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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아, 떠밀지마라 (12-28-2018)
2018년 올 한해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하심을 나의 하나님과 여러분께 모두 감사드린다. 비록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큰 병치레없이, 먹고 입고 잠 잘 곳을 해결해 주신 그분과 여러분께 거듭 감사하다. 새해에도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화목과 평화가 충만하여 모두모두 행복 하시길 소망합니다.
세월아, 떠밀지마라. 재촉하지마라. 왜 너 혼자서 서둘러 앞서 가는거니?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고 하고 싶은 일이 많이 남았는데, 빨리 가자고만 하면 어쩌자는 것이냐?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지나버린 세월에게 아쉽고 미안하구나. 일각이 여삼추(一刻如三秋)라, 일각(15분)이 3년처럼 길게 기다려지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눈뜨면 어느듯 하루가 가고 한달이 가고 일년이 지나누나. 떠밀지만 말고 나에게 좀 더 시간을 주려무나. 세월아 함께 가자..
여러분은 <세월의 속도>가 얼마인가? 흔히들 나이와 세월의 속도는 정비례 한다고들 한다. 10대에는 10마일, 60대에는 60마일 인가? 왜 어린아이의 하루는 느린데, 노년의 하루는 빠른가?
먼저 <세월의 속도>를 과학적 논리로 접근해 보자. <하루>는 지구의 자전 속도이다. 즉 지구가 스스로 한바퀴 도는 속도가 하루다. 지구 둘레가 37,680 Km 이니까 초속 430m이다. 반면에 <일년>은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도는 시간이다. 지구와 태양의 거리가 1억5천만 km이니까 원둘레 공식으로 계산하면 초속 29.8 KM, 즉 초당 30 km속도로 세월이 지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고 느껴질까? 임상적으로 인간의 뇌에는 <선조체 신경회로>가 있는데 여러 감각 정보들이 모여 이 세포돌기를 진동하게 된다. 같은 사건을 경험하고도 젊은이와 늙은이의 진동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시간의 길이가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진동수를 조절하는 중요한 입력 신호 중에 하나가 <도파민>이다.
<도파민>은 새로운 것을 학습할 때나 기분 좋은 보상이 주어질 때 분비되는데, 선조체 돌기신경 세포의 활성은 이 도파민의 유무,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어린아이 처럼 도파민 분비가 많아지면 시간에 대한 내 안의 기준이 빠르게 돌아가니 상대적으로 바깥 세상의 모든 것이 느리게 느껴지는 것이다. 반면에, 늙은이 처럼 도파민 분비가 적어지면 내 안의 시간이 느리게 돌아가니 바깥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다. 도파민은 기분이 좋을때, 새롭고 즐거운 자극적 경험이 많을 때, 다양한 경험을 할때, 기억량이 많아지므로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이글먼 박사는 놀이기구 50m 위에서 뛰어내리게 한다음 떨어진 시간을 물어보면 모두가 실제 낙하시간보다 길게 말한다는 것이다. 즉 낙하하는 순간들의 프레임을 슬로모션처럼 많이 쪼개어 기억하기 때문이다. 즉 어린이나 젊은이는 새로운 사건을 신기하고 새롭고 흥미롭게 느끼기 때문에 기억의 양이 많고,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는 반면, 늙은이는 그게 그거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별 반응이나 감동이 없기 때문에 기억하는 양도 적으며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치매 노인들이 젊은 시절의 오래된 추억들은 뚜렷이 기억하면서도 최근의 일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인가?
늙은이들이여, 어떻게 인생을 길게 느끼면서, 하루를, 일년을, 말년을 보낼 것인가? 새롭고 자극적인 경험, 기분 좋은 일들을 어떻게 하면 많이 만들어낼까? 좀 생뚱 맞는 이야기지만, 칸트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세가지 조건을 말한다. 첫째, <할 일>이 있어야 한다. 둘째, <사랑할 대상>이 있어야 한다. 세째, <바라볼 미래>가 있어야 한다.
첫째, 노년에 <할 일>이란 무엇인가? 무슨 일은 하든, <일>에 대한 스스로의 가치와 보람이 있어야 한다. 골프를 치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도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겨우 짬을 내어 심기일전(心機一轉) 하기 위해 가는 것이라면 <놀이>도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허구헌 날 골프치고 여행가고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집에 틀어박혀 TV만 본다면 그 <일>에 무슨 가치와 의미가 있을까? 선교나 봉사활동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왕이면 건강이 허락하는 한, 돈도 벌고 보람도 느낄 수 있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둘째, <사랑할 대상>은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자기 자신과 아내, 가족 친지만 사랑할려고 해도 바쁘다. 아니 아내만 사랑하기에도 정신이 없다. 나머지 사람들은 <선한 마음>으로 사랑하면 된다. 인류애적 사랑이다.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거래가 아니다. 주고 받는 것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다. 아낌없이 주면 된다.
세째, 무엇보다 <바라볼 미래>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미래는 <희망>이자 <소망>이다. 미래에 투자하는 것은 희망에 투자하는 것이다. 나에게도 나만의 희망과 소망이 있다. 별이 되어 이 지구를 떠나는 날까지 나는 나의 희망을 꿈꿀 것이다. 희망은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된다.
다시는 오지 않을 2018년 한해를 함께 인연이 되고 벗이 되어주신 여러분께 다시금 감사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선비와 사무라이 (12-21-2018)
일본인들은 <사무라이 정신>을 자랑스러워 하며 일본인들의 가정교육은 물론,학교 교육으로 이어온다. 일명 <무사도(武士道) 정신>이다. 일제 강점기 때 교육받은 조선 친일파들은 집안에 사무라이 칼을 전시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고 그 사상을 부러워 했다. 군사 독재자 박정희도 일본 칼로 검도하는 것을 즐겨하는, 사무라이 정신이 뼈골 깊숙이 박혀있는 자이다. 얼마 전에는 자유한국당 최모 국회의원이 법을 위반했을 경우 동대구역 앞에서 <할복 자살>을 하겠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할복하지 않았다. 손가락도 베지 못할 자가 자신의 배를 가르겠다니 가소롭기 그지없다. <사무라이 정신>은 한국의 폭력조직 뿐 아니라, <사나이들의 의리>로 대변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가끔은 조직과 주군을 위해 투신 자살 등, 각종 자살로 입증하려 한다. 일본인들이 자랑하는 사무라이 정신은 일본이 2차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아시아를 무력 식민지 하려 했으며, 그 야욕은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아시아를 침범할 일본인들의 정신적 근간인 것이다.
그러면 일본 <사무라이 정신>은 무엇이며 어디서 왔는가? 한국 귀화인 호사카 유지 교수가 쓴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 에서 인용하면, 임진왜란 이전만 해도 일본 무사들은 주군에 대한 윤리적 충성의식이 높지 않았다. 주군과 가신은 일종의 계약 관계였기 때문에 언제라도 다른 주군으로 바꿀 권리가 있었다. 즉 의리와 신의 관계가 아니었다. 조선의 선비는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사대부가 되는 것이 꿈이라면, 사무라이들의 꿈은 영토싸움에서 이겨 주군으로 부터 땅을 불하받고 영주가 되는 것이다. 임진왜란의 배경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무력 통일하면서 그동안 공을 세운 사무라이들에게 불하해 줄 영토가 부족하자 조선 땅을 침략해서 나누어 주겠다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성리학>이 전파되면서 <무사도 정신>이 만들어진다.
<사무라이 정신>은 기본이 <조선의 선비정신>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충(忠)과 효(孝)의 덕목에,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하며, <아랫사람에게 인자(仁)>해야 한다. <사적 욕심>을 버려야 하고, <부귀 보다 명예>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는 조선의 <선비의 도>와 같다. 다른 점은 주군에 대한 <충성심>이다. 조선 선비는 주군에 대한 일편단심을 <상소>로 죽음을 대신하지만, 일본은 <할복>자살이다. 조선 선비는 오로지 성리학의 이상 세계를 시현하기 위한 <학예 일치>였다면, 일본 무사는 <무예>가 70%이고, 학문은 보조 수단에 불과했다. 선비 사(士)는 조선의 선비를 의미하는 동시에 일본의 사무라이를 지칭한다. 하지만 문(文)과 무(武), 정(靜)과 동(動), 효(孝)와 충(忠)의 차이다
일본에 성리학을 전파한 조선 유학자는 <강항 (1567~1618)> 이었다. 강항은 조선의 성리학자이자 의병장이었다. 전남 영광 출생으로 임진왜란 중 1593년 별시 문과에 급제, 형조 좌랑을지냈다. 정유재란때 의병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597년 이순신을 만나러 가다가 왜군들에게 붙잡혀 일본 교토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일본 선종 승려였던 <후지와라 세이카>에게 조선 유학, 특히 주자와 정자의 <사서삼경 주해>를 전수한다. 그가 일본 주자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며, 일본 메이지유신의 사상적 기초를 만든 자이다. 그의 <미토학>은 에도 막부 말기에 새로운 <천황 중심체제>를 구축하는 이념적 지주가 된다. <메이지유신>은 무사들이 천황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막부체제를 타도한 <성리학의 명분론을 빌린 혁명>이었던 것이다. 즉 일본인들은 성리학을 천황체제를 위한 <명분쌓기>로 활용 했을 뿐, 조선 성리학의 중심인 <인간 심성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항이 일본 체류 기간동안의 경험을 기록한 체험기가 유명한 <간양록>이다.
<할복 (割腹)>은 절복 (切腹, 셋부쿠), 하라키리 (腹切)이라고도 한다. 우리 세대는 <우국 (憂國)>의 극우 저자 미시마 유키오의 할복자살을 기억한다. 할복은 가마쿠라 시대 (1185년~ 1333년)를 시작으로, 태평기인 무로마치 막부시대 (1336년 ~ 1573년) 에만 2140건으로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에도시대에 할복 절차가 고도화, 제도화 되었다가 메이지 유신 시대 때 폐지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자신의 명예를 지키거나 입증하기 위해 할복자살은 계속되고 있다. 패장이 적에게 붙잡히는 것을 수치로 여겨 자인하는 경우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거나, 명예를 입증하기 위한 경우, 또는 정치적 목적 등 다양한 용도로 실행되었다.
할복 절차는 몸을 청결히 한 다음, 상의를 벗고, 칼 중간 부위에 흰 종이로 감싼 칼날을 손잡이로 사용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배를 가른다. 배를 가르는 이유는 일본인들은 뱃속에 사람의 영혼이 들어있다고 믿어서 자신의 긍지와 결백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배를 가르면 그때 뒤에서 대기중이던 가이샤쿠(介錯)가 할복자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신속하게 단칼에 목을 쳐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배를 갈랐다고 바로 죽지 않키 때문이다. 죽기까지는 수시간의 엄청난 고통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이샤쿠의 자질이 중요하다. 검술 실력, 할복자와의 관계, 지위, 신망도 등이다. 아무튼 할복은 조선의 성리학과는 무관하다. 지나깨나 할복하겠다는 공갈을 하면 안된다. 한국인들은 하루빨리 잃어버린 조선의 선비정신을 되찾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남자로 대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선비정신 (12-07-2018)
소위 자칭 한국의 지도자라고 하는 일부 간악한 자들의 처신을 보면 비열한가, 비굴한가, 비겁한가?
한국에서 최고의 엘리층인 사법부 지도자들, 고위 공직자들, 정치 지도자들, 언론사들, 교수들, 더욱 가관은 종교 지도자들이다. 수십만명의 교인들을 거니는 목사와 사모, 가족들의 부정축재, 목사 권력 세습, 목사 자신을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반신반인 (半神半人) 반열로 혹세무민하고, 주일학교 때부터 따르던 딸같은 성도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는 짐승만도 못한 목사. 사리사욕의 승려들 등등.. 하늘 우러러 차마 부끄러워, 고개 조차 들지 못할 자들이 교인들의 첩첩 비호 아래 변명하고 구차하게 연명하고자 한다면.. 이런 자들은 어떻게 심판하고 처단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민중에게 미안해 해야 한다. 결코 민중보다 대단하지도 않은 자가, 민중으로 부터 대단한 존경과 대접을 받는다는 자체가 얼마나 자신의 신에게 황망스런 일인가?
만약 혁명가 예수께서 재림하신다면? -모든 종교의 재산권은 해당 국가로 환속시키고, -성직자나 모든 종교인들은 독신으로 빈민 공동체에서 살게 하고, – 먹는 것은 매일 신도들 집을 돌며 탁발(托鉢)토록 하여 허기를 면하게하고, – 약간의 생활비는 해당 국가의 기초 수급생활비로 지급 받도록 한다면, 그런 자가 곧 민생의 낮은 자이자, 자기 십자가를 버리고 예수의 십자가를 지는 진정한 종교인이 되지 않겠는가? 과연 살아남을 자 누구인가?.. 하는 망상을 해본다.
- 비겁(卑怯)하다 : 성품이 너그럽지 못하고 생각이 좁고 성품이 고상하지 못해 천박하며 무서워 하는 마음이 많다.
- 비열(卑劣)하다 : 사람의 하는 짓이나 성품이 천하고 졸렬하다.
- 비굴(卑屈)하다 : 자신의 주장이나 지조를 버리고 남을 따르기 쉽다.
- 사악(邪惡)하다 : 간사하고 악하다.
흔히들 약자에게는 비열하고 강자에게는 비굴하다고 한다. 공자는 <논어>의 <위정편 (爲政篇)>에서 “의를 보고 행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고,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도 용기가 없는 것이다.”
남북한 조선인에게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자랑해야 할 조선의 <선비정신>이 있다. 꼿꼿한 <지조와 기개>, <불요불굴의 정신력>, <청정한 마음가짐> 등은 후세인들이 물려받아야 하고 자랑스러워 해야 마땅하다. 선비의 지조와 절개는 <일이관지(一以貫之) – 하나의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는다는 뜻> 이념이었다. 기회와 세력에 따라 흔들리는 기회주의를 용납하지 않았다.
조선의 선비정신은 <학행일치(學行一致)>의 방향성이다. 선비는 배운 것을 실천에 옮길 때 비로소 그 배움의 의미를 갖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 실천 단계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은 <의리>와 <명분>이었다. 의리는 인정과 잘 조화시키는 균형감도 강조했다.
조선의 성리학은 고려 불교의 세습화, 부의 축적, 권력화, 귀족화 등의 부작용으로 인해 조선 국학과 건국이념으로 선포되었다. 성리학의 이론파로는 <퇴계파>와 <율곡파>가 계보를 잇고, 실천파로는 조식 선생의 <남명파>가 <북론>으로 계보를 잇는다. 성리학은 민본주의에 입각한, 요순 시대의 덕으로 천하를 다스린 태평시대를 치세의 모범으로 삼는다. 조선의 선비들 필수 과목은 문.사,철 (文.史.哲) 중심의 인문학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을 해명하는 것이 최대 과제였다. 우주, 자연, 인간의 모든 현상은 작용으로서의 기(氣)와 작용원리로서의 이(理)에 의하여 일관된 잣대로 생성,변화, 소멸된다는 논리였다. 무슨 소린지?
조선 선비의 진로는 네가지로 분류된다. 첫째가 <과거>다. 20세 전후에 보는 <소과(小科)>시험, 즉 <생원시>와 <진사시>이다. 합격한 사람은 <대과>시험을 보아 합격하면 9품관으로 시작한다. 둘째는 사림(士林), 산림(山林)이다. 사림은 과거를 보지않고 학문에만 전념하는 학자들을 일컬으며, 산림은 학문적으로 존경받는 대학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세번째는 은일(隱逸)이다. 국가를 운영할 충분한 자질이 되지만 초야에 묻혀 정치판에 나가는 것을 거부하는 그룹이다. 마지막이 처변삼사 (處變三事), 즉 은둔, 망명, 자결이 아니면 의를 일으켜 적과 싸우는 의병항쟁, 반정의거 등이다.
조선 성리학 실천주의 대표주자 <남명 조식> 선생의 말씀 한귀절과 욕천(浴川)이라는 한시를 소개한다. “그대는 손으로 물 뿌리고 비질하는 예절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상의 이치를 말하는데, 그들의 행실을 공평히 살펴보면 도리어 무지한 사람만도 못하구려”
<욕천(浴川)> “사십년 쌓인 온몸의 허물을 / 맑은 못 천섬의 물로 다 씻어 버리리 / 만약 오장에 티끌이 생긴다면 / 지금 당장 배를 갈라서 물에 흘려 보내리라.
남명의 <선비정신>은 <경.의(敬.義)> 사상 이다. <경>은 목숨을 걸고 자신의 내면세계를 수양하는 것이라면, <의>는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실천을 이룩하는 것이다.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명예로움, 정직함, 떳떳함. 당당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불효자는 웁니다 (11-30-2018)
가난한 이민 아버지들에게 이 글을 씁니다.
“나무는 멈춰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질 않고 /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네” (한시 외전 중)
우리세대가 어린 시절 전해 들은 설화가 있었다. <고려장 (高麗葬)>이다. 일제 강점기에 미와 타마키에 발간된 <전설의 조선> 책자에 실려 있는 <불효식자 (不孝息子)> 대목이다. “늙은 지 애비를 지게에다 지고 깊은 산 속에 버리고 내려오던 길에 지 아들에게 지게가 필요없으니 버리라고 하자, 그 아들놈이 하는 말이 ‘나중에 아버지도 늙으면 내가 버릴 때 써야하니까 지게를 가져가야 하겠다’ 하니 애비가 크게 뉘우치고 버린 지 애비를 다시 모셔 왔다”라는 설(說)이다. 다른 하나는 “늙은 어미를 지게에 지고 깊은 산속을 들어가는데, 지게 위에 어머니가 나뭇가지를 똑똑 부르뜨려서 아들이 어아해 하며 물어보니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사랑하는 아들아, 곧 날이 어두워 질테이니 나를 버리고 내려가다가 길을 잃을까 염려된다. 부러진 나무가지를 보고 내려가면 안전하게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여 아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어미를 극진히 효도했다는 설화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로 시작하는 장사익의 <꽃구경> 노래가 그 내용이다. 마음이 아파서 세상의 죄많은 아들들은 다 들을 수 가 없다.
<병든 노인을 산에 갖다 버렸다>는 고려장 설화는 고려 시대의 장례 풍속이라 할 수 없다. 중국의 <효자전>, 불경의 <잡보장경>, 일본에서도 17세기 이전까지 행해지던 풍속이다. 어느 시대나 병든 부모는 가난한 자식들에게 큰 짐이다. <현대판 고려장> 사례도 수없이 많다. 치매 엄마를 모시고 해외 여행 갔다가 버리고 온다거나, 병든 부모를 병원 앞에 두고 도망가는 등, <존속유기>에 해당하는 범죄다. 형법 271조 <존속 유기죄>는 “직계존속에 대하여 죄를 범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로 되어 있다. 유기가 되었든, 살해가 되었든, 병든 부모가 가슴 아픈 것은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버림받았다>는 허망함이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은 “내가 필요해서 데리고왔다가, 쓸모가 없어졌으니 버린다” 라는 개념이지만, <고려장>은 “원래부터 부모라는 존재는 있었고, 내가 부모의 무한 도움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그 부모가 병들고 쓸모가 없으니 버린다” 라는 반인륜적 행위인 것이다.
흔히들 우리세대를 <효도>의 마지막 세대라고도 한다. 한국인의 문화는 유교 사상에 기초한다. 유교는 <인의예지 (仁義禮智)>, 그 중에서도 인(仁)을 으뜸으로 하며, 충효(忠孝) 사상을 바탕으로 하되, 효(孝)를 인간의 근본으로 생각한다. 어떠한 동물도 부모가 죽을 때까지 자식이 봉양하지 않는다.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십계명에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 가 인간 관계 명에 제일 먼저 게시되어 있다. 성경에도 “주 너의 하나님이 너에게 명하는대로,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주 하나님이 너에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고 잘 될 것이다. (신명기 5장6절)”. 어떤 종교나 율법에도 <부모 공경>이 명시 되어 있다. 하지만 서양에는 유교적 <효도>라는 개념이 없다. 단지 보편적 공경 (formal filial duty) 혹은 헌신 (devotion), 심지어 (good son)이 되는 정도이다. 동양 유교의 불가역적 효도와는 심히 다르다.
<효도>란 부모를 잘 섬기는 도리를 뜻한다. 현대의 젊은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흔히들 <호혜 (互惠)성 원리>라고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상당한 물질적, 정신적 혜택을 주었음으로 자식은 부모에게 보답할 도덕적 의무가 생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호 호혜가 될려면 자식이 원해야 하는데, 부모의 사랑은 자식의 거절할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상호 호혜> 원칙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반론이다. 특히 현대는 <돈이 최고>인 시대다. 늙은 부모로 부터 물려받을 재산이 있으면 <효의 거래>가 성립되지만, 돈없는 가난한 부모는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 과거에 키워준 일방적 혜택만으로, 향후의 언제 끝날지도 모를 일방적 <효도>를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아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어떻게 효도하였는지 질책한다면 <나는 효자로소이다> 라고 떳떳하게 말할 효자가 몇명이나 될까? 특히나 내새끼들과 먹고 살기 힘들어 부모 형제 버리고 타국으로 이민온 이민자들이야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이민의 애비는 불효자다. 그래서 운다. 부모님을 미국에 모시고 왔든, 한국에 두고 왔든 간에 한국에서 모시고 사는 만큼이야 하겠는가? 떨어져 살면 남은 세월동안 몇번이나 뵈올까? 최고의 효도는 함께 사는 것이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사는 것이다. 나도 90이 넘으신 어머니가 한국에 계시니, 나는 백번 죽어도 불효자다. 그러니 자식들에게도 효도를 말할 자격도 없고 기대 해서도 안된다. 그래서 나는 아내와 이미 다짐했다. 자식들에게 부담도 주지 말고, 자식이 찾아오면 만나고 찾아오지 않아도 할 수 없고.. 신이 은퇴를 허락하시면, 은퇴후 노인아파트 – 양로원- 요양 병원- 호스피스 병동, 그렇게라도 둘이서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애비를 밟고 가라 (11-23-2018)
가난한 이민자의 자식들에게 이 글을 쓴다.
가난을 물려줄고 싶은 애비가 세상 어디 있겠니? 너희들에게 더 나은 세상에서 잘 살게 하려는 욕심으로 이국만리 먼 이국땅에 왔건만, 별반 나아진게 없구나. 처자식과 먹고 살아야 한다는 단순 명제 아래 반평생을 열심히 일만 했는데 말이다. 되돌아보니 세상 부모 누구나 하는, 아니 하급동물도 하는 가장 기본적인 부모 의무를 한 것을 가지고 위세하고 변명하는 꼴이 되었구나. “아빠가 우리한테 해 준게 뭔데? 남들보다 잘 해준게 뭔데?” 글쎄, 그러고 보니 그렇구나. 잘해 준게 하나도 없네. “남들만큼 좋은 집에서 좋은 교육환경 하에서 키운것도 아니지. 자식들과 많은 시간을 나눈 것도 아니고, 다정다감한 것도 아니었지. 영어를 잘못하니 바보처럼 비굴하게 당하고만 살지. 학교 갔다가 집에 오면 항상 혼자였지. 아무 걱정말고 공부만 잘 하라고 말만 하였을뿐, 공부할 무엇 하나 해 준것도 아니고, 그 비싼 학자금 융자도 대신 갚아줄 능력도 없지. 그렇다고 노후에 은퇴자금을 여유롭게 모아 놓아서 자식들에게 신세지지 않을 것도 아니지. 허구헌날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하다, 아프다, 술먹고 사소한 일에도 자식들에게 화만 내고 때리기조차 하였지. 도무지 아빠와는 좋은 추억이라곤 없어.” 그래 그렇구나. 너희들 말이 모두 맞구나. 자식을 위해 이민을 왔다고 하면서도 정작 자식들을 위해 해 준 것이 없네. 기껏 먹고 산 것도 자랑이 되나?
그런데다가 자식들에게 물려줄게 <가난> 뿐이라면, 과연 <가난>만 물려주는 것인가? 노년의 부모에게 남은 것은 언제 끝날지도 모를 기나긴 <질병>이다. 끝없는 <질병>에는 많은 <치료비>가 든다. <돈>뿐만 아니라, <고통>이 따른다. 고통은 환자 자신 뿐만 아니라, 그 질병을 간호하고 지켜보는 자식과 자식 가족들의 고통을 수반한다. 고통은 시간의 소비를 강요한다. 질병은 또다른 질병으로 이어진다. 늙은이의 질병은 끝없는 싸움이다. 아니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다. 더구나 <가난> 밖에 물려받은 유산이 없는 자식들에게 부모의 <질병>은 또다른 <가난의 짐>이다.
<가난>은 결단코 손쉬운 놈이 아니다. 가난의 간난(艱難)은 힘들고 어렵다는 뜻으로 빈곤 (貧困)이라 표현한다. 어느 시대의 간난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지만, 현대 수정자본주의 시대에서의 <가난>은 <노예>보다 더 가혹하다. <가난한 자에게는 인격조차 없다>, <가난한 자는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다> <가난한 자는 현대 교회의 하나님조차 용서하지 않는다>.. 과연 과도한 표현일까? 청빈(淸貧)을 자랑말라. 현대 자본주의는 <돈>만으로 차별되는 철저한 <계급사회>다. <기초생활 수급자 – 차상위 저소득층 – 서민 – 중산층 – 상위층 – 최상위층> 구조다. 당신의 신분계급은 어디에 해당되는가?
빈곤에는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으로 나눌 수 있다. 절대 빈곤은 2015년 세계은행 (IBRD) 기준, 하루 1.9달러이며 세계인구의 10.7%이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 굶주림의 인구다. 대한민국이 6,25전쟁이후 1960년대까지 미국원조에 연명하는 하루 2달러의 절대 빈곤국가에 해당되었으니 세삼스럽다. 지금 한국이나 미국에 사는 서민들은 상대적 빈곤 세대다. 아마르티아 센은 “상대적 빈곤은 단순히 돈의 없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박탈 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상대적 박탈감>이라고도 한다. OECD 기준의 <상대적 빈곤층>, 즉 기초수급자는 최상위 1등부터 꼴찌까지 등급을 매겼을 때 중간 위치 소득자의 소득 30% 미만에 해당되는 계층을 말한다. 법정 최저생계비 역시 중위소득의 50%를 의미한다. 미국의 경우 중위층을 년7만불 소득이라 보면 2만불 미만을 기초수급 빈곤층, 3만5천불을 저소득층으로 분류한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서민이다. 빈곤층은 국가의 복지 혜택, 학비지원 등을 받을 수 있지만, 저소득층과 서민층은 복지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미국은 빈부의 양극화가 날로 극심하고 상대적으로 사회복지 혜택이 열악한 구조다.
한국의 상대적 빈곤은 더하다. 강남 30평 아파트 가격이 20억, 30억원 호가 한다. 조그만 방세칸 아파트가 2백만불, 3백만불 한다면 미국사는 교민은 믿어지는가? 40년전 결혼 선물로 아버지로 부터 받은 3천만원(3만불) 강남 아파트가 지금은 1백배가 인상되어 3백만불 한다. IMF 이전의 서울 아파트 몇채와 물려받은 건물만 지금 가치로 환산해 보아도 수천만달러의 평범한(?) 상류층에 해당된다. 죽어 마땅하다. 이제는 결코 좁힐 수 없는 간격이다. 지역의 성공한 교민들이 평생 모은 1,2백만불 재산은 강남의 방두칸짜리 아파트도 못사는 재산일 뿐이라면, 살아온 세월이 너무 야속하다. 빈부의 양극화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니 가난을 물려받은 가난한 자식들아. 인간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똑같은 자녀가 아니야. 가난을 죄악시하고 돈을 두려워 해라. 돈이 계급이다. 가난에서 벗어나라. 할 수만 있다면 가난에서 멀리 도망가라. 너희가 <가난>을 벗어나고 싶다면, 늙고 병든 애비를 버리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가난을 유산으로 물려준 멍청한 애비의 유일한 유언이다. <애비를 밟고 가라>. 절대 뒤돌아보면 안된다. 애비가 모르는 먼곳으로 가서 잘 살아라. 잘 살아야 한다.
낙엽의 기도 (11-09-2018)
언제부터인가 가을이 되면 산에 가야 한다. 서울에 살 때에는 북한산이 있어서 고마웠고, 여기서는 Fair Mountain Park 가 있어서 고맙다.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산행이라 할 것도 없이 두어시간 걷다가 온다. 단풍으로 물든 가을산이야 설악산 만큼이야 할까만은, 한국산 어디를 가도 형형색색 단풍 색깔 하나는 일품이다. 지금은 더하겠지만, 한국산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야말로 단풍놀이고, 단풍관광이다. 이제는 유명함이나 번잡함이 싫다. 낙엽 밟는 소리와 시냇물 흐르는 소리와 아내의 재잘거림이면 족하다.
정말 꽃비가 내리듯이 낙엽들이 가을 바람결에 흩날린다. 추풍낙엽 (秋風落葉).. 저 낙엽들은 과연 가을바람을 원망할까? 나무를 원망할까? 신을 원망할까?
유독 사람들은 낙엽을 보며 쓸쓸함과 그리움을 노래한다. 이별을 노래하고 떠나간 사랑을 아파한다. 차중락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페티김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이동원의 <가을 편지>, 조영남의 <낙엽은 지는데>, 최백호의 <내 마음 갈곳을 잃어> 등등, 나의 18번이고, 우리 세대가 좋아하고 즐겨 불렀던 가을 노래들은 하나같이 못다한 사랑, 가버린 사랑, 홀로된 사랑, 아픈 사랑 등이다. 왜 이럴까? 낙엽은 무어라 그럴까? 그래서 내가 낙엽에게 물어보았다. 당신은 왜 낙엽이 되어 떠나렵니까?
사랑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고 또 떠나간다. 사람도 천태만상이듯 사랑도 각양각색이다. 불같은 사랑, 비같은 사랑, 바람, 안개 같은 사랑, 각종 이름의 꽃같은 사랑 등등, 사랑은 만나고 언젠가 헤어짐이 자연스런 것이다.
낙엽은 오로지 한그루 나무만을 사랑했다고 한다. 그 많고 많은 나무 중에 왜 하필이면 그 나무를 만났는지 낙엽은 모른다. 운명같은 사랑이었다고나 할까? 어찌 살면서 좋은 날만 있었을까? 이른 봄날 아직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어린 나이에 새순을 터이고 세상에 나오던 날, 폭풍우와 번개가 치던 무서웠던 날, 비가 오지 않아 목말라 애타던 날, 병충애의 습격으로 아파하던 날, 그 힘들고 속상했던 많은 날들을 오로지 내 나무님만 믿고 의지하며 한평생을 살았지. 그래도 되돌아보면 힘들 날보다 좋았던 날들이 더 많았어. 무엇보다 감사하며 좋았던 것은 언제나 함께 함이었지. 내 옆에는 항상 그대가 있었지. 그대만 내 옆에 있다면 더 부러울 것도, 무서울 것도, 서운할 것도 없었네. 남들이 볼때에는 보잘것 없는 나무와 나뭇잎이었는지 모르지만, 우리 둘은 정말 사랑했고 행복했다네.
그런데 왜 나보고 낙엽되어 떠나느냐고?
사람도 늙으면 아프고 병들어 죽게 되는게 극히 자연스러운거 아니야? 어떻게 늙지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을 수 있나? 삼라만상의 모든 생명체는 유한성이야. 그래야 생명체의 순환이 일어나지. 생명의 선순환만이 연속성이고 신의 절대성이지. 모든 생명체의 수명이 다르듯이 나무와 나뭇잎의 수명도 다르다네. 나뭇잎의 수명이 짧은 것은 나의 운명 같은거지. 섭섭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네. 나는 이 가을에 죽어야 하네. 신이 나같은 나뭇잎에게 준 생명 기간이네. 보약을 먹는다고, 불노초를 먹는다고, 유식하고, 돈이 많다고, 신을 믿는다고 생명이 연장되거나 달라질거는 없네. 죽음은 그냥 받아드리면 되네. 다만 감사하게도 낙엽이라는 내 생명은 내 스스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물질을 주셨네. <리그닌 (Lignin)>이라는 물질인데, 리그닌은 나뭇잎이 식물의 본체와 분리하는 경계선을 만들 수 있게 만드는 것이지. 리그닌은 식물 본체에서 분비되는 것이 아니라 나뭇잎 스스로 만들어 떨어져 나가는 것이지. 그러면 나무는 나뭇잎이 떨어진 부분에 표피세포를 만들어 겨울을 버티게 되는거지. 멋있지 않나?
나는 비록 낙엽이 되어 죽지만 죽지 않아. 나는 나무를 떠나지 않네. 나의 평생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단풍이 되어, 가장 멋있는 최후의 사랑을 하고 떨어지지. 아마 나무는 나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겠지. 나는 죽어도 멀리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네. 그대의 나무 발 아래 떨어져 그대의 밑거름이 되지. 사람들이 나를 밟고 지나가면서 바스락 소리를 내면, 나의 몸은 부서져도 그이를 위한 아름다운 노래가 되지. 나의 가장 낮은 위치에서 당신을 바라보고 지켜줄께.
사랑은 지워지지 않아. 사랑은 잊혀지지 않아. 사랑은 가버리지 않아. 사랑은 당신 곁에 언제나 머물러 있지. 지금은 낙엽되어 당신의 발아래 뒹굴지만, 멀지않아 흙이 되어 당신을 따뜻하게 안아줄거야. 당신과 사는동안 고마웠고 사랑했어. 앞으로도 당신이 사는 날까지 당신 옆에서 동행이 될께. 아무런 근심 걱정 하지말고 행복하시게나.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 굽이치는 바다와 /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악의 평범성 (11-09-2018)
당분간 <한국 현대사 칼럼>을 < 10편- 멈추지 않은 한국전쟁> 에서 일단 멈추고자 한다. 앞으로 써야 할 이승만 독재정권과,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 독재정권 기간동안 저질러졌던 천인공노할 수많은 사건들과 부정부패 사건들을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민중을 현혹하고 은폐하고 감추었던, 그래서 민중을 무지하게 만들고 개, 돼지로 여겼던, 한국 현대사를 쓴다는 고통이 나의 몸과 마음을 너무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말한다. 지나간 역사를 자꾸 들추어 내어 무얼 하냐고? 먹고 살기도 바쁜데, 미래를 향해 다함께 힘을 합하여 나아가야지, 과거사 적폐청산이 밥 먹여 주냐고? 아니다. 대한민국 과거사가 청산되지 않았기에, 감추어지고 은폐되었기에, 지금의 한국 사회는 <가치관>의 상실과 <정의>가 상실된 <거짓된 사회>가 된 것이다. 부모 자신이 무지하고 비굴하니, 가정이 바로 서지 못하고, 학교의 교권이 무너지고, 사회의 기강이 무너지고 국가의 존엄이 사라진, 수당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이면 최고인 잡놈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국현대사의 수많은 사건 현장에 우리 자신을 대입시켜보자. 만약 내가 본의가 아니게 그 현장에 가해자로 참가했었다면, 나도 그들처럼 많은 민중들을 잔인하게 죽일 수 밖에 없었을까? 그 현장의 경찰, 군인, 공무원, 부역자들 중 누구였다면 그 명령 체제를 거부할 수 있었을까? 오로지 그 현장에 내가 없었던 것으로 감사해야 할 일일까?
민중의 약점은 <사유의 불능성>과 <악의 평범성>에 있다.
한나 아렌트 (1906년 ~ 1975년)는 유대인이자 독일 정치 철학자이다. 그녀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책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에 대해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 독일의 나치정권 친위대 장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년)>은 3년동안 약 6백만명의 유대인을 죽인 살인마다. 그의 임무는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기차에 태워 가스 수용소에 보내는 일이다. 또 그의 가공할 업적은 가스실이 설치된 기차 (일명 죽음의 열차)를 개발한 것이다. 그는 2차세계대전이 종전되었을 때 아르헨티나로 도망을 가서 아르헨티나 국적으로 숨어 살았다. 15년 뒤인 1960년 이스라엘 모사드에 의해 체포되어 예루살렘 법정에 서게 된다. 그는 법정에서 결백을 주장한다. “나는 유대인을 죽이지 않았다. 나는 독일의 선량한 시민이다. 나는 국가가 법에 따라서 지시한 명령을 성실히 의무를 이행했을 뿐이다. 국가의 명령은 마땅히 수행되어야 한다. 나는 살해 동기가 없었으며, 명령을 수행한 공무원이었을 뿐이다. 나는 당시 사회의 <보편적 기준>에 충실히 행동했던 것이다. 고로 나는 무죄다.”
