세대는 어려서부터 <개미와 베짱이> 동화를 성공과 실패의 상징으로 교육받아 왔다. 개미처럼 젊어서(봄, 여름, 가을)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히 일하면 노후(겨울)에 편안한 삶이 보장된다. 반면에 베짱이처럼 젊어서 놀고 게으르면 노년에 개미에게 찾아가 문전걸식하는 비루한 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색다른 버전으로 패러디 한다. 평생을 개미처럼 죽도록 일하며 사는 것은 극히 어리석고도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베짱이처럼 일찍이 자기 개성을 발굴하여 <1만시간의 법칙>에 따라 집중 노력하면 평생이 보장되는 성공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실제로 베짱이는 한여름에 놀고 먹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배필을 찾기 위해 목이 터져라 구애하는 소리이며, 실제 베짱이 생존기간은 6~7개월이어서 겨울철 개미를 찾아가 문전걸식할 일은 애당초 없다는 것이다. 또한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 가장 성공적인 삶이라 주장하는 현대판 패러다임이다. 개미나 베짱이나 공통된 점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요즘 같은 코로나19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는 개미처럼 죽도록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안정된 일자리를 민중들은 소망한다. 그래서 <개미 사회>에 대해 알아보자. 본 내용은 일명 ‘개미박사’라고 불리우는 최재천 교수 (국립생태원 원장,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저서 <개미 제국의 발견>과 <두 동굴의 이야기>에서 일부 인용함을 밝힌다.
지구상의 개미 숫자는 대략 1경마리(10의 16승) 정도이며, 개미 종류는 세계 1만2천종, 한국에 120종 정도가 서식한다. 전세계 개미들의 무게를 합산하면 72억5천만명의 지구상의 인구 무게보다 10배 이상 무겁다고 한다. 인간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 역사 25만년 중에서 농경사회로 접어든 것은 불과 1만년도 안되지만, 개미는 6천5백만년전부터 버섯 재배 농사로 식량을 비축했다는 것이다.
또한 개미사회는 인간사회와 매우 유사하다. 개미는 근면과 희생의 상징이다. 또한 개미 사회는 여왕 개미를 정점으로 철저한 <분업사회>인데, 그 기본은 <협동과 희생>이라는 것이다. 개미 각자의 직업도 다양한데, 노동자 일꾼개미, 군인인 병정개미, 여왕 경비대, 개미알 전담 보모, 사냥 전담꾼, 등등이다. 하지만 각 직업(직무)은 강제 차출제가 아니라 자발 지원제이다. 이들 개미 제국은 여왕의 절대 권력에 충성을 다하는 일개미들로 구성된 강력한 왕권중심 사회다. 인간들처럼 서로 왕이나 귀족이 되어 보려는 헛된 욕망을 가지지 않기에 평생 <평화가 보장>된 사회다. 각 개미 한 마리는 인간보다 보잘 것 없지만, 뭉치면 거대한 제국이 되니 과연 누가 만물의 영장이 될까?
그렇다고 여왕개미의 삶이 부러운 것만은 아니다. 종족 보존과 제국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여왕 개미끼리 죽고 죽이는 살벌한 결투를 한다. 처음에는 한 동굴에서 다른 여왕개미들과 공존하여 연합제국을 이룬다. 여왕 각자가 일개미들을 산란하고 자신의 영양분들로 일세대 일개미들을 양육한다. 일세대 일개미들이 성장하여 식량 자급자족이 될 때까지 서로 연합군이 된다. 하지만 하늘에 태양이 하나이듯이, 때가 되면 여왕 개미들 끼리 결투를 하여 최후의 승자가 제국을 통치하는 것이다. 즉 개미 제국은 처음에는 <동맹>을 맺고 공생전략을 펼치다가 자립하면 경쟁과 도퇴 과정을 거쳐 조직을 통합하고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개미도 식량을 비축하지만 독점하지 않는다. 공평하게 서로 나누고 서로 공유한다. 생산과 분배가 공평한 사회다.
현대사회 인간은 무한 경쟁시대에 살고 있다. 누구나 성장하면서 많이 듣는 이야기다. 적자생존, 약육강식, 아생살타, 지렛대 이론, 사다리 출세법, 일등만 기억하는 사회, 금수저와 흙수저, 기회는 기다리는 자에게 온다, 물 들어올 때 배 저어라, 등등.. <총,균,쇠>의 작가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인류의 비극은 <농경사회>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한 곳에 정착하게 되고, 농산물을 비축하게 되고, 더 많은 농작물을 경작하기 위해 동물들을 사육하게 되고, 더 많은 영토가 필요하고, 남들보다 더 많이 비축하기 위해 빼앗고 침략하게 된다. 이것이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면서 인간의 <이기적인 유전자>는 <욕망이라는 전차>를 타고 절벽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더 많이, 더 빨리..>
이제는 인간의 욕망을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 자연과 함께,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 개미에게서 인간이 배울 점은 <협동과 희생>이다. 최재천 교수는 <경쟁(Competition)>과 <협동(Cooperation)>의 합성어 <경쟁적 협동>, 즉 <경협(Coopetition)>이라는 신조어를 제안한다. 악어와 악어새, 꽃과 곤충들처럼 자연과, 이웃과 <공생관계>가 되어야 한다. 산업혁명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신자본주의가 <제로-섬(Zero-Sum)> 시대였다면, 코로나 포스트 펜데믹 시대는 협동과 선의의 경쟁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생명체와 함께 공생하는 <윈-윈 (Win-Win)>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평생 일만 하는 개미를 폄하할 것이 아니라, 평생 일할 수 있는 건강과 기회를 주신 아버지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숨을 쉴 수 없는 사회 (06-05-2020)
숨을 쉴 수가 없다. 숨이 막힌다. 언제나 한번 제대로 숨을 쉴 날이 올까? 코로나19 <포스트 팬데믹 (Post-Pandemic)> 사회의 엄청난 변화는 예상을 초월할 것이다. 5월31일 현재 미국 총 감염자는 1백6십만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10만명을 이미 넘었다. 멀지 않아 미국 감염자는 2백만명, 사망자는 15만명을 넘어서겠지.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종료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국가간 전쟁이나 국가재난, 천재지변, 경제공황 등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언제나 힘없고 소외된 민중들이다. 이미 미국은 4천만명 이상의 실업자가 발생하였고, 그에 따른 부녀자, 결식 아동들, 쇠약한 노인들, 소수인종들, 불법 체류자들이 모두 가장 큰 희생자들이 된다.
이미 세계는 신자본주의와 시장근본주의의 종말을 고하고 있다.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 현상은 세계의 공통된 화두다. 양극화로 인한 사회 불평등과 각종 차별은 정의와 평등을 상실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5월25일 발생한 미국의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단순한 백인 경찰의 흑인 살인사건이 아닌, 미국의 오랫동안 잠재되어 왔던 <인종 차별주의>에 기인한다. 뿐만 아니라 소득의 불균형, 분배의 불공정과 악순환, 불평등과 차별은 불만과 소외감으로 마침내 민중들은 분노하는 것이다. 그 불만과 분노는 폭력과 시위로, 폭력은 방화와 파괴, 폭동과 약탈로 이어진다. 이 사건을 도화선으로 미국 전역은 카오스(Chaos-대혼란)시대로 접어 든 것이다.
5월31일 현재 미국 전역 140개 이상의 도시에서 시위가 발생했고, 각 도시마다 상점들과 건물들이 불타고 약탈당했다. 1992년 LA 폭동 이후 최악의 폭동이라고 하지만,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우리가 사는 필라델피아 소방 당국도 토요일 하루 동안 703건의 비상 출동과 156건의 화재 사건이 발생했으며, 다운타운 대형 매장들은 대부분 약탈과 파괴가 이어졌고, 통행금지가 발효되었다. 6월1일 월요일 정오쯤, 필라델피아 다운타운에 나가 보았다. 차량과 사람이 거의 없는 유령의 도시였다. 대형 상점들은 이미 약탈당한 상태였고 빌딩들 대형 유리창들은 합판 가림막으로 가리워져 있었다. 통제된 거리는 경찰과 방위군들만 상주하고 있었다. 미국의 시위는 방화와 약탈로 이어지는게 큰 사회적 문제다. 특히 미국은 개인 각자가 총기와 무기류를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당장 한달 후, 6개월 후, 일년 후가 어떻게 될지 걱정을 넘어서 두렵기 까지 하다. 신자본주의 사회의 서민들은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산다.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도 없다. 현대판 노예다. 지금 당장이야 미 정부가 2조달러를 풀어 경제 부흥 정책을 실시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경제 부흥이 아니라 개인 및 중소 사업체들의 파산 방지 정책에 불과하다. 미정부의 기본 생활지원금, 실업 급여, 중소 자영업자들 소액 장기대출 지원 등을 하고 있지만, 서민들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미국 행정부는 결국 무리하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묵살하고 지역 사회를 오픈할 수 밖에 없다. 그때 다시 코로나19 팬데믹이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다행히 미국은 마음 먹으면 무한정 달러를 찍어낼 수가 있으니 <국가부도>가 나지는 않겠지만, 결국은 국민 모두의 빚이다. 거기다 미국 국가 최대 위기인 코로나 사태에 세계인들의 조롱거리인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하버드 국제정치 경제학 대니 로드릭 교수는 <포스트 팬데믹> 세계경제 3대 트랜드를 이렇게 말한다. 첫째 <정부 역할 확대>, 둘째 <초세계화 퇴보>, 셋째 <경제 성장률 둔화>가 수년간 계속 될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불평등과 경제 불안정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역할과 개입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신자유주의 시장개방과 원칙에 맡길 수 없다. 누가 대통령이 되고 국가 지도자가 되느냐 에 따라 국가위기 극복의 승패가 좌우된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 <보편적 기본 소득 제도>, 중산층 재건 등이 주요 이슈다. <초세계화>와 제국주의는 <미-중> 무역전쟁, 인종과 민족주의, 문화주의 차별을 부추겨 왔다. 이제는 국제협력과 합리적 조정, 세계 공중 보건, 국제적 환경 합의 등이 큰 이슈이며, 세계인 모두가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 트럼프만이 국제협력기구들에서 탈퇴하고 분열을 조장하고 자국 국익만의 우선 정책을 외친다. 트럼프는 세계 지도자의 이단아 이며, 반드시 퇴출되어야 한다.
이제 지구촌 국가들은 하나가 되어 함께 고민하고 공감하고 협력함으로써 이 위기를 잘 극복해야 한다. 로드릭 교수는 “세계 경제의 운명은 바이러스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촌 인류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라고 했다. 물론 이 또한 지나 가겠지만, 미국은 지도자를 잘 뽑고, 국민들이 서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세계인의 모범이 되어야만, 이때까지 미국 선조들이 지은 수많은 죄 (인디언 대학살과 영토 찬탈, 흑인 노예 및 소수인종 착취, 한국전, 월남전, 이라크전, 등등 수많은 세계 전쟁과 약탈 등등)를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 미국을 불쌍히 여기소서. God Bless World!!
사랑방 손님 (05-29-2020)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많은 대다수 서민들은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감수하고 인내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서민 가정 부부들이 집에 감금된 상태이다 보니, 부부싸움으로 인한 가정 불화가 큰 사회적 이슈라고 한다. 어느 집이나 부부싸움을 한번도 하지 않는 집이 있을까마는 어찌하면 부부싸움을 줄일 수 있을까?
현대사회는 나홀로 가구수가 전체 가구수의 3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세 집 중 한집이 미혼이거나 이혼했거나 간에 혼자 산다. 더 심각한 것은 점점 나홀로 가구 비중이 높아져 가며, 이는 저출산, 미출산으로 이어져 기형적 사회가 되는 것이다. 거기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인공지능 AI 미남 미녀 까지 곧 등장한다면 큰일은 큰일이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라고 하지만, 부부싸움은 하되, 잘 싸워야 한다. 잘 싸우는 방법은 시중 잡 명의들이 많아 뾰족한 대책이 없다. 사람의 성격 마다, 각자 살아온 배경 마다, 부부 싸움의 성격 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크게 보면 첫째, <경제적인 문제>, 즉 그 놈의 돈 문제로 인해 서로의 자존심과 감정을 건드리고 무너뜨린다. 부자라고 돈 때문에 싸우지 않을까? 부자가 이혼할 확률이 더 높다. 둘째는, <역할과 책임> 문제다. 각자 직분에 대한 책임과 의무 때문에 싸운다. 돈 벌어 온다고 하늘 같이 대접받던 시절은 이제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다. <가사와 육아 분담>이 당연시 되는 시대다. 주변의 인물들과 비교대상이 되면 싸움의 갈등은 겉잡을 수 없다. 셋째는 <주도권 다툼>이다.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 하나로 만들었다는 둥, 여자와 북어는 3일마다 한번씩 두들겨야 한다는 둥, 여자는 신혼 초에 꽉 잡아야 한다는 둥, 이런 망언(?)과 망발은 자신의 명을 재촉할 뿐이다. 역사적으로도 영원한 승자는 없다. 절반의 승률이 가장 이상적이다. 넷째는 <성적(性的) 갈등>이다. 섹스는 부부만의 은밀한 문제이므로 서로 솔직하고 서로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섹스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 둘 모두 만족하려면 서로 노력 개발하고 필요하면 전문가 상담도 받아야 한다. 이혼의 가장 많은 사유는 성격(性格)차이가 아니라, 성적(性的) 차이라 할 정도다. 그 외에도 자식 문제, 주변 인적, 환경적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싸우는데 이유를 찾자면 천 가지, 만 가지도 있을 것이다.
부부싸움을 잘 싸운다는 의미는 현명하게 잘 해결한다는 의미와 상통할 것이다. 여러 보편적 처방이 있겠지만, 1단계, 먼저 흥분을 가라 앉혀라. 말 실수를 줄일 수 있다. 2단계, 부드럽게 해당 이슈에 국한하여 문제를 제기하라. 다른 이슈로 확산시키면 문제 해결의 본질을 흐리게 되고 감정적으로 싸우게 된다. 일방이 흥분하면 싸움을 중지하라. 3단계, 상대방의 반론을 충분히 경청하고 존중하라. 부부싸움의 전형은 상대방 말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 할 말만 한다는 것이다. 만만하게 보는거지 뭐.. 충분히 경청하고 이해하고 받아드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4단계, 화해를 시도하라. 화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자존심이고 뭐고 계속 같이 살려면 먼저 화해하는 자가 승자이며 강자이고, 부드러운 자다.
나도 결혼한지 38년이 지났고, 사귄 햇수로는 40년이 지났다. 그동안 몇번의 부부 싸움은 있었을 거고, 주로 자식 문제가 주된 싸움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거의 우리 부부는 싸우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내의 극한 인내심과 나의 특이한 <아내 사랑법> 때문이다. 나는 아내를 처음 만날 때부터 결혼을 전제하지 않았다. 결혼할 수 없는 상대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 하겠지만, 언제라도 헤어짐을 전제로 한 사랑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인 셈이다. 그래서 언제나 내 아내는 <사랑방 손님>과 같은 분이었다.
<사랑방 손님>은 내가 <초대한 귀한 손님>이다. <내 곁에 있어만 주어도> 좋은 사람, <나와 함께 할 수만 있어도>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초대한 귀한 손님에게 돈을 벌어오라, 밥해 달라, 설거지하라, 청소하라, 빨래하라, 내 아이를 낳아 달라, 일방적으로 성관계를 하자, 등등.. 말이 되는가. 귀한 손님에게 무엇도 요구할 수도 없고, 요구해서도 안된다. 사랑방 손님은 언제라도 본인이 원하면 떠날 수 있다. 붙잡을 수도 없고, 매달릴 수도 없다. 그래서 <있을 때 잘 해야 한다>. 내가 벌어온 돈을 같이 나누어 쓰고, 내가 요리한 음식을 같이 즐겨 먹고, 같이 노래 부르고, 술 마시고, 같이 별을 헤고, 같이 밤을 지새우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나는 아내를 만난 첫날부터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일매일 아내와 <잘 헤어지는 연습>을 한다. 언젠가 내 곁을 떠나는 날, <덕분에 잘 쉬다 갑니다> 한마디면 족 하고도 족할 것이다.
