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저작권은 윌리칼럼 저자인 이위식에게 있으므로 저자의 서면 동의 없는 무단 전재 및 복제를 금합니다. 모든 윌리 칼럼은 미국 Korea Phila Times (주간필라) 신문에 매주 해당 날짜에 출간된 것임을 밝힘니다. **
수고하셨습니다 (12/26/2014)
올 한해도 여러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유난히 힘든 일도 많으셨을 것이고, 고생도 많으셨을 겁니다. 왜 이렇게 한해 한해 산다는 것이, 아니 버틴다는 것이 점점 더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불안하기로 말하면 끝이 있겠습니까? 걱정으로 말하면 한이 있겠습니까? 당장 하루 앞인 내일 일도 모르니 나이는 헛 먹은 듯 합니다. 그래도, 그래도 한해를 마감하면서 우리 모두 수고 많으셨다고 위로하고 위로받고 싶네요. 여러분 모두에게도, 내 자신에게도, 내 아내에게도, 내 자식들에게도 수고했다고 어깨를 따독거리며 따뜻이 안아주고 싶네요.
<수고했다>는 말은 잘했다, 못했다를 평가하는 말이 아닙니다. 경상도 말로는 <욕봤다>라고 표현합니다. 함께 일한 모든 사람에게 서로 격려하는 말입니다. 나는 <야야, 큰 욕 봤다>라는 말이 요즘처럼 그렇게 그리워질 수가 없습니다. “수고 많이 했다. 애 많이 썼다”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제 2014년이라는 큰 게임이 막 끝났습니다. 매년 하는 게임이지만, 매번 힘들기는 마찬가지네요. 그래도 또 2015년이라는 새로운 게임이 시작되지 않습니까? 잘 될거라는 긍정적 마인드와 소망과 희망을 가지고 새해를 맞이 합시다. 2012년 년말에 쓴 칼럼 <감사, 그리고 희망>을 읽어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네요. 일부분 인용하오니 해량하여 주십시오. 한해동안 저를 지켜주신 하늘에 계신 그분과 여러분께 지면으로나마 감사 인사와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또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온다. 내가 어떻게 살았든, 무엇을 하고 살았든, 지난 시간은 흐르는 강물이 되고 또 새로운 시간이 되어 다가온다. 오늘과 오늘을 이어보니 어제와 내일이 되었듯이 묵은 해와 새해를 연결하니 어느듯 60년이라는 세월이 만들어진다. 오늘 하루가 감사하면 어제와 내일이 감사하고 그러면 묵은해와 새해가 감사하지 않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아도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별로 잘한 일도 없는 ‘나’라는 인간을 지금 이 순간까지 굶기지 않으시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 주시니 감사할 뿐이다. 얼마가 되었든 남에게 구걸하지 않고 마누라와 자식새끼들 모두 무사히 살게 해 주심도 감사할 일이다. 아직까지는 큰 병없이 살게 해 주심도 감사할 일이고, 아직은 남의 도움없이 내 두발로 걸어다닐 수 있게 해 주심도 감사하며, 내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게 해 주심도 감사하다. 아직까지는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심을 감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게 해 주심도 감사하다. 묵상하고 사색케 하여 아직도 잘못된 습관을 조금씩 고칠 수 있게 하심도 감사하다. 사시사철 해뜨고 해 지는 것을 보게 하시고, 철마다 꽃과 나무, 바람 냄새를 맡게 하시니 감사하다. 창조의 위대함과 피조물의 아름다움,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주심도 감사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게 해 주심도 감사하며, 매일 밤 편히 잠자리에 들게 해 주심도 감사하다. 사계절의 변화를 매주 느낄 수 있는 산책 공원을 주심도 감사하다.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주시어 감사하고 좋은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음도 감사하다. 예배마다 좋은 말씀으로 양육시켜 주심도 감사하고, 교회내에서 할 수 있는 여러 직분을 주심도 감사하다. 일년내내 새로운 신간도서를 읽게 해 주심도 감사하고, 좋은 고전 속에서 깊은 묵상을 하게 해 주심도 감사하다. 칼럼같지 않은 칼럼을 8년동안 빠지지 않고 매주마다 쓰게 해 주심도 감사하고 그런 칼럼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에게는 더더욱 감사하다. 저같은 사람을 믿고 사업체를 팔아달라고 맡기시는 Seller들께도 감사하고, 사업체를 사 달라고 부탁하시는 Buyer들께도 감사하다.
이제 새로운 한해와 새날을 주심을 감사한다. 새로움이 좋은 것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희망은 아침과 같고 산소와 같다. 희망이 있으면 설령 사는 것이 힘들고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감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인생 시계는 몇시인가? 60년을 살았으니까 90세까지 산다고 보면 오후 4시가 막 지난 것이다. 오후 4시면 아직도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도 많다. 푸짐한 저녁 만찬을 먹고 TV 연속극 보면서 잠자리에 들기에는 너무나 아쉬운게 많다. 아직 내 마음의 해가 중천에 걸려 있으니 나는 청춘이다. <희망>을 기다리지말고 <희망>을 찾아가 보자. 가난하면 어떻고 몸이 부실하면 어때? 사는 것이 좀 누추하고 입은 옷이 좀 남루하면 어때? 나에게는 함께 동행하시는 그 분이 계시고 건강한 마음과 희망이라는 빛이 있지 않은가?
지금도 암으로 투병중인 누나같은 이해인 수녀님의 시 <희망은 깨어있네>를 소개한다.
“나는 / 늘 작아서 / 힘이 없는데 / 믿음이 부족해서 / 두려운데 / 그래도 괜찮다고 / 당신은 내게 말하는군요. / /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희망이고 / 옆에 있는 사람들이 / 다 희망이라고 / 내게 다시 말해주는 / 나의 작은 희망인 당신 / 고맙습니다. / / 그래서 / 오늘도 / 나는 숨을 쉽니다. / 힘든 일이 있어도 / 노래를 부릅니다. / 자면서도 / 깨어 있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은 책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옷을 입는 것은 희망을 입는 것이고 살아서 신발을 신는 것은 희망을 신는 것임을 다시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전에는 그리 친숙하게 여겨지지 않던 희망이라는 단어가 퍽 새롭게 다가오는 날들입니다. 희망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불러야만 오는 것임을, 내가 조금씩 키워가는 것임을, 바로 곁에 있어도 살짝 깨워야만 신나게 일어나 달려오는 것임을 다시 배워 나가는 날들입니다.”
새해에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밝은 희망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소원합니다.
고전 물리학과 행복론 (12/19/2014)
현 시대의 핵심 화두는 <사랑>보다는 <행복>이다. 모든 가치 기준이 행복으로 귀결된다. 가난해도, 못났어도, 내가 행복하면 된다. 내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고, 이웃이 행복하고 나라가 행복하다. 오늘은 색다른 각도로 행복을 찾아보자. 이 세상 삼라만상을 신이 창조했다고 가정을 하자. 신은 이 삼라만상, 즉 자연이 움직이는데 기본 법칙을 정하셨다. 이것을 <자연의 법칙>이라고 하자. 이 수많은 자연의 법칙 중에 불과 몇가지를 인간이 발견했다. 이것이 현대 과학이고 그 중에 물리학이다. 그러니 인간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것은 당연하다. 과학 이론도 변화하고 진화한다. 그래서 오늘은 고전 물리학 중에서도 고전인 <뉴턴의 법칙>을 행복론에 적용시켜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신이 자연의 법칙을 만들었다면 인간의 행복론도 같은 공식에 적용받지 않을까 하는 가설이다. 물론 전적으로 나의 사견이므로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칼럼을 400편 이상을 쓰다보니 이제는 별걸 다 쓴다고 흉을 보실 분도 있겠지만…
뉴턴의 제1법칙은 <관성의 법칙>이다. 일명 <등속도 운동>이라고 한다. F= m x v (힘=질량 x 속도)다. v= ds/dt (속도 = 이동 거리 / 이동시간)이다. 이동거리 (ds)는 내가 가야할 목표라고 하면 이동시간 (dt)은 내가 노력한 시간이다. 얼마나 짧은 시간에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었는가가 <인생 속도>로 평가받는다. F는 <힘>이다. 돈의 힘은 재력, 다스리는 힘은 권력, 아는 힘은 지력, 강한 생활의 힘은 생활력, 등등 우리 모두는 각자의 힘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나 힘이 더욱 강한자가 되고자 원한다. 또한 m은 나의 <질량>이다. 즉 나의 재능, 은사, 건강 등 신이 나에게 주신 은혜다. m (질량)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것을 원망해서는 안되며, 과신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질량의 크기도 나의 노력에 따라 변한다. 또한 속도(v)가 제로이면 아무리 질량 (m)이 무겁다 하더라도 힘(F)은 제로가 된다. 이를 <정지관성>이라고 한다. 속도의 변화가 없으면 멈추어 있던 물체는 움직이지 않으려는 성질이다. 버스가 갑자기 출발하면 몸이 뒤로 쏠리는 현상 등이다. 또 하나는 <운동 관성>이다. 예를 들어 달리는 자동차가 갑자기 급정지를 하면 몸이 앞으로 튕겨나가는 현상이다. 즉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그 일정 속도로 움직이려는 성질이다. 움직이기는 움직이되, 항상 일정한 속도, 속도의 변화가 없는 것(제로 상태)이다. 우리의 삶도 습관처럼, 타성에 젖어 변화가 없는 삶, 마지 못해 사는 삶은 아닌지 되물어 보자. 속도의 변화가 없다 함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삶이다. 아무리 m (질량, 즉 돈, 성공, 권력, 재능)이 많으면 뭐하나, 변화가 없는 삶은 정지된 삶이며, 죽은 삶이다. 즉 F=0인 삶이다.
뉴턴의 제2 법칙은 <가속도의 법칙>이다. F=m x a = m x (dv/dt) = m x (ds제곱/ dt제곱)이다. 가속도 (a)는 속도(v)의 변화율 (미분 함수)이다. 속도는 속력과 다르다. 속력은 빠르기를 말한다면, 속도= 속력 (빠르기) + 방향이다. 즉 아무리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서로가 플러스 (+), 마이너스 (-) 양방향으로 내 질량 (m)을 끌어당긴다면 힘(F)의 합은 제로가 된다. 힘이 제로면 속도는 변하지 않는다. 즉 나의 질량 (m) 은 정해져 있는데, 부부가 추구하는 방향이 서로 반대 방향이라든지, 내 가치관과 달리는 방향이 서로 다르다면 그 힘(F)은 제로이거나 극히 약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맨날 제자리 인생이고 후회와 번뇌의 삶이다. 달리 말하면 힘(F)을 주지 않으면 가속도(a)는 생기지 않는다. 올바르게 노력하지 않으면 항상 제자리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누군가 인생은 방향이라고 하지만, 이 <가속도의 법칙>에서 보면, 부부의 가치관, 목표의 방향, 노력, 시간, 믿음,부부 팀웍이 모두 올바르게 합해져야만 속도가 빨라지고 힘이 강해짐을 알 수 있다.
제3의 법칙은 <작용, 반작용 의 법칙>이다. 이것은 <신의 공평성 원리>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힘을 가한 만큼의 힘이 되돌아 오는 것이다. 내가 벽을 밀면, 내가 민 힘의 크기만큼 벽이 나를 민다. 배의 <부력과 중력>의 법칙도 마찬가지다. 바닷물이 배를 밀어내는 부력만큼 지구가 배를 잡아당기는 힘은 일치하기 때문에 배가 뜨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준 사랑의 크기만큼, 상대방도 나에게 그만큼의 사랑을 준다. 내가 상대방에게 아픔을 준 만큼, 내가 그만큼의 아픔을 되돌려 받는다. <인과응보>다. 뿌린 만큼 거둔다. 베푼 만큼 돌려받고, 나눈 만큼 더 행복해진다는 이 공식만 깨달아도 나의 인격은 더욱 성숙되고, 이 세상은 살 맛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또 W= F x S (일= 힘 x 힘의 방향으로 이동한 거리), 즉 <일의 공식>도 있다. 아무리 힘이 강해도 행하지 않은 힘은 일의 실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좋은 재능(m : 질량)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재능이 올바른 방향과 목표(a :가속도) 를 가지 있다고 하더라도 올바르게 행하지 않는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나중에 우리가 천국 갈때, 그 입구에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 받을 때, 이 공식만 대입해도 내가 살아온 삶의 합산은 몇점인지 간단하게 나올 것 같다. 그러니 내가 천국가고 싶다고 갈 수도 없고, 구원받았다고 믿고 싶어도 그분이 아니면 아닌 것을 뭘 믿고 그렇게 나대든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착하게 살자. 부끄럽지 않게 살자. 시간값(t)은 자꾸자꾸 줄어드는데..
신(神)의 달력 (12/12/2014)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우리는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의 마지막 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적지 않은 감정들을 느낀다. 마지막 잎새로 비유함은 다분히 과장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세월에 많은 아쉬움과 미련을 가질 것이다. 물론 올 한해도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무사히 지켜주심에, 지금까지 먹고 살게 해 주심에, 감사할 일도 너무 많은 한해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별로 이룬 것도 없이 또 이렇게 한해가 가는구나, 이렇게 나이만 먹고 늙어 가는구나, 덧없고도 허무하다는 생각에 주름살 골만 깊어진다. 또 한편으로 올 한해동안 겪었던 고통과 아픔들이 물밀듯이 되살아나면서 액땜이라도 하듯, 빨리 올 한해가 지나가 버리기를 바라기도 한다. 특히나 하루 하루 살기가 버거운 우리네 서민들은 마지막 달인 12월이 빨리 가고, 희망의 새해가 빨리 오기를 소망하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이민와서 매년 하는 소리가 ‘작년보다 더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해마다 살기가 점점 더 어렵다고들 아우성이다. 그것은 어찌보면 빈부의 격차가 날로 크게 벌어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자연적 현상이다. 1%가 99%를 지배하는 세상, 아니 0.1%가 99.9%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종말의 시대이며, 자본주의 몰락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년이라고 가난한 서민들의 삶이 나아질거라고 섣불리 기대하면 또 실망만 커질 것이다. 기적이니, 드림이니, 인생역전이니, 하는 단어들에 현혹되면 안된다. <인생 한방>을 내 자신은 물론, 우리 아이들에게도 요구하거나 기대해서도 안된다.
<소유의 시대>와 <자본주의>에 찌들대로 찌든 우리들은 결코 욕심을 내려놓을 수 없다. 돈이 존경받는 사회에서 예수를 닮아가는 삶을 살겠다는 자체가 엄청난 가식이며, 위선이고 모순덩어리다. 가진 자든, 못가진 자든, 우리같은 골수 자본주의 세대는 <소유>를 포기하지 않는 한, 결코 예수를 닮을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자족(自足)하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포기하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소유를 줄이되 나눔을 배워야 한다. 소유해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주신 것이기에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가진 자를 인정하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들을 인정하되 부러워 하면 안된다. 남이 가진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죽지 않고 살 수 있다. 그래야 자족하며 살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은 로마 황제 율리우스 시저(카이사르)가 이집트 원정에서 역법을 도입하여, BC 46년에 태양력의 시초인 율리우스 달력을 만들었다. 평년을 365일, 4년에 1회씩 윤년으로 366일로 하였다. 그렇게 1천년 가까이 사용되다가 13세기 초 교황 그레고리우스 때, 율리우스력에서 오랜동안 누적된 역법상의 오차로 원래 3월 21일이었던 춘분이 3월 11일로 옮겨져 있었던 것이다. 춘분은 기독교에서 부활절을 정할 때 기준이 되는 날이었으므로 10일간의 오차는 골치아픈 일이었다. 그래서 1582년부터 10일을 뒤로 미루어 새 역법을 공포하였으니 이것이 현재까지 전 세계가 사용하는 그레고리 달력이다. 본래 유대인들은 음력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안식일이 금요일 오후 6시부터 토요일 6시까지이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에게 탄압을 받던 기독교인들은 유대 달력이 아닌, 로마인들의 일주일 개념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로마인들의 일요일은 Sunday로 태양신을 숭배하는 날이다. 월요일은 Monday로 달신(月神)을 숭배하는 날이다. 화요일은 부신 (父神)인 Tiwaz를 숭배하는 날이다. 수요일은 오딘(Odin)신을 숭배하는 날로, Wednesday는 ‘오딘의 날’이라는 뜻이다. 목요일은 오딘의 아들 토르(Thorr)신을 섬기는 날, 금요일은 Frigga여신을 섬기는 날로, 그녀는 여신들 중에 최고의 여신이다. 토요일은 농업을 주관하는 Saturn신을 섬기는 날이다. 문명의 최첨단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이 아직도 로마시대의 신화와 게르만족들의 신화적 사고로 만들어진 명칭을 사용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즉 달력은 시간이며, 인생도 시간이다. 시간은 신께서 주셨지만 신은 시간을 구분짓지 않으셨다. 시간은 흐르는 물과 같다. 시간의 본질은 끊어짐이 없는 <연속성>인 동시에 <동질성>이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시간은 다르지 않는 똑같은 시간이다. 신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은 시간을 주었지만, 사람들이 그 시간을 구분짓고, 그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시간의 가치>가 달라지게 된 것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달라진다. 인간의 시간은 유한성이다. 시간의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다. 하지만 천국에도 달력이 있을까? 당연히 없다. 천국은 시간의 <무한성>이다. 그러니 어떠한 가치를 구하는 공식이라도 시간값 (t)에 무한대 (unlimited)를 대입하면 모든 값은 무한대가 되기 때문에 차별이 없고, 그래서 천국은 영생이 성립된다. 사랑이 크든, 작든, 물질이 많든, 적든, 잘났든, 못났든, 각자가 어떠한 값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결과값은 무한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국은 <영원성>인 것이다. 반대로 시간값을 제로(영)로 대입하면 모든 가치는 제로가 된다. 시간이 제로가 된다는 것은 정지 상태를 말하며 이는 죽음을 의미한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떠한 고통이나 슬픔, 괴로움, 가난, 무지, 질병, 부귀영화도 시간값에 제로를 대입하면 모든 것은 제로가 되어 멈춘다. 이는 시간의 <무결점> 상태다. 하지만 정지가 된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제로는 영원으로 이어지는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은 부활로 이어지는 것이다. 신(神)의 달력에는 시간의 구분이 없다.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가치있는 점(點)들이 이어져야 선(線)이 되고 선들이 이어져야 면(面)이 되고 형상이 될 것이다. 지나간 세월 아쉬워 하지말고, 내일부터가 아닌, 새해부터가 아닌, 지금 이순간, 이 한 점부터 우리의 시간을 이어가자..
잡기학 (雜技學) 개론 – 후편 (12/05/2014)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라는 한국 가요인지 민요인지를 나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싫어한다. 젊은 놈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여도 부족하거늘, 남들 공부할 때 놀고, 남들 일할 때 놀고, 남들 놀 때, 또 놀면 어느 세월에 ~~. 날 센 인생이라고 폄하했다. 그러던 내가 요즘 <노는 연습>에 흠뻑 빠져 있다.
사람마다 노년의 생활이 각기 다르겠지만, 우리 부부는 일하는 날까지 일하다가 미국 정부에서 제공하는 노인 아파트에 들어가서 나머지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고 덜 부담스럽다. 포기할 것은 대충 포기하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게 된다. 첫째, 돈 벌기를 포기했다. 돈을 벌 수 있을거라는 일말의 가능성 조차도 놓아버렸다. 아니 돈을 벌고 싶다고 벌 수 있는 여건이 이제는 되지 않는다. 늦었다. 그 이상은 노욕 (老慾)이다. 그러니 무리하게 일할 필요도 없어졌다. 둘째, 돈이 없으니 노년의 거창한 꿈이나 계획이 없어졌다. 한국에 나가서 여생을 살거나, 휴양지에서 살거나 해외 여행을 다닐 망상도 없다. 세째, 자식들을 도와줄 여력이 안되니, 자식들 일에 간섭하고 잔소리할 명분이 없어졌고, 요구할 일이 없으니 섭섭할 이유도 없다. 네째, 노후에 타 지역으로 갈 일이 없으니 지금 살고 있는 이 지역에서 생을 마감하면 된다.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교회를 섬길 필요가 없으니, 지금 지내는 사람들과 원수만 지지 않으면 된다. 그러니 결론은 우리 부부 둘이서 건강하고 재미있게 사는 목표이자 소망만 남았다. 그러면서 5년 뒤든, 10년 뒤든, 노인 아파트에서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놀고 사는 내 인생이 즐거워야 한다. 재미있어야 한다. 내 자신과 세상에 의미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우리 부부에게 맞는 <잡기(雜技)>를 찾아서 <노는 연습>을 해야 한다.
잡기(雜技)를 잘 하려면 몇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가 주변 환경이다. 그 종목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시설이 준비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잡기는 나 혼자서 할 수가 없다. 할 수는 있어도 재미가 없다. 둘째는 내가 하고자 하는,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세째는 그 잡기가 재미있어야 한다. 네째, 회원들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나는 60대와 70대 이후 인생을 세가지 잡기 종목으로 나눈다. 한 종목은 <운동>이고 다른 두 종목은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다. 요즈음 내 일주일 일과표를 보면 <잡기 열공 (雜技 熱工)> 그 자체다. 먹고 살기 위한 근무 시간은 월요일 부터 금요일 까지, 9시부터 5시까지를 칼같이 지킨다. 저녁 6시에 집에 오면 그때 부터가 <잡기 시간>이다. 월요일은 색소폰 클럽에서 색소폰 연습, 화요일 저녁은 배드민턴 클럽에서 아내와 배드민턴 시합, 수요일은 수요예배 (요즘은 농땡이). 목요일은 탁구 클럽에서 탁구, 아내는 요가 클럽에서 요가, 금요일은 아내와 외식하고 영화보는 날, 토요일은 칼럼 쓰고 여름철은 수영, 그외에는 조깅, 그리고 친구나 이웃들과 저녁 먹는 날, 일요일은 주일 예배와 집안 일 하는 날, 독서는 매일 짬짬이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지난 달 부터 우리 지역에 테니스 클럽이 생겼다. 그래서 요즘 토요일 저녁은 실내 체육관에서 회원들과 테니스를 친다. 아마도 내년이나 내후년 쯤이면 주일 예배를 아침 예배로 바꾸고 골프를 치러 갈 계획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탁구, 배드민턴, 테니스, 골프, 수영, 조깅, 색소폰, 칼럼쓰기 까지 꽉 짜여진 일주일 시간표가 될 것이다.
사실 나는 운동을 잘 하지 못한다. 운동 매니아도 아니다. 좋은 체격조건도 아니다. 정식으로 배운 종목이 하나도 없다. 나이도 적지 않은 나이다. 사실 지난 주말에도 테니스를 치다가 다리를 크게 겹질러서 피멍이 들고 코끼리 다리처럼 부어 지금도 절뚝 거리며 다닌다. 하지만 내가 운동을 좋아하는 것은 건강해지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오래 살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운동하는 사람들이 좋고, 배울 수 있어서 좋고, 운동하는 순간에는 잡념이 없어서 좋다. 땀 흘리는게 좋고 속임수나 거짓이 없어서 좋다. 운동은 차별이 없고 순수함 그 자체여서 좋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웃고 즐길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좋아하고 운동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돈벌이 직업이 없어지거나, 나이 70세가 지나면, 낮시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두가지 일, 즉 글을 쓰고 싶고 그림을 배우고 싶다. 그림을 그릴 때는 그 작업에 모든 것을 몰입해야 함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지금은 엄두도 못낸다. 나는 그림을 배운 적도 없고 잘 그리지도 못하지만, 내 핏속에는 그림에 대한 광적인 유혹을 느낀다. 아마도 학창시절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했다면 나는 미술대학을 갔을 것이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그림은 그림 속에 사람 마다의 영혼이 숨어 있는 것 같다. 두번째는 나이 70살이 되면 정말 글 다운 글을 쓰고 싶다. 물론 지금도 9년째 매주 칼럼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글이 아닌, 또는 유명한 글, 잘 쓴 글이 아닌, 사유와 침묵과 묵상이 한 줄의 글로 쓰여져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그런 깨끗한 글을 쓰고 싶다. 가상이 아니라 진실을, 허구나 아니라 실체를, 위선이 아니라 순수를, 현혹이 아니라 공감을 쓰고 싶다. 그게 시가 되었던 수필이 되었던 상관없다. 좋은 책을 읽고 묵상하고 그림 그리고 글을 쓰는 생활이 반복되다가 갔으면 좋겠다. <노세, 노세 지금 노세. 내일이면 못 논다네 >..
잡기학(雜技學) 개론- 전편 (11/28/2014)
오늘 날씨가 급격히 추워졌다. 이제 겨울이 시작되는가 보다. 긴긴 겨울밤은 내 60인생 이후인 지금부터의 삶일 수도 있다. 당신은 긴긴 겨울 밤을 누구하고 뭐하면서 보내실건가? 당신은 어떤 잡기(雜技)를 갖고 계신가? 잡기(雜技)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가지 잡다한 기술이나 재주’를 말한다. 그러니 본인의 주 직업이나 전문 업무가 아닌, 그외 모든 것이 잡기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운동, 음악, 그림, 오락 등이 이에 해당하지만 그 범위가 실로 광대하다.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즐기는 운동만 해도 골프, 축구, 야구, 탁구, 배구, 농구, 베트민턴, 족구, 조깅, 마라톤, 수영, 스케이트, 스키, 등산 등을 꼽을 수 있다. 음악은 성악, 노래교실, 기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색소폰, 클라리넷, 드럼 등이 해당한다. 그림은 뎃상, 수채화, 유화, 붓글씨, 동양화, 수묵화 등이다. 오락은 당구, 바둑, 고스톱, 카드 게임, 전자 오락 등으로 나열할 수 있다. 그 외에 요리도 해당한다.
우리 세대들의 대부분은 잡기(雜技)를 멀리 해 왔다. 잡기에 능(能)하다는 것은 무언가 성실치 않는, 착실치 않는 인상을 갖기도 했다. 학생 시절에는 공부가 주업이니 공부하는데만 열중하였고, 회사원 시절에는 도태당하지 않으려고 일하는데만 사력을 다했다. 사업을 할 때에는 돈벌어 가족과 직원들 먹여 살리는데 온 힘을 다했다. 달리 말하면 우리 세대는 시험 세대다. 입시 지옥 세대다. 초,중, 고, 대학, 군대, 회사 입사, 승진 등, 모든 인생 과정이 시험으로 시작해서 시험으로 끝난 세대다. 그러니 성장 과정이나 삶의 현장에서 잡기를 배우고 즐길만 한 물질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특히 <주색잡기 (酒色雜技)> 라는 단어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 교육받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적대시하고 경원시했다. 하지만 지나온 세월을 되집어 보면 주색 (酒色)은 주색대로, 잡기(雜技)는 잡기대로, 본의든 타의든 간에 가까이 한 시절이었다. 또한 주색(酒色)은 돈과 기타(?) 사항이 많이 필요하지만, 잡기(雜技)는 돈과 기타가 크게 (?)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잡기를 좋아한다. 여기서 잠깐 여러분 각자의 잡기 (雜技) 내력에 대해서 간단히 집어보자.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아버지로부터 야구를 배웠다. 그 시절에는 야구가 아이들의 보편적 운동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군의관 시절부터 야구 선수였으므로 자식에게 야구를 가르쳐 주시고 싶어 하셨다. 내가 내 아들에게 그랬던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놈의 입시 준비 때문에 5학년 부터는 야구 글러브를 만지지도 못했다. 중학생 때는 다니던 독서실 옆 건물에 탁구장이 있어서 친구놈들 끼리 탁구를 치러 몇번 다닌 적이 있었지만, 공부 때문에 흐지부지 되었다. 고등학생 때는 체육 시간이 있었지만 거의 운동을 하지 못했다. 음악은 고등부 성가대 시절 어깨너머로 배운게 전부다. 대학교 다닐 때는 테니스를 잠깐 쳤다. 누가 가르쳐 준적도 없고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다. 또한 친한 친구들 대부분이 운동을 싫어했으며 바둑을 좋아했다. 친구들 바둑 실력들은 그 당시 이미 아마추어 유단자 실력이었기에 나는 축에 끼이지도 못했다. 그래서 내 바둑 실력은 10급을 넘지 못한다. 대학교 시절은 운동 보다는 자취 생활 하면서 먹고 공부하고 연애하느라 바빴고, 방학 중에는 배낭 메고 혼자 여행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부분의 운동은 장교 시절에 많이 한 것 같다. 군인은 업무 시간 중에도 체력 단련이라는 핑계로 운동을 할 수 있었고 퇴근 시간이 오후 4시이므로 마음만 먹으면 일과 후 얼마든지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장교 교관 시절에는 짬만 나면 신참 교육생들과 운동하고 시합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시합용 포지션은 축구는 골 키퍼, 배구는 전위 센터, 족구는 센터 수비, 야구는 투수, 테니스 등, 농구를 빼고는 거의 모든 운동 경기를 직접 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군인 시절에 화투와 카바레 춤을 아버지뻘 되는 준위, 상사들에게 배웠고, 카드 게임은 선배 장교들에게 배웠다. 노름은 승률이 높아서 대부분 돈을 따는 편이다. 그러다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접대 노름을 하는 것이 역겨워 퇴사한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화투나 카드는 손에 만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자전거 타는 것도 군인 시절에 배웠다. 어릴 때 자전거 타는 것이 위험하다고 어머님이 못타게 하셔서 배우지를 못하다가 장교 시절에 순찰 돌고, 출퇴근 하기 위해서 할 수 없이 배운 것이다. 그리고 회사원 시절에는 건강을 위해 새벽에 수영을 배울려고 몇개월간 폼만 잡다가 흐지부지 되었고, 당구도 회사원 때 배웠다. 사업할 때는 시간 내기가 여간 어려워 운동을 거의 하지 못했고, 그 당시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 조깅이었다. 언제나 차 트렁크에는 운동화와 조깅복이 두벌 있었으므로 화가 나거나, 회사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한강 고수부지나 인근 공원에서 혼자 달리기를 했다. 조깅은 이민와서도 유일하게 계속 한 운동이다. 이민와서는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 골프를 배우지 못하다가, 9년전 이 사업을 준비하는 몇개월 동안 골프를 친 것이 전부다. 지금도 가장 배우고 싶은 운동이 골프지만, 이 직업을 하는 동안에는 주중에 낮 근무시간을 쪼개어 골프를 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막상 이렇게 보니 나의 잡기(雜技)는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꾸준히 한 적도 없다. 그러니 제대로 잘 하는 잡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그래도 나는 잡기를 좋아한다. 잡기는 내 나머지 인생을 함께 즐길 나의 친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초상 <후편> (11/21/2014)
요즘 한국에 미생 (未生)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다. 만화가 윤태호씨가 출간한 만화 <미생>이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웹툰 조회 건수가 2억회 이상을 돌파했다고 한다.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것일까? 줄거리는 어찌보면 이 땅의 월급쟁이들이 겪고 공감하는 <을 (乙)>에 관한 평범한 회사 생활이다. 물론 과장된 판타지적 요소도 여러가지 있다. 대기업에 입사할 수 없는 주인공의 스팩, 그런 조건으로도 조직 생활에 잘 적응하는 생명력, 결정적 순간 마다 해결사 역할을 하는 만년 직속 과장, 등장하는 신입사원들의 해박한 업무 지식 같은 것이다. 20대 초반인 남자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오직 한가지 목표인 프로 기사가 되기 위하여 바둑만 공부한 문하생이다. 그러니 바둑 이외에는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흔히 말하는 스팩이 전혀 없다. 검정고시 출신의 주인공이 낙하산으로 대기업 상사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하여 2년 계약직 기간동안 겪는 회사 생활을 그린 드라마다. 물론 신입사원의 눈으로 본 한정된 시각이지만, 이를 바둑과 연계하여 힘든 과정을 헤쳐나간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삶의 순간 마다 겪는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는 과정은 각자가 두는 한판의 바둑과 같다. 내가 걸어간 길만이 나의 길이다.
바둑에서 <미생>은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바둑에서는 두집이 나야 <완생 (完生)>이라고 하고, 죽은 말 (바둑알)을 사석(死石)이라고 한다. 그러니 <미생마 (未生馬)>인 나 자신은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살아남기 위한 최소 조건, 즉 <두집>은 내 인생의 무엇인가? 나는 아직도 <미생>이며, 아직도 <을>이다. 어쩌면 바둑은 우리의 인생 살이와 같다.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인생 살이에 <완생>이 있을까. 내가 죽어야 비로서 <완생>이 되는 것이 아닐까. 죽어서 <완생>이 되고 <완생>이 <영생>이 되어 다시 <윤회>한다면?
하지만 내 젊은 시절을 되돌아 보면 이 드라마의 등장 인물들 처럼 나는 너무 좁은 시야에 갇혀 살았다. 살아남기 위해 그 <두집>을 만들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는 자괴감도 든다. 나는 20대 후반부터 30대후반까지 만 10년 이상을 대기업 에서 근무했었다. 경력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자리에 동기생들보다 2~3년 먼저 승진하기 위해서 나는 회사와 일 밖에 몰랐다. 기획,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영업, 지사장, 마케팅 총괄 등, 주어진 어떤 업무도 마다하지 않았다. 야근과 새벽 출근은 밥먹듯이 하고, 한달에 20일 술마신 기록도 있었듯이 접대와 고객관리는 이골이 날 지경이었다. 오로지 회사 사람들과 거래처 사람들, 고객 회사 사람들 만이 내가 만나는 사람들 전부였다. 머리 속은 자나 깨나 실적과 이익 창출 뿐이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참석하는 각종 회의들, 월별, 분기별, 반기별, 년말 관리자 실적 평가 회의는 부하 직원들 밥줄까지 걸려있는 생존 경쟁이다. 대기업 회사원의 목표는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 조직은 피라미드 구조다. 학력이나 스팩이 비슷비슷한 사람들을 신입사원으로 뽑아서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순으로 올라가면서 추려 내는 것이다. 본인이 아무리 똑똑해도 직속 상관을 잘못 만나면 하루 하루가 지옥이다. 어떤 부서는 과 전체가 없어지기도 한다. 흔히들 줄을 잘못 잡으면 승진에서 누락되고, 두번 이상 누락되면 후배에게 잡혀 먹힌다. 그러니 부서 단합은 깡패들 의리를 능가한다. 그래서 대기업 5년 이상을 버티기 어렵다고도 한다. 회사 직위가 올라갈수록 자신의 모습이 철저한 <을>이라는 것을 자각한다. 그래서 나는 40세때 내 회사를 창업하여 <갑>이 되기로 했다. 하지만 회사 사장이라고 <갑>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되돌아 보면 그 시절 나와 함께 한 부하 직원들이 그리워진다. 나의 3,40대 젊은 시절은 내 인생에서 잃어버린 시간들이었을까? 아니길 소망하기에, 지금 나는 존재한다. 대기업 월급쟁이 생활은 체력 싸움이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 중에 몇가지를 소개하면 “싸움은 기다리는 것부터 시작이다.”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면 승부 따윈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라. 정신력은 체력이라는 외피의 보호없이는 구호밖에 되지 않아.” “인생은 끊임없는 반복, 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가 성공한다.”
요즘 한국에는 <감정 노동자>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숨기고 최대한의 상냥함과 친절로 고객을 관리하는 사람들이다. 대표적으로 대학병원 간호사들인데, 그녀들은 과중한 업무 때문에 임신도 순번을 정해놓는다는 것이다. 자기 순번이 아닌데 임신이 되면 유산을 한다고 하니 가히 충격적이다. 고객 상담원이 고객의 부당한 불평으로 자살을 했다.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가 입주민들의 모욕감과 경멸감으로 분신 자살을 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은 <을>이며, 진정한 <갑>은 하늘에 계신 그분 뿐일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갑>이라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을>에게 무자비하고도 잔인해 진다. 왜들 그럴까? <을>의 대부분은 <감정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사는 동안 언제나 숨겨진 아픔과 눈물이 보여져서도, 보일 수도 없는 평생 노동자인가. 한국의 2백만명이 넘는 시급제 직원들, 8백만명이 넘는 계약직, 임시직 직원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정규직 직원들,,, 모두 모두가 치열한 경쟁에서 무조건 살아 남아야 하는 <을>인 동시에 <젊은 날의 초상>들이다.
젊은 날의 초상 (肖像) –전편 (11/14/2014)
<젊음>이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그 젊은 날들이 남겨진 잔영 (殘影)은 각자가 다를 것이다. 젊음이라는 시대 저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 같은 노땅(?)들은 그때가 그래도 좋았다고들 한다. 그 때의 젊음은 진취적이고 활동적이며, 적극적이고 도전적 이었던 시절로 기억한다. 지지리 궁상떨던 가난도 별것 아닌것 처럼 여겨지며, 가슴이 수류탄 터지듯 갈기갈기 찢겨진, 불같은 사랑과 이별도 영화 속 아름다운 한 장면처럼 기억한다. 생각과 시대관은 언제나 진지했고, 정의를 갈구하기 위해 밤새워 고민하고 토론하던 시절이었다고 말한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해 거리로 뛰쳐나가 피를 흐리며 싸우고 투쟁했노라고 과장하기도 한다. 못할 게 없을 것 같았고, 안되는 게 없을 것 같았던 기억들이 늙은이들의 <젊은 날의 초상>이다.