한나 아렌트 작가는 이 재판을 취재하면서 “악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하고 진부한 것이다. 당신의 죄는 <사유의 불능성>이다. 그 가운데서도 평범한 악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한 무능함이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과 행동의 무능함을 낳는다.” 흔히들 그 시대의 독재자만을 악마라고 지탄한다. 하지만 악의 평범성은 특정된 악마 (예를 들면, 히틀러, 괘벨스, 아이히만, 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해당된 모두 (예, 전쟁에 참여한 독일 국민 )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무능력, 그것이 바로 <악>이다.” 무지가 악으로 연결될 경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적폐청산의 가해자들은 말한다. 국민 각 개체의 잘못이 아니라, 시대적 구조적 모순으로 우리 모두가 역사의 희생양이라고 화해하자고 말한다. 지나간 과거를 덮어주고 포용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절대 그러면 안된다. 한번도 친일, 독재 적폐가 심판받은 적이 없다. 수많은 민중을 학살하고 민중의 재산을 착취한, 지금도 잘 살고 있는 그 많은 가해자들은 심판받지 않았고, 그러기에 용서를 빌지 않았고, 그러기에 용서하지도 않았다. 청산되지 않은 화해는 <악의 평범성>을 또다시 다른 폭력과 독재 권력으로 재생되고 반복되기 마련이다.
비단 아이히만이나 이근안 고문경감, 등등 알고 모르는 수많은 역사의 가해자들도 평범한 집안의 가장이고 자랑스런 아빠이고 사랑하는 남편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복수성(複數性)>이다. 누구나 내 안에 내가 너무 많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죄성이 있으며, 악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사회적 여건, 즉 <상식>에 따라 인간성이나 양심이 달라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 회사, 학교, 교회, 가정, 집단 공동체 마다 공유하는 특별한 정서가 있다. 이를 우리는 <상식>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보편적 이성에 따라 행동하기 보다는, 대부분의 경우 <사회적 상식>에 따라 행동한다. 즉 남들 따라 행동하면 비난받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함정이 있는 것이다. 즉 <사유의 불능성>이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무능, 무지함이다. 평범한 자들이 저질은 죄가 <악의 평범성>이었다. 유대인 대학살, 4.3 제주 대학살, 보도연맹 대학살, 6.25전쟁 대학살, 한국군의 월남전 민중 대학살, 광주 민중 대학살.. 등등 수많은 역사의 대학살은 민중의 <무지>와 <무능>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민중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하면 안된다는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안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한국 현대사 -10편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 (11-02-2018)
<중공군의 한국전 참전과 휴전협정>
- 미군의 북진 공격 ; 1950년9월15일 인천상륙과 동시에 맥아더는 38선 북진 명령을 하달함. 9.28 서울 수복후 10월19일 미8군 평양 함락.
- 호남지역에 고립된 북한군5개사단은 태백산 줄기를 타고 북상, 잔여 북한군1만명은 지리산 유격대와 합류, 북한 스스로 외부 지원없이 장기전 태세 돌입.
- 중국은 한국전에 개입할 형편이 못됨. 불과 일년전인 1949년10월에 중국인민공화국 수립, 20년동안 <국공내전>으로 국가재정 열악함. 결국 한국전 참전을 위해 소련으로부터 20억달러 차용함. – 한국전쟁은 중국으로서는 원하는 않는 시기에 원하지 않는 형태로 발생한 전쟁임.
- 미공군기가 만주지역을 폭파함. 중국 주은래 수상은 “미군이 38선 이북을 침공할 경우 중국은 한국전에 참여한다.”고 미국에 공포함.
- 1950년11월16일 : 미국은 압록강 철교를 폭파하라고 명령함. 트루만 대통령, 국무장관, 국방장관, 맥아더 사령관은 공통으로 만주지역 폭격에 합의함.
- <중국의용군> 한국전 참전 : <의용군> 의미는 자발적 비정규군이라는 의미지만, 실제로는 제4야전군이 주력이었음. 1백만 대군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25만명 규모였음. 그들은 단지 4일분의 식량과 80발의 소총 탄알만 지급받은 뒤 트럭 한대 없이 압록강을 건너옴. 그 이후 식량과 장비는 북한군과 북한 주민들 협력으로 현지에서 조달 받음. 항일투쟁과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중국의 <인민전쟁>은 현지 지역 민중들의 적극적 협조와 지원이 있어야만 가능함.
- 유엔군과 한국군 : 44만명의 맥아더 유엔군과 막강한 군사 장비로 두만강과 함경북도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압록강까지 모두 점령하여 한반도 통일을 목전에 둠. 반면 중공군은 경무장으로 험준한 산악지대를 이용해 극비리에 야간에만 이동함.
- 한반도의 지형적 특수성 : 북으로는 낭림산맥, 남으로 태백산맥이 등줄기처럼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고, 서쪽을 향해 잔가지처럼 드리워진 산악 형태임. 즉 산맥을 통하면 전국 어느지역이나 연결된다는 특징을 중공군과 북한군이 이용함. 미군은 낭림산맥을 축으로 함경도와 평안도로 나뉘어져 있었음.
- 1950년10월25일 : 중공군의 야간기습 공격 : 중국군 4야전군 17만, 3야전군 10만, 북한군 6만명, 총 33만명,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총사령관으로 구성됨.
- 1950년11월24일 ; 맥아더는 중공군의 참전을 눈치채지 못한채 총 공격명령을 내림. 서부와 동부전선에 배치된 미군과 한국군의 총병력은 42만명이었음. 11월26일 중공군의 총반격 개시. <인해전술> 심리전 전략 – 야간에 사방에서 포위하여 피리, 꾕과리, 함성으로 공격하면 적의 인원수를 짐작조차 하지 못할 공포에 휩싸이게 됨. 고지를 주야로 뺏고 뺏기는 반복의 연속임.
- 1950년 12월 미군 총퇴각 명령, 1951년 흥남 <1.4 후퇴> 실시 : 미군의 전의 상실. 맥아더는 북한 정규군, 유격대, 지역민중의 긴밀한 3자 협력관계인 <인민전쟁> 전략을 몰랐음. 미국은 월남전에서도 동일한 실패를 반복함.
- 1950년11월30일 ; 미국 트루만 대통령은 한국전 미군 패배를 인정하면서 <원자폭탄 사용>을 고려중이며, 권한을 맥아더에게 일임한다고 발표. – 중국과 전면전 선포. – 국제사회 비난으로 핵무기 사용을 포기함.
- 1950년12월 <몰살작전 (일명 킬러작전)> ; 12월 새로부임한 미8군 사령관 리지웨이는 미군의 압도적 화력으로 무차별 폭격을 지시함. – 병력수 : 중공군과 북한군 17만 4천명, 미군과 한국군 36만5천명. 두배 많음. 화력과 군사장비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미군이 우세함. – 한반도 전지역을 맹렬히 폭격함. – 북한군의 보급로 차단, 극도의 물자부족과 굶주림, 질병, 남한민중들의 비협조로 북한군 후퇴.
- 1951년3월18일 : 서울 다시 탈환, 3월22일 38선 이남 모두 탈환, 북진 개시. – 미군의 무차별 폭격작전은 무고한 남한 민중 몰살을 초래함.
- 맥아더의 <교살작전> : 맥아더는 중국본토의 폭격을 포함한 전쟁 확대를 미국 의회에 허락 요구함. 심지어 핵무기 사용까지 고려함. – 미국 정부가 맥아더 요구를 거부함. 맥아더 해임됨. 1950년9월까지 전쟁 3개월동안만 한반도 퍼부은 미군의 폭탄은 도합 9만7천톤과 780만 갤런의 네이팜탄 이었음. – 미국이 태평양전쟁에서 퍼부은 폭탄 총량보다 많음. 평양인구는 40만에서 8만명으로, 건물 2채을 제외하고는 모두 잿더미로 변함. – 1951년10월 이후 미 공군기들은 폭격 대상물을 찾지못해 되돌아 올 정도로 한반도 전체가 쑥대밭이 됨.
- 1952년2월22일 : 미공군기가 <세균병기>를 북한지역에 살포했다고 북한이 유엔에 항의함.
- 1951년2월 : 지리산 일대 전라, 경남 지역 남로당 유격대원 4만명에 대한 초토화 작전 – 대규모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확산.
- 1951년7월10일 : 미국과 북한 대표의 휴전회담 본격 개최.
- 195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한국전쟁 조기휴전을 공약으로 내세운 아이젠하워가 당선됨. – 미국이 한국전쟁에 실패를 스스로 인정.
- 1952년12월3일 : 미국이 주장한 <포로 자유교환> 결의안을 유엔이 채택.
- 1953년5월8일 : 이승만 정부 ㅡ<휴전협정>반대, 북진통일 촉진대회.
- 1953년7월27일 : 미국, 북한 대표 판문점 <휴전협정 체결>조인식.
한국 현대사 -9편 (보도연맹 학살 사건 ) (10-26-2018)
<때려잡자! 빨갱이!> <무찌르자! 공산당!>.. 이 문구는 우리세대 머리 속에 낙인되어 박혀있다. 왜 60대 이후 세대가, 특히 경상도 출신들이 <공산당, 빨갱이, 좌익 종북> 하면 입에 거품을 품고 죽이려고 달려드는지 아는가? 경상도에 <좌익>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옆집 이웃들이 빨갱이로 몰려 가족들 까지 몰살당하는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이념적 종파주의>라는 정신병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인류 역사에서 자국 정부가 자국 민중을 <빨갱이>라는 이념몰이로 1백만명 이상 죽인 단일 사례는 대한민국 이외에는 없다. 천인공노할 이승만 정권은 6.25전쟁 때 부산으로 도망쳐 내려와서는 선량한 남한 민중을 빨갱이로 몰아, 불과 3개월에 걸쳐 최소 30만명에서 120만명을 닥치는대로 죽인 사건이 <보도연맹 학살 사건>이다. 그 당시 대한민국 인구가 총 2천5백만명 시절이었다. 6.25전쟁으로 죽은 사상자가 군인 포함하여 남북한 모두 2백4십만명 이었다. 그 당시 살해 현장에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한 부역자 중에 개신교 목사들과 <서북청년단>이었다면 그 죄를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한국 현대사에 민중을 학살한 수많은 사건 중에 그 규모와 방법이 가장 악랄했다. 언제나 역사의 현장에는 피해자가 있으면, 가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1백만 민중을 불과 3개월에 걸쳐 <빨갱이>라는 누명을 씌워 살해한 경찰, 군인, 공무원, 서북청년단 같은 부역자들, 그들 나이가 지금 90대고 그 자식대가 우리 60,70대다. 참으로 모진 민족이다.
<국민보도 연맹 설립 배경>
- 1949년 6월5일 : 1948년 12월 시행된 <국가보안법>에 따라, 이승만 정권은 <좌익> 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반공주의자>로 사상전향 시킨다는 <대국민 사상통제> 목적으로 <국민보도연맹>이라는 반공단체를 설립함.
- 1948년 <제주4.3사건>, 1949년 <여순 반란사건>, <남로당 유격대>에 가담하가나 동조한 전향자들, 사상범들을 회유, 감시 하기 위함이 목적이었음. 지방공무원, 경찰, 군인, 서북청년단 등은 할당된 회원가입 실적에 압박받아, 좌익 세력뿐만 아니라 일반 농민, 중고등학생 까지도 강제 가입시킴. 가족중에 월북자나 남로당원이 있으면 무조건 가입해야 했으며, 일반 농민과 민중은 쌀, 비료, 고무신 등을 나누어 주며 강제 가입시킴. 1950년 초에 가입된 보도연맹 회원수만 30만명이 넘었음. 이들에게는 <도민증> (현 주민등록증)을 발부하지 않고 <국민보도 연맹증>을 발부함.
- 1950년6월27일 : 부산으로 피난간 이승만 남한 정부는 <보도연맹원>들과 <양심수>들이 조선 인민군에 협조할 것을 우려해 무차별 총살 명령을 내림. 북조선 인민군에게 점령당하지 않은 남한 전지역에서 무차별 학살이 시작됨. <빨갱이 – 보도연맹원>들과 가족들은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무조건 현장에서 죽임. 북한군이 점령하지 못한 낙동강 최후방인 경상도 지역과 제주도 민중이 가장 많이 학살됨. <보도연맹 학살>의 실행 주범자는 이승만 친위부대인 특무부대장 김창룡(만주 독립군 학살 주범이며, 간도특설대 요원 이었음) 이었으며, 제도 집행자는 공안 사상검사 오제두, 정희택 이었다.
- 1950년6월말 : 경상도 대학살, 7월 충청, 호남, 서부경남 대량 학살,
- 1950년 9월27일 ; <서울 수복>후에도 인민위원회 소속원 뿐만 아니라 인민군에게 밥해준 민중까지 모조리 총살시킴. 북한 인민군이 점령하면 남한정권 부역자라 하여 <인민재판>으로 죽이고, 국군이 점령하면 <종북, 빨갱이>로 몰아 재판없이 죽였다. <6.25전쟁>은 이념을 모르는 조선민중을 대상으로 한 <미.소 이념전쟁>이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나?
- 1953년 종전후 : 그 누구도 <보도연맹 학살>사건을 말하거나 항의하면, <빨갱이>로 체포 구금, 살해됨. 따라서 언제 누가 얼마나 어떻게 살해되었는지 정확한 자료가 없으며, 그 당시 살해된 명단 등 일체 서류가 소각됨.
<사건 진상조사>
- 1960년 : <4.19 혁명> 희생자 유족들의 분노 여론으로 장면 내각의 제 4대 국회에서 <양민학살사건의 진상조사 특위>가 구성되어 경상도 지역을 시작으로 실태조사가 시작됨.
- 1961년 : 박정희 <5.16 군사쿠테타>이후 , 박정희 군부는 <소급법>을 만들고, 보도연맹 학살 희생자 유가족들을 <빨갱이>로 몰고, <혁명재판>으로 처벌하거나, <요시찰 대상>으로 지목 규정하여 항시 감시함. 이들 유가족들에게는 <연좌제>를 적용해 국가공무원, 회사원 시험 등, <신원조회>라는 명목으로 일체 사회생활을 못하게 감시 방해함. 또한 학살과 관련된 모든 정부 자료 및 기록들을 모두 소각하고 <보도연맹>이라는 단어조차 사용을 금기시 함. 당연히 기성 세대는 역사교과서에 없었고 교육받지도 못했음.
- 2007년5월 : 노무현 정부의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2005년 기본법 제정후, 2007년부터 <보도연맹 학살 사건> 조사가 시작됨. 민간인 학살 매장지가 168곳으로 추정함. 2010년12월31일 이명박 정부 때 해산함.
- <경상도 보수꼴통> : 살아남기 위해서는 <때려잡자, 빨갱이!>에 앞장서야 했고, <무찌르자, 공산당!>이 곧 구국이고 애국인줄 알고 배우고 자란 세대들이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모두가 불쌍한 조선의 민중들이다. 편향된 <이념 사상>은 <극우,극좌>를 막론하고 모순과 편견으로 파국에 기여할 뿐이다.
- “국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적법한 절차 없이 국민의 생명을 박탈할 수 없다.”
한국 현대사 -8편 (한국전쟁 전반부 ) (10-19-2018)
<한국전쟁>의 공식 명칭인 <6.25 전쟁>은 김일성의 <적화통일> 야욕으로 갑자기 남침한 단순한 내전이 아니다.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전략>은 70년 전이나 지금 21세기나 변함이 없다. 작금의 <미,중 무역전쟁>도, <미.중 군사 대립>도 같은 맥락이다. <중.소 동맹> 과 <미.일 동맹>, 그 한가운데 끼여있는 <한반도 남과북의 극한 대립>은 4대 강대국들이 원하는 바이다. 그들은 <남북 통일>, <종전선언>, <평화협정>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지난주 칼럼에서 살펴 보았듯이 1950년 미국은 이미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이승만은 <북진통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한국전쟁 북한의 착각 배경>
- 한국전쟁 발발 직전까지 2년동안 38선 부근에서는 이미 874회 전투 (남한 <한국전쟁사> 기준), 1,836회 전투 (북한 주장)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 한국전쟁의 시작은 <4.3제주행쟁>과 <여순 봉기>로 인한 10만명 이상의 희생자와 그로 인해 발생한 <유격부대 전투>로 시작된다는 설도 있다. 김일성이 남침을 강행한 착각은 중국 <국공내전>에서 모택동 중공군의 승리 요인이 중국통일에 근거할 수 있다. 즉 남한의 남로당 <유격부대>와 북한의 <정규 인민군>이 양공하고, 이승만과 미군정을 혐오하는 <남한 민중>이 합세하면 속전속결로 남북통일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 1949년7월15일 : 김일성 정권은 북한 전역에 <조국보호와 방위를 위한 지지자 협회> 주도로 1950년 봄까지 3백만명이 기부금 운동에 참가하여 소련제 무기를 구입하기 시작함. 전쟁을 준비함.
- 1950년2월14일 : <중.소 우호동맹과 상호원조 조약>체결.
<한국전쟁 발발과 미국 개입>
- 1950년6월25일 새벽4시 : 옹진, 개성, 동부해안지구에서 전투 개시 – 남한군대 10만명중 3분의2가 한강 이북에 배치됨.
- 6월25일 오전에 동두천, 저녁에 포천, 26일 의정부, 27일 북한군 서울 공격,
- 6월28일 새벽2시 : 채병덕 육군 참모총장이 <한강 인도교 폭파> 명령. 한강 이북 한국군 주력 3개사단 병력과 군사장비 철수하지 못함. 국군들 대거 이탈하여 인민군으로 편입함. 국군10만명 중에서 4분의 3이 행방불명 되었다고 함. –국군의 결정적 손실 및 전력약화 발생. 이승만 정부내각은 이미 대전으로 도망감, 서울시민들에게는 피난가지말고 안심하라고 거짓방송. – 이승만은 조선 선조에 버금가는 사악한 위정자임.
- 6월26일새벽3시 : 미국 국무장관 에치슨이 유엔 안정보장이사회 긴급소집. 소련은 타이완 건으로 불참. –밤10시 맥아더 극동사령관을 즉시 한국전 출동 지시 – 미군은 유엔 깃발로 참전, 미7함대, 미공군, 해군 한국전쟁에 즉시 투입.
- 7월7일 : 맥아더를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임명, 공군98%, 해군 83%, 지상군88%가 미군임. 7월1일 미군 선발대 부산 도착,
- 7월14일 : 이승만은 맥아더에게 <한국군 지휘권>을 양도함. 일명 <대전협정>. 1953년 정전후 한반도 <전시작전권> 이양의 계기가 됨. – 남한 이승만 정부는 국군통수권과 사법권 상당부분을 미국에게 넘겨줌으로써 <한국전쟁>은 <북.미전쟁>으로 전환됨. – 2018년10월12일 미국 트럼프는 “남한 정부는 미국의 승인없이는 어떠한 것도 하지 않을것 – 즉 ‘남한은 미국 허락없이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라는 <주권침해> 망언을 하게 된 동기임. 70년 남한 정권의 <종미 (從美)> 실상임.
- 북한 인민군 서울 점령후 – 서대문 형무소 정치범 4천명 석방, 남측 인사들로 <서울인민위원회>구성하여 <인민재판> 으로 <반동분자> 처형. –이승만계 군인, 경찰, 지주, 정부관리들과 친일 부역자들이 대상임. 전시동원령으로 남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북한 의용군 모집에 참여. – 이승만 정권은 남한 민중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한다고 미 정보부가 보고. 북한군과의 전투에서 적극적 방어를 한것은 국군이 아니라 5만명의 남한 경찰들이었음. – 남한 경찰은 북한의 친일적폐 청산 최우선 순위였기 때문임.
- 북한군의 남한 인심정책 – 남한 점령지역은 해방지구로 선포하고 사회개혁, 인민위원 자치선거, 토지개혁 등을 단행함. – 미군과 전면전시, 남한 민중을 북한 지원군으로 끌어드리기 위함. – 미군과 이승만은 <9.27 서울수복>후 모두 <빨갱이 종북세력, 부역자>로 처형 시킴. – 대표적 <보도연맹 살해사건>으로 최소 30만명에서 최대 1백2십만명 남한 민중을 무차별 살해.
- 9월1일 : 한국군 포함한 유엔군 병력 18만명, 북한군 병력은 9만8천명으로 북한군은 병력, 군사장비, 무기 등 모든면에서 열세임. 미 공군기의 북한군 보급로 무차별 폭격, 남한 가옥 61만채, 1만5천개 학교, 1만7천개 공장 등 남한 전지역 잿더미로 변함.
- 9월15일 : <인천상륙작전> – 총 함정수 261척, 9월20일 서울시 공략, 남부전선 (안동, 김천, 진주, 청주)도 미군이 점령, 9월28일 <서울 수복>, 9월29일 맥아더의 <북진공격>, 맥아더 지휘 총 병력 규모 44만5천491명임. 미군12만5천, 한국군10만, 영국군1천7백명, 병참부대 12만명, 미극동공군 3만7천명, 미해군 6만명임.
- 9월30일 ; 맥아더는 북한군 총사령관에게 <항복권고문> 발표.
- 10월19일 ; 미8군 평양 함락, 미10군단10월26일 원산 상륙 – 개마고원, 두만강 점령
- 미군의 남북한 주민 대규모 <집단학살극> 곳곳에서 자행.
한국 현대사 -7편 (한국전쟁 서곡) (10-12-2018)
인류 역사에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동일 민족간에 3년에 걸쳐 240만명 (군인 40만명, 민간인 200만명)을 서로 죽고 죽이는 <한국전쟁>은 북한 <김일성 괴뢰정권>이 남침해서 발생한 단순한 <민족 내부전쟁>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친형제 간에 누가 먼저 공격을 한 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왜 서로가 서로를 죽였으며, 왜 아직까지도 서로가 철천지 원수가 되어 살아야 하는가? 남북한 정부는 민중의 눈과 귀를 닫게 하고 입을 막았다. 민중에게 거짓을 가르치고 진실을 숨겼다. 진실을 말하면 <간첩>, <빨갱이>로 소리소문 없이 고문하고 죽였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채, 죽고 죽이고, 미워하며 살았다. 그런 세월을 남북한 민중은 70년을 살았다. 왜? 누구 때문에? 이런 바보같은, 어리석은 민족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남한 단독정부 후 한반도 변화>
- 1948년 9월9일 :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수립
- 1948년9월22일 : <반민족행위 처벌법> 제정
- 1948년 10월19일 : <여수,순천 봉기 사건> 발생 –제주 양민학살 명령에 14연대 항명 반란 – 20일 여수시민 4만명 참석 인민대회 개최, – 10월22일 지역 계엄령 선포 – 6천명 민중 학살, 2만3천명 체포, 5천여채 가옥 방화 – 1949년7월까지 4,700명 군장병을 총살 혹은 유기징역에 처함. – 군장병들 산으로 피신, 유격대로 전환 (남한 133개군 중, 118개 군에서 유격전구 조직됨. 7만7천명.)
- 1948년11월 : <국가보안법> 제정. -1949년 일년동안 미국과 이승만 정권에 저항하는 남한 인사 11만8천621명 체포 및 처형됨.
- 1948년9월7일 : <반민족행위 처벌법> 통과, <친일매국분자>들 색출 및 처벌하기 위한 최초 법. 1949년1월8일 <반민특위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 창설 및 친일매국노 559명 검찰송치, – 1949년10월 : 반민특위 의원들을 남로당, 공산당으로 몰아 구속, 반민특위 해산함.
- 1949년6월 <국회 프락치(공작원) 사건> : 국회부의장 김약수 외 진보 국회의원13명이 <평화통일방안 7원칙>을 제시하자, <북진통일>만 주장하던 이승만 정권은 이들을 국회 남로당 공작원 (프락치)라고 구속,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선고함.
- 1949년6월 : 미군 완전 철수 (500여명 미군사고문단 남겨놓음)
- 1949년6월25일 : 평양에서 남북 71개 정당 사회단체 대표 676명이 참석, <조국통일 민주주의전선 –일명 조국전선> 결성대회 개최, 선언문 발표. – 이승만정부 반대로 무산.
- 1949년6월26일 : 백범 김구 암살 – 간도 특설대 출신 김창룡 (이승만정권 특무대장 –현 보안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포병 소위 안두희 (미국방첩대 CIC 출신임 –미국 배후설)가 서북청년단 4명과 모의, 암살.
- 1949년11월 – 미국 군사원조로 유격대 토벌 본격 초토화 작전개시. 1950년4월 교전횟수 2,948회, 참가인원 6만5천명.
- 1950년5월30일 : 제2대 국회의원 선거 – 이승만 지지세력 불과 30석 당선, 남북통일 지지 진보인사 130명 당선 – 이승만 세력 고립 및 붕괴 우려.
<동아시아 지형 변화>
- 1949년10월1일 : 모택동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 국공내전 20년 만에 장개석 국민당은 타이완으로 쫓겨남. – 미국 <동아시아 폐권 전략>에 결정적 타격, 국민당의 중국을 발판으로 소련의 동아시아 공산주의 확산을 봉쇄하고자 했음. – 미국의 중국 봉쇄 정책 : 중국과 무역, 외교 금지, 중국의 유엔가입 거부권 행사. 일본을 아시아 병참기지로 하고 한국, 베트남, 타이완을 중국 진공의 교두보로 하는 전략 수정 –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일본 군사 재무장>, <아시아 미군 기지 확보 전쟁>이 모두 관련이 있다고 볼 것임.
- 1949년8월 : <소련의 핵무기> 실험 성공. 미국과 군사적 동등권 확보, 미국의 세력 확장에 저지.
- 1950년 <월남 내전>: 2월27일 – 월남 지배국 프랑스가 미국에 군사적 지원 요청, 3월16일 미함대 사이공 상륙, 5월25일 미의회 3천만 달러 월남 전쟁지원 자금 승인, 호지맹의 월맹과 내전 가속화.
- 1949년 ~1950년 <일본 군수산업 재가동> : 일본 <평화헌법>에 의거하여 일본인은 군사 관련 인력 및 군수산업을 할 수 없음에도, 미국이 일본을 <동아시아 병참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허용,- 미 극동사령부 제8군은 7만여명에 불과함. 일본인 15만명을 미8군 민정업무에 투입함. – 일본군수 산업 시설을 몰수하지 않음. 1950년 한국전쟁시 일본 군산복합체가 직접 무기와 군수품을 생산하여 미국에 납품함. -<한국전쟁>은 일본의 군수 인력 25만명과 군산 복합체의 생산과 지원으로 가능하였음.
- 1950년 <일본 비상계엄> : 미국 맥아더는 – 3월3일 일본 병참화 기지에 반대하는 일본공산당 불법화조치를 단행. – 6월16일 일본 전역 비상계엄령 발동, <전시동원체제> 돌입. 9일후 한국전쟁 발발.
- 1950년1월26일 <한미상호방위 원조협정> 체결 : – 2억달러 군사원조 단행, 남한군대 6만명에서 10만명으로 성장, 미국의 적극적 지원과 일본의 재무장에 고무된 이승만은 <북진통일>을 외침.
한국 현대사 -6편 (남한 단독정부 수립) (10-05-2018)
남북 분단의 역사는 남한 단독정부 수립으로 시작된다. 남조선 민중이 원한 것이 아니라 미군정의 <동아시아 폐권 전략>과 이승만의 <정권야욕>으로 강제 수립되었다. <반공> <빨갱이> 이데오르기를 앞장세워 1980년대까지 40년 이상 수많은 민중을 투옥, 학살하였다. 친일 적폐주범들은 <친미파>가 되고 <보수 기독교인>으로 변신하여 아직도 남한의 기득권자로 잘 살고 있다. 누가, 누구의 잘못으로 조선 민중을 이렇게 억압하고 갈라 놓았나?
<1947년 배신과 음모>
- 1947년5월21일 <제2차 미소 공동위원회> : 모스크바 협정과 단독정부 수립에 대한 조선인 일부 반대 단체를 소련이 거부함으로 결렬됨. – 미국 대안제시 : 유엔 감시하에 남북한 인구비례에 따른 총선거로 통일정부 수립 –소련 대안제시 : 유엔 연합국 간섭없이 조선인 자체 선거로 통일 정부 수립, 미소 군대 즉시 철수. – 미국 유엔에 상정 (그때나 지금이나 유엔은 미국이 지배하고 있었음).
- 1947년7월19일 : 민족 지도자 몽향 여운형 암살 당함. (해방후 2년동안 12차례 테러를 당함)- 조선건국 위원회, 조선인민공화국 (서울을 수도, 가칭) 선포, 조선인민당 창당, 파시즘과 친일파를 제외한 연합전선 구축.
- 1947년7월27일 : 임시정부 수립 촉진 인민대회 – 남한 전역에서 민주주의 민족주의 주최로 개최. – 모스크바 결정 사항 이행, 미소공동 위원회 합의, 인민위원회 형태인 조선인민공화국 수립, 애국자들로로 구성, 토지개혁, 산업국유화, 남녀평등권 제도 실시. – 결국 파탄됨, 민중탄압 본격 시작.
- 1947년9월 :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유엔에 상정 –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위배됨. 조선인 83%가 유엔 상정에 반대. 1946년에 이미 미국 극우와 이승만은 단독 정부 수립 계획 착수.
- 1947년9월30일 민주주의 민족전선, 10월18일 민주한독당, 근로인민당, 사회민주당 등 여러단체 공동성명 – 미소 양군 철수, 통일정권 자주 수립, 전국총선거 준비기구 구성.
- 1947년11월2일 <김구의 한국독립당> – 1930년 임시정부 인사들이 상하이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 1938년 광복군 조직. 반탁 운동, 미소 양군철수, 남북정당 대표 회담, 남조선 군정반대, 남북한 총선거 준비기구 결성 촉구.
- 1947년9월26일 : 소련대표 -1948년초까지 미소 양국 군대철수, 외부 개입없이 단독정부 수립지지. – 미국은 친미정권 수립과 반미세력 제거후 철수 검토 가능.
- 1947년11월14일 : 유엔총회는 미국제안 (1. 유엔 임시위원단 9개국의 감시 아래 인구비례에 따른 남북총선거 실시로 선출된 대표로 통일정부 구성함. 2. 1948년3월31일 이전에 총선거 실시. 3. 새 정부 수립후 90일 이내에 점령군 철수함.)을 통과시킴. – 명백한 주권침해이며, 유엔임시위원단 9개국중 우크라이나를 제외하고는 8개국이 미국 동맹국임.
- 1948년1월6일 – 유엔 임시위원단 입국 거부, 노동자 파업사태 – <2.7구국투쟁> : 남한노동자 30만명 총파업. 전국 학교동맹 휴학, 민중 가두시위. – 미군정의 강폭한 탄압으로 100여명 학살, 8,500명 검거 투옥됨. – 농민들 시위로 확산 -<4.3 제주 항쟁 (1948년4월3일 ~1954년9월21일) 대학살극>, <10.19여수.순천 군사반란 사건 (1948년10월19일 ~ 1954년10월27일)>으로 이어지면서 전국 무장봉기를 감행함.
- 1948년3월1일 : 유엔임시위원단 -5월10일 이전에 남한 단독선거 발표. – 한반도 분단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매일 전국시위가 발생함. – 3월12일: 김구, 김규식, 조소앙, 등 애국지사 7인 남한 단독선거 반대 공동성명. -3월25일 북한 9개정당, 남한단독정부 수립 반대 공동성명서 발표.
- 1948년4월19일 : <남북한 정당 및 사회단체 연석회의> 개최 – 남북한 56개 정당 대표, 사회단체 대표 총 695명 참석. – 한반도에서 외국군대 즉각 철수 -> 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 -> 조선 입법기관 선출 -> 조선헌법 제정 -> 통일된 민주정부 수립 요구함. (남북한 최초통일정부 합의서)
- 미국의 <남한 단독선거 강행> 조치 – 미군정은 국방경비대에게 경찰 업무 수행지시, 독자적으로 민중 구속 수사권 부여. – 경찰 중무장, 영장없이 구속, 무차별 살상권 부여, – 50명 단위의 경찰특별돌격대 조직, 저항민중을 무차별 살상. – <향토보위단>이라는 불량 민간단체 조직, 민중동향 파악, 경찰 압잡이 역할을 하게함. – 언론인 다수 피검, 중형선고 – 우편물 사전검열, 통행시간 연장. 가두시위 일체 금지 – 위반시 무조건 구속, 실형선고.
- 1948년5월10일 : <남한 단독선거 실시> – 선거당일 비상계엄령 발효. 미국 군함, 미군 비행기 무력 위협시위. 전국 경찰 무장 배치. 향토보위단 전국 배치, 감시 – 대다수 애국지사들 선거 불참, 이승만과 한민당 일파들만 입후보 – 남한 인구의 3분의1만 투표에 참여. -5월7일부터 5월10일까지 단독선거 반대투쟁으로 350명 학살, 5,425명 검거 투옥됨.
- 남한 단독선거를 통한 <제헌국회> 선출 : 이승만 국민회 54석, 김성수 한국민주당 29석, 무소속 85석, 군소정당 30석. –이승만 임시의장 선출, 제헌국회의원 대부분이 친일, 친미파, 보수 개신교 세력으로 구성됨. 5월31일 제헌국회 개막이 기도로 시작함.
- 1948년7월17일 : 제헌 헌법 제정.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
- 1948년8월15일 : 남한 단독정부 <대한민국> 수립 선포.
한국 현대사 -5편 (1946년 민중항쟁) (09-28-2018)
해방후 조선 민중이 통일 자주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없었기에, 강대국의 신탁 통치가 필요했다는 강변은 미군과 이승만 정권이 날조한 것이다. 조선 민중은 공산주의를 원한 것이 아니라, 전국 <인민 위원회>및 산하조직을 통한 민중의 통일된 민주국가를 염원하였으며, 전국적으로 조선 민중 스스로 일사분란하게 진행하고 있었다.1945년11월 : 조선노동조합 평의회 (전평) 결성. -1946년2월 전국 조합원수 57만명 등록. 최저임금제, 8시간 노동제, 노사협의회 등 요구.
- 1945년12월8일 : 전국농민조합 총연맹 (전농) 결성대회 – 전국188개 지부, 면단위 1,745개 지부, 조합원수 약 330만명 – 토지 몰수 및 분배, 토지공개념, 소작료는 3.7제, 일제 및 친일 부역자 토지 몰수 국유화, 수리조합 국가운영.
- 전국청년단체총동맹(청총), 전국부녀총동맹, 조선문화단체 총동맹, 학병동맹 등 결성.
- 1946년2월15일 : <민주주의 민족전선 (민전)> 결성대회 –전국 민주대중단체들의 상설적 공동전선 구축
- 남한은 1946년 9월이전까지 170건 파업, 총5만7천명 노동자 참가 – 미군정의 강제적 억압 및 경제파탄으로 궐기
- 1946년<9월24일 철도 총파업> -9월23일 부산철도 노동자 7천명 총파업, 전국 철도 파업으로 확산 –전기, 체신, 토건, 인쇄 전 부문으로 파업확산. – 파업 참가 남한 노동자수 25만1천명 추산, 1,700명 구속.
- 1946년10월1일 <대구 인민항쟁> : 대구 400개 공장 노동자와 대구 시민 1만명 미군철수 데모 – 시민 1명 경찰 발포로 사망. 민중봉기로 확산. 수십명이 목숨을 잃음, -10월3일 경북 전역으로 확산 -10월7일 마산 애국시민 7천명 시위 –무차별 사격. -1946년10월31일 –전라도 <화순탄광> 5천명 파업시위. 무차별 사격. –전국확산, 1,500명 민중 사망, 2만6천명 부상, 1만5천명 체포 연행. – 미군정의 하지 사령관은 모든 시위가 공산주의자들의 지령과 선동이라고 거짓 발표함.
- 1947년3월23일 – 남한 주요 산업도시 노동자 20만명 총파업 – 미군정 테러배격, 노동조합 자유보장, 토지개혁, 미소 공동위원회 속개 요구.
<북조선의 사회개혁>
- 해방후 북조선은 남한과 동일한, 지역별 <인민 위원회>를 조직하여 자체 운영에 들어감. 일본인 재산을 국유화함.
