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저작권은 윌리칼럼 저자인 이위식에게 있으므로 저자의 서면 동의 없는 무단 전재 및 복제를 금합니다. 모든 윌리 칼럼은 미국 Korea Phila Times (주간필라) 신문에 매주 해당 날짜에 출간된 것임을 밝힘니다. **
새해의 화두 <웃음> (1/1/2013)
여느해에 비해 결단코 만만치 않는 새해가 시작되었다. 특히 미국에 사는 한인들에게는 더 힘든 시절이 될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한인들은 흑인과 같은 서민층을 대상으로 장사하기 때문이다. 미국경제가 어려운 것도 문제이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것이 더 심각하다. 재정절벽이니, 채무이행 포기상태의 국가 부채니, 하는 걱정들은 이미 오래전에 노출된 문제며 폭탄이 터지는 시기를 연장하고 있을 뿐이다.이미 세계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환율전쟁, 부채전쟁, 기축통화 전쟁, 특허전쟁, 보호무역 전쟁, 원자재전쟁, 무기전쟁, 영토 소유권 전쟁,등으로 서로가 물러서면 죽는 치킨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모든게 불확실히며, 어떠한 보증도, 기한도, 약속도 할 수 없다.
서민들의 삶은 이래도 힘들고 저래도 힘들다고 해서, 세상에 휩쓸려 떠도는 부평초 같은 인생이 아니라, 잡히지 않는 돈을 쫓아가는 <삶의 고통>이 아니라, 즐겁게 사는 <삶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어떤 폭풍이 불어닥쳐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하면 되는게 아닐까?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는 다음에야 돈이 없으면 어때? 재미있게 살면 그만이지.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 덕은 “인간을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존재의 의미”라고 했다. <의미>란 남을 기쁘게 해 주고 위로를 주며, 도움울 줄 수 있는 <작은 의미>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새해에는 주변의 <작은 것> 에서 부터 감사를 찾으면 어떨까. 새소리, 바람소리, 노을, 구름, 따사로운 햇빛, 반짝이는 물결, 싱그러운 냄새, 아이들 웃음소리, 소박한 미소, 새벽 십자가의 속삭임, 감미로운 음악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영혼을 울리는 그분의 말씀, 마주잡은 손을 통해 전해오는 따뜻함, 이웃과의 편안한 수다, 차 한잔의 여유, 누군가를 위한 기도, 바람결의 묵상, 발끝에 느껴지는 산책길, 요란하지 않는 조그만 봉사. 등등 이러한 종류의 <작은 의미>는 찾기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이 작은 의미에는 공통적으로 수반되는 단어가 생각난다. 그것은 <미소>다, <웃음>이다. 그렇다. 새해의 화두는 <웃음>으로 하자. 작은 의미에도 많이 웃고, 많이 미소짓자. 그렇치 않아도 쌍거풀이 없어서 작은 눈이지만, 아예 실눈으로 만들어버리자. 눈가에 잔주름이 많아지면 어때? <작은 의미>에도 웃을 수 있다면, 혹시나 <큰 의미>가 생기는 날에는 박장대소로 세상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웃어보자. 그런데 공교롭게도 우리 목사님이 새해에 제시한 신앙의 화두가 <조금씩만 더>이다. 새해라고 너무 거창한, 너무 화려한 계획보다는, 또 섣부른 좌절이나 포기보다는 지금보다 한발짝씩만 더, 조금씩만 더 앞으로 나아가자는 말씀이다. 나의 <작은 의미>와 일맥상통하여 나를 미소짓게 한다.
사람들이 걱정하고 불안해 하는 두려움 중에 세가지가 있는데, 그중 40%는 지나간 과거에 대한 것이며, 50%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에 관한 것이고, 오직 10%만이 현재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작금의 미국 경제와 세계경제는 내가 걱정한다고 해결될 성격이 전혀 아니다. 일개 국가의 문제도 아니고, 어제 오늘의 문제도 아니며, 내일이면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나의 <꿈>이며, 나의 <희망>이며, <삶의 목표>이고, <믿음의 생활>이다. 차동엽 신부님의 <무지개 원리>에서 “꿈을 이루려면 세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신념의 법칙>이다. 무엇이든 느낌을 갖고 믿으면 그것은 현실이 된다. 둘째가 < 인력의 법칙>이다. 인간은 살아있는 자석이다. 즉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들을 우리의 삶 속으로 끌어들인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다른 사람을 끌어당기고,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돈을 벌 수 있는 아이디어와 기회를 끌어당긴다. 세째가 <상응의 법칙>이다. 안에 있는 그대로가 밖으로 표출된다. 따라서 먼저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 괴테가 말하기를 ‘ 무엇인가를 잘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즉 꿈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원하는 것을 끌어들여, 나의 내면을 그것과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하면 바라는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또 신부님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꿈을 시각화(visualization) 하라”고 하신다. 그러기 위해서는 꿈의 빈도 (frequency), 꿈의 선명도 (vividness), 꿈의 강도 (intensity), 꿈의 지속시간 (duration)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평생 웃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사람이 70살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잠자는 시간은 23년, 양치질하는데 2년, 일하는데 26년, 화장실에서 보내는데 1년, 거울 보는데 1년반, 교통시간 6년, 누구를 기다리는데 3년, 신문 보는데 2년반, 텔레비젼 보는데 4년, 그런 반면에 웃는 시간은 하루에 10번 웃는다고 했을 때 소요되는 시간은 5분, 평생 합하여도 고작 80일 정도이다. 첫인상은 3초안에 결정된다. 심리학자 알버트 메라비언은 커뮤니케이션에서 말하는 내용이 7%, 외모, 표정, 태도 등 시각적 요소가 55%, 청각적 요소가 38%를 차지한다고 한다. 결국 웃움과 웃는 얼굴이 첫만남의 93%를 차지하는 것이다. 카톨릭 영성가 존 포엘은 자신의 거울 앞에 “ 당신은 오늘 당신의 행복을 책임질 사람의 얼굴을 보고 계십니다.”라는 문구를 붙여 놓는다고 했다.
새해에는 여러분 주변의 <작은 것들>에게서 <작은 의미>를 찾으시고, 그 <작은 감사>에 많이 웃으시는 한해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그분의 손을 놓치마세요. 그래서 제가 색소폰으로 즐겨부르는 <You raise me up>의 가사처럼 그분의 은혜를 많이 체험하시는 한해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고장난 미국 자본주의 (1/8/2013)
우리 한인들이 사는 이곳은 미국이다. 우리의 국적이 미국이든, 한국이든 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땅, 미국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아니 이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 한인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SBS 특집 기획물 <최후의 자본주의> 4부작을 보면 34개 OECD 국가 중에서 미국의 빈곤율은 4위이다. 미국의 아동 빈곤율은 21.9%이다. 5명의 미국 아동중에 1명이 굶주린다는 것이다. 믿을 수 있는가. 그 아이들의 부모는 밀입국한 빈민국 민족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엿한 직장인이었던 미국 중산층들이다. 직장을 잃고 재취업이 안되니 집을 빼앗기고 거리로 나앉게 된 전형적인 미국 사람들이다. 미국인 45명중 1명은 집이 없어서 자동차나 길거리에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미국인 6명중에 1명은 의료보험이 없다. 많은 한인들도 의료보험이 없다. 개인파산의 64%는 의료비가 주된 원인으로 파산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미국의 1%에 해당하는 부자들은 미국 전체 재산의 43%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1% 부자가 미국 소득의 증가분 중 93%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미 미국의 자본주의는 소수 1%를 위한 돈의 제국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는 세계경제 2위국인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인 1%의 부자가 중국 전체 재산의 41%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미 중국은 전세계 사치품의 28%를 소비하는 거대 소비국가가 되었다. 이제 중국은 인민을 위한 공산국가가 아니라, 전형적인 부패한 자본국가가 되었다. 론폴 텍사스 하원의원이나 뉴트 깅그리치 미 하원의원등은 “의료보험이 없거나 가난하여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국가의 책임이아니라, 그들이 선택한 자유이며 그들의 책임이다.”라고 강변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민주국가이며, 누구를 위한 정치인이며, 누구를 위한 자본주의인가.
근대 자본주의가 시작된 1500년대 이전에는 군주제도로 1%의 군주와 귀족을 위해 99%의 평민과 농노들의 희생을 강요당했다면, 18세기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거시경제학의 창시자 케인즈와 1970년대의 신자유주의 거두 하이네크. 아담스미스의 국부론과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수정자본주의와 소비 자본주의, 그리고 현대 금융 자본주의는 시대적 변천이 있었을 뿐, 결국은 1%의 자본가 계급을 위하여, 노동력을 바탕으로 하는 노동자와 서민 계급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1%와 99%간에 최소한의 공존과 상생을 거부한다. 미국도 빚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미국 7대,8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 시절인1835년 1월 8일이 미국 부채가 제로이던 유일한 시점이다.
미국은 금본위제도를 폐지하고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1970년대부터 달러를 마구잡이로 찍어내어 빚을 늘려왔다. 미국의 빚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시기는 21세기 들어와서부터이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찍어낸 엄청난 달러는 고스란히 미국 부자 1%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채무불능 상태의 그 천문학적 빚은 고스란히 99%의 미국 국민들이 떠안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1% 부자들은 앞으로도 미국이 더 큰 빚을 지게 하여, 손쉬운 금융 이득으로 서민들을 착취할 것이다. 정치가들도 지식층들도 모두 그들의 지배를 받는다. 우리 서민은 미국 국가 부채의 볼모인 셈이다. 서민들이 가지고 있는 집이나 부동산, 사업체도 명의만 여러분의 재산일 뿐, 실소유주는 은행 즉 그들의 재산이다. 최근 30년동안 미국의 서민들은 스스로 집과 부동산으로 빚을 얻어서 그 빚으로 잘 먹고 잘 살아온 셈이다. 향후에도 그럴것이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반면에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꿈같은 나라도 있다. 솔로몬 제도의 <아루타>라는 섬이 소개되었다. 그 섬은 3천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공동 협동체로 생존하지만 그 섬은 지상낙원이 아니다. 섬의 크기는 직경 2Km에 불과하며, 배를 정착할 수도 없고, 일년에도 수차례의 태풍을 견뎌야 하는 열악한 조건의 섬이다. 하지만 그 섬이 파라다이스가 된 것은 똑같은 생산과 재분배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아로파 Aropa>라는 제도가 있는데 우리가 책에서만 배운 <나눔의 공동체, 협동의 공동체> 생활을 실천하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주민이 뽑은 리더가 있는데 <빅맨 Big Man> 이라고 불리운다. 그의 역활은 먼저 집이 없는 사람에게 지역주민들이 공동으로 집을 지어준다. 그리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거나 농작물을 수확하거나 주민 모두가 공동으로 일하며, 가족수에 따라 균등하게 나눈다. 주민의 아픔도 나누어 분담한다. 이 분배 역할을 족장인 빅맨이 하는 것이다. 개인 소유는 인정하되, 공동 생산과 공동 분배를 원칙으로 하므로 싸우거나 다투는 일이 없다. 이들은 수천년을 살아오면서 주민 모두가 공존하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미국에 사는 우리는 그들보다 분명 더 많은 문명의 이기를 받고 산다. 집, 자동차, 컴퓨터, 인터넷, 풍부한 먹거리, 편안한 의식주, 각종 의료혜택, 엄청난 정보와 지식, 등등 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것을 누리며 사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때, 돈을 쫓아서 살고 있는 우리는 반대급부로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사는게 아닐까. 서로를 사랑할 수 없는 영혼, 머리부터 발끝까지 돈의 색깔로 물들어버린 영혼, 끝없는 욕망의 화신, 육신은 육신대로 빚지고 영혼은 영혼대로 빚진, 초라하고 불쌍한 사람들이라는걸 부인할 수 가 없다. 나만의 자격지심일까. 이 고장난 자본주의에서 절벽을 향해 질주하는 미친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면, 그분은 진실로 무엇이라 하실까….
인생의 무기수 (1/14/2013)
우리의 인생은 감옥인가, 놀이동산인가. 이승이 놀이동산이라면 어느 시인의 시귀처럼 한세월 잘 놀다 가면 그것으로 된 일이다. 물론 놀이도 놀다보면 지겹고 짜증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이승이 감옥이라면 우리는 수감중인 죄인이다. 죄인이라는 단어는 교회다니는 사람이라면 지겹도록(?) 듣고 말하는 단어이다. 대부분의 기도가 첫 문장이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로 시작하니 말이다.정말 스스로를 죄인라고 자복해서 하는 말인지, 잘난 남들도 죄인이라고 하니 별로 잘나지 못한 나도 죄인이어야 할 것 같은 공동 범죄자 의식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는 저들보다는 죄가 가볍다고 생각하는 <죄수 이론>의 이질성을 항변할 것이다. 또 사람들은 죄인임을 인정했으면 다시는 죄를 반복해서 지어서는 안되는데, 허구한 날 아니 죽는 날까지 유사한 죄를 반복해서 짓고 또 반복해서 용서해달라고 한다. 이런 죄인은 살려, 죽여. 그래서 십자가의 보혈로 모든 인간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주님은 도저히 불편하시어 보혜사 성령님을 이승에 보내셨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교도소에 근무하는 교도관들이나 교도정책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갇두어둔 죄인이 스스로 죄인이라 자복하고 낮은 곳으로 엎드려져야 작은 일에도 감사하게 되고 더 나아가 범사에 감사하게 될 것이라는 정책에는 수긍이 간다. 그래도 죄인이라는 자복은 진심에서 울어나 가끔해야 진정성이 있지, 매순간마다 습관적으로 무슨 죄인지도 모르고 하는 자복은 강제적이고 의무적이서 어딘지 모르게 진정성이 결여된 느낌이다. 예수님은 <사랑하라> 하셨으니 모든 기도 내용을 <사랑>으로만 해도 넘침이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아무튼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고 인정하더라도 나의 형량은 몇년일까가 궁금해진다. 나는 유기수인가, 무기수인가. 한세월을 살다보면 즐거운 날도 있었고 괴로운 날들도 있었을 것이다. 즐거울 때는 이승이 살만한 세상이었다가도, 어느 한 순간 괴로움이 닥치면 그만 종치고 막내리고 싶은 심정이다. 어떤 날은 아침에 눈을 뜨지 말고 이대로 조용히 불려 갔으면 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형량을 죄수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관인 하나님이 정하시니 어떻게 해 볼 여지도 없다. 그러면 나는 유기수이기를 바라는가, 무기수이기를 바라는가. 만약 사람들이 자신의 형량을 알고 있다면 아마 난리가 날 것이다. 땡빚을 내서라도 고액의 유대인 변호사를 고용한다, 법정에 아는 인맥을 동원한다, 뒷돈을 들이민다, 돈봉투가 오고가고 이를 소개하는 브로커가 등장하고, 법정에서 일하는 천사들도 검은 돈의 유혹에 못이겨 순식간에 죄인이 될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하나님이 각자의 형량을 비밀에 부치셨는지도 모르겠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처음처럼>의 저자인 신영복 교수는 어느 작가가 “20년 옥중 생활동안 누가 읽어줄 사람도 없는데 쉬지않고 옥중 서간문을 쓴 이유는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이런 말을 한다. “유기수와 무기수의 차이점은 단기수는 징역이 빨리 끝날수록 좋기 때문에 징역살이에 아무런의미를 두지 않는다. 빨리 출소하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러나 무기수는 출소날짜가 없기 때문에 하루하루 뭔가 살아갈 의미가 있어야 한다. 인생도 굉장히 절망적인 상황이 또 다른 인생의 새로운 시각을 넓혀 주기도 한다. 삶은 목적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과정으로 사는 것이다. 목적에 의해 과정이 생략된 삶은 의미가 없다. 비록 목적을 이루었다고 하더러도 그 과정의 젊은 기쁜 날들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 유기수는 출소라는 목적이 정해져 있다. 따라서 교도소의 삶을 참고 견딜 뿐이다. 하지만 무기수는 출소가 정해져 있지 않다. 그저 교도소에서 버틸수 있는한 버텨야 한다. 그곳이 무기수의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김정운 교수는 <남자의 물건>에서 이렇게 해석한다. “우리는 <여기, 현재>를 사는 것이다, 미래를 사는 것이 아니다. 먹을 가는 마음과 같다. 먹을 빨리 갈아서 글씨를 빨리 쓰겠다고 하면 좋은 글을 쓸 수가 없다. 신영복 교수는 독특한 자신만의 명상법이 있다. <추체험> 즉 과거 자신이 겪었던 일을 하나하나 반추해서 되돌리는 방법이다. 옛날 노트는 한장을 잘못 썼다고 뜯어내면 뒷쪽의 다른 한장도 같이 뜯겨진다. <처음처럼>은 뜯어내는게 아니라, 뭔가 그 다음장을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쓰는 것, 그래서 글씨가 좀 잘못 되었더라도 뜯어내지 않고 다시 시작함으로써 결국 노트를 온전히 갖게 되는 마음이 필요하다. 산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것은 결코 뜯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 늘 이제 다시 시작하는 마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하루가 저무는 추운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이 감옥이라면 <무기수>이기를 소망한다. 일등만 아는 더러운 세상, 부자들이 다 해먹는 부패한 세상, 잘난자만 큰소리치는 시끄러운 세상이라고 욕하면서 천국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유기수>는 되기 싫다. 주시는 자도 그분이시고 거두어 가시는 자도 그분이시라면 내가 천국을 갈지 지옥을 갈지 결정하시는 자도 그분이시리라. 목사님도 신부님도 스님도 천국갈지 지옥갈지 자신의 갈 길도 모르는데, 나의 갈길까지 갑론을박할 수야 있겠는가. 부르시는 그날까지 이 감옥에 갇혀 주어진 내 작은 공간이나마 감사하며 청소하고 깨끗하게 정리한 다음, 매일 기도하고 그분과 대화하고 창 밖에 보이는 자연을 벗삼아 옥중일기를 쓰다보면 그분이 부르실 날이 있겠지. 여러분도 즐겁고 의미있는 옥중 생활이 되시길 소망한다. 혹시나 하는 노파심은 요즘 같은 힘든 이민 생활에 웃자고 한 이야기를 죽어라고 반론을 재기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나는 결코 잘난 사람이 아니니까..
업장 소멸 (1/21/2013)
언젠가 TV에서 ‘배우기 쉬운 마술’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때 마술사가 한 말이 기억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이 본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이다. 이것이 마술의 기본 원리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마술사가 나를 속인 것이 아니라, 내가 마술사의 행동을 내가 믿고 싶은대로 보았다는 것이다. 즉 내가 나에게 속은 것이다. 흔히들 기독교를 <관계신앙>이라고 한다. 관계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인 <수직적 관계>와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인 <수평적 관계>로 구성된 십자가 형상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관계를 맺었다 풀었다 한다. 만나고 헤어짐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중 대부분의 관계가 <착각 속의 관계>인지도 모른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다.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다. 그 믿음이 깨어질 때 화를 내고 분노하며 마침내는 등을 돌리고 원수관계까지가 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던 하나님이 아니고, 내가 생각하던 아내가 아니고, 내가 생각하던 자식이 아니고, 내가 생각하던 목사님이나 교우가 아닐 때 상처를 받는다. 내가 상대방보다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일수록, 나와 더 가까운 사이일수록 그 배신감은 더 깊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은 더욱 외로워지는 지도 모른다. 외로움은 산 속에 혼자 있다고 외롭고, 사람들과 어울려 잡다한 관계를 많이 맺는다고 덜 외로운 것이 아닐 것이다. 내 마음이 하나님과 세상 사람들을 향해 열려있느냐 닫혀있는냐의 차이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랑한다는 상대방의 모습은 허상인는지 모른다. 내가 생각했던 상대방의 모습은 내가 만들어낸 내 생각 속에서만 존재한다. 상대방은 변한 것이 없다. 상대방이 변하더라도 나를 위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변할 뿐이다. 우리의 생각과 믿음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다. 낙엽이나 달을 보고 슬퍼하는 것은 낙엽이나 달 자체가 슬픈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나의 사연으로 인해 내가 슬프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달과 낙엽은 엄밀히 말해 나와 무관한 관계다. 죽어도 좋을만큼의 사랑했던 그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의 착각이 다른 형태로 변한 것이다. 그 교회의 목사가 싫어서, 교인들이 싫어서 교회를 떠나는 것은 그들의 잘못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나의 착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상대방은 변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달과 낙엽처럼 독립체로 인정해야 한다. 상대방은 더하고 뺄 성질이 아니다. 내가 변해야 한다. 사랑은 내가 하는 것이다. 내가 싫으면 내가 떠나면 된다. 세상에는 여자도 많고, 교회도 많고 성직자도 많다. 하지만 내 마음을 맞춰줄 교회나 성직자는 없다. 또 그런 여자도 없다. 내몸같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가 바로 성자다. 그게 말처럼 쉬웠다면 그분께서 하나뿐인 목숨을 포기하면서 까지 말씀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우리는 내가 상대를 사랑한만큼 상대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한다. 아니 내가 사랑한 만큼의 몇배를 더 사랑받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한 사랑을 <집착>이라고 한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순수한 <관심>에서 시작하지만 내 사랑의 <투자기회 비용>이 많아질수록 관심은 <집착>으로 변한다. 그래서 서로가 힘들어진다. 모든 <착각>과 <집착>은 나의 <욕심>에서 시작하여 <욕심>으로 끝이 난다. 혹자는 부부가 평생을 함께 사는 이유를 서로 끝까지 서로의 <욕심>을 속이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서로가 착각하기 때문에 평생을 산다는 것이다. 지나치고도 슬픈 비약이다.