하지만 과연 그러했을까. 그게 전부였을까? 수많은 방황의 시간들로 인해 인고 (忍苦)의 세월은 길고도 험난했다. 그 상처들이 얼마나 깊게 파였는지 아직도 가슴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젊음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미숙하다. 살아온 세월이 짧으니 경험이 부족하고 지혜가 미천하다. 그래서 젊음은 좌절하고 절규한다. 그 과정을 극복해야 어른이 된다. 그것은 젊음의 통과제의 (通過祭儀)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가난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그때의 가난이나 지금의 가난이나 가난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아 넘어지고 깨어진 젊은 날의 실패와 좌절들은 지금까지 습관과 타성이 되어 하는 일마다 반복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멍하니 무의미하게 보낸 수많은 젊은 날의 시간들은 지금까지 멍하니 생각없이 살아간다.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이다. 어쩌면 젊은 날의 초상은 고통과 상처와 실패를 뒤로 감춘채, 아름답고 좋았던 기억과 하지 못한 아쉬움과 그리움만 남겼는지도 모른다. 젊은 날의 고통과 아픔이 오늘이 있게 하고 지금의 내가 있게 한 단초였을 수도 있겠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젊은 시절이 좋았지만 막상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요즈음 한국이나 미국을 보면 현대를 사는 젊은이들이 안스럽고 애처롭기까지 하다. 우리 세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시대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아름다운 젊음을 포기한채 자살을 하거나 삶을 포기할까? 왜 현대 자본주의는 인간을 부를 창출하는 부속품 정도로 여기는 걸까? 현대는 너나 없이 태어나면서 부터 경쟁이 시작된다. 영재 교육이니 뭐니 해서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한글과 영어를 마스터한다. 유치원생들은 초등학교 교육을, 초등학생들은 중학교 교육을, 중학생은 고등학생 교육을, 고등학생은 대학생 교육을, 이른바 선행학습을 하기 위해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학원을 다닌다. 문제는 공부를 잘하는 일부 학생이 아니고, 집안이 부자인 일부 학생이 아니고 전국의 아이들이 이렇게 죽기 살기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소위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학생들은 누구인가? 두뇌가 명석한 아이들이 아니라 고액 과외를 받는 아이들이다. 그것도 20년 가까이 줄기차게 지원해 줄 수 있는 좋은(?) 부모를 만나야 한다. 이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누구나 한다. 단적으로 명문 대학생들은 부자 동네에서 돈으로 만들어지는 아이들이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가 절대로 없는 시대다. 그러니 가난을 대물림하는 가난한 아이들의 좌절감은 어떨까. 명문대학을 들어가면 끝나는 시대가 아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취직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서는 각종 스팩 쌓기를 해야 한다. 문.사.철 (문과, 사회학과, 철학과 등 인문학과를 통침함)은 아예 취직하기를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 대부분은 공무원 시험준비를 한다고 한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취직이 안되면 졸업을 미루거나 대학원으로 진학하면서 까지 취직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 대학 교수나 연구소에 남기 위해 석,박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취직을 하기 위해 공부한다면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 그래서 석,박사가 넘쳐난다.
태어나서부터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공부해서 설사 대기업에 취직이 되었다고 인생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때부터 그 조직에 살아남기 위한 생존 경쟁은 시작된다. 자본주의 조직의 생태는 언제나 일률적이다.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조직원은 퇴출된다는 것이다. 오로지 회사의 평가 기준은 실적이고 이익 창출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대기업에 입사하기 까지 들어간 평균 교육비만 현재 환률로 계산하면 2억원 정도에 해당한다고 한다. 미국도 대기업에 들어가 제대로 승진하는 성공적인 직장인이 될려면 한국보다 더 많은 교육비가 들어가야 한다. 그러니 누가 결혼을 하고 싶겠는가. 결혼은 혼자 하나? 설령 결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누가 애를 놓겠는가? 애를 놓으면 누가 키울 것인가?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이 최고의 자살율과 최저 출산율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런 추세라면 700년 후에는 한국이라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인의 씨가 말라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대학을 가지 못한 젊은이들은? 명문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지방대학 인문계 졸업생들은?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 입사한 젊은이들은? 정규직이 아닌 1년 단위의 임시직들은? 부모가 부자가 아닌, 물려 받을 재산 한푼없는 가난한 집 자식들은? 고시원에 10년째 틀어박혀 시험 공부를 해도 계속 떨어지는 취업 재수생들은? 공부가 적성에 맞지않아 특기를 살리겠다는 견습생들은? 보장된 미래는 없고 빚만 늘어간다. 아, 답이 없다. 삶을 견디다 못해 술에 비틀거리는 젊은이들의 초상이 가슴 아플 뿐이다.
치통 (齒痛) (11/07/2014)
온종일 가을비가 내린다. 아내가 틀어 놓은 한국 가곡과 아들놈이 보내준 캄보디아산 커피 향기와 가을비가 내리는 창밖의 가을 풍광들이 나를 몇시간채 한 자리에 머물게 한다. 가을비는 처절한 기다림이라 했던가. 가을비가 좋아지면 마음에 묻어둔 누군가가 그리워진다고 했던가. 기다림은 고통이다. 고통없는 기다림이 있을까? 고통없는 행복이 있을까? 고통없는 감사와 은혜가 있을까? 모두가 고통의 강을 건넜을 때만이 느낄 수 있는 신의 선물이다.
나는 요즘 치통으로 며칠째 고생을 하고 있다. 인간의 일상에서 가장 힘든 3대 고통이 분만의 고통, 요로결석의 고통, 치통이라고들 한다. 치통은 남들이 공감할 수 없다. 치통은 고통이야 어찌 어찌 견디어 보겠는데 음식물을 씹을 수 없으니 그것이 문제다. 치통도 충치와 노후로 인해 잇몸이 부실하여 치아가 빠지는 것은 다르다. 나는 이미 어금니가 총 5대가 없다. 2년전에 윗어금니 2대를 수개월에 걸쳐 혓바닥으로 밀어서 혼자 뺐다. 작년에는 윗어금니 3대를 수개월에 걸쳐 혓바닥으로 혼자 뺐다. 그런데 이제 아래 어금니가 흔들거린다. 그래서 이번 여름에 한국 나가서 한꺼번에 수술할려고 했는데 이곳의 여러가지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서 가지 못했다. 솔직히 미국의 치과 치료비가 너무 비싸서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빨이 빠진다는 것은 늙어감이다. 죽을 날이 가까이 오고 있음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늙어감의 대표적 징후가 치아의 퇴화 현상이 아닐까. <이빨 빠진 호랑이>. 이 말만큼이나 수컷으로서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표현은 없을 것이다. 수컷의 상징인 <힘>과 <지성>이 모두 바닥으로 떨어짐을 의미한다. 체력도, 힘도, 용기도, 기백도, 에너지도, 자신감도, 두뇌의 명석함도, 두뇌의 빠른 회전도, 기억력도, 창의력도.. 그 무엇하나 옛날 같지가 않다. 일단 이빨이 빠지면 주변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 자리에서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나의 시대는 저물었음을 자각해야 한다. 주는대로 감사하며 받을줄 알아야 한다. 빼앗기든, 자진 반납을 하든, 내 소유는 점점 줄어든다. 죽을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 한다. 뒷방에 틀어밖혀 불평없이 주는대로 먹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동물 세계의 게임 법칙이다. 수컷들의 불편한 진실이다.
나는 그분의 은혜로 다행히 이날까지 크게 아픈 곳 없이 살아왔다. 나이에 비해 건강수치도 지극히 정상이다. 나는 이날까지 거의 약을 먹지 않는다. 그 흔한 비타민도 먹지 않는다. 그렇다고 강골 체질도 아니다. 다만 음식과 운동으로 조절할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제 이빨이 빠지고 있으니 몸은 점점 더 약하고 아픈 곳은 늘어날 것이다. 약 먹을 일과 병원갈 일만 남았다. 하지만 약과 병원을 정말 싫어한다. 약은 한쪽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다른 한쪽을 망가뜨린다는 피해 과다 망상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영양제나 보약이라고 하더라도 별 관심이 없다. 다행히 아내가 좋은 음식에 대해 유별난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만들어 주는대로 먹는다. 우리집에는 그 흔한 타이레놀이나 애드빌 조차 없다. 그리고 의사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 의사는 자신의 치료 행위에 대한 부작용이나 반작용, 예상 문제점에 대해 정직하게 환자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한다. 그런 사실들을 모두 이야기하면 치료받을 환자가 몇명이나 되겠으며, 병원 유지가 제대로 되겠는가. 나는 의사들의 심리적 스트레스와 도덕적 한계로 인한 갈등을 어느정도 알고 있다. 특히 나는 빈털털이로 미국에 이민오고 부터는 병원에 가지 못한다. 살인적인 치료비용 때문이다. 병원에 가고 싶어도 못간다. 살다가 언젠가는 몹쓸 병에 걸려 죽을 수 있겠지. 하지만 이 나이에 몹쓸 병에 걸린다면, 그 병원비를 내 스스로가 감당할 수 없다면, 자식들이나 아내에게 책임이 전가된다면, 나는 일체의 수술과 치료행위를 거부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낼 것이다. 또한 병원의 치료 행위로 단순히 생명만 연장하고,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삶이 변질된다면 나는 단호히 의료행위를 거부한다. 무의식 상태로 불과 몇개월 생명을 연장 하기 위해서 심폐소생술이다, 항암치료다 하는 수술 행위에 의미를 둘 수는 없다. 이것은 나의 유언이기도 하며, 나의 가족들에게 대한 부탁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아름다운 죽음을 생각하며 오늘을 산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가능한 한 동시에 충족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동병상련 (同病相憐)이라고나 할까, 내 치아가 신통치 않으니 만나는 손님들마다 그분들의 치아를 무의식적으로 자꾸 보게 된다. 의외로 이곳 한인들의 치아가 신통치 않다. 나처럼 치아가 빠져 있는 사람도 많고, 틀니나 의치도 많고, 저렴한 보조기구를 사용한 사람도 많다. 그 치아들을 통해 이민자의 슬픔을 본다. 우리네 서민들 삶의 강팍함을 본다. 치통을 통해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전해 오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우리네 삶은 꼼짝달싹 해 볼 수가 없다. 언젠가 한국의 인물 사진전에서 시장바닥의 할머니, 농사짓는 할아버지, 노젓는 늙은 어부의 흑백 사진들의 모두가 치아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걸 기억한다. 하지만 그분들의 미소는 정말 행복하였다는 것도 기억한다. 어느듯 내가 그 사진 속 모습이 되었다. 이빨이 빠진다는 것은 늙어간다는 것일뿐, 마음은 더욱 풍요로워진다는 것이겠지. 늙어감은 자연의 섭리고 순리인데 너무 가슴 아파 하지 말자. 그리고 더욱 넉넉함으로 나머지를 준비하자. 고통없는 행복은 없다네. 고통을 안고 가자.
가을의 소리 (10/ 31/2014)
여름이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여름이 갔다. 그런데 가을도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갈 것 같아 오늘은 가을의 숲 속을 걸었다. 가을 햇살이 눈부시다. 가을 바람은 새침하게 내 가슴을 파고 든다. 가을의 단풍은 성숙한 여인의 살빛처럼 농염하게 나를 유혹한다. 함께 가을의 숲 속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좋다.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아서 좋고 아무말 하지 않아도 좋다. 코트 주머니 속에 마주 잡은 손깍지의 느낌만으로도 좋고, 한쪽 어깨에 기댄 눈가의 주름살들이 세월의 넉넉함이어서 좋다. 함께 길을 걸으며 가을의 소리를 듣는다. 오고 가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낙엽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떨어지는 낙엽 소리와 발 아래 뒹구는 낙엽 소리, 그리고 내 발자욱에 고즈녁히 밟히는 낙엽 소리는 서로를 위로한다. 숲 속 가지 사이로 올려다 본 가을 하늘은 쪽빛 햇살 되어 내 마음을 적신다.
웬지 가을의 소리는 낭만이다. 마음 저편에서 울려 퍼지는 색소폰 소리와 같다. 가을은 아름다움이며 사랑이다. 가을은 그리움이며 보고픔이다. 그래서 가을의 소리는 시가 되고, 음악이 되며, 편지가 된다. 봄,여름, 가을, 겨울 중에 어디 아름답지 않는 계절이 있으며, 사랑 아닌 계절이 또 있을까 만은, 가을의 사랑은 한 사람만을 더 깊이 사랑해야 할 것만 같다. 여러 사람 속에 방황하는 사랑이 아니라, 물불 가리지 않는 철부지 사랑이 아니라, 이해관계를 따지는 저울추 사랑이 아니라, 내 생애 마지막 사랑이 될지도 모른다는, 애틋한 사랑, 주고 또 주기만 하는 사랑, 당신을 만난 것만으로도 감사한 사랑, 보고만 있어도 마음 속 눈물이 흐르는 사랑이어야 할 것 같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고백처럼..
웬지 가을의 소리는 새벽보다는 저녁 노을에 잘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새벽에는 정원에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새벽 서리를 보며 겨울이 성큼 다가옴을 느끼면서, 아직도 마무리할 준비가 안된 내 삶이 걱정된다. 가을 새벽 공기는 쌀쌀하고도 매섭기에 언뜻 다가서기가 어렵다. 내 옷깃을 여미듯 내 마음의 커텐을 드리운다. 가을의 새벽길은 혼자 떠남이다. 멀어지는 뒷모습만 남겨둔채 그리움이 해무 (海霧)처럼 낮게, 자욱하게 드리운다. 그래서 가을 새벽은 쓸쓸함이다.
가을의 낮 햇살은 따사롭고도 눈부시다. 시골 마당에 빨간 고추를 말리는 아낙이 생각나고, 들판의 누런 곡식과 가을걷이 하는 농부의 그을린 얼굴이 보인다. 가을의 들녁은 감사와 축복이다. 수확과 노력의 결실이다. 하지만 가을의 저무는 햇살에 흔들리는 억새풀을 본다. 가을 바람에 흐느끼는 갈꽃들을 본다. 누구나 모두가 잘 사는 것도 아니요, 풍성한 수확과 결실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 기나긴 겨울날을 참고 견디며, 봄과 여름동안 남들보다 더 열심히 땀흘리며 일했는데, 그래서 남 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잘 살줄 알았는데, 이건 아니지 않는가. 이제 가을은 깊어가고 저녁 노을은 물드는데 이제와서 날더러 어떡하란 말이냐, 목놓아 운다. 저 갈대처럼, 저 억새풀 처럼..
이제는 내려놓자. 내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래서 가을의 소리는 차가운 새벽보다는, 따사로운 가을 낮 보다는, 노을이 깃드는 저녁이 더 서민적이다. 저녁 들판에 서면 낯익은 풀벌레 소리, 집을 찾는 산새들의 소리가 들린다. 가을 단풍만큼이나 붉게 물든 저녁 하늘을 바라다 보면 조그맣고 초라한 내 모습이 흑백 사진처럼 노을 속에 박혀 있다. 늦가을 저녁은 인생 60살이다. 길고도 먼 길을 걸어왔다. 기억 속의 20대와 30대는 제법이나 덤직한 사내였건만, 넘어지고 부딪히면서 온몸은 상처나고 멍이 들어 여기에 조그만 노인이 되어 서 있다. 이제 부서지고 깨어지고 무엇이 남았을까. 색바래고 조각난 자존심만이 앙상한 가지에 걸려 있다. 그래도 살아서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신은 우리에게 부와 성공을 묻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행복했는가를 묻는다고 하지 않는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는가를 묻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가을날 저녁 노을은 넉넉함이며 사랑하는 여인의 따사로움이다. 가을 들녁에서 뒤돌아보면 내 삶이 참으로 허둥댐이며 가식적이고 가벼웠음이 보인다. 저 풀벌레 소리처럼 무상이고 무념인 채 무엇이 정말 소중하고 귀한지 생각 좀 하고 살자.
가을의 밤하늘은 저녁 노을이 있기에 더욱 깊어진다. 가을 밤하늘의 별들은 깊고도 빼곡하다. 가을 밤은 나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려준다. 이 소중하고도 비옥한 시간들이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데 쓰임받도록 기도하고 간구해야 한다. 잘 살았던 못살았던, 성공했던 실패했던, 부자이던 가난하던, 이 깊어가는 가을밤에 그게 뭐 대수인가. 이제는 진정한 나를 찾아야 한다. 안도현 시인의 <가을 엽서>에 이런 구절이 있다. “ 내가 가진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 그대여 / 가을 저녁 한때 / 낙엽이 지거든 물어 보십시오 / 사랑은 왜 / 낮은 곳에 있는지를//
가을의 숲 속은 길가와는 가을의 소리가 다르다. 지나가는 길가의 가을 모습은 아름다움으로 보여짐이다. 타인에 의한 의식됨이며 가식적이고 가공됨이다. 가을의 숲 속을 천천히 걸어보자. 숲 속은 있는 그대로의 가을 모습이다. 편안함이다. 담담하게 살아가는 모습이다.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알지만 호들갑 떨지도 않는다. 이제 멀지 않는 세월에 헤어져야 함도 가을 숲은 알고 있다. 그래서 숲 속은 더욱 함께 의지하며 사는지도 모른다. 자연의 만물이 신과 대화하는 가을의 소리를 가만히 귀기울려 들어보자. 가을은 가을을 듣는 사람마다 다른 모습이다.
콜럼버스의 달걀 <후편>(10/24/2014)
이 글은 MBC <지구촌 리포드> 김상운 앵커가 쓴 <역사를 뒤바꾼 못말리는 천재 이야기> 책에서 일부 인용함을 밝힌다. 콜럼버스는 1492년 8월 3일, 스페인 여왕의 지원을 받아 첫 항해에 나선다. 항해 목적은 금이었다. 120명의 선원으로 스페인을 출발해서 작은 배 3척에 나누어 타고 10월 12일 카리브해 서인도 제도에 상륙했다. 인도인줄 잘못 알고 인디언이라 불렀다. 서인도 아이티에 도착했을 때 원주민들은 모두 벌거숭이 상태였고, 칼을 들이대자 신기한듯 달려와 음식과 물을 주며 환대했다. 이때 인디언들은 몸에 작은 금붙이를 갖고 다녔다. 콜럼버스는 인디언들을 족치면 더 많은 금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39명의 선원들을 섬에 남겨둔 채 귀국한다. 그는 스페인 여왕에게 더 많은 배와 인력을 요청하고 결국 17척의 배와 1,200명의 선원을 지원받는다. 선원들은 대부분 전직 군인이거나 범죄자들이었다. 이들이 아이티 섬으로 돌아와보니 39명의 선원들은 보이지 않고 사람 뼈다귀만 나뒹구르고 있었다. 그 사연은 남아있던 39명의 선원들은 인디언 여자들을 5명씩 거느린채 금을 캐는데 혈안이 되었고 원주민들을 못살게 굴었다. 그러던 차에 식인마을에서 술에 취해 잠든 사이에 식인 인디언들이 이들을 모두 살해한 것이다. 그때부터 콜럼버스는 인디언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기 시작했다. 한 인디언 마을에서는 마을 사람 700명을 전원 생포해 칼과 창으로 찔러 죽었다. 3차, 4차 항해시 만행은 더욱 심해졌다. 그는 인디언들을 죽일 때 인력을 낭비할 필요없이 맹견 <매스터프>를 활용하기로 한다. 이 맹견들은 인디언들의 두배나 되는 몸집으로 한마리가 평균 백명이상의 인디언들을 물어 죽였다고 한다. 영국산 맹견 매스티프. 120킬로그램이 넘는 몸무게의 맹견중의 맹견. 콜럼버스는 아메리카에 건너 갈 때 이 맹견들을 싣고 갔다. 인디언들을 조직적으로 살육하기 위해서이다. 이 맹견은 실제로 인디언 어린아이들을 통째로 집어 삼켰으며 어른들도 한입에 희생되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여러 마을의 인디언들을 1,500여명 생포해 돼지우리 같은 곳에 가두어 놓고 밖에서는 맹견들이 지키게 했다. 이 1,500명을 유럽으로 끌고가 노예로 팔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리속에 갇혀 먹지 못한 인디언들은 200명만 살아남아 노예로 팔려갔다. 서인도 제도에 정착했던 스페인 사람 가운데 ‘라스 카사스’라는 신부는 이 당시의 참상들을 <인도 제도의 유린>이라는 책으로 집필했다. “콜럼버스는 석달마다 한번씩 일정량의 금을 캐오도록 의무화했다. 할당된 금을 캐오면 구리 토큰 한개씩을 나누어주면서 목에 걸고 다니게 했다. 목에 토근이 없는 인디언들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붙잡혀 손목을 잘리우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아이티에는 금광이 없었다. 강가의 모래에서 채취하는 사금이 전부였다. 당연히 금을 캘 수가 없어 도망가면 맹견 매스티프의 먹이가 되었다. 결국 많은 인디언들은 카사바라는 독약을 먹고 자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콜럼버스가 아이티섬에 도착한 2년동안 전체인구 3십만명 가운데 1/3인 1십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1508년에는 6만명밖에 남지 않았고, 1548년에는 불과 500명만 살아남았다. 1650년에는 원주민의 씨를 완전히 말려버린 것이다. 멕시코 인디언들도 비슷한 운명이었다. 1519년 2천5백만명에 달했던 인디언들은 1605년에 1백만명으로 곤두박질했다. 백인들의 착취와 만행을 대변하는 수치이다. 자칭 기독교인이라는 스페인 사람들은 재미로 사람을 죽였다. 심지어 칼이 잘 드는지 시험해 보기위해 인디언들을 두 동강이로 베곤 했다. 남자들은 금광에서, 여자들은 농장에서 혹사시켰다. 혹사당한 여자들은 젖이 나오지 않아 아이들을 굶겨 죽었다. 쿠바에서는 석달동안 무려 7천명의 갓난아이들이 굶어죽었다. 이렇게 많은 인명이 그렇게 짦은 기간에 죽어가기는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을 것이다. 나는 인간의 본성과는 너무도 낯선 만행들을 두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나는 지금 이책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떨고 있다.”라고 서술했다.
인디언들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몇가지 이유는 첫째 철제 무기가 없었다. 둘째 그들은 백인을 하늘에서 내려 온 신으로 착각했다. 세째 유럽 군대에 맞서 싸울 탁월한 지도자가 없었다. 미국 전미교회 협회에서는 ‘콜럼버스 데이가 축하의 시간이 아니라 반성과 참회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백인들의 대량학살, 탄압, 타락의 역사가 계속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콜럼버스는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서는 무자비한 살인도 마다하지 않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욕망의 화신이었다. 콜롬버스는 2차, 3차, 4차 여행을 모두 실패하고 여왕의 분노만 산채, 북미대륙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발견한 섬들이 아시아 땅인줄 알았다.
굳이 콜럼버스에게서 배울 점이라면 <콜럼버스의 달걀>이다. 그가 1차 항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오자, 질투어린 사람들은 말한다. “누구나 배를 타고 동쪽으로 항해하면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다.” 는 것이다. 그렇다. 모든 일이 실행하기 전에는 <고정관념>이 두려움과 불안으로 변하여 아무도 행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누군가 이루고나면 그 결과를 폄하한다. 그래서 콜럼버스는 그 대중들에게 달걀을 아무런 도구 없이 세워보라고 한다. 역시 아무도 세우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살짝 밑바닥이 금이 가도록 눌러서 세운다. <발상의 전환>이다. 아무도 신대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을 떄, 그만이 확신하고 추진한 것이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다. 하고도 후회하고, 하지 않고도 후회할 것이라면 과감히 실행하고 후회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자>. 백날 이야기하면 뭘하나, 생겨 먹은게 그 모양인데..
콜럼버스의 달걀 <전편> (10/17/2014)
오늘은 미국 국경일 중 하나인 콜럼버스 데이 (10월 두번째주 월요일)다. 나도 미국 시민권자의 한사람으로써 가능한 한 미국의 입장을 옹호하고 싶다. 하지만 콜럼버스가 왜 얼마 되지 않는 미국 국경일 중 하나를 버젓이 차지하며, 콜럼버스와 미국 역사는 무슨 관계인지 한번은 집어야 할 것 같아 이 글을 쓴다. 콜롬버스는 미국 땅에 한발도 들여놓은 적도 없고 미국이라는 북미 대륙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죽었다. 그리고 그는 가는 곳마다 수많은 원주민을 죽인 살인마다. 하지만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콜럼버스가 최초로 미국 신대륙을 발견한 것 까지만 나와 있을 뿐, 그외 사실은 은폐되어 있다. 그렇게 그가 세계사에서 존경받을만한 위대한 인물인가?
우리는 콜럼버스 그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역사는 가쉽이고 승리자의 소설이라고 하지만, 역사는 상대성이다. 침략한 자가 있으면 침략당한 자가 있고, 빼앗은 자가 있으면 빼앗긴 자가 있다. 강탈과 수탈과 약탈의 차이일 뿐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자가 의로운 자는 아니다. 남을 죽이고 빼앗은 자가 이웃을 사랑하는 자도 아니요,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도 아니다. 전쟁과 종교는 상호 모순이다. 하지만 역사는 전쟁의 정당성과 종교의 합리성을 강제한다. 미국이 역사의 죄 값을 받아야 마땅할, 말 같지도 않은 명분으로 이라크를 공격해서 수많은 아이들을 죽였듯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벽으로 가두어두고 무차별 공격으로 민간인들을 학살하듯이, 모든 전쟁은 모순의 시작이다.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하지 못했으면 북미, 중미, 남미 원주민들은 못살고 불행하고 짐승처럼 살았을까? 서양인들이 말하는 그들의 기독교를 몰랐다고 그들은 악인이고, 창조주 하나님에게 버림받았을까? 정말 하나님은 그들을 저주받을 악인으로 생각하실까? 아마도 원주민들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행복하게 잘 살았을 것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서방 유럽 강국들은 아메리카를 서로 자국 식민지로 만들기에 혈안이 되었다. 이를 아메리카 <초기 식민지 시대>라고 한다. 15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유럽은 <중세 시대>를 벗어나 <르네상스 시대>에 돌입했다. 해양 기술의 발달과 과학 혁명의 토대 위에 지리학, 나침반, 선박 기술, 무기의 발달로 유럽은 전세계를 식민지로 잡아 먹기 시작한다. 지금의 패권주의 미국도 이 당시에는 유럽 각국의 식민지에 불과했다. 플로리다, 뉴멕시코, 캘리포니아는 스페인의 식민지, 뉴욕주는 네덜란드의 식민지, 델라웨어 강 유역은 스웨덴의 식민지, 허드슨 만에서 미시시피 강까지, 심지어 뉴멕시코 만까지는 프랑스 식민지, 알래스카와 베링 해협은 러시아 식민지였다. 하지만 영국은 미국의 식민지화를 17세기에 들어서야 시작하는, 그 이유는 스페인의 침략 위협에 주눅이 들어 눈치를 보다가 엘리자베스 1세때부터 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배경은 상업중시 정책, 과잉인구, 종교적 갈등 (카톨릭과 성공회, 성공회와 청교도간의 갈등) 등이다. 실제로 1610년 이후부터 미국 독립이전 100년동안 영국은 5만명의 죄수들을 미국에 실러 날랐다. 영국은 버지니아, 뉴잉글랜드와, 뉴햄프셔, 뉴욕,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 캘로라이나, 조지아는 영국의 직할 식민지로, 펜실베니아, 델라웨어, 뉴저지, 메릴랜드는 영국의 영주령 식민지로 편입된다. 1620년 메이플라워를 타고 메사츄세츠에 도착한 한무리의 청교도인들이 오늘의 미국 근간이 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 이전부터 유럽 주류사회에서 멸시받고 천대받던 많은 약자들이 오늘날 미국인들의 선조들이다. 그들은 계약직으로 건너와 자신의 왕과 귀족들을 위해 미리 들어와 있던 다른 유럽 국가들의 군인들과 싸우고, 또 원주민들과 싸운 용병들이었다. 그렇게 원주민에게서 빼앗은 땅을 차지하고는 아프리카의 노예들을 수입하여 경제적 부를 축적한 것이다. 실제로 1620년부터 1865년까지 597,000명의 흑인 노예들이 미국으로 수입되었으며, 총 1천2백만명의 노예 중 5%가 아프리카로 부터 데려온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종놈의 자식>들이 출세한 것이니, 지금도 유럽의 뼈대있는 <양반 자식>들은 미국을 우습게 보는 것이며, 백인이 흑인을 무시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침략 역사 과정에서 기독교 유럽인들이 얼마나 수많은, 죄없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잔인하게 죽였는지 역사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서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그들과 역사 앞에 참회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그런 참혹한 만행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침략의 만행과 잘못을 한국과 아시아에게 사과하지 않듯이, 미국은 미국 주인인 인디언들에게 사과도 보상도 하지 않았기에 미국의 역사는 자신과 세계 앞에 공허하고 처참한 것이다. 그나마 미국이 미국 원주인 인디언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이라니, 그나마 그가 흑인이기 때문인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1451~1506년)는 이탈리안계 유대인이었으니 그의 어머니가 스페인계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대는 스페인 무적함대 이사벨라 여왕 시절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제로 등이 동시대 인물들이고, 그 뒤가 유럽의 변방 조그만 섬나라 영국을 세계 최강국가, 해가 지지 않은 나라로 만든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1533 ~1603년) 시대로 패권이 넘어가는 과도기다. 콜럼버스는 스페인 성직자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1492년 4월 지구 동쪽 항해를 허용한다는 <산타페 협약>이 체결되었다. 이 협약에 따라 콜럼버스는 세습권으로서 제독의 지위를 획득하는 한편, 종신직으로서 총독의 지위를 약속받았다. 또한 새로이 발견된 지역으로부터 얻어지는 모든 이익의 10%를 취득하고, 앞으로의 교역활동에 대해 최고 1/8의 자본참가권을 승인받았다.
집나간 강아지의 간증 (10/10/2014)
저는 코코라는 이름의 강아지입니다. 저는 6살인지, 7살인지 제 나이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유기견 출신입니다. 지금 이 칼럼을 쓰시는 분이 제 주인님이시고, 4년 전에 저를 가족으로 따뜻하게 받아 주셨습니다. 종류는포메라니언 (Pomeranian)이며 독일산이고, 조상은양치기개였다고합니다. 한때는 19세기영국의 빅토리아여왕이 제조상을너무 사랑해서그녀가 죽을때 무덤에 함께 묻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저는 저의교만으로 2박 3일동안 집을 나갔다가 죽음 직전에 살아서돌아온 제 이야기를 간증하고자 합니다. 저는 개보다는 고양이에가깝다고 할 정도로 성격이 까칠하고 저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만 꼬리치는 철저한 이기주의 개입니다. 저는 <믿음>이 약한 개입니다. 저는 눈앞에서는 주인님의<믿음이> 개라고 위선을 떨지만, 실제 <따름이> 개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저는 이 나이를 먹도록 똥오줌을 가릴줄 모릅니다. 제 기분이 좋지 않으면 아무곳이나 싸버려 제욕구를 과시합니다. 그래서 매일 주인님은 내 배설물을 치우시는게 퇴근 후 일과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님은 나를 혼내거나 때린 적이 한번도 없으십니다. 또 주인님은 저를 목줄에 메어 두지 않습니다. 주인님은 개나 사람이나 <역지사지>라고 하십니다. 저는 집안의 어느 곳이나 제가 가고 싶은 곳에서 먹고 자고 싸는 <개팔자>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날씨가 좋아 나를 정원의 소파에 있게 했습니다. 저는 저를 구속하는 주인님을 골탕먹이기로 결심했습니다. 집을 가출하는 것입니다. 저는 날카로운 발톱과 고양이처럼 유연한 몸매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원의 울타리 땅을 파서 조그만 제머리만 빠져나갈 공간만 있으면 탈출은 식은 죽먹기입니다. 저는 제가 제일 잘 난줄 알았습니다. 저는 끝없는 자유를 갈망했습니다. 저는 그런 명분으로 가출했습니다.
집을 나가보니 저를 <구속> 하는 사람이 없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자유롭게 다녔습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아무도 저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점점 다리에 힘도 빠지고 배도 고파왔습니다. 집이 그리워졌습니다. 집을 찾으려고 아무리 기억을 되살려서 걷고 또 걸어도 전혀 낯선 곳만 나오는겁니다. 어느듯 해가 뉘엇뉘엇 지고 밤이 찾아옵니다.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주인님 품안에 안겨 바라보던 아름다운 밤하늘이 아닙니다. 숲 속으로 숨었습니다.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내립니다. 숲 속에는 내가 알지 못하던 동물들의 울음소리와 번뜩이는 눈빛들이 저를 위협하고 공격을 합니다. 마구짖어도 보고 대항도 해 보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가시덩쿨 나무 속으로 숨었습니다. 하지만 제 몸에는 온갖 가시들이 박혀 버렸습니다. 가시에 긁혀 상처가 나고 피도 났습니다. 배는 너무 고팠지만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겨우 개울 가의 물로 배를 채우고서는 낮에는 주인님을 찾아서 걷고 밤에는 숲 속으로 들어가서 숨기를 반복했습니다. 삼일 밤낮을 굶주린채 보내고 나니 죽음이 제게다가옴을 느꼈습니다. 나는 이제 이렇게 죽는구나. 몸은 상처와 뼈만 앙상한체, 나의자랑스런 털은 흙탕물에 쥐새끼 형상이 되었구나. 나의 <교만과 아집>은 결국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져서 흉칙한 들짐승의 시체가 되어 죽는구나. 그동안 보살펴 주신 주인님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큰지 그때서야 깨닫게 되더라구요. 그러고 보니 제가 주인님을 선택한 것이아니라, 주인님이 나를 선택하시고 나를 아무런 <대가없이> <베푸신은혜>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더라구요. 저는어금니를 깨물었습니다. 죽더라도 주인님께 용서를 구하고, 주인님 품 안에서 죽자, 그리고 주인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아침이 밝아오자, 마지막 죽을 힘을 다해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낯선 아주머니가 나를 발견하고는 나를 자기집으로 데려갔습니다. 낯선 사람이라 잠들지도 못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갑자기 주인님 목소리가 들리고 제 눈에 주인님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기절하는줄 알았습니다. 주인님은 저의 더러운 몸을 품안에 안으신채, 집으로 데리고 오셔서 저를 씻기고 치료해 주시고 먹이셨습니다. 저는 하루동안 거의 혼절상태로 있다가 깨어났습니다.
