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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과 채움, <비움>편 (01/01/2011)
또 한해가 가고 한해가 온다. 시간은 정함이 없고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흐르면서 시간을 지나간다. 지난 한해동안도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았음에 감사하고, 그럼에도 그 사랑을 돌려주지 못했다. 받기만 하고 주지 못함은 나의 게으름과 뻔뻔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죄송스럽다. 아무쪼록 새해에는 더욱 더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과 사랑이 흘러넘치기를 소망한다. 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라 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라 했다. 새해에는 조금 덜 뻔뻔해져야겠다.
새해 첫 주제로 <비움과 채움>이라 제목이 너무 무거운 것 같고 종교적 색채가 강하여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나의 새해 다짐으로 여기고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본다. 내 스스로 질문을 한다. 나의 <그릇>에 검정 색깔의 물이 절반쯤 담겨져 있다. 이 검정물을 비우고 깨끗한 생수로 가득 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각자 그릇에서 검정물을 어떻게 비울 것인가. 또 비운 다음에 무엇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그릇>은 그 사람의 인격일 수도 있고 믿음일 수도 있다. 또 각자 타고 난 생김새일수도 있고 운명일수도 있다. <그릇>안에 담겨 있는 검정물을 비우기 위해 그 <그릇>을 움직일 수 없다고 가정을 하자. 결코 한꺼번에 비울 수 없고 조금씩 증발시키거나 조그만 티 스푼으로 퍼낼수 밖에 없다고 가정을 하자. <비움>이란 <채우기> 위해서 사전에 하여야 할 필수 선결조건이다. 대부분의 종교가 <비움>을 요구한다. 비움을 두가지로 구분하면 내 스스로의 <비움>과, 내 의지와 상관없는 <비워짐>이 있을 것이다. 비워짐은 <상실>일 수도 있고 <이별>일수도 있다. <비움>의 대상은 분노, 원망, 욕심, 질투, 미움, 시기, 복수 등,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낸 <나쁜 마음>이라고 통칭하자. 그 <나쁜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는 낮아져야 하고 겸손해야 하며 용서해야 함을 세치 혀로는 알고 있다. 그래서 <내려 놓음>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의 <비움>이 얼마나 힘들면 깊은 산속에 들어가 몇년을 벽만을 바라보고 수양을 하겠으며, 요즈음은 선방이라는 곳에서도 모여서 각자의 마음에 스스로 묶어 놓은 <나쁜 마음>을 버리는 수련을 하겠는가. 또 기도할 때마다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라고 참회를 할까. 과연 인간의 욕망을 버릴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인간의 죄>는 사멸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갚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으므로, 우리의 <그릇>은 깨끗한 상태로 유지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욕망>이 존재하는 한, 그 빈 그릇은 세월이 지나면서 다시 검정물로 채워진다. 또 다른 문제는 <비움>의 그 과정이다. 설령 비울 수 있다 하더라도 <비움>의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 하는 것이다. 개인에 따라서 한달, 일년, 십년, 아니 평생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비우는 동안에 사람은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계속 움직인다는 것이다. 사람은 관계속의 동물이다. 깊은 산속에서 독야청정할 수는 없다. 내 자신은 가정과 사회에서 관계라는 체인으로 연결되어 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비교되고 경쟁받게 된다. 요구하고 요구받게 된다. 그래서 욕심이 다시 생기고 검정물이 다시 고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과거의 상처나 아픔들을 하나씩 꺼내어 이해하고 용서하여 지울 수 있다고 치더라도 새로이 발생하는 욕망과 상처와 아픔은 어떻게 할 것인가. 평생을 비우다가 죽을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비움>보다 <비워짐>이 더 어려운지 모른다. <비워짐>을 <상실>이라고 전제하면 <상실>은 잃어버림이며 헤어짐이며 잊혀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리고 사랑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선함을 잃어버린다. ‘주디스 바이올스트’의 <상처입은 나를 위로하라>에서 보면 인간은 어머니의 태아에서 나오면서 탯줄이 끊어질 때부터 <상실>의 상처를 받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유아시절, 청소년 시절, 청장년 시절, 노년시절, 임종의 순간까지 <상실>의 아픔을 겪는과정을 소개한다. 그녀의 글을 인용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사랑하는 것들의 상당 부분을 빼앗기거나 포기하거나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상실은 삶을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다. 상실은 성장과 고통의 근원이기도 하다. 탄생에서 죽음을 향해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끊임없이 포기해야 하는 고통을 헤치고 나가야 한다.” 또 심리학자 조앤 디디온은 <상실>이라는 책에서 상실의 적은 <집착>이며, 가장 큰 상처가 ‘인간에 대한 집착’이라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도 언급되지만, 현대인들은 상실의 시대에 살고있다.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성공과 실패, 부유와 빈곤 등 이 상반된 모든 것들은 서로가 강 건너편에 떨어져 있는 별개의 성질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항상 함께 상존하며 동반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언제나 상실의 아픔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이 가장 큰 고통일 것 같다. 그 고통은 그리움으로 내 가슴속에 품고 가져가야 할 상실이지, 비워짐으로서 비울 수 있는 상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내가 의지적으로 비우든, 비우지 못하고 가슴에 안고 살아가든 내 그릇에 담겨진 검정물은 내 혼자 스스로의 힘으로는 깨끗이 비울 수 없다는 결론이다. 그러면 비우지 않고 채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비움과 채움 <채움 편> (01/07/2011)
비우고 채우는 방법에는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비우고나서 채우는 방법과 채워서 흘러넘치게 하여 본질을 바꾸는 방법이다. 인간의 삶은 성숙되어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심연에 내재되어 있는 욕망과 생존해야 하는 절박한 현실이 전제되는 한 인간은 죄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러기에 깨끗이 비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후자의 방법으로 깨끗한 생수를 채워 기존의 검정물이 희석되겠끔 해야 하는데 얼마만큼 부어야 깨끗한 물로 변할 수 있을것이며, 그 많은 양의 생수를 어디서 지속적으로 구해올 것인가. 외부에서 가져오는 생수를 외부 환경에 의한 내적 성장이라고 가칭하자.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설교를 듣고, 좋은 친구를 사귀고, 좋은 교육을 받는 등 여러가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외부에서 유입되는 생수는 한계가 있으며 유한한 것이다. 유입되는 통로나 관계가 끊어지면 결국 어두운 과거로 돌아간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내 <그릇>안에 생명력이 있는 유기물체를 갖는 것이다. 자체 정화 기능을 갖춘 <강심장> 같은 것이다. 비록 처음에는 조그맣고 생명력이 약하지만 자생능력과 정화능력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튼튼하고 강해질 것이다. 이 생명체는 <강심장>처럼 우심방,우심실, 좌심방, 좌심실로 나누어지는데 새로운 생수가 유입이되면 걸러지고 정화되어 보다 깨끗한 물로 방출이 되는 구조이다. 외부에서는 계속 좋은 생수가 유입이 되고 그것과 상관없이 자체 기능으로 새로운 생수를 생산, 분배하는 것이다. 심장 판막 기능이 있어 역류되는 경우는 없다. 그 생산되는 양은 점점 많아져서 흘러넘치게 되면 주변의 생명체에게도 깨끗한 생수를 공급하게 될 것이다.
그 흘러넘침을 <나눔>이라고 생각하고 <강심장>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자. 나는 종교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식해서일수도 있고 단순해서일수도 있다. 누가 무어라 하든, 내 가슴속에 박혀있는 단 한가지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씀이다. 그 말씀을 모든 인간에게 깨우쳐 주신 분이 예수이시다. 그래도 사람들이 못알아들으니까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면서까지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힘들게 하지 않는다. 사랑하기 때문에 야단을 치고 고통을 주고 아픔을 준다면 말이 되는가. 나는 하나님이 무섭다거나 ‘이렇게 하지 않으면’ 고통을 주는 분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랑하라고 하셨다. 내 자신을, 내 가족을 ,내 이웃을,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 사랑만 하여도 이 세상은 전쟁과 가난이 없는 천국이 되리라 믿는다. 나는 그 <강심장>을 가진 사람들이 슈바이처, 테레사 수녀, 간디, 달라이라마 같은 수많은 선한분들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신앙에 큰 영향을 준 피에르 신부님의 <단순한 기쁨>을 보면 이 세상은 신자와 비신자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와 사랑하기를 거부하는 자로 구분된다고 했다. 또 유일한 신성모독은 사랑하지 않는것이다라고도 했다. 신부님은 이렇게 말한다. “신앙생활의 세가지 확신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확신이고, 둘째는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며, 세째는 우리도 사랑으로 응답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인간의 자유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확신이다. ‘삶이 자유에 바쳐진 시간’. 그 자유를 통해 사랑이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신앙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금세 그것을 거부하게 된다. 사탄과 지옥에 대하여 말하면서 ‘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너를 벌하실 것이다.’ 라는 두려움말이다.
그러나 ‘ <어쨌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 모든 잔혹한 일들과 수많은 사람이 받는 고통과 전쟁, 전염병이 있을지라도 <그래도>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것이다.” 또 그는 “예수의 산상설교의 팔복 중에서 첫번째 행복과 마지막 행복만 현재 시제로 되어 있고 나머지 행복은 미래 시제로 되어 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에서 ‘마음이 가난하다’는 무슨 의미인가.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간에 지위가 무엇이든지 간에 ‘나의 능력과 특권과 재능과 학식을 가지고 약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위해 무얼 했는가?’라고 자문했는지를 묻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사랑을 실천하고 나누다가 간 사람은 수없이 많다. 청십자 의료보험을 만드신 장기려 박사도 그러하며, 예수님과 같은 서른세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내과 의사 안수현도 그러하다. 그의 책 <그 청년 바보의사>에 보면 ‘배꼽 동맥 이야기’가 있다. “배꼽동맥 은 우리 배 속에 흔적만 남아 있고 피는 흐르지 않는 혈관이다. 엄마 배속의 아기에게 유일한 생명선인 탯줄 안에 이 혈관이 있다. 이 혈관을 통해 엄마로부터 필요한 영양과 모든 물질을 공급받는다. 하지만 아기가 세상에 나옴과 동시에 탯줄은 끊어지고, 피가 흐르지 않는 이 혈관은 차츰 퇴화되어 마침내 흔적만 남는다. 그리스도인은 혈관과 같다. 자신의 능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자신의 핏줄을 통해 어떤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더 많이 베풀고 나눌수록 혈관은 튼튼해지고 더 많은 피가 흐를 수 있지만, 나누려는 노력을 멈추면 그 혈관은 퇴화되어 생명이 전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장경철목사는 그리스도인을 ‘유통업자’라고 정의한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유통하다가 그 은혜에 물들어가는 삶이다.” 그의 필명은 ‘스티그마 (흔적)’이었다. 비록 지금은 보잘것 없는 심장을 가졌다 할지라도 언젠가 <강심장>이 되기 위해서는 내 그릇안에 무엇을 채울 것이며 무엇을 흘러넘치게 하여 나의 무슨 흔적을 남길 것인가. 이것이 나의 새해 화두이다.
노숙자 (01-14/2011)
유난히 이번 겨울은 춥다고 한다. 추운 겨울날 아침 일찍 다운타운을 가보면 빌딩 한 귀퉁이에 웅클인채 자고 있는 노숙자들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다. 변변한 이부자리도 없이 누추한 외투와 담요를 둘둘 만채 자고 있다. 세계에서 제일 잘 산다는 미국에서 그것도 도심 한복판의, 얼음보다 더 차가운 길바닥에서 자고 있는 그들은 어디서 온 누구인가. 노숙자들에게도 지정석이 있는가보다. 빌딩 지하에서 스팀이 세어 나오는 곳은 그래도 나아 보인다. 어떤 사람은 겨우 바람만 피할 수 있는 후미진 곳에서 긴 겨울밤을 보내고 있다. 분명히 정부기관에서 마련한 쉼터도 있으련만 왜 멀쩡한 쉼터를 외면한채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걸까.