그런데 <사랑방 손님>이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맛있는 요리도 해 주고, 내 이야기도 들어주고, 진심 어린 충고도 해주고, 진정한 친구도 되어주고, 나의 눈물이 되어 주기도 하고, 산책과 여행의 길동무도 해주고, 가끔은 잊지못할 내 사랑의 짝궁도 되어주고, 가끔은 용돈 하라고 돈도 슬그머니 쥐어주고, 등등.. 이런 사랑방 손님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단 말인가? 화날 일이 무엇 있으며, 싸울 일이 무엇 있으며, 섭섭할 일이 무엇 있을까? 내 곁에 있기만 하여도 좋은 사람.. 그런 사람이 사랑방 손님, 내 아내라는 사람이 아닐까? 나는 나의 분에 넘치는 복 받은 사람이다. 사랑방 손님 역할은 부부가 각자 바꾸어 생각하면 간단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귀한 사랑방 손님이다. 마음 먹기에 따라 태산도 움직인다. 당신은 <섬기는 자>? <섬김을 받는 자>?
불편한 휴가 (05-22-2020)
5월의 상큼한 바람과 창살에 내려 앉은 따뜻한 햇살,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이 아침을 싱그럽게 만든다. 학창시절 즐겨 듣던 경음악이 와이파이 스피커를 통해 강물처럼 흐른다. 야채 주스, 우유, 원두커피, 야채 샐러드와 견과류, 닭 안심살 스테이크 4쪽, 갓 구운 호밀 빵과 올리브유. 서니 사이드 업 달걀 후라이 2개, 그리고 브런치를 함께 준비하고 즐기는 나의 40년 혁명(?) 동지인 아내.. 부러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이 아름다운 아침을 축복해 주시는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하고도 감사할 뿐이다.
코로나19 사태로 3월 20일부터 아내도 다운타운 가게 문을 닫고, 나도 사무실 문을 닫은지 꼭 2개월이 지났다. 3월20일 기준으로 미국 코로나19 확진자가 15만명, 사망자 수가 3천여명이었는데, 불과 2개월이 지난 지금, 미국 확진자가 1백5십만명, 사망자가 9만명이 넘었다. 연방정부와 은행 신규 융자 업무가 모두 중지된 상태다. 진행중이던 모든 계약도 자동 중지다. 오직 이 사태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릴 뿐이다. 특별히 만날 사람도, 약속도, 전화도, 긴급히 처리해야 할 일도 없다. 하루하루 느긋함과 느림의 연속이다. 기다리고 기다릴 뿐이다.
어쩌면 내 65년 삶 중에 이렇게 오랫동안 쉬어본 적은 없다. 대부분의 휴가는 일주일, 길어야 2주일이었지만, 그 휴가 중에도 회사 업무는 계속 되었다. 대학생 때 나 홀로 배낭여행도 길어야 한달이었고, 여행 계획은 빼곡히 짜져 있었다. 가난한 배낭여행 자체가 치열한 삶이었고, 새로운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었다. 가장 부담 없는 휴가는 LG전자 재직시, 글로벌 기업인 하니웰 불 그룹의 아시아 최고 세일즈 상의 대가로 초대를 받아 우리 부부가 2주일간 중미에 위치한 세인트 마틴 (도미니카 공화국 경유, 프랑스 령)이라는 조그만 섬에 휴가 간 것이다. 한국 출발부터 도착까지 모든 일체의 비용이 지불되었고, 먹고 자고 마시고 파티에 가고, 운동하고 요트로 낚시하고, 말 타고 등등 요구만 하면 모두 가능하였다. 정말 꿈 같은 휴가 여행이었다.
하지만 이번 휴가는 언제 끝날지, 언제 다시 재발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두려움이다. 특히 나처럼 비축해둔 재산도 없고 노후 대책도 거의 전무한 사람은 두려움이 배가된다. 그렇다고 이 <불편한 휴가>를 어찌 하겠는가? 원하지 않던 <코로나19 휴가>를 피할 수가 없다면, 즐기기라도 해야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은퇴 후의 생활은 그림 그리기를 제외하고는 지금의 휴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함께 식사를>
부부가 매일 같이 아침과 점심을 겸한 브런치, 점심과 저녁을 겸한 <노을 디너> 식사를 준비하고 만들고 먹고 치우는 것이 가장 주요 하고도 큰일이다. 설거지와 청소, 빨래, 정리 정돈은 대한민국 군필 남성을 따라올 민족은 없을 것이다. 총은 몇번 쏘아 보지도 못하고, 허구한 날 얻어맞아가며 내무검사를 받던 용맹한 병사들이니까 말이다. 댁의 남편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시키면 다 한다.
<산책과 걷기>
하루에 두번 아내와 산책을 나간다. 늙으면 걸어야 한다니까, 하루 2만보는 걸어야 한다니까 걷고 또 걸어야 한다. 걷기만 할까? 다행이 미국은 공기 좋고 물 좋으니, 하지만 아내의 폭풍 수다를 각오해야 한다.
<독서 열공>
누구나 독서를 해야 한다. 아내는 요즘 고전 철학에 흠뻑 빠져 있는데, 고등학생 시절처럼 자기 방에 자기 책상을 마련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노트에 빼곡히 기록하는 모습이 귀엽기 까지 하다. 진작 그리 공부했으면 한 인물 낳을텐데..
<영화감상>
딸이 녹화해준 <추억의 명화 100편>을 가장 편안한 시간에 가장 편안한 자세로 감상한다. 다행인 것은 영화를 보고 나서 돌아서면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치매의 전조 현상이다. 나는 이 명화들을 내가 죽는 날까지 보고 또 볼 것이다. 주로 배경이 19세기, 20세기 중반까지의 영화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것은 거기서 거기더라. 또 넷플릭스에 가입하여 세계 드라마도 감상하고, 한국 다큐와 드라마도 감상한다. 정말 바쁘다. 바뻐.
<텃밭 가꾸기>
아내의 집착이 모두 모여 있는 곳이다. 화초 가꾸기, 야채 가꾸기, 잔디 손질하기, 잡초 뽑기.. 허리가 휘도록 일해야 한다. 평생 노예계약을 맺은 나의 실수다. 바닷물이 갈라지지 않는 한, 자발적 복종 뿐이다. 자유의지는 없다. 잘못하면 잔소리에 또 잔소리..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 고통을 은근히 즐긴다면, 나는 변태인가?
<노래방 즐감>
딸들이 노래방 기기와 온몸 맛사지, 발 맛사지 기구들을 선물로 가져왔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고 맨 정신으로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아내는 내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화류계 밤무대 생활을 떠난지도 어언 25년이지만, 왕언니가 부르라면 불러야 한다. 요즘 노래방 기구는 마이크 하나로 다 해결된다. 익어가는 밤에 부부가 포도주 한잔과 흘러간 노래 한곡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그것도 맛사지 받으면서.. 팔자가 폈구먼.. 모두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그날이 올 때까지..
마지막 편 <진실과 명상> (05-15-2020)
이제 유발 하라리의 3대 저서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의 수박 겉핥기를 끝맺으려 한다. 적어도 현재 진행중인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이후에 대한 인류의 보편적 사고와 가치는 달라져야 한다. 오늘을 사는 나 자신과 내일을 사는 후손들을 위해 반드시 그래야 한다.
<15. 무지>
인간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무지하다. 인간의 결정은 이성적 분석보다는 감정적이고 어림짐작으로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기 보다는 집단 속에서 사고한다. 따라서 집단을 비판하면 집단의 보복을 당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주인이 된 원인은 개인의 합리성 때문이 아니라, 대규모로 함께 사고하는 능력 때문이다. 개인이 알고 있는 지식은 <지식의 착각>일 뿐, 실제로 아는 것은 <집단적 사고>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합리성이나 개인성은 허구(신화)일 뿐이다.
<16. 정의>
정의감은 시대착오적이다.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도덕적 문제, 예를 들어 소득의 불평등과 양극화, 지구 온난화, 난민문제,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 질병 등등은 한 부족이나 국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는 도덕적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할 때 1. 이슈를 축소하거나, 2. 감동적 휴먼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거나, 3. 음모 이론을 짜거나. 4. 도그마를 만들어 우두머리를 추종하거나 그랬다. 하지만 미래의 정의는 달라야 한다.
<17. 탈진실>
현대는 물론 과거에도 인간은 <탈진실>의 시대를 살아 왔다. 정치선전, 거짓 정보, 가짜 뉴스 등등, 호모 사피엔스의 힘은 <허구>를 만들고 믿는데서 온다. 허구를 통해 법을 지키고 협력도 할 수 있었다.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허구를 사용한 것은 비단 종교만이 아니다. 나치 선전 총책 요제프 괴벨스의 말처럼 “한번 거짓말은 거짓말일 뿐이지만, 천 번을 반복한 거짓말은 진실이 된다.” 사람을 단결시키고 집단의 충성심을 고취시키려면 진실 보다는 거짓과 허구가 훨씬 위력적이다. 불합리한 교리를 믿게 하여 충성도를 점검한다. “권력을 바란다면 어느 지점 부터는 허구를 퍼뜨리기 시작해야 한다. 반면 세상의 모든 허구를 배제한 채 진실만 알고 싶다면, 어느 지점부터는 권력을 단념해야 할 것이다.”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시작된 종교는 조직화되고 교조화 되면서 권력을 갖게 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끝내는 믿음이라는 허구로 인간을 무지하게 만들었다.
<18. 공상과학과 소설>
현대 과학기술 혁명의 의미는 진정성 자체가 신화라는 것이다.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자유, 사랑, 창의성> 조차 누군가 매머드(480만년 전부터 4천년 전까지 생존했던 포유류)를 죽이기 위한 돌칼 같은 것이다. 사람은 상자 안에 갇히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이미 자신은 상자 안에 갇혀 있으며, 그 상자는 더 큰 상자에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사고의 틀을 깨어야 한다.
<19. 교육>
인류는 전례 없는 혁명기에 직면했다. 어마어마한 정보의 양이 흘러 넘친다. 미래의 인류는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 정보의 중요도를 식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학교는 더 이상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 되어서는 안된다. 인공지능 AI를 따라갈 수 없다. 기성 세대나 어른이 가르칠 것은 없다. 미래의 인류는 자신의 모든 정보가 해킹 당하고 있다. 학교 교육내용은 지금부터 “4C, 즉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의사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 창의성(Creativity)”로 전환되어야 한다.
<20. 의미>
인생은 이야기가 아니다. 우주는 이야기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빅뱅 이론,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이론 등은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이다. 반면, 인간에게 의미와 정체성을 부여하는 이야기는 모두 허구이지만 실제처럼 느끼게 하는 것은 <의식>이다. 믿음의 희생이 크면 클수록 신앙은 더 강해진다. 그 신앙의 믿음으로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죽었는가? 악이 실제 삶 속에서 반드시 추악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1930년 독일인들은 파시즘의 거울로 자신들을 봤기 때문에 자신들을 가장 위대한 민족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 만행들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다. <정체성의 포트폴리오>다. 인류가 직면한 질문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고통에서 벗어나느냐”이다. 먼저 고통을 관찰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이다. 답은 이야기가 아니다.
<21. 명상>
허구를 모두 놓아버리고 오로지 실체를 관찰하라. 도덕의 의미는 “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줄이는 것”이다. 어떤 신화나 이야기를 믿을 필요는 없다. 고통을 깊이 헤아리는 능력을 기르면 된다. 그것이 명상이다. 코로나19 이후 21세기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변하는 않는 진실이 있다면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명상을 통해 <고통에서 해방되자>..
6편 <절망과 희망> (05-08-2020)
<10. 테러리즘>
9.11 사태 이후 테러범들에 의해 살해되는 지구촌 사망자 수는 총 2만5천명, 매년 6~7십명에 불과하다. 반면 교통사고로 숨지는 사람은 매년 125만명, 당뇨로 죽는 사람은 년간 350만명, 대기오염 사망자 수는 7백만명이다. 왜 인간은 설탕이나 대기오염 보다 테러리즘을 두려워할까? 물리적 피해보다 공포를 퍼뜨리는 정치적 쇼가 테러리즘의 군사전략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황소를 충동해 중동이라는 도자기 가게를 파괴하려 함이다. 세상에 성마른 황소들은 널렸다.
국가 입장에서 아무리 끔찍한 재난이라도 정치 제재를 견디어 낼 수 있지만, 아주 작은 테러에는 기반이 흔들릴 수 있음을 테러들은 알고 있다. 그래서 도박을 하는 것이다. 당황하지 마라. 테러를 대응하는 세가지 방법은 첫째, 정부는 테러 집단을 겨냥한 비밀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둘째, 언론은 균형 잡힌 시각으로 과잉반응을 피해야 하며, 셋째, 전선은 개인의 상상력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오늘날 테러의 대부분은 가상의 공포를 낳는데 반해, 미래의 테러는 핵 테러, 사이버 테러, 코로나 19처럼 바이오 세균 테러 등으로 훨씬 더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11. 전쟁>
인간의 어리석음을 절대 과소평가 하지 마라. 지난 수십년 간 지구촌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평온한 시기였다. 농경시대에서는 인간의 폭력에 의한 사망이 15%였지만, 지금은 1% 미만에 불과하다. 강대국들의 각종 무력 위협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기대하는 것은 최근 20세기 전쟁 역사에서 강대국들의 전쟁 성공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어리석다. 어리석음의 치유 방법은 겸허함 이다. 긴장이 악화되는 원인은 자만심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인간은 국가와 민족, 종교와 문화가 차지하는 실제적 위치보다 겸허할 수 있을까?
<12. 겸손>
당신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자신들의 문화와 업적이 인류의 중심이었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고대 인류가 세계를 식민지화 하고 도시를 건설하고 글자를 만들고 화폐를 발명했을 때, 현대의 어떤 종교나 민족도 존재하지 않았다. 도덕과 예술, 영성과 창의성은 우리 모두의 DNA에 각인된 인간의 보편적 능력이다.
유대교가 사피엔스 종의 연감에서 차지했던 역할은 결코 대단하지 않다. 비록 유대교가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탄생시킨 역할은 인정하지만, 유대교는 늘 일개 부족의 신조에 지나지 않았다. 이스라엘인들은 주요 종교의 윤리 전통과 보편적 윤리 교범의 모태가 유대교라 주장하지만, 근거 없는 오만한 생각이다. 성경의 수많은 율법들은 이스라엘 유대 왕국이 건설되기 수백년 내지 수천년 전의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의 규범들을 본뜬 것이다. 기독교가 인류 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것 또한 사실이지만, 공자, 노자, 부처, 마하비라 (고대인도 자이나교 창시자)는 예수나 바울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보편적 도덕률을 설파했다. 기독교, 이슬람교 유일신교가 사람들을 이전보다 훨씬 편협하게 만들고, 종교재판, 종교전쟁, 종교차별을 더욱 가속화 시켰다.
<13. 신>
사람들은 신에 관해 이야기할 때에는 자신을 극히 낮춘다. 그런 다음에는 신의 이름으로 신도들 위에 군림한다. 도덕의 의미는 “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을 줄이는 진화 과정”이다. 고대 중국부터 근대 유럽까지 공통적인 황금률 법칙이 있다. “남이 나에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남에게도 하지 마라.” 종교적 믿음이 세상의 평화와 조화에 막대한 기여를 한 반면, 또 다른 사람에게는 분노를 키우고 분노를 정당화 하였다. 우리는 도덕적 삶을 살기 위해 굳이 신의 이름을 불러들일 필요는 없다. 세속주의만으로도 우리가 필요한 모든 가치를 얻을 수 있다.
<14. 세속주의>
세속주의는 나름의 일관된 가치기준으로 규정되는 긍정적이고 적극적 세계관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이 믿는 종교 이외의 일체 다른 종교 교리를 거부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세속주의자들은 여러가지가 뒤섞인 정체성에 익숙하다. <진실과 연민, 평등과 자유, 용기와 책임>의 가치다. 이것은 근대 과학과 민주제도의 기초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가치가 <진실>이다. 관찰과 증거에 기반으로 한 진실을 믿음과 혼동하지 않는다. 세속주의가 과학적 진실을 중요시 하는 이유도 세상의 고통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을 알기 위해서다. 연민, 평등과 자유도 못지 않는 중요한 가치다. 편견과 억압에 맞서 싸우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세속주의는 의심하고 검증 하기를 겁내지 말아야 한다. 세속주의는 다양한 종교들의 상호 연관성을 인정하고 모두를 포용한다.