- 다만 소련 해방군은 미군정과 달리 일본인들을 추방하고 총독부의 행정권을 인민위원회에 이양하고 특정 간섭하지 않음. 북조선의 친일파 경찰들과 관리들은 남조선으로 도망침. 소련은 전쟁 피해복구 및 동유럽 공산화에 우선시함.
- 인민위원회는 일제 감옥에서 5년 이상 투옥한 애국지사들을 요직에 등용함. 노동자, 농민 중심으로 외부 세력의 간섭없이 자체적으로 운영됨. 일제 및 친일파 공장, 광산, 농장, 전력 기간시설들을 국가 소유로 하고 운영을 노동자 위원회가 맡음. 18세 이상 모든 남녀 투표권및 피선거권 부여.
- 1945년 10월부터 치안대, 보안대, 인민방위군을 민중이 자발적으로 조직, 운영함. 미군정의 친일파 경찰들과 달리 인민의 존경과 협력을 받음.
- 1946년2월 :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발족, 임시 혁명정부임.
- 1946년 3월23일 : 일제 잔재 숙청. 국내 반동세력과의 투쟁. 기본권 보장, 대기업의 국유화 및 개인 상공업 장려, 지주의 토지 몰수, 8시간 노동제 확립 등 20개 정강 발표.
- 1946년3월5일 : <북조선 토지개혁에 관한 법령> 공포.- 4%지주가 총경지 면적의 60%를 차지함. 빈농과 농민으로 구성하여 1만1,500개 <농촌위원회>가 만들어짐. 몰수한 토지를 농민 가족수에 따라 무상으로 분배함. 4만4천명의 지주들이 토지를 강제 몰수당함. 지주들의 정치자금이 원천 봉쇄됨.
- 1946년 7월 : <남녀평등권에 대한 법률> 공포. <주요 산업 국유화령>으로 친일 매판자본가들이 소유한 철도, 은행, 기간산업 1,034개 국유화 및 노동위원회에서 관리.
- 1947년 <문맹퇴치 운동> 전개 : 초.중.고 대학교 교육체제 정비, 무료교육 실시. 북조선 아동3%가 학교 등록함. 전국 기술자 및 숙련노동자 교육 및 양성. 산업개발 육성에 중점을 둠.
해방후 1946년과 1947년은 조선민중에게 너무도 중요한 시기였다. <친일 청산>과 <남북한 단독 정부 수립>이 염원인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 조선은 미국과 소련의 제국주의 폐권 다툼으로 <냉전시대>에 돌입한다.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으로 소련 공산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봉쇄한다. <마셜 플랜>으로 서독을 소련의 방어기지로 선점하고, 그리스, 이란에 전면 개입한다. 중국의 <국공내전>에 국민당을 지원하고, 프랑스 식민지 월남과 필리핀을 친미국가로 만든다. 한반도에 적극 개입하여 <미군정 시대>를 강행한다. 미국은 친일 세력들을 앞장세워 민중을 탄압한다. 반면에 북한은 소련의 특별한 간섭없이 자체 <인민위원회>를 통해 자율적으로 국가를 운영한다. 남한 민중은 학살당하고 경제는 파탄하지만, 북한은 민중 스스로 통일된 국가로 육성,발전하는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에 서게 된다.
한국 현대사 -4편 (미군정 정책 실패) (09-21-2018)
해방후 조선민중은 왜 미군을 <점령군>, 소련군을 <해방군>이라 불렀을까? 2차세계대전 후 미국의 <동아시아 식민지 전략>은 일본제국의 식민지 전략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해방후 중국은 <국공내전> 기간이었다. 미국은 중국 장개석 국민당을 지원하여 중국 대륙을 친미 식민국가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일본을 군사 후방본부로 하고 한반도, 월남을 식민지 전초기지로 삼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선을 미군정 신탁 통치로 점령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식민 행정에 숙련된 친일파들을 대거 등용한 이유다. 친일 적폐 청산에 대한 조선의 민중의 열망은 관심에도 없었다. 미군정은 조선에 무지했으며,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수행한 정책들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미군정은 <점령군>으로 조선을 강제 통치하였기에, 남조선 민중의 삶은 피폐하고도 참담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군정의 정책 실패>
- 1945년11월2일 ; 군법 명령 21호 – 모든 현행법과 과거 총독부가 공포한 규정, 지시, 문서들 중에서 1945년8월9일까지 유효했던 것은 미군정에 의해 폐기될 때까지 계속 유효함.
- 1946년 가을 – 애국자들에 대한 대량 예비검속 시행 (1948년 4월8일까지 계속 시행).
- 조선민중은 자발적으로 노동대, 자위대, 치안대는 물론, 6만명에 이르는 <국군준비대> 창설. ->위기를 느낀 미군정은 <국군경비대>창설. – 국군경비대 요원들은 독립군 체포 탄압에 앞장섰던 만주군관, 일본사관 장교출신들이 주축임. 일본경찰에 의해 투옥된 전과가 있던 애국지사들은 자격 박탈, 배제시킴.
- 1946년3월 1차 미소 공동위원회가 결려된 후, 애국정당, 민주 단체들 불법화, 민중 지도자들 대거 검거, 애국 언론 폐간 조치, 엄격한 검열제 실시.
- 1946년5월1일 노동집회 참가자 강제연행, 불법해고
- 해방 당시 제조업 94%가 일본자본, 기술자 80%가 일본인, 조선인 문맹률 78%, 남한 중공업은 전체 생산액 20%, 특히 화학, 전력, 비료는 남한내 공급 중단사태 발생,
- 1945년 12월6일 : 미군정 법령33호 – 조선내 남한재산의 80%에 달하는 일본인 재산 (토지, 회사, 단체, 조합, 공장, 은행 등과 수입에 대한 소유권) 을 모두 미군정 (동양척식회사 후신인 신한공사)에 귀속시킴. – 북한은 토지공개념으로 지방인민위원회가 주체가 되어 농민에게 재분배함. –남한 농민저항
- 미군정은 일본 총독부를 능가하는 거대 자본가, 거대 지주가 됨.
- 1947년 미군정 신한공사 쌀 생산고는 전체 생산의 25%, 소작료 수입은 매년 수십억원. 소작농민 소작료 착취, 남한 농민 39%가 자작겸 소작, 45%가 소작농이었음. 미군정의 토지개혁의 지연으로 남한 지주들만 득세함.
- 미군정은 자유시장 개방 원칙으로 기존 친일 자본가만 득세함. 1948년 남한 공업은 1941년과 비교하면 기업체수 60%, 고용자수 70%, 생산액 83%가 격감함.
- 극심한 인프레이션 : 공업생산의 파탄, 반봉건적 소작, 비료공급 절대 부족으로 농업 생산량 격감, 미군정 통치비용 조달 목적으로 무한정 화폐 인쇄, 총 통화량 급증 – 1945년 12월 물가가 동년 8월에 비해 70배 인상. 실질 임금 1935년에 비해 3분의1로 하락. 살인적 고물가와 실업자 홍수시대 – 미군정과 친일 자본가들 고율의 이윤착취. 매판자본가들 양곡 매점매석, 미군정은 식량을 비밀리에 일본 반출, 이윤 차지, – 남한의 조선민중 매일 수십명이 굶어 죽음.
- 1946년 1월25일 : 미군정 <미곡 수집령> 발표. –생산비의 7분의1에도 못미치는 가격으로 양곡을 강제 수급 후 배급제로 민중에게 나누어주는 제도. –농민으로 부터 양곡 강탈 정책임. – 식량배급제로 남한 민중의 생사여탈권, 탄압의 수단으로 확보함. – 하지 미군정 사령관 ‘총과 식량 배급권을 쥔 자가 한국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 1947년5월1일 농민 8,600명 미곡 수집 위반자로 체포.
- 남한 인구의 증가 – 조선인 징용, 징병 120만명 귀국, 만주와 중국에서 조선인 2백만명 귀국, 북한에서 남한으로 이주한 1백만명 (지주, 자본가, 서북 기독교인, 상인 등) 남한인구 10% 이상 급증.
- 1946년 6월 : <정판사 위조지폐사건> – 공산당 2인자 이관술이 공산당비 조달 목적으로 위조지폐를 찍었다고 발표한 사건이지만, 미군정의 정책실패를 감추기 위한 미군정의 조작사건이었음이 밝혀짐. – 좌익세력들이 본격적인 민중투쟁의 계기가 됨.
- 1946년 6월 전국적으로 콜레라 창궐, 11,000명이 사망함.
- 남한 인구 증가. 쌀 생산량 격감, 제조업 생산량 감소, 쌀 배급제 실패, 통화량 급증, 화폐 대량 발행, 대량 실업자 양산, 친일 경찰, 군인, 매판자본가, 사법, 교육, 행정 등, 친일 적폐세력 옹호와 등용, <매카시즘 –공산사회는 소련을 정점으로 나머지 국가는 시달된 명령을 수행하는 괴뢰에 지나지 않는다. 소련 공산주의는 세계 어느 국가나 취약한 곳에는 전쟁이나 폭력 혁명으로 팽창하는 체제라고 주장함.> <반공주의> 이념으로 한반도 분할 식민지 통치로 일관함.- 미군정은 조선을 통일 민주국가로 자주 독립하기를 결코 원하지 않았음.
- 미군정의 정책 실패로 1946년 전국 노동자, 농민 항쟁으로 확장됨.
한국 현대사 -3편 (모스크바 삼상회의) (09-14-2018)
한국 현대사 칼럼을 쓰는 이유는 왜 한핏줄 한 형제가 세상에 둘도 없는 철천지 원수가 되어 지금까지 분단되어 살아야 되는가? 같은 형제를 머리에 뿔난 괴물이라 교육 받으며 죽기살기로 미워해야 하는가? 왜곡되고 잘못된 역사관을 배운 우리 세대는 허망한 이념논쟁과 사상 투쟁을 왜 지금까지 계속 해야 하는가? 어디서 부터 잘못되었으며, 누구의 잘못인가? 이러한 민족 증오심으로 그토록 원하는 <평화 통일>이 가능키나 한가? <적폐 청산없는 역사는 반복된다> 는 역사의 준엄함을 우리 모두는 처절히 깨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해방후 불과 몇달도 지나지 않은 <미군정시대>의 1946년 <민중항쟁>을 서술하기로 한다.
<1945년 12월16일 모스크바 삼상회의 : 미.소.영>
- 미국은 동아시아 식민지 전략에 의거해, 첫째, 한반도에 미소 양군 사령관을 대표로 단일정부를 구성하고, 조선인은 행정관, 조언자 자격으로만 참여한다. 둘째, 미소 단독정부는 신탁통치 기간동안 입법, 사법, 행정 전권을 행사하며, 신탁 기간을 5년으로 하되, 10년으로 연장할 수 있다고 제안.
- 소련은 조선의 독립과 조선 단독정부 설립을 위해 미.소.영.중. 4개국은 제반 원조와 후견국 위치에 머물어야 하며, 그 기간은 5년이내로 한다고 제안.
- 삼상회의 결정 사항 : 첫째. 조선을 독립국으로 부흥시키고, 일제 악폐 청산을 목적으로 <조선 민주주의 임시정부>를 창건토록 모든 방책을 강구함. 둘째. 남조선 미군 사령부와 북조선 소련 사령부 대표로 <공동위원회>를 조직하여 안건을 제안할 때 조선 민주주의 제 정당, 사회단체와 반드시 협의해야 하며, 최종 결정은 미.소,영.중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세째, 미소 공종위원회 후견 기간은 5년 이내로 한다.
- 의의 : 첫째, <조선 임시정부>를 통한 조선 민중의 주권행사를 제도적으로 보장함. 둘째, 어떤 형태의 제국주의 침탈이나, 특정 강대국의 독점적 지배도 허용하지 않음.
- 하지만 이 결정은 미국의 동아시아 식민지 전략과 정면으로 배치됨. 미국 냉전주의자들과 친일파들은 삼상회의 결정을 방해하기 위한 음모 획책,
- 1946년 1월10일 한국민주당 (친일 지주 및 친일 관료 정당), 김성수와 이승만의 ‘독립촉성 국민회의 본부’는 간행물을 통해 삼상회의 결정을 왜곡시킴, – 5년간 신탁통치를 강행하기 위해 소련군이 진주할 것이라는 흑색선전과 <신탁통치 반대 (반탁)> 를 명분으로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을 반대함. 조속한 조선 독립을 원하는 민중을 현혹하여 <신탁>과 <반탁>으로 나뉘어져 서로 물고 뜯음. – 독재국가나 제국, 기독교는 언제나 민중을 <이분법적 사고>의 틀(프레임) 안에 가두어 우매한 민중을 혼란시킴. 아군-적군, 기독교-비기독교, 신탁-반탁, 미국-소련, 민주주의-공산주의, 선-악, 등 무지한 민중을 혼란에 빠뜨리기 손쉬운 획책임.
- 1946년1월23일 모스크바 협정 즉각적 실현 촉구 대회 : 서울에서만 200개 단체, 30만 시민이 집결한 대규모 집회. – 첫째, 조선을 완전한 독립국가로 재건, 둘째. 일본 잔재를 급속히 제거. 세째, 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을 원조협력, 네째, 38선을 시급히 철폐.
- 1946년1월26일 : 미소 공동위원회 소련 대표 스티코프 중장 기자회견에서 폭로함. – 첫째, 신탁통치를 제안한 측은 미국임. 둘째, 미국은 신탁을 10년까지 할 계획이었음. 세째, 미국은 한국 전체의 통일정부를 수립하는데 전혀 관심이 없음. – 미국과 이승만, 친일파의 <반탁운동>의 허구성을 가차없이 폭로함. 실제로 1947년 부터 남한 단독정부 수립 의도가 표출되기 시작함.
- 1946년3월20일 : 1차 <미소 공동위원회> 개최 – 모스크바 협정 실현을 위한 회의.- <회의 결렬> – 미소 제국 모두 자국 이익에 부합하는 정부 수립에 우선적 목적이 있었음.
- 미국의 결정적 과오 : 모스크바 협정에 결정된 <일제통치 잔재의 조속한 청산>이라는 원칙에서 벗어나, 미군정의 요직에 친일파 일색으로 등용, 옹호함. –협정 실현에 결정적 방해요소로 작동함. – 이승만과 친일파들은 맥아더의 <반공주의, 기독교 근본주의> 신념에 아부하며, <친미주의>, <기독교인>으로 변신함. –조선 기독교의 씻을 수 없는 과오는 일제 시대의 <신사참배>와 독려, <친일파> 옹호 및 영입이 현대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부정부패의 발로임. 1948년 5월10일 남한 단독정부 제헌 국회의원의 9할 (2018년 현국회의원의 6~7할)이 기독교인 이었음. 이 역사적 사실을 자랑스러워 해야 할까? 세계 100대 대형교회 중에서 한국에 80개가 있고, 그중에서 60개가 서울에 있다면? 2천년이 넘는 기독교 역사에서 불과 1백년에 불과한 한국 기독교의 양적팽창은 세계의 자랑거리인가? 과연 대한민국이 기독교 국가인가? 부끄러운 한국 현대사와 부끄러운 한국 기독교사가 그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을 대한 민중이 알면 얼마나 부끄러울까?
- 1946년4월6일 : AP통신 –미군정은 남조선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착수했다고 기사화함.
- 1946년6월3일 : 이승만 정읍 발언 – 남쪽 만이라도 임시정부나 위원회를 조직하자는 단독정부 수립 가능성을 시사.
한국 현대사 -2편 (해방과 미군정 시대) (09-07-2018)
2018년 하반기 대한민국을 보면 과연 진정한 독립국가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종전선언도 미국이 승락해야 하고, 심지어 개성 남북한 연락 사무소 개설도, 금강산 재개방도, 경의선 철도 조사도, 한미 연합 군사훈련도, 그 어느 것도 미국의 허락 없이는 할 수 없다. 우리는 미국을 절대적 우방이자, 영원한 혈맹국가로 세상에 둘도 없는 신주단지처럼 믿고 의지한다. 특히 보수 우파라고 자칭하는 자들은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가히 굴욕적이다. 비루하고 오래동안 빌어먹던 습관이다.
한국은 미국의 마마보이인가? 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러면 미국도 한국을 절대적 우방, 혈맹이라 생각할까? 결단코 오산이다. 미국은 독립이후 철저한 <자국 이익 우선주의> 국가다. 미국은 세계 제일의 패권국가이고 최강제국이다. 어느 국가나 <자국우선>은 지극히 정상적인 가치관이다. 남한이 북한보다 잘 살면 뭐하나? 일본 제국주의 시대 때 식민지로 수탈당한 동아시아 30년 전쟁에서 아직도 분단된 나라가 있는가? 잘 살든, 못살든, 내 가족은, 내 민족은 내가 지켜야 한다. 이상의 <날개>처럼, 마누라가 옆방에서 몸을 팔아 나의 배고픔을 해결한다면, 그 민족의 삶이 온전한 것인가? 대한민국에는 거대한 두개의 권력이 있다. <친미 기득권 보수>와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이다. 이들의 출생은 해방 이후 <미군정 시대>에서 부터 시작한다.
<해방 후 건국 사업>
- 1945년 8월15일 : 여운형 <건국준비 위원회> 조직, 8월16일 : 건국 청년 치안대 162개 지부 결성, <건국치안부>로 출범. <국군 준비대> 약 6만명 창설. 전국 노동조합 결성. 전국 농민조합 결성 –토지환수, 소작료 인하.
- 1945년8월17일 : 조선총독부 아베 총독으로 부터 치안유지, 방송국, 언론기관 이양 받음. 80만 일본인 안전귀국 보장과 10만 일본군 해체와 철수 약속. 아베는 여운형 5대조건 약속함. -3만명 조선인 정치범 석방, 경성에 3개월치 식량 확보, 조선인 자체 치안 유지 불간섭 등.
- 1945년8월말 ; 전국 145개 <건국준비위원회 지부>결성. <인민위원회>로 전환.
- <인민위원회> 특징 : 1.민중이 선출한 대표로 구성, 위원회가 입법, 사법, 행정 3권이 인민위원회에 귀속. 2. 도,군,면 통치기관은 중앙에서 선정하지 않고 해당 인민위원회가 독자적으로 구성. 3. 계급별 구성이 아닌, 지역별 구성을 원칙. 즉 모든 계층의 대표가 동시에 참여. –인민위원회 정치적 기초는 조국 통일전선 구축임.
- 테헤란 회담(1943년 12월, 미,영.소 3 거두회담), 얄타회담 (1945년2월4일, 미,영,소 영수회담)에서 이미 독일 분할 점령, 동아시아, 특히 한반도 신탁 통치에 대해 루스벨트는 30년 분할 식민통치를 주장함. 영국의 처칠은 한반도 신탁에 관심이 없었고, 스탈린은 1945년 8월, 2주간 <대동아 전쟁>에 소련군 참여 (71만4천명 참전, 8천명 사상자 발생)를 구실로 신탁권 (점령군 임시정부 구성 참여권) 주장.
- 1945년8월14일 : 소련군 청진, 나남 상륙, 8월16일 원산에 상륙. 반면에 미국은 가장 가까운 곳이 일본 오끼나와 미군기지임. 미군의 한반도 기득권 위협함. 미국은 한반도 분할 점령을 소련에 제안. (미군은 수도 서울을 차지하기 원함. 반면에 소련은 2차세계대전 피해 복구와 경제 침체로 미국과 충돌하기를 원하지 않음. 한반도 38도선 분할 통치 잠정적 합의)
- 1945년8월18일 : 일본 아베 총독의 <건국준비 위원회> 행정이양 취소 발표 (조선총독부 태극기 게양이 일장기로 바뀜).
- 1945년9월2일 : 일본 공식항복 선언. 38선 이남은 미국, 이북은 소련이 접수한다고 발표.
- 1945년9월6일 : <조선 인민공화국> 창설 선포. 서울에 전국 민중대표 1,000 명 참석. – 토지 몰수, 철도, 통신, 금융기관 국유화 선포.
- 1945년9월7일 ; 미군 맥아더의 <일반명령 1호> <조선 인민에 고함> 공표. –모든 작전 지역내의 일본군은 해당지역에서 승인받지 못한 무장저항 단체 (중국 공산당 홍군, 조선 인민혁명군, 베트남 무장부대, 필리핀 후크단 등)에 항복해서는 안되며, 연합국의 항복접수에 협력해야 함. 통일 점령군 사령관은 미국이 지명함.- <미국 동아시아 식민지 전략> 개시.
- 1945년9월8일 미군 하지중장 인천 상륙, 미군 7만2천명 대부대 주둔 – 미군을 환영하는 조선 민중을 사살함, 다수 사상자 발생.
- 1945년9월9일 : 조선총독부에서 하지 중장과 아베 총독 항복조인식에 서명, <미군정시대> 개막. – 소련 패권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을 친미국가로 전환시킴.
- 1945년9월10일 : 포고령 2호 공표 – 포고령 위반자는 무조건 사형, 조선 민중은 무조건 미군정에 복종해야 함. – <조선 인민공화국>과 <전국 인민위원회> 분쇄. 남한을 미국 자본시장의 식민지로 전락시킴.
1945년8월15일 해방된 후 불과 25일동안 한반도에는 천지격노할 사건들이 벌어진 것이다. 조선 민중은 <전국 인민위원회>를 구성하여 스스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소 두 패권대국의 이권 싸움으로 <미군정 시대>라는 식민지 시대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한국 현대사 -1편 (해방전 일제 강점기) (08-31-2018)
왜 남북한 한민족은 2018년 종전선언을 해야 하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협정을 한민족 스스로가 이루어 내야 하는가? 왜 한민족은 경제 공동체와 경제 부흥을 통해 남북한 민중 모두가 잘 살아야 하는가?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는 우리 민족에게 어떤 존재들이며, 그들은 과연 우리의 우방인가? 왜 한반도 종전과 통일은 이다지 어려운가?
2016년 4월 12일부터 12월27일까지 약 8개월 동안 <기억해야 할 한국 근대사> 칼럼을 38회에 걸쳐 기술한 적이 있다. 지금도 www.willbusinessbroker.com에 들어가시면 보실수 있다. 이번에는 몇회에 걸쳐 해방후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의 한국 현대사>에 대해 간략히 기술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해방후 출생한 우리 세대들은 제대로 된 한국 현대사 교육을 받지 못했다. 남한 정치가들은 역사와 민족 앞에 너무도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치욕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득권 집권 세력, 적폐 세력들이 친일파 당사자인 동시에 그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민족에 대한 역사의 과오를 숨겨야 하고 왜곡시켜야 하기 때문에 독재 정권이 되어야 했고,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 뉴라이트 운동 등 민중 기만 행위가 만연했던 것이다. 조.중.동 언론은 왜 지금까지 민중을 혼란시키고 우민화 정책을 일삼는가? 민중을 개, 돼지로 알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대한민국은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거짓된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는 남북한 민중이 한국 현대사를 제대로 냉정하게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식민지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주 자립한 한반도 통일국가를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박세길의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를 근간으로 년도별로 주요 사건들 위주로 기술키로 한다.
<해방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사> : 2016년 한국 근대사 칼럼 (22편~32편) 참조.
- 1912년 연해주에는 이범윤의 <권업회>와 이상설, 이동휘의 <대한광복군- 최초 조선 망명정부 (1914년)>, 1919년 김원봉의 <의열단>과 <신흥무관학교>, 북간도에는 의병장 출신의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 서간도에는 신민회가 주축이 된 <경학사><부민단>, 미주 지역에는 안창호, 박용만의 <대한인 국민회>등이 결성됨.
- 1920년 ~1925년 : 6년간 두만강, 압록강 연안에서 조선 독립군과 일본군 3,929회 전투.
- 1930년 : <항일 무장부대> 16만명 활동, 이청천 한국 독립군, 양세봉 조선 혁명군, <조선 광복회> 20만명 (조선 북부, 만주 조선 농민 주축), 1930년 중반 김일성 독립부내, 1931년 김구의 <한국 애국단>.
- 1931년 만주사변 : 일본제국이 중국과 동아시아를 식민지 하기 위해 벌인 전쟁, 보급 물자 및 군대 이동 전초기지로 조선반도 통제가 필수요건임.
- 1931년 ~1932년 봄 : 간도 조선인 4만명 학살.
- 1932년 3월1일 : 일본 만주국 괴뢰 정부 수립. 1931년 만주사변을 기점으로 민족 개량주의자들의 친일파로 변신함.
- 1931년 ~ 1936년 : 항일 독립군 전투 참여 인원 총 136만9,027명, 출몰 횟수 2만3천928회.
- 1937년 중일전쟁
- 1938년 4월 : 한국어 사용금지, 창씨개명, 신사참배 강요, 일선동조론 (조선인은 일본민족과 동일함)
- 1938년7월 : <국민 정신동맹 연맹> 결성- 조선민중을 애국반으로 강제 편입, 지원병, 학도병, 정신대 강제 차출. 공출, 헌금 감시.
- 친일파로 대거 전환 : 지주, 매판 자본가, 일본군 경찰 하수인, 조선, 동아 언론인, 기독교 종교인, 학자, 법조, 문인 등 지식층 대거 친일파로 변절.
- 1938년 대기근 : 조선인 9할이 농민, 8할이 무학, 조선 3백만 농가의 80% 이상이 소작인, 최고 9할대의 소작료, 친일 지주, 고리대금업자 횡포, <보릿고개> 생겨남, 2만명 조선인이 굶어죽음.
- 1938년 ~ 1940년 ; 일제 조선인 대토벌 작전 시행
- 1940년 : 김구의 <한국 광복군>창설.
- 1940년 ~ 1945년 : 조선인 일본 강제 노동 동원 (탄광, 철도, 조선, 철강, 토목 등), 1940년 110만명에서 1945년 236만5천명 강제노역 차출 당함. 일부는 군사 비밀 이유로 강제 노역 후 집단 학살시킴.
- 1941년 : 진주만 공습 – 미국이 중국 장제석 국민당을 지원함에 동아시아 일본 제국화에 위기 의식, 미국과의 전쟁 선포. <태평양 전쟁>이 아니라 <대동아 전쟁> 표현이 맞음.
- 1942년 중국 연안에 <조선독립 연맹> 결성. -1932년 12월 상하이에서 <한국 민족혁명당> 조직 (김원봉 의열단 +이청천의 무장세력) ->1937년 <조선민족 혁명당>으로 바꾸고 <조선의용대> 조직 -> 김두봉 주석과 무정 조선의용군은 만주에서 활동.
- 1944년 8월 : 여운형 주도로 서울에서 <건국동맹> 결성.
- 전쟁말기 : 조선인 독립투사 3만명 감옥 투옥함. 조선반도에 일본군 23만명 주둔, 일본경찰 3만5천239명 주둔.
힘 내시게, 젊은이 (08-24-2018)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상담한다. 대부분의 상담 내용은 좋은 사업체를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이다. 좋은 사업체란 무엇인가? 각자의 재정능력과 경험, 개인별 신뢰도, 개인별 환경분석에 따라 결정된다. 물론 본인이 사고 싶다고 하면 살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는 있지만, 왜 그 길을 가야 하는지 되묻는다.
특히 요즘은 젊은 분들의 상담이 많다. 젊다는 것은 아직 여러가지 환경이 열악한 조건일 수 밖에 없지만 나같은 노인네를 찾아와 상담한다는 자체가 대견하고 희망적이다. 사업체를 산다는 것은 서두를 일이 아니다.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야 한다. 첫번째가 <업종선정>이다. 많은 업종 중에서 왜 내가 그 업종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젊었다 하더라도 <길>을 잘못 들어서면 한참을 되돌아 나와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시간, 자본, 경험 등.. 잃어버리는 것이 많다. 도저히 내 적성에 맞지도 않고 일의 보람도 느끼지 못하는 <업종>이라면 굳이 몇년의 경험이 있다고 해서 고집할 필요는 없다. 모든 업종에는 장,단점이 분명하다. 고생하지 않는 업종이 어디 있는가? 사는게 고해다. 하기 쉬운 업종은 진입장벽 (Potential Wall)이 낮다는 의미다. 그것은 경쟁이 심하고 사업 위험도가 높다고 할 수도 있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여러해에 걸쳐 여러번 칼럼을 쓴적이 있으므로 나의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참조하기 바란다.
내가 열악한 환경에서 고전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조건 힘내라>는 것은 아니다. 흙수저가 금수저로 될 수 없는 세상이다. 낮은 학벌을 하루 아침에 고학력으로 바꿀 수도 없다. 외모나 체형도 바꿀 수 없다. 부모나 아내를 바꿀 수도 없는 것이다. <돈과의 전쟁>을 기준한다면 이기기 어려운 게임을 하는 것이다. 타인과 비교하고 성공한 부유층과 비교하면 나는 항상 철저한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행복하겠는가? 그러면 역으로 가진 자는 행복할까?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 세상을 공평하게 만드셨다.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 무엇이 되어 살든 삶 자체를 힘들게 만드셨다. 누구나 사는게 고해다. 그러니 무엇보다 누구를 원망하지 마라. 가난을 물려준 부모도, 도망간 아내도, 남겨진 어린 자식도, 불법 체류 신분도, 갑질하는 업주도, 나 이외의 그 누구도 원망하거나 분노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돈을, 부자 되는 것을 내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니체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라고 했다. 몇차례 칼럼에서도 소개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다시 묵상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기대나 희망을 잃으면 삶의 의지를 잃게 된다. 최악의 상황에 닥치더라도 인간이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는 외부로 부터 빼앗을 수 없는 고유의 선택권이다.” 포로 수용소와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 선택의 결과다. 지금 젊은이가 살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든, 한국이든, 베네수엘라든, 세계 어느 곳에 살든 시련은 끝나지 않는다. 시련 자체가 삶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 시련 속에서 내 존재의 의미와 삶의 의미를 찾느냐 못찾느냐의 선택권은 전적으로 나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닥친 시련은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다. 그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 부터 구해낼 수가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독자적인 기회이자 감사할 일이다. 빅터 플랭클의 로고테라피는 “아픔을 그대로 받아드리고, 그것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만약 적게 가진 자는 적은 아픔이 있고, 많이 가진 자는 더 큰 아픔이 있다면 그 또한 감내할 일이 아닌가? 산다는 게 죽는 날까지 아픔을 이겨내는 과정일세. 인간은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지. 무엇보다 먼저 자네 삶의 의미를 찾아보게나.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이 고통의 강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다가 강을 건널 수 있을까? 이 세상에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건널 수 없는 <고통의 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네. 다만 인간이 그 강을 건너기를 포기하고 두려워할 뿐이지. <돈>이 많다는 것은 <고통의 강>을 건너는 <배>안에 무거운 짐을 더 쌓아놓는 꼴이라네. 어떤 취미를 갖든, 무슨 신앙을 갖든, 무슨 직업을 갖든, 누구와 사랑을 하든, 자네 자신을 잃어버리면 안되네. 자네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의 태도를 변화시켜 보게. 자네는 지금 막 첫번째 인생을 실패하고 두번째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무엇을 잘못하고 살았는지,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되지 않겠나? 선한 마음으로 사랑하며 살게나. 하고 싶은 일 열심히 하면서 말일세. 자네는 아직 살 날이 구만리이지 않는가? 이제 겨우 인생의 몇걸음 떼어놓은 것에 불과하네. 살 맛나는 자네 인생을 살아보시게. 힘 내시게나, 젊은이!
5소(少) 13 다(多) (08-17-2018)
요즘 SNS 상으로 이런 유사한 문구들이 많이 떠돌아 다녀 별 관심이 없어 지나치는데, 글 쓸 소재가 마땅치 않아 심심풀이로 되집어 본다.
<5소(少)> : 소식(少食) – 과식하지마라. 소언(少言) – 말을 많이 하지마라. 소노(少怒) – 화를 내지마라. 소욕(少慾) – 욕심은 만병의 근원이다. 소차(少車) – 자동차를 적게 타고 가능하면 많이 걸어라.
<13다(多)> : 다견(多見) – 새로운 것을 많이 보고 배워라. 다동(多動) – 많이 움직여서 건강을 유지하라. 다욕(多浴) – 매일 목욕하라. 다설(多泄) – 땀과 대소변을 잘 배설하라. 다접(多接) – 서로 많이 만나고 접촉하면 활력이 생긴다. 다소(多笑) – 많이 웃어라. 다망(多忘) – 좋지 않는 기억을 잊어라. 다정(多靜) –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고 명상을 자 주하라. 다인(多忍) – 많이 참아라. 다용(多勇) –매사에 용기를 가져라. 다애(多愛) – 많이 사랑하라. 다보(多步) – 많이 걸어라.
위의 대부분 단어가 사전적 용어가 아니라 지어낸 말이므로 나의 경우에 국한하여 부담없이 의미만 이해하기로 한다.
소식(少食) –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한다. 만들기도 좋아하고 맛집을 찾아 다니는 것도 좋아한다. 혈압이나 당뇨도 없어 가리는 음식도 없다. 먹는 양도 적지 않다. 하지만 함께 사는 아내는 먹는 양도 소식(小食)이지만 먹는 횟수도 소식(少食)이다. 아내는 하루에 한끼를 먹는다. 과장하면 일일일식(一日 一食)이다. 물론 아침에는 야채 주스, 저녁에는 과일과 같은 가벼운 종류를 먹는다. 도무지 나와 맞지 않는다. 사는게 힘들고 괴롭다? 정 배고프면 내가 만들어 먹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살다보니 맞추어진다. 아니 나는 그렇게 길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요즘 보람은 화요일 목요일 야간 테니스를 치고 집에 오면 밤 11시 30분이다. 아내는 자고 있다. 샤워하고 맥주 두캔을 마시면서 김제동의 톡투유를 보는 즐거움으로 산다. 내가 아내에게 공언을 했다. 다음 세상에는 음식 만들기 좋아하고 하루 세끼 잘 먹는 여자를 만날거라고.. 흥!
소언(少言) – 나의 직업은 비지니스 컨설팅 업이므로 손님과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손님 한명과 1시간에서 2시간 상담을 한다. Seller와 Buyer, 매물마다 특성이 다르다. 강점과 약점, 기회요소와 위협요소, 사업체 특성, 경쟁요소, 업종 트랜드, 투자 대비 분석, 융자, 리스 관계 등등 상담해야 할 내용이 너무 많다. 그냥 매물 주소만 가르쳐 주면 될 일을 걱정도 팔자인가 하노라. 업무 이외에 만나는 사람들과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주로 듣는 편이다. 아내와도, 자식들과도, 지인, 교인들 간에도 그냥 듣는 편이다.
소노(少怒), 소욕(少慾) – 이제 욕심을 부릴 나이도 지났고 욕심을 부린다고 되지 않을거라는 것도 안다. 손에 쥐기 위해서는 손에 있는 것을 놓아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러기에 화가 나는 것도 더디다. 속마음은 답답하고 터질 것 같지만, 상대방을 이해할려고 애쓴다. 이해와 배려가 되지 않으면 사랑할 수도 없다. 내 마음 같지 않으면 그러려니 하고 잊어버리려 애쓴다. 다인(多忍)과 다망(多忘)에 해당한다. 좋은 기억만 저장하기에도 두뇌 용량이 부족한 나이다.
소차(少車), 다동(多動), 다욕(多浴), 다설(多泄), 다접(多接), 다보(多步) – 노년의 건강을 위해 동일한 단어들이다. 나는 직업상 사무실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아니면 자동차로 이동시간이다. 따라서 틈만 나면 운동하려고 애쓴다. 운동 클럽이 있으면 대부분 참가한다. 아내와는 퇴근후 매일 30분씩 동네 한바퀴를 걷는다. 매일 두번씩 샤워를 한다. 나는 학창시절 자취할 때 뜨거운 물만 나오는 집이면 어디서라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한 시절이었다. 나는 수영장과 찜질방 체질이다. 나의 상하수도 배관시설은 아직까지는 양호하다.
다애(多愛), 다용(多勇), 다소(多笑) – <서로 사랑하라>는 그분의 명령이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면, 용기가 필요하다. 멀리 떨어져서도 등을 돌리고서도 사랑을 할 수 없다. 사랑은 내가 다가서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랑한다면서 화난 표정으로 인상을 쓰면서 사랑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많이 웃어야 한다. 웃는 얼굴에 침이야 뱉을까?
다견(多見) – 여러분에게 진정으로 감사할 일은 12년째 매주 <윌리 칼럼>을 쓰게 허락하신 점이다. 칼럼을 쓰는 목적은 자식에게 물려줄 유산이 없으므로 나의 생각이라도 물려줄 공산으로 시작하였지만, 순전히 나를 위함임을 잘 알고 있다. 글 같지 않는 글이지만,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하고, 유투브를 통해 강의도 들어야 하고 사색도 해야 한다. 나는 그동안 쓴 칼럼들을 나의 웹사이트 (www.willbusinessbroker.com)를 통해 수시로 읽는다. 그리고 통찰하고 반성한다. 언제까지 이 칼럼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분께 송구함과 감사함을 함께 전한다.
