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저작권은 윌리칼럼 저자인 이위식 (Wi Sik, Lee)에게 있으므로 저자의 서면 동의 없는 무단 전재 및 복제를 금합니다. 모든 윌리 칼럼은 미국 Korea Phila Times (주간필라) 신문에 매주 해당 날짜에 출간된 것임을 밝힘니다. **
–
박정희와 군사 쿠테타 (1961~1963년) (12-27-2019)
제2공화국 장면 정권 역시, 부정부패와 무능, 미국의 꼭두각시 역할은 마찬가지였다. <4.19 혁명> 이후, 장면 정권 1년동안 8개 국영기업이 낸 적자는 455억환에 달한다. 또한 이승만 정권과 야합했던 적폐 재벌들과 군부 지도자 그 누구도 처벌하지 않았다. 미국의 압력과 영향력은 더욱 강해졌다. 미군과 미국 행정관료로 구성된 각종 위원회와 고문단을 중심으로 <식민지 예속화 정책>은 더욱 치밀하고 광범위해졌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원조예산과 막대한 군사예산을 줄이기 위해 환율 인하정책을 시행한다. 1961년 1월 1달러당 650환 환률이 1,000환으로, 2월에는 1,300환으로 평가절하 된다.
박정희의 <5.16 군사 쿠테타>는 미국의 묵인하에 자행된다. 미 CIA와 정보기관은 군사쿠테타 14개월전인 1960년 3월부터 박정희의 쿠테타 계획을 알고 있었다. 6만명의 주한미군과 60만명의 한국군을 총괄하는 미군 연합사령관의 사전 묵인없이, 3천6백명에 불과한 박정희 군부 일당 단독으로 쿠테타를 성공시킬 수는 없다. 미국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1년1월 20일 취임하면서 한국의 <군사원조 위주 정책>에서 <경제개발 지원정책>으로 바뀐다. 즉 한국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미 케네디 정부의 <한국 경제 예속화 전략>의 일환으로 박정희 군사쿠테타 이전에 이미 시작된다. 1961년1월의 <외자도입 촉집법>과 2월의 <한미 경제기술 원조협정>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한국의 자본 시장을 확고히 장악하게 된다. 본 내용은 미국 의회의 <프레이저 보고서>에 기술된 내용을 기초로 한다. 미국은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 출신이었으며, 해방후 남로당 출신의 <공산주의자> 이었음을 우려했지만, 남로당 동지300명을 밀고하고 국군으로 전향한 전력 등, 두번 배신한 자는 세번 배신할 수 있다는, 박정희는 또다시 미국을 위해 한국을 배신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미국은 오로지 강력한 남한의 <반공정부>가 필요했던 것 뿐이다.
- <1961년>
- 01/20 : 미국 존 케네디 대통령 취임, – 1월 : <외자도입 촉진법> 제정, – 국내투자 외국자본에 연간 20% 수익보장, 미국 투자회사의 남한내 보유재산에 무세금 혜택. – 02/08 : <한미 경제기술 원조협정> 조인,- 3,500만달러 원조 특별제공, 단 미국이 원조 자금 배당과 지출 감독 관리, 한국의 정부예산 (미국원조자금이 예산의 52%를 차지) 통제권과 개별 자본 통제권 확보, – 02/13 : 전국학생 한미경제협정 반대투쟁위 조직, – 02/20 : 민주당 구파, 신민당 창당, – 04/19 : 서울대생 3천명, <평화통일을 위한 투쟁>, 4.19 기념 1주년 침묵 시가행진, – 05/03 : 전국 19개 대학 참여, <민족통일 전국학생연맹> 결성, – 05/13 ; 1만여 시민과 학생 <남북학생 회담 및 통일촉진 궐기대회> 개최,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반미감정 급속 확산, – 05/16 : 제2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의 공수 특전단, 해병 1여단 등 총 3,600명 병력으로 정권 무력찬탈을 위한 <5.16군사 쿠테타 (반란)>, – 05/22 : <깡패소탕작전>, 전국 4,200명 깡패조직 검거, – 06/06 : <국가재건 최고회의> 불법설치, <국가 재건비상 조치법> 공포, 총 2,014명 정치범 용의자로 검거 투옥, 각종 언론매체 폐간조치, – 06/10 : 최고 권력기구 <중앙정보부> 발족, 모든 기관 지휘 감독, 정보 수집 및 수사권 보장, 일제 특무대원3천명 중심으로 조직구성, 1964년에는 무려 37만명의 중앙정보부원으로 확산됨, 미 CIA 관리 지배. – 07/03 : <반공법> 공표, 민중들의 모든 권리 억압, 처벌 가능한 악법 중의 악법임, – 06/12 : <국가재건 국민운동본부> 설립, 용공사상 배격, 내핍생활 실천, 근면정신 고취 등 7개항 실천사항 실시, 1963년 회원3백만명, 전체주의 쿠테타 정당화 목적, 1975년 새마을운동 중앙회로 합병, – 07/22 : 경제기획원 신설, <경제재건 5개년 계획> 발표, – 08/12 : 박정희 의장, 63년5월 총선으로 민정복귀 선언, – 11/11 : 박정희 의장, 일본 방문- 일본 일제 원로들에게 경제지원 요청, 미국 방문- 케네디의 박정희 군사정부 공식 인정, – 12/04 : 근로기준법 개정 공포,
- <1962년>
- 03/16 : <정치활동 정화법>- 구정치인 4,374명 정치활동 봉쇄 (언론인, 군부지도자, 보수야당, 진보 지도자, 전직 관료, 학생 지도자 포함, 향후 6년간 정치활동 금지), – <삼분폭리사건> : 삼분재벌(설탕, 밀가루, 시멘트) 가격조작 폭리와 세금포탈을 묵인한 대가로 3,800만달러 뇌물 수수. – 12월 : 김종필과 일본 오히라 외상 밀담, 1억3천만달러 경제개발 지원자금과 리베이트 수수료, 2천만달러 공화당 정치 활동자금 지원 약속,
- <1963년>
- 02/26 : 민주공화당 창당 (김종필 육사8기생들 중심세력), – 02/27 : 박정희 의장, 민정 불참 선언, – 03/06 : <증권파동사건>- 박정희 군사정권시 <4대 불법 정치자금사건> (증권파동 사건, 워커힐 설립 자금사건, 새나라 자동차 폭리사건, 회전당구 일명 빠징꼬 사건) 중 하나임, – 03/16 : <3.16 성명>, 군정연장, – 07/18 : <한미경제위원회> 신설에 관한 협정 체결, – 10/15 : 제5대 대통령 선거, 42.6%로 박정희 당선 (윤보선과 불과 15만표차), 선거직전 공화당 당원수 158만6천명, 그외 애국단, 청년단체 연합회, 한국청년회 등 깡패조직 확보, – 11/22 : 미국 존 케네디 대통령 암살, – 11/26 : 제6대 국회의원 총선거, 11개 야당 분열로 공화당 압승 (공화당 110, 민정당 41, 민주당13, 자민당 9), – 12/17 : 제3공화국 출범,
–
4월혁명과 이승만의 몰락 (1958~ 1960년) (12-20-2109)
일부 계층에서 ‘건국의 아버지’ 라 불리우는 이승만은 어떤 인물인가? KBS의 <백년전쟁> 편이나, 유투브에 찾아 보면 이승만이 조선 역사에 무슨 짓거리를 했으며, 이승만의 인간 됨됨이를 알 수 있다. 오로지 <빨갱이 반공몰이>와 <북진통일> 이념 전쟁으로 수많은 민중을 살해하고, 정권내내 부정부패와 사리사욕으로 간교했던 인간을 건국의 아버지라니? 이제는 세상이 변했다. 지도자 누구도 자신의 추한 모습을 숨길 수 없는 세상이다. 적어도 민중의 지도자로 추앙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살아온 모든 행적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민중은 공부하고 깨우쳐야 한다. 만약 일제 강점기 부터 해방 이후 조선의 역사에 이승만이 없었다면, 부정부패와 거짓이 난무하고, 친일 기득권이 득세하는 불공정한 현재의 대한민국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미군정의 분단국이 아닌, 미국원조에 기생하는, 군사 외교권을 미국에 박탈당한, 미국의 종속국이 아닌, 군사 독재정권이 집권하지도 않는, 독립된 한민족 통일국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1960년 4월19일 민중의 <4월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은 몰락하고 이승만은 이승만 답게 미국으로 망명하여 구차한 종말을 고한다.
- <1958년>
- 1958년초 : 남한 실업자 수 420만명 급증, 공장 가동률 35%, 1인당 국민소득 85불, 물가지수 10% 인상, 임금인하, 체불임금 증대, 전국파업투쟁, – 01/13 : <평화통일>을 주창한 조봉암 외 7명 간첩혐의로 구속, – <40일 소탕작전> 으로 민주인사 1만명 체포 투옥, – 01/19 : 주한유엔군 대규모훈련에 <핵무기> 등장 (눈송이 작전), – 01/29 : 주한미군 핵무기 도입 정식발표, – 02/25 : 진보당 등록취소, –03/12 : 외자관리법, 원자력법 공포, – <협상선거법 개정>, 입후보자 공탁금 50만환 규정하여 민중 진보세력의 정치 봉쇄, 지주와 매판자본가, 관료들 득세, – 경찰 선거 불개입, 정치 깡패 테러방관, – 05/02 : 제4대 민의원 총선거 (자유당 129, 민주당 79, 무소속 27), 자유당과 민주당 모두 보수 여당, 대규모 선거부정, –07/02 : 진보당 사건 1심판결 (조봉암 징역5년, 17명 무죄 선고), – 11/18 : <국가보안법> 개악, 국회제출 (보안법 파동), 평화통일 주장하면 사형 또는 종신형, <국가기밀 누설죄> 확대로 저항세력 닥치는대로 구금, 10년 이상 장기징역, – <지방자치법 개정>, 지방 시장과 공무원 선거 폐지하고, 대통령이 직접 임명, – 11/27 : 국가보안법 개악 반대투쟁위원회 결성, –12/10 : 조봉암 진보당 사건 1심담당 부장판사 연임에서 탈락 사건 (유병진), – 12/24 : <국가보안법 개정안> 통과 (야당의원들 지하실 감금),
- <1959년>
- <쿠바혁명> 완성 (07/26/1953 ~01/01/1959, 카스트로, 체 게바라), – 02/04 : 경향신문 폐간 (칼럼 ‘여적’ 필화사건), –02/27 : 진보당 상고심 선거공판 (조봉암, 양명산 사형언도), – 06/09 : 이승만 미국언론에 북진통일 가능 주장, – 10/26 : 전국노동조합 협의회 결성 대회, (대한노총 비판), – 11/26 : 민주당 대통령 후보자 지명대회 (대통령 조병옥- 미군정시 친일경찰 총수, 부통령 장면- 친일경력), –12/28 : 국회 <호적법> 통과 (가호적 존속, 여자 상속 인정), – 이승만 대규모 부정선거자금 4백만달러 모집,
- <1960년>
- 02/28 : 대구 고등학생 가두시위, – 03/05일, 서울, 08일: 대전, 부산, 10일 수원, – 03/14 : 전국 고등학생 주도, 이승만 정권 반대 시위, – 03/15 : <3.15 부정선거> (제5대 정,부통령 부정선거, 투표율3%, 이승만 압도적 당선), – 민주당 무효 선언, 마산 부정선거 규탄 데모, 경찰 발포로 15명 이상 사살, 수백명 부상, – 04/11 : 17세 김주열 군 눈에 최류탄 박힌 시체 인양, 마산의 여고생 중심 15만명 <제2 마산 시위>, –04/18 : 고려대생 3천명 데모, – 04/19 : <4.19 혁명>, 2만명 학생데모, 경찰 발포로 시위 학생 142명 사망, 450명 부상, 전국 계엄령 선포, 육군15사단 전차대 출동, – <피의 화요일>, 사망자 183명, 부상자 6,259명 – 04/27 : 미군정 이승만 사임 압력, 이승만 사임서 국회 제출, –05/22 : 대한교원노조 (대한교원 노동조합총연합회) 결성, –05/29 : <이승만 부부 하와이 망명>, – 06/15 : <내각책임제> 개헌안 통과, – 07/20 : 국회의원 총선실시 (민주당 압승, 장면 내각 수반), 민주당 역시 40% 이상 친일지주계급, 25% 일본 총독부 관리 출신, – 08/12 : 윤보선 대통령 선출, – 08/19 : 제2공화국 초대 총리에 장면 선출, – 10/11 : 4.19 부상 학생들 민의관 난입(반민주행위자 가벼운 처별에 대한 불만), –10/31 : 지방자치법 개정 (자치단체장 직선), – 11/01 : 서울대 민족통일연맹 발기, – 11/02 : 국회, 인구비례에 따른 남북한 자유선거 실시와 통일방안 제출, – 11/08 : 민주당 구파 신당발기 개최, – 11/25 : 대한노총과 전국노협이 <한국노총>(한국노동조합 총연맹)으로 통합, – 12/29 : 베트남 민족해방전선 (베트콩) 창립,
–
한국 현대사 사건별 연혁 (1953~ 1957년) (12-13-2019)
한국전쟁은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다. 남북한과 유엔군, 중공군 합하여 군인과 민간인 총 3백만명 이상 사망하고, 한반도 전국 국토를 초토화, 특히 북한 전역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정전협정 이후, 이승만 정부는 미국의 <원조 정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미국 식민지 예속화>의 길을 택한다. 미국은 언제나 <미국 국익 우선> 정책이다. 제국주의가 전세계 후진국에 시행하는 <원조 종속 경제 정책>은 결코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미국은 1945년 부터 1960년 까지 16년동안 약 30억 달러에 이르는 무상원조를 이승만 정부에 쏟아 붓지만, 80%이상이 한국군 70만명 유지를 위한 <군사원조> 자금이었고, 나머지 20%도 식료품과 기초 생활 원조 자금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중소기업과 농민의 몰락은 대규모 실업자를 양산하고, 저임금 노동인력 증가는 매판 자본가들만 배를 채웠다. 적산불하와 매판자본으로 정권의 중심이 된 <친일, 친미> 기득권의 부정부패와 타락이 이승만 정권 내내 판을 친다. 미국은 그때나 지금이나 조선에 대해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오로지 남한을 <대륙진공을 위한 교두보>로, 국군을 미국의 <고용군대>로 간주한다. 북한은 다음주 칼럼에서 알아보자.
- <1953년>
- 01/05 : 이승만 방일, 요시다 수상과 회담, – 02/15 : <제1차 통화개혁>, 원을 환으로 100대1 평가절하, – <한일협상> 준비회의, – 04/11 : 상이군인 포로교환 협정 조인, – 05/08 ; 이승만의 <휴전협정> 반대, 북진통일 촉진대회 개최, – 06/08 : <포로교환 협정> 조인, – 07/27 : 오후10시 모든 전선에서 전투중지, <정전협정>- 유엔군 총사령관과 북한군 최고사령관,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 3국 사이에 맺은 <한국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임. – 아이젠하워, 미의회에 한국원조 2억달러 요청, – 미국 메카시 열풍 (미국 정부내 공산주의 적색분자 색출 추방운동), – 08/05 : 포로교환 시작, – 09/15 : 이승만, 영구집권을 위한 이범석의 족청계 제거, – 10/01 :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 (미국 육,해,공군 병력을 대한민국 영토 및 인근에 배치함을 허용한다는 조약). – 10/06 : 구보다 망언으로 제3차 한일회담 결렬, – 11/30 : 참의원 선거법 국회 통과- 이기붕 자유당 최고위원,
- <1954년>
- 01/18 : 독도에 영토표식 설치, – 02/18 : 베를린 4개국(미소영프) 외상회담에서 한국문제 협의, – 05/20 : 제3대 민의원 총선 (자유당114,무소속68, 민국당15), – 사상경찰을 2배로 증가 (1959년 경찰관 수 3만8,273명), – 06/15 : 제네바 한국참전16개국 공동성명- 유엔감시하의 통일한국 선언, – 07/25 : 이승만, 미국 공식방문, – 10/03 : 정부 38선과 그 사이 수복지구 유엔군으로 인수, – 11/17 : 한미간 합의의사록 서명 –한국에 대한 군사 및 경제원조, – 11/27 : 제5차개헌안 (초대 대통령 중임제한 철폐, 이승만 79세 고령, 대통령 궐위시 부통령 승계) 부결, – 11/29 : <사사오입>사건 –개헌안부결을 사사오입 이론으로 가결시킴, 이승만 장기집권화.
- <1955년>
- 01/17 : <한미군사원조 의정서> 조인, – 03/14 : 미군정 <정당 등록법>에 의거, 17개 사회단체 해산, – 03/17 : 동아일보 무기정간 (괴로 오식 사건), – 05/22 : 주한미군사원조 고문단 설치, – 05/31 : 한미석유 협정과 한미 잉여농산물 원조협정 체결, – 07/05 : 7천명 자위소방단 조직 (사상경찰 지원조직), – 07/15 : 파업 전면금지법, 위반시 공산주의자로 처벌, – 09/14 : 대구매일신문 대낮 테러사건, – 09/19 : 지유민주파 민주당 창당 (신익희), – 12/22 : 진보당 창당 (조봉암, 서상일외 9명),
- <1956년>
- 01/02 : 제2여당인 민정당 발족 (이범석, 장택상), – 01/25 : 국방부 원면사건 (군월동용 FOA 원면50만달러의 97%를 시중에 불법유통), – 01/30 : 김창룡 육군특무대장 피살, – 03/13 : 미국 잉여농산물 협정 조인 (1956년도 4,400만달러어치), – 05/05 : 신익희 민주당 대선 후보, 서울 한강 백사장 유세에 군중 30만명 참여, 이리 유세에서 사망, – 05/15 : 제3대 대통령 이승만 당선, – 05/18 : 전국비상경계령 발포, – 05/29 : 한국전 참전국, 중립국 감시위원회 철수, – 08/08,13 : 특별시, 도의원, 시장, 읍, 면장 선거, – 09/29 :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 (민주당 전당대회장), – 11/10 : 진보당 창당대회 (위원장 조봉암), – 북한, 신5개년 계획, <천리마운동> 발표, (제3차 노동당대회),
- <1957년>
- 02/14 : 농업은행법과 협동조합법 공포, – 05/25 : 야당 시국강연회 테러난동 사건 (유지광 주동), – 07/01 : 유엔군 총사령부 한국으로 이동, – 07/15 : 미국, <주한미군 핵무장화> 착수 발표, – 09/13 : 간첩 김정제 사건 (전직 장관, 국회의원50명 접선대상), – 09/20 : 통일준비위원회 구성 (진보당, 조봉암, 윤길중, 김달호, 이명희외 와 근로인민당 잔류파 10명과 혁신세력 통합), – 10/09 : <우리말 큰사전> 30여년만에 완성 발간, – 11/06 : 북한 부상급 간첩 박정호외 11명 체포 사건. – 12/14 : 서울문리대 교지 필화사건, – 동성동본 결혼금지,
–
한국 현대사 사건별 연혁 (1950~ 1952년)
<6.25 한국전쟁>은 북한이 남한을 일방적으로 침공한 동족간의, 절대 빈곤국가 간의, 단순한 내분 전쟁이 아니다.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제국주의 동아시아 30년 패권전쟁>의 일부다. 미국은 일본을 동아시아 전초기지로 군수기지화 하고, 서독일을 <유럽 패권전략>의 전초기지로 삼아, 일본과 독일에 엄청난 원조 자금을 투입한다. 이 전략은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과 일본의 <세계 경제대국> 발판이 된다. 역시 소련도 전세계 절반이상을 공산국가로 만들기 위해 중국과 동유럽, 아프리카에 거액의 군사 자금을 지원한다. 한반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미,일-중,소> 간, 강대국들의 이념과 이권의 전쟁터에 불과하다. 그래서 남북한 모두 <자강>, <자주>, <자립>이 필수 전제 조건임을 조선 민중들은 명심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현재까지도 전시작전권 조차 없는, 미국의 혈맹이 아닌, 미국의 종속 국가다. 미국의 유일한 동아시아 혈맹은 한국이 아닌, 일본임을 자각해야 한다.
- <1950년>
- 11/01 ~04/30 : 유격대 토벌 작전(교전횟수 2,948), – 01/12 : 미 국무장관의 <에치슨 선언> -미방위선은 알류선과 일본 오키나와를 잇는 선으로 함, –01/26 : <한미상호방위 원조협정>체결 (2억달러 군사원조, 남한군 10만명 양성, 이승만 북진통일 주장), – 02/14 : <중,소 우호동맹과 상호원조 조약> 체결, – 02/27 : 월남내전 (03/16 : 미함대 사이공 상륙), – 03/27 : 남로당 총책 김삼룡, 이주하 체포, – 04/10 : 농지개혁, – 04/22 : 대한정치 공작대사건, – 05/30 : <제2대 국회의원> 총선 – (여당 대한국민당 패배, 무소속 126, 민국 23, 국민 22), –06/07 : 북한, 남북총선 제안, – 06/10 : UN임시한국위원단 북한대표와 회담제의 – 북한거부, – 06/16 : 일본 전역 비상계엄령 발동 (전시동원체제 발동, 일본 군수산업 재가동), – 06/25 : <6.25 한국전쟁, 일명 민족해방전쟁> 발발, – 6/26 : 유엔안전보장 이사회 긴급소집 (소련불참), – 06/27 : 이승만 부산으로 피난, <보도연맹원>과 <양심수> 무차별 총살 명령, – 06/28 : 육군참모총장의 <한강인도교 폭파> 명령 (국군3개사단, 한국군 4분의3 병력 행방불명), – 07/01 : 미군선발대 부산도착, –07/07 : 맥아더를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임명, – 07/12 : 이승만과 맥아더, <한국군 통수권 미군 이양> 협정 체결 (한국전쟁은 북미전쟁으로 전환), – 북한군 서울점령후 : 인민재판 –경찰, 지주, 친일부역자 대규모 공개 처형, 인민자치선거 실시, 토지개혁 단행, – 09/01 : 미군, 남한 전지역 무차별 폭격, – 09/15 : <인천상륙작전>, – 09/26 : 미군 서울 수복, – 09/28 : 이승만, 38선 이북으로 진격명령, – 09/30 : 맥아더, 북한총사령관에게 <항복권고문> 발표, – 10/07 : 유엔 북진안 가결, – 10/19 : 미8군 평양 함락, –10/26 : 미10군단 원산상륙, – 북한 잔류군1만명, 지리산 유격대와 합류, – 10/25: 중공군과 북한군 총33만명 야간기습 공격, – 12/01 : 유엔총회, 한국재건단 (UNKRA) 설치안 가결, – 11/16 : 맥아더의 <압록강 철교 폭파>명령, –11/24 : 맥아더, 유엔군과 남한군 총 42만명에게 <총공격 명령> 하달, 중공군 참전을 눈치못챔, – 11/26 : 중공군 <인해전술> 총반격 개시, – 투르만 대통령, 맥아더와 만주공격에 합의, –11/30 : 트루만 대통령 한국전 패배인정, <원자폭탄> 사용권을 맥아더에게 일임. <중국과 전면전> 선포, -미국, 핵무기 사용에 대한 국제사회 비난, 포기함. – 12/01 : 미군의 <몰살작전>, 일명 <킬러작전>, 남북한 전지역 무차별 대량 폭격실시, 북한군의 보급로 차단, 굶주림, 질병, 물자부족으로 북한군 후퇴, – 미군의 남북한 주민 대규모 <집단학살극> 자행, – 이승만의 <보도연맹 학살사건>으로 남한주민 30만명 이상 학살,
- <1951년>
- 01/04 : <1.4후퇴> -남한정부 부산으로 이전, –02/04 ; 반민법 폐지안 국회통과, (반민족행위 처벌법 – 1947년7월 민족반역자, 부일협력자, 모리간상배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였으나, 미군정의 반대로 기각, 1948년 3월재발의, 다시 폐지), – 02/11 : <거창 양민학살 사건 –11사단 거창주민 663명 집단학살>, – 2월 지리산 남로당 유격대원 4만명 초토화 작전, – 민간인 대량 학살사건으로 확산, – 03/18 : 국군 서울 재탈환, 120만 소작농에게 농지분배 발표, – 03/24 : 맥아더, 38선이북으로 진격명령, – 03/29 : 국민방위군 23억원 양곡 5만2천석 착복 사건, – 04/11 : 맥아더 원수, 유엔군 총사령관 파면 당함, – 05/09 : 부통령 이시영 사표, 김성수 부통령 지명, – 07/10 : 휴전회담 본회의 시작, – 08/24 : 귀속재산 처리법 공포.
- <1952년>
- 01/18 : 이승만 평화선언, 제2차 개헌안 (대통령 직선제, 양원제) 부결, – 02/18 : 거제 포로수용소 폭동 (69명 사살,미군 1명 사망), 거제도 폭동사건 (포로 160명, 미군 16명 사망), – 05/26 : 대통령 직선제 강행, –05/29 : 김성수 부통령, 이승만 대통령 탄핵하고 사표 제출, – 06/08 ; 휴전협정 가조인, – 06/25 : 이승만 저격사건 발생 (6.25 2주년 기념식장에서), –07/04 : 1차 발췌개헌, – 07/19 : 자유당 전당대회,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범석 지명, – 08/02 : 제2대 대선, 이승만 당선(8/5), –11/11 :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 (한국전 미군패배 인정, 조기휴전 공약), –12/03 : <포로 자유교환>결의안 유엔 채택,
–
한국 현대사 사건별 연혁 (1945~ 1949년) (11-29-2019)
한국 민중은 한국 현대사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조선반도의 지정학적 중요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그 누구도 조선 민중의 영원한 우방은 없다. 특히 해방 이후 미군정,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 정권>시대는 엄혹한 시대였다. 고난한 역사의 사건마다 수많은 피해자가 있었으면, 수많은 가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 현대사에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의 역사가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공존하는 국가, 적폐청산이 없었던 유일한 국가가 대한민국이다. 아픈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또다시 더 큰 고통을 겪기 마련이다. 그래서 여러분과 함께 1945년부터 1990년 까지의 현대사 주요사건 별로 다시 기록하고 기억하고자 한다.
- <1945년>
- – 08/15 : 일본 패망, 항복선언,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위원장 여운형) 발족, – 08/17 ; 건준, 중앙조직 완료, 보안대, 치안대, 학도대 결성, – 08/24 : 소련군 평양 점령, – 08/25 : 미군 인천 상륙, – 09/02 : 북위 38선 경계 미소 양군의 분할 점령 발표 (맥아더), –09/06 : 건준 <조선인민공화국> 수립 선언, – 09/08 : 미 주둔군 사령부 <미군정 실시> 선포, –09/09 : 한민당 결성, –09/11 : 조선공산당 재건 (박헌영), – 09/16 : 송진우, 한국 국민당 결성, – 10/10 : 김일성,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설치, –10/16 : 이승만 귀국, –10/17 : 미군정, 남한 인민위원회 해산 지시 (건준 거부), -10/24 : UN창립, –10/25 : 조선독립촉성 중앙협의회 발족 (이승만 중심), – 11/05 : 조선노동조합 전국 평의회 결성, –11/12 : 조선인민당 결성 (여운형), – 11/23 : 김구, 김규식 등 중경 임시정부 요인 제1진 귀국, –12/08 : 전국 농민조합 총연맹 결성대회, –12/28 : 모스코바 3상회의, <5년신탁통치> 발표, –12/29 :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 위원회 결성.
- <1946년>
- – 01/15 : 남조선 국방경비대 창설, – 02/01 : 임정 중심의 비상국민회의 결성, – 02/08 : 서울-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결성 (이승만, 김구), 평양-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발족 (김일성, 김두봉), – 03/10 : 대한독립노동 총연맹 결성 (우익), – 03/20 : 제1차 미소 공동위원회 결성, – 05/07 : 제1차 미소 공동위원회 협상결렬 (임시정부 참여 문제로), –05/23 : 미군정장관 허가없이 <38선 월경금지>, – 06/03 : <이승만, 단독정부 수립> 계획발표 (정읍 발언), – 06/22 : 광복군 환국, – 07/28 : 북조선노동당 결성 (김일성), –10/01 : <10월항쟁>, 대구에서 쌀배급요구 시위로 발단. – 11/23 : 남조선 노동당 결성.
- <1947년>
- – 01/02 : 조선공산당(박헌영) 신탁지지 선언, – 01/24 : 임시정부계, <반탁 투쟁위원회> 조직, – 02/15 : 북조선 인민위원회 창설, – 03/12 : <트루만 독트린> 선언, 공산주의 대항국가에 대한 경제,군사적 원조 약속, – 03/22 : 남한 전지역 24시간 총파업, – 05/21 : 제2차 미소 공동위원회 개막, – 07/10 : 미소 공동위원회 결렬, –07/19 : <여운형 암살>, – 09/17 : UN총회에 상정제의 (미국 마샬 대표), –10/28 : UN 한국임시위원단 파견안 가결 (UN총회), – 11/10 : UN한국임시위원단 설치안, 정부 수립후 미소양군 철수안 가결 (UN총회), – 12/20 : <민족자주연맹> 결성 (중도세력), – 12/22 : 김구,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 성명.
- <1948년>
- – 01/07 : UN임시위원단 입국, 소련은 거부. – 02/07 : <2.7 구국투쟁>, 남로당의 남한 단독선거 반대, – 02/26 ; 남한 단독 총선실시 결의 (UN소총회), – 03/16 : 북한, 중국 비밀 군사협정 체결, – 04/03 : <제주3 민주항쟁 (김달상, 이덕구)>, 단독정부 반대 시위, – 04/10 : 김구 방북, 남북대표자회의 참석 (05/05 귀경), – 05/10 : <남한 단독 총선>실시 (UN한국임시 위원회 감시), – 06/31 : <이승만 초대 국회의장> 선출, – 07/01 :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결정, – 07/17 : <제헌헌법> 공포, – 07/20 : <초대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시영> 선출 (국회 원내 선거), – 08/15 : <대한민국 수립> 선포, – 08/25 : <한미군사협정> 조인, <북한총선거> 실시 – 09/01 : 북한 최고인민회의 개최, 김일성 수상으로 선출, – 09/07 : 국회, <반민족 행위자 처벌법> 통과, – 09/09 : 북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 – 10/19 : <여수, 순천사건> 발발, 27일 진압, 제주 폭동진압 파견반대, – 11/02 : 대구 제6연대 반란사건 발발, – 11/20 : <국가보안법> 통과, – 11/25 : <반민족 특별조사법> 국회통과, 12/07 공표, – 12/10 : 한미경제원조 협정체결 (마샬플랜에 의거), – 12/12 : UN 대한민국 단독정부 승인, – 12/21 : 대한청년단 결성 (이청천),
- <1949년>
- – 03/26 : 한일통상회담 개최, – 05/20 : 남로당 <국회 프락치 사건>, 미국무부 <미군철수> 발표, – 06/06 : 경찰의 <반민특위 습격>사건 (6.6사건), – 06/21 : 농지개혁법 공포, – 06/25 : 평양, 남북71개 단체 <조국통일전선 결성대회> 개최, – 06/26 : <백범 김구 암살>, – 06/29 : 미군 완전 철수 이후 UN 한국임시위원단도 철수, 미군사고문단 500명 잔류. – 08/10 : 중국 공산당 창설, -10/01: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 12/24 : 대한국민당 발족 (윤치영, 이인)
–
68혁명과 촛불혁명 (11-22-2019)
우리 세대는 <68혁명>에 대해 배우지 않았기에 잘 알지 못한다. 나도 김누리 교수의 <차이나는 클라스> 강의를 듣고 알았으며, 일부 내용은 강의에서 인용함을 밝힌다.
현대 독일의 3대 강점은 첫째, 과거청산이 잘된 나라, 둘째, 복지국가를 성공한 나라, 세째, 통일 잘한 나라로 대표할 수 있다. 이 모든 출발은 <68혁명>에 기인한다. 1968년 <베트남 전쟁 참전 반대시위>로 시작한 <프랑스 5월 혁명>은 프랑스 전역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고, 프랑스 노동자 1천만명이 노동파업으로 참여하여 전세계에 확산된, 전례 없던 반체제, 반문화 운동이다. 드골 정부의 실정과 사회모순, 기독교의 권위, 애국주의 등, 기존의 보수적 가치에 항거하는 혁명 운동이었다. <평등주의>, <성해방 –일부일처제 반대>, <인권>, <공동체주의 –코뮌운동 >, <탈물질주의>, <소비억제 주의>, <친환경 생태주의>, <적폐청산> 등이 대표적이다.
<68혁명>의 대학생 주체들은 2차세계대전 전후에 태어난 세대들이다. 종전 후 유럽 전역의 산업화 발달과 <라인강의 기적>등 경제적 부흥으로 양극화 된 소외된 계층의 불만이 생기게 되었다. 전쟁 주범들에 대한 적페청산은 되지 않았고, 독일 총리는 친나치 전범 이었으며, 경제적, 문화적 격차와 갈등은 심해져 갔다.
<68혁명>의 구호는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 부터의 해방” 이었다. 돈과 취업, 육아로 부터의 해방, 생활 속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일체의 권위를 거부하는 <평등주의>를 제창했다. 가부장적 권위주의, 여성차별주의, 관료적 권위주의에 강력 저항 했다. 무엇보다 <사람 사는 세상>, <인간다운 삶>을 요구했다. 자본주의 생산체제를 넘어, 소비체제의 물신주의, 물질숭배, 인간소외, 기독교에 대한 저항이었다. 부의 증대, 경제성장에 따른 과소비, 여론조작에 의한 인간적 소외 등을 항거했다.
<68혁명>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억압이 없는 현실 원칙>이 실현되는 이상 사회를 꿈꾸며, “두려움 없는 최고의 평등한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의 의미로 <위대한 거부>”를 역설했다. 구호들은 “<행동하라>, <열정을 해방하라>,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금지를 금지하라>, <파괴는 창조의 열정이다>, <사랑할수록 더 많이 혁명한다>, <굶주릴 지라도 권태로운 것은 못참는다>, <선거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 투쟁은 계속된다> 등이다. 경제가 발달할수록 인간성이 황폐화 된다는 사실과, 물질주의에 종속되는 인간의 삶을 거부함으로써, 인간다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오늘날 서유럽 선진국의 원천이 된것이다.
1968년5월3일 파리 소로몬 대학생들이 광장으로 나온 기점으로, 노동자 파업은 6월들어 독일 베르린, 이태리 로마, 스페인으로 퍼져 나갔다. 영국 등 서유럽를 건너 남미의 칠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멕시코로 확산되어 수많은 민중들은 생명을 잃었으며, 일본은 <전국 학생 공동 투쟁위원회>의 무력 투쟁으로 확산되고, 미국은 <베트남 전쟁 반대시위>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 인권 운동>, <히피 문화>를 만들었고, 체코의 <프라하의 봄>, 스페인 혁명, 소련과 동유럽의 시위 운동, 등등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미국의 저명한 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턴은 “이제껏 세계적 혁명은 단 둘 뿐이었다. <1848년 유럽 혁명>과 1968년 <68혁명>이다. 둘다 실패로 끝났지만, 둘 다 전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하지만 한국에만 <68혁명>이 전파되지 않았고 언론은 통제되었다. 그 첫번째 이유는 <남로당 출신>의 박정희가 군사 쿠테타를 일으킨 약점으로 미국의 <월남전 파병> 강요를 수락하였고, 두번째 이유는 한국이 절대 빈민국이었음으로, 월남 전쟁터에 한국의 젊은 군인들 목숨값을 팔아 먹은 것이다. <68혁명>의 실질적 시발점은 <베트남전쟁 (1964년~1975년) >이었다. 베트남의 지도자 호지민의 <사회주의 통일>을 막기위해, 1964년 8월 미군함이 북베트남 공격을 받았다는 거짓날조로 미국이 선전포고한, 유명한 <통킹만 사건>이다. 1968년 1월30일 <구정 설날 대공세>로 명명된 대대적 북베트남의 남베트남 36개 도시에 대한 공격과 사이공 함락은 전세를 역전시켰다. 이후 전세계에 <반전 평화 운동>과 <베트남 해방 운동>으로 퍼져 나갔다.