깨어나서 알았던 사실인데요, “제가 간구하며 기도하는 순간 이전부터, 주인님은 이미 행동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가출한 순간부터 주인님 가족들 모두가 총 출동하여 저를 찾았다고 합니다. 영국의 작은 아기씨, 캄보디아의 막내 도련님, 한국의 큰 아기씨, 워싱톤의 아기씨 남자 친구분, 주인님 내외분,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인터넷에 제 사진을 올린다, 벽보를 만든다, 인근 지역 유기견 센터에 광고를 한다, 가가호호 찾아 다니며 저를 수소문하신다 등등, 그렇게 해서 저를 기적처럼 찾았다고 합니다. 저를 보호하고 계시던 분도 유기견 센타를 알아볼려고 인터넷을 하다가 제 분실 광고 사진을 우연히 보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기적이 있다고 하지만, 기적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것도 그때야 깨달았습니다. 저는 주인님께 <순종>의 삶을 살기로 맹세했습니다. 저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고> <주인님을 위해>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이제는 주인님 내외분의 각별한 보살핌으로 기력을 완전히회복했습니다. 그리고 더 신나는 것은 아침에 주인 마님과 함께 다운타운 가게로 출근해서 저녁에 함께 퇴근합니다. 혼자 집에서 지내는 것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된다는 배려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벌써예쁜 여자 친구도 사귀었습니다. 저는 주인님께 <구속된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믿음>은 <순종>이라는 것도,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도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주인님과 가족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추억의 음악 다방 (10/03/2014)
요즈음 나는 아내와 음악다방을 자주 찾는다. 그곳에서 추억의 음악들을 들으며, 각자의 추억에 잠기곤 한다. 시대가 좋아져서인지 한국에는 포탈 사이트에 음악다방 채널이 20여개 이상 음악 장르별로 운영되며, 각 채널마다 24시간 방송된다. 운영방식도 우리 세대가 40년전 학창시절의 음악 다방과 마치 유사하다. 시간대별로 DJ가 있고 신청곡과 사연을 읽어준다. 가끔은 실수도 하고 멘트도 버벅대는, 약간은 덜 세련된 DJ가 그래서 더 정감이 가는지도 모른다. 그런 한국 음악 방송을 미국에서 셀폰으로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셀폰을 선물받은 와이파이 스피커에 연결하니 그럴듯한 오디오 시스템이 되어서 여간 위안이 되지 않는다. 요즘 아내는 집안 일을 할 때나, 책을 보거나 차 한잔을 마실 때나, 가게에 나가거나, 심지어 운전을 할 때에도 이 음악 방송을 켜 놓고 있으니 하루를 거의 음악다방과 함께 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세대는 <음악다방 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0년대 학생들은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대학교 앞 음악다방은 학생들의 아지트였다. 학교 교실, 도서관, 아니면 음악다방에 가면 대부분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음악 다방에서 살다시피 하는 애들을 죽돌이라고 했는데, 개들은 음악 뿐만 아니라, 여학생들 정보도 꿰고 있었다. 단체 미팅이나 데이트 날이면 명동이나 종로의 유명 음악 다방에 가는 호사를 누리기도 한다. 음악 다방은 네가지가 기억난다. DJ와 자욱한 담배 연기와 커피, 그리고 엄청난 양의 LP판 레코드다. 유명 다방의 유명 DJ는 요즈음 연예인 빰을 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신청곡을 다방 레지에게 주면 DJ가 선별해서 틀어준다. 인기 DJ는 여대생들을 몰고 다녔다. 장발 머리에 꽃칼라 셔츠에 목에 두른 스카프, 달라붙는 나팔바지, 도끼빗은 DJ의 상징이었다. 거기다가 해박한 음악 지식, 특히 팝송에 대한 지식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내 친구 형도 부산 남포동 음악다방에서 유명 DJ를 하고 있었는데, 한때는 그 형이 너무 부러워서 나도 DJ가 되고 싶은 적도 있었다. 또 대부분의 남학생들이 그 음악 다방에서 담배를 배웠을 것이다. 조명이 어두컴컴한 구석에 앉아 줄기차게 담배를 피워대며 세상 고민은 혼자 다 하는지 심각한 얼굴을 하던 장발 청년 시절이다. 커피도 귀하던 시절이니 커피 한잔 시켜서 나눠 마시기도 다반사였다. 특히 나같이 시골에서 상경한 촌놈들은 대부분이 하숙생, 아니면 자취생이므로 집에 오디오 전축이 없었다. 그러니 음악을 들을려면 음악다방에 갈 수 밖에 없었다. 또 그곳에 가야 여자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친구들 중에 얼굴도 되고 연애 기술이 출중한 놈이 있으면 그 놈을 통해 미팅 주선이 되는 행운도 맛볼 수 있었다. 그러니 학창 시절의 상당 시간을 그 음악 다방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오래된 이야기다. 40년이라는 세월이 결코 짧지가 않은데.. 그 시절의 노래 한곡마다 추억과 사연이 하나씩 있는 것 같다. 우리 부부는 나이는 한살 차이지만 학번이 같아서 같은 시대를 살았다. 살아온 환경은 나는 서울에서, 아내는 일본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으므로 공감되는 부분은 다르지만 각자의 추억은 새롭고도 소중하다. 추억이란 그 당시의 고통과 아픔은 희석해 버리고, 그리움과 애틋함만 남기는 것 같다. 그래서 추억은 아름다움으로 남는다. 아내와 같이 음악을 들으면서도 각자의 그리움은 다를 것이다. 서로가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추억도 있을 것이고, 혼자서만 간직하고픈 그리움도 있을 것이다. 혼자만의 추억은 존중되어야 하며, 비밀로 간직되어야 두고두고 소장할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아내의 학창시절이나 처녀 시절에 대해 본인이 들려준 이야기 이외에는 추가 심문(?)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그것이 부부간의 최소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흘러간 음악을 들으면 나이가 늙어감을 안다. 늙어간다는 것은 용서할 일이 많아진다는 것일게다. 만약 다시 그 시절의 사람들을 만난다면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용서를 구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추억의 강 저 건너편에 서 있으니 만날 수도 없고 용서를 구할 수도 없다. 그래서 용서는 내가 내 자신에게 하는 것일게다. 아니 그분에게 나를 대신하여 용서를 위탁하는 것일게다. 추억과 용서가 많아질수록 내 삶은 느리게 흘러간다. 맨날 허구헌 날 바쁘게 산다 함은 일상생활이 체바퀴 돌듯이 반복되는 생활을 말함이요, 투쟁의 삶이며, 미래를 향해 현재에만 얽메어 사는 삶이다. 그래서 바쁨 속에 추억이 묻혀지고 과거가 잊혀진다. 또한 추억에는 잊혀지지 않는 아픈 추억도 있다. 아픈 추억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상처만으로 남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아픔과 상처들은 있다. 비록 그 아픔들이 내 마음 깊이 자리 잡아 상처 자국은 남겼지만, 이제는 아물어서 아프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그 아픈 추억을 잊을라 하면 꺼집어 내어 꼽씹고 원망하기를 반복한다면 아문 상처를 덧나게 하는 자신의 어리석음이다. 동방의 성자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자기 자신 외에 자신을 상처 입힐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했던가. 공지영씨 말대로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다.> 그래서 늙어감은 서로를 용서하고 상처를 허락하고, 공감과 이해가 늘어나는 것일게다. 그래야 생각의 여유로움과 삶의 느림이 이루어질 것이다. 아름답게 늙어감과 추억의 옛 음악과 가을이 익어가는 소리.. 이 얼마나 멋있고 대단한 축복인가…
색(色)과 계(戒) (09/26/2014)
색(色)을 인간의 욕망이라고 하고, 계(戒)를 삶의 규범이라고 하자. 여러분은 어느 쪽에 가까운 사람인가. 아마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욕망을 억제하면서, 올바르고 모범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복잡하고 다양한데, 우리 사회는 욕망을 드러내서는 안되는다는 사회의 묵시적 계율때문에 욕망의 원형조차 알 수가 없다. 르네 자라르는 “인간은 강렬하게 욕망하면서도, 무엇을 욕망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한국인 사회에서는 돈, 섹스, 권력 어느 것이든, 욕망을 드러내는 사람이 존경받기가 좀체 어렵다. 권력을 얻고 싶어도 권력의지를 숨겨야 하고,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망을 드러내서도 안된다. 하물며 섹스나 성적 욕망에 대해서는 거의 성직자나 금욕주의자 수준을 요구하며, 조금만 진심을 이야기 해도 색녀, 색골로 매도당한다. 반면에 나의 욕망을 감추며 사는데 익숙하니까, 상대방의 욕망을 난도질하는데는 귀신같은 능력을 발휘한다. 사회 지도층이나 지식층이 조금만 욕망이 드러나면 엄청난 스캔들로 비화되며 온 나라 전체가 들썩이면서 당사자들을 매장시켜 버린다. 인사 청문회를 봐도 그 수준이 결백주의자나 순백색주의자 같다. 욕망이 최고 가치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그 속에서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청렴결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청렴하다는 것이 더 이상한 것 아닌가.
이를 <희생양 메카니즘>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 만장일치 폭력이라고도 한다. 마녀 사냥과 같은거다. 대표적인 예로 예수를 죽일 때 대제사장 가야바가 했던 말이다. “한사람이 백성을 위해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이런 폭발적인 폭력과 희생을 통해 사회와 민중은 질서와 평화를 되찾는다. 베드로가 예수를 세번 부인하는 것은 지극히 민중적인 행동이다. 그런 다음 세월이 지나면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를 영웅시하고 신성화한다. 그 사례가 노무현 전대통령이다. 재임시절 전 국민이 대통령을 비하하고 물러나라고 데모하다가 자살하고 나니까 영웅시하는 것이다. 또 다른 사례는 신정아씨와 변양균 실장 스캔들이다. 중년의 남자가 바람을 피운 지극히 개인사적인 일탈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적지 않은 중년 남자들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 그것이 그토록 오랜동안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을 대단한 사건인가. 변실장만 껄덕거렸나. 일국의 국무총리도, 또 다른 지도층들도 껄떡거렸는데.. 또 다른 스캔들이 있다. 2010년 11월 중국 상하이에 있는 한국 총영사관에서 근무하는 허영사와 다른 영사들이 <덩여인>이라는 여권 브로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건으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진 적이 있다. 이들 영사들은 모두 일류 명문대학과 고시 출신인 사회 엘리트들이다. 그런데 허영사가 <덩여인> 남편에게 보낸 이메일을 보면 허영사의 진심을 알 수 있다. “저는 덩씨와의 사랑을 위해 직장도, 가족도, 사회적 체면과 세간의 평가, 부모님의 기대까지 모두 버렸다.” 라고 썼다. 이런 진보적 지식인들은 기본적으로 ‘계 (契)’, 즉 규범의 세계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들이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 했고, 늘 칭찬받았으며,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고, 모범생이었으며, 규범을 어긴 적이 거의 없는 것이다. 이들은 남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설교하고 강의를 하는 사회 지도층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훌륭한 사회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법학자이자 대학 교수인 김두식씨는 <욕망해도 괜찮아>라는 책에서는 이를 <지랄 총량의 법칙>으로 표현한다. 인간은 욕망해야할 <지랄>, 즉 에너지, 청춘이기도 하고, 프로이드가 말하는 <이드(id)>이기도 하다. 즉 색(色), 욕망의 영역에 해당하는 힘이다. 다른 말로 섹스다. 이런 지랄의 총량이 있는데, 이를 청소년기에 대부분 소진하면 중년이 되어서는 지랄할 욕망이 얼마 남지 않아 통제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학교, 도서관, 학원, 고시원을 오가며 오로지 공부만 하는 바른생활(?)을 살도록 강요받았기 때문에 중년에 가서 늦바람으로 터져 버린다는 것이다. 서양 속담에도 남자는 <단테형>과 <괴테형>이 있는데, 젊었을 때 많은 여자와 교제한 남자는 안정된 결혼 생활을 할 확률이 높은 반면, 젊었을 때 여자를 몰랐던 남자는 늦바람이 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중년 남자들은 그 내면에 아직도 자신의 <소년>이 살아 있기 때문에 성적 유혹에 약하다는 것이다. 탕웨이 주연의 <색.계>라는 영화를 꼭 한번 보기를 권한다. 야한 장면도 있으므로 자녀들과 함께 보아서는 곤란하다. <계>를 지키기 위해 <색>을 선택한다는 모순과, 두 남녀 주인공이 펼치는 <색>과 <계>의 경계선을 알 수 있다.
김두식 교수는 욕망을 <B형 간염 바이러스>와 같다고 한다. 욕망은 인간이 태어날 때 부터 함께 공존한 바이러스와 같다. 그 욕망(바이러스)을 억제하고 부정하고 없애겠다고 투쟁할 때 몸에 이상(간염, 간경화, 간암)이 생기는 이치와 같다. 욕망을 인정하고, 내면에 꿈틀거리는 욕망을 잘 다독거리며, 자신만의 공간을 지키고, 깊은 내면을 가까운 이웃과 나누라는 것이다. 나는 <계>가 강한 사람을 체질적으로 싫어한다. 근본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너무 <계>의 경계선을 분명하게 긋고, 그 자신의 <계>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이단화하는 자체가 못마땅하다. <색>도 그 자체일 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듯이, <계>도 그 자체일 뿐이다. 자신의 직분과 직위 자체가 <계>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제 나이 육십에 그런 <계>에 옭메어 나의 자유로움을 속박당하기는 싫다. 나는 <색>도 <계>도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지나침이 없이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기를 원한다.
집 나간 가족 (09/19/2014)
집 나간 아내가 돌아왔다. 집을 나간지 75일만이다. 결혼해서 31년을 살면서 그동안 아내가 수차례 집을 나갔지만 이번처럼 기다림이 지겹고 힘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당초에는 60일만 한국에 가 있겠다고 하였는데 15일이나 더 늦어진 것이다. 늦어진 사연이야 사위와 큰딸이 ‘장모님이 모처럼 나오셨으니 좀더 대접을 하고 싶다’는 강권(?)에 못이겨서라나, 어쨌다나. 모처럼은 무슨 모처럼? 매년 2달씩 혼자 나가면서 무슨 !! 그리고 아직은 사지육신 멀쩡하고 정신이 말똥 말똥한 건장한 (?) 남편을 75일씩이나 혼자 지내게 한다는게 말이나 되나? 지고지순한 나도 사람인지라 집나간 아내를 기다리는 동안 섭섭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였다. 그래서 아내가 집에 오면 일주일동안은 삐지고 말도 섞지 않으려고 결심을 단단히 했다. 그런데 막상 수척해진 아내의 얼굴을 보는 순간, 무사히 돌아왔다는 반가운 마음에 내 마음의 방어벽은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문제는 집에 도착한 아내의 태도가 너무나 태연한게 아닌가. 마치 집 근처에 잠깐 마실이나 다녀온 것 처럼 “그동안 별일 없었죠? 잘 지내셨죠?” 만으로 장기간의 별거생활에 종지부를 찍는게 아닌가. 헐~. 나는 일언반구 아무런 반항도 해 보지 못하고 또 다시 종전처럼 길들여진 채로 평온하게 살고 있다. 역시 나는 길들여진 나약한 남자고, 아내는 길들이는 강한 여자임을 다시금 일깨워 준 단막극이다.
아내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이번에는 둘째 딸이 집을 나갔다. 2년 뒤에 돌아오겠다며 영국으로 가버렸다. 막내 아들놈은 캄보디아 선교를 간다고 집을 나간 뒤,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큰딸은 한국으로 시집간다고 집을 나간 뒤, 언제 돌아올지 기약도 없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아빠, 건강하세요.”라는 빈말만 남기고 떠나간다. 무슨 건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지도 않고 말만 건강하라면 건강해지는 건가. 엄마에게는 모두가 물질로 보답하면서, 아빠에 대해서는 모두 말 뿐이다. 엄마와의 차별이 너무 심하다. 나는 집나간 우리 가족이 너무 밉다. 집을 나가는 자식은 각자의 목적이 있기에 떠나가면 그만이지만, 집에서 기다리는 아버지는 무작정이고 무조건이다.
<기다리는 아버지>의 대표라면 누가복음 15장 11절에서 32절의 <돌아온 탕자>의 아버지가 아닐까. 우리에게 익숙한 그림 한점은 렘브란트가 그린 <돌아온 탕자>다. 이 그림은 렘브란트 자신이 동일한 주제로 젊은 시절부터 그렸는데, 그가 죽기 얼마전에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을 핸리 나우엔 신부님이 <탕자의 귀향>이라는 책을 통해 더욱 자세히 설명했다. 이 책에서 인용하면 먼저 <아버지의 시선>이다. 매일같이 아들이 돌아올 그 길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눈이 짓물게 된 아버지의 오른쪽 눈은 초점이 없다. 시력을 상실한 노인은 눈이 멀기까지 우리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다. 그 다음은 <아버지의 손>이다. 아들을 감싸안고 있는 아버지의 두손은 다르다. 왼쪽 손은 힘줄이 두드러진 남자의 손이고, 오른쪽은 매끈한 여자의 손이다. 아버지의 강함과 어머니의 부드러움, 즉 화해와 용서, 치유가 이 두손에 함께 담겨 있다. 세번째는 <탕자인 작은 아들 모습>이다. 샌들이 벗겨진 왼발은 상처투성이고, 오른발은 망가진 샌들이 겨우 부분적으로 감싸고 있어 그의 삶이 얼마나 가난에 찌들었는지 보여준다. 모든것을 잃은 자의 모습이다. 죄수와 같이 삭발한 머리는 스스로 죄인임을 나타낸다. 아버지에게 안겨있는 탕자의 모습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이 하나님의 품 안임을 암시한다. 그림 뒷배경의 사람들도 각자의 의미를 갖고 있다. 다리를 꼬고 앉아서 탕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남자는 화가 렘브란트 자신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 그림을 그릴 때 그는 젊은 시절 방탕하게 살다가 노년에 파산을 하였으며, 아내와 자식들은 모두 죽고, 묘지를 살 돈도 없는 비참한 노인이었으며 얼마 살지 못함을 알고 있었다. 그의 자화상이었으며, 하나님께 무릎을 꿇은 모습을 통해, 마지막 희망이 하나님의 자비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는 그 다음해 죽었다. 그리고 탕자의 어머니는 언제나 자애로운 마리아시며, 우리 모두의 어머니시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탕자의 형>은 우리 자신인지도 모른다. 모범적이고, 열심히 살려고 하고, 법을 준수하고, 내 몫은 분명히 챙기고, 손해보고는 못참고, 직분과 사회적 신분도 어느정도 높고, 재산도 살만큼 모았고, 누구에게나 떳떳한 우리 사회의 중산층들 말이다. 그러기에 남에게는 인색하고, 원리원칙주의자이며, 남을 비난하거나 비평하기 좋아하고, 가난한 자나 약한 자를 잠재적으로 무시하고 경멸하는, 하지만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며, 용의주도하고 약삭 빠르며, 세상 이치에 밝은, 혼자서 잘난 우리 자신 말이다. 그리고 그림 뒷편 어두운 곳에 거의 희미하게 그려진 <탕자의 여동생>이 있다. 탕자의 누나라는 해석도 있는데, 나는 다음 기회에 존 파이퍼 목사가 쓴 <탕자의 여동생>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아무튼 아버지는 기다리는 사람이다. 자신의 눈이 멀도록 가족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나는 이민와서 우리 자식들이 한참 힘들어 하며 아버지의 속을 섞일때, 아니 내가 살기 힘들어 자식들에게 미안해서 지나가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너희들이 마흔살 될 때 까지는 너희들을 밥 먹여주고 잠 재워 주겠다.”라는 그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자식들 세명 모두가 아직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경끼가 나도록 놀라고 있다. 그래서 자유자재로 번갈아 가며 집을 나가는지도 모르겠다. 내 죄로소이다. 모든 것이 내 죄로소이다..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 (09/12/2014)
이 나이에 누군가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내 처지에, 내 형편에, 내 나이에 어떻게 사랑을 해? 남세스럽게 사랑은 무슨 사랑? 사랑이 밥먹여 주남? 글쎄?
남녀간의 사랑만큼 이 세상에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까? 남녀간의 사랑만큼 사람을 미치고 환장하게 하는 일이 또 있을까? 가지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게 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버릴만큼 열정적인 사건이 이 세상에 있을까? 물론 그분과 같은 거룩한 사랑이 있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런 사랑이야말로 어디 쉬운 일이가.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은 사랑을 하고 그래서 결혼을 하고, 그 사랑의 추억을 반추하며 친구처럼 늙어 가는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에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다. 결혼을 한 경험이 있든, 없든 간에 혼자 산다는 것은 얼마나 큰 쓸쓸함인가. 또 함께 살고 있다 하여도 사랑이 없이 남남처럼 산다면 이 또한 얼마나 고독한 일인가. 긴 세월을 혼자 살다가 황혼의 들녁에서나마 서로가 깊은 사랑을 하는 남녀를 보면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다. 얼굴 표정과 혈색이 다르고, 옷차림이 다르고 행동가짐이 다르다.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해 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나도 다시 한번 깊은 사랑에 빠지고 싶다. 아무리 좋은 집에서 부자로 살아도 부부 간에 사랑이 없다면 뭐하나. 사랑은 청춘남녀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나 사랑할 수 있고 언제나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데 무슨 계(戒)가 그리도 많으며, 무슨 조건이 그렇게 필요한가. 하지만 간음은 사랑이 아니다. 불륜은 비겁한 사랑이다. 사랑은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하고 모든 걸 던져버릴 수 있어야 한다. 이 나이에 다시 사랑을 하게 된다면 조건부 사랑이 아닌, 죽어도 좋은 그런 사랑을 하여야 하지 않을까.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라는 말은 <아가>서에서 유래된다. 하지만 우리 세대가 기억하는 것은 학창 시절에 H.F. Peters 가 쓴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라는 책의 <루 살로메>라는 여성일 것이다. 그녀는 러시아 장군의 딸로 1861년에 태어나 1937년 76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까지 수많은 남성들과 사랑을 하였다. 대표적으로는 니체와 릴케, 프로이드의 연인이자 어머니이자 마돈나였던 운명의 여인이었다. 그외에도 당대를 주름잡던 파올레, 바그너, 톨스토이, 마르틴 부버, 하우프트만, 스트린베리, 베네칸트 등 수많은 남자들의 여인이었다. 아마도 요즈음 우리 지역 사회에 이런 여성이 있었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주관이 뚜렷하고 구속받기 싫어하며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하는 신자유 연애론자였는가 보다.
그녀의 연애 프로필을 간단히 보면 이렇다. 그녀가 17세때 37세의 길로트 목사를 만난다. 그는 실학을 바탕으로 둔 당시의 유명 종교인이자 지식인이었다. 그에게서 철학과 신학을 배우지만 그가 청혼하자 떠난다. 19세때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 들어가 철학, 신학, 예술, 종교를 공부한다. 그녀는 당대의 학자이자 무신론자 작가인 파올 레를 만나 사랑을 하지만 이별한다. 이에 레는 상심하여 혼자 방황을 하다가 낭떠리지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한다. 레는 그녀를 사귀는 중에 니체를 소개하여 세사람은 한 집에서 동거를 한다. 이른바 <성삼위 일체>라는 동거다. 두 남자와 한 여자가 한 집에 살면서 사랑보다 더 큰 이상적 우애를, 육체적 관계가 아닌 지적 교감을 나누는 관계를 일컫는다. 하지만 니체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청혼하지만 거절 당한다. 니체는 슬픔과 배신감, 분노와 아픔의 소용돌이에서 몸부림치다가 그 유명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집필한다. 1887년, 26세에는 동양학자 안드레아스와 결혼하지만 육체적 관계를 거부한다. 결혼을 했지만 그녀는 처녀의 몸이었다. 그녀가 36세 때 무명의 22세된 르네 마리아 릴케를 만난다. 그녀와 사랑에 빠진 릴케는 수많은 서정시를 쓰지만 그녀는 그의 시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릴케는 그녀의 충고로 감정이 아닌 단순한 사물을 있는 그대로 쓰게 되는데 그것이 릴케의 유명한 <신시집>이다. 릴케는 그녀에 대한 집착으로 정신병까지 앓으면서, 그녀에게 매달리고 집착하며 울부짖는 불안한 삶을 살자, 그녀는 릴케를 떠나간다. 그래서 릴케는 자살했다는 설도 있고, 장미의 가시에 찔려 폐혈증으로 죽었다는 설도 있다. 1911년, 50세 때, 프로이드를 만나 프로이드의 철학과 학문을 완벽하게 배우고 이해한 다음에 임상 분석가로 활동한다. 프로이드 역시 그녀에게 버림을 받자 질투와 분노를 느끼지만 오랜 기간 우정을 유지한다. 그녀의 연애론은 좁은 지면에 쓰기에는 끝이 없다.
나는 작가 전혜린 처럼 그녀의 자유 연애론을 옹호하거나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대단한 미모의 여인도 아니고 베이글녀도 아니다. 한마디로 외형도, 사랑하는 방식도 내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사랑은 그녀처럼 올인 해서 사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누구의 눈치나 체면 때문이 아닌, 어떤 물질적 조건이 아닌, 그 사람의 인격과 사상이나 추구하는 가치가 맞으면 망설임 없이 사랑하는 것 아닌가. 그러다가 사랑이 식으면, 더 이상의 사랑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떠나야 하는거 아닌가. 나는 여러 여자를 사랑할 위인은 못되니, 지금의 아내와 다시 한번 깊은 사랑을 해 보면 어떨까. 세상에 별 남자, 별 여자가 있을까? 여러분도 너무 오래 참지말고, 지금 당신의 사람과 다시 한번 사랑해 보세요. 피터즈의 글 중에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 그대의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처럼..
떠나가는 배 (09/05/2014)
나의 가까운 지인 중에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를 잘 부르는 아우가 있었다. 그는 이민와서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몇 안되는 아우였다. 그가 오늘 저 하늘로 갔다. 마치 이승과 저승을 가로 지르는 하늘 강물을 따라 저 배를 타고 떠나갔나 보다. 때 이른 가을 하늘은 오늘따라 구름 한점없이 더 없이 파랗다. 저 파아란 하늘 강물이 무심하다. 야속하다. 이제 고작 50대 초반인데,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아이들도 아직은 한참인데, 이민와서 여태 고생만 했는데,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아내에게도 못다한 사랑을 더 해야 하는데, 좀 더 살아야 할 이유가 너무 너무 많은데, 그는 그렇게 홀연히 떠나갔다.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 널 두고 간다는 아픈 다짐도 없이, 남기고 가져갈 것 없는 저 무욕의 땅으로, 저 평화의 땅을 찾아 꾸밈없이 꾸밈없이 저 배를 타고 홀로 떠나갔다.
그는 한밤에 머리가 아프다며 아내의 어깨에 기대어 있다가 한번 안아달라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아내의 품안에 안겨 홀연히 떠나 갔다. 병명은 뇌출혈이지만 그 흔한 병원 수술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떠나갔다. 너나없이 이민자의 삶은 고달프다. 먹고 사는 문제는 논리적 선택도 아니고 미루거나 피해 갈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소설가 김훈씨의 말처럼 가난한 자에게는 “ 밥의 생물학적 본질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다. 무조건 먹어야 하는 것이며, 안먹으면 무조건 죽는 것이다. 밥 세끼의 문제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그 본질의 비논리성을 지적할 수 없으며, 그 어떠한 것도밥 앞에서는 위선이고 허위일 수 밖에 없다.” 서민의 삶은 좀처럼 먹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나기 어려움을, 더이상 나아지지 않음을 뼈저리게 알고있다. 이제 인생 역전은 없다. 아메리카 드림은 없다. 서민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지기는 쉬워도 그 절벽을 타고 상류층의 사회에 다시 올라간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마치 깊은 늪에 빠진 것처럼 빠져 나올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든다. 이민자 중 서민인 아버지는 아파도 아프다고 섣불리 말을 하지 못한다.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한다. 만약 내가 아프면 그래서 일을 할 수가 없다면 그 비싼 의료비는 무엇으로 어떻게 감당하며, 내가 아파 누워있는 동안 식구들은 무얼해서 먹고 사나 하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그도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자신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아프다는 말 한번 못하고 힘없이 떠나갔는지 모른다.
그는 한국에서 사업을 크게 하다가 IMF때 빈손으로 이민을 왔다. 어떤 일도 마다 하지않았다. 그래서 집도 사고 가게도 샀다. 하지만 사는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서민 남자들이 그러하듯이 자신의 아픔을 감추려고 다소는 과장대고 허세를 피울 때도 있다. 하지만 그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배짱이 있었다. 남의 허물이나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남의 말을 옮기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그래서 그는 가끔 거칠게 보일 때도 있었고,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질그릇 같은 그런 투박함이 좋았다. 그래서 나의 몇 안되는 술 친구 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이렇게 떠날려고 해서였는지, 떠나기 얼마 전에 나를 데리고 바다낚시를 갔다. 내가 생선회를 좋아하니 고기를 많이 잡아서 실컷 대접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낚시에 별 취미가 없다. 또 내가 낚시를 따라가면 내노라 하는 낚시꾼들 조차 한마리도 못잡는 징크스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도 허탕이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그의 살아온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린시절, 청년시절, 연애시절, 한국에서 사업한 시절, 지금의 힘든 삶의 이야기들, 막내가 대학을 들어가면 한국 나가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들, 마치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그의 인생을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럴줄 알았다면 소주나 실컷 같이 마실걸 하는 후회도 그렇게 파도에 묻혀 버렸다.
그는 자식 사랑이 유별날 정도였다. 그야말로 <금쪽같은내새끼> 라는 일념으로 자식들을 무척 사랑했다. 그는 자식들을 야단치는 법이 없었다. 자식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줄려고 했다. 자식들도 아버지를 정말 사랑했다. 아버지와 자식 간에 거리감이 없었다. 나는 나의 자식들에게 그러지 못했기에, 그런 그의 모습을 보노라면 한없이 부러웠다. 그만하면 잘 산 세월이다. 언젠가는 누구나 떠나가야 한다면, 고통도 없이 병치레도 없이 홀연히 떠났으니 잘간 것이라 그를 위로한다. 미국에 일가 친척 한명도 없는 그가 수많은 조객들의 환송을 받으며 떠나는 모습을 보고 복 많은 사람이라고 위로도 해 본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처럼 떠나는 자는 떠나가면 그만이지만 남겨진 자가 항상 문제다. 황망함도, 그리움도, 아픔도, 생활의 어려움도 모두 남겨진 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남겨진 재산이 많지 않는 우리네 서민들의 삶이란 결코 녹녹치 않다. 미국이라는 척박한 땅에서 여자 혼자서 자식 세명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눈물과 한숨과 설움을 참고 견뎌야 하는지 우리는 알고있다. 특히 남편의 그늘이 컸던 아내일수록 그 광야의 때약볕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우리는 알고있다. 하지만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진실도 알고있다. 아버지가 없으니 자식들은 누구보다 강해질 것이다. 누구보다 지혜롭고 현명하게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분의 더 크신 사랑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가족 모두 건강하시고, 힘내세요. 그분의 은총이 늘 가족과 함께 하시길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 멀지않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잘 가거라, 아우야…
우울함에 대하여 (08/29/2014)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기쁠 때나 슬플 때가 있다. 기분이 Up 되기도 하고 Down되기도 한다. 분노, 섭섭함, 두려움, 불안감, 외로움, 좌절감, 자괴감, 무능함, 자학, 슬픔, 쓸쓸함 등의 이 모든 네가티브 감정들은 현대인들의 불가피한 감정들이다. 그러나 우울증은 이런 감정들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런 감정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될 출구를 찾지 못하면 우울증이라는 우물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감기 증세와 같은 너무나 흔한 우울증은 현대인의3명중 1명이 우울증 증세를 앓고 있다고 한다. 내 주변의 많은 손님들도 우울증 증세에 시달리고 있으며, 치료를 받고 있는 분도 많다. 특히 남성보다는 5,60대 여성들이 많다. 나름대로 사정이나 원인이야 다르겠지만 생각보다 심각한 경우가 많다는데 세삼 놀라게 된다. 왜 그럴까?
이민의 삶이라는 것이, 특히 서민들의 삶이라는 것이 극히 폐쇄적이고 단조로운 삶이다. 아침 일찍 가게를 나가서 저녁 늦게 까지 힘들게 일해야 하며,집에 들어오면 식구들 밥해 먹이고 잠자리에 드는 반복된 생활이다. 그런 생활이 일주일 내내, 365일, 10년, 20년을 반복한다면 그 속에서 무슨 삶의 의미를 찾을까. 경기가 좋을 때는 돈버는 재미라도 있었지만 장기간 불황이 겹치니 가게에 나가서 일하는 것조차 흥미를 잃는다. 오지 않는 손님을 마냥 기다리며 우두커니 닭장같은 카운터 안에 들어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회의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민자들은 공통된 꿈이 있다. 자식들이 잘 되기를, 성공하기를 바라는 염원 하나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꿈은 40대까지 즉 자녀들이 청소년기 때 까지는 유효하다.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들이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되어 각자의 보금자리를 꾸려 나가면 그 꿈은 그냥 한 여름 밤의 꿈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장 큰 꿈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허무함이다. 쓸쓸함이다. 그래서 고독하다. 자식에 대한 기대를 대체할 또 다른 희망을 찾기가 쉽지 없는 것이다. 이민의 삶에서 남편과 아내는 관계가 좋아질 확률보다 나빠질 확률이 더 높다. 좁은 가게에서 하루종일 반복되는 일상을, 10년 20년동안 부부가 함께 한다면 부처가 아닌 다음에야 두 사람의 관계에서 무슨 대단한 깨달음을 얻겠으며, 무슨 대단한 사랑을 불태우겠는가. 그래서 이민의 부부는 서로 망부석이 되어 사는지 모른다. 거기다 만나는 사람이 극히 한정되어 있고, 여가 생활 또한 그 사람들과 한정되어 있다. 6일동안 집, 가게, 집, 가게를 반복하다가 일요일이면 하루 종일 교회나 절에서 산다. 그런데 그 신앙의 공통체라는 사람들이 문제다. 대부분이 이 공동체 사람들 속에서 상처를 받고 따돌림을 당한다. 끼리 끼리 모이고 놀러 다니니 약자와 가난한 자는 설 곳이 없다. 공동체 속의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이 공동체 조차 외면하면 이민자의 외로움은 더욱 커지니 그 공동체 속에서 자위하고 부대끼며 함께 살아야 한다.
얼마전에 프란체스코 교황께서 한국을 4박5일 다녀 가셨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특히 입장권이 없거나 초대받지 못한 그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 전날 지방에서 올라 와서 노숙을 하며, 이리저리 쫓겨 다니면서 까지 교황의 모습을 먼 발치에서나마 볼려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 왜 그분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일까? 그것은 이전까지와는 다른 그분만의 상징성이 아닐까? 가난한 자와 함께 하신다는, 소외된 자의 눈물을 닦아 주신다는, 그분만은 서민들의 아픔을 이해하실꺼라는 기대와 희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교황께서 다니신 4박5일의 일정을 보면서 그 속에 수많은 서민들의 눈물을 보았다. 그 눈물 속에는 나의 눈물도 보였다. 그분은 대단한 강론을 하지 않으셨다. 이제는 너무나 평범해져 버린 단어들 몇가지만 사용하셨다. <사랑>, <용서>, <평화>,<깨어남>, <기도>, <희망> 등 그 몇 단어들이 그렇게 무겁게 서민들의 가슴을 울렸는지도 모른다.
나도 요즘 우울함이 제법 오래 간다. 무엇보다 먹고 사는게 힘들고 불안하다. 이민와서 지금까지 한번도 여유로움이 없다. 노후를 준비한 것도 없고 보장된 것도 없다. 한달, 한달 산다는게 너무 힘들고, 남은 날도 계속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누구나 열심히 산다. 하지만 열심히 산다고 서민의 삶은 보장되지 않으니 그래서 나는 더욱 불안하다. 자식들도 아직은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서는 좀더 도와 주어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없다. 아내에게도 자식들에게도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해 준 게 없다고 생각하니, 끝없는 죄책감과 자괴감이 몰려 온다. 나는 과연 무얼 하고 살았는지, 왜 이런 모습으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한없이 서글퍼진다. 차리리 혼자였다면 가족들에게 이런 고생은 안시켰을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 온다. 그 중에서도 가장 미안한 사람이 내 자신이다. 나름대로 자신에게 엄격할려고 했고, 자신을 위해서는 인색하며 검소하게 살려고 하고, 열심히 살려고 한 내 자신에게 미안하고 안쓰러울 뿐이다. 이제는 내 자신을 돌아다 볼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내 자신을 위로하고 따독거려야 겠다. 내가 주저앉으면 내 가족이 힘들어진다. 자족(自足)하고 자애(自愛)하자. 이만큼 살게 해 주신 것만 해도 어딘가. 나보다 힘들어 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만 하면 잘 산 세월이다. 남은 세월도 그분이 보살펴 주실 것이다. 감사하자. 힘내자. 오늘은 나를 위해 거금을 들여 좋은 고기를 사서 맛있게 먹어보자. 산다는 게 다 그런거지 뭐..
쓸쓸함에 대하여 (08/22/2014)
오늘 목사님은 그분의 <항상 기뻐하라>라는 말씀을 설교하신다. 하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어찌 <항상> 기뻐만 할 수 있을까? 산다는 것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다. 만남에는 우연한 만남도 있고 예기치 못한 이별도 있다. 헤어지기 싫어 붙잡고 싶어도 잡지 못하니 먼 발치에서 떠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을 경우도 있다. 사람이 밉고 사랑이 밉다. 그래서 사람은 쓸쓸함이다. 홀로됨이 아니어도 쓸쓸함은 항상 내 주변을 맴돈다. 그래서 고독은 시장기와 같다고 하는 걸까. 사랑이 옆에 있어도 마음 한구석이 시리기는 마찬가지다.
아내가 한국에 나간지 40일이 지났다. 아직도 한달은 더 기다려야 한다. 손녀딸 돐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고생하느라 치아와 잇몸이 엉망이 되어 대대적 수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깊으면 그리움도 아픔이라고 했던가. 아내가 없어도 나의 생활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바쁘게 일하고 집에 오면 밥해 먹고 치우고, 운동하고 음악하고 글 쓰고 맨날 그런 저런 반복되는 일상이다. 친구의 아내는 매주 일요일만 되면 혼자 밥해먹는게 안스럽다며 저녁에 초대한다. 하지만 아내가 없는 삶은 허전함이다. 쓸쓸함이다. 뭔가 먹어도 항상 시장기를 느낀다. 밥을 먹어도 교회를 가도 마트에 가서 장을 봐도 영화를 봐도 길을 걸어도 친구와 술을 마셔도 어디서나 아내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언젠가는 두달이 아니라 영원히 이별해야 할텐데 오랜 시간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메꾸나. 너무 같이 오래 살았나보다. 나이가 늙어가나 보다. 특별나게 잘난 것도 없고 이쁜 곳도 없는데 무엇이 그리움으로 변했을까. 아내가 없어도 잘 살 자신이 있었는데, 한두번 헤어져 산게 아닌데 왜 유별나게 외로움을 더 타는 것일까. 육십의 나이에 앞으로 살면서 무슨 대단한 야망이 있을까, 욕망이 있을까, 이름을 날리까, 명예를 살리까, 부자가 될까, 아니다. 그냥 미국 시골 구석에서 촌노로 늙어 가고 싶음이다. 그렇게 서로 늙어 가는 모습을 쳐다 보며 미소 머금고, 서로 잘 살았다고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등 기대고 따뜻한 봄 햇살 맞으며 그렇게 살고 싶은 것 일게다. 그래서 그리운 것일게다. 정 그리우면 내가 한국 나가서 데려오면 되지.