모든 종교와 이데올로기, 신조에는 빛과 그림자가 반드시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는 그림자가 일어날 리가 없다”는 막연한 확신이다. 세속주의 과학은 “자신의 그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과학은 원리상 기꺼이 자신의 실수와 맹점을 인정한다. 반면에 어떤 초월적 힘이 계시된 <절대 진리>를 믿는 사람은 어떤 실수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류의 현재와 미래 -5편 <정치적 도전> (05-01-2020)
<공동체>
인간은 공동체라는 집단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소외감을 느낀다. 이민사회에서 교회라는 종교 공동체에 소속되는 이유도 각 공동체원의 소속감과 교류, 길흉화복의 공유가 큰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21세기에는 여러 친밀한 공동체가 와해되고 있다. <온라인 공동체>의 등장이다. 페이스북 온라인 월간 사용자 수가 20억명을 넘는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 우리의 경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도구로 계속 개선하겠다고 한다. <경험 공유>를 올려 <좋아요>를 통해 공동체를 느낀다. <카톡 단체방>이나 <개인 유튜브 방송>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평균 150명 이상의 개인과 서로 친밀하게 알기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온라인 알고리즘의 한계를 깨달은 기술 거인(기업)들은 온라인/오프라인 구분을 없애고 <인간의 몸>을 접수하는 방안 (현재는 눈과 손가락, 신용카드를 맘대로 조작하고 있는 상태임)을 고안하고 있다.
<문명>
오늘날의 국제적 문제는 <기독교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간의 충돌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역사적 문명에는 고유의 유전자(DNA)가 없다. 이슬람교는 무슬림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기독교는 기독교인들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문명에 고정된 DNA는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종(種)은 갈수록 분화되지만, 인간 부족은 갈수록 더 큰 집단으로 합쳐지는 경향이 있다. 인류가 통합되는 과정은 서로 다른 집단간의 연결과 동질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과학 발전은 인류 동질화를 가속화 시켰다. 물리학에 관한한, 국가, 종교, 정치이념으로 구분되지 않는 것이다. 즉 향후 인류가 마주하는 갈등은 <전지구적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점점 하나가 되어간다.
<민족주의>
호모 사피엔스는 본래 소규모 집단(부족 단위)에만 충성할 수 있었다. <국가>라는 대규모 집단에 대한 충성은 <부족>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발했다. 하지만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보고, <민족주의>에서 <세계화>로 이동해야 함을 알았다.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게 적다는 것을 각인시켰고, 전쟁을 거의 몰아냈기 때문이다. <세계화>로 도달하는 과정 (신자유주의)에 맞이한 지구적 문제는 <생태계 파괴>다. 그 중심에 지구 온난화 등 기후 변화다. 이 역시 국가 단위의 민족주의로는 해결 불가능하다. 지구적이고 우주적인 관점이 요청된다. 핵전쟁, 생태계 파괴, 기술적 파괴 등, 온 인류가 힘을 합쳐서 해결해야 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부족에서 국가로 넘어갔듯, 이제는 세계화로 넘어가야 한다.
<종교>
이제 신이 국가를 섬긴다. 과거의 종교들은 인간의 세속적인 문제들을 담당했지만, 이제는 과학이 그 문제들을 완벽하게 담당한다. 그래도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대규모 협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거대한 정체성을 인류에게 제공해 왔다. 북한은 완전한 새로운 종교(주체사상교)를 만들어 냈다. 인간의 대규모 협력을 위해 이처럼 종교가 필요하다. 일본도 19세기 후반 국가를 세우기 위해, 본래 애니미즘(animism – 모든 대상, 무생물 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세계관, 물신숭배론)이었던 신도들을 서구 제국주의에서 따온 온갖 아이디어로 섞어 재발명 했다. 천황, 신사참배, 살아있는 신? 애니미즘 정령? 봉건 윤리? 일본은 근대 산업 강국이 아니라 신석기 족장 시대 이야기처럼 들린다. 종교는 마술처럼 통한다. 하지만 인류의 당면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 전통 종교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종교의 <기술적 문제>는 농업을 예로 들어보자. 과학은 언제든지 잘못을 인정하고 다른 방법을 시도한다. 그래서 과학자는 점점 더 농작물을 잘 키우게 되고, 더 나은 약품들을 개발하게 된다. 반면에 사제와 구르는 더 나은 변명거리를 내놓는 법만 익히게 된다. 또한 종교의 <정책적 문제>는 성경이나 쿠란, 베다의 사상이 현 사회와 맞지 않다. 하지만 AI에 대해서도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은 상상력을 발휘해 쿠란과 성경을 각자에게 유리하게 정당화 할 것이다. 인간의 힘은 대규모 협동에서 발휘되므로 그만큼 큰 정체성을 구축해야 한다. 다만 정체성은 과학이 아니라 <허구>의 이야기다. 그것이 종교다.
<이민>
유럽과 중동에서 이민자를 받는 문제는 심각한 논란을 야기한다. 독일이 100만명시리아 난민을 받아드리는 과정에서 논란의 중심에 <문화 갈등>이 있다. 독일 문화를 중동 이민자들이 동화되고 완전한 일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가 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인종간 생물학적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과거 <전통 인종주의자>들은 유럽인이 아프리카인이나 아시안보다 더 우월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현대는 전통적 인종주의는 줄어든 반면, <문화주의자>들로 가득하다. 흑인과 아시안이 백인보다 열등한 이유는 <하위 문화권>에 속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만과 편견이다. 우리가 주시해야 할 것은 유럽이 이질적 문화를 가진 이민자들을 동질화 시키지 않고 그대로 수용할 것인가 아닌가 이다. 성공하면 전지구적 차원에 적용될 것이고, 실패하면 유럽(자유주의, 관용, 인권 등 최고의 원칙과 가치)은 아직은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인류의 현재와 미래 –4편 <기술적 도전> (04-24-2020)
기분 좋다. 한국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으로 압승을 거두어서 만이 아니다. 한국 민중은 선진화 의식과 성숙한 신념으로 냉정한 정치적 심판을 하였다. 또한 친구 같은 대통령, 친구가 되고픈 대통령 문재인의 <촛불 혁명>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소신껏 촛불 개혁과제들을 잘 완수할 바탕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선하고도 강한 지도자이자 친구라고 믿는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갇힌 채 무용(?)한 인간으로 살고 있는지 벌써 한달이 되었다.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우리 모두 견뎌 내야 한다. 이 기간 동안 유발 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의>를 요약해 보려 함이었는데 오늘부터는 현존하는 우리가 숙고해 보아야 할 <21가지 주제>에 대해 5개 장르로 나누어 기술하고자 한다. 유발 하라리의 생각이 맞고 틀림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야 할 21세기이기에 각자의 생각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환멸>
20세기는 파시즘, 공산주의, 자유주의의 이념전쟁에서 자유주의의 승리였다. 하지만 자유주의 이상은 국경 안에만 제한되어 있었던 반면, 21세기는 생명기술과 정보기술의 혁명을 통해 인간의 내부 세계를 통제할 수 있고, 심지어 생명을 설계하고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심지어 인간의 뇌를 설계하고 생명을 연장하고 우리의 생각도 임의로 죽이는 법까지 터득할지 모른다. 자유주의는 개인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21세기의 세계화, 블록체인, 유전공학, 인공지능, 기계학습 등, 인류가 직면할 기술적 문제와 생태계 파괴는 20세기의 자유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 종교 등에서는 답이 없다는 현실이다.
<일>
인간에게는 <육체 능력>과 <인지 능력> 두가지가 있다. 과거 기계는 인간의 육체 능력을 대체했다면, 인공지능은 인간의 생화학적 기제 분석과 더불어 인지 능력 마져 대체하고 있다. 인간의 <직관>은 <패턴 인식>인데, 인공지능으로 충분히 대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운전, 은행, 법률, 의료 분야 등 대부분이 해당한다. 거기다 인공지능은 <연결성>과 <업데이트>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안전하고 정확하고 빠르다. 이처럼 인공지능이 인간에서 대체하면 인간 사회에 막대한 혜택을 가져다 준다. <예술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나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은 계산에 의해 나의 <맞춤형> 음악도 만들 수 있다. 그렇다고 <인간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인공지능 발달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가 보호해야 할 목표는 사람이지, 일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 이렇게 된다면, 인류는 거대한 <무용 계급>이 등장할 것이다. 해법은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기술 자동화를 늦추는 방법과 <일>에 대한 정의를 확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용 계급에 대한 혜택으로 <기본소득> – 일상적인 일에 월급을 주는 것과, <기본 복지> – 일상에 필요한 것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무엇을 우선으로 선택할지, 생존을 위한 <기본 충족>만으로 <만족> 할지도 문제다. <기본>을 제공받는 대다수 <무용 계층>과 그 이상을 누리는 <소수 계층>의 간격은 더욱더 벌어질 것이고, 이는 곧 투쟁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다수 <무용 계급>이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가 관건이다.
<자유>
인간의 <감정>을 인공지능이 계산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되나? 진로 선택이나 배우자 선택을 구글에 묻는 것이 더 정확한 시대가 곧 올 것이다. 과거 독재가 실패한 이유는 민주주의가 독재보다 정보를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디지털 독재>가 가능한 시대가 왔다. 과학은 인간의 뇌와 감정의 신비를 파고 들고 있고, 엄청난 속도와 높은 정확도의 데이터 분석을 제공한다. 알고리즘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정확하고 빠르게 분석해 대안을 제시한다. 거기다 알고리즘에 인간의 <윤리적 판단과 기준>만 코드화 해 입력한다면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인간의 <의식>을 갖지는 못할 것이다. 지능과 의식은 다르다. 따라서 인간의 의식을 하루빨리 개발 개선해야 한다. 인간은 수많은 역사의 위기 순간에 인간의 <감정과 직관>이 수많은 철학적 이론을 이겼기 때문이다.
<평등>
인간의 역사는 <재산권>이 생겨나면서 갈수록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다. 오늘날 최고 부유층 1%가 세계 부의 절반을 차지하고, 최고 부유층 100명이 최저 빈곤층 40억명 보다 많은 부를 갖고 있다. 이제 생명공학과 인공지능 기술로 인해, 근대에 필요했던 대중이 쓸모 없어지면서, 소수의 <슈퍼 휴먼> 계층과 쓸모 없는 <호모 사피엔스> 계층으로 나뉠 지도 모른다. 이런 차별화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데이터의 소유>를 규제하는 것이다. 기업이든, 국가든, 정부든, 데이터를 장악하는 자가 우리 내면까지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데이터를 소유하는가? 데이터의 소유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질문이 될 수 있다.
인류의 현재와 미래 -3편 < 착취와 무용(無用)> (04-17-2020)
이틀 뒤면 한국 총선이 완료되어 나라 안팎이 난리도 아닐 것이다. 투표는 민중의 유일한 정치적 권리 행사이니 누구를 선택하던 시시비비를 논할 수는 없겠으나, 친일잔재, 토착 왜구, 독재 기득권 세력들이 다시 득세하는 일만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모자라는 인간은 가르치면 되지만, 사악한 인간은 가르칠수록 악마가 되기 때문이다. 4월13일 시점으로 미국의 코로나 확진자는 58만명, 사망자수는 2만3천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이마저도 정확한 통계치가 아니다. 집에서 병원에 한번 가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수많은 미국의 저소득층들이 있기 때문이다. 불과 2주전 3월30일 <인류의 현재와 미래> 1편 칼럼을 쓸 때 확진자 16만명, 사망자 3천명을 넘었다고 두려워 했는데.. 언제까지,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을 더 치루어야 하나?
세계 석학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와 인류는 거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말한다. <더 많이>의 <신자본주의, 자유주의> 병폐물인, <1:99>, <10:90>의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양극화된 세계였다면, 미래에는 <함께>, <더불어>의 인류 공동체 개념으로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트럼프와 영국의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자국 우선주의, 국가주의,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하며 과거로 되돌아간다. 국가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역사가 말한다. 링컨은 “모든 국민을 잠시 속일 수는 있고, 일부 국민을 늘 속일 수는 있어도, 모든 국민을 늘 속일 수는 없다”고 했다. 거대 언론과 부의 권력들은 대오각성해야 한다.
유발 하라리는 네안데르탈인, 크레마뇽인 등 유사 유인원들이 멸종한 반면, <호모 사피엔스>만이 유일하게 생존하여 현재까지, 또 어쩌면 미래에도 지구를 지배할 수 있는 독보적 능력은 <이야기>를 창조하고 믿는 능력 때문이라고 한다. 국가, 민족, 종교, 화폐, 법인, 주식 등 이 모든 것은 <허구>이며,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군 신화나 이스라엘의 구약 신화나 모두 대동소이한 이야기다. 다만 사피엔스는 <같은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 <대규모 협력>이 가능했으며, 이것이 바로 인류의 문명을 이룩한 원동력 이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거대 담론(이야기)이 국가, 민족, 종교, 이념 등, 여러개로 존재 했을 때 전쟁이 되고 재앙이 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이야기가 21세기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전 <인류가 하나>라는 거대한 인류애적 이야기 말이다.
유발 하라리는 “<민주주의와 독재>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두가지 상이한 시스템 간의 갈등이다. 민주주의는 정보를 처리하는 힘을 분산시키고, 많은 사람들을 통해 결정을 내리는 반면, 독재는 정보와 권력을 한곳에 집중한다. 문제의 핵심은 20세기에는 범람하는 데이터와 정보를 한곳에 집중해 빨리 처리하고 옳은 결정을 내릴 만한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기계 학습과 인공지능이 폭발 성장하는 21세기에는 완전히 다른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조지 오웰의 <빅브라더> 처럼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회사나 국가가 데이터를 한곳에 모으고 정보를 독점 처리하여 인류를 착취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않다. 하지만 더욱 더 최악의 시나리오는 <21세기 빅브라더>는 인류를 억압하고 착취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류를 무가치한 존재, 이 지구에서 <무관한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로봇들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세상, 대다수의 인간들은 할 일도 없고, 필요도 없는 무가치한 <무용지물(無用之物)> 존재가 된다면 어찌 할꺼나?
공상과학 소설처럼, 기술이 지배하는 극도로 효율화 된 사회에서는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깝게 떨어질 수 있고 여기서 얻은 막대한 이득을 정부가 세금으로 거둬들임으로써 대부분의 잉여 인간은 공짜 복지를 누리는 파라다이스를 꿈꿀 수도 있다. 하지만 지구의 자원이 모두 고갈되거나 혹은 태양이 곧 소멸할 시기에 정부와 기업이 자신의 모든 자원을 안드로메다로 옮길 때, 여기서 말하는 자원에 ‘인간’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발표하면 어떨까? (시스템의 운영 방식을 결정할 소수의 의사결정권자들은 당연히 예외다)
거대 권력에 착취당하는 사회는 오히려 인간에게 희망적이다. 싸워야 할 명분과 대상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억압을 이겨내고 자유를 쟁취한다는 ‘꿈’을 꿀 수 있다. 하지만 이 사회와 완전히 무관한 존재로 전락한 인류에게 허락된 꿈은 무엇일까? 정부가 안드로메다로 이주하겠다는 발표를 했을 때 우리는 어떤 명분을 갖고 그 결정에 반대할 수 있을까?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이미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대체했기 때문에 우리는 더이상 정부에 세금을 내지도, 외계인의 침략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지도 않는다. <억압>보다 무서운 것은 <무용(無用)함>이다. 미래의 기술은 인간으로부터 그 어떤 것도 착취하지 않을 것이다. 결정의 시간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으며 시계의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인간에게 아직 미래를 창조할 능력과 감수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면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인류의 위대한 정신은, 곧 소멸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오늘을 사는 나는 내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인류의 현재와 미래 – 2편 <지배력을 상실한 인류> (04-10-2020)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세계는 미국의 민낯을 보고 말았다. 세계 최강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자본주의 상징인 미국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조차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역사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최소한 <의료, 교육, 국민연금>에 한해서라도 사회적 민주주의로 수정 했어야 한다. 중산층 이하의 미국인은 “아프면 죽거나 파산한다. 고액의 대학, 대학원 융자금을 갚기 위해 평생을 죽도록 일해야 한다. 행복한 노후는 없다. 늙어도 일하거나 죽음을 기다리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오로지 <더 많이>만 추구한 미국은 <힘센 국가> 일지는 몰라도, <국민이 행복한 국가>는 결코 아니다. 미국은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온 근대 계약(The Modern Covenant)은 놀랄 만큼 간단하다. “인간은 <힘>을 가지는 대가로 <의미>를 포기하는데 동의한다”는 것이다. 근대의 동력은 <과학의 진보>와 <경제성장>의 동맹이다. 근대 이전 시스템은 한쪽이 성공하면 다른 한쪽이 손해보는 <Zero-Sum>게임이었다면, 근대 이후 사회는 <Win-Win>상황을 믿는다. (1)더 많이 생산하면 더 많이 소비할 수 있어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더 행복하게 산다. (2)인류가 늘어나는 한, 현재 수준 유지를 위해서도 성장이 필요하다. (3)인구가 늘어나지 않고 중산층이 현재 수준에 만족해도, 가난에 찌든 수억명을 위해 성장이 필요하다. 신자본주의의 속임수다.