개인적으로 나에게 ‘노숙자’라는 단어는 낯설지가 않다. IMF때 사업실패로 빈털털이가 된 후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삶을 포기하려 했던 시절이 있었다. 다시 시작할 용기도 자신도 없었다. 가진 것을 모두 잃어버린 느낌이었으며, 빈손으로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술에 취해 집에 못들어갈 때도 있었고 며칠간 잠적을 하기도 했다. 집에는 연락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가 ‘노숙자’이다. 그 당시 메스컴에서는 매일이다시피 서울 지하철역의 노숙자들을 방송에 내 보냈고 자살 소식이 끊어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힘들어 하는 아들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말씀도 하지 못하셨다. 그때 어머니가 ‘저 노숙자 틈에서라도 살아 있으면 괜찮으니 죽지만 말아다오.’라는 말씀을 아내에게 하셨다고 한다. 그 이후로 나는 나로 인해 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2008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스티브 로페즈’의 <솔로이스트 (The Soloist)>를 보면 미국의 노숙자와 소외된 자의 세계를 엿볼 수 있어 소개한다. 스티브 로페즈는 로스엔젤레스 타임즈의 기자이자 칼럼리스트이며, 낚시꾼처럼 칼럼 소재를 찾기 위해 다니면서 한편으로 직업적 회의에 번민하던 도중에 다운타운 시내 모퉁이에서 노숙자 차림의 흑인이 베에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이 흑인은 54세로 나다니엘 이라는 음악가로 1972년 줄리아드 음악학교 장학생으로 공부하면서 천재적 연주자로 기대를 받던 3학년 가을학기 때, 피해망상 정신분열증이라는 병으로 인해 천재 음악가의 꿈을 접고 좌절과 방황으로 길거리에서 먹고 자며, 음악을 연주하는 노숙자 생활을 35년간 하게 된다. 스티브 기자는 처음에는 한두회 분의 칼럼 소재용으로 흥미를 갖고 접근하다가 그 흑인 정신 분열증 환자를 통해 진정한 우정과, 가정의 소중함과 직업이 가져다 주는 사회적 유익성에 대해 배우게 되며, 그 흑인 음악가는 점점 병에서 회복되어 가면서 젊은 날의 연주자로서의 꿈을 이루어 간다는 넌픽션 감동 드라마다.
이 책에서 나다니엘이라는 책속의 주인공을 보면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인생이라는 한 부분을 보는 것과 같다. 고전 음악과는 전혀 무관한, 지극히 평범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나서 평범한 청소년시절을 보내다가 우연한 기회에 고전음악을 배우게 되고 음악에 심취하여 열중하게 되다 보니 생각할 수도 없었던 세계적인 음악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공부 잘 하는 소위 우등생 그룹들로서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어럽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최고라는 학교 혹은 조직에 들어가서 보면 그때부터 받는 중압감과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각국에서 천재라고 한소리 듣던 사람들은 다 모여서 그 속에서 경쟁하여 인정받아야 하고 살아 남아야 한다. 매일 반복되는 경쟁과 비교는 멀쩡한 사람도 돌아버리게 만들기에 충분할 것이다. 더구나 주인공이 다니던 음악학교는 대부분이 백인들로 구성된 세계 최고의 학교가 아닌가. 흑인 한명이 그 많은 백인 대다수의 무리들 속에서 괄시와 편견을 참고 이겨낸다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도 언젠가 소개했던 <아웃라이어>의 <1만시간의 법칙>이 어김없이 적용된다. 기억되는 천재와 잊혀지는 일반인의 차이는 이 관문을 통과했느냐, 못했느냐의 차이다.
또 한편으로 미국의 노숙자 실태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시내 한복판은 밤이 되면 노숙자 천지가 되고 그 곳은 마약 소굴이며 매춘, 폭력이 난무하는 무법천지가 된다.국가를 위해 목숨 걸고 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이 마약 중독자가 되어 거리의 노숙자로 전락되고 다시 국가의 부담으로 남게 된다. 결국 그들은 한 시대의, 한 국가의 욕구를 수탈하기 위해 명령받은 또 다른 피해자들로서, 수많은 인명을 살해하면서 전쟁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그 전쟁이라는 악마의 손아귀를 결코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나다니엘은 노숙자로서의 생활을 만족해 하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노숙자에게는 자신이 정한 규칙 이외에는 아무런 규칙도 없기 때문이다. 은퇴할 걱정도 없고, 의료보험, 크래딧 관리,사회 보장 카드, 운전 면허증, 집 모게지, 승진, 해고 등등 그 어떠한 걱정으로부터로도 구속받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여긴다. 이 책은 사회적 지위를 떠나 서로의 솔직함과 인간적 마음과 배려만으로도 진정한 우정을 만들어 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 나의 조그만 관심이 내 주변의 소중한 한 사람을 거리로 내몰아 노숙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숙자를 이 시대의 자유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배고픔보다 사람의 정과 사랑이 그리운 것일지도 모른다.나에게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이 없다면 나 또한 이 지구별의 노숙자일 뿐인 것을…
눈물의 웨딩케익 (01-21-2011)
통기타와 청바지 세대로 통칭되던, 7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트윈 폴리오 (송창식과 윤형주)라는 두엣 가수를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이 부른 주옥 같은 노래 몇편은 지금들도 외우고 있을 것이다. 그중에 한곡이 ‘눈물의 웨딩케익’이다.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고 내일이면 사랑치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하는 눈물겨운 가사이다.
그런데 나에게도 비슷한 가슴아픈 사연이 있다. 이민초기에 알게 된 꼬마(?) 숙녀 이야기다. 중학생일 때 보고 얼마전에 보니 몰라보게 달라졌다. 우리집 둘째 딸하고는 언니, 동생 하며 친동기간 처럼 10년을 넘게 의지하는 사이다. 어렸을 떄는 섬머스마 같더니 이번에 보니 영화배우 뺨치게 미인이다. 키도 크고 늘씬한게 시집가도 되겠다고 농담도 했다. 명문대학교 약학대학 졸업반이라고 한다. 이쁘고 총명하니 어디 한곳 나무랄 데가 없다. 밤새도록 무슨 할 말들이 그렇게도 많은지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나중에 딸에게 들으니 이번 <드림법안>이 무산되어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것이다. 실습을 나갈 수도 없고 약사 자격증도 딸 수가 없다고 한다. 한국에 나갈 수도 없고 제대로 된 회사에 취직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집에서는 생각다 못해 시민권자에게 시집을 가라고 한다. 그러나 본인은 애정도 없는 결혼을 죽어도 하기 싫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부모 마음이야 오죽 하겠는가. 어렸을 때 부모 따라 합법적으로 미국에 이민와서 영주권 신청을 했는데 이민 당국의 늘어터진 행정과 이민 변호사의 고의적인 실수로 영주권 시기를 놓친 것이다. 본의 아니게 불법 체류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설사 부모가 영주권이 나왔다 하더러도 자녀가 그 신청 기간 동안 성년이 되어 버리면 개별적으로 다시 영주권 신청을 하여야 하는데 그때는 이미 불법 체류자가 되어 버린다. 여기서 초등학교 부터 대학교까지 마친 아이를 불법 체류자라 한다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무엇이 <드림>인가. <드림 법안>이라는 단어 자체가 허구적이다. 구일일 사태 이후 매년마다 그리고 선거때 마다 <구제 법안>이니, <드림법안>이니 하면서 그들의 부모와 자녀들의 마음을 얼마나 초조하게 만들었는가. 장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가, 취업을 제대로 할 수 있는가. 십년 이상의 세월을 불법이민자라는 불안 속에서 살게 하고 각종 차별을 받으며 살게 하였는데 아직도 풀어주지 않으면서 무엇이 <드림>이라는 말인가. 이제 한국 사람들에게는 < 아메리카 드림>이라는 환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자식들이 없었다면 벌써 한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아니 불법 체류자가 될 줄 알았으면 애시당초 미국으로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슨 영주권 받는데 6년, 8년씩 걸리는가. 왜 한 가족의 소중한 세월을 10년씩 갈취하는가. 그런데 미국 경제가 어렵다 보니 앞으로는 불법 체류자 단속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한다. 공립대학을 갈 수도 없고, 공립학교를 다니는 것도 모두 추적한다고 한다. 간악한 정치인들이야 당연히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자국민들 달래기 바쁠 수밖에 없고 그들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에는 그 이상의 수많은 불법 지하경제가 존재한다. 그중 대표적인 3대 불법 시장이 마약 시장과 노동 시장과 포르노 음란물 시장이라고 한다. 그중에도 대표적인 노동시장에 대해 조금만 언급해 보자. 우리가 매일 먹는 신선한 과일은 누가 노동해서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가. 당연히 불법 노동자들이 고생 고생해서 수확한 것이다. 탐스러운 딸기나 블루베리 등을 기계로 수확하겠는가. 지금도 놀고 있는 미국의 수많은 실업자들이 농장에 취업해서 일하겠는가. 아니다. 미국에 태어나서 이날까지 일 한번 하지 않아도 국가에서 주는 웰페어만으로 먹고 사는 수많은 비노동 인구들이 있다. 미국 시민들은 그렇게 죽도록 고생하면서 일하지 않는다. 과일의 대부분은 모두 사람 손으로 하나 하나 조심스럽게 따야한다. 그 수많은 제시제철의 과일을 따기위해 시민권을 가진 미국인을 고용하고 합법적인 인건비를 지급했다면 그 비싼 과일을 우리가 먹을 수 있었겠는가. 그 많은 시민권자들을 어디서 데리고 오겠는가. 그리고 그 시민권자들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겠는가.
한마디로 블랙 코메디다. 불법 이민자를 단속한다고 난리를 치고 불법이민 구제 법안을 늦출수록 득을 보는 사람은 대자본의 소유주들이고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노예처럼 일하는 불법 이민자들이다. 농장에서 일하는 그들은 기거하는 집도 없다고 한다. 농장 벌판 한가운데 이동식 천막을 치고 지낸다고 한다. 그들의 임금을 시간당 5센트만 올려 주어도 그들의 처지는 달라진다고 한다. 불법 이민자들은 목숨을 걸고 일한다. 죽도록 일한다. 그래야 나도 살고 내 가족도 살고 고국의 친척들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도 얼마든지 있고 여러분의 가게에도 있을 것이다. 불법 이민자들을 단속한다고 그 막대한 예산을 쓸 필요가 없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불법 이민자를 고용하는 고용주만 처벌하면 된다. 적발시 해당 사업체를 몰수하고 추정 불법소득을 환산하여 엄청난 세금으로 부과해 버린다는 법령을 만들면 불법 노동시장은 깨끗이 정리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절대 하지 못한다. 하면 큰일나지. 경영 전문가 ‘세스 고딘(Seth Godin)’ 은 이렇게 말한다. “경제 위기로 낙담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과거의 사람들도 자주 그렇게 이야기 했다. 관점의 전환은 ‘이 시대가 미쳐 돌아 가고있다’가 아니라 ‘이 미친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염려하지 말고 준비하면서 기다려라. 모든 일이 잘 해결될 것이다. 우리의 아들, 딸들아…
상한 영혼 (01-28-2011)
몇년전인가 어느 절도범 여자의 법원 판결문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여자는 어린 자식을 데리고 혼자 사는 가난한 사람이었는데 먹고 사는게 너무 힘들어 식료품을 훔치게 된다. 처음에는 경범죄로 처리되어 구치소에서 나오게 된다. 그런데 가난의 덫은 몸부림친다고 쉽게 벗어던질 수 있는게 아니지 않는가. 여러번 식료품을 훔치고 감방에 오고 가고를 반복하다가 여자 판사에게 재판을 받게 된다. 그때 그 여판사는 판결문 대신에 시를 한편 낭송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하기야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 여자에게 교과서적 훈시를 한들 무슨 도움과 위로가 될까. 그 시 한편을 소개한다.