월남전쟁은 미국 전쟁사에서 가장 명분 없었던 전쟁 중 하나였다. 그래서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들도 참전 거부했던 월남전쟁에 한국만이 32만명의 전투병력을 파병했다. 1만6천명의 한국군 사상자와, 16만명의 고엽제 피해자를 양산했다. 또한 한국군의 잔인한 베트남 양민 학살은 결코 씻을 수 없는 역사의 죄를 지은 것이다.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한국의 젊은이들을 남의 전쟁터에 팔아먹고 죽게 만들고 죄를 짓게 만들었는가? 지금도 80의 노구에 월남 참전 군복을 입고 각종 행사 대열에 서있는 저들의 모습을 보면, 국가란 무엇인가?
한국은 <촛불혁명>으로 2019년 <정치 민주주의> 순위가 전세계12위를, 인구 5천만명, 국민소득 3만불 이상 국가 7개국 중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제 민중들의 <촛불혁명>으로 경제 민주주의, 사회 민주주의, 문화 민주주의를 이룩해야 한다. 오로지 <촛불 혁명>만이 할 수 있다.
–
유신 세대와 태극기 부대 (11-15-2019)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촛불 정부가 2년반이 지났다. 이제 막 반환점을 돈 것이다. 그런데 오늘도 뉴스 시간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광화문 광장에 모여 데모하는 <태극기 부대>를 본다. 청와대 앞에서는 목사도 아닌 목사라는 자가 주도하는 철야 기도 <태극기 부대>를 본다. 주로 6,70대 우리 세대들이다. “빨갱이 문재인 정부 탄핵, 독재 정권 문재인의 모가지를 따자, 경제폭망, 안보 폭망의 주범 문재인을 끌어내리자, 공수처 반대, 사법개혁 반대, 선거제 개편 반대, 반대 또 반대, 무조건 반대..” 유신시대였으면 칠성판에 고문당하다 소문없이 죽었을, 광기의 태극기 부대, 저들은 누구인가?
대한민국의 비극은 <분단국가>에서 모든게 출발한다고 한다. 해방 후 40여년 동안, 독재를 위장하기 위해 <반공 이념>만을 앞장 세웠다. 그 프레임이 지금까지 계속된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정상 국가가 아니다. 양극화 된, 양분화 된 기형 국가이고, 병든 사회다. 정의가 상실되고, 거짓과 위선이 난무하는 사회다. 어른이 어른 같지 않는 사회, 어른이 부재중인 사회, 불신과 불만만 가득 찬 사회가 된 것이다. 물론 북한은 세계 최악의 비정상 국가다.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는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미군정,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모두 독재정권이었던 시절에 살았다. <독재 정권>과 싸운 사람이든, 그 세력에 영합하여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이든, 역사의 사건마다 가해자와 피해자로, 혹은 방관자로 살았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의 사상과 가치관은 어디서부터, 누구로 부터 영향을 받았는가?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살아온 정치, 경제, 문화, 사회적 환경과 부모, 선생, 친구, 선후배 등 주변 지인들로 부터 크나큰 영향을 받는다. 특히 청소년, 청년 시절은 자신의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살아온 세월이 다르니 그래서 생각도 다른 것이다.
나는 73학번이고 66세 (1954년생)이니 1970년대가 내 인생의 가장 예민한 시기였으리라. 1970년대는 일명 <박정희 유신 독재> 시대다. 지금 80대 선배 세대는 1940년 전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서, 2차 세계대전, 해방과 미군정, 이승만 정권, <6.25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이다. 70대 선배 세대는 1945년 해방 전후에 태어나서, <4.19 혁명>, <5.16 군사 쿠테타>, <월남전쟁>에 참전한, <박정희 군사독재>에 살았던 세대다. 그리고 6,7,80대 노년 세대는 모두 <유신세대>다.
이들 노년세대는 지독히고 가난한 시절 (일명 똥구멍이 찢어질 정도의 절대 빈곤 시절)에 태어나서, 제대로 사람 취급 받지 못하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미군정과 이승만,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미군 구호물자 (밀가루, 옥수수빵, 고체 우유, 초등학교 3부제 수업 등)로 허기진 배를 채우던 세대들이다. 집에서 얻어맞고 학교에서 얻어맞고, 군대에서 얻어맞고, 길거리에서 얻어맞고. .. 맞는데 이골이 난 세대들이다. 주면 주는대로,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라면 하는대로.., 초,중,고등학교 학창시절 죄수처럼 모두 머리 깍고, 군복 같은 교복 입고, 일본 군국주의 훈련을 받으며, 눈치껏 살아온 세대다.
반면에 1960년대에 태어난 지금의50대들, 일명 <586 세대>는 그래도 양반이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주술같은 전국민의 일념으로, <새마을 운동>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펼친 결과, <한강의 기적>을 맛본 세대다. 절대빈곤에서 해방된, 제대로 교육받은 세대다. 전두환 독재정권에 맞선 <서울의 봄>, <5.18 광주혁명>, <6.10 항쟁> 세대고, 대통령 직접선서를 이룩한 성공한 혁명세대다. 아시안 게임, 월드컵, 88 올림픽을 개최한, 자부심이 대단한 세대다.
하지만 우리 노년세대 모두는 한국 현대사를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세대다. 대부분의 시절 (1940년부터 1987년 까지)은 모든 언론이 통제되고, 전화는 도청되었으며, 서신은 검열되었다. 가요도 신문기사들도 검열 대상이었다. 그런 시절에 살아 남아 출세한 자들이 현재 기득권 고위층 세력들이다. 전쟁을 핑계로 항상 국가 비상위기 이었다. 비상계엄령이 10여 차례 선포되고, 국가 권력에 대해 한마디라도 불평불만을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서 죽도록 얻어맞고, 고문당했던 시절이다. 길거리에서 아무나 검문검색을 하고, 이유없이 잡으러 다니고 도망다니던 그런 세월을 40년 이상 살아온 세대다. 한마디로 우리 세대는 <비판 능력>이 상실된, 길들여진 <노예 세대>다. 이런 세대의 머리 속에는 지금까지도 무엇이 남아있을까? 오로지 반공, 멸공, 종북, 주사파, 간첩, 빨갱이, 빨치산, 무장공비, 적화통일 등등. . 꿈 속에서라도 경끼를 일으키는 세대다.
다음주 부터 <한국 현대사 연혁>을 년대별로 사건 위주만이라도 나열해 볼 것이다. 참으로 기구한 역사였음을 알아야 한다. 왜 한국 현대사를 <제대로>알야야 하냐면, 대한민국은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는 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를 모른채 다정한 이웃으로 함께 살고 있다. 오히려 지금도 가해자가 피해자를 지배하고 있다. G20 개국중, 세계 유일하게 <역사의 심판>이 없었던 나라가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오호, 애재라!
–
한국 꼰대의 세월 (11-08-2019)
<꼰대>는 늙은이, 기성세대나 선생을 뜻하는 은어이자 비속어이지만, ‘타인을 무례하게 하대하는 노년’이라 보면 된다. 나도 이제 60대 중반이고 곧 70대에 접어드니 <꼰대>중의 한사람임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일명 <태극기 부대>로 총칭되는 저 대단한 <꼰대>들의 의식 구조는 왜 저럴까? <무조건, 무조건이야 ~~ > 자신들의 이념과 다르면 모두가 <적>이고 <종북>이고 <빨갱이>다. <빨갱이>는 무조건 잡아 죽여야 한다. 폭력과 폭언은 기본이다. 오직 적과 아군, 이분법적 사고다.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이다. 한국의 50대부터 6,70대들의 <꼰대>들은 해방 이후 출생한 자들로써, 일제 강점기 시절에 태어난 80,90대 <꼰대> 들과는 또 다른 엄혹한 시대에 살았다.
<꼰대>들의 특징은 첫째, 자신의 생각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철저한 <자기 중심적 사고>다. 한마디로 <보수 꼴통>이다.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타인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헨리 키신저는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확신하는 사람보다 더 위험한 존재는 없다”고 했다.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타인의 사상이나 이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분이 강조하신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자신의 기준에 맞는 <도덕성 강요>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배운 예절, 복종, 효도, 충성 등을 자신도 그렇게 못했으면서도 타인에게 강요한다.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어!> 여러가지의 가치관 중에서도 <도덕적 가치>를 우선하여 대접하기 보다는 대접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흑백논리>를 강요한다.
세째가 <이중적 언행>이다. <너 몇살이야? 어린 놈의 자식이..>로 대표한다. 계급, 기수, 나이, 학벌, 직급, 빈부 등을 비교하여 자신보다 하급자라고 생각하면 비인격적, 비격식, 반말과 저급한 행동 등을 서슴치 않는다. <~~님>으로 대접받기를 좋아하면 꼰대가 되어가는 징조다.
대표적인 한국의 <꼰대 집단>은 한국 검찰 조직이다. 비단 검찰 뿐이겠는가? 자칭 한국의 엘리트 집단이 <꼰대 문화>가 더 심하다. <꼰대 집단>의 특징은 첫째, <절대 복종>을 강요한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이다. 그래도 붙어있는 이유는 얻어 먹을게 많키 때문이다. 둘째는 조직 성과 보다는 서열을 더 중요시 한다. 하급자의 진급과 길흉화복(?)을 우지좌지 하는 조직일수록 <줄>을 세운다. 세째는 자유로운 토론이 허용되지 않는다. 반대 의견을 내면 <괘심죄>에 걸려 3대(?)를 멸하게 된다. 즉 숙청되는 것이다. 상하 간에 의사소통이 안된다. 불통이다. 하급자는 눈치껏 기어야 한다. 상급자는 권위적이게 된다.
꼰대들의 <육하원칙>의 우스개를 소개한다. <Who (내가 누군 줄 알아?)>, <What (니가 뭘 안다고 그래?)>, <Where (어딜 감히?>, <When (나 때는 말이야)>, <How (어떻게 그런걸 나한테?)>, <Why (왜 내가 그걸?)> 등등.. 실로 꼰대들의 사용 용어는 익숙하고도 다양하다.
꼰대는 한국만 있는 것도 아니고, 늙은 꼰대만 있는 것도 아니다. 세계적 꼰대들은 대부분 <선민의식>이 강하다. 특히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명문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계층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유독 한국만의 <꼰대문화>는 한국의 불행한 과거사에 기인한다. <586세대 – 지금 50대 나이, 1980년대 학번, 전두환 군사 독재 시대>와 <6070 유신세대 – 지금 60대, 70대 나이,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이후 베이비붐 세대, 60, 70학번세대. 박정희 군사 독재 유신체제 세대)들이 대표적이다. 1945년부터 현재까지 한국 현대사 연혁을 기술하면 그렇게 기구한 민족이 없다. 모질고도 엄혹한 세월을 산 국민이다. 수많은 형제 동포를 긴 세월 동안 총칼로 찔러 죽이고, 목구멍으로 쉰 밥덩이를 꾸역꾸역 쳐먹던 국민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라는 깃발 아래, 죽기 살기로 일만 하던 국민이다. 그리고는 잘 살게 되니까 과거사를 모두 <망각>해 버린 <치매 국민>이 되었다.
다른 국가나 민족은 전쟁 시기를 제외하고는 <계엄령>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계엄령은 국민의 기본권이 통제되고, 국가 3권이 모두 말살되며, 모든 국가 권력을 군부가 장악하는 것이다. 한국은 총 10번의 계엄령이 발포되었는데, 대부분의 상황이 실질적 국가위기 상황이 아니라, 군부독재 세력의 권력 찬탈이나 유지를 위해 실행되었다. – 여순사건 (1948/10/21), – 제주4.3 사건(1948/11/17), – 이승만 개헌발췌 (1952/05/25), – 4.19혁명 (1960/04/10), – 5.16 군사 쿠테타 (1961/05/16), – 한일국교 정상화와 6.3 항쟁 (1964/06/03), -10월 유신 (1972/10/17), – 부마 민주 항쟁 (1979/10/18), – 10.26 박정희 살해 사건 (1979/10/27), – 5.17 내란과 광주 항쟁 (1980/05/17) 이다. 꼰대 세대는 통제된 <동물농장>에서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탄핵 사건때 촛불 혁명을 하는 국민을 대상으로 다시 계엄령을 시행하려 했다면 아직도 대한민국은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기득권은 변한 것이 없다. 아직도 비정상적인 국가에 <꼰대문화>가 기여한 점은 과연 없을까? 정말 징~ 하다..
–
가난한 민중들의 웃음 (11-01-2019)
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웃는 모습이 좋다. 어린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 하루 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 민중들의 웃는 모습이 나는 좋다. 만약 내가 노후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내 기억 속에 잔재되어있는 몇장의 흑백사진들을 그려보고 싶다. 어릴적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몇장의 얼굴들, 자갈치 시장에서 장사하는 이북 피난민들의 웃음, 치아가 하나도 없는 늙은 어부의 웃음, 온통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한 시골 아낙의 웃음, 가난한 학창시절의 친구들 웃음, 우리 엄마 웃음, 철없는 아내의 웃음, 우리 아이들 자랄 때 웃음.. 나는 그 웃음들을 그리워하고 사랑한다.
하지만 ‘웃어도 웃는게 아니야’, ‘웃는 얼굴 다정해도 믿을 수 없어요’.. 유행가 가사처럼 가난한 서민들의 웃음 뒤편에는 언제나 슬픔이 있었다. 웃으면서 우는 모습, 영화 <조커(Joker)>의 영상 한 장면, 분장실에서 광대 분장을 하고 있는 아서 플렉 (조커 역활)은 자신의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고 웃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그 장면이 민중들의 웃음과 오버랩 된다.
지구상의 어느나라나 양극화 현상에 따른 빈부의 격차, 부정부패는 극에 달한다. 민중들은 단돈 몇푼에 권력자와 가진 자, 기득권자들에 맞서 목숨을 걸고 투쟁한다. 칠레, 볼리비아, 에콰도르, 베네주엘라, 영국, 스페인, 레바논, 이라크, 아이티, 홍콩, 여의도 서초동 촛불 집회, ..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은 투쟁의 몸살을 앓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본주의 병폐와 빈부의 격차는 점점 더 심해진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내몸처럼 돌보지 않고 나누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신가요?
요즘 극장가의 인기 영화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동일한 소재이다. 두 영화 모두 가난한 서민들의 아픔과 좌절, 허망한 열망과 망상, 거짓과 분노, 살인과 파괴, 상실과 파멸의 과정을 그린 영화다. 여러분도 한번 보시기를 권한다. 영화가 낯설지 않음이 나를 더욱 씁쓸하게 한다. 가진자의 갑질, 서로 다른 세계의 생활과 사고방식, 가식과 위선, 철저한 계급과 차별화된 신분사회, 가난한 자는 신분상승이라는 상상조차 감히 죄가 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영화 <조커>의 줄거리다. 빈민가 고담시 허름한 집에서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광대로 일하는 주인공 아서 (조커로 분장). 그는 어릴적 부터 코미디언이 되는게 꿈이었다. 현실은 시궁창이어서 당장 일하지 않으면 병든 어머니와 살 수가 없었다. 얼굴에 분칠을 하고, 웃고 싶지 않은데 웃어야 하는 광대. 그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어서 한번 웃으면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 대중들에게 놀림감이었고,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었다.
광대분장으로 광고판을 들고 홍보하다가 동네 아이들에게 광고판을 빼앗기고 발로 차이고 밟힌 사건.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꼬마를 웃기려 광대 표정을 하다가 꼬마 엄마에게서 아이를 괴롭히지 말라는 항의. 폭행사건에 대비하라고 아서에게 권총을 준 친구의 배신. 일방적 직장해고. 지하철 역에서 여자 승객을 치근덕거려 웃는다는 이유로 자신을 폭행한 남자들 세명을 권총으로 살해. 엄마의 편지를 통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사건. 지역 유지이며, 회사 사장이자, 시장으로 출마하려는 토마스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 사장인 아버지와 임시 종업원 엄마와의 사이에 사생아로 태어난 자신의 출생 비밀, 지금의 엄마는 자신을 입양했다는 입양모이고, 어린 시절 엄마의 의붓 남자들로 부터 폭행과 괴롭힘으로 인해 외상후 스트레스 정신 질환을 앓게 된 사실, 아버지와의 만남과 좌절. 존경하는 가진 자에 대한 분노와 살인이 이어진다.
아서는 어릴 때부터 엄마로 부터 “Don’t forget to smile !” 이라고 교육받는다. 하지만 삶은 지칠대로 지치면 “Don’t smile”로 바뀐다. 모두가 미쳐가는 코미디 같은 세상에서 맨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든 서민들의 삶.. 누가 진짜 조커 (Joker)인가?
가난한 민중들은 가진 자들 앞에서 항상 웃어야 한다? 강한 자, 가진 자들 앞에서는 언제나 웃도록 교육받았고, 적당히 굽신거리며, 지시에 토 달지 말고 내 감정을 내보여서는 안된다고 배운다. 그들이 규범과 제도, 체제를 만든다. 오랜 세월동안 민중들의 먹고 사는 최소 생활권 마져 그들이 쥐고 있다. 그래서 웃는다? <개뿔도 없는 놈이>,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라>, <네 주제를 알아라> .. 등등 서민들의 자조적, 자학적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면서도 가난한자 서로는 서로를 비교하며 자위한다. <나는 그래도 쟤보다는 나아>라는, 상대적 우월감과 열등감의 비교가 서로를 더욱 슬프게 한다. 하지만 <소문만복래 (笑門萬福來)> – 웃는 문으로 만복이 들어온다. 가난한 자의 웃음은 타인을 위한 웃음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웃음이어야 한다. 가난한 이민자로 살아가는 허망한 웃음이든, 세계 광장의 촛불 민중들의 덧없는 웃음이든, 웃음 속에 흐르는 눈물을 그분만은 아시리라. 오늘도 웃어야 하는 가난한 세계 민중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
조선아, 이 사나운 곳아 (10-25-2019)
“조선아, 내가 너를 영결(永訣) 할 때 / 개천가에 고꾸라졌던지, 들에 피 뽑았던지 / 죽은 시체에게라도 더 학대해 다오. / 그래도 부족하거든 / 이 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 할 수만 있는대로 또 학대해 보아라 / 그러면 서로 미워하는 우리는 영영 작별된다 / 이 사나운 곳아, 이 사나운 곳아.” <유언 (遺言)> – 탄실 김명순
“한 여자를 죽이는 일은 간단했다 / 유학 중 도쿄에서 고국의 선배를 만나 데이트 중에 / 짐승으로 돌변한 남자가 강제로 성폭행을 한 그날 이후 / 여자의 모든 것은 끝이 났다. / 출생부터 더러운 피를 가진 여자! 처녀가 아닌 탕녀! / 처절한 낙인이 찍혀 내팽개쳐졌다. / 자신을 깨워, 큰 꿈을 이루려고 떠난 낯선 땅 / 내 나라를 식민지로 강점한 타국에서 / 그녀는 그때 열아홉살 이었다. (…) //
한국 여성 최초의 소설가, 처음으로 시집을 낸 여성 시인, 평론가, 5개 국어를 구사한 번역가는 / 일본 뒷골목에서 매를 맞으며, 땅콩과 치약을 팔아 연명하다 / 해방된 조국울 멀리 두고 정신병원에서 홀로 죽었다. / 소설 25편, 시 111편, 수필 20편, 희곡, 평론 등 170여편에 보들레르, 에드가 앨런 포를 처음 이땅에 번역 소개한 그녀는 처참히 발가벗겨진 몸으로 매장되었다/ (..) 조선아, 이 사나운 곳아, 이 담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 할 수만 있는대로 또 학대해 보아라. / 피로 절규한 그녀의 유언은 오늘도 뉴스에서 튀어 나온다./ 탄실 김명순! 그녀 떠난지 얼마인가. / 이 땅아! 짐승의 폭력, 미개한 편견과 관습 여전한 / 이 부끄럽고 사나운 땅아!” -문정희 <곡시 (哭詩)> 중에서 ..
탄실 김명순을 이야기 함은 한 시대 여성 작가의 기구한 운명만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 독재정권 통치 하에, 20세기를 살아온 지난한 조선 민중들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명순 (1896~1951?)은 서울 진명 여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간다. 도쿄 국정 여학교에 다니던 김명순은 조선인 일본군 육군소좌 이응준 (1891 ~1985)과 데이트 하던 중, 강제 성폭행(강간)을 당한다. 하지만 이응준은 그 이후 일본군 육군 대좌(대령)을 거쳐, 해방후 대한민국 초대 육군 참모총장, 체신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부귀의 삶을 살다가 94세로 마감한다.
한편 매일신보의 1915년7월30일자 “일본 동경 여학생의 종적 감춤”이라는 기사를 시작으로 세차례에 걸친 험한 기사, 당대 문인들과 남성 지식인들로 부터 야만적인 험담과 비난을 당한다. 나라를 빼앗긴 굶주린 군중들에게 먹잇감을 제공한 것이다. 고향, 부친 이름, 아명, 외가 출신 성분 등,.. 더구나 조선 최고의 1급 지식인들도 관음증 폭로에 앞장선다. 금동 김동인, 평론가 김기진, 소파 방정환, 늘봄 전영택 등. 한국 현대문학의 여명기를 수놓은 큰별들인 그들이다. 특히 1939년 김동인의 문장지 <김연실전>은 김명순을 천하의 탕녀로 만들어 버린다. 김동인은 동향이자 오빠의 친구였다. 이념이나 사상 논쟁도 아니고 오로지 남성 우월주의로 당대의 여성 작가이자 여성해방의 선구자 여성을 매장한다. 폭력의 이유가 어처구니 없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유로, 강간범을 고발하였다는 이유로, 나중에는 그녀가 서녀이며 기생의 딸이었다는 신분적 이유로, 아버지 죽음 이후 가난이라는 이유로 피해자로 보호받기는 커녕, 민중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하며 지탄받는다.
김명순은 결코 쉬운 길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고 사생아를 낳았으며, 아이 아버지 이름을 숨김으로써 세상의 비난을 온몸으로 감수한다. 사회의 정해진 틀 안에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글을 쓰고자 했던 그녀의 의지는 그녀에게 가해진 모든 비난과 멸시, 학대, 폭력의 이유가 되었다. 그녀는 생애 마지막까지 자유로운 영혼이고자 했다. 그리고는 1951년 도쿄의 한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민중은 누구나 엄혹한 시대에 태어나 성장하고, 주어진 삶을 살다가 마감한다. 모든 개개인의 삶은 소중하고도 귀하다. 그래서 타인의 삶도 존중되어야 한다. 이번 <조국 사태>를 보면서 공룡같은 거대 언론과 검찰 권력이 한 가정을, 한 가족 구성원들을 혹세무민 (惑世誣民), 얼마나 잔인하게 난도질 하는지 보았다. 그 가족 중 누군가가 김명순 처럼 죽었다면 가해자인 민중들은 자신의 행동을 진정으로 반성하고 후회할까? 천만에. 그들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 라는 낯익은 <망각>으로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 것이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당신은? ..
<사람이 사람에게 돌을 던지지 말라>고 그분은 말씀 하셨다. 그것도 <죽을 때까지 죽도록> 돌을 던진다면? .. 부족하고 모자란 내가 자유롭고 행복하고 싶듯이,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더구나 남도 아닌, 모르는 사이도 아닌, 가족 간에, 친구 간에, 교인 간에, 민족 간에 서로 미워하고 험담하고, 헐뜯고 중상모략 해서야 되겠는가? 선한 마음으로 살려 애쓰자. 그래야 <선택받은 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사나운 조선의 민중아!
–
가치관의 혼란 (10-18-2019)
현대사회는 혼란의 시대다. 혼란과 혼돈은 내가 믿고 있었던 가치관의 혼란과 상실에서 기인한다. 20세기 과학사에서 가장 큰 업적이 <상대성 이론>과 <카오스 이론>을 꼽을 수 있다. <카오스 ( Chaos =혼돈) 이론>은 물리학에서 불규칙한 결정론적 운동을 가르킨다. 카오스는 겉으로 보기에는 불안정하고 불규칙적으로 보이면서도 나름대로 질서와 규칙성을 가지고 있는 현상이다. 초기의 작은 변화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낳게 되는데, 1961년 미국 기상학자 로렌츠의 <나비효과>이론을 발표하여 더욱 유명해진 이론이다.
카오스(혼돈)의 한국사회.. 온통 뒤죽박죽 엉망진창이다. 하지만 <검찰개혁>이라는 조그만 변화의 시작이 언젠가 큰 소용돌이 개혁으로 이어져, 반드시 정의와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이다. 민중은 무질서하고 예측 불가능한 현상 속에서 숨어있는 정연한 질서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2개월간 혼돈 속의 블랙홀이었던 <조국 전쟁>은 향후 한국 사회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까? 마치 거대한 정치 시나리오 처럼, 복잡한 (Complex가 아닌, Complicated ) 사회 현상 속에서 적폐 기득권 세력에 대한 <개혁과 변화>라는 대명제의 서곡은 아닐까? <조국>이라는 개혁의 불쏘시개를 초기 조건으로 계산하여 정교히 각색된 <개혁의 대혁명>을 예견한 것은 아닐까?
흔히들 현대인들은 <가치관의 혼란> 혹은 <가치관의 상실>시대에 살고 있다고 한다. <가치관의 정의>는 선과 악에 대한 견해나 평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선 순위, 삶의 방향과 삶의 방법, 가치 판단을 하는 기준이나 선택하는 신념 등을 의미한다. 가치관의 종류에는 국가관, 민족관, 종교관 부터 개인 삶의 가치관, 가족관, 사회관 등 실로 다양하고 복잡하다. 민중의 개인마다 가치관이 확고하게 정립되어야 개인의 삶이 안정되고 사회와 국가가 안정되는 것이다.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런데 생각하지 않는다면? 현대 민중들은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 자아 정체감이 상실되거나, 수시로 변동하여 <내 마음 나도 모르는>, 될대로 되라는 식의 자유방임형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닌가? 가치관은 사회와 가정을 통해 학습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 자체가 급격히 수시 변동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가치관은 산업화와 정보화 사회를 바탕으로 한다.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 가치관>은 우리 세대와 같은 <꼰대 가치관>으로 전락한다. 효도, 남녀 유별, 어른에 대한 순종, 조직에 대한 충성, 가족을 위한 희생, 가족 관계 우선 등이 대표된다. 반면에 <현대적 가치관>은 개인의 특성, 독립성, 효율성, 물질적 번영과 부의 추구, 합리성, 개방성, 남녀 평등, 자유와 불구속, 수평적 인간관계 등을 추구한다. 전통과 현대 가치관이 충돌하고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것이다.
<가치관 혼란>의 대표적 원인은 과학 문명의 급격한 발달과 변화, 그리고 정제되지 않은 대중매체의 부정적 영향력이다. 현대인은 세계화와 정보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하루 자고 나면 새로운 기술과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가짜든 진짜든, 수많은 각종 뉴스가 쏟아져 나온다. 하루 하루가 <혼돈, 카오스>의 연속이다. 심지어 사회 지도층, 부모, 학교 선생, 종교 지도자 들 조차도 혼돈의 격랑 속에서 헤매인다. 삶의 표본이나 모범이 되기는 커녕, 그들이 오히려 적폐청산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젊은 세대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우며,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야 하나? <방향성의 상실>이다. 무기준, 이중 규범이다.
이를 <아노미(Anomie) 상태>라고 한다. 즉 행위를 규제하는 공통적인 가치나 도덕적 규범이 상실된 혼돈 상태를 말한다. 모든 가치에는 지배적 가치의 기준이 확고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가치가 도입되더라도 혼란의 간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전통적 가치관이 뿌리채 흔들린다. 대표적 원인중 하나가 청산되어야 할 적폐 세력들이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적폐 세력들이 기득권으로 군림하며 떵떵거리고 잘 사는데 무슨 모범적 가치관이 정립되겠는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말고 돈이면 최고고, 권력만 잡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래 위도 없고 눈에 보이는 것도 없는 <호로자식>들이 되는 것이다. 해방 이후 국가와 사회, 지도층과 어른들은 그들의 책임을 방기한 것이다. 그러니 세월이 지날수록 한국 사회는 <혼돈>만 가중되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바람직한 <가치관>은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이 존중되어야 한다. 공동체 참여의식이 높아져야 한다. 양보와 타협, 나눔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엄격한 준법정신을 고취시켜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법에는 만인이 평등해야 하고 예외나 차별이 없어야 한다. 지위 고하, 부자와 가난한 자가 차별받지 않는 상호 존중이 선행되어야 한다. 사색하고 공부하고 자족하며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자랑하지말고 거짓말 하지 말아야 한다. 어른이면 어른답게, 아이면 아이답게, 모두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최소한 죽는 날까지 그렇게 살려고 애쓰고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다.. <무엇이 중한디!>
–
바람불어 좋은날 (10-11-2019)
바람이 분다. 색바랜 나뭇잎들이 서로 기대어 속삭인다. 괜찮아, 잘 살았잖아, 더 무얼 바래, 고마워, 사랑해.. 나는 갈바람 속을 걷는다. 아내의 손을 잡고 가을 숲속을 걷는다. 낙엽 밟는 소리가 정겨웁다. 구름 한점 없는 파아란 가을 하늘이 내려다 본다. 나는 이 우주에 덩그러니 혼자가 아님을 감사해 한다. 그것만으로도 나의 마음은 족하고도 족하다.
“산들바람이 산들 분다. 달 밝은 가을 밤에, 달 밝은 가을 밤에, 산들 바람 분다. 아, 꽃이 지면 이 마음 어이해..”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아~아 가을인가 봐. 물동이에 떨어진 나뭇잎 보고, 물 긷는 아가씨 고개 숙이지. //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아 ~아 가을인가 봐. 둥근 달이 고요히 창에 비치면, 살며시 가을이 찾아오나 봐.”
<산들바람>과 <아, 가을인가>. 이 두 가곡은 우리 엄마가 살아 생전에 즐겨 부르시던 노래다. 엄마는 20살에 피난 내려 오셔서 이 가곡들을 평생에 몇번이나 불렀을까? 만날 수 없는 부모 형제를 그리워하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지으셨을까? 이제 어머니는 내 마음에 편히 계시니 오히려 나의 노래가 된다. 마음이 편하다. 나는 숲길을 걸으며 이 노래들을 흥얼거린다.
가을은 나에게 무엇일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닐까? 무성했던 나뭇잎들은 낙엽이 되어 가을바람에 모두 지겠지. 되돌아 갈 수 없는 봄과 여름을 그리워 하면서 늙어 가는 나의 육신을 바라본다. 멀지 않아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치면 나는 나의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 피해갈 수도, 벗어날 수도 없음을 나는 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도 헤어져야 함을 안다. 가졌으면 무얼 하고 못가졌으면 무얼 하나? 자랑도 허세도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가을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기다림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가을 편지>는 내 마음에 쓰여질 나만의 편지다.
그러기에 나는 <있는 모습 그대로> 나의 가을을 더욱 사랑해야 한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나는 고마워 해야 한다. 그리우면 그리운대로, 보고프면 보고픈대로, 나는 나의 가을을 살아야 한다. 아직도 일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육신이 건강함에 감사하다. 함께 의지하며 살고 있는 가족과 이웃이 있음에 감사하다. 맛있는 요리를 해서 함께 먹을 가족이 있음에 감사하고, 함께 운동할 이웃들이 있음에 감사하다. 글을 쓸 수 있어서 감사하고, 언젠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막연한 바램이 있어 감사하다. 나는 곧 다가올 차가운 겨울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러면 어때? 겨울이 오면 겨울을 담담하게 받아드리면 된다. 지금 와서 걱정한다고 달라질게 무언가? 있는 그대로, 생긴대로 사는거지 뭐..
<바람 불어 좋은 날>은 공원에서 산책할 수 있어 좋고 조깅 할 수 있어 좋다. 주말에는 근교 산에 갈 수 있어 좋고, 산이 항상 거기에 있어서 좋다. 산은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여서 좋다. 산들바람이 불면 야외에서 테니스 치기가 너무 좋고 함께 운동할 지인들이 있어 좋다. 비단 테니스 뿐이겠는가? 무슨 운동이든 좋을 것이다. 그나마 함께 할 수 있는 운동클럽이 있어 고맙기만 하다.
요즘 또 감사하는 일은 이민 초기 식구들이 모두 모여 산다는 것이다. 20여년 전 이민 초기에 자식 세명과 함께 단칸방 (원룸) 아파트에서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살았나 싶다. 그리고는 세월이 흐르면서 각자가 졸업하고 결혼하고 각자의 길들로 흩어져 살았다. 그런데 한국에 나가서 살던 큰 딸이 손녀를 데리고 오고, 뉴욕에 살던 둘째 딸은 손녀를 순산하여 산후조리차 집에 와서 살고 있다. 막내 아들놈은 졸업후 취업하면 나간다고 하면서 눌러 붙어 산다. 부부 둘이 살던 조용한 집에 난리도 아니다. 갓 태어난 둘째 손녀는 시도 때도 없이 울고 불고 서로 돌아가며 먹이고 재운다고 야단이다. 첫째 손녀는 유치원에 갓 입학하여 궁금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하루 종일 종알종알 ~~ 요리하고 식사 준비하고 먹고 마시고 몰려 다닌다. 하루하루가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는 날>이다. 언제 또 지금처럼 온가족이 모여 살 날이 있을까? 이렇게 시끌벅적하게 살 날이 또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 같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이 감사할 뿐이다.
학창시절 외웠던 <용비어천가>의 일부 해석본이다.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 흔들리니, 그 꽃이 좋고 열매가 성하도다. /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니, 흘러서 내가 되어 바다에 이르는도다.”
그래 애비의 소원은 너희 형제들이 오손도손 우애가 좋고 부부 금실이 좋아서 서로를 위한다면, 너희들이 원하는 일을 성실히 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바람이 좀 불면 어떠하고 안 불면 또 어떠하랴? 하나님을 가슴에 품고 선하게 살기를 소망한다.
–
민중의 분노 (10-04-2019)
9월28일 검찰청 앞에서 1백만명 혹은 2백만명, 아니 셀수 없는(uncountable) 민중들이 스스로 모여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 현상은 단순히 <조국 수호! 검찰 개혁!>만을 주장하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보수 대 진보 이념 논쟁도 아니고, 여당과 야당의 정파 싸움도 아니다. 기득권자와 소외된 자,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불평등>에 대한 투쟁이다. 조국 장관 수호는 개혁의 상징성일 뿐, 검찰 개혁은 대표적 기득권 자들에 대한 민중 항거이다. 한국의 민중은 분노한다. 아니 세계 자본주의 민중들은 모두 분노한다. 다만 한국 민중들은 비폭력 비무장으로 슬기롭게 촛불 혁명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왜 민중들은 이렇게 분노하고 있는가? 2017년 7월에 <불평등한 사회>와 <분노하는 사회>라는 제목으로 2회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민중들의 분노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평등의 양극화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진다는 점이다. 가장 큰 원인이 <소득의 불균형>과 <재산의 불균형>이다. 특히 재산의 불균형은 상속과 증여로 세습되어 진다는 것이다. 부만 세습되는 것이 아니라 가난도 세습되어진다. 그래서 <20 : 80의 계급 투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20%에 들려면 최소한 50억 혹은 100억원 이상의 재산 소득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미화 1천만불 이상이다. 가진 자들에게는 대단한게 아니다. 강남의 어지간한 아파트 한채가 20~30억원이다. 여러분의 재산은 얼마인가? 돈이 돈을 낳는다. 아무런 노력 없이 <불로소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부는 대를 이어 세습된다. 가난한 집 자식이 무일푼에서 시작하여 평생동안 어떻게 해야 50억원을, 100억원을 벌어서 20% 기득권에 들어갈 수가 있는가? 산술적으로 절대 불가능하다. 대대손손 불가능하다. 희망이 없고 빛이 없다. 그래서 민중은 분노하는 것이다.