언젠가 신이 나에게 은퇴를 허락하시어 나의 작은 소망을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은 운동 실컷하고, 그림 그리고, 책 읽고 사색하고 글 쓰고, 맛있는 음식 마음껏 만들어 먹고, 좋은 사람들과 수다 실컷 떨다 가는 것이다. 그런날이 오려나..
투명인간 (08-10-2018)
우리 시대의 투명인간은 누구인가? 노회찬 의원이 2012년 정의당 대표연설에서 언급해서 유명해진, 새벽 5시6411번 만원 버스에 탄 사람들. 누군가의 가족이고 엄마 아빠이고 이름도 있지만 이름으로 불리우지 않는 사람들, 그냥 아줌마, 아저씨로 불리우는 사람들, 사회적 관심 조차도 없고 대접도 받지 못하는 그들이 우리 사회의 <투명인간>이다. 예수가 말하는 가난한 자, 소외받은자, 병약한 자, 노약자, 배우지 못한 자, 신분이 낮은 자, 죽도록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자, 여러분 주변에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모르는, 많고 많은 소시민들이 <투명인간>이다.
예수가 가장 가까이 여기고 천국에 먼저 들어갈 우선권을 준 사람들은 현대판 <투명인간>들이었다. 가진 자도 아니고 율법주의자들도 아니고, 기득권자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정작 예수 십자가를 걸어놓은 교회는 같은 교인이지만 <투명인간>에 대해서 관심조차 가진 적이 있는가? 교회가 대형화 될수록 신도수가 많아질수록 <투명인간>들은 교회 부흥에 방해가 될 뿐, 신도 숫자에 불과한 존재들이다. 현대 사회의 수많은 <투명인간>들은 어디 가서 위로받고 보호받아야 하는가?
많은 소설과 영화에 등장하는 <투명인간>은 남들에게 보이지 않으므로 어디든 갈 수 있고, 분명히 있지만 없는 것처럼 간주되며, 동시에 없어도 있는 것처럼 간주 된다. 따라서 선한 역할이 될 수도 있고 악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판 <투명인간>들은 사회적 약자들이므로 숨소리 조차 죽인채, 착하게 살아야 하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래야 기득권 틈바구니에서 겨우겨우 살 수 있다. 하지만 육신은 힘들지만 영혼은 <자유>로울 수 있다. 지위나 직분이나 체면에 상관치 아니하며, 체제나 이념에 종속될 필요도 없다. 한쪽에 치우쳐 극우, 극좌가 될 필요가 없고, 사상과 철학이 편협되지 않으니 생각이 자유롭다. 워낙 가진게 없으니 하나 더 가진다고 달라질 게 없다. 그러니 도둑질 할 필요도 없고 사기를 칠 필요도 없다. 지위가 없으니 조직이나 공동체를 위해 불의한 짓에 앞장설 필요도 없고 타인을 저해할 이유도 없다. 하나 더 얻기 위해, 한 계단 더 올라 가기 위해 타인을 짓밟을 필요도 없고 경쟁에서 이기려 아둥바둥 살 필요도 없다. 그분 말씀대로 착하게 죄짓지 않고 살면 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면서 살면 된다. 신은 <투명인간>들에게 돈과 높은 지위는 주시지 않는 대신 자유와 사랑을 주셨다. 거기다 긍휼한 마음까지 주신걸 깨닫는 순간 모든게 감사할 뿐이다.
사람답게 산다는게 얼마나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인가를 좀 살아본 사람이면 다 안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 중인 영화 <신과 함께 – 죄와벌> 편의 줄거리를 소개한다.
사람이 죽어 망자가 되면 저승에서 49일에 걸쳐 7개의 지옥문, 즉 거짓, 나태, 불의, 배신, 폭력, 살인, 천륜 지옥의 문에서 재판을 치르게 되며, 모든 재판의 문을 통과해야만 다음 생으로 환생한다는 불설수생경 (佛說壽生經 –조선 예종 때 편찬) 에 기반한다.
주호민 웹툰 작가의 <신과 함께> 시놉시스(줄거리)는 이러하다. 염라대왕에게 천년 동안 49명의 망자를 환생시키면 세명의 차사 (지옥문의 변호사 격)들도 인간으로 환생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48번째 망자이자 19년만에 나타난 의(義)로운 자이자, 귀인(貴人)인 소방관 김자홍 (주인공)의 환생을 확신하지만, 각각의 지옥문을 거치면서 업경(業鏡)을 통해 하나씩 둘씩 과거의 죄상이 드러나면서 지옥 판관(검사)들과 법리 타툼을 하며 지옥문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동생이 군대에서 총기사고 로 죽어 <원귀(寃鬼)>가 되었는데, 형에 대한 원한을 폭로한다. 가난한 고등학교 시절, 영양실조 상태인 동생을 두둘겨 팬 과거가 있었다. 가난으로 어머니는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고 동생은 영양실조에 걸려 절망적 상황이었다. 그날밤 주인공은 가족 동반자살 할 계획을 세운다. 살 가망이 없는 의식불명의 어머니를 먼저 죽이고 본인과 동생은 수면제를 먹고 자살할려 한다. 이를 말리는 동생을 구타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가출한다. 그후 15년동안 한번도 집에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의식이 있었으며, 자신이 죽어야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식들은 죄가 없으며, 자식들을 이미 용서했다고 한다. 지옥문 재판관, 검사, 변호사 모두 운다. 염라대왕은 저승법 1조1항 “이승에서 이미 진심으로 용서받은 내용은 저승에서 다루지 않는다” 에 의거해 기소 내용을 전부 기각하고 환생하라는 판결을 내린다.
비록 이승에서 가난한자, 우리 모두는 <투명인간>으로 살지라도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야 한다. 어찌 사람이 죄를 짓지 않고 살 수야 있겠는가? 죄를 지으면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구해 오면 용서해야 한다. 원한을 갖고 죽으면 원귀가 된다. <서로 사랑하라> 하셨는데 사랑하지도 못하고, 잘해 주지도 못하면서 원한까지 갖게 해서야 되겠는가? 오죽하면 성철스님이 열반에 드시면서 “한평생 무수한 사람들을 속였으니 그 죄업이 하늘에 가득차 수미산 보다 더하다’’ 고 임종게(臨終偈)로 말씀하셨을까? 제가 죄인이나이다. 저의 죄를 용서하소서..
고도의 명예심 (08-03-2018)
사람마다 삶의 가치 기준이 다르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부(富)를 최고 가치로 한다. 부자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하고, 좋은 대학을 나와야 좋은 직업과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다. 그래야 좋은 조건의 배우자를 만날 수 있고 좋은 가정을 꾸릴 수 있다. 그래야 출세할 수 있고, 힘있는 기득권의 일원이 될 수 있고, 사회 지도층이 될 수 있다. 결국은 돈을 벌기 위함이며, 돈이 권력이다.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현대 맘몬주의다.
지난주 칼럼으로 <든 자리, 난 자리>를 썼는데, 이번주 노회찬 민주 정의당 대표가 자살하여 세상을 등졌다. 그의 <난 자리>, 그의 <빈 자리>가 너무 크다. 가슴이 먹먹하다. 평소에 그의 정치 신념과 노동 가치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하였는데, 한국 정치판에 몇 안되는 민중의 지도자였는데 무심히 가 버렸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어쩌면 <고도의 명예심>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나보다 두살 어리지만 부산 초량동이라는 같은 동네에서 자랐다. 그 당시 지방에서 경기고등학교를 들어갈 정도면 전국 수재에 해당한다. 경기고등학교 때부터 유신 개헌 반대를 필두로 평생동안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투쟁했다. 무슨 운동이든 일시적으로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가난한 자, 사회 약자, 소외된 자, 노동 근로자들을 위해 평생동안 노동 운동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도올 선생은 그의 죽음을 한국의 예수가 죽었다고 애도한다.
흔히들 어느 시대나 머리가 좋은 엘리트 그룹들은 <출세>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세인들은 그들을 <성공>한 자로 추앙하고 모델로 삼으려 한다. 하지만 그들이 일제 시대 친일파들이었고, 한국 현대사 70년 동안의 독재정권과 손잡고 아부하며 권력을 찬탈한 기득권 적폐세력들이었다면? 한국 개신교의 역사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 한국은 사회 전반으로 부폐하지 않은 곳이 없는 <거짓된 사회>다. 그럴거라고 어림 짐작은 하였지만 이렇게 큰 세력인줄 몰랐다. 국가의 녹을 먹고 있는 국가 공무원과 군인들에게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고도의 명예심>을 요구한다. 하지만 마지막 보루인 사법계, 법조계 마져 비리가 가관이다. 민중을 권력의 흥정대상으로 이용한다. 기무사가 계엄령 실행계획을 만들고 또다시 쿠테타를 일으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방산비리, 자원 비리, 법조 비리, 경제 비리, 금융 비리, 사학 비리, 등등 비리 아닌 곳이 어디 있는가?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을 불명예스럽다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명예 따위는 중요히 여기지 않는 것이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자들은 <민중>과 함께 하는 자들이다. 일제 강점기 때, 전재산을 팔아 북간도로 간 독립 투사들이다. 조국을 위해 독립운동을 한다고 만주 벌판에서 목숨을 바쳤고 처자식을 챙기지 못했다. 해방 후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은 항일 독립투사들을 우대한 것이 아니라 친일파 민족 반역자들을 모든 분야에 골고루 등용했다. 그들이 한국 현대사의 기득권 적폐세력이다. 이러한 독재 정권에 항거한 민주 투사들의 희생과 피흘림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이 있는 것이다. 엘리트 신흥 세력들이 기득권과 손잡고 부정부패를 하는 동안, 민중을 위한 시민 운동가, 노동자를 위한 노동 운동가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이 있는 것이다.
누가 <명예>를 소중히 여기겠는가? 친일파, 기득 수구 세력, 엘리트 신흥 세력들에게 명예가 있겠는가? 권력과 돈과 출세를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하는 그들에게 무슨 명예가 있으며 정의가 있겠는가? 하지만 세상을 새롭게 바꾸어 보려는 재야 운동가들에게는 최상의 정의와 명예를 요구한다. 때에 찌든 옷에 떨어진 오물 한점이야 대수롭지 않지만, 하얀 순결색 옷에 떨어진 조그만 띠끌 한점만으로도 민중은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죄를 많이 짓는 죄인들은 스스로가 지은 죄를 대단히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죄 짓지 않는 자가 있으면 나에게 돌을 던져라” 하면서 더욱더 뻔뻔스러워 한다. 하지만 평생을 가난하게 살면서 노동운동 한다고 깨끗하게 살아온 그는 일시적 오점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것이다. 노동 현장에서 노동 운동하던 여자분과 결혼하여 자식도 없이 모아둔 재산도 없이 떠난 그이지만, 많은 민중들 마음에는 감사함과 그리움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버린 명예로운 자였다고.
<명예>를 지킨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를 지키는 것이다. 도리를 지킨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알기에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으려 애쓰고, <염치>를 알기에 염치없는 짓을 하지 않으려 한다. <정의>를 알기에 정의롭지 않는 일에 끼여들지 않고, <사랑>을 알기에 남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지 않으려 한다. <자족>을 알기에 남의 물건을 탐하지도 빼앗지도 아니한다. <평화>를 알기에 서로 싸우지 아니하고, 나의 아픔을 알기에 타인의 아픔도 이해하고 배려한다. 적어도 그분의 자녀라고 자부하면 각자의 <고도의 명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너그 아부지 욕 보이지 말거라..
든 자리, 난 자리 (07-27-2018)
한여름 밤, 땀에 흠뻑 젖으면서 거친 호흡을 몰아 쉬며 공을 때린다. 나는 요즘 일주일에 두번씩 야간 테니스를 친다. 미국이 좋은 여러 이유 중에 하나가 집 가까운 곳 야간 조명시설에서 무료로 테니스를 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눈이 펑펑 쏟아지는 추운 겨울 밤에도 약간의 실내 체육관 사용료를 내면 한겨울에도 함께 모여 운동할 수 있다.
나는 각종 운동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대부분의 운동을 좋아한다. 테니스, 탁구, 배드민턴, 배구, 족구, 야구, 축구는 어느 동네 시합에 나가도 내 자리 (position)가 있었다. 수영도 좋아하고 골프도 좋아하지만 직업상 낮시간에 운동하기는 쉽지 않아서 보류 상태다. 무슨 운동을 하던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운동하는 멤버들이다. 정해진 장소에 나가면 함께 운동할 멤버들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자 축복이다. 그런데 내가 사는 한인 지역은 거주 한인이 많지 않아서인지, 대부분의 맘엔팝 비지니스에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오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운동 클럽 운영이 잘 안된다. 그래도 테니스와 탁구는 몇년째 꾸역꾸역 유지되고 있다.
그런 어느날 테니스 클럽에 유일한 홍일점인 귀여운 막내 여동생 같은 분이 타주로 이사를 갔다. 그 당시에는 약간 섭섭했지만 그런가보다 했는데, 막상 떠나고 <난 자리>가 그렇게 클 수 없었다. 운동하기 싫은 날도 카톡으로 모두 모이게 하고, 함께 운동할 때에도 긍정 에너지와 활력소 역할을 했던 중요한 에너자이저 (energizer) 였다는걸 떠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곱고도 선한 사람이었다. 운동 클럽 멤버들은 몇년을 같이 운동해도 사생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특히 이민 사회에서의 야간 운동 클럽은 사적인 대화를 할 시간이 거의 없다. 그래서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해서 미안하고, 밥 한끼 못하고 보내서 미안하다. 그래서 빈 자리가 너무 크고 아쉽다.
지역 한인회는 지역 한인들의 단합과 번영을 위해서라면 모이게 해야 하고 즐거워 해야 할 꺼리를 만들어야 한다. 교민들의 관심도 없는 생색내기용 그렇고 그런 행사들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모이고 활동할 수 있는 <지역 문화 체육 클럽>을 육성 발전시켜야 한다.
흔히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라는 속담이 있다. 현대인은 누구나 관계와 조직, 공동체 생활을 한다. 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진다. <든 자리>의 <든 자>는 같은 조직에서 생활하는 현존하는 자이다. 현재형이다. 그러니 그립고 아쉬워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자리>의 <난 자>는 떠나간 자다. 현재 조직에는 없는 과거형 사람이다. 그 떠나간 자들 중에 우리는 누군가를 그리워 하며 아쉬워 하고 보고파 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그리워하고 아쉬워 하나?
사랑이 떠나간 후, 젊음이 떠나간 후, 부모님이 떠나간 후, 친구가 떠나간 후, 자식이 떠나간 후,,, 수도 없는 떠남과 아쉬움 속에 우리는 추억을 그리워 한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든 자리>를 보지 못했다. 제자들은 예수가 떠나간 <난 자리>를 보고서야 두려워하고 그리워 하는 것이다. 그분의 사랑이 공기처럼 항상 나와 함께 <든 자리>에 있어도 그 고마움을 알지 못한다. 내가 살아 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 자리는 그분의 <든 자리>인 것이다. 그분은 나에게 <든 자리>인가, <난 자리>인가?
<자리>는 무엇인가? <권력의 자리>는 <권좌 (權座)>이다. 정치 권력이면 정치인, 돈의 권력이면 사업체 사장, 학력이나 업무 능력에 따라 조직의 자리가 등급별로 구분된다. 인류의 역사는 <계급 사회> 구조다. 컴퓨터 공학 첫 입문 시간에 <하이라키 구조 (hierarchy structure)>라는 낯선 단어를 접한다. 즉 <계층별 구조>, 데이타의 피라미드형 상하구조를 말한다. <Network 구조>와 대비되는데, <하이라키>어원은 <천사들 계급 구조>라고 하며, 결국 <성직자들 계급 구조>를 의미한다. 천사도 계급이 있나? <계층별 계급화>란 중요한 등급이나 수준에 따라 구분하여 조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다른 종교에는 없는, 심지어 카톨릭교에도 없는, 현대 개신교에만 <평신도 계급구조>가 존재한다. 장로, 권사. 안수집사, 집사, 성도, 원로 등.. 이런 <자리>는 무엇을 위한 자리이며, 누구를 위한 자리인가? 그 자리가 <권좌>인가? 종교는 권력이 아니다. 앉아서는 안 될 자리라면 <빈 자리>라 해도 앉아서는 안된다. 존경받지 못하는 자가 <자리>를 탐해서도 안된다. 현대 종교는 하이라키칼 구조가 아니라 수평적 네트워크 구조가 되어야 한다.
<자리>는 그 자리가 갖는 엄중함과 책임감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그 <자리>에 앉으면 누구나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자위하며 착각한다. 평가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가 하는 것이다. <든 자리>가 아니라 <난 자리>로 평가된다. 내가 떠난 후 남은 사람들이 <난 자리>를 보며 그리워하고 보고파 해야 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게 아니라 사람이 <자리>를 만든다. 소 귀에 경 읽기겠지만..
운명과 자유 (07-20-2018)
평소에도 일상의 삶과 생각을 좋은 글로 페이스북에 올려서 나를 자주 미소짓게 하는 페친이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을 독후감으로 올렸다. 여러날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까맣게 잊어버렸던 40년전의 옛기억들을 되살리게 한다.
케르테스는 2002년 73세의 나이에 이 <운명>이라는 소설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케르테스는 유대계 헝가리 인으로 1944년 열다섯의 나이에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끌려간다. 1년후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평생 그의 화두는 <운명>과 <자유>였다. 유대말도 못하는 어린 소년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대인이라는 <죄값>을 치러야만 한다는 것을 체념하고 받아드려야 한다면, 이것은 자신의 <운명>인가?
저자는 이 유대인의 아우슈비츠 <운명>을 체념하고 물러서거나, 나치의 전횡을 고발하고 저항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이 처한 극한 상황을 <생존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소설 속 주인공 소년 ‘죄르지’는 수용소 생활의 어떠한 학살과 억압적 상황에서도 그는 삶 자체에 몰두한다.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 격분하거나 저항하거나 체념하지 않는다. 그는 누구나 치를 떠는 그 수용소 생활 속에서도 작은 것에 긍정하고 감사하며 수용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그는 소설에서 강제수용소를 벗어나는 세가지 방법을 말한다. 첫째는 인간의 본성 중의 하나인 <상상>이다. 죄수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상상>은 <자유>다. 둘째는 영원히 잠을 잘 수 있는 <자살>이다. 누구나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한번쯤은 생각하는 방법이다. 세번째는 수용소를 <탈출>하는 것이다. 소년은 자살이나 탈출이 아닌, 상상이란 <자유 의지>를 선택한 것이다.
1945년 4월 독일의 패전과 함께 고향에 돌아온 소년에게 이웃들은 말한다. “끔찍한 과거를 모두 잊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찾으라”고. 하지만 작가는 “그러한 일은 단순히 <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리로 갔다>” 고 말한다. “과거의 모든 것이 지나간 것처럼, 끝난 것 처럼, 변할 수 없는 것처럼,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불분명한 것처럼 그렇게 흐지부지 되고 있다.”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의 삶은 순간순간 수많은 인과응보에 의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냥 온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다가온 현실에 자신을 변형시켜 잘 적응해야 하고 또 살아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순응하며 사는 것이다. 나도 2017년 10월에 <살다보면 살아진다>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작가는 “만일 운명이 존재한다면 자유란 불가능하다. 만일 자유가 존재한다면 운명은 없다.” 즉 <나 자신이 운명>이라는 뜻이다. 소년은 어떻게 수용소 생활에서 행복했을까? 소년의 <자유 의지>다. 니체의 <자유 의지>와도 결을 같이 한다. 그는 “내가 가게 될 길 위에 피할 수 없는 덫처럼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아우슈비츠의 굴뚝에서 조차도 고통들 사이로 잠시 쉬는 시간에 행복과 비슷한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41년전 1977년 봄에 나는 72기 공군 기술장교 훈련을 받고 있었다. 공군 기술장교는 학사 이상의 졸업자들 중에서 필기시험과 체력시험, 신체검사가 통과되어야 사관 후보생이 될 수 있다. 훈련기간은 총 6개월로 군사훈련 3개월, 전문 기술교육 3개월을 통과해야 소위로 임관된다. 장교 훈련은 사병 훈련보다 힘들고 강한 멘탈을 요구한다. 이 과정을 이수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후보생도 제법 많다. 그 중에 기억나는 군사훈련이 뜨거운 태양아래서 두세명이 쓰러질 때까지 훈련을 받는 것이다. 그런 종류의 육체적 한계와 멘탈 강화훈련들이 많다. 그걸 못견디거나 포기하면 즉시 집으로 갈 수 있다. <자유의지>에 해당한다.
나를 3개월동안 어떤 고강도 훈련도 견디게 해 준 것은 조영남의 <제비>라는 노래 한곡과 매주 한통의 여자친구 편지와 그리고 순간순간 내 눈 앞에 보이는 자연 풍경들이었다. 훈련을 잘 받겠다, 살아 남겠다, 쓰러지지 말고 견뎌야 한다,, 이런 생각조차 없었다. 선배 기수들도 동일한 훈련을 받았을 것이고, 훈련받다 죽은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남들도 다 받는 훈련일텐데,, 그렇다면 나는 이 훈련을 <즐기자>, 그렇게 나는 3개월 군사훈련을 무상무념의 마음으로 하늘과 나뭇잎과 땅위의 개미들과 함께 즐기면서 훈련을 마쳤다. 동료들 모두 훈련이 힘들다고 하는데 나는 힘들다고 생각한 기억이 없었다. 나는 훈련의 고통과 두려움이 아니라, 나만의 <상상>으로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 나이 때까지 상장 하나 받지 못한 유일한(?) 교육과정이기도 하다. ㅎㅎ
작가는 “하나의 단계가 끝나고, 그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 다음 단계가 바로 다가온다. 그런 식으로 해서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그 사이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 우리의 삶도 순간순간, 하루하루에 충실하고, 하루하루에 행복하다면 거기가 아오지 탄광이나 아우슈비츠 그 어디라 할지라도 사랑과 행복은 피어나리라. 죽어서 천국이 아니라 살아서 천국? 그렇다면 <천국 소망>은? <천국>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있다네..
어디로 가야 하나? (07-13-2018)
이 질문은 미국에 사는 내가 수시로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난민 (難民)>! 난민은 전쟁, 재난, 내전,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사회적 난민 (displaced people) 과 유엔이 국제법으로 정한 난민(refugee) 으로 나뉜다. 제주도에 입국한 500여명의 예멘 난민은 통상의 사회적 난민에 해당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예멘 난민 문제로 언론들과 SNS 상으로 야단법석이다. 난민법 폐지, 무사증 입국금지, 난민신청 허가폐지 등등.. 예멘인들과 무슬림을 싸잡아 타자로 <혐오>하고 극단적으로 <배타>한다. 예멘 난민을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 심사하여 일부 (한국은 난민 승인률이 4% 미만임)라도 받아드리자 하면 역적으로 몰린다. 아직까지 대한민국 민중은 참으로 극단적이고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 생각한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 저자로 알려진 홍세화씨의 칼럼 “이 혐오감정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에서 지적한 내용을 공감하며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를 원한다. “한국 사람들에게 예멘 난민들에 대해 맹자의 <수오지심 (羞惡之心)>이나 <측은지심 (惻隱之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또 ‘오, 위대한 영(靈)이여! 내가 상대방의 모카 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걷기 전에는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토록 지켜 주소서’ 라는 인디언의 기도문 처럼, 예멘 난민들 입장에서 역지사지 (易地思之)하라는 것도 아니다. 만나보지도 않고 겪어보지도 않아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혐오감정>을 가질 수 있는가? ‘알지못한 채 사랑한다’는 말은 어렴풋이 이해되는데 ‘알지 못한 채 혐오한다’는 이해되지 않키 때문이다.
예멘 난민들에 대한 <혐오감정>은 그들에게 투사된 우리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한국인은 백인과 결합한 가족은 <글로벌 가족>, 비백인과 결합한 가족은 <다문화 가정>, 즉 <GDP 인종주의> 편견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물신주의와 인종주의가 한국 현대사에 결합된 것이다. 우리보다 GDP가 높은 나라 사람들은 받는 것 없이 올려다 보고, 낮은 나라 사람들에게는 주는 것 없이 내려다보는 정신자세를 말한다. 여기다 <무슬림>에 대한 편견이 강력히 결합된 것이다. 이 폭발적인 증오감정을 유발시킨 공포와 불안의 정체, 그 공격성을 이해하기 위한 다른 면이 있다.
우리가 손해보는 일이라 생각하는, 약자나 패배자의 몫이라고 내 팽개친 ‘친절과 환대, 배려와 연대’ 대신에 채워버린, 공격성을 띤 <힘의 의지>가 아닐까? 오랫동안 국가 폭력에 익숙해진 우리는 오로지 물적 조건으로 힘의 크기가 규정되는 사회에서 맘몬의 숭배자, 힘의 숭배자가 되었다. <폭력행사>는 가진 자, 힘센 자의 권리였다. ‘갑’은 ‘을’에게 행사하고, ‘을’은 ‘갑’에게 당한만큼 이상으로 ‘병’에게 풀어내는 방식이 자리 잡힌 것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 성소수자들 연대가 거의 일방적으로 유효하듯이, 젠더 폭력 피해자들인 여성들 (乙)은 더 약한 소수자인 난민 (丙)에게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공격적인 혐오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미국에 사는 여러분은 어떻게 미국에 오게 되었으며, 어떤 신분으로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가? 불법체류자라고 해서 혐오의 대상이고 죄악의 대상인가? 나 자신도 IMF 때 극빈자가 되어 한국에서는 살 수 없어서 무작정 미국으로 왔다. 이민온 것이 아니라 여행비자로 무작정 <난민> 온 것이다. 가난과 신분이 확실하지 않으니 숨죽여 산 세월이 그 얼마였던가? 멀리서 경찰만 봐도 피해다니고 사소한 교통 위반만 해도 등에서 식은 땀을 흘리곤 했다. 하늘에 계신 그분의 은혜로 어떻게 어떻게 해서 투자 비자 받고, 또 어찌어찌 하여 영주권 받고, 또 어쩌다 보니 시민권을 받아 미국 시민권가 되었다. 그렇다고 지금 나는 미국인 인가? 아니다. 미국온지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나는 미국의 소수 한인사회에서 사는 영원한 <난민>이자 <이방인>이며, <한국인>이다. 미국 한인 사회의 대부분은 각자의 피치못할 사정들에 의해 조국의 품을 떠나, 형제 가족들과 친구들을 남겨둔채, 낯설고 물설고 말도 통하지 않는 남의 나라에 와서 가슴 먹먹한 그런 나날을 살아야 했다. 언제 돌아갈 기약도 없이, 이제는 돌아가도 반겨줄 사람조차 없는 우리는 영원한 <이방인>이자 <난민>인 것이다.
한국인이 무슬림들을 거부하는 이유가 1. 유럽처럼 한국을 테러할 것이라는 <안전 위협론> 2. 조혼, 여성 할례 등 <여성 억압론>, 심지어 한국 여성들을 강간할 것이라는 공포감 조성, 3. 무슬림들이 이슬람교를 전파한다는 <문화적 지배론>, 4. 난민 가족 모두가 무상으로한국의 사회복지 혜택을 받을거라는 <무임승차론> 등이라고 한다. 어처구니 없다. 미국 백인들이 우리 한인들에게 이런 핑계로 혐오하고 추방 한다고 하면 용납할 수 있겠는가? 적어도 <사랑의 종교>인 한국 기독교는 종교와 인종을 떠나서, 소외받은 자.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한 자, 병약한 자, 어린이와 노약자를 우선적으로 받아드리고 감싸 안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곧 천국에 먼저 들어갈 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엠마뉴엘 레비나스의 말을 인용하며 마친다. “타자를 존중하고 타자와 윤리적 관계를 맺어야 ‘나’라는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다.”
한여름 밤의 꿈 (07-06-2018)
어제 밤은 체감온도가 섭씨 43도의 폭염주의보가 내릴 만큼 후끈 달아올랐다. 연휴로 뉴욕의 둘째딸과 사위, 처형네 가족들이 모두 모여 새벽까지 수다를 떨었다. 한여름 밤의 수다는 역시 야외에서 모기에게 물려가며 대지의 열기에 바베큐 고기 굽고 맥주를 마셔야 제맛이다.
어제 밤 압권은 내가 만든 <골뱅이 해물무침>이다. 나의 골뱅이 무침은 자타가 최고라고 인정한다. 살짝 비법(?)을 전한다. 재료는 연어 한팩, 껍데기 있는 홍합, 중간 새우, 골뱅이 1통 (4인기준), 파2단, 스윗 어니언 1개, 오이2개, 래러쉬 1/3통, 토마토 3개, 매운 고추 2개, 아삭고추 4개 삶은 달걀 2개다. 먼저 파를 손가락 길이로 짜른 다음 파서리용으로 길게 자른다. 양파도 가늘게 썬다. 오이, 래러쉬, 토마토는 먹기 좋게 썰어서 준비한다. 연어는 소형 깍두기 모양으로 짜른다. 두번째, 홍합과 새우를 살짝 삶아서 식힌다. 골뱅이를 큰 그릇에 붓고 홍합 삶은 물 반컵과 함께 양념을 만든다. 고추가루, 설탕, 맛소금, 식초, 깨소금, 후추가루, 참기름으로 양념을 각자 취향대로 간을 보며 만든다. 준비 끝. 대형 접시 가장자리에 토마토, 삶은 달걀를 놓고, 바닥에 래러쉬를 깐다. 홍합과 새우, 연어를 골뱅이 양념에 1분 담근 다음, 접시 주변에 돌아가며 깐다. 그다음 오이, 파, 양파, 고추를 양념과 함께 묻혀서 접시 가운데 놓는다. 양념 국물을 껴언는다. 맥주를 많이 마실려면 더 맵게 하면 된다. 배가 고프면 라면 사리 (라면을 수프와 함께 삶아서 찬물에 한번 헹구어 차게 준비해둠) 와 함께 먹으면 별미다. 이 요리의 키포인트는 즉석에서 무쳐서 즉석에서 먹어야 한다. 모든 식재료는 신선하고 식감이 아삭거려야 한다. 맥주, 포도주, 소주 다 어울린다. 사랑하는 아내와 한여름 밤을 뜨겁게(?) 보낼려면 이정도야 뭐 기본이지.. ㅋㅋ
세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 A Midsummer Night’s Dream>은 1594년 작품이다, 아테네의 처녀 헤르미아는 사랑하는 남자 뤼산도르스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명문가 청년 데메트리오스와 결혼할 것을 강요 받는다. 그런데 청년 데메트리오에게도 연인 헬레나가 있었다. 그당시 아테네 법은 딸이 아버지의 뜻대로 결혼하지 않으면 사형이었다. 그래서 처녀 헬레나는 연인 뤼산도로스와 도망을 가서 결혼하기로 하고 헬레나에게 도주 사실을 귀띔해 준다. 이 사실을 헬레나로 부터 전해들은 데메트리오스는 헤르미야를 찾아 숲속으로 떠난다. 서로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는 남녀 두쌍은 숲속의 요정이 눈에 발라주는 <사랑꽃> 때문에 발생하는 에피소드를 희극화한 것이다. <사랑꽃>의 즙을 눈에 바르면 인간은 눈을 뜬 바로 직후의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우리 말로 표현하면 눈꺼풀에 콩깍지가 씌우면 주위에서 아무리 반대해도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 모두도 한때는 <사랑꽃>, 즉 눈에 콩깍지가 씌여 지금의 동반자와 함께 살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숨길 수 없는 것이다. ㅋㅋ
부부에게는 두 부류가 있다. 눈에 씌운 콩깍지가 이미 벗겨져서 속았다고 자학하는 타입이 있고, 아주 드물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콩깍지가 씌워져 있어 내 동반자가 세상에서 최고고, 제일 잘 낫다고 생각하는 희귀 부류다. 심지어 다음 세상에서도 이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질 것이라는 중병 환자도 있다. 세상은 넓고 잘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하물며 천국이라면 이 세상보다 잘난 사람이 더 많을텐데.. 주여, 이 불쌍한 영혼을 어찌 하오리까? 이 희극의 끝말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과는 반대로, 서로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산다는 헤피 엔딩으로 끝난다. 훗날 멘델스존이 이 희극을 읽고 작곡한 음악이 결혼식장에서 신랑,신부 퇴장할 때 나오는 그 유명한 <결혼 행진곡>이다. 이 희극에서 인용한다 “아무리 쓸모없고 비천한 것이라 해도, 사랑은 그것들을 가치있고 귀한 것으로 바꿔 놓을 수 있어. 사랑은 눈으로 보는게 아니라 마음으로 보니까.”
그래서 <한여름 반의 꿈>은 꿈이어서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이 아니라, 꿈같은 사랑으로 이루어짐이라. 한여름 밤에 아내와 함께 뒷마당에 모닥불 피워놓고 도란도란 지나온 이야기를 해도 좋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서로의 소원을 말해도 좋을 것이다. 젊은 시절 함께 들었던 가요를 틀어놓고 함께 흥얼거려도 좋고 동네 한바퀴를 돌다보면 사람들의 방에서 흘러 나오는 불빛들이 그윽하고, 눈 앞에 펼쳐지는 반딧불 향연이 정겹다. 함께 험난한 길을 걸어준 지금 이 사람이 고맙고, 그래서 미안하다. 어느듯 세월은 흘러 육십대 중반의 노부부가 되었네. 함께 살아온 37년의 세월이 결코 짧다고는 할 수 없을텐네, 어찌 이리 빨리 지났는지, 아직도 내 눈에는 20대 처녀 시절의 곱디고운 얼굴이 아른거리는데 인생의 황혼이라는게 실감나지가 않네. 잘 사시다가 함께 가시게나. 그동안 맛있는거 많이 해 줄께. 좀 부족해도 사는 날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모닥불 피어나는 한여름 밤, 술도 익어가고 내 사랑도 익어가네..
불륜 (不倫) (06-29-2018)
불륜이란 무엇인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지나가는 바람?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불륜도 사랑인가? 왜 사람들은 관음증 환자 처럼 타인의 불륜에 대해 관심도 많고, 본인이 더 광분하는가? 부러워서? 일명 간통(姦通)이라 불리우는 불륜은 성관계를 갖지 않더라도,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자기가 이끌리는 다른 사람과 사귀면 불륜이다. 성경에도 남의 여인을 마음에 품는 것 조차 간음이라 규정한다. 즉 정신적 간통이 되는 것이다. 몇년 전만 해도 간통죄로 감옥 간 위인들이 많았다. 감방 죄수들 조차 가장 하찔 범죄자로 여겨, 변기통 옆이 간통 죄수의 지정석이라고 한다.
얼마전 경기도지사 후보인 이재명씨와 영화배우 김부선씨 간의 불륜 폭로전으로 온 세상이 시끄럽다. 이민 사회도 마찬가지다. 20년전 바람을 피운 사람이 지금도 주홍글씨가 되어 비난 받는걸 보고 실소를 금치 못한다. 정치가나 사회적 지도자들에게 반드시 모범적인 결혼생활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순결과 금욕을 요구하는 성직자들 중에도 별의별 잡X들이 많은데, 하물며 세상 잡X들이 모여있는 정치판에서야 오죽 할까? 하지만 김부선씨 주장대로 불륜 사실이 맞다면, 불우한 환경에서 입신출세한 이재명은 앞으로는 민중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첫째 이유는,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그 여배우는 왜 창피함을 무릎쓰고 불륜을 폭로했을까? 여자가 바람을 피울 때는 두가지 이유다. 첫째는 정서적 사랑의 갈급함이요, 둘째는 경제적 지원이다. 그런데 월세도 못내는 여자에게 15개월 동안 동거하면서 일전 한푼의 경제적 지원도 하지 않았다면 계산이 흐리멍텅한 양아치다. 그러니 ‘단물만 쪽 빨아먹고 버렸다’ 라는 분노가 생긴 것이다. 둘째는 <정직하지 못하다>. 아내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내연녀에게도, 민중에게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사내 대장부가 용기도, 배려와 신의도 없는 것이다. 도지사 선거에 떨어지면 어때? 아내와 내연녀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다면 그는 차기 대선후보도 가능 했을 것이다. <혼외정사>나 <불륜남>의 3대 필수 조건이 있다. 첫째, 경제적 지원 능력이 충분히 될 것 (불륜녀에게 ‘바람은 보험’이다). 둘째, 같이 놀아줄 시간과 재능이 충분할 것, 세째. 다른 여자를 사랑할 수 있는 강심장이다. 일명 바람끼다. 의외로 남자의 정력은 상관 없다고 한다. 바람은 아무나 피우나?