최근에 나에게는 또 다른 쓸쓸함이 있다. 8년동안 이 비지니스 컨설팅이라는 브로커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월급제 여직원을 뽑았다. 해야 할 일은 많아지고 고객들에게 좀더 양질의 서비스를 하기 위함이었다. 많이 망설였다. 이 사업은 고객 정보 사업이므로 보안이 생명이다. 그래서 그동안 여러명의 에이전트도 거절하고 코압도 거절했다. 그런데 모험을 하기로 결심했다. 올해 1월부터 만 7개월동안 좁은 사무실 방에서 여직원과 같이 근무했다. 본인도 회사를 키워 보고 싶다고 했고 야심도 있었다. 그래서 회사의 모든 고객 정보 자료를 제공하고 내가 알고 있던 사업 지식을 전수했다. 직원을 믿어야 한다는 나의 경영 철학 때문이다. 남들에게는 보잘 것 없는 정보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8년동안 피땀으로 하나씩 모은 소중한 고객 정보들인 동시에 본 사업의 전 재산이다. 이제는 홀로 고객을 상대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8월5일 밤에 갑자기 이메일 한통이 들어왔다. 회사를 퇴사하겠다는 것이다. 퇴근할 때 까지 한마디 말도 없었고 나는 한번도 퇴사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한마디 의논도 없이 인수인계도 없이 그렇게 끝낸 것이다. 이유는 며칠 전에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회사 파일을 사장이 처음으로 보자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직원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그것이 퇴사의 결정적 이유다. 경영자가 직원에게 회사 파일을 보자고 한 것이 퇴사 이유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이메일 어카운터를 모두 지워버렸다. 며칠 낮과 밤을 고민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동종 업종에서 일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그런 불상사는 없어야 하는데. 회사의 모든 고객 정보를 다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연락해도 응답이 없다. 나의 결론은 회사에 피해가 가지 않는 한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에 큰 구멍이 생기는 것 같은 공허함이 몰려왔다. 물론 조그만 사무실에 사장과 함께 근무하니 불편함도 있었겠지, 고객들 성향 분석과 장단점을 비교 분석하다 보면 생각의 차이도 있었겠지, 사람이 함께 일하다 보면 성격차이도 있었겠지. 하지만 오랜동안 근무할 것이라 하여 직원을 믿고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는데. 이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회의감으로 뜬눈으로 세우곤 했다. 결국 나의 잘못이라는 자괴감으로 쓸쓸함만이 나를 괴롭혔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구나. 살아온 세월이 다르니 추구하는 가치도 다르구나. 미워는 하지 말자. 그대로 지켜보자. 산다는게 정말 힘들다.
양희은이 부른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듣는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 도무지 알 수 없는 한가지 /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 이 세상도 끝나고 /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 그 빛을 잃어버려 //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 도무지 알 수 없는 한가지 /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지역 단상– 마지막편 <가게 팔기 정말 어렵다> (08/15/2014)
가게를 팔기도 어렵고 사기도 어려운 각양각색의 사연들, 끝도 없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하기로 하자.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정해진 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낮아진 미국 경제가 한인들을 힘들게 하고, 높아진 한인들의 삶의 기준과 가치관이 힘들게 하는 것이다. 생각은 변한다. 오늘의 한국인들은 먹고 사는 문제보다 삶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무엇을 먹고 사는 것보다 어떻게 행복하게 잘 사느냐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한인들의 트랜드가 바뀌니 향후 한인 사회 지역 경제도 바뀔 것이다.
이때까지 한인 사회의 단상을 종합해보면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돈이 많은 사람과 돈이 없는 사람의 간격은 더 넓어지는데, 추구하는 삶의 가치나 삶의 외형은 비슷하다. 양쪽 모두 힘든 일이나 위험한 동네에서 장사하기를 싫어한다. 한인들이 추구해야 할 업종은 다른 소수 민족들 처럼 한정되어 있다. 자본금과 언어 장벽, 미국 주류 문화에 제약을 받는다. 그러니 향후에도 한인들에게는 먹는 장사, 세탁 업종, 서비스 업종이 주종일 것이다. 스탁 사업과 도매사업, 장치 사업은 돈많은 사람들에게 빼앗긴다. 그러면 소자본의 한인들이 경쟁하는 이들 업종들은 그냥 지금 형태 이대로 유지하면 생존할 수 있는가? 아니다. 이들 엄종은 과거에도 경쟁이 치열했고, 향후에도 치열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계속 진화될 것이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하고 있는 가게의 매상을 올리기 위한 성공 전략이나 경쟁력 강화 전략을 만들라고 하면 거의 모두가 다음과 같은 정답을 제시할 것이다. 첫째, 가게 인테리어를 고급으로 바꾸겠다. 바닥은 마루로 깔고, 조명을 밝게 하고, 가구 설비나 시설도 바꾸어서 손님에게 최대한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둘째, 재료를 고급화 하고 매뉴를 개선하며, 신상품을 개발한다. 세째, 종업원 서비스의 품질을 높히고 교육을 강화한다. 네째, 홍보를 전략화하고 홍보 상품을 늘리며 이벤트 행사와 광고를 지속한다. 다섯째 기존 고객 관리와 가망 고객 발굴에 만전을 기한다. 등등.. 어디서 많이 들었던 마케팅 전략들이 총 동원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세가지 전제가 붙는다. 이러한 계획을 추진할 여유 자금과 각 분야별 전문성과 인력이다. 하지만 한인들의 대부분이 마케팅 전문가도 아니요, 경영 전략가도 아니다. 그런데다가 가지고 있는 자본금도 열악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위에서 제시한 대안들은 시도조차 해 볼 수 없는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본이 약한 한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며, 무얼 해서 먹고 사나?
<공동투자>다. 한인 사회에는 공동투자에 대한 성공 사례가 거의 없다. 공동 투자에 대한 한인 사회의 의견은 필자가 이민오던 시절 이전부터 툭툭 불거져 나온 화두지만 누구 하나 구체적 계획과 전략을 제시하는 사람이 없다. 당연히 사업설명회도 없고 주체도 없다. 공동투자는 아는 사람들 끼리 자금을 모은 것이 아니다. 큰 자본을 만들어 큰 가게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경쟁력있는 알찬 가게를 한개, 두개씩 시작하여 점점 늘려 나가는 것이다. 투자자들과 기획과 마케팅 전문가와 해당 사업 전문가가 모여서 동일한 지분으로 참가하는 것이다. 투자자는 투자 사업장에 따라 한 구좌 금액이 정해진다. 한 구좌의 최소 금액은 $20,000에서 시작한다. 한 투자자가 여러개 구좌를 가질 수는 있지만 한 사업장에는 한개 구좌 밖에 투자할 수 없다. 한 사업장은 7인에서 15인으로 주주가 구성된다. 해당 사업장에 대한 모든 경영 결정은 해당 주주들이 투표로 결정한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해당 사업장에 한해서는 동일한 지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동등한 권리를 행사한다. 투자자가 사업장의 일자리를 원하면 우선권을 부여한다. 소유 주식은 매매나 증여가 가능하다. 등등등.. 세부 내용이 많다. 분명한 것은 사업 투자가 부동산 투자나 주식 투자보다 투자 수익률이 훨씬 높고, 안정성도 더 높다는 것이다. 이 사업 아이디어는 필자가 9년전에 비지니스 컨설팅 사업을 시작할 때 3단계 사업계획안으로 만들었으며 본 사업 계획서를 이 지역 몇몇 유지들에게 배포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공동 투자 사업을 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떄문에 금년내에 사업설명회를 갖고 투자자를 찾을 예정이다.
한인사회의 경제 위기는 이제 발등에 떨어진 불이며,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다. 10만불 미만의 소자본으로 부부 2명,혹은 1명이 혁신적인 개선 대책이나 전문성도 없이 조그만 가게를 운영한다는 자체가 고난을 예견한다. 어찌어찌 먹고 살 수는 있겠지만 삶의 가치를 보장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자본보다는 여러 사람의 자본이, 한 사람의 지혜보다는 여러 사람의 지혜가, 한개의 사업장보다는 여러개의 사업장을, 한개 사업장의 광고나 기획보다는 여러 사업장의 단체 광고나 기획이 훨씬 경쟁력이 있다는 점에는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분렬과 분쟁은 투명성과 공정성으로 보완하면 된다. Blue Ocean은 별개의 동떨어진 바다가 아니다. Red Ocean 에서 차별화되고 경쟁력을 확보해 별개의 Ocean을 만든 것이다. <사업은 계속 진화한다>는 의미는 기존 사업의 쇠퇴와 몰락과 동시에 새로운 사업이 탄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한인들의 사업이 과대 경쟁이든, 어떠한 이유에서든 쇠퇴한다고 해서 해당 업종 자체가 몰락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새로운 형태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아니 이미 조용히 진화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앞으로 큰 바람이 불 것이다. 변화의 바람을 무서워 하지 말고 변화의 바람을 타고 가면 된다. 한인들 모두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
지역 단상– 4편 <가게 팔기 정말 어렵다> (08/08/2014)
가게를 팔기 어려운 다른 이유는 Buyer의 구매 조건의 모순이다. 첫째가 Rent비가 저렴한 가게를 찾는다. 그러면서 흑인동네는 싫어하고 백인 지역에 좋은 로케이션을 원한다. 누구나 당연한 희망사항일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Landlord라면 동일 지역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Rent를 주겠는가. 물가 상승률에 관계없이 몇년을 고정으로 하겠는가. Rent비는 올라가면 올라갔지 내려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세탁소의 최소 규모는 1,500SF, 평균이 2,000SF가 필요하다. 백인 지역 쇼핑몰에 SF당 $2불이 기본이다. 부자동네는 $2,5 혹은 $3불 가까이 된다. 여기에 CAM과 R/E Tax가 추가된다. 그러면 평균 세탁소 Rent비가 $5,000은 예사다. 그리고 소비자 물가 상승률에 따라 매년 3% 인상이 보편적이다. Rent가 부담이 되면 백인 지역 고급 쇼핑몰에서 장사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 다운타운은 더하다. 그래도 맨하탄에 비하면 약과다. 시간이 지날수록 달러 가치는 하락하고 물가와 세금과 인건비는 상승한다. 따라서 Rent비도 상승한다. 모든 항목의 지출 비용은 상승하는데 소비자 판매 가격은 몇년전과 비슷하거나 경쟁이 치열해 오히려 판매가격을 낮춘다면 수익이 감소하고 문닫는 가게가 속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소자본의 맘앤팝 가게가 가격 덤핑을 한다는 것은 자멸의 지름길이다. 매출 단가를 적어도 소비자 물가 상승률만큼은 매년 올려야 한다. 그리고 매상을 늘릴 방도를 찾아야 한다. 서비스의 차별화든, 특화 전략이든, 머리를 짜내어 계속 시도를 해야 한다. 소자본의 맘앤팝 가게가 가격 덤핑을 해서 매상을 올리려 한다는 것은 자멸의 지름길이다. 가격 정책은 신중해야 하며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여 여유 자본이 필요하다. 가격은 내리기는 쉬워도 덤핑한 가격을 올리기는 정말 어렵다. 그런데 한인들은 가장 어리석은 가격 할인을 경쟁적으로 실시한다.
둘째는 주7일, 365일 연중 무휴하는 가게가 많다는 것이다. 장사는 장거리 마라톤과 같다. 주인이 365일 쉬지 않고 일할 수는 없다. 이번에 교황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일요일날 쉬지 않는다는 것은 삶의 가치와 질을 파괴한다. 규모가 큰 가게는 오히려 365일 운영이 가능하다. 모든 업무를 컴퓨터로 프로그래밍하고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원격 감시 프로그램을 작동하면 영업시간도 연장하고 365일 종업원으로 운영되는 체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소규모 가게는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경쟁업체들이 단합해서 주 6일 하자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천금같은 손님을 주7일 하는 옆집 가게에 빼앗기느니 너도 나도 일요일 문을 여는 것이다. 그러면 Buyer가 결정해야 한다. 일요일 문을 닫거나, 일요일은 종업원 관리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세째는 Buyer의 업종 선정이다. 이민사회에서 힘들지 않는 업종은 없다. 흑인 지역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살고 있는 집 부근에 내가 원하는 가게가 매물로 나올 확률은 거의 희박하다. 그런데 확률이 거의 희박한 조건만 찾는다. 살고 있는 지역 부근에 Rent비가 저렴하면서 힘들지 않는 가게를, 주6일 영업해야 하고, 다운타운은 싫고, 술, 담배 팔면 안되고, 시설이 오래되면 안되고, 인테리어가 낡으면 안되고, 흑인동네는 싫고, 영업시간이 길면 안되고, 위치가 좋아야 하고, 종업원 구하기 쉬워야 하고, 매상은 높고 매매가격은 저렴한 가게를 찾는다면 그런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가게가 어디 있는가? 싫은 이유도 각양각색 너무 많아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다. 조건이 좋은 매물이 아무리 많아도 요즘 Buyer의 욕구를 충족할 매물을 찾아드리기는 하늘에 별따는 느낌이다. 한국이 얼마나 잘 살든지 간에 미국 이민의 삶은 힘들고 고달프다. 그 고생을 감내하고 참으며, 그 속에서 감사와 즐거움을 찾지 못한다면 한국으로 되돌아 가야 한다. 한국가도 똑같은 고통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네째는 Buyer 자신의 대출 가능성 점검이다. 불경기가 장기화되면서 Credit이 망가진 사람들이 많다. 대출을 할 때에는 부부 모두의 크레딧을 본다. 파산, 집을 Foreclosure 한 경력, 대출금 연체, 과다한 대출금 등, 은행에 직접 가서 미리 대출 가능 여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오너융자는 은행 대출이 가능하므로 사실상 어렵다고 생각해야 한다. 내가 다운할 수 있는 금액이 30%에서 40%선으로 보면 대체로 무난하다. 그리고 계약 부대 비용(Lease Security Deposit, 대출비용, 변호사 비용), Stock 비용, 가게 운영자금도 별도로 준비해야 한다. 사업에 어떻게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는 없다.
다섯째는 가게를 팔고자 하는 Seller는 미리미리 세금보고를 잘 해 놓아야 한다. 자녀들 학자금 융자등 여러가지 이유로 세금 보고를 작게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대출이 가능한 범위까지는 세금 보고를 해 주어야 가게를 팔 수 있다. 그리고 Under계약은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여러번 언급했지만, 우리 지역 한인들은 돈이 넉넉하지 못하다. 빠듯한 자금을 딸딸 긁어서 다운하고 은행에 대출받아 가게를 사는 것이다. 물론 Seller의 마음은 이해한다. 몇년전에 가게를 Under를 얼마에 주고 샀고, 그동안 가게를 개,보수한 투자비용이 얼마고, 돈 가치는 더 떨어졌기에 최소한 얼마는 받아야 한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과거는 잊어야 한다. 요즘은 가게에 대한 매매정보를 모두 공개를 한다. 매상을 속이는 것은 어렵고도 어리석은 짓이다. 매매가격은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가격 (Market Price)이 있다. 매물은 많고 Buyer는 적으니, Seller가 더 받고 싶다고 더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Seller, Buyer모두가 힘든 시절이다.
지역 단상- 3편 <가게 팔기 정말 어렵다> (08/01/2014)
6,70대 한인 1세들은 투자할 돈은 있지만 가게는 사지는 않는다. 건물을 사거나 아니면 한국에 투자하거나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한다. 여유가 있는 노인들은 한국에 가서 살기 원한다. 요즈음 한인 사회는 역이민이 대세다. 한인 1.5세나 2세들은 부모가 하던 업종을 병적으로 혐오하며 뜬구름 잡는 몽상만 한다. 장사는 현실이다. 누군가 하지 않는 독특한 아이템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장사는 밴쳐가 아니다. 성공사례를 모방하고 <따라하기>가 경영 기본이며 안전을 보장한다. 이를 바탕으로 창의성을 발휘해 경쟁요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정석이다. 부모가 자식의 아이디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자식에게 투자할 수 없다. 결국 어느 사회나 중년층인 40대가 사회의 중심원이 되어야 하는데, 한인사회는 도무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열정과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삼,사십대에 모험과 도전을 하지 않으면 향후에 더 이상의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한인 사회에서 자체적으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타민족이라도 한인들이 하는 가게를 사면 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민족마다 업종에 대한 선호도가 다르고 민족 특성이 다르며 성공요소가 다르다. 요즘 시장에서 <Hot Client>는 중국사람이다. 중국은 이제 한국의 비교 대상이 아니다. 20년 전의 한인들이 아는 <짱깨>가 아니다. 세계2위의 경제 대국이며, 세계 제1의 채권국이고, 세계 제1의 인구와 내수시장을 갖고 있다. 중국 부자는 돈이 많아도 보통 많은 것이 아니다. 중국인은 수천년 전부터 상업을 귀하게 여겨 장사술이 유대인과 함께 타 민족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국의 첨단 기술들은 오래지 않아 중국에 덜미를 잡힐 것이다. 그래서 작금의 한국 상황을 조선 말기와 같다고 말한다.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 등, 한국보다 약한 나라가 없다. 그래서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최대의 경영흑자를 내면서도 매번 <경영 위기>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오랜 전통으로 사금융 시스템과 공동 투자 시스템이 잘 발달되어 있다. 마치 중세기 유럽의 길드 제도와 유사하다. 그래서 그들은 누구나 건물을 살 수 있고 큰 비지니스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인이 하는 업종에는 관심이 없다. 건물과 함께 파는 술과 관련된 업종 (리커스토아, 맥주도매상, 비어델리), 장치사업 (카워시, 론드리맷), 대형 스탁사업 , 대형 음식점 등이다.
인도 계통 민족들은 가족 중심의 사업을 선호한다. 그들은 반세기전의 한국 가족제도와 유사하다. 찬척들을 서로 초청하여 인근에 모두 모여 산다. 대가족이다. 교육방식도 한국의 6,70년대처럼 보수적이다. 집안에 어른이 대접받고 위계질서가 분명하니 가족중심의 장사도 잘 되고 아이들 공부도 잘 하는 것이다. 멕시칸이나 스페니쉬 계통의 민족들은 한인 가게에서 일들을 많이 하므로 이들이 가게를 인수받으면 좋은데 이들은 자금력이 약하다.
한인들이 생존하고 있는 업종들, 즉 세탁소, Breakfast, Deli, Nail 업종들은 기술력, 신속성, 친절한 서비스, 청결함, 성실과 부지런함 등이 결집된 업종이다. 이것은 한국인의 장점이기도 하므로 신규 사업을 하더라도 이 장점들을 살릴 수 있는 업종을 추구해야 한다.그래야 타민족에게 먹히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나머지 업종은 시간이 갈수록 돈이 많은 민족에게, 혹은 가족이 많은 민족에게, 저임금의 힘이 센 민족에게 먹히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한인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업종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한국인 가게들은 대부분이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울상이다. 경기 불황 탓을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가게들이 손님이 자기 발로 걸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형태다. 그런데 누군가가 손님을 기다리지 않고 찾으러 나선다면 누가 이기겠는가? 어짜피 미국 경제는 70%가 소비 경제 구조다. 손님은 정해져 있고 소비액은 한정되어 있다면 손님이 어느 가게에 가서 돈을 쓸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 지역 한인들은 지금 하고 있는 업종들이 <한물>갔다고 한다. 물론 과거의 미국 경제가 호황일 때 처럼 돈을 긁어 모으지는 못하겠지만, 또 그런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미국 소비자가 먹고, 마시고, 옷 세탁해야 하고, 여자들 치장하는데 돈을 쓰는 것은 <기본 생활비>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한 이와 관련된 사업은 진화되었으면 진화되었지 소멸되지는 않는다. 즉 세탁소가 안되는 것이 아니라, 음식 장사가 안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관련된 사업이 안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가게가 현실에 안주하며 변하지 않키 때문이다. 우리 지역 한인들은 자금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므로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해야만 하고 차별화를 해야 한다. 즉 장사의 <페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전제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앞으로의 세대는 <스마트폰> 세대이며, <온라인 세대>다. 스마트폰 하나로 언제 어디서나 내가 받을 서비스를 확인할 수 있고, 주문할 수 있고, 결재할 수 있고, 배송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흔히들 고객에 대한 <가치 창조>라고 말한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게를, 여러분의 서비스를 어떤 방식으로 고객에게 알리는가. 고객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오며, 어떻게 신규고객을 창출하는가. 대부분의 가게가 20년전이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없다. 신규 투자를 하지 않고 차별화를 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사업은 사양길에 접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사업 (업종)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사업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지역 단상- 2편 <가게 팔기 정말 어렵다> (7/25/2014)
가게를 팔기 어려운 다른 이유는 <세대교체>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가게를 살 수 있는 사람은 기존 세대가 자금적 여유가 있거나 가게를 팔면 되겠지만 형편이 몇년 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리고 기존 세대는 이민 1세대가 주력이다. 이들의 나이가 60,70대이다. 이분들이 다시 새로운 사업을 하거나 가게를 산다는 것은 지나친 기대다. 그러면 구세대는 물러가고 새로운 신세대가 들어오는 것이 자연적 순리인데 우리 지역에는 신세대가 잘 들어오지 않으니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여러분 주변에 이민온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유학생과 직장관계로 이민온 사람을 제외하고 한국에서 먹고 살기 어려워, 자식들 교육 때문에 무작정 이민온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근자에 한국에 살고 있는 여러분 친척들에게 이민오라고 권유한 적이 있는가? 내가 사는 모습이 힘들고 초라하니 감히 권하지도 못하는 것은 아닐까? IMF 시절까지만 해도 미국에 사는 이민자가 한국에 사는 친척들에게 돈을 보내주고 도와 주었는데, 이제는 역전이 되었다. 그렇다고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잘 사는가? 아니다. 대책없는 서민들이 더 많다. 내 집 한채도 없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한국에서 장사해서 먹고 살기는 미국보다 몇배 더 어렵다. 경쟁도 엄청 심하고 투자비용도 미국보다 훨씬 많이 든다. 초,중, 고등학교 교육비는 미국에 비해 가히 살인적이다. 한국이 미국보다 서민들이 살기에는 훨씬 더 어렵다. 한국의 전세값이면 미국와서 무얼 해서라도 먹고 산다. 아이들 남부럽지 않게 교육시킬 수 있다. 그런데 이민 초청을 하지 않는 것이다. 뉴욕만 가도 우리 지역같이 기죽지는 않았다. 활기가 넘친다. 물론 우리 지역이 대도시나 신흥도시들에 비해 매력도는 조금 떨어진다. 하지만 경쟁이 덜 치열하고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초기 이민생활에 더 적합하다고 할 수도 있다. 언젠가 이민자가 쓴 자서전적 수필 <이민와서는 안될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책이 책같지 않고 글이 글같지 않으니 여기서 다시 거론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의 결론은 자신 (미국 시청 공무원이었음)처럼 잘난(?) 사람들이 이민을 와야 조국에 누를 끼치지 않는다는 자기 과찬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몸을 파는 여자나 조폭만 아니면 누구라도 많이 이민을 와야 한다. 특히 한국에서 대책이 없는 사람들은 모두 이민을 와야 한다. 그래도 아직은 미국에는 정직과 성실이라는 꿈이 있다. 먹고 사는 것은 예전같이 못하지만 아이들 교육시킬 수 있는 것만 해도 어딘가? 밤마다 이 술집 저 술집 돌아다니며 술에 취해 살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딘가? 물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죄 짓지 않고 성직자처럼 사는 것이 어딘가? <아메리카 드림>은 사라졌을지라도 <하나님의 꿈>은 아직 살아있다. 그러니 한국에 사는 친척들에게 이민오라고 적극 초청해야 한다. 한인 단체들은 무얼 하는지 몰라? 한국 가서 <지역 이민 사업설명회>나 하지.
그리고 자식들이 장사를 하겠다는 의지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왜 내 자식이 공부만 잘 해야 하는가? 공부 잘해서 일류대학 나오면 행복이 보장되는가? 년봉이 6만, 7만불 되는 대학 교수들이 수두룩하다. 이것은 초봉이 아니다. 로스쿨 나와서 변호사가 되면, 대학만 12년을 다녀 의사가 되면 출세가 보장되는가? 아니다. 학자금 빚갚느라 허덕된다. 수입도 생각보다 많치 않다. 왜 아버지 세탁소를 아들과 같이 하면 안되는가? 왜 델리 가게나 레스토랑을 딸과 같이 하면 안되는가? 무슨 일을 하던 돈을 벌기 위해서는 지출을 줄여야 한다. 자식 가족과 한 집에 살면서 함께 일하면 생활비 줄고 인건비 줄고, 아버지 가게가 결국 내 가게니 더 열심히 일하고, 하기 싫은 공부 안해서 좋고, 아버지 해피, 아들 해피, 가족 모두 해피하면 되는거 아닌가. 그런데 한국 사람만 유독 자식들이 아버지 가게에서 일하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가족이 운영할 수 있는 비지니스를 타민족들에게 모두 빼앗기는 것이다. 그래도 내 장사를 하니 뱃속은 편하지, 기업체에서 비주류 직원이 주류 상관 눈치보며 생존한다는 것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중압감일 것이다. 그럴 바에야 아버지 가게에서 경영 노하우를 배우고, 창의성을 발휘해서 사업 영역을 넓히고, 부모 자식간에 사랑하고 믿음 생활 열심히 해서 사회에 좋은 일 하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한 삶이 아닐까?
요즘 한국 고객들을 보면 월 1만불을 버는 것을 누구집 애 이름처럼 쉽게들 말씀하신다. 월 1만불 순수익이면 년 12만불이다. 거기다 세금 제대로 내지 않으니 년봉 15만불 이상인 셈인데 의사든, 약사든, 변호사든, 교수든 년봉 15만불 이상 되는 사람이 몇사람이나 되겠는가? 거기다 월 2만불 순수익이라면? 간이 크셔도 너무 커신 것 아닌가? 아마 년봉대로 십일조 내었으면 부흥 안되는 교회가 없을 것이다. 우리들은 지금 큰 병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허황된 꿈을 꾸는지도 모른다. 어디서 무얼 하고 살든, 먹고 사는 일이 쉽지가 않은데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한국에 잘 사는 친척들과 비교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 그들이 열심히 일해서 한푼 두푼 저축하여 그런 큰 재산을 만들었겠는가? 좋게 말해 시절운을 잘 타고 나서 그런 것이다. 아파트와 땅은 사는 쪽쪽 값이 오르고 월급보다 부수입이 더 많으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게 정상이 아니라 여러분이 정상인 것이다. 미국에서 가족이 똘똘 뭉치면 뭘 해도 먹고 산다. 사농공상의 시대가 아니다. 장사하겠다는 자식들 구박말고 보듬고 응원하고 사랑하자.
지역 단상- 1편 (7/18/2014)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무더운 더위만큼이나 지역경제가 우리의 삶을 짓누른다. 살기가 어렵다는 말이 어제 오늘 시작된게 아니니 또 그려러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성피로가 누적되어 주저앉는 느낌이다. 나는 우리 지역의 일선에서 많은 한인 가게들을 분석하고 매매를 하는 입장에서 작금의 한인 지역 단상을 말해볼까 한다. 이것은 나의 지극히 단편적인 사견이며, 제한된 시간, 한정된 사고와 부분적 고찰임을 전제로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지역( 펜실베니아, 필라델피아, 사우스 뉴저지, 델라웨어에 국한함) 한인 경제는 갈수록 어려울 것이다. 경제는 사고 파는 시장논리이며 순환구조다. 돈이 흘러 들어오고 흘러 나가야 한다. 시장이 정체되어 있다는 것은 판매와 소비의 동반 침체와 하락을 말한다. 이는 곧 시장의 쇠퇴기를 의미하며, 쇠퇴는 몰락과 새로운 강자의 등장을 예고하기도 하다. 이것이 우리 지역 한인 경제의 대표적 단상이다. 먼저 시장의 전반적 추세는 소비자가 돈을 쓰지 않는다. 아니 못쓴다. 서민층은 물론이거니와 중산층도 수입이 현격히 줄어 들었다. 하지만 수입이 줄었다고 지출 규모를 갑자기 줄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금융위기 이후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그동안 모아둔 돈들을 소비해 왔다. 오래 전에 집을 샀으면 그 집을 팔거나 세컨드 모게지로 돈을 유용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야금야금 써 버려 이제 바닥이 났다. 아니면 이곳 저곳에서 심지어 한국에서 조금씩 돈을 빌려 썼다. 이제 남은 가게라도 팔아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일년이 지나도 이년이 지나도 팔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가게가 팔려야 그 돈으로 다른 가게를 사든, 살림을 줄이든 할 것이 아닌가?
지금은 가게 팔기가 정말 어렵다. 왜 그럴까? 한인 가게를 사겠다는 Buyer가 현격히 줄어 들었다. 재작년에 비해 작년과 올해는 절반으로 각각 줄어든 것이다. 인원수만 줄어든 것이 아니라 투자금도 줄어들고 용기와 자신감도 급격히 줄어 들었다. 한인 가게를 사겠다는 Buyer는 크게 여섯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그동안 주급 생활을 하면서 알뜰하게 돈을 모아 가게를 살려는 사람, 둘째는 하던 가게를 팔고 새로운 가게를 살려는 사람, 세째는 기존 가게를 하면서 여유자금으로 가게를 추가로 늘리려는 사람들, 네째는 한국이나 타지에서 아메리칸 드림(?? –요즘도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지 모르겠지만) 을 꿈꾸고 오는 이민자들, 다섯째는 타민족 사람들, 여섯째는 직장 생활이 어려워 부모의 도움으로 가게를 할려고 하는 1.5세나 2세들이다. 그런데 이 여섯가지 부류가 모두 막혀 있는 것 같다.
첫째 주급생활자가 돈을 저축하여 가게를 사는 것이 이민의 정석이고 대부분의 이민자가 그렇게 성장해서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작금의 주급생활자는 직장이 안정적이지 못하다. 한인 가게들 장사들이 잘 되지 않으니 종업원을 줄일려고 하고 가능하면 인건비가 저렴한 스패니쉬나 흑인, 아니면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고용한다. 한국사람이 한국 사람을 꺼려한다. 이 불경기에 주급생활을 해서 모을 수 있는 돈은 극히 제한적이다. 주급생활을 해서 10만불, 아니 5만불을 모은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며, 요즈음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이 10만불 미만의 소액 자본들이다. 소액 자본으로 살 수 있는 가게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런데 그 소액자본이나마 전재산을 투자해서 막상 가게를 살려고 해도 주변에서 모두 장사가 안돼서 죽겠다고 아우성이니 겁이 나서 할 수가 없다. 친구따라 강남 간다고, 여기 저기서 가게를 샀다, 팔았다는 소리가 많아야 덩덜아서 살텐데 서로가 가게를 사면 큰일난다고 겁을 주고 겁을 먹으니 누가 사겠는가. 물론 개중에는 돈을 가지고 있던 사람도 있지만 곳감 빼먹듯이 자꾸 자본금이 줄어든다.
두번째 Buyer는 가게가 팔리지 않으니 다른 가게를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다. 가게를 팔려는 사람들은 몇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현재의 가게를 팔고 은행융자를 얻어 더 큰 가게를 살려는 사람, 가게를 팔고 은퇴를 할려고 하는 사람, 가게를 팔아서 부채를 정리하고 조그만 가게를 할려는 사람, 부부 두사람 중에 한사람이 중병이나 의욕상실로 더 이상 지금의 가게를 꾸려 나갈 수 없는 사람, 이 지역에서는 더 이상의 것을 기대할 수가 없어서 타도시나 한국으로 제 2의 이민을 가는 사람, 등등 가게를 파는 사연도 각양각색이다만, 첫번째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축소지향적이고 하향 곡선의 우울함이다. 요즘 대부분의 매물들이 시급을 요하는 급매물들이니 가격도 저렴하고 계약조건도 좋다. 하지만 팔리지 않는다. 왜? 우리 지역 한인들이 예전처럼 돈이 없고 더 큰 문제는 사업 의욕이 없다. 너도 나도 실시간으로 한국방송을 보면서 느끼는 상대적 빈곤감이다. 자본금이 빈약한 사람이 편한 비지니스만 찾는다는 자체에 모순과 함정이 있다. 돈은 없고 편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반면에 큰 가게를 하는 사람들도 장사가 예전 같지 많고 여유돈이 없으니 가게를 두개, 세개 확장하지를 못한다. 또 기존의 한인 업종 가게들은 대부분이 이민 1세들이며 이들 대부분이 은퇴할 나이다. 나이든 6,70대 이민 1세들이 가게를 팔면 더 큰 가게를 하겠는가? 이민와서 평생을 지긋지긋하게 했던 동종 업종의 가게를 하겠는가? 그럴 생각이었으면 애시당초 팔지를 않았겠지. 그러니 가게를 팔아도 다시 가게를 사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분들은 가게 사는 것이 급하지 않으니 사도 그만, 안 사도 그만이며 하세월이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매물이라고, 파격적인 매물이라고 목이 터져라 외쳐봐도 관심조차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7/11/2014)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이제 내일이면 너는 캄보디아라는 낯설고 험한 땅으로 선교를 위해 떠나는구나. 네가 선택한 길이니 붙잡지는 못하였지만, 아버지는 지금도 네가 왜 그 먼곳까지 가야만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짧은 기간도 아니고 6개월이라는 긴 시간동안, 어찌보면 스물살이라는 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귀한 시간을 왜 가난하고 험한 나라에서 보내야만 하는지 먹먹하기만 하다. 너는 신학대학생도 아니고, 너의 꿈이 목회자나 선교사가 되고자 함도 아니며, 그렇다고 신앙심이 깊어서 선교의 열정을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하러 가니 헛된 시간들이 되지는 않겠지.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되겠지. 그곳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며, 선교사님 내외분을 도와서 여러가지 선교 사역을 하다보면 너의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를 절실히 깨닫게 되겠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모두 함께 1시간 동안 기도와 성경공부로 하루를 시작하면 신앙심도 깊어지겠지. 매일 빼곡히 짜여 있는 스케줄에 따라 봉사하다보면 시간의 소중함도 깨닫게 되겠지.
하지만 아들아, 네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 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해야 할 질문이 있을 것 같구나. 첫째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다. 하나님은 왜 나를 이 지구별에 보내셨는가. 가난한 저 아이들도 모두 하나님의 자식들인데 저들은 왜 가난한 나라에,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는가.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배불리 맛있는 음식을 먹지도 못하고, 어쩌면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야만 하는가. 저 아이들과 나는 왜 다른가. 너는 네가 선택해서 부자 나라에서 태어나고 좋은 부모를 만난 것이 아니다. 네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부모도 수많은 아이들 중에서 너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너를 선택하시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선택하시어 한 가족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이 너를 우리에게 주셨기에 부모의 능력 한도껏 너를 훌륭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뒷바라지를 해 온 것이다. 너를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좋은 교육을 받게 하시고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살게 하시고, 좋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하신 것이다. 물론 더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해서 억울할 수도 있겠지. 아버지도 스스로 인자한 아버지, 자상한 아버지, 부자 아버지, 좋은 아버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해 너희들을 키워 왔다고 생각한다. 네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을 운명이라고 한다. 그 운명에 순종하는 것을 순명이라고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선택하고 결정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왜? 왜? 하나님이 너를 가난한 캄보디아에서 가난한 부모를 통해 태어나게 하지 않으셨을까? 그 이유를 알아야만 한다. 그것이 이번 선교 여행의 첫번째 미션이며, 잃어버린 너를 찾기 위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두번째 질문은 <나는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이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시간이라는 것을 똑같이 공평하게 주셨다. 주어진 인생이라는 그 시간동안, 무엇을 하고 살 것인지는 전적으로 너의 선택이다. 확실한 것은 네가 하나님께 구하는대로, 열심히 사는대로, 노력하는 만큼만 주신다는 것이다. 너희 세대는 1백년을 산다고 한다. 백년의 인생이라는 여정 중에 몇년을 남들보다 늦다고 잘못된 것은 아니다. 아버지도 네가 빨리 대학을 졸업하고 빨리 돈을 벌기를 원하지 않는다. 인생은 방향이라고 했다. 30년을 살고 40년을 산 후에 인생의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후회하는 것 보다 지금 방황하는 것이 더 낫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고민하여라. 무엇을 해야, 무슨 직업을 선택해야 네가 좋아하는 일이고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인지 고민해라. 그 일을 통해 사회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보람된 일을 선택해라. 이 말은 당연하면서도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다. 아버지는 너에게 많은 직업들의 장,단점을 며칠에 걸쳐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인생길이란 네가 어떤 길을 선택하더라도 험난하고 힘든 길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 네가 좋아하고 보람된 일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다만 너는 하나님이 주신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매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래야 후회가 없다.