가난한 민중의 유일한 방법은 <일류 학벌>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난한 집 자식이 일류대학을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개천에서는 용이 나지 않는다 !>. 한국에서 고3 수험생을 겪어본 부모들은 누구나 공감한다. 누구나 자기 자녀를 일류대학에 넣고 싶어한다. 수단과 방법만 주어진다면 못할 일이 무엇인가?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가난한 집 부모는 해 줄 것이 없다. 고액 학비도 문제다. 가난이 되물림 될 뿐이다.
<양극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회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다. <기회>는 가진 자에서 더 많이 주어진다. <기회 편중>, <기회 사재기> 현상이다. 자본주의 제도적 모순이자 병폐다. 자본주의는 제도와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의 <무한 자유 경쟁>이었다. 하지만 자본의 속성상, 가진자는 더 많이 가지게 되고, 가지지 못한 자는 점점 더 가난하게 된다. 원인은 <기회의 불평등>이다. 교육 기회, 입학 기회, 입사 기회, 승진 기회, 결혼 기회, 출세 기회, 재산 증식 기회.. 모든 기회에서 엄청난 차별이 존재한다. 기득권자들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세상>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들만의 세상이다. 민중들은 노예일 뿐, 그들과 함께 사는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다.
<소득 불평등 비중> = <10% 상위 계층이 차지하는 소득> / <국민소득 (자본소득 포함)> 이다. 아메리칸 드림이 사라진 미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소득 불평등 1위인 국가이고, 한국은 4위다. 한국의 황금 시기는 1980년부터 1990년대 까지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이후 2000년부터 20년간 한국의 불평등은 급증한다. 재벌기업의 낙수효과는 거짓이었음이 판명되었다. 소득 불평등은 상위 20%의 시장소득이 최하위 20%보다 25배 많다. 하지만 순재산 소득은 상위 20%가 하위 20%보다 64배 더 많다. 즉 재산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보다 훨씬 심각함을 알 수 있다. 한국 최상위 1% 의 재산이 전체 국민가구 총재산의 34%를 차지한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한사람의 큰 부자가 있기 위해서는 적어도 500명의 가난한 사람이 있으며, 소수의 풍요로움은 다수의 빈곤을 전제로 한다.”고 했다. 빈곤으로 고통받는 다수의 국민들은 자신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현 경제체제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장하성 교수는 “불공정하고 불완전한 경쟁에 의해서 만들어진 불평등만이 정당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다수의 빈곤을 전제로 한 불평등은 과정의 정당성과 관계없이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빈곤은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며, 다른 사람의 자유를 구속하는 어떤 개인의 자유도 정당화 하지 못한다.
대다수 국민은 분노해야 한다. 경제가 고성장했지만, 고소득층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차지하고, 국민의 90%가 남은 돈 55%를 나누어 갖는다는 사실에 분노해야 한다. 진보면 뭐하고 보수면 뭐하는가? 기득권자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 혹은 <쥐틀>에 걸려들면 안된다. 기득권자들은 여러 민중들과는 다른 <딴 세상>의 사람들이다. 정의로운 사회, 기회가 공평한 사회, 인권이 평등한 사회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민중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민중의 촛불>은 계속 되어야 한다. 그날이 올 때까지 !!
–
혼란의 한국 사회 (09-27-2019)
한국 사회가 미쳐가고 있다. 상식과 보편적 가치가 통용되지 않는다. 가치관이 상실된 사회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 기득권과 소외된 민중들 간의 계급투쟁으로 사회는 양분화 되고 극도의 혼란 속에 아우성이다. 한국인은 너나 없이 분노한다. 청산되지 못한 잘못된 역사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양극화는 심화되고,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죽도록 싸운다. 공존과 분배가 용납되지 않는다. <20:80 계급 투쟁>은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이미 보편화 되었다. 다만 한국은 게임의 룰이 없을 뿐이다. 적폐 청산과 개혁이 얼마나 힘들고 지난한지, 얼마나 많은 희생을 또 치루어야 할지 안타까울 뿐이다.
개혁을 추진하는 장관 한명을 파묻기 위해, 일가족 모두를 저자거리로 끌고 나와 난도질을 한다. 100여명의 특수부 검사들을 총 동원하여 장관 가족과 연관된 먼지털이식 수사를 강행한다. 관련 기관 70여군데를 강제 압수수색을 하고, 허위 정보를 흘리고, 모든 언론은 추측성 기사로 온 지면을 도배한다. 역적도 아니고,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도 아니고, 천문학적 국가 재산을 포탈한 부정축재자도 아니고, 수많은 민중을 고문하고 살해한 독재자도 아니고.. 지구 상에 어느 누가 살아남을까?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런 집단을 엘리트 지성적 집단이라 할 수 있는가? 과연 조국 장관이 돌로 쳐 죽일 죄라도 지었는가?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재판도 하기 전에 벌써 한명의 장관을 천하의 역적으로 만든다. 재판이 끝날려면 족히 5년은 걸린다. 그동안 검찰 개혁은 물건너 가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 이런 사례가 있었던가? 해방 후 몇명의 정치 군인들이 <군사 쿠테타>로 민중을 공포 속에 억압한 세월이 30년이다. 지금 사태는 <검찰 쿠테타>다. 일제 강점기 부터 지금까지 100년동안 검찰 권력은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았다. 무소불위의 조직이다.
이번 쿠테다는 기득권 집단 (세력, 조직)들의 계급 전쟁이다. 자신들의 영역(나와바리)를 침범하면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조폭이다. 20% 한국 기득권층의 힘과 세력이 강하다는 것은 나도 한때 일원이었기에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까지 무지막지 할줄 몰랐다. 무자비한 검찰 권력과 몰염치한 언론 권력이 힘을 합하여 초강력 허리케인을 만들어 조선 반도를 휩쓸고 지나간다. 조국 장관 한명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문재인 촛불정부를 짓밟아서 영원히 이 땅에 파묻어 버리려 함이다. 노무현, 문재인으로 끝을 내겠다는 것이다. 다시는 민중의 힘으로 민중의 정부를 만들지 못하게 함이다. 이것이 조선의 기득권 역사다.
가난한 민중은 한국의 가진 자들, 기득권 자들의 삶과, 가치관을 알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고, 들어 갈 수도 없다. 그들에게 착취 당하고 빼앗기고 얻어맞고 굽신거리며 비굴하게 산 세월만 동학혁명(1894년) 이후 족히 125년이다. 가진 자들 끼리의 연결고리는 정말 강하다. 한국에서는 못할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다는 특권의식이 강하다. 기득권 그룹에는 들어가기가 어렵지, 일단 들어가면 철저한 보호를 받는다. 기득권 구성원은 <돈>과 <권력>중 최소한 한가지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 민중들은 <학벌>이 최우선시 된다. 보수와 진보, 가진 자와 못가진 자를 막론하고 무조건 일류고등학교, 일류 대학을 나와야 한다. 고졸과 대졸, 일류 대학과 이류 대학은 하늘과 땅 차이다. 자신의 학력은 짐승의 낙인처럼 평생을 따라 다닌다. 공고나 상고 출신으로 대기업에 입사를 한들, 10년이 지나도 대졸 초봉보다 못하다. 승진 체제도 다르다. 아니 버티기 조차 벅차다. 학력이 계급을 만든다. 학력이 가장 기초적인 인맥을 만든다. 한국사회는 인맥, 출신 성분, 배우자 인맥, 선후배 관리가 매우 매우 중요하다. 부자가 되고 출세를 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일단 조직에 들어오게 되면 충성 맹세를 해야 한다. 배신은 결코 용서되지 않는다. 배신은 파멸 뿐이다. 침묵은 금이다.
예를 들어 갑중의 갑, 검찰 조직을 보자. 서울법대 출신으로 사법고시를 패스하면 이미 기존의 서울대-사법고시-법조 라인의 일원이 된다. 그들 중에 힘센 판사, 검사, 변호사 선후배 모두가 있다. 부자집 사위가 되니 신분 상승은 자동으로 된다. 그런 막강한 조직을 배신할 수 없다. 항명은 배신이고 죽음이다. 사표를 내고 나와도 변호사로 먹고 살기 어렵다. 사법고시 패스를 했다고 같은 성골이 아니다. 비주류가 주류 세력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개가 되어야 한다. 탁월한 공을 세워야 한다.
비단 사법 기관 뿐인가? 정부기관, 공공기관, 국영기업, 기업체, 대학교, 연구기관, 각종 단체, 언론사.. 한국의 그 어느 곳이라도 부정부패와 비리가 없는 곳이 한곳이라도 있는가? 심지어 교회, 사찰 등 종교기관도 예외가 아니다. 어느 조직에 있든지 간에, 엘리트로 인정받고 출세하고 싶으면 그 조직의 생리에 맞추어야 하고 적당히 비굴해야 하고 적당히 눈을 감고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 월급쟁이 목숨은 파리 목숨이다. 찍히면 죽는다. 이런 사회에 무슨 정의가 있고 자유와 평등이 있겠는가?
–
우리집 추석 차례 (09-20-2019)
한가위 보름달을 바라본다. 휘영창 밝은 보름달에 우리 엄마 우리 아버지 얼굴이 보인다. 어릴적 고향집에서도, 학창시절 자취생활 할 때에도, 장교로 기지생활 할 때에도, 미국에 이민와 부모 형제와 격리된 생활을 할 때에도, 나는 저 달을 보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저 달 속에는 나의 부모님과 가족 형제들이 있었다. 그리움이 보고픔으로, 만남이 기다림으로, 아쉬움이 기약으로, 나를 위로하고 안아주던 그 보름달이다.
우리집은 부모님이 모두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 가족이므로 일가친척이 없거니와 부모님의 고향에 갈 수도 없었다. 성묘할 선산도 없었고 추수할 시골집도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피난 이후 평생 한번도 뵙지를 못한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를 정말 지극정성으로 드리셨다. 엄중하다 못해 숙연하였다. 아버지는 언제나 부모님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창밖을 바라보시는 어깨 너머로 눈물을 지으셨다.
장손인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30년 전부터, 이제 이 머나먼 미국 땅까지 와서 차례와 기제사를 모신다. 특히 올해 추석은 어머니 49제와 겹치게 되어 나의 마음을 더욱 눈물짓게 하였다. 휘영찬 큰 보름달을 보면 감사와 그리움, 사랑과 죄송함으로 하염없이 저 달 속에 머물러 있게 된다. 우리집 차례나 제사 방식은 전통 유교 방식과는 조금 다르다.
먼저 차례(제사) 음식은 부모님이 좋아하셨던 음식들 위주로 장만한다. 아내는 아버지 사랑에 대한 보답인지 음식 준비에 지극정성이다. 과일은 사과, 배, 포도, 바나나, 귤 등 제철 과일들이고, 삼채 나물, 밤, 대추, 곶감, 약과, 유과 등이 준비된다. 생선은 조기와 명태 구이를 준비하고, 동그랑땡과 전을 만든다. 우리집 압권은 뭐니뭐니 해도 함경도식 갈비찜이다. 제사 후 모든 가족이 갈비찜에 밥을 비벼 먹는다. 본래 제사상에는 김치를 올려놓지 않지만, 우리집은 김치도 여러가지 올린다.
우리집은 차례를 두차례 올린다. 지방은 내가 직접 쓴다. 두번이라 해도 지방문과 제밥, 제국, 제수, 제주(祭酒)만 바뀐다. 첫번째 제사는 뵌적이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 조상들께 드린다. 형제 가족들의 안녕과 보살핌에 감사드리고 지속적인 도움을 고한다. 이씨 가문의 일원으로써 부끄럽지 않는 자손이 될 것과 자부심을 갖는다. 뿌리를 알게 하고 혈통의 영속성을 느끼게 한다.
두번째 제사는 아버지 어머니께 드리는 제사다. 설날은 한해 계획 위주로, 추석은 감사 위주로 한다. 먼저 제주인 내가 우리 가족과 한국에 사는 형제 가족 모두, 집집마다 베풀어주신 은혜를 고하며 감사를 드린다. 일종의 제문 낭독인데, 현실감 있게 가족 현황을 보고 드리는 셈이다. 그리고는 가족 각자가 제상 앞에 나와 제주를 올리고 돌아가면서 한해동안 보살펴 주신 은혜에 감사한다.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 그리고 각자가 갖고 있는 계획이나 꿈을 작고하신 아버지 어머니께 고하면서 도와달라고 발원한다.
이런 독특한 제사 방법을 하는 이유는 가족 구성원 각자의 감사 내용과 새로운 계획을 서로 알게 하고 격려하기 위함이다. 또 본인 스스로도 발원히고 다짐하는 계기도 된다. 사위와 딸, 손녀가 한팀으로 나와서 조상께 고하므로 가족이라는 단합과 구속력도 같게 된다. 첫번째 조상께 드리는 제사는 조상이 누구인지 실감이 나지 않지만, 두번째 제사인 아버지, 어머니께 드리는 제사는 사진을 보면서 각자가 갖고 있는 추억을 기억하며 고하므로 훨씬 현실감이 있다. 현대사회에 서로 바쁜 생활을 하다보면 가족이면서도 서로의 형편과 사정을 모르기 십상이다. 부모와 자식, 삼촌 고모와 조카, 사촌들 간에 만나기도 어렵고 서로의 마음을 알기도 어렵다. 특히나 우리집은 친척들과 가족수가 많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일년에 두차례의 차례에는 가능한 모든 가족들이 모여서 남녀 구분 없이 함께 제사 음식을 만들고 차례를 지내고 먹고 마시고 위로하고 격려한다. 날짜도 멀리 사는 자식도 참석할 수 있도록 토요일 아침이나 저녁으로 한다. 우리 조상님들은 모두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나는 차례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산 자와 죽은 자>의 <만남이요 대화>라고 생각한다. 누가 산 자이고 누가 죽은 자인가? 기독교에서 <산 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자로서 육신은 죽어도 <영>이 살아난 <산 자>요, <죽은 자>는 하나님 말씀으로 살지 않는 자이니 육신이 살아 있어도 <죽은 자>로 정의한다. 즉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한다고 믿고 행하는 자는 육신이 죽어도 산 자가 되는 것이다. 즉 영생(永生)을 말함이다. 나의 차례와 제사 개념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내 마음에 부모님이 항상 함께 하고 계시면 죽어도 산 자가 되고, 부모님을 잊어버리면 살아도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부모님을, 조상님을 하나님과 같은 신의 반렬에 올려놓고 동일시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차례와 제사는 우상 숭배도 아니고 귀신 놀이도 아니다.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고 그리워하며, 살아있는 가족들을 연결하고 단합하는 한국인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이리라. 그래서 내 후손들도 우리집 전통 차례 예식을 이어받기를 소망한다.
–
빼앗긴 자유 (09-13-2019)
한국사회는 아니 자본주의 사회는 점점 양극화 현상이 깊어만 간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자,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 사회적 혜택을 누리는 자와 소외 받는 자.. 그래서 대한민국 민중은 촛불을 들었고, 새로운 민중의 정부를 만들었다고 자부했다. 덧없고도 구름같은 슬로건인줄 알면서도, 다 함께 잘사는 나라, 기회가 공평한 사회, 과정과 결과가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려고 꿈을 꾸었다.
하지만 이번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과정을 보면서 기득권자와 가진 자들의 벽은 태산 처럼 높았고, 강철처럼 강했다. <검찰 공화국>, 한국의 검찰, 아니 사법고시를 패스한 <법조 집단>은 한국 기득권 조직 중에서도 갑중의 갑이다. 정권은 5년마다 바뀌지만, 그들의 부귀와 영화는 영원하다. <검찰은 변하지 않는다>는 어느 검사의 고백처럼, 한번 기득권 세계에 들어가면 결코 <조직>을 배신할 수도 없고, 빠져 나올 수도 없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말이다. 정치, 언론, 법조, 기업들의 기득권들은 더욱 단합하였고, 민중은 혼수 상태에 빠져 국론은 양분되었다. 조선의 민중들은 얼마나 더 힘들고 험란한 세월을 살아야 하는걸까?
언젠가 홍세화씨의 칼럼 <빼앗긴 자유, 버림받은 자유> 내용에 공감하며 칼럼 일부를 인용한다. “우리는 자유를 빼앗겼다. 우리의 비극은 자유를 오랜동안 빼앗겼는데도 그 의미가 훼손된 탓에 우리 또한 자유를 외면한 채 되찾으려 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자유가 우리를 배반했다면 우리 또한 자유를 버린 것이다. 최근 사회 각계에서 고발되고 있는 힘센 자들, 가진 자들의 갑질 행태는 오래 전부터 이땅에서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자유>가 그 찬란한 의미와 함께 사라졌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자유를 지향하고 자기 형성의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게 인간이라면, 우리는 각자의 몸이 거하는 곳, 집과 배움터, 일터에서 자유로워야 하며, 나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에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인간의 자유가 <몸의 자유>, 즉 ‘당신의 몸은 당신이 지배한다’ (habeas corpus)에서 출발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땅은 이 기본조차 통하지 않는 동토였다. ‘한 사람이라도 자유롭지 못한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다’라고 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는 커녕 죽임을 당했고, 고문을 당했다. 기막힌 역설은 그렇게 반세기 동안 자유를 잔인하게 짓밟은 명분이 <자유(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 <더불어 잘사는 사회>는 사회주의적 이데오르기다. 현대 민주주의는 한계와 병폐에 부딪혔다. 그래서 미국 뿐만 아니라 캐나다, 서구 유럽은 <사회적 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다. 하지만 해방 이후 미군정 세력과 친일 기득권 세력은 국가의 물리력을 장악하여 <공산주의> 세계의 대립물로 절대 긍정화된 <자유세계>라는 <상상의 공동체>의 허구 위에서 비판세력을 친북좌경, 빨갱이로 몰아 제거하면서, 기득권을 유지 강화해 왔다. 이 자유세계 라는 사상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을 거쳐 오늘의 자유 한국당에 계속 남아있다.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슬로건 중 하나인 <자유는 예속> 보다 더 심한 반어일 뿐이다. <예속>은 당하는 자의 수동적 표현이라면, 한국 기득권자들의 <자유>는 <억압>을 위한 반어적 기제였다.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빼앗긴 조선의 민중은 우리를 배반한 자유를 말하기 조차 기피했다. 자유를 외치는 대신 <민주주의>를 호명했던 것은 <산업화 과정>을 통해 더욱 공고해졌다. 자유세계의 자유를 학살하고 고문하는 자유가 노동을 탄압하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자유 방임주의, 신자유주의의 자유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중이 스스로 기득권에 들어가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3포, 5포, 7포 세대.. 자라나는 젊은이들에게 부끄럽고도 허망하다. 해방 이후 70년동안 기득권자, 가진자 들은 사유재산의 무한 자유, 이윤추구의 무한자유를 요구해 왔다. 대한민국은 계속 민주화를 말할 뿐, 자유를 말하지 않았다. 민주화와 자유화는 공존 병립해야 한다. 자유로운 주체로 구성되지 않는 민주화란 빈 허물에 지나지 않는다.
시민단체 사회운동에서도 자유는 민주, 정의나 평등에 비해 가장 먼 언어였고 가장 후순위로 밀려났다. “싸우는 과정 자체가 그 싸움을 통해 획득하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는 나오미 울프의 말은 적용되지 않았다. 노동운동 조차 대부분의 조합원이 운동의 주체이기 보다는 동원의 대상이었고, 조직의 우산아래 경제적 이익을 보장받는 수혜자에 머물렀다.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한국의 민중들이 기득권자들에 의해 파편화되고, 차별에 침묵하면서 가슴에 화를 품고 사는 사회, 기득권자의 폭력에 맞서기 보다는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오랜동안 빼앗겼고 버렸던 자유의 깃발로 다시 맞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중들 각 개인들이 자유로운 주체가 되어야 한다. 기득권의 정치 권력이나 언론에 휘둘리지 말고 민중 각자가 슬기로워야 한다. 깨우쳐야 한다. 자유로워야 한다.
–
사람이 싫다 (09-06-2019)
살다보면 때로는 사람이 싫어질 때가 있다. 사람이 무서워질 때가 있다. 미워지는 사람이 군중이 되고 무리가 되어 큰 힘으로 억누를 때면 숨이 막힐 것만 같다. 한국의 법무부 장관 후보인 조국 교수에 대한 이야기다. 칼럼을 쓰는 오늘이 9월2일, 국회 인사 청문회는 무산되고, 조국 스스로 기자 청문회를 가졌다. 문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든 안하든, 또다시 정국은 엄청난 소용돌이를 일으킬 것이다. 나는 그것을 논하고자 함이 아니다. 일국의 장관을 임명하는데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거의 3주일동안 매일같이 모든 언론의 톱기사로 장식되고, <~카더라>, <~인 것 같다> 라는 추측성, 혐오성 가짜뉴스가 온나라를 지배한다.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국회 청문회를 열어서 혐의 사실을 철저히 추궁하면 되고, 후보자의 반론 기회를 주어 충분한 해명을 들은 다음에 임명 거부를 하거나 거리 투쟁을 하면 될 일이다. 국법을 어겼으면 형사 처벌하면 되고, 사실에 어긋나면 추가 국문을 하면 된다.
국회 청문회는 열지도 않고, 법을 어긴 펙트는 하나도 없는데 오로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후보자와 온 가족을 범죄 집단으로 결론 지어 놓고 철저하게 난도질을 한다. <거짓 위선자>, <귀족진보>, <강남좌파>.., <아니면 말고> 식의 광신 집단의 한국인을 정녕 <이성적 집단>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장관 청문회는 장관 개인의 자질과 인격, 소신, 적법여부를 따지면 된다. 그런데 내가 가슴 아파하는 것은 28살 조국 후보자의 딸이다. 가짜 뉴스로 온 언론과 국민이 딸아이의 인생 전체를 망가뜨렸다. 그 상처는 평생동안 치유되지 않는다걸 알고나 하는걸까?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인정할 만한것들을 토대로 추론할 때 나의 주장을 펼칠 수 있다. 그런 사실의 인가 없이 무조건 상대방을 꺼꾸려뜨려야 한다는 욕망, 그것이 한국 언론의 잔상이다. 지난 3주간 조국 관련기사가 네이버 포털에서만 수십만건이 쏟아졌다고 한다. 후보 자질이나 전문성, 정책 관련 기사가 아닌, 후보자 가족 의혹이나 도덕성 검증이 절대 압도적이었다.
한국의 기자들은 왜 이리 저질일까? 대부분의 원인은 경쟁적 문화, 상명하복의 구조, 질문하지 않는 습성, 부족한 시간, 넓은 지면, 엄청난 방송 뉴스 시간, 고질적 시스템,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주입식 교육 등에 있다. 그러나 이런 문화적 구조적 요인들 중 단하나를 뽑으라면 <장사>다. 논란이 돼야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의 본질은 공론이라는 공공적 행위가 아니다. 자사의 클릭수, 시청률, 자사 이익이다. 민중을 호도하여 무조건 더 많이 팔아야 하는 것이다.
너나없이 한국의 기레기 언론들은 어떤 방식으로 수십만건의 기사들을 3주 동안 쏟아낼까? 첫번째는 한 언론사가 의혹을 던지면 다른 언론사는 그 의혹을 더 키우게 되는데, 두가지 부담이 생긴다. 하나는 사실 검증에 대한 책임이고, 의혹 해소에 대한 답이 나왔을 때 반박기사를 쓰게 되면 정치적 낙인이 찍힐 부담인 것이다. 그 낙인을 회피하는 방법이 새로운 의혹을 만들거나 ,그 의혹을 더 크게 만듬으로서 책임도 회피하고 언론의 독립성이라는 명분도 생긴다. 그러니 한국 언론들은 사실 검증은 하지 않고, 스스로 답도 하지 않으며, 기존 의혹에 <단독>이라는 타이틀로 새로운 의혹만 자꾸 쏟아내는 것이다.
조국 교수에 대한 <도덕성 검증>이라는 미명아래, 가족들, 자식들, 아내에 대한 신상털기는 책임있는 언론으로서 결코 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 시대와 사회적 제도의 문제점과 한계성으로 발생한 사건들을 <국민정서법>이라는 현시대의 잣대로 죄인몰이를 한다면, 온전한 정치 지도자가 과연 몇명이나 될까? 딸 본인으로서는 그 시대 입시교육 제도 하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었다면, 부모가 어떠한 특혜나 불법, 강압이 없었다면, 고려대학교와 의학전문대에 합격하고, 그 시대 제도의 재량으로 장학금을 주고, 논문의 제1 저자가 된 것이 딸아이와 장관 후보자 검증과 무슨 상관 관계가 있는걸까?
진보와 개혁 세력은 부자면 안되고 가난해야 하며, 금수저는 안되고 흙수저 출신이어야 하며, 강남에 살면 안되고, 형제 가족들도 모두 청렴결백해야 한다면 그런 흑백논리가 세상 어디에 있는가? 대한민국을 부정부패한 나라, 정의가 사라진 나라, 극심한 양극화 나라로 만든 놈들은 다름아닌 100년 가까이 민중을 등쳐먹은 친일 기득권자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누가 누구를 정죄하는가?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을 온 국민이 합심해서 도와줘도 어려운 세계 경쟁에서 이겨내기 힘든 환경이다. 문재인 정권이 탄생하자마자 2년이 지난 지금까지, 경제 폭망, 무능한 정권, 독재 정권, 빨갱이 주사파 정권, 친북 반미 반일 정권 운운하며, 사사건건 반대하고 허구헌날 길거리 시위를 한다. 태극기 부대와 극우 기독교 교회들을 앞장세워 문재인 퇴진운동을 하고 있다. 기득권 보수 국회의원들은 이미 충분한 돈과 권력을 소유한 자들이다. 그들은 보수의 탈을 쓴 민중의 침탈자이자 권력에 아첨하는 악덕 자본가일 뿐이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을 믿는다. 이런 날은 사람이 싫어진다..
–
이완용의 후손들 (08-30-2019)
아마도 조선 근대사에 가장 역적이자 <친일 매국노>를 꼽으라고 하면 너나 주저없이 이완용을 꼽을 것이다. 과연 이완용 혼자서만 나라를 팔아 먹었을까? 지금은 나라 팔아먹는 놈들이 없을까? 일제 식민지 시절 부터 100년동안의 한국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제2의, 제3의 이완용 후손들은 차고 넘친다. 식민사관, 식민지 근대화론, 박정희 유신독재 장기 집권론, 반일 종족주의 일파들의 뉴라이트 운동 등, 한국 현대사의 <기득권자>들의 일관된 주장은 <힘의 논리>다. <국익>을 위해서는 강대국의 종속국이 되어도 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친명, 친청, 친일, 해방후 친일, 친미 정책이 그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핑계로 자신과 집안의 부와 권력, 사리사욕만 채운 자들이 대한민국 기득권자들이다.
이완용은 엄밀히 말해 친일파가 아니다. 그는 팔색조다. 본래 그는 친미파였다. 친미파 이전에는 노론 수구파이거나 개화파 일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1896년 고종의 <아관파천>의 핵심 주동자가 되어서 친러 내각의 외무대신이 된다. 친미파에서 친러파로 변한 것이다.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마자, 이완용은 친러파에서 친일파로 변신한다. 1910년 8월22일 한일 강제병합조약이후, 그해 10월7일 일제는 76명의 조선 관료들에게 일본귀족의 작위와 은사금을 하사한다. 대한제국의 조선을 팔아먹은 이들 수작자들 중에 왕족을 제외한 당파를 분석해 보면, 소속당파 64명 중에 노론이 56명, 소론이 6명, 북인이 2명이다. 대한제국이 멸망할 수 밖에 없었던 지배구조는 <노론>파로 기인한다.
노론은 1623년 인조반정을 주도한 서인 송시열에 뿌리를 둔다. 조선 시대 500년중 300년을 노론이 집권한다. 노론의 사상적 배경은 극단적인 <친명 사대주의>와 <성리학 유일사상>이다. 노론은 대외적으로 모든 개방을 거부하고, 신분제를 강화했으며 적서차별과 남녀차별을 극대화했다. 서양문물을 억압했으며, 모든 사회변화를 거부했다. 노론이 성리학을 앞세워 친명 사대주의를 주창한 이유는 국왕과 권력투쟁을 하기 위함이다. 유일한 임금은 명나라 황제 뿐이며, 조선국왕은 명나라 황제의 신하에 불과하고, 자신들과 같은 사대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하한 것이다. 노론은 조선 왕권을 무력화 시킨 반면, 개인과 집안, 당파의 이익에만 앞장섰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도 노론은 <조선사 편수회>에 들어가 친명 사대주의를 친일 사대주의로 변환시킨 것이 <일제 식민사관>이다. 그들은 일제의 식민통치를 민족사적 비극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일제 식민지로 인해 조선은 근대화 되었고, 조선 민중은 무지에서 벗어나 잘 살게 되었고, 산업은 발달하였다고 주장한다. 해방후 일제 식민사관은 <한국사 교과서>에 그대로 실리고, 지금까지 국민의 역사관을 호도한다.
해방 후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현대사>는 역사학자들에게 <금기영역>이었다. 왜 그랬을까? <단군조선>을 부인하고 <조선 독립 운동사>를 말살하기 위함이다. 한국인들은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알지 못한다. 왜 아베 극우 정권이 이토록 안하무인격으로 대한민국을 우습게 아는지, 믿지 못할 국가라 하는지, 국가간의 약속을 지켜라 하는지 아는가? 일본은 한국과의 명백한 이면계약의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의 교활한 이중성과 박정희의 친일 행적은 추후 거론한다. 박정희는 뼈속까지 친일파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항일 독립운동사>를, 특히 <항일 무장투쟁사>의 증인들과 역사적 기초자료들을 말살시킨다. 기껏해야 독립무장투쟁 보다 식민지 시대의 <애국 계몽운동>이나 <실력양성운동> 위주로 서술한다. 1907년 비밀결사 조직 <신민회>의 방침에 따라, 우당 이회영 일가와 석주 이상룡 일가가 만주에 세운 <신흥 무관학교>, 그 출신들의 청산리, 봉오동 전투, 1920년 경신참변, 러시아 <자유시참변>, 임시정부의 무력항쟁과 <광복군 사령부>, 1925년 정의부의 <의용군>과 수많은 국내 진공작전 등등 .., 책으로도 수십권이 족히 될만한 역사적 항일 독립 투쟁사는 아직까지도 한국 현대사에 묻혀 있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힘의 논리>에 강압되어 살아왔다. 1970년대 미국 <신자유주의> 물결에 편승되어 <자유 경쟁>, <세계화> 경제논리로 강대국은 약소국을 침탈했다. “힘은 돈과 권력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말고 잘 살아야 한다. 출세해야 한다. 국가보다 내가 우선이다. 잘 살기 위해서는 기득권의 강한 자와 손을 잡고 그들에게 종속되어야 한다. 이완용이면 어때? 노론이 친일파가 되고, 친일이 친미파가 된다. 친미파가 되기 위해서는 기독교인이 되어 교회로 몸을 숨긴다. 서민이 출세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학벌 지상주의>다. 좋은 학벌만이 기득권의 사다리로 옮겨 탈 수가 있다. 좋은 학벌은 <집단 이기주의>로 발전한다. <기득권의 집단>에서 도태되면 안된다. <성장과 분배>? 성장은 있고 분배는 없다. <낙수효과> 뿐이다. 민중의 욕망은 끝이 없다. 그들은 개 돼지에 지나지 않는다. 언론과 매스콤이 권력과 결탁하면 우매한 민중은 속기 마련이다. 어리석은 조선 민중에게는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먹을 것만 던져주면 된다. 조선의 기득권력은 영원하다..” 이런게 그들의 논리요 주장이다. 조선의 <촛불 혁명> 민중들아, 깨어나야 한다. 뭉쳐야 한다. 공부해야 한다. 역사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 어렵게 찾은 천금 같은 기회를 잃으면 언제 다시 찾을꺼나?
–
한국인의 빛과 그림자 (08-23-2019)
우리시대의 한국인들은 엄청난 <혼란의 시대>를 살고 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매국노와 애국자? 민주, 자유, 민족, 정의? 잘 알지도 못하고 막연하다. 조선 민중은 서로간에 이분법적 논조에 빠져서 싸우고 또 싸운다. 친미, 친일, 종북, 빨갱이로 나뉘어 언제까지 <진실>을 가리운채, 이념논쟁으로 싸워야 하나? 과연 누가 <빛>이고 누가 <그림자>인가? <자중지란 (自中之亂)>,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두렵고 무섭다. 성경의 말씀처럼, 그림자가 빛을 이기고자 하나 결코 그림자는 빛을 이길수 없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새벽은 빨리 다가온다. <식민사관>과 태극기 부대, 아직도 종살이 시절을 그리워 한다. 조선의 역사는 해방 이후 빛과 그림자를 구별하지도, 심판하지도 않았다. 한국의 기득권 세력과 <적패청산>, 친일 매국 잔재 세력들을 청산하지 않았기에 <그림자>가 <빛>을 지배하여 온 것이다. 그래서 <부끄러움이 없는 사회>, <거짓된 사회>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그림자는 더욱 커지며, 자신들의 빛도 결국 기운을 잃는다” 74주년 광복절날 손석희 앵커가 거론했던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그림자> 작품을 소개한다.