하지만 살면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함은 누구나의 바램일 것이다. 불교에서는 살아온 흔적을 <업>이라고도 하고 <카르마>라고도 한다. 요즘 <즉문즉설>로 세간에 자주 회자되는 법륜스님은 <스님의 주례사>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인간은 흔적을 남기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우리가 말하고 행동한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쌓이게 되는데 이렇게 누적된 것이 <업>, 즉 <카르마>이다. 흔히들 습관이라고도 한다. 몸과 마음에 베인 습관,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 무의식적인 습관들이 있다. 무의식적으로 행동했다는 것은 행동하는 순간 무지했다는 것이며, 습관적으로 했다는 것은 내가 깨어서 내 의지를 갖고 행동한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 운명의 흐름에 따라 떠내려가는 존재를 중생이라고 한다. 따라서 카르마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사는 인생을 ‘육도를 윤회’한다고 한다. 카르마가 나의 주인이 아니라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이다.
또 흔히들 <업장소멸>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생에서 그 사람을 미워하고 <관계>가 좋지 않음은 전생의 <인연>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며, 전생이 이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 이생에서 좋지 않는 인연으로 끝나면 이 악연은 내생의 악연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즉 지금 상대방과의 <관계>가 좋지 않게 끝난다면 전생에 <악연>이 있었음은 물론이거니와, 내생에도 그 사람과 <악연>으로 이어진다니 <삼생>에 걸친 <인과응보>인 셈이다. 그러니 사람과의 관계가 헤어질 땐 헤어지더라도 <좋은 관계>를 맺고 헤어져야지 <원쑤관계>로 헤어지면 내생에 <악연>으로 또 지겹게 만나야 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즉 너와 나의 관계가 악연이냐, 선연이야 하는 것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삼생의 인연을 악연 혹은 선연으로 만들수 있는 것이다. 내가 먼저 상대에 대한 모든 미움과 악연을 풀게 되면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에게도 변화가 오게 되는데,이것이 삼생의 업을 녹이는 이치라는 것이다.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썪은 생선을 싼 종이에서는 썪은 냄새가 나듯이 나의 삶에 어떤 냄새가 나느냐는 온전히 나와 주변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몫인가보다.
부창 부수 (1/28/2013)
나의 Buyer손님 중에 언제 만나도 반가운 사람이 있다. 일년에 만나봐야 두세번이고, 만남도 내 사무실에서 차 한잔 나누는 사이지만, 매일 만나는 사이처럼 정겹기만 하다. 항상 보잘 것 없는 나의 칼럼에 대해 격려해주고 세상 덕담을 아낌없이 해 주는 <선한 사람>이다.
그분과 만남은 몇년전인가 가게를 사기 위해 나를 찾은 것으로 시작된다. 마음에 드는 40만불 규모의 가게를 선정해서 계약을 할려고 자금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같은 교인이고 큰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며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가게를 살 때까지 몇달만 가지고 있는 돈을 빌려달라고 사정하는 통에 아내는 대부분의 돈을 남편 몰래 잠시 빌려 주었다. 아내 입장에서야 그냥 가지고 있느니 친구도 도와줄겸, 조금의 이자도 주겠다고 하니 별 망설임 없이 빌려준 것이다. 그런데 막상 가게를 사기 위해 돈을 돌려달라고 하자 돈이 없다고 한푼도 갚지 않는 것이다. 이미 채무자의 가게는 다른 사람의 명의로 바뀌었고 당사자들은 야반도주를 했는가보다. 결국 수중에 남은 돈이 3만불인가 밖에 남지않았으니 가게 사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러면 통상 부부싸움이 일어나고 사니 못사니, 할 말 못할 말 다 퍼붓게 되고 결국 화병으로 드러눕거나 헤어지는 극한 상황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천사표>다. 돈은 다시 벌면 되니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고 오로지 아내가 그로 인해 받은 상처가 마음의 병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채무자나 그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이다. 내가 만나본 고수 중에 고수였다. 그런 어느날 Seller가 지병으로 급히 팔아야 하는 좋은 가게가 나온 것이다. 다운 페이먼트를 20%만 하면 나머지는 오너 융자를 해 주겠다는 것이다. 급히 그분께 연락을 하니 남아있던 3만불도 얼마전 한국의 노모가 편찮으셔서 몽땅 송금해 드렸기에, 지금은 완전 빈털털이라는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3만불이라는 돈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그 부부의 전재산인데 그 돈을 몽땅 준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인가. 남편도 남편이지만 부인도 대단한 사람이다. 미국 땅에서 남의 집 주급생활하여 3만불을 모은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같은 서민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더 걸작이다. 돈이 한푼도 없으니까 부부가 모두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부부 둘이서 조그만 아파트에서 사니 시간도 마음도 그렇게 여유가 생기더라는 것이다. 부부가 열심히 일하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봉사활동 열심히 하고, 힘들어 하는 이웃들 한번 더 찾아가게 되고, 가진게 없으니 부부싸움 할 일도 없단다. 아프면 안되니까 부부 서로의 건강도 챙기게 되고 큰소리 칠 일도 없으니, 항상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창부수다.
부창부수 (夫唱婦隨)는 관윤자라는 책 <삼극편>에 나오는 말이다. “천하의 이치는 남편이 노래를 부르면 아내도 따라서 하고, 수소가 달리면 암소는 뒤쫓는다. 새 수컷이 울면 암컷이 응하니 이런 까닭으로 성인이 언행을 정하고 현인이 그것을 바로 잡는다.” 이는 여필종부 (女必從夫)와는 다르다. 아내가 무조건 남편의 뜻에 복종하는 것은 아니다. 아내에게는 노래를 따라 할 것이냐, 아니냐의 선택의 자유가 있다. 부창부수는 부부의 <배려>가 전제되어야 한다. 남편의 위상은 스스로 지킨다고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받쳐주고 인정해 주어야 가능하다. 또한 결혼은 구속이 아니다. 내가 선택한 사랑이기에 내가 사랑하는 것일 뿐이다.
언젠가 김정운 교수의 책제목처럼 <나는 아내와 결혼한 것을 후회하는가>를 몇몇 교인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결혼을 <가끔 후회하는> 남편과 <아주 아주 가끔 만족하는> 아내 이야기를 유도할려고 한 질문인데 거기 모인 교인들은 거룩하게도(?) 후회한 적이 한번도 없다는 것이다. 마치 딴세상 사람들 같았다. 그도 그럴것이 한명의 여자만을 만나서 그 여자와 결혼했고 세상물정 모를 때 이민와서 죽어라 일만 하면서 그 여자와만 살아봤기 때문에 다른 여자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것이다. 하기야 싫고 좋음도 비교의 대상이 있어야 평가를 할 수 있다는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들 부부처럼 전재산을 잃고도 서로의 신뢰가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더 사랑하는 관계가 되었다면 하나님은 이들 부부에게 분명 <천사의 날개>를 달아주셨는지도 모른다.
<천사의 날개>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무서운 맹수가 쫓아와서 도망을 친다.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고 피가 흐른다.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애원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묵묵부답이시다. 또 일어나 도망을 친다. 도망치다가 천길 낭떠러지에 서게 되었다. 이제 한발짝만 더 나아가면 천길 낭떠리지로 떨어지게 된다. 하나님, 제발 살려달라고, 살려주시면 무슨 일이든 시키는대로 하겠다고 애원을 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하나님은 묵묵부답이시다. 결국 천길 낭떠리지로 떨어지면서 정신을 잃고 만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니 나에게는 날개가 있어 창공을 훨훨 날고 있었다.” <날개>는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셨는데 우리가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날개>는 인간의 진정한 <자유>인가. 아무쪼록 두분 모두 건강하시고 더욱더 사랑하는 부부가 되시길 소망한다. 또 혹시 이런 부부에게 사업체를 No Down payment &장기융자로 넘기실 분은 연락주시기 바란다. 참고로 이분들은 세탁소 전문가들이며, 미리 이 분들께 양해를 구하지 않고 글을 씀을 해량하여 주시기 바란다.
지천명 (知天命) (02/05/2013)
사무실 창 밖으로 눈이 펑펑 내린다. 저 소담스런 눈들을 바라보며 이민온 내 나이또래의 오,육십대 한국 남자들을 생각한다. 이민온지 얼마가 되었던간에, 무엇을 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던간에 이제는 한번쯤 멈추어서 나와 내 주변들을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멈추어야 비로소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이 겨울처럼 눈이 내리고 바람이 더세게 부는 날은 외출을 삼가고 모처럼의 뜨거운 차 한잔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워 할 수 있어서 좋다. 다분히 수다스럽지도 않고, 잘난체 호들갑을 떨지 않아서 좋고, 내가 아니면 가족들이 큰일날 것처럼 유세를 떨지 않아서도 좋다. 어제가 내일같은 나날들이지만 그래도 무엇이 그리 바쁜지 매일 허둥대며 살아온 세월이다. 육신은 여기저기 병들고 늙어가지만 살아가는 사고방식은 삼,사십대나 별반 나아진게 없다. 아니 어쩌면 먹고 사는데 이제는 <적당히>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뜨와리를 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도 적당히, 일도 적당히, 믿음 생활도 적당히, 교제도 적당히, 하루의 모든 일도 적당히 처리된다. 나서지도 말고 튀지도 말고, 그렇다고 관계 속에서 낙오되거나 뒤쳐지지도 말고 그저 그렇게 사는데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이를 <안정된 삶>이라 자위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삶에는 <열정>이 없고 <기쁨>이 절감된다. <목표>가 흐릿하다. 남은 세월을 먹기 위해 살 것인가, 죽기 위해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
공자는 말씀하시길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세웠고, 서른 살에 자립하였고, 사십에는 의혹되지 않았으며 오십대에는 천명(天命)을 알았고, 육십에는 귀가 순해졌으며, 칠십에는 마음대로 해도 경우를 넘어서지 않았노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공자가 열다섯에 배움에 둔 <뜻>이란 목숨을 바칠 각오하고 배움에 투신했다는 것이다. 우리 또래의 세대도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치열한 입시경쟁에 시달린 세대다. 12년동안 매주 월요일마다 시험을 본다고 해서 일명 <월요시험> 세대이고,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시험을 쳐서 들어가야 했고, 전국 예비고사와 대학 입시를 죽기살기로 치렀던 세대이며, 열심히 공부에 일로매진한 청소년 시절이었다. 이십대에는 대학생활과 군대 의무 복무로 청년시절을 보냈다. 이민온 한국남자들 대부분은 전쟁을 대비한 특수 훈련을 받은 군인 예비역들이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 남자들이 이런 생존 훈련을 받았단 말인가. 그 세월은 그냥 소비되고 쓰레기처럼 버려진 세월이 아니다. 한국남자들은 국가와 가족들을 목숨처럼, 본능처럼 지키는 훈련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한국 남편들이 다른 피부색의 남자들보다 업신여김을 당해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표현이 서툴다고 진심마져 왜곡된다면 어찌 사내대장부가 기를 펴고 목숨을 걸어 가족을 지키겠는가.
공자는 자기 인생의 두 번째 단계를 이립(而立), 곧 “서른 살에 자립했다”고 했으니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는 뜻이고, 또는 자기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내 나이 삼십대에 대기업의 과장, 부장을 지냈으니 어느 조직에서나 가장 전문가 대접을 받던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40대에 공자가 획득했다는 불혹의 경지란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되었음’을 말한다. 거꾸로 보면 30대에 한 분야의 전문가로 자립하긴 했으나, 그동안 자기 일과 삶에 대해 의심과 회의에 시달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일을 했더라면 더 좋은 성과를 내지 않았을까, 또는 다른 일에 재능이 더 있었을 수 있는데 하는 미심쩍은 마음가짐이다. 프루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나는 40대에 들어서자마자 내 길은 내가 원하는 내 사업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퇴사와 동시에 시작했다. 만 10년을 한국 총판 사업과 온라인 교육사업에 올인했다. 비록 예상치 못한 IMF로 빈털털이가 되었지만 후회도 미련도 없다. 나는 확신을가지고 내 모든 걸 걸고 했기 때문이다.
공자는 50대에 또 한 번 질적 도약을 요구하는데 그것을 <지천명>이라고 일렀다. 여기 ‘천명을 알다’(知天命)란 그동안 나의 일, 혹은 나의 삶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더라는 통렬한 깨침이다. 40대의 불혹에서 이 일이 나의 길임을 확신했는데, 사업에 실패하고나서야 내가 살아온 길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40대 후반 어느 날, 나는 미국 이민을 결심하고 지금까지 10년이 넘게 미국땅에서 살아오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왜 내가 이 먼 이국 땅에 와서야 그분이 나를 선택하신걸까. 이것이 나의 주체적, 자율적 선택이 아니라 내 배후에 어떤 ‘타력’이 있어, 그분에 의해 선택된 것임을, 그분의 역사(役事)에 내가 쓰일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설레임이다. 나는 내 인생을 공자의 말씀대로 10년 단위로 변화를 추구했다. 10대 청소년 시절, 20대 청년시절, 30대 대기업시절, 40대 사업가 시절, 50대 이민 시절 모두 내가 선택한 것이고 내가 결정했다. 그러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또 그럴 생각도 추호도 없다. 하지만 지나온 세월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내가 성취의 주체가 아니라 기껏 도구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태 ‘내가 무엇을 한다’라고 믿었던 능동태가, 사실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무엇을 하게 되었다’는 수동태임을 깨닫는 순간이라고 할까. 그렇다면 <지천명>이란 곧 ‘신의 뜻’을 깨닫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곧 육십인데 그분의 뜻을 올바로 알아, 실행하는 온전한 삶을 살아야 할텐데, 걱정은 걱정이다…
팝콘과 영화 <전편> (2/11/2013)
지난주에 친구 부부와 함께 <레미제라블>을 보러 영화관에 갔다. 이민와서 영화관에 간 것은 두세번에 불과한 것 같다. 5년 전인가 <아서왕>이라는 영화를 보고서는 처음 가는 것이니 실로 오랜만이라 할 수 있다. 요즈음은 대부분의 영화를 인터넷을 통해 보며, 자막까지 한국어로 되어 있어 굳히 영화관을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레미제라블>같은 대작은 영화관에서 봐야 제격이라는 아내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 아내에게 조건을 제시했다. 영화관에 가는 대신에 <팝콘과 콜라>를 사주는 조건이었다. 아내와 연애할 때에는 서울의 단성사, 피카데리, 중앙극장 등을 자주 갔던 기억이 나고 그때마다 팝콘과 콜라를 사서 함께 먹으며 영화보던 기억이 새롭기 때문이다. 또 근자에 들어와 아내는 팝콘이나 콜라 같은 음식을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므로 실로 몇년만에 먹어보는 팝콘인지 영화내용만큼이나 감회가 새로웠다. 또 친구부부와 함께 영화를 보러가니 연애시절 친구들과 더블 데이트하는 느낌도 나고 영화 후반부에는 눈물을 찔금거리는 아내들의 모습을 보니 소녀들처럼 귀여운 느낌도 들어 가끔 영화관을 찾는 것도 기분전환으로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레미제라블>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프랑스의 역사와 시대적 배경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200여년전의 프랑스는 ‘실패한 혁명’과 ‘가난한 민중들의 비참한 현실’을 바탕으로 빅토르 위고는 글로 고발한다. 영화는 장발장이 감옥을 출소하는 1816년부터 시작한다. 굶주린 조카를 위해 빵 한조각을 훔쳤다고 19년의 감옥 생활을 한다는 자체가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장발장은 정확히 감옥에 간 것이 아니라 ‘노역형‘에 처해진 것이었다. 당시 유럽에서 범죄자들은 일정 기간 노예가 돼서 일하는 형벌을 받았다. 대부분 지중해 갤리선에서 노 젓는 일을 하는 수부(水夫)로 일했다. 말 그대로 노예였다. 음식과 의복은 형편없었고, 매질도 다반사였다. 혁명으로 왕은 사라졌지만 전근대적 형벌제도는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오프닝 테마곡으로 <Look Down>이 흘러나오면서 그 시대 민중의 비참함을 묵시한다. “고개 숙여, 하늘에는 신이 없고, 땅에는 자비가 없고, 나는 죄가 없네. 주님은 관심도 없어. 고개 숙여. 모두 다 널 잊었어. 넌 영원한 노예일 뿐” 이 가사처럼 현대의 서민들은 노예의 생활에서 자유로운 것일까. 미국의 오바바 대통령은 자신의 학자금 융자 $8만불을 불과 몇년전인 2004년, 만 43세에서야 모두 갚았다고 고백한다. 미국의 대통령이 이정도면 일반 서민들은 어떨까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집 모게지, 자동차 할부금, 자녀 학자금 융자, 가게 대출금, 노후 연금, 카드 할부금, 의료보험금, 긱종 사고와 질병으로 인한 부채 할부금 등등, 아마도 죽는 날까지 빚에서 헤어나기가 어렵다. 공교롭게도 <모게지, Mortgage>의 어원은 ‘영원한 노예의 족쇄’라는 걸 안다면 섬찍하기까지 하다. 또한 세계 최고 부자나라의 미국에 사는 서민이 이정도면 빈민국이나 개발 도상국들의 서민들 고통은 오죽하겠는가.
프랑스 혁명은 19세기, 거의100년에 걸쳐 일어난다. 성공한 혁명만 3차례일 뿐, 그보다 셀수도 없는 수많은 유혈봉기가 일어났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항상 역사는 반복된다. 가난과 부패와 타락과 강권 통치에 견디지 못해 수많은 젊은이들과 서민들이 피의 댓가로 혁명을 일으킨다. 그래서 근대화의 역사는 피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민주화도 그랬다. 하지만 또 다른 새로운 혁명세력이 기득권을 주장하면서 그들 역시 민중의 피를 빨아먹고 산다.
1789년 프랑스에서는 극심한 굶주림과 신분제에 대한 불만으로 혁명이 일어난다. 왕과 귀족들은 부패할만큼 부패하고 타락할만큼 타락한다. 프랑스 민중들은 국왕 루이 16세를 처형하고 ‘왕이 없는 나라‘, 즉 공화국을 선포한다. 이것이 흔히 알려져 있는 ‘프랑스 대혁명‘이다. 하지만 혁명 이후 프랑스는 굶주림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 큰 소용돌이에 빠진다. 오스트리아 등 이웃나라들은 자국으로 혁명이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 프랑스에 군대를 파견했고, 쫓겨난 왕족과 귀족들이 이들과 결탁했다. 로베스피에르 등 혁명지도부는 외국군과 내부의 반혁명 세력과 전쟁을 벌이면서 한편으로 내부 권력다툼에 돌입한다. 사회는 계속 혼란 상태로 머물렀으며, 경제는 엉망이 됐다. 혁명지도부 중 가장 과격파였던 로베스피에르는 1793년 정권을 장악해 ‘최고가격제‘를 실시해 일시적으로 물가안정을 이뤘으나, 1년 동안 1만명 이상을 처형하는 등 지나친 공포 분위기 조성으로 2년 만에 실각한다. 최고가격제는 폐지되고 다시 물가는 미친듯이 뛰어올랐다. 바로 그 이듬해인 1796년 장발장은 조카를 위해 빵을 훔치다 체포된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도 7년이 지난 세월이다.
프랑스의 혼란은 1799년 군인 출신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제1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비로소 일단락된다. 나폴레옹은 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로 이끌고 국내 반혁명 세력을 소탕하는 한편 토지분배법, 제도 정비, 초등교육 확립 등의 정책으로 사회를 안정시켰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통령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1804년 스스로 황제에 즉위, 반혁명 위협이 사라졌는데도 외국과 계속 전쟁을 벌였다.사람들이 점점 나폴레옹에게 지쳐가던 무렵, 그는 워털루 전쟁에서 패해 1815년 완전히 몰락한다. 이듬해 장발장이 출소한다. 영화는 커다란 범선을 도크에 끌어올리는 노예 (죄수)들의 합창으로 시작한다. 병들고 학대받아 지친 그들의 얼굴들을 보면 나와는 상관없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팝콘과 영화 <후편> (2/18/2013)
장발장은 출옥후 아사상태로 교회 문앞에서 쓰러진다. 마침 신부님이 발견하여 먹여주고 재워준다. 하지만 야밤에 교회 은식기들을 훔쳐 도망가다가 경찰들에게 붙잡힌다. 경찰이 신부님께 끌고와 대질시키지만 신부님은 장발장이 그 은식기들을 훔친 것이 아니라 신부님이 준 것이라며 감싸주고 그의 죄를 용서한다. 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고민하다 그 길로 뛰쳐나간다. 그는 1820년대 프랑스 북부 소도시 몽레이유에서 기업가로 변신해 크게 성공한다. 이 당시 공장을 소유한 <부르주아>들은 산업화 성장을 배경으로 예전의 귀족과 같은 대접을 받는다.