나는 불륜은 개인적인 사생활 문제라고 본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도 많은 여자와 성관계를 맺고 많은 자식을 낳는다. 프랑스 역대 대통령 중에 대부분이 정부(情婦)가 있었다거나, 영국 왕실이나 이태리 등 서유럽의 고관 귀족들의 성생활은 문란하기 이를 때가 없다. 불륜의 세계 역사는 끝도 없다. 살만해진 한국도 전국에 셀 수도 없는 술집들, 향락 업소들, 전국 곳곳에 들어선 모텔들, 낮이고 밤이고 항상 만원인 유흥 숙박업소에는 정상적인 부부들이 와서 자고 가겠는가? 그것도 대낮에?
왜 인간은 정상적인 부부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륜적 외도(外道)를 하는걸까? 현대인의 스스로에 대한 허전함이요, 불안과 상실감 때문이다. 철학자 리처드 테일러는 “불륜은 성적 모험이 아니라, 실패한 결혼의 징후다. 남편이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몰라줄 때, 아내가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때, 불륜은 싹튼다.”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만 이유일까?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이래로 세상에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수많은 종류의 사랑들이 태어나고 사라졌다. 별의별 사랑에는 별의별 사연이 많으니 정답이 없다.
그래서 근대 인류가 합의를 본 제도가 <일부일처제 (一夫一妻制)>다. 동물의 세계에는 없는, 인간 세계에만 있는 가혹한 형벌(?)과 같은 제도이다. 내 주변의 교인들은 말한다. “기독교인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이혼을 해서는 안된다.” 이건 일부일처제 보다 더 가혹한 형벌이다. 절대 이혼을 하지 않고 평생의 동반자요 반려자로 살기 위해서는 정말 서로에게 사랑을 해야 한다. 온맘을 다해 온 정성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 상대가 나를 사랑해 주기 때문에 나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주는 것이다. 그렇게 사랑했는데도 다른 여자와 바람이나서 떠나간다면 어찌할 것인가? 그렇게 사랑만 한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고 떠나는 그 잡X을 쳐 죽일 것인가? 떠나는 자는 보내줘야 한다. 바람을 피우면 혼자서 피우는가? 상대 여자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사랑하지도 않는데, 원수처럼 미워하는데도 한집에서 살아야 하는가? 독실한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바람 피우다 언젠가는 돌아오기를 기도하면서?
그건 그분이 말씀하신 사랑이 아닌 것 같다. 부부가 사랑하지도 않는데, 경제적인 이유, 아이들의 양육 문제, 생활의 안정, 주위의 눈치와 체면 때문에 헤어지지만 않았을 뿐, 한지붕 남남으로, 혹은 쇼윈도우 부부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칭찬하시겠는가? 예수의 가장 위대한 말씀은 <원수도 사랑하라> 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거야 누군들 못할까? 그렇다면 그래도 한때는 사랑했기에 결혼했고, 자식 낳고, 아직도 법적인 부부인데 왜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가? 괜한 바람 피울 생각 하지말고, 이 죽일 놈의 원쑤님을 더욱더 사랑하자. ㅋㅋ
이 나이 먹도록 뭐 했지? (06-22-2018)
바람이 분다. 먼 바닷가에서 나를 부르는 열사의 바람이다. 초여름이 성큼 내 앞에 다가선다. 앞마당의 치자꽃이 다 지면 나는 바다로 달려간다. 하늘이 투명하도록 파랗다. 닭튀김 20불어치, 김밥 2줄, 맥주 2캔, 물 2병, 파라솔 1개, 접의자 2개, 책 한권만 있으면, 아차, 그리고 아내만 함께 있으면 나의 여름은 족하고도 족하다. 올해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매주 일요일 바다에 갈 수 있는 은혜를 배풀어 주사 기도하려는 참에, 이런 인터넷 기사 제목이 나의 뒷목을 내려친다. 온몸에 힘이 빠진다.
“이 나이 먹도록 나는 뭐 했지?” 그러게. 그렇고 보니 나이만 먹었지 아무것도 해 놓은게 없네. 문재인 일년 선배는 대통령으로 한민족의 지도자로 우뚝 서고, 새까만 후배인 안철수는 정치판에서는 낙제생이지만, 1천억원 재벌로 성공했고, 동갑내기 홍준표는 학창시절 같았으면 비교대상의 깜도 안되는 놈이 야당 대표로 설치는데, 나는 지금 여기서 뭐하지? 물론 이정도 과장이면 자학도 중병 수준이겠지만, 지금 나는 과거의 나를 아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형편이 전혀 못된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머너먼 미국까지 와서 과거 속세 인연들과 모든 연락을 끊고 그냥 그냥 하루 하루 조용히 살고 있다. 그런데 이 기사 제목이 나의 염장을 지르네 ㅠㅠ
박진영의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책의 화두다. 이 책은 <자기 자비 (Self- compassion)>, 마음 챙김(mindfulness), 자존감 (Self-esteem), 비판적 완벽주의자 (self-critical perfectionist)>에 관한 내용들이다. 여기서 거론되는 <비판적 완벽주의자>는 유독 자신에게 가혹한 사람들이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결단코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는 <바보, 머저리, 루저>등의 단어들을 자신에게는 서스럼없이 하며, 스스로 자학하는 부류의 사람이다. 과거의 나도 그러했다. 특징은 1. 지속적인 자기 검열을 한다. 2. 자신의 행동에 부족하다 느끼고 비판적이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3. 좋은 결과를 내도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며 사사건건 스트레스가 크다. 4.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대한 걱정이 심하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는 관대하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평범한 사람끼리 비교하고 실망하고 포기하며 산다. 그런데 이 부류들은 <자존감>이 하늘을 찌른다. 많은 일을 했고, 많은 것을 이루었고, 많은 것을 얻었지만,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얻은게 거의 없다고 자학하는 것이다.
내가 IMF때 사업에 실패하고 모든 재산을 잃었을 때 죽음을 생각한 적이 있다. 그 사업실패 이전까지의 나의 삶은 실패라는 걸 모르는, 내 스스로 생각해도 괜찮은 삶이었다. 나의 승리는 당연한 것이었고, 더욱 완벽한 앞날의 승리를 위하여 나 자신을 독려할 뿐이었다. 나는 실패한 삶, 실패할지도 모를 삶을 상상조차 해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날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실패한 내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실패할 수 가 있지?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그날 나는 단골 포장마차 아주머니와 밤새 술을 마셨다. 그 포장마차는 내가 손님들 접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리는 마지막 코스였기에 그녀는 나를 잘 알았다. 그때 그 아주머니는 내가 모든걸 잃었다고하니, 내가 잃은 것은 돈 뿐일 뿐, 아직도 내가 얼마나 많은걸 가지고 있는지 아주머니 자신과 비교하며 일일이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아주머니가 살아온 험하고도 굽이친 인생을 눈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일순간 이 아주머니와 내가 어떻게 비교가 되지? 하는 <자존심>이 순간 상했다. 그걸 눈치챈 아주머니가 ‘그럼 이런 구차한 인생을 지금까지 살아온 나는 벌써 죽었어야겠네요?’ 하는 말에 정신이 버쩍 들었다. “아닙니다. 살으셔야죠, 절대 죽으시면 안되지요. 포기하지 마세요. 힘내세요. 잘 사실거예요. 반드시 행복하실거예요.” 아주머니에게 해 준 나의 말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내게 하시는 말이 되어버렸다. 그때 그 말들이 나를 지금까지 살아오게 된 동기가 되기도 하고, <비판적 완벽주의자>에서 <자기 자비주의자>로 바뀌는 계기가 된 것이다. 아마도 포장마차 아주머니는 하늘이 보내신 천사 였나보다.
누가 뭐라든 우리 각자의 인생은 소중하다. 어떤 길을 걸어왔던, 그 길은 험하고도 고통스러웠다. 그러기에 소중하고 행복한 것이다. 인생이란 길에 평탄한 길은 없다. 다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각자 나의 길은 타인들이 보는 것 보다 훨씬 험난하고 구불한 길이기에, 나의 힘듦과 고통을 어루만지고 다둑거려 줄 수 있어야 타인의 삶이 힘듦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IMF 20년전과 비교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돈이 없기는 마찬가지고 가난은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보다 감사할 일들이 너무 많아졌다. 잘 살아온 세월이다. 수고 했다. 남은 세월도 선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스스로에게 자비를 베풀자. 그리고 세상에도 자비를 베풀자. 그래서 족한 마음으로 이 세상 떠나는 날 웃으며 별이 되자. 나는 괜찮은 사람이었노라고..
왼손과 오른손 (06-15-2018)
6월12일은 세계 역사에 기록될 날이다. 새벽까지 거의 뜬눈으로 유투브 화면을 쳐다 보았다. 세계에서 가장 적대적 대결 관계였던 미국과 북한이 공존과 협력 관계로 선언하고 서명했다. 향후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 한반도 종전 서명 및 평화 협정 체결, 북한의 완전한 체제 보장과 경제 협력, 양국 우호관계 확립 등등.. 앞으로 남북미 3개국이 해결해야 할 일들이 태산이다. 한민족은 잘 되어야 하고 잘 살아야 한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을 보면서 애잔한 생각이 든다. 이제 34세의 젊디 젊은 청년이다. 전생에 무슨 업보가 저리 많아 27세에 독재자의 후계자가 되고, 그동안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수많은 인민들을 학살하고 노동 교화소에 보냈던가? 얼마나 많은 번민과 고독 속에서 불면의 나날을 살았을까? 그는 이제 북한 인민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하여> 새로운 지도자의 길을 가야만 한다. 남한도 이제는 수구 기득권 세력의 70년 동안 <종북, 빨갱이>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함께 손잡고 민중과 인민을 위해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세상의 모든 철학과 종교는 <상식>의 범주에 속한다고 한다. 상식은 인륜(人倫)이다. 인륜은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이자 길이다. 헤겔은 인륜의 마지막 단계가 <국가>라고 했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설립 목적은 국가 전체가 최대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가지 덕목이 필요한데, 통치자의 지혜, 수호자의 용기, 시민들의 절제라고 했다. 하지만 <올바른 삶>에 대한 보상은 <철인(哲人) 통치자>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와 지혜를 갖춘 <민중>만이 올바른 국가를 유지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병을 고치는 자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 자신이다.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해야 나을 수 있는지, 행동하고 실천해야 하는자는 환자 자신이다. 종교도 철학도 앓는 소리일 뿐이다. 의사는 병을 고치는 도우미일 뿐, 병이 낳고 잘 사는 길은 민중의 <앎>이며, 민중의 앎은 <아픔>에서 비롯된다. 이제 남북한 한민족은 스스로의 힘으로 알아야 하고 아파야 하고 앎음으로 치유되고 일어서야 한다.
사회학자이자 동국대 명예교수인 <조은>씨는 “왼손과 오른손을 찬찬히 들여다 보다” 라는 글에서 이런 말을 한다. “어느날 일어날 때 스트레칭을 하면서 일어나야 한다는 주변의 충고로 천장을 향해 두 손을 쭉 뻗었다. 역광으로 보인 두 손의 크기가 너무 달라 보였다. 두손의 크기와 손가락 모양까지 다르다는걸 알게 되었다. (중략) 왼손과 오른손이 같은 내 손이라는 생각이 안들 정도 였다. 수저를 잡기 시작하면서 부터 나는 심한 오른손 잡이였다. 왼손과 오른손이 70여년의 쓰임새에 따라 이렇게 달라져 있다는 생각에 마음 쓰인 것은 좌우 프레임에 갇힌 분단 70년의 강고함을 절감해야 했던 강박이 불러온 몸짓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인들이 <멈춘 전쟁> 속에서 의외로 담담하게 살고 있는데 대하여 세계인들이 놀라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여기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분단의 모순과 불의와 부조리의 일상에 맞서 많은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면서 여기까지 왔다. 평화가 일상이 되는 일은 ‘빅딜’만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험하고 힘든 일을 많이 한 손은 거칠고 투박하다. 럼브란튼의 <돌아온 탕자>에 그려진 아버지 두손도 너무 다르다. 남과 북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던, 이제는 두손을 서로 맞잡아야 한다. 왼손과 오른손, 모두가 우리의 소중한 손이기 때문이다.
남북한은 무지와 편견으로 너무 다른 세상에서 살아왔다. 민중의 의지가 아니라 소수 권력자들과 그 주변국들의 야욕으로 말미암아 민중은 처절하게 소리죽여 살아야 했다. 민중에게 이분법적 이념이나 종교가 무에 그리 중요한가? 민중은 자유롭고 평화롭게 서로 사랑하면서 살고 싶어한다. 민중의 행복은 그다지 크고 대단한게 아니다. 단지 그것조차 보장되지 않으니 민중은 <혁명>으로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함석헌 선생의 <민중 혁명>은 세단계다. 첫째, 청천백일하에 드러내 놓은 반항이다. 삶이 악과의 싸움인 이상 악에 협력할 수는 없다. 반항해야 한다. 둘째, 그것은 폭력을 쓰지 않는 싸움이다. 싸우는 목적은 저쪽의 혼을 불러 일으켜 하나 되는 참에 가자는데 있다. 싸움의 목적이 참이김이므로 강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죄악의 값인 고통을 내 몸에 감당하면서라도 미움없는 참음으로 해야 할 것이다. 세째, 조직적인 운동이어야 한다. 선도 개인의 선이 아니요, 악도 개인의 악이 아니다. 현대는 조직사회이며, 악은 그 조직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혼자 세상에 초연하여 독선기신 (獨善其身)한다는 식으로는 절대 사회악과 싸워 이길 수 없다.
민족 통일은 인간의 자기 해방 없이는 진정한 통일이 될 수 없다. 민족의 통일은 모든 한민족 씨알들의 자주독립과 창조적 생활을 위해서 하는 것이고, 그것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통일은 씨알이 씨알 자체를 위해서 제 힘으로 스스로를 통일하는 것이다.
통일의 씨알 (06-08-2018)
일주일이 지나면 한반도의 운명이 바뀌는 첫 발자욱을 내딛는 날이다.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고, 6월13일 대한민국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두가지 모두 한민족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날이다. <6.13 지방선거>는 남한 정부의 적폐세력들, 친일파 기득권 세력들을 척결할 첫번째 <촛불국민 행사>이기 때문이다. 적폐청산은 과감하고도 꾸준하게 지속되어야 한다. 그 과업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는 남북한 한민족이 <통일>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핵폐기 –CVID>와 <완전한 북한 체제 보장>은 한번의 회담으로 끝날 일도 아니고, 보장하기 어려운 여러 난관들이 있겠지만, 어찌 되었던 이번 기회에 북한은 <인민을 위하여> 정상적인 국가로 탈바꿈하고, 경제 부흥에 전력을 다하여야 한다. <문재인>이라는 양심적 민족 지도가가 있을 때 미국과 선린관계를 맺어야 한다. 변덕이 죽 끓듯이 하는 <트럼프>는 돈이 최고인 인생이다. 그는 돈을 위한 <협상의 달인>은 될 수 있어도, 역사적으로 존경받을 위인은 결코 아니다. 그러기에 그런 자와 협상하기가 더없는 좋은 기회다.
북한은 해방후 김씨 일가의 권력 보존과 주변 강대국(미,중,일,러)들로 부터 독자생존하기 위해 <독재국가>가 되었고, <독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인민들을 학살하고, 인민들을 굶겨 죽이면서 까지 핵을 개발한 역사의 대죄(大罪)를 이번 기회를 시작으로 씻어야만 한다. 그 길만이 <인민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나 자본주의 국가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세계는 <혼란의 시대>다. <불확성의 시대>다. 신자본주의, 신 자유주의, 종교 국가시대 등, 기존의 모든 이념과 체제의 가치가 흔들리고 있다. 20세기의 정치, 경제, 종교 프레임들이 한계에 달한 것이다. 우리는 세계화, 자유무역, 기독교식 서방 자본주의 체제에서 교육받고 자라온 세대다. 세상은 과거보다 잘 살게 되었지만 인류는 행복하지 않다. 소득 양극화 현상으로 중산층이 사라진 시대다. 하층민들의 반란이 시작된다. 적어도 세계적 지도자라면 함께 모여 지구의 평화와 환경, 그리고 저소득층들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적 자본주의든, 공생적 자본주의든, 이제는 변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변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역사의 변화는 성장하는 것이지, 결코 후퇴하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의 역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남북한 정치 지도자들이 잘 하면 되는 것일까? 대한민국 얼치기 보수 국회의원이라는 자들의 행위를 보라. 시정잡배 (市井雜輩 – 사전적 해석 : 빈둥빈둥 놀면서 방탕한 생활을 하며, 시중에 떠돌아 다니는 점잖지 못한 무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국회의원들을 누가 뽑았는가? 국민이 뽑았다. 국민의 어리석음이다.
남북한이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남북한 백성 모두가 현명해져야 한다. <씨알>이 되어야 한다. 국민, 백성, 민중, 인민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함석헌 선생의 스승인 다석 유영모 선생께서 만드신 <씨알>의 사상을 알아보자. <씨알>은 백성 또는 민중을 의미하는 민(民)을 뜻한다. ‘씨알’의 ‘씨’는 ‘씨앗’을 지칭한다. ‘알’은 세가지 의미가 합해져 있는데 ‘ㅇ’은 지극히 크고 초월적인 하늘을 가르키며, ‘ㅏ’는 인간에게 내재된 극소의 하늘을 의미하며, ‘ㄹ’은 생동하는 생명을 뜻한다. 함석헌 선생은 “인간은 ‘알’로서의 본질을 간직한채, 씨앗처럼 새로운 생명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를 내던져야 한다”고 한다. 즉 씨알의 본질은 하나님, 자아, 생명 간의 하나됨 (合一)을 의미한다.
함석헌 선생의 글을 인용한다. “씨알이란 뭔가? 말 그대로 지위도 없이, 권력도 없이, 그저 땅을 디디고 서서 전체를 위해서, 전체라는걸 의식도 못하면서, 전체를 위해 봉사하다 봉사하다 가는 사람들이다. 난대로 있는 사람, 못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들어 준 그 본성을, 그 바탈 (‘바탕’의 순 우리말)을 비교적 깨뜨리지 않고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지위가 있는 사람은 지위가 있는 대신에 그 바탈을 다 팔아먹는다. 지위가 높을수록 바탈을 더 많이 팔아먹는다. 2천년전 씨알 중의 으뜸 씨알인 그 (예수)가 그랬던 것 같이, 오늘날의 씨알들도 전체를 살리기 위해 성경을 고쳐 씹어 읽고, 십자가에 달려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동양 경전을 고씹어 볼 필요가 있다.”
“씨알의 바탕은 인정이요 도리다. 사랑과 참이다. 씨알은 거짓없이 자기를 사람으로 대해 주는 마음을 보면 곧 자기를 내놓고 마음을 열어 대한다. 그러므로 참과 사랑을 하는 사람은 민중에게 왕 아닌 왕노릇을 할 수 있다.”
“민중의 마음을 바위라면 민중 지도자(운동자) 마음은 빗방울이다. 빗방울 같이 작고 겸손한 혼으로 바위를 때리고 때리면 깨지고 만다. 빗방울은 바위를 깨는 것이 아니라 녹이는 것이다. 민중은 완전한 자기희생의 사랑과 참을 보기 전에는 부서지지 않으나, 천만년 들어서라도 그것을 보여만 주면 자기도 부서져 자기 희생을 한다. 바위가 부서져 옥토가 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 한민족도 사랑과 참으로 씨알의 혼을 모셔야만 진정한 통일이 될 것이다.
무릎을 꿇어라 (06-01-2018)
영화 <300>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역사적 배경은 BC 480년 페르시아 대군이 그리스 도시국가를 침공했을 때 단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들이 모두 죽을 때까지 처절한 혈투를 벌였던 테르모필레 전투를 배경으로 한다.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를 경험한 다리우스 1세가 죽자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가 수십만의 대군과 1200척의 군함으로 아테나와 스파르타를 공격한다. 크세르크세스는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에게 최후의 통첩을 한다. “<무릎을 꿇어라>. 그러면 그리스 자치를 보장해 주고 페르시아의 친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더 비옥한 땅으로 이주하게 할 것이다. 그렇치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 4일을 기다린 후 크세르크세스는 공격명령을 내리고 3일간의 코론토스 지협 전투에서 스파르타 300인은 모두 전사한다. “스파르타인은 후퇴하지 않는다.” 라는 유명한 전통을 남긴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이었던 <몽골제국>은 1206년부터 멸망하기 까지 90여년 동안 몽골, 중국, 한반도,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중동북부, 동유럽, 러시아에 이르기 까지 단시간에 가장 넓은 땅과 국가를 정복한 제국이다. 세계인의 공포이자 잔인한 학살자로 인식된 <칭기즈 칸>도 정복의 대명사가 “<무릎을 꿇어라>. 항복하면 모두 살려주고, 저항하면 모두 죽인다.” 였다. 저항하면 성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죽여버려서 그 악명과 공포가 지금까지 유럽인들에게 가장 잔인한 정복자로 회자되고 있다.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성회담>을 목전에 두고 미국의 천박한 장사치에 불과한 트럼프와 네오콘(신보수주의자), 공화당 극우 보수집단 과 언론들이 북한의 <완전 비핵화>를 요구하면서 하는 짓이 가관이다. 한미정상 회담에서는 북미회담을 한다고 했다가, 하루만에 파기한다 했다가, 또 하루만에 다시 하겠다고 한다. 이것은 국가 대 국가간의 협상이 아니다. 마치 동네 조폭이 어린아이를 협박 공갈 하듯이 <무릎을 꿇어라. 용서를 빌고 다시는 결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면 용서하고 살려주겠다.>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남북한 한민족 모두에게 굴욕적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오직 <한반도 평화>만을 위해 굴욕을 인내하며 슬기롭게 풀어나간다. 선하고도 강한 지도자다.
신보수주의자 <네오콘>은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 엘리트 출신들과 유대 시온주의자 중심의 우월주의자들이다. 민주당이었다가 레이건의 미국 패권주의 때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긴다. 신자유주의 이데오르기를 가지고 미국 경찰국가론을 주장한다. 미국적 가치가 최우선이며, 미국 이익을 위해서는 전쟁과 무력도 불사한다는 신념론자들이다. 현대판 <파시즘>이다. 이에 반하는 국가들을 <악의 축>, <불량국가>로 낙인 찍고 공격한다. 리비아, 이라크, 북한, 이란, 시리아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선(미국편)과 악(반미국편)의 흑백논리인 이분법적 사고로 세계국가들을 평가하며, 친미 국가들이라 할지라도 미국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현대판 십자군들이다. 조지 워커 부시 시절 딕 체니, 도널드 럼즈펠드가 대표적 인물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도 콜린 파월 같은 정통 보수주이자들이 명분이 약하다고 반대했지만 강행했다가 망신만 당하고 실패한 전쟁이 된 것이다.
미국은 이제 자유, 인권, 민주주의를 주장할 수 있는 세계 모범국가도 아니고 세계 지도자 국가도 아니다. 자국 이익 최 우선주의 폐권국가이며, 보호 무역주의, 관세 장벽, 세금 감면정책으로 재정적자 급증, 이민 억제 정책으로 고급 인력 감소, 등 쇄락해 가는 늙은 국가다. 향후 미국의 앞날은 극히 불투명하다.
문제는 약자인 남북한이다. 절체절명의 기회인 <종전선언>, <평화협정>, <비핵화 완결> 등을 반드시 이룩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운명은 전시 작전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 가지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은 <완전한 핵포기>를 할테니까 <체제 보장>을 보장받고 싶은 것이다. 제반 압박제제를 풀어달라는 것이다. 경제원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은 미국에 <무릎을 꿇을테니>, 하얀 이팝에 고깃국 먹여 달라는 굴욕적 경제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을 못살게만 굴지 않으면, 자기들 체제만 흔들지 않으면, 자력으로 갱생하겠다는 것이다. 국가 자존심은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강하다. 북한은 돈 때문에 자국민의 몸과 자존심을 강대국에 팔지는 않았다.
미국도 남한도 북한 역사를 잘 알지 못한다. 한국의 고대사, 근대사는 일제 시대때 조선사 편수회 출신들이 일본 제국주의 학자들의 <식민사관>에 기초를 둔 것이다. 해방후 우리 세대는 왜곡된 역사를 배운 것이다. 고조선 역사 왜곡, 일본의 ‘한사군 –> 임나일본부 -> 조선 총독부’ 론, 중국의 동북공정론과 함께, <남북한 조선>을 중국이나 일본의 식민지로 여기려는 획책인 것이다. 한강 이북은 중국, 한강 이남은 일본 것이라는 주변 강대국들의 야욕인 것이다. 남한과 북한이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 협정을 맺어서 경제 부국이 되는 것을 원하는 나라는 남북한 한민족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그 누구도 남북한이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걸 통찰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구출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에 애잔한 위로와 힘찬 응원을 보낸다. 한민족이 뭉쳐야 한다. 하나가 되어야 한다. 통일로 가는 길이 결코 순탄치 않겠지만, 먼저 자립 자주 해야만 한다. 신이시여, 한민족을 보호하소서.
봄비 그리고 보고 싶은 얼굴 (05-25-2018)
봄비가 내린다. 일주일 내내 새색씨 수줍음 처럼 살포시 내리다 멈추다를 반복한다. 주말마다 깎아야 하는 잔디는 2주일째 돌보지 못하니 모양새는 단정치 못하지만, 더없이 자유로워 보인다. 잔디 뿐이랴, 텃밭에 심어둔 채소 묘종들이 일주일째 봄비를 듬뿍 맞아서인지 쑤욱 자랐다. 아내는 봄비를 맞으며 묘종과 봄꽃들을 가꾸느라 하루종일 정원에서 산다. 나보다 정원을 더 사랑하는 여자?
봄비가 내리는 날 나 홀로 운전을 하면, 나는 주로 흘러간 옛노래를 듣는다. 7080 가요, 팝송, 가곡, 샹송, 오페라, 악기 연주곡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비오는 날 내가 좋아하는 가요는 대중가수 <박인수>씨가 부른 신중현의 <봄비>다. ‘박인수’ 라는 이름은 테너 가수겸 교수인 박인수 씨와 일반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1970년대의 소올 가수 박인수 씨가 있다. <봄비>는 여러 가수가 불렀지만 나는 박인수의 봄비만 고집한다. 소올 풍의 그의 창법은 독특하다. 애간장을 쥐어짜듯 목에서 피를 토하듯 그의 목소리는 애절하고도 거칠다. 박정희 유신정권 시대에 맞서 항거하고 울부짖고 분노하며 부르던 시절의 우리 세대 노래다.
노래는 추억을 만든다. 그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의 보고 싶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봄비가 내리던 어느 봄날들을 기억한다. 데모 현장, 최류탄 가스 냄새, 도둑놈 소굴 같은 대학가 다방, 골목길 막걸리집, 자욱한 담배연기, 열띤 사상 논쟁과 고뇌로 울부짖던 젊은 날의 초상들, 그리운 친구들, 연탄불 꺼진 자취방, 언제나 옆구리를 감싸는 시장끼, 불어터진 라면, 갈 곳이 없어 안방처럼 살던 도서관, 양지바른 나의 지정석과 딱딱한 나무의자, 젊은 열기를 가누지 못해 봄비를 맞으면서도 공을 치던 테니스장, 대학로 곳곳마다의 봄꽃들과 낯선 만남과 설레임, 우산 속 농익은 여인의 낯설은 향기, 사랑을 만나고 배우고 헤어짐의 반복되는 단상들, 고독과 고통과 외로움으로 인한 자학의 상처들 ..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한 그 순간순간 마다 <보고 싶은 얼굴>들이 있고, 다시 <듣고 싶은 음악>이 있다.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다시 만날 수도 없는, 그래서 기억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그 공간 속 얼굴들과 추억의 음악만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봄비>가 그런 노래 중의 하나다. 소올 음악과 재즈음악의 한국 최초이자 대부라던 박인수씨는 1947년 생으로 1.4후퇴 때,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이북에서 피난내려 왔다가, 어머니를 잃어버린 전쟁 고아다. 12살 때 미국으로 입양되어 할렘가에서 중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향수병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귀국하여 미군 부대에서 하우스보이 생활을 한다. 어느 미군의 도움으로 미군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게 된다. 신중현씨 그룹 멤버가 되어 <봄비>를 부른 것이 히트가 되어 일약 스타가 되지만 76년 대마초 사건으로 가수 생활을 마감한다. 불행한 결혼 생활로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가 되어 기초생활 수급자로 살았는데 저혈당으로 인한 단기 기억 상실증, 췌장암으로 7년 이상 시골 요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하였다. 소식을 접한 아내가 37년만에 돌아와서 간병을 하며 겨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나는 그의 노래 <봄비>, <겨울 소나타>, <기다리겠소>, <당신은 별을 보고 울어 보셨나요>, <아무말도 하지 말아요> 등을 좋아한다.
그의 노래에는 언제나 눈물과 외로움이 있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언젠가 혼자가 되어 외롭거나, 병으로 아파서 고통스럽거나, 가난해서 삶이 힘들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여 그리워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은 한꺼번에 들이닥친다고도 한다. 어쩌겠는가? 나에게 들이닥친 현실의 불행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살다보면 사는 날까지 어찌어찌 살아지겠지. 힘들게라도 살아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좋은 추억과 보고 싶은 얼굴과 그 시절 듣고 싶은 음악이라면 그것 또한 감사할 일이다.
봄비가 온 대지를 적신다. 뜰에 나가 하늘을 향해 봄비를 온몸으로 맞는다. 하염없이 내리는 봄비에 우리의 지나온 세월이 녹아있다. 즐거웠던 순간도, 힘들었던 순간도, 죽고 싶었던 순간도 잘 견디어 지금까지 왔다. 수고했다. 고생했다. 지금은 봄비의 간지러움과 봄비 소리에만 귀 기우리자. 살다보니 봄은 나도 모르게 봄의 한가운데에 서 있구나. 그러다가 멀지않아 봄은 떠나고 여름이 오겠지. 앞서 살다간 사람처럼 화려함과 젊음은 사라지고 초라하고도 나약한 육신으로 남겠지. 계절은 변하고 우리의 삶도 계절 따라 흘러 가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사랑하는 마음만은 변하지 말자. 그래야 훗날 빛바랜 흑백 사진처럼, 가끔은 사랑하는 누군가의 <보고 싶은 얼굴>이 되고 <듣고 싶은 노래>가 될 수도 있겠지. 그럴수만 있다면…
“어룰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 / 어룰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 / 서럽다, 이 나의 가슴 속에는! / 보라, 높은 구름 나무의 푸릇한 가지 / 그러나 해 늦으니 그어 오지만 / 내 몸은 꽃자리에 주저앉아 우노라.” – 김소월의 <봄비>
권력의 가해자들 (05-18-2018)
광주의 봄은 꽃바람을 타고 어김없이 우리에게 다가오는데, <5.18 광주 민주 항쟁>의 억울한 생명들은 원한의 곡성이 멈추지 않는다. 언제나 울음을 멈추려나? 어느 역사이건 간에 부당한 권력을 탈취하기 위해서는 독재와 무력이 수반되었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기득권 세력들은 도덕적 정당성을 결여한 채 자기 모순의 극대화와 폭력의 정당성을 합리화 하였다.
한국 민중 현대사의 수많은 사건들이 아직도 대부분 침묵하는 이유는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는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의 가해자들이 하는 대표적 변명은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잘못 알려진 것이다. 나는 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태생 부터 권력의 구성원들이 <친일 매국노>들로 꾸려졌기 때문이다. 해방과 동시에 마땅히 민중의 이름으로 처형 당했어야 할 친일파. 매국노, 친일 앞잡이, 친일 부역자들이었는데, 그 미치광이들에게 오히려 권력을 주었으니 그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이었겠는가?
이승만 독재 정권 12년, 박정희 독재 정권18년, 전두환 독재 정권 8년, 무려 40년동안 의 독재 시절을 사는 동안 민중은 죽어야 했고, 침묵해야 했고, 외면 당해야 했다. 그런데 그 시대 기득권자들이 아직도 부와 명예를 누리며 떳떳하게 살고 있다. 그들이 우리의 선배이고 이웃이다. 그들은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숨어 살지 않는다. 그들은 참회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들은 국가와 법과 민중을 두려워 하지 않키 때문이다. 가해 세력과 그들의 동조자와 협력자들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들 중에 측은한 자들이 있다. <타의에 의한 가해자>들이다.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 사건들을 보자. <4.3제주 사건>, <10.19 여수 순천 사건>, <6.6 반민특위 사건> <한국전쟁>, <보도연맹 사건>, <노건리 사건>, < 빨치산 토벌 사건>, <4.19 혁명>, <6.3 항쟁>, <한일협정>, <월남전쟁 파병>, <유신개헌>, <3.1 민주구국 선언 –명동사건>, <10월 부마 민주 항쟁>, <12.12 군사 쿠테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실미도 사건>, <삼청 교육대 사건>,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이한열 사망 사건>, <6.10 민주 항쟁> 등등… 매 시위 사건 사건마다 민중들은 총탄에 죽고, 칼에 찔려 죽고, 몽둥이로 맞아 죽고, 고문 당해 죽고, 성폭행으로 미쳐 죽었다. 질곡된 역사 속에 수많은 민중이 <피해자>라는 이름으로 죽어 갔다면, 반드시 그들을 죽인 <가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즉 현장에서 직접 가해한 군인과 경찰 그리고 말단 공무원들, 가해 시민들이 있었던 것은 당연지사다. 또한 말단의 가해자들에게 기획하고 지시한 상부의 권력자들도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들 대부분이 아직도 버젓이 우리 이웃이 되어 살고 있고, 그들이 대한민국 모든 분야를 움직이는 핵심 권력자들이다. 대한민국을 <거짓된 사회>로 만드는 이유다. 우리 세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사건 현장에 투입된 <타의에 의한 가해자>들이다. 나 자신도 <광주 항쟁> 때 공군 본부에서 장교로 근무 중이었다. 그때 만약 내가 현장에 투입된 특전사 장교였다면 나는 어떠했을까? 끝없는 자괴감과 허탈감이 몰려온다. 가해자들은 자신의 행동들을 정당화 하기 위해 진실을 외면하고, 정의를 가장하며, 그들끼리 모여 그날의 잘못을 합리화 한다. 피해자를 <2차 가해자>로도 만든다. <역사는 알고 있다>.
대한민국의 기득권 가해 세력들이 남북 통일을 가장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빨갱이> <종북> 이념 프레임으로 70년 이상을 지배하는가? <과거 청산>, <적폐청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람치고 북한 체제를 선호하거나 찬양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북한이 남한보다 잘한 것이 있다. 첫째가 <친일파 숙청>과 <항일 독립 투사 우대> 정책이었다. 지금도 토대 성분이 가장 좋은 혈통이 <항일 독립군> 후손들이다. 북한의 금수저다. 반대로 남한의 항일 독립군 후손들은 가난과 국가의 외면으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국가의 건국 이념이 정당화 되고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법의 집행이 준엄해야 되고, 예외가 없어야 한다. 독일은 아직도 나치 전범들을 세계 어디에 숨어 있더라도 찾아내어 준엄한 형벌을 내린다. 둘째가 <토지 공개념> 정책이다. 북한은 해방 이후 즉시 <친일파 숙청>, <토지 공개념>, < 전인민 무상교육>을 실시했다. 북한은 일본으로 부터 식민통치 보상금과 위안부 합의금을 받지 않았다. 반면에 남한 독재 정부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달러를 모으기 위해 전국 곳곳에 주한 미군 위안소를 만들고 어린 누이들을 성노예로 만들었다. 월남전쟁에 생떼 같은 대한의 젊은이들을 내몰아, 목숨을 담보로 달러를 축적했다. 아무리 잘 살아보기 위해서라지만, 내 가족의 목숨을 담보해서야 되겠는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 그것이 독재다.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정의는 바로 세워져야 한다. 그럴러면 그날 사건 현장의 <타의에 의한 가해자>들이 국민들에게 양심선언을 하고,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빌고 참회하여야 한다. 그 길만이 남은 여생을 인간답게 살다가 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람답게 살아야지 얼마나 산다고..