“주인공인 젊은 학자는 북쪽의 고향을 떠나 낯선 남쪽 외국 땅으로 여행을 나서게 된다. 그러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그는 자신의 <그림자>와 완전히 떨어지게 된다. 그는 물론 혼란에 빠지고 화도 났지만, 결국 새로운 그림자를 다시 만들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와 완전히 떨어져 있던 그림자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다시 돌아온 그림자는 주인을 떠나 독립하면서 지혜와 힘을 얻게 되었고,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그 이전의 육체적 주인보다 훨씬 뛰어난 상태가 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이전의 주인과 그림자의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림자는 주인이 흠모했던 옆나라의 공주와 결혼하여 왕이 된다. 결국 그림자는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이전의 주인을 살해하고 만다. 그림자는 살아남아 큰 성공을 이루게 되고, 이전의 주인인 주인공 학자는 결국 슬프게 소멸되고 만다. 그리고 그림자는 외친다. <내가 돌아왔다!> 라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2016년 안데르센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그림자> 작품을 수상소감에서 언급한다. “안데르센이 살았던 19세기는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도 우리는 필요하다면 그림자와 얼굴을 맞대고 직면해야 합니다. 그렇게 그림자도 함께 작동해야 합니다. 그것은 옳은 방향으로서의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때때로 위험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림자를 피하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진정으로 성장하고 성숙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최악의 경우 <그림자>의 주인공 처럼 자신의 그림자에 의해 파괴되고 소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림자를 직면하고 대할줄 알아야 하는 것은 비단 개인 뿐만 아니라, 사회도 국가도 마찬가지 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림자가 존재하듯이, 사회와 국가에도 그들만의 어두운, 피하고 싶은 <그림자>가 존재 합니다. 밝고 빛나는 부분이 있다면, 그 이면에는 반드시 어두운 부분도 있습니다. ~~
우리가 견고하게 입체적인 상태가 되려면 반드시 그림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림자를 피하고 멀리 하려 한다면, 당신은 평면적인 환상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림자를 수반하지 않은 빛은 진정한 빛이 아닙니다. 아무리 역사를 다시 써서 우리에 맞게 수정하려 해도 종국에는 우리 스스로 상처 입고 가슴 아파하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우리는 참을성 있게 그림자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 안에 있는 어둠을 관찰해야 합니다. 때로는 어두운 터널 속에서 자신의 어두운 면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당신의 그림자는 당신이 깨닫지 못한 사이에 더 강해져서, 어느날 밤 당신에게 돌아와 노크하며 <내가 돌아왔다> 라고 속삭일 것입니다”
해방후 혹은 한국전쟁 이후 세대인 우리는 조작되고 왜곡된 역사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다. 왜 조선 멸망부터 군부 독재 시절까지, 그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모른다. 일제 식민 강점기 35년동안 누가 독립운동을 했으며, 그 후손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 알지 못한다. 누가 친일 압잡이였으며, 밀정이었고, 부귀영화를 누렸는지 알지 못한다. 해방후 왜 조선반도가 두동강이가 났으며, 누가 왜 <한국전쟁>을 일으켰는지 알지 못한다. 이승만 독재시대, 박정희 군사독재, 전두환 군사독재, 노태우 군부 시대, 자그마치 40여년의 세월이다. 그 그림자 세력을 감싸고 역사를 왜곡하려한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10년이다. 일제 강점기 35년, 군부 독재정권 40년, 그 추종정권 10년, 도합 <85년의 그림자 세력>의 세월이다. 우리는 그 85년동안 태어나고 교육받고 성장하며 살아온 세대다. 누가 <빛>이고 누가 <그림자>인지 알지도 못했고, 알 수도 없는 암흑기의 기니긴 터널 속에서 살아왔다. 이제는 조선민중의 <촛불혁명>으로 긴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을 발견한다. 이제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림자>가 주인 행세를 하는 않는, <빛>이 주인인 세상을 한국인 후세들에게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
우리 엄마 (08-16,2019)
엄마! 아무리 목 놓아 불러도 대답이 없으시는 우리 엄마! 나는 어찌 살아야 하나? <엄마~> 어디서라도 부르면 <아들아~> 응답해 주시던 우리 엄마! 이제는 엄마의 음성을 더이상 들을 수가 없다. 2019년 7월29일 우리 엄마는 하늘나라의 별이 되셨다. 만90세 이시다. 한국의 요양병원에서 병환 중이셨는데 위독하시다는 동생들 전갈을 받고 급히 나갔지만, 몇번의 눈맞춤과 어머니의 이마에 굿나잇 키스를 해드린 다음날,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마치 큰아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셨다는듯이.. 황망하고도 송구스럽다. 나는 크나큰 죄인일 뿐이다.
수만 사람마다 수만 종류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사람마다 각자의 어머니는 유일한 한분 뿐이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엄마의 몸에서 태어났다. 신의 아들 예수도 엄마의 몸에서 태어났다. 엄마는 모든 생명체의 본향이자, 마음의 안식처다. 엄마는 누구도 부인할 수도 없는 한없는 사랑이시다. 아무리 잔악한 사형수라도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을 흘린다. 아버지는 큰산과 같은 정신적 지주였다면, 엄마는 한없이 평안한 마음의 지주이시다. 나도 이제 70을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엄마만 생각하면 마음의 평안과 위로가 된다. 자식들 각자의 어머니 사랑이 다르듯이 나 또한 어머니의 사랑이 남다르다. 사업 실패로 먹고 살기 위해, 아니 자식들 교육만이라도 시켜야 한다는 핑계로 이민온 20년여년이 엄마와 떨어져 산 세월이다. 한국에 나간다 나간다 하면서도 산다는게 뭔지 몇번밖에 나가지 못했다. 유일한 위안인 영상통화 마져도 병상에 계시는 동안은 마음껏 하지 못했다. 엄마가 나와 통화만 하시고 나면 병세가 악화된다고 주치의가 금지 시켰기 때문이다. 효자는 봉양을 잘 하고 못하고 간에, 부모와 함께 사는 자식이 효자다. 나는 엄마와 내가 함께 살아온 일생을 하나씩 반추하며 남은 세월동안 엄마를 그리워 할 것이다.
우리 엄마는 1921년생이며 2남2녀의 막내다. 함경남도 흥남 마전리라는 농촌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농사와 과수원을 하셨다고 한다. 당시 딸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집안일을 돌보는 게 상례였는데,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엄마 고집으로 20리 눈길을 헤치며 (엄마 표현) 흥남 여중,고를 다니셨다. 그리고는 함흥약학 전문대학에 진학한다. 지방 유학생인 셈이다. 그런데 함흥여전 1학년 때 한국전쟁 (6.25전쟁)이 터진 것이다. 북진하던 남한군과 미군이 수십만명 중공군에 밀려 후퇴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방후 조선민중들이 민주주의, 공산주의를 알았을까? 하물며 조선민중이 한국전쟁을 일으켰을까? 해방이 되어 조선민중이 함께 잘 살게 되는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동족간에 전쟁이라니? 그것도 미군에다가 이번에는 수십만명의 중공군이 쳐들어 온다니 어찌할꺼나? 부모 입장에서는 갓 20살이던 귀하디 귀한 막내 딸을 그냥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홍콩과 무역하던 형부와 언니가 부산에 살고 있으니 잠시 혼자라도 부산에 내려가 있으라는게 외할아버지 마지막 당부였다.
그것이 그 유명한 <흥남부두 1.4후퇴 사건>이다. 흥남부두에 수많은 피난민이 모여들었다. LST 미군함은 3~4일 지나도 출항하지 않았다. 그 소식을 들은 외할머니가 배고픔과 추위에 떨고 있을 막내딸이 걱정이 되어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준비하여 흥남부두로 나갔다. 딸을 만나자마자 군함이 출항한다는 것이다. 막상 아비귀환같은 부두에 와보니 어린 막내딸을 혼자 피난 보낼수가 없었다. 남편과 아들들, 친척들에게 작별 인사도없이 외할머니는 엄마와 함께 배에 타고 피난길에 오르신거다. 그렇게 생이별을 한후 평생토록 만나보지도 소식조차도 모른채 여생을 마감하신 것이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그 시대를 함께 살아온 조선 민중의 비극이다. 거제도 피난촌에서 교사생활을 시작으로 부산에서 피난민으로 살았다.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같은 피난민이면서도 동향(함경남도 함흥) 출신인 무일푼의 아버지를 만나 3남2녀를 훌륭히 키우신 부모님이시다.
우리 엄마는 참으로 고우셨다. 미인이셨다. 친구들도 이웃들도 모두 엄마를 존경하고 좋아했다. 선하고도 좋으신 분이었다. 나는 우리 엄마가 그냥 좋았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의 가르침에 어긋나거나 엄마가 싫어하시는 일은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남은 나의 여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엄마와 단둘이서 여행을 여러차례 다녔다. 홀홀단신으로 피난민이 되신 아버지는 당신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엄격하실 수 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나는 엄마의 연인 같은 아들이었다. 무엇이든 엄마에게는 잘 해 드리고 싶었다. 나는 엄마의 미소짓는 얼굴이 너무 좋았다. 엄마가 좋아하시면 나는 그것만으로 좋았다. 결혼 후에도 부모님과 함께 산 세월이 많았다. 아버지가 30년 전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혼자 사시길 고집하셨다. 15년전에 엄마를 미국에 초대했었는데, 흑인동네에서 장사하며 고생하는 큰아들 모습을 보시고는 다시 미국에 오시지 않았다. 그리고는 다른 자식들과도 함께 살지 않으시고 혼자 사신 것이다. 평생을 엄격하시고 단아하셨다. 내 책상에 모셔놓은 영정사진 처럼, 엄마는 언제나 영원히 내 마음 속에 살아계신다. 엄마! 외로워 마세요. 이제부터는 제가 엄마 곁에 영원히 있을거예요. 저도 곧 엄마 곁으로 갈거예요. 사랑해요, 그리고 미안해요. 엄마..
–
아베의 군국주의 부활 (07-26-2019)
아베 고노 야츠! (아베 이놈!). 일본 아베 내각의 한국 문재인 정부에 대한 무례함이 도를 넘친다. 아니 치욕적이고 분노를 느끼게 만든다.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 건방지고 안하무인 (眼下無人)이다. 오만방자 (傲慢放恣)하다. 이번 계기로 아베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아야 한다. 금번 한국에 대한 단순한 반도체 핵심부품 수출 금지조치가 그들의 목적이 아니다. 향후 일본의 수출금지 품목은 1천개가 넘을 수도 있다. 일본은 한국을 그들 <백색국가> 제외 정책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은 한국에 대해 <경제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아베 이놈은 <왜 이럴까?>
위안부 보상문제? 강제징용 배상금 문제? 아베 정부는 한반도 식민지 통치, 태평양 전쟁동안 강제 동원된 조선 위안부(성노예)와 강제 징용, 대량 학살, 대량 인체실험 등, 조선에 대한 그 어떤 피해에도 사죄는 커녕 사과조차 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아베 이놈의 <한일 국가간 약속>이란 박정희 시대 때 <한일 청구권 협정>, 박근혜 <위안부 합의>로 보상이든, 배상이든, 모두 <퉁>치기로 합의했으니, 구질구질 굴지마라는 것이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돈 몇푼에 국가 희생자들을 팔아 먹은 아버지와 딸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아베 이놈은 <왜 이럴까?>
물론 일본이 환태평양 시대의 주도국가로 패권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 최대 군사 대국인 미국의 절대적 비호가 필요하다. 그러기에 아베는 트럼프에게 내시처럼 굴욕을 당하면서도 참는다. 중국이 일대일로 정책과 세계 제일의 경제 대국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미국은 일본 없이는 중국의 환태평양 지역 남하정책을 방어할 수 없다. 조선 한반도는 강대국들의 전쟁터이고, 일본은 미국의 보급기지다. <한국전쟁> 때에도 일본이 보급기지 역할을 할 수 있었기에 미국은 북한과 전쟁 할 수 있었다. <월남전쟁> 때에는 한국과 일본이 역시 미국의 병참기지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한국전쟁 때 일본이 경제적 부흥을 이루었고, 월남전쟁 때 한국이 부흥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때같은 한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을 명분없는 남의 나라 전쟁에서 죽이면서까지 말이다. 한국과 미국은 <애증의 관계>이다. 한국이 일방적으로 매달리는 관계다. 어느나라 보수가 길거리 데모를 하면서 미국 성조기를 드는 나라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는가? 아무리 한국이 미국 바지가랭이를 잡고 늘어져도 미국은 철저한 <국익 우선> 국가이다. 미국은 한국을 버릴 수는 있어도 일본은 결단코 버릴 수 없다.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일본 아베는 환태평양 정책에서 제외되고 무시당했다. 한국이 너무 커버린 것이다. 아베 내각의 표현대로 <땡깡 부리는 어린애> 정도로 여겼던 한국이다. 남북미 정상회담에서도 일본은 무시되었다. 중국, 러시아 보다 못한 섬나라 일본이 된 것이다. 한국의 수출액도 국민소득도 일본의 80%까지 바싹 다가온 것이다. 반도체, 전자, 통신, 인공지능, 자동차, 조선 등 첨단분야에서 일본을 밟고 앞서가는 한국이다. 거기다 북한과 남한이 손을 잡고 평화통일로 나아간다면 남북한은 경제력 뿐만 아니라 군사력에서도 일본을 위협하는 막강한 국가로 부활하는 것이다. 반면에 일본은 패전이후 <평화헌법>으로 <국가 방어 군사력>만 유지할 수 있을 뿐, 전쟁 가능국가가 될 수 없게 명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은 세계대전을 일으킨 막강한 3대 군사대국이었다. 지금도 항공모함은 물론, 언제나 핵무기를 개발하고 대륙간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모든 기술력을 갖춘 나라가 일본이다.
남북한 민중들이 꿈에서라도 절대 잊어서는 안될 국가관이 있다. 일본의 <정한론 (征韓論)>이다. 섬나라 일본이 대륙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조선 한반도다. 일본이 지구에 존재하는 한, 일본의 한반도 침략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국가정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국주의>가 부활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평화헌법>을 <개헌>해야 하는 것이다. 아베는 4차 연임을 노리고 있다. 일본의 국회 주요정책은 <일본회의>에서 결정되는데, 80% 이상이 자민당 우익 보수 출신들이다. 아베 이놈은 <왜 이럴까?>
아베는 또 다른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득권 세력인 <토착왜구>들이 그들이다. 아베 우익은 한국 우익들을 우습게 안다. <토착왜구>는 다음 칼럼에서 다루자. 아베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조선 민중>이다. 일본 민중들은 정권을 바꾸거나 역사를 바꾼 전례가 없다. 하지만 <조선의 민중>은 다르다. 국가의 재난이나 위기 때마다 국가를 구한 것은 조선의 왕도 아니요, 한국의 독재 정권이나 무능한 대통령도 아닌 조선의 민중들이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피한방울 안흘리고 정권을 바꾼 유일한 혁명이 <촛불 혁명>이다. 그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가 <문재인 정부>다. 세계인들이 모두 존경하지만 유독 한국 <토착왜구>들과 아베 정권만 <문재인 정권>을 물어 뜯는다. 무능, 외톨이, 독재, 빨갱이, 공산 좌파 등등.. 한심하고도 극악 무지하다. 아베 이놈에게는 <조선 민중>의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조선의 민중들이여, 아베의 <경제전쟁>에 비굴해져서는 안된다. 또 돈 몇푼에 조선 민중의 영혼을 팔아서는 안된다. 모두 힘을 모아서 일본 아베 이놈들을 철저히 부셔버려야 한다. 조선 민중이 뭉쳐야만 산다!!
–
추억의 명화 (07-19-2019)
사람에게는 누구나 잊혀진 추억이거나 잊지못할 추억들이 있다. 잊혀진줄 알았는데.. 잊고 살았는데.. 잊으려 했는데.. 살다보면 가끔은 그 추억들이 되살아나서 지금의 나를 꽤나 당혹스럽게도 한다. 잊고 살았던 그 추억 속의 사람들과 사연들, 계절과 거리, 장소와 장면들, 함께 한 음악과 영화들.. 등이 그리워진다. 그 중에서도 그 시대의 영화들을 잊을 수가 없다. 1960년대 중고등학부 시절 몰래 본 영화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영화는 1970년대 대학교 다니면서 부터 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부산 시골(?) 촌놈인데다가 가난한 하숙생 (3,4학년 때는 자취생)이었기에 보고싶은 영화를 마음껏 볼 여유가 없었다. 특히 미팅이나 데이트라도 하는 날이면 영화비, 식사비, 커피값 등으로 한달 생계비가 휘청거릴 지경이었다. 시골 촌놈들은 없는 주제(?)에 미팅을 해도 꼭 명동에서 했다. 중앙극장, 단성사, 명보극장 등등 이제는 기억에도 가물가물, 생각만 해도 새롭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그 시대 나를 대리만족 시키는 것이 MBC TV의 <주말 명화>와 KBS <토요명화> 였다. 토요일 밤이 되면 <아랑페즈 협주곡 2악장>이나 <엑소더스> 영화 테마곡이 나오면 가슴이 설레였다. 그 당시에는 텔레비젼이 대부분 안방에 있었는데 하숙집과 자취집 주인 아주머니가 영화를 볼 수 있게 허락하신걸 보면 너그러운 분들이었음이 분명하다. 나는 영화를 볼 때 내가 그 시대 그 상황에 살았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전제하고 몰입하여 감상한다. 그러기에 지금도 비록 TV로 영화를 보더라도 영화 감상에 대한 예의(?)를 중요시 한다. 목욕재계 (沐浴齋戒)하고, 마실것 먹을 것 미리 준비하고, 조명 낮추고, 가능한 서라운드 음향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주변이 산만하던가, 함께 영화보는 사람이 준비가 안되어있으면 같이 보지 않는다. 내 스스로도 생각이 복잡하면 영화를 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해도 참 까다로운 인간이다.
미국에 이민와서는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본 몇편의 영화가 전부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에서 온 큰딸이 아빠가 보고 싶은 <추억의 명화>를, 그것도 한글자막이 나오는 영화로 다운로드 해 드릴테니 영화 목록을 적어달라고 한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가 한두편도 아니고 괜한 부담이 될 것 같아 사양했는데 계속 만들어주겠다고 하니 못이기는 척 다음과 같이 목록을 제출하였다. 지금까지 영화 열여섯편을 만들어 주어서 아내와 감상중이다. 아마도 이 <추억의 명화>들은 내가 죽는 날까지 나를 곁에서 위로하는 나의 친구가 될 것 같다. 여러분도 함께 명화 리스트를 만들어 추억의 저편을 산책해 보세요.
<1~10편> : 닥터 지바고 (1965년), 로마의 휴일 (1953),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939), 애수 (1940), 카사블랑카 (1942), 벤허 (1959), 사운드 오브 뮤직 (1965), 티파니에서 아침을 (1961), 로미오와 줄리엣 (1968), 왕과 나 (1956),
<11~20편> : 시네마 천국(1989), 러브스토리 (1970), 죽은 시인의 사회 (1989), 빠삐용 (1973), 사브리나 (1954), 자이언트 (1956), 내일을 향해 쏴라 (1969), 쇼생크 탈출 (1994), 졸업 (1967), 사랑은 비를 타고 (1952),
<21~30편> : 미션 (1986), 에덴의 동쪽 (1955), 포레스트 검프 (1994), 마지막 황제 (1987), 대부 (1972),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43), 원스 어폰어 타임 (1984), 스팅 (1973), 아마데우스 (1984), 아웃 오브 아프리카 (1985),
<31~40편> : 마이 페어 레이디 (1964), 태양은 가득히 (1959), 십계 (1956), 길 (1954), 흐르는 강물처럼 (1992), 사랑과 영혼 (1990), 레인맨 (1988), 쉰들러 리스트 (1993), 이유없는 반항 (1955),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1961),
<41~50편> : 백튜더 퓨쳐 (1985), 인디아나 존스 (1989), 라스트 콘서트(1976), 브레이브 하트 (1995), 여인의 향기 (1992), 콰이강의 다리 (1957), 쉘부르의 우산 (1964), 바람과 라이온, 사관과 신사, 레미제라블,
<51~60편> : 폭풍의 언덕, 개인교수, 몬테크리스토 백작, 젊은이의 양지, 용서받지 못한 자, 왕과 나, 전쟁과 평화, 가스등, 율리시즈, 사막과 라이온,
<61~70편> : 늑대와 춤을, 플레툰, 개선문, 주홍글씨, 인도차이나, 분노의 포도, 클레오파트라, 가을의 전설, 노틀담의 곱추, 한니발,
<71~80편> : 백경, 서부전선 이상없다, 마음의 행로, 징키스칸, 엘시드, 부러진 창, 돌아오지 않는 강, 아라비안 나이트, 알렉산더, 자이언트,
<81~95편> : 나는 살고 싶다, 왕중왕, 나바론 요새, 초원의 빛, 노인과 바다, 영광의 탈출, 해바라기, 지상 최대의 작전,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 피아니스트, 대탈주, 슬픔은 그대 가슴에, 여로, 작은 거인..
어쩌면 큰딸은 아빠의 대책없는 영화 리스트에 질려서 한국으로 되돌아 가는 것은 아닐까? 큰딸아, 부담 갖지 말아라.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지금까지도 그리움으로 추억으로 참고 살아왔는데 뭘.. 나는 영화를 반복해서 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닥터 지바고>는 열번은 족히 보았을 것 같다. 나는 행복한 사람?
–
산다는 것만으로도 (07-12-2019)
독립기념일 연휴가 되어 가족들이 다 모였다. 함께 음식을 만들고 먹고 마시고 수다를 떤다. 둘째 딸은 산달이 다음달이라 몸이 많이 버거워한다. 그래도 불꽃 축제며, 바다며, 공원이며, 음식점이며, 잘도 모여 다닌다. 이제는 결정권이 나에게 없다. 자식들이 가자면 가고, 먹자면 먹는다. 가는 곳마다 곳곳이 사람과 사람으로 붐빈다. 그 많은 인파들 속에 함께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당신은 거기서 무얼 하는가? 나의 마음은 그저 고요하고도 평안하다. 저 군중들의 즐거움과 재잘거림도 나의 귀에는 잘 들리지 않는다. 나는 누구인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잘 모르겠다. 마냥 나는 지금 여기에서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무성영화의 한 장면들 처럼 그리운 사람들이 그리운 순간들로 머물다 지나간다.
감사할 일이다.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 살고 있다는 것, 산다는 것, 사는 것.. 그 모든게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뒤돌아 보지 않아도 아마 나는 참으로 치열하게 살았을 것이다. <누구 누구로써 산다는 것>이 언제나 엄중했다. 누구의 아들로써, 누구의 남편으로써, 누구의 아버지로써, 누구의 형이나 오빠로써, 어느 집안의 장손으로써, 가장으로써 나는 흐트러짐 없이 살려고 했을 것이다. 또한 어느 학교 학생으로써, 군인으로써, 직장인으로써, 회사 사장으로써, 부끄럽지 않는, 조직에 피해가 가지 않는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 부단히 애썼을 것이다. <관계>에서 오는 중압감이다. 아니 솔직히 언제나 최고가 되기 위해, 일등을 하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잘 살기 위해, 위만 바라보고 살았던 세월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실패하면 스스로에게 용서가 안되었고 더욱 자책하였을 것이다. 자식들에 대한 기대도 항상 최고가 되도록 독려했을 것이다. 그러니 내 주변사람들은 나로 인해 얼마나 힘든 세월이었을까? 하지만 사업에 실패하여 전 재산을 잃어버리고, 이민을 오고 나서부터는 모든게 바뀌었다. 병원 갈 돈이 없으니 아프지만 말고, 자식들이 공부만 마칠 수 있고, 먹고 살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하며 산 세월이 어연 20년이 다 되어 간다.
이제는 나에게 소망이 있다면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하다. <서로 아프지만 말고>, <서로 아프게만 하지 말고> 그렇게 살다 가면 좋겠다. 한때는 <어떻게 살면 행복한가?>라는 주제넘는 주제로 고민하며 산 세월이었다. 하지만 부자로 살았을 때나, 가난하게 살았을 때나, 삶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열심히 살았고 성실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살아오는 동안 유달스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졌지만, 나의 삶 속엔 항상 내가 사랑하는 몇 안되는 사람들이 전부였다. 나의 사랑이라는 그릇은 조그만 간장 종지 정도인가 보다. 그 몇 안되는 사람들 조차도 벅찰 때가 있었지만, 언제나 그들을 사랑하려 했고 행복했었다. 언젠가는 나 홀로 되는 그 날까지 나는 그들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산다는 것> 그 자체가 철학이고 종교다. <산다는 것만으로> 사랑이며 감사다. <살다보면 살아지는 것>이 삶의 본질이자 아름다움이다. 삶은 현재이며 살아있는 <생명체>이고 움직임이다. 어제의 생명체가 오늘의 생명체가 아니듯, 오늘의 생명체가 정지되면 내일을 보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위대한 것이다. 누구도 개개인을 비난하거나 비하할 수 없다. 가난한 자, 아픈 자, 못배운 자, 못난 자, 못생긴자 .. 그런 기준들이 삶의 본질을 평가할 수 없다. 행복의 기준은 적어도 물질적인, 외형적인 비교의 대상이 아닌 것이라는건 자명하다.
요즘 나에게 아픔이 있다. 나는 요리하고 먹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우리 부부 둘이서 살 때에는 저녁을 잘 해 먹지 않았다. 저녁에 먹으면 건강에 안좋다는 아내의 근거없는 고집 때문이다. 그런데 손녀와 함께 살면서 <저녁이 있는 삶>이 환생한 것이다. 저녁에 퇴근하면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달라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는가? 당연히 음식은 함께 먹어야 제맛이다. 그런데 사달이 난 것이다. 아내의 매구 (여우귀신)가 나의 배가 나왔다는 것이다. 당장 몸무게를 재고 허리 사이즈를 잰다. 몸무게가 74Kg에서 77Kg로, 허리 사이즈가 34인치에서 35~36인치로 늘어난 것이다. 겨울철이면 표가 나지 않았을텐데, 여름철이 웬수다. 아내는 <유격훈련 조교>로 돌변했다. <원위치로!!>. 나만 저녁 식사 금지, 공원 2바퀴 이상 달리기, 피티 체조 60번, 윗몸 일으키기 20번이 그 형벌이다. 이 뜨거운 한여름에.. 내 나이가 몇인데.. 노인 학대로 경찰에 고발한다고 으름장을 놓아도 막무가내다. 오히려 ‘당신 나이가 어때서?’ ‘당신은 75세까지 일하여야 할 국가적 의무가 있다’ 라며 조깅하는 공원에도 감시하러 따라 나선다. 나는 아직 먹는 치료 약도 없다. 그 흔한 비타민도 먹지 않는다. 오로지 신선한 음식을 내가 스스로 만들어 먹겠다고 하는데도 그 조차도 하지 못하게 한다. 한국에 계신 우리 엄마에게 고자질하면 아내를 혼구녕(?)을 내실텐데.. 울고 싶다. 나는 과연 행복한가? <산다는 것만으로도>?
–
종교와 도덕성 (07-05-2019)
프로이드는 <망상의 미래>에서 종교의 세가지 기능을 이렇게 말한다. 첫째, 인간이 가진 아이 같은 요구를 충족시킨다. 둘째, 자연과 사회가 주는 공포를 인식시키고, 협력시 보상을 약속한다. 세째, 개인적인 죽음에 대해 설명하고 위로한다. 특히 살아가는 동안의 삶의 고통과 불안,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의 두려움과 내세에 대한 보상과 응징으로 종교는 권력화 되었다. 영원한 삶, 영원한 세계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열망이 없다면 종교는 생존할 수 없다.
종교는 생존이 목적이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문화와 권력에 맞추어 변이되어야 한다. 종교는 빈곤이나 인종차별주의, 핵무기 확산이나 전쟁 금지, 세계 환경운동 등에 관심이 없다. 세계사의 수많은 전쟁에서 종교가 전쟁을 중지하거나 조정한 사례는 거의 없다. 종교의 <도덕성 상실>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또한 종교는 미래 과학의 발달을 방해한다. 물리학, 의학, 생물학, 유전학 등 각 분야 연구에도 걸림돌이 된다. 종교는 정치와 분리되어야 한다. 어쩌면 미국의 근본주의 정치가들로 인해 미래의 미국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지난 8백년 동안 겪고 있는 이슬람 문화의 침체기를 주목해야 한다. 한때 이슬람 문명은 과학과 수학의 중심지였다. 정치와 종교 일체인 이슬람교가 이슬람 제국을 세계 문명의 후진국으로 전락시켜 버린 것이다.
교회에 가면 인간이 착해지는가? 하나님을 믿으면 사람이 선해지는가? ‘흔히들 명색이 기독교인이, 믿는자가, 종교인이 저럴 수가 있는가?’ 라고 개탄한다. 인간의 <도덕성>이나 <윤리적 가치>는 종교와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다는 연구들이 많다. 모세의 <십계명>을 몰라서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아니다. 도덕과 윤리, 인간적 도리는 교회가 아니라 가정에서 부모로 부터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인의 범죄는 율법이나 말씀을 몰라서가 아니라, 말씀대로 행하지 않키 때문이다.
예를 들어 종교인과 비종교인 중에서 누가 더 많이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는가? 미국의 연방교도소의 죄수 중에서 무신론자, 불가지론자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비율이 10%지만, 교도소 죄수 비율은 5%이다. 사회적 약자나 가난한 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의사들 비율도 독실한 기독교인이 31%, 무신론자 의사가 35%이다. 이혼률도 복음주의적 종교 세력이 가장 강한 바이블 벨트 지역 (Bible Belt – 미국 남부와 중서부 지역)에서 복음주의자와 근본주의자 이혼률이 가장 높으며, 무신론자들보다 훨씬 더 높다. 성서에 기록된 수많은 도덕성 말씀들을 주일학교에서부터 매주 설교 말씀까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지만, 인간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히려 무신자들 보다도 더 비도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복음주의 종교들은 말씀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지만, <말씀이 나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라는 단순한 개념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신론자는 죄를 지으면 자신이 악의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있으시길래, 신이 주시는 시련 정도로 여긴다. 또한 스스로 참회했으며, 스스로 용서받았다고 자신의 죄를 무마시킨다. 인간의 도덕성과 윤리는 말씀이 아니라, 말씀을 따르는 실천적 삶의 행동이다. <말만 번지르한 놈?>이 되면 안되는데..
또한 <말씀>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현대 문화>와의 상당한 모순과 괴리가 존재한다. 남성 우월적 차별이나, 이혼금지, 산아제한, 낙태 금지, 혼전 섹스 금지, 피임반대, 성소수자 반대, 도박금지, 음주 금지, 금연, 혼외정사 금지, 주일성수 등을 <말씀>대로 엄격히 통제하고 죄악시 했다면, 지금까지 생존할 종교가 얼마나 될까? 세계 최대 종교인 카톨릭도 시대와 함께 변했기에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신의 말씀은 불변이므로 신의 도덕성 역시 변하지 않는다는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건망증 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둑질 하지마라>, <간음하지마라> 와 같은 가벼운(?) 죄는 일단 열외하더라도, <살인하지 마라>는 인류 역사에 불변의 도덕 기준이다. <살인하지마라>는 <십계명> 이전의 고대 법전에도 모두 기록되어 있었으며, 유신론자든, 무신론자든, 인간이면 해서는 안되는 인류의 공동가치다. 하지만 수많은 전쟁에서 믿는자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전쟁과 침략과 약탈, 종교재판, 유대인 학살의 나치 기독교인들, 인디언 대학살의 미국 개신교들, 흑인 노예학살의 침례교 근본주의자들.. 역사의 살인자들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무슨 명분으로 <God Bless America? God Bless Christian? >를 기도하는가?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내 조국을 지키기 위해? 기독교를 수호하기 위해? 만약 만물을 창조하신 신이 존재한다면 누구는 편애하고 누구는 죽도록 내버려 둔단 말인가? 전쟁터에 참전한 목사(군목)는 적을 많이 죽이라라고 기도하는가? 십계명 말씀대로 살인하지마라고 기도하는가?
종교의 <도덕성>은 모순의 극치이며, 자기 <합리화>인 동시에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가변성>인 것이다. 종교적 문화도 종교적 가치관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인간의 도덕적 가치는 본인 스스로가 정립해 가야 하는 것이다. 죽는 날까지 스스로 부끄럽지 않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도록 기도하고 묵상하고 행동하여야 하는 것임을….
–
종교와 죄의식 (06-28-2019)
“주여, 제가 죄인이나이다. 저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를 악에서 구하소서”. 모든 서방 종교의 기도 첫 대목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신께 용서를 비는 것이다. 종교는 <당신은 절대로 착하지 않다>를 전제한다. 죄의식을 많이 느끼게 될수록 종교가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더 많이 갖게 된다. 그럴때 신부나 목사가 죄의식을 없애는데 도움이 된다면 성직자와 신자 간에는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된다.
과연 인간은 매일매일 수많은 죄를 지으면서 살고 있는가? 정작 자신이 무슨 죄를 짓고 사는지 알고나 있는걸까? 정말 본인은 죄를 지었다고 스스로 인정하기는 하는걸까? 신에게 용서를 받았다면서 왜 또 동일한 죄를 반복해서 평생토록 짓는걸까? 자신의 죄에 대한 진정성도 없고 신에 대한 두려움도 없기 때문이다. 설마?
종교의 죄의식은 끝이 없는 순환의 길로써, 종교에 의해 통제되고,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법으로 소비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종교의 죄의식을 확실히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종교에 항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시지만, ~~을 하면 안된다.” 종교는 별의별 항목의 수많은 죄목을 달아놓고 신도들을 계속 협박한다. 당신은 충분히 착해질 수 없으며, 제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의 결함을 해결할 수 없다. 신은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들었기에 오직 신을 통해서만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강압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
종교적인 삶은 끊임없는 궤도들 중에 하나를 계속해서 되돌아가는 것이다. 당신은 죄인으로 태어났으며, 늘 죄인이다. 그래서 당신은 태어날 때 부터 부정한 존재로 만들어낸 신으로부터 용서를 구해야 한다. 용서를 구하라. 그리고 다시 태어나라. 이후로 다시는 죄를 짓지마라. 죄를 지으면 다시 그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 종교는 근절해 버릴 수 없는 영속적인 죄의식과 비천함을 신도들에게 심어 놓는다. 이것이 <종교적 죄의 사이클>이다. <긴장상태 ->행위-> 죄의식-> 종교적 용서-> 구원-> 긴장상태>의 무한 반복이다. <죄의식-용서> 사이클은 반복이 될수록 자신에 대한 자괴감만 깊어지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구원을 얻는 것이 더 힘들어진다. 예를 들어 성자 반열에 속하는 테레사 수녀님은 사망 후 발견된 그녀의 편지에서 ‘죄의식에 고통받는 매우 불안정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마더 테레사가 그러할진데 하물며 평범한 신도들야 말해 무얼 할까?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는 <가족의 가치>를 중요한 화두로 내세운다. 가족과 다른 종교를 선택한다는 것은 가족으로 부터의 추방을 의미한다. 성적 행동도 엄격하고 편협되어 있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혼전 섹스를 해서도 안되고, 자위행위를 해서도 안된다. 결혼 후 부부 간의 섹스도 가능한 억제하여야 하며, 이혼도 해서는 안된다. 낙태도 해서는 안되며, 성소수자가 되어서도, 동성결혼도 반대한다. 피임을 해서도 안되며, 산아제한을 해서도 안되고, 성적 쾌락을 추구해서도 안된다. 등등 .. 섹스의 즐거움을 은폐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근본주의 기독교인 미국의 주요 산업 중 한가지가 포르노 산업이다.
성에 대한 부정적인 종교는 이슬람교, 힌두교, 카톨릭, 모르몬교, 개신교 순이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인간이 즐거워 하는 꼴을 종교는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여성에 대해서는 엄격히 성적 통제를 한다. 여성의 성적 범죄 행위는 아담을 유혹한 이브로 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건장한 남녀 간에 누가 누구를 꼬셔? 웃기는 소리다. 남성 우월주의다. 과연 아담은 이브에게 강간을 당했는가? 쌍방 간통 (화간- 和姦)이다. 지금도 이슬람교나 힌두교에서는 여성이 성적 위반을 했을 경우 갖가지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며, 가족들은 수치심으로 평생 살아가야 한다. 여성의 성적 행위는 오로지 종족 번식과 보존의 수단이라며 섹스는 금욕의 대상이라면, 세상에는 돌에 맞아 죽을 여성들이 수두룩 할 것이다. 물론 여성들의 참전권 운동과 1800년대 가족 계획 운동, 1960년대 산아제한, 1970년대 여성해방운동, 1990년대 동성애 운동 등으로 성문화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많이 변하였지만, 아직도 근본주의 종교들은 성문화 억압이 주된 이슈다.