이 시대의 배경은 나폴레옹이 몰락한 이후 외국으로 망명했던 루이 16세 동생들이 돌아와 차례로 즉위한다. 오랜 전쟁에 지친 프랑스인들은 또다시 왕조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정권을 잡은 왕조 세력들은 점차 언론을 탄압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하자 1830년 7월에 다시 혁명을 일으키고 ‘루이 필리프’를 왕으로 추대한다. 이것이 <7월 혁명>이며 이 영화의 중간 부문이다. 이 시기에 프랑스는 직물공업과 금속공업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된다. 하지만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나 마찬가지 현상이지만, 성장의 시대에는 부자와 빈민자가 양극화된다. 국가 경제는 성장하지만 성장의 열매는 서민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1970년대 한국도 그러했고 현재의 중국도 그러하다. 이 영화에서도 도시가 산업화되면서 시골의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몰려든다. 갑자기 도시 인구는 팽창하고 주택, 복지 시설, 의식주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슬럼가에 사는 빈민들은 전염병이 돌 때마다 떼죽음을 당한다. 경제가 성장하면 인플레이로 물가가 급상승하는 반면, 임금은 턱없이 낮다. 빈민가의 남성들은 시름과 절망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여성들은 살아남기 위해 몸을 판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버려져 거리의 부랑아가 되고 노동을 착취당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여자 주인공이 일하는 직물공장에서 공장 관리자가 성추행을 하려 하자 항의하다가 쫓겨난다. 일자리는 구할 수 없고 먹을 것은 없으니 빈민가의 사창가에서 몸을 판다. 심지어 막 태어난 아이를 옆에 둔채 야적장의 버려진 마차 같은 곳에서 몸을 팔아야 하루를 먹고 사는 것이다. 그야말로 부르주아 시대이자, 거지와 부랑아, 알콜중독자와 매춘의 시대였다. 한국인의 기억에도 불과 사,오십년전의 이야기다. 청계노조, 구로 노조, 각 기차역마다의 창녀촌, 골방 같은 열악한 공장에서 하루 16시간씩 착취당하는 어린 여공들, 강남 개발 지역 등의 신흥 졸부들, 학생들의 반복되는 데모, 학교 가는 날보다 휴교하는 날이 많았던 대학시절, 포장 마차 곳곳에서 신음하며 밤세워 술로 달레던 젊은 혈기들. 독재와 공권력에 맞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고 체포되어 감옥에 가던 그런 세월이 반복된다. 이런 시대를 <바리케이드 시대>라고 한다.
그러면 지금은 무엇이 변했을까. 지금이라고 좋아졌을까. 가난한 자는 지금도 가난하고 소외받는 자는 지금도 소외받는다. 영화에서 처럼 한번 공장 문 밖으로 쫓겨나면 빈민촌의 나락으로 떨어져서 다시 회생되기가 힘들다. 사업에 한번 실패하여 빈털털이가 되면 다시 만회하기가 어렵다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가정을 팽개치고 회사에 올인하는 이유도 출세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다. 영화에 여주인공이 다니던 직물 공장 노동자들이 부르는 <At the end of the day> 가사 내용이다. “하루가 지나가면 또 하루가 늙어갈 뿐, 이것이 가난한 자들의 삶. 주머니에는 일주일을 버틸 돈만 있어. 뼈빠지게 일하지 않으면 굶주릴 수 밖에 없네.” 지금 여러분과 무엇이 다른가. 나는 이민 초기에 교민들이 생활하는 외형에 비해 어리어리한 집에서 살고 좋은 차를 몰고 다니니 모두가 잘 사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실상은 아니었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부자들은 산업 자유화, 경제 자유화, 무역 자유화 등 <부의 자유>를 외친다. 그러면서 가진 자들만의 <특혜와 보호>를 받는다. 하지만 빈민들은 <생존의 자유>를 외친다. 빵에 대한 자유, 평등에 대한 자유, 노동에 대한 정당한 자유, 언론과 표현에 대한 자유를 요구한다. 미국에 사는 여러분은 진정 자유로운가.
1835년부터 안정을 유지했던 루이 필리프 왕정은 1846년 대흉작으로 물가가 폭등하고,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다시 위기를 맞이한다. 마침내 1848년 2월, 노동자 계급이 중심이 돼, 루이 필리프 왕정을 끌어내리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2월 혁명> 이후 선포된 새로운 공화국에서는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나폴레옹 3세)로 즉위했다. 나폴레옹 3세가 물러난 이후 프랑스 급진 좌파 세력이 봉기해 파리 시청을 점령하고 자치정부 <파리 코뮌>을 결성한다. 하지만 파리 코뮌은 정부에 강제 진압돼 약 3만명이 처형당하는 처참한 결과로 끝났다. 파리 코뮌을 진압하고 출범한 ‘제3공화정‘에 가서야 프랑스는 민주공화정으로 정착한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거의 100년이 걸렸다.
“우리는 예전에 자유를 위해 싸웠는데 지금은 빵을 위해 싸우네. 평등이란 대체 무엇인가, 죽으면 평등해지지. 기회를 잡아라. 비바 프랑스!” < 가브로슈의 독백>이다. 장발장은 영화 시작부터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 Who am I?>를 외친다. 과연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미국 이민자인 우리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사는 인간인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내 마음 언저리에 맴돈다.
그나저나 곧 개봉될 <위대한 갯츠비>와 <안나 카레니나> 영화 예약이 아내로부터 벌써 접수되었다. 나야 <팝콘과 콜라>만 사주면 언제라도 그대의 요구에 Call !!
아내는 남편의 거울 (2/25/2013)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한다. 남편이 행복한지 아닌지는 아내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나름대로 행복하다고, 재미있게 산다고 자부하는데 아내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든가 우거지상이라면 그건 결코 진정한 행복이 아닐 것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먹고 사는 것이 주된 삶의 목표였다. 특히나 오육십대의 한국 남자들은 생존하기 위한 삶의 방식이 골수에 박힌 세대들이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의 새마을 노래가 삶 자체였고 목적이었다. 너무나도 찢어지게 가난한 부모 세대들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잘 살아보는 것이 ‘꿈에도 소원’이었다. 그래서 죽자고 공부해서 회사에 입사하면 몇년 뒤에 내가 어느 자리에 오를지, 그때는 월급이 얼마인지, 내 집을 장만하는데 몇년이 걸리는지 어느정도 보장이 되었고, 인생의 청사진이 가능하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그 시대의 생활 목표는 <근면과 성실>이었다. 그 슬로건은 비단 회사원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교훈, 급훈에도 흔히 등장하는 문구였다. 그래서 우리 세대의 성공 목표는 내집 한채 장만하고 회사에서 만기 정년 퇴직하고 아들 딸 대학 졸업시켜서 시집 장가 보내는 것이었으며, 그것으로 만족하면 행복하다고 하던 시절이었다.
30대 대기업 시절을 회상하면 조소를 금치 못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 일요일이나 국경일 같은 날도 집에 있으면 불안하다. 우리 세대는 약간의 여가 시간에 쉬고 있으면 괜한 죄책감으로 불안하고 미안해한다. 휴가를 가도 불안하다. 옆 부서가 며칠씩 야근을 하면 웬지 죄짓는 것 같아 할일이 없어도 휴일날 회사로 출근한다. 출근해 보면 유사한 놈들이 출근해 있다. 별다른 일이 있을리 만무하니 일을 만들어 하거나, 회사 부근의 당구장이나 생맥주 집에 모여 잡담을 나눈다. 휴일이어도 놀 줄을 모르고, 놀아도 회사 부근에서 놀아야 마음이 안정되는 집단주의 세대다. 그런 세대들이니 <노는 방법>에 대해서 무지한 것은 당연하다. 모이면 기꺼해야 고스톱, 포카 게임, 당구, 술, 노래방 등, 이런 부류의 <시간 죽이기> 밖에 아는 것이 없다. 그래도 그 당시 아내들의 얼굴에는 웃음과 만족이 있었다. 대부분의 아내들은 전업주부이었고, 돈 버는 사람은 남편이었으니 한달에 한번씩 두툼한 월급봉투를 안겨 주는 것만으로도 최상의 대접을 받았다. 아내는 자식들에게도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훈육하였다. 아버지가 가족들을 위해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심지어 일요일도 휴가도 반납(?)하고 <근면과 성실>로 회사에 나가시니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시절이었다. 또 남편의 어지간한 죄(?)도 탕감받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리고 365일을 회사 핑계로 아내와 마주칠 시간이 없었으므로 아내의 얼굴이 어두운지 밝은지 알 겨를도 없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인지도 모른다.
그런 남자들이 이민을 왔다. 시대는 20세기 산업화 시대에서 21세기 지식 정보화 시대로 바뀌었다. 먹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의 삶의 가치가 화두인 시대다. 이제는 아내도 함께 돈을 번다. 가게 문 열고부터 가게 문 닫는 시간까지 같이 있는다. 그리고 퇴근해서도 같이 있는다. 남들처럼 일요일이나 연휴를 맞이해도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놀아 보아야 더 잘 놀 수가 있고, 행복했었어야 더 행복해질 수 있다. 그래서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더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으며, 주변에 행복한 사람들이 많을수록 더 행복지는 것이다. <놀이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부부가 함께 노는 연습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이민와서도 똑같다. 눈뜨면 가게 나가고, 집에 들어오면 밥먹고 잔다. 기껏해야 건전한 삶을 살겠다며 남편은 눈비가 와도 골프장으로 나간다. 그리고 아내는 일주일 내내 교회에서 산다. 그렇게 수많은 날을 교회에서 살지만 얼굴은 항상 찌푸린 흐린 날씨다. 이제는 먹고 사는데 별 걱정이 없어도 놀줄을 모른다. 놀이 문화가 없다. 부부가 같이 즐기며 행복할 수 있는 <놀이 연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운 교수는 그의 저서 <노는만큼 성공한다>에서 “놀이는 비실재성, 내적동기, 과정 지향성, 자유와 선택, 즐거움. 다섯가지로 특징지울 수 있다. 이 특징은 놀듯이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기 때문이다. 이 다섯가지 특징의 질문들로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측정할 수 있다. 첫째, 나는 ‘여기, 지금’에 너무 매몰되어 있지 않은가? 또 다른 삶의 맥락에서 이뤄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은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둘째, 나는 ‘남의 돈을 따먹기’ 위해 일하는가? 내 삶은 무엇을 얻기 위한 삶인가, 내 삶은 내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는 삶인가? 세째, 내 삶이 추구하는 목적이 과연 타당한가? 목적으로 인해 과정의 모든 중요한 것을 생략해 버리며 사는것은 아닌가? 네째, 내 삶은 과연 내가 선택한 삶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한번이라도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보긴 했나? 다섯째, 하루하루가 과연 즐겁기는 한가? 하루에 도대체 몇시간이나 행복한 느낌으로 사는가?”
이런 질문에 과연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부부가 함께 즐기면서 노는 연습이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깨달아야 한다. 결국 나이가 들수록 내 옆에 남아있는 사람은 친구도 교회도 아닌 내 아내이기 때문이다. 아내와 함께 친구 만나고 교회나가고 여행가고 운동하고 산책하며 즐겁게 살 수는 있지만, 아내를 내버려두고 내 혼자 놀이를 즐긴다면 결국은 각 방을 쓰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내의 얼굴이 나의 거울이고, 내가 행복할려면 아내가 행복해야 한다???
백만송이 장미 (3/4/2013)
종교기자인 백성호씨가 쓴 <이제 마음이 보이네>를 읽다가 <백만송이 장미>라는 노래를 언급하는 내용이 있다. 이 노래는 1997년 심수봉씨가 러시아 노래를 직접 개사하여 부른 노래로 우리 귀에 익은 노래다. 나는 80년,90년대 대부분의 노래가 그러하듯이 TV나 술집에서 흘려들어서 가사 내용을 정확하게 모른다. 이 노래도 여느 젋은 남녀의 사랑 고백이거니 했다. 실제로 원곡은 라트비아의 <마리나가 준 인생>인데 이 가사는 강대국에 휘둘리는 라트비아의 슬픈 고난을 암시한 노래라고 한다. 그 원곡을 러시아 가수 알라 푸카초파가 <백만송이 장미>라는 곡으로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진다. 가사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데 사연은 이러하다. 그루지아의 어느 가난한 화가 (니코 피로시마니)가 살았다. 프랑스 출신의 아름다운 여배우가 순회공연차 이 지방을 오게 되는데, 단 하루를 머물게 된다. 그녀를 흠모한 이 화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 자신의 집, 그림들, 심지어 피까지 팔아서 장미 백만송이를 그녀가 묶고 있던 호텔 광장에 뿌린다. 다음날 아침 그 여배우는 그 놀라운 광경에 감탄을 하지만, 그것일 뿐 그녀는 떠나고 그 가난한 화가는 장미와 함께 남겨진다. 실화가 슬플 수도 애잔할 수도 있지만, 한마디로 정신나간 (?) 놈의 사랑 이야기다. 내 감정이 삭막한 것인가? 그는 실제로 물감을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여 그의 그림들은 물감이 옅은 색상들로 구성된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 노래의 가사 내용도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심수봉씨는 어떤 배경으로 지금의 가사를 쓰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그 내용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범상치 않다.
백성호기자는 서울 교구장인 김근상 주교의 사제서품 30주년 및 주교서품 2주년 기념예배에서 교인들이 부른 축가 <백만송이 장미>를 듣고 글을 쓴 것이다. 여기에 나의 사족을 달아본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 내가 세상에 나올떄 / 사랑을 주고 오라는 / 작은 음성 하나 들렸지” <나>라는 주체는 그분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그분의 명령에 의해 내가 살던 별나라에서 이 세상에 오게 된 것이다. 그 명령은 <사랑을 주고 오라>는 명령이다. 이건 권고도 아니고 부탁도 아닌, 명령인 것이다. 그럼 나는 우주 어느 별에서 살다가 온 것일까? 나의 출생지가 궁금해짐과 동시에 내 스스로 신비한 존재가 된다.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 백만 송이 피워 오라는 /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그분의 명령 내용이다. 장미 백만송이를 피워오는데 조건이 그 장미는 사랑을 할 때만 한 송이씩 피는 것이다. 그것도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피는 장미라니, 열송이도 아니고 백송이도 아니고 백만송이라니, 진실한 사랑을 백만번이나 하고 오라니, 해도 해도 너무 하신 것 아닌가. 그 사랑의 대상은 누구이며, 대체 몇사람을 사랑해야 하며, 한사람당 몇번의 진실된 사랑을 해야 가능한 숫자인가. 그런 사랑은 집착이 아니어야 한다. 집착하는 사랑은 움켜지길 좋아하고 놓치는 걸 두려워 한다. 그래서 사람의 사랑은 늘 기쁨의 바퀴와 두려움의 바퀴가 동시에 굴러간다. 그런 바퀴에는 사랑이 꽃피지 않는다. 그럼 꽃은 언제 필어날까?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떄 /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이건 그분의 두가지 계명중 하나가 아닌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요,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계명이라. (마태 22:35-40)” 여기서 몸과 목숨과 마음을 다하면 <나>라는 존재는 없게 된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오직 <나>라는 에고가 없을 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나를 이웃의 틀에 맞추지 않는다. 이웃을 내 틀에 맞출 뿐이다. 그러니 이웃은 여전히 이웃이고 나는 여전히 나일 뿐이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이다.” (마태 5장 44-45) 예수께서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마태5장 45-46)” 3절까지 계속되는 이 후렴구는 나의 심금을 울린다. <미워하는 마음없이>가 세번 반복된다.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하라>가 세번 반복 된다. 어렵고도 힘든 이야기다. 그런데 그래야 백만송이 장미가 피어나고 그래야 나의 별로 돌아갈 수가 있다고 한다. <좁은 문>이고 <좁은 길>이다. 목회자들이 말하는 <그분만 믿으면> 나의 별로 가는 <보편적 구원>이 아니라 <그 분을 믿고 그분 말씀대로 행하여야만> 갈 수 있는 <차별적 구원>이다. 나는 후자가 훨씬 덜 종교적이고 타당하고 합리적인 것 같다. 가기 힘드니까 하늘나라 가치도 더 높아보이는게 아닐까.
2절 가사도 장난이 아니다. “진실한 사랑은 뭔가 / 괴로운 눈물 흘렸네 / 헤어져간 사람 많았던 너무나 슬픈 세상이였기에 / 수많은 세월 흐른 뒤 / 자기의 생명까지 모두다 준 / 빛처럼 홀연히 나타난 그런 사랑 나는 알았네.” 이건 그분 이야기가 아닌가. 3절은 “이제 모두가 떠날지라도 / 그러나 사랑은 계속 될거야 / 저 별에서 날 찾아온 / 그토록 기다리던 인내 / 그대와 나 함께라면 / 더욱더 많은 꽃을 피우고 / 하나가 된 우리는 / 영원한 저 별로 돌아가리라.” 그 분과 동행하는 삶, 그 분과 함께 하는 삶,죽어야 사는 삶, 죽어도 죽지 않는 삶. 이런 마음으로 가사를 쓰셨나? 심수봉씨 대단하네. 사랑해요 ^^
아들아, 울지마라 (3/11/2013)
오늘은 네 아버지를 땅 속에 묻고 오는 날이구나. 무슨 3월 날씨가 그렇게도 야속한지 눈비가 함께 뿌리는구나. 네 어머니는 눈비 맞는 네 아버지의 관을 부여앉고 쓰러질듯 애가 끊어지는 울음을 우시는구나. 어제도 오늘도 하염없이 우시는 네 어머니 모습을 보니 무슨 말로 위로가 되겠니. 흐느낌은 이어졌다, 끊어졌다 반복하니 이승의 연이 얼마나 야속한지 알 것 같다. 아버지 나이가 오십을 넘긴지 몇해가 안되니 결혼해서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세월이 더 많이 남았기에 억울하고 미안해서 더 우시는걸게다. 부부는 전생에 빚이 많은 사람들이 만난다고 한다. 이승에서 그 빚을 다 갚고 가야 하는데, 다 갚고 갈 줄 알았는데, 아직 세월이 많이 남았는줄 알았는데, 그래서 더 사랑하고 더 잘해주는 것을 하루 이틀 미루어도 될 것 같아 미룬 것 뿐이데, 이렇게 홀연히 떠나시니 그게 서럽고 미안해서 우시는걸게다. 이민온지 30년의 세월동안 너희들을 키우랴, 먹고 살아야 하는 이민의 절박함이 모든걸 미루게 하였으리라.
아버지도 이제는 이 지역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사업체들도 잘 되고,먹고 사는데도 별 걱정이 없게 되었는데 간암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선고를 받았으니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이니. 네 아버지는 정말 너희들에게 헌신적인 분이었다. 여느 한국 아버지들처럼 표현 방법이 서툴고 투박했는지는 몰라도, 그러기에 아직도 너희들에게 해 주고 싶은 것도 많고 네 어머니에게도 그동안 해 주지 못한 사랑을 아낌없이 해 주고 싶어서 마지막 순간까지 생명의 끈을 놓치 않으셨는지도 모른다. 4년이라는 투병생활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며, 그 기간동안 네 가족 모두가 지치고 힘들었겠지. 그러기에 속에 없는 아픈 말도 할 수가 있고 섭섭한 마음도 가질 수가 있었겠지. 이렇게 가실줄 알았다면 좀더 잘 해줄걸 하는 미안함과 죄송함도 있겠지. 목사님은 고통도 아픔도 없고 사랑만 넘치는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영생을 얻었으니 기쁜 마음으로 보내드리자고 말씀하시고 네 가족들을 위로하시지만, 나는 웬지 저 허공에 흩어지는 바람결처럼 허무하게 느껴지더구나. 울고 싶으면 울어야지 어쩌겠니. 설움이 북받치고 그리움이 뼈에 사무치면 목놓아 울어야지 어쩌겠니. 그 울음이 하루 이틀에 그칠 울음이 아닌 다음에야, 가슴에 새겨진 화석처럼 두고두고 울어야지 어쩌겠니.
아들아, 나는 네가 몇살인지, 이름이 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지 못한다. 네 아버지와는 사업 관계로 몇차례 만난 기억과, 내가 골프 초보자일 때 나에게 골프를 몇번 가르쳐 준 기억뿐이다. 하지만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네가 어제와 오늘의 모든 장례절차를 남자답게 아들답게 상주답게 잘 처리하는 모습을 보고 네 아버지가 참으로 자랑스럽고 대견스러워 하실거라 생각했다. 너도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감당키 어려웠을텐데, 금방이라도 쓰러지실듯한 네 어머니와 누이들을 묵묵히 감싸고 보호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대견하였다. 이제는 네가 집안의 유일한 남자구나. 하지만 너는 한국인의 아들이잖니. 한국 남자는 가족에 대한 무한 책임을 본능처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란다. 네 아버지도 이민와서 30년동안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았겠니? 무모하리만치 단순하고도 순박한 가족 사랑 때문이란다.
이제부터 네가 살아갈 길은 길고도 험하단다. 지금 당장은 실감하지 못하겠지. 아버지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아버지가 얼마나 보고 싶은지 지금은 잘 모른단다. 나도 내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26년이지만 지금도 혼자 운전하다가도 아버지가 보고 싶어 소리내어 울 때가 있단다. 어려운 일을 부닥칠 때면, 만약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 하고 되묻곤 한단다. 한국인의 부모와 자식은 죽는다고 끊어지는게 아니란다. 이승과 저승의 연줄은 대를 이어 평생 가슴에 묻어두고 살기 때문이란다. 네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힘들 때나 기쁠때나 항상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아버지란 존재는 항상 그러하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두고두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 보고 싶은 사람이지. 아버지란 이중적 모순 속에서 사는 사람이지. 나는 공부를 많이 못했지만 자식은 공부를 더 많이 하기 원하고, 나는 부자가 되지 못했지만 자식은 부자가 되길 원하고, 나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자식은 성공하길 바란단다. 나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했지만 자식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원하고, 나는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못했지만 자식은 결혼해서 행복하길 바란단다. 그래서 아버지의 말투는 앞뒤가 맞지않고, 논리적이지 못하며, 이성적이지 못하단다. 본인도 자식에게 하는 말과 행동이 이율배반적이고 모순된 강요임을 잘 알기에 항상 무뚝뚝하고 명령조이고 일방적인 것이란다. 하지만 네가 살다가 살다가 힘들면 아버지를 불러보아라. 그곳에는 항상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신다. 고향의 큰 느티나무처럼, 뒷동산의 큰 바위처럼 항상 그곳에서 너를 반갑게 맞이해 주실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은 큰 바다와 같고 큰 산과 같아서 언제나 변함이 없단다.