너는 이제 만 스물살의 성인 청년이다. 너는 이제 부모 곁을 떠나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아버지도 네 나이 때 객지생활을 시작하였다. 너는 할 수 있다. 너는 마음이 정말 착한 아이다. 너는 책을 좋아하고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지. 네가 캄보디아에 있는 동안 매일 매일 글을 써 보아라. 네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매일 주제를 정하여 글로 써 보는 것이다. 단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아야 하고, 너의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글 속에 분노나 원망이나 포기가 있으면 안된다. 희망과 사랑으로 결론을 맺도록 해 보아라.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보고 질문을 해 보아라. 그리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여 보아라.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괜찮다면 네가 쓴 글을 모아 일주일에 한번씩 우편으로 보내주면 우리 아들 보고 싶은 아버지 마음에 큰 위로가 될 것 같구나.
아무쪼록 선교사님 내외분 말씀에 잘 순종하고, 그곳 사람들과 잘 지내다가 몸 건강히 돌아오길 바란다. 엄마와 아버지는 너를 위해 매일 기도함을 잊지마라. 네가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아버지는 항상 네 곁에 있다. 언제라도 네가 도움을 청하면 도와줄 것이다. 아버지는 내 아들을 믿는다. 너는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정말 사랑한다.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 아들아.. 아버지, 제 아들을 지켜 주소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7/4/2014)
우리는 살면서 자주 하는 말이 살기가 점점 더 힘들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물질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말만은 아닐 것이다. 부부 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형제와 친구 간에, 이웃 간에, 국가와 사회 간에 점점 더 불신은 커가고, 실망은 깊어지는 이유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즈음 세대에 도덕이나 윤리라는 가치관이 존재 하는지 모르겠다. 현 세대는 시장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세대다. 돈이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삶의 목적도 돈을 버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 과거에도 그렇고 미래에 하고 싶은 일련의 모든 행위도 결국은 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출세도 성공도 돈으로 평가된다.
<시장 지상주의>는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 30년동안 온 세계를 지배해 왔다. 하지만 금융위기로 무너진 시장과 사라진 도덕이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장주의의 핵심에 담긴 도덕적 결함은 인간의 탐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돈으로 사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거래 만능 시대에 가장 문제는 첫째가 바로 불평등과 부패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부유한지 가난한지가 중요시된다. 돈이 모든 차별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주거지역, 자녀 교육과 학교, 의료서비스 등, 불평등 때문에 발생하는 고통들은 점점 급증하고 있다. 두번째는 시장의 부패 성향이다. 좋은 것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는 시장이 단순한 재화를 분배하는 역할에만 머물지 않고 돈이 되는 것에 무조건 투자를 하는 것이다. 사람을 사고 파는 노예제도, 아동 성매매, 등 뿐만 아니라, 시장의 도덕적 한계는 이보다 훨씬 보편적이고 일상적이다. 즉 사회 관습, 인간관계, 일상생활 등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다시 말해 <돈으로 사려 해서는 안되는 것들>과 <돈으로 사게 해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다. 이 글의 제목은 마이클 샌들의 책 제목이다. 27세 하버드 대학의 최연소 교수이자, <정의란 무엇인가>의 명강의로 우리에게 더 알려져 있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좋음>과 <옮음>, 즉 <행복>과 <정의>의 조화로움이다. 이 글은 그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인용함을 밝힌다. 그의 정치 철학의 한가지 주류는 <행복>이다. 행복 중심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하여 헤겔에서 찰스 테일러에게 이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려고 하며, 그 행복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가 윤리와 정치 목표라고 했다. 즉 인간의 삶이 가진 내적 목표를 충실히 실현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정의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의 역량에 대한 이해, 올바른 판단, 그가 속하는 공동체의 가치관과 밀접히 연결된다. 그 핵심 개념이 <좋음 – the good> 이다. 나 개인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특수성에도 부합되는 보편적 가치를 말한다. 다른 한가지 주류는 <정의>다. 정의는 <옳음 – the right>에서 출발한다. 칸트는 옳음을 통해서만 보편적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옳다는 것이 자기 모순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의지가 항상 보편적 입법에 타당하도록 행동하라는 것이다. 센델은 이 두가지 사상의 특수성과 보편성이 모두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옳음에 대한 좋음의 우선성>이라 말할 수 있다. 센델은 현대의 시장 만능주의는 결코 중립적인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변질된 재화라는 것이다.
그 예로 돈으로 살 수 있는 시장 지상주의, 거래 만능시대의 사례를 조목조목 들면서 비판한다. 몇가지만 예를 들면 –교도소 감방 업그레이드 (호텔같은 개인 독실)는 1박에 $82달러, – 인도인 여성 대리모는 $6,250, -미국 즉석 영주권은 $500,000, – 멸종 위기의 검은 코풀소 사냥권 $150,000, – 미국 전담의사 휴대폰 전화번호는 년간 $1,500에서 $25,000, -자녀의 미국 명문대 입학 허가권은 비공개, 그밖에 <자신의 몸을 팔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으로 – 이마 혹은 신체 일부를 상업용 광고로 활용 $777, – 제약회사 약물 실험대상 $7,500, – 민간 기업에 고용되어 용병으로 전쟁 참가는 매달 $250에서 매일 $1,000 등 다양, – 책 한권 읽을 때 마다 $2불 씩, – 학교 출석만 해도 매일 $1씩, – 아픈 사람 생명보험 증권 매입 (매년 300억달러 시장 규모), 비만자가 체중 6Kg 감량하면 $378, 또 <새치기>에는 –비행기 우선 탑승권, – 놀이공원 VIP 입장권, -불임 수술 장여금, -진료 예약권 암거래, – 대리 줄서기, 그 밖에 대리 사과 서비스, 결혼식 주례와 축사 판매, 선물의 현금화, 돈으로 명예직 사기, 핵폐기장 보상, 청소부 보험, 대기업들의 종업원 사망 채권, 각종 명명권 (광고효과를 위한 경기장, 도로, 건물 등 광고 자리) 등등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사고 파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니 우리도 모르게 모든 생각과 생활은 <돈>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부모를 보고 자란 자식들 역시 모든 것을 돈으로 귀결시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부부 간에도, 부모와 자식 간에도 돈이 되면 관계를 유지하다가 돈이 되지 않으면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안되는 것 아닌가.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것이 우리의 삶에는 얼마나 많은가. 사랑, 우정, 존경, 효도, 믿음, 신뢰, 명예, 의리, 충성, 감사, 나눔, 배려, 자비, 등등 그동안 잊고 살았던, 아니면 잃어버렸던 그 휼륭한 가치들을 다시 찾아와야 하지 않을까. 내가 바로 서야, 내 가족이 바로 서고 내 이웃과 사회가 바로 서는 것이 아닐까.
텃밭 (6/27/2014)
이번에 새로 이사간 집에 조그만 뒷마당이 있다. 그 뒷마당은 나무도 없고 잔디만 심어져 있다. 나는 천성이 게으른 사람임을 내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는 나무가 많은 집이 싫다. 나무를 가꾸는 것도 싫고 가을이면 낙엽 치우는 것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잔디가 있는 집도 싫어 마당이 없거나 마당에 돌이 깔려 있는 집으로 이사갔으면 소망했다. 나는 <보기에 실로 좋았더라.>형이다. <입만 가지고 살아온 남자>다. 나는 남이 가꾸어 놓은 것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타입이다. 아버지는 분재와 동양난을 좋아하셨다. 그래서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이들을 위한 별도의 온실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께서 수시로 이 온실에서 많은 시간과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아버지께서는 난의 잎사귀 하나 하나를 닦으시면서 난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에 대해 설명하셨다. 분재 하나 하나에 대한 사연과 그 분재가 담고 있는 철학도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분재와 난에 대해서는 거의 전문가 수준이셨다. 하지만 그때도 나는 <보기에 좋았더라>로 만족하는 소박한(?) 소년이었다.
그런 까닭에 이번 집도 가꾸고 돌볼 것이 없는 집으로 정해 주십사 간구했는데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어느날 아내가 곡갱이며, 삽이며, 갈쿠리며,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장비들은 사 온 것이다. 무슨 공사를 하느냐고 물으니까 잔디밭 구석에 <텃밭>을 만든다고 한다. 아니 멀쩡한 잔디밭을 파엎고 텃밭을 만드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무슨 대단한 채소를 길러서 먹겠다고 그러느냐, 필요할 때 시장가서 사 먹는게 훨씬 저렴하고 경제적이다, 누가 텃밭을 만들고 누가 기를 것인가, 나는 아침에 나갔다가 해 떨어지면 집에 오는데 언제 하느냐, 나는 못한다고 강경하게 대항했다. 아내는 본래 말수가 적은 편인데 단호하게 한 말씀만 하신다. “내가 만들고 내가 키울테니 당신은 걱정하지 마세요.” 게임 끝.
그래도 명색이 내가 남자인데 모른 체 할 수야 있나. 텃밭만은 내가 만들어 주기로 마음 먹고 아내가 출근한 토요일 아침에 삽을 들었다. 아내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과 이 기회에 점수도 따고 싶은 소아기적 영웅심리가 발동했을 것이다. 또 손바닥만한 텃밭이니 내 생각으로는 한, 두시간이면 끝날 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부끄러운 고백을 할 게 있다. 사실 나는 60년을 살면서 삽이나 곡갱이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장교 시절, 딱 한번의 삽질이 나의 삽질 역사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나는 이날 에고 에고 죽는 줄 알았다. 텃밭 만들다가 죽은 최초의 한인 이민자로 신문 기사에 날 뻔 했다. 정확하게 잔디밭 갈아 엎는데만 5시간 30분이 걸렸다. 어설픈 텃밭 만드는데 이틀이 꼬박 소요되었다. 손바닥에는 물집이 잡히고 어깨며 팔 다리며 아프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날 따라 날씨가 더워 웃통을 벗고 일했으니 어깨는 벌겋게 익어 버렸다. 며칠을 나누어 일하면 될것을 아내에게 칭찬받겠다는 일념으로 무식하게 일한 것이다. 나는 운동할 때를 제외하고는, 노동으로 이렇게 많은 땀을 흘린 적이 없다. 나는 이 조그만 텃밭이 앞으로의 내 인생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지 모른다. 하지만 텃밭을 통해 살아 있는 생명의 존귀함과 노동의 신성함을 배울 것같다. 무엇을 경작하여 먹는다는 기쁨보다는 흙과 하늘과 햇빛과 비와 바람소리를 배울 것이다.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뉴 햄프셔 월든이라는 호숫가 외딴 곳에서 통나무집을 짓고 2년반을 살았다. 누구의 도움이나 타협없이 자연과 더불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힘든 것은 당신이 당신 자신의 노예 감독일 때다. 인간에게는 신성 (神性)이 있다고 흔히들 말한다. 당신이 하루종일 움츠리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막연한 불안에 휩싸여 있는 모습을 보라. 신성이나 불멸은 커녕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 즉 스스로의 행위에 의해서 얻어지는 평판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의 인생을 조용히 보내고 있다. 이른바 체념이라는 것은 확인된 절망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진실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현재의 통상적인 생활방식을 택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진정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고정관념은 지금이라도 버리는 것이 낫다. 아무리 오래된 사고방식, 혹은 행동방식일지라도 증명되지 않는 것을 믿어서는 안된다. 오늘 모든 사람들이 진리라고 받아드리고 묵과하는 것이 내일에는 거짓으로 판명될지도 모른다. 현대인들이 하루종일 죽도록 일하는 것은 대부분이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다. 이를 <생활 필수품>을 얻기 위함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 생활 필수품들이 과연 없어서는 안될 필요불가결한 것들인가. 그렇지 않다. 없어도 될 많은 사치품과 유행품들로 내 자신을 구속하는 것이다. 많은 동물들에게는 단 한가지 생활 필수품, 즉 당장 먹을 것이 있을 따름이다. 가장 현명한 사람들은 항상 가장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간소하고 결핍된 생활을 해왔다. <자발적 빈곤>이라는 고지에 오르지 않고는 인간 생활의 공정하고도 현명한 관찰자가 될 수 없다. 어떤 분야에서 살지라도 불필요한 삶의 열매는 사치일 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의식주는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고 간소할지도 모른다. 과연 이 조그만 텃밭이 내게 줄 교훈은 무엇일까? 나에게는 또다른 배움의 시작이다.
멈춰 선 물레방아 (6/20/2014)
우리네 삶을 물레방아 인생이라고도 하고 수레바퀴 인생이라고도 한다. 두가지 모두의 공통점은 바퀴의 중심축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 중심축이 내 신앙의 절대자일 수도 있고, 내 인생의 핵심 가치일 수도 있다. 그 중심축이 무너지면 물레방아도 무너진다. 즉 존재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중심축은 절대성이다. 반면에 그 중심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바퀴살은 인생의 반복성이며 상대성이다. 태어남과 죽음,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 사랑과 증오, 행복과 불행, 건강과 아픔, 젊음과 늙음, 부유와 가난, 성공과 실패, 등등 대부분의 삶의 가치에는 상반적 가치가 존재한다. 내 삶에는 그러한 가치들이 맞물려 돌고 도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지금 처해진 상황이 상반적 가치임을 잊고 살 때가 많다. 마치 지금 행복하면 영원히 행복할 것 처럼, 지금 불행하면 죽는 날까지 불행할 것 처럼 착각하고 산다. 지금의 가치 저 건너편에는 상반된 가치가 기다리고 있음을 잊고 사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조영남씨가 리메이커 해서 부른 <물레방아 인생>이라는 가사를 기억하고 있다. 원곡은 C.C.R 이부른 <Proud Mary>였는데, 중학생 때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흥얼거리곤 했다. 학교 소풍이나 바닷가 캠핑이라도 가면 그 곡에 맞춰 정체불명의 춤을 추며 괴성을 지르던 기억이 새롭다. “세상 만사 둥글 둥글 / 호박같은 세상 돌고 돌아 / 정처없이 이곳에서 저 마을로 /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 그렇다. 물레방아는 둥글다. 물레방아는 24시간 돌아가는 묵묵함과 지속성이다. 물레방아는 한쪽 방향으로만 돌아가는 순리와 순종의 삶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둥글다. 동그라미는 반복성인 반면에, 연속성이고 영원성이다. 인생은 직선이 아니다. 그 길이가 길고 짧음이 아니며 언제가는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이나 윤회 역시 동그라미다. 이승의 삶이 끝이 아니라 다음 세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태어남과 죽음의 직선이 아니라 죽음 뒤에는 다시 태어남으로 이어진다. 지금의 삶이 힘들고 가난할지라도 바퀴살 저 맞은 편에는 행복과 부유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직선적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삶이 직각으로 모서리져서 그 모서리 끝에 서면 절벽으로 떨어질거라는 두려움으로 너무 각박하게 사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교만한 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하며, 절망하는 자는 마치 세상의 끝인듯 절망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세상은 둥글고, 그 둥근 세상은 돌고 돈다는 사실만 자각해도 훨씬 삶에 여유로움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물레방아나 수레바퀴도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 바퀴를 돌리는 원동력이 있어야 한다. 물레방아는 <낙수물>이 필요하고, 수레바퀴는 끌고가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내 인생을 누가 대신하여 앞에서 끌어 주거나 낙수물이 되어 주지는 않는다. 펌프의 <마중물>도 같은 개념이다. 요즘 우리 지역의 한인 사회를 보면 멈추어 선 물레방아를 연상케 한다. 설령 멈추어 서지는 않았지만 낙수물이 너무 약해 거의 기력을 상실한 것 같다고나 할까. 돌아가지 않는 물레방아는 그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낙수물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서 있는 물레방아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다. 주체성을 상실한 종속성이다. 물레방아가 돈다는 의미는 <변화>를 말함이다. 물이 고이면 썪듯이, 변화하지 않는 사회는 침체되어 소멸한다. <변화>를 방해하는 요소는 두려움, 망설임, 안주함, 게으름이다.
요즘 우리 지역 한인 사회의 단상을 살펴보자. 큰 가게를 가지고 있거나 돈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현실에 만족하며 안주한다. 사업할 돈이 없거나 주급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불안하고 망설어져 현실에 자위하고 안주한다. 가진 자나 가지지 못한 자나 모두 멈추어진 상태다. 미국 외지나 한국으로 부터 유입되는 인구도 극히 줄어들었다. 교포 2세들은 아버지 세대가 하던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다고 새로운 다른 사업목표가 분명한 것도 아니다. 요즘 한인 사회를 보면 한인들이 하는 모든 업종이 불만이다. 요즘 한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한물 갔다>이다. 세탁소도 한물 가고, 블랙퍼스트도 한물 가고, 뷰티 서프라이는 일찌감치 한물 갔고, 비어 관련업종도 한물 가고, 한때 반짝이든 드랍스토어도 한물 가고, 네일 가게도 한물 가고, 이것 저것 모두 한물 갔으면 무슨 업종을 원하는지, 무얼 해서 먹고 살겠다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가게 매물은 여느 때에 비해 흘러 넘친다. 그 중에는 좋은 매물도 많다. 매물들은 장사가 안되어서 내놓은 매물들만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급한 사정들이 있어서 내놓은 매물들이다. 몇년 전만 해도 나는 이, 삼십개의 매물만으로 이 사업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10배 이상이나 많은 삼,사백개의 매물을 가지고 있다. 이 지역의 어느 민족 브로커와 경쟁해도 자신이 있다. 하지만 매매에는 쌍방이 있다. 매물은 많지만 Buyer가 약하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Seller분들께는 빨리 팔아드리지 못하는 내가 죄인이다. 나의 소견으로는 요즘 Buyer들은 첫째가 자본이 약하고, 둘째는 좋은 가게를 사서 빨리 경제적 독립을 하겠다는 의지나 열정이 약한 것 같다. 흥청망청한 한국에 편승하여 함께 안일해져 가는 것인가. 이민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각박하고 치열하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도전>해야 한다. <도전>하기 위해서는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목표가 분명하면 달성하기 위한 <추진력>과 <열정>과 <긍정적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 Buyer라면 온 천지를 뒤져서라도 반드시 도와드리고 싶다.
가족 사진 (6/13/2014)
당신은 빛바랜 앨범 속에서 가족 사진들을 들여다 본 적이 언제였던가? 우리 집에는 몇권인지 잘 모르지만 제법 많은 가족 앨범들이 있었다. 아내는 빈손으로 이민오면서도 가족 사진들은 모두 챙겨왔는가 보다. 하지만 나는 살아오면서 그 앨범들 속의 사진들을 들여다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아니 이민 오기 전에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 싶어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 가족 모두가 사진관에 가서 가족 사진을 찍었다. 그것을 큰 액자에 만들어 지금도 집 거실에 걸어놓고, 사무실 책상 위에도 있으니 그 사진만은 매일 바라다 본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이민을 가지 않으면 안되었던, 가족 모두가 힘들었던 그 시절, 한국에서의 마지막 가족 사진이다. 하지만 그 큰 사진 액자 속에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 아버지는 그 가족 사진을 찍기 12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그때 아버님 연세가 64세였으니까 내 나이가 이제 내일 모레면 어느듯 그 나이가 된다. 나는 왜 아버지와 온 가족이 있는 사진을 확대해서 걸어 놓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아마도 막내 아들놈이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막내 아들놈이 태어나기 수년 전에 아버님이 타계하셨으니 부모님과 자식들 모두 찍은 사진이 있을리 만무하다. 그래서 내 자식들은 모두 있고 아버님은 안계신 사진을 택한 것은 아닐까. 송구하고도 불효막심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속으로만 그리워 할 뿐, 앨범 속의 아버지 사진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친구로 부터 아주 소중한 선물을 받았다. 아내가 평소에 앨범들 사진들이 빛 바래고 퇴색되는 것은 물론이고, 앨범들이 오래 되어서 새 앨범으로 옮길려고 하니까 사진들이 손상되기 십상이라고 친구에게 하소연 했는가 보다. 평소에도 내 친구와 내 아내는 서로의 고민들을 나누는 또 다른 친구 사이다. 아내가 고민하니까 친구가 사진들을 몽땅 가져오면 디지탈 영상으로 모두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첨단 디지탈 영상장비들을 갖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철없는 아내는 나도 모르게 앨범 속 사진들을 몽땅 떼어내어 그 친구에게 갖다 주었다. 그런데 그 사진의 양이 무려 4천5백장이었단다. 친구는 많아야 몇백장 정도일거라 생각했는데 상상을 초월한 양이었던 셈이다. 친구는 싫은 내색 한번 하지도 않고 시간이 몇달 걸릴것 같으니 조금 참고 기다리라는 말만 하고는 그 사진들을 한장씩 작업했다고 한다. 나보다도 더 바쁜 친구가 밤마다 조금씩 시간을 내어 6개월 동안 그 사진들을 모두 디지탈 영상으로 바꾸었다. 그것도 모든 사진에다가 배경 음악을 깔아서 디지탈 액자에 만들어 새집 이사 선물로 가져온 것이다. 고마우면서도 정말 감동적인 선물이었다. 그 디지탈 사진 액자를 바라 보노라면 내가 살아온 길들이 보인다. 살아온 세월의 기쁨과 아픔이 보인다. 그 사진틀 속에는 내가 잊고 있었던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셨다. 내 형제들과 조카들이 있었고 내 어릴적 친구들이 있었다. 내 아내의 자라온 어린 시절과 처녀 시절이 있었다. 장인 어른, 장모님이 계셨고, 처가집 형제들이 있었다. 나의 자식들이 그 사진 속에서 자라나고 있었고, 그 자식들로 인한 기쁨과 소망이 있었다. 처음 보는 사진들도 많았다.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세월들이 바보스러웠다.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니 잊고 살았던 감사할 이유들이 그 사진들 속에 너무나 많았다.
이 사진들을 모두 볼려고 하면 몇시간이 걸리는지 모른다. 내 아내는 요즘 새로운 버릇이 한가지 생겼다. 집안 일을 모두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혼자 그 사진틀 앞에 마주 앉아 포도주 반잔을 마시면서 그 사진들을 하염없이 바라다 보는 것이다. 아내의 새로운 친구라고 한다. 사진을 바라보며 늙어가는 내 아내와 그 사진 속의 젊은 아내가 내 시야에 실루엣처럼 겹쳐 온다. 나 같은 사람 만나지 않았으면 이런 고생도 하지 않고 저 사진 속 처녀처럼 곱게 늙어 갈 수 있었을 텐데.. 함께 살아줘서 고맙고 또 미안하기만 하다.
한편으로 자식이 부모와의 가족 사진을 바라볼 나이가 언제쯤일까. 지금은 내 자식들이 빛바랜 옛날 가족사진에 관심이 없듯이, 저들도 내 나이가 되어 늙어가면 그때서야 부모와의 사진들을 보며 그리워 할까. 예나 지금이나 부모가 자식을 그리워하며 찾을 때 자식은 그 자리에 없었고, 그 자식이 나이들어 부모를 그리워 할 때가 되면 그 부모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저 가족 사진을 바라볼 나이가 되면 알까.
얼마 전에 나는 잘 알지 못하는 SG워너비의 <김진호>라는 젊은 가수가 중학교 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작사 작곡한 <가족사진>이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가슴 아파한 적이 있다. “바쁘게 살아온 당신의 젊음에 / 의미를 더해줄 아이가 생기고 / 그날에 찍었던 가족 사진 속에 설레는 웃음은 빛바래 가지만 // 어른이 되어서 현실에 던져진 / 나는 철이 없는 아들 딸이 되어서 / 이곳 저곳에서 깨지고 또 일어서다 / 외로운 어느날 꺼내본 사진 속 아빠를 닮아 있네 // 내 젊음 어느새 기울어 갈 때쯤 /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들이 / 가족 사진 속에 미소 띈 젊은 우리엄마 / 꽃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웃음꽃 피우길 //
나는 살아 생전 아버지께 아무 것도 해 드린게 없다. 아버지. 오늘따라 아버지가 미치도록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단칸방의 추억 (6/6/2014)
이민와서 처음으로 조그만 집 한채를 얼마 전에 샀다. 은행융자를 받아서 산 집이니 정확하게는 내 집이라 할 수 없고 은행 집인 셈이다. 하지만 IMF때 내 집이며 건물들을 모두 잃어버린 이후 셋방살이 15년만에, 이민온지 13년만에 내 집이라고 처음 산 것이니 감회가 새롭다. 미국에서 내 집을 한채 갖는다는 것은 재산 증식을 위한 투자로서는 별로 가치가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미국의 내 집이라는 의미는 생활의 만족과 여유로운 사치로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언젠가 집값이 오르면 고마운 일이지만 오르지 않아도 즐기며 산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나는 한국에서 살 때나 미국에서 살 때나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 밖에서 보낸다. 일도 그렇고 취미 생활도 밖에서 보낸다. 반면에 집을 가꾸거나 장식하는데는 전혀 소질도 없고 별 관심도 없다. 정원이나 텃밭을 가꾸고 돌보는 것도 별로다. 하물며 집 수리를 한다거나 집안 살림살이가 고장이 나면 사람을 부르거나, 아예 새것으로 바꿔 버린다. 그렇게 몇년을 살다가 지겨우면 다른 새집으로 이사를 간다는 것이 나의 집에 대한 통념이었다. 나는 이번에 집을 사면서 내 아내가 이렇게 까다로운 사람인지 정말 처음 알았다. 한국에서는 아파트를 살 때 모델 하우스에 가서 분양을 받거나, 지역과 가격만 맞으면 나머지는 아내가 모두 알아서 결정했다. 그런데 이번에 집을 결정하기 까지 조금 과장해서 매물 백여채는 검토했으니 나는 거의 초죽음이 되었다. 하루 일과가 퇴근하면 저녁먹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아내와 함께 인터넷에 매물로 나온 집들은 모조리 검토해야 한다. 그 중에 마음이 드는 집이 있으면 일차적으로 먼저 가서 외관을 봐야 한다. 그래서 마음이 들면 에이전트를 통해 집 내부를 보는 것이다. 대부분이 사진보다 실망하기 일쑤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아내의 조건은 까다로우니 쉽게 결정될 리가 없다. 그러다가 좋은 집도 몇채 놓치고, 계약에 들어간 집 몇채는 계약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깨어지기를 몇번 반복하다 보니 일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다. 하지만 이번에 구입한 집은 인터넷에 올라온지 하루만에 가서 보고는 그 자리에서 계약하고 2주일만에 크로징하였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다행히 아내가 요구하는 대부분의 조건을 모두 갖춘 동시에 나의 필요조건을 충족한 집이니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이 모든 과정은 그분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하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내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 가족은 처음 이민왔을 때 단칸방 아파트에서 살았다. IMF로 모든 재산을 잃게 되자, 아내는 자식들 교육 (딸아이 둘 모두 예술학교에 다니고 막내 아들은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였음.)을 한국에서는 도저히 시킬 수 없음을 알고 무작정 보따리를 싸서 아이들과 함께 미국에 먼저 온 것이다. 그 때 아내가 구한 아파트가 이 단칸방 원룸이었다. 나는 일년동안 가족들과 떨어져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미국에서 9.11사태가 난 것이다. 아내는 도저히 떨어져 살 수 없으니 무조건 미국에 들어와 같이 살자는 것이다. 나는 다 늙은 나이에 무대책, 무계획 상태로 이민 아닌 이민을 온 것이다. 그 단칸방에서 우리 가족 5명이 6년을 살았다. 그 때 우리 아이들은 그 곳에서 가난을 알았다. 거실도 아닌 거실에서 다 큰 아이들 세명이 6년을 뒤엉켜서 그렇게 살았다. 화장실도 하나 뿐이라 아침이면 전쟁이다. 자동차도 한대 뿐이었으니 우리 아이들은 어지간한 거리나 한,두시간 정도는 걸어 다녔다. 부모는 흑인 동네 가게로 새벽에 나갔다가 밤 늦게 들어 오기 일쑤였다. 그러니 그 단칸방에서 저희들끼리 밥해 먹고 학교를 다닌 것이다. 주위의 따가운 눈총도 많았을 것이고 학교 친구들에게도 따돌림을 당하였을 것이다. 먹고 살기에 지친 부모에게 전혀 내색조차 못하였으니 가슴에 맺힌 엉어리는 또한 얼마나 많았을까. 체류 신분 문제며, 먹고 사는 생활 문제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것이 없었다. 그런 6년이라는 세월을 그 단칸방에서 살았다. 6년 뒤에는 방이 3개, 화장실이 2개인 임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마치 대궐 같았다. 그 때도 무리하면 어찌어찌 내 집 한채 정도는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 학비가 한창 들어갈 나이니 내 집 마련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새로운 아파트에서 또 7년을 살았다. 다행히 아이들 학자금 융자나 빚은 지금까지 없다.
그래서 이제는 아내에게 약속한 <아내의 집>을 사 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야 내 집을 마련했건만, 막상 내 집에는 자식들이 모두 떠나간 뒤다. 큰 딸은 한국으로 시집가서 일년만에 자기들 집을 사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둘째 딸은 맨하탄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이번 9월이면 영국으로 떠난다. 막내 아들은 다음 달이면 캄보디아로 장기 선교를 떠난다. 이제는 각자 방도 있고 넓은 집에서 가족들이 모여 재미있게 살 수도 있으련만, 모두가 떠나간 것이다. 이 집은 우리 부부 둘만이 살기에는 넓은 집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언제라도 돌아오면 자기 방이 있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음에 위안을 삼고자 한다. 사랑하는 내 자식들아. 못난 아비를 만나 이 먼 미국 땅까지 와서 못할 고생만 시켜 정말 미안하구나. 이 애비는 결코 그 단칸방의 아픔을 잊을 수가 없단다. 너희도 그 단칸방의 가난을 잊어서는 안된다.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가족과 형제 간의 사랑을 잊어서는 안된다. 사랑한다. 내 아들 딸들아.
거짓된 사회 (5/30/2014)
우리는 살면서 많은 거짓말을 하고 산다. 그 거짓말이 하얀 거짓말이든, 까만 거짓말이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본의든, 타의든 긴 세월을 살면서 수많은 거짓말을 하고 산다. 특히나 현대 사회는 관계의 연속성이다. 내가 속한 국가, 지역 사회, 회사, 교회, 학교 등등 나 홀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다. 조직에 속하다 보면 조직의 문화와 법규에 구속된다. 나만의 주장을 하기가 쉽지 않고 그 기존 체제에 반대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흔히들 출세한다거나 성공한다는 것은 조직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원하는 것을 앞장서서 솔선수범하거나,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탁월할 때 비로서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우리들은 너무 거짓말에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거짓말 하는 것에도, 거짓말을 듣는 것도 너무 익숙하다. 거짓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함이 있다. 사고 가해자인 당사자들도 거짓말을 하고 있지만, 내 자신도 거짓된 삶에서 자유롭지 못함은 아닐까. 이번 세월호 사건에는 너무나 많은 해당 기관과 당사자들이 연류되어 있다. 하지만 아무도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고 당일부터 시작해서 앞으로 가해 당사자들의 재판이 끝나는 긴 시간동안 진실이 얼마만큼 밝혀질까. 힘이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서로의 책임회피에만 전력을 다할 것이다. 결국 그들 중에서도 힘이 약한 자와 조직에 쓸모가 없는 자들만이 감옥에 갈 것이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약자의 진실 게임은 강자의 거짓과 권력 앞에 묻혀지고 잊혀진다. 함께 울어주고 아파하는 서민 대중들은 먹고 살기가 바빠서 아픔도 잠시일 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는 사이에 또 다른 사건 사고가 발생할 것이며, 세상의 이목은 새로운 곳으로 향하게 되기 때문이다.
과연 한국의 <구조적 비리>는 없어질 수 있을까? 아니 조금이라도 이번 계기에 개선될 수 있을까? 나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비리를 척결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거짓된 사회>라고 감히 이야기 한다. 한국은 오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오로지 한가지 목표만 가지고 달려 왔다. <잘 살아 보자> 라는 한가지 목표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남들보다 잘 사는 방법은 공부 잘해서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이나 정부관료, 의사나 법조인이 되는 것이었다. 아니면 죽기 살기로 일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정직한 사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남들보다 빨리 부자가 되지는 않는다. 부자가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부정과 타협하고 권력과 손을 잡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거나 거짓말을 은폐하고, 거짓말에 동조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거짓말을 묵인하는 것이다. 그런 풍조가 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다면 거짓된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국은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고, 한강의 기적은 만들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빈부의 격차는 심해지고 소외 계층의 고통은 더 깊어만 갔다. 경제적 부는 축적했는지 모르지만, 가정은 깨어지고, 사제지간의 위엄은 땅바닦에 내동댕이 쳐졌다. <동방 예의지국>은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아름다운 동방의 나라>라고 칭송한 이래, 옛말이 된지 오래다. 돈 많은 자가 존경받는 사회고, 돈만 있으면 안되는 것이 없는 나라가 되었다. 황금 만능주의와 쾌락 지상주의, 외모 지상주의고 출세 지상주의 국가다. 온 나라가 성형 중독에 빠지고 명품에 중독된 한국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도덕 불감증 사회이며, 양심 부재의 사회다. 하지만 한국은 서구 선진국들 처럼 잘 사는 나라가 결코 아니다. 일개의 대기업이 한국 경제의 20%를 책임지고 있다면, 이것은 기형화된 구조로서 극히 위험하다.
이번 세월호 사건도 연관되지 않은 사회 조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정부가 그렇고, 관공서, 공공 기관, 법조계, 경찰, 언론 기관, 학교, 기업체, 심지어 종교 단체까지 총 망라된 총체적 부실이며, 총체적 부정이며, 총체적 타락이다. 이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허상이며, <거짓된 사회>인 것이다. 한국의 부정과 비리, 뇌물과 관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어느 특정 사회의 문제점이 아니다. 마치 커다란 먹이사슬 구조로 되어 있다. 한국이라는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 먹이 사슬에 스스로 결박당해야 한다. 그래서 부정 부폐의 반복된 습성이 몸에 베어 있는 것이다. 그런 의식 구조를 가진 자들이 무슨 생명의 존엄성이며, 인권이 있겠는가. 수백명의 어린 학생 목숨보다 먹이 사슬 구조인 그들과의 관계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사람의 생명이 촌각을 다투는 절대 절명의 그 시간 동안, 충분히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던 그 천금 같은 시간에 가해자인 그들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학부모들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동안 한국이라는 사회 구성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세월호 사건은 오랫동안 한국인의 가슴에 슬픔과 통한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 나라가 내 자식을 버렸기 때문에, 나도 이나라를 버린다.”라는 엄마의 절규가 차라리 죽은 영혼들을 위로할 것이다. 국민이 존재하지 않는 국가는 의미가 없다. 미국이 <멕시코 전쟁>을 치루기 위해 ‘인두세’를 거둘 때, 거부 운동을 펼치다 감옥에 간 <시민 불복종> 과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처럼, <시민 불복종>은 사상과 양심의 잣대로 볼 때, 결코 용납할 수 없어서 행하는 정의로운 행위이다. 거짓과 부정에 한국인 한사람,한사람이 한국의 <거짓된 사회>와 단단히 맞서 싸워야 한다. 그래야 한국도 비로서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버림받은 아버지 (5/23/2014)
며칠 후면 ‘아버지의 날’이다. 아버지 날이라고 특별할 것도 없지만, 현 시대의 아버지가 자꾸 왜소하게만 느껴짐은 왜 일까? 늙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처럼, 작아진 아버지의 어깨처럼 서글픈 사진도 없다. 요즈음은 자식이 부모를 봉양치 않는 일이 다반사고 당연시 되는 시대다. 하지만 부모가 혼자 살아갈 생활 능력이 전혀 없는데 버림을 받았다면, 버려졌다면, 방치되었다면 너무 각박한거 아닌가. 얼마 전에 나보다 연배가 많으신 60대 후반의 남자로 부터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마지막일지 모른다고도 한다. 몇년동안 소식도 없었고 뵙지를 못했으니 그동안의 소식을 알 길이 없다. 두시간여 동안 그동안 살아온 일들을 이야기 한다. 신세한탄을 한다. 눈물을 흘린다. 목이 잠겨 말을 잇지 못한다. 나는 이런 글을 쓴다는 자체가 마음이 불편하다. 개인 가족사 문제이고 가족 쌍방의 문제이니 누구의 편을 들고자 함도 아니요, 자식들의 잘못을 얘기하려 함도 아니다. 그저 내 자신을 되돌아 보며 생각케 할 뿐이다.