근대 이후 <더 많이>교리는 거의 모든 종교, 이데올로기, 시민운동이 만나는 중요한 접점이었다. <경제성장>만이 모든 가치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열쇠인 셈이다. <더 많이> 경제성장은 새로운 재료와 에너지원을 필요로 한다. 자원은 한정된 것이므로 고갈될 수 밖에 없다.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인류는 그 재앙을 멈추는데 필요한 어떠한 희생도 할 의향이 없었다. 모든 국가, 정부, 기업, 조직들은 오직 성장의 관점에서만 성공을 평가하고, 소득과 삶의 척도를 높여야 한다고 인간들을 세뇌시켰다. 인간은 탐욕에 쉽게 물들고, 어제의 사치는 오늘의 필수품이 된다.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탐욕과 혼돈의 시스템만을 신성화 했다. 장기적으로 자본주의는 성공했고 기아, 역병, 전쟁을 극복했다. 하지만 <힘>을 얻는 대가로 포기했던 윤리, 미학, 동정 등 <의미>를 잃지 않은 것은 <인본주의 혁명(The Humanist Revolution)> 때문이었다.
인본주의는 신에 대한 믿음을 잃은 것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믿음을 얻은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자신에게 충실하라, 자신을 믿어라, 자신이 좋다고 느끼는 것을 해라” 인본주의 윤리는 “어떤 행동이든,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 행동은 문제될 것이 없다.” 인본주의 모토는 윤리학에서 “좋게 느낀다면 해라.” 정치학에서는 “유권자가 가장 잘 안다.” 미학에서는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눈에 달려있다” 고 말한다.
교육제도 역시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중세에는 순종, 주입, 암기, 전통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현대는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기>를 가르친다. 중세 유럽에서는 <지식=성경x논리> 였고, 과학혁명은 <지식=경험적 데이터x수학>이다. 그런데 인본주의에서 <지식=경험x감수성> 이라는 새로운 공식을 제시했다. 경험은 감각, 감정, 생각으로 이루어진 주관적 현상이고, 감수성은 그 주관적 현상에 대한 나의 영향을 의미한다. 인본주의는 <자유주의>, <사회주의>, <진화론>적 인본주의 세가지로 분류되었지만, 오늘날 세계는 <개인주의, 인권, 민주주의, 자유시장>이라는 <자유주의> 패키지가 지배한다. 개인의 자유에 높은 가치를 두는 것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세기 동안 생명과학자들은 인간의 블랙박스 속에 <인간의 마음, 영혼, 자유의지, 자아> 같은 것은 없고 상상 속의 단어일 뿐, 그저 물리적 생화학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 유전자, 호르몬, 뉴런 뿐임을 알아냈다. 머지않아 개인의 자유의지를 전혀 허용하지 않는, 엄청나게 유용한 사이보그 같은 장치나 도구가 개발되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1)인간은 경제적, 군사적 쓸모를 잃게 되어 시스템은 인간에게 가치를 부여하지 않을 것임. (2)집단으로서의 인간의 가치는 여전히 필요하겠지만, 개인으로서의 인간 가치는 필요 없음. (3)일부 Upgrade된 소수 엘리트 집단에게서만 가치를 발견할 것임. 이미 비유기적 알고리즘이 하지 못할거라 여겼던 얼굴인식, 체스, 바둑 등은 기계 학습을 통한 인공지능에 의해 정복되었고, 의료, 예술창작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인간보다 월등하다. 자유주의의 믿음은 나만이 나 자신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인데, 생명과학은 <외부 알고리즘>이 나보다 나 자신을 더 잘 안다는 것이다. 이미 의학 부문은 유전자 분석에 따른 암, 심장마비, 알츠하이머 예방, 바이러스 독감 예방 등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다.
현대인은 정보를 숭배한다. 데이터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일명 <데이터교>다.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 소프트, 야후, 아마존 등 거대 IT 기업이 궁극적으로 추가하는 목표도 데이터를 지배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들이다. 그러면 인공지능에 일자리를 빼앗긴 대다수 <백수 잉여 인간>들은 <자유의지>를 갖고 무엇을 하며, 어떻게 미래를 살아야 하나?
인류의 현재와 미래 -1편 <새로운 의제> (04-03-2020)
코로나19 재난으로 3월20일부터 사무실 문을 닫고 재택근무를 한지 10여일이 지났다. 불과 10여일 동안 미국의 확진자수(03/30일 기준)는 16만 1천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3천명을 넘어섰다. 두려움의 핵심은 언제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큰 육체적 심적 경제적 피해를 각오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석달 더 이런 생활을 해야 한다면, 만약 6개월 더? 그 이상이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공포가 겨울 폭풍의 밤바다처럼 밀려온다. 무서워진다.
유발 하라리 교수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 역사학자)는 베스트셀러 세가지 중에서 <사피엔스>는 인류의 과거에 대해서 기록하였다면, <호모데우스>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현재 살고있는 21세기에 우리가 직면한 21가지 과제에 대하여 서술하였다. 주제 자체가 인류에 대한 거대 담론이며, 각 저서 마다 내용이 방대하므로 요약하여 몇회의 칼럼으로 기술한다는 자체가 무리이지만 한번 수박 겉핥기라도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향후 불과 20년이내에 지구촌은 엄청난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런 미래의 세상을 현재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나는 미래의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류의 새로운 의제>
인류는 지금까지 <기아>와 <역병>과 <전쟁>이라는 문제와 씨름해 왔지만 어느정도 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가간 정치적 대처로 <기아>는 “2010년에 기아와 영양실조로 죽은 사람이 총 100만명 정도였던 반면, 비만으로 죽은 사람은 300만명 이었다.”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 넣었던 <질병>은 14세기 유럽의 흑사병 경우, 유라시아 인구의 1/4을 죽였고, 20세기 스페인 독감(1918년3월~1920년6월)은 세계인구 1/3인 5억명이 걸렸고, 그로 인해 5천만명 ~1억명이 사망했다. 1차세계대전 사망자 수는 4천만명임. 천연두 전염병에 대한 인류의 최초 정복 이후, 의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이러한 질병의 지식과 도구로 인한 통제는 그것이 신의 진노가 아닌, 인간의 능력 문제임을 깨닫게 했다. 작금의 코로나19 RNA 바이러스도 멀지 않은 시기에 현대의학의 능력으로 반드시 퇴치될 것이다.
<전쟁>사망자도 더 이상 사망의 큰 원인이 아니다. 2012년 62만명이 폭력으로 사망했지만, 그중 범죄로 50만명, 전쟁으로 12만명이 죽었다. 반면에 자살은 80만명, 당뇨병으로 150만명이 죽었다. “설탕이 어떠한 전쟁무기보다 더 위험하다.” 2차세계대전 이후 원자폭탄이라는 핵무기를 통해 인류는 더 이상의 세계대전과 같은 큰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상호 억제력을 가지게 되었다. “<테러리즘>은 일종의 쇼”다. 테러를 일으키는 측과 막는 측 모두 자신들의 <다른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는 것일 뿐이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죽음>을 신성시했다. 왜냐하면 <죽음>이 존재해야 신과의 형이상학과 의미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과학은 <죽음 정복>이 인류 첫번째 의제로 등장한 것이다. 물론 100년 안에 죽음을 정복한다거나, 기대수명을 두배로 늘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 정복>을 향해 가는 동안, 세포생물학이나 유전공학 등의 엄청난 과학발전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술적 문제에는 기술적 해법이 있다.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과거에 죽음이 성직자와 신학자들의 일이었다면, 지금은 과학자들이 그 권한을 인수받았다.”
두번째 새로운 의제는 <행복>이다. “인류가 모든 사람에게 무상으로 음식을 제공하고, 존재하는 모든 질병을 치료하고, 세계평화를 이룬다 해도, 각 개인의 <행복>이 유리 천장에 부딪혀 깨진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진정한 행복을 획득하는 것이 노화와 죽음을 극복하는 것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행복은 생물학적, 심리적 두가지를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 영구적인 만족이나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생화학적 기재>를 조작해야 한다. 불교의 <마음 수련>처럼, <행복>을 위한 생화학적 제품 및 치료법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 극복>과 <행복>을 얻기 위해서 세가지가 필요하다.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 비유기체 합성이다. 따라서 세번째 새로운 의제는 <인류가 신이 되는 것>이다. 즉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데우스>로 되는 것이다. 사실 과거의 신들보다 현대의 인류가 훨씬 위대하다. 이미 세계화 사회는 모든 전문 분야가 지나치게 세분화되고, 너무 빠르게 발전 중이므로 누구도 브레이크를 밟아서 멈춰 세울 수 없다. 그중 많은 부분을 인공지능이 맡게 되므로 향후 세상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즉 인류의 과거 의제는 <기아. 질병, 전쟁>이었다면, 미래 인류의 과제는 <불멸, 행복, 신성>으로 예측하고 전망할 수 있다. 예측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인류의 <농업혁명>이 유신론적 종교를 탄생시킨 반면, <과학혁명>은 신을 인간으로 대체한 <인본주의> 종교를 탄생시켰다. 농업사회의 유신론은 인간을 동물로부터 구별하고, 신을 신성하게 만들었다. 신과의 <농업계약>을 통해 인간은 신, 자연, 동물에 대한 특정한 의무를 이행하는 조건으로 다른 동물들을 통제할 장대한 권한을 위임 받았다. 그런데 현대의 과학혁명이 신을 침묵시켰다. 이제 미래의 인류는 더 이상 신에게 묻지 않는다.
코로나19와 글로벌 연대 (03-27-2020)
코로나19 사태로 세계가 대혼란의 아우성이다. 미국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내가 사는 지역도 재택근무 지시가 내려지고 필수 사업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소들은 폐쇄 조치가 내려졌다. 다운타운도 사람과 차량의 이동이 거의 없는 유령의 도시 같다. 인류전쟁이다.
이번 코로나 19 사태에 대한 각 나라의 대처에 대하여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뉴욕 타임즈 칼럼리스트인 크루그먼 교수는 “왜 트럼프는 한국에서 배우지 못하는가? 트럼프는 그동안의 인종차별과 자신의 실패한 모든 책임을 지지 않고 남에게 떠넘긴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최대 치적인 미국 주가 상승을 유지하기 위해 코로나 위험과 경고를 애초부터 무시했다. 미국과 한국은 모두 1월20일 첫 환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제 불과 검사가 시작되었을 뿐이고, 한국은 사태가 안정되어 가고 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저자 유발 하라리의 3월20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즈 기고문에서 인용한다. “인류는 지금 세계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신속하고 단호하게 행동해야 한다. 각국 정부는 당면한 위협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두가지 선택으로 나뉜다. <전체주의적 감시>와 <시민 권한 확대>, 그리고 <국수주의적 고립>과 <글로벌 연대> 사이에서 고민한다. 전체주의적 감시 체제는 <빅브라더 –개인의 모든 정보를 관리 감시하는 체제>와 유사하다.
중국이나 이스라엘 처럼 <집중 감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국가가 시민을 감시하고 규칙을 어긴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이다. 중국은 민중들의 사생활 정보(스마트폰과 수억대의 안면인식 카메라, 핸드폰 사용내역, 개인의 의료 내역, 지문감식, 이동정보 등)을 지속적으로 감시 관리하며, 이를 정당화, 합법화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보안국이 테러리스트와 싸울 때 쓰는 감시 기술을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를 추적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코로나 향후 세계는 이러한 <근접감시>와 <밀착감시>가 일반 대중을 상대로 보편화, 정교화 될 것이라는 우려다. 예를 들어 정부나 기업이 우리의 생체 정보를 일괄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우리의 감정을 예측, 조작하여 그들이 원하는 무엇이든 팔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사생활과 건강> 중 하나를 선택하라 하면 보통 <건강>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은 투명한 정보 공개와 시민들의 자진 협조로 감염 확산을 저지한 성공 사례 국가 이다. 한국은 광범위한 검사, 투명한 자료 공개, 정보를 잘 습득한 똑똑한 대중들의 <자발적 협조> 등이 대표적이다. 중앙집중식 감시와 가혹한 처벌만이 정부 지침을 따르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과학, 공권력, 언론>에 대한 신뢰를 쌓아 국민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하라리 교수는 <비누 경찰>을 예로 들었다. 과학자들이 비누로 손을 씻는 것의 중요성을 발견한 것은 불과 19세기 들어서였다. 오늘날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매일 손을 씻는 것은 <비누 경찰>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같은 작은 유기체들이 질병을 일으키며, 비누가 그것들을 제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런 준수와 협력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뢰>가 필요하다. 국민들은 과학을 믿고, 공권력을 믿고, 언론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세계 국가는 국민들로부터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을 세계가 자랑스러워 하고 배우려 한다.
하라리 교수는 <글로벌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코로나19 전염병 그 자체와 그에 따른 경제적 위기는 세계인 모두의 문제” 라며, “오직 세계적인 협력과 글로벌 연대만이 이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는 특히 “지금은 국제사회의 어른이 없는 것 같다. 미국은 글로벌 리더 역할을 포기했다. <분열>은 위기를 연장시킬 뿐, 미래에 더 심각한 재앙을 초래할 것이다. 반면에 <연대>는 코로나19 뿐만 아니라, 모든 미래의 전염병과 위기에 대한 승리가 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글로벌 정보 공유, 의료장비 생산 협력, 경제적 교류> 등이 필요하다. 코로나에 대한 <인류 전쟁>은 우리에게 필요한 중요한 의료 장비 생산라인을 <인류화> 하도록 요구할지도 모른다.” 라고 했다.
인류는 지금 세계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아마도 우리세대의 가장 큰 위기 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몇 주 동안 사람들과 정부가 하는 결정은 앞으로 몇 년 동안의 세계를 형성할 것이다. 단순히 우리의 헬스케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경제, 정치, 문화를 만들어 갈 것이다. 우리는 신속하고 결단력 있게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따른 장기적 결과를 고려해야 한다. 무언가 하나를 선택할 때, 우리는 ‘당면한 위협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뿐만 아니라, ‘일단 폭풍이 지나가면 어떤 세계에 살 것인가’ 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그렇다. 폭풍이 지나가고 인류는 살아남을 것이고, 우리들 대부분은 여전히 살아있을 것이지만, 우리는 이전과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인류가 <글로벌 연대>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승리 뿐만 아니라, 21세기 모든 미래의 전염병과 위기들에 대한 승리일 것이다. 아버지,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타력(他力) (03-20-2020)
사람이 산다는게 나만의 의지와 노력, 즉 자력(自力)만으로 살아지는게 아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 공동체의 도움과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사람이 살다 보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을 겪게 된다. <천재지변>이다. 그래서 인간은 신을 찾는다. 즉 인간은 타자(他者)의 힘(他力)이 필요하다. 생각하지도 못하였기에,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도 모를 때도 있다. 작금의 <코로나 비상사태>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한국 국민들은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최고의 <위기 관리능력>과 현명함과, 인간애, 희생정신으로 이 난국을 슬기롭게 헤쳐나가고 있다. 한국인에게는 어떤 <타력>이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타력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나 이외의 커다란 힘, 즉 우주의 힘이 내 삶을 떠받히고 있는다는 사고방식이다. 커다란 에너지가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흐르고 있다는 기운이다.
누구나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 중에 평범한 삶이란 있을까? 어찌 보면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위중하지 않거나 엄중하지 않는 순간은 없다. 하지만 <비상시>가 존재한다. <비상시> 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적 또는 국제적으로 중대한 위기에 직면했을 때” 이다. 사람이 어떻게 매 순간 순간을 <비상시>의 초긴장 상태로 살 수는 없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타력이 필요하다.