언젠가 박완규라는 가수가 <아버지>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나는 그날 밤 그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면서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 한없이 울었단다. 육십이 다 된 이나이에도 말이다. “커다란 울음으로도 / 그리움을 달랠 수 없어 / 불러보고 또 불러봐도 / 닿지 않는 저 먼 곳에 / 빈 메아리 되돌아오며 / 다 잊으라고 말하지만 / 나 죽어 다시 태어나도 / 잊을 수 없는 사람 / 단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 나의 두 눈이 먼다해도 / 난 그래도 그 한번을 택하고 싶어 / 가슴 깊이 묻고 있어도 / 바람 한점에 떨어지는 저 꽃잎처럼 / 그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나 / 떨어진 꽃잎처럼” 아들아. 힘내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래도 살다가 힘들면 먼 하늘가에 아버지를 부르면서 실컷 울려무나..
아프지 마세요. (3/18/2013)
<아프지 마세요.> 내 주변에 너무 많은 분들이 아프다. 주변의 분들이라고 해야 대부분이 가게를 파실려는 나의 손님들이다. 막상 아프시지 말라고는 하지만,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이 어디 있을까. 또 사람이란 <生老病死 >의 굴레를 누구도 벗어날 수 없거늘, 아픈 것은 당연지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독 불경기인 근자에 와서 아프신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이다.
이곳 한인들이 일하는 대부분의 일터는 육체적 노동을 기반으로 한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10시간에서 12시간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주 6일 영업하던 영업장들이 주 7일로 바뀐지 오래다. 365일 쉬는 날이 없다는 것이 정상인가. 아무리 무쇠로 만들어진 태권브이 로보트라도 고장이 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3,4년전만 해도 다운타운은 주 5일 영업이고, 다운타운을 벗어난 지역은 주 6일이 대세였다. 하지만 불경기가 몇년씩 계속 되면서 옆집 가게가 주5일을 주 6일로, 주 6일 하던 가게가 주 7일로 바꾸어 버리니, 가만히 앉아서 내 손님을 빼앗길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래서 덩달아 나도 일요일 문을 열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옆집에서 가격을 내리니 덩달아 나도 가격을 내린다. 각종 물가는 인플레이로 오르고, 랜트비도 오르고, 종업원 기본 급여도 오르고 부동산세, 영업세 등 각종 세금도 오르는데, 오직 한가지 판매가격만 내린다면 결국 한인들끼리 제살 뜯어먹기다. 한인들 대부분의 업종은 성장기에서 성숙기로 접어든지 오래되었다. 이런 경영구조라면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으며, 성숙기의 시장은 쇠퇴기의 시장으로 몰락할 것이고, 대형업주들의 새로운 마켓이 생겨날 것이다. 이래 저래 가뜩이나 장사가 되지 않아서 속상한데 수입은 줄어들고 쉬는 날 조차 없으니 마음이며 몸이며 아프지 않는 곳이 없다. 속없는(?) 목사님은 주일성수를 하라고 성화시니 부부가 눈치보면서 번갈아가며 주일예배에 참석한다.
몸이 아파서 가게를 팔려고 내놓아도 팔리지가 않는다. 철없는(?) Buyer는 마음에 드는 가게를 찾지도 못하고 세월만 보낸다. 주7일영업하는 곳은 싫고, 흑인 동네는 싫고, 백인 상대로 하되 고생하는 것은 싫고, 음식 장사는 경험이 없어서 싫고, 다운타운은 랜트비가 비싸서 싫고, 세탁소는 환경문제 등,이런저런 이유로 싫고, Drop store는 바느질을 하기 싫어서 싫고, 가진 돈은 별로 없으면서 월 순수익이 높은 가게를, 그것도 집 가까운 곳에서 찾는다면 도대체 무슨 업종의 가게를 찾겠다는 것인가. 최신 설비에, 랜트비 싸고,장사 잘 되는 그런 가게가 집 부근에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유구무언이다.
가게를 팔려는 손님들을 보면 부상병 야전병동같다. 팔에 붕대를 감은 사람, 다리 관절에 철심을 밖은 사람, 손가락 마디마디가 휜 사람, 허리 받침대를 한 사람, 지팡이에 의지하는 사람, 목이며 어깨에 파스로 도배를 한 사람, 자석을 몸 곳곳에 붙이고 일하는 사람 등등 각양각색이다. 업종에 따라 아픈 곳도 모두 틀리다. 네일가게는 손가락 마디마디, 어깨, 목디스크, 화공약품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 편두통을 호소한다. 종업원 구하기가 하늘의 별을 따오는 것보다 힘드니, 주인이 더 많이 일해야 하고 그래서 더 골병든다. 세탁소는 어깨근육, 허리 디스크, 태그 찍는다고 손 근육 마비, 바느질 때문에 노안, 눈병, 옷먼지로 인한 각종 알러지, 기계로 인한 화상, 열상, 계속 서서 일하므로 장잔지 무릎에 시퍼런 핏줄이 실뱀처럼 튀어나오는 병(병명을 몰라 생략함)이 주종을 이룬다. Breakfast 등, 음식장사는 하루종일 기름 냄새에 쩔어 있고, 식욕저하, 각종 알러지, 불연소성 끄으름으로 인한 기관지염, 편두통, 좁은 곳에서 분주히 움직여야 하니 허리 디스크, 어깨 결림, 발바닥 통증, 무릎 관절등으로 아프다. 그러니 무거운 것을 날라야 하는 그로서리나 컨비니언스 가게, 정육점, 야채가게, 생선가게는 말해 무엇 할까. 거기다 장사가 안되어 속상하니 담배 피우고, 온 육신이 아프지 않는 곳이 없으니 퇴근하면 술이나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을 것이다. 더 힘든 것은 스트레스다. 불안하고 미래의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육신은 힘들고 마음은 피폐하다. 스트레스는 내분비 계통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혈압, 당뇨, 콜레스트롤, 비만과 함께, 뇌, 심장, 호흡기관, 간, 위, 췌장, 소장, 대장, 생식 기관등과 직결된다. 그래서 각종 암으로 연결된다면 그래서 생을 마감해야 한다면 이건 억울하고도 너무 억울하다.
한국에 비해서 이곳 한인 사회에 유독 많은 병원이 ‘카이로프랙틱’일 것이다. 나는 지금도 발음이 잘 안되지만, 한국에 있을 때는 알지도 못하던(나의 무지일 수도 있지만) 병원이 이곳에서는 주종을 이룬다. 그만큼 육체적으로 골병드는 한인들이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한인들의 사업체는 쉬운 업종이 없다. 하루 12시간씩 365일 쉬는 날 없이, 하루종일 서 있어야 하고, 움직여야 하고, 무거운 것을 들어야 한다. 아플 수 밖에 없다. 육신이 아프면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회복이 될 때까지는 안정을 취하면서 쉬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내 몸이 귀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곳 교민들은 쉬지를 못한다. 아픈 다리를 질질 끌고라도 가게에 나와 일해야 한다. 심지어 심장 수술을 받은 환자도 나와서 일한다. 수술이 아닌 약물치료 환자라면 가게에 나와서 일해야 한다는 것이 이곳의 상식이다. 주인이 빠지면 돌아가지 않는 맘앤파 비지니스가 대부분이기 떄문이다. 그래도 아프시지 말기를 소망한다. 힘드신지 누구보다 잘 알지만 더 이상 아프시지 않키를 소망한다. 부디 건강하세요..
추억 여행 (4/1/2013)
지난 주는 결혼 3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작년 이맘 때 ‘결혼 기념일’이라는 테마로 색소폰 이야기를 하면서 칼럼을 쓴 기억이 있는데 벌써 일년이 지났나보다. 이렇게 늙어가는게지. 해마다 돌아오는 결혼 기념일은 나에게 정말 두통거리다. 세상에는 여자를 위한 날들이 왜 그리 많은지 이해도 되지 않지만 그냥 넘어가면 후환이 두렵다. 그중에서도 아내는 결혼기념일을 무슨 신주단지 모시듯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어느날 뜬금없이 다음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시간을 좀 비워놓으라고 한다. 일주일 내내 아침부터 밤까지 스케줄이 짜져 있는 남편에게 하루도 아니고, 2박3일 시간을 완전히 비우라니, 그것은 부탁인가, 명령인가.. 우리집은 거사(?)를 꾸밀 때, 나의 역할은 나의 시간을 비워두는 것과, 행사와 관련된 일체의 돈을 지불하는 것 두가지다. 그외에는 나에게 의견을 묻거나 요구하지도 않는다. 물론 최종 결정권은 나에게 준다고 하지만 이미 자식들과 주도면밀하게 만들어 놓은 각본인데 결정권만 있으면 뭐하나? 나는 진정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인가?
아내와 자식들은 이미 나도 모르게 집에서 1시간정도 떨어진 산장별장인지, 오두막인지를 빌려놓았다. 딸아이도 직장에서 휴가받고, 아들놈은 봄방학 끝날이라 한국의 딸네 식구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모였다. 산장에 도착하자마자 가족들은 야외에 모닥불을 피운다, 고기를 굽는다, 식탁을 차린다, 모두가 분주했다. 별장은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나는 속으로만 이렇게 중얼거렸다. 절대 입밖으로 나온 말이 아니다. “아니 모처럼 2박3일 여행을 갈려면 국내든, 해외든, 유명한 관광지나, 유명한 음식점 등 관광코스를 여행사에 등록해 가면 편하고 재미있을텐데, 볼 것도 없고, 숙박시설도 불편하고, 먹는 것도 집에서 먹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면 왜 굳이 돈은 돈대로 쓰고, 가뜩이나 바쁜 사람의 시간을 3일간이나 빼앗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고 생각만 했다. 하지만 아내의 여행 목적은 <추억>이었다.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유명한 음식점보다는 자식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했다. 가족 서로에게 열린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래서 집에서는 할 수 없는 이야기, 말하기 조심스런 이야기들을 해 보고 싶고, 자식들 이야기도 듣고 싶고, 또 부모의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어한 것이다. 2박3일동안 산장에서, 바닷가에서, 야외 캠프장에서 서로에 대하여, 자신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했다.
거기다 친구 가족이 가게 일을 마치고 연장 이틀동안 산장까지 와서 같이 밥해먹고 이야기하다가 밤12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갔다. 올때마다 싱싱한 회며, 매운탕 꺼리며, 케익이며, 집에 있는 냉장고를 모두 털어온 것처럼 한짐 싣고 와서는 우리의 결혼 31주년을 축하해주었다. 여간 고마운 벗이 아니다. 마지막날 밤에는 두집 가족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자신에 대한 꿈과 계획, 그리고 가족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바라는 희망사항 내지는 기도제목을 이야기했다. 각자는 각자 스스로에게, 부모는 자식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친구는 친구에게, 부부는 부부간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했다. 3월의 쌀쌀한 밤공기는 세침스런 여인의 살결같았고, 별들의 속삭임은 눈꽃이 되어 흐르고, 장작타는 따닥따닥 소리와, 나무타는 냄새와, 연극배우의 독백처럼 이어지는 각자의 이야기들은 각자의 머리에 <추억>으로 기억되기 충분했을 것이다. 특히 내가 <대합조개 –입을 한번 다물면 여간해서 입을 열지 않는다는 뜻>라고 별명을 지어준 아들놈과 같이 많은 이야기를 한 것에 대하여 아내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장영희 교수의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에 서강대학교 페페 신부님이 쓴 <내가 이제야 깨닫는 것은>이라는 글이 있다. “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면 기적이 정말 일어난다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숨길 수 없다는 것, 하루밤 사이의 성공은 보통 15년이 걸린다는 것,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동네를 걷던 추억은 일생의 지주가 된다는 것, 삶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매일매일 일어나는 작은 일 때문이라는 것, 하나님도 여러 날 걸린 일을 우리는 하루 걸려 하려 든다는 것, 부모님이 돌아가시 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영원히 한이 된다는 것, 우리 모두 산 꼭대기에서 살고 싶어 하지만, 행복은 그 산을 올라갈 때라는 것, —살아온 길을 뒤돌아 보면 너무나 쉽고 간단한데, 진정한 삶은 늘 해답이 빤한데, 왜 우리는 그렇게 복잡하고 힘들게 살까?” 특히 아버지와 함께 동네를 걷던 추억이 일생의 지주가 된다는 그 대목에서 목이 잠긴다.
중국의 위지안 교수는 1979년생으로 서른살에 상하이 푸단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2009년 10월 갑작스런 말기암 판정을 받아, 2011년 4월 19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앞으로 남겨진 시간들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오늘 내가 살아야 할 이유>라는 글을 쓴다. 그녀는 14번의 수술을 하면서 말기암과 싸운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기와 가족들에게 <불리불기 不離不棄 – 헤어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라고 다짐한다. 그녀의 죽어가면서 남긴 글 중에 몇가지를 소개한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 보다, 곁에 있는 이의 손을 한번 더 잡아보는 것이 훨씬 값지다.”,“삶의 의지와 희망을 찾아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릴 때, 당신의 추억이 우주에서 하나밖에 없는 값진 재산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중에 더 많은 미소를 짓고 싶다면 삶의 매 순간이 추억이 되도록 가득 채우며 살아야 한다.” 우리의 결혼 31주년은 이렇게 <추억>이라는 별을 타고 흘러갔다…
불안한 미래 (3/25/2013)
요즘 세상을 대표하는 단어는 <불안>이라는 트랜드다. 이곳 미국의 한인 사회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가게를 팔려고 하는 사람도 불안하고, 가게를 살려고 하는 사람도 불안하다. 장사가 잘 되는 사람도 불안하고 장사가 안되는 사람은 더 불안하다. 사양업종을 계속 하기도 불안하고, 업종을 바꾸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기도 불안하다. 은퇴를 앞둔 오, 육십대도 불안하고, 청소년기의 자식들을 둔 삼,사십대도 불안하다. 대학을 졸업한 이십대 사회 초년병들도 불안하고, 무엇을 전공해야 할지 갈팡지팡하는 십대들도 불안하다. 성공하여 잘 나가는 사람도 불안하고, 실패하여 재기할려는 사람도 불안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현대인은 <불확실성 시대>에 살고 있다. 산업화 경제에서는 생산과 소비라는 양대축이 사람들의 삶을 어느정도 보장하고 예측가능케 하였다. 하지만 지식 정보화 사회에 들어와서는 새로운 것을 지속적으로 창조해야 하고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정신적 스트레스> 사회이다. 국가도, 사회도, 어느 누구도 보장해주지 않으며, 보장할 수도 없다. <예측불허>의 오리무중인 안개가 덮힌 산길을 걷는 것과 같다. 거기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성숙기에 접어든지 오래된 나라다. 이때까지는 <거품Bubble>이라는 신기루가 우리 모두의 불안 심리를 억제시켜왔는지도 모른다. 서민들의 재산은 집 한채와 조그만 사업체와 약간의 주식과 같은 투자 상품이었다. 이 모든 것에 거품이 걷히고 나니 희망도 사라지고 불안 심리만 가중되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오,육십대가 맛보았던 <한강의 기적>같은 신화는 없다. 풍요롭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어렵다면, 거품이 걷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거품이 꺼져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대부분의 소시민들은 다시 한번 부동산 경기가 되살아나서 흥청망청 하는 환상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나간 <한 여름밤의 꿈>인 것도 알고 있다. 거품붕괴 시대에 가장 크게 타격을 받는 세대는 40대 중반부터 60대 세대들이라고 한다. 마지막 보루인 퇴직 연금이나 노후 생활보장 연금도 믿을 수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100세까지 생명은 연장되었지만, 은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대이다. 몸은 늙어가고 삶은 무겁다. 한국트랜드 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 중년 남자들이 가장 많이 느끼는 갱년기 증상은 무기력감(33%), 비만(23%), 성욕 및 성적 능력 감퇴(21%), 우울증(20%) 순이었다. 자기계발 전문가인 칩 콘리는 <불안감=불확실성×무기력감>이란 감정방정식을 제시한다. 경제, 사회 환경이 불확실해질수록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거품의 붕괴에서 생기는 불안감은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불안>에서 “우리는 불안을 먹고 불안을 낳으며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 불안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모든 평범한 삶의 조건이고, 산다는 것은 하나의 불안을 또 다른 불안으로 바꿔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불안을 안고 살아가지만 모두가 똑같은 수준으로 괴로워하는 건 아니다. <행복의 조건> 이라는 책이 있다. 하버드대 졸업생들의 삶을 70여 년간 추적해 행복의 비결을 찾는 과정을 다뤘다. 오랜 연구 끝에 나온 결론 중 하나는 스트레스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갈린다는 것이다. 저자인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행복한 사람들은 긍정적이며 성숙한 방어기제(승화,유머, 이타주의, 억제 등)를 통해 스트레스의 독성을 중화하지만, 불행한 사람들은 분노나 충동적 반응, 음주 등으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사회 전반적으로 소소한 기쁨과 작은 행복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았다. 기회가 많았던 과거와 달리 ‘인생 홈런’이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경제가 성숙기에 들어선 많은 나라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일본 대중가요 가사를 분석해 보면 한국가요보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적고 <행복>이란 단어의 사용빈도가 높다. 그 행복 역시 일상에서 얻어지는 작은 기쁨인 경우가 많다. 미국의 유명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에 따르면 매우 큰 기쁨을 한 번 경험하는 사람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경험하는 사람이 더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불안증세가 심해지면 <불안장애> <공황장애> <수면장애>등 여러가지 정신적 질병을 수반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서적들의 베스트셀러는 <힐링>이 대세다. 힐링은 각종 의약품이나 심리치료나 서적들도 도움이 되겠지만, 나 스스로가 <작은 행복> <소소한 즐거움>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결국 내가 행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민사회 <힐링>의 큰 역활중 교회를 빼놓을 수가 없다. 불안한 현대 사회에서는 <교회문화>도 산업화 시대의 <양적 팽창문화>에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힐링하는> 교회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무한반복되는 고리타분한 설교에서 힐링하는 설교로 바뀌어야 불안한 성도도 살고 교회도 살지 않을까?.. 애완용 금붕어 중 버블아이(Bubble Eye)란 녀석이 있다. ‘거품 눈’이란 요상한 이름은 물고기가 성장하면서 눈도 함께 커진다고 해서 붙었다. 사실 커지는 것은 눈이 아니라 볼이다. 너무 커진 볼은 의외로 잘 터진다. 그럼 어떻게 될까. 금붕어는 동화에 나오는 배 터진 개구리처럼 죽고 말까? 아니다. 볼은 다시 자라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은 위대하다. 대부분의 고난과 상처는 인간 스스로 힐링되고 회복된다. 다만 여러가지 불안과 불확실성을 내가 어떻게 힐링하여 재미있고 행복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나의 몫이다…
낡은 구두 한컬레 (4/8/2013)
내가 주로 신고 다니는 구두는 한컬레인데, 뒷축이 낡고 찢어진 곳도 있어 별 폼이 없다. 물론 그동안 이 구두만 신고 다니 것은 아니다. 이민와서 그로서리와 정육점을 하던 시절, 아침가게를 하던 시절에는 주로 팀블랜드 신발 한컬레로 지냈다. 뒷축이 다 헤어진 그 신발은 아직도 아내가 모르는 곳에 모셔놓고 있다. 지금 신고 다니는 이 서민용(?) 구두는IMF 때 아내가 온라인 쇼핑으로 사 준 것인데,한국에서 3년, 그리고 현재 하고 있는 비지니스 컨설팅 사업 7년, 도합 10여년을 신고 다녔으니 구두가 너들너들하고 모양새도 투박한 게 세련되지 못해 아내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론 2년전, 큰 딸 결혼식 때 아내가 사준 새 구두가 있긴 하지만 특별한 날이 아니면 거의 신지를 않는다. 나도 패션에 대한 기본 상식은 있다. 멋쟁이를 구분하는 방법은 그 사람의 구두만 보면 알 수있다고 한다. 아무리 비싼 양복에 명품 넥타이를 매었다 하더라도 구두의 생김새와 광택을 보면 멋쟁이의 수준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회사 생활하는 한국 남자들이 그런 것처럼, 이민을 오기 전의 20여년동안은 생활 자체가 항상 정장 양복에 고급 와이셔츠에 넥타이 메고 광이 나는 구두를 신고 다니는 것이 기본이었다. 장교시절에는 말단 사병이 항상 구두에 <불광>을 내어 놓았기 때문에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다녔고, 회사 생활을 할 때는 근무하는 빌딩 지하에 언제나 구두닦는 분들이 있어서 여분의 구두를 벗어 놓으면 자동으로 닦아서 책상 밑에 갖다 놓아 반짝이는 구두를 신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래서 나의 구두는 군대용어로 파리가 미끄럼을 탈 정도로 언제나 광택이 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것들이 낯설기만 하다.