죽을 권리 (05-11-2018)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생명을 아무리 나의 목숨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죽음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 것인가? 반면에 질병이나 노환이나 여러 사건 사고, 생활고 등으로 인해, 더 이상의 희망이 없어 하루 하루 사는 것이 구차하고 비참하다면 자신의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최종 권리를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참으로 어려운 주제다. 특히나 우리 주변에 병마와 싸우시며 매일 힘들게 사시는 분들이 너무 많기에 더우기 조심스럽다.
얼마전 호주의 104세된 최고령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가 안락사를 하기 위해 스위스 바젤의 지원센타에 신청하였고, 내달초 스위스로 죽으러 간다. 즉 안락사에 대한 세계 사회의 큰 이슈가 되었다. 그는 올해 104세이지만 아프거나 불치병에 걸린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 나이에 이르렀다는 것이 매우 유감이며, 나 같은 노인은 안락사 권리를 포함한 모든 시민적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호주 에디스 코완대학의 명예 연구원인 구달 박사는 102세인 2016년에 대학 당국으로 부터 고령으로 인한 사고의 위험이 있으니 직책에서 물러나 달라는 압력을 받았다. 당시 세계 과학계가 사퇴 압력이 부당하다고 항의하는 대소동이 일자, 퇴임 압력을 철회한 바 있다. 그는 104세까지 산다는 삶 자체에 회의를 느껴서 안락사를 택한 것이다.
어찌보면 인간은 어떻게 사는 것 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더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 현대인의 존엄사, 안락사, 병사, 고독사 .. 2017년 10월에 <존엄사>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인생 수레바퀴가 <생노병사 (生老病死)>의 순서일진데, 누구나 늙으면 병이 들고, 병이 들면 죽는 것이 당연한데도, 죽음 자체가 두럽고 고통스럽기에 어떻게 죽는 것이 최선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존엄사>와 <안락사>의 차이점은 작년 칼럼으로 생략한다.
우리를 더욱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현대인의 <고독사>다. 언제 어떻게 왜 죽었는지 본인만 가슴에 품고 죽어간다. 마지막 임종을 지켜주는 사람도 없이,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 한마디 들어줄 사람도 없이, 살아온 흔적도 남기지 않고 홀연히 떠나야 하는 것이다. 자식들도, 배우자도, 형제자매도 있었건만 홀로 외로이 머너먼 길을 떠난다는 것이 너무 마음 아프다. 세상 떠나야 할 사람이야 오죽 했으면 떠나겠는가? 국가에서 운영하는 <고독사 호스피스> 병동이 있었으면 좋겠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마지막 카운셀링이라도 받아보고, 국가가 삶의 대안을 제시하고 설득해 보아야 한다. 그래도 떠나겠다면 마지막 따뜻한 밥상이라도 받고, 고해성사와 안수기도라도 받고 떠나게 해야 되지 않나?
인간이나 동물이나 자신이 죽어야 할 <때>를 안다고 한다. 죽음이 찾아오면 엄숙히 죽음을 맞이한다. 억지로 본인의 의지와 다르게 목숨을 연장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동물은 죽을 때 자신이 죽어야 할 장소로 가서 죽는다고 한다. 하물며 나뭇잎도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것이 스스로 떨어지는 자살인지, 영양분 공급을 중단한 본체의 타살인지가 궁금하다고 작년 칼럼에 쓴 적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한국 연구진이 낙화와 낙과, 낙엽의 탈리 (분리) 현상을 <리그닌 (Lignin)> 이라는 물질의 역할이라 밝혀냈다. 리그닌은 식물의 본체와 분리하는 경계선 역할을 하여 분리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리그닌은 본체가 아닌 이탈세포에서만 형성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남겨진 잔존세포들은 표피세포로 바뀌는 분화과정을 거치면서 단면을 보호한다느 것이다. 이를 세포학자들은 떠나가는 세포와 남겨진 세포와의 <분업과 협업> 과정이라고 한다. 결국 떠나가는 자는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게 동물적 나의 외침이다.
내가 선망하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죽을 때 두가지 방법 중에서 택한다고 한다. 혼자서 자신만이 선택해 놓은 죽을 장소를 향해 홀로 떠나든지, 아니면 가족들 배웅을 받으며 가족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인데 후자를 가장 선호한다.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어 삶이 있다는 것이다. 동양에서 말하는 <현상계>와 <영혼계>다. 인디언들의 사상에는 카르마(업, 業) 사상이 없다. 현상계에서 지은 죄값 때문에 지옥이 간다거니, 동물로 환생하여 업보를 치룬다는 협박 공갈이 없다. 그 무엇으로 환생되어도 좋다. 왜냐하면 모든 만물의 존재는 평등하다 믿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영혼의 순례가 한결 자유롭다. 그러니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디언들의 <사의 찬미>다.
“오늘은 죽기 좋은 날 / 모든 생명들이 나와 조화를 이루고 / 모든 소리가 내 안에서 합창하고 / 모든 아름다움이 내 눈에 녹아들고 / 모든 잡념이 내게서 멀어졌으니 // 오늘은 죽기 좋은 날 / 나를 둘러싼 저 평화로운 땅 / 마침내 순화을 마친 저 들판 / 웃음이 가득한 나의 집/ 그리고 내 곁에 둘러앉은 자식들 / 그렇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떠나겠는가?
좋은 사람 (05-04-2018)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고파 한다.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만든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덩달아 나도 좋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좋은 사람은 주변의 사람들도 좋은 사람일 것 같다. 좋은 사람과 함께 사는 배우자도 좋은 사람이고, 지인들도 좋은 사람일 것 같다.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관용과 배려심이 깊은 사람, 진실되고 변함이 없는 사람, 비판과 비난보다는 기다림으로 인내하며 나를 지켜줄 사람, 변명이나 위선 없이 솔직하고 겸손한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이 넘치는 사람, 정겹고 다정다감한 사람이 아닐까? 과연 그런 완벽한 <좋은 사람>은 아니더라도,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려고 용(?)은 써봐야 되지 않을까?
나는 <4.27 판문점 남북정상 회담>을 보면서 하루종일 아무런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두 정성의 만남 시작부터 회담과 공동선언, 만찬과 송별 행사 까지 지켜보면서 목이 메일만큼이나 감동적이었다. 참으로 ‘문재인라는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구나, 좋은 대통령이고 좋은 지도자구나’ 라는 생각했다. 그날 회담과 행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모두가 행복해 보였고 감격해 하는 것 같았다. 문재인이라는 좋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완전 무장해제 된 느낌이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러시아, 심지어 일본 까지 일명 주변 4대강국 승냥이(?)들 마져 좋은 사람 마스크를 쓰게 된 것 같다.
<4.27 판문점 선언 – 원제목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중에 가장 강렬한 문구는 물론 “한반도에 더 이상의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천만 계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한다.” 이지만, 나는 무엇보다 1장 1항에 명기한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으며”의 문구다. 한반도의 운명은 한민족이 주인이다. 자신의 운명을 타인의 손에 맡긴다는 것이 가당키나 하는가? 아무리 힘들고 가난하다 하여 나와 내 가족의 운명을 돈많고 힘센 동네 깡패에게 맡겨서야 되겠는가? 내 가족을 내가 지켜야 하는 것은 인간세상 뿐만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서도 기본 철칙이다. 앞으로는 우리의 운명을 타인의 손에 맡겨서는 안된다. 물론 휴전(정전) 이후 65년 동안 남한은 미국의 도움을 참으로 많이 받았다. 미국의 도움이 없었으면 지금과 같이 세계 경제 대국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으로 인해 잃은 것도 많다. 세계인들은 미국에 종속된 그런 한강의 기적을 부러워 하지 않는다.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긍심과 자존감이 없으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판문점 만찬에 모인 사람들은 영낙없이 한 가족이었다. 같이 웃고 마시고 먹고 그렇게 한민족이었다. 10센티 높이도 안되는 보도 블록을 손잡고 한발짝만 넘어오면 남한이고 북한이었다. 그런 간단한 벽을 스스로 세운채 65년동안을 원수로 적으로 살아온 것이다. 2차세계대전의 부산물인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이나 이데오르기가 무엇이간데, 지구 상에서 마지막 이념국가이자 유일한 분단국가로 죽기 살기로 살았는지 깊이 통찰하고 자성해야 한다. 전시작전권도 당연히 찾아와야 한다.
완전 비핵화를 통한 평화협정과 종전 협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남과 북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가족의 문제는 가족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하듯이, 민족의 문제는 민족이 함께 풀어야 한다. 어찌 고난과 난관이 없을까? 오랜동안 이혼하고 원수처럼 살던 부부가 기적처럼 합하여 함께 살려고 한다면,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고 서로 먼저 사과하라고 해서야 재결합이 되겠는가? 65년 동안 헤어져 살면서 생각도 다르고 사상과 철학도 다르고 생활 형편도 다른데 용서와 화해가 말처럼 쉬운 일인가? 용서는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는 눈물로 무조건 끌어안는 것이다.
사막의 성자 ‘샤를르 드 푸코’ 신부는 이렇게 기도했다. “두 사람이 서로 다툰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지 않는게 아님을 나는 배웠다. 두 사람이 한가지 사물을 바라보면서도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를 수 있음을 나는 배웠다.” 남과 북은 한 가족이다. 가족은 사랑이다. 너무 오랜 세월 떨어져 살았음을 직시하고, 서로 다름 (체제)을 인정하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하자. 가족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고, 헤어질래야 헤어질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한민족은 이제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한다. 전쟁없는 세상, 핵이 없는 세상, 체제와 사상이 다름을 인정하는 세상, 서로가 경제 부흥할 수 있는 세상, 평화로운 세상을 반드시 우리 민족의 힘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 부부의 꿈이 생겼다. 부산에서 동해 남부선 타고 설악산, 금강산 들렀다가 흥남 어머니 고향과 함흥 아버지 고향을 찾아뵙고, 시베리아 열차타고 북간도, 만주 벌판 둘러보고, 문재인 대통령 소원처럼 백두산, 개마고원 트랙킹하고, 평양가서 옥류관 냉면 곱배기 먹고, 개성 들러서 서해안 열차 타고 섬진강 지리산 들러, 목포 가서 제주도 까지 다녀 오고 싶다. 죽기 전에 단 한번 만이라도.. 라구요..
위대한 국민, 위대한 지도자 (04-27-2018)
만나면 좋은 사람이 있다. 생면부지이지만 만나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막걸리 한잔 하면서 부담없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편안한 사람이 있다. 격식없이 만나고 헤어짐이 자연스런 사람이 좋다. 생각과 사상이 비슷하고 말이 통하는 선한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이 나는 문재인 대통령 같다. 대한민국 국민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선한 대통령을 만난 것 같다. 국민의 행운이다. 그는 나와 동향이고 성장 배경이 유사한 2년 선배이지만 격의없이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지난주에 미국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50명’ 중에서 세계 정치 지도자로는 1위에 뽑혔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축하할 일이며, 촛불 국민이 이룩한 쾌거이기도 하다. 인간관계는 살다보면 실망할 때도 있고 생각이 다를 때도 있다. 하지만 천성과 인품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 수행을 잘 할 것이라 믿으며, 위대한 지도자로 길이 남기를 소망한다.
오늘로 5일 뒤인, 이 칼럼이 출간될 4월27일은 한국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남북한 지도자의 정상회담과 공동성명이 있을 날이다. 이념과 사상이 전혀 다른 아버지와 아들 뻘이다. 나는 독재자 김정은 위원장이 나이에 비해 굉장히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체제 보장을 위한 대륙간 핵폭탄을 완성한 다음에, 세계 여론을 이용해 인민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한 경제 혁명을 추진하려는 것이다. 어찌 되었던 간에 독재자 김정은과 미치광이 트럼프를 잘 조정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세계 최고의 정치 지도자라고 칭송받아도 과하지 않다. <위대한 국민>만이 <위대한 지도자>를 만든다. 문재인은 <촛불 민중>이 만들어낸 <촛불 대통령>이다. 민중이 위대한 지도자를 만들고 지키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역사를 공부해야 하고, 견제와 감시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물론 남북한이 비핵화 완성, 종전합의, 평화 선언, 경제 협력과 지원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동일 민족이 적대적 관계로 소모할 수는 없다. 한반도 5천년 역사에서 고려 시대로 이어지는 후삼국 시대 이후 1500년 동안 한민족은 분단되어 살지 않았다. 같은 언어와 같은 문화를 가진 동일 민족이요, 형제 자매다. 체제는 다르더라도 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하나다>.
유시민 작가는 그의 저서 <나의 한국 현대사>에서 말하기를 “대한민국 현대사를 만든 힘은 민중의 욕망 (desire) 이었다. 대한민국의 기적을 만든 힘은 국민이 개별적, 집단적으로 분출한 욕망이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의 행동이며,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은 욕망이다. 사람은 새로운 욕망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욕망의 위계>라는 단어를 설명한다. 심리학자 메슬로 (A.H. Maslow)는 인간의 욕망을 다섯 범주로 나누었다. 첫째가 <생리적 욕망>이다. 먹고 마시고 잠자고 성적 욕망을 채우려 한다. 흔히들 동물적 욕망이라고 한다. 둘째가 <안전에 대한 욕망>이다. 두려움, 불안, 혼돈을 싫어하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법과 질서와 사회제도를 만들어 이욕망을 총족하려 한다. 세째가 <소속감과 사랑에 대한 욕망>이다. 가족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가장 전투적이고 강력한 귀속감을 부여하는 공동체는 <국가>다. 네째가 <자기 존중의 욕망>이다. 인간은 남에게 존경받고 자기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할 떄 기쁨과 만족을 얻는다. 그래서 힘, 성취감, 자유, 독립성을 추구한다. 남에게 인정받으려면 과시적인 업적을 내야 한다. 많은 재산, 높은 지위, 헌신, 학식과 같은 것이다. 다섯째가 <자기 실현의 욕망>이다. 자기 본성에 충실하고 자신의 잠재성을 실현함으로써 이룰 수 있는 최고 정점에 달할 수 있는 욕망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하는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고 그 인생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자아 실현 여부는 오직 자기 자신만이 판단할 수 있다. 다섯가지 인간의 욕망에 일정한 순서가 있다면 사람의 행동을 어느정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매슬로는 이것을 <욕망의 위계 (hierarchy)>라고 표현한다.
대한민국의 현대사 70년은 인류 1천년 역사를 압축한 것과 같다. 한국전쟁 이후 <그라운드 제로>에서 시작했다. 먹고 사는 문제, 북한으로 부터의 위협과 사회 혼란으로 부터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국민들은 40년 동안 독재정권으로 부터 굴종하며 살았다. 이승만의 <멸공통일>, 박정희, 전두환의 <경제발전>을 위해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에 굴복하며 살았다. 독재 정권은 <반공, 빨갱이>와 <잘 살아보세>로 민중을 탄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민소득이 3천달러에 근접할 때 자유, 인권, 민주, 정의를 요구한 운동이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남북한이 <욕망의 위계> 순서를 재조정해야 한다. 군사와 경제 산업 혁명을 이룬 위대한 민족이다. 서로 돕고 협력하여 <하나>가 되어야 한다. 위대한 민족이기에 위대한 지도자를 만들어, 위대한 <한반도 조선>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뭘 해서 먹고 사나? (04-20-2018)
답답하다. 요즈음 우리 지역 Buyer들의 공통된 질문이다. 불과 몇년 전에 비하면 팔겠다고 내놓은 좋은 가게들은 흘러 넘친다. 그런데 Buyer가 문제다. 매물을 20개 이상을 보여줘도 사지를 않는다. 의욕이 없다. 의욕상실이다. 아무리 좋은 밥상을 차려 놓으면 무얼 하나? 예나 지금이나 소규모 맘엔팝 비지니스 중에 쉬운게 어디 있나? 쉬우면 리스크도 높다. 그렇다고 미국에서는 한국 사람이 대단한 엘리트 집단도 아니다. 영어도 잘 못해, 나이는 많아, 자본도 별로 많지 않아, 육체적으로 강한 체질도 아니야, 일요일은 꼭 쉬어야 해, 저녁 밤 장사는 하지 못해, 돈 욕심은 많아, 위험한 흑인 동네에서는 장사 못해, 렌트비는 저렴해야 해, 전문 기술은 없어, 기본 생활비는 많이 들어, 이사는 하지 못해, 거기다 비지니스 마인드가 부정적이라면? 어찌 하오리까?
<주급 생활>
과거에도 향후에도 자본주의 시장에서 봉급 생활자는 결코 돈을 모을 수 없는 구조다. 우리 지역의 한국 여자 월급은 $2,500 전후다. 고임금의 네일 가게는 월 $3,000 ~$5,000 이지만, 고노동에 근무 환경이 악조건이다. 한국 남자는 월 $2,000 ~3,000 이다. 고임금 직종이 Breakfast 주방장인데 $3,500 ~$5,000 정도이다. 부부가 받는 평균 월급이 $4,000 ~6,000 이라고 보면 무난하다. 그런데 우리 지역 서민들의 기본 생활비가 $4,000 ~$5,000이다. 렌트비, 집 유틸리티 비용이 $1,500~ $2,000, 차량 유지비와 보험, $500~$800, 차량모게지는 별도, 식료품비 월 $500, 생활 보조비 $500, 합하면 기초 생활비가 최소 월 $3,000이상이다. 그밖에 자녀 양육비, 종교 활동비, 의료비, 등등이 추가되고, 큰 일이 생길 때마다 목돈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과연 주급 생활자가 일년에 얼마를 모을 수 있을까? 거기다 승진이 없으니 임금 인상이 없고, 퇴직금, 상여금이 없다. 몸이 아프면 유급휴가가 아니라 즉각 해고 조치된다. 몇달 놀다 보면 모은 약간의 돈 마져 모두 소진하게 된다. 반복이다. 중산층이 사라지는 원인이기도 하다.
<배달문화>
이미 <배달 문화>가 시작되었지만, 불과 몇년 이내에 <배달 사업>은 엄청나게 발달 할 것이다. 아마존에서 취급하는 공산품 뿐만 아니라 배달이 되는 모든 상품들은 지역 상권을 위협할 것이다. 아마존과 경쟁되는 지역상권은 대형화, 저렴화, 특수화가 되어야 생존할 수 있다. 세탁업도 이미 배달 경쟁이 시작되었고, 음식 사업도 배달 경쟁이 시작되었다. 맥도날드, WaWa, 지역의 대형 슈퍼마켓 마져 배달 사업에 뛰어들고 있으니 당신은 어떤 <서비스 특화>로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겠는가? 향후 가까운 미래에는 고객이 집이나 직장, 심지어 이동 중에 <인터넷 주문 결재>하고 드론 혹은 지역 배달업체 등으로 배달받는 <당일 배달시대>가 될 것이다. <음식 사업>도 피자 처럼 집집마다 배달이 가능하다. 즉 향후 생존 가능한 소규모 영세 사업은 <서비스 틈새 시장>을 노려야 한다. 대기업이 하기에는 귀찮은, 세세한 서비스 사업들만이 생존할 수 있다. 즉 사람이 육체적으로 직접 해야만 가능한 서비스 사업을 해야 하는데, 우리 한인들은 도무지 힘든건 안할려고 하니 그런게 무엇이 있을까?
<세탁소가 어때서?>
돈과 전문 기술이 부족한 소규모 한인 이민자들은 렌트비가 비싼 대형 매장 규모나 많은 시설이 투자되어야 하는 <장치사업>을 피해야 한다. 또 다른 민족과 경쟁이 심하거나 진입장벽이 낮은 것은 피해야 한다. 세차장, 주유소, 론드리, 주류 사업 등은 돈있는 민족만이 할 수 있다. 즉 돈 많은 자가 이기는 사업은 영세업자들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또한 편의점 사업은 기존의 <WaWa> 사업에 맥주까지 취급하게 될 것이다. 간편하게 먹고 마시는 원스톱 쇼핑이 된다는 것이다. 즉 <Convenience & Deli>는 쾌적하고 넓은 매장, 맥주와 음료, 델리, Hot Food 음식을 모두 취급하는 매장 형태로 바뀐다. 그러면 뷰티업, 디스카운터, 의류, 신발, 식료품 사업 등의 아마존 배달사업을 제외하고, 주류 사업 제외하고, 건물을 포함한 세차장, 주유소, 론드리 등 장치사업을 제외하면 영세 한국인이 할 수 있는 사업은 무엇이 남을까?
다른 민족이 결코 하기 싫어하는 <세탁소>, 바느질 잘 해야하는 <Drop Store>, 빨리빨리 즉석에서 만들어야 하는 <Breakfast>, 하루종일 갈고 닦고 문질러야 하는 <네일 가게>, 흑인들이 좋아하는 <Seafood 튀김가게>, 쾌적한 <Convenience & Deli>, 특화된 <레스토랑> 사업 정도일 것이다. 즉 다른 민족이 하기 싫어 하거나 할 수 없는 업종이어야 하니 극히 한정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세탁소>처럼, 한인들만의 특화 사업은 비교 확인이 가능하고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위험도도 낮다. 우리 지역의 한인 업종 사업체 가격들이 전반적으로 많이 다운되었다. 너무 욕심내지말고 눈높이를 낮추어 자기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주급생활보다는 훨씬 낫다. 3년 단위로 Upgrade 하면 된다. 시작이 반이다. 건투를 빈다.
붉은 동백이 지면 (04-13-2018)
겨우내 세찬 눈보라 속에서도
모질디 모진 목숨 견뎌내어,
봄은 아직 오지도 않았건만
차디찬 남해 바닷바람 맞으며
어린 동백은 운명처럼 붉게 피었다.
너무도 그리워서 너무도 보고파서
님의 곁에 잠시라도 있고파서
그냥 혼자라도 사랑하고파서
어린 동백은 숙명처럼 붉게 피었다.
그런데 이유도 없이 사연도 없이 죽으란다.
모가지 댕그랑 드리운냥
소리소문 없이 그냥 통으로 죽으란다.
신음소리 조차 삼키며
지나는 바람에게 조차 들킬까 숨죽인,
70여년 세월동안 피보다 붉은 울음을 울며
제주의 동백은 그렇게 피고 지었건만,
우리는 그냥 무지한채 몹쓸 남이 되었구나.
부디 용서하시고 영면하시어 좋은 시절 만나 소생하소서.
언제나 우리 민족에게 따뜻한 봄이 찾아오려나..
<70주년 제주 4.3 사건으로 인한 영혼들을 추모하며>
참으로 모진 민족이다. 지금 살고있는 한국민족들은 남한이고 북한이고 간에 모두가 모진 목숨들이다. 남북한 민중 모두가 올바른 역사 교육을 받지 못했다. 아니 편협되고 그릇된 주입식 현대사 교육을 받았다. 일제 강점기 동안의 독립 운동사를 가르치지 않는 민족이다. 정권을 잡아서는 안될 남한의 이승만과 북한의 김일성이 권력의 야욕으로 수많은 민중들을 속이고 죽였다. 집안에 <빨갱이> 한놈만 있어도 가족 모두를 죽이고, 친인척들은 <연좌제>라는 명분으로, 제대로 된 직업조차 못갖게 했다. 70% 이상의 국민 지지를 받고 있는 문재인 정부를 <좌익 빨갱이> 정부라고 데모한다. 그것도 태극기에 미국 성조기에, 이스라엘 국기까지 들고 거리를 행진한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자칭 무슨 무슨 <자유>, <애국>, <민주>, <평화>라는 미국 한인 단체 대표라는 이름으로 백악관 앞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문재인 좌익 빨갱이 정부 타도>라는 데모를 하고 있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편협과 무지가 자랑은 아니다. 나이만 많다고 어른이 아니다. 늙을수록 겸허하고 자숙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후대에 본보기나 울림은 아니더라도 비난의 대상이나 소음은 되지 말아야 한다. <역지사지 (易地思之)> 해야 한다. “내가 만약 그 시대에 그 땅에서 태어났더라면?,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었더라면?” 을 끊임없이 자문하고 감사해야 한다. 공부하기 좋은 세상이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한국 현대사의 많고 많은 사건별 진상들을 공부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죽어갔는지, 국가와 지도자들은 민중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주변 국가들은 무엇을 했는지, 지도자라고 하는 자들의 일생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피해자가 있으면 반드시 가해자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우리 세대는 잘못된 역사관을 배웠기 때문에 지금도 고통과 혼란 속에서 사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모진 세월은 해방후 3년이 결정적 계기가 된다. 해방 후 우리 민족은 <민족국가 수립>과 <사회혁명 완수>라는 두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해야 했었다. 또한 세계는 미소 강대국의 이데오로기 이념 대립이 극치를 내닫던 혼란의 시대였다. 해방후 민족 지도자들도 민족주의자, 공산주이자,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민주주의자 등 정치 성향도 달랐고, 지향점도 달랐다. 정치든, 종교든 이념에 함몰되면 극단적인 맹신자가 된다. 통상 독재자들은 <권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이념>을 최고 가치로 앞세운다.
해방후 3년동안의 과도기에 한국의 대표적 지도자는 김구, 김규식, 김일성, 박헌영, 여운형, 이승만, 송진우를 꼽을 수 있다. 물론 이전의 안창호, 조만식 선생도 계신다.
<여운형>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민족국가>를 주장하다가 암살당하고, <박헌영>과 <김일성>은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인민정부를 주장하지만, 김일성은 한반도 분단을 감수해서라도 혁명 과업을 달성하려던 독재자다. 혁명과업은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 사회인민 민족주의 달성이 목표였다. <김구>는 임시정부 법통으로 통합된 <신민주국가>를 주장하다가 암살당했고, <김규식>은 좌우가 공존하는 <민족통일국가>를 주장했다. 김구와 김규식, 여운형은 민족주의자였다. 반면에 <송진우>는 서구식 <자유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이승만>은 <권력>을 위해서는 남한 단독정부라도 세워야 한다는 권력주의자였다.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경계로 군정 신탁만 하지 않았어도, 미국이 한반도에 대한 조금의 애정과 역사 지식만 있었어도, 권력의 화신 이승만이 남한 단독정부만 수립하지 않았어도, 친일파 압잡이 경찰들과 독립군을 때려잡던 친일 군인들이 남한을 재집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로 인해 발생한 사건들이 제주 4.3사건, 여순 반란 사건, 보도 연맹 사건, 노근리 사건 등등 피의 역사들이다.
모진 민족이다. 우리 한민족은 <자유의 피>를 먹고 자란 민족이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촛불 혁명>이 민족의 대 전환점을 만들었다. 이제 다시는 바보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민족의 자유와 자주, 평화와 정의를 방해하는 자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법의 이름으로 끝까지 심판해야 한다. 명박아, 근혜야, 공짜 숙식에 책 실컷 보고 좋컷다. 잘 쉬거래이..
산 자와 죽은 자 (04-06-2018)
오늘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부활절>이다. 기원후 인류역사에 가장 거룩하고도 불가사의한 사건이다. 현대인의 20%가 믿는다는 기독교의 핵심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 <성육신>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인류 <대속제>인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예수의 죽음, <텅빈 무덤>, 3일만의 예수 <부활>, <승천>, 지구의 <종말>, 예수 <재림>, <산 자와 죽은 자>에 대한 <최후의 심판>, <영생>의 약속, 등 이다. 물론 같은 하나님을 믿고 구약 성경을 믿는 유대교나 이슬람교도들은 이런 <부활>의 기독교 교리를 믿지 않는다.
<부활>은 믿고 안믿고의 성질이 아니다. 믿으면 믿는 것이고, 안믿으면 안믿는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아들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신의 영역이다. 인간이 이렇다 저렇다 할 논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죽으면 부활하는가? 죽어서 천국가면 영생을 얻으니 부활한 것이요, 죽어서 지옥가면 부활하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이고 예수의 형제자매들이지만 예수와 같은 신의 반열은 아니고, 수많은 피조물 중에 하나일뿐,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산 자와 죽은 자>는 누구인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면 죽은 것이요, 죽어도 살아서 내 영혼에 함께 있으면 산 것이다. 여러분 주변에 인간 같지 않는 인간이 있다면 그자는 여러분 마음 속에서 <죽은 자>요, 여러분 기억 속에 가끔씩 나타나 여러분을 위로하고 길을 안내하는 영혼이 있다면 그 자는 죽었어도 부활하여 <살아있는 자> 인 것이다.
동양에는 조상과 직계가족에 대한 <제사> 풍습이 있다. 이미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어 그리워하고 흠모한다. 일명 조상들의 제사를 <차례>라 하고, 부모님의 제사를 <기일제>라 한다.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가 모호하다. 나도 아버지의 기일 제사를 빠짐없이 모신다. 내가 모시니까 내 형제와 내 아내, 내 자식들도 함께 모신다. 적어도 그 날 만큼은 아버지가 <부활>하시어 우리와 함께 하신다. 가끔은 꿈 속에서도 나타나시고, 또 가끔은 대화도 한다. 이승과 저승이 내 마음에 공존하는 것이다. 아마도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내 영혼에 부활하여 나와 함께 할 것이다.
나는 예수도 최후의 심판날 재림하시어 인간을 심판하신다고 믿지 않는다. 이미 그분은 내 마음 속에 부활하시어 나와 함께 하신다고 믿는 것이 나의 부족한 종교관이다. 내가 죽고나서 부활하고 천국가서 영생할지 못할지는 내 소관이 아니다. 내가 죽어 나를 사랑으로 기억하는 <산 자>가 있다면 나는 부활한 것이요, 아무도 나를 사랑으로 기억하지 못한다면 나는 영원히 죽은 것이다.
육신이 죽는다는 것은 사실 대단한 사건이 아니다. 누구나 살면 죽는다. 불교에서는 죽은 시신을 화장을 하지만, 유교에서는 봉분을 꾸미고 묘지를 만든다. 화장을 하든, 묘지에 묻든, 언젠가는 <텅빈 무덤>이다. 예수께서 죽은 육신이 의학적으로 다시 살아나셔서 제자들 앞에 육체적으로 <부활>한 것일까? 육체적 부활을 확신시켜 주기 위해 도마에게 창으로 찔린 자리를 만져보라 하셨을까? 사람은 진실로 간절하면 살아있는 영혼을 만난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제사>나 <성묘>하는 이유도 죽은 자의 공간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서 서로의 영혼을 승화하기 위함이다. 상당수 불교 문화권들은 조상의 위폐를 집안에다가 모셔놓고 아침 저녁으로 제를 드린다. 무엇이 옳고 그르고의 차이가 아니다. <산 자>의 영혼에 <죽은 자>의 사랑을 불러서 <부활>시키고 싶은 욕망인 것이다. 흔히들 영매 (靈媒, Medium)란 죽은 자의 영혼과 살아있는 자을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자 혹은 그런 의식을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살아 있는 자들은 죽은 자를 위해 <49제>와 <천도제>를 정성스럽게 드린다. 그 이유는 <죽은 자>가 구천에서 떠돌면서 <산 자>를 괴롭히지 말고 <극락 왕생>하여 산 자의 기억에서 사라지길 원한다. 그렇다고 잊혀질까?
법정 스님의 잠언집에서 인용한다. “깨어 있는 영혼에는 세월이 스며들지 못한다. 삶을 마치 소유물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소멸을 두려워 한다. 그러나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그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것은 늙음이 아니라 녹스는 삶이다. <살 때는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가 죽어야 한다>”
또 법정 스님의 다른 말씀을 보너스로 인용한다. “인간의 역사는 자신의 몫을 늘리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는 과정이다. 소유욕을 채우기 위해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까지도 소유하려고 한다. 소비지향적인 단일 문화를 이루고 있는 이 시대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소유와 소비로 부터 정신이 깨어 있어야 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은 진리이다.”
나는생각하는 대로 사는 <산 자>인가, 사는 대로 생각하는 <죽은 자>인가? 아니면 생각조차 없이 사는 <좀비>인가?
슬픔의 잔 (03-30-2018)
우리는 한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슬픔의 잔>을 마실까? 슬픔은 고통이요, 아픔이다. 슬픔은 고독이요, 쓸쓸함이다. <슬픔의 잔>을 마시기 원하는 사람도 없으려니와, 슬픔을 마신다고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도 잊혀지지도 않는다. 누구에게나 산다는게 어려운 시절이다. 특히나 낯설고 물설은 남의 땅에 와서 사는 이민자들에게는 더욱 힘들고 슬픈 사연들이 많다.
2009년 칼럼에 <슬픔의 나무>를 소개한 적이 있다. 유대교 신비주의인 하시디즘에 나오는 <슬픔의 나무>라는 우화다.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천국의 문 앞에 있는 <슬픔의 나무> 라는 커다란 나무 앞에 가게 된다. 막 그곳에 도착한 영혼은 자신이 살아 오면서 겪은 슬픈 사연들을 종이에 적어 그 나무 가지에 걸어 놓은 뒤, 천사의 손을 잡고 나무 한바퀴를 돌며 그곳에 적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 마지막에 이르러 천사가 그 이야기들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여 다음 생에서 살고 싶은지를 묻게 된다. 덜 슬픈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 어떤 영혼도 결국은 자신이 살았던 삶을 다시 선택하게 된다고 우화는 말한다. 즉 다른 사람들의 슬픈 삶을 알고 나면 그래도 자신이 살았던 삶이 가장 덜 슬프고 덜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슬픈 <슬픔의 잔>을 마신 이는 누구일까?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시다. 지금은 고난주간이고 오늘은 종려주일이다. 이 칼럼이 출간되는 날은 성금요일이다. 그분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 가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다. 그분의 잔이 가장 슬픈 이유는 그분은 그분에게 닥쳐올 슬픈 사연들을 모두 알고 계셨음이 아닐까? 예루살렘 입성 때 ‘호산나, 다윗의 자손’라고 외치던 그 민중들이 며칠 뒤에는 십자가에 못박아라고 외치고 침을 뱉으며 야유할 그 민중들이다. 마지막 만찬이 끝나면 믿었던 가롯 유다가 자신을 유대교 제사장들에게 팔 것도 아셨고,나머지 11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감란산 겟세마네로 기도하러 가셔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아신다. 그 기도가 공생애 마지막 기도가 될 것이라 아셨기에 이마의 땀방울이 핏방울 처럼 떨어지도록 하나님께 간구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잔을 마셔야만 한다는 것도 아셨기에 “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절규한다. 미래의 고통을 미리 안다는 것만큼 더 큰 두려움도 없다. 가롯유다의 배반, 베드로의 부인, 유대교 대제사장들의 시기와 질투, 거짓증거, 빌라도를 이용한 죽임, 십자가를 짊어지심과 채찍, 가시관의 고통, 십자가에 손과 발에 못박힘, 민중들의 야유, 병사의 창에 찔림, 온몸이 찟기고 피를 모두 쏟을 때까지의 상함..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기에, 이 잔이 <죽음의 잔>이라는걸 아셨기에, 인류의 대속을 위해 이 방법 말고 다른 방법으로 하시면 안되겠는지 하는 간절함에 “아버지시여, 만일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하실 것도 아셨기에 더욱더 그 <슬픔의 잔>은 마시기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우리는 그분처럼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통이나 슬픔을 알지 못한다. 우리가 마시는 <슬픔의 잔>은 나의 과거로 인한 현재의 슬픔이요, 현재에 따른 미래의 두려움이다. 하지만 그분처럼 타인을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슬픔의 잔이 아니라, 내 자신과 내 가족을 위한 슬픔이다. 그런 슬픔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겪는 슬픔이다. 다만 타인의 슬픔은 우리의 눈에 잘 보이지 않으니 나만 슬프고 고통스런 삶을 살고 있다고 자학할 뿐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희.노.애.락을 겪는다. 그러나 희.노.애.락의 대부분이 그 자체의 본질보다는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우월감이나 열등의식, 더 나아가 패배의식에 젖게 되며 심지어 자살까지 하게 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삶의 본질은 잃어버리고 남과 비교하는 남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즐겁고 기쁜 일도 남과 비교하여 과장되게 기뻐하고 즐거워 함으로써 또 다른 아픔을 상대에게 주는 것은 아닐까. 슬프고 화가 나는 일도 남과 비교하여 보니까 더 과장되어 슬프고 화가 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 슬픔 속에서 감사함을 알고 그분의 뜻하심 바를 깨닫게 된다면 그 또한 새로운 시작이며, 새로운 만남은 아니겠는가. 하물며 헤아릴 수도 없는 물질적 비교 때문에 본질보다 더 슬프지도 않고 더 화나지도 않은 자신의 삶을 학대하고 비하시켜서 고귀한 자신의 삶을 내동댕이 치는 어리석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 심지어 그분께 드리는 기도 마져도 이런 세상 물욕과 비교하여 더 달라고 조르고,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는 수준의 기도를 그분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슬프면 슬픈대로, 주시면 주시는대로, 감사하며 그렇게 뚜벅뚜벅 각자의 인생길을 걸어갑시다. 힘내세요..