또한 <종교적 가족의 가치>는 같은 기독교인라 하더라도 종파가 다르면 이단으로, 심지어 사탄으로 취급한다. 종파가 다른 서로는 같은 기독교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종교들은 유아때 부터 자신들만의 <종교 바이러스>를 심어주기 위하여 유아교실, 주일학교, 청소년 성경학교, 여름 성경학교, 맘엔미, 등등 막대한 투자를 한다. 젊은 세대의 신도수가 줄어간다면 그 종파는 저물어가는 석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충성도는 일거수 일투족 감시의 대상이 된다. 부모들에게 끊임없는 근심과 죄의식, 그리고 수치심을 유발토록 하는 것이다. 부모들의 죄의식이 크면 클수록 자녀들을 확고히 감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 중에 누구 하나 동일 종교를 믿지 않으면 <불신자> 가족으로 낙인되며, 종교 단체에서 금지하는 사항에 위반되는 가족이 있으면 그 가족 전체는 <죄인>이 되고 <가족의 수치>가 된다. <아미쉬> 근본주의가 대표적이지만, 지구상의 모든 <종파주의>는 오십보 백보가 아닐까…
–
종교의 생존전략 (06-21-2019)
세계인구 72억 8천명 중에서 무슨 종교를 믿든 간에 80% 이상의 인구들이 종교를 믿는다. 개신교는 4%를 차지하지만, 그 종교들 내부에도 셀 수 없을 만큼의 종파들이 존재한다. 종교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끊임없이 수정하고 변화한다. 종교는 내부의 세포분리와 돌연변이로 부터, 그리고 다른 생명체인 외부의 종교로 부터 생명을 이어가야만 한다. 서기 2세기 사도신경도, 서기 325년 니케아 신경도, 바울의 초대교회도 내부 이단을 막기 위함이다. 윌 듀렌트는 “신교도는 바울이 베드로를 누르고 승리한 것이고, 근본주의는 바울이 그리스도를 누르고 승리한 것이다” 라고 말한다. 반면에 고대종교인 조로아스트교와 힌두교는 서기 8 ~9세기 외부 바이러스인 이슬람교를 막지 못했기에 아라비아 지역을 통채로 내주어야 했다. 비단 종교 뿐만 아니라 크세르크세스 1세 (페르시아 전쟁 BC 492~BC 448)나 알렉산더 대왕은 종교에 간섭하지 않았기에 정치권력 조차 이슬람교에게 빼앗겼다.
그래서 모든 종교에는 근본주의자들이 신흥세력을 저지하며, 기득권을 주장한다. 근본주의 (fundamentalism)는 신성한 문서를 엄격하게 율법 제일주의적으로 해석하여 규정해 놓은 일련의 사고방식과 행동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종교에 너무 심하게 감염되어 자체 면역력을 갖추고 있으며, 자신의 믿음에 모순되는 증거는 모두 무시한다. 매우 배타적이며, 강압과 완력, 각종 수단으로 믿음을 강요하며, 심지어 개인의 삶의 희생을 강제하기도 한다. 기독교 근본주의, 이슬람 원리주의, 힌두교 민족주의, 유대교 정통주의, 모르몬 원리주의 등이 해당한다.
<기독교 근본주의>의 5가지 특징은 1. <성경 무오론(無誤論> : 성경에는 일체 오류가 없으므로 해석할 수 없으며, 어떤 성경 한구절에도 이견을 제시할 수 없다. – 축자영감설 (逐字靈感說) : 성서는 하나님의 영감으로만으로 기록되었다고 주장함. 2.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 절대적 신성의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며, 예수의 탄생은 어떤 해석의 대상도 아님. 3.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아카페적 사랑이나 구속사적 이해가 아니라,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사건으로만 강조. 4. <그리스도 육체의 부활> : 무덤에서 일어난 사건으로만 주장. 5. <그리스도의 재림> : 복음에 따른 심판의 재림이 아니라 강력한 왕권으로의 재림을 주장한다. 이들은 1910년 ~1915년 미국에서 시작하여 기독교 보수주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을 정치에 끌어들이기 위한 초교파적 사회운동으로 발전한다. 국수주의, 반공주의, 창조과학등으로 한국의 보수 기독교 근간이 되기도 한다. <복음주의>는 모든 개신교회의 정체성이다.
근본주의의 생존법은 는 이단으로 부터 세력을 보호, 확장하기 위해 돌연변이도 발생한다. 카톨릭의 <예수회 수도단 : 1540년 설립- 마틴루터 이단 개신교로 부터 보호 >이나, <종교재판소> 같은 것이다. 이런 기구들의 목적은 이단을 색출하고 맞서 싸워 제거하기 위함이다. 또는 더 약한 종교 세력들을 폭력으로 강제한다. 중세 내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 1492년 스페인 종교재판과 유대인 추방, 나치의 유대인 학살, 1572년 프랑스 위그노 대학살 (11만명의 위그노 학살), 그이후에도 카톨릭교는 30년 이상 박해가 계속되었다.
근본주의 종교의 생존법은 <정치권력>과 손을 잡는 것이다. 미국 유타주는 1890년까지 모르몬교가 정치권력 기구에 대한 완벽한 통제권을 갖고 있었다. 비모르몬 교도들은 살해당하거나 추방당했다. 대부분의 모르몬 교회 옆에는 공립학교가 있어 매일 종교적 가르침을 주입시켰다. 이슬람교가 극단적으로 효율적인 이유는 종교와 정치적 통제를 성공적으로 결합시켰기 때문이다. 이슬람교에서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마호메트가 처음 그 지역을 정복할 때부터 그의 종교는 정치적이었다. 유대교도 마찬가지다. 모세와 마호메트의 뿌리는 군국주의적이며 정치적이었다. 바울이 만든 소수세력의 기독교는 군소 종교로서 강력한 제국내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안된 방어책인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인 면에서 바울의 기독교는 이슬람교보다 전문성이 훨씬 뒤쳐진다. 따라서 기독교 전도사들은 구약성서의 정치적 설계를 끊임없이 언급한다. 신약성서에는 정치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고대 이스라엘 선지자와 통치자인 모세, 이사야, 예레미야, 다윗, 솔로몬 등은 종교를 정치와 떼어 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근본주의가 만연한 사회는 오래 생존할 수 없다. 위급한 상황이 지나거나 세력확장이 종결되면 다시 통제해야 한다. 통제되지 않는 근본주의는 사회 전체를 먹이로 삼는다. 예를 들어 소련이 철수한 아프가니스탄을 강력히 통제한 텔레반, 모택동의 문화혁명을 통해 3천만명의 인민을 죽였던 중국 공산당 근본주의, 마르크스 주의와 레닌의 신격화, 주체사상과 김일성 신격화, 18세기 시작된 와하비즘의 돌연변이인 오사마 빈라덴, 알케이다 등이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대응은 더욱 근본주의를 강화시키는 부작용을 일으킨다. 반면에 미국 군부 전반에도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가 강력하게 부상한다. 미국 부시 대통령의 미국 군대에 대한 <십자군> 호칭은 박정희 시대에 보수 개신교 목사와 교회를 <구국 십자군>으로 악용한 사례와 유사하다. 종교의 근본주의자들은 서로를 먹잇감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근본주의에 대한 가장 훌륭한 예방법은 <과학교육 강화>가 최선이라는 것이다.
–
신의 존재 (06-14-2019)
신은 존재하는가? 인류가 생존하는 동안 통일되지 않는 화두다. 신의 존재 유무와 사상에 따라 유신론(有神論), 무신론(無神論), 불가지론(不可知論), 이신론(理神論), 자유사상가 등으로 분류한다. 유신론자들은 그들대로 자신의 신만이 유일신이라고 믿으며, 다른 신이나 종교들은 죄악시한다. 세계 3대종교인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는 유일신을 믿으며, 동일한 신(하느님)을 믿는다. 다만 구세주가 예수냐, 마호메드냐, 아직 오지 않았느냐로 서로 싸운다.
<불가지론(不可知論)>은 신의 존재에 대한 진위여부를 인간은 알 수 없다는 철학적 명제다. 절대적 진실은 부정확하다는 관점이다. 반대 개념인 교조주의(敎條主義)는 종교사상이나 경전을 역사적 배경이나 분석을 하지말고 무비판적으로 무조건 믿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 (지식, 진리- gnosis)이 절대적이고 완벽한 진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불가지론자>들은 세가지로 분류한다. 1. 신의 존재를 알 수 있는지, 없는지를 모른다. 2. 신의 계시 등으로 신의 존재를 알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증명하는 것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3. 신의 존재를 아는 것도 불가능 하고, 신의 계시 혹은 인식조차 불가능하다. 즉 불가지론은 종교의 유무, 종류와 상관없이, <믿음>에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미국인은 21%, 프랑스인은 32%가 불가지론자, 32%가 무신론자다. <유신론적 불가지론자>는 신의 존재 유무를 인간이 알수는 없지만, 개인이 원해서 믿는자이며, <유신론자>는 믿으면 알게 된다는 주의다. <무신론적 불가지론자>는 신의 존재 유무를 알지 못하니, 믿음이 없는 상태로 믿을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 불가지론자들은 리처드 도킨스, 마리 퀴리, 스티븐 호킹, 찰스 다윈, 흄, 칸트, 러셀, 미테랑, 토마스 에디슨, 워렌 버핏,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 모두 열거 하지 못한다.
<이신론(理神論)>은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들 사이에 등장한 종교관이다. 우주 천지만물을 만드신 절대자 신(神)은 인정한다. 다만 이세상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한 신이 인간 세계에 개입하거나, 자신이 만든 자연법칙을 신의 마음대로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신론자들은 종교나 경전에 의존하지 않고 신의 존재를 믿으며, 예언이나 기적 등은 없다는 논리다. 인간 세상의 삶은 신을 팔지말고 신이 만든 <자연 법칙>에 따라 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신교> 라고도 한다. 공자, 노자, 묵자, 아리스토텔레스, 아담 스미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자크 루소, 존 아담스, 토머스 에디슨, 토마스 제퍼슨 등이 해당된다.
위키백과의 2015년 <종교별 세계 인구 조사>에 의하면 세계인구 72억 8천명을 기준으로 할 때 세계 조사기관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순위별로 보면, 카톨릭 13억(~12억)명, 이슬람 12억(~11억), 무종교 11억(~12억)명, 힌두교 9억명, 정교회 4.5억 (~동방정교 2.4억)명, 불교 4억 (~3.8억)명, 개신교 2.8억 (~3.5억)명, 유사기독교 2.5억 (~1억)명, 동양사상 4억명.. 등 순위다. 즉 개신교는 세계인구의 3.8% ~4.8%에 해당한다.
반면에 한국 통계청 자료 2015년기준 (괄호안은 2005년)을 보면, 한국인은 무종교 56.1% (47.1%), 개신교 19.7%(18.2%), 불교 15.5% (22.8%), 카톨릭 7.9% (10.8%) 로 나타난다. 즉 한국은 무신론자와 개신교 신자들이 급증하는데. 세계 국가별 종교 분포도와 비교하면 한국의 개신교 신자 급증은 극히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세계 인류는 이슬람 근본주의 문화권을 제외하고는 무신론자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네이처>지에 게재된 연구에 의하면 전미 과학 아카데미 회원의 72%는 철저한 무신론자이고, 21%는 불가지론자이며, 오직 7%만이 개인적으로 신을 믿는다고 인정했다. 미국은 70% 이상이 기독교인들로써, 신과 사후세계를 믿는다고 밝혔다. 미국은 개신교 근본주의인 시민종교 국가이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은 <시민종교>가 존재하지 않지만 기독교 세력은 한층 약화되었다. 종교는 그 나라의 문화와 직결된다. 서유럽, 남미 –카톨릭 문화, 동유럽, 러시아 –동방 정교회 문화,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 무슬림 문화, 인도 – 힌두 문화, 중국 – 불교, 중국 사상 문화, 미국- 개신교 문화, 일본- 일본불교 문화, 한국- 짬뽕문화 ??
유럽의 문화는 제 2차세계대전 이후로 종교와의 연합을 효과적으로 해체시켰다. 카톨릭교도와 개신교도, 유대교인들은 서로 결혼도 한다. 가장 종교적인 국가인 아일랜드 조차 교회 참석률은 85%에서 60%로 떨어졌다. 2000년 조사에서 프랑스인 60%는 전혀 혹은 실질적으로 교회에 참석하지 않으며, 영국은 55% 인구가 교회 참석하지 않는다. 따라서 유럽인들은 보통 <비신자>이거나 <명목상 신자> 라고 한다. 서구 유럽의 <기독교의 쇠퇴>는 두번에 걸친 세계대전 영향이라고 분석한다. 1차, 2차 세계대전에서 9천2백만명이 죽어가는 동안, 하나님은 수백만명의 유럽인들 기도를 외면한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황과 개신교 성직자,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히틀러와 공모하거나 협력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부터는 종교의 불신이 더욱더 가속화 된 것이다. 유럽문화와 종교가 분리되니, 자연스럽게 종교 지도자들의 정치권력화는 소멸되어 가는 것이다. 반면에 미국은 대통령이나 정치인으로 선출되기 위해서는 사전에 자신의 종교적 태도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미국이 진정 종교적 자유국가인가?
–
종교와 정치 권력 (06-07-2019)
각박한 이민생활에서 종교는 필수다. 목사님의 설교 말씀에서 은혜받고,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서로 위로받고 위로한다. 가끔은 교인들로 인해 상처받기도 하지만, 낯선 이국땅에서 하나님이 내 평생 함께 동행 하신다면 그보다 더한 위안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 종교는 정치 권력화 해서도 안되고 강제화 해서도 안된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고 각 개인의 종교는 종파와 관계없이 존중되어야 한다. 누구나 당연시 하고 이의 제기를 하지 않지만 실상은 그렇치 아니하다. 한국의 총선이 1년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일부 정치가와 종교 지도자들이 정치 권력화 하려는 조짐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한기총 (한국기독교 총연합회) 회장인 전광훈 목사라는 자는 황교안 (개신교 전도사 겸 장로)이라는 자유한국당 대표가 한기총을 방문한 자리에서 “자유한국당이 200석을 못하면 대한민국이 해체될거다” 라든가, 문재인 현 정부와 국회에는 좌파 독재 빨갱이들이 득실되므로 빨갱이 자식들은 모두 쓸어내 버려야 한다” 라든가, “ 황교안 대표는 하나님이 준비해 주셨다.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 정부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개신교 지도자들의 직접적인 간섭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자신들이 국가를 상왕 통치하여야 한다는 저의도 드러냈다. 전광훈 목사 그자는 2005년 목회자 세미나에서 “ 내 성도가 됐는지 알아보려면 젊은 여집사에게 빤스(팬티)를 내리라는 옛날 방법이 있었다. 한번 자고 싶다고 해보고 그에 따르면 내 성도가 되며, 거절하면 똥”이라는 막말도 쏟아냈다. 그 이후 일명 <빤스 목사>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그런 인간 말종의 설교를 하는 자나 그런 설교를 듣고 아멘이라 하는 신도나 한국 개신교의 슬픈 단면을 보여준다. 신도는 목사의 종속물이 아니다.
그런 목사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목사는 예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다. 그분의 말씀을 전달한다는 그 임무조차도 버거워하고 겸손하며 낮아져야 하거늘, 일반 대중들보다 결코 대단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으며, 사회 엘리트도 아니고, 사회 지도층도 아니면서, 그렇고 그런 신학 대학 나와서 목사 안수 받았다는 자격증 하나로, 20대부터 죽는 날까지 목사님으로 대우받고 존경받는다. 평생 신도들의 도움으로 먹고 살면서 부끄러워하지도, 부채의식 조차도 없다면 그분이 용서하시겠는가? 일부 대형교회 목사는 오히려 대기업 회장 행사를 하며, 공금을 횡령하고 고급 사택과 고액 연봉과 수백억원 퇴직금을 요구한다면 장사치지, 정상적인 성직자라 할 수 있겠는가? 종교의 권력화다. 그게 대한민국 개신교의 현주소다. 도무지 그분 말씀과 일치되는 삶의 일면도 찾기 어렵다. 물론 많은 개신교 목사님들은 박봉에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예수의 말씀을 전하고 사역하며 헌신하시는 훌륭한 목사님들도 계신다. 다만 목사이기 때문에 존경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존경받을 행동과 실천을 해야만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한국 개신교 뿐만 아니라, 현대종교는 너무 극단적이고 맹목적이다.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믿으라>는 것이다. 인간 너희들은 모두 죄인이기 떄문이라면서..
“종교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함께 존재한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인간은 신을 창조했다. 수천년 동안 종교는 충분한 설명은 물론, 충분한 논쟁도 없이 사회에 스며 들어왔다. 종교는 단순히 존재해 왔다. 종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폭로하려는 사람들은 종종 박해를 받아왔다. 책들은 불태워졌으며, 사람들은 축출당하거나 심지어 처형당하기도 했다. 교회 성직자나 종교 지도자들이 말한 것을 비판하거나 설명하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종교는 <맹목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종교는 역사의 거대한 권력화 되었고 집단 세력화 되었다.”
미국은 기독교 근본주의 국가이다. 아직도 미국 인구의 71%가 기독교인이다. 미국은 기독교와 교회 공동체를 벗어나서는 정치하기가 힘든 구조다. 미국의 <시민종교>에 대해서는 추후 별도로 검토할 것이다. 한국 개신교는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의 절대적 영향을 받았다. 대한민국 이승만 정부는 기도로 시작하였다. 기독교인수가 2%이던 시절에 제헌국회의원의 40% 이상이 개신교도였다. 한국 기독교의 부끄러운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유투브에서 한흥구 교수의 <한국 기독교 역사>를 시청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무지(無知)는 무치(無恥)가 된다. 믿더라도 알고 믿어야 한다. 종교는 맹목성 독약이 아니다. 내가 믿는 종교와 종파가 아니면, 나머지는 모두 이단이고 사탄이라면 무슨 사랑이며, 무슨 평화가 있겠는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여야 한다. 그래야 참믿음이 생기는건 아닐까? 그래야 무신론자도 타종교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신앙은 당신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질문을 멈추게 할 뿐이다. 신은 인간의 정신을 감염시켜 마음과 행동과 사고를 지배한다. 신은 살아있다. 오직 당신의 맹목적인 믿음 안에서” <신들의 생존법 (The God Virus)> 저자 데럴 레이의 말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만들어진 신>, 다니엘 데넷의 <주문을 깨다 : 자연현상으로서의 종교> 등을 참조하여 함께 여러분과 고민해 보고자 한다. 혹시 내가 악마? 사탄? 별로 좋은 소리는 못듣겠지만..
반나절의 휴가 (05-31-2019)
오늘은 메모리얼 데이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다. 아들, 딸, 손녀 모두 아내와 함께 롱우드 가든 파크로 야유회를 떠났다. 나만 혼자 남았다. 롱우드 가든은 봄, 여름, 가을 여러차례 갔던 곳이다. 그래서 빠진다는 말은 못하고, 칼럼을 쓴다는 핑계로 아내로 부터 허락(윤허?)을 받았다. 내일과 모레는 가족들과 함께 산과 바다를 가야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의 휴가를 즐기는 방법은 오래전부터 철저한 <게으름>이다. 대학 시절에는 학기말 고사가 끝나는 날, 무조건 배낭을 메고 혼자서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여행 계획표가 없다. 정해진 기간 내에서, 정해진 경비 내에서, 무작정 떠나는 것이다. 낯선 그곳이 내게 마음의 위안이 되면 며칠이고 머물곤 했다. <방랑벽>이라고나 할까? 조상이 이씨 조선의 양영대군파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여행가는 것도, 패기지 여행을 가는 것도 별로다. 나는 유독 바다를 좋아한다. 이름 모를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며칠씩 바다만 바라다 보고 오곤 했다. 나의 여행 목적은 어디를 관광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유적지는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되고, 책을 통해 유적지의 역사를 배우는 것으로 족하다. 그냥 나의 여행은 <게으름>이다. 나는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훌쩍 떠나곤 했다. 하지만 이민을 오고나서는 그 몹쓸 병이 한번도 도지지 않았다. 아내를 혼자 두고 어딜 간다는게 웬지 미안함 같아서 일게다.
이민의 생활은 대부분 대동소이 할 것 같다. 변화없는 반복의 연속이다. 나만의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다. 나는 월요일 부터 금요일 까지, 매일 아침 7시에 아내와 함께 집에서 나와서 커피 한잔을 사들고 아내 가게에 데려다 준다. 화덕에 구운 빵과 커피를 마시며 하루의 시작을 서로 격려한다. 꼭 그렇게 아내를 가게에 데려다 주지 않아도 되는데, 몇년 전 부터 그렇게 한다. 어느 겨울날 깜깜한 새벽에 장사도 별 신통치 않는 가게를 아내 혼자서 출근하는 뒷모습을 보는 나의 애잔함이자 불편함이다. 얼굴 보며 살 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 그래서 어딜 가나 항상 함께 다닌다. 나는오전 9시까지 사무실에 가서 나의 일과를 시작한다. 6시 퇴근후에도 아내 가게를 들려서 아내와 함께 집에 온다. 함께 저녁 해먹고 설거지 하고 산책하면 저녁 9시다. TV 프로 한개를 보면 10시30분. 아내는 결혼 37년 동안 그 마의 시간대를 넘기지 못한다. 그 대신 새벽 5시30이면 칼같이 기상한다. 그리고 내 도시락을 준비한다. 나는 11시 30분 취침, 6시 30분 기상이다. 매일 반복이다.
토요일은 늦잠자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함께 시장을 본다. 야채시장, 한국마트, 대형 미국 마트, 세군데나 돌아다닌다. 시장 볼 때마다 아내는 사서는 안될 식재료들을 간섭하고 잔소리 한다. 오후가 되면 나는 칼럼을 써야 하고, 아내는 개인 마실을 나가신다. 유일한 각자의 개인 시간이다. 12년동안 매주 칼럼을 쓴다는 것은 독자들의 너그러움이며, 나의 무치인 동시에 나의 위안이다. 언제까지 쓸 수 있으려나.. 주말 저녁은 가족들 저녁 모임이다. 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모여서 식사하고 수다를 떤다. 주말 식사는 무조건 나의 담당이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 한다. 내가 주말 요리를 하는 이유는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내 마음껏 해서 먹을 수 있다는 음흉함이 저변에 깔려 있다.
일요일은 교회 가고, 산이나, 바다, 공원에도 간다. 책을 보거나 TV도 본다. 잔디를 깎고 아내의 정원 가꾸는 일을 돕기도 한다. 2년전 부터는 교회 직분도 모두 내려놓고, 교회 행사에도 가급적 사양한다. 나는 본시 믿음이 약한 자다. 또 죽는 날 까지도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또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한국에서 온 다섯살 손녀가 그녀다. 퇴근 후와 주말, 주일 시간 내내 내 곁에서 떠나지 않는다. 대화가 그치지 않는다. 묻고 또 묻는다. 대화의 본질이 맑고 순수하다. 함께 독서하고, 함께 산책하고, 함께 TV 시청한다. 어딜 가나 손을 잡고 다니고.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내가 만들어준 음식이 제일 맛있다 하여 내가 요리하는 날이 늘어났다. 다 늙은 나이에 또 다시 내가 사랑에 빠지다니.. 아내의 절대 강적이 나타났다. 어떻게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고, 한달이 가는지.. 아버지, 사랑하다 더디 가게 하소서.
그런데 모처럼의 기적이 일어났다. 오늘은 나 혼자만의 <반나절의 휴가>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당황하고 혼란스럽기 까지 하다. 서둘러 가족들이 떠나간 아침의 잔해들 부터 정리하고 설거지를 마친다. 뒷마당에 나가니 햇살이 눈부시다. 일단은 진한 커피 한잔을 내리고 그동안 이 핑계 저핑계로 미루었던 책 한권을 들고 테라스 소파에 몸을 맡긴다. 아내의 정성으로 잘 가꾸어진 화초들과 새들의 재잘거림, 살랑이는 나뭇잎 소리에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고요하고 게으른 시간들만 흘러간다. 이 순간 만큼은 더 이상 무엇을 바라리요, 무슨 욕심이 있으리요, 나의 반나절 휴가는 귀하게 흘러간다. 오늘 저녁은 경상도 아구찜을 만들어서 가족들에게 귀여움을 받아야지 ..ㅎㅎ
–
제자백가 –법가 사상 (05-24-2019)
춘추 전국시대 (BC 770~BC 221년)의 제자 백가 사상중에 4대 문파인 법가 사상으로 본 칼럼을 끝내려 한다. 법가 (法家) 사상은 상앙 (BC 395 ~ BC 338년), 신불해 (申不害 : ? ~ BC 337년)에서 학문적 체계를 갖추고, 한비자 (韓非子 : BC 280년~BC 233년)에서 집대성 되었다. 법가 사상은 중앙집권적 강력한 국가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유가의 인,의, 예,지 로 다스리는 덕치주의로는 한계가 있으며, 강력한 법치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가의 천하를 다르리는 원리는 <법(法), 세(勢), 술(術)> 이라 주장한다.
– <법(法)>은 군주가 백성을 통제하는데 사용하는 공개적으로 자세한 규칙을 말한다. 법가는 법의 엄중한 이행을 통해 부국강병을 달성히고, 전제적 군주 권력의 확립을 추구하였다. 법은 내용과 집행이 명료해야 하며, 당연히 군주와 백성들은 법을 잘 알아야 하고, 법(法)은 술(術)과 함께 사용되어야 법의 준수가 확실해진다는 것이 한비자의 주장이다.
–<술(術)>은 법을 행하는 수단, 즉 신하를 이끌어 가는 방식을 말한다. 술(術)의 핵심은 명(命 : 군주의 명령)과 형(形 : 신하가 이루어 낸 실적)의 일치,불일치에 따른 시비의 판단으로 보았다. 군주의 통치술이다.
– <세(勢)>는 백성과 신하를 굴복시키는 강력한 권력을 말한다. 하지만 한비자는 군주 자신에게 지혜, 지식, 통치력 등 주체적 능력을 갖추어야만 세를 누릴 수 있다고 비판한다.
법가의 한비자는 한나라에서 태어났으며, 유가의 순자 (성악설)의 제자였으므로 유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인간의 본질은 사악하므로 강력한 법과 형벌로 사회를 통제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고대시대의 법가사상은 “만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현대 법치주의의 평등개념이 아니었다. 또한 권력자도 백성들이 민주적으로 뽑는 것이 아니므로 군주는 법 앞에서 평등하지도 않았다. 다만 춘추전국시대의 봉건제도는 <혈연주의>였으므로 지방 분권으로 세력이 사분오열되어 군주의 세력이 점점 약화되어 간 것이다. 이에 보다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가 필요했으며,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법에 의한 통치>가 요구된 것이다. 이러한 법가 사상을 받아드린 나라가 변방의 진나라였으며, 결국은 진이 중국 전국을 통일하게 된다.
하지만 진나라의 진시황 이후 진의 2세 황제 호해가 무능하여, 환관 조고가 사적으로 절대 권력을 휘두름에 따라 진은 몰락하게 된다. 그 원인은 첫째, 강력한 <중앙집권적> 법은 군주가 초인(超人) 처럼 강력하고 현명하며 탁월한 지도력을 갖추어야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전시상태의 <복종과 처벌>만 강조한 강력한 법(法)을 평화시대에 일률적으로 전국에 적용한 것도 패망의 원인이다. 법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수정 보완>되어야 하는 것이다. 부국강병을 위해 강력한 법가 사상이 필요했지만, 국가가 잘산다고 백성들이 반드시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영원한 절대 권력도 없듯이, 영원불멸의 사상이나 법률과 제도도 없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현대 문명국가는 <법치주의>와 <자유 민주주의>가 우선이다. 삼권분립으로 법을 제정, 집행, 심판을 각각 분리 운영한다. 사법, 입법, 행정은 서로 상호 견제 협력해야 하는 구조다. 만백성은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하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한다. 하지만 인류의 근,현대사에서 법을 교묘히 이용해서 권력을 찬탈한 <형식적 법치주의> 사례들도 무수히 많다. 법률을 오로지 통치 수단으로만 이용하고, 국민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탄압하는 <법률적 불법>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계속 될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독일의 나치 히틀러다. 히틀러도 합법적으로 당선된 정권이다.
우리세대는 군사 독재정권과 맞서 싸운 투쟁의 세대다. 박정희 시대의 <3선개헌>과 <유신헌법>이 대표적이다. <유신헌법>은 부국강병과 한반도 통일이라는 미명 아래 <종신제 영구집권>을 하기 위해 제정한 악법 중의 악법이었다. 전두환 독재 시대도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 <5.18 광주 항쟁>을 불법 기획하고, 수많은 광주 민중들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 내 주변에 대학생 때에는 4년 내내 길거리에서 <유신철폐>로 학생 데모하고, 졸업 후 군대에 끌려가서는 <광주 폭동진압군>으로 민중을 죽이는 군인이 되었다. 그리고는 30대 젊은 나이에 자살한 내 친구도 있다. 불쌍한 세대다. 그래서 역사에 미안하고 부끄러운 세대다. 북한은 북한대로, 남한은 남한대로 <악법>을 만들어 놓고, 수많은 사건들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수많은 민중들의 목숨을 죽였다.
중국의 시진핑은 다시 <법가사상>과 <유가사상>을 통치수단으로 내세운 이유는 <강력한 중국>을 만들기 위함이다. 중국은 <중국공산당> 일당 독재 국가이다. 서양의 법치주의와는 다르다. 강력한 법을 만들고, 엄하게 다스리는 것이다. 반면에 <유가사상>을 부활시켜 중화민족으로서의 자부심과 사상교육도 병행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시대에 따라 동서양의 수많은 사상들은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그 중의 일부는 종교로 변형되기도 한다. 배우고 익혀야 한다. 하지만 변치 않는 것은 인간의 본질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전적으로 나의 화두이며, 나의 사유이고, 나의 가치이며,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
제자백가 – 도가 사상 (05-17-2019)
도가(道家) 사상의 시조인 노자 (老子, BC 571년 ~BC 471년)는 춘추시대 초나라 사람으로 알려졌지만, 생애가 불명확하다. 도가 계열의 양주, 열자, 장자도 유가처럼 노자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노자와 유사한 사상을 갖기 때문에 도가 계열로 분류한다. 중국불교 선종(禪宗)도 힌두 불교와 도가 사상이 결합된 것으로 보는 학설이 유력하다.
도가(道家) 사상은 유가사상과 많은 점에서 대치된다. 유가사상은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라면, 도가 사상은 <무엇을 비울 것인가>? 이다. 채움과 비움이다. 유가는 배움(學)을 중요시하여 <위학일익 (爲學日益) –배움은 매일 채우는것> 이라 하였고, 노자는 위도일손(爲道日損 – 도는 매일 비우는 것)이라 하였다. 맹자는 <사단확충론 (四端擴充論)>을 주장한다. 사단론(四端論)은 인간은 선천적으로 <측은지심 (惻隱之心 – 타인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 인(仁)>, <수오지심 (羞惡之心)- 악한 행동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마음 : 의(義)>, <사양지심 (辭讓之心) – 양보하고 사양하는 마음 – 예(禮)>, <시비지심 (是非之心)-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 : 지(智)>이다. 인간은 네가지 마음(四端)을 발생시키는 사덕(四德), 즉 <인,의,예,지>를 본래 가지고 있으며, 사단에 따라 선한 행동을 하고, 사단을 확충함으로써, 사덕을 실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에 도가(道家)의 핵심사상인 도(道)는 우리가 말하는 법(法) 도(道)가 아니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도(道)는 만물을 생장시키지만, 만물을 자신의 소유로 하지 않는다. 도는 만물을 형성시키지만, 그 공을 내세우지 않는다. 도는 만물의 장(長)이지만, 만물을 주재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도가의 우주론이다. 세상 만물(物)은 도(道)로 인해 존재하는 존재자이다. 즉 만물은 도로 인해 무(無)에서 유(有)로, 다시 무(無)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는 실체 없는 것이고, 도(道)는 만물의 생성과 변화 과정 그 자체라는 것이다. 즉 도(道)는, 무(無)이자, 유(有)를 생성하는 그 자체도 되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현상학과 유사하다. 무(無)란 구체적인 모습이 없지만, 이세상 만물을 가능하게 해주는 영역이고, 유(有)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무(無)와 유(有)는 긴장과 상생 속에서 공존하는 것, 유무상생 (有無相生)을 도(道)라고 한 것이다.
따라서 도가에서 말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현실 도피도 아니고 산속에 숨어서 사는 은둔형도, 허무주의도 물론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너와 내가, 주체와 객체가 함께 하는 세상을 꿈꾼다. 도가에서 <나>는 누구인가? 의 인간의 주체인 <나>의 인식론에 대한 허구성을 말한다. 나의 마음(心)은 외부에서 주입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나의 본성이라 믿고 그 꿈 속에서 산다는 것이다. 그것이 장자의 그 유명한 <호접지몽(胡蝶之夢)> 일화다. 꿈속에 나비가 된 자신과 현실 속의 나 자신과 누가 진정한 나인가? 하는 물음이다. 장자는 구름에 가리우진 진정한 자신 (眞君)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을 진심(眞心)이라고 한다. 나 자신은 진정한 인식 주체이며, 외부에 휘둘리지 않고 자아 조차도 잊어버린 참된 나 (無心)를 찾아야 한다. 불교의 열반과 같은 깨달음이다.
도가의 핵심 사상인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은 인간이 의욕하는 특정의 가치와 욕구, 인위적인 절제 보다는 현실에 존재하는 자연의 가치를 존중하고, 이를 중시하는 삶의 자세를 강조한다. 인위가 더해지는 자연은 자연스런 상태에 따라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노자의 통치 철학도 <무위지치(無爲之治)>이다. 유가의 애민정치, 즉 백성을 사랑하고 위하는 어진 정치, 그 자체가 권력과 폭정을 낳는다는 것이다. 무위지치(無爲之治)는 백성들 스스로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아가게 되어 항상 백성들을 선의로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의 대표적 단어가 <상선약수 (上善若水)> 사상이다. 가장 으뜸되는 선(上善)은 물과 같다. 즉 가장 이상적인 삶은 물의 생태와 같이 살라는 것이다. 물은 만물을 생성하고 성장케하며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는다. 물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른다. 물은 정해진 모양이 없다. 담기는 컵의 모양에 따라 네모, 세모, 동그라미 형태가 된다. 물은 흘러가는대로 흐른다. 물은 그 어떠한 곳에 가던지 그곳에서 조화를 이룬다. 또한 높은 파도나 홍수와 같은 강함도 가지고 있다. 즉 물은 약하면서도 강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유연하며, 겸손하면서도 자연스럽다.
인간의 삶도 그러하다. 생성과 변화를 반복하는 변화무쌍한 세상에 살면서, 일정한 전제나 옳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이나 특정사상에 집착하여, <있는 그대로>의 <선함>을 잃어버린다면 물과 같은 행복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삶을 원망하는 자는 어제에 얽매어 있고, 삶이 불안한 자는 내일을 목말라 하지만, 삶이 행복한 자는 오늘을 충실히 사는 것이다. 수많은 사상과 철학이나 종교는 내가 행복하려고 존재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나의 삶을 통채로 옭아매어서는 결코 <물>처럼 살 수 없을 것이다. 무엇을 채울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비울 것인가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나의 지식이나, 내가 만든 삶의 기준, 가치관, 종교관 등도 어찌보면 나의 행복한 삶에 방해가 되는 족쇄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
제자백가 – 묵가 사상 (05-10-2019)
묵가의 시조 묵자(墨子, BC 470 ~391년)는 초기 전국시대의 송나라 사람으로써, 유가의 공자 (BC 551 ~ 479년) 이후의 사람이며, 맹자 (BC 372 ~289년) 이전의 사람이다. 예수 보다는 4백년전 이전의 사람인데도, 묵가사상은 놀랍도록 예수의 <인류애적 사랑> 과 유사하다. 묵가는 유가, 도가, 법가와 더불어 중국 4대사상 중에 하나로 손꼽힌다.