작고한 고정희 시인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이다.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 뿌리 깊으면야 / 밑둥이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 충분히 흔들리다 상한 영혼이여 /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 /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 이 세상 어디에서나 개울은 흐르고 /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가랴 / 가기로 목숨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 /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이민자 아니 우리 모두는 상한 영혼을 가지고 사는지 모른다. 우리 주변에도 하루하루 사는게 힘든 사람이 의외로 많다. 자살하는 이민자도 의외로 많다. 지금 당장 가게를 팔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도 많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그 가게의 사업성 분석을 해보면 얼마나 살기 힘든지 짐작할 수 있고,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가게 규모가 작을수록 매상이 작을수록 팔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견디다 견디다 못해 문을 닫는 가게도 많다. 팔기 어려운줄 알면서도 부탁하시니 팔아드릴려고 광고도 내고 내 나름대로 애를 쓴다. 지금은 가게를 팔기도 어렵고 가게를 사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남의 집 주급생활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생활이 힘들면 몸도 여기저기 아프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다. 얼굴에 웃음은 사라지고 가족간에 사소한 일들로 싸우고 영혼에 상처를 남긴다. 가게를 사고 싶어도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돈은 쉬는 날이 늘어나니 자꾸만 줄어든다. 은행의 융자는 전화 상담만으로도 거절당한다. 서브프라임으로 산 집은 팔고 싶어도 팔리지 않고 팔아도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은 없다. 형편에 맞는 가게를 살려고 하니까 불안하다. 너나 내나 매상은 계속 떨어진다고 하니 그 바닥이 어디까지인지 짐작조차 할수 없다. 가게를 잘못 사서 가지고 있는 이 알량한 전재산마져 날려버리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는 두려움이다. 가난한 이민자가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천사가 되어 천국으로 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 적당한 매물이 없어서 가게를 못사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두려움으로 가게를 못산다. 경제가 안정되고 매상이 안정이 되면 두려움은 줄어들겠지만 가게 값은 올라갈 것이다. 어렵게 가게를 사기로 마음의 결심을 해도 계약이 성사되기가 쉽지 않다. 매도자와 매수자가 모두 불안하기 때문이며, 둘 다 불만스럽다. 매도자는 불과 2년전의 매상과 매매가격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매상이 20%에서 30%이상 떨어졌으므로 떨어진 가격이라도 눈물을 머금고 낮추어서 팔려고 한다. 그러나 매수자는 매상이 더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가격을 더 깎을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요즈음같은 비수기에 매상점검을 하면 떨어진 평균매상보다 더 적게 나온다. 당연히 매수자는 가격을 더 깎으려하고 요구조건은 더 많아진다. 당연히 오너융자도 요구한다. 매도자는 2년전에 못팔은 것을 후회하며, 화가 나서 팔지 못한다. 이리저리 매도자, 매수자, 브로커, 변호사, 금융관련 종사업자들 모두가 힘들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견디어야 한다. 미국 경제가 호전이 되고 실업률이 낮아지고 6천억달러의 자금이 풀린다고 하더라도 조그만 가게를 하는 영세업자가 좋아졌다고 느끼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언제 서민들의 경제가 나아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소비의 분배가 아닌 생산의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부자들의 돈과 금융 자본이 생산에 투입되어 소득의 재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일자리가 창출되어야 하고 빚을 줄여야한다. 미국 경제가 정직해져야 한다. 곳곳이 얼마나 부실하고 엉망인지 미국 국민들에게 고백하고 참회하여 미국 전체가 근검절약하지 않으면 지금의 달러 양적 팽창은 부자들의 배를 채워주는 또 다른 임시방편 밖에 되지 않는다. 정직한 생산만이 서민들을 살릴수 있다. 여기 사는 이민자들도 가진자는 겸손해야 한다. 가난한 이민자들을 도우지는 못할망정 염장지르는 짓을 해서야 되겠는가. 온통 신문에 얼굴을 도배하면서도 무엇을 하는건지, 무엇을 나눌려고 하는건지 염치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다. 가난한 이민자는 두려워하지말고 용기를 가져야 한다. 불경기가 가난한 자에게 반드시 불리한 것은 아니다. 고난속의 감사가 진정한 감사라고 하지 않는가. 역사속의 위대한 인물들은 결코 풍요속에서 탄생하지 않았다. 부자집 아들이 역사의 위인으로 기록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나님은 결코 모든걸 주시지 않는다. 그대가 지금 가난하여 정말 살기가 힘들다 하여도 포기하지 않고 참으며 열심히 살다보면 우리의 상한 영혼은 치유되고 우리의 자녀들에게는 반드시 귀한 선물을 주실 것으로 믿는다.
어떤 이별 (02-04-2011)
우리는 많은 세월을 어떤 사람과 사랑을 한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어떤 이별’을 한다. 사랑과 이별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하면서 느끼는 감정과 이별하면서 느끼는 감정이 하늘과 땅 차이고 천국과 지옥의 차이니 이를 어찌할꺼나. 불과 얼마전에 ‘어떤 이별’을 한 부부 이야기를 할까 한다. 두사람 모두 중년의 나이에 미국 서부에서 만나 재혼을 한 사람들이다. 전처와 전 남편 가족들이 모두 그곳 서부에 살고 있으므로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려고 몇년전에 이곳 동부로 왔다. 부부 모두 인상도 좋고 친절한 사람들이었고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잉꼬 부부였다. 그러던 중 작년에 경험이 없는 업종의 조그만 가게를 사게 된다. 부부는 열심히 일했고 조그맣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꿈도 있었다. 남편이 가게를 이쁘게 꾸밀 생각으로 수리를 하다가 사다리에서 낙상을 한다. 허리를 다쳐 일을 할 수가 없다. 대부분의 한인 가게들이 그러하듯이 부부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알량한 수입조차 보장할 수가 없다. 경험도 없고 남편은 아프고 종업원들은 속 썩이고 불경기로 매상은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부부싸움은 잦아진다. 더 이상 가게를 꾸려나갈 수가 없으니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팔아달라고 한다. 가게 위치도 좋고 시설이나 설비도 좋고 매상대비 가격도 좋아 매물로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에게서 숨이 넘어갈듯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아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내가 어디 갈만한 곳을 아는지 되려 내게 물어본다. 일단 진정을 시키고 자초지종을 들어보았다. 낮에 장사도 안되고 몸은 아프고 짜증이 나서 아내에게 싫은 소리를 몇마디했는데 아내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메모 한장 써 놓고는 말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짐가방도 없이 일하던 그 옷차림 그대로 차를 몰고 서부로 간 것이다. 며칠이 소요되는 그 먼길을 여자 혼자서 운전을 하고 간 것이다. 운전하는 그 며칠동안 그 여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울면서 울면서 운전하는 내내 무슨 말못할 사연은 얼마나 많았을까. 우리 손님들은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나에게 잘 털어놓는다. 그녀도 그러한 손님중의 한명이었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전부다. 아내가 떠난 후 남편은 나에게 말한다. “나는 아내를 정말 사랑한다. 아내 없이는 살 수가 없다. 그날은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내가 잘못했다. 만나서 용서를 구하고 싶다. 어디 있는지 알고 있으면 가르쳐달라. 돈도 필요가 없다. 아내를 찾으러 가야 하니 임자가 있으면 가게를 싼 값에라도 처분하고 싶다.” 아내는 나에게 전화로 말한다. “남편은 정말 좋은 사람이다. 자기한테 잘 해 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구속을 받는다는 게 싫다. 처음으로 이렇게 혼자가 되고 보니 너무 좋다. 비록 빈 손으로 나와서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날아갈 것 같다. 자신의 모든 권한은 남편에게 위임한다. 그 사람의 돈은 더 이상 필요없다. 그 사람을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 그러면서 위임장을 보내왔다. 정말 난감하기만 하다.
물론 나는 전문 상담가도 아니고 목회자도 아니고 심리 치료사도 아니다. 또 부부 두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또 오지랍 넓게 남의 사생활에 끼어드는 자체를 엄청 싫어하고 질색을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다시 잘 되었으면 하는 소원을 가져본다. 그래서 여러차례 여자분을 전화상으로 설득을 해 본다. 일단 만나서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라도 보았으면 한다. 남편이 변명이라도 할 기회를 달라고 부탁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엇이 저 여자의 마음을 저렇게까지 닫아버리게 한 것일까. 사랑하기를 원하지 않는 여자가 어디 있겠으며, 이별을 좋아하는 여자가 어디 있을까. 저 부부는 무엇때문에 어디서 부터 꼬인 것일까. 가게는 마침 작자가 있어서 오퍼 넣고 일주일만에 클로징을 했다. 물론 Buyer는 저렴한 가격에 가게를 인수했으니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 마음은 지금도 무겁기만 하다. 클로징한 날 남편은 그 즉시 아내를 찾으러 떠났다. 아내가 떠난 이후 그의 눈은 항상 충혈되어 있었다. 지금도 두 사람이 다시 만나기를, 잘 되기를, 다시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인생이란 수많은 이별 연습을 통해 살아간다. 이별은 헤어짐도 사라짐도 아닌 또 다른 만남의 시작임을 배워가는 훈련장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행복을 찾기 위해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한다. 그러나 고향의 느티나무가 항상 그 자리에 있듯이 행복은 움직이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행복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생에 크고 작은 인연이 따로 없듯이 사랑도 크고 작은 것이 따로 없다. 사람들이 각자 그 행복과 사랑을 얼마나 크고 작게 느끼는가에 따라 그 자체의 무게와 질감, 부피와 색채가 변하는 것이다. 내 사랑이 작게 보이고 남의 사랑이 크고 멋있게 보인는 것은 누구도 아닌 내 자신이 그렇게 생각할 뿐일 것이다. 김광섭 시인의 시처럼 “저렇게 많은 별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 보듯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그 별 하나를 쳐다보는 것이다.” 일본의 선승 ‘이뀨’ (1384년 ~1481년) 의 글에서처럼 “벚나무 가지를 부러뜨려 봐도 / 그 속엔 벚꽃이 없네. / 그러나 보라. 봄이 되면 / 얼마나 많은 벚꽃이 피는가.” 그래, 나만의 행복을 찾으려고 하지말고, 내 만의 사랑을 찾으려고 이 꽃나무, 저 꽃나무를 꺾지말자. 내가 어떤 사람에게 사랑을 주면 되고 그래서 그 어떤 사람이 행복해 한다면 그것으로 좋은 것 아닌가. 내 사랑을 주다가 주다가 내가 지치면 그 때 빈손으로 떠나면 되지 뭐..사랑이 별껀가..
찬밥 한덩이 (02-11-2011)
얼마전에 장래가 유망한 32살된 시나리오 여류작가가 굶어 죽은 사건이 있었다. 주로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가난한 동네의 지하 단칸방에서 혼자 그렇게 굶어 죽은 것이다. 유난히 추운 한겨울이지만 방은 냉골이었고 불을 땐 흔적도 없고 밥을 해 먹은 흔적도 없다. 문 밖에는 “누구든지 남은 밥 한그릇과 김치가 있으면 문을 두드려달라.” 라는 메모쪽지가 붙어 있었다. 나도 자식 키우는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자꾸만 그 여자아이(?)가 머리 속을 맴돈다. 예술의 재능과 소질이 있는 아이들만 들어간다는 한국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시나리오 분야에서는 유망한 신인으로 촉망받고 무슨 영화제의 상까지 받았던 그녀가 왜 굶어 죽어야 했는가. 나는 그녀의 가족과 성장 배경과 그녀의 그 어떠한 것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부모와 형제가 있을 것이고, 친척과 친구들이 있었을 것이고, 단체나 협회의 선후배도 있었을 것이다. 몸에 갑상선 항진증과 췌장염이라는 지병은 있었지만 죽을 병은 아니다. 신체부자유자도 아니고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을 외모도 아니다. 그녀는 자살을 한 것도 아니고 ‘찬밥 한덩이’라도 먹고 살려고 몸부림치다 굶어 죽은 것이다.
왜 그녀는 굶어서 죽어가야 했을까? 한국이 이제 못사는 나라도 아니고 복지시설이 어느 정도 보장이 되어 있어 기초 생활 수급자나 실업 수당을 받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리고 밤 비행기로 서울 하늘을 내려다 보면 어느 나라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수많은 빨간 십자가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수많은 교회중에 아무 곳이나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면 될텐데…국가는 쌀이 남아돌아 동사무소에만 가도 누구나 쌀을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데… 살기로 작정하면 무슨 일을 해서라도 먹고 살수는 있었을텐데… 운전하는 내내 의문은 풀리지 않고 마음만 아프다. 아마도 그녀는 스스로 문을 걸어잠근 것이아닐까. 혈연과 지연이라는 모든 관계를 끊어 버린 것이 아닐까.그래도 부모에게나 형제에게는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을텐데 그 마지막 보루를 끊어버린 것은 무슨 사연이며, 누구의 잘못일까.
우리는 자식을 키우면서 자식들에게 많은 요구를 한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서, 자식의 홀로서기를 위해서 쓴소리, 못할 소리, 해서는 안되는 소리를 많이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 부모들은 죄책감이나 미안함을 별반 느끼지 못한다. 내가 잘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 잘되게 하기 위해서니까, 부모니까, 세상을 먼저 살아 본 인생 선배니까 등으로 합리화한다. 하지만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가 자식의 가슴에는 영원히 씻겨지지 않는 상처가 될 수 있다. 내 아이들도 분명코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말 한디로 인해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들이 있을 것이다.