그는 강한 남자다. 거친 남자다. 살아온 세월이 순탄하지만 않았을 것이다. 군대생활도 빡세게 했다. 신체도 건장하고 힘도 세다. 성격도 괄괄하고 직선적이어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 술도 잘 하고 입담도 세다. 남자들 세계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받는(?), 먹히는(?) 남자다. 한마디로 쫌생이는 아니다. 그는 60이 다 된 나이에 이민을 왔다. 한국에서의 삶이든, 이민의 삶이든, 가족들에게 아버지로서 어찌 잘 한 일만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는 그의 자식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그와 40년 가까이 산 아내는 그로 인해 질환을 앓고 있다.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도 쫓겨났다. 자식들도, 아내도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나이가 다된 70에 영어를 하지 못하니 일자리도 없다. 한인 가게를 뒤지고 다녀도 아무도 그를 써주지를 않는다. 미국 노인 정책의 보호 대상자도 아니다. 그는 가진 돈도 전혀 없다. 오로지 전 재산은 남겨진 중고 자동차 한대 뿐이라고 한다. 그는 최근 2년 가까이 그 자동차 안에서 먹고 자고 생활한다고 한다. 그는 자녀들 집에 가지도 못한다. 경찰로 부터 ‘접근 금지 가처분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화를 해도 가족들 그 누구도 받지를 않는다고 한다. 지난해 추운 어느 겨울날, 배가 너무 고파서 자식들 집을 찾아 갔는데 자식들이 경찰을 부른다고 해서 쫓겨났다고 한다. 수도 없이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매번 그를 거절했다고 한다.
나는 그의 말을 백프로 다 맞다고 믿지 않는다. 아니 그의 입장에서는 맞을 수도 있지만, 자식들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식들은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고 믿음도 강한 사람들이다. 자식들과 아내 모두가 그를 싫어한다면, 한명의 가족이라도 그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전적으로 그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도 과거의 행위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한다. 한국의 여느 아버지들 처럼 거친 언행과 폭력, 기물 파괴 같은 일련의 행동들 말이다. 한국의 1950년대, 60년대에만 해도 어느 동네에서나 흔히 볼 수 있던 풍경이다. 자식들을 몽둥이로 때리는 일은 다반사고, 아내를 때려서 아내의 눈이 밤탱이가 되어도 찍소리도 못하고, 화를 내거나 고함을 칠 이유도 되지 않는데 밥상이 대문 밖으로 내던져지고 그릇이나 가재도구가 부서지는 소리, 두들겨 맞으면서도 잘못했다고 울부짖는 소리, 등등.. 변질된 아버지 상이다.
그는 나에게 자문을 구한다.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관계는 신뢰다. 신뢰가 깨어지면 관계도 깨어진다. 물론 세상에는 신뢰가 깨어졌지만, 재산상의 문제든, 혈연이라는 운명적 구속이든, 세인들의 구설수가 두려워서든, 어쩔 수 없어서 부부나 가족 관계를 유지하는 고마운(?)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 가족은 신뢰도, 관계도, 희망도 깨어진 상태다. 관계에는 쌍방이 존재한다. 저쪽이 문을 닫고 거부하면 이쪽은 기다리거나 포기하는 방법 밖에 없다. 관계 개선과 회복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이면 누구나 잘못을 한다. 실수도 한다. 하지만 나의 잘못된 행동들이 당사자에게는 씻겨지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면? 그 상처가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어 매 순간 순간 가족들에게는 공포가 될 수도 있다. 그러기에 더 이상은 상처받은 자식들이나 아내에게 접근하거나 구걸하지 마라. 가족들에게 용서도 빌만큼 빌었고, 해명도 할 만큼 했다면, 받아드리고 받아드리지 않는 것은 자식들의 선택이다. 세월이 지나 아버지로, 남편으로 받아주면 감사한 일이고, 받아주지 않으면 그것으로 이승의 연(緣)이 여기까지인가 보다 생각해라. 인과응보 (因果應報)고, 자업자득 (自業自得)이며, 사필귀정 (事必歸正)이고, 결자해지 (結者解之)다. 아버지는 아버지이어야 한다. 이제는 한 인간으로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진정한 홀로됨은 인생 말년의 축복일 수도 있고 기회일 수도 있다. 내가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모든걸 내려놓고, 자식을 원망하거나 야속해 할 필요도 없다. 부모가 몹쓸 병에 걸리거나 치매일 때 전혀 낯선 땅에 버리는 자식들도 많은 세상이다. 감사하게 생각하면 감사할 일이다. 선한 생각으로 선한 일을 하며 선하게 살면 된다. 다행히 아직은 크게 아픈 곳이 없으니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미국에서 굶어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의 아픈 영혼을 받아줄 곳도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내 자신을 포기하면 안된다. 살아 있다는 자체가 희망이다. 나는 이 가족들이 서로 용서하고 화합되길 소망한다. 참고 기다리며 용서하고 살다보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입니다. 아버지, 힘내세요.
가슴앓이 (5/9/2014)
세상을 살다보면 본의든, 타의든, 가슴아픈 일을 겪게 된다. 나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가슴앓이를 했을까? 어린 시절에는 공부와 시험, 부모님의 질책, 성인이 되어서는 사랑하는 여인과의 이별, 객지생활의 외로움, 아버님의 갑작스런 죽음, 어린 조카의 죽음, 친척의 배신과 사업 실패, 믿었던 우정과 소원함, 이민생활의 상실과 쓸쓸함, 자식의 기대와 실망감, 가난한 삶의 고통, 육신의 잦아지는 질병 등등.. 이제는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는 강 건너편의 상처들이다. 누구인들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슬픔과 고통의 나날이 적다고야 할 수 있겠는가. 혼자서 긴긴 밤을 속태우며 애끓는 일들이 어찌 적다고만 할꺼나..
하지만 내 자신과 내 가족이외의 타인들에 대해 진정으로 <가슴앓이>를 해 본적이 있었던가? 한없이 민망하고 망막하다. 나는 진정 가슴이 따뜻한 사람인가? 냉철한 지성의 소유자라고는 억지로 말할 수 있어도, 가슴이 따뜻한 남자는 아닌 것 같다. 한국사람은 <한 (恨)>이 많은 민족이다. 가슴앓이를 <속앓이>라고도 한다. 유난히 겉으로 표현은 못하고 속으로만 꿍꿍 앓거나 삭힌다. 그래서 한국인에게는 다른 민족에 비해 <화병,火病>이 유난히 많다고 한다. ‘애를 태운다. 애간장을 녹인다.’등의 표현에 <애>는 <창자>의 옛말이다. 그러니 한국사람은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마음뿐만 아니라 심장, 간, 위, 창자 등 내장기관을 모두 작살을 내는 셈이다. 사람은 여러 매체와 오감 (五感, 시각,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통해서 상대방을 처음으로 접한다. 그런 다음 상대방을 느끼고 이해하고 표현하는 경로(route)가 각기 다르다. 입에서 입으로, 입에서 머리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 상황에 따라 상대방에 따라 옮겨 가는 과정이 다르다.
사람들은 할말, 못할 말 가리지 않고 모두 입을 통해 쏟아낸다. 말은 입과 입을 거치면서 부풀어지고 과장된다. 특히 내가 아닌 그들을 이야기할 때에는 일초의 머뭇거림이나 망설임도 없다. 머리로 생각하기도 싫고 고민하기도 싫은 것이다. 상대방의 일로 머리 아픈 것도 싫은데, 하물며 가슴 아픈 것은 더더욱 싫다. 머리와 가슴이 움직이지 않는데 발이 움직일까? 머리가 지성이면 가슴은 영성인가. 영성이 아프지 않는데 나의 행동에 진정성이 표현될까? 지성인이라고 자칭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은 모든 사물을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상대방이나 타인은 물론, 목사님의 설교, 사물, 사건, 심지어 자연마져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과학적으로 접근할려고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 컨설팅이라는 일도 마찬가지다. 하루에도 내 머리 속은 수백건의 매물과 고객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서로 그물망으로 얽키고 설켜 있다. 그런 혼란 속에서 상대방을 분석하고 평가하고 토론하는 하루를 보내니 퇴근하는 시간이면 머리가 터질 것만 같다. 심지어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도 머리로 분석하고 평가한 후 머리로 결정한다. 저 사람은 성장한 배경이, 살아온 환경이, 알고 있는 지식이, 처신하는 행동이, 주어진 여건이 그렇기 때문에 저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결론짓는 것이다. 신용복 교수는 이런 현상을 <문맥>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즉 이성과 논리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강고한 <문맥>에 갇혀있다는 것이다. 타인을 <타자화>하고 자연을 <대상화>한다. <톨레랑스>라는 <관용>도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은 하지만, 진정으로 상대방을 가슴 아파하지 않는 한계가 있다. 이어령 교수는 몇년 전 세레를 받으면서 <지성에서 영성으로>이라는 책을 통해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 기독교는사막처럼척박한환경에서의굶주림과갈증이승화된종교이다. 일관되게가장배고픈단계부터가르쳐주고거기서나아가또다른배고픔과갈증을가르쳐주고, 마지막에는영성에도달하는갈증을가르쳐준다.”라고 했다. 하지만 영성(가슴)으로 도달하기가 쉬운 일인가. 요즈음 그의 어느 글에선가 “지금도 지성과 영성의 문턱을 수시로 오르내린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길이라고 했던가. 나는 언제 이 <가슴 여행>을 마치고 내 가슴에 도착할 수 있을까. 언제쯤이나 머리로 따지지 않고 진정으로 함께 가슴 아파하는 <가슴앓이>를 할 수 있을까? 김수환 추기경님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평생이 걸렸다고 하신다. 그래서 스스로를 <바보>라고 하대하셨는지도 모른다. 그토록 만인의 맨토이셨던 그분 마저도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여정이 그렇게 멀고도 힘든 길이라면 우리같은 범부야 오죽이나 할까. 생각 같아서는 머리로 따지지 말고 가슴이 움직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같이 즐거워하고 함께 아파하면 될 것을 말이다. 영화 <겨울왕국>의 공주처럼 언젠가는 내 가슴의 얼음이 모두 녹아버릴 날이 올 수 있을까? 내 스스로가 만든 나의 <얼음 왕국>을 녹여줄 사람은 나 자신 뿐이다. 가슴이 따뜻한 남자이고 싶다. 눈물이 많은 남자이고 싶다. 항상은 아니어도 아주 가끔은 그런 따뜻한 남자이고 싶다. 나는 세상에 기적이 있다고 믿는다. 나의 주변이나 손님들 중에는 신앙이 미천한 나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가끔은 아주 가끔은 그분들 기도를 하다보면 내 눈에 눈물이 맺힐 때가 있다. 정녕 기적의 신호탄인가, 아니면 신기루와 같은 일시적 현상에 불과한 것일까? <가슴앓이>의 최고봉이신 <그분>을 닮아가려고 애쓰다 보면 그분은 아시겠지. 내가 싹수가 있는지 없는지를….
노출된 위험 (5/2/2014)
현대인은 물질문명의 발달로 편리한 세상에서 산다. 또 의학의 발달로 과거보다 훨씬 오래 살게 되었다. 하지만 현대인은 물질의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얻는 대신, 잃어버리는 것도 많다. 현대인은 일상에 많은 위험을 안고 산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위험에 노출된 것일까? 각종 질병, 교통사고, 화재 사고, 재난사고, 총기사고, 산재사고, 등등 하루에도 이루 헤알릴 수 조차 없는 사고에 노출되어 있지만, 정작 내가 당하지 않으면 남의 일로 치부되고 거짓말처럼 잊혀지고 잊고 산다. 타인의 고통은 치통 (齒痛)과 같다고 한다. 아픈 당사자는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나는 아픔을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고는 반복성이다. 사고는 확률이다.인재든, 자연재해든, 산업재해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고통이며 재앙이다.
오늘은 부활절이다. 한국의 세월호 침몰사건이 난지 5일째 되는 날이다. 사망33명이고, 실종자 269명은 생사 조차 알지 못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온 국민이 함께 애를 태우며 울고 공분하고 있다. 내 칼럼은 2주일 뒤에 출간되니 상황은 어떤 형태로든 종료되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종류의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서도, 일어날 수도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나의 고객들이나 주변 사람들 중에는 예상 외로 교통사고를 당하신 분들이 많다. 교통사고는 나만 조심한다고 방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업무상 많은 시간을 운전한다. 하루에도 몇건의 교통사고를 목격한다. 그 많은 교통사고가 나에게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각종 질병은 어떠한가? 지금도 질병으로 고생하시거나 이미 세상을 떠난 분도 많다. 며칠전 가까운 손님이 한국을 2주간 다녀오셨다. 한국의 아버지 어머니가 두분 모두 치매(알츠 하이머) 환자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치매환자여서 아버지가 간병을 했다. 정년퇴직을 하고 나니 당신의 수입은 없고 한채 있는 집마저 월세로 옮기면서 어머니를 돌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마져 치매환자이니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치매의 정도가 심하여 한국의 형제들도 못모시겠다고 하고, 그렇다고 대책없이 미국에 모시고 올 수도 없는 형편이다. 자식들도 각자 살기가 빠듯하다. 시대가 그러하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또 며칠전 나의 고객 중에는 아내가 치매환자여서 남편이 항상 데리고 가게에 나가는 노부부가 계셨다. 그날도 가게를 가는 길에 느닷없이 상대방 차가 중앙선을 넘어와 두분이 크게 다치셨다는 것이다. 차량이 전파되고 두분은 헬기로 후송되는 큰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언젠가 한국의 여류작가도 치매에 걸렸는데 남편이 간병을 하다가 도저히 방법이 없자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더없이 사랑하였기에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집집마다 사고를 당한 기막힌 사연들을 들으면 가슴이 먹먹하다. 당장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니니 미리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언젠가 내가 당할 일들이고 우리 모두의 일이다. 어쩌면 현시대를 산다는 것이 마치 영화 <디어 헌터>에 나오는 <러시안 룰렛>게임을 하는 것 같다.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전쟁의 모순에 미쳐가는 미군 탈출병의 이야기다. 도박판에 선수 두명이 무대 위로 올라온다. 미친 관객들은 어느 한쪽에 돈을 건다. 각 선수에게는 38구경 권총이 주어진다. 38구경에는 6발의 탄환을 장착할 수 있는데 각 선수에게는 한발의 탄알이 주어진다. 그리고는 권총 뭉치돌이를 돌려버리면 탄환이 어느 칸에 장착되었는지 모른다. 그리고는 각자의 권총을 자기 머리 관자놀이에 겨눈다. 죽을 확률은 6분의 1이다. 두명 중에 한명이 포기하거나 죽을 때까지 자살놀이는 계속 된다. 죽을 확률만 낮다는 것일 뿐, 현대의 삶이 무엇이 다른가. 매일 교통사고는 일어나는데 다행히 정말 다행히 오늘은 내가 아닌 것 뿐이다. 다소 과장된 생각일 수는 있다. 하지만 만약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끔은 내가 혹은 내 아내가 치매나 불치의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지레 생각한다. 설령 자식들의 효성이 지극하여 치매걸린 부모를 서로 모시겠다고 하여도 과연 내가 허락할 수 있을까? 물려줄 재산도 없거니와 자식들의 삶에 짐이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래도 자식들이 고집을 피우면 나는 자식들이 알지 못하고는 곳으로 멀리 떠날 갈 것이다. 아내가 치매에 걸리면 나는 아내를 데리고 다녀야 한다. 노후에 일을 하지 않고도 먹고 살만한 돈이 없으니 나는 내 기력이 남아 있는한 일을 해야 먹고 산다. 그러니 아내는 내가 24시간 데리고 다녀야 한다. 그런데 내가 만약 치매에 걸리면 문제가 심각하다. 아내는 다른 재주는 많은데, 돈을 버는 재주가 전혀 없다. 그러면 자식들에게 아내를 남겨두고 내가 멀리 떠나야 한다. 미국의 인디언들은 자신이 죽을 병에 걸리면 담요 한장만 들고 자신만이 아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다행히 병이 치료되면 돌아오고, 그렇치 못하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정리한다는 것이다. 소설 같은 서글픈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 세대는 인디언처럼 이렇게 될 지 모른다. 노인의 숫자는 점점 증가하고 미국이라는 국가는 점점 가난해지니 내 노후를 맡길 수도 없고, 보장하지도 못한다. 자식들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 삶을 꾸려나가기도 벅차다. 내 목숨은 내 스스로 정리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더우기 현대인에게는 믿음과 종교생활이 필수인지도 모른다.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잘났어, 정말 (4/25/2014)
하루가 멀다하고 봄이 빠르게 변한다. 이미 개나리가 만개하였고, 벚꽃과 목련화가 피었다 진다. 페르시아 시인 사아디가 쓴 <화원 : 루리스탄>이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들이 현자에게 묻기를 ‘신이 창조한 온갖 이름난 나무들 가운데서 열매도 맺지 못하는 삼나무를 빼고는 그 어느 나무도 <자유의 나무>라고 불리우지 않으니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현자가 대답하기를 ‘나무란 저 나름대로의 열매와 저마다의 철을 가지고 있어 제철에는 싱싱한 꽃을 피우나 철이 지나면 마르고 시드는도다. 하지만 삼나무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항상 싱싱하느니라. 그러니 그대들도 덧없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그대가 대추나무처럼 가진게 많으면 나누어 주고, 가진 것이 없거든 삼나무처럼 자유인이 될지어다.” 그래서인지 어느 시인은 눈처럼 아름다운 백련화의 지는 모습을 보고 앞가슴 풀어헤친 술집 작부와 같다고 하대했나.
며칠전 어느 카톡 지인이 헨리 나우엔 신부님이 쓴 <이런 사람이 좋다>라는 글을 보내왔다. 영성 지도자로 신부님은 많은 사람들의 영성을 일깨웠다. 나는 그분의 글을 좋아한다.
“그리우면 그립다고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 불가능 속에서도 한줄기 빛을 보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이 좋다. / 다른 사람을 위해 호탕하게 웃길줄 아는 사람이 좋고 / 화려한 옷차림이 아니더라도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좋다. / 바쁜 가운데서도 여유를 누릴줄 아는 사람이 좋고 / 어떠한 형편에서든 자기자신을 지킬줄 아는 사람이 좋다. / 노래를 잘 하지 못해도 부를 줄 아는 사람이 좋고 /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먹는 사람이 좋다. / 철따라 자연을 벗 삼아 여행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 손수 커피 한잔을 탈 줄 아는 사람이 좋다. / 이웃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좋고 / 하루 일을 시작하기 앞서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좋다. / 하루 일을 마치고 뒤돌아 볼 줄 아는 사람이 좋고 / 다른 사람의 자존심을 지켜줄 줄 아는 사람이 좋다. / 때에 맞는 적절한 말 한마디로 마음을 녹일 줄 아는 사람이 좋고 / 외모 보다는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이 좋다. / 친구의 잘못을 충고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할 줄 아는 사람이 좋다. /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좋고 / 새벽 공기를 좋아해 일찍 눈을 뜨는 사람이 좋다. / 적극적인 삶을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 좋고 / 남을 칭찬하는데 인색하지 않는 사람이 좋다. / 항상 겸손하여 인사성이 바른 사람이 좋고 / 춥다고 솔직하게 말 할줄 아는 사람이 좋다. / 자기 자신에게 자신감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좋고 / 어떠한 형편에서든 자족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좋다. //
나는 아내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 글을 보여 주면서 “나우엔 신부님은 신기 (神氣)가 내리셨나, 지구 반대편에 사는 나에 대해 어떻게 요로콤 잘 아셨지? 그것도 미리 예언이나 하시듯이 나를 정확하게 콕 집어 말씀하셨네. 이 글의 주인공은 바로 나네, 바로 나! 틀린 문장이 하나도 없네. 그치?” 그러면서 아내의 강제적 동의를 구했다. 아내가 한참동안 나를 쳐다보더니 한 말씀 하신다. “잘났어, 정말!!”.
‘자화자찬 (自畵自讚)도 이정도면 중병인가 하노라’의 함축된 의미인가. <자화자찬>과 <자포자기>의 공통점은 본인 스스로 만들고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왕이면 자포자기 보다 자화자찬이 낫지 않은가. 요즘처럼 경기는 장기불황이다 못해 체념상태고, 가진 것 없고 잘난 것 없는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 <자신감>마저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머리 풀어헤친 미친 여자나 술주정뱅이 처럼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누가 나를 칭찬하겠는가? 누가 나를 귀하게 여기겠는가? 현대인은 각자 제 살기에도 바쁘다. 상대방이 나를 칭찬하는 것은 영혼없는 울림일 수 있다. 진정성이 결여된 시기와 질투일 수 있다. 훗날 “잘난체 까불 때 알아봤다.”라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그는 그고 나는 나다. 나라도 내 스스로를 홀대하지 말고 귀하게 여기며 칭찬해야 한다. 사람은 제 잘난 맛에 살아야 한다. 나만이 나를 사랑 할 수 있다. <자화자찬>도 내 스스로만 인정하고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되고 <겸손>한 사람이 된다. 자화자찬은 상대방에게 말로 하는 것이고, 자신감은 상대방이 느끼게 하는 것이다. <자신감>은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자기 최면>이 필요하다. “난 잘 될거야. 난 잘 할 수 있어. 나는 강해. 그분은 항상 내 편이야. 그분은 나를 절대로 버리지 않아. 나는 선한 사람이야. 나는 성공할 거야. 나는 잘 살거야.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야.” 등등 그분의 뜻에 맞는 나만의 주문을 걸어야 한다. 그것이 기도 제목이 되고 간구 제목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나의 신념이 되고 믿음이 되는 것이다. 그분께 간구할 때도 <긍정적 확신>을 유도하는질문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그분께 “저를 사랑하시죠?” 와 “저를 사랑하시나요?”와 “저를 사랑하시는기는 하는가요?”라는 질문은 천양지차다. 그분께 확신에 찬, 강한 어조로 구해야 한다. 구하는 자가 긴가, 민가 하면 답하시는 분도 헷갈리신다. 자식이 부모에게 달라고 하는데 무슨 체면이 있겠는가. 그분을 믿지 않는 분이라면 내 자신에게라도 강한 믿음으로 내 자신을 세뇌시켜야 한다. <나는 할 수 있다>. 이것이 <긍정의 힘>이다. 누군가 나에게 <잘났어, 정말!>이라고 말하면 <그래, 나는 잘났다. 잘났고 말고, 암!> 그렇게 대답해 주자. 단, 내 마음 속으로만!! 제발…
삶의 지혜 (4/18/2014)
사람은 살면서 힘들고 지칠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어하며, 의지할려고 한다. 우리는 그들을 영적 지도자로 부르기도 하고 멘토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들은 학문적으로나 종교적 믿음으로나 사회적 활동이 뛰어난 공인들이며, 많은 존경을 받는 분들이다. 하지만 삶의 가치란 어떤 수치로 객관화할 수 없는 다양성과 차별성이 존재하므로 공식으로 정론화할 수 없는 한계성이 있다. 가끔은 여행을 하거나 주변에서 우연히 만나는 노인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그들의 오랜 삶을 통한 실존적 경험을 바탕으로 들려주는 삶의 지혜에 깊은 감명을 받곤 한다. 때로는 말 잘 하는 부흥사나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버린 성직자의 그렇고 그런 설교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울림이 있다.
칼 필레머 교수가 쓴 <내가 알고 있는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이라는 책을 소개한다. 코넬 대학교의 세계적인 사회학자이자 인간 생태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쓴 이 책은 2012년, 20주 연속 아마존 베스트 셀러, <라이브러리 저널>의 ‘2011년 최고의 책’ 세계적인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의 ‘2012년에 읽은 최고 감동적인 책’으로 선정된다. 2006년 칼 필레머 교수는 “왜 우리는 여전히 불행한가?”라는 의문에 답을 얻기위해 ‘코넬대학교 인류 유산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기념비적 연구를 5년이상 지속한다. 그는 인생의 모든 길을 직접 걸어본 사람들의 축적된 경험과 조언이야말로 우리 세대가 물려받아야 할 가장 빛나는 정신적 유산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1000명이 넘는 70세 이상의 각계각층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통찰력있는 질문과 인터뷰, 여러 사회과학적 도구를 이용한 검증을 통해 이 책을 쓴다. 그들이 인생의 현자다. 그들을 통한 8만년의 삶, 5만년의 직장 생활, 3만년의 결혼생활을 지켜오면서 얻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30가지 지혜>를 선물한다. 우리에게 남은 세월동안 삶의 함정에 빠질 때, 혹은 어려운 기로에 서게 될 때 좀더 나은 미래로 이끄는 따뜻한 등불이 되어 줄 것이다. 이 책은 여섯 장르로 나누어 각 장르마다 5가지 조언을 들려준다. 행복한 결혼 생활, 만족스런 직업, 건강한 자녀 양육, 두려움 없이 나이들기,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인생의 현자처럼 살기 위한 각각의 5가지씩의 조언등, 1천명의 70세 이상 된 노인들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자신들의 삶을 들려준다. 지면상 첫번째 장르만 요점을 정리해 본다.
<아름다운 동행> – 잘 맞는 짝과 살아가는 법 :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5가지 조언.
- 1. 비슷한 사람과 결혼하라 : <끌림보다는 공유.> 가장 핵심적인 가치관과 배경이 비슷하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 결혼 후 배우자의 태도나 가치관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마라.
- 2. 설렘보다 우정을 믿어라 : <평생의 친구를 찾아라.> 평생 한 사람과 살다보면 가슴 두근거리는 열정은 변하기 마련이다. 사랑도 중요하지만 깊은 우정을 느끼는 사람과 결혼하라.
- 3. 결혼은 반반씩 내놓는 것이 아니다 : <상대방의 신발을 신어보라.- 상대는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부부관계가 늘 50대 50으로 공평해야 한다는 태도를 버려라. 내가 준 만큼 정확히 받을 수 없다. 성공의 비결은 늘 얻는 것보다 더 많이 주려고 서로 노력하는 것이다.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두사람 모두 상대에게 항상 100퍼센트 이상을 주는 것이다. 그것은 객관적인 수치가 아니라 내 마음가짐이다.”
- 4. 대화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길이다 : <뭐 어때, 고작 싸웠을 뿐인데.> 고집세고 과묵한 것은 관계에 치명적일 수 있다. 오랫동안 부부로 지낸 이들은 모두 수다쟁이다, (최소한 한 사람만이라도 말을 많이 해야 한다.)
- 5. 배우자와만이 아니라 결혼과도 ‘결혼’한 것이다 :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결혼관에 충실하고 그 개념을 진지하게 생각하라. 당장 필요한 것보다 결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
- 현명하게 싸우는 법 : 첫째, 논쟁을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함께 집 밖으로 나와라. 둘째, 먼저 화를 풀 방법을 찾아라. 그리고 나서 이야기하라. 세째, 위험요소는 없앤다. 상처주는 말이나 비웃는 말을 하지마라. 네째,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 꼭 기억해야 할 것 : <화난 채 잠자리에 들지 마라>. “잠자리에 들 때는 반드시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말해도 괜찮아요. 꼭 말한대로 될 겁니다. 밤새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거듭 말하지만 사람 사는데 정론은 없다. 다만 많은 현자들이나 인생의 선배들이 그들의 삶을 통해서 하는 충고라면 귀담아 새겨둘 필요가 있다. 중학교 시절 때 중국(대만)의 ‘임어당’이라는 철학자가 쓴 <생활의 발견>이라는 책이 인기 있었다. 어린 나이에 삶의 고난을 알리 만무하니 별 감동없이 읽었다. 하지만 이제는 산전수전 다 겪은 육십이라는 나이가 되다 보니 유식하고 잘 난 사람이 되는 것 보다는 모가 덜 나고 유순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책에도 <거울을 보지 말고 창 밖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내 자신만이 아닌 타인을 보라는 것이다. 이제는 고전이 된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도 다시 구해 읽어 보고 싶다.
섬 (4/11/2014)
봄날에 온종일 비가 내린다. 수양버들 잎줄기처럼 봄비가 물결치며 내린다. 오늘은 올 사람도, 마땅히 갈 곳도 없다. 저 흐르는 비 속에서 뿌우연 <섬> 하나가 떠 있다. 마치 오랜 세월 나를 지켜본듯, 자태가 애잔하다. 어쩌면 사람마다 자기만의 섬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는 내 마음 깊은 곳에 떠 있는 섬 말이다. 섬은 고독이다. 섬은 혼자됨이다. 섬은 혼자서 머리칼 흩날리며 내려 앉는 달빛을 본다. 섬은 혼자서 하얀 이빨을 드리내며 달려드는 파도를 본다. 섬은 혼자서 그리움에 이는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섬은 혼자서 천년의 한이 부서지는 파도의 소리를 듣는다. 섬은 그 자리에 그렇게 있다. 나는 여기에 있다. 나는 언제나 외지인이고 이방인이다. 그러면서 섬은 오지 않는 나를 기다리고 기다린다. 그래서 섬은 기다림이다. 아픔이다. 그리움이다. 정현종의 단 두줄의 시 <섬>에서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고 한 것 처럼 언젠가 나도 나의 섬에 가고 싶다. 그 섬에 가면 수만 세월동안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 있을 것만 같다. 그 섬에 가면 어머니의 숨결처럼 나를 편히 쉬게 할 것만 같다. 그 섬에 가면 모든 근심, 걱정 모두 내려 놓고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고려가요에 작가 미상인 <청산별곡>이 있다. “살으리. 살으리라. 청산에 살으리라. / 머루랑 달래랑 먹고 청산에 살으리라. // 울어라 울어라 새야 / 자고 일어나 울어라 새야 / 너보다 시름 많은 나도 / 자고 일어나 울고 있다. // (중략)// 이럭저럭 하여 낮은 지내왔지만 /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밤은 어떡하나 // 살으리 살으리라. 바다에 살으리라. / 나문재와 굴, 조개 먹고 바다에 살으리라//~~ 나도 정말 그 섬에서 그렇게 살고 싶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지금은 손발이 묶여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학창시절에는 방학이 시작되면 전국 방방곡곡 혼자서 여행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 시절에는 해외 여행이 금지된 시절이었으니 배낭 하나만 울러 메면 전국 아무 곳이나 가는 배낭족이었다. 여행은 마치 내가 자유인이 되는 것 같다. 아내와 결혼을 결심한 동기도 함께 배낭메고 여행을 다니면서다. 그 시절만 생각하면 지금도 나는 행복하다. 내가 가 본 여러 섬들 중에 두개의 섬이 기억난다. 그 중 하나는 국내의 <홍도>라는 섬이다. 나는 여행을 다닐 때 목적지를 정해 놓고 다니지 않는다. 여행 기간과 경비만 정해져 있을 뿐이다. 남해안 뱃길을 따라 이 섬, 저섬을 다니다가 목포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른 일행을 만났는데 홍도를 이삼일 다녀올려고 하니 같이 가자고 한다. 정해진 곳이 없으니 따라나섰다. 그 당시 홍도는 개발이 미처 되지 않았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홍도는 야영을 할 곳이 없어서 어느 늙은 (5,60대로 짐작함) 해녀집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3일 뒤에 일행은 떠나고 나는 그곳에 혼자 남았다. 마지막날 밤 나는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하니까 늙은 해녀가 자기 집에 계속 머물러도 좋다는 것이다. 돈이 없다고 하니까 그냥 있으라고 한다. 그렇게 일주일을 공짜밥 먹고 살았다. 홍도는 작은 섬과 섬들이 이어진다. 낮에는 해녀와 함께 쪽배 타고 바다에 나가 잠수도 하고 물고기도 잡고 바다를보며 그냥 그렇게 살았다. 밤에는 별 보고 달 보며 장작타는 불꽃보며 그녀의 살아온 이야기 들으며 그냥 그렇게 살았다. 나는 이제 그녀의 나이가 되었다. 나도 이제는 그녀처럼 그냥 그렇게 살고 싶다. 생긴 모습 그대로, 하는 일 그대로, 함께 사는 사람 그대로, 별로 특별할 것도 없이, 잘난 것도 없이, 들고 남도 없이 그냥 그대로 살고 싶다.
일본의 후지와라 산야가 쓴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라는 책이 있다. 총 14편의 단편으로 되어 있는데 모두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의 아픔을 이야기한 책이다. 나는 그 책에서 <도시 속의 섬>을 발견한다. 현대의 도시인들은 거대한 도시 속에서 모두가 바쁘게 살지만 <생태통로>가 있다는 것이다. 항상 정해진 시간과 다니는 길이 있다는 것이다. 긴 세월동안 항상 몇시에 일어나서 몇시 몇분에 몇번 지하철, 몇번째 칸에 타고, 항상 정해진 좌석에 앉아서 정해진 풍경만 바라보다가, 정해진 출구에서 나와 정해진 방향으로만 걸어 출근한다. 퇴근길도 마찬가지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8년간을 항상 바다가 보이는 지하철 창가에 앉아서 출퇴근을 한다. 바다는 언제 보아도 매번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의 아내를 무척 사랑했지만, 그의 아내는 고부갈등으로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 백방으로 찾으러 다녔지만 아내를 찾지 못했다. 어느날 전철 사고로 앉을 자리가 없어 바다 쪽이 아닌 육지 쪽 창가에 서서 가게 된다. 육지쪽 창가는 처음이다. 열차가 어느 주택가를 지나게 되는데 그 창가에서 그의 아내와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렇다. 세상이 아무리 넓고 많은 사람이 살아도 우리가 접하는 생활반경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러니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도 극히 제한적이고 한정되어 있다. 보이는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다. 자신의 <섬>에 가 보지도 않고 평생을 사는지도 모른다. 그 <섬>에 가는 것을 두려워 한다. 비록 그 <섬>에 가면 슬픔과 고통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섬>은 우리 마음 속에 있고, 그 <섬>은 우리 삶 자체일지도 모른다. 후지와라 산야는 “슬픔 또한 풍요로움이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일생이 무수한 슬픔과 고통으로 채색되면서도, 바로 그 슬픔과 고통에 의해서만 구원받고 위로받는다는 것이다. 이제라도 가끔은 나만의 <섬>으로 가고 싶다.
의심병 (疑心病) (4/4/2014)
사람은 누구나 의심(疑心)을 갖고 산다. 태초에 아담과 이브도 선악과를 먹지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에 의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불행이 시작된다. “왜 유독 이것만 따먹지 말라는 거지?” 우리는 매사에 사물이나 사건을 대할 때 <왜? Why?>로 시작한다. 하지만 인간의 <의심>이 창의력을 낳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며 가치를 부가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가치투자>의 핵심도 남들과 다른 <왜?>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조직사회에서도 지위가 높을수록, 책임이 무거울수록 <왜?>라는 질문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역사의 제왕들이나 독재자들도 세력이 커지는 신하들을 의심하고 견제하다가 그 <의심>이 지나쳐 <난>이나 혁명으로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는 많은 사건들이 있다. <의심>은 불확실성이다. 믿지 못하거나 확실하지 않음이 의심을 만든다. 의심이 또 다른 의심을 낳는다. 그래서 <의구심>은 의심하며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문제는 이런 의심이 지나치면 병이 된다는 것이다. <의심병>의 대표적 사례가 의부증이나 의처증 환자들이다. 내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서 잉꼬부부로 소문난 사람이 있었다. 남편은 큰 사업가였고, 덕망높은 지역 유지였으며, 아내는 승무원 출신인 미모의 여자였다. 이들 부부가 몇달에 한번씩은 병원에 치료받으러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올 때마다 여자의 온몸과 얼굴에 멍이 들고 만신창이가 되어 온다는 것이다. 남편이 극심한 의처증 환자라는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의처증이라는 단어를 알았다. 여자의 말로는 남편이 말도 되지도 않는 의심을 하면서 주기적으로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이다. 그러고서는 남편이 잘못했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손이야 발이야 빌며 다짐을 하고 각서도 쓴다고 한다. 그리고는 여자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사 주며 언제 그랬냐듯이 잘 해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산 세월이 10년을 넘는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이런 <의심병> 환자가 많다.
의심은 강박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강박증은 집착에서 시작되며, 집착은 두려움과 마음의 불안에서 시작된다. 이들 중 다수는 완벽주의자들이다. 이들이 어느 한 곳에 에너지를 과도하게 집중하면 강박장애가 되는 것이다. 강박장애는 청결에 대한 결벽증, 버리지 못하는 소유 강박증, 생각에 사로잡히는 망상장애, 일에만 집중하는 일 중독장애, 누군가가 나를 괴롭힌다는 피해 망상 장애, 남들보다 잘 나야 한다는 우월장애, 등등 의심병은 종류도 많고 증상도 다양하다.
그런데 이런 강박증의 불안 심리는 어디서부터 발생하는걸까? 심리학자들은 자신의 과거 기억 속의 아픔이나 상처로부터 발생한다고 한다.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들 중에는 어린 시절, 개에게 물리거나 개로 인해 극도의 공포심을 느꼈던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사업체나 가게를 사고자 하는 나의 고객들에게서도 자주 보게 된다. 경기가 장기불황이다 보니 심리적으로 극도의 불안 상태다. 고객과 상담을 하다 보면 어떻게 사사건건 시작도 하기 전에 의심부터 할 수 있을까 의아하기도 하다. 고정관념이라 할까, 강박관념이라 할까. 물론 그 사람이나 주변 사람이 과거에 가게를 사고 팔면서 아픈 기억이나 상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매상을 속아서 샀다거나, 브로커의 농간에 당했다거나, 경험이 없어서 주위 사람 말만 믿고 샀다거나, 이유는 다양하다. 이유가 어쨌던, 누구의 잘못이든, 편협된 강박증으로는 현실을 정확하게 판단하거나 결정할 수 없다.