묵자의 묵(墨)은 검을 묵이다. 즉 그를 <검은 사상가>라고도 부른다. 여러 학설이 있지만 그는 수레바퀴 기술자인 노동자 출신이다. 묵자의 핵심사상은 <겸애(兼愛) 사상>이다. <겸애(兼愛)>는 <보편적 사랑>이다. 조건없이 전체 (모든 사람)를 사랑하고 서로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겸(兼)은 <전체>라는 뜻이다. 부분만 사랑하는 것을 <별애(別愛)> 라고 한다. 구분하여 사랑함이다. 유교의 <인(仁)>의 사랑은 자신을, 부모 자식을, 형제를, 혈연과 지연, 국가 소속별 사랑이므로 구별하는 사랑, 즉 <별애> 라는 것이다. 부분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머지를 차별한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을 힘들게 하는 것은 <차별적 사랑>이다. <겸애> 사랑은 <무차별적 사랑>이 아니라, <조건없는 사랑>이다. 어떠한 조건도 달지 않는 사랑을 말한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능력의 한계를 갖고 있는 인간이 무조건적 사랑을, 누구에게나 구별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하느님만이 만물을 공평하게 사랑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겸애 사상은 <아가페적 사랑>이다. 반면에 유가의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 즉 <에로스적 사랑>을 의미한다. 놀랍지 아니한가?
예수의 사랑은 <조건없는 사랑>이다. 서로를 사랑하고 원수 마져도 사랑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중세, 현대 기독교는 과연 조건없는 예수의 사랑이었던가? 차별된 선민의식, 선과 악, 천사와 악마, 기독교와 비기독교, 신자와 불신자, 정교와 이단.. 등등 셀수도 없는 이분법적 논리로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국가를 침탈하고 수많은 민중을 죽였었던가? 지금도, 향후에도 기독교 강대국들은 약소국과 약소 민족들을 죽이고 빼앗을 것이다. 제국주의 기독교는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종교가 결단코 아니다.
묵가 사상은 <천지(天志) 사상>이다. 놀랍게도 중국 제자 백가 사상 중에서 묵가만이 유일신인 절대자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다. 유일하게 하느님만이 인간에게 상과 벌을 주는 절대자라는 것이다. 백성은 군주에게, 아래 사람은 윗 사람에게 복종하고, 군주와 윗사람은 겸애 사상을 실천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하느님이 벌을 주시는다는 개념이다. <복종과 겸애> 이것을 국가관으로 보았고, 민중은 겸애 사상이 가장 투철한 자(賢者)를 군주로 추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 이론이다. 이를 <상동(尙同) – 위와 같아짐>사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전제 군주국가 시대에서 군주들이 묵가사상을 환영할 리가 없고, 자연스레 진나라가 통일되면서 묵가사상은 소멸되어 간다.
상동(尙同) 사상은 상현(尙賢) 사상으로 이어진다. 현자(賢者)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겸애(조건없는 사랑)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주는 것이다. 묵가의 현자는 유가의 현자처럼 인격과 덕을 갖춘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민중에게 골고루 실질적 이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묵가는 국가의 의무가 백성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국가는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추운 자에게 입을 것을, 피곤한 자에게 쉴 곳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국가는 부지런히 노동해서 생산하여야 한다. <근면(勤勉)>사상이다. 동시에 <절약(節約), 절용(節用)>해서 골고루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히 칼 마르크스 사회주의 혁명론의 원초인 셈이다. 또한 유가의 예(禮)의 허상을 비난한다. 특히 장례, 초상, 제사도 낭비로 간주한다. 죽은 자를 위해 호화롭게 장례와 제사를 지내는 것은 산 자를 궁핍하게 만든다. 죽은 자를 위하기 보다는 산 자의 생명을 위하라는 것이다. <절장(節裝) 사상>이다.
또한 <비공(非攻) 사상>은 타인(타국)을 공격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두를 사랑하라 하면서 어떻게 타인(타국)을 공격할 수 있는가? 다만 타인(타국)이 먼저 공격을 하면 철저하게 방어하라는 것이다. 공격전쟁이 아니라, 방어전쟁을 말한다. 묵자의 비공론(非攻論)은 천하통일 보다는 <평화공존론>이다. 미국과 같은 기독교 제국주의자들이 들으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또한 묵자는 일체의 운명론을 부정한다. 인간의 노력없이 운명이 지배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비명론(非命論)>이다. 그는 하느님을 믿는 자이기 때문이다. 묵자는 자신의 뒤에 늘 하느님이 계신다고 믿었다. 겸애(兼愛)를 하면 하느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은 것이다. 유가는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 무신론이다. “자신의 인격을 수양해서(修身), 세상을 다스리고(治人), 하늘의 명령을 기다려라(待天命)” 이다. 묵자는 기독교와 달리 귀신도 상과 벌을 내린다고 믿는다. 명귀론(明鬼論 –밝게 아는 귀신)이다. 부모와 조상 귀신은 나를 도와주는 좋은 귀신으로 생각하는 동양 사상론이다.
아무튼 놀랍다. 예수 이전의 4백년 전에 <겸애사상 (인류애적 사랑)>과 <사회주의적 혁명론>을 설파했다는 사실이 말이다. 물론 당연히 국가 권력자들, 적자생존, 자본주의 금권론자들에게는 외면당할 수 밖에 없는 유토피아적 사상이지만 말이다.
–
제자백가 –유가 사상 (05-03-2019)
현대 한국사회의 <가치관 위기의식>은 첫째, 고도의 산업화로 인한 물질 만능주의와 물신주의 가치관의 위기, 둘째, 과학기술 발달로 신앙에서 오는 위기, 셋째, 철학의 빈곤에서 오는 위기, 넷째, 대중문화와 정보의 홍수에서 야기되는 위기 등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인의 의식구조는 서양인과는 결코 유사할 수가 없다. 오랜 세월 살아온 고유의 습(習)과 사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양인의 사고는 2천년 이상의 기독교 종교 문화와 서구 철학이 바탕이다. 한국인의 서구 사상은 불과 일백년도 안된다. 한국인 사상구조의 골격은 삼국시대 부터 2천년동안 이어져 온 유교, 불교, 도교 사상이지만, 현대 한국인은 알지 못한다. 관심도 없다. 그 근원을 대충이라도 살펴보자.
춘추 전국시대는 춘추시대 (BC 770~403년)과 전국시대 (BC 403~221년)으로 나뉜다. 242년동안 481번의 전쟁이 일어난 시기이도 하다. 흔히들 이 시대의 200여명 사상가 중에서 대표적 사상을 구류십가 (九流十家)라고 하며, 유가, 도가, 음향가, 법가, 명가, 묵가, 종횡가, 잡가, 농가 를 말한다.
유가(儒家)에는 춘추시대의 공자(BC 551~479), 전국시대의 맹자 (BC 372 ~289년), 순자 (BC 298~238년) 가 해당한다. 유교의 시조인 공자 사상은 인(仁)의 사상, 즉 인(仁)은 <사랑>을 말한다. <박애(博愛)> 사상, <경인(敬人)>사상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부처의 자비(慈悲) 사상이나 예수의 사랑 (博愛)과 다른 점은 종교적 내세(來世)와 연결된 사랑이 아니라, 오로지 현생(現生)의 삶과 사랑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유교, 유가 사상은 신을 믿는 종교로 분류하지 않는 이유다. 공자는 사랑을 임신한 여성(身)이 자궁에 품고 있는 자식에 대한 사랑(心)과 같다고 정의한다. 이러한 사랑은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인 자애(慈愛)로 시작하여, 형제, 가정, 사회, 국가, 인류로 점점 확장되는 것이다. 공자의 정치는 덕치(德治)를 강조한다. 재물을 아껴 백성을 편하게 하는 것이 덕치라는 것이다. <계강자>의 형벌을 강화하여 부국강병하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유가의 핵심사상은 <수기치인 (修己治人)>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후에 남을 다스리는 것을 위정자의 덕목으로 가르친다. 우리가 아는 대표적인 표어인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修身齋家 治國平天下)>가 여기서 유래한다. 맹자의 <수기(修己)>는 성선설(性善說) 에 입각하여 ‘개개인의 선천적 도덕성을 신뢰하여 그것을 정직하게 신장하려고 노력하는 일’로 정의한다. 그래서 자신의 도덕성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사람을 군자(君子)라 존경하고, 그렇치 않은 사람을 소인배(小人輩)라고 배척한다.
치인(治人), 치자(治者)는 백성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자로서, 어떻게 백성을 다스릴까 하는 학문이 유학(儒學)이다. 즉 사람을 다스리는 일이 학문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교가 불교의 ‘누구나 스스로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가 되어 극락왕생 하는 것’과 기독교의 ‘각자가 믿고 구원받으면 누구나 천국에 가는 것’ 등, 신과 천국을 믿는 여타 종교와의 대표적 차이점이다. 그렇다고 하늘님(창조주)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늘은 인간을 포함한 만물을 낳고, 그 피조물을 지배하는 영원불멸의 법칙을 인정한다. 인간은 하늘의 법칙성을 내재하고 있으므로, 그 하늘의 법칙을 깨닫고 달성하는 것이 인간의 목적이라고 하였다.
성선설(性善說)의 맹자는 인간의 마음에는 <사덕(四德) 사상>, 즉 인(仁),의(義), 예(禮), 지(智)의 싹(四端)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맹자의 인(仁)은 공자의 사랑하는 마음(仁)의 사상을 세분화 하였다. <인(仁)>은 측은한 마음 (惻隱之心)으로 ‘남의 어려운 처지를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는 마음’을 말하며, 예수의 사랑(Love)과 긍휼한 마음 (Compassion)과 일맥상통 한다. <의(義)>는 불의불선(不義不善)을 부끄럽게 여기며, 수오(羞惡)하는 증오의 마음을 말한다. <예(禮)>는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사양의 마음이며, <지(智)>는 선악시비(善惡是非)를 판단하는 시비의 마음을 말한다.
또 오륜(五倫)사상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부자유친 (父子有親 – 부모는 자식에게 인자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존경과 섬김을 다하라), 군신유의 (君臣有義 –군신관계는 의리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부부유별 (夫婦有別 – 부부 간에는 서로의 구별이 있어 각자의 도리와 직분을 다 하고, 서로를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 장유유서 (長幼有序 – 어른과 아랫사람의 사이의 도리는 엄격한 차례가 있고, 복종해야 할 질서가 있다), 붕우유신 (朋友有信 – 벗과 벗 사이의 도리는 서로간의 믿음에 있다). 현대인도 지켜야 할 주옥같은 가르침이다. 또 하늘의 소리는 곧 백성의 소리라 하여 민본주의 사상을 말했고, 통치자는 민생의 안정을 꾀하고, 도덕교육을 행하여 인륜을 가르치면, 백성들은 기뻐하여 따른다고 하여 <왕도(王道)정치> 혹은 <인정 (仁政)정치>를 주장한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백성들, 환(홀아비), 과 (과부), 고 (고아), 독 (독거노인)을 먼저 보살펴야 한다는 구민(救民)사상이다.
반면에 전국시대 말기의 순자의 핵심사상은 <예(禮)>다. 사람의 본성은 악하여 (性惡說), 태어날 때부터 이익을 구하고 서로 질투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예의를 배우고 정신을 수련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화성기위 (化性起僞)> -본성을 변화시켜 인위를 일으킨다는 명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나눔의 정치, 덕치주의를 함과 동시에 <법치주의>를 강조했다.
–
한국과 중국의 사상 변화 (04-26-2019)
요즘 <작은 것들을 위한 시>로 세계 음반 차트를 석권하는 한국의 자랑 ! 방탄 소년단 BTS의 새 앨범 <Map of the Soul – Persona>는 분석 심리학의 아버지 칼 융의 이론을 정리한 스타인 박사의 책 <융의 영혼의 지도>에서 제작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페르소나 (Persona)는 “배우가 무대 위에 설 때 쓰는 가면” 이라는 라틴어다. 즉 인간은 공공장소에 나가면 일종의 가면을 쓰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는 타인과 잘 어울리고 싶어하고, 예의를 지키며, 조직의 일원이 되고 싶어한다. 이 논거는 동양 유가 사상의 근본이다. BTS의 <Map of Soul> 가사에는 “나는 누구인가, 평생 물어온 질문, 아마 평생 정답은 찾지 못할 그 질문”은 우리 자신이 무대의 페르소나에 갇혀 있는 동시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찾고 싶다는 갈망이다.
<사회적 가면>의 모습과 <참된 나>를 찾는 모순의 반복과정이 삶의 과정이다. 특히 현대 젊은이들은 자신이 페르소나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스스로를 사회 부적격 인물로 격하하거나 비관하며, 극한적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상반된 아픔이 병존한다. 그래서 BTS가 내면의 갈등에 신음하는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키는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지구별에 사는 동안 모든 인류의 공통된 질문이다. 의심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한반도 역사에서 한국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상은 <유가(儒家) 사상>이 아닐까? 사대주의도 아니고 종속논리도 아니다. 지정학적, 역사학적 측면에서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먼저 한반도 유교는 삼국시대 부터 시작되었다면, 중국 유가 사상가들과 년대별로만 비교 관찰해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고조선의 원조인 단군조선 (?~ BC 194년) -> 위만조선 (BC 194 ~ BC 108년)-> 고구려 (BC 37년 ~AC 668년), 백제 (BC 18년 ~ AC 660년), 신라 (BC 57년 ~ ), 가야 (AC 42~562년), 발해 (AC 698 ~926년), 통일신라 (AC 676년 ~935 년), 고려 (918 ~1392년), 조선 (1392년 ~191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1919년 ~1945년), 대한민국 (1948년 ~현재) 동안 유가사상은 이어진다.
고조선 이래 한민족의 영토는 요동반도를 포함한 중국 동북지역, 만주지역, 러시아 연해주, 몽골 동부, 한반도가 전부 였다. 반만년 한반도 역사에서 외세에 종속되면 한민족 영토는 점점 줄어들었다. 신라와 당나라, 고려와 원나라, 조선과 명나라가 그러했고, 해방후 미군정 신탁통치로 한반도 마져 두동강이가 되었다. 해방 이전까지는 한민족의 주된 사상은 불교와 유가 사상이 주류였다. 그러다가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면서 법률과 정치는 불교와 유교 사상과는 무관한 서구 사상으로 급전환 한다. 여기다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 사상이 전파되면서 친일파들은 친미파가 되고, 친미파는 보수 기독교 근본주의 사상으로 무장한다. 군사 독재정권은 기독교 세력을 보수 극우세력으로 이용한다. 한국 현대사의 권력은 보수 기독교가 대세다. 여기다 자본주의, 배금주의, 신자유 무역주의, 세계화 등으로 한국인의 <고유 사상>은 사라지고, 동서양 철학과 사상이 혼합 변질되는 <혼란의 시대>를 한국인들은 살고 있는 것이다.
현대 중국도 민족 사상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드린다. 현대 중국은 <유가 사상>과 <법가 사상>이 양립한다. 공자는 BC 551년 ~479년 사람이다. 은나라, 주나라를 지나 춘추전국 시대 (BC 770~ 221년) 동안 200여명의 사상가들을 배출한다. 그래서 제자백가 (諸子百家) 시대, 혹은 백가쟁명(百家爭鳴) 시대라고도 한다. 서양의 고대 그리스 철학이 BC 635년 부터 시작으로, 소크라테스가 (BC 469 ~399년)이니까 이 시대가 고대 동서양 철학의 르네상스 시대다. 공자를 시작으로, 맹자, 노자, 묵자, 한비자, 장자, 순자 등 7명이 대표적 사상가다. 다음주 칼럼에서 좀더 상세히 다루기로 하자. 이후 유가사상은 극단적 탄압시대를 맞는다. 통일 진나라의 <분서갱유> 사건이 대표적이다. 유가 책을 모두 불 태우고, 유학생 460명을 살해하여 파묻은 사건이다. 그후 송나라 320년과 청나라 시대에는 유가 사상이 국가 최고 가치로 인정받는다.
그 후 중국에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1842년 <아편전쟁>, 1850년 <태평청국의 난>, 1912년 손문의 <삼민주의>, 1919년 5월4일 <신문화 운동>이 일어나면서 <공자 타도> 운동이 시작된다. 1949년 모택동의 중국이 건국되면서 유교 사상을 탄압한다. <문화대혁명> (1966년 ~1976년) 동안, 공자 타도, 지식인 탄압 등, 정치권력 투쟁과 사상의 암흑기를 거친다. 하지만 <등소평 시대>에 접어들면서 유교와 자본주의를 병행하고, 근면, 절약, 절욕 정신을 강조한다. 그 이후 <시진핑 시대>를 맞이하면서 <유교 부흥론>이 본격적으로 주창된다. 전세계에 138개 <공자 아카데미>를 만들어 <중화사상>을 전파한다. 시진핑은 연설에서 공자 어록을 자주 인용하고, 유가 학파들 초청강연을 권장한다. 그리하여 2021년까지 <소강사회>, 2049년 건국 100주년까지 세계 최강의 <부강사회>를 만들겠다고 주창한다. <공자의 유가>와 <한비자의 법가> 사상으로 전세계 중국인들의 사상을 단결시키겠다는 야심인 것이다.
–
한국인의 보편적 가치 (04-19-19)
혼란스런 작금의 한국 사회를 보면서 한국인의 사상과 철학은 무엇인가? 현대 한국인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며, 그들의 보편적 가치는 무엇인가? 라는 뜬금없는 생각을 갖게 된다. 주제가 너무 포괄적이고 광범위 할 뿐만 아니라 비전문 분야라서도 그렇지만,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이민사회, 또 자라나는 이민 2세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라도 한국인들의 사상과 철학, 보편적 가치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어서이다.
이서행 교수의 한국 사상 논문집 외 여러 문헌에서 인용함을 밝힌다. 특정 민족이나 국가의 사상은 오랜 역사를 통하여 공동생활을 하면서 만들어진 삶의 지혜요 민족적 동질성을 이어주는 것이다. 나라는 때로 힘에 의해 빼앗길 수도 있지만, 그 민족 정신은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다. 유럽은 근대화 과정에서 세계를 식민지화 하여 영토와 물질은 빼앗아 갔지만 그 민족의 정신문화는 바꿀 수 없었다. 몽고족과 만주족, 거란족과 여진족은 중국을 수백년간 지배했지만, 오히려 중국문화에 동화되어 만주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몽고제국은 후진국으로 생존하는 등의 역사적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한편 한민족은 일제 강점기로 나라를 통째로 빼앗겼지만, 한민족 고유의 민족 정신과 사상과 문화가 계승 발전되었기에 오늘날의 한국이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미소 강대국의 이데오르기 최종 희생국으로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우리 민족의 힘으로 통일된 국가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 특히 지난주 4월13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1차 한인연합회의>100주년 기념 집회는 그 의미가 상당하다. 지역 한인 단체가 일심 단결하여 한민족의 주체성을 널리 알린 것은 가히 칭찬받을 행사였다. 다만 3.1운동 이후의 재미 한인 지도자들의 역사적 행적을 알아야 한다. 3.1 운동 후 임시정부 시절 재미동포 후원금만 제대로 전달 지원 되었다면 일본 패망후 미소가 신탁통치 운운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승만의 권력욕과 사리욕으로 미주 동포 지원금이 중단된 것이다. 이후 임시정부 지도부는 각기 흩어지고 극도의 궁핍한 독립 투쟁을 겨우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국 특정 정권이나 지도자에 따라 좌고우면 할 것이 아니라, 해외 동포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한 목소리와 한가지 신념으로 뭉치고 지원해야 한다. 그것은 <한반도 평화통일>이다. 남북한은 하나다. 다시는 내 조국 땅에서 어떠한 전쟁도 일어나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하고 후세에게 반복해서 교육해야만 한다. 한국말과 한글과 한국 사상과 한국 문화를 모르고서 어떻게 한국인이라 자부할 수 있겠는가? 재미 기성세대들의 책임이 가히 무겁기만 하다.
그러면 과연 <고유>의 <한국 사상> 이란 실체가 있는가? <고유>라는 의미는 본디부터 있었다는 뜻이 아니며, 다른 것과 같으면서 다른 것과 구별되는, 다른 곳에서는 다시 없는 것을 <고유>라고 한다. <한국사상>은 동양사상과 서양 사상의 조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먼저 역사적으로 한민족 <사상교육>이 어떻게 변천되었는지 살펴보자.
- 고조선 : 건국이념과 단군신화와 홍익인간 사상
- 삼국시대 : 불교, 유교, 도교 사상
- 통일 신라시대 : 화랑도 정신, 유교, 불교, 도교(선교) 사상
- 고려시대 : 호국불교, 유교의 정주학과 사회 전반의 이념사상, 척불론과 척사위정론, 음향 도참 사상과 풍수지리설
- 조선시대 : 유학을 통치이념 (숭유정책), 성리학 (주자학), 양명학, 정약용의 경학사상, 동학사상,
- 일제 강점기 : 삼일운동 정신, 천도교, 기독교, 불교 사상.
- 해방후 민주주의와 민족주의 교육이념 (1945~1948년)
- 홍익인간 교육이념 정립 (1948~1961년)
- <국민교육헌장> 제정과 교육이념 재정립 (1961~1980년)
- 전인교육과 평생교육 이념의 확산 (1980~1992년)
- 인성화, 정보화, 세계화 교육 (1992년 이후) 로 구분할 수 있다.
결국 한국인의 사상과 철학은 홍익인간의 <인내천> 사상을 바탕으로, – <고대 중국철학> (공자로 시작되는 유가, 도가, 묵가, 법가, 선종, 음향가) 중에서도 유가 사상이 골격을 이루고, – <고대 인도 불교 사상>이 오랜세월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다. -<고대 서양철학>은 다원주의, 소크라테스, 스토아 학파,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오니아 학파, 피타고라스 등 고대 철학의 전성시대를 맞는다. 한국인에게는 해방후 최근에야 교육되는 정도다. – <중세 서양 철학>의 <기독교 철학>은 아시안 국가 중에서는 유일하게 현대 한국인의 주류가 되고, 중세 <이슬람 철학>은 배척 당하는 특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 <근대철학>은 데카르트, 마르크스, 스피노자, 칸트, 헤겔 사상이 대표하고, 실존주의, 실증주의, 초월주의, 허무주의 등이 나타난다. -<현대철학>은 과학적 현실주의, 규범 윤리학, 도덕적 현실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현상학, 해석학 등이 대표된다.
위에서도 수많은 철학과 사상, 종교들이 언급되었듯이, 한민족의 고유한 사상과 철학은 한두가지 사상과 종교가 지배할 수는 없는 것이다. 편협, 맹신이 되어서는 안된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사유하고 의심하면서 국민 각자 스스로의 가치관으로 정립해야만 하는 것이다.
–
변화와 도전 (04-12-2019)
산다는게 급변하는 사회 물결 속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세상만사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굳이 있다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그분의 말씀 뿐일 것이다. 불변은 신의 영역이다. 인간의 언어가 아니다. 문제는 변화의 속도다. 농경사회와 산업화 사회, 정보화 사회와 5G 초고속화 사회에서의 변화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5년뒤 내 나이가 70대로 접어들면 세상은 얼마나 변했을까? 긴장되고 기대되고 약간 설레이기 조차 하다. 하물며 지역사회의 맘엔팝 비지니스는 얼마나 급변할까? 어떤 업종이 살아남고 어떤 업종이 사라질까? 지금부터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그렇다고 급격한 변화의 두려움에 가만히 정지상태로 있다면 안전은 더욱 보장되지 않는다. 어찌보면 짧은 인생이다. 내 인생을 어떤 가치와 선택으로 살 것인가는 전적으로 나의 결정이다. 도전없이, 실패없이, 무사하고 안전하게 살았다고 잘 산 인생이라 자부할 수만은 없다.
인간은 누구나 성공하고 싶어한다. 부자가 되길 원한다. 행복하길 원한다. 성공의 가장 무서운 적은 두려움이다. 인간은 누구나 도전을 싫어한다. 도전 뒤에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망설이다가 좋은 기회를 놓친다. 머뭇거리고 머리속으로 고민만 하다가 실행 한번 해보지 못하고 끝나는 것이다. 도전하지 않았으므로 두려움도 없지만 당연히 성공하지도 못한다. 윌리엄 베넷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성공의 대부분을 망설이고 머뭇거리고 주저하고 동요하는 가운데 놓치고 만다”고 했다. 일본의 3대 경영의 신이라고 일컫는 혼다 소이치로는 “혼다의 성공원인은 기술도 아니고 자본도 아니고 오직 꿈을 가질 것, 끊임없이 도전할 것, 어떤 일이 있어도 그 꿈을 단념하지 말 것 이것이 혼다의 정신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은 은퇴를 하거나 생을 마감하면서 본인은 아무런 실수 없이 실패도 없이 무사히 마감함을 자랑스럽게 말한다 하지만 혼다 소이치로는 수 많은 실수와 실패를 했지만 언제나 더 나아지려고 노력했다고 말하며 그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한다.
<변화>는 개인이나 국가가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겪어야 할 의식화 초기 단계인 것이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미래에도 변화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변화’의 반대 아젠다는 ‘안정’이다. 변화와 안정은 서로 상충한다. 변화에는 많은 위험요소가 있으며 그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변화를 함으로써 향후 어떠한 어려움이나 위기를 직면할 지 모르기 때문이며, 그 미래를 과거 경험상으로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흔히들 우스개 소리로 변화에 대한 반응 형태를 이야기 한다.
돌다리를 두들겨 보지도 않고 건너는 불도저형, 돌다리를 두들겨 보면서 건너는 신속추진형, 돌다리를 두들겨보고 되돌아 와서 심사 숙고한 다음 건너는 신중형, 돌다리를 두들겨 보고 건너지 않는 소심형, 돌다리를 두들겨 볼 생각조차 않는 은둔형 등이다. 당신은 어디에 해당하는가?
최고의 동기 부여가인 지그 지글러는 행동하는 사람 2%가 행동하지 않는 사람 98%를 지배한다고 했다. 폴 마이어는 생각하고 말만하는 사람이 97%이며 행동하는 사람이 3%라고 했다. 사상 이론가나 이념 논쟁가들이 부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동의 신념학>에서는
- 반드시 변해야 한다.
- 내 스스로가 그것을 바꾸어야 한다.
- 나는 그것을 바꿀 수 있다.
위의 세가지 신념이 필요한데 여기서 <반드시>는 <확고한 목표>이며, <내 스스로>는 <변화주체>이고,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나폴레옹 힐이 쓴「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에서 가난에서 어떻게 벗어나 부자가 될지는 모르더라도 가난에서 반드시 벗어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부자의 첫 걸음이라고 한다. 가난은 만성이 되기 쉬운 병이다.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치욕이 아니지만 그 가난이라는 유산을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 들이는 것은 명백한 치욕이라는 것이다. 자유와 기회의 땅에서 두려움이라는 장애물 때문에 자포자기 한다면 자신과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에게 가난이라는 질병을 되물림 하는 것이다.
부자가 되거나, 실패하여 가난한 자가 되는 것은 삶의 결과물이다. 삶은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 부자라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가난하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다. 행복은 삶의 과정에서 결정되는 것이지, 삶의 결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민의 삶이 뭐 그리 만만한 삶인가? 먹고 사는 일이 결코 단순하지도 만만하지도 않다. 반복되는 변화 속에서 도전해야만 한다. 그러면서 부부가 오손도손, 가족들이 화목하게 열심히 사는 것이다. 그것이 소시민적 삶이고 행복이다. <목표>도 없이, <도전>도 해 보지도 않고, 그냥 그대로 살다가 가는 인생이어서야 되겠는가? 도전하다가 실패하면 어때? 실패하면 또 도전하고 그러다가 가난하게 인생을 마감하면 또 어때? 서로 사랑했으면 되고, 서로 행복했다고 자족하고 위로하며 생을 마감하면 잘 산 인생 아닌가?
–
내 마음의 정원 (04-05-2019)
아니 벌써? 봄은 와 버렸다.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봄은 기다리지 않고 내 가슴 속에 훌쩍 들어와 버렸다. 지난주만 해도 새벽 찬 공기가 출근길의 옷깃을 여미게 했는데.. 오늘 아침 다운타운 거리에는 반팔 차림의 행인들이 눈에 자주 띈다.
개나리가 피기 시작했고 나무마다 새순들이 고개를 내민다. 한국에는 진해 벚꽃이 이미 만개해 버렸으니 산과 들의 꽃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순서를 기다리겠지. 봄은 어김없이 찾아오건만, 내 마음은 언제나 굼뜨고 게으르다. 별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허구헌 날 쫓기듯 봄이 오시는 것도 모르고 바쁘게 산다. 메디케어인 나이에 언제까지 이렇게 허둥지둥 살려는지 걱정은 걱정이다.
봄님이 성큼 오셨으니 나도 집뜰의 봄맞이를 해야 한다. 그나저나 올봄에는 집 텃밭에 무엇을 심어야 하나? 작년에는 심기는 여러가지 많이 심었는데 수확이 별로였다. 상추, 대파, 쪽파, 부추, 방울토마토, 오이, 가지, 호박, 미나리, 백년초, 등등 .. 욕심은 많았는데 정성이 부족했나? 종자가 좋지 않았나? 비료를 너무 많이 주었나? 흙갈이를 안해서 그런가? 사랑이 부족했나? 이유가 뭐지?
나는 농사 이쪽 분야에는 정말 잼뱅이다. 평생동안 무엇이든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일을 해 본적이 없다. 경험도 없고 지식도 없는 무지렁이다. 자랑도 아니고 정말 창피한 노릇이다. 나는 전형적인 도시남이고 아내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았다. 내가 제일 취약한 과목이 식물도감이다. 나는 꽃이름, 나무이름, 풀이름 등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책을 읽어도 책 속의 나무나 꽃의 묘사들이 생소하다. 나는 산행을 하든, 산책을 하든, 나의 눈에는 그냥 빨간꽃, 노란꽃, 파랑꽃 하는 수준이다. 나와 마주 선 꽃들에게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니 그들은 나의 의미가 되지 못했다. 반면에 아내는 잎파리만 봐도 꽃이름이나 나무 이름을 알아 맞추는 경이로운(?) 수준이다. 나에게 몇번을 가르쳐줘도 나는 모른다. 나는 바보인게 분명하다.
봄이 되면 아내는 바빠진다. 정원 가꾸기, 화분 분갈이, 텃밭 가꾸기 등등.. 아내는 출근 전에, 퇴근 후에, 주말, 주일에 많은 시간을 이 식물들과 대화하고 할애한다. 봄이 시작되면 아내의 요구 사항이 많아지고 잔소리가 시작된다. 뿌리고 심고 가꾸고 거두고를 해야 한다. 나는 어디 숨을데도 없고 도망갈 곳도 없다. 나는 체념하고 아내의 몸종으로 이 봄을 맞아해야 한다.
정녕 손바닥만한 정원과 텃밭을 가꾸는 것도 봄, 여름, 가을 까지의 대사이거늘, <내 마음의 정원>은 어찌할거나? 그분께서는 <뿌린대로 거둔다>고 말씀하신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고도 말씀하신다. 올봄에는 내 마음의 정원에 무엇을 가꿀 것인가? 무엇보다 첫번째 중요한 일은 내 <마음밭>에 <무엇을 뿌릴 것인가?> 이다. 씨앗이 중요하다. 종자가 건강하고 성분이 좋아야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지식과 정보가 흘러 넘친다. 현대인의 삶은 <취사선택>이다. <선택과 집중>이다. 선택한 종자가 정의롭지 못하고 편협되면 나의 마음밭에서 크는 꽃과 나무들은 병든 고집쟁이 늙은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종자의 선택은 분명 나의 <자유의지>다.
두번째 중요한 일은 마음밭의 <토양과 토질>이다. 비옥하고 기름진 땅이어야 잘 자랄 것이다. 올해는 동양 고전을 좀더 읽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겠다. 핸드폰 보는 시간이 많아지고, 퇴근 후에는 TV 프로 한개를 보면 하루를 후딱 마감한다. 주말과 주일은 이런저런 일정으로 또 그렇게 일주일이 후다닥 지나가는 것이다. 토양이 메마르고 건조하면 아무리 좋은 씨앗을 심어도 잘 자라지 못할 것은 당연하다.
세번째 중요한 일은 <가꾸기>다. <돌봄>이다. 햇빛과 바람과 빗물은 그분께서 주시는 은혜라면, 나는 사랑과 정성으로 돌보아야 한다. 잡초를 뽑아내고, 물이 부족하면 물을 충분히 뿌려주어야 한다. 다른 동물들이 먹지 않토록 철망도 쳐 주어야 하고, 받침대도 세워 주어야 한다. 열매를 잘 맺을 수 있도록 잘 솎아내고 가지치기도 해야 한다.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는 “신앙의 열매는 순종이다” 라고 말한다. 튼실한 열매가 맺히든, 부족한 열매가 맺히든, 열매의 결과는 그분의 결정일뿐, 우리는 <날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가꾸고 보살피는거라고 .. 삶의 과정이 진실하고 최선을 다 했다면 그것으로 족한게지, 그분도 그런 모습이 흡족 하신게지.. 그렇다. <결과>는 그분의 것이다. 모두가 순종하는 사람들이라고 모두가 원하는 열매를 얻을 수는 없는게지. 가난, 실패, 낙오, 절망, 포기 같은 단어들은 사람들의 단어지. 내 인생의 열매는 내 삶의 과정이 아닐까? 내 스스로에게 덜 부끄러운, 덜 미안한, 덜 게으른.., 그래서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열심히, 더 정의롭게, 더 자유롭게 산 삶이었다고 말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강>에서 인용한다. “나는 콩코드 강둑 위에 서서 모든 진보의 상징인 강물의 흐름을 바라보며, 우주와 시간과 피조물이 따르는 같은 법칙에 대해 생각해 보곤 했다. ~~ 나는 이 강이 나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든 그 물결의 가슴팍 위에 띄워 보낼 결심을 했다.”
–
부끄러움이 상실된 사회 (03-29-2019)
요즘 대한민국을 보면 <부끄러움>이 상실된 사회와 같다. 30대도 아닌 20대의 새파란 젊은이들이 세계적 아이돌이라는 한류 열풍으로 돈과 부귀와 영예를 얻은 것도 모자라서, 여성들을 성 노리개로 강간하고, 성폭행 장면들을 촬영해서 인터넷에 유포하고, 마약을 유통하고, 해외 자금을 유입해 불법 자금으로 세탁하고.., 이런 일련의 모든 과정을 경찰, 검찰, 정치 권력과 야합하여 범죄 행위들을 무마히고 탈세하고 상납하는 총체적 범죄집단들이라면 민중들은 어떻게 심판하여야 하나?
사회지도층이라는, 법무부 차관까지 지냈던 자의 수치스런 특수 성강간 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묻혀질 사건인가? 피해자에게 평생의 상처를 남기고, 자신의 명예가 땅에 떨어져 자식과 가족에게 부끄러운 애비라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용서받지 못할 놈들이 대한민국 국민을 기만하다니.. 비단 이런 사례만 있겠는가? 한국 근대사에 해방 이후 부지기수의 수많은 파렴치한 사건들이 있었고, 있었을 것이다.