<두컬레의 샌들>의 일화가 있다. 200년된 샌프란시스코의 수도원에는 수도사들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곳에 두 컬레의 샌들이 있다고 한다. 한 인간의 인격을 신발보다 더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없다고 한다. 그 신발을 보면 그 분이 얼마나 피곤한 삶을 살았는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발이 리얼함을 더하는 것은, 그 존재가 빠져나간 텅 빈 그 자체가 고독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200년전 어느 수도사가 저 샌들을 신고 황량한 벌판에서 나름대로 예수의 길을 쫓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독과 싸웠을까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이민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고달프다. 나의 낡은 구두처럼 힘들고 만신창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힘든 이민생활이 나와 내 가족을 살게 해 주었고 지켜 주었듯이, 내 낡은 구두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나의 발을 감싸주고 보호해 주었음을 잊어버리기 싫다. 지금은 광이 나는 멋진 구두와 고급 양복을 입고 다닐 경제적 형편은 된다. 하지만 그 모습이 나의 진솔한 모습이 아니기에 나는 거부한다. 대부분의 한인들이 가게에서 일하는 근무복장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여름에는 반바지에 면티 하나면 족하다. 겨울에는 골덴바지나 청바지에 폴라 티셔츠나 얄궂은 스웨터를 입고 일한다. 거기다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어울리지 않는 야구모자를 푹 눌러쓴 채, 운동화를 신고 일한다. 유일하게 양복입고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 메는 날은 교회가는 일요일이거나 결혼식장, 장례식장이지만, 어설프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어지간해서는 넥타이를 메지 않는다. 좋은 양복을 입지 않는다. 좋은 구두를 신지 않는다. 멋을 내지 않는다. 그냥 살고 있는 내 모습 그대로이고 싶다.
이번에 새로운 교황이 되신 프란치스코 신부님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첫 미사를 집전했다. 그는 강론에서 ‘걷기(walking), 짓기(building), 신앙고백(professing)’을 교회의 세 가지 임무로 제시하고 영적 쇄신을 통한 교회 재건을 말씀하셨다. “우리가 걷지 않으면 멈추고, 반석 위에 집을 짓지 않으면 어린아이가 해변에 지은 모래성처럼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된다”고 지적하셨다. 그러면서 “십자가 없이 걷고, 십자가 없이 뭔가를 짓고, 십자가 없이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면 우리는 예수의 제자가 아닌 세속적인 존재일 뿐”이라고 강조하셨다. 내가 무슨 명품구두를 신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 나의 실체가 사라진 뒤 내가 벗어놓은 저 낡은 구두를 바라보며 나의 자식들이 내가 어떤 길을 걸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저 구두가 말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몇년전인가 딸아이가 아빠 생신이라고 화장품을 풀세트로 사온 적이 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남자 화장품이기에 딸아이의 배려에 가슴이 뭉클하였지만, 아직도 그 화장품들은 뜯지도 않은채 모셔져 있다. 내 기억으로 이민와서 당황스러웠던 몇가지 중 하나가 <스킨로션>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부터 면도를 하고 나면 스킨로션을 바르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피부관리라고 믿었다. TV의 화장품 광고에서 보듯이 한웅큼 스킨로션을 부어 손바닥으로 탁탁 치면서 뺨을 때리듯 바르는 것이 야성미 넘치는 성공한 남자의 상징으로 생각하던 세월이다. 그런데 이곳 이민 사회에서는 스킨로션을 바르는 남자들도 없거니와 한국에서 사용하던 고급 스킨로션을 파는 곳도 찾기 힘들다. 기껏해야 여자들이 제일 혐오하는 사우나탕에서 무료로 비치한 초록 색깔의<꼼보스킨>만 파는 것이다. 이민 초기의 <그날 이후>로 나는 일체의 얼굴 화장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요즘 한국 남자들은 얼굴 팩은 기본이고, 비비크림이니, 적외선 차단 크림이니 별의별 화장품을 사용한다지만, 나는 이대로 늙어가고 싶다. 내면의 모습이 성숙되어 <내 모습 이대로> 중후한 중년의 남자로 늙어가고 싶다. 그런데도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멋있어보인다는 말을 듣고 싶다면 나의 착각인가?
비에 젖어 (4/15/2013)
중학교 까까머리 시절의 한 페이지가 기억난다. 그날도 학교를 마치고 친한 친구집에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학교에서 친구 집까지는 걸으면 1시간 가량, 버스로는 다섯 정거장 떨어진 거리였다. 평소처럼 버스를 타면 10분이면 도착할 거리인데 친구와 나는 그날따라 걷기로 했다. 왜냐하면 친구집 부근에 <할매 국수집>이 있었는데 맛도 좋았지만 한창 먹을 때라 할매가 우리만 보면 곱배기로 주시는거였다. 그래서 버스값으로 국수를 사먹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웬걸 학교 정문을 나서는데 비가 한,두방울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다 말겠지> 하면서 걸으며 하늘을 보니 시커먼 구름들이 저편에서 몰려오는 것이다. 큰 비가 올 것 같았다. 빗방울이 굵어지면서 교복은 이미 반쯤 젖은 상태였다. 둘중 한명이 ‘지금이라도 버스를 타자’ 라고 제안을 했으면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명 중 누구도 그런 제안을 하지 않았다. 사나이(?)가 먼저 계획을 바꾼다는 것은 뭔가 자존심이 상하는, 의지가 약한, 비굴하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갑자기 벼락이 치면서 폭우가 쏟아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남의 집지붕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기다렸다. <그러다 말겠지>.
하지만 날은 더 깜깜해지고 폭우는 끄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둘은 눈빛 교환을 하고는 무작정 뛰었다. 숨은 턱에 차고 호흡이 가쁘면 또 남의 처마밑에 들어가 기다려 본다. 그러다가 또 빗속을 향해 뛰쳐나가기를 반복한다. 절반쯤 지난 것 같다. 지금이라도 버스를 타면 되는데 이제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버스를 탈려고 했으면 진작 탔어야 한다는 자괴감이다. 교복이며 운동화는 이미 폭우와 함께 엉망이다. 하지만 책가방 안에 들어있는 책들이 문제였다. 그 당시에는 매주마다 몇번씩 시험을 보기 떄문에 책들이 젖으면 대책이 없는 것이다. 다행히 책들은 무사했다. 그러다 길거리에 버려진 비닐 우산이 눈에 들어왔다. 그 비닐을 주워서 책가방을 감쌌더니 책이 비에 젖을 걱정은 없을 것 같았다. 폭우는 그칠줄 몰랐다. 둘은 그때부터는 뛰지도 않았다. <그러다 말겠지> 하면서 비를 정면으로 맞으며 걷기 시작했다. 이제는 포기상태다. 이미 옷과 신발은 다 젖었고 책가방은 비닐로 포장되었기 때문에 더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킬킬거리며 폭우 속을 걸었다. 앞도 보이지 않을만큼의 폭우가 쏟아진다. 그렇게 둘은 얼마를 걸었는지 모른다. 점점 둘은 대화도 없어졌다. 한참을 걷다보니 눈앞에 <할매 국수집>이 보이는 것이다. 할머니는 우리를 보더니 ‘이놈들이 제 정신이 아니다. 지금 태풍이 부는데 집에 빨리 가지 않고 무슨 짓이냐?’ 고 야단이셨다. 그러면서도 재빨리 국수를 말아주시므로 한그릇 후딱 마파람에 개눈 감추듯이 먹고는 친구집에 도착하니 언제 그랬냐는 둣이 거짓말처럼 비가 뚝 거치는 것이다. 그날 밤 나는 감기 몸살로 엄청 아팠던 기억이다.
누구나 삶의 과정이라는 것이 <기회와 선택>, <선택과 집중>, <평가와 변경>, <도전과 변화>의 연속이다. 삶의 결과는 본인의 결정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2013년 들어와서 한인사회 비지니스 상황은 결코 좋지 않다. 2007년부터 각 해마다의 데이타를 분석해보면 올해는 예년의 각 해년도에 비하여 가게 구입문의가 절반이하로 줄었다. 이것은 계약건수가 아니라, 단순한 구입문의이므로 내 능력이나 신뢰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가게를 구입하겠다는 구매자의 등급도 낮다. Seller에게는 사업분석표를 작성한다면, Buyer에게도 구매등급표를 작성한다. 사업경험, 자금 능력, Cash Flow, 업무지식, 업무추진력, 가족 구성원, 신뢰도 등이 주요 평가항복이다. 그런데 예년에 비하면 주전급 선수들의 움직임은 없고 마이너 리그 출신들이 약간 움직이니 일은 몇곱절 힘들다. 왜 그럴까? 비지니스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걱정하는 것은 불황이라는 <비에 젖어> 멈추어진 상태다. <변화와 도전>이 없다는 것이다. 불황이라는 늪에 빠져 불황에 익숙해져 간다고나 할까? 정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장사가 잘 되는 사람이나 돈을 모아놓고 여유가 있는 사람은 어디다 투자를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기다린다. 장사가 안되는 사람은 가게와 집이 팔리지 않으니 꼼짝달싹을 할 수가 없다. 주급생활을 하는 사람은 좋은 가게를 사기에는 돈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고생을 많이 하는 가게는 싫고 그래서 움직이지 않는다. 돈을 가진 자나 돈이 없는 자나 움직이지 않는다. 다행히 올들어 집 매매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차츰 여파를 타고 언젠가 비지니스 시장도 움직일 것이다. 시간이다.
뉴톤의 운동방정식에 관성의 법칙을 기억할 것이다. F= m x a (힘=질량 x 가속도), 여기서 ‘a = 0을 대입하면 F = 0,‘a = 1을 대입하면 F = m’이 된다. 이것이 관성의 법칙이다. 즉 외부에서 새로운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정지된 물체는 계속 정지하게 되고, 움직이는 물체는 동일한 방향으로의 운동을 계속 한다는 것이다. 어느 조직이든 새로운 에너지가 가해지지 않으면 종전에 하던대로만 한다는 것이며, 이것이 결국 몰락의 법칙이 된다. 새로운 에너지를 동기부여라고하며, 동기부여는 꿈과 비젼을 제시하여 이를 공유하는 것이다. 경로 의존 (Path dependency)의 법칙도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한번 길들여진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하여 일단 길이 만들어지면 지름길이 생겨나도 종전의 길을 고집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은 성공의 습관을 가지고 있고, 실패한 사람은 실패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이다. 당신은?..
산행 ( 2편) (4/22/2013)
지난 주일에는 산을 다녀왔다. 등산이라기에는 산이 나즈막하여 산을 오른다기 보다는 산길을 걸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새순들이 막 터져나오는 터라 온 산은 연두색으로 초벌 색칠을 한듯 했다. 개울물 흐르는 소리며, 이름모를 산새들의 지저귐은 모처럼의 일탈을 맛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일행들은 걸으면서 어린 두릅나물 새순, 참나물, 찔래꽃 잎순 등을 조금씩 따다가 입안에 오물거리며 걸으니 입안이 온통 봄내음이 가득하다.
이민와서 팔자에도 없는 등산을 처음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주일예배가 1부 8시 예배와 2부11시 예배 사이에 10시예배가 생겼다. 11시 예배를 보다가 10시 예배로 바꾸니 엄청난 시간적 여유가 생긴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에 산을 좋아하는 아내는 등산 한번 갔으면 좋겠다고 틈만 나면 산타령을 하던 참이다. 아내와 결혼하기로 결심한 동기도 등산을 함께 하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며칠씩 각자가 20Kg 이 넘는 등산장비를 매고 설악산, 오대산, 지리산, 대둔산 등지를 다니면서 서로의 인생관과 사랑에 대한 신뢰가 깊어졌던 것 같다. 결혼 후에도 일요일이면 서울 근교의 북한산, 관악산, 치악산 등지를 즐겨 다녔다. 한국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 올 좋은 산이 주변에 많아서 좋다. 그런데 이민와서는 언감생신 꿈도 못꾸던 차에 교회에 산을 좋아하는 자매님이 계신 것이다. 토요일날 같이 산에 한번 가자고 아내와 구두 약속만 하다가 시간이 맞지않아 공염불이 되는가 하더니 드디어 주일 예배 시간이 바뀌니 과감히 과업수행(?)을 위해 일을 저지르고 마는 것이다. 하루는 아내가 등산화를 사러 가자고 한다. 한국에서 신던 등산화는 이민올 때 이미 버렸다고 한다. 뜻이 맞은 몇사람이 모여 거금(?)으로 등산화부터 샀으니 자연스럽게 등산클럽이 만들어진 것이다. 여성대장께서는 첫번째 등산이므로 초보자(?)들을 배려해 쉬운 코스로 정했다는 것이 지난 주 다녀온 산이다. 나같은 늙은이(?)에게는 등산대장이 전문 산악인이 아니어서 좋고 여자라서 좋다. 이제 처음으로 등산화 신발끈을 묶었으니 한달에 한번이든, 두번이든 대장이 가자는대로 끌려 가기만 하면 된다. 생각만 해도 즐겁다.
2008년 8월경(5년전)에 <산행>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아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 일부를 그대로 옮겨본다.
“미국의 이민생활을 8년째로 거듭하면서 한국의 친구들도 잊혀가고 과거의 한국생활도 잊혀가지만 불현듯 한국의 산과 바다가 미치도록 그리워 질 때가 있다. 나는 산의 애호가도 아니고, 바다 사나이도 아니지만 바쁘게 살아온 삶 중에 가끔은, 아주 가끔은 혼자 배낭을 매고 산이나 바다를 찾아 며칠씩 헤매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온 기억이 있다. 나는 설악산과 지리산이 좋다. 동해안의 알려지지 않은 해변가가 좋고 조그만 어촌이 좋다. 아니면 서해안의 조그만 섬들도 좋고, 늙은 어부가 사는 토담집에서 며칠을 나는 것도 좋다. 그것도 안되면 일요일 지하철을 타고 북한산에 가서 하루를 보내고 오는 것도 좋다. 산에서 사람을 만나면 내가 누구인지 말할 필요가 없어서 좋고 다음에 다시 만날 기약이나 아쉬움이 없어서 좋다. 만나고 헤어짐이 흐르는 물과 같아서 좋다. 사람이 많은 외설악보다 가끔가끔 사람을 만나는 내설악이 좋다.
백담사의 얼음같이 차가운 계곡물이 좋고 십이선녀탕의 곳곳마다가 좋다. 그 탕 속에 빈 몸을 담그고 잠시나마 부끄럼 없이 하늘을 쳐다볼 수 있어서 좋다. 숨이 끊어질 듯 힘든 산행 길에서 만나는 바위틈의 석수가 있어 좋고, 가지런히 정돈된 표주박을 보면 내 앞에 먼저 다녀간 누군가의 넉넉함이 좋다. 산장에서 저녁여장을 풀고 각자의 밥하는 냄새가 좋고, 먹어보라고 건네주는 음식에 사람냄새가 있어서 좋다. 가끔은 다른 일행들에게 초대받아 밤 늦도록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서 좋다. 말하지 않고 듣고만 있어도 누가 무어라 독촉하지 않아서 좋다. 지는 석양은 지는 석양이어서 좋고, 뜨는 태양은 뜨는 태양이어서 좋다. 어제와 오늘이 다른 산의 모습이어서 좋고, 수많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산의 모습이어서 좋다. 아침이면 어제 만난 사람들과 별다른 인사도 없이 조용히 떠날 수 있어서 좋다. 오늘 반드시 가야만 될 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꼭 와야만 된다고 산이 강요하지도 않지만 오늘도 배낭 매고 걸을 수 있어서 좋다. 운이 좋아 산속의 암자를 만나 하룻밤 쉬어갈 수 있으면 더욱 좋다. 암자에 모셔진 부처님 모습이 화려하지 않아 좋고, 혼자 수행하는 스님의 시골아저씨 같은 모습이 좋다. 새벽 잠을 깨우는 도량천 소리가 정겹기만 하고, 삼라만상의 만물을 깨우는 운고 소리가 좋다. 아침 예불소리가 산속이어서 더욱 좋고, 보리밥에 된장국의 조촐한 식단이어서 더욱 좋다. 누구인지, 종교가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사는지 묻지도 않고, 알고 싶어하지 않아서 좋고, 스쳐가는 바람처럼 들어온 것도, 나감도 없는 스님의 자비로움이 좋다. 바위 틈새로 나오는 물로 깨끗하게 세수하고, 법당에 앉아 조용히 참선하고 있으면 나의 지나간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다. 고쳐지기 어려운 업보인줄 알면서도 조용히 참회의 눈물을 흘릴 수 있어서 좋다. 하산 길은 배낭도 가볍고 마음도 가벼워서 좋다. 외설악 쪽으로 내려오면 다시 내가 사는 세상 사람들을 만나서 좋다. 상춘객들이나 관광객들은 언제나 즐거워하는 모습이어서 좋다. 옷이며, 화장이며, 몸에 치장한 것들이 마음껏 멋을 내어 좋다. 그들의 수다스러움이 좋고, 잠시나마 모든걸 잊어버리고 크게 웃는 얼굴이 좋다. 다시 내가 어울려 살아야 할 이웃들이어서 좋고, 좋고 나쁨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어서 좋다. 그래서 나는 산과 바다가 좋다.” 대장님, 건강하세요..
창가에 앉아 (4/29/2013)
오늘은 토요일이다. 토요일은 일주일 일과중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장 많이 갖는 날이기도 하다. 매주 토요일은 별다른 일이 없으면 칼럼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나의 조그만 사무실 책상에 앉아 창밖을 내다본다. 창밖의 저 나무는 이제 완연히 아름다운 봄옷으로 바꾸어 입었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7년이라는 세월을 지낸다. 이 창문을 통해 봄,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가는 것을 본다. 아마도 내 인생 60년 중에서 이렇게 한자리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적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같은 공간을 허락하심에 감사드린다. 2평남짓한 이 조그만 나만의 공간이 오랜 세월동안 나를 지켜주었고, 나를 성숙하게 만들었으며, 나를 다듬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을 이방에서 만났고, 외출하고 돌아오면 편한 쉼터가 되어 주기도 했다. 7년전 이 비지니스 컨설팅 사업을 시작할 때에는 사무실을 얻을 돈도 없어서 손님을 패스드 푸드점에서 만나 상담을 하곤 했다. 이 창밖을 내다보노라면 지나온 모든 것이 꿈같은 세월일뿐, 모든 것이 감사하고도 감사할 뿐이다. 창문은 통로다. 내 삶 자체가 하나님이 계획하신 통로이듯이, 창문은 바깥 세상과 나를 연결해 주는 열린 통로이기도 하다.
요즘 우리교회는 5월 말에 있을 전국 지도자 대회를 준비하느라 전교인이 하나가 되어 열심이다. 주제는 <열린 마음, 열린 교회>다. 어려운 주제다. 나는 ‘소그룹 인도자’라는 소임도 있지만, 항상 마음 한 구석에는 <열린 마음이란 무엇인가?>가 화두가 되어 맴돈다. 나는 과연 하나님께, 교인들에게, 손님들에게, 이웃에게, 지역 사회에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나의 답은 ‘Case By Case’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과 ‘받은만큼 되돌려준다’의 원칙에 익숙해져 있다. 나의 마음은 <자동 개폐기>가 부착된 문과 같다. 나의 마음은 빼꼼히 열려 있다가도 상대방에 따라 더 열리기도 하고 자동으로 ‘꽝’ 닫혀버리기도 한다. 60세가 다 된 이 나이에도 싫은 사람은 싫고, 보기 싫은 사람은 보지 않고, 만나기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 나를 조금이라도 싫어하는 기색이 보이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문을 걸어잠그고 좀처럼 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열린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것을 <내 탓>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모든 원인을 상대방에게 귀결시킨다. 상대방을 불신하고 미워하는 모든 원인은 상대방이 과거나 현재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단초를 나에게 제공했다고 단정하는 것이다.
<투사 이론>이 있다. 투사 이론의 핵심은 게슈탈트의 이론처럼 “모든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일 것이다. 투사란 ‘스스로 수용할 수 없는 욕망, 생각, 느낌을 주체의 바깥, 즉 다른 주체로 옮겨 놓는 방어기제’라고 한다. 흔히들 하는 말 중에 ‘주는 것 없이 미운 놈’이 있다. 그 사람이 나에게 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내가 그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선입견으로 그사람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투사 이론>에서는 그런 감정은 나의 내부에 내 스스로가 싫어하는 나의 부정적 혹은 열등적 측면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타인에 대한 어떤 생각을 품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그것은 모두 나의 내면에 있는 요소들이 거울처럼 되비치는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나 이외의 다른 객체에 대하여 불평불만이 많고 타인에 대한 험담과 뒷담화를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내 마음이 닫혀있으며, 내 자신에 대한 부정적 요소가 많기 때문에 내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불교 화엄경의 <一切唯心造, 일체유심조>라는 계명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세상 만물의 형상에서부터 사소한 감정의 일어남까지, 모든 것이 내 마음의 조화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 만사가 내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도 한다. 금강경 사구계인 <凡所有相 皆是虛妄, 범소유상 개시허망>도 세상만물에 대한 나의 인식은 내 마음에 비치는 내가 만든 허상일 뿐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천주교에서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를 외치며 세번 가슴을 치는 것도 내가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모든 것, 그로 인해 내가 받은 모든 피해, 상처등은 스스로 내 마음의 문을 닫고 내가 지은 죄라는 고백일 것이다.
베어 하트라는 인디언이 쓴 <인생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디언의 지혜>라는 책에서는 주술사인 삼촌이 작가를 연못으로 데려가 물속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게 한다. 처음에는 잔잔한 물에 비친 얼굴을, 다음에는 막대기로 연못물을 휘저은 뒤의 얼굴 모습을 보게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네가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네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는 것이라 생각해야 한다. 네 마음 속에는 네가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는 어떤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되는 것이다, 네가 싫어하는 것은 실은 네 자신의 일부이다.” 내 방에 있는 저 창문을 통해 보이는 외부 세계는 <내 마음 밭>에 따라 달라 보인다. 저 창문은 내 종교일수도 있고, 나의 인격, 지혜, 살아온 업보일 수도 있다. 저 창문을 통해 무엇을 볼 것이며,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얻느냐는 <내 마음>이 결정하는 것이다. 결국 <나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은 나의 마음이 열려있느냐, 닫혀 있느냐와도 연관되며, 나의 행복은 누구의 탓도 아닌 <내 탓>인 것이다. 좀더 행복하고 싶다면 팁으로 게슈탈트의 이론을 인용해 본다. “남에게 보이려는 관심을 절반만 줄여도 인생이 훨씬 편안해질 것이다.” 여러분 모두 행복하세요..