우리 세대는 <비상사태>, <비상 시국>, <비상 계엄령>.. 이러한 단어들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독재, 군중, 데모, 혁명, 탄압, 감금, 고문, 학대, 감옥, 죄수, 죽음, 파산, 파문, 가난, 고통, 배신, 도둑질, 매국, 변절.., 잊고 싶은 단어들이 너무 많다. 조선의 근대사와 현대사에 비상시국이 아닌 적이 얼마나 되었던가? 조선반도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등 강대국들의 수많은 조선 침략 전쟁 뿐만 이니라, 청일전쟁, 노일전쟁 등 강대국 간의 전쟁터이기도 했다. 일재 강점기 식민지 시대도 견디어내고,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군사독재 시대 40년, 적폐와의 전쟁도 촛불혁명으로 견디고 이겨냈다. 정말 대단한 <비상사태> 민족이다.
어찌 보면 지구촌 어느 곳이나 현대 민중들의 삶은 <비상시>를 살아가는 삶 일지도 모른다. 아니 산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삶이라는 굴레에서 도망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다. 어떻게든 살아 있어야 사는 것이다.
<타력>의 저자 이츠키 히로유키는 1932년생으로 조선총독부 시절 서울에서 초등학교, 1945년 일본 패망시 평양에서 중1을 보낸 특이한 이력이 있다. 그의 저서 <타력>에서 몇가지 인용해 본다.
일본 불교의 3대 종교가 렌뇨의 <타력본원 (他力本願)>의 의미는 “타인이 하는 대로 내맡김”이다. 반대가 자력(自力), 자기책임 일 수 있다. 일본 정토교의 시조 <호넨>의 가르침 중에 <이행왕생 (易行往生)>과 그의 제자 신란의 <자연법이(自然法爾)>가 있다. <이행왕생>의 <이행>은 “쉽게 행하는 것”, <왕생>은 “살아갈 힘을 줄 수 있는 것”, 즉 괴로움과 불안 속에서도 진정한 평화를 느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원래는 <이행염불>, 즉 “오로지 아미타불을 믿고 염불하라”라는 의미였다. 기독교의 “주 하나님만을 믿고 기도하라”와 일맥상통한다. 호넨은 힘든 수행이나 어려운 학문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삶 속에서 순수히 “나무아미타불”만을 중얼거림으로써, 살아가는 힘과 기쁨과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나무아미타불>은 세가지 말로 이루어져 있다. <나무>는 산스크리티어의 <나마스(namas)>로 “귀의하다. 귀명하다”라는 뜻이다. 인도 인사말로 <나마스. 떼>의 <떼>는 <당신>이라는 의미로 <부처님께 귀의한다>라는 의미다. 즉 <나무>는 “부처님께 저의 모든 것을 맡깁니다”라는 뜻이 된다.
<아미타>는 산스크리트어의 <아미타유스, 중국어로 무량수(無量壽)>로 “우주에 힘차게 흐르는 끝없는 생명의 에너지”이고, 또 다른 의미는 <아미타바, 중국어로 무량광(無量光)>으로 “세계 모든 것을 구석구석 비추는 진리의 빛”으로 해석한다. 마지막 <불(佛)>은 부처를 의미하며, 부처는 <깨달은 사람>을 가르친다. 부처는 <석가모니>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되고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신란의 <자연법이(自然法爾)>의 자(自)는 <저절로>, 연(然)은 <그렇게 된다> 라는 것이다. 이 가르침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인데, <진인사즉천명(盡人事卽天命)>으로 해석한다. 여기서 <천명(天命)>은 <타력(他力)>이다. 필사적으로 인간이 최선을 다하고 나서 천명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인간의 결의가 충만하다고 하나 천명(타력)의 도움 없이는 안된다는 것이다. 엔진 없는 돛단배에 비유한다. <타력의 바람(천명)>이 불어야 사람의 의지로 배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타력(他力)은 인간의 <강한 믿음>과 <진정한 의욕>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나만의 의지나 의욕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과감한 용기, 결단, 노력, 의지도 없이 무작정 <타력의 바람>만 기다리는 것도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삶이 힘들고 잘 되지 않을 때에는 아직 <내 소관이 아니다>라고 위로하면서 <타력>을 기다려만 한다.
엄중한 시국이다. 미국의 <코로나 사태>는 이제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나의 믿음이 온전하며, 신과 공동체의 타력(他力)이 나의 자력(自力)과 하나 될 때, 이 난국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것이다. 여러분 모두 힘내세요.
한국인의 교육혁명 (03-13-2020)
이번 코로나 19사태로 인해 야기된 <신천지> 3십만명 교인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철저하게 이단 교리에 함몰된 거대 집단의 저들은 누구인가? 사회 양극화로 소외된 삶, 성적과 스팩에 피폐하고 지친 젊은이들, 청소년 자살률이 11년째 세계 1위, 자살 원인 1위가 학업 문제, 청소년 3명중 1명이 자살 충동, 노인 자살률 세계 1위, 경제대국 10위의 잘 살아도 <행복하지 않는>나라, <학벌>이 <계급>이 되어버린 나라, 철저한 경쟁과 기회에서 낙오된 수많은 한국 민중들의 마지막 피난처나 탈출구가 <신천지>와 같은 이단 종교나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은 아니었을까?
그러던 와중에 김누리 교수의 <차이나는 클라스> 강의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교육혁명>”은 <6월 혁명>과 함께 가히 충격적이었다. 김교수는 <교육 혁명> 없이는 <사회 혁명>도 없다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 교육 100년은 교육이 아닌, 반(反)교육 이었다고 한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후 일제 식민지 30년은 외세 지배의 <제국주의>시대 였으며, 교육목적은 <황국신민(皇國臣民)>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마저도 80%가 문맹이었던 <암흑 세대>다. 해방후 미군정과 독재정권 40년은 <국가주의> 시대였으며, 교육 목적은 <반공전사, 산업역군>을 만든 것이었고, <박정희 신드롬>의 <태극기 부대>세대다. 그후 민주 정권 30년은 <신자유주의> 시대로, 교육 목적은 <인적자원, 노동기계>를 만드는 <스펙(specification) 신세대>다. 스펙의 의미는 스스로를 인간이 아닌 자본주의 노동 제품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한국도 미국도 <자본 독재시대>이며, 기계든, 인간이든, 모두가 자본의 종속물이다. 그러니 한국 교육 100년 동안은 인간을 위한 교육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태리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는 <한국 사회의 4가지 특징>을 첫째, <끝없는 경쟁>, 둘째, <극단적 개인주의>, 셋째, <일상의 사막화>, 넷째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 (Hyper Accelerating)> 로 단정한다. 특히 한국은 <경쟁 중독사회>이다. <경쟁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경쟁>은 <자기 착취>를 끊임없이 강요당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특징은 자신을 자연화 (naturalize)하는 것이다. 즉 <경쟁>을 자연의 섭리처럼 당연하게 받아드리는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그러니 한국은 강력한 <현대 허무주의>에 순응하는 나라가 되어 버려, 날개를 펴 보기도 전에 삶을 포기해 버리는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생기는 것이다.
반면에 독일은 1946년 이후 <교육혁명>이 일어나, 지금은 세계 교육계에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독일은 독일 나치의 아우슈비츠 대학살과 같은 역사적 과오를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독일 교육 혁명의 목적이다. 독일 교육은 한마디로 <비판 교육>이다. 모든 이념에 대한 통찰력을 키워주는 것, 학생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 즉 <비판적 사고방식>을 키워주는 교육이다. 모든 제도와 이론에 <올바른 해석은 가능한가> 라는 의문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니체의 모든 것을 <의심하라>처럼.. 비판과 질문이 허용되지 않는 한국 교육과 사뭇 다르다.
독일의 세가지 중요 교육은 <성교육>, <정치교육>, <생태교육>이다. 물론 한국에는 없는 교육이다. <성교육>은 <자아 교육>이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심리는 자아(ego), 초자아(super ego- 사회적 규범, 윤리, 도덕), 성충동(libido)로 구분되는데, 자아는 성충동이 생길 때 비로서 형성된다. 성은 생명과 인권에 직결되며, 엄격한 자기 결정권이다. 한국은 성충동을 초자아가 악마화 하기 때문에 자아가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죄책감을 내면화한 자아는 권력 앞에 굴종하게 된다. 따라서 <성교육>은 <나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교육이다.
<정치교육>은 <타자와의 관계> 교육이다. 대표적으로 <선동가 판별 교육>이다. 독일의 가짜 뉴스 벌금은 667억원이다. 파산선고나 다름없다. 둘째는 <저항권 교육>을 가르친다. <투표와 시위>다. 수용할 수 없는 지배 관계와 사회적 억압에 대한 저항능력을 가르쳐야 하고, 다른 규범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
<생태교육>은 환경 오염을 방지하고 예방하는 교육이다. 독일 학생은 소비할 때 죄책감을 느끼는 <소비 포기운동>도 한다.
한국 교육 1백년동안 <교육 개혁>은 없었다. 오로지 <입시 제도 개혁>만 있을 뿐이었다. 김교수의 <한국의 교육 혁명>은 첫째 <현행 입시제도 철폐>다. 국립대학 (전국 대학의 13%)을 네트워크화 하고, 서열 구조를 없애라. 둘째 대학등록금을 폐지하고, 대학생들에게 생활지원금을 지불하라. 한국은 충분히 잘 사는 나라다. 셋째 한국 사립대학은 철저히 국가 통제와 지도를 받게 하여 점진적으로 국립화 하라. 독일은 90%가 국립대학이다. 누구라도, 언제라도, 어느 대학이라도, 어느 과라도, 돈이 없더라도, 기회의 차별없이, 대학에 들어 갈 수 있어야 한다. 고졸이 대졸과 동등하게 잘 사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독일은 대학 진학률이 30% 선에 불과하다. 국민 모두가 <행복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혁명>으로 민중들의 비판의식이 깨어나 <사회 혁명>을 이루어야만 가능하다. 더 열심히 노력하라, 강해져라, 이겨야만 한다. 일등만 살아남는다 등등.. 더 이상의 인권이 착취 당하는 한국 교육은 없어져야 한다. 대학등록금과 국민의료 건강을 착취하는 미국은 결코 일등 국가가 될 수 없다. 기성세대는 기회가 평등한 좋은 세상을 후세들에게 물려 주어야 한다..
세균 전쟁과 종교 바이러스 (03-06-2020)
아버지, 한국 국민들이 지혜와 슬기를 모아서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집단 감염 사태와, 이로 인한 여러 난관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수많은 역사의 질곡을 이겨낸 조선의 민중들 눈에서 더 이상의 눈물은 거두어 주소서.
작금의 한국이 너무 걱정된다. 바이러스 코로나 19가 중국 위안에서 발생한 후, 한국에는 2020년 1월20일 첫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후, 2월16일 까지 30명의 확진자에 그쳤다. 세계는 한국의 첨단 과학으로 접촉자 전체 동선 공개, 대규모 바이러스 진단 능력, 자유로운 언론 환경, 민주적 책임 시스템, CCTV 전국망 파악, 신속한 정부 대처와 첨단 의료 체제, 초고속 정보통신망 운용 등을 격찬한다. 전 세계의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미국이나 중국, 일본의 대처와 비교할 수 없는 자랑스런 한국의 위기 대처 능력이다.
그런데 <신천지 신도>로 밝혀진 2월18일 31번째 확진자 부터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3월2일 칼럼을 쓰는 현재까지 160배를 넘어선, 확진 환자 4,812명, 사망자 28명이다. 31번 환자의 대구 경북지역 환자가 80%를 차지한다. 인구 분포당 세계 1위인 수치다. 한국인 입국 금지 국가도 33개국으로 늘어났다. 또한 코로나 19는 지금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세계 일부 언론들은 일련의 한국 코로나 사태를 <신천지>라는 광신적 사이비 종교 집단과 보수 정치권력의 야합, 은폐 왜곡하려는 보수 언론의 합작품이라 평가한다. <신천지> 교단의 방임과 은폐, 조직적 비협조, 가짜 정보 등으로, 확산을 막을 결정적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2009년 인플루엔자 범확산과 구제역 파동, 2015년 대한민국 메르스 사태, 2016 ~2017년 AI 사태, 2019년 동아시아 아프리카 돼지 열병 확산 등, 향후 세계는 <세균 전쟁> 시대로 접어들었다. 어찌 보면 <핵폭탄>, <생화학 무기> 보다 더 무서운 것이 <세균 폭탄>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유명한 저서 <총. 균. 쇠>에서 언급한 것처럼, 스페인 등 유럽인들의 병원균은 총기나 철제 무기보다 훨씬 더 많은 남북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죽게 만들었다. 남아메리카 거대한 대륙이 무너진 것도 스페인 등 유럽 백인들의 <세균 =병원균>에 저항할 <바이러스>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포전쟁 (Dying to Live)>의 저자 매리언 캔들은 인체가 질병과 어떻게 써우는지 말한다. 우리 몸에 침입자를 물리치는 방법은 체내 면역세포 총 동원령을 내려 침입자를 직접 죽이거나, 그러지 못할 경우 체내 세포들이 스스로 침입자와 함께 죽는 것이다. 인체 몸은 전쟁터이고, 자가 면역 시스템은 자살 특공대이다. 성인 몸속에는 대략 500조 마리의 생물들이 기생하고 있다. 백신, 항상제 등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병을 이겨내려는 인간의 면역 체계 연구인 면역학, 세균학, 세포학 분야는 향후에도 무궁무진하다. 코로나 19 백신도 곧 개발 되겠지만, 또다른 신종 바이러스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지구 환경을 보호하고 개인 건강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 19의 문제 본질은 <신천지>라는 광신적 이단 종교다. 아니 <현대 한국인>의 특별함이다. 종교는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어떠한 형태로든 생존할 것이다. 세계 인구의 84%가 종교를 믿고 있지만, 선진국 일수록 저출산이며 종교에 대한 열망이 줄어드는 반면, 후진국일수록 고출산이고 종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이슬람교는 종교와 정치가 동일체다. 한국의 종교는 인구 절반 이상이 무종교 이며,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와 개신교)가 각각 절반 정도이다. 그런데 한국인의 종교는 개인적 신앙 이외에 친선, 친목, 정보교환, 동종 의식, 공동체 소속감 등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타종교에 배타적이고, 자신의 종교에 대해 절대적 신성화 하므로, 이단 종교와 정치 권력이 침투하기 쉽다는 것이다.
비단 <통일교>, <구원파>, <신천지> 등만을 이단이라 말할 수 있는가? 문선명이든, 이만희든, 사이비 교주든, 대형교회 목사든, 왜 죄인인 인간을 신격화하고, 목을 메고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을 바치는가? 그런 자신이 광신자임을 진정 모르는 것일까? 신천지나 대형 교회나 오십보 백보다. 신앙은 상식이다. 대단한 학문이 아니다. 어느 종교나 교리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행동하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인간이 어리석을 뿐이다. <신천지> 교인 수가 2십 4만명 , 그리고 교육생수 가 10만명, 총 3십4만명이 특수부대원이라면 대한민국 군대보다 막강한 힘이다. <신천지>나 대형 교회나, 그 수많은 교인들이 못 배운 자들인가? 무지몽매한 자들인가? 왜 비단 한국만이 해 저무는 서양 종교에 이토록 목을 메는 것인가? 중국, 일본, 인도, 동남아시아 어느 나라도 한국처럼 기독교 개신교에 이렇게 광신하는 나라는 없다. 한국 현대사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미군정 시대, 한국전쟁, 독재정권 30년, 기득 보수정권 10년 기간 동안, 독재와 가난, 굶주림과 학대, 편견과 차별, 신분 계급과 굴종, 불공정과 억압, 부정과 부패 등등 에 쪄들어서 그런가? 저 집단에 들어가면, 저 교단에 들어가면, <우리>가 되고, <함께>가 되어 무리가 될 수 있으니 <불확실>과 <불안정>에서 보호와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까? 참으로 특이한 민족이다. 하지만 위기에 강한 민족이다.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부디 긍휼히 여기소서..