왜 이토록 대한민국 민중들은 너나 없이 타락하고 변질되었을까? 한마디로 <가치관의 상실>이다. <가치관의 변질>이다. 도무지 <부끄러움>을 모른다. <부끄러움>을 가르치지 않았고, <부끄러움>을 반성하지 않았고, <부끄러움>을 심판하지 않았다. 오히려 역사의 <부끄러운 자>들이 민중들을 심판하고 탄압했다. <역사의 죄인>들이 더 잘 살고, 출세하여 권력을 잡고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역사의 죄인>들은 독재와 <빨갱이>라는 이념몰이로 민중들을 겁박하고 대량 학살했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민중들은 살아남기 위해 침묵 했어야만 했다. 역사의 현장을 보고도 못본 채, 들어도 못들은 채, 입이 있어도 입을 다문 채 살아야 했다. 언론의 자유는 차단되었고, 거짓 언론들의 횡포로 민중은 무지해 갔다. 무지한 민중은 <비판의식>이 상실된다. 주면 주는대로 , 하라면 하라는 대로, 권력의 개 돼지가 되는 것이다. <나는 모르지~>라는 역사의 방관자 내지는 침묵자는 스스로 삶의 가치관을 상실케 된다. 그 민중들 중에서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자들이 입십양명 (立身揚名), 출세하고 부자가 되기 위해 독재 권력층의 <미친개>가 되거나 <노예>가 된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민중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각자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면 그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가 되었겠는가?
<부끄러움>이 상실된 사회는 <거짓돤 사회>다. 부끄러움 (Shame)의 어원은 독일어 skam에서 유래하였으며, 수치심 (sense of shame), 창피를 당하다 (being shamed), 불명예 (schande)를 의미한다. 부끄러움의 본질은 덮다(cover), 가리다 (veil), 숨기다 (hide)를 내포하고 있다. 자존심이 손상된 심각한 상태를 굴욕감 (mortification), 가벼운 상태를 무시당함 (being put down), 조소당함 (being ridiculed) 등이 있다. 부끄러움의 반대 용어는 자긍심(pride), 자존감 (self esteem), 명예심 (honor), 위엄감 (dignity), 존경감 (respect) 등이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부끄러움>을 숨기지 않는다. 아니 <부끄러움>이 사라졌다.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나도나도 부끄러운 자들이었기에, 부끄러운 짓을 해도 처벌받지 않았기에, 부끄러운 자들이 사회의 지도층이고 권력층이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잘 살면 되는 사회이기에, <부끄러움>을 가르치지 않는 <부끄러운 사회>가 된 것이다. 민중이 부끄러운 짓을 하면 국가는 엄정한 <법률>로 심판해야 하고, 가정과 사회에서는 야단칠 <어른>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국가 지도층>과 <어른>이 부끄러운 짓을 하면 어떻게 국가와 가정의 기강이 바로 서겠는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부끄러운 사례가 <성매매업>이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의 딸들을 <일본군 위안부>로 차출하여 강제연행한 자들은 일본인 경찰이 아니라, 일본 경찰 끄나풀들인 조선인들이었다. 그들이 이승만 독재정권의 한국 경찰의 원조들이다. 해방후 미군정시대가 시작되자, 남한 지역의 모든 미군 기지에는 <미군 위안부> 집단 창녀촌이 만들어졌으며, 오늘날까지 현존하고 있다. 남한의 딸들이 미군에게 몸팔아서 받은 달러를 환치기로 쓸어간 자들이 박정희 독재정권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도시 곳곳에 <집단 창녀촌>을 만들어서 성매매를 묵인 방조했다. 도시 기차역 마다 창녀촌이 있었으니 과연 가난한 남한의 딸들을 위한 국가의 궁여지책이었는가? 북한에 집단 창녀촌이 있다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그러면 지금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된 대한민국의 성매매 시장은 어떠한가? 1980, 1990년대 술집 유흥업소 성매매 시장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온라인 성매매, 성유사 행위 업소 등등. 그 숫자와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대한민국 민중들을 모두 성 범죄자로 만들려고 그러는가? 다수가 그러하면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처사인가? 스스로 죄를 짓고, 스스로 죄를 사함 받았다고 자위하고, 스스로를 용서하는 기독교인을 하나님은 용서하실까? 누구나 인간이면 죄를 지을 수 있다. 아니 죄를 짓는다. 하지만 죄인이면 부끄러워 해야 한다. 평생을 참회하고, 피해자와 그분께 용서를 구하면서 낮은 자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다. 그래도 그분께서 용서하실까 말까 하시는데.. 감히?
–
힘을 기르소서 (03-22-2019)
1970년대 초 나의 고등학부 시절에 영향력을 크게 준 단체가 <흥사단 아카데미> 이었다. 교복 가슴에 <기러기> 문양의 배지를 달고 안병욱 교수, 김형석 교수 등의 시국강연을 듣고는 큰 감명을 받았다. 흥사단 선배들과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상을 학습하고 토론하며, 국가관, 사상관, 민족관, 생활관의 기초 토양을 다질 수 있었다.
도산의 사상은 크게 네가지다. <실력 양성론>과 <거짓 망국론>, 그리고 <대공주의 (大公主義)>와 <교육 입국론>이다. 도산의 밑바당에는 유교 성리학과 기독교 예수의 가르침이 깔려 있다. 도산의 <실력 양성론>은 <힘의 철학>이다. 민족이 자주 독립하고 자주 국방하기 위해서는 <자강>하여야 하고, <자강 자립>하기 위해서는 <민중의 힘>을 길러야 한다. 민중의 힘은 곧 <교육>이라는 것이다. “힘을 기르소서, 힘을 기르소서, 이것 뿐이외다. 돌배 나무에서는 돌배가 나고, 참배 나무에서는 참배가 열리나니, 스스로의 힘을 기르소서.”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말이다.
일제 강점기 시대, 특히 1920년대 이후 임시정부 독립운동사는 사상 이념 분열의 투쟁장이었다.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극심한 이념 대립, 노선갈등, 계파, 파벌 갈등이 극심하였다. 하기야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조선반도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흥사단>은 1913년 안창호 선생이 세운 <청년 학우회>와 유길준이 세운 <흥사단>을 합쳐서 재건한 단체다. <청년들의 사상 계몽> 운동과 <민족운동의 간부 양성화> 목적으로 미국에 본부를 둔 훈련단체였다. 이미 1910년 미주한인회는 <대한인 국민회>가 조직되었지만, 박용만과 이승만의 노선 갈등으로 한인사회의 독립운동은 크게 4대 파벌이 존재했다. <무력독립>의 박용만, <외교 우선>의 이승만, <민족 개조론>의 안창호, <조선독립 회의론>의 서재필로 나뉘어지며 운동 노선도 달랐다. 서재필은 1918년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공표와 조선의 <3.1운동> 이후, 1919년4월13일 필라델피아에서 <제1차 한인연합회의>를 주최한다. 이런 사례의 갈등은 <상해 임시정부>의 이승만, 이동휘, 김구 노선 갈등 에서도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그 이념, 노선, 계파 갈등이 지금까지 남한과 북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보수 꼴통과 좌익 빨갱이, 친일파와 친미파, 그 내부에서 친박, 반박, 비박, 절박, 광박.. 거기다 기독교와 비기독교, 기독교 내에서도 여러 종파가 .. 정말 조선민중은 <3.1운동>후 일백년동안 별반 달라진게 없는 대단한 민족이다.
그래서 도산 안창호 선생은 민중 각자가 <힘>을 길러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한 <거짓 망국론>을 걱정하셨다. 안창호 선생은 한국인들의 거짓, 사기, 부정이 나라를 망국으로 몰고 갔다고 보았다. “아아, 거짓이여. 너는 내 나라를 죽인 원수로구나. 군부의 원수는 불공대천(- 한 하늘 아래서는 같이 살 수 없는 원수)이라 했으니, 내 평생에 다시는 거짓말을 아니 하리라.” “거짓이 협잡을 낳고, 협잡이 불신을 낳고, 불신에서 모든 불행이 생긴다. 죽는 한이 있어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 심지어 농담으로도, 꿈에라도 거짓말을 했거든 깊이 뉘어쳐야 한다. 거짓이 조선을 망친 원수다. 각 개인의 가슴 가운데 정직과 진실을 간직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모든게 <거짓된 사회>다. 근,현대사 역사도 거짓이고, 사회 모든 분야가 거짓말 투성이다. 정치, 법조, 행정, 경제, 학계, 언론, 종교.. 거짓 아닌 분야가 어디인가? 민중을 속이고 국법을 부정하고 기만하여 권력을 쟁취하고 재산을 축적한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 일컫는 사회다. 부정부패한 자가, 나라를 팔아먹은 자가 더 큰소리 치는 사회다. 역사의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기는 커녕 점점 더 부패와 거짓이 심해진다. 이러다가 멀지않아 또 망국(亡國), 국치(國恥)를 당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는가? 친미, 친일, 친중, 친러? 강대국이 그렇게 만만한가? 무슨 창녀같은 술주정인가?
안창호 선생은 당리나 이념보다 사회전반의 이익을 우선으로 했다. 민족평등, 정치평등, 경제평등, 교육평등 이라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선호했던 이상주의자였는지 모른다. 그는 학생들에게 성실과 진실을 요구했다. “저마다 <참(誠)>의 공부를 하자. 온 국민이 진실한 인간이 되기를 힘쓰자. 그것이 곧 나라를 구하는 길이다”라고 강조하셨다. 1927년 선생의 <대공주의(大公主義)>는 이념, 계파, 파벌을 떠나 조국과 독립을 위해 헌신하자는 것이며, 공적인 것을 위해 사적인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금회령을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공무원은 인민의 사복(私僕)이 아니라 공복(公僕)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1922년 국민대표회 연설에서는 민족이 대동단결 하기 위해서는 첫째 과거의 감정을 망각할 것, 둘째는 피아(彼我)를 일시동인(一視同仁) 할 것, 세째는 공평정직 할 것, 네째, 흉금을 피력할 것, 다섯째, 공결(公決)에 열복(悅服)할 것(공적 결정에 기쁘게 따를것)을 말씀하셨다. 이제는 조선 민중 모두 모두가 달라져야 한다. 공부하고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말고, 각자 모두가 힘을 길러야 한다. 거짓을 털어버리고 진실되고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한다. 국민 각자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공익과 정의를 위해 일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고 용서해야 한다. 이것이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상이다.
–
무산계급의 지식인 (03-15-2019)
현대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심축 중 하나가 <지식인> 그룹이다. 일명 오피니언 그룹이라고도 한다. 우리 세대가 성장할 때 우리 각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들은 초.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이었고, <대학 교수님>들이었다. 비록 그분들은 박봉으로 경제적 서민층에 속하였지만, 젊은이들은 그분들의 말씀하시는 담론들이 인생의 지표가 되었고 또 그렇게 살고자 노력했다. 그분들은 우리의 <멘토>이자,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교권이 무너지고 학생들의 존경심은 사라졌다.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 마다 언론 패널로 나오는 교수들의 예지력과 분석력은 거짓되고 권위를 잃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지식인>그룹이 분열되고 무너져가는 느낌이다. 왜일까?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박노자 교수의 글 <한국 지식인은 이미 죽었다>에서 일부 인용함을 밝힌다. 20세기 과거 한국 지식인이 생산하는 담론과 그 지식인의 삶 사이의 괴리는 상당했다. 그러나 적어도 ‘배운 사람’들로 하여금 ‘현장’으로 눈을 돌리게끔 하는 것은 이런 당위적 지식인의 초상이었다. 그런데 20세기 지식인 계층은 노동계급처럼 분열되고 말았다. 지식의 착취 공장, 한국 대학의 피라미드를 뒷받침하는 시간 강사와 비정년 교수, 연구자들은 말 그대로 <지식 무산 계급>으로 재편됐다. 근대적 지식인은 한국의 20세기 역사가 만들어놓은 중요한 발명이었고, 20세기 역사의 주역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 누구를 여전히 ‘지식인’이라 호명할 수 있을까?
한국의 ‘지식인’은 러시아어의 ‘인텔리겐치아 (intelligentsiya)’의 번역어다. 자본주의 발달을 주도하는 구미권 핵심부 국가에서의 지식 기술자, 즉 인텔렉추얼 (intellectual) 계층은 국가와 자본과의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으며 그 성향상 자유주의적이거나 보수적이었다. 인텔리겐치아라는 개념은 서구의 ‘인텔렉추얼’보다 동아시아의 <이민위천(以民爲天)-백성을 생각하기를 하늘처럼 여긴다>의 지사(志士)에 더 가까웠으며, 그만큼 ‘지식인’으로 번역되어 한국 사회에서 쉽게 뿌리를 내렸다.
192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역사적 조건은 크게 달라졌지만 그 70여년간 한반도 땅에서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은 대체로 엇비슷한 함의를 계속 지녔다. 지식인은 좁게는 민족이나 계급을, 넓게는 인류를 시야에 놓은 <사상분자>이고, 민족, 아니면 인류 보편의 이해나 원리원칙에 거역하는 지배자들에게 저항을 해야 하는 주체였다. 지식인은 <운동>의 장에서 <대중>을 만났고, 늘 <현장>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의 변화가 찾아왔다. 문민정부 출발과 함께 군 출신들이 정부의 요직에서 대거 물러나게 되고, 이렇게 해서 비워진 자리를 채운 것은 바로 <학벌 좋은 지식인>이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절에는 아예 운동 사회의 일부 지도층까지 정부 요직에 흡수되었고, 그만큼 그들이나 그 출신 단체들이 주류화, 보수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의 부동산 경기 호황 시절에는 일단 집을 보유한 기존 지식인 상당수는 보유 자산 가치의 엄청난 인상을 봤고, 사회적 위치 차원에서 단순한 ‘지식 노동자’에서 중간계층이나 그 이상으로 <계급> 상향 이동을 했다.
신자유주의화를 경험한 대학은 착취 공장으로 변모했다. 4년제 대학의 정규직 교원 수는 5년 전에는 6만4천명, 작년에는 6만8천명으로, 거의 늘지 않는다. 그런데 일년간 박사학위를 새로이 취득한 이들은 1만명 이상이다. 이들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지난 20년 사이에 공장이 각종 비정규직의 ‘종합세트’가 됐듯이 대학도 <무늬만 교수>의 왕국이 됐다. 강의 전임교수, 산학 협력교수, 교양교수, 연구교수, 비정년 트랙 교수, 겸임교수, 계약교수… 새로운 직급을 나타내는 신조어는 다양하지만 의미는 매한가지다. ‘배운 사람’으로 하여금 “찍소리도 못하게” 해놓고 정규직보다 훨씬 더 적은 연봉을 주면서(대개 3500만원도 안 된다) 싼값에 지식 노동을 착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과연 <사회 참여>할 엄두를 내기가 쉽겠는가?
이렇게 해서 지식인 계층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계급처럼 분열되고 말았다. 지식의 착취 공장, 한국 대학의 피라미드를 뒷받침하는 <지식 무산 계급>으로 재편됐다. 조금이라도 윗사람이나 소속기관에 저항했던 비정규직 연구자들의 블랙리스트는 정권이 아무리 교체돼도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지식 무산 계급’이 투쟁의 현장으로 나가기는 지난한 일이다. ‘지식 무산 계급’을 관리하면서 그 노동의 일부 과실을 착취하는 ‘지식 기술자’, 즉 전임교원들은 이제는 대개 부유한 집안의 자제로 충원된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사회의 문제와 거리가 멀다. 그리고 맨 위에서 대학과 연구자 사회를 총지휘하는 ‘고급 지식 관리자’들의 대부분은 도미 유학파 출신으로 신자유주의의 적극적인 신봉자들이다. 오늘날의 속칭 ‘헬조선’을 만드는 데에 앞장선 그들이다.
인텔리겐치아는 죽고, 서구형 인텔렉추얼을 지향하는 <지식 기술자>나 <관리자>, 그리고 그들이 착취하는 <지식 무산 계급>만이 남아 있다. 그만큼 한국 사회의 피해자들은 <배운 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필요한 부분을 스스로 배워나가면서 이 나라를 지옥으로 만든 신자유주의 체제와의 투쟁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 비정규직 노동자임을 깨달은 <지식 무산 계급>의 일부 역시 언젠가 난관을 뚫어 이 투쟁에 크게 보탤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의 <무산계급 지식인>들이여, 민중들을 깨워 나서자!
–
조선의 민중들아, 깨어나자! (03-08-2019)
2월28일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었다. 온 민족이 기다렸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결렬된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었는가? 나는 굴욕적이고 치욕스런 느낌이었다. 정상국가 간에 이미 협정서까지 합의된 마당에 서명 당일 날 일방적으로 결렬시키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북한 김정은이 결렬 시켰을까? 가식과 위선 덩어리인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결렬한 것이다. 강대국은 철저한 자국 우선주의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그 누구도 조선의 평화와 통일을 내심 원하지 않는다.
내 나라 내 땅에서 다시는 어떠한 전쟁도 허용하지 않겠다고 만천하에 공표하는데 왜 미국이 협정 당사자이자 주최국이 되어야 하는가? 대한민국은 진정한 자주 독립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시 작전권이 미국의 손에 있는데 무슨 자주 독립국인가? 민중의 굶주린 배를 해결한다고 미국과 일본에 몸을 팔고 영혼을 판, 빌어먹은 나라가 남한이다. 남조선 땅에 미국이라는 조폭을 끌어들여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미국 덕분에 좀더 잘 살고 좀더 배불리 먹을 수는 있었을지언정, 대한민국은 주권과 정의가 없어진 것이다. 해방이 된지 74년이 되었지만, 친일청산 조차 되지 못했다. 아니 하지 못했다. 미국의 비호를 받고 있는 친일파와 역사의 부역자들은 현 대한민국의 실세들이자 기득권들이다. 대한민국 모든 분야를 그들이 장악하여 오늘날 까지 혹세무민(惑世誣民) 하고 민중을 개 돼지로 만들고 있다. 민중이 깨어나야 한다.
이미 2018년 8월27일 부터 한국 현대사 칼럼 10편을 쓰면서 1945년 해방 전후 부터 한국전쟁 휴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바 있다. 우리 세대는 왜곡된 역사 교과서로 왜곡된 역사관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미군정은 친일파들과 보수 기독교를 앞장 세워 이승만 독재 정권을 비호했다. 이승만 독재정권은 정권 유지를 위해 항일 독립투사들을 죽이고, 종북 빨갱이 이념 프레임으로 수많은 남한 민중들을 죽였다. 박정희 독재정권은 철천지 원수인 일본놈들에게 조선 민중들의 위안부, 강제노동자들의 몸값으로 이미 돈을 받아 썼다. 결코 받아서는 안되는 그 댓가로 지금까지 수모와 수치를 당하는 것이다.
반면에 북조선은 강대국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지는 않았다. 철저히 자립하여 스스로 국가와 민중을 지켜려 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독재를 택하고 권력을 독점하여 인민들을 탄압한 역사적 과오를 저질런 것이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누구도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핵무기를 개발하고 핵 미사일을 개발하였지만, 결국은 세계 열강들로부터 외면당하고 고립의 길을 자초한 것이다. 그 대가는 너무 참혹하다. 인민들은 굶어 죽게 되고 경제는 파탄났다. 미국과 일본이 전쟁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평화 보장만 해준다면, 핵을 포기하고, 인민들을 배불리 먹게하고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결코 무릎을 꿇거나 구걸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한 북한의 약점을 미국의 위정자들이 철저히 농락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변하지 않는 진실은 북한은 내 동포요, 내 형제다. 남들은 무엇이라 욕을 해도 내 형제는 내가 감싸 안아야 하고 도와 주어야 한다. 내 형제가 함께 잘 살아야 화합할 수 있다. 그래야 통일도 될 수 있다. 남한이 북한을 도와주는 것은 마냥 <퍼주기>가 아니다. 북한은 충분한 <투자 가치>가 있기 때문에 다른 강대국의 거대 자본이 선점하기 전에 남북한이 서로 <윈윈> 하자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다음날이 3.1절 100주년 기념날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지금까지 조선의 위정자들은 너나없이 대부분 부끄러운 자들이었다. 특히 일제 강점기 이후 지금까지 조선 반도를 이만큼 지킨 자들은 <민중>들이었고 < 촛불 혁명>이었다. 그 중에 으뜸이 <3.1 정신>이다. <3.1 정신>은 크게 세가지다. <자주>, <평등>, <동포애>다.
<자주>는 자주 독립이며, 자주 국방이다. 내가족, 내형제는 내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 무슨 득을 보자고 내 아내와 자식을 깡패들에게 맡기는 한심한 가장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 그게 우리다. 지구 상에 유일한 <분단 국가>, <냉전 이념의 찌꺼기 국가>가 남북한이다. 비교컨데 행사 주최국인 <베트남>이 부러웠다. <미소 이념> 전쟁으로 잿더미가 되었지만,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긴 <승전 국가>이자, <통일국가>이다. 월남, 월맹 형제간에 <용서와 치유>가 된 국가이다. 이제 <함께 잘사는>국가로 발전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월남보다 잘 살면 뭘 하고 잘났으면 뭘하나? 가족간에 형제간에 사랑하고 화목하고 평화롭게 살라는게 그분 말씀이다.
<3.1정신>은 <자주, 인도, 평화, 정의, 자유, 평등, 화합, 공존, 공영> 사상을 갖고 있다. 정말 최고 가치의 사상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의지하면> 못할게 무엇인가? 가족과 형제가 똘똘 뭉쳐 있는데 누가 감히 업신 여기며 겁탈하려 하겠는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어느 놈도 믿을 놈 없다. 반만년 역사에서 그렇게 당했으면서도 아직도 정신 못차리는가? 조선의 민중들아, <횃불>을 높이 들고 선조들이 역사의 구비구비 마다 이 땅을 지켜 왔듯이, 조선을 지켜야만 한다. <민중들아, 깨어나야 한다>
–
애기와 애기씨 (03-01-2019)
지금 칼럼을 쓰고 있는 내 책상 앞에는 만 5살의 <애기씨>가 앉아서 아이패드로 공부(?)를 하고 있다. 어제 만 11년만에 한국에서 큰딸이 자신과 꼭 닮은 손녀딸을 데리고 돌아온 것이다. 나에게는 자식 세명이 있는데, 유독 큰 딸에게 애잔한 마음의 빚을 지고 산다. 큰딸에게는 지금 손녀딸 나이인 만 5살때 부터 피아노를 가르쳤다. 절대음감으로 천재성이 있다 하여 그때부터 지금까지 32년 동안 피아노를 전공하게 한 것이 지금도 후회된다. 큰딸은 한국의 최고 예술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유명한 예술인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예상보다 많은 부모의 후원이 필요하고 그럴 자신도 있었다. 첫째딸도 둘째 딸도 예술을 전공했다. 그런데 큰딸이 고등학교 2학년떄 IMF로 사업이 파산하고 전재산을 잃었다. 무엇보다 딸들의 학비와 과외비를 지원할 수 없었다. 그것이 아무런 사전 지식이나 준비도 없이 무작정 미국 이민을 오게 된 결정적 이유였다.
별다른 자본도 없이 무작정 이민 온 가정의 혼란과 고통은 여러분도 익히 짐작하실 것이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불확실성이다. 이민 생활은 한번도 <가 보지 않은 길> 그 자체였다. 그 중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신분 문제>였다. 무작정 여행비자로 이민을 왔으니 신분 문제가 해결될 리가 만무했다. 그렇게 몇년을 헤매다가 겨우 E-2 비자를 받았다. 둘째와 세째는 원하는 미국의 교육 혜택을 받고 최고 학부까지 마칠 수 있었지만, 큰딸은 훌쩍 20세 성인이 되어 모든 혜택에서 제외되었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전락되어 버린 것이다. 대학을 다닐 수도 없고, 운전면허도 받을 수 없었다. 취직도 합법적으로 할 수 없었다. 미국의 모든 생활이 실타래 엉키듯이 엉멍진창이 되어 버렸다. 곧 불법체류자 구제조치가 나올 것이라던 변호사들의 위로는 허망한 허언에 지나지 않았다. 교회 반주자로 수년을 봉사하였지만, 일부 교인들의 수근거림과 무심코 던진 말들은 딸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이민올 때 거의 빈손으로 왔으니 단칸방 원룸 아파트에서 다섯 식구가 뒤엉켜 살았다. 아버지로서의 무능과 절망감으로 혼자 아파트 베란더에 나가 자주 술을 마셨다. 그럴 때면 큰딸은 아빠가 즐겨 듣던 피아노 소나타들을 말없이 치곤 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서 나도 울고 큰딸 아이도 울었으리라. 더 큰 잘못은 나의 무능과 죄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자식들에게 거칠한 언행, 이기적 아픔을 주었다는것이다. 세월이 흐른다고 씻겨질까? 그래서 나는 죽어도 죄인이다.
몇년이 지나도 딸아이의 신분 문제는 해결될 기미조차 없었다. 큰 딸아이는 한인 가게에서 안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큰딸은 편지 한장을 남겨둔채, 무일푼으로 한국으로 돌아갔다. 꼭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는 말과, 아빠를 사랑한다는, 아빠를 결코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 편지는 지금도 내 가슴에 화석이 되어 죽는 날까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살아도 사는게 아니었다. 그런데 혼자 한국 가서 대학교 졸업하고, 유명 대학원 피아노 교수학과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리고 선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예쁜 손녀 딸까지 낳았다. 그 손녀딸이 만 5살이 되던 날, 그 빌어먹을(?) 영주권이 기적같이 나왔다. 큰딸이 처음 미국에 온지 18년만에, 한국에 혼자 나간지 11년만에 영주권이 나온 것이다. 그 딸은 사위와 손녀딸과 함께 어제 미국 뉴욕공항에 도착하였다. 만나자마자 나의 가슴에 안겨 한없이 울었다. 이 순간까지 마음 조이며 뜬 눈으로 세운 날밤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딸아, 미안하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이제는 다 함께 모여 잘 살아야 한다. 특히나 큰딸 아이를 꼭 닮은 다섯살 꼬마 아가씨에게 나의 남은 세월 동안 사랑만 해야 한다. 세 자식에게 아버지로써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잘못된 말들, 말들.. 강해져야 한다, 최고가 되어야 한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포기하면 안된다. 명문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 부자가 되어야 한다.. 등등 그래서 지워지지 않는 수많은 상처가 되었을 그런 말들을.. 앞으로는 해서는 안된다. 살아 있는 것만이라도, 내 옆에 있는 것만이라도, 바라볼 수만 있는 것만이라도 그것만이라도 나는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 한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벌써 문제가 한가지 생겼다. 호칭 문제다. 쑥스러운 얘기지만 나는 아내를 40여년 <애기>라고 부른다. 그런데 진짜 <애기>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 누구를 <애기>라고 불러야 하나? 고민 끝에 한사람은 <애기씨>, 다른 한사람은 <애기>라고 불러야 하는데, 누구를?? 결정했다. 아내는 종전처럼 <애기>로, 손녀딸은 <애기씨>로 대하기로 했다. 이유는 그러지 않아도 점점 독재화 되고 권력화 되어가는 아내를 <애기씨>라 부르고 존댓말까지 해야 한다면, 나는 아내의 노예가 아닌, 아내의 그림자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알량한 자존심이 있지 ㅋㅋ. 모두모두 사랑한다. 사랑만이 내가 해 줄 수 있는, 내가 해야 할 유일한 소명이다.
–
미국 이민 -3편 <자영업> (02-22-2019)
미국 비자에는 비이민 비자 (여행비자, 학생 비자, 전문 취업비자, 숙련, 비숙련 취업비자, 종교비자, 주재원비자 등)과, 이민비자 (시민권자 배우자, 직계 가족 비자, 가족 초청비자, 취업이민 비자인 E1~E5 비자 등)으로 나뉠 수 있다. 여기서는 자영업 소액투자 (10만불~20만불)인 E-2 비자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한국은 근로자 최저 임금 상한제와 연동하여, 숫자 면에서 비대한 자영업자 규모가 국민경제 발목을 잡고 있다. 자영업자를 영어로 self-employment (자기 고용)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자영업은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용자나 노동자, 무급가족노동자 등을 일컫는다.
취업자 대비 자영업자 비율을 살펴보면 한국은 25.4% 인 반면에, 미국 6.3%, 캐나다 8.3%, 스웨덴 9.8%, 독일 10.2%, 일본 10.4%, 프랑스 11.6%, 영국 15.4%, 이태리 23.2% 이다. 한국 자영업자 비율은 미국의 4배, 독일과 일본의 2.5배로 지나치게 높다. 한국 통계청 ‘2018년 7월 고용동향’을 보면 OECD가 말하는 자영업자 범주에 속하는 우리나라 인구는 688만명 (취업자의 25.4%)이다. 세분하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404만2천명(14.9%),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165만9천명(6.1%), 무급가족종사자가 116만9천명(4.3%)이다.
결론은 분명하다. 경제발전과 사회안정을 바란다면 비공식 경제 (informal economy)를 넘나드는 자영업자를 줄여야 한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경제체제· 산업구조· 기술혁신의 결과로 일자리의 52.0%가 컴퓨터와 무인 자동화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직업의 미래와 인적자원개발 전략>, 2016년). 이로 인한 사회 구조 변동은 기존 자영업자의 대규모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자체 소비와 자체 생산이 가능한 자영업자는 살아남을 것이나, 경기 변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자영업자는 생존하기 어렵다.
한국의 자영업 주에서 숙박업· 음식점업· 금융보험업 ·도소매업 · 건설업· 운수업· 부동산업· 개인서비스업은 <고위험 업종>에 속하는데, 주지하듯 이들 업종에서 자영업자 비중이 상당하다. 자영업자 규모를 20~30%대로 유지하는 낡은 정책을 버리고, 지속가능한 자영업은 지원하되 지속불가능한 자영업은 과감히 정리하는 방향으로 산업고용정책을 전환하지 않으면 고용구조 후진성에서 기인하는 ‘고용쇼크’가 반복해 일어날 것이다.
한국 자영업의 문제는 동종 업종의 과다한 경쟁과 불합리한 임대료 상승이다. 한국 기업들의 경쟁성 강화라는 미명 아래 비정규직, 하청업체, 조기 퇴직 등으로 N포 세대와 , 4,50대의 조기 퇴직자들을 자영업으로 내몰고 있는 사회적 현상이다. 회사에서 4,50대에 명예 퇴직을 하면 재취업이 힘들고, 특별한 기술이 없으니 편의점이나 치킨집과 같은 프렌차이저를 하기 마련이다. 월 4천만원 매상에 월 1천만원 영업이익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임대료, 인건비, 제반 비용을 공제하고 나면 월 2백만원 수익을 내기 힘든 구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 최저 생계비로는 자녀를 양육할 수도, 노후를 보장 받기도 어렵다. 창업했다가 망하고, 또 창업하는 빈곤의 악순환 고리다.
이런 사람들이 미국 이민을 와야 한다. 미국의 맘엔팝 자영업도 손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투자 대비 고수익이고, 비교적 안정적이다. <E-2 소액 투자비자>는 10만불에서 20만불 선의 투자면 부부가 열심히 한다는 전제하에 월 7천불~월 1만불 안팍의 순수익은 보장된다. 경험과 수익이 누적되고 신분이 영주권으로 바뀌면 은행융자를 받아서 4~50만불 사업체로 상향 조정을 하면 월 1만5천에서 2만불 수익까지 보장 받을 수 있다. 미국의 한인 맘엔팝 비지니스는 특별한 전문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3개월에서 6개월이 지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업종이다. 영어를 잘 할 필요도 없다. 가족이 똘똘 뭉쳐 성실히 일하면 된다. 미국에 이민 와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민 선배들도 성공했다면 왜 나라고 하면 안되겠는가? 라는 확신만 가지면 된다.
미국은 워낙 지역이 광범위하므로 지역에 따라 한인들이 선호하는 업종이 다를 수 있다. 다른 지역은 몰라도 펜실베니아, 뉴저지 지역은 업종별로 전문 컨설팅을 해 드릴 수 있다. 사기를 당하고 사기를 치고 하던 그런 시대는 지났다. 맘엔팝 비지니스를 구매할 때에도 여러번의 검증 절차를 거친다. 본인이 직접 확인한다. 임대료도 터무니 없이 올릴 수 없는 사회적 안전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 먼저 저희 웹사이트 willbusinessbroker.com에 들어가서 업종별 매물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년도별 업종별 분석 칼럼을 읽어 보길 권한다.
- 자신감과 E-2 비자에 해당되는 경제적 여건이 되면, 전자여권 시대이니까 3개월동안 미국에 머무면서 신뢰도가 높은 이민 전문 변호사와 부동산 컨설팅 전문업체를 만나서 현지 시장조사를 하기 바란다.
사업체가 선정되면 가계약을 하고 한국에 들어가서, 혹은 미국에 재입국하여 E-2 이민절차를 밟으면 된다. 성공적인 이민을 위해 건투를 빈다.
–
미국 이민 -2편 <사람다운 삶> (02-15-2019)
누구나 행복하길 원하고 그래서 사람답게 살기 원한다. <저녁이 있는 삶>, <공정한 사회>, <정직한 삶>, <사랑이 넘치는 삶>, <건강한 삶> 등등.. 하지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개개인이 속한 사회적 환경, 국가, 법, 제도, 지역 주민, 교육수준 등에 따라 나의 삶이 달라진다. 미국 이민자들이 한국에 나가서 살기 원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역으로 그 이유가 한국인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와야 할 이유가 될 것이다.
<생활환경> : 미국은 국민 소득 세계 최강의 부자 나라다. 동시에 국방, 경제, 교육, 제도, 법률 등 모든 면에서 안정되어 있다. 미세먼지, 공해, 재해 등에서 자유롭다. 미국은 전국 어디를 가도 쾌적한 반면에 한국은 모든게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매일 쏟아지는 한국 뉴스를 보면 아직도 선진국이 될려면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한다. 아비귀환 같다. 미국은 내가 사는 중산층 부근만 해도 좋은 이웃과 골프장, 대형 공원, 테니스장, 야구장, 수영장, 헬스센타, 여러개의 대형 쇼핑몰, 한국 대형 슈퍼마켓, 도서관, 한국 교회 등등 부족한 게 없고 아쉬운 게 없다. 바다도 가깝고 산도 가깝다. 공기 맑고 물 좋은 곳이다. 우리 지역은 한국 사람이 3만세대이니 적지도 많지도 않다. 2시간 거리의 북부 뉴저지나 뉴욕에 가면 횟집, 찜질방 등 없는게 없다. 미국은 <풍요로운 사회>다. 미국은 <축복받은 나라>다. 식자재 가격도 저렴하다. 요리에 취미를 가지면 정말 별의별 걸 다 만들어 먹는다. 부부가 열심히 일하면 어떻게든 편안한 잠자리와 풍부한 먹거리, 안정된 자녀 교육이 해결된다. 매일 매일의 작은 행복들이 이민의 삶을 영위한다.
<성직자 같은 삶> : 성직자의 삶이 어떠한지 나는 잘 모르지만, 거짓말 하지 않고, 큰죄 짓지 않고, 술 담배 안하고, 하루 24시간이 투명 유리알 처럼 깨끗하고, 성실히 일하고, 온마음을 다해 아내와 가족을 사랑하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가끔은 봉사활동도 하고.. 이 정도면 성직자보다 못할게 무엇인가? 한국의 밤문화를 기억해 보자. 한국은 모든 친목 관계가 밤에 이루어진다. 초중고, 대학 동창, 직장 동료 선후배, 군 동기, 사업관계 등등 모든 모임과 회식은 밤에 이루어진다. 밥먹고 술마시고 노래 부르는 것이 일상 통례다. 남자들 끼리 가는 곳은 뻔하다. 음식점, 노래방, 단란주점, 룸싸롱, 나이트 클럽, 요즘은 유사 성행위 업소 까지 우후죽순 번창하고 있단다. 남자들 끼리 술마시면 여자 있는 곳을 찾기 마련이고, 해서는 안될 짓거리를 하기 마련이고, 돈쓰고 후회하고 죄 짓기 마련이다. 그러니 <맨날 술이야~>다. 못된 업체가 한국 성매수 남성 1천3백만명의 리스트를 데이타베이스로 구축한단다. 가히 <성매매 공화국>이다. 그렇게 살다가 천국 입국심사 때 모두 들통이 날텐데 온전할까? 그래서 한국은 매일같이 죄짓고 회개하는 백성들이 많아서 교회가 번창하나?