아버지와 야구 (5/6/2013)
살다보면 가끔은 소소한 즐거움이 삶을 여유롭게 만들기도 한다. 올림픽 게임이라든지, 월드컵이라든지, 내가 좋아하는 팀들의 빅매치 시합 등이다. 요즘 나를 설래게 하는 것은 미국 프로야구 다저스의 류현진(괴물, 몬스터) 선수와 신시내티의 추신수(추추) 선수, 그리고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의 이대호(거포) 선수의 활약상이다. 매일 이 세명의 선수들 실적을 인터넷으로 확인하는 것이 하루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야구는 나에게 지워버릴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다. 나는 야구를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로 부터 처음 배웠다. 그 당시에는 가죽으로 된 야구 글러브는 아이들의 선망 자체였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야구글로버와 야구 방망이를 선물로 사 오신 것이다. 그날로 부터 야구를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매일 밤 베개 밑에는 야구 글로버를 놓고 잤다. 처음 야구를 배울 때는 야구공이 무척이나 무서웠다. 그러기도 한 것이 항상 엄하시고 매사에 철저하신 아버지이신지라 엄살을 피울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야구공도 고무공이나 초등학생용 연습구가 아니라 시합용 공으로 가르치신 것이다. 시합용 공은 무겁고 딱딱하여 맞으면 엄청 아프다. 그때 기억으로 아버지는 처음 야구를 배우는 아들에게 인정사정 봐주지도 않으시고 강속구를 던지시는 거였다. 아버지와 야구를 하던 날이면 방문을 걸어잠그고 울기도 했다. 아픈 손도 손이지만 딱딱한 야구공에 맞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야구공에 몇번인가 얻어맞기도 했을 것이다. 나중에 앨범 속의 빛바랜 사진을 보고 안 사실이지만 아버지는 군의관 시절부터 사단급 야구팀의 주전 투수셨다. 야구공을 두려워 하는 아들을 벽에 세워두고 강속구를 뿌려대며 치라고 하신다. 공이 무서운데 제대로 칠 수가 있었겠는가. 남자놈이 겁이 많다고 꾸중을 들으면 어머니에게 울면서 하소연을 하곤 했다. 그렇게 나는 울면서 야구를 배웠다. 그런 혹독한(?) 시련을 겪었으니 야구공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5학년이 시작될 무렵 친구놈과 학교 운동장에서 피칭 연습을 하고 있는데 야구감독 눈에 띄었다. ‘너희 두놈 모두 학교 야구 선수로 들어오라’는 명령이었다. 나는 집에서 당연히 반대하므로 입단하지 못했고 친구놈은 그길로 야구 선수가 되어 롯데 프로야구 선수까지를 지냈다. 부산에는 부산고등학교와 경남고등학교가 공부와 야구에서만큼은 절대 질 수 없다는 묵시적 경쟁관계가 오랜 전통이다. 연고전 같다고나 할까. 나는 초등학교 이후에는 야구를 하지 않다가 대학 생활을 하면서 야구를 다시 시작했다. 동창회를 해도 두 학교가 야구시합 (야구선수 출신은 제외함)을 했다. 그러면 부산 출신 여학생들이 양편으로 나뉘어 응원시합을 하곤 했다. 그때 나는 대학 4년동안 투수를 했는데 내 기억으로는 우리팀의 승률이 훨씬 높았다.
부산하면 특히 롯데 야구하면 광적인 팬들로 유명하다. ‘부산 갈매기’로 갈음하는 뜨거운 열기는 야구장을 후꾼 달아 오르게 한다. 야구장에 가면 일단 모든 근심 걱정을 잊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다. 땡볕에 앉아 마음껏 고함 지르고 응원하고 소주 한잔까지 하다보면 모든 스트레스가 다 날라가는 것 같다. 투수는 공 하나 하나에 의미를 갖고 던진다. 그것을 읽을줄 알아야 야구를 보는 묘미가 있다. 야구장에 가본 것이 대기업 시절 큰 딸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잠실 야구장에 간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25여년이 넘는 것 같다. 야구는 다른 운동과는 또 다른 톡특한 매력이 있는 운동이다. 나는 딸만 둘일때 아들이 한명 있었으면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이유는 남아 선호사상이나, 아들에게 대를 잇기를 바란다거나, 제사상을 받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다만 오직 아들과 야구도 같이 하고 테니스도 같이 하고 수영도 같이 하고, 이런 저런 운동을 같이 하고 싶다는 욕구가 더 강했기 때문이다. 나는 얼음이나 눈과 관련된 스키, 스케이트, 그리고 농구를 제외하고는 단체의 크기나 성적 고하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운동을 좋아하며, 선수로 뛴 경험도 있다.
그런데 막상 아들이 태어나고 그 아이가 여섯살때인가 이민을 와서 야구도 가르치고 테니스도 가르쳐 보았지만 아내의 피를 물려받았는지 운동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이다. 남은 방법은 운동을 좋아하는 사위를 만나거나, 운동 좋아하는 손주로 키우는 수 밖에 없다. 이제는 모두가 지난 이야기다. 오른쪽 어깨는 오십견으로 팔을 들어올리는 것 조차 힘드니 야구는 커녕 어지간한 운동도 과거의 흉내내기조차 힘들다. 아버지가 나에게 야구를 가르쳐 주셨듯이 나도 아들에게 무언가 가르쳐 주고 싶었는데, 아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내가 너무 일찍 포기한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앞선다.
아직도 나의 차 트렁크에는 야구 글러브 두개와 야구방망이, 테니스 라켓 두개, 배트민턴 라켓 2개, 탁구 라켓 2개가 실려있다. 언젠가 다시 아들이 나와 함께 운동할 날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것인지, 어쩌면 그런 날이 다시 오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싫어서 싣고만 다니는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실날같은 희망은 아들놈이 지난 달부터 혼자서 조깅을 시작했다고 하니 나의 꿈은 이루어지려나…<마지막 강의>의 랜디 포스 교수의 말처럼, 모든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옳고 그름에 관하여, 현명함에 관하여, 그리고 살면서 부닥치게 될 장애물들을 어떻게 해쳐 나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싶어한다. 또 부모들은 행여 자식들의 삶에 나침판이 될 수 있을까 하여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한다. 작고하신지 25년이 지났건만, 이래 저래 그 시절 야구를 가르쳐 주시던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집착 (5/13/2013)
여느날 처럼 일요일 아침, 아내와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막내 아들놈 걱정으로 나는 약간의 역정을 내었다. 너무 천하태평이고 무사안일한 것 같아서이다. 사실 나는작년 여름에도 한국의 해병대 훈련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들놈을 강제 입소 시킨 아버지다. 나는 아들놈을 나보다 강하고 멋있게 키우고 싶다. 아니 여느 부모들처럼 내 자식들이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좋은 집안의 배필을 만나고 출세하여 부자가 되고 성공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내가 나에게 한마디 한다. “당신은 자식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해요. 나는 내 자식들이 잘 될거라고 믿어요. 가만히 지켜 봅시다.” 이건 무슨 뚱단지같은 소린가. “내 자식이니까 잘 되길 바라는거고, 잘 되기 위해서는 채찍질도 하는거고, 마음이 아프지만 싫은 소리도 하는게 아닌가. 그건 집착이 아니라 관심이고 사랑이라고 하는거야. 지켜보면서 내버려두면 어느 세월에 경쟁에서 이기겠는가. 우리가 가진게 뭐가 있어. 빈손으로 이민와서 돈이 많아, 사회적 신분이 높아, 잘 사는 친인척이 있어, 부모 나이가 젊어, 그렇다고 내가 잘 될거라는 희망이 있어, 가진건 자식들 스스로의 머리와 건강밖에 더 있어?” 결국은 참지 못하고 나는 일갈을 하고만다. “당신이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 당신이 남자 마음을 알아?” 나는 삐져서 입을 다물고 만다. 내가 삐지면 아내는1시간이내 나의 마음을 풀어준다는걸 결혼 생활 31년을 살면서 경험으로 알고 있다. 아내는 조용한 음성으로 “왜 예수님은 이 땅에 평화를 주시러 오셨으면서도 칼을 주러 왔다고 했을까요? (마태 10장 34절). 칼은 무엇을 상징하는걸까요? 왜 예수님은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고 했을까요? 왜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고 하셨을까요? (마태 10장 35절,36절)” 아내는 내 손을 잡고 걸으면서 어느 책에서 읽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인 <가족>을 주셨다. 가족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을 한꺼풀 벗겨보면 그 속에는 사랑을 빙자한 <집착>이 있다. 모든 인류 역사의 분노와 싸움은 가족의 집착으로 시작된다. 집착은 변증된 <에고>이다. 가족이 원수가 아니라 가족에 대한 집착이 원수이다. 이 집착의 끈을 칼로 내려쳐야 한다. 그 칼은 <회개>의 칼이다. 그러므로 칼과 평화는 하나다. 집착을 끊어버리지 않으면 진정한 사랑, 진정한 평화는 없다. 집착을 끊어버리면 <통찰>이 생긴다. 통찰은 <거리두기>와 <바라봄>이다. 성년이 된 자식은 <바라봄>의 사랑을 해야 한다. 통찰을 하여야 상대방을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한국 기독교가 세간의 지탄을 받는 것도 목회자나 교인이나 <집착>의 끈을 끊어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큰교회, 부흥하는 교회, 부자교회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돈과 권력과 명예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 교회에는 십자가만 있을 뿐, 예수가 없다고 한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많아도 예수를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적다고 한다. 현대인은 대부분이 <우상>을 섬기고 있다고 한다. ‘나는 성공해야 해’ ‘나는 부자가 되어야 해’ 등등, 내가 만든 내마음의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즉 철저한 <에고 의식>이다. 나의 하나님과 나의 예수님은 나의 성공을 위해 나의 목표달성을 위해 나를 도와주는 나의 <도우미>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빌고 또 빈다. <주옵소서, 더 주옵소서>. 집착은 욕망으로 변해 죽음이라는 절벽으로 떨어질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예수님은 나의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다. 또 나의 <에고>를 나의 십자가에 못밖으라 하신다. 하지만 인간은 손에 쥔 것을 절대 펴지 않는다.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서 늙은이가 된 이날까지 무엇을 배웠으며,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일등하는 법, 공부 잘 하는법, 싸워서 이기는 법, 생존하는 법, 출세하는 법, 부자가 되는 법, 사람 다루는 법, 잘나게 보이는 법, 존경받는 법,등등, 수많은 경쟁 속에서 피나는 노력과 배움을 통해 지금의 부와 명예를 손에 쥐었는데, 미련없이 내려놓는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차라리 손으로 태양을 가리는게 쉽지..
<내려놓음>의 이용규 선교사 말처럼 인간은 <자기애>와 <자기의>로 뭉쳐진 <에고 덩어리>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직분과 어설픈 십일조와 약간의 기부금과 생색나는 봉사로 <자기의>를 나타낼 뿐이다. 더우기 <내몸처럼>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엄청난 <계명>이다. <이웃>에는 내가 좋아하는, 내가 필요로 하는, 나와 코드가 맞는 이웃만 있는게 아니다. 사랑하는 이웃보다 꼴보기 싫은 이웃이 더 많다. 미워하는 이웃보다 무관심한 이웃이 더 많다. 거기다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면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다. 그런데 <내몸처럼>에 방점을 찍고나면 모든 것이 허탈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아내, 내 부모, 내 자식도 <내몸같이> 사랑하기가 힘드거늘, 하물며 돌아서면 남남인 별의별 이웃들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하심은 너무나 가혹한 <명령>이 아니신가. 결국 나의 <집착>과 <욕망>을 칼로 끊어버리고, 나의 모든 <자기애>와 <자기의>를 <내려놓고>, 나의 죄를 <참회>하고, 나의 <에고>를 십자가에 매닮으로써 내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어,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천국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며, <좁은 문>인가보다.
사업체 자가 진단 -1편<Buyer SWOT 분석> (5/20/2013)
뉴저지 한인회에로 부터 6월에 있을 이민초보자를 위한 <비지니스 매매>와 관련된 강의를 청탁받았다. 짧은 시간에 얼마만큼의 정보전달이 될지 의문이기도 하지만, 이민사회 한인들을 위한다는 긍정적 취지가 공감되어 강의를 수락하였다. 또한 제 독자들에게도 사업체 구입에 일말의 도움이 된다면 미천한 지식이나마 함께 공유하고자 이 글을 쓴다. 이와 유사한 내용은 이미 2007년에 몇회에 걸쳐 칼럼으로 쓴 기억이 있으며, 나도 12년전 무작정 이민왔을 때 한인사회의 누군가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더라면 몇년의 시행착오는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이 글을 씀을 양지해 주시기 바란다.
1. Buyer의 SWOT분석
사업체를 구매하기 전에 반드시 점검해야 할 사항이 있다. 무슨 사업을 할 것인가? 즉 <업종 선정>이다. 흔히들 ‘이민왔을 떄 공항에 누가 마중나왔느냐’에 따라 마중나온 사람의 업종을 하게 된다는 일설일 것이다. 바쁜 이민생활 중에 공항에 마중나간다는 자체가 가장 가까운 친척이거나 친구일 것이고, 이민 비지니스에 문외한인 초보자는 당연히 그 사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업체를 사는 것은 집을 사는 것과는 천양지차로 다르다. 집을 잘못 사서 망할 우려는 극히 희박하지만, 사업체는 잘못 사면 망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집은 검증된 정보와 상호비교 가능한 정보가 많고, 초보자라도 직접 확인할 방법이 많다. 또 구매자의 능력이나 가변요소 (variable factor)가 많지 않으므로 선택이 쉽다. 또 집값은 경제 동향에 따라 일률적으로 변화하므로 가격 예측과 매매시기가 가능하다. 하지만 사업체는 누가, 어디서 무슨 사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사업체라고 하더라도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기 정보제공자 (IP : Information Provider)가 누구냐에 따라 출발점이 달라지고, 향후 이민생활이 달라진다. 업종 선정이 이민 최초의 이정표인 셈이다. 사업은 흔히 전쟁에 비유한다. 사업은 사업 주체가 <나 자신>이다. 친척이 내가 될 수 없고, 친구가 내가 될 수 없다. 사업 주체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이민온 사정이 다르고, 처해진 상황이 다르며, 살아온 경험이 다르다. 성격이 다르고, 가족 상황이 다르고, 적성이 다르다. 또 투자할 수 있는 자금 규모가 다르고 신분이 다르다. 나이가 다르고 건강상태가 다르다. 선호하는 업종이 다르고, 싫어하는 업종이 다르다. 그리고 지금 현재와 지나간 어제의 비지니스 상황이 다르고, 내일의 예측가능한 상황이 다르다. 사는 지역이 다르고 자녀들 교육문제가 다르다. 이민와서 배운 사업 경험이 다르고 신용점수와 세금보고가 다르다.
<업종선정>을 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Buyer의 <SWOT 분석>이다. 손자병법의 知彼知己 (지피지기)면 百戰百勝 (백전백승)은 Seller와 Buyer의 <SWOT분석>에 해당한다. 이것은 본인 스스로 자가 진단을 하거나, 믿을 수 있는 비지니스 전문가들을 만나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강점 (Strength Point)와, 약점 (Weakness Point)이 있다. 예를 들어 사교성이 좋고 말 잘하는 사람이 있고, 수줍음이 많고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 있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있고, 영어를 거의 못하는 사람이 있다. 장사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다. 사업 자금이 충분한 사람이 있고, 빈손으로 이민온 사람이 있다. 자녀가 어려서 영업시간 중에도 아이들을 돌보아야할 사람이 있고, 종교나 기타 문제로 일요일은 반드시 쉬어야 하는 사람이 있다.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과 혼자서 사업체를 운영해야 할 사람도 있다. 심지어 부부 사이가 금실이 좋은 사람이 있고, 만나면 원수같이 싸우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은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황분석이다. 그리고 기회요소 (Opportunity )와 위협요소(Treat)는 향후 예상되는 내적, 외적 긍정적 요소와 부정적 요소다. 이 네가지를 영역별로 나누어 반드시 기록해 보자. 이렇게 기록해 보면 이를 경영 컨설팅에서는 <현상분석>이라고 한다. 각 <현상>마다에는 <Issue>화 할 수 있는 문제점이 도출되며, 그에 대한 <해결방안>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SWOT>분석에서 대부분의 <Issue>와 문제점에는 <해결방안>이 있기 마련이다.
창업을 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한 세가지 요소가 있다. 사람과 자금과 기술이다. 사람 (인적 자원)은 경영주체와 종업원으로 나눌 수 있으며, 종업원은 꼭 필요한 핵심요원과 단순 노동인 가변요원으로 나눌 수 있다. 자금은 사업의 규모에 따라 다르며, 초기 투자비용과 운영자금으로 나눌 수 있다. 기술요소는 사업을 성공할 수 있는 차별화 요소, 창의적 요소, 우월적 요소 (경험, 지식, 적성)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이민사회의 한인 비지니스는 대단한 사업들이 아니다. 각 평가 요소마다 이민자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별반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Buyer SWOT 분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업주체>와 <사업의지>다. 미국 이민의 삶은 자체가 힘들고 고달프다. 무슨 사업을 하더라도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외로움을 수반한다. 그리고 일하는 영업시간이 길며, 대부분의 일하는 환경이 열악하고 한정적이다. 손님도 낯설고 언어도 낯설고 장사도 낯설다. 또 이민이라는 자체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버린 낯설고 물설은 땅에서 나머지 인생을 보내야 한다. 그러기에 <SWOT> 분석에서 도출된 <Issue>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사업주체인 <나 자신>인 것이다.
사업체 자가 진단 – 2편 <사업주체 분석> (5/27/2013)
<사업주체 > :
먼저 누구와 사업을 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 사업 주체가 부부인가, 혼자인가, 동업인가, 위탁경영인가, 매니저 관리인가, 공통투자인가? 에 따라 사업계획이 전혀 달라진다. 나의 보편적 의견은 이민 초보자일수록 동업이나 친척의 위탁경영이나 매니저 관리, 공동투자는 피해야 한다. 이러한 경영형태는 내 자신이 충분한 사업경험과 관리 노하우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초보자들은 반대로 스스로 경험이 없기때문에 위험요소를 줄이기 위해 동업이나 공동투자를 한다지만, 이런 형태의 사업은 더 많은 위험요소가 내재되어 있음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된다. 역으로 한인사회 사업이라는 것이 대부분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사업들이 아니다. 좀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한국인이라면 이민 초보자라 하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맘앤파 비지니스들이다. 이민온지 오래된 선배들은 이민 초보자가 사업체를 덜커덩(?) 매입하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한다. 겁도 없이, 장사 경험도 없이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될려고 이민 오자마자 사업을 한다고 어름장을 놓는다. 적어도 남의 집 종업원 생활을 몇년을 해보고 해야 한다고 성화다. 틀린 이야기도 아니지만 시대에 맞는 이야기도 아니다. 종업원 생활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사업지식이 많지 않고 제한된 한계성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업 경험이나 훈련이 필요하다면 사업체를 인수하고 충분한 교육기간을 계약서에 명시하고 보완조치를 마련하면 될 일이다. 지금은 스피드 시대다.
한인사업 주체의 핵심요소는 첫째가 내가 사업에 직접 참여해야 하고 내가 사업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사업 주체들이 즐겁게 일해야 한다. 한인 비지니스는 대부분이 부부 중심이다. 아무리 먹고 살기 위해 장사를 한다지만 매일 싸우고 원수처럼 지낸다면 종업원들과 사장 사이는 원만하겠는가. 가정에서는 부부사이지만 사업장에서는 동업자다. 그런데 동업자에게 막말을 하고 욕을 하고 싸운다면 아무리 좋은 가게를 구입하고 아무리 좋은 사업분석과 사업계획을 짜 놓은들 제대로 운영이 되겠는가. 장사가 잘 되는 가게의 공통점은 좋은 로케이션이 아니라 가게 사업주체와 종업원들의 얼굴 표정이다. 가게안의 사람들 (손님, 종업원, 사장부부)이 모두 웃는 얼굴들이면 그 가게는 잘 되는 가게다. 그래서 나는 부부사이가 좋지 않으면 타국만리 이국땅에 와서 가족들 모두 고생시키지 말고 한국으로 되돌아 갈 것을 권유한다. 이민온 남자는 <사막의 낙타>와 같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자녀들을 무슨 대단한 인물로 키우겠다고, 언제 총을 들이댈지 모르는 열악한 영업 환경에서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쉬는 날도 없이 몸이 어스러지게 고생하느냐는 것이다. 부부는 동업자다. 동업자에게는 서로 잘 해야한다. 부부 관계는 싫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서로 좋아해야 한다. 밉더라도 이쁘게 봐주고 꼴보기 싫더라도 좋게 보아주어야 한다. 경영주체가 흔들리면 경영기반이 흔들리는 것과 같다. 비지니스 컨설팅을 아무리 잘 하면 무얼 하나. 부부 서로가 정 꼴보기 싫으면 돈 많이 벌 때까지만이라도 각서쓰고 사이좋게 지내시길 소망한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공평하게 이등분하여 멋있게 헤어지면 될 일이다.