요리하는 남자 (03-23-2018)
요리하는 남자, 요섹남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 쿡방 (요리방송), 먹방 (먹는 음식방송), 스타세프, 유니 세프, 등등.. 요즘 세상은 요리 잘하는 남자가 대세다. 우리집도 나, 큰사위, 작은 사위, 막내 아들, 남자들 모두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나름대로 일가견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집 뿐만 아니라 요즘 2,30대 젊은 남자들은 요리를 잘 하기도 하려니와 자랑스러워한다. 주방기구도 가정용품도 남자들이 선택한다. 어짜피 주로 사용하는 사람이 자기 편한 것으로 구매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격세지감이다. 우리가 자랄 때만해도 남자가 부뚜막 문지방을 넘으면 거시기(?)가 떨어진다고 부엌 출입을 얼씬도 못하게 했다. 결국 음식 문화에 무지할 수 밖에 없었고, 할 수 있는게 짜네, 싱겁네, 좁쌀영감 처럼 잔소리 밖에 할 수 없었다. 요리를 해 본 적이 없으니 음식에 무지하고, 그러니 해 주는 대로 먹을 수 밖에 없다. 일명 <곰국 남자>처럼, 댁의 견공과 다를게 무언가.ㅋㅋ 그러니 비에 젖은 가을 낙엽이지..
이제는 음식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자유로워야 한다.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은 내가 만들어 먹을 수 있어야 한다. 흔히들 삶을, 일하는 목적을, <먹고> 살기 위한 것이라 말한다. 먹는다는 그 지엄함을 왜 타인의 손에 맞긴채 나 자신을 학대하며 소홀히 대하는가. 오늘부터라도 “아내가 먹고 싶은 음식은 내가 만든다.”라는 슬로건으로 내가 먹고 싶은대로 만들어 먹으면서, 남은 생을 함께 즐겁게 사시기 바란다.
나는 요리 전문가도 아니요, 음식 업종에 종사한 적도 없다. 지극히 평범한 아마추어 요리사다. 아니 내 아내만을 위한 전담 요리사라 할 수 있다. 나는 요리를 누구한테 배운 적이 없다. 대학교 1학년 때 하숙을 했는데, 같은방 선배가 자꾸 여자 친구들을 번갈아 데리고 오는 바람에 그게 싫어서, 고향의 부모님 모르게 무작정 자취를 선택했다. 그때부터 내가 요리를 하기 시작한 동기다. 내가 생각하는 요리의 장점은 정확하다는 것이다. 요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일종의 화학 실기시험을 볼 때와 비슷한 긴장도를 요한다. 요리가 <손맛>이라는 것은 고도의 경험과 반복에서만 나온다.
하지만 그 손맛의 원인을 알아야 한다. 모든 요리에는 첫째. 재료의 특성과 신선도, 둘째. 불의 온도와 조리 시간, 세째, 양념과 소스, 네째. 재료를 넣는 순서, 다섯째 담을 그릇과 식감 형태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니 아무리 혼자서 한끼 음식을 대충 만들어 먹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음식 재료와 요리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더러, 나는 아무렇게나 대접받아도 된다는, 자존감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막되어(?) 먹은 행동이다.
요리를 시작할 때에는 첫번쨰가 먼저 전체 요리 과정이 머리 속에 스크랩 되어 있어야 한다. 요리하던 도중에 그 다음 순서가 뭐지? 하면 이미 게임 끝이다. 그래서 공부 잘하는 사람이 요리도 잘 할 것이다. 요리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이어야 한다.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이 아니다. 새로운 요리를 시도할 때에도 나름대로의 명분과 요리 과정이 머리 속에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모르면 쿡방이나 먹방, 유투브에 들어가서 몇번이나 반복해서 찾아보고 머리 속에 외워야 한다. 두번째가 식재료들을 미리 깨끗하게 준비해 두어야 한다. 요리는 조리 시간다툼이다. 특히 신선한 웰빙 요리를 할 때에는 강한 불과 짧은 요리 시간을 요구할 때가 많다. 세번째는 양념과 다시물 등을 준비해야 한다. 네번째는 테이블 세팅을 미리 해둔다. 일차 설거지로 주변을 깨끗이 정리한다. 다섯번째, 자신감을 가지고 암기된 순서대로 요리하면 된다. 간은 양념하고 한번, 마지막에 한번 보면 된다. 가능한 조금 싱겁게 음식을 하고 먹는 식습관을 가지는게 좋다. 요리는 <창작예술>이다. 즉 정해진 법만 있는것이 아니다. 무슨 재료를 어떻게 넣는가에 따라 요리가 달라진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시도해야 한다.
좋은 세상이다. 백종원 등 스타세프들이 한국 남자들을 바꾸어 놓았다. 유투브에 들어가면 세상 요리 무엇이라도 만들 수 있다. 특히 미국은 저렴하고도 신선한 식재료의 천국이다. 냉장고에 기본 식재료 (소,돼지, 닭, 생선, 해산물, 야채)만 있으면 언제라도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요리는 요리하는 내 자신을 즐겁게 한다. 집중할 수 있고 맛있어서 좋다. 또 요리는 <베품>의 철학이다. 가족이나 친지들을 초대해서 대접할 수 있으니 좋다. 또 <함께>의 철학이다. 가족과 함께 요리를 만들면 순간이 더욱 소중하다. 요리는 <느림>의 철학이며, <저녁>이 있는 삶이다. 37년전 내 아내가 나와 결혼을 하기로 결심한 계기도 나의 저녁초대였다고 한다. 그날 나는 아내에게 <닭찜 야채 볶음> 요리를 해 주었는데 그날 저녁을 아내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날밤 그놈의 <닭찜> 요리 떄문에?? ㅎㅎ.
설거지 하는 남자 (03-16-2018)
부엌 창가에 내려 앉아 졸고 있는 때이른 봄볕이 한가롭기만 하다. 싱크대 선반위에 가지런히 자리잡은 봄꽃들이 아이의 솜털처럼 앙증맞다. 나는 지금 설거지를 하고 있다. 저무는 석양노을을 바라보며 천천히 조심스럽게 저녁 그릇들을 씻는다.
나는 자식들과 곱살스런 편이 아니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들의 친구다. 이민초기에 단칸방의 저녁상을 물리고 아내와 아이들은 함께 깔깔거리며 하루동안의 일들을 이야기한다. 그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설거지하는 나의 등뒤를 다독거린다. 나 혼자 그릇들을 만지작 거리면서 창밖으로 미소를 짓는다. 나는 지금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 하기야 요즈음 세상에 대부분의 남자들이 설거지 정도는 기본으로 하니, 설거지를 한다고 생색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물론 아니다. 나는 될 수만 있다면 애처가가 되고 싶지만 설거지 정도로 그 어려운 애처가 반열에 끼일 엄두도 꾸지 않는다. 나는 내가 좋아서, 나를 위해서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는 나만의 종교의식이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설거지 철학이 바뀌었다. 그 전까지는 아내를 위하는 마음에서 즉 배려의 차원에서 설거지를 해 준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생색내기요, 자화자찬일뿐, 설거지 철학의 소중함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 시절 월남 <틱낫한> 큰스님의 <화, Anger> 라는 책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나는 설거지를 나의 과거와 현재의 죄를 씻어내는 참회의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오늘 하루를 천천히 되돌아 본다. 오늘 만난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던 대화, 혹시나 무심결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 언행은 없었는지,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했는지, 반성하고 참회한다. 과거와 오늘을 연결한다. 이날까지 살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죄를 지은 죄인이다. 업보도 과보도 나의 잘못이요 나의 미성숙함이다. 오늘 하루를 마감하고 그리고 내일의 계획을 설계한다. <설거지 의식>은 나만의 <묵언수행>이다.
참회의식을 위해 나는 지금도 식기 세척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물의 온도는 손등이 따뜻한 정도의 물을 사용한다. 뜨겁거나 너무 차가운 물은 의식을 산만케 한다. 식사 그릇도 접시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설거지를 할 때는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가능한 한 천천히 그릇들을 씻는다. 그릇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서 씻는다. 호흡도 천천히 호흡한다. 들숨 셋, 날숨 다섯으로 천천히 들이쉬고 내쉰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끄집어내서 생각해 보고 잘못된 언행이나 마음들을 그릇들과 함께 씻어낸다. 그릇에서 뽀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몇번이고 천천히 씻는다. 특히 중화요리 등 기름기가 많은 요리를 한 날일수록 더욱 좋다. 설거지 꺼리가 많을수록 좋다. 이것이 나의 설거지 의식 강령이다.
설거지를 할 때에는 아내나 자식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잔소리를 하면 설거지 의식의 준엄함이 깨어진다. 가령 각자 먹은 그릇은 설거지 통에 넣어라던가, 음식물 찌거기를 버리고 물에 담구어 두라던가, 식탁이나 바닥 청소를 하라던가, 등등 그 어떠한 부탁이나 명령을 하면 안된다. 설거지 의식과 청소는 온전히 나의 몫이어야 거룩한 예식을 치를수 있는 것이다.
나의 설거지 역사는 유래가 깊다. 대학교 2학년부터 혼자 자취생활을 하면서 설거지를 시작했으니 이제 년수로는 45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세월의 공백기간도 있었고 매일 한것도 아니지만 설거지하는 법도 시대별로 변해갔다. 총각시절에는 주로 몰아치기를 즐겨한 편이다. 세끼를 원샷에, 혹은 삼일을 원샷에, 심할 때는 사용하지 않은 그릇이 남아있을 때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대충, 신속, 무정돈 3대 원칙하에 몰아치기로 해치웠다.
혼자 사는 남자의 가장 고독한 날은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서 요리를 정성껏 만들어 놓고 나서다. 혼자 먹을려고 내가 이러나, 입맛도 없이 소주잔만 기울이다가 쌓여진 설거지 그릇을 바라보면 비참해진다. 먹어야 한다는 엄중함과 치워야 한다는 현실의 냉혹함이다. 그 때 이후로 설거지는 식사종료와 동시에 즉각 해치운다는 것과 요리 그릇은 최소 수량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저녁이 가장 행복한 것은 내곁에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다. 아내가 정성껏 만들어 준 저녁을 맛있게 먹고 약간의 포만감에 포도주를 한잔 하고 교교히 흐르는 달빛을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천천히 설거지하는 그 기분을 누가 알겠는가. 가족들의 웃음소리 들으며 그분과 나만의 교감하는 특권을 누가 빼앗겠는가.
아마존닷컴의 공동 창업자이자 2017년 세계최고 부자인 제프 베조스 (Jeffrey Bezos) 와 나의 공통점은 둘다 저녁 설거지를 기꺼이 즐긴다는 것이고, 다른점은 그는 세계 최고 부자이고, 나는 이름없는 가난한 촌노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나보다 더 행복할거라 부러워 하지도 않거니와, 나는 내 아내와 함께 존재함을 행복해한다. 누가 무어라 하든지 간에 나는 죽는 날까지 설거지 참회의식을 통해 아주 조금씩 조금씩 그분께 나아가길 간구한다.
한국 남자의 성문화 (03-09-2018)
요즘 한국의 모든 분야에서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성폭력 폭로 운동인 < Me Too> 운동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 남자들의 성문화, 성의식에 어떤 근본적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한국 여성의 90%가 가벼운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을거라는 기사도 있다.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 또한 일본 식민지 시대의 일본 성문화가 잘못 전달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성(성품 性)은 인류 문화에서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상징이었다. 인간의 오욕칠정 (五慾七情) 가운데 하나인 성욕(性慾)은 생명의 근원인 동시에 쾌락의 상징이다. 성적 쾌락을 부정시하고 죄악시 할 필요는 없다. 종족 번식만을 위한다는 성적 행위는 그 예술적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감추는 위선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성을 성쾌락을 위한 도구로만, 성상품으로만 인식하고 성매매를 하거나 성폭력까지 한다면 이것은 반인륜적 행위일 뿐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사회적 윤리와 도덕이 쾌락의 범주를 제어히고 통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인의 성문화가 사회 전반에 걸쳐 퇴폐적으로 만연되고, 여성을 성의 도구화하기 시작했다. 이제 나도 한국을 떠난지 오래되어 요즘의 밤문화 실태를 잘 알 수는 없다. 50대부터 70대 세대들은 한국의 <2차 술문화>에 대해 알 것이다. 단란주점, 룸싸롱, 요정, 방석집, 나이트 클럽, 카바레 등등, 한때는 2차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젊은 여성들이 2백만명, 3백만명 이라던 시절이었다. 한마디로 <성접대>문화다. 가난한자, 사회적 약자, 노동자, 말단 직원들이 그 비싼 <성접대>를 하겠는가? 성접대를 받겠는가? 한국의 밤문화는 성접대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을 마시는 부류에는 3종류가 있다. 직원들끼리나, 친구, 선후배들끼리 마실 때, 접대를 받을 때, 접대를 할 때로 나눌 수 있다. 세가지 부류에 모두 속하면 <맨날 술이야~>다. 그런데 <2차 술값>은 한달치 월급으로는 어림도 없다. 필자가 대기업 과장, 지사장, 부장 시절, 중소기업체 사장 시절, 2차 술접대가 아니면 일이 되지 않았다. 특히 공무원, 관공서, 정부 공사 상대로 일할 때에는 정말 그놈의 <뇌물>과 <접대> 때문에 죽을 지경이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압축 성장한 한국 경제 발전으로 인해, 성과위주의 빗나간 <술문화>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술문화가 여자를 성적 노리개로 <술집여자>에서 시작해서 <동료 혹은 부하 여직원>으로 확산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는다.
조선시대까지는 한국인들의 성문화는 그렇게까지 문란하지 않았으며, 여성을 하대하지도 않았다. 불교와 유교 문화로 한국인의 도덕관과 윤리의식은 세계 어느나라와 비교해도 고품격이었고 풍류의 멋이 있었다.
그런데 일제 식민지 시대를 겪으면서 일본의 문란한 성문화가 한국인들의 의식에 강력히 침투한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 80년대 일본을 출장 가보면 일본의 개방된 <성산업>들에 얼굴이 붉어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우리 세대의 청소년 시절에는 음란도서(?)가 일본 무협지였다. 중국 무협지에 비해 성적 묘사가 노골적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건국 신화도 오빠와 여동생의 성관계로 일본열도와 신들이 탄생하는 거로 시작한다.
흔히들 일본인들의 대표적 성문화를 이야기 할 때 <요바이>를 말한다. <요바이>란 같은 지역에 사는 남자들이 한밤중에 여자의 침실에 들어갔다가 날이 밝기전에 돌아오는 풍습을 말한다. 여자라 함은 어린 소녀부터 젊은 여성, 과부, 유부녀 까지 모두가 대상이었다. 당연히 죄가 되지 않으며 부끄러워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남자가 밤에 찾아오지 않음을 창피하게 여긴다면 이것은 한국인의 관념으로는 성개방이 아니라 성문란이다. 누구나 참여하고 많은 일본인들이 행했기 때문에 아무도 비난받지 않았다. 서기 1200년경부터 시작된 <요바이>는 <사무라이 시대>를 대표하며, 14~16세기 <무로마치 시대>, 16세기 <에도 시대>를 거쳐 19세기 메이지 시대에 이르러서야 <요바이 금지령>이 발표되지만, 실제로는 1950년대 까지 축제로 계속 되었다니, 친일파놈들이 이런 문란한 성생활을 배우지 않았을리가 없을 것이다. 일본 일부 지역에서는 손님을 위해 동네 여자나 자기 아내마저 내어 주었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일본의 혼욕 문화, 청소년 원조교제, 기모노 유래, 유사 성행위 산업, 음화, 춘화, 음란방송, 성인방송 등 대부분의 성문화와 성산업이 법률적 제제를 받지 않는다. 일본 여성들의 두가지 성가치관은 미혼일 때에 성교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며, 결혼 후에는 정숙한 가정 주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여성들의 성개방은 여러 면에서 세계 최고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세계 선진국 중에 유일하게 <Me Too> 운동을 하지 않는 나라이기도 하다.
물론 일본의 문화를 폄하하기 위함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러워 하지도 않는다. 한국인에게는 한국인 고유의 정서와 성문화가 있다. 한국인만의 윤리와 도덕이 있다. 이제부터라도 여성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선비정신으로 살아야지, 일제 식민지 근성으로 여자를 성적 도구로 학대하거나 폭행한다면 폐가망신은 물론, 가정과 가문이 풍지박산 난다는 것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일본인으로 국적을 바꾸든가..
왕이라는 남자 (03-02-2018)
Me Too !, With You !, Next You !
전세계에서 한국으로 확산하고 있는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 지지와 성원을 보내며, 인류 가운데 유독 여성이, 약자가, 힘없는 자가, 가난한 자가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고 상처를 입는 일이 없어야겠다. 요즘 한국에서도 법조계 여검사로 부터 시작한 <성폭력 폭로 운동>은 사회 각계 각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연극계의 거장’이라 불리우는 이윤택으로 부터 문학계, 영화계, 음악계, 학계, 법조계, 경제계, 심지어 종교계 까지 해당되지 않는 곳이 없다면 공개된 몇사람만 감옥에 가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 성인 남자들의 성의식과 인본사상에 큰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닌가?
어느 조직이든 계급이 있기 마련이고 상하관계가 있기 마련이다. 스승이 있으면 제자가 있기 마련이고, 상관이 있으면 부하 직원이 있다. 특히 도제지간은 더욱 그렇다. 어느 조직이나 수장이 되면 권력과 힘을 갖게 된다. 나도 그랬고, 많은 사람들도 그런 경험을 한다. 그렇다고 자신을 <왕>이라고, <교주>라고 착각하지는 않는다. <권력>은 조직원들로 부터 위임받은 것이지 자신의 전유물이 결코 될 수 없다. 만인지상의 왕도 권력을 남용하면 폭군이 된다. 그런데 한줌도 안되는 알량한 권력이 자신의 것인양, 자신을 <왕>이라고 착각하는 <잡놈>들이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 문제다. 왕도 아닌 자가 왕노릇을 하고, 왕인양 착각하여 약한자의 약점을 이용해 온갖 만행을 저지른다.
특히 <집단주의 공동체> 성격이 강할수록 <갑질>은 상상을 초월한다. 개인주의나 개인의 주장이 용납되지 않고, 오로지 <상명하복>, <동질의 공동체 의식>과 <강령>을 주술처럼 강요한다. 개인의 의지나 사생활이 무시되기 일쑤고, 선후배의 서열을 중요시한다. 몇학번, 몇년차, 직급, 서열, 기수를 중요시하며 위계질서가 상상 이상으로 엄격한 것이다. 선배가 까라(?)하면 까야 되는 것이다. <군대>조직에서나 통용되는 사례들이 우리 사회 최고 학부인 법조계, 의료계, 학계 부터 예술계에 이르기 까지 모두가 이 모양이니 국민 정서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비단 지금 언론에 <Me Too>로 고발된 <잡놈>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특히 해당 분야에서 평생 일해서 먹고 살고 진급해야 하는 약점을 악용해, 어린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오랜 세월 관습적으로 타성에 젖어 미안함도 창피함도 없다는 것이 더욱 분노케한다.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자가 오히려 공동체의 배신자라고 2차, 3차 다른 수단으로 피해자에게 폭력을 가한다면 이건 영화 <밀양>의 정신병자 수준이다.
왕도 아닌, 왕 같지도 않는, <연희단 거리패>의 <이윤택>을 보면 <잡놈> 중에서도 이런 <잡놈>이 없다. 딸보다 어린 단원들을 번걸아 가며 자신의 숙소로 불러 성폭행을 하고, 선배라는 중견 단원들은 <묵시적 공모자>이거나 <침묵하는 방관자>가 되어 <조직과 공동체>를 보호한다는게 말이 되는가? 이윤택이라는 잡놈이 단원들에게 하는 말이 “현시대는 최악의 시대다. 개인화 되고 파편화 되었으므로 연희단은 세상으로부터 독립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연희단’은 ‘개인을 넘어서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하며, 바로 그곳에 예술, 진지한 인간, 의식, 본질이 있다” 라고 세뇌 시킨 것이다. 세속탈피, 독립, 단합, 위계질서, 소통, 비밀유지, 공동체 확립, 배신자 척결.. 이정도면 이단 교주 수준이다. 하기야 목사가, 신부가, 선교사가, 선교 봉사 단체가 자신의 조직 공동체 뿐만 아니라 가난한 현지의 어린 여성들을 성폭행한 사례들은 일일이 거론할 수조차 없다. 권력과 자본과 믿음을 빙자한 인간의 사악함이요, 위선의 극치다.
한국 현대사에 가장 많은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삼은, 왕도 아니면서 왕이라 착각한 자가 박정희 독재자다. “남자들 세계에서는 남자의 허리띠 아래부분 이야기는 절대 비밀로 하며, 죄로 묻지 않는다.” 우리나라 기득권자들이 즐겨 하는 말이다. 남성 우월주의, 여성 상품성 사고다. 이 개소리는 이토 히로부미가 즐겨 했던 말이다. <아가씨>라는 영화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일제 식민시대를 살면서 쪽발이 왜놈들의 문란한 성문화와 성의식을 그대로 전수 받은 것이다. 동방예의지국, 조용한 아침의 나라, 유교사상과 선비의 나라 대한민국 대통령이 허구헌 날 어린 여대생과 여자 연예인을 잠자리로 끌어드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민중은 침묵했다. 매일 새로운 젊고 예쁜 여자를 찾으러 다니는 채홍사 (採紅使 – 조선 연산군 때 전국 미녀를 뽑아서 상납하기 위해 지방에 파견한 관리)를 두고, 심복 김재규에게 총맞아 죽은 날도 새로운 어린 여자와 술마시다가 즉살 당한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대수롭게 넘어가고 잊어버렸다. 왕같은 대통령이니까, 굶주린 백성들을 구한 위대한 영도자니까, 기쁨조 여자 수백명 정도야.. 그렇게 묵인하고 넘어가니 온 나라가 이모양 이꼴이 된 것이다. 한국의 <성문화>는 왜 이렇게 변질되고 타락되었을까? 너도나도 그러니까..
우리 딸 시집 가는 날 (02-23-2018)
참 고옵다.
사랑하는 우리 둘째 딸.
참 이뿌다.
사랑하는 아빠 딸 꼬맹이.
참 아름답다.
사랑하는 우리 경은이.
하와이 옥빛 하늘 만큼이나
하아얀 우리 딸 웨딩 드레스 만큼이나
우리 딸 이쁜 미소가 아빠 마음에 고옥하구나.
아빠 무등타고 깔깔 거리던 우리 꼬맹이가
이렇게 아름다운 신부가 되어
오늘 시집 간단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날
세상에서 제일 기쁜 날
세상에서 제일 귀하고도 사랑하는
신랑 임지상 군을 만나 시집 간단다.
세상에서 많고도 많은 사람 중에
두사람이 만나 하나 되어 결혼함은
사람의 선택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의 큰 선택과 축복이었음이라.
아버지의 무슨 큰 뜻이 있으셨길래..
우리 아들 지상아, 우리 딸 경은아,
양가 부모님과 형제 자매들은 너희들을
많이 사랑한단다.
많이 축복한단다.
잘 살아야 한다.
행복해야 한다.
반드시 그러리라 믿고 소망한다.
소망은 기도가 되고
기도는 소망이 된다.
살다보면 좋은 날만 있겠니?
바람 불고 눈보라 치더라도
두사람만 두손 꼬옥 잡고 흔들리지 않으면
어떠한 고난의 강도 무사히 건너리라.
부모는 먼저 갈 사람,
자식은 뒤에 올 사람,
평생토록 함께 갈 사람은
오늘 너희 두사람.
두려워 하지 마라, 걱정 하지 마라.
우리 주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동행하시니라.
사랑은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나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것이라.
사랑은 조건도 아니요, 때문도 아니라,
사랑은 무조건이요, 불구함이라.
사랑은 상대의 장점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상대의 상처와 아픔 마저 사랑하는 것이라.
사랑은 나의 무거운 짐을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상대의 무거운 짐을 내가 함께 지는 것이라.
서로 죽도록 사랑해라.
세상 마치고 별이 되는 그날까지
선한 마음으로 사랑하자.
누구에게나 삶이 고해라면
서로에게 상처주지 말고, 아픔주지 말자.
순간의 실수가 평생의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된다면
영혼의 동반자로 사랑했다 할 수 있을까?
삶이 고난의 강을 건너는 것이기에 행복이 있고,
슬픔이 있기에 기쁨이 있고,
부족함이 있기에 자족함이 있으리라.
감사하며 살자.
별을 헤는 마음과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는 혜안을 갖자.
묵상하고 기도하며 성숙한 부부가 되어가자.
가난함을 부끄럽게 여기지도 말고
정의롭지 못한 무리와 이웃하며 살지마라.
이렇게 좋은 날,
애비의 잔소리 마져 노래가 되는구나.
우리 지상이와 경은이,
지상에서 영원까지 잘 살거라, 행복하거라.
아니 잘 살아야 한다. 행복해야 한다.
애비의 마지막 소망이고 기도요, 명령이다.
그리고 꼬맹아, 아빠가 많이 미안하구나..
아버지 감사하나이다.
2018년 2월17일
하와이 마우이 섬 리츠칼턴 호텔 야외 예식장에서
아빠가
우리는 하나다 (02-16-2018)
평창 동계 올림픽 개회식을 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오버랩 된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5천년 유구한 역사의 단일민족이면서도, 미,소, 중,일, 4강대국들의 패권 전쟁과 이데오로기 이념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온 민족이다. 수많은 세월동안 형제간에 서로 죽이고, 65년동안 아직까지 휴전상태로 있는 나라가 남북한 민족이다. 세계는 이미 이데오르기 이념 전쟁의 종말을 고했는데도, 남북한 정치권력들에 의해 무지한 민중의 머리 속에는 아직도 그릇된 사상이념으로 서로를 주적으로 대치한다.
누가 우리 민족의 사상을 이렇게도 타락시켰는가? 한반도기를 들고 남북한 단일팀으로 출전하는 평창 개회식을 가장 못마땅하게 여긴 나라는 미국과 일본이다. 중국도 별로 마뜩치 않아한다. 미국 펜스 부통령은 남의 잔치집에 와서 극히 무례하였고, 주제넘는 일본 수상 아베놈은 망언에 가까운 내정간섭 발언을 하면서 미국의 기생 노릇을 자처한다. <순망치한 (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의 한반도. 한반도는 강대국 그들에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우방일지언정 혈맹은 결코 못된다. 북조선 김씨 독재 정권이 고난의 행군 기간동안 수많은 인민들을 굶겨 죽이면서 까지 ICBM 핵폭탄을 개발한 이유가 무엇일까? 북한 정권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강대국 패권주의 행패를 역사적으로 기억하고, 누구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믿지 못하는 유대인들이 자체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말이다. 차이는 경제력이다.
자강(自强), 자주 (自主), 자생(自生) 자립(自立)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는 아직도 독립국가가 아니고 통일국가도 아니다. 미국이 한국의 사전 허락 없이 한반도에 무력공격을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우리의 비참한 현실을 말해준다. 미국 한인교포 뿐만 아니라 전세계 한민족들은 결단코 <한반도 전쟁 절대 불가>를 외쳐야 한다. 남북한은 유엔과 4대 강대국 입회하에 <상호 전쟁불가침 협정>을 맺어야 한다. 그리고 남한은 전시작전권을 미국으로 부터 가져와야 한다. 핵폭탄을 자기 형제에게 쏠 미친 놈이 어디 있겠는가? 핵폭탄이 아니라 무슨 전쟁이든 한반도에서 일어나면 한민족은 지구 상에서 사라진다. 한민족은 통일을 향해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 발자국씩 미래를 내딛어야 한다.
개회식 쇼를 보면서 너무나 감동적이었고, <우리 한민족은 하나>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한편으로 세계 타민족들이 개막쇼 내용을 얼마나 이해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개막식에 선보인 웅녀. 사방신 (백호, 청룡, 주작, 현무), 하늘과 땅과 인간 (天地人), 전설의 새 ‘인면조(人面鳥)’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민족 건국신화인 단군신화 부터 알아야 한다.
개천절이라 국경일로 정해 놓고는 단군신화나 건국 이념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초등학교에 전시된 단군상을 우상숭배라고 항의하는 기독교 단체들에 못이겨 철수하는 나라다. 그리스 신화나 이스라엘 구약신화는 알아도 <단군신화>에 대해서는 알지도, 가르치지도 않는다.
하늘님 <환인>의 아들 <환웅>은 인간세계를 다스리고 싶어했다. 환웅은 천부인 세개 (방울, 칼, 거울)을 가지고 태백산 신단수에 내려와 나라를 만들고 <환웅천왕>이라 불린다. 환웅은 풍백(바람을 주관하는 신), 우사(비를 주관하는 신), 운사(구름을 주관하는 신)을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을 주관하고, 인간의 360가지 일을 주관하며, 인간세계를 다스리고 교화시켰다. 어느날 곰과 호랑이가 환웅을 찾아와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환웅은 쑥 한자루와 마늘 스무개를 주면서 100일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인간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렇게 끝까지 인내하여 인간으로 태어난 곰이 아름다운 여인 <웅녀>다. 환웅과 웅녀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단군 왕검>이다.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고조선>을 건국했다. 1500년 동안 고조선을 다스리다가, 기자조선이 생기니 아사달로 돌아와 산인이 되었는데 그의 나이가 1908세였다.
단군신화는 한민족 영웅적 서사시인 동시에 건국신화다. 단군신화는 한민족은 천손(천신의 손자) 혈통이라는 민족적 긍지를 반영하고, 광명사상, 숭천사상 (하늘을 숭배함), 토템사상, 산악 숭배사상이다. 홍익인간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은 건국 이념인 동시에 단일민족의 역사성이다. 환웅과 웅녀의 결합은 환웅은 하늘신 즉 태양신을 의미하며, 웅녀는 땅의 신 즉 어둠의 신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늘님 (天神)의 아들과 땅의 신(地神)의 딸의 결합이 한민족이다. 하늘과 땅, 광명과 어둠, 신과 인간의 결합, 즉 만물의 조화로 태어난 민족이 한민족이다. 따라서 구약성경의 이스라엘 유대민족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단군의 대한민족 (大韓民族)이 위대한 것이다.
거기다 고구려 벽화에 그려진 사신(四神), 혹은 사방신(四方神) 군무는 너무 아름다웠다. 청룡(靑龍)은 동쪽(東), 봄(春), 나무(木), 청색(靑), 유년기를 의미하며, 평창 마스코트 백호(白虎)는 서쪽, 가을(秋), 금(金), 백색, 노년을 상징하고, 주작(鳳凰)은 남쪽, 여름(夏), 불(火), 적색, 청년을 의미하고, 현무(거북과 뱀)은 북쪽, 겨울(冬), 물(水), 흑색, 죽음을 의미한다. 사신(四神)이 지켜주는 한반도는 아름다운 강산, 아름다운 민족, 위대한 민족, 대한민족이다. <우리는 하나>다. 서로 싸우면 안된다. 잊어서는 안된다.
어느 할머니의 눈물 (02-09-2018)
얼마전 전화기 너머로 한 여인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전해온다. “사장님, 저 좀 도와주세요.”
이 할머니(70세 전후 ?)를 처음 만난 것은 7년도 지났다. Sears 백화점이 입점해 있는 큰 쇼핑몰에서 드레스 샵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가게를 하기 싫어해서 가게를 2십만불에 팔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나같은 촌놈은 들어가 본적도 없는, 화려하고 럭셔리한 파티 드레스 가게였다. 그러다가 다시 가게를 계속 하기로 하였다고 해서 한두번 안부 전화만 묻곤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가게로 빨리 와 도와 달라고 한다.
사연은 이러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경남 시골마을에서 함께 자랐다. 할아버지는 명문대 출신으로 그 시골에서 수재였다. 할머니는 순박한 시골 처녀였다. 양가 어른의 주선으로 결혼을 하고 아들 딸 놓고 잘 살았다. 물론 할아버지는 손가락 까딱하지 않는, 경상도 남자들의 특유한 갑질(?)이 유독 심한 편이었다. 무슨 사연으로 이민을 왔는지는 모른다. 할머니는 바느질이 선수급이다. 가게 운영도 할머니가 대부분 다 한다. 억척스런 전형적인 이민자요, 경상도 아줌마다. 그런데 할머니는 운전을 하지 못한다. 왜 미국에 살면서 운전을 배우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대부분의 한국 이민자들 처럼 영어도 잘 하지 못한다. 대외적인 일은 할아버지가 다 했다. 할아버지는 그야말로 한량이었다. 잘생긴 외모에 준수한 사교력과 골프 실력을 갖춘 괜찮은 할배였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홀연히 죽었단다. 그날 이후로 운전을 못하는 할머니는 그 가게 뒷편에 숙식 시설을 갖춰놓고 먹고 자면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자식들은 타지 먼곳에서 살고 있는데 혼자인 어머니를 모시지 않는 사연을 나는 잘 모른다. 그런 집이 한두집이 아니니.. 그런데 그 큰 백화점 쇼핑몰이 2017년 년말을 기점으로 문을 닫았으니 입점해 있는 가게들은 모두 철수하라고 통보가 온 것이다. 물론 몇년전부터 리스계약이 연장이 안되고 month to month로 연명될 때 부터 감지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을 것인데, 할머니는 알지 못한 것일게다. 할머니는 졸지에 오갈데가 없는 처지인데다가 먹고살 생활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긴 것이다. 운전을 못하니 교회도 다닐 수가 없다. 아는 사람이 나 밖에 없다고 하면서 도와달라고 하신다. 나도 방법이 없어서 세탁협회에 사연과 사진도 올리고 나의 고객들에게도 사진을 올리면서 이렇게 칼럼에 까지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도와주세요> !!
가게에 전시된 모든 물건들을 2만5천불만 받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돈이 모자라면 나누어 줘도 좋단다. 2천벌이 넘는 파티 드레스, 손으로 직접 만든 수공예 손가방 1천개, 각종 악세사리, 모자, 신형 세탁소 컴퓨터 1대, 바느질 기계 4대, 실내용 네온 간판, 인테리어 장식물, 대형 거울, 장식장 다수, 마네킹 다수, 드랍스토아 서프라이, 소파, 냉장고, 세탁기 등등 많고도 많다. 새로운 빈 공간에 그대로 옮겨서 새가게로 오픈하면 된다. <Dress & Dry Cleaners & Alteration > 이면 어떨까? 물론 할머니는 원하신다면 종업원으로도 일할 수 있고, 공동 투자하여 동업자로도 일할 수 있다.
나는 여자의 눈물에 한없이 약하다. 도움을 청하는 할머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분에게 알리는 재주 밖에 없으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가게 내부 사진은 충분히 보내 드릴 수 있으니 저에게 빠른 시일내 연락 주시기 바란다.
컨테이너에서 혼자 죽어간 어느 무명 시인의 시 <나는 배웅 없이 떠났네>를 소개한다.
“큰 눈 내리던 그 밤에 / 문밖에 고라니 한마리 지나갔고 / 고양이 한마리 지나갔고 / 다리 저는 구면의 개는 / 얼어붙은 문틈에 더운 오줌을 뿌리고 갔다. // 반가운 흔적은 눈에 덮여 사라졌고 / 검침원 조차 찾지 않는 이곳을 / 눈인사나 주고 받던 마을 촌로만이 / 밤마다 걱정하셨나 보다. // 오는 동안 순경은 짐작했을 것이다 / 컨테이너에 실린 그대로 / 죽었던 봄꽃이 어김없이 되살아오곤 하는 / 그런 곳 아닌 곳으로 / 한발 먼저 떠나갔을 줄..
인터넷에 댓글로 달린 시 84편을 모은 시집이 있다. <제페토>라는 시집이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작은 것들의 아픔과 소외된 이들의 고독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모은 시들이다. 시집 서평에 “시인의 글이 우리 마음에 가 닿아 울리고 때로는 가슴 무너지게, 때로는 얼어붙은 감정을 회복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저 말 못하는 짐승처럼 우리가 우리를 위해 울어야 할 시간이다.”