가족은 그들만의 ‘집단적 특성’이 있다. 이러한 집단적 특성은 가족의 공적인 얼굴인 셈이다. ‘가족 신화’라고도 하는 이 특성은 완전하게 조화를 이루려는 열망, 즉 ‘허위적 상호관계’를 추구하려는 열망이 강렬한 나머지 어떠한 다른 의견도 관계에 대한 위협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가족 누구도 떨어져나가거나 변화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정신분석가 피터 로마스는 “종종 정체감은 가족 구조안에서 분명한 역할을 분담하면서 부터 생겨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고유한 인간으로 인정하는 것과 그 사람을 단순히 그가 맡은 역할로만 인정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정신분석학자 로저 굴드는 “자신의 삶을 일구다 보면 자랄 때 주입받은 가족의 신화와 역할에 도전을 하게 된다. 자라면서 자신을 불필요하게 구속하고 억압했던 믿음을 수정한다. 젊은이로 성장한 그들은 반드시 부모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보편적인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터득한다. 새로운 세상을 넓게 탐색하고 실험하는 새로운 의식 수준으로 문이 열린다. 그러나 새로운 문을 여는데는 부모에 대한 두려움과 용기가 필요하다.” 페더스톤은 가족을 연구하면서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이 정한 조건에 맞춰서만 자신을 내어주거나 거둬들이는 불가시이한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우리가 중년에 이르러 부모가 늙고 병들어서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오면 그들이 얼마나 힘이 없는지를 보게 된다. 부모는 우리를 완전히 사랑할 수도, 이해할수도 없으며, 우리를 슬픔과 고독과 죽음으로부터 구해 줄수 없음을 알게 된다.”고 했다.
특히나 지금처럼 불경기가 장기화되고 청년 실업이 많은 세상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불안감은 극도의 정신적 공황 상태가 될 수 있다. 하물며 예술 분야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몇몇 일부 특출한 스타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사회가 아니던가. 그녀는 얼마나 수많은 낮과 밤동안 글을 썼을까. 굶주린 배를 웅켜쥐고 한편의 시니리오가 채택되어 돈이 되어 돌아오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어느 유명 작가는 무명시절에 새우깡 한봉지로 3일을 견딘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시대나 그러한 무명의 예술가들의 등을 쳐 먹는 무리가 존재한다. 분명히 그 길은 배고픈 직업이니 가지말라고 반대하는 가족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 반대에 대해 오기로라도 성공하고 말겠다는 집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자존심이 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먹고 사는 일이 해결되지 않으니그녀는 외로웠다. 무서웠다. 괴로웠다. 하루 하루 살기가…어쩌면 부모라는 욕심과 아집으로 우리의 아이들을 어두침침한 지하 단칸방으로 내몰고 그 곳에서 찬밥 한덩이도 못먹어서 굶어 죽어간다면, 죽어서라도 그 아이들을 무슨 면목으로 다시 만날수 있을까.. 성공하지 못하면 어떻고 출세하지 못하면 어때…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우리의 아들 딸들아…
아플 권리 (02-18-2011)
사람의 인생에서 늙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늙어간다는 것은 아파간다는 말일까. 늙는다는 것은 육신의 세포도, 영혼의 세포도 하나씩, 둘씩 고장이 나고 병들어 간다는 의미일까. 과연 나 같은 이민자는 아플 권리가 있는걸까. 요즈음 내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 많다. 길게는 40년전에, 짧게는 10년,20년전에 이민와서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엄청 고생하며 살았다. 그렇게 살다보니 육십을 훌쩍 넘고 자식들도 제 인생 찾아 훌쩍 떠나가 버린다. ‘그러면 됐지, 미국와서 좋은 대학 나오고 괜찮은 직장 다니고, 좋은 사람 만나 저희들끼리 잘 살면 됐지, 더 이상 무얼 바래, 부모로서 할 만큼 했어.’라며 스스로 위로하고 따독거린다. 이제는 은퇴해서 ‘영감 할매’ 서로 등 긁어주며 재미있게 살려고 생각했다. 이제 이 지겨운 가게도 처분하고 여행이나 다니면서 국가에서 주는 연금이나 받으면서 편안하게 살자고, 그동안 고생시켜 미안하다고, 앞으로 잘 해 주겠다고 서로의 주름진 손등을 감싼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얼마전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몹쓸 병에 걸린 것이다. 암이라고 한다. 길고도 힘든 투병생활이 시작되어야 한다. 언제부터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왜 많고 많은 사람중에 하필이면 나에게, 그것도 그 많고 많은 병 중에 말기암이란게 말이 되는가.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울고 또 운다. 억장이 무너진다.
이 이야기는 여러분의 이야기이면서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언젠가 국립 암센타 원장이라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다. 현대 노인들의 수명이 20년에서 30년 늘어나기 때문에 암에 걸릴 확률도 높다는 것이다. 평균 수명이 90살까지 늘어나면서 과거에는 암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죽었는데, 요즈음은 노인들 중 30%가 암에 걸린다는 것이다. 노인들 세명중 한명이 암에 걸린다면 내가 암에 걸릴 확률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잘난 출세와 성공을 위한답시고 나는 나의 몸을 너무 혹사했다고 스스로 인정한다. 아니 내 몸이라고 너무 막 굴렸다는 표현이 냉정할 것 같다. 불규칙한 식사, 시도 때도 없는 밤샘 작업, 이러다가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느낄만큼 수많은 날들의 폭음과 흡연, 살아남아야 한다는 무한 경쟁과 스트레스, 욕망과 불만, 자학과 불안, 등등 그 무엇하나 장수와 건강을 보장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확률과 통계치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역시나 하는 현실감으로 되돌려 놓음을 안다.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불치의 병으로 아플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까다롭다는 공군장교 신체 검사를 받을 때도 신체 결격사유라는 말은 다른 세계의 단어들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대기업 부장시절부터 주위의 직장 선배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겁을 먹기 시작하더니, IMF때 사업에 실패하고 나서부터는 아예 건강 검사 받는 것 자체를 피해왔다. 특히 이민을 오고서 부터는 건강진단을 죽어도(?) 안받는다. 재작년에 한국 나갔을 때 아내의 등살에 못이겨 강제(?) 입원당하고 할 수 없이 받았지만, 그것 때문에 부부싸움도 불사한다. 빈 손으로 이민 왔으니 그 비싼 의료보험에 가입할 엄두도 낼 수 없고, 설령 건강진단을 받아서 불치의 병이나 암으로 판정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대학 졸업한 자식들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고, 돈 들어갈 곳은 블랙홀처럼 많은데 내가 아프면 누가 돈 벌어서 생활하고 아이들 뒷바라지는 누가 하며, 무슨 돈으로 결혼시키고, 마누라 노후생활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모아둔 몇푼되지 않는 돈이 내 병원비에 다 들어가면 그 다음 대책은 있기라도 하는가. 지옥만큼이나 비싼 미국의 의료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일단 불치병이나 암에 걸리면 언제까지 낫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그리고 나는 미국 의사들과 의료시스템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난한 이민자가 수술 한번 받으려면 몇개월, 몇년을 기다려야 하며, 한국에서는 보편화된 MRI나 CT촬영도 이곳에서는 몇달을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이 통해야지 어디가 아프다고 고함이라도 지를 것이 아닌가.
가난한 이민자는 아플 권리도 없고 아파서도 안되는 것일까. 불치의 병이라고 밝혀지면 나는 기어서라도 한국을 나갈 것이다. 한국에서 죽으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이라도 하고 죽을 수 있을 것 같다. 죽은 다음에야 땅에 갖다 묻든, 화장을 하여 산이나 강에 뿌리든, 괜찮을 것 같다. 이민의 투병 생활은 너무나 두렵고 무섭다. 차라리 모르면 괜찮을 것이다. 이민 생활은 <디어 헌터>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러시안 룰렛>게임과 같다는 생각도 한다. 살아야겠다고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미쳐버리는 게임이다. 그냥 생각없이 열심히만 사는 것이다.가난하기 때문에 죽을수는있어도 길게 아플 수는 없다. 죽을 수 있다는 생각보다 아파서 못일어난다는 생각이 더 두렵게 만든다.
언젠가 40여년전에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한 <작은 거인>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백인 아이가 인디언들의 세계에서 커가며 살아가는 영화였는데, 인디언들은 아프거나 여자가 애를 낳을 때에는 혼자서 자기만이 알고 있는 장소로 떠나는 것이다. 죽으면 그곳에서 혼자 죽고 병이 완쾌되면 돌아오는 것이다. 마치 신비의 코끼리 무덤처럼 신이 만든 모든 생명체는 홀로 죽어가도록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공지영씨의 <지리산 행복학교>에 보면 섬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하동과 구례의 지리산 마을들과 그곳에서 사는 귀농인들의 사람답게 사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곳에는 월세가 아니라 <년세>라는 말이 있는데 50만원(오백불)만 지불하면 일년을 살 수 있는 집들이 있다고 한다. 몹쓸 병으로 아프면 혼자서 그 곳에라도 기어 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엄청난 위안이 된다. 또 시골에는 투병중인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곳도 있다고 한다. 아니면 이해인 수녀님처럼 <명랑 투병> 계획을 지금부터라도 잘 짜두어야겠다…
한권의 책 (02-25-2011)
이민 초기의 일이다. 그러고보니 이민온지가 10년이 다 되어 간다. 내가 하던 사업은 IMF때 다 덜어먹고 한국에서 월급쟁이 사장으로 기러기 생활을 1년쯤 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미국으로 이민 간 아내에게서 밤마다 울면서 전화가 온다. 혼자서는 도저히 못살겠다는 울음이다. 며칠이고 몇번이고 같은 이야기는 반복되고 같은 울음은 메아리처럼 되돌아 온다. ‘그래,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내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지금,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고 산들 밥이야 굶겠는가.’ ‘그래, 이제는 나만 보고 사는 저 여자를 그만 울리자. 일단은 그녀의 눈물을 멈추게 하자. 그리고나서 무엇을 해서 먹고 살건지 미국에 가서 생각해 보자.’라는 단순무식한 생각으로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 나의 ‘무작정 이민’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이곳 이민 생활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말 싫다. 꿈은 있어도 그것을 실현할 방법이 요원하다. 그냥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범주내에서 꼬무작 꼬무작 거릴 뿐이다. 10년전이나 지금이나 가진 것이 별반 없으니 하루 먹고 하루 살기에 급급하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가 지나가고 십년이 지나간다. 아마도 앞으로 사는동안도 그럴 것 같다. 어느날인가 갈 곳도 없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으니 책이라도 몇권 사서 읽으려고 이곳 한국 서점을 들렀다. 그런데 책값이 정가보다도 두배 가까이 비싼 것이다. 책값은 정가보다 얼마의 할인 된 가격으로 사게 마련인데 정가보다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생각으로 사지도 못하고 서점을 슬그머니 빠져나온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책 몇권이라 해 보아야 100불 미만이었을텐데 그때는 책 몇권을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산다는 것이 엄청난 사치처럼 여겨졌다. 그렇다고 한국 책을 빌릴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는줄도 몰랐고 아는 사람도 없었으므로 그렇게 책을 사 보지 못한 세월이 몇년 흘렀다.