<사업의지> :
전쟁터에 나간 병사가 싸울 의지가 없으면 그 병사는 죽은 시체나 마찬가지다. 나는 적지않은 경영서적을 읽어보지만, 부자가 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독한 놈>이라는 것이다. 최고학부 출신들은 따지는 것이 많아 부자가 되지 못한다. 부자집 자식들은 고생을 하지 않으려 하고 허황된 꿈만 꾸니 부자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부자가 3대를 못간다. 한번 실패한 사람들은 겁이 많아져서 부자가 되지 못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고 시작도 하기전에 포기해서 부자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정주영 회장은 <하기는 해 봤어?>의 명언을 남긴다. 그러니 부자는 학벌도, 재산도, 가난도, 실패도 필요한 것이 아니다. 부자들은 누구보다 강한 <사업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민와서 성공한 이민 일세대들은 그들이 좋은 학벌에 잘난 집안 출신들이어서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되돌아 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넜고, 막다른 골목에 몰렸으며, 내가 주저앉으면 죄없는 가족 모두가 거리에 나앉게 되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독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부자가 된 것이다. 물론 독하게 부자가 되었기에 잃어버린 것도 많고 후회되는 일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가질수는 없고 또 하나님께서 다 주시지도 않는다. 사업은 전쟁이다. 싸울 의지가 없으면 사업을 해서는 안된다. 겁을 내면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 투견장이나 대기업 인사위원회나 공통된 점이 있다. 투견장에서는 아무리 과거 챔피언이고 싸운 경력이 우수하다 하더라도 심하게 부상당했던 투견은 다시 사용하지 않는다. 그 개는 이미 <공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60을 바라보는 우리 나이때 창업을 하면 실패하는 확률이 높은 것은 <겁>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한국이 잘 살게 되고, 국민소득이 높아진 언젠가 부터 사업을 시작할려는 사람들의 <사업의지>가 너무 약해진걸 절감한다. 손쉽고 편안한 장사만 찾는다. 그러면서 돈 잘버는 장사는 한인 비지니스에는 없다. 미국 최고 학부를 졸업하고 미국주류 사회를 상대로 고도의 기술력 사업이나 창의력을 갖춘 사업이면 가능하겠지만, 대부분의 한인사회 비지니스는 지금도, 향후에도 열심히 일하겠다는 <독한 놈>만이 살아남을 것임은 자명하다.
사업체 자가 진단 -3편 <사업자금> (6/3/2013)
<사업자금과 Cash Flow>:
사업주체가 합심하여 사업의지가 확고하면 얼마를 투자해서 한달에 최소한 얼마를 벌어야 할지를 계산해 보아야 한다. 앞장에서 분석한 <Buyer SWOT 분석>을 바탕으로 내가 투자할 수 있는 <사업자금>에 대해 윤곽을 정해야 한다. 융자는 은행 SBA Loan과 은행 자체 비지니스 융자, 그리고 Seller의 오너융자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올해는 작년과 재작년에 비해 은행 대출이 많이 용이해졌다. 그렇다고 누구에게나 대출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Seller의 3년치 사업체 Tax Report>이고, 그 다음이 <Buyer의 Credit과 개인Tax Report> 이다. 그리고 Buyer의 신분 (은행 SBA 융자는 영주권자와 시민권자에 한해 가능함)과 담보설정 능력과 사업 경험이 중요 점검사항이다. 경우에 따라 보증인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모든 요소가 은행대출에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상황에 따라 변수가 많으므로 미리 은행 대출관계자와 상담을 받는 것이 현명하다. 그리고 <초기 투자비용>에는 사업체 구입 자금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은행 융자비용, 변호사 비용, Landlord (건물주)가 요구하는 Security Deposit 비용 (Case마다 다름, 통상 2~3개월 Rent 를 요구하지만 더 이상을 요구하는 곳도 있음) 등이 있다. 그리고 초기 운영자금이 필요한데 초기 물품 구입자금, 1주일치 이상의 최소 인건비, 광고비, 한달 생활비, 비상자금 등이 필요하다. 그외에 경우에 따라 내부 수리비용이나 장비 교체비용이 들수도 있다. 유대인들은 이것 외에도 3번의 재도전 자금을 준비한다고 한다. 사업에는 의외의 변수가 많으므로 계획대로 장사가 안될 경우 3번까지 재투자를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다시 매물로 내놓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자금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므로 최소한의 부대비용만 준비한채, 죽기 살기로 열심히 일하는 것이 현실이며, 그래서 <사업의지>가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업체 자금계획을 세울 때는 <오너융자>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2,3년전에는 은행 대출이 거의 중단 상태였으므로 Seller들이 울며 격자먹기 식으로 <오너융자>를 해 주고서라도 가게를 팔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리고 세금 보고가 잘 되어있는 좋은 가게는 구태여 오너융자를 해 주지 않아도 팔 수 있기 때문에 Seller들이 꺼리는 입장이다. 그리고 오너융자는 은행융자 기간 (Lease기간에 준함. SBA 융자는 통상10년)에 비해 불과 2,3년이며, 이자도 은행보다 비싸므로 자금부담이 훨씬 더 많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사채나 Credit Card회사의 융자는 가능한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사업에는 내가 예측할 수 없는 가변요소가 수시로 발생한다. 항상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자금의 여유를 가지고 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리고 개인 <Cash Flow>를 만들어보자. 아직은 사업체가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구체적인 <Net Income>을 만들기는 어렵겠지만 먼저 한달에 소요되는 생활비를 기록해보자. 집모게지 비용 ( 혹은 아파트 Rent비), 집 관리비, 자동차 모게지 비용, 사업체 융자비용, 의료보험료, 제반 보험료(생명, 자동차, 집), 전기, 개스, 전화비, 자녀 교육비, 식비, 종교단체 헌금, 교통비, 외식비, 문화생활비 (의류, 여행, 미용 등), 각종세금 (개인, 사업체, 집, 부동산) 등을 계산해 보자. 생활비의 필수 항목과 선택항목으로 나누어 최저 생계비를 산정해 두자. 그러면 한달에 얼마를 벌어야 생활하고 각종 융자 비용을 공제한후 얼마를 저축할 수 있겠는지 결정해야 사업목표가 정해진다.
<Credit 관리와 세금보고, 신분관리> :
미국은 <기록(record)>을 중요시하는 나라다. <적당히>나 <봐주기>가 통용되는 나라가 아니다. <기록>은 지워지지 않는한, 끝까지 남는다. <Credit>을 쌓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명기하지는 않겠지만, Credit을 쌓는데도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무너진 Credit을 복구하는데도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갚아야 할 돈은 제때에 갚는 것과 가능한한 빚을 지지 않는 것이다. 소액으로 크래딧이 망가지는 억울한 경우는 판매회사와의 마찰로 미지불 상태가 누적되어 콜랙션으로 넘어간 경우다. 화가 난다고 그대로 방치하면 내 크래딧만 망가진다. 문제가 발생하면 설령 판매자의 잘못이라 하더라도 즉시 해결해야 한다. 특히 Credit Card로 빚을 얻고 지출을 남발하는 것은 <노예의 덫>에 걸리는 격이다. 미국의 생활은 <허세 = 과다한 소비>를 조장하는 사회인 동시에, <노예의 덫>이 곳곳에 숨겨져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 사람은 <집>에 대한 욕심이 많다.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과시하기 쉬운 것이 <집>과 <자동차>다. 이민을 와서 무슨 장사를 해서 먹고 살 것인가를 결정도 하기 전에 대궐같은 집과 고급 자동차부터 산다면 양쪽 발에 <노예의 덫>을 차고 미국 생활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이민 초보자에게는 집보다 사업체를 먼저 결정하라고 권하고 싶다. 사업체를 사는 것은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지만, 파는 것은 내 마음대로 팔리지 않는다. 그리고 <세금보고>도 꼭 해야 한다. 집이나 사업체를 구매할 계획이 있으면 얼마까지 세금보고를 할 것인지 유능한 <회계사>를 선정하여 미리 상담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미국에 체류하는 한 반드시 <합법적인 신분>을 유지해야 한다. 흔히들 미국에서는 <독수리>를 위조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위조 여권, 위조 서류, 위조 운전면허증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 유능한 변호사를 만나서 신분 문제를 합법적으로 유지 해야 한다. 나만 불체자로 추방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까지 추방되므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사업체 자가 진단 – 4편 <업종선정> (6/10/2013)
지금까지 <기본적인 Buyer 자가분석>은 끝났다. 이제부터는 수많은 사업 업종 중에서 무슨 업종을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업종 선정>은 <이정표>이며, <갈림길>이다. 이민 초보자는 지금부터 <번민과 혼란>의 연속이다. 주변의 Advisor라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만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고 그 사람들이 전문가가 아니라는데 혼란의 핵심이 있다. 주변의 Advisor들은 친척, 친구, 교회 목사님, 장로님, 친목 클럽 회원등 다양하다. 그들이 사심없이 선한 마음으로 충고를 한다고 전제로 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전문 컨설팅 지식이나 분석력이 부족하다. 나도 놀란 사실은 세탁소를 20년, 30년 한 사람도 세탁소 전체 시장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이 운영한 사업 규모와 지역에 대해서만 알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과 자신이 겪은 부분만 믿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규모 비지니스는 민족별로 선호하는 업종이 대부분 정해져 있다.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업종은 한국인이기 때문에 다른 민족들이 뛰어들어 경쟁하기 어려운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한인들의 업종을 여섯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하는 세탁소와 Drop Store이다. 두번째는 Food관련 사업이다. Breakfast, Deli & Convenience, Salad Bar, Beer & Deli, Coffee Shop, 레스토랑 사업 (미국식, 일식, 중식, 한국식), Pizza 레스토랑, 생선가게, 튀김가게, 야채가게, Meat가게, 빌딩매점, Food Truck 등이 대표적이다. 첫번째, 두번째가 No- Stock 사업으로 구분한다면 세번째는 Stock 사업이다. 대표적으로 Beauty Supply, Discount 사업, Dollar 사업, 맥주 도매상, Grocery, Convenience, Discount 도매상, 7-eleven, 의류가게, 등이다. 네번째가 장치사업이다. Car Wash, Gas Station, Laundromat, 노래방, 골프연습장 등이 대표적이다. 다섯번째가 서비스 사업이다. Nail & Spa, 술집, 꽃집 등이 대표적이고 여섯번째는 빌딩 임대사업으로 나눌 수 있다. 업종선정에서 중요한 것은 무슨 사업이든, 각 사업마다 장점과 약점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시대적 흐름에 따라 업종의 강세와 약세가 있다. 지면을 통해 각 업종마다 장단점을 비교해 드리지 못함은 가뜩이나 불경기에 힘들어 하시는데 혹시나 해당 업종에 종사하시는 분들께 누를 끼칠 수 있음이 첫번째 이유이며, 같은 업종이라고 하더라도 매상과 위치, 부대조건에 따라 매물의 분석이 다르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다.
하지만 지역 한인들이 대표적으로 오해하는 두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는 매물가격이다. 나는 비지니스 컨설팅 사업을 시작하면서 한인사회에 최초로 시도한 것이 몇가지 있으며,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매물의 Asking Price 뿐만 아니라 부대조건, 위치, 월 Net Income을 공개하는 것이며, 각 매물마다 고유번호 (4자리수)를 지정하여 허위광고를 근절하자는 취지다. 없는 매물을 있는 것 처럼 광고한다든지, Buyer에 따라 매매가격을 조작한다든지, 얼마가 남는지 최소한의 분석자료도 없이 Buyer를 현혹한다든지, Broker가 사업체를 직접 방문하여 사진을 촬영하고, Seller와 함께 매상분석 조차도 하지 않는 등등 일련의 사기(?) 행각을 막자는 것이다. 그리고 매물의 독점계약을 맺지않고 Open으로 받는 것이다. 그중 대표적으로 매물의 매매가격이다. 물론 매매 가격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원리에 따라,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경기 동향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같은 업종이라고 주매상에 동일한 배수를 곱하여 Asking Price를 정하는 것은 모순이 있다. 예를 들어 세탁소는 주매상의 60배가 아니다. 이 지역의 세탁소는 주매상의 30배부터 80배로 구분된다. 요즘 인기가 좋은 Drop Store도 매상의 40배가 아니다. 20배부터 55배까지 주매상 $500단위로 나뉘어진다. Breakfast도 30배가 아니라 20배부터 45배까지 나뉘어진다. 결론적으로 일주일을 며칠 일하며, 하루 몇시간 일하며, 고정지출비용 (특히 Rent비용)과 부대 조건에 따라 달라지며 최종적으로 한달에 얼마를 벌 수 있는가의 Net Income에 따라 Asking Price는 달라지는 것이다. 흔히 Seller가 몇년전에 얼마에 매입을 했던간에, 얼마가 투자 되었던간에 가장 중요한 기준은 현재를 기준으로 일년치 매상과 월 순이익임을 잊지마시기 바란다.
두번째 실수는 定量的 분석이 아니라 定性的 분석이다. 흔한 표현으로 ‘感 (느낌)이 안좋아’ ‘ 그 장사는 남는게 없어’ ‘그 사업은 한물 갔어’ 등등 시작도 끝도 없는 평가들이다. <感>으로 사업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대기업 회장이나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컨설턴터는 모든 표현을 수치로 정량적으로 표현하는 훈련을 받는다. 근거가 있어야 하고 Back Data가 있어야 하며, 비교분석할 대상이 있어야 한다. 얼마가 남아야 남는 장사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동종업종이라도 업체마다 다르다. 가진 돈에 따라, 처해진 상황에 따라, 그 업종을 해야 할 사람이 있고, 해서는 백전백패할 사람이 있다. 사람들의 무책임한 (근거없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마라. 사업은 나의 생사여탈이 걸려있는 생명줄이다. 자문을 구할 때는 구체적인 수치를 바탕으로 <Why?> 와 <Why not?>을 번갈아 질문해야 한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업종선정>은 이민생활의 갈림길이며 이정표다. 많은 전문가 (자칭, 타칭)들을 만나시고 상담한 내용들을 <SWOT 분석> 기준으로 모두 기록해 두어야 한다. 부지런히 정보를 수집하여 최선의 업종 선택을 하시기 바란다.
사업체 자가 진단 – 5편 <3C분석> (6/17/2013)
하고 싶은, 혹은 하여야만 하는 <업종선정>이 되었으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매물을 보러 다녀야 한다. 먼저 주변에 수소문하여 가장 믿을 수 있는 브로커를 선정하라. 그 분야에 전문가이고, 매물이 가장 많으며, 평판이 좋은 브로커를 선정해야 한다. 브로커는 Buyer로 부터 일체의 돈을 받지 않는다. 또 요즈음 매물은 <open>으로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Buyer는 Broker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나에게 가게를 사러 오신 Buyer중에는 상담은 커녕 문앞에서 쫓겨난(?) 분들이 몇분 계신다. 예를 들어 무턱대고 매물들을 모두 보여달라는 경우다. “요즘 쓸만한 매물 있어요? 돈 걱정은 하지말고 업종은 상관없으니 돈되는 매물을 모두 보여달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두리뭉실한 定性的 표현을 싫어한다. 나는 무례한 사람도 싫어한다. 나는 거의 반평생을 기획과 전략 분야에서 수치분석을 하며 일했다. <쓸만한>은 무엇이며, <돈되는>은 무엇인가? 돈 걱정을 하지 말라는 것은 얼마를 투자하겠다는 말인가? Buyer에 대한 정보를 브로커에게 정확히 제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컨설팅을 하며, 최적의 매물을 추천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가게를 처음 산다던가, 가진 돈은 적은데 무슨 가게를 해야할지 결정하지 못한다면 최선을 다해 성심성의껏 도와드릴 수 있다. 브로커는 하수인이나 적군이 아니라, Buyer의 참모이며 자문역이고 도우미다. 좋은 브로커를 잘 선택하여 활용하시길 바란다. 또 다른 예로 ‘좋은 매물은 시장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좋은 가게를 팔려고 하면 어떻게 할까? 같은 교회 사람이나 친한 친구에게 팔겠는가? 가까운 사이일수록 돈문제에 얽히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Seller가 선한 마음으로 아무리 좋은 조건에 팔아도 Buyer로 부터 싫은 소리 듣기 십상이다. 좋은 가게일수록 시장에 내놓아 정당한 평가를 받고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상식이다. 여러차례의 검증을 거쳐 여러 경쟁 매물들 중에서 선택받는 것이 좋은 가게다. 일단은 몇군데 브로커를 방문해서 매물의 종류와 매물 분석 자료를 보면 이 브로커가 일을 제대로 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설명하는 자료들이 명확한 근거없이 대충 얼무버린다거나, 분석자료도 없이 가게만 보여준다면 신뢰도가 떨어질 것이다. 매물이 몇개 없는 브로커는 보유한 매물이라도 팔기 위해 과대포장을 할 수 밖에 없다.
<매물 자료분석> :
매물은 가장 중요한 것이 <매상, Gross Sales Amount>과 <Net Income>이며 이 두가지 요소가 가게 가치를 결정한다. 흔히들 사업체를 초기분석할 때 <3C 분석>을 한다. 3C는 Customer, Competitor, Circumstance의 약자다. 즉 <고객분석>, <경쟁사 분석>, <환경분석>이다. 또 다른 하나는 Self- Company, 즉 <자사분석>이다. 매상 (Gross Sales)에는 위에서 열거한 4C 분석의 결정체가 수치로 나타난 것이다. 흔히들 이곳 교민들은 사업체 선정에 가장 중요한 것이 첫째도, 둘째도, 세째도 위치(Location)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얼핏 들으면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은 환경분석의 일부일 뿐이다. 3C 분석 결과는 별로인데 매상이 높다면 그럴 충분한 이유가 있다. 반대로 3C 분석 결과는 좋은데, 매상이 낮다고 하면 거기에도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때까지 내용을 종합하면 <Buyer SWOT분석>, <3C 분석>, <Seller SWOT 분석>을 해보면 그 가게의 <매상>에 대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원인없는 결과는 없다.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고객분석> :
주 고객의 구성원이 누구인지 파악해야 한다. 백인과 흑인이 다르고 생활 수준이 상류층, 중류층, 하류층에 따라 장사 스타일과 위험도와 난이도가 다르다. 인구분포도와 인구 증가률도 검증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고객층, 감당할 수 있는 고객층을 선정해야 한다. 대부분의 가게가 <20:80의 원칙>에 기준한다. 상위 20%의 고객이 전체 매상의 80%를 차지하는 것이다. 주인이 바뀐다고 단골 고객 20%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면 위험도가 높은 것이다. Seller가 독보적인 기술이나 손님의 혼을 뺄 정도의 놀라운 상술을 가지고 있다면, 상대적으로 Buyer가 쑥맥이라면 매상이 떨어질 확률은 높은 것이다. 또 그 가게의 현 주인이 몇년을 장사했는지도 중요하다. 2년동안 가격을 덤핑으로 해서 매상을 올려 놓았다가 가게를 팔기 몇개월 전부터 정상가격으로 올려서 판다면 고객은 점점 감소할 것은 자명하다. 유능한 브로커는 이런 가게들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정확하게 잡아낼 수 있어야 한다. 또 이런 매물은 받지도 않는다.