귀하신 몸 (02-28-2020)
세상을 살다 보면 귀하신 분을 만날 기회가 있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인물일 수도 있고, 평소 존경하는 분일 수도 있다. 귀하다 함의 기준은 극히 주관적이다. 남들 눈에는 별로인 사람이 나에게는 귀한 분 (대표적으로 나의 아내?)일 수도 있고, 남들은 귀하다고 하나 정작 나는 별로인 인물이 있다.
경제학으로 <귀하다>는 의미는 <희소성의 가치>로 대변할 수 있다. 희소성(稀少性)은 드물 희(稀), 적을 소(少)처럼, 드물고 적기 때문에 그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고, 99개를 가진 자가, 1개를 더 가지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없을 때는 한 개만 가지면 족하다. 못가진 자의 욕망은 소박하고도 겸손하다. 그러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가지면 가질수록, 달리는 속도는 가속도가 붙어서 결국은 산산이 부서져 버리는 것이다. 반면에 모든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돈>도 한정되어 있고, <시간>도 한정되어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은 <유한(有限)>한 것이다. 그래서 소중히 사용해야 하고 절약하고 양보하고 공유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이라는 무한성이 모든 자연의 가치와 질서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희소성의 가치>에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다이아몬드>다. 대부분의 보석 류가 그러하듯이,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어찌 보면 대단히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생존의 필수 도움재도 아니다. 순전히 인간의 무한한 욕망 (수요)과 자원의 희소성으로 투자 가치만 높을 뿐이다. 따라서 <희소성>이 성립 되려면 나에게 유용하거나 가치가 있어야 하고, 인간의 욕망에 비해 그 수량이 적어야 한다. 사막의 물 한 모금과 편의점의 물 한병의 차이를 생각하면 된다.
요즘 나에게 <귀하신 분>은 우리 지역의 한인 <Buyer> 분이다.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가게를 사겠다는 바이어 자체가 희소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첫째, <새로운 바이어>, 즉 신규 고객이 없다. 그 이유는 미국에 이민을 오지 않는다. 설령 이민을 오더라도 우리 지역으로 오지 않는다. 냉정하게 표현하면 먹고 살기 위해 무작정 미국으로 이민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메리카 드림>이 없어졌다. 영주권 받기도 하늘의 별 따기다. 흑인동네에서 악다구니 써가며 힘들게 일해야 한다. 미국에서 비싼 등록금을 내며 학위를 받아도, 취업하기 어렵고, 한국에 되돌아 가도 예전처럼 특별 대접받지 못한다. 반면에 한류 열풍으로 한국인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인정받고 대접 받는다. 학비도 미국 보다 훨씬 저렴하다. 유럽, 캐나다, 호주, 심지어 중국, 동남아시아 어디를 가도 미국 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둘째는 <팔고 사기>, 즉 유통 채널이 막혀버린 것이다. 하고 있는 가게를 팔아야, 하고 싶은 다른 가게를 살텐데, 팔리지 않는 것이다. 가게가 팔리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우리 지역의 한인들은 대단한 부자들이 아니다. 대부분이 소규모 맘엔팝 비즈니스를 한다. 그런데 첫째는 지금도 그렇지만 향후 시간이 갈수록 <Stock> 비지니스는 팔기 어렵다. <아마존> 등 인터넷으로 온라인 배달이 가능한 업종은 생존하기 어렵다. 대규모 사업장에 가격 할인 정책으로 유지하는 것도 한계성이 분명하다.
둘째는 <장치 사업> 혹은 <시설 사업>이라는 카워시, 라운드리 메트, 대형 레스토랑, 개스 스테이션 등은 돈 많은 중국인들을 이길 수 없다. 한인사회도 <10 : 90 사회>다. 못가진 자가 무리하게 융자받고 투자해서 가진 자를 따라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각자의 분수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종업원을 많이 쓰는 사업도 할 수 없다.
셋째는 이민 온 한국인들의 <삶의 가치>에 대한 변환이다. 고생하지 않고, 죽기 살기로 일하지 않고, 위험한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주 7일 일하지 않고, 저녁 장사를 하지 않으려 한다. 부부가 각자 일하기 원하며, 자식들은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 거기다 <투자 자금>은 적고 <경험>도 적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욕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비지니스를, 내 장사를 꼭 하고 싶다는 <욕망>이 없는 것이다. 우리 한인사회는 <노령화 사회>다. 노인은 급하지 않다. 손님 중에는 3년이 지나도록 가게 문의만 하고 사지 않는 사람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급 생활자는 주급 생활자로 끝난다. 주급생활자가 부자 되었다는 이야기는 전설에도 없다.
매물은 흘러 넘친다. 우리 지역에 내가 가장 많은 한인 매물을 소지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매물 가격들도 많이 내렸다. 장사가 안된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하지만, 맞지 않는 이야기다. 잘되는 가게는 여전히 잘된다. 성공요소는 <차별화된 서비스>다. 부지런하고, 친절하고, 빠르고, 인내심이 강한 소자본의 한국인이 할 수 있는 업종, 생존할 수 있는 업종, 성공할 수 있는 업종은 한정되어 있다. 역시 세탁소, 드롭 스토아. 블랙퍼스트, 델리, 생선, 튀김, 야채, 네일, 컨비니언스, 비어델리 등 일 것이다. 그나 저나 사업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게를 하겠다는 <적극적 욕망과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 그래도 <귀하신 몸>은 <귀하신 몸>이다.. 연락주세요. 귀하신 몸으로 잘 모시겠습니다. ㅎㅎ
기생충들의 반란 (02-21-2020)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반란이자 혁명이다. 작년에 이 영화를 볼 때만 해도 아카데미 4개 부문 상과 유럽 각종 영화제 상을 휩쓸거라 생각도 못했다. 대단하고도 축하 받아 마땅하다. 그것도 이명박, 박근혜 보수정권 시절 때 블랙리스트에 올라 핍박 받던 영화 감독과 배우들이었으니 말이다. 왜 세계인들은 이 영화에 이토록 찬사와 열광을 보냈을까? 나는 작년 10월에 영화 <기생충>과 <조커(Joker)> 영화 두편을 보고 <가난한 민중들의 웃음>이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비단 이 칼럼 뿐만 아니라, 나는 못가진 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의 입장에서 글을 써 왔다. 세계에 만연한 신자본주의 <양극화> 현상, 10%의 가진 자와 90%의 못가진 자, 기회의 불평등, 가난의 되물림, 소득의 불균형, 노동의 상실과 배신, 등등.. 나의 칼럼 주요 주제이기도 하다.
사회의 양극화 현상은 천당과 지옥 처럼, 선과 악의 구분도 아니고 옳고 그름의 차이도 아니다. 가진 자라고 해서 모두 악한 자도 아니고, 가난한 자라고 해서 모두 선한 자들도 아니다. 다만 아무리 노력해도 가능하지 않는, 양반과 상놈의 봉건사회 처럼, 신분이 계급화 되어버린, 그냥 딴 세상에 사는 이원화된 부류의 인간 집단이 되어버렸다. 기생충의 포스타 처럼, 가난한 기택 가족의 눈에는 검은색 줄이, 부자인 박사장 가족의 눈에는 흰색 줄이 눈에 그어져 구분 되어진다. 백인(주인)과 흑인(노예), 쫓겨난 인디언(원주민)과 빼앗은 백인 기독교인(점령군)들 처럼.. 마치 눈은 마음의 영혼이므로 출생부터 문신처럼 새겼다는 듯이..
반지하 단칸방에서 사는 기택 가족은 출생부터 가난한 가족은 아니었다. 아들 기정은 대입 4수생이며, 딸 기정이 미대 지망생인 점, 아내 충숙이 해머 던지기 은메달 선수 였던 점, 남편 기택은 치킨집, 대왕 카스텔라 자영업도 했던 점을 미루어 보면, 중산 계급으로 살았고, 하류 계급으로 낙오되지 않으려고 열심으로 살았다 짐작할 수 있다. 나도 IMF 때 10% 상류층에서 일순간에 하류층으로 떨어져 봐서 안다. 이제는 내 생애 다시는 상류 사회로 돌아갈 수 없음도 안다. 주인공 기택의 방에 걸려 있던 <안분지족 (安分知足) –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알아라>이라는 가훈이 더욱 가난한 자들을 씁쓸하게 만든다. 조선의 선비들이 즐겨 벗삼은 <안빈낙도 (安貧樂道) – 가난하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으며 살아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는 <네 주제를 알아라> 는 냉엄한 현실과 이제는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고’ ‘신분 상승용 사다리”는 없어진지 오래다.
영화 <기생충 (寄生蟲), Parasite>에서 유명한 대사가 몇가지 있다. 영화에서 아버지 기택은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무계획이 가장 좋은 계획이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게 없는 세상에 사는 못가진 자들의 자조적 체념이다. 그러면서도 아들에게는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는 기대와 희망을 갖는다. 못가진 자들을 대표하는 하류층의 냄새는 <지하철 냄새>로 대변되고, “일하는 아줌마는 쌔고 쌨으니 얼마든지 구하면 된다” 는 박사장의 말은 민중을 한낱 그들의 부품으로 단정한다. 또한 하류층은 상류층과의 지켜야 할,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대사도 그렇다.
무엇보다 제목 자체가 분노를 불러 일으킨다. <기생충>!! 다른 동물에 붙어서 양분을 빨아 먹고 사는 벌레!! 부산고등학교 시절에 우리의 멘토였던, <살메>라는 시호를 쓰시는 선생님이 계셨는데, 야단치실 때 가장 심한 욕이 <식충이 같은 놈>이었다. 성철 큰스님도 공부를 게을리 하는 스님들에게 <식충이>라는 극하대 명칭을 쓰셨다. 아무리 잘못 되어도 식충이로는 살지 말라는 가르침 이셨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한사람 한사람 모두를 그토록 사랑하사 직접 만드시고, 지구별에 특명으로 내려 보낸 귀한 존재들인데, 지구별에 와서 살면서 <식충이(食蟲) = 밥버러지, 밥벌레> 같은 놈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또한 식충이가 되고 싶어 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대부분의 민중들은 식충이로, 기생충으로 취급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현대 신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가 기생충인가? 민중의 피를 빨아먹는 가진 자 10%인가? 죽는 날까지 죽도록 일하는 나머지 90% 민중이 기생충인가? <신자유주의> 라는 미명 아래 무한 경쟁, 무한 착취가 합법적 제도권 하에서 자행되어 왔다. 가진 자들은 <성장>만 원할 뿐, <분배>를 원하지 않는다. 민중은 방치되고 버림받고 살아간다. <신분 전환>이나 상승이 안되는 사회는 <민주 사회>가 아니다. 밥벌레가 아니라 인간이 되고 싶어 발버둥을 치지만,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깊은 수렁에 빠져든다. 기생충 영화에는 많은 종류의 계단이 등장한다. 오를 수 없는 계단? 끝없이 내려가야만 하는 계단? <희망? 소망? 꿈? 개나 줘 버리라고 해!!>. 3포, 5포, N포.. 포기하지 않으면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은 우리 자식 세대와 후손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그들은 꿈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도전 의지> 마져 잃어 버린 것이다. 민중의 개개인이 각자 해결할 방법은 거의 없다. 사회가, 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민중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 양극화 사회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혁명하라!! 민중들이여..
처음처럼 (02-14-2020)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나는 새싹처럼 / 우리는 하루가 머무는 저녁 무렵에도 / 아침처럼 / 새봄처럼/ 처음처럼 /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 신영복 서화 에세이 <처음처럼>에서 –
삶이 고달프고 힘들 때면 문득 신영복 선생 같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진다. 어떤 인연으로 알게 되었든,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차 한잔이나 막걸리 한잔을 마시고 싶은 사람이 있다. 정치인, 종교인, 작가, 화가 등 유명인도 있겠지만, 학창시절 통기타 치며 막걸리 마시던 친구들, 고향 선후배 등.. 세상에는 함께 하고픈 좋은 사람들이 꽤나 많다. 나는 흔히들 말하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지만, 막걸리를 함께 마시고 싶은 정치인은 문재인, 노무현, 노회찬, 등 진보론자가 많다. 내가 좋아하는 이런 류의 사람들은 나라를 팔아먹을 철면피 위인들은 되지 못한다. 나라도 팔아먹어 본 놈이 팔아먹고, 독재도 해 본 놈이 독재를 한다. 부정축재도 해 본 놈이 더하고, 매관매직도 해 본 놈들 끼리끼리 다 해 먹는다. 유독 한국사람은 학벌에 약하다. 공부 잘 한 놈 중에 나쁜 놈이 더 많다.
좋은 사람이란 자신의 조그만 잘못만으로도 용서가 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바보같은 위인들이다. 존경을 떠나 좋은 사람이라 믿기에 좋아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은 살아온 과거가 좋아야 한다. 과거가 좋은 사람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잘못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반성하고 <처음처럼> 혁신하고자 애쓰는 사람이다. 그들은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좋은 사람, 선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일을 겪으며 산다. 살다 보면 후회되는 일도 많고 잊고 싶은 일도 많다. 특히나 사람과의 만남이 그렇다. 차라리 만나지나 말 것을, 차라리 모르는 남남으로 살았더라면 더 좋았을 후회스런 만남도 있다. 누구의 잘못이든 간에 만약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은 관계로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착각도 한다. 많은 관계를 되짚어 봐도 처음부터 악연으로 만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삶도 일도 처음부터 좌절과 절망으로 시작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의 처음은 희망과 꿈을 갖고 선한 마음으로 시작한다.
신영복 선생의 <처음처럼>은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라는 것이다. <처음처럼> 살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사색, 생명에 대한 외경,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성찰과 사색이 이어져야 한다.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하며, 희망을 후손들에게 남겨 주어야 한다. 그것만이 먼저 살다간 자로서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선생은 <석과불식 (碩果不食)>이라는 휘호를 남겼는데, 초겨울의 나목이 마지막 잎사귀를 떨구고 생을 마감한다 할지라도, 후손을 위한 <씨과실 (씨종자, 碩果)>은 먹지않고 땅에 묻어 내일을 꽃피운다는 글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다. 시작이 있었으면 끝이 있다. 육신의 부활과 영생은 없다. 하지만 우주의 생명은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고 윤회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새벽, 아침, 낮, 저녁, 밤>, <탄생과 죽음의 반복>. 그 무엇도 멈추어 있지 않고 새롭게 변한다. 봄은 새로움이다. <새날 풋기운>이다. 오롯이 새 기운이고 새 희망이다. <처음처럼>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세월 살다가는 사람들로서 잘 살았든, 못 살았든,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지구별 선배로서의 좋은 씨앗들을 남겨 주어야 한다. 나에게 가장 가까운 후손은 누구인가? 내 자식들이다.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 <처음처럼> 느끼게 할 그 무엇을 남겨 줄 것인가?
나는 삶에 대한 진지함, 순수함, 선함, 신선함 이런거 였으면 좋겠다. 나는 살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나의 좌절과 아픔이 가족들에게 까지 전이되고 고통을 준 점에 대해 굉장히 미안하고 죄책감 마져 느낀다. 더구나 훌륭한 사람도 아니었고 존경받을 인물도 아니었다. 하지만 정직하게 진지하게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 것 같다. 내 인생의 모든 선택은 누구의 강요도 아닌, 내 스스로 모든걸 결정했기에 원망할 수도, 후회하지도 않는다. 부모와 자식 이외의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하고 결정했기에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사람은 누구나 시간에 대한 두려움과 미안함이 있다. 그래서 <처음처럼> 새날, 새마음(初志), 새것을 그리워하고 갖고 싶어한다. 이제 나의 석과 (씨종자)는 나의 남은 세월동안 나의 흔적을 칼럼이라는 글을 통해 남기는 것이다. 글의 엄중함을 알기에 글과 삶의 행동이 크게 다르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렇게 살려는 노력을 자식들에게 보여 주고자 함이라. 2007년 가을부터 매주 신문에 빠지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것은 후안무치며 몰염치다. 그럴수록 초심(初心)을 잃지 말고, 책을 읽고, 사색하고, 경계해야 한다. 죽는 날까지 <처음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다가 가고픈 소망이다.