비지니스 컨설팅 기법에 가장 초기 단계가 <현상분석>이다. 현상분석은 <왜?>로 시작한다. 이는 <문제점 도출>로 이어진다. 모든 사건의 현상에는 <문제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 문제점에는 여러가지 <issue>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이슈>들을 찾아내야 한다. 각 이슈들을 나열하고 각 <이슈>마다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각 <해결방안>로 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이지 <처리 방안>을 준비하면 된다. 예를 들어 <issue>가 <매상>이라고 하면 <해결 방안>은 가장 확실한 방법부터 순차적으로 여러 방법을 통해 매상 점검을 하면 된다. 그런데 매상 점검을 해 보지도 않고 모든 것을 의심한다. 컴퓨터 자료도, 수입 장부도, 매출 전표도, 크레딧 카드 사용 실적도, 심지어 자신이 매일 가게에 나가 직접 확인한 자료들도 모두 의심한다. 모든 자료는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국정원 비밀 정보원도 아니고, 고도의 사기 집단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속인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떤 경우는 Seller의 과거 나쁜 행적이 문제가 된다. 하지만 컨설팅을 하는 입장에서는 현상을 중시한다. 과거의 행적이나 소문, 과거의 실적은 참조 사항일 뿐, 분석의 실체는 아니다. 오히려 분석대상 중에 나쁜 Seller는 자료를 감추거나 속이거나, 공개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이다. 바보같은 Buyer는 잘못 따지거나, 분석하지도 않고, 믿고 느낌으로 사는 사람이다. 무책임한 주변사람은 자신이 전문가도 아니면서 <아니면 말고>식으로 남의 사업을 충고하는 선무당 같은 사람이다.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이 가게를 못사게 하는 주요 원인은 가게를 사라고 권해서 책임을 지느니, 가게의 단점들을 이야기해 가게를 못사는 것이 책임추궁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석은 자신의 알량한 사업경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한 분석기법으로, 정량화된 숫자로 하는 것이다. 의심은 사업분석의 시작이지만, 과정은 항상 냉철하고 예리해야 한다. 내가 분석한 자료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다면 그것은 잘못된 분석이다.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어야 성공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무턱대도 의심하고, 분석 시도 조차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의심병> 환자일 뿐이다.
삶의 무게 (3/28/2014)
내 삶의 무게는 얼마일까? 육신의 무게는 몸무게이니 하루에도 몇번씩 확인할 수 있다. 또 영혼의 무게는 21그램이라고 한다. 스웨덴의 룬데 박사팀이 환자들의 임종 직전과 임종 직후의 몸무게를 측정한 결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21그램의 차이가 난다고 발표했다. 또 미국 메세추세스 병원의 임종 실험에서는 몸무게의 변화가 1온스였다고 한다. 21그램이든, 1온스(28.4mg)이든, 라면 한 젓가락 밖에 되지 않는 영혼의 무게는 영혼의 그릇 무게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하나님은 똑같은 영혼의 그릇을 주셨는데 그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 그것은 인간의 몫이라는 것이다. 즐거움, 사랑, 기쁨, 행복, 감사 등의 무게는 클수록 가볍지만, 분노, 걱정, 실망, 욕망, 미움, 두려움 등의 무게는 클수록 무거워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삶의 무게는 어떻게 측정할 것이며, 사람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떤 사람은 삶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하고, 달라이라마처럼 어떤 사람은 삶의 무게가 새털처럼 가벼워 <나는 행복합니다.>를 외칠 수 있는 것일까.
요즈음 나는 산다는게 부쩍 힘들게 느껴진다. 내 삶의 무게가 천근 만근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왜 이리 사는게 힘들까? 나만 힘든걸까?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 걸까? 내 삶의 무게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첫째는 <일>에 대한 무게다. 나는 천성이 일을 좋아하여 일을 만들고 일을 벌리는 타입이다. <일>의 종류에는 생업과 같은 <먹고 사는 일>과, 취미와 같은 <부가적인 일>이 있다. <먹고 사는 일>은 삶과 죽음이 연결된 준엄한 분야다. 특히 요즈음 같은 장기 불황에는 벼랑 끝에선 빈곤층들의 자살이 줄을 잇는다. 나의 일은 대부분이 먹고 사는 일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빠르게 흐르는 강물과 같다. 나의 일은 항상 제로에서 시작한다. 어제의 실적이 오늘로 이어지지 않고, 오늘의 고객이 내일을 보장하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일은 일대로 많아지고 몸은 몸대로 지친다. 나이를 먹은 탓인가, 몸이 약해진 탓인가. 일이 많아지니 돈벌이는 조금 더 나아진 것 같은데 마음의 여유는 더 없다.
둘째는 <사람관계의 무게>다. 특히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느끼는 삶의 무게가 한없이 무거울 때가 있다. 누가 자식을 애물단지라고 했던가. 자식이 여러명이다 보니 돌아가면서 애를 태운다. 이제 한 짐을 벗었나 하면 또 다른 자식이 다른 짐을 지워준다. 자식이라는 짐보따리는 도대체 몇개나 되는 것일까. 자식 문제에 대해서는 자식도 아내도 내 마음 같지가 않다. 자식에 대한 기대와 평가는 그들과 다르다. 그러니 잔소리와 분쟁만 늘어나고 실망과 감정의 골만 깊어진다. 이러니 가족이 아닌 타인들과의 관계는 무게를 느낄 틈도 없다.
세째는 <글쓰는 무게>다. 누가 글을 쓰라고 강제하는 사람도 없고 글쟁이가 직업도 아니다. 8년째 쓰고 있는 칼럼은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나를 위한 일이다. 매주 다른 글을 써야 한다는,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글을 써야 한다는, 언젠가 내가 죽고나서 내 자식들이 나를 그리워하는 글을 써야 한다는, 내 스스로의 강박관념이며, 올가미다. 언제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된다. 매주 시간에 쫓기어 써재끼는 글이니 글의 깊이가 없고 향기가 없다. 한마디로 <잡글>이다. 글쓰는 재주가 뛰어난 것도 아니요, 전문적으로 공부한 것도 아니다. 어쩌면 글을 써서는 안되는 후안무치인지도 모른다. 글은 내 욕심이다.
네째는 <돈에 대한 무게>이다. 물질적으로 여유있게 살고 싶어한다. 노후에 편안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남들처럼 아내와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어 그들이 윤택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돈을 벌고 싶어하지만 돈을 생각처럼 벌지 못하니 삶이 무겁기만 한 것이다.
다섯째는 <건강에 대한 무게>이다. 사는 날까지 특별히 아픈 곳 없이 살다가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살아온 긴세월이 결코 건강할 수 없는 생활 습관이었고, 지금도 결코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가 없으니 항상 걱정만 앞선다. 죄를 짓고도 무죄이기를 바라는 도둑놈 심보라고나 할까. 신체의 여러 기능은 이미 내 스스로 느껴질만큼 노화되어 간다. 건강은 두려움에 대한 무게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이런 저런 나의 삶의 무게는 나의 욕심이라는 걸 잘 안다. 시작과 끝이 모두 욕심이다.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르고 실망과 자기 상실이 커진다는 것도 잘 안다. 그분께 모든걸 내려놓고 감사와 사랑으로 감싸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항상 후회와 재다짐이 반복된다. 조나 놀란이 쓴 <메멘토 모리>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마지막 주인공의 대사는 “그런데 나는 어디 있었지?”로 유명하다. 라틴어인 메멘토(Memento – 기억하다, 생각하다)와 모리(Mori – 죽음)의 합성어이다. 즉 죽음을 항상 생각하며 살라는 뜻이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이다. 예수의 부활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중세의 수도사들은 아침인사가 <메멘토 모리>였다고 한다. 나바호 인디언들의 메멘토 모리는 더욱 준엄하다.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다. 하지만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런 삶을 살아라.” 따라서 내 삶의 무게가 무거워서 지치고 힘들더라도 그리 길게 남지 않은 내 죽음을 생각하면 삶의 무게를 견딜 용기와 힘이 생기지 않을까. 나 죽으면 그만인데 무얼 그리 애를 태울까? 내 삶에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 생각케 한다.
빼앗긴 들에도..(3/21/2014)
오늘은 푸른 하늘과 따뜻한 봄바람이 맞닿아 모처럼의 봄기운을 느끼게 한다. 이제 정녕 지겹도록 춥고 긴 겨울은 다 가버린 것인가. 학창시절에 기억나는 시 한편이 생각난다.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다. 시인은 이 시를 30년 일제 강점기로 빼앗긴 조국의 해방을 염원하며 썼다. 나는 이 시를 이민온 서민층을 대상으로 자의적 해석을 해본다. <빼앗긴 들>은 나의 생존권 내지는 삶의 터전을 잃었음이다. 먼저 왜 빼앗겼는가에 대한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한다. <빼앗김>은 몇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가 <강제적 수탈>이다. 강자가 약자에게 강제적으로 빼앗는 것이다. 즉 일방적으로 빼앗김을 당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논리나 시장경제의 특수상황 (IMF, 세계 금융대란 등), 사회제도의 불합리 등에 휩싸여 어떻게 해 보지도 못하고 빼앗긴 것이다. 얼마전 집주인에게 70만원 방세와 <죄송합니다>라는 메모만 남기고 세모녀가 동반자살한 사건은 사회제도의 모순에서 발생한 것이다. 두번째는 <자의적 상실>이다. 내 스스로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살아볼려고 몸부림치고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나의 판단 착오나 과실, 빈곤의 악순환, 정보부재 등, 어떤 이유라 할지라도 나의 결격사유로 인해 빼앗긴 것이다. 대부분의 소시민들 상실이 여기에 해당한다. 세번째가 <방임적 상실>이다. 나의 게으름과 무지로 잃어버리는 것이다. 방임과 무관심, 열등과 무력감, 자포자기 등으로 열심히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고 좌절하는 것이다.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빈곤층을 벗어나지 못하는, 적지않은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방임적 상실은 혼자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가정이 파탄나고 부부 사이의 신뢰가 깨지고 신앙이 무너진다. 건강을 헤치고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 시는 총10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1연과 마지막 10연은 질문과 대답 형식이다. 즉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는 질문에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로 끝을 맺는다. 2연과 3연은 봄에 대한 몽상적 상태에서 내 자신이 들판에 나선 이유를 묻는다.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3,4,5연에서는 봄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타낸다. 6연에서는 봄을 맞이할 기쁨과 의욕을 노래한다. “혼자라도 기쁘게나 가자. /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량이 /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8연에서는 삶에 대한 강한 의욕을 제시한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누구나 살고 싶어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고 싶어한다. 누구나 행복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9연에서 자신의 현실을 재인식하고 자신을 자조 (自嘲)한다. “강가에 나온 아이같이 /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으웁다. 답을 하려무나.” 마지막 10연에서는 <상실과 현실의 한계>를 노래한다.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
봄은 아름답다. 봄은 나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봄을 기다린다. 그러기에 신은 누구에게나 봄을 주신다. 봄날은 온다. 하지만 봄이 왔다고 모든 땅이 산천초목으로 푸르른 것은 아니다. 싱그러운 새싹을 피우기 위해 긴 겨울을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땅 속에서 살아남은 자만이 봄을 노래할 수 있다. 생존투쟁에서 살아남은 자들만이 봄날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들녁>이 없으면 나의 봄은 없다. 다른 사람의 들녁에 핀 봄을 부러워하고 망연자실 쳐다볼 뿐이다. 준비된 자만이 봄을 노래할 수 있다. 그러니 빼앗겼든, 잃어버렸던 간에 무엇보다 먼저 나의 <빼앗긴 들녁>을 찾아와야 한다. 현대인에게 <빼앗긴 들녁>은 무엇인가? 물질적 자본 뿐만 아니라, 정신적 자본도 해당한다. 사업밑천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간의 사랑, 가정의 행복, 굳건한 믿음, 희망, 소망, 우정, 인간 관계등이 포괄적으로 해당한다. 빼앗긴 것은 찾으면 된다. 우리는 이 단계를 <상실과 회복>이라고 한다.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라는 소설에서 혼자라는 고독, 미움, 질투 속에서 꿈과 사랑, 희망을 잃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우리 현대인은 물질이라는 한가지를 얻기 위해 꿈과 우정, 사랑과 같은 너무나 소중한 가치들을 빼앗기는지도 모른다. 결국은 이별, 육체적 질병, 자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요즘 한인사회의 서민층을 보면 언제 <빼앗긴 들>을 찾으려나, 적지않은 노파심이 생긴다. 한국사람 특유의 <깡다구>라는 근성이 사라져가는 느낌이다. 은근과 끈기, 불굴의 투지, 강한 생활력은 어디로 간 것일까. 가지고 있는 돈도 별로 없어, 육체가 강한 것도 아니야,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야,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야, 별로 자랑할 것도 없는데 가리는 것만 많다. 이것은 이래서 싫고, 저것은 저래서 싫다. 자기 형편에 과분한 식탁을 차려 놓아도 밥을 먹지는 않고 반찬 투정만 하면 배고픈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봄날은 오건만 아직도 손바닥만한 내 밭대기도 없이 <빼앗긴 들녁>에만 서 있으면 어쩌자는 것인가. 나의 빼앗긴 들은 내가 찾아야 한다. 다시 시작하자..
꽃잎 하나 떨어지면 (3/7/2014)
오늘 새벽에 내 가까이서 꽃잎 하나가 떨어졌다. 나는 그가 유난히 힘들고 긴 겨울을 잘 견디어 곧 따뜻한 봄날을 맞이하리라 믿고 소망했다. 그는 선하고 어진 사람이다. 그는 나보다 다섯살 아래인, 아직은 젊은 사람이다. 살아온 날만큼이나 살아갈 날이 많은 사람이다. 아직도 자신을 위해서나, 가족을 위해서나, 하늘의 소명을 위해서나 할 일이 많이 남은 사람이다. 그는 2년 가까운 시간을 뇌종양 암과 싸우며 잘 견디어낸 강한 사람이다. 곧 완쾌하리라 믿었다. 그런데 갑자기 병이 악화되어 걷잡을 수 없이 꺼져갔다. 우리 교회에는 지금 다섯명의 암환자가 있다. 모든 교인들이 전력으로 이분들을 위해 기도한다. 릴레이식으로 교회에 모여 중보기도를 하기도 하며, 가까운 지인들은 수시로 방문하여 기도하고 위로한다. 하지만 그의 아내만큼 애절한 기도를 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지막 며칠동안은 의식이 전혀 없는 혼수상태이니 마지막 순간만이라도, 한마디만이라도 남편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남편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 가슴이 아프다.
릴케의 <가을날>의 시 처럼 “주님, 때가 왔습니다. /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놓으시고 / 벌판에 바람을 놓아주소서. // 마지막 잎새들이 탐스럽게 무르익도록 명해 주시고 /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베풀어 주소서./ 열매들이 무르익도록 재촉하여 주시고 /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단맛이 스며들게 해 주소서.” 그의 아내는 애원했을 것이다. “단 이틀만 더, 아니 단 하루만이라도,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단 10분만이라도 그와 마지막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옵소서”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애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은 그녀의 기도도, 우리의 기도도 들어주지 않으셨다. 아니 분명 들으셨으면서도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으셨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절규가 기억난다.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 주님, 살아 계시기는 한 것입니까? 우리의 기도를 듣고는 계신 것입니까?” 너무나 통절하고도 애절한 기도다. 성녀이신 수녀님마져 그토록 주님을 갈구하지만, 그분의 크신 뜻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생(生)은 신이 우리에게 내린 명령 (命令)이다. 그래서 생명(生命)”이라고 최인호씨는 말한다. 나에게 생명을 주신 이가 그분이라면, 나의 생명을 거두시는 분도 그분이신 것은 당연한 순리다. 그도 침샘암으로 몇년간을 투병하다가 결국 그분의 부름을 받고 말았다. 그때 쓴 수필집이 <인생>이다. 그 책은 그의 마지막 신앙고백집 같은 느낌이다. 몇가지 내용을 이 책에서 인용한다.
그분께 드리는 우리의 기도에는 상당한 모순이 있음을 알게 한다. “질병에서 완쾌하게 해 주옵소서, 기적을 보여 주시옵소서. 살려주시옵소서. 꿈이 이루어지게 해 주옵소서” 등등은 그분과의 벼랑끝 협상이다. 그러면 그분께서 나의 기도는 들어주시고, 같은 입장의 다른 사람 기도는 들어주지 않으신다면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신가? 성 프란체스코 살레시오는 기도를 이렇게 말한다. “ 아무것도 청하지 말고, 아무 것도 거절하지 말라.” 주님도 마지막 기도가 “제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우리의 기도가 평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이유는 잘못 구하고, 잘못 찾고, 잘못 두르렸기 때문이다. 나는 기도를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드리는 기도는 그분이 내게 무엇을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 간절히 간구함으로써 내 자신이 변화되는 것이다. 그분과 소통함으로써 내 자신에게 위로가 되고, 세상 끝날 날까지 그분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더 이상의 무엇을 원하겠는가.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중보기도는 세상에 나만 외톨이가 아니라는 공동체 의식이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나를 위해 누군가가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눈물날만큼 고맙고 희망이 된다. 오늘은 내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만, 언젠가 내가 어두운 사망의 골짜기를 헤매고 있을 떄, 그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래서 기도는 살맛 나는 가치이며, 그래서 필요불가분의 조건이다.
이제는 작별할 시간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또 다른 꽃잎이 되어 떨어져야 한다. 그리고 잊혀져야 한다. 살면서 이별연습이야 셀 수 없이 했겠지만 막상 부닥치면 이별이 쉬운 일인가. 그리우면 그리운대로, 울고 싶으면 울며 살아야 한다. 꽃잎은 떨어져도 꽃은 또 피어난다. 죽음이 부부의 연을 끊어 놓을 때까지 살 수 있었음만으로 그분께 감사할 일이다. 이제 이승에 남은 사람은 남은 사람대로 잘 살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든, 살고 있다는 자체가 그분의 은총이다. 성녀 소화 데레사는 이렇게 말한다. “매순간 단순하게 살지 않으면 인내심을 갖기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과거를 잊고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합니다. 매 순간 그분의 가슴에 기대어 조용히 쉬지않고 안달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습니다.” 과거의 마음을 얻으려고 한다면 집착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며, 미래의 마음을 얻으려면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또한 현재의 마음을 얻으려고 한다면 사리분별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분께서는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요, 오늘 고생은 오늘로 족하다”라고 말씀하셨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는 주님의 자비에 맡기고, 현재는 주님의 사랑에 맡기고, 내일은 주님의 섭리에 맡겨라.” 매 순간을 그분께 충실하다보면 또 다른 봄날은 올 것입니다. 힘내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나의 애장품 (2/28/2014)
당신이 아끼는 물건은 무엇인가? 나는 오십이 다 되어 이민을 왔으니 이민의 나이치고는 늙은 나이임 셈이다. 잘 살다 온것이 아니니 그럴사한 내 물건이 있을 수 없다. 그럴듯한 골동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명화가의 그림 한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유명 메이커의 골프채나 운동기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수집에 전문 지식이 있어서 특정 아이템을 수집하는 것도 아니다. 김정운교수의 <남자의 물건>에 보면 김교수는 만년필을, 또 다른 사람은 안경을, 또 어떤 이는 신발을, 모자를, 악기를, 커피 메이커를, 수재 오디오 제품을, 등등 각자의 전문적 취향과 <물건>을 갖고 있는데 반해, 나는 무얼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나에게는 아끼는 나의 물건이 없다. 다시 말해 나의 애장품이 없다. 굳이 내 물건이라 함은 내 자동차 안에 모두 있다. 아내에게서 쫓겨나면 차에서 살아야 한다는 처절함(?) 때문일까? 차 트렁크에는 언젠가도 말했지만 중고 알토 색소폰 한개, 악보, 운동 가방 1개가 있다. 그 가방 안에는 배트민턴 라켓 2개, 탁구 라켓 2개, 수영복 2벌, 물안경, 세면도구, 조깅 팬티, 티셔츠, 운동화 등이 실려있다. 다른 운동기구과 등산장비는 필요에 따라 실리는 비정규직이다. 차 내부에는 CD 몇장, 내가 즐겨 듣는 음악이 녹음되어 있는 MP3, 1982도 미국 출장왔을 때 구입한 선그라스, 네비게이터 등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전 누군가가 자동차에 있는 나의 물건들을 몽땅 가져가 버린 것이다. 물론 애장품이라 하기도 민망한 물품들이지만, 나에게는 유일한 나만의 물건들이고 나의 취미생활이고, 내게 즐거움을 주었던 물건들이다. 돈으로 따지면 얼마 되지도 않는 물품들이겠지만, 나의 이민 생활에서 나를 위로해주고 함께 해 주었던 물건들이다. 나의 발이 되어주고 나의 손에 들리워 나의 땀과 눈물이 되어주었던 물건들이다. 나의 노래가 되고 영혼의 울림이 되어 위로하던 악기였다. 그런데 한꺼번에 몽땅 잃어버리고 나니, 순간적으로 허탈하고 여간 속상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첫째가 내 부주의 때문이요, (요즘 자동차는 자동잠금 장치가 있어서 문을 잠그지 않고 내려도 얼마 지나면 자동으로 잠긴다. 그래서 나는 자동차 문을 잘 잠그지 않는 버릇이 있다.) 둘째는 동네 사람이라면, 오죽 돈이 필요했으면, 야밤까지 기다렸다가 몽땅 가져 갔을까 하는 측은한 마음이다. 나는 떠나간 여자와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는 빨리 잊어버려야 함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야 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E-Bay를 통해서 하나씩 다시 구입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런 망상을 해 본다. 하나님은 <총량 불변의 법칙>을 만들어 놓으시고 우리를 지켜보시는 것은 아닐까. 나는 내가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렸지만, 내 물건을 가져 간 사람은 물건을 얻은 셈이니 총량은 변한 것이 없다. 가진 자가 있으면 잃은 자가 있듯이, 하나님이 태어남과 죽음의 숫자를 매년 미리 정해 놓았다면 생과 멸의 합은 불변인 셈이다. 행복과 불행의 총합도 불변이라면 지금 이순간도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불행한 사람이 있다. 웃는 사람이 있으면 우는 사람도 있다. 부자가 있으면 가난한 사람도 있고 , 기쁨이 있으면 슬픔도 있다. 건강한 사람이 있으면 아픈 사람도 있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그분의 자식이다. 열손가락 깨물면 다 아프니 어느 자식의 편을 들어주기가 어려우시다. 그러니 인간이 풀 수 없는 복잡한 방정식을 만들어 놓으시고 각자의 그릇만큼, 각자의 노력만큼 살게 하신 것은 아닐까? 단 전제조건이 <상반된 합의 총량은 불변>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행복하다고 계속 행복한 것이 아니요, 불행하다고 계속 불행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안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어떤 삶을 사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나는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는 끊임없는 질문 속에서 살아야 하는게 아닐까? <상반된 총량>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니, 주시는 이도, 거두시는 이도 그분이신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릴케는 <엄숙한 시간>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 세상 속에서 까닭없이 울고 있는 사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는 것이다. // 지금 한밤중에 어디선가 누군가 웃고 있다. / 한밤중에 까닭없이 웃고 있는 사람은 나를 두고 웃고 있는 것이다. //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걸어가고 있다. / 까닭없이 걸어가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향해 오는 것이다. // 지금 이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 / 세상 속에서 까닭없이 죽어가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내가 지금 웃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세상 어디에 누군가 슬퍼하며 불행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면,,, 내가 지금 건강한 것이 세상 어디에 병으로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면,,, 내가 지금 배불리 먹고 풍족하게 사는 것이 세상 어디에 굶주리고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면,,, 나는 미안할 뿐이고, 또 미안할 뿐이다. 주변에 아픈 사람이 너무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경을 헤매는 친구도 있다. 그들이 하루빨리 쾌유하길 간구하고 소망한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잘못한 것이고, 내가 무엇을 잘 한것인가? 그들은 그분께 버림받은 것이고, 우리는 그분께 선택받은 것인가?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그분께서 각자 모두를 통해 이루고져 하는 높으신 뜻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분이 언제나 함께 하심은 알 수 있다.
경계 (警戒) (2/21/2014)
얼마전 손님의 도움으로 <변호인>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한달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하니 무엇이 그토록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그 영화를 보면서 거기에 나오는 검사나 고문 경찰, 판사는 무슨 <계>를 갖고 있길래 저렇게도 자신들의 잔인한 행위를 정당화 할 수 있었을까? 자신들이 하나님의 <계>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면 저렇게 인면수심으로 행동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배운자들이고 사회 지도층이고 가진 자들이다. 결국 그들은 자신을 정당화하는 잘못된 <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스스로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산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이 배우고 공부한 범주 내에서, 자신이 듣고 본 범주 내에서, 자신이 믿고 싶어하는 이념이나 종교 범위 내에서 스스로의 <계 (戒)>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을 관념 (觀念)이라고도 한다. 그 <계>에 선을 긋고 경계선을 만들어서 피아(彼我)를 식별하고 분석하고 평가한다. 경계 (警戒)라 함은 내 스스로 정해놓은 <계>를 넘지 않토록 매사에 조심할 것을 이르는 말이다. 술이 과하면 화를 부르니 술잔의 7할이 넘으면 넘쳐 흘러 내리게 만든 잔이 계영배 (戒盈杯)다. 소설 <상도>에도 나오는 이야기다. 술을 인간의 욕심으로 비유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또 중국 격언에 호구지계 (狐丘之戒)라는 말이 있다. 남에게 원망사는 일이 없도록 잘 경계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옳다고 생각한 <계>가 어쩌면 잘못된 <계>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큰 죄를 짓는 것이다. 또한 올바른 <계>라고 할지라도 너무 그 <계>에 구속되어 버리면 율법적인, 고지식한, 고착화된 삶으로 응고된다.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그러한 <계>의 경계선에 구속되어 사는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부유층, 중산층, 빈곤층으로 나누거나, 배운 자와 못배운 자, 학연과 지연, 믿는 자와 불신자, 주류와 비주류, 보수와 진보, 아군과 적군 등등 수많은 <계>속에 나 자신을 구속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다른 <계>의 세계를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으면서 그들을 단죄하고 거부한다. 영화에서도 변호인이 그 사건을 우연한 기회에 맡지 않았다면 그 서민들의 애환과 상처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정보들은 우리도 모르게 가공되거나 거짓된 정보일 수 있다. 지배자들은 그들의 권력과 부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 정보를 만들어내고, 죄없는 민중을 속이고 유린한다. 하지만 지배자는 그들이 직접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출세하고 싶어하는 같은 민중들에게 대역을 맡긴다. 그래서 민중은 민중끼리 죽이고 죽는 일이 반복된다. 영화에 이런 대사가 있다. “거대한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것은 언젠가는 계란이 이길 수도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바위는 아무리 커도 죽은 것이며, 계란은 아무리 작아도 살아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누가 죽은 자이고 누가 산 자인가?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라고 우리는 배웠다. 대학생때 운동권이었거나 노동혁명가라고 자처하던 자들이, 혹은 명문대학 수재들이 국회의원이 되고, 판검사가 되고 높은 관직에 올라갈수록 권력자의 하수인이 되는 것은 왜 그럴까? 그들은 권력 앞에서는 죽어야 산다는 <계>를 나름대로 깨우친 것이다. 배웠다는 식자층도 모든 판단을 자신의 지식이라는 <계> 범주내에서 머리로만 생각하고 분석하고 판단한다. 아니 그렇게 교육받았고 그렇게 살아왔다. 머리로 공부하는 법은 배웠지만 가슴으로 사랑하고 아파하는 법은 배우지 못한 것이다. 시험 잘치는 법은 배웠지만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때까지의 <계>만으로는 도저히 부족하여 또 다른 <계>를 쌓고, 스스로 겹겹이 쌓아 놓은 <계>로 인해 그 속에 파묻혀 살다가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계>를 벗어버리면 <자유인>이 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외면하는 이유는 인간의 욕망이 <계>를 만들기 때문이라는 역설이다.
서머셋 모홈의 <사자 가죽(Lion Skin)> 이라는 소설이 있다. 이 제목은 이솝 우화에서 빌려온 것이다. 동물의 왕 사자를 부러워하던 당나귀가 우연히 사낭꾼의 집에 걸린 사자 가죽을 발견하고 사냥꾼이 집을 비운 틈에 그것을 훔친다. 훔친 사자 가죽을 뒤집어 쓴 당나귀가 사자 행세를 하자 다른 동물들은 겁에 질려 도망을 간다. 계속 하다보니 당나귀는 신이 나서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사자가 당나귀 소리를 내는 것을 수상하게 생각한 동물들은 숨어서 자세히 보니 이놈은 사자가 아니라 당나귀임을 알아차린다. 결국 당나귀는 동물들에게 몰매를 맞고 그 동네에서 쫓겨난다는 이야기다.
세상은 소수의 지배자가 대부분의 부와 권세를 장악한다고 한다. 세월이 갈수록 빈부의 격차는 심해지고 성벽은 높아진다. 사자는 당나귀들의 삶에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사자 가죽을 쓰고 있는 당나귀들은 가난한 자도 아니요, 못배운 자들도 아니다. 흔히들 엘리트 계층이고 배운 지식층이다. 서민 당나귀들을 직접 괴롭히는 자들도 그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자>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당나귀일 뿐이다. 다만 가짜 사자는 너무 오랜 세월동안 가짜 행세를 하다보니 가짜라는 사실을 잊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내가 당나귀인지, 가짜 사자인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참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계>는 지켜야 할 <계>가 아니라, 벗어나야 할 <계>가 아닐까. 이 세상의 유일한 <계>라고 하면 <모두를 사랑하라>라는 그분의 <계> 하나뿐이다. 그분은 우리가 물처럼 바람처럼 아무런 구속 없이, 함께 사랑하며,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시는게 아닐까..
한 남자의 죽음 (2/14/2014)
어제 한 남자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를 잘 알지 못한다. 평생동안 그와 세번을 만난 것이 전부다. 한번은 그가 결혼할 때, 결혼식장에서 처음 얼굴을 보았고, 두번째는 그가 밴처회사를 운영할 때, 내 회사와 기술제휴를 검토하기 위해 잠깐 만나고, 마지막은 몇달 전에 그의 아들 결혼식장에서 만난 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는 나와 유사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의 나이는 나와 동갑이니 올해로 60년을 살았다. 그는 서울의 명문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컴퓨터 전산학과를 졸업했다. 대기업의 전산실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프로그래머로 근무하다가 1990년대에 밴처기업을 만들어 창업을 했다. 내가 밴처기업을 창업한 시기와 거의 유사한 시점이다. 하지만 그와 나는 IMF때 비슷한 시기에 회사를 정리했다는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리고 그는 친구와 함께 무역사업을 하기 위해 캄보디아로 건너갔다. 그리고는 15년동안 소식이 두절된 채 아무도 그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 그의 아내와 가족들도 소식을 몰랐다. 그러던 그가 작년 여름에 가족들이 사는 미국으로 온 것이다. 이미 그는 과거에 내가 기억하던 잘 생긴 미남 얼굴이 아니었다.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왔다. 늙고 초라하며 왜소한 시골 늙은이었다. 그는 이미 결핵 말기로 병원에서 수술 한번 해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나는 그가 15년동안 캄보디아에서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그곳에는 누가 살고 있는지, 미국에는 왜 왔는지, 본인의 병을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모르고 있었는지, 그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가 아무런 재산도 남겨놓지 않고 훌쩍 캄보디아로 떠났으니 그의 아내와 자식들의 고생과 힘든 세월들을 어찌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지만 장례식장에 놓여있는 그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이미 본인은 고인이 되었으니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내가 그 시절에 겪었던 일들을 반추해 보니 나도 그처럼 그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한국의 IMF 시절, 회사도 모두 잃고, 재산도 모두 잃고, 사람도 모두 잃고, 희망도 모두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다. 어머니도, 아내도, 자식도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실패한 내 모습만 보였다. 이렇게까지 모든걸 잃어버린 내 자신을 내가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평생 부자로, 성공한 사람으로 살 것이라 믿었는데 하루 아침에 낭떠리지 절벽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종지부를 찍으니 살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이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 살아야 할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다시 재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족들 뿐만 아니라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과도 연락을 끊고 몇날 며칠을 이름모를 곳에서 혼자 술만 마셨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가 나를 찾으러 서울역 지하도에 나가신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기차역이나 지하철역 바닥에 노숙자들이 넘쳐났다. 아내도 매일 눈물로 보낸다니 가족들에게 못할 노릇이었다. 직원들 몇명도 다른 회사로 가지 않고 나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아직도 나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한, 이런 모습으로 생을 마감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캄보디아로 떠난 것도 내 한몸 살기 위해서 떠났을까.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실패한 모습으로 떠나지만 성공한 모습으로 돌아오기 위해 낯선 타국에서 혼자 외롭게 살았을 것이다. 조금만 고생하면 되리라 믿었을 것이다. 성공하면 연락한다는 것이 한달, 일년 이렇게 세월만 흘렀을 것이다. 15년이라는 세월은 남자가 혼자 살기에는 너무 가혹한 시간들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이 더 큰 미안함을 낳는다. 미안함은 자학이 되고 연락을 하지 못하는 빌미가 된다. 긴 외로움과 그리움은 자기 상실과 삶의 포기로 이어지고 결국은 몹쓸 병을 얻게 된 것일게다. 나는 그와 비교해 위안을 받고자 함이 아니다. 나의 삶은 지금도 궁핍하고 곤고하다.
나는 15년전 그날 이후로 <덤으로 사는 인생>이다. 그래서 매일 <죽는 연습>을 한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겠지만, 이왕이면 <잘 죽자>가 나의 인생 지표가 되었다. 잘 죽기 위해서는 두가지를 버려야 한다. 첫째는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심을 내려 놓아야 한다. 부자가 되기 위한 삶의 과정을 포기해야 한다. 더구나 무일푼이 되었으니 과거처럼 부자가 될려고 하면 과거보다 더 많은 것을 잃어버려야 한다.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살 뿐이다.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고 감사해야 한다. 두번째는 성공할려고 하지 말자. 명예든, 사회적 지위든,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남들보다 출세를 하기 위해서는 경쟁해야 되고, 이겨야 한다. 그럴려면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나 자신도 잃어버리게 된다. <낮은 자>와 <작은 자>가 되자. 가능하면 나의 모습보다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보자. 특히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지 말자. 나는 그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누구나 죽는 날까지 자신의 나이테를 볼 수가 없다. 나의 나이테는 이미 살아온 세월만큼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주변을 돌아보고, 내가 믿는 그분을 믿다가 오늘이라도 오라고 하면 미련없이 가자. 사는동안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그래서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죽자. 돈이며, 명예며, 직위며 하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몸에 달고 가지말자. 부끄러운 모습으로, 한이 많은 모습으로 죽지말자. 아프면 아픈대로, 건강하면 건강한대로 열심히 착하게 살다가 죽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살지말자. 함께 의지하며 위로하며 살다가 죽자. 잘 죽자…
고집 (2/7/2014)
요즘 아내로 부터 가끔 듣는 잔소리(?)가 “당신, 나이가 들수록 점점 고집이 세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즉시 반론한다. “아니 내가 무슨 고집이 있어. 잘 길들여진 노예처럼, 뼈도 없는 연체동물처럼, 당신이 하자는대로, 시키는대로 고분고분하게 순종하며 숨소리조차 죽이면서 살고있는데.. 정말 고집센 사람을 못보았군..” 또 다른 항의를 한다. “아니 이 정도 고집도 없이,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줏대도 없이 바람부는 대로 살면 참 좋겠다..” 하지만 아내는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고, 나와 제일 가까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한번도 아니고 여러번 그런 경고를 한다는 것은 나에게 문제가 없다고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고집은 신념이 아니라 <아집>이다. <고집>은 <편견>이 될 수 있다. <편견>은 <독선>을 불러온다. 노인이 나이들수록 고집스러워진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온 <습>대로, 알고 있는 지식이나 이념대로 <관>이 되어 응고되어 과정이다. 나의 삶과 사상과 지식이 한쪽 방향으로만 편중되지 않키 위해서는 <균형>과 <관용>이 필요하다.