누구나 우리 또래에게는 새 책에 대한 향수가 있다. 초등학교때는 새학기를 맞아 새 교과서를 받으면 어느 집이나 책 포장지를 씌우는 것이 큰 행사였다. 지금은 구경도 하기 힘든 누런색 포장지를 구해서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포장을 해 주셨다. 간혹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고급 마분지를 구하는 날이면 큰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도 새 책에는 향기가 있고 설레임이 있다. 읽고 싶은 새 책을 사서 첫장을 넘길때는 아름다운 여인과의 첫 만남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책값처럼 싼 것도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루 저녁 식사비는 1백불이 아까운줄 모르면서도 책값 1백불에는 인색하다. 우리 아이들도 옷이나 전자제품 사는데는 돈 아까운줄 모르면서도 자기 돈으로 책 사는 것에는 인색함을 보게 된다. 막내놈에게 책을 읽게 할 요량으로 몇년전부터 핸드폰과 컴퓨터를 빼앗아 버렸다. 그러니까 쉬는 날에는 서점이나 도서관에 데리고 가서 떨구어 놓는다. 하루 종일 무슨 책을 읽는지는 모르지만 책을 읽으면서 놀다가 온다. 결코 좋은 교육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궁여지책으로 밀어부치고 있다. 아들 친구놈들 사이에는 내가 무식한 폭군으로 통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나에게 아직 인격이라는 것이 있고 철학이라는 것이 있고 지혜라는 것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책의 도움이가장 컸다고 말할 것이다. 한권의 책과 그 책 속의 한줄의 문장이 그 사람의 인생을 바꾸었다는 성공 스토리는 여러 사람의 책에서 알 수 있다. 또 그런 책 제목도 시중에 나와 있다. 정말 재미없는 이민 생활 속에서도 변함없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몇가지 일들이 있다. 물론 대부분이 아내와의 생활이다. 같이 산책하고, 같이 장보고, 같이 맛있는 요리해 먹고, 같이 재밌는 드라마나 영화보고, 같이 운동가고, 아내의 수다 듣고, 삐지고 풀어지고 하는 등등 말이다. 그리고 한달에 한,두번 부부동반 해서 이웃들과 소주 마시며 수다 떠는 재미도 있다. 또 나의 도움을 필요하는 교민들에게 조그만 도움이 되는 이 직업도 괜찮다. 그 이외에는 나 혼자의 시간이다. 주로 책을 보거나 책 내용을 요약하거나 글을 쓰는 일과 혼자 생각하는 일이다. 그 중에서도 책을 읽는 즐거움은 감사중의 최고 감사다.
그런데 이번에 로또에 당첨된듯한 기회를 얻었다. 다니고 있는 교회의 도서실을 봉사하는 책임을 맡게 된 것이다. 표현이 봉사이지 내가 이민와서 개인적으로 제일 신세를 많이 진 곳이 교회 도서실이므로 봉사라는 말은 가당치도 않다. 내가 이 교회를 다니는 동안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는 기대감 못지않게 예배끝나고 도서실에 들리는 일이 나에게는 큰 즐거움이다. 이 교회 도서실에는 한국도서가 4천권정도 소장되어 있다. 올해 도서예산이 다른 예산과 마찬가지로 일부 삭감되었지만 올해도 신간 서적을 2백권 이상은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필요하다면 100권 정도는 기부금을 모아 구입해 볼 계획이다. 벌써 상반기 구입 희망 도서가 100여권으로 신청되었다. 그 신간 서적들을 빨리 보고 싶어 벌써 안달이 날 지경이다. 그리고 이 기쁨을 올해에는 지역 한인 주민들과 함께 나눌려고 한다. 본래 도서실 개방 시간은 일요일 9시반 부터 2시 반인데, 다른 교회를 다니거나 다른 종교를 믿으시거나 종교를 믿지 않으신 분들이 일요일 남의 교회에 와서 책을 빌린다는게 힘들거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저녁 6시반부터 8시까지 지역 주민들에게 도서실을 개방하기로 했다. 흔한 말로 이 교회 교인으로 꼬시기(?) 위함이 절대 아님은 믿으셔도 된다. 그런 저의(?)가 있다면 나부터라도 권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런 조건이 없다.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편한 마음으로 오셔서 커피도 한잔 하시고, 저와 수다도 떠시고, 좋은 책도 빌려 보시면서 이민의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드셨으면 하는 소망이다. 궁금하신 사항은 저에게 전화를….
팔불출 (03-04-2011)
사람이 살면서 자랑하고 싶은 일이 많을수록 살맛나는 세상일 것이다. 특히나 살기가 힘들고 요즈음처럼 웃을 일 없는 세상에 조그만 자랑거리만 있어도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자랑은 자신의 소박한 꿈일수도 있고 소망일 수도 있다. 자랑은 자신의 열등과 아픔을 덮어주는 반창고 역할을 한다. 얼굴 생김새나 행색은 별로인데 얼굴에 자신감이 넘치고 무슨 큰 보물을 가지고 있는듯한 의기양양한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남들이 무어라 하든지 그 사람은 자신만의 보물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보물을 자랑, 자부심, 자존심, 명예, 상대적 우월감 등 여러가지 표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사람은 누구나 이러한 상대적 우월감이 있기 때문에 제 잘난 맛에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국에는 <팔불출>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어원은 ‘몹시 어리석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초기 유래는 8개월도 안되어 나온 사람을 칭하는 말로서 칠삭동이를 말하였다. 하지만 선조들이 말하는 팔불출은 첫째가 제 잘났다고 뽐내는 자기 자랑이고 둘째가 마누라 자랑, 세째가 자식자랑, 네째가 선조와 아버지 자랑, 다섯째가 잘난 형제 자랑, 여섯째가 학교 출신과 선후배 자랑, 일곱번째가 고향 자랑, 여덟번째가 자기보다 잘난 친구 자랑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어디 그런가. 자기 PR 시대이고 제 잘난 맛에 사는 세상이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내가 조금이라도 잘났으면 큰 소리치는 세상이 아닌가. 돈과 성공만이 온통 인생의 화두이니 내가 잘났으면 당연히 자랑하여야 하고, 내가 잘난 것이 없으면 사돈의 팔촌을 동원해서라도 기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세상아닌가.
이민사회의 팔불출은 누구인가. 여덟가지 팔불출을 네가지로 요약하면 내 자신의 자랑과 마누라 (남편)자랑과 자식 자랑과 주변 사람 자랑일 것이다. 내 자랑이야 ‘내가 왕년에—‘로 대변할 수 있다. 이곳 이민 사회에서야 누구나 소수 민족으로서의 열등감, 사회적 신분의 한계, 열악한 근무 환경, 오십보 백보인 구멍가게 를 하므로 별로 자랑할게 없다. 그러니 검증할 수 없는 혼자만의 <왕년에> 이야기만 하는 것이다. 둘째가 마누라 자랑인데 무엇을 자랑하나. 부부 모두가 하루 열두시간씩 죽도록 일하고 집에 들어오면 겨우 밥 먹고 자기 바쁜데 어느 세월에 알뜰 살뜰 남편 챙겨줄 여유가 없다. 얼굴 가꿀 시간도 없고 에스 라인 몸매를 만들 시간도 없다.늘어나는 주름과 거칠은 얼굴에 보톡스를 맞으면 무엇 하겠는가. 기꺼해야 명품 가방 하나 들고 생색내는 것이 전부다. 부부가 서로 자랑할 때에는 상대방이 돈을 잘 벌거나 눈치 빠르게 알아서 처신하는 경우일 것이다. 그래도 마누라 자랑을 좀 하라고 하면 ‘범사에 감사한다.’고 대충 넘어간다.. 그리고 세번째 주변 친척 자랑은 마음에 내키는 사람이 없는데 주변 사람 누구를 자랑하겠는가. 욕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마지막이 자식 자랑인데 이것이 문제다. 이민자들에게 자식 자랑을 하지 않으면무슨 꿈이 있으며, 무슨 낙이 있겠는가. 이민온 부부에게 유일한 희망은 <자식 성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민 부모들이 자식들 자랑을 할 때에는 부부 모두 만면에 미소가 넘친다. 그 미소 속에 모든 이민의 아픔과 서러움이 모두 녹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도 자식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이곳 미국에서 자식을 잘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아는 다음에야 부모들의 말 못할 속상함도 짐작을 한다. 아니 어쩌면 겉으로 내놓고 자랑할 수 있는 자식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부모 속 썩히며 애먹이는 자식들이 더 많을 것이다. 부모는 자식의 허물들을 모두 먹어 버리고 죽는다고 하지 않는가. 어딜 가서 내놓고 하소연도 못한다.
이곳 이민 생활은 부모도 힘들지만 자식들은 더 힘들다. 지금도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깨어지고 부서진채 방치된 우리의 아이들이 너무 많다. 부모들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절대절명아래 자식들이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 알지도 못한다. 마약에, 폭력에, 술에, 무절제한 성생활에, 인종간 모멸과 차별에, 문화적 혼란에 방황하고 있다. 어느 시대나 자식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필요로 한다. 누구나 청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의 가슴 아픈 고민들이 있다. 일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류 대학을 들어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긴 인생의 시작이며 일부분일 뿐이다. 일류들 끼리 모이는 학부모들은 자식을 일류라고 자랑하지 않는다. 강한자들 끼리 모임에는 자신이 강하다고 자랑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일류 중 일부는 탈락하고 한발짝 나아가면 또 일부가 탈락하고 끊임없이 탈락하여 결국 극소수만 살아남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내 자식이 일류라고 자랑하면 안된다. 이민의 부모들은 버지니아 텍 사건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 주변에 영혼이 아픈 자식들이 너무 많다. 내 자식, 당신 자식이 따로 없다. 언제 어디서 아파하고 망가질지 우리 부모들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자식이 조금 괜찮은 대학에 합격했다고 동네방네 대문짝만하게 연일 광고를 한다면 그 사람의 의식구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돈이 흘러 넘쳐 동네 사람 불러서 소잡고 돼지 잡는 팔불출 행동이야 말릴 수 없겠지만, 내 자식 자랑하는 동안 남의 자식 부모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는걸 한번이라도 생각한 적이 있을까. 자식은 불확실한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 그래서 자식 자랑을 하면 팔불출이 되는 것이다. 내일을 모르는 자식을 자랑해서 나중에 망신당하는 것은 본인의 무지라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상처받은 다른 부모들에게는 어떻게 사죄할려고 하는가. 그래서 현명한 선조들이 <팔불출>이 되지말라고 한 것은 신께 <감사>하고, 자신에게 <겸손>하며, 상대의 아픔을 <배려>하라는 깊은 뜻일게다. 정녕 자식과 가족을 자랑하고 싶으면 문 걸어 잠그고 십자가 아래에 무릎 꿇고 하나님께 큰 소리로 자랑하면 될 것을..
봄의 그리움 (03-11-2011)
인간의 단어 중에 <그리움>이라는 말처럼 애틋한 것이 있을까. 그리움은 사랑이 바탕색이다. 사랑했기 때문에 그립고,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립다. 그리움은 애틋함이요, 애잔함이다. 그리움은 기약이나 약속은 없지만 희망이요, 꿈이다. 그래서 그리움은 설레임이기도 하다. 그리움은 기다림을 수반하며 인내를 필요로 한다. 참고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나의 모든 열정을 다해 사랑하리라 다짐도 한다.
오늘은 봄이 무척이나 기다려지고 보고 싶다. 위대한 신의 선물이니 내가 그리워하지 않더러도 때가 되면 찾아 오겠지만, 오늘은 내가 봄을 미치게 그리워하며 기다림 중이다. 유난히 지겹고 추웠던 이번 겨울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음도 몸도 너무 오랜동안 움추린 것 같다. 산책길의 나무들을 봐도 그렇고, 사무실 앞의 나무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나가 봐도 좀처럼 봄이 오지 않는다. 기다리다 못해 법정스님의 <봄, 여름, 가을,겨울>의 책을 꺼내들어 <봄>편을 읽어본다. 한잔의 차를 마시면서 스님의 글을 오랜만에 읽으니, 이제는 스님이 안계신 빈 오두막 집에 홀로 초대되어 앉아 있는 기분이다. 스님이 그리워진다.