떠나간 님아 (02-07-2020)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 푸른 산빛은 깨치고 (시구풀이 : 깨뜨리고) 단풍나무 숲 (시구풀이 : 절망, 조락, 불교의 공(空) 사상을 함축함)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 황금(黃金)의 꽃 (시구풀이 : 영원히 변치않을 사랑의 약속) 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盟誓)는 차다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追憶)은 나의 운명(運命)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러졌습니다. /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줄 아는 까닭에, /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옯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 (시구풀이 : 정수리)에 들어부었습니다. (시구풀이 : 이별의 슬픔을 극복하여 만남의 기쁨으로 승화시키려 함)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나는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얐습니다. /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沈默)을 휩싸고 돕니다. – 한용운의 <님의 침묵(沈默)> 에서-
님이 떠난는 것은 현상(現象)일 뿐, 님에 대한 사랑의 본질은 항상 나의 침묵으로 남아 있습니다. 헤어짐은 언젠가의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는 것입니다. 님은 저와 일년 가까이 함께 살았습니다. 함께 사는 동안 너무 좋았고 사랑했습니다. 언젠가는 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가리라 짐작은 했고 마음의 준비도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막상 님이 떠나간 자리는 혼자서 감당하기에 너무 커져 버렸네요. 특히나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님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찰랑거리는 목소리를 듣지 못함이 가장 견디기 힘이 듭니다. 집안 곳곳에 어질러 있던 님의 옷가지며 물건들이 이제는 사라지고, 항상 언제나 정리정돈이 잘 된 집안 모습들로 더욱 낯설게 느껴지는 싫음입니다.
또한 님과의 대화는 나같은 늙은이가 희미하게 잊고 살았던 만물의 소중함에 다시 감사함을 주었답니다. 햇님, 바람, 석양, 구름, 빗님, 계절, 새싹, 꽃봉우리, 달님의 이동과 변화, 별들과 창조주, 우주와 나사, 새들의 지저김, 생명의 태어남과 죽음, 등등 ..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특히나 해질 무렵의 산책길은 님과의 잊지못할 추억으로 남겨 주었습니다. 산책하다가 즉석에서 노래 가사를 창작하여 흥얼거리는 님의 모습은 천사 같았지요. 님은 예리한 사물의 관찰력과 풍부한 어휘능력 등으로 많은 기대를 갖게 하였지요.
더우기 님에게 고마운 일은 퇴근하고 돌아온 저에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저는 님처럼 그런 적극적인 여자가 좋습니다. 제 아내는 가급적 저녁을 안먹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요. 그래서 밉기도 합니다. 님 덕분에 모처럼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물론 지금은 다시 <저녁이 없는 삶>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때가 즐거웠습니다. 또한 이민와서 몇번 밖에 가보지 못한 패스트푸드 점을 님의 핑계로 주말에 갈 수 있었던 것도 고마워요. 소고기 햄버그, 프랜치프라이, 콜라! 아, 언제나 다시 먹어보려나..
아쉬운 점은 여름철에 수영을 완전히 가르쳐주지 못했네요. 몇번만 더 하면 구명 조끼 없이 수영할 수 있었는데 제가 게을러서 그랬다는 것이 후회되네요. 그리고 님은 그림에도 상당한 소질이 있었는데, 저와 함께 그리지 못한 아쉬움이 큽니다. 언제나 헤어짐은 아쉬움과 후회가 더 크기 마련이지만, 한없는 기다림은 노친네의 가혹한 덕목이지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님의 아빠 직장이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엔젤러스가 아니고, 북부 뉴저지로 되어 이사가게 된 점입니다. 님이 보고 싶으면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으니 말입니다. 또 님의 이모 가족들과 같은 동네에서 살게 되어 여간 다행이 아닙니다. 자매와 사촌끼리 길건너 산다는 것은 여간 감사할 일이 아니지요. 가까운 사람은 자주 만나는 사람입니다. 거리가 멀어지면 몸도 멀어지고,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집니다. 물론 그리움은 지우려해도 지워지지 않지만, 그리움이 쌓이면 마음의 상처가 되기 때문이지요.
님과 함께 산 일년이라는 세월은 나같은 늙은이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삶의 촉진제가 되었지요. 나도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더욱더 하루하루 시간을 귀하게 살려고 합니다. 제 아내와 더 열심을 내어 산책도 가고 산행도 가고 여행도 갈려고 합니다. 님처럼 믿음은 강하지 않지만, 더욱더 선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려고 합니다. 님도 살다가 살다가 힘들때나 보고 싶을 때면 언제라도 이 할애비에게 오세요. 와서 마음의 짐을 다 내려놓고 수다 떨고, 맛있는 요리 만들어 먹고, 운동하러 같이 가고, 함께 산책가고 그러지요. 이제 님은 여섯살이니 무엇이든 소원을 세우고 기도하면 할 수 있어요. 아프지말고 건강해야 해요. 그리고 사랑합니다.. <여섯살 손녀딸이 떠난 어느날 할아버지가>..
여기서 이대로 멈출순 없다 (01-31-2020)
2019년 작년 한해동안 변동사항은 그 이전에 비해 한인 젊은이들이 맘엔팝 비지니스에 많이 뛰어든 점이다. 여러모로 힘들 것이다. 해서 작으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나의 이민 초기 창피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1998년 IMF때 사업실패로 전 재산을 잃었다. 한참동안 죽음을 생각했다. 지인들 도움으로 밴처회사 월급쟁이 사장을 했다. 2000년 어느날 아내는 자식들 3명과 함께 언니가 사는 미국으로 홀연히 떠났다. 아이들 교육 때문이었다. 기러기 아빠가 되었다. 아내는 미국에서 함께 살자고 매일밤 전화로 울었다. <9.11 사태>가 터졌다. 더이상 가족을 먼 타국에 홀로 둘 수 없었다. 2001년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전재산인 전세돈 4만불을 가지고 무작정 미국을 왔다.
원룸 단칸방 아파트에서 다섯식구가 모여 살았다. 신분도 여행자 신분이었다. 유일한 신분 해결방법이 E-2 비자(소액투자비자)인데, 최소 10만불 이상 있어야 신청이라도 할 수 있다고 한다. 당연히 은행 융자도 받을 수가 없었다. 불체자 신분이 될 판이었다. 겨우 찾은 가게가 한국 사람들이 하기 싫어한다는 흑인동네 정육점(Meat Store) 가게였다. 평생 대기업에서 경영기획과 대형 컴퓨터 분야에서 일했고, 내 사업으로 일본기업 총판사업과, 전국 온라인 교육사업을 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도 구분하지 못한 위인이 정육점에 대해 알면 무얼 얼마만큼 알았겠는가?
그 당시에만 해도 한인사회에 비지니스 컨설팅을 해 주는 정보회사가 없었다. 성공? 부자? 아메리카 드림? 꿈도 꾸지 않았다. 자식 3명을 대학 교육만이라도 마칠 수 있기를 소망했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저녁 7시에 가게 문을 닫으면 어린 자식과 아내를 중고밴에 싣고는 흑인동네에 배달을 다녀야 했다. 캄캄한 밤에 흑인동네에 배달하는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지도 못했다. 알았으면 그 위험한 곳을 다녔겠는가? 망가진 흑인 가정들을 보았다. 마약에 쩌들은 흑인 엄마의 눈빛, 낯선 사내들, 복도에 내팽겨친 아이들, 집안의 오물들과 악취, 가로등도 없는 캄캄한 골목길,.. 지금도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물론 권총 강도를 만나서 겨우 몸만 빠져 나온 적도 있었다. 그곳은 내가 1980년대 미국 출장이나 연수 때 보았던 부유한 미국이 아니었다.
5년동안 흑인동네 정육점 장사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돈도 그다지 모이지 않았고 생활도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아무런 것도 해 줄수 없음을 알았다. 나도 과거의 내가 아니었다. 삶의 말과 행동은 거칠어지고, 거울에 비친 모습은 다른 형태의 인간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살아도 사는게 아니었다. 그냥 사니까 사는거 였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여느 때 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고기만 쓸고 있다가 밖을 내다 보았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온 천지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아득한 기억 속에 접어 두었던 빛바랜 사진 한장을 보는 것 같았다. 지금 여기서 나는 무엇을 하는거지? 이건 아닌데..
때마침 같은 지역에 조그만 아침가게 (Breakfast)가 매물로 나왔다. 돈이 부족했다. 그런데 같은 지역 아파트에 사는 한국 사람이 유명한 주방장인데 같이 동업을 하고 싶단다. 이런 기적 같은 우연이 있나? 공동투자로 가게를 인수한 후 몇달도 지나지 않아 사사건건 의견충돌이 일어난다. 작은 가게 수입으로 두가정이 나누어야 하니 인건비도 안되었다. 급기야 나보다 어린 사람이 반말과 욕설을 하면서 싸움을 걸어온다. 서로 싸우게 된다. 나는 남자들끼리는 싸울 수도 있고, 싸우다 보면 때리고 맞을 수도 있고, 그러다 술 한잔 하면서 풀고 이러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폭행죄로 경찰에 나를 고발한 것이다. 그때까지도 신분이 영주권자가 아니었으므로 한국으로 추방당하게 되었다. 아내는 그 젊은 부부에게 빌고 또 빌었다. 당연히 투자금과 위자료를 전액 지불하고서야 합의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아내 볼 면목도 없었다. 모든게 나의 잘못이다. 그렇다고 이제는 한국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래,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나 혼자서 무일푼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내가 20여년 동안 대기업에서 배웠고 그 분야의 최고라고 인정받았던 <기획> 일을 하자. 그 일이 <비지니스 컨설팅> 이었다. 일단은 아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 일을 통해 자식들과 먹고 살 수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가게를 팔고 남은 돈으로 다운타운에 있는 조그만 <Drop Store>를 사 주었다. 지금은 아내의 놀이터이자 공부방으로 변했지만, 한때는 우리 가족 생계를 책임진 고마운 가게다. 나는 13년전, 2007년에, 사무실도 없이 연필 한자루와 중고밴 자동차 한대로 <비지니스 컨설팅> 사업을 시작했다. 신문광고를 낼 돈이 없어서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는 조건으로 6개월 공짜 광고를 승낙 받았다. 그때 신문 광고 헤드카피 (Head Copy) 문구가 <여기서 이대로 멈출 수 없다> 이었다. 지금 힘들고 어려운 여러분이 계시면 언제라도 저를 찾아오세요. 따뜻한 차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힘내세요. 그리고 누군가 당신을 위해 기도 하는 걸 잊지 마세요…
충조평판 (忠助評判) (01-24-2020)
명색이 새해인데, 새해에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좀 더 새로운,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거듭 날까를 생각해 본다. 행복의 기준은 결국은 사람과의 관계 개선이 아닐까?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가 아닌 다음에야, 나의 <사람 관계>라 해야 뭐 대단하겠는가? 나 자신, 아내, 자식들, 소수의 친인척, 지인과 교회 식구 몇명, 고객들과 지역 한인들 약간 정도 .. 그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관계는 나 자신과 아내, 자식이라고 전제하면, 이들과 새해에는 어떻게 하면 좀 더 가까워 지고, 좀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의 심리 저서 <당신이 옳다>에 나오는 <충조평판 (충고, 조언, 평가, 판단) 하지말기>를 함께 생각해 보며, 몇가지 사례들을 이 책에서 인용함을 밝힌다. 인간의 슬픔이나 무기력, 외로움, 우울함 같은 감정은 날씨와도 같다. 그런 감정은 내 삶이나 존재의 내면을 알려주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런데 그런 감정들이 죽음, 절망이라는 벽, 시간이라는 벽으로 내 앞에 서 있을 때가 많다. “우울은 질병이 아닌 삶의 보편적 바탕색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우울한 존재다.” 병이 아니라 삶 자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우울의 늪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 그래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 우리는 <공감과 소통>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고 그렇게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어줍잖은 <충조평판>으로 <공감과 치유>는 커녕, 상대에게 얼마나 더 큰 <아픔과 상처>를 주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다른 각도로 풀어보면, 충고/훈계, 분석/진단, 바로잡기, 감정의 흐름을 중단/전환, 조사/신문, 평가/빈정대기, 한번에 자르기, 어설픈 위로하기, 내 얘기하기/ 맞장구치기, 동정/애처로워 하기 등등, 참으로 가지가지다. 비폭력 대화가 폭력이 되는 꼴이다.
<공감>은 먼저 상대방에게 집중하고 주목해야 한다. 관찰하고 궁금해야 한다. 듣기에 집중해야 한다. 듣고 또 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 질문한다.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라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충조평판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면 안된다. <충조평판>의 다른 말은 <바른말>이다. <바른말>은 의외로 폭력적이다. 우리는 자식들의 고민을 들을 때, 충분히 듣기도 전에 <충조평판>을 해 버린다. 그리고는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 하지만 이미 자식은 상처를 받았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후다. 그래서 대화는 단절된다.
작가는 “<공감>은 경계를 인식한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까지가 <너>인지 경계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너를 공감해야 할 순간인지, 내가 공감받아야 하는건지 알아야 나와 너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공감을 할 수 있다” 는 것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말없이 눈물이 흐를 때?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공감의 경계>이다. 사람은 누구나 <내 편>이 필요하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때, 안정감을 회복하고 비로서 합리적 사고가 가능하다. <네가 옳다>, <나는 너를 믿는다> 라는 말은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 핵심은 감정이다. 나의 감정은 오로지 <나>이다. 심한 우울증에 걸려 삶의 끝자락을 쥐어잡고 울부짖는 것은 <나의 존재>를 의식해 달라는 절규인 것이다. 공감은 너와 나 모두에 대한 공감이어야 하는 것이다. 공감은 상대가 가지는 감정이나 느낌이 그럴 수도 있겠다고 기꺼이 수용하고 이해되는 상태다. 자신의 존재를 공감받은 상대방은 누군가의 특별한 가르침이 없어도 자신에게 필요한 깨달음과 길을 스스로 찾아가게 된다. 그것이 공감의 놀라운 힘이다. 작가는 “공감은 소박한 집밥과 같다.”라고 표현한다.
<공감과 소통>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진정성>이라고 많은 철학자들은 말한다. <공감의 방법론>이나 <공감하는 대화의 메뉴얼>, <심리적 심폐소생술 (CPR)>.. 등 기술적인 방법은 차후의 문제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네>의 가사 처럼, 나의 진정성이 느껴질 때 상대는 마음을 열게 된다. 나이, 직급, 학벌, 사회적 지위 등 <우월의식>으로 공감을 하게 되면,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성경 말씀에, 목사님 설교에, 책에서 읽었는데, 누가 말하길를..” 등등, 갑질 아닌 갑질이 되고, <충조평판> 자체가 상처가 된다. 특히 교회나 종교 공동체에서 상처받는 가장 큰 이유는 <진정성 결여>와 더불어 <기밀누설>이다. 중보기도니 통성기도니 하면서 상대방의 상처와 아픔을 온 동네방네 소문나서야 되겠는가? <궁금도 병이론가 하노라> 처럼, 교인들 중에는 입이 가벼운 환자(?)가 꼭 있기 마련이다. 나도 처음 이민 교회에 나갔을 때 주변에서 알고 싶지도 않는 교인들의 아픈 과거사를 모두 이야기 해주는 바람에, 그분들에 대한 선입견을 지우느라 한참동안 애를 먹은 적이 있다. 따라서 <누군가를 위한 기도>는 나만의 <은밀한 방>에서 나홀로 <진정성>있게 진행되어야 한다.
나는 새해에는 최소한 아내에게만이라도 <충조평판>을 하지 말고, <진정성>을 갖고 <듣고 또 들어주기>로 한다. 될 수 있으면 40년만에 아내에게 하대말을 하지말고, 존대말을 사용하는 것도 시도해 보려한다. <그랬군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지금은 마음이 어떠세요?..> 과연 잘 될까? 작심일분? ㅋㅋ
이민 아버지의 눈물 (01-17-2020)
희망찬 새해 아침에 쓸 칼럼 내용은 아니지만, 나는 글로 나마 그를 위로하고 추모해야 한다. 그는 나의 컴퓨터에 등록된 2천5백여명의 고객 중 한명이다. 그동안 가게를 사고 파는 과정에서 보면, 그는 온화한 성격과 자상한 말투로 남을 배려하는 인상 좋은 육십대 초반의 한국 남자였다. 그런데 그가 성탄절 전날, 아들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해 죽었다는 신문기사를 보고는 망연자실 충격이었다.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를, 그것도 이민의 한국 가정에서, 아버지가 무슨 잘못을 얼마나 했길래, 얼마나 화가 났길래, 주먹으로 아버지를 두둘겨 패서 죽이나?