미국은 유흥 밤문화가 거의 없다. 굳이 기를 쓰고 찾으면 유흥주점이 없기야 할까만은 미친 짓이다. 백인 클럽에 왜소한 동양 남자가 들어가면 희귀동물 쳐다보듯이 한다. 스트립 바 같은 곳은 더하다. 미국에서 음주운전은 자살행위다. 술마시고 혼자 운전하면 안된다. 삼진 아웃이자 패가망신이다. 대부분의 모임은 부부 동반이다. 개신교도는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술은 집에서 혼자서 곱게 마셔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 비지니스가 맘엔팝 비지니스다. 아침에 함께 출근해서 저녁에 함께 퇴근한다. 일거수 일투족이 어부인 손바닥 위에 있다. 알리바이를 입증할 재간이 없다. 입출금 통장과 현금을 모두 아내가 관리하므로 비상금을 만들 수 없다. 이민온 남자는 살아도 산게 아니다. 죽은 목숨이다. 시간 안되지, 돈 없지, 혼자 놀러 갈 곳이 없지, 함께 놀아줄 외간 여성도 없지.. 밤문화 측면에서 미국은 절해고도와 다를 바 없다. 오로지 하루 24시간 <아내 바라기>로 아내만 쳐다보고 살아야 한다. 한마디로 <사랑하기 딱 좋은 나라>가 미국이다.
그리고 충고 하나 하겠는데, 미국와서 바람 피우지 마라. 내가 직업상 여러 사람을 만나봐서 아는데 정말 한인 지역 바닥이 좁다. 사랑하는 외간 여성이 생기면 멀리 타주로 도망가서 살아야 한다. 20년 전에 딱 한번 바람 피운 경력의 남자를 지금까지 흉을 보는 사회다. 오늘 밤에 일어난 사건은 내일 아침이면 소문이 다 퍼진다. 그러니 자나깨나 입조심, 행동조심 해야 한다. 하물며 겁도 없이 바람을?
미국에 이민 올 마음가짐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내 사랑 내 곁에>다. <죽도록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미국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자식 우선>이 아니라 <아내 우선>이 미국이다. 아내와 함께 눈 뜨고, 함께 일터로 나가서 열심히 일하고, 함께 음식 만들어 먹고, 함께 산책하고, 함께 취미생활 하고, 함께 사랑하고, 함께 신앙 생활 하고, 함께 여행가고, 함께 여생을 즐기는 것이 <최상의 행복>이라고 확신하면 미국으로 이민오시라. 아니면 <남성들의 천국>인 한국에서 온갖 죄를 즐기며 살던가. 죄의 삯은 곧 사망이라는데 ㅋㅋ
–
미국 이민 1편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 (02-08-2019)
요즈음은 미국으로 이민오는 한국인이 현격히 줄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우리 세대가 1960년대 이후 독재정권으로 못살고 암울했던 시절, 80년대 이후 더 잘 살아보려 했던 과도기 시절, 2천년대 IMF로 사업은 파산나고 대규모 실직으로 힘들었던 시절, <미국 이민>은 한마디로 <아메리카 드림> 그 자체였다. 별볼일 없는(?) 사람이 무일푼으로 미국 이민가서는 몇년 만에 보란듯이 성공했다는 신화가 끊이지 않았다. 수영장이 있는 그림 같은 집, 고급 승용차, 그 무엇보다 자녀들의 아이비리그 입학 등.. 미국 이민가면 누구나 그렇게 잘 사는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인들이 미국 이민자들의 고달픈 생활을 알아버렸다. 미국 영주권 받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안다. 중산층이나 서민층의 삶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고달프기는 마찬가지다. 자녀 교육도 결코 만만치가 않다. 단돈 백불들고 이민와서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다. 여행비자로 와서 스폰서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하면 영주권도 받을 수 있던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이제는 모든게 변했다.
그래도 미국 이민을 올 수만 있다면 미국 이민을 오는게 좋은 사람들이 있다. 전문 직종을 가지고 취업 이민을 오거나 가족 초청으로 이민을 오는 사람들은 제외하고, 아무런 연고도 없이 약간의 자본을 가진 중산층, 내지는 서민층을 대상으로 이민을 오라고 꼬셔(?) 볼까 한다.
먼저 지난주에 종영되었던 화제의 막장 드라마 <SKY 캐슬>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 세대는 <개천에서 용났다> 라는 말을 기억한다. 아무리 시골의 가난한 초등학교 출신이라도 소위 전국 일류 중, 고등학교, 일류 대학교에 들어가면 평생 출세가 보장되었다. 내 친구놈들 중에도 그런 놈들이 여럿 있다. 부모님은 못배우고 찌질이 가난해도, 본인만 공부를 잘 해서 일류 중,고등학교에 입학하면 별 이변이 없는 한, 일류 대학교에 들어갔다. 과외 한번 없이도 혼자 독서실에서 먹고 자며 공부해서 일류 대학에 들어갔다. 4대 고시 (사법, 행정, 외무, 기술고시)에 합격하거나, 의대에 들어가면 부자집 사위가 되고, 평생 팔자가 피는 것이다. 결혼할 때 열쇠 3개 (집, 병원, 자동차)는 기본이었다. 더구나 본인 뿐만 아니라 가족과 형제 모두가 하나님의 은총보다 더 큰 은총(?)을 받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내노라 하는 기득권 세력들 중 다수가 <개천에서 용>이 된 놈들이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 교육환경은 완전 딴판이다. 과외를 받지 않으면 학교 수업 자체를 따라갈 수가 없다. 혼자 독학으로 공부해서는 전교 일등은 고사하고 반에서 절반 수준도 되기 힘들다. 과외도 한두 과목이 아니라 전과목을, 일반 학원 과외가 아니라 강남의 고액 과외를 받아야 겨우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부모가 돈이 없으면 일류 대학은 고사하고 일반 대학조차 들어갈 수가 없다. 거기다 개인 학습관리를 해주는 전문 코디까지 수억원을 지불하면서 고용해야 한다면 .. 한마디로 한국은 <미친 사회>다. 가난한 집안의 자식은 대대손손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불합리한 사회 구조다.
나는 1996년도에 모든 초,중,고등학교 수학문제들을 데이타베이스 하고 각 문제마다 고유의 코드 번호를 부치고 난해도와 등급을 나눈다. 가난한 집 아이들도 집에서 혼자 컴퓨터로 <1대1 선행 학습>을 할 수 있게 하는, 온라인 학습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었다. 한국 최초였다. 획기적 아이디어라 하여 텔레비젼 인터뷰도 했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 개발 도중에 IMF를 맞아 투자한 전재산을 파산했던 뼈아픈 경험이 있다. 서울 교대 출신들 초등학교 교사 40명이 문제 출제에 참여하고, 전국 대리점 200개 사장들이 사업에 투자하였다. 학습의 흥미도를 높이기 위해 게임회사도 참여했다. 해외 수출도 가능했다. 수학 과목이 성공하면 영어, 국어, 과학으로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었다. 지금도 그 <온라인 선행 교육사업>의 정당성을 확신하기에 아쉬움이 크다.
현재와 같은 사교육 시스템으로는 가난한 집 아이가 일류 대학에 합격할 수 없다. 막대한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으면 가난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결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사회적 구조다. 인류 역사에서 국가든, 개인이든,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교육>이다. 조선이 일제 강점기를 지나 세계 최저 빈민국에서 오늘날 선진국 반열에 오른 최대 원인은 한국 부모들의 <피 터지는 교육열> 때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개천에서 다시 용이 태어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가진 자, 기득권 자들이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이 대대손손 부와 명예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지금 가지고 있는 막대한 재산과 권력 뿐만 아니라, 자신들만의 <교육 특혜>를 갖고자 하는 것이다. 가난한 부모여, 미국으로 이민을 오라. 그래도 미국은 아직까지는 <교육의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진 나라다. 한국의 가난한 부모들이 이민을 와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자식들에게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
–
신년 한인 지역 경제 -3편 <한인 업종 분석> (02-01-2019)
2017년 1월16일 부터 2월27일까지 7회에 걸쳐 <멈춰 선 한인 경제>라는 주제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 1회는 한인 환경분석, – 2회는 한인 사업체 분석, -3회부터는 한인 업종분석 –<세탁소> 편 (-외부 환경 변화, – 사업환경변화 , – 세탁소 Buyer격감, – 세탁소 필수 요건) 항목별로 설명드렸고,
– 4회는 <Food Business>편으로 <Breakfast> – 특장점, 단점, 향후 추론. <Deli & Convenience> – 특장점, 단점, 향후 추론. <Restaurant 업종> – 한국레스토랑, 일본 레스토랑, 서양 레스토랑, Pizza 가게, Seafood & 튀김 가게에 대해 분야별 특장점과 문제점을 설명드렸다.
– 5회에는 <Stock Business> 편으로 – <Beauty Supply>의 특장점, 단점, 마켓 트랜드, 향후 대응방안 으로 나누어 설명드렸고, <맥주도매상>과 <Beer & Deli> 업종은 주정부의 정책이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분석하기 곤란하고 당사자들의 입장을 고려해 보류키로 하였다. 그리고 <장치사업>인 – Car Wash, Laundromat, Gas Station 에 대해 분석해 드렸고,
– 6회는 <Nail & Spa>, <Drop Store>에 대해서 현상분석, 특장점과 단점, 향후 추론 별로 설명드렸다.
– 7회에서는 <건물 임대사업>에 대해 설명드렸고, <Buyer>가 유의할 점과 미리 준비할 사항들, <Seller>가 알아두어야 할 사항들을 설명드렸다.
2017년도 업종분석을 읽어보니 2019년도와 별반 다르지 않으므로 2017년도 칼럼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www.willbusinessbroker.com에 들어가셔서 <윌리칼럼 2017>을 누르시면 보실수 있다.
그 이외에도 전문 레스토랑, Bar 레스토랑, 셀러드 바, 정육점, 야채가게, Food Truck, 옷가게, 신발가게, 디스카운터, 달러스토아, 자동차 정비.. 등등 많은 한인 사업체들이 있다. 지면 관계상 다 설명하지 못한 것도 있고, 같은 업종이라고 하더라도 단편일률적으로 진단할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즉 모든 업종의 가게들 분석이 외형상 매상과 지출 대비 순이익을 산출하는 회계공식만으로는 평가하기가 어렵다. 요즈음 우리 한인들은 특정 업종, 예를 들어 <세탁소>를 사면 모두 망하는줄 안다. <Breakfast>를 사면 모두 대박이 나는줄 안다. 그건 단순히 업종에 따른 <Trend>일 뿐이다.
맘엔팝 비지니스에 쉬운 업종이 어디 있으며, 대박나는 업종이 어디 있는가? 모든 비지니스는 장,단점과 기회요소 ,위협요소가 공존한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Seller>와 <Buyer>다. Seller가 잘 된다고 해서 Buyer도 잘 될거라는 보장이 없고, Seller가 잘 안된다고 해서 Buyer도 잘못 할거라 단정할 수 없다. 내 자신을 잘 알아야 하고 내 자신의 힘을 길러야 한다. 가게를 사겠다고 저에게 와서 가게 구경도 못하고 쫓겨나는(?) Buyer들도 여럿 계신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 자본금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Buyer의 현재 여건으로는 백전백패 할 것 같은, 전혀 전쟁을 할 준비가 안된, 그런 손님들에게는 가게를 보여 드리지 않는다. 준비를 더 해서 오시라고 한다. 저의 컨설팅을 통해 가게를 구입하신 Buyer 손님들은 한분도 빠짐없이 실패하시는 분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대기업 시절, 맥켄지 그룹과 일할 때나, 대형 프로젝트 사업 계획 수립과 전략수립은 쉬운 편이다. 입력 데이타만 정확하면 각종 변수에 대비한 전략은 세우면 된다. 그런데 맘엔팝 비지니스는 사업 환경과 사업 주체가 너무 가변적이다. 사업경험에 비해 사업분석력이 취약하고, 아집은 강하다. 비지니스 컨설팅을 하는 저는 여려분의 무급여 참모이다. 저에게 무료자문을 구하고 원하는 솔루션을 얻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연구하는 지혜를 갖기를 원한다.
마지막으로 2018년도의 전반적 매상 추이를 보면 <Breakfast> 업종은 2017년 대비 10% ~20% 매상이 대부분 증가했다. 심지어 30% 증가한 곳도 있다.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America First!> 극우 우선정책이 먹혔는지, 고용지표가 나아져서 그런건지, 아무튼 흑인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019년도에도 매상이 증가할거라고 낙관하지 않는다. 향후 흑인지역 비지니스도 리모델링을 하여 쾌적한 영업환경을 갖추어야 경쟁력이 있다. <Nail> 업종은 약보합세, <세탁소, Drop Store> 업종은 약세를 면치 못했다.
자본력과 기술력, 맨파워가 약한 한인들이 할 수 있는 업종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싸움에서도 죽기살기로 달려드는 자를 이길 장사는 없다. 갈수록 소수민족의 이민 생활은 고달파진다. 최저임금이 시간당 $15인 시대로 접어들었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양극화 현상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 선진국들의 가난한자, 노동자들의 반란이 시작되고 있다. 지금부터 한인사회는 이민 선배들의 <무대포 정신> <안되면 악으로! 이가 안되면 잇몸으로, 안되면 될 때까지>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물론 컨설팅을 직업으로 하는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무대포 정신>을 싫어하지만.. 새해에도 여러분의 건투를 빈다.
–
신년 한인 지역 경제 -2편 <맘앤팝 트랜드> (01-25-2019)
미국의 맘엔팝 비지니스의 특징은 각 민족마다 고유의 강한 영역이 있다. 미국은 세계 모든 민족의 Melting Pot 이 아닌 Salad Bowl인 것처럼, 업종도 섞이지 않는다. 한국인은 한국인 특유의 경쟁력이 강한 업종이 있다. 이유는 특유의 민족성일 수도 있고, 선배 이민자들이 타민족과의 경쟁에서 지켜온 업종일 수도 있다. 모든 업종에 무조건 <죽기살기>로 한다고 성공할 수는 없다. 이유는 긴 세월동안 축적된 업종별 <사업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민자가 이민오기 전에 해당 업종에 대해 전문 교육을 받고 온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민을 와서 한인 커뮤니티의 도움을 받아 몸으로 부딪치면서 배우며 익히는 것이다. 그런데 업종에 대한 전문 지식은 없고, 자본금은 약하고, Man Power마져 약하면서, 생뚱맞은 업종을 한다면 어떤 대안이 있는가? 향후 소비시장의 트랜드는 급변한다. 우리 지역에 한인들의 경쟁력 우위인 업종은 얼마나 남았을까?
<향후 맘엔팝 비지니스 트랜드>
- 향후 5년에서 10년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세상으로 바뀔 것이다. 이미 <4G시대>에서 <5G 시대>로 바뀌고 있다. 핸드폰 전자결재 시대는 이미 상용화 되었다. 무인점포 시대를 맞는다. 이미 핸드폰으로 모든걸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 향후 대부분의 소비재 사업은 <온라인 주문> 및 <온라인 배달> 체제로 진화될 것이다. 단적으로 <아마존>과 같은 <온라인 상거래> 업체에 주문할 수 있는 아이템 업종은 대부분 사양 업종으로 전락할 것이다.
- 일련의 <Stock> 사업들이 해당된다. 한인들의 주력이었던 <Beauty Supply, Discounter, Dollar, 옷가게, 신발가게, 잡화가게, 식료품, 원자재, 도매업, 등등..
- 다시 말해 가게에 물건을 쌓아 놓고 고객이 사가는 업종은 <아마존>과의 경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 “우리 가게가 <아마존>보다 고객에게 편리한 점이 무얼까?” “왜 고객이 굳이 우리 가게를 찾아 와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반문해 보아야 한다.
- 향후 대형 슈퍼마켓 <BJ’s, Costco, Walmart, Shop Rite 등등.. >은 백화점식 원스톱 쇼핑으로 상향된다. 상품의 다양화와 저가성과 편리성을 추구한다. 맥주도 팔고 포도주도 판다. 심지어 먹고 마시는 코너도 만든다. 가격 경쟁력은 필수다. 무인결재 시스템으로 점차 변모될 것이다. 자동 배달 시스템 시대가 멀지 않았다. 고객은 물건을 선택만 하면 자동결재 되고 자동 배달이 된다. 변하지 않으면 <Macys> 백화점 처럼 도태될 뿐이다.
- 유명 <Food Franchiser>의 변화 : <맥도날드, WaWa>의 변화를 보면서 <7-Eleven>의 몰락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매장의 리모델링화, 대형화, 상품의 고급화, 다양화를 진행하고 있다. 거기다 <배달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무인 주문 결재 시스템을 시범 운영 중이다. 맥도날드나 WaWa가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원인은 <지점의 직영화> 내지는 정책 시행의 <신속성> 때문이다. 향후 특화되지 못한 가맹점 사업은 결코 녹록치 않을 것이다.
- 향후 맘엔팝 비지니스는 <서비스 특화>가 필수다. <아마존>과 같은 <온라인 상거래> 업체나, <대형 슈퍼마켓>에서 할 수 없는 분야이어야 한다. 고객이 직접 가게를 찾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업종, 즉 고객이 우리 가게를 와야만 할 특별한 <서비스>가 있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힘들다.
- 물론 사양 업종이라고 해서 하루 아침에 문을 닫거나 폭망하는 것은 아니다. 서서히 변해 간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환경 속에서도 <Niche Market>을 찾고 <Blue Ocean>을 기적처럼 찾는 가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세 자영업은 <보편성의 원칙>이다. 당신은 평범한 자영업자일 뿐, 기적의 성공 신화 주역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 <노령화 사회> 비지니스 활성화 : 미국도 베이버붐 세대들의 노령화 시대다. 늙을수록 타인의 손길이 필요하다. <자기애>와 <민족성>이 강해진다. <노인 대상 사업> 들이 번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역 한인사업체의 특성>
- 한인 전문성 결여 : 지역 한인들은 대부분의 사업체에 대한 <전문성>이 결여 되어간다. 굳이 전문성을 말하자면 <세탁소> 장비 상식과 빨래 노하우(?), 바느질 기술, <Breakfast> 요리(?) 실력, <Nail> 가게 손톱 아트 실력 정도.., 무슨 전문성이 있는가? 무슨 전문 업종을 할 수 있는가를 되묻고 싶다. 기술 개발도 안하고, 투자도 안하고, 사업 의지도 없다면.., 무슨 배짱인지..
- 사업 가족 구성원이 너무 열세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하려하지 않는다. 형제 가족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 심지어 부부 간에도 함께 하지 않는다. <인건비> 싸움인 맘엔팝 비지니스에서 맨파워가 너무 열악하다.
–
신년 한인 지역 경제 -1편 <Buyer 분석> (01-18-2019)
새해에는 <황금 돼지> 해이니, 사업장마다 가계마다 재물복(財物福)이 흘러넘쳐 모두모두 <대~박> 나시기를 소망합니다.
하지만 소망은 소망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매해마다 새해가 되면 우리지역 한인 사업체 전망을 칼럼으로 써 왔다. 다른 지역은 모르겠고, 우리가 사는 지역, 특히 펜실베니아, 필라델피아, 남부 뉴저지 한인 사업체에 대하여 지극히 나만의 주관적 데이타로 예측하는 것이니 참조만 할 뿐,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시길 바란다.
2018년도 우리 지역의 한인 사업체 매매 현황을 일단 살펴보자.
<신규 Buyer 감소> :
<현상분석> – 우리 회사에 가게를 사겠다고 서명하고 컴퓨터에 등록된 인원은 2018년말 기준으로 총 1,045명이다. 해마다 신규로 등록되는 buyer Prospector 수는 평균 100명 내외였다. 그런데 2017년, 2018년은 평균 한해 50명 내외다. 물론 나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서 일수도 있지만, 그렇지만 않다고 보는 이유는 매물의 양은 계속 늘어나고, Buyer는 매물을 많이 갖고 있는 부동산에 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원인 분석> – 1. <신규 이민 급격히 감소> : 미국에 대한 이민 열기 (아메리칸 드림)가 식었음, 미국이민 매력도 상실. 캐나다, 호주, 유럽, 동남아시아 지역 등지로 이민 다변화. 미국의 이민절차가 까다로움, 영주권 받기 어려움, 학업이나 직장 관계로 이민을 오더라도 먹고 살기 위해 이민을 오지는 않음. <대책>- 미국은 소액 자영업 투자 (10만불 ~30만불)로 한국 자영업에 비해 충분히 경쟁력 있고, 수익성 높음. 미국 소액투자 이민 대상자에 대한 전문 컨설팅 상담 가능.
-2. <기존 매물들의 매각 부진> : 지역 한인들의 사업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세탁소> 시장과 , <Stock 사업 – Beauty Supply, 디스카운트, 달러, 옷, 신발, 악세사리 등등>은 매매 시장이 얼어붙음. 일부 업종은 문의 조차 하지 않음. – 업종별 원인분석은 다음 칼럼에서 별도 분석. 기존 사업체가 팔리지 않으니 새로운 신규 사업체를 살 수가 없음. 그래서 한인 사회는 정체된, 정지된 사회다. 기존 사업체를 운영하는 날까지 하다가 최종적으로 문닫는 가게가 증가 추세임.
– 3. <양극화 현상과 노령화 사회> : 우리 지역의 한인 사회도 양극화, 노령화 현상이 심각함. <돈을 가진 자>는 한인들의 기존 맘엔팝 비지니스를 하지 않으려고 하고, 건물 투자에 관심은 있으나 이마져도 실제 건물 매입 대상은 극소수임. 기존 이민 1세 한인들은 60대, 70대가 주류이므로 신규 사업 의지가 상실됨. 이민 1.5세, 2세들은 기존의 한인 맘엔팝 비지니스에 관심없음. 그렇다고 마땅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님. <돈이 없는 자>는 자기 자본금 10만불 미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기다가 크레딧이 나쁘고, 세금 보고 실적이 모자라고, 경험조차 부족하다면 경쟁력이 좋은 가게를 사기가 여간 어려운 실정임. 은행융자가 안되면 오너 융자라도 해 주면 좋으련만, 한인 사회 인심이 예전만큼 못함. 경험도 부족하고 투자 자본도 약하고, 사업 의지도 약하고, 힘들거나 노동 환경이 열악한 곳은 싫어하면 무슨 사업을 하겠다는 것인가?
<돈이 있는 자>든, <돈이 없는 자>든, 적어도 신규 사업을 하고자 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사업의지>다. 한국에서 이민올 때 이런저런 미국 비지니스를 배우고 교육받고 왔는가? 3,40년전 이민온 선배 이민자들이 지금 이민자들보다 더 높은 학력 소지자들 이어서 성공했는가? 돈을 많이 가지고 와서 성공했는가? 미국 경제가 좋아서만 성공했는가? 아니다. 오로지 <죽기살기>로 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했고, 그래서 많은 것을 대신 잃었다. 내가 IMF때 내 사업에 실패하고 남의 회사 월급제 사장으로 근무할 때 그 회사 회장이 나에게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사업은 말이야, 구멍가게든, 대기업이든, 죽기살기로 하는거야. 내 주머니에 청산가리를 넣고 다니는 심정으로 해야 한다고. 사업에 성공할려면 주변의 많은 것을 잃을 각오도 해야 하는거야.”
그런데 현대의 소시민들은 너나 구분없이 잃지 않고 얻으려고만 한다. 특히 소수민족 이민자들은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으로 개천대를 받을 각오로 살아야 한다. 미국 한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언제 대접받고 살았는가? 그랬다면 착각이다. 그런데 돈없는 이민자가 신규 사업에 대하는 태도가 너무 우아하고 고상하다.
<지역경제의 빈곤성> :
한인 사업체가 주로 몰려 있는 필라델피아는 미국 5대 도시인 동시에 빈곤률이 132위인 도시다. 다운타운을 운전하다 보면 도로 상태가 극히 엉망이며 장기간 방치 상태다. 필라시가 돈이 없다. 건물세, 사업세, 담배세, 음료수세 등등 세금을 부여할 수 있는 항목은 모조리 인상시킨다. 이곳에서 사업하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아니면 존 스타인백 의 <분노의 포도>처럼 잘 사는 서부 신흥개발 도시로 이사를 가시든가..
우리 지역의 한인 사업체 분야는 이런저런 이유로 <Buyer의 감소 현상>이 지속될 것이며, 기존의 가게들은 팔기가 점점 어려워져, 향후 매매 시장이 극히 불투명함.
–
새해의 마음가짐 (01-11-2019)
새해에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지난해 보다는 더 나은, 덜 후회스런 노년의 삶을 살까? 무엇보다 매주마다 공짜로 듣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으로만 듣지말고, 나는 과연 얼마나 행하고 있는가? 로 자문하고 실행하기를 애쓰자. 물론 살아온 <습(習, 그릇된 습관)>이 있으니 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도 잘 안다. 그래도 <애>도 쓰고 <용>도 써봐야 젊은이들에게 <욕>이라도 덜 들을게 아닌가? 그리고 덤으로 부처의 말씀 중에 <잡보장경 (雜寶藏經)> 6권에 나오는 <무재칠시 (無財七施)> 와 <지혜로운 사람> 편을 수시로 되새겨서 <곱게 늙기> 훈련에 들어가야겠다.
<무재칠시 (無財七施)> 는 가난한 자가 부처님을 찾아와서 ‘나는 하는 일마다 죄다 되는 일이 없나이까’ 물으니 부처께서 ‘사람들에게 베풀지 않아서 그러니라’ 하시니 ‘ 저는 가진 재물이 없나이다’ 하여, 부처께서 재물이 없더라도 대중에게 할 수 있는 보시(報施) 일곱가지를 말씀하시니라.
첫째가 눈의 보시(眼施)니, 언제나 좋은 눈으로 부모, 스승, 사문, 바라문을 대하고, 나쁜 눈으로 대하지 않는 것을 안시(眼施)라 한다. 그는 몸을 버리더라도 다시 몸을 받아 청정한 눈을 얻고, 미래에 부처가 되어서는 하늘눈(天眼)이나 부처눈(佛眼)을 얻을 것이니, 이것을 첫째 과보(果報)라 하느리라.
둘째는 환한 얼굴과 즐거운 낯빛의 보시(和顔悅色施)니, 찌푸린 얼굴로 대하지 않는 것이다. 몸을 버리더라도 다시 몸을 받아 단정한 얼굴을 얻고, 미래에 부처가 되어서는 순금색의 몸이 된다.
세째는 말씨의 보시(言辭施)니, 부드러운 말을 쓰고 추악한 말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몸을 받아 변재를 얻고, 그가 하는 말은 남이 믿고 받아주며, 미래에 부처가 되어서는 네가지 변재를 얻느니라.
네째는 몸의 보시(身施)이니, 사람을 보면 일어나 맞이하며 예배하는 것이다. 그는 몸을 버리더라도 다시 단정하고 장대하며 남의 공경을 받는 몸을 얻고, 미래에 부처가 되어서는 몸이 니구타 (尼拘陀) 나무와 같아서 그 정수리를 보는 이가 없을 것이다.
다섯째는 마음의 보시(心施)이니, 위와 같은 일로써 공양하더라도 마음이 화하고 착하지 못하면 보시라고 할 수 없다. 착하고 화한 마음으로 정성껏 보시하는 것이 마음의 보시다. 그는 몸을 버리더라도 다시 몸을 받아 밝고 분명한 마음을 얻어 어리석지 않고, 미래에 부처가 되어 일체를 낱낱이 아는 지혜를 얻을 것이라.
여섯째는 자리의 보시(床座施)이니, 만일 사람을 보면 자리를 펴 앉게 하고, 나아가서는 자기가 앉은 자리에 앉게 하는 것이다. 그는 다시 모모을 받아 항상 일곱가지 보배로 된 존귀한 자리를 얻을 것이요, 미래에 부처가 되어서는 사자법좌 (師子法座)를 얻을 것이다.
일곱번째는 방이나 집의 보시(房舍施)이니, 부모, 스승, 사문, 바라문으로 하여금 집안에서 다니고 서며 앉고 눕게 하는 것이다. 그는 다시 몸을 받아 저절로 궁전이나 집을 얻고, 미래에 부처가 되어서도 온갖 신실(神室)을 얻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일곱가지 보시 (無財七施)를 행하면, 수많은 은덕과 과보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 스스로가 덜 부끄러운 노인으로 늙어갈 것임은 자명하다. 덤으로 잡보장경의 <지혜로운 사람>편을 소개한다.
“참기 어려움을 참는 것이 진실한 참음이요, 누구나 참을 수 있는 것은 일상의 참음이다.
자기보다 약한 이의 허물을 기꺼이 용서하고, 부귀와 영화 속에서도 겸손하고 절제하라.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은 것이 수행의 덕이니,
원망을 원망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성내는 사람 속에서 마음을 고요히 하여,
남들이 모두 악행 한다고 가담하지 말라.
강한 자 앞에서 참는 것은 두렵기 때문이고, 자기와 같은 사람 앞에서 참은 것은 싸우기 싫어서며
자기보다 못한 사람 앞에서 참는 것이 진정한 참음이다.
욕설과 헐뜸음을 못 참는 것은 어리석음이니 돌가루를 두 눈에 넣은 것 같고,
욕설과 비방을 잘 참음은 지혜로움이니, 코끼리 등 위를 화려하게 꾸밈과 같다.
욕설과 비방으로 지혜로운 이를 어찌하지 못함은 큰 바위에 폭우가 쏟아져도 부서지지 않음과 같아, 비방과 칭찬, 괴로움과 즐거움을 만나도 지혜로운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사실이 그러해서 욕을 먹으면 그것이 사실이니 성낼 것도 없고,
사실이 아닌데도 욕을 먹으면 욕하는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것이니
지혜로운 사람은 어느 때나 분노하지 않는다.”
–
새로운 시작 (01-04-2019)
2019년이라는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었다. 새롭게 시작된다는 의미는 설레임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새로운 시작은 미래다. 미래는 희망이다. 희망은 살아야 할 존재의 이유이다. 그래서 시작은 설레임이다. 하지만 미래는 고통이기도 하다. 한치 앞을 예단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피조물이다. 새로운 시작은 좋은 것만도, 기쁨만도 아니란걸 늙음이라는 지나온 세월로 가히 짐작한다. 그래서 새로운 미래는 두려움이다. 두렵다고 멈출 수도 가지 않을 수도 없음을 안다. 새로운 시작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시작은 끝이 있음에 존재한다. 조물주가 만든 모든 생맹체에는 생(生)과 멸(滅)이 반드시 존재한다. 영원성과 절대성은 신(神)만의 권한이다. 영생(永生)은 인간의 철없는 과욕과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끝과 시작의 끝판왕은 청년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다. 예수의 죽음은 인류 역사에 가장 가슴 아픔 사건이었다. 청년 예수의 혁명가적 설법과 기적들은 유대 지도자들과 유대 민중들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면 끝날 것으로 믿고, 해서는 안될 짓을 한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부활로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 예수의 진정한 부활은 부활하신지 40일 동안 사람들에게 10번 나타나신 후 천국으로 승천하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또 미래에도 전 인류의 가슴에 살아 계실 것이다. 그러기에 그것이 진정한 부활인 것이다. 부처의 죽음도 열반하여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간들의 마음 속에 깊은 가르침으로 살아있음이 새로운 부활이라 할 수 있다.
빈곤한 이민의 삶에 새해라고 얼마나 좋아지고 나아질까? 어제와 작년이 그렇고 그런 날들이었는데, 내일이라고 새해라고 그렇고 그런 날이 아니라는 보장이 있는가? <새로운 시작>과 <새 날>은 그분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야 한다. <새롭게 하소서>라는 시편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와 간구로 이루어질려면, 그 역시 나의 소망이고 나의 희망이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변하지 않는데 무슨 기적과 변화가 일어나길 바라는가? 아프지말게 하여 주시고, 돈 많이 벌게 해주시고, 자식들 잘 되게 해달라는 것은 한국 초대형교회 목사가 수십만 신도들을 혹세무민 하였던 십팔번 기도 제목이 아닌가? 그런 기도는 평범한 무당들 조차 작두 타지 않고도 하는 주술과 같다. 예수를 믿는다는 자들이 어찌 예수께서 하시지도 않았던, 어쩌면 가장 혐오하셨던 것들을 기도 제목으로 하면 어쩌자는 것인가? <누구라도> <사랑하라> 하셨으면, <누구라도> <사랑하면> 될 일이다. 예수의 말씀은 간결하고도 단호하다. 많은 말씀을 하신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신 것도 아니다. 인간의 본성 상 예수의 말씀은 <행함>이 어려운 것이다. 어쩌면 인간들이 참으로 지키기 어려우니 <계명>으로 못 박으신건 아닐까? 대상을 스스로 <선>과 <악>으로 나누고, <내편>과 <다른 편>, <기독교>와 <비기독교>, <천사>와 <악마>, <믿는자>와 <불신자> .. 등등 수도 없이 나누고 편협하는 사상과 철학을 가진 자가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입으로 기도만 하고 스스로의 행동이 변하지 않는데 무슨 기도빨이 먹히겠으며, 무슨 행함이 의롭겠는가?
새해에는 어떤 삶을 살아야 이민의 새로운 삶이 될까? 좋다는 이야기는 새해 덕담으로 다해 보자.
중국의 명문 칭화(靑華)대학의 교훈은 <자강불식 (自强不息), 후덕재물 (厚德載物)>이라고 한다.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하여 강해지고, 덕을 쌓아 만물을 포용하라”이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강해지고 노력할 것인가? 각자의 목표이고 희망이다. 어짜피 힘들고 고단한 이민의 삶이라면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여러 능력 중에 하나가 <목표 설정>이다. 목표는 나의 목표다. 나의 목표가 정해져야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할 것 아닌가? 목표에는 <물질적 목표>와 <정신적 목표>로 나눌 수 있다. 물질적 목표는 대기업 시절에 지겹도록 하던 것이다. 사업 목표 대 실적 분석, 사업평가와 진급심사 등등, 새해 전후 이 기간에는 살얼음 판을 걷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이민의 삶에는 스스로에 대한 목표 대비 실적 평가가 없는 것 같다. 회사원 같았으면 벌써 권고 사직이나 해고 대상자 이었을 실적을 가지고도 뻔뻔하게 잘 버티고 있다. 내 돈으로 내 장사를 하는데 누가 감히 해고시킬거냐 라는 갑질인가? 목표는 전년 실적대비 120%를 잡아야 한다. 새해에는 국제 경제가, 국가 경제가 더 나빠질 것 같고, 경쟁사가 더 늘어날 것 같아서 목표를 낮추어야 할 것 같다고 하면, 우리 세대에는 재떨이가 날아 다녔다? ㅋㅋ 사업목표가 20% 내지 30% 상승으로 잡혔으면, 그에 맞추어 세부 실천 전략들을 짜야 한다. 머리에 쥐가 내리도록 짜고 수정하고 또 짜야 한다. 그 다음은 <돌격 앞으로>다.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년말에 감봉, 심지어 권고 사직 명단에 올라갈 뿐이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강해지는 것이다. 가난한 이민자의 <물질적 목표>도 예외일 수 없다. 마누라 한테 줘 터지기 전에 <목표 120%> 자진 상향 조정해서, 요동소리 나도록 힘차게 일로매진 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