스님은 이 책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땅과 태양과 동물을 사랑하라. 부를 경멸하라. 신에 대해 논쟁하지마라. 자유롭게 살면서 당신 생애의 모든 해, 모든 계절, 산과 들에 있는 나뭇잎들을 음미하라. 학교, 절과 교회, 책에서 배운 모든 것을 의심하라. 당신의 영혼을 모욕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멀리하라. ~ 기도하라. 모든 생각을 비우고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라. 기도는 겸허한 자의 몫이다. 자기를 낮출줄 아는 자만이 엎드려 기도할 수 있다. 때로는 절망적이고, 해답의 출구가 발견되지 않을 때 홀로 외딴 방에 들어가 기도하라. ~ 새봄의 흙 냄새, 속뜰을 적시는 봄비, 잔기침을 하면서 깨어나는 침묵의 숲. 우리는 삶의 경이로움과도 만나야 한다. ~ 산의 고요와 침묵은 인간에게 명상의 씨를 뿌려주고, 바다의 드넓음과 출렁거림은 꿈과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부성적인 산과 모성적인 바다의 요소가 함께 조화를 이룰 때 삶은 생동감을 잃지 않을 것이다. ~ 계절의 변화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부슬부슬 내리는 밤비 소리를 들으면 내 속뜰에도 촉촉히 젖어드는 것 같다. ~ 눈으로 새벽 달빛의 그림자를 맡는다. 별빛처럼 또렷한 맑은 정신으로 세월을 읽는다. ~ 숲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 시장끼를 느끼게 하는 저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마음속의 묻은 때도 씻기는 것 같다. ~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고 혼자서 진다. 진달래가 벌겋게 온 산을 물들이다가 지면 그 뒤를 이어 산벚꽃이 하얗게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난다. 그러다가 연분홍 철쭉꽃이 문을 열기 시작하고 5월에는 모란이 피어날 것이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비슷한 반복이요, 되풀이다. 굳이 종교적 의미를 붙인다면 그 반복과 되풀이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일일 것이다. ~ 꽃은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다른 꽃의 흉내도 내지 않으려고 한다. 시샘하거나 부러워 하지도 않는다. 남과 비교할 때 자칫 열등감과 시기심 또는 우월감이 생긴다. 견주지 않고 자신의 특성대로 제 모습을 지닐 때 꽃은 자신의 꽃답게 순수하게 존재할 수 있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니 이 대지에 봄이 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숲에는 질서와 휴식이, 그리고 고요와 화평이 있다. 숲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안개와 구름, 달빛과 햇살을 받아들이고, 새와 짐승들에게 보금자리를 베풀어준다. 그리고 숲은 거부하지 않는다. 자신을 할퀴는 폭풍우까지 마다하지 않고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 산 속에서 새소리는 종일 들어도 싫지가 않다.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이라 할지라도, 또는 마음의 양식이 될 어떤 고승의 설법이나 부흥사의 설교라 할지라도 장시간 들으면 시끄럽고 지겹고 멀미가 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대를 살면서 몇분의 영적 스승을 만날 수 있음을 감사한다. 그 분들은 공통적으로 자연을 사랑하셨다. 신이 만드신 가장 훌륭한 걸작품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과 더불어 함께 사는 인간은 존경받았지만, 자연을 정복하려던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을 파괴했으며, 결국은 신과의 관계마져 파괴했다. 나는 도심의 한가운데서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도심의 한가운데서 살다가 죽어갈 것이다. 그래서 그 영적 스승들의 가르침과 자연의 위대함을 깊이 깨달을 수가 없다. 기껏해야 배낭메고 며칠씩 산행을 하거나 산 속 암자에 묻혀있다 오는 것이 고작이다. 스님은 봄이라는 자연과 많은 대화를 함을 알 수 있다. 산새로는 “ 산비둘기, 휘파람새, 할미새,찌르레기(철새로는 제일 먼저 찾아 온다), 소쩍새, 두견새, 쏙독새(일명 머슴새), 꾀꼬리, 뻐꾸기, 방울새, 밀화부리” 등이 대화의 대상이다. 산 중에 피는 봄꽃으로는 “산목련, 감자꽃( 연한 보라밫에 노란 꽃술을 머금은 올망졸망한 꽃), 싸리꽃, 3월 초순께 꽃을 피우는 매화, 안개 같은 산수유꽃, 돌배나무와 산자두, 3월의 산동백, 수선화, 진달래, 산벚꽃, 철쭉” 등이 등장한다.
나는 가끔 아내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생전에 다시 한번 지리산이나 내설악이나 외설악이나, 대둔산, 내장산 등을 배낭메고 가볼 수 있을까.” 그 산들은 우리가 연애 시절에 사랑을 만들어 가던 곳이다. 화엄사, 송광사, 쌍계사도 가 보고 싶다. 또 학가산 등 이름없는 암자에도 며칠씩 머물고 싶다.” 오늘처럼 봄비가 내리는 5월이 되면 물을 머금은 지리산은 고요한 한폭의 수묵화 그 자체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부탁을 한다. “ 내 죽으면 여명이 밝아오는 지리산 정상에서 내 뼈가루를 뿌려달라.”고 말이다. 그런 말을 하는 날이면 나는 영락없이 그날 밥을 얻어먹지 못한다. 아내를 삐지게 하는 방법도 여러가지다….
석유와 독재자들 <전편> (03-19-2011)
지금 세계는 두분류의 안타까운 사건과 죽음들로 인해 세계인들 가슴을 아프게 한다. 하나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일고 있는 민주화 운동 (일명 자스민 운동) 으로 독재자들과 맞서 싸우다 죽어가는 수많은 군중들이며, 다른 하나는 상상을 초월한 지진과 쓰나미, 또 그로 인해 발생하는 원자로 방사능 피해로 인해 아직도 피해 규모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일본 국민들의 죽음이다. 전자가 인재라면 후자는 천재지변이다. 먼저 중동국가의 석유와 권력의 상관관계, 그로 인한 독재구조를 조금만 살펴보자.
순진하고 선한 사람들은 이렇게 소원할 것이다. 이번 기회에 북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에 민주화 바람이 들불처럼 일어나 중동지역의 모든 독재자들이 추방당하고 그 땅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고 더 나아가 종교적 자유까지 온누리에 퍼지기를 바랄지 모른다. 또 ‘자스민 운동’ 이라는 범민주화 운동이 전 세계 독재국가 특히 북한에도 불어주기를 소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중동지역 운동의 저변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두가지 핵심축이 있다. 하나는 세계 에너지 전쟁의 권력이 재구성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 금융권력들이 세계를 집어삼키기 위해 20년전 유행시킨 <세계는 하나, 글로벌화, 국제화> 라는 구시대의 전략에 대한 후유증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이다. 즉 인터넷과 정보통신의 발달로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평평해지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비밀 정보들이 무식한(?) 평민들에게 공개되어지고, 거기다 멍청하다고 생각한 후진국 하청공장 국가들이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경지까지 된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그들이 에너지 시장에 경쟁자로 발을 디미는 것이다. 가끔은 석유 한방울 안나는 한국 사람들은 석유부자나라인 그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게으르다고 시샘할 수도 있다. 땅만 파면 석유가 쏟아지고 그 석유만 팔아도 대대손손 온 국민이 잘 먹고사니, 일하지 않아도 되고, 죽자사자 공부 안해도 되고, 출세할려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되니 개팔자가 따로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기야 돈뭉치를 땅바닥에 깔고 사는 민족들이니 신으로부터 가장 축복받았다고 해고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왜 그들 국민들은 못살고 가난하며, 독재자들이 권력을 휘어잡고 수십년씩 장기 집권을 하고 있으며, 왜 백성들은 무지할 만큼 교육 수준이 낮고, 국가에는 수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있건만 왜 그들은 백성들을 외면하며, 종교는 정치 권력과 한 통속이어야 하고, 그들 종교는 왜 광적이고 과격해야 할까. 과연 그들이 믿는 신은 최초부터 지금과 같은 가르침을 주었을까. 아니다. 그들과 우리 신은 같은 신이다. 그들은 그들의 신을 죽이고 새로운 그들의 <율법>이라는 신을 만든 것이다. 중동국가와 독재자들, 그리고 종교의 권력화를 알아야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와 현대 기독교의 위기와 부패를 알 수가 있다.
세차례나 퓰리처상을 수상하였으며, 세계적인 국제분야 전문가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저술한 <코드 그린>에서 몇가지 사실을 인용한다.
파키스탄 최대 규모의 신학대학교 (마다라사)에는 2,800명의 학생들이 기숙생활을 하고 있는데, 파키스탄에는 현재 이러한 이슬람 신학대학교(마다라사)가 3만여곳이나 된다. 이는 1978년 약 3천곳에 비하면 10배나 늘어난 숫자이다.
2006년 OPEC 석유 카르텔 회원국들이 석유수출로 벌어들인 돈은 5,060억 달러에 달한다. 2007년 OPEC 수익은 약 5,350억 달러까지 증가하고, 2008년에는 6,000억달러를 넘어선다. 1998년 OPEC가 벌어들인 돈은 1,100 달러였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에서 얻은 수익은 2006년 1,650억달러, 2007년 1,700억달러, 2008년 2,000억달러를 넘는다.
미국의 <석유중독증>이 국제 시스템에 대표적 변화를 가져온다. 첫째는 미국이 에너지 구매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편협하고 반근대적이며, 반서구적이며, 반여권적이고 반다원적인 이슬람 세력을 키우는데 결정적 일조를 하고 있으며, 이 세력을 키우는 힘이 바로 사우디 아라비아이다. 3천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9.11 사태에 연루된 사람은 총 19명인데 그 중에 15명이 사우디아라비아 사람이었다. 참고로 부시 가문을 비롯하여 미국과 유럽의 석유재벌들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레바논을 형제로 생각한다. 둘째는 미국의 석유 중독증은 민주주의를 역행하는데 사용되는 자금의 원천이 되고 있다. 이를 <석유정치학의 제 1법칙>이라고 부르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유가가 올라가면 자유의 보폭은 느려지며, 유가가 내려가면 자유의 보폭은 빨라진다는 것이다.” 세째. 미국의 석유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전 지구적인 에너지 쟁탈전이 추악하게 격화되어 간다. 미국은 에너지 구매를 통해 대 테러 전쟁을 벌이는 전선 양쪽편 모두에게 자금을 대주고 있는 꼴이다. 미국의 구매는 페르시아만의 보수적인 이슬람 정부들의 부를 채워주고 이들 국가는 이슬람 세계 주변국의 자선단체, 사원, 신학교, 개인들에게 나누어 주며, 그 돈의 일부는 반미 테러리스트 단체와 자살 폭탄 테러단, 이슬람 전도사에게 기부하게 된다. 미국의 에너지 정책은 “수요를 최대화하고 공급을 최소화한 후 미국을 가장 증오하는 사람들에게서 최대한 많은 물량을 구매해 그 차이를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석유중독증 때문에 지구 온난화는 가속화되고 있으며, 석유독재자들은 더 힘을 얻고 있다. 깨끗한 공기는 더 더러워지고 있으며,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있으며, 민주주의 국가들은 힘을 잃어가고, 과격주의 테러리스트들은 더 많은 부를 손에 쥐고 있다.
석유와 독재자들 <후편> (03-26-2011)
지금의 중동국가는 왕정국가와 독재국가들이 혼재되어 있으며, 배후에 세계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는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독재자들은 무너지고,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이 이길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나 미국과 유럽, 중국과 러시아를 유심히 보면 그들은 민중과 독재 정부 어느 한편에도 기울지 않는다. 튀니지의 벤알리, 예멘의 살레,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의 카타피, 시리아의 아사드에 대한 반응도 그러하고,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왕정국가들이 바레인을 침공한 사건들을 보면 더 많은 반란이 예고되지만, 강대국들은 오직 그들 이해관계에만 관심이 있다. 독재자들이 권좌에서 잠시 물러났다고 하더라도 강대국들과 주변국가들의 이해 관계만 맞으면 언제라도 다시 그 자리에 다른 독재자를 앉힐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자기 권력과 부귀영화를 지키기 위하여 백성들을 곤충처럼 무자비하게 죽이는 인간 말종인 독재자들도 한때는 조국을 위하여 혁명을 일으킨 ‘반제국주의자’며, ‘아랍 민족주의자’들로 칭송받던 자들이다. 그러나 종교든, 정치든, 권력이 집중화되고 장기화되면 부패하고 썪기 마련이다.
먼저 석유와 이슬람 종교를 알아보자. 전 세계 이슬람교도의 수는 약 15억명을 넘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최대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슬람 최고의 성지 메카와 메디나도 이곳에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막대한 자금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양성하는데 퍼부었다. 2008년기준으로 중동인구 중 25세미만이 전체 인구의 거의 3분의 2에 달하는데, 그중 25% 이상이 실업상태라고 한다. 일자리를 찾지못하는 그들 중 대부분이 종교의 구원으로 도움을 받는다. 오늘날의 중동은 석유가 발견되기 시작한 50년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며, 지금과 같이 된 이유는 사우디아라비아 와 다른 보수적 걸프지역 국가들에게 방대한 석유자금이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그 자금은 국내외의 보수적인 자선단체와 종교기관등으로 흘러 들어갔다. 율법이 엄격한 수니파 이슬람이 주축인 사우디 아라비아는 이슬람 세계 전체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시아파, 유대교, 동성애자, 배교자에게 극단적 증오감을 갖고 있으며, 이슬람교도 이외의 모든 사람들, 특히 여자들을 끔찍이 억압한다. 이들의 사상은 알 카에다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하지만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를 핵심적 동맹국으로 여기며, 알카에다는 핵심적 적대 세력으로 간주하는 모순을 범한다. 따라서 미국의 에너지 구매는 단순히 소수의 아랍 교주들에게 돈만을 두둑히 챙겨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은 ‘마다라사’라는 이슬람 최고 인재들을 사우디아라비아 와 쿠웨이트에 불러 들여 10년간 철저하게 교화시키고, 고국으로 돌아갈 때 아내를 네명씩 얻게 하고, 토끼처럼 엄청나게 자식들을 많이 낳아 기르라고 가르친다. 세뇌당한 학생들은 자식을 대량 생산해 내고, 20년, 40년, 아니 60년 이후까지 내다보는 것이다. 이러한 극단주의 병사들이 전 세계의 이슬람 국가로 넘쳐나게 될 날이 멀지 않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리비아를 미국의 동맹국으로 여기지만, 이라크로 건너온 전사의 60% 이상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리비아 출신들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수입이 수출 총 수입의 90~95%를 차지하고, 국가 총 수입의 70~80%를 차지한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살라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대고 있다면, 이란(중동에서 두번째로 석유 산유량이 많음) 은 혁명적 시아파에게 자금을 대고 있다. 이 두 나라가 이슬람 세계의 진정한 리더로 경쟁하고 있다.