현대인은 자신이 갖고 있는 사상이나 종교, 이념과 상반되면 나머지는 모두 적으로 간주한다. 처음에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서 불쌍한 놈으로, 그러다가 나의 이익에 직접 영향을 미치면 상종못할 놈, 나쁜 놈으로 바뀌다가 결국은 쳐죽일 놈으로 까지 변질된다. 우리 세대는 친일파 잔재들로 건국한 이승만 정부, 군사독재 정권시절 등을 거치면서 가장 정적들을 처단하기 쉬운 이념인 <빨갱이> 좌파이념에 길들여 있다. 또 세계 전쟁사에 가장 잔인한 전쟁들은 모두 <종교 이념>을 앞장 세웠다. <우리>와 <그들>만이 존재하는 이분법적 사고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니 우리 세대는 잘못된 이념이나 편협된 사상을 가지기 쉬운 태생적 한계에 노출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는 우리의 머리와 생각으로는 도저히 <정의>를 판가름할 수 없는 <위대함>일 것이다. 내 생각과 사상을 넓히기 위해서는 내가 모르는, 나와는 다른 그들의 사상과 생각을 존중하고 인정하고 이해한다면 서로의 존엄성이 지켜질 것이다. 이것이 <관용>이다.
프랑스어인 <똘레랑스>는 영어의 <tolerance>인데 굳이 번역하자면 <관용, 아량, 포용력>이다. 하지만 한국의 <정(情)>이라는 단어처럼, 한마디로 꼭집어서 표현하기 어렵다고 한다. <정>이 감성적 표현이라면 <똘레랑스>는 이성적 소리로서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와,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자유에 대한 존중”이라고 할 수 있다. “내 것이 귀하면, 남의 것도 귀하다.내가 존중받기를 원하면 남을 존중하라.”라는 평범한 진리라고나 할까.
<똘레랑스>는 1598년 앙리4세의 ‘낭트칙령’에서 유래된다. 그 이전까지는 국민은 왕의 종교와 일치해야 했었다. 프랑스 국교는 카톨릭이었는데, 15세기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도의 수가 급증하기 시작하는데 이 개신교도들을 <위그노>라고 한다. 1562년 위그노들을 살해하기 시작함으로 ‘위그노 전쟁’이 시작된다. 이에 앙리4세는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 카톨릭으로 개종하는 대신, 위그노(개신교들)에게 종교적 자유를 허락한 것이 낭트칙령이다. 유럽 최초로 한 국가에서 두개의 종교를 허락한 대변혁이다. 그러나 절대왕권을 잡았던 루이 14세에 이르자. 수십만명의 개신교들을 살해(순교)한다. 이 피의 역사는 나폴레옹이 등장하면서 중단되지만, 세계 최대의 개신교 순교로 기록된다. 이런 피의 역사를 갖고 있는 프랑스이기에 모든 종교에 대하여 <똘레랑스- 관용>을 갖게 되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들을 어떤 나라보다 엄격하게 다스린다. 이런 사상이 프랑스인들 저면에 흐르면서 <끄쎄쥬 –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물음으로 자신의 지적 한계를 인정하고 아집으로 부터 벗어나는 것이 <똘레랑스>의 근본 이념이다. 하지만 요즘 신세대들을 보면 다른 사람에게 어떤 피해가 가든, 내가 좋으면 되고, 내 새끼가 최고라는 의식은 물질 만능 자본주의가 낳은 병폐이기도 하다. 또한 기독교의 본산인 유럽인들이 개신교를 떠나는 이유가 무얼까. 젊은이들이 개신교를 믿지 않는 이유가 뭘까. 내가 믿는 개신교 종파만 정통 적자이고 나머지는 모두 이단으로 내치는 행위, 심지어 카톨릭도 이단이라고 하면 하나님은 누구의 하나님이며, 하나님은 어느 종파에 구속된 전유물이라는 말인가. 이것은 다원주의를 말함이 아니다. 어떤 목사님은 신부님에게도, 스님에게도 <님>자를 붙이지 않는다. 나 이외에는 모두 이단이고 우상이라면 마치 <빨갱이> 이론처럼 극히 편협되고 폐쇠된 사고방식이다. 관용의 반대 개념인 <불관용 (앵똘레랑스)>은 지배적이고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개념으로 이해된다. <관용>은 <긍휼>이나 <동정>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흔히들 유교적 사고방식으로 <관용>은 <아량>과 같이 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가진자가 못가진 자에게, 우리가 그들에게 베푸는 <자선>이 아니다. 전통적 계급사회에서 사용하는 <베품>이 아니다. <관용>은 계급관계가 아니라. 평등 관계이며, 동등관계이다. 니체의 상대적 이론처럼 <주체>와 <객체>일 뿐, 언제든지 주체와 객체는 바뀔 수 있으며, 이는 상호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콜롬버스는 미국 입장에서는 미 대륙 최초 발견자가 될 수 있지만, 원주인인 인디언 입장에서는 천인공로할 침략자가 된다는 것이다. 요즈음 흔히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하는데, <관용>은 이해를 넘어서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나자나 힘도 없고 돈도 못벌고 고집만 센 <고집쟁이 늙은이>이라는 말을 듣기 전에, 내 스스로 <고집>에서 빨리 벗어나야 할텐데..
눈은 내리는데 (1/31/2014)
눈이 하염없이 내린다. 온 세상이 순식간에 하얀 화선지 위의 수묵화처럼 몇가닥 선으로 이어졌다 끊어지길 반복한다. 이번 겨울은 얼마나 더 눈이 내리려나.. 또 얼마나 더 추우려나.. 엊그제께도 오후부터 폭설이 내린다는 일기예보로 오전에 약속된 손님만 만나고 12시도 못되서 사무실을 서둘러 나왔다. 집까지는 45분정도 거리니 한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려니 생각하고 운전을 했다. 억세게 뿌려대는 눈발은 거칠줄을 모르고 영하 10도 이하의 강추위로 길은 온통 빙판길이다. 모두들 서둘러 오전근무만 했는지 차량들이 도로 위로 쏟아진다. 로컬길들에 차량행렬이 줄을 지어 있기에 동선을 바꾸어서 고속도로로 차를 몰았다. 고속도로도 마찬가지다. 모든 차들이 기어서 간다. 곳곳에 사고가 나고 고속도로 길 가에 세원진 차들은 눈으로 하얗게 덮혀 있어 차량 형체도 분간이 되지 않는다. 집에 도착하니 저녁 6시가 넘었다. 운전시간만 6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서울~부산보다 더 먼 거리를 운전한 셈이다. 나는 그래도 음악을 들으며 난방이 잘 되는 차 안에 앉아 편안하게 왔지만, 이 냉동설한에 가뜩이나 장사가 안되어 울상인 우리 이웃들 생각으로 마음이 불편하다. 또 얼마전에는 남극 추위보다 더 체감온도가 낮다는 혹한의 날도 있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우리 서민들인데, 눈내리고 온통 빙판길인 혹한 날씨에는 손님들 발길마저 뚝 끊어지니 서민들 삶이 이만저만 힘든 것이 아닐텐데.. 빨리 날씨라도 풀려야 할텐데.. 이런 저런 걱정이다.
IMF로 한국 사람들이 모두 힘들어 할 때 서민들의 가슴을 울렸던 책 한권이 생각난다. 이철환씨의 <연탄길>이다. 이철환씨는 노량진 입사학원에서 서민층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4년동안 그들로 부터 들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이 단편들을 7년에 걸쳐 쓴 것이다. 각 단편마다 서민들의 애환과 눈물이 마치 서사시처럼, 한편의 드라마 처럼 펼쳐진다. 각 사연마다 아픔 아닌 것이 없고 각 단편마다 그 고통들을 이겨내는 반전들은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격려한다. 장애인, 노숙인, 청소부, 결손가정 아이들, 부모를 잃은 고아들, 산동네 사람들, 술주정뱅이 아버지, 시장 바닥의 어머니..등등 흔히들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픈 사회 빈민층, 저소득자들, 사회 소외자들이 겪는 고통과 아픔을 이겨내는 사랑이야기다.
작가는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의 전부라도 태워, / 님의 시린 손 녹여 줄 따스한 사랑이 되고 싶습니다. / 그리움으로 충혈된 눈 파랗게 비비며, / 님의 추운 겨울을 지켜 드리고 싶습니다. / 그리고 함박눈 펑펑 내리는 날, / 님께서 걸어가실 / 가파른 길 위에 누워 / 눈보다 더 하얀 사랑이 되고 싶습니다.” <연탄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린 시절 내가 사는 산동네에 수북이 눈이 쌓이면 사람들은 저마다 연탄재를 손에 들고 대문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눈보다 더 하얗게 사랑을 깔아 놓았습니다. 가난으로 움츠린 산동네 사람들이 어깨를 활짝 펴고 아침을 걸어 내려올 수 있도록 말입니다…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 빛이 될 순 없지만 더 짙은 어둠이 되어 다른 이들을 빛내준 사람들의 이야기, 부족함 때문에 오히려 넉넉한 사람들의 이야기… 나는 그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 ‘빛은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난다’라는 문구가 더욱 가슴을 저민다. 단편 중에 고아인 자매 3명이 짜장면 한그릇만 주문하는 것을 음식점 여주인이 보고 마치 죽은 엄마 친구인 것 처럼 하면서 아이들에게 짜장면 세그릇과 탕수육을 공짜로 먹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본 소설에도 이런 유사한 장면이 있는데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상처를 주지 않고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소리없이 아픔을 감싸준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런 이야기도 있다. 엄마는 공장에서 일하다 과로로 죽고,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왼쪽다리를 절단하여 걸식을 한다. 어린 자매 3명은 수녀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간다. “한겨울 도시의 담벼락에 화사한 꽃이 피었습니다. 그 꽃을 등지고 서 있는 이름없는 꽃 한송이가 있습니다. 친구 엄마는 하루를 살기 위해 이리저리 쫓겨 다니며 떡을 팔았습니다. 왜 그들에겐 코뿔소의 뿔이 없을까요. 왜 그들에겐 바람 한줄기 치받을 수 있는 염소의 뿔조차 없을까요.” 정말 우리 주변에도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스스로는 어떻게 해 볼 수 조차 없는 어려운 사람들도 많다. 작가의 글을 빌리면 “아이를 업은 여인이 지하도 계단에 엎드려 한겨울 추위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말없이 이들 앞을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외면해 버린 죄인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시간이…”
이런 글들을 읽다보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은 그들과 같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들끼리 서로 의지하며 희망이 되고 사랑이 된다. 우리가 다니는 교회에는 우리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장애인과 병든 자들이, 우리의 도움이 간절한 고아와 가난한 노인들이 몇명이나 있을까. 아니 과연 이들이 마음 편히 우리와 같이 예배라도 볼 수 있을까. 교회 문턱이 너무 높은 것은 아닐까.. 가진 자는 가진자 끼리, 배운 자는 배운 자끼리 모이는 교회라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은 우리를 내려다 보시며 무엇이라고 하실까. 오늘도 눈은 내리는데 이 눈속에 추위와 배고픔으로 떨고 있는 <극히 작은 자>들이 자꾸 자꾸 마음에 걸린다…
소금꽃 (1/24/2014)
우리는 살면서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적어도 이민자는 이민을 갈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이민을 선택을 한 사람들이다. 심지어 점심을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쪽에 아쉬움이 남는다. 하물며 물 다르고 말이 다른 이민을 선택한 이민자들에게 아쉬움과 번민은 오죽할까. 하지만 세상 그 누구도 두 길을 한꺼번에 걸을 수 없으며 오직 한길을 걸을 수 있을 뿐이다. 그 누구도 예외는 없다. 그러므로 삶은 <선택>이다. 선택의 누적이 지금의 <나>다. 숨쉬는 순간순간마다 뭐 하나 선택이 아닌게 없다. 선택은 깃털처럼 가볍고, 우주처럼 무겁다. 그러므로 삶은 가볍고도 무겁다. 그 선택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글은 한겨레 출판에서 출간한 <길은 걷는자의 것이다>에서 일부 인용함을 밝힌다.
<소피의 선택>이라는 책을 영화화한 것이 있다. 주인공 소피는 두 자식을 데리고 아우슈비츠로 끌려간다. 그때 나치 장교가 소피에게 두아이 중 한 아이는 구해줄 수 있으니 <선택>하라고 한다. 소피는 두 아이 중 한 아이만을 선택할 수 없다. 현대사회의 약자나 피지배자에게는 이런 유사한 <선택>을 강요받는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회는 지배집단, 즉 자본가나 권력이 요구하는 <선택>을 강요받으며, 정작 자신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박탈당하는 것이다. 이민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불법체류자> <영주권 대기자>..아니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아니면 뚜렷한 목적이 있어 이민이라는 <선택>을 하였다 할지라도, 막상 이민의 생활은 정해진 외길이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다른 길을 돌아 갈 수도 없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기 때문이다. 이민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몇가지나 될까. 합법적 신분이 될 때까지 참고 또 참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적어도 아이들이 학교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이 땅에서 숨죽이고 살아야 한다. 먹고 살아야 하니 땀흘려 일해야 한다. 불법체류자가 무슨 큰 죄라도 지었는가? <불법체류자>라는 그 낙인 하나 때문에 그 흔한 교통 딱지 하나 떼는 것도 두렵다. 불법체류자처럼 법을 잘 준수하는 미국인도 없을 것이다. <소금꽃>은 사람의 몸에서 나온 땀이 굳었을 때 생기는 것을 말한다. 하늘에 별이 있듯이 땅에도 별이 있는데, 땅의 별이 <소금꽃>이다. 이민자들에게 긴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소금꽃이 피었던가. 지금도 이곳 저곳의 삶의 현장에는 소금꽃이 피어난다. 하지만 소금꽃이 어찌 이민자에게만 국한되겠는가. 현대 자본주의의 약자나 소외된 자 모두가 <소금꽃>의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김진숙’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한진중공업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다 노동조합 활동으로 해고당했다. 그 뒤 20여년을 해고자이자 노동운동가로 살고 있다. 2011년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부당함을 알리려고 309일동안 크레인 위에서 살았다. <소금꽃 나무>의 저자인 그녀는 민주 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다. 한진중공업 노조는 2003년 650명을 정리해고한 회사에 맞서 2년을 투쟁하여 겨우 합의를 얻어낸다. 하지만 사장은 합의 사항을 지키지 않는다. 그래서 김익주 노조위원장이 같은 크레인에 올라 129일간 농성을 하다가 스스로 크레인 꼭대기에서 목을 메고 자살한다. 이에 또 다른 노동자가 도크에 몸을 던져 투신자살을 한다. 그녀는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김익주를 생각하며 거기에 오른 것이다. 그녀는 김익주을 생각하며 8년동안 냉방에서 자고, 찬물에 머리를 감으며 고통 속에서 살았다. 2010년 회사는 3천억원 흑자를 내면서도 432명을 해고한다. 눈바람 몰아치는 2011년 1월6일 새벽3시 부산 영도 조선소 한진중공업 35미터 높이의 크레인에 오른다. 크레인은 24시간 내내 흔들린다. 누우면 머리와 발이 닿는 좁은 쇠철판 위에서 1년여를 살았다. 두달동안 계속 멀미만 한다. 그녀는 309일동안 고공에 메달려 농성하면서, 살아서 내려가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한다. 크레인 위에서 제일 힘든 것이 세상의 단절감과 고립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지지자들을 보며 “내가 간절한 만큼 저사람들도 간절하구나. 내가 죽으면 저사람들도 평생 고통 속에서 살겠구나. 그 간절함을 배신할 수 없다”라는 신념으로 죽지 않고 버텼다고 한다. 한국에는 비정규직이 9백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어느 조직이든,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몇배나 더 많다. 현대, 삼성, 엘지,한전, 철도공사, 지하철, 등등 한국의 대기업은 비정규직의 피를 빨아먹고 산다. 하청업체도 여기에 해당한다. 정규직의 절반에 해당하는 급여, 열악한 복지후생, 노조도 없고 단체도 없다. 찍소리라도 하면 즉시 해고 당한다. 쌍용자동차에서는 21명이 죽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에 비하면 노동자가 아니고 귀족이며 보수다. 그들은 그래도 대접받고 보호받는다. 이제는 노사의 문제보다 노노의 문제다.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 고착화가 더욱 심각하다. 그녀는 말한다. “저는 변화를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움직이고 실천하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딱 그만큼씩 바뀌어 왔습니다.” 누가 역사의 중심에 서느냐에 따라 역사는 바뀐다. 안병무 박사는 “관념이 아니라 땀을 흘려야 한다. 지금 여기에서 땀을 흘려야 하고, 이 역사 안에서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흥구 성공회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겸손하게 자기를 돌아보고, 결단력 있게 선택하자,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말자. 혼자 걷기가 외롭고 두려우면 여럿이 함께 걷자. 김남주 시인의 노래처럼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그렇다.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 이민자들이여, 참고 견디자. 우리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가자.
자발적 복종 (1/17/2014)
어쩌면 산다는 자체가 고달프다. 특히나 이민의 삶은 굴러온 돌이니 박힌 돌들의 기득권과 짜여진 틀 속에서 별반 선택의 여지가 없는 복종의 삶을 살아야 하니 더욱 고달플지 모른다. 나도 이민 초기에 한국의 지인들이 미국 생활이 어떻냐고 물어오면 “그냥 생각없이 하루하루 산다.”고 답한 적이 있다. 신분문제며, 구멍가게를 꾸려나가는 것도 나의 의지나 이민오기 전까지 쌓아온 지식과 경험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도 없는, 기존의 이민자들이 살아왔던 방식을 답습하는게 고작이었다. 아니 한정된 재원으로 변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결과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이민의 삶이라는 굴레에 자발적으로 구속되고 굴복하며 사는지도 모른다.
<자발적 복종>은 16세기 프랑스 에티엔 드 라 보티에가 쓴 책 이름인데, 이런 말이 있다. “노예인 자는 노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복종하지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자는 실은 노예이면서도 노예인지조차 모른다.” 핵심은 <자유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를 원하며, 꿈꾼다. 푸른 창공을 더높게 비상하는 독수리처럼 자유롭게 날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나는 자유인인가, 자발적 복종자인가. 자신의 <몸 자리>의 궤적이 각자의 삶이라고 한다면, 내 몸자리를 어디에 둘 것인지 정하는 것은 나의 <선택>이다. 이 선택은 두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내가 내 몸을 놓는 <의지>이며, 다른 하나는 내몸이 놓이는 <처지>이다. 물론 물질적 관계, 물질적 토대가 사람의 선택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사람이 환경과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삶의 가치를 얼마나 어떻게 소중하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선택의 가치가 달라진다. 칼린 지브란의 말대로, 현대사회는 애석하게도 물신(物神)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이다. 물신은 인간의 가치와 선택을 수치로 치환해서 평가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을 평가할 때, 최종 학력이 무엇인지, 직책이 무엇인지, 년봉이 얼마인지, 재산이 얼마인지, 사는 집이 얼마인지, 심지어 가족과 자식들의 사회적 신분이 어떠한지 등등 모든 것을 수치로 환산해서 상대방을 평가하고 내 자신을 비교평가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상대적 평가해서 자신이 가치없다고 결론짓으면 자유인이 되기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의 저자이자 진보신당의 대표였던 홍세화씨는 “유보는 하더라도 포기는 하지말라”라고 말한다. 즉 생존때문에 자아실현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생존을 위한 삶은 준엄하면서도 냉정하므로 게을리 할 수 없다. 하지만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산정상을 향해 끊임없이 바위를 굴려 올리는 것처럼 포기하지말고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끝없는 패배>라고 말한다.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한두번 실패했다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도전한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긴장은 긴축할 때의 긴(緊)과 베풀 장(張)이 합쳐진 말이다. 즉 긴장은 조화와 균형이다. 보수와 진보, 주체와 상황, 인격과 물질, 이성과 감정, 이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는 그의 삶에서 몸자리를 선택해야 할 때의 기준을 이렇게 말한다. “저에게 허용된 삶의 소중함에 대해 인식하고, 그 의미를 깨닫는 거죠. 결국 자유인으로의 지향, 자아실현, 삶의 의미에 대한 끊임없는 모색, 그리고 그걸 위한 긴장, 그 과정 자체가 설령 한두번이 아닌 <끝없는 패배>의 과정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내 삶을 누구도 평가할수 없다. 각자의 삶을 최종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자신이어야 한다. 이것이 자존감의 핵심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의미없는 고통이다.”이라고 말한다. 그 어떠한 고통이라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희망이 있고 그러기에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푸시킨의 시처럼, 아무리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할 필요가 없다. 슬픔과 고통의 날을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기쁨의 날이 오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홍세화씨는 말하기를 이제는 <소유의 시대>가 아니라 <관계의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고 한다. 소유의 시대는 끊임없는 성장을 목표로 한다면 관계의 시대는 성숙이 목표다. 논어에 “군자는 화이부동 (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 (同而不和)한다”라는 말이 있다. 즉 군자는 같지 않으면서 화목할 수 있는데, 소인은 같으면서 불화한다는 뜻이다. 이는 프랑스의 똘레랑스 개념 (영어의 Tolerance : 관용, 아량, 포용력)과 유사하다. 이 개념은 서로 다른 사상과 생각이 서로 존중되고 이해되며,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그러한 사회를 말한다.
우리 이민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어떻게 <자유인>이 되고픈 꿈을 가질 수 있을까. 나의 의지로 내가 부단히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우리 선조들 중에 멋쟁이 자유인들이 있다. 조선의 선비들이다. 조선의 선비를 말할 때, 자신만의 <文史哲>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자신만의 문학과 역사,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재능으로는 <詩書畵>가 일치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와 글과 그림이 어우러져야 한다는 뜻이다. 또 선비는 마땅히 <身言書判>이 좋아야 한다고 한다. 몸, 말, 글씨, 그리고 판단력이 좋아야 한다는 뜻이다. 좋은 몸이란 잘생긴 외모가 아니라 그 사람이 풍기는 인격이다. 깊어가는 겨울밤 창문에 비친 달빛을 바라보며 시조나 한번 목청껏 불러봄은 어떨지.. “청~산리 벽~계수야, 쉬이 감을 자랑마라~~”
현주소 (現住所) (1/10/2014)
사람은 누구나 현재 살고 있는 주소가 있다.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이다. 내가 과거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았으며, 미래에 어디서 살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과거에 어디서 살았든, 각자마다의 사연으로 인해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것이니 나의 업보이며 나의 과거 행적이다. 또 내가 미래에 어디서 살지는 나의 계획이고 희망이거나 막연함일 뿐, 그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이 자리가 얼마나 나에게 소중한지 자각해야 하며, 지금 이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살면서 가끔은 삶의 청량제와 같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중에는 작년에 266대 로마 교황으로 즉위하신 프란치스코도 계시고, 작년에 작고한 넬슨 만델라, 그리고 마더 데레사 수녀님 같은 분도 계신다. 이분들의 삶은 지극히 공통된 점이 많다. 강론이나 저서나 삶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극히 예수의 말씀대로, 예수의 제자다운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러지 못한 나와 같은 범부들에게는 특별하고도 신선하게 느껴짐이리라.
교황께서는 첫미사때 강론에서 ‘걷기(walking), 짓기(building), 신앙고백(professing)’을 교회의 세가지 임무로 제시하고 영적 쇄신을 통한 교회재건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십자가없이 걷고, 십자가없이 뭔가를 짓고, 십자가없이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면 우리는 주 예수의 제자가 아닌 세속적인 존재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또 성목요일날 로마근교 소년원에서 12명의 소년원생에게 세족식을 하였는데, 그중에는 2명의 소녀 소년원생, 2명의 무슬림, 1명의 그리스 정교도가 포함된 것이다. <전통>을 강조하는 현대 기독교로서는 파격적인 행동이다. 여성도 처음이고, 무슬림도 처음이고, 아프리카 이민자와 집시들로 구성된 범죄자 소년원생인 것도 처음이다. 역대 교황들은 대부분 남성 사제들의 발만 씻겨주었기 때문이다. 교황 즉위명인 ‘프란치스코’는 평생 가난한자와 소외된자, 병든자와 고통받는 자와 함께 살았던 수도사였다. 그분의 강론은 “가장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로마 주교의 소명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창조물인 환경을 존중하며, 특히 아이들과 노인들,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궁핍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이고 보호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교황께서 머무는 곳은 호화로운 바티칸 관저가 아니라 150명의 사제들이 묵는 게스트 하우스인데, 나무로 짠 침대 하나, 작은 책상, 소형 냉장고가 전부라고 한다. 지금도 그는 밤마다 수행원들 모르게 빈민가에 빵을 나누어 준다고 한다. 어쩌면 이런 <극히 작은 일>들이 세계인들의 가슴을 울리게 하는 것이다. 또 교황께서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존엄성이란 일을 통해서만 확보됩니다. 내가 스스로 벌어먹고, 내가 번 돈으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이 벌고 적게 벌고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여가 문화>의 중요성도 강조하신다. 또 “<권위>의 어원은 <성장하게 하다>라는 뜻이며, 억압자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증오보다도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믿는 <오만함>을 가장 혐오한다.”고 했다.
메리 포플린의 저서 <지금 머물러 있는 곳을 더욱 사랑하라>에 보면 <마더 데레사>의 <일과 섬김>에 대해 알 수 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들린 연필>과 같다고 한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은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캘커타의 사랑의 선교회를 찾는 대부분의 봉사자들은 <남을 돕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자기를 찾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나님이 내 삶을 인정하지 않으신 것은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기 때문이라걸 뒤늦게 깨닫는다. 이 책에서 <사회사업>과 <종교 사역>의 차이점을 말한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선한 일은 하나님이 내게 특별한 목적을 갖고 계신다기 보다, 내 분별력과 상황 통제 능력을 발휘해서 내가 일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착해서 남을 돕는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뿌듯해 한다. 그러니 선한 일은 대부분 내 도움을 받는 사람들보다 나 자신을 위해 한 일일 때가 많다. 말콤 머거리지는 마더를 이렇게 기록한다. “<고난>이 없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한 사회사업에 불과하다. 사회사업은 선하고 좋은 일이지만 구속하는 일이 아니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도 주님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형편, 즉 그들의 물질적 빈곤뿐만 아니라 영적 피폐함까지 함께 구속받아야 한다. 그들과 함께 비참함을 나누어야만 하나님을 그들의 삶에 인도하며, 그들을 하나님께 이끌어야만 비로서 그들을 구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더가 가장 가난한 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사역하는 이유이자 목적이다.
이런 분들의 글을 읽으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나의 신앙적 삶은 엄청난 괴리와 모순 속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또 앞으로의 삶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과 죄스러움으로 번민하게 된다. 굳이 위로한다면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보다 반드시 나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던 과거의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를 명심해야 한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되도록 지금 이자리에서 겸손하게 맡은바 소명을 다하여야 한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받을만 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만 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던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립보서 4:8>”의 말씀을 등대삼아 오늘도 힘차게 노저어 나아가자.
부자되세요! (1/3/2013)
“새해에는 부자되세요!” 세상 누구나 부자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으며,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새해에는 미국 경제가 나아지고 우리 서민들의 살림살이도 나아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하지만 부자가 되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버는 방법이나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하는 문제만은 아니다. 돈에 대한 마음 지킴이다. 돈을 많이 벌었지만, 그 돈을 지키지 못해 말년을 가난하게 사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즉 부자가 될려면 돈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성품을 몸에 익혀 평생 몸에 베어 있어야 한다. 언젠가 투자 전문 사이트 더스리트닷컴에서 소개한 부자들의 10가지 성품을 메모해 둔것이 있어 이를 소개한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고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잘 지켜지지 않으니 새해의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아보면 어떨까.
첫째는 <인내>다. 내가 목표한 돈이 모일 때까지 <절약>하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유행은 소비를 조장한다. 사고 싶은 것 다 사고, 하고 싶은 것 다하면 어느 세월에 돈을 모으겠는가. 올해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참고 인내해야 한다.
둘째는 <만족>이다.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감사해야 한다. 불만족은 과욕을 낳고 과욕은 과소비를 낳으면서 결국은 파멸에 이른다. 자본주의 사회의 광고 목적은 무엇인가. 소비자에게 끊임없는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욱더 멋있고 세련된 모습으로 바꾸기를 유혹한다. 그것이 <유행>이라는 괴물을 양산하는 것이다.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 불행한가? 명품 가방이나 명품 물건을 갖고 있지 않으면 불행한가? 없으면 안되는 것, 꼭 필요한 것만 구매하고 불필요한 소비를 억제하는 것은 <현실 만족>이라는 자족감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세째는 <질서>다. 일상 생활이 규칙적이고 부지런해야 한다. 질서는 더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주며 많은 문제들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정리해 준다.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어야하며, 매일의 계획과 실천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어야 한다. 쳇바퀴도는 반복된 일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일상에 목표와 희망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질서와 도전>이다. 도전도 안정된 일상이 뒷받침되어야 더 높이 비상할 수 있다. 일상이 없는 도전은 무모한 허상에 대한 도전일 뿐이다.
네째는 <절제>다. 행복한 삶은 돈을 흥청망청 쓰는 삶이 아니다. 돈을 버는 목적도 비싼 집에 비싼 자동차에 과소비를 하기 위해서라면 부자가 될려는 목적이 잘못된 것이다. 부자의 목적은 더 큰 나눔의 삶을 살기 위함이다. 재테크란 단번에 일확천금 부자로 만들어 주는 방법이 아니다. 평생에 걸쳐 절제된 훈련이 재테크다.
다섯째는 <성찰>이다. 자신이 내린 결정을 돌아보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재정적으로든, 사업이든 실수를 한다. 문제는 이 실수를 교훈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여섯째는 <창의성>이다. 경제 상황은 언제라도 예상치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변화된 상황에서 신속하게 대체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역경 속에서 헤쳐나올 수 있는 방법은 창의적 대체능력이다.
일곱번째가 <호기심>이다. 호기심이 있으면 공부를 한다.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책을 보고 정보를 수집하고 전략을 짜서 실천하는 것이다. 그 시발점이 호기심이다.
여덟번째가 <위험감수>다. 부를 구축하려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위험요소가 없는 부의 추구는 없다. 다만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하고, 경우의 수에 따른 결과에 대해 위험을 극복할 대체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민들은 위험요소때문에 시도마져 해 보지 않으므로 부자가 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다.
아홉번째가 <목표지향성>이다. 목표를 세워 한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목표가 없는데 세부계획이 있을 수 없고, 전략이 있을 수 없다. 목표는 내가 가야 할 안내지도와 같다. 큰 목표가 흔들리지 않는한, 세부 목표는 수정될 수 있다.
열번째가 <성실과 노력>이다. 진정한 재정적 자유란 열심히 일해 돈을 벌고 그 돈을 관리하며, 가치를 늘려가는 과정에서 얻어진다. 일하지 않는 부자는 없다. 다만 일의 종류가 다를 뿐이다.
미국경제가 지금의 이 모양 이꼴이 된 가장 큰 원인이 절제를 모르는 과소비 때문이다. 미국 경제의 70% 이상은 소비경제다. 미국의 비극은 1970년도 금본위 제도를 폐지하고 달러를 세계기축통화로 지정하고서 부터이다. 마구잡이로 달러를 찍어내어 빚으로 소비를 촉진시켜 미국을 기아급수적으로 빚더미에 안게 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인 전체가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차려서 소비를 절제하고 근검절약하면 세계공항이 온다는 것이다. 그림자 정부는 온갖 방법들을 동원해 여러분이 부자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인은 돈이 없다. 즉 예금은 없고 소비만 있다고 세계는 비웃는다. 미국 서민들이 돈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부동산 거품으로 집값이 오르는 것이다. 집값이 올라야 그 상승 수익으로 소비를 할 수 있다고 하니 미국 집값이 오르면 한인 여러분 장사도 나아진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새해의 미국 경제 지표가 나아진다고 여러분의 살림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며, 아직은 때가 아니다. 새해에도 절약하고 열심히 일하는 방법 밖에 없다. 철저한 계획으로 도전하는 한해가 되시길 소망한다.
행복하세요? (12/23/2013)
<행복>이라는 주제는 새해 칼럼으로는 너무 거창하고 무거울 수 도있다. 하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도 행복하세요.” 라는 새해 덕담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하며,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happiness>의 어원은 <happen>이다. 즉 행복은 발생되는 것이지 쟁취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내가 주체가 되어 발생시킬 수 있는 것’이 행복이다. 행복은 ‘그 무엇도 내 허락없이는 나를 불행하게 만들 수 없다.’로 요약된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여덟가지 행복> 선언을 통해 행복의 진수를 가르쳐 주셨다. 차동엽 신부님은 그의 저서 <행복 선언>을 통해 예수님의 여덟가지 행복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다. 이 내용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달라이 라마의 <당신은 행복한가>라는 저서에서 내용을 간추려본다. 이 책은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이후 10년만에 출간된 책인데, <행복론>은 <나> 대한 행복론이라면, 이 책은 <나>와 <우리>, 그리고 <그들>에 대한 행복 관계론에 해당하는 책이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는 같은 존재다.>라는 명제로 시작되어야 한다. 모든 인간은 행복하길 갈망하고 고통을 피하길 원한다. 하지만 <나>와 다른 <우리>, 우리와 다른 <그들>, 심지어 <적>들까지도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유대감을 가질 수 있을까? <우리>가 있으면 <그들>도 있다. 우리와 맞서는 그들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 방식, 고정된 편견, 의심, 무관심, 차별, 갈등, 폭력, 잔인성등이 <우리>가 <그들>을 대하는 태도이다. 심지어 같은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도 <우리>와 <그들>로 나뉘어진다.
먼저 현대인의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대표적 이유는 <공동체 의식의 결여>를 꼽을 수 있다. 오늘날 세상은 연결감과 결속감이 없는 공동체나 사회를 발견하게 된다. 공동체 의식이 없다면 당신이 아플 때, 당신이 고독할 때, 당신이 힘들 때,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사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가 줄어든다. 미국인구의 25%가 친한 친구나 믿을만한 벗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개나 고양이를 많이 키우나? 또한 1985년 미국 통계에는 친한 친구가 3명이라고 한 반면, 2005년에는 단지 2명뿐이라고 답한다. 즉 우리를 공동체와 이웃으로 연결해 주는 끈이 매우 약해졌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 이유는 일하는 시간과 출퇴근 시간이 길어졌으며, 돈을 벌기 위해 당사자와 전혀 연관이 없는 타지역으로 <이동>하는 확률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과 사이버 네트워크의 발달로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는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굴을 맞댄 직접적인 소통과 만남이 인터넷 등의 간접적 만남보다 훨씬 관계의 밀접성이 높고 강하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옥스포드 대학의 진화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인간의 뇌로 유지할 수 있는 친구의 수는 최대 150명이라고 한다.
현대인의 행복에 대한 조건들 중에는 타인과의 연결감과 공동체 의식이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 요소라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동체가 가져다 주는 이점을 자각해야 한다. 고독과 고립과 소외로 부터 벗어나는 길은 <연결성>이다. 연구에 의하면 인간이 한 단체에 가입하면 이듬해에 사망할 확률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두개의 단체에 가입하면 4분의 1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또한 타인들과의 관계맺는 방식에 대한 자각이다.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있는 특성, 공통된 관심사와 배경, 함께 나눈 경험들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타인을 만나는 횟수를 늘려나가는 것이다.
또 다른 관점은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공감해야 하는 것이다. 행복한 세상은 행복한 개인들로 이루어진다. 행복한 개인들은 <다양성>으로 구성된다. 아름다운 정원은 다양한 꽃들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에 대한 인정과 공감이 필요하다. <하나는 모두를, 모두는 하나를> 이라는 원칙이다. 인간의 문제는 인간이 정한 특정범주에 넣어 판단할 수가 없다. 특히 서양인들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나. 흑백논리는 <우리>와 <그들>을 더욱 멀어지게 한다. <우리>는 <그들>에 비해 우월하다는 잘못된 믿음이다. 배웠든, 못배웠던, 부유하든, 가난하든, 잘 생겼든, 못생겼든, 이 모든 차이는 <다름>일뿐, 모두가 존엄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그들에 대한 선입견이나 부정적 고정관념은 <발견적 학습법 : 어떤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모든 경우를 고려하지 않고, 편리한 기준에 따라 그중 일부만 고려해 해결하는 방식이다. 어림 계산법이라고도 한다.>에 의존한다. 이는 점차 차별과 편견으로 확산된다. 일종의 주홍글씨다. 우리 안에 있는 신이 그들 안에도 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도 된다. 관계는 영구적이 아니며, 순간적이다. 좋은 관계는 좋은 순간들을 부단한 노력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행복의 그물망>이라는 설명도 있다. 당신이 행복하면 옆사람이 행복해질 가능성은 34% 더 높다. 1킬로미터 이내의 친구가 행복해질 가능성도 25%까지 높힌다. 행복의 영향은 1년까지 지속된다. 당신 주변의 행복한 사람 한명마다 당신의 행복 기회를 9%까지 높여준다. 그러니 당신이 행복하고, 당신의 주변의 행복한 사람이 많을수록 서로가 점점 더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의 시너지 효과라고 할까. 당신의 그물망에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 많은가, 불행한 사람들이 많은가?
새해에는 더욱 열심히 공동체 생활을 하시고, 주변에 더욱 행복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행복한 하루 하루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