이민사회에 문제없는 집이 어디 있으며, 자식이나 가족 때문에 속이 상하지 않는 집이 얼마나 될까? 그는 나와 비슷한 연배로 동향이고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평범한 아버지였을거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려고 부모형제 버리고 이민을 왔겠는가? 이민 생활에 무슨 대단한 욕심과 야망이 있었을까?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들 잘 커서 자기 가정 이루어 잘 살고, 신앙생활 잘 하다가, 하늘이 부르시면 툴툴 털고 가는 소망 정도를 가졌겠지. 이민온 한국의 아버지들이 무슨 대단한 인물들인가? 말이 통해? 능력이 있어? 육신이 건강해? 돈이 많아? 마음 터놓을 친구가 있어? 아내도 이민의 삶이 힘드니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지, 무슨 기대와 즐거움이 대단했을까? 오로지 <아버지>라는 자신의 동물적 역할에 충실하려 했을 뿐이다.
아내와 자식들은 <아버지의 눈물>을 알까? 나도 그랬다. 언제나 아버지는 나에게 <큰산> 이었고, 언제라도 힘들때 돌아가면 아버지는 아버지 집에 계시는 줄 알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사진 속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 나도 아버지이기에 아버지로 살아야 되는 걸로 알았고, 그래서 아버지라는 그 무거운 짐을 벗어 내려놓지 못했다. 존경을 받든 못받든, 사랑과 감사를 받든 못받든, 가족이라는 큰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는 한걸음, 한걸음 걷다가 죽어 갈 뿐이다. 이민의 아버지는 가족들로 부터 그런 푸대접을 받는다는걸 몰랐을까? 훌훌 벗어버리고 홀로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지 않았을까? 하지 못했지. 할 수가 없었지. 왜냐하면 <이민 온 아버지> 였으니까..
그런데 불쌍한 아버지가 또 있다. 남극의 펭귄이다. 한국 다큐멘터리에서 <남극의 눈물> 4부작 방송을 보고, 2012년 8월10일 <팽귄의 교훈> 제목으로 신문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지구 온난화와 기상 이변으로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환경 프로그램이었는데, 남극의 펭귄들 숫자가 지난 50년간 70%이상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 방송에 황금빛 깃털을 가진 <황제 펭귄>들의 일생이 나온다. 특히 <아빠 펭귄>의 일생은 나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남극에 서식하는 <황제 펭귄>들은 겨울이 올 무렵에 짝짓기를 한다. 날짐승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길게 무리를 지어 며칠동안 ‘오모크’ 라는 은밀한 장소로 이동을 한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모인 펭귄들은 암수가 한쌍을 이루어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는다. 펭귄은 일년에 한개의 알만 낳는다. 알을 낳은 암컷은 수컷에게 알을 넘기고 먹이를 구하러 떼를 지어 바다로 나간다. 암컷 서로가 눈치를 보다가 그중 용감한 펭귄 한마리가 물에 뛰어 들어 바다사자의 먹이가 되면 줄줄이 그 뒤를 이어 바다에 뛰어든다. 마케팅 이론에서 서로 눈치 보는 것을 <펭귄 효과>라고 한다.
암컷들은 바다에서 싱싱한 물고기들을 잡아 먹으면서 몸을 푼다. 한참동안을 먹고 놀면서 기력을 회복하면 수컷과 새끼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뱃속에 물고기를 최대한 잔뜩 집어넣고 돌아온다. 암컷이 늦게 돌아오거나 돌아오지 않으면 수컷과 새끼는 굶어죽고 만다. 암컷이 떠난 4개월 동안, 영하 60도의 혹한 속에서 수컷 펭귄이 겪는 고통은 눈물겹다. 수컷은 알을 자기 발 위에 올려놓고서 털로 덮어 부하시킨다. 새끼가 알에서 깬 다음에도 수컷은 잠시도 새끼를 얼음 위에 내려놓지 않고 품어서 키운다. 아버지 펭귄은 자신의 배 속에 보관하고 있던 음식물을 조금씩 토해내어 새끼에게 먹이면서 키운다. 암컷이 떠나고 새끼를 키우는 4개월 동안 수컷은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앉지도 눕지도 못한다. 서 있어야만 한다. 그러는 동안 수컷은 체중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암컷을 기다리는 동안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혹한을 피하는 방법은 모든 수컷들이 원둘레 모양으로 겹겹이 에워싼다. 물론 맨 바깥 원에 있는 펭귄들이 가장 춥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모두가 조금씩 움직인다. 강강술레 처럼 바깥에 있는 무리들은 안쪽으로, 안쪽에 있는 무리들은 바깥 쪽으로 <자리 이동>을 하는 것이다. 모두가 살아남기 위함이다. 만약 사람들이었다면 어떠했을까. 암컷이 돌아오면 수컷은 새끼를 어미에게 인수인계 하는데 그러고서도 한참을 새끼 주위를 맴돌며 떠나지 못한다. 세상 아버지들의 마음을 어미가 알까, 새끼가 알까. 알에서 깨어난지 6개월이 지나면 새끼는 부모 곁을 떠나는데, 먹이를 구하기 쉬운 여름철에 떠나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수컷 팽귄이 그러하거늘 사람의 아버지야 오죽 할까? 예수의 양부 요셉은 어떠할까? 이민의 아버지는 죽어도 죽는게 아니다. 이제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고 용서와 사랑으로 평안히 영면하소서..
행복의 조건 (01-10-2020)
삶의 목표에 가장 귀하게 추구하는 단어가 무엇일까? 나는 <행복>이라 생각한다. 신년인사나 축하, 축복 인사에 언제나 <행복하시길 소망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건강하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고, 돈 많이 벌고, 부자가 되고, 존경을 받고, 출세를 하고, 믿음이 좋고, 부부 금실이 좋고, 자녀들이 모두 성공하고, 걱정 근심이 없고, 좋은 친구도 많고, 등등.. 그러면? 그래서? 당신은 행복하신가? 누구도 자신있게 답할 수 없다. 누구나 행복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 <행복의 기준>은 무엇이며,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가?
나는 행복의 기준과 조건은 자의적 해석이라 생각한다. 지구별 자체가 고해의 바다다. 사바세계(娑婆世界)는 고통과 함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고통없는 피안(彼岸)의 세상은 없다. 신의 아들도 견디기 힘든 최악의 고통 속에서 살다 죽었는데, 하물며 인간의 아들이 어떻게 고통없이 살다 죽기를 바라는가? 헬조선, 헬가난, 헬마누라, 헬자식새끼.. 무엇하나 벗어난다고, 이룬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행복에 관한 많은 서적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조지 베일런트의 <행복의 조건>, 유키 소노마의 <하버드 행복수업> 등 수도 없이 많다. 베일런트 교수는 72년간 814명 성인남여를 대상으로 실증적 자료를 근거로 7가지 <행복의 조건>을 제시한다. – 첫번째 조건이 <고통을 수용하고 극복하는 성숙한 삶의 자세>다. 즉 각자 고통의 적고 많음이 아니라, 현실의 고통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묻는다. 그는 <방어기제>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정신병적 방어기제, 미성숙한 방어기제, 신경증적 방어기제, 성숙한 방어기제, 이렇게 4가지로 분류한다. 내 삶의 고통에 어떻게 방어하느냐에 따라 행복의 측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 둘째 조건은 <교육 년수>다. 교육은 사회적 계급이나 지위, 지적능력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년을 위한 자기관리와 인내심을 위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죽는 날까지 배우고 공부하고 깨우치기를 게을리 하면 안된다. 배울게 없고 깨우칠게 없다면 죽어야지..
– 세번째가 <안정된 결혼생활>이다. 배우자는 평생 <영혼의 동반자>이기도 하지만, 내 삶의 <관계의 시작>이자, <공동체 생활>의 기본이다. 결혼생활이 하루하루 고통의 연속이라면 어디 가서 무슨 행복을 찾겠다는 것인가? 결혼생활이 불행하면 혼자 살아야 하나? 결혼생활은 인내의 연속이고 희생의 자작품이다. <주고 받고>가 아니라, <주고 또 주고>라고 나는 생각한다.
– 네째는 <금연>, – 다섯번째가 <금주>다. 안하면 가장 좋고, 과하면 좋을 것이 없는 백해무익이 술과 담배다. 나는 청장년 시절에 술과 담배를 너무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장수의 미련이 없다. 지금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겠지만.. –여섯째가 <운동>이다. 나는 운동 예찬론자다. 운동도 지구력과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즐기는 것이 가장 좋다.
– 일곱번째가 알맞은 <체중>이다.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으며, 먹고 싶은 음식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음식 예찬론자>다. 직접 요리하는 것도 좋아한다. 이 나이까지 먹어서는 안되는 음식도 없고, 소화가 안되는 음식도 없다. 식도락가다. 그러면 무얼 하나? 내 아내가 먹지 못하게 하는데.. 하루에 두끼, 과식한 날은 하루에 한끼다. 하루에 세끼 먹는 것이 꿈 속에서도 나의 소원? 나는 이렇게 길들여져 산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이혼을 해야 하나?
<하버드 행복수업>의 작가 유키 소노마는 ‘행복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행복을 위한 여섯가지 습관은 1. 감사일기 쓰기 2. 친절한 행동하기, 3.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기, 4. 잠들기 전, 하루 세가지 좋았던 일 기록하기, 5. 5분간 마음 챙겨 호흡 하기 (명상훈련), 6. 자신의 최고의 모습 상상하기 등이다.
다니엘 카너먼은 부유한 사람일수록 일, 업무 등 긴장감과 압박감을 동반하는 활동을 줄이고, 휴식과 같은 중요한 일에 투자한다고 한다. 즉 행복은 소득수준이 아니라, 가치관의 차이가 시간과 돈의 우선순위를 정한다고 한다. 내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 가난해도 행복한 사람과 부자이어도 불행한 사람의 차이다.
하버드 교수 탈 벤 샤하르는 ‘ 행복이란 충만한 즐거움(현재의 이익)과 삶의 의미(미래의 이익)를 함께 느끼는 경험’이라 정의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매일 즐거운 일을 만들어 즐거운 삶을 사는 것이고, 또한 심리적 성공을 통해 의미있는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은 몰입으로 인한 만족감, 일상의 즐거움, 삶의 의미를 가져다 주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얻는 자존감과 자신감을 높여준다고 한다.
하바드 총장을 지낸 데릭 보크는 ‘행복함의 차이는 결혼생활, 인간관계, 일, 건강상태, 종교, 사회제도 (정치, 행정)의 질’ 이렇게 6가지 요인으로 설명한다. 도널드 슈퍼는 ‘일은 자신의 흥미 (좋아하는 것), 능력 (잘 하는 것), 가치관 (중요시 하는것)을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행복의 조건>이 별건가? 하루하루 그분이 허락하는 날까지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며, 작은 일에 감사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사는 것이지 뭘..
한나절이 가고 또 밤이 온다.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온다. 한해가 가고 또 한해가 온다. 가고 옴의 한가운데 내가 서 있다. 65년을 이런 반복 속에 살았으니 부산스러울 것도 없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으련만.. 그래도 돌아보면 돌아볼 때 마다 고마운 일 천지고, 감사할 일 천지다. 그래서 더욱 미안하고 부끄럽다. 젊은 시절에는 작은 야망이라도 좋고 꿈이어도 좋겠다. 목표를 향해 정상을 향해 뒤돌아볼 틈도 없이 앞만 바라보고 살았던 세월에 부서지고 깨어지면서도 고마움을 별 몰랐다. 하지만 촌노(村老)인 나이에 목표가 있으면 무얼 그리 대단하며, 이루고 못이루고의 차이가 무얼 그리 대단할까? 그날이 그날인 건 아닐까? 하면서도..
그래서 올 한해도 되돌아보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기억하는 일들도 있을것이고, 잊혀진듯 스쳐간 일들도 있을 것이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쓰는 <신년인사 > 칼럼이지만,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나를 먹고 살게 해 주신 여러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매년 반복되는 일 같지만, 모든 일들이 <기적> 이었다. 나의 일에 나의 의지와 소망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분의 허락이 없었다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오늘 하루를 산다는 것은 그분의 기적이다. 하물며 내일을 산다는 것은 나의 소망이요 바램일 뿐, 나의 <자유의지>가 아니다. <기적>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분의 허락은 그분이 나와 <동행>하실 때만 일어나는 것이다. 잠을 자다가도 꿈 속에서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 한번도 멈춘 적이 없는 이 단순한 숨쉬기 조차도 그분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나는 그 즉시 죽는 것이다. 감사로다. 그리고는 깊게 숨을 들이 쉬고 다시 잠을 청한다. 생과 사의 갈림길이 이리 간단하거늘, 무슨 욕심과 미움이 그리 많아 하루하루를 부질없이 살까? 헛되고도 헛되도다.
2019년은 유달스레 비지니스 계약이 많은 한해였다. 계약이 10개 이상이 진행되는 달도 있었다. 나의 직업상 사업체 계약은 사례마다 경우가 다르다. 보장도 기약도 없기에 예상도 할 수 없다. 물론 모두 성사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나를 믿고 맡겨주신 지역 한인 여러분에게 감사할 일이다.
또 2월에는 10년 떨어져 한국에서 살던 큰딸과 손녀딸이 입국해서 함께 살게 된 일이다. 직장 관계로 또 떨어져 살겠지만, 다섯살 손녀딸로 인해 모든 나의 생활 패턴이 바뀌었다. 대화의 차원이 싱그럽고, 바라보는 만물의 느낌이 새롭다. 창조주의 위대하심을 다시 일깨워준다.
그리고 둘째 딸의 첫손녀가 태어난 한해이기도 하다. 새생명의 신비함과 나와의 피로 맺은 언약들이 실현되는 느낌이다. 나는 나의 이 소중한 생명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 어떤 할아버지로 기억되어야 하나? 생각은 무겁고 엄중하다. 좋은 할아버지, 부끄럽지 않는 할아버지, 자랑스런 할아버지, 자상한 할아버지가 되어야 할 텐데..
그리고 어머니가 하늘의 별이 되어 돌아가셨다. 이 지구별에서 90년을 사셨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많이 사랑했던 우리 엄마, 나를 제일 많이 사랑해 주셨던 우리 엄마, 한국에 살 때에는 결혼해서도 계속 모시고 함께 살았는데.. IMF 때 사업실패로 미국에 도망쳐 오다시피한 이후로 나는 엄마를 모시지 못했다. 내 처자식을 먹여 살리려고 엄마를 버리고 왔다는 자책감으로 수많은 날을 괴로워 했다. 장례를 치른 이후에도 많은 날을 자책하며 번민으로 우울한 날들을 지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모습을 엄마가 좋아하실까? 라는 자문에 그만 자학을 멈추기로 했다. 나의 남은 날들을 열심히 살다가 좋은 모습으로 엄마를 만나기로 했다. 엄마, 사랑해요. 미안해요. 이제 곧 갈께요.
또 다른 변화는 이제 새해부터 국가인정 공식(?) 노인이 되었다. 메디케어가 된 것이다. 물론 은퇴를 한 것도 아니고, 지금 하고 있는 직업도 10년은 더 할 생각이니 나의 공식 은퇴는 75세로 아내와 잠정 합의 중이다. 또 즐기는 운동들도 계속 할 것이고, 새로이 배우고 싶은 취미도 계속 할 것이다. 2007년 가을부터 매주 쓴 칼럼도 여러분이 허락하시는 한 계속 쓰고, 책도 보고, 색소폰도 다시 불 생각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맛있는 요리도 계속 하고 여행도 할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나의 가슴은 아직도 뜨겁다. 그러나 욕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분이 부르신다면 나는 내일이라도 갈 준비가 되어있다. 물론 아내는 허락하지 않겠지만..
엘라 히긴슨은 말한다. 세잎 클로바의 잎 하나는 <희망>을, 다른 잎은 <믿음>을, 또 다른 잎은 <사랑>을 의미한다. 그리고 세잎 클로바는 <행복>을 상징한다. 반면에 네잎 클로바의 추가 잎은 <행운>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운>을 차지하기 위해 네잎 클로바를 찾으러 헤매지만, <행운>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이 허락하시는 것이다. 새해에도 여러분 모두 <희망>을 갖고, <믿음> 속에서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다보면 그 자체가 <행운>인지도 모르겠다. 세잎 클로바는 여러분의 발 아래에 늘려 있다. 세잎 클로바 처럼 새해에도 가족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