경제용어에 <네덜란드병>이라는 말이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국가의 풍부한 천연자원이 나라의 정치와 경제에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일명 <자원의 저주>라고도 하는데 <산업의 공동화 현상>을 일으킨다. 유래는 1960년대 초반 네덜란드가 북해에서 어마어마한 천연가스를 발견하면서 유래되었다. 먼저 석유, 금, 가스, 다이아몬드나 천연자원의 발견으로 현금이 쏟아져 들어오면 통화가치가 상승한다. 이 통화강세로 국가 상품가격이 높아지고 생산자 입장에서는 수출 경쟁력을 잃게 된다. 따라서 국내 소비자들은 저렴한 외국산 수입품을 수입하게 되며, 현금이 풍부한 국민들은 제약없이 더 많은 저가 수입품들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국내 제조 산업은 붕괴하게되고 산업 공동화 현상이 찾아 오게되는 것이다. 국가는 국민들에게 세금을 면제해 주고, 일하지 않아도 국민들에게 돈을 지불한다. 국가는 천연자원에 대한 의존도 때문에 국내정치와 투자, 교육의 우선순위가 왜곡, 변질된다. 따라서 모든 국가의 권력은 자원을 통제하고 자원을 통해 부를 축적한 극소수의 지도층 중심으로 집중된다. 대표적 사례가 국민들은 가난하고 무지하며, 일부 지도층과 집단들은 부유하다는 것이다. 그건 국가가 교육, 혁신, 법집행, 기업운영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건 단지 누군가가 오일머니를 훔치고 있고,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빼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국민들은 그렇게 도둑질하는 독재자만 막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뿐, 더 나은 국가 사회를 건설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혁명은 독재를 낳고, 독재는 또 다른 혁명을 낳는다. 따라서 석유자원이 중동국가의 생존수단이 되는 한, 석유 가격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독재는 더 심해질 것이며, 이슬람교는 더 팽창할 것이다. 반면에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석유 가격이 폭락하면 구 소련이 멸망하였듯이 중동국가는 무너질 것이다. 중동의 민중은 그 전에 홀로서기가 되어야 한다. 그 원인 제공과 해결방안 모두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석유 재벌들과 제국주의자들이 갖고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님>의 아픔 (04-01-2011)
해마다 어김없이 사순절의 ‘고난주간’과 ‘성삼일’을 맞이하면 <님>의 아픔이 어섬프레 온 몸을 타고 흐른다. 나는 이민의 삶 속에서 그분의 많은 은혜에 감사의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 예수쟁이 입장이 아닌 비신자 입장에서 <님>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님>은 하나님의 외아들이면서 왜,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남기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그렇게 힘들게 사시다가 가셨을까. 그것도 그 당시에는 가난한 나라 이스라엘, 가난한 골통 민족인 유대인, 그 중에서도 유독 가난한 집안에서 비정상적인 태생으로 태어나신다. 가난한 유년 시절과 막노동과 목수 보조일로 생계를 잇다가, 어느날 가출하여 떠돌이 생활을 하고 돌아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문하생이 되신다. 그러다 집도 절도 없이 일정한 수입도, 직업도 없이 떠돌아 다니면서 가난한 자, 버림받은 자들을 위해 함께 생활하시고 몸소 실천하시면서 그들을 사랑하심을 행동으로 보여주신다. 그러했기에 가난한 이방인들과 소외당한 자들에게 빛과 희망을 주신다. 그러다가 결국 한심한 제자들 에게 배신과 외면을 당하고 같은 민족인 유대인들에게 고발당하여 결국 유대인들 손에 죽임을 당하신 것이다. 장가도 못가시고 처자식도 없이 혼자서 외로히 가신 것이다. 이 모든 과정과 결과를 미리 알고 계셨기에 더욱 괴로워 하셨고 힘들어 하셨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신다. 그러했기에 <님>의 십자가 죽음은 <부활>로 재입증되었고, 현대 기독교는 <구원과 부활>의 종교가 된다. <님>이 말씀하신 <사랑과 용서>는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아니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종교를 떠나 누구에게나 ‘세계인들의 희망이고 등불’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님>을 욕보이고 침을 내뱉고 등을 돌린 자는 누구인가? 아니 다시 부활하시어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내재신>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님>을 능멸하고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자는 누구인가? <님>을 믿지 않는 자들인가. 불교 신자 ? 이슬람 교도? 샤마니즘과 무당들? 무신론자들? 아니다. <님>을 2천년이 넘게 아프게 한 인간들은 <님>을 믿는다는 나와 같은 <기독교인>들이었다. 기원후 중세 역사와 근대사, 현대사에서 가장 많은 전쟁을 일으키고 가장 많은 인류를 살해한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들의 역사는 <침략과 찬탈>의 역사였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5백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왕권주의, 제국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전쟁은 기독교와 연관되어 있음을 고백해야 한다. 전 세계 대륙의 침략, 북미 대륙의 원주민, 중미, 남미의 원주민, 아프리카 원주민, 남태평양과 아시아의 원주민들에 대한 <씨를 말리는> 대량 학살을 기억해야 한다.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한국전, 월남전, 중동전쟁, 등등 그 수많은 전쟁을 통하여 세계 인류를 누가 어떻게 죽였는지를 조금만 알아도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 불과 얼마전 무고한 아이들과 여자들을 학살한 이라크 전쟁을 보아도 그렇다. 부시는 스스로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온 천지에 공표하고 아침마다 기도하는 인간이었다. 항상 그러했었다. <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인류를 죽인다는 것이다. <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가고, <님>을 믿는자만이 <천국>을 간다는, 그래서 믿지 않는 자들을 죽인다면 그 율법은 누가 누구를 위해 만든 것인가. 역사 속의 기독교인들은 <님>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곡해하여 수많은 오류와 잔인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들은 우선 전쟁으로 남의 나라를 빼았고 원주민을 학살하여 식민지로 삼은후 곧바로 기독교 선교사를 파견하여 교회를 세우고 기독교를 전파하였던 것이다.한 손에는 십자가를, 다른 한 손에는 총과 칼로 인류를 죽인 것이다.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주의’ 운동은 대영 제국주의와 <님>을 앞세운 서구 기독교인들을 질타하기 위한 운동이었다.
<님>은 이 역사의 진실을 보시면서 얼마나 아파하실까. <님>의 <사랑>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말씀이었으므로 오랜 세월 동안 모든 인류가 믿고 따르는 것이다. <님>의 <사랑과 용서>만 실천하려고 몸부림쳤다면, <님의 말씀>을 따르는 기독교인들이었다면 이 지구촌은 오랜전에 이미 <천국>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2년전 고난주간에 <용서>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최인호씨의 <영혼의 새벽>을 참고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님>께서 몸부림치던 그 <마지막 잔>에는 무엇이 있었을까?라는 주제였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사오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옵소서” 그 다음 기도는 “아버지, 이 잔이 제가 마시지 않고는 치워질 수 없는 잔이라면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그리고 마지막 기도는 “아버지, 이 잔을 제가 마시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을 제가 이루겠나이다.” 그 <님>의 잔 안에는 <사랑과 용서>가 들어 있었다.
요즈음 세간의 화두는 한국 기독교와 교회 지도자라는 적지 않은 목사들의 위선과 기만적 행위이다. 조폭과 다를 바 없는 그들의 권력과 재물과 폭력과 욕망을 보면서 한국 교회의 문제와 위기를 통감할 수 있었다. “교회안에 예수는 없고 십자가만 있다. 성경 속의 예수와 교회에서 말하는 예수는 다르다. 교회안에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있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없다.” 한완상 교수가 쓴 <예수 없는 예수교회>를 보면 우리 기독교인들이 심각하게 자성하고 참회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내려놓음도 없고, 낮아짐도 없으며, 나사렛 예수, 갈리리 예수, 겟세마네의 예수, 갈보리의 예수는 잊어버리고 부활의 그리스도만 믿으려고 한다. ‘역사속의 예수’는 없고 ‘공포의 신과 율법의 신’만 있다. ‘예수 믿으미’만 있고 ‘예수 따르미’는 소멸되어간다는 것이다. 주여, 용서하소서. 오늘도 제가 <님>을 아프게 하였나이다.
꽃 상 여 (04-08-2011)
얼마전에 내 주변의 착한 여자분이 꽃상여를 타고 하늘 나라로 갔다.아직도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살아야 할 세월이 많이 남은 젊은 나이다. 평소에 깊은 신앙심과 교회 봉사 활동을 열심히 한 탓일까 조문객들은 끊이지 않고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줄을 잇는다. 교회의 같은 팀으로 짧은 시간 함께 봉사를 하면서 몇번의 대화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그 분이 소장하던 십자가를 선물로 받기도 했다. 말년에 암 투병으로 일년여의 긴 세월을 고통 속에서 견디며 보내야 했다. 건강이 극도로 나빠졌다는 말을 전해 들은 이후부터는 병문안 가는 것도 짐이 될까 봐 가 보지도 못하고 끙끙거리며 혼자서 기도만 했다. 많은 사람들이 훌훌 털고 일어나기를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승보다 저승이 더 좋았나보다. 이승보다 하나님 나라가 더 좋았는가 보다. 남편도 자식도 사랑하는 사람들도 남겨둔 채 머리에는 봄꽃으로 만든 화관을 쓰고서 훨훨 날아갔다. 마치 천경자 화백의 그림에 나오는 ‘꽃과 여인’처럼 말이다. 나는 뷰잉장에서 망자의 편안한 모습을 보면서, 아마도 그녀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만든 ‘마음의 꽃상여’를 타고 천국에 갔을 거라고 믿는다.
우리는 살면서 적지 않은 주검을 만나게 되고 장례식장에도 적지 않게 간다. 결혼식에는 못가도 장례식에는 가야 한다는 한국적 정 때문이리라. 일가 친척 하나 없는 이국 땅에서도 몇번의 장례식에 참여해 보지만, 떠나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나 준비가 덜 된채 항상 이별은 서툴고 당황하기는 서로가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국의 장례식과는 장례기간과 절차가 모두 어색하다. ‘미국에 오면 미국식으로 해야 하고 죽을 때도 미국식으로 죽어야지.’ 하면서도 그래도 거리감이 있고 서툴다. 망자는 바쁠 것도 없는데, 참가한 조문객들이 바빠서인지 너무 정례화된 기분이다. 한시간 정도의 짧은 장례미사가 끝나면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 처럼’ 평상으로 돌아가는게 너무 도시화된 느낌이랄까, 세련된 현대인 같다고나 할까, 아무튼 나는 싫다. 한국 사람은 ‘한’이 많은 민족이다. 이민자는 그 중에서도 더 ‘한’이 많은 사람들이다. ‘한’이 많은 사람들은 울어야 한다. 큰 소리로 곡을 하면서 울어야 한다. 이승에 함께 살면서 이어졌던 수많은 끈들을 울음으로 풀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장례식장은 울음과 절규와 몸부림이 더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곳 미국식 장례는 너무 점잖하다. 대륙인들은 슬픔을 안으로 새겨서인지 모르지만, 나는 싫다. 보내는 사람이나 떠나는 사람이나 너무 쿨하다.