그렇다. 인간은 나약하다. 특히나 나이먹어 늙어가는 이민자는 너나 없이 외롭다. 외로운 사람끼리 기대어 살면 따뜻하련만 기대어 살 사람조차 찾는게 버거워 힘들어한다. 혼자 되고픈 사람이 누구 있을까? 누구 잘잘못이 아니라 어느날 그렇게 혼자가 된다. 혼자가 되어 살다가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고독사>.. 어느날 뉴스 토막뉴스로 흘려 듣기에는 이제는 예사롭지가 않다. 우리 모두 함께 아파야 할 세상이기에..
압축 성장한 사회 (02-02-2018)
요즘 한국은 하루가 멀다하고 화재사고와 안전사고가 빈번히 발생한다. 세월호도 그러하고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되는 <안전>사고와 <부정부패> 사고가 한국에서만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가 무얼까?
세계 근대사는 500년전부터 크게 50년 단위로 성정 발전해 왔다. 하지만 500년전의 조선은 임진왜란 시기 부터 시작된다. 당파싸움과 쇄국정치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당하고, 사대주의로 일본과 중국에 기대어 자생하지 못하고 농락당하다가 조선왕조는 막을 내린다. 일본의 식민국가로 36년을 노예로 살다가 자력으로 독립하지도 못하고, 외세에 의해 지구상에 유일한 정전국가, 분단국가로 현재까지 이어온다.
해방후 태어나서 지금까지 반세기 이상을 훌쩍 살아온 세대가 지금의 60, 70대들이다. 이승만 친일 독재시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 독재 시대, 김영삼의 야합시대, 김대중, 노무현의 민중시대, 이명박, 박근혜의 부정부패 시대를 살아왔다. 이승만은 4.19 혁명으로 하야시켜서 미국으로 귀향 보내고, 강대국의 이념전쟁으로 같은 민족끼리 3년동안 수백만명을 서로 죽이고, 박정희는 부하의 총에 즉살당하고, 전두환, 노태우는 무기징역 재판받고, 김영삼, 김대중은 자식들 때문에 망신당하고, 노무현은 이명박의 덫에 걸려 자살하고, 박근혜는 탄핵당해 감옥에 가 있고, 이명박은 지은 죄가 너무 많아 곧 감옥에 갈 것이다. 기구한 나라의 운명이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한국 민중은 불과 50년동안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고도의 경제성정을 이루어낸, 기적의 국민이기도 하다. 유엔 구호 물품, 미군부대 음식 찌꺼기로 끓인 꿀꿀이죽, 미군 원조 물품인 강냉이 빵과 석고덩어리 같은 분말 우유, 검정 고무신, 오전반과 오후반, 야간반 수업을 듣던 세대, 쥐잡고 파리 잡던 초등학생, 몸 속에는 각종 기생충과 머리에는 기계충을 달고 살던 어린시절, 꽁보리밥에 간장 한종지로 온가족이 식사하던 보리고개 세대 .. 이제 노인이 된 우리 세대는 이런 멀고먼 이야기가 끝도 없고 한도 없다.
식민지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동족 상쟁의 전쟁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불과 50년만에 세계 10위권의 강대국이 되었다면, 그 서구 선진국들 500년을 50년으로 10배 압축, 초고속 성장을 하는 기적을 만들었다면 그 과정이 과연 철저하고 안전하게, 질서있고 공정하게 이루어졌을까? 기대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초고속 <성장>을 하기위해서는 <분배>가 외면당할 수 밖에 없다. <초고속>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권력이 막강해야 하며, 강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50년 세월 중에 40년을 독재 정권 하에서 자포자기하며 살아야 했다. 공장 짓기 바쁘고 아파트 짓기 바빴다. 많이 만들고 빨리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노동자의 희생이 필요했다. 정해진 법대로 할 수가 없다. 대충하고 눈감아 주고 하다보니 요즘 같은 각종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강남의 평범한 50평 아파트 한채가 1백만불이다. 먹고 살기 위한 아파트 한채가 1백만불이란다. 미국에서 1백만불 집이면 상상이 가는가? 그렇게 빨리, 높이 지은 건축물들이 불법 자재와 불법 시설과 불법 시공으로 지어졌다면 언젠가 사고가 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래, <설마? 내가?>가 사람 잡는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한인들이 힘들어하는 것이 <inspection>이다. 무슨 <inspection>이던지 까다롭고 힘들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든다. 법과 규정을 위반하면 벌칙금이 엄청나다.
비단 경제만 초고속 성장을 했을까? <종교>, 특히 <기독교>가 초고속 성장을 했다. 야간 상공에서 내려다본 서울은 온통 빨간 십자가 투성이다. 2천년의 기독교 문화권도 아닌 나라가, 기독교 종주권인 유럽 국가들 조차 관심도 없던 조그만 동방의 나라가, 기독교가 전파된지 불과 1백년도 안되는 빈민 국가가, 불과 50년 동안 세계 최대, 최고속 성장의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이제는 가장 부패하고 세습하고 타락한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면, 세계인의 조롱거리가 아닌가? 다시 한번 우리 신앙의 모습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 종교가 극단적이고 편협화 되면 사랑과 평화는 사라진다.
<지식>과 <사상>도 그러하다. 캠브리지 대학의 버크 교수가 말하는 <지식의 맥도날드화>, 그럼으로써 성과에 성급한 <환금주의>, 학문의 권력화로 말미암은 학문의 <속류화>가 그러하다. 5백년의 서구 근대철학을 한국은 50년동안 급속히 빼끼고 암기하기 바빴다. 이제 한국에서 <돈>이 되지 않는 지식과 학문은 학문이 아니다. 기초과학과 기초학문, 인문학이 사라지는 한국의 지식세계는 향후 또 다른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아나로그에서 디지탈로, 3세대에서 4세대 혁명으로 급변하는 지식사회 일수록 튼튼한 기초 학문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도덕과 양심이 사라지는 한국인은 왜 그런가? 기초가 없는 <따라하기>는 허울일 뿐 개살구다. 한국의 <정치>는 너무 유치하고 품격이 얕다. 이미 종말을 고한 <종북 빨갱이> <체제 이념>을 당권당파를 위해 앞장세우는 막말 정치인들과 <언론>은 국민들이 심판해야 한다.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많은 것을 얻었으면 많은 것을 잃어야 하던가, 많은 것을 나누어야 한다. 이제는 차분히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보아야 할 시간이다.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서>..
기대와 배신 (01-26-2018)
한국이 다시 이명박의 부정부패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박근혜와 이명박의 각종 부정부패 사건에 대한 청산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데, 하나 둘씩 밝혀질수록 국민들의 분노는 어찌할꺼나? 내가 겪어본 대한민국의 부정부패는 거대한 먹이사슬과 같다.
자본주의 권력과 돈과 부자는 이렇게 연결된다. 일단 공부를 잘해서 일류 대학교를 졸업해야 한다. 학벌은 자본주의 사회의 영원한 꼬리표다. 그리고는 정치, 경제, 행정, 법조, 교육, 예술, 종교 등, 각 분야의 엘리트 그룹에 들어가야 한다. 각 분야의 엘리트 집단들은 그들끼리 뭉친다. 그들 속에서 선후배가 정해지고 지도자가 정해진다. 출세와 부귀가 보장된다. 그룹은 그룹과 연계한다. 지도자와 엘리트 그룹은 그 자체가 권력이다. 권력이 있는 곳에 부자가 찾아온다. 자본과 권력이 결합하면 두개가 하나가 되어 거대한 지배세력이 된다. 돈은 점점 더 크게 불어난다. 자본의 욕망은 불법과 탈법으로 더 큰 돈을 만들고 싶어한다. 비리와 부정이 생긴다. 양심과 도덕이 공존할 수 없다. 내 양심과 도덕을 지키려면 그 집단에서 탈퇴하고 나와야 한다.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그들은 탈퇴자를 조직의 배신자라고 낙인한다. 지배세력은 배신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끝까지 그 분야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저해한다. 결국 가난하고 힘없는 외톨이가 되고, 외톨이 끼리 모여 저항세력이 된다. 힘들고 외로운 싸움이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고 가족까지 힘들다. 저항은 체념과 포기가 된다. 혼자서 자수성가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부패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혼자는 큰 권력을 가질 수 없으며, 큰 부자가 될 수 없다. 기회와 경쟁이 공정해야 하고, 법이 엄격하고 공평해야만 이상적 자본주의가 되는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준 여러가지 은혜 가운데 <기대심리>가 있다. 기대는 상상이다. <기대>를 했기에 <배신>을 겪게 되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으면 배신도 없다. 인간의 뇌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신이 만들었다. 긍정적 기대심리가 현실을 왜곡하거나 신중과 사려의 교훈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요즘 광풍으로 소용돌이 치는 <비트코인>도 그러하고, 2007년대 금융대란과 주택 가격폭락 사건도 마찬가지다. 낙관적 기대심리는 소비지출을 부추기고, 투자 심리를 장려하고, 창업 열풍을 일으킨다. 과도한 사회적 기대는 가치를 변질시킨다.
박근혜와 이명박 비리 사건도 마찬가지다. 현실을 전혀 모르는, 가상세계 혹은 환상 속에서 산 박근혜 에 대해서는 이렇게 민중은 기대했으리라. 아버지 어머니를 모두 적의 흉탄에 잃어버리고, 오빠라고 믿었던 전두환에게 배신당하고,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짐한 아버지 박정희의 가신들은 모두 전두환의 충견이 되었다. 권력의 무상함과 정권 야욕의 허망함을 깨달은 그녀가 무슨 욕심이 있을까? 결혼도 안했고, 자식도 없으니, 부정축재 할 이유도 없고 물려줄 재산도 필요 없을 것이다. 또 대통령 영부인으로 활동하면서 아버지로 부터 정치 수업을 잘 받았을 것이다. <국민만 보고 국민만을 위해 일하겠다>는 박근혜를 민중은 측은지심으로 믿었다. 그러나 민중은 그녀가 숨은 세월 동안 어떻게 살았으며, 그녀의 철학과 사상을 검증하지 않았다. 민중은 가상 세계의 인물을 국가 지도자로 착각하고 기대한 것이다. 그 결과는 ‘이것도 나라냐?’ 라고 할 만큼 민중은 처참하다. <촛불 혁명>이 나라를 구한 것이다.
반면에 이명박은 누구인가? 철저한 돈의 화신이다. 아버지는 일본에 끌려가 노동을 하면서 오사카에서 생활하다 해방후 경북 영일군에서 목장 관리인으로 일한다.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야간 상고인 포항의 동지상고를 졸업한 후 시장 사람들의 도움으로 고려대 경영학과에 입학한다. 한일협정 반대시위로 형을 선고받는다. 1965년 현대건설 경리과 입사, 30세 이사, 37세 사장, 48세 회장까지 출세하는 현대판 셀러러맨의 신화를 창출한다. 1992년 정주영 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하지만, 김영삼의 민자당으로 입문하면서 정회장을 배신한다. 1996년 15대 종로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지만 선거 사범으로 형을 선고받고 사퇴한다. 2000년 광복절 특사로 사면된 후, 2002년 서울특별시 시장 선거에서 당선된다. 이때에도 많은 비리 사건의 의혹들이 있었다. <불도저 시장>, <청계천 복원사업>, <중앙버스 전용차로>, <교통카드>, 대표적인 그의 치적이다. 민중은 기대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야간 상고를 나와 입신출세한 그가 한국의 대통령이 되면 국민들을 <부자되세요> 약속을 지킬줄 알았다. 제17대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에도 BBK 주가조작사건 등 각종비리가 쏟아져 나왔지만 민중은 그의 비리를 외면했다. 각자가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에 그를 선택한 것이다. 철저하게 여론을 조작하고, 민중의 눈과 귀를 막은 다음, 그가 저질은 부정부패는 어디까지인지 태산과 같아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민중은 분노한다. 국가 지도자 한명이 모든 부정부폐를 저지를 수 없다. 각 분야의 엘리트그룹 <부역자>들이 문제다. 그들이 기득권 세력이고 적폐 세력이다. 지금은 어둠에 숨어있지만, 다시 제 세상을 만나면 국민의 피를 빨아먹을 협혈귀다. 그래서 민중이 깨어 있어야 하고, 민중이 똑똑해 져야 하는 것이다. 적폐가 뿌리째 청산되어야 한다. 다시는 내 조국에 부끄러운 지도자가 선출되어서는 안된다.
예루살렘의 역사 (01-19-2018)
세계 최강 국가, 세계 최고 지도자인 미국 미통령 트럼프가 2017년 12월 6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공식 서명했다. 예루살렘은 종교, 정치, 군사, 문화의 아킬레스이자 세계 화약고다. 이런 곳에 불씨를 던져 세계를 전쟁과 테러의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것인가? 세계의 양심은 규탄한다. <이스라엘의 하수인>, <유대인의 개>라고 비난을 받는 트럼프는 유대인 사위를 앞장 세워 세계 혼란의 대가로 무슨 실익을 챙긴 것일까? 그의 미치광이 결정은 미국에 도움이 될까? 이미 트럼프는 세계 지도자도 아니고, 세계 평화의 중재자도 아니다. 그의 천박한 야욕과 무지는 자신의 백인 지지 세력만을 위한 폭군이자 광대일 뿐이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만을 앞세운 미국은 점점 세계인들에게 소외되고 조롱거리가 된다. 트럼프 같은 인간을 대통령으로 뽑은 미국인들의 지성에 한계를 드러낸 인과응보이다.
2016년 3월 <일신교 3형제>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세가지 종교가 전 인류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가 세계 권력의 중심이 되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이다. 불교와 유교는 신을 숭배하는 종교가 아니고 인간 스스로가 진리를 깨우치는 종교이니 신의 논쟁에서 제외된다. 전세계 인구 73억명 중에 기독교인은 17억명이며, 그중 카톨릭이 10억명, 개신교가 7억명이다. 서유럽과 미국 기독교인들은 근대 500년을 거치면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또한 1천6백만명의 극소수에 불과한 유대교인들은 전세계 금융, 식량, 정보 등 제반 분야를 장악하고 있다. 반면에 14억명의 이슬람교인들은 아시아에만 6억, 북아프리카 인구의 60%, 중동 아시아 순이다. 일부 중동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후진국이고 가난한 저항 세력이다. 세계사의 수많은 전쟁이 일신교 3형제 집안 싸움인데, 기독교, 이슬람교는 모두 유대교에서 파생된 종교다. 같은 하나님을 믿고, 구약의 모세5경을 믿으며, 구약의 선지자들을 믿고 따른다. 같은 믿음의 형제임에 불구하고, 성육신 예수와 예수의 부활과 다시 올 구세주에 대한 해석 차이로 서로가 적이 되어 죽도록 싸우니 가관은 가관이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 일신교 3형제에게 예루살렘은 모두의 거룩한 성지이니 결단코 양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미국은 극단적 기독교 국가가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세계인은 신의 성지인 예루살렘의 역사를 정확히 알아야 지구 종말을 막을 수 있다.
– 예루살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며, 같은 유일신을 믿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3대 종교의 공동성지다. 예루살렘 어원은 평화 (샬롬)의 도시(이르)다.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기독교인 구역, 무슬림구역, 유대인 구역, 아르메니안 구역으로 4분할 되어 있다. 기독교 구역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뒤 시신이 묻혔던 장소로 기독교 성지가 된 <거룩한 무덤 성당>과 골고다 언덕이 있기 때문이며, 구시가 북서쪽 사분면에 속한다. 무슬림 구역은 구시가 북동쪽에 위치하며, 예루살렘 인구의 3분의 1이 아랍인이다. 이슬람 3대 성지인 예루살렘은 대표적 상징이 <바위의 돔- 황금사원>과 무함마드가 승천한 <알아크사 모스크 -은색사원>이 있다. 유대인 구역은 구시가 남동쪽이며, 성지로 <통곡의 벽>이 있다. 아르메니아 지역은 구시가 남서쪽이며, 오스만제국 때 정교회 대주교좌가 위치하며, 야고보 대성당, 다윗탑 등이 있다.
– 이스라엘 인구는 팔레스타인 포함 1300만명 (2016년 기준), 예루살렘은 86만명, 텔아비브가 400만명이 넘는다. 예루살렘은 로마시대에는 그리스인과 유대인, 중세에는 무슬림과 기독교인, 현대에는 아랍인과 이스라엘인들이 싸운 수많은 전쟁 역사를 가지고 있다. 2번이나 도시가 완전 파괴되고 23번이나 공성전을 겪어야 했다.
<예루살렘 역사>를 년도별로만 간단하게 나열해 보자.
– BC 1000년경 : 다윗왕이 유대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을 통일함으로써, 가나안 족속중 여부스 족속에게서 빼앗음. 일명 <다윗성>이라고도 했음.
-BC 957년 : 7년에 걸쳐 <솔로몬의 제1성전>을 예루살렘 <성전산>(Temple Mountain –하나님의 집이 있는 산)에 건설, ‘예루살렘 성전’ ‘거룩한 집’으로 불리움. 이집트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출애굽을 이룬 모세가 40년 광야 생활 이후 하나님으로 받은 십계명 석판을 보관했던 목상자 <언약궤>를 보관했던 곳으로, 유대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김,
– BC 586년 : 바벨론의 침공으로 <제1성전> 파괴.
– BC 535년 : <예루살렘 제2 성전> 완공 (BC 515 ~AC 70). 유대지역은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의 식민 지배 하에 있었음. 초대 군주 키루스 대왕은 식민지역의 종교를 허용하고, 그 식민 민족들 중에서 인재를 발탁 등용하는 탁월한 정책을 펼침. 이에 따라 유대성전 건축 허가 및 지원까지 하였음.
– BC 20년 : 로마가 유대지역을 점령 지배함. 이 지역의 헤롯왕을 임명 위임하자, 성전을 보수하여 <헤롯 성전>이라 불리움. 로마에게 유다왕국이 멸망한 뒤, 예루살렘은 유대인들로 인해 상업이 매우 발달함.
– AC 66년~ 73년 : <제1차 유대전쟁 : 일명 유대 독립 전쟁, 위대한 반란> : 당시 유대는 로마제국의 속주로서 과도한 세금(속주세)을 상납하여야 했음. <원인> : 네로황제 재위 (54~68년), 52년~66년까지 4대에 걸친 유대 속주들의 세금 착취 등 악정으로 유대인 불만이 최고조에 달함. 66년 6월 유대 속주가 체납된 속주세 대신 예루살렘 성전의 금화를 몰수, 유일신을 믿는 일신교 유대인들과 로마 황제 신격화 동화정책으로 마찰 등 강경 진압으로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그리스계 로마세력을 유대에서 몰아냄.
– AC 70년 : 티투스 로마군들의 강경 진압으로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고 약탈당하고 불에 탐(8월10일). 유대인의 예루살렘 입성조차 금지함. 당시 성안에는 270만명이 있었는데, 포로로 잡힌 수는 9만7천명, 사망한 유대인은 110만명 이었다고 함. 제2성전은 서쪽 벽과 일부 돌더미만 남게 되었으며, 유대인들은 이곳에서 통곡하며 기도한다고 해서 <통곡의 벽>이라 불림. 유대인들은 언젠가 메시아가 오면 제 3성전이 세워질 것으로 믿고 있음.
– AC 73년 : <마사다 항전> : 유대인의 최후 항전. 마지막 생존자들은 가족들까지 함께 자살함으로써 유대왕국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남은 유대인들은 노예로 팔려 나감. 유대인의 <디아스포르 : 세계 각국으로 흩어짐>가 시작됨.
– AC 115년 ~117년 : 키토스 전쟁 (제2차 유대전쟁), 132년~135년 바르 코크바의 반란 : 유대인 거점 요세 50개 함락, 985개 마을 폐허, 사망자 58만명, 모든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서 추방, 추후 유대인 일체 입국 금지. 유대인 학살과 탄압은 이때부터 2차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유럽 기독교 국가 전체와 미국에서 까지 계속된다. (‘유대인의 역사’ 칼럼에서 별도로 거론할 것임.)
– AC 313년 : 콘스탄티누스 1세 밀란노 칙령, 기독교를 로마제국 합법 종교로 공인, 4세기~ 7세기 기독교 확장 시기.
– AC 638년~ 예루살렘의 이슬람 세력 지배 : AC 70년 부터 AC 614년 사산조 페르시아에 의해 예루살렘 함락될 때까지 예루살렘은 비잔틴 동로마 제국이 지배함, 629년 비잔틴 동로마제국이 예루살렘 수복, 638년 이슬람 세력이 예루살렘 정복.
– AC 691년 : 이슬람 제국 우마이야 왕조 칼리프 때 성전산 제2성전이 자리잡았던 위치에 <바위의 돔 –일명 황금사원> 이슬람 성전을 지음. 또한 이슬람은 AC 705년에 무함마드가 승천했다는 그 자리에 <알아크사 모스크 -은색사원>를 건설함. 이 두개의 사원을 포함한 성전산 전체는 성지 메카, 메디아 와 함께 이슬람 3대 성지다.
– 이슬람의 예루살렘 : 성전산의 알아크사 모스크는 이슬람 창시자이자 예언자인 무함마드 (570년~632년)가 신비한 영적 체험기에 등장하는 승천장소이기 때문이다. 승천이라 함은 사후 하늘나라로 간다는 것이 아니라 생전에 무함마드가 메카의 성스러운 모스크에서 천마를 타고 예루살렘 성전산으로 이동한 뒤, 구약성서에 나오는 7명의 예언자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7명의 예언자는 인류의 조상 아담, 예수를 세례한 세례 요한, 이집트 재상 요셉, 노아의 조상인 이슬람 예언자 이드리스, 모세의 형이자 최초의 대제사장 아론, 십계명을 받은 모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다. 성전산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관할하는 동예루살렘에 속한다.
– <십자군 전쟁과 종교 재판> : 추후 별도 칼럼에서 기술할 것임.
– 1916년 5월, 제1차세계대전 중,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의 동의 아래 오스만-튀르크를 해체하고 중동지역을 분할 차지하는 <사이크스-피크 비밀 협정>을 체결함. <영국>은 남시리아 지역의 시스 요르단, 트란스 요르단, 이라크 남부 지중해 해안 항구 지배권을, 여기서 남시리아를 <팔레스타인 지역>이라고 불렀다.
-1917년 11월 <밸푸어 선언> : 영국의 처칠은 1차세계대전 중 요르단강을 경계로 동쪽은 트란스 요르단으로 정하고, 이슬람 성지 메카의 유력 가문 하심가의 압둘라를 이슬람 군주로 내세워, 영국군에게 협력, 1946년 요르단 왕국으로 독립, 4대에 걸쳐 현재까지 이어져 옴. 반면에 요르단강 서쪽은 시스 요르단이라 칭하고, 현재 이스라엘 영토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해당한다. 영국은 1917년 11월 유대인 부호 (현재까지 세계 금융 제국의 대부)인 로스 차일드에게 전쟁에 협조하면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를 건설케 하겠다는 편지를 보냄. 이것이 <밸푸어 선언>이다.
– 1947년 유엔 181호 결의안 :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과 유대인 구역으로 분리해서 각각 독립시키고,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은 유엔 관할 공동구역으로 한다는 결의안임.
–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 독립선언과 1차 중동전쟁 (~1949년 3월) : 이 지역에 유대국가 설립을 반대하는 아랍권 (팔레스타인 주민,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이라크, 사우디 아라비아, 파키스탄, 수단, 예멘)과 이스라엘의 전쟁. 이스라엘은 <독립전쟁>, 팔레스타인은 <재앙의 시작>으로 부름. 이스라엘은 독립하고, 아랍권과는 정전협정을 맺지만, 팔레스타인은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함. 서안지구는 요르단, 가자지구는 이집트가 통치하게 됨.
– 1967년 <6일전쟁>으로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 서안지구, 가자지구를 빼앗음.
– 1967년 이스라엘 국회는 ‘분리될 수 없는 영원한 수도’로 규정한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에 관한 기본법’을 통과시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령인 <서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할지인 <동예루살렘>으로 분할되어 왔음.
-1980년 유엔 안보리 결의안 478호 통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라고 규정한 이스라엘 주장을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 유엔 회원국 외교관들에게 예루살렘에서 철수를 촉구함. 이스라엘 수도는 텔아비브로 결정함.
-1993년 이스라엘과 협상으로 야세르 아라파트가 주도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세움. 헌법상 수도는 예루살렘으로 정함. 가자지구는 강경파 하마스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음.
– 1995년 미국은 ‘예루살렘 대사관법’을 제정, 미국 주 이스라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야 한다고 제정하였지만, 미국 역대 대통령들은 미국익, 외교관계,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균형 외교, 분쟁예방을 위해 6개월마다 반복적으로 보류 문서에 서명, 연기해 왔음.
– 국제여론 :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선포하려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주권국가로 독립시키고 안전을 보장한 다음에 팔레스타인의 수도로도 함께 인정해야 한다는 국제 여론임. 이런 역사적 배경과 갈등, 3대 종교의 공동의 성지인 예루살렘의 중요도를 무시한채, 일방적으로 결정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은 향후 국제사회의 어떠한 정책에서도 객관성, 합리성, 진정성, 균형성에 의심을 받을 것이다. 그럴수록 트럼프 행정부는 세계를 행해 군사적 무력화, 강제화, 공포화, 이분법적 종교 이단화, 이슬람 문화권 배척, 백인 우월주의로 소탐대실하여 세계 각국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배척당함으로써, 미국 국력은 점점 쇠락할 것이다. 예루살렘을 트럼프가 빼앗아 이스라엘에게 주었으니 이슬람교들의 앞날이 어떻게 되겠는가? 전쟁과 테러의 기폭제 역할일 뿐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고,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의 이스라엘, 그래서 2차세계대전 까지 유대인을 가장 많이 죽인 유럽 기독교 국가들, 1차, 2차 세계대전 전쟁비용의 대가로 팔레스타인을 내쫓고 이스라엘 독립을 인정한 서방 기독교 국가, 가장 많은 아랍인들을 죽인 유대교 이스라엘과 그의 동맹국 미국, 이에 끝까지 항거하는 이슬람 국가와 극우 이슬람 테러 집단, 서로가 죽도록 싸우는 일신교 3형제의 끝나지 않는 전쟁.. 이것이 예루살렘 역사이다. 누구를 위한 종교인가?
도전하는 한인경제 (01-12-2018)
년초가 되면 해마다 우리 지역의 한인 경제를 예상하고 분석하여 칼럼을 쓴다. 2017년에도 1월16일부터 2월27일까지 7회에 걸쳐 칼럼을 썼다. 지역 한인 경제 환경분석, 사업체 분석, 업종별 분석으로 세탁소, Food Business, Stock Business, Nail, Drop Store, Beer 관련 업종, Buyer & Seller 분석 등으로 나누어 분석했다. <www.willbusinessbroker.com >에 들어가셔서 <윌리칼럼 -2017년>에서 보실 수 있다.
2017년도와 비교해서 2018년라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아서 올해는 별도 분석은 하지 않겠다. 어쩌면 미국 경제는 조금 나아질 것 같은데, 우리 지역의 한인 경제는 더 어려울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지역 한인 사회는 전투력을 상실한듯 사업의욕이 최저 바닥이기 때문이다. 싸울 의지가 없는 전투는 백전백패다. 사업 여건이나 환경은 해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 악화되고 힘들어진다. 그러니 작년과 그 이전 해와 비교할 때 동일한 매상이라고 하더라도 순수익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특히 한인 종업원들의 <인건비 상승>이다. Breakfast 한인 주방장 월급이 월 $5,000 전후다. 몇년전 까지만 해도 월 $3,000 이었는데 말이다. Nail Shop 한국 여자 고급기술자 월급 역시 $5,000 전후다. 통상 타업종 한인 여성 월급이 $2,500이고, 타민족 흑인, 스페니쉬, 동남아시안들 월급이 $2,000 전후인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이다. 그런데도 점점 한인 종업원 구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한인들 업종이 한정되어 있고 경쟁은 치열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트럼프의 이민 억제 정책으로 가족이민, 취업이민, 소액 투자이민이 점점 어려워지니 한인 이민자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최저 인건비는 상승되고 물가와 렌트비는 인상되니 월순수익성은 점점 나빠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이런 사업환경은 미국 자영업자 ,특히 Minority에게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매출 단가를 올려야 하고, 단가를 올리기 위해서는 상품 품질과 서비스 개선, 가게 환경 개선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10년전이나 지금이나 고객을 위한 서비스는 제자리 걸음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매상마져 떨어지니 장사하는 한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장사해서 남는게 없다고 하소연이다. 장사 못해 먹겠다고 한다. 마이너리티의 막연한 불평불만이다. 과거의 미국 호경기 때를 그리워하면 안된다. 미국의 그런 호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해를 거듭할수록 미국 이민 생활이 어려워질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미국의 맘엔팝 중소형 자영업은 민족마다 주력업종이 다르다. 그런데 한인 주력업종들의 범위가 점점 줄어든다는게 심각한 문제다. 이미 Beauty Supply 등 <Stock> 비지니스와 <세탁소> 매매가 어려웠다. 올해는 <맥주> 관련 비지니스 매매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그럼 한인들 업종은 왜 줄어들까? 흔히들 한인들이 장사해서 먹고 살만한게 없는 이유가 뭘까?
흔히들 자사분석 (自社分析)이라고 한다. 세계경제 3위인 일본인들이 미국이민을 오지 않듯이, 이제는 세계 10위, 3만불 국민소득인 한국인들이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 미국이민을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재미 한국인의 대다수인 저소득층 마이너리티가 잘사는 본토 한국인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미국의 마이너리티 이민자들은 죽기 살기로 일해야 한다. 그래야 먹고 살 수 있는 미국 이민 구조다. 마이너리티 (Minority : 소수자 집단)는 문화적, 인종적, 민족적, 육체적, 종교적 차별로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사는 집단을 말한다. 미국의 마이너리티는 누구인가? 언어소통이 잘 안되고, 신분이 불확실하며, 트럼프가 요구하는 첨단 기술이나 교육을 받지 못한, 육체 노동을 해야 먹고 사는, 큰 자본을 보유하거나 투자하지 못하는, 백인이 아닌 개발도상국 이민자들을 일컬음이다.
소시민 마이너리티가 전투에서 생존하는 방법은 도전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한다. 이것은 이래서 싫고 저것은 저래서 싫은 것이 아니라, 이것은 이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어야 하고, 저것은 저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해야 한다. 부부가 열심히 일해서 한달에 월 1만불 벌 수 있다면 융자를 받아서라도 무조건 자기 사업을 해야 한다. 마이너리티가 남들처럼 누릴 것 다 누리고, 모든 것을 얻을 수는 없다. 한인 사회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 내면을 들여다 보면 상처가 없는 사람들이 없다. 그나마의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 잃어버린 것은 더 많다. 우리 한인들은 잘사는 한국인이 아니라, 이민온 가난한 마이너리티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중세 기독교가 유대인들을 핍박할 때, 유대인들의 모든 재산을 빼앗고, 그들의 이마에서 땀이 비오듯이 떨어질 때까지 먹지 못하게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유대인들 처럼 핍박과 죽임을 당한 마니어리티 민족은 없다. 그것도 기독교인들로 부터 말이다.
가난이 죄는 아니다. 새해에는 무엇이라도 찾아보고 검토하고 그리고 도전하라. 기회는 도전하는 자에게만 열려있다. 힘내세요. 여러분은 하실 수 있습니다. We can do it !!
새해에는 (01-05-2018)
새해에는 새롭게 하소서.
새해에는 당신의 은총에 감사하게 하소서.
새해에는 무엇을 받아서가 아니라, 무엇을 얻어서가 아니라, 저의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무사히 살 수 있게 하심에 감사하게 하소서. 매일 하루에 한가지씩 당신이 주신 은총을 깨닫게 하시고 감사하게 하소서. 당신의 은총은 이미 저의 잔에 넘치나이다. 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주시고 새해에도 저와 동행하여 주소서.
새해에는 새마음을 갖게 하소서.
육신이 늙어 갈수록 마음은 구태와 타성을 벗어 던지고 새롭게 거듭나게 하소서. 새해에 살아갈 새날들과 새일들에 대해 비관 보다는 낙관을, 부정보다는 긍정을, 포기 보다는 소망을 갖게 하소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방관 보다는 관심을, 비판 보다는 배려를 먼저 할 수 있도록 하소서. 나이만 먹었다는 말도, 나이 값도 못한다는 말을 듣지 않게 하시고, 말과 행동을 신중하고 사려 깊게 하소서. 책을 많이 읽고, 사색하고, 사유함으로써 새로운 지혜를 갖게 하소서. 미워하는 마음을 없게 하시고 분노하는 마음도 없게 하소서. 그래도 미움이 사라지지 않으면 초망각의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용서할 관용을 갖게 하소서. 너무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는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시고, 너무 가까운 사람에게는 약간의 거리를 두게 하소서. 타인에게 칭찬을 많이 하게 하옵소서. 날카로운 비평이나 분석에 앞서 상대의 입장을 먼저 이해하게 하소서.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따뜻한 남자가 되게 하소서.
새해에는 새 눈을 갖게 하소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눈이 아니라,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시고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보게 하소서. 나보다 가난하고 힘들어 하는 자들을 보게 하시고 그들을 위로하게 하소서. 새해에는 제 눈에서 더 많은 기쁨과 더 많은 은총의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하소서.
새해에는 새 귀를 갖게 하소서.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귀가 아니라, 여태껏 듣지 못한 소리들을 듣게 하시고, 무심코 흘려버린 소리들을 듣게 하시어 당신의 은총에 감사하게 하소서. 나의 신음소리가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신음소리를 듣게 하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소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들에게 다가갈 용기를 주시고 그들을 도울 지혜를 주소서.
새해에는 나의 육신을 정결케 하게 하소서.
몸이 되어 사는 동안, 점점 늙어가고 병들어가는 나의 육신을 받아드리게 하소서. 한번이라도 씻어낼 수 있다면 겨울 내천 차가운 물에 흘러내게 하소서. 내 육신을 가혹하게도 게으르게도 하지 마시고 소중케 쓰다 가게 하소서. 신선한 식재료로 소식하게 하시고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케 절제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눈에 보이는 대로 먹지 않게 하시고 주는대로 먹지 않케 하소서. 몸에 유익하지 않는 음식들은 멀리 하게 하소서. 새해에도 맛있는 음식을 자주 만들어 아내와 주변에게 귀여움 받게 하소서. 가능한 많은 시간을 걷게 하시고 당신이 창조하신 자연의 숨결을 가까이 하게 하소서. 허리 통증을 빨리 낫게 하시어 좋아하는 운동들을 할 수 있게 해 주소서.
새해에는 가난 조차 감사히 여기게 하소서.
새해에는 가난을 흐르는 강물 처럼 받아드리게 하소서. 아굴의 기도처럼 당신이 주신대로 자족케 하소서. 이제는 물욕에 대한 철부지 욕망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저보다 가난한 지구촌의 사람들을 기억케 하시고 제가 할 수 있는 조그만 일들을 지속케 하소서. 저에게 주어진 가난으로 인한 고통과 두려움을 기꺼이 안고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소서. 자고 먹을 것을 걱정하지 말라는 당신의 약속을 액면 그대로 받아드리게 하소서. 물론 새해에도 열심을 다해 일할 것입니다. 제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당신이 책임지십시오. 저와 아내 모두 부담스러우시면 제 아내만이라도 책임져 주시기 바랍니다. 타인과 비교하지 말게 하옵시고 허황된 망상을 갖지 말게 하옵소서. 살다가 살다가 너무 힘들다고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게 하옵소서. 더구나 어떠한 경우에도 당신을 원망하지 말게 하옵소서. 제 마음에서 당신마져 떠나버리면 제가 정말 힘들것 같아서입니다. 제가 의지할 곳은 당신 뿐입니다.
새해에는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까운 이웃으로 희망과 소망의 글을 쓰게 하소서. 새해에는 그림 그리기를 배울 수 있는 마음과 시간적 여유를 저에게 주소서.
이해인 수녀님의 시 <새해에는 이런 사람이> 처럼, <기도하는 사람>, <희망의 사람>, <사랑의 사람>, <펑화의 사람>, <기쁨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따뜻함, 신뢰와 용기, 밝고 맑음, 친구, 말보다 행동, 진실, 오랜 기다림, 마음의 평화, 화해와 용서, 고마움, 작은 것에 감사.. 이런 단어들이 별이 되어 자주 빛나도록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