<경쟁사 분석> :
경쟁 업체들의 영업전략이나 경쟁력 비교도 중요하다. 주변이 대부분 덤핑을 한다면 나라고 용빼는 재주가 있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경쟁업체가 너무 강하면 시간이 갈수록 약자에게 불리하다. 약육강식이나 강자독식의 세상이다. 특히 장치산업이나 스탁사업은 약자가 강자를 이기기 어려운 구조다. 하지만 한인 업종들이 대부분 성숙기에 접어든지 오래된 사업들이다. 경쟁업체들도 오래 전부터 현재까지 진행되어 왔다면 현재 매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내가 돈이 많은 강자라고 하면 주변을 석권할 기회요소도 될 수 있다. 요즈음은 인터넷으로 해당 가게의 주변에 경쟁업체를 위성사진으로 모두 볼 수 있다. 그리고 직접 경쟁업체를 방문해 보면 주변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사업체 자가 진단 – 6편 <환경분석> (6/23/2013)
<환경분석>에는 <지역 환경분석>과 <사업 환경분석>을 나눌 수 있다. 먼저 <지역 환경분석>부터 살펴보자. 우리가 사는 필라델피아, 펜실베니아, 남부 뉴저지, 델라웨어 지역은 모든 업종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Buyer가 원하는 업종매물이 Buyer가 거주하는 지역에 있을 확률이 많지 않다. 우리가 거주하는 지역은 필라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원형(동그라미) 형태로 골고루 확산된 것이 아니라 동서방향과 남북 방향으로 부채살 (직선) 모양으로 뻗어진 형태다. 북쪽으로는 알렌타운까지, 서쪽으로는 웨스트 체스터, 델라웨어까지, 동쪽으로는 벅스카운티 위쪽으로, 남쪽으로는 남부 뉴저지 남단까지 분산되어 살고 있다. 즉 이동시간이 길다. 한국사람은 중국사람들과는 달리, 가장 번화한 다운타운 부근에서 살지 않는다. 그 주된 이유는 혈연과 학군 중심으로 변두리의 큰집부터 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게는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가장 많다. 한국인은 왜 다운타운을 사수하지 못하는가? 왜 한인타운이 흑인동네인 변두리 5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을까?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지만 다운타운을 지배하는 민족이 경제의 주류를 이룬다. 현재의 다운타운은 유대인이, 다운타운 주변은 중국인이 지배하고 있다. 다운타운 지역에 한국인 건물이 몇개나 될까? 나는 주된 원인을 한국인의 투자자본의 한계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인은 개별투자에 익숙하며, 공통 투자 개념이 거의 전무하다. 민족 성향일수도 있고 성공사례가 없어서일수도 있다. 그 저변에는 이 분야 종사자들의 전문성과 신뢰도가 낮다는 것이 가장 주된 이유일 것이다. 또 한국의 부자들은 우리가 사는 지역을 투자 지역으로 선호하지 않는다. 이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한인들은 빈손으로 이민와서 피땀흘려 모은 소액 자본가들이기에 위험을 감수하는 과감한 공동투자를 하지 못한다. 그러니 개인자본으로는 열악하여 다운타운의 건물들을 살 수가 없고 랜트비는 계속 오르니 변방으로 변방으로 튕겨져 나갈 수 밖에 없다. 이곳 한인들은 빈 건물(저렴한 랜트비)에 소자본으로 새롭게 꾸미는데 익숙하다. 한때는 세탁소와 Beauty Supply, 다른 한때는 Car Wash, Laundromat, 맥주 가게가 유행이었다. 또 한때는Breakfast 와 Drop Store이었다가, 요즈음은 네일 가게가 유행이다. 그러니 Nail 가게는 점점 늘어나고, 일하는 한국 종업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말 그대로 구인 전쟁이다. 언제나 그러하지만 유행하는 업종의 가게들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가는 경쟁력이 없는 가게는 문을 닫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지역적 제한>이다. 먹는 장사의 대부분과 Stock 장사는 다운타운과 흑인 번화가 지역에 몰려 있다. 변두리 백인 지역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세탁소와 Drop Store가 주종이다. 왜냐하면 백인 동네의 먹는 장사와 Stock 사업은 대부분이 프랜차이저이거나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한다. 다른 이유는 지역 규모에 비해 한국인의 숫자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즉 시장 규모가 작다. 우리 지역의 한인의 수는 3개주 (State)에 널리 분포되어 있으면서도 10만명을 넘지 않는다. 이중에서 한인들의 가게 숫자는 3천에서 4천개로 추정된다. 가게 매매 주기를 10년으로 본다면 일년에 팔려고 내 놓는 매물은 300개라고 가정할 수 있지만, 나의 자료분석으로는 일년에 1백개 정도가 매물로 나오는 것 같다. 나머지는 누적된 매물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 중에서 매물 가치가 있는 가게가 몇개나 될 것이며, 특히 내가 사는 집에서 반경 30분이내에, 원하는 매상의 가게가 나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러니 변두리 가게는 이사를 가지 않는한, 팔기도 어렵고 사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나의 Buyer 손님 중에 몽고메리 카운티 북부지역에, 주매상 3천에서 5천불 사이의 Drop Store를 사 달라고 등록된 손님만 10명이 넘는다. 그런 매상의 가게가 그 지역에 몇개나 되겠으며, 매물로 나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 수많은 한인 비지니스 브로커가 처음에는 요란하다가 대부분이 아침이슬처럼 슬거머니 사라지는 이유도 이 지역에서는 브로커라는 직업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시장규모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업환경분석>은 사업트랜드라고 할 수 있다. 이민 초보자들은 간혹 한국에서 유행하는 사업 아이템을 이 지역에서 최초로 시도해 본다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로 창업하는 경우를 볼 수 있지만, 성공사례는 희박하다. 그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사업환경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 미국 경제 정책, 특히 해당 지역의 트랜드에 맞추어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사업환경은 3,4년 단위로 유행 업종이 변한다. 대부분의 Buyer들이 해당 업종의 가게를 찾을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것은 성공할 확률도 있지만, 실패할 확률이 더 크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민의 삶은 일등으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대열에 끼여서 실패하지 않는 삶이다. 참고로 조언하면, 불경기에는 특히 빈 건물에 가게를 새로 만드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 초기 시설 투자비용과 BEP (Break- Even Point)가 되기까지, 혹은 희망 매상까지 올리기 위해 소요되는 기간과 지출비용, 기회 손실비용 등을 나열하여 Cash Flow를 만들어 보자. 그리고 무엇보다 적정 매상을 올릴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즉 위험도가 높다. 따라서 불경기일수록 자본과 경험이 많아야 가능하다. 즉 돈이 없어서 빈 건물에 가게를 차리는 것이 아니라 여유 자본이 충분하기에 위험을 감수하고 빈 가게에 시설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사업체 자가 진단 – 7편 <매상분석> (6/30/2013)
<매상분석>에는 두단계가 있다. <Offer계약>이전의 <서류상의 매상분석>과 <Offer계약>이후의 실질적인 <현장 매상분석>이 있다. 두가지 모두 비지니스 매매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이며, Buyer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Offer 계약이전 매상분석> :
지금은 가게에 들어가 상주하면서 실질적 <매상분석>을 할 단계는 아니다. 현장 매상분석은 <Offer Agreement>를 체결하고나서 하면 된다. <Offer Agreement>를 체결하는 주된 이유중 하나가 합법적으로 매상을 점검할 권리를 갖기 위함이다. <Offer>계약이 체결되지도 않았는데 매상과 관련된 그 가게의 비밀자료를 공개할 Seller는 없다. 지금 단계는 Seller를 만나서 브로커가 제시한 <매상분석자료>가 맞는지 구두 확인만 하는 단계까지이다. 브로커의 말만 믿어서도 안되며, 반드시 Seller와 직접 만나서 브로커가 작성한 서류상의 <매상분석표>를 확인하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도 서투른 방법으로 매상을 지레짐작하는 경우들이 있다. 가게 밖에서나 가게 안에 앉아서 하루종일 손님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카운트한다든지, 가게안의 빨래가 얼마가 걸려있는지로 추측한다든지, 주변 사람들의 근거없는 추측 매상을 믿는다든지, 여러가지 불확실한 방법으로 지레짐작하여 결정하는 것은 극히 우매스러운 방법이며 시간낭비다.
<Net Income 분석> :
<매상분석>의 목적은 <1년매상>과 <월Net Income> 분석이다. 이 두가지에 의해 가게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매상 분석자료>의 주요 항목을 점검해보자. <1년매상>은 일년치 컴퓨터 자료, 가게장부, 매출전표, 크레딧 카드 사용실적과, 2주일치 현장매상 자료 등,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자료가 해당된다. <주매상>이 수입이면 <상품매입 비용>과 <Sales Tax>를 공제하면 <판매이익>이 나온다. <상품매입 비용>은 동종 업종이라고 하더라도 <상품의 종류>와 <매출 비중>, 품목별 <상품원가>에 따라 산출하는 공식이 다르다. 유능한 브로커일수록 세부적으로 산출할 수 있어야 한다. 정확한 방법은 <상품매입원장>을 최소한 1년치를 받아 계산해 보아야 한다. 하지만 <Offer 계약> 이전에는 영업 비밀 사항이므로 Seller가 공개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상품매입원장>은 마진률을 역계산하면 매상을 알 수 있으므로 매우 중요한 자료다. 예를 들어 같은 컨비니언스 가게라고 하더라도 매출항목에 따라 계산하는 공식이 다르다. 델리항복, 그로서리 항목, 담배 항목, 기타 수입 항목 (Lottery, ATM 수입 등), 재고 소진율등으로 나누인다. 세탁소도 홀세일이 있는 것과 없는 세탁소는 달리 계산된다. Pick & Delivery도 성격에 따라 다르다. 같은 업종이라고 하더라도 판매가격에 따라 상품 매입비용의 적용률이 달라진다. 또 경기 동향에 따라 인플레이에 따라 달라지므로 매매를 많이 하는 경험 많은 브로커가 그래서 중요하다. 다음단계는 <영업이익>에서 <지출비용>을 빼면 <월 판매 순수익>이 나온다. 지출에는 <고정지출>과 <변동지출>로 나뉘어진다. 고정 지출의 주요항목은 <Rent 비용>이다. <Rent 비용> 계산도 CAM, Real Estate Tax, U/O Tax가 포함되어 있는지, 별도로 계산되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Rent 비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Lease 기간과 매년 인상률이다. 그리고 Security Deposit도 점검해 두어야 한다. <Lease 계약>은 쌍방 평등계약이 아니다. 전형적인 <갑과 을>의 일방 계약이다. 모든 일 처리는 <법>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Buyer는 유능한 변호사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변동지출>에 가장 중요한 것이 <인건비>다. 현재 Seller의 종업원 인건비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Seller SWOT>분석을 기초로 Buyer 당사자가 운영할 경우의 인건비를 추정할 수 있어야한다. <인건비>는 가게 주인의 <운용능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 가게마다 종업원 세금, 종업원 보험도 모두 다르다. 그 다음이 각종 <Utility> 비용이다. 전기세, 개스비, 수도료, 하수도료, 유무선 전화비, 광고비, 회계사비, 카드 수수료, 쓰레기 수거비, Supply 비용, 차량 관리비, 가게운영비 등이다. 그다음이 세금과 보험이다. 그리고 흔히들 간과하는 것이 장비 감가상각이다. 특히 시설 투자가 많은 <장치사업>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기계의 고장과 관계없이 새장비로 교체해 주어야 한다. 교체시기는 업종마다 다르지만 장비교체 비용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또다른 주요 항목은 <재고 소진률>이다. 팔기는 많이 팔아서 매상은 높지만 버리는 것이 많다던지, 창고에 쌓여 폐품이 되는 재고가 많다면 흔히들 ‘겉으로 남고 안으로 밑진다’는 대표적 요인이 된다. 마지막 팁으로 부언하면 <매상분석>은 <Best> <Worst> <Normal> 세가지로 만들어 보아야 한다. 그래야 만약의 경우를 대비할 수 가 있는 것이다.
<Offer 계약후 매상분석> :
이 단계는 매매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필수불가결의 과정이다. 이 과정은 Buyer의 변호사도 할 수 없고, 브로커도 대신 해 줄 수 없다. 같은 교회 장로님 가게라고, 누구 가게라고 <매상점검>을 직접 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잘못된다면 그 누구도 원망할 수가 없다. 만약 <매상점검>을 거부하는 가게라면 아무리 좋은 가게라 할지라도 깨끗하게 포기하기를 권한다. 2주일 매상 뿐만 아니라 확인할 수 있는 일년치 관련서류와 컴퓨터 데이타는 모두 점검하라. Seller가 숨기는 것이 많을수록 속이는 것도 많다. 내가 가게운영을 잘못해서 망하면 내탓이지만, 매상을 속아서 산다면 당신은 바보다.
사업체 자가 진단 – 8편 <매매계약> (7/7/2013)
매매계약은 크게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Offer Agreement>, <Sales Agreement>, <Lease Agreement>, <Settlement>이다.
<Offer Agreement>:
원하는 매물을 찾아서 서류상의 <매상분석>이 끝나고, Seller와 직접 만나서 매상분석 자료에 대한 <확인 절차>가 끝났다면 브로커를 통해 <Offer Agreement>를 작성해야 한다. 이 계약서의 목적은 <매매가격>과 중요한 <매매조건>에 합의하기 위함이다. 즉 Buyer는 Offer계약서에 제시한 조건이 맞으면 가게를 사겠다는 것이고, Seller는 해당조건이 맞으면 다른 사람에게 팔지 않겠다는 합의서다. 물론 <Offer Agreement>도 법적 효력을 갖게 되며, <계약조건>이 맞는데도 사지 않거나, 팔지 않으면 위약금(Penalty)을 상대방에게 지불해야 한다. <매매가격>은 지역과 업종에 따라 다르지만 Market Trend와 주변 시세를 충분히 알아본 다음에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 <매매조건>은 <Sales Agreement>를 맺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항목들이며, 이 조건들이 맞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해약할 수 있다는 단서를 꼭 붙여야 한다. <매매조건>의 주요 항목은 첫째, 제시한 일년 매상이 매상점검시 오차범위내에서 맞아야 하며, 둘째, 기존 리스 계약서를 확인한 후 매물 분석자료와 일치해야 하며, 향후 본계약에서 Lease가 스인되어야 하고, 세째, 은행융자가 승인되어야 한다. 네째, 재고를 얼마로 인정할 것인지, 교육은 얼마동안 할 것인지 등이 명기되어야 한다.
<Escrow Money> : 매매와 관련된 일체의 계약을 보증하기 위해 계약금, 일명 <Escrow Money>를 브로커의 Escrow Account에 Deposit해야 한다. 간혹 브로커가 이 계약금을 Escrow Account에 보관하지 않고 개인구좌에 입금했다가 계약이 해약되었는데도 계약금을 Buyer에게 돌려 주지 않아 감옥에 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브로커가 계약금을 돌려주지 않는 것은 형사법에 해당한다. 그리고 설령 계약이 Buyer, Seller 일방의 의도적 파기가 되었다 하더라도 위약금 지불은 법원의 판결이나 쌍방 합의와 서명날인이 있어야 가능하다. 또한 <계약조건>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Buyer에게 계약금을 돌려주어야 하는 것은 계약서에도 명기되어 있으므로 브로커가 보관할 수 없으며 더구나 개인 착복을 했다면 있을 수도 없는 어리석은 행위다. <Sales Agreement>시 Seller가 변호사를 고용할 경우에는 쌍방 합의에 의해 Seller 변호사가 계약금을 보관할 수도 있다. 하지만 Buyer변호사가 계약금을 보관하는 것은 계약금의 취지에 어긋나므로 중간 입장의 브로커가 보관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따라서 처음부터 믿을 수 있는 브로커를 고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현장 매상점검> : <Offer Agreement>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며, Buyer가 <반드시> 해야 할 권리이다. 통상 한인 사회에서는 일주일에서 2주일의 매상 점검 기간을 명기한다. 매상 기준은 당연히 일년치 평균 매상이다. 간혹 Seller가 매상을 속인다거나, 장사가 잘 되는 성수기의 매상을 고집하는 것은 자동 해약조건이며, 어리석은 행위다. 매상을 속이는 것은 Seller, Buyer, Broker 모두의 시간 낭비이며, 그 매물은 삽시간에 매상을 속인 가게로 한인 사회에 소문이 날 것이며, 종업원들의 동요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브로커는 Seller가 매물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가게는 매물로 받아서는 안된다. 브로커가 믿을 수 없는 가게를 어떻게 Buyer고객에게 소개할 수 있단 말인가. 간혹 어떤 Seller는 본인도 이 가게를 살 떄 매상체크를 하지도 않고 믿고 샀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그건 자랑이 아니라 도박을 한 것이다. 다행히 매상을 속지 않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나 행운에 해당하는 것이다. 매매 거래는 공정해야 하고 떳떳해야 한다. 가게를 사는 대부분의 Buyer는 전재산을 투자하는 것이다. 거기다 은행 융자까지 얻어서 가게를 사는 것이다. 따라서 Seller는 매상을 입증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앞장에서 이미 구체적 항목을 설명드렸듯이 일년치 이상의 매상장부, 상품매입원장, 크레딧 카드 사용 실적서, 임금 지불명세서, 임대료 지불 명세서, 각종 공과금 지불명세서 등을 모두 제시해야 한다. 브로커나 변호사는 직접 매상 점검을 할 수도 없고 책임도 없다. 매상체크 하는 방법은 가르쳐줄 수 있지만, 브로커 말만 믿고 샀다는 자체가 바보스러운 변명이다. 매상체크는 Buyer 본인이 직접 해야 하며, 그에 따른 모든 책임은 Buyer에게 있음을 절대로 잊지말기를 부탁드린다.
<은행융자> : 매상점검이 완료되었으면, 본계약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은행 대출 담당자와 <은행융자 가능성>에 대하여 직접 미팅을 하여야 한다. Seller의 3년치 Tax 보고서, 매물분석 자료, Buyer의 3년치 Tax보고서, Buyer Credit Report, 은행 잔고증명서, Financial Report등이 필수다. 유능한 브로커라면 Offer계약 이전에 미리 은행융자와 리스 승인 가능성 여부를 검토했어야 한다.가게를 구매할 때 은행융자는 50%에서 60% 이내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20%, 혹은 30% Down Payment를 하고도 융자를 받을 수는 있지만 너무 무리한 융자는 경기가 급감할 때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단계들이 끝나면 Buyer는 변호사와 회계사를 고용하여 <Sales Agreement>를 만들어야 한다.
사업체 자가 진단 – 마지막편 <매매3인방> (7/9/2013)
가게 매매에는 꼭 필요한 세사람이 있다. 변호사와 회계사, 그리고 브로커다. 사업체 매매에 한정하여 말한다면 이들은 전문가인 동시에 성실한 사람이어야 한다. 고객이 필요로 할 때, 즉각 응답하고, 신속하면서도 정직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지역 한인 사회는 좁기 때문에 이들에 대하여 수소문을 해보면 그들의 평가를 금방 알 수가 있다. 교민들 사이에 평가가 좋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이든간에 굳이 고용할 필요가 없다. 이들은 여러분이 도움을 받으려고 여러분의 돈을 주고 고용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변호사> : 매매계약에서 변호사가 할 일은 <Sales Agreement>작성, <Lease Agreement>체결, <Seller Credit 조사 –저당, 압류, 융자, 소송,소유권 등>, <융자관련 서류들> <라이센스 등록과 이전>, <Settlement 서류작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나는 고객들에게 변호사를 선임할 것을 권장한다. 특히 Buyer에게는 필수조건임을 권한다. 간혹 브로커가 계약과 관련된 일들을 대신해 주기도 하지만 브로커는 법률 전문가가 아니다. 만약의 법적 하자가 발생할 경우 그 책임은 고스란히 매매 당사자가 책임져야 한다. 가게 계약과 관련된 변호사의 일들은 고난도의 업무들이 아니다. 또한 대부분의 이민 1세들은 영어가 미숙하다. 따라서 변호사가 권위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거나, 불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한다거나, 과다한 수임료를 청구한다거나, 브로커보다 못한 전문성으로 고객에게 금전적 피해를 입힌다면 그 변호사는 한인사회에 악소문이 날 것이다. 나는 한인 변호사들이 한인들을 위하여 좀더 봉사하는 마음으로 신속하고 성실하게 일하여 주길 소망한다.
<회계사> : 회계사는 <법인등록 여부>, <사업자 등록>, <세금대책>과 향후 사업시에 발생하는 제반 회계업무를 진행하고 조언하므로 역시 중요한 역활이다.
<브로커> : 많은 한인들이 브로커에 대한 선입관이 좋지 못하다. <브로커>라는 단어 자체가 <사기꾼?>을 연상케 한다. 별로 하는 일도 없이 매물가게 주소 정도를 알려주고 고액의 커미션만 챙긴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에서 온지 얼마되지 않은 이민 초보자들은 브로커의 커미션을 알면 기겁을 한다. 한국에 비해서 커미션 비율 (한인사회에서는 통상 6%, 백인 주류사회에서는 10%)이 너무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민초기에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공감한다. 하지만 커미션 비율이 문제가 아니라 비지니스 브로커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품질이 문제다. 그리고 집 브로커와 비지니스 브로커는 하는 일이 전혀 다르다. 집 매매는 인종에 따라 다르지 않지만, 비지니스 매매는 인종별, 민족별로 대표되는 업종이 정해져 있다. 따라서 시장이 작고 한정되어 있다. 집 매물은 인터넷에 모두 올라가 있어 지역 브로커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선정 기준이 까다롭지 않다. 대부분의 매물은 독점권이 인정되어 Seller Agent와 Buyer Agent가 구분되어 있다. 또 변호사, Inspector, 모게지 회사, 타이틀 회사 등, 각자의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고, 각자가 해당 수수료를 받는다. 하지만 비지니스 매매는 모든 경계와 룰이 불명확하다. 독점권이 인정되지 않고, 매물에 대한 변수가 너무 많고 매물마다 분석 기준이 모두 다르다. 따라서 해약되는 확률도 상대적으로 높다. 그래서 비지니스 매매는 집 매매처럼 브로커끼리 코압이 잘 되지 않는다. 또 비지니스 에이전트로 회사에 입사해도 장기간 생존하기가 쉽지 않다. 일년에 매매건수가 많지 않은데다가 6%의 커미션을 받아서 Seller, Buyer 브로커끼리 3%씩 나누고, 그나마 3%도 회사에 절반가까이 납부하고 나면 실질 소득은 얼마 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가뜩이나 작은 한인시장의 Seller나 Buyer고객이 그 많은 비지니스 브로커 중에서 나를 선택할 확률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다. 브로커 스스로의 경쟁력이 없으면 수입도 없는 것이다. 운이 좋아서 매물 정보를 알아내어 광고를 하고, 그 광고를 보고 운이 좋게 가게를 사겠다는 Buyer를 만나 무사히 Settlement를 마쳤다고 하자. 그런 기회와 행운이 다음번에도, 내년에도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비지니스 브로커는 회사 브랜드가 아니라 개인 브랜드다. 브로커 개인이 남들과 다른 전문성이 있어야 하고, 많은 매물과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하며, 무엇보다 한인 사회에서 신뢰를 잃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Seller나 Buyer가 브로커를 통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광고를 내어 매매를 성사시키는 것도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며, 더 많은 위험요소와 기회손실 비용을 초래한다. 브로커의 커미션은 Seller가 지불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Buyer가 지불하는 것이기도 하다. 브로커는 고객이 지불하는 커미션 이상의 가치를 양쪽 고객 모두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그동안 9회에 걸쳐서 간략하게나마 사업체를 매매하는 과정과 사업체를 스스로 분석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거듭 반복하지만 집을 잘못 사서 망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사업체를 잘못 사면 망하기 십상이다. 여러 측면에서 비교 분석해 보고,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 조언을 얻어야 한다. 사업체 구매의 최종 결정은 여러분이 하는 것이며, 성공과 실패의 최종 책임도 여러분의 몫이다. 건승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