한국 장례도 요즈음은 3일장이 대세다. 문상객들은 문상와서 망자를 추억하고 덕담을 하고 밥먹고 술 마시고 상주를 위로한다. 화투도 치고 떠들고 고함도 친다. 그건 망자도 상주도 덜 힘들어하라고 하는 시골스러운 배려일 것이다. 친분이 두터울수록 장례식장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밤을 세우기도 한다. 3일을 연속 출근하는 경우도 있다. 상주들은 3일장이 끝나면 거의 초죽음이 된다. 목은 목대로 쉬고 눈은 충혈되어 금방이라도 피눈물이 흐를 것 같다.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잠도 구석에도 잠깐 눈을 붙이는게 전부다. 동네 아줌마들과 친척 여자들은 문상객들 밥 해먹이느라 진이 다 빠진다. 거기다 망자를 꽃상여에라도 태울 셈이면 상여꾼을 모집해야지, 행여 선소리꾼을 모셔 와야지, 상여 만들어야지, 만장기를 앞세워야지, 두세군데서 노제를 지내야지, 장지를 정해야지, 비석 세운다면 세길 문장 만들어야지, 봉분 만드는 일, 묘자리 풍수지리까지 보아야 하면 보통일이 아니다. 3단 꽃상여를 태워서 보낼라면 돈은 또 얼마나 드나. 하기야 요즈음은 꽃상여를 타고 싶어도 행여꾼 구하기 조차 어려우니 어지간해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삼일장이 끝나면 삼오제가 있지, 그 뒤에는 사십구제가 있지, 천도제가 있지, 기제사가 있지,줄줄이 제사다. 그렇게 이별하기가 싫을까. 함께 살 때 잘 해주지 무슨 미련이 남아 죽은 망자를 끌어 앉고 잊지를 못하나. 그게 한국 민족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불분명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불명확하다. 살아 생전에 가족들을 그렇게 못살게 굴던 아버지지만, 기일만 되면 정성껏 제사상 마련하고 그 앞에서 절하고 눈물짓는 사람들이 한국 사람이다. 그 제사는 대를 이어간다. 그러니 한국 사람에게는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닌 것이다. 헤어져도 잊혀진 게 아닌 것이다. 나는 지금 이 나이에도 23년전에 떠나가신 아버지를 꿈 속에서 가끔 만난다. 주무시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으니 이별의 준비가 전혀 안된 상태였다. 나는 그때 맏상주이면서도 조문객들의 문상과 삼일장을 어떻게 지냈는지 모른다. 눈을 감고 계속 울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3단 꽃상여가 나가는 날은 4월 7일이었는데 무슨 봄날씨가 그렇게도 좋은지.. 날씨가 좋아 더 울었다. 선산에는 봄꽃들이 피어나고 산새들은 지저귀고, 나무에는 새순들이 연두색으로 피어났다. 행여꾼의 애 끓는 선소리와 구성진 후렴은 길게 길게 이어져갔다. 나는 아버지 꽃상여가 나가는 장면을 평생 잊지 못한다. 마치 구름속을 둥실둥실 떠가는 모습이었다. 상여 위에 서서 긴 상여끈을 붙잡고 부르는 행여 소리는 지금도 귓가를 멤돈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 북망 고개로 나는 간다. / 황천길이 멀다지만 / 대문 밖이 저승이네. / 이제 가면 언제 오나 / 기약없는 길이로세 / 명사십리 해당화야 / 꽃진다고 서러워마라 / 명년 춘삼월 돌아오면 / 너는 다시 피련마는 / 우리 인생 한번 가면 / 다시 올 줄 모르더라…
친구야, 슬퍼마라. 떠나는 사람도 혼자 떠났고, 남겨진 사람도 혼자 남았다. 하지만 자네가 잊어버리지 않는 한, 헤어진것도 아니며 떠난 것도 아니라네. 삶과 죽음이 하나이듯이, 산 자와 죽은 자도 하나라네.. 시간이 조금 흐른 다음에 소주나 한잔 하세..
남은 세월 (04-15-2011)
유행가 가사처럼 ‘가는 세월’이라고 하면 세월을 붙잡지 않아도 아직까지 살 날이 많이 남은 것 같고, ‘남은 세월’이라고 하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서글픈 생각이 든다. 나에게 남은 세월은 얼마나 될까? 10년을 더 살까, 30년을 더 살까. 또 그렇게 살 수 있다면 결코 짧다고도 할 수 없는 제법 긴 세월동안 무엇을 하며 살것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보다는 좀 더 멋있게, 좀더 의미있게, 좀 더 보람있게 살아야 될 것 같은 막연함이다. 비록 남은 세월이 얼마인지 알 수가 없지만, 그렇고 그런 하루 하루를 멍하니 살다가 죽느니 무슨 의미있는 흔적이라도 남겨야 하지 않을까. 이미 우리는 세월의 한 모퉁이로 밀려난 사람들일 수 있지만 더 늦기 전에 심각하게 남은 세월을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현 시대의 훌륭한 영성가 헨리 나우웬 신부의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Life of the Beloved)>, 직역을 하면 <사랑받는 삶>인데 그 책에서 몇가지를 인용해서 남은 세월을 정리해 본다. 우리의 삶에 대한 진정한 질문은 “우리가 서로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 줄 것인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이 분의 책을 공감할려면 삶에 대한 주인부터 정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누구의 것인가. 내가 속하는 삶이 이 세상에 속하느냐, 아니면 영원속에 속하느냐.. 나의 삶이 영원한 삶을 사는, 즉 영생의 몸이라고 하면 나는 이 세상에 오기 이전 즉 영원전부터 창조주에게 선택받았으며 이미 축복받은 자로서 이 지구 (세상)에 창조주의 목적(사명)을 부여받고 온 것이다. 내가 죽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 온 목적을 마치고 내 원래의 영원 속으로 되돌아 가서 내 창조주에게 이 세상을 살면서 행하고 배운 숙제(경험)를 보고하는 것이다. 즉 죽음은 하나님의 품으로 영원히 돌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세상에 굴복해서 살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아서는 안된다.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하여 빼앗고 욕심부리고 싸우고 억지로 몸부림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짓이다. 내가 감당해야 할 거대한 투쟁은 영적 진리를 추구하면서 ‘세상에 속하지 않는 자’ 처럼 이 세상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지성과 영성>의 차이이다. 당신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사랑받았던 존재라고 확신을 가져라. 당신이 이 세상에서 진정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면 이 세상을 삶의 근원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영적인 삶이란 “너는 내가 사랑하는 자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에 대한 질문에 “네, 그렇습니다.” 라고 수많은 기회를 통하여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사는 것과 죽는 것 둘 다 영적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동일한 신비의 양면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태초에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것이라. 또 내가 너의 것이라. 너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 땅의 깊음 가운데서 내가 너를 만들었고, 네 모태에서 너와 함께 있었느니라. 너를 내 손으로 조각하였고 내 품의 그늘 안에 너를 숨겼느니라. 나는 한없는 부드러움으로 너를 보고 있고, 엄마가 자기 아이에게 하는 것보다 더 친밀한 보살핌으로 너를 돌보고 있느니라. 네가 어디를 가든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네가 어디서 안식을 하든 내가 지키리라. 너의 모든 배고픔을 만족시켜 줄 양식을 주고, 너의 갈증을 해갈시켜 줄 음료를 주리라. 내가 너에게서 내 얼굴을 숨기지 않으리라. 내가 나를 알듯이 너를 아는 것처럼, 너도 너를 알듯이 나를 알게 되리라. 네가 어디에 있든지 내가 거기에 있을 것이라.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갈라 놓지 못할 것이라. 우리는 하나이니라.”
우리의 삶에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위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확고히 믿는다면 우리는 ‘사랑 받은 자’이며 ‘사랑받는 자’가 ‘돠어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나의 삶은 세상을 위한 양식이 되도록 —선택받아서 (taken), 축복받고(blessed), 상처입고 (broken), 나누어 주는(given) – 부름을 받은 것이 되는 것이다. 이 네가지 중에서 3가지는 수동형이며,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동형은 나누어 주는(given)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나누어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 비로서 사랑받고 축복받으며, 상처받은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무엇을 나누어 주다가 죽을 것인가. 첫째는 우리의 삶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훌륭한 선물이다. 우리의 진정한 은사는 우리의 행위보다 우리의 존재 자체라는 사실이다. 재능과 은사는 다르다. 우리는 재능은 별로 없을지 몰라도 은사는 많이 가지고 있다. 은사는 우리의 인간성을 표현하는 여러가지 방법이다. 우정, 친절, 인내, 기쁨, 평안, 용서, 온유, 사랑, 희망, 신뢰, 그이외 많은 것들을 서로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데 이것이 진정한 은사이다. 둘째는 훌륭한 죽음이다. 훌륭한 죽음은 죽는 방법에 대한 선택이다. 죽음 자체를 실패의 한 부분으로 여기며 삶에 집착하는 태도와,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희망의 근원으로 삶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태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사랑받는 자의 죽음은 많은 이들의 삶 가운데 훌륭한 열매를 맺게 한다. 우리의 짧은 인생이지만 시간을 초월하여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결국은 남은 세월동안 나의 삶 자체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이 위로받고 사랑을 받았다면 감사한 일이고, 더 나아가 내가 죽은 후 나의 삶이 조그만 씨앗이 되어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더욱 감사할 노릇이다. 따라서 남은 세월동안 사랑이라는 유산을 하루하루 실천하고 나누어 줄때, 비로서 사랑이 죽음보다 강함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심이리라…
흘러간 옛노래 (04-22-2011)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 잊을 수 없는 노래일수록 가사마다 사연이 깊다. 흘러 간 노래일수록 그 노래를 들으면 연상되는 얼굴들이 있다. 노래도 흘러가고 세월도 흘러가고 추억도 흘러간다. 나는 직업상 다른 사람들보다 운전하는 시간이 많다. 요즈음처럼 화창한 봄 날씨에 운전을 하다보면 차창 가로 봄볕이 흐르고 꽃잎들이 떨어지면서 들려오는 노래를 타고 어렴풋이 옛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내가 즐겨 듣는 음악들은 쟝르를 가리지는 않지만 대부분이 흘러간 옛노래다. 그중에서도 유독 ‘흘러간 팝송 100곡’이 있다. 이 음악 CD는 사연이 있다. 10년전에 처음 이민을 왔을 때 마음 붙일 곳이 없던 차에 텔레비젼 광고에서 흘러간 팝송 CD를 판매하는 것이다. 여섯장인가 에 $120불정도였던 것 같다. 너무 사고 싶었지만 아내에게 사달라고 조르지는 못하고 입 속에서만 웅얼거린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인터넷으로 음악을 다운을 받아서 CD를 굽던 시절은 아니었다. 그런데 4년전인가 아내가 한국에 다녀오더니 선물이라면서 흘러간 팝송 CD를 내놓는 것이다. 서울 지하철의 외판원에게서 몇천원에 샀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무엇보다 귀한 선물이었고, 그래서 지금도 운전할 때마다 자주 듣는다. 그 팝송들은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과 대학 시절을 대변하는 음악들이다. 그때는 기껏해야 빽판이라는 레코드판을 조립한 전축 턴테이블로 듣거나 음악 다방에 가서 듣는 것이 고작이었다. 당연히 가사를 정확히 알 수가 없고 대충 단어들을 연결해 노래 가사의 의미를 짐작할 뿐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특정 노래가 흘러나오면 그 시절의 장소와 사연들이 주마등처럼 같이 흘러가는 것이다. 짝사랑 시절, 첫사랑 시절, 그 이후의 여러 사랑의 시절들이 그 음악들과 함께 CD에 그대로 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기억에서 하얗게 지워진줄 알았는데, 그 시절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었다. 다들 지금은 어디서 살고 있는지, 무얼 하고 살고 있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길을 가다 마주치면 알아볼 수나 있을런지, 무슨 말을 할 수나 있을런지, 굳이 찾으려고 하면 찾을수도 있으련만 찾으면 무엇하나, 만나보면 무엇하나, 그냥 아쉬우면 아쉬운대로, 그리우면 그리운대로, 미안하면 미안한대로, 저 음악과 함께 기억 속에 깊숙히 묻어버리라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결혼 기념일에는 한국에 나가 있는 큰 딸에게서 ‘세시봉’ 음악 CD라면서 우편으로 보내왔다. 한국에서는 대박이라고 한다. 그날 밤 늦은 시간까지 우리 부부는 몇잔의 포도주를 마시면서 옛 시절로 돌아가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한곡의 음악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위로하는구나, 그 시절로 돌아가면서 나에게도 아내에게도 아름답고 싱그러운 봄날이 있었구나, 꿈많고 축복받은 젊은 시절이 있었구나, 저 음악은 어느 찻집에서 많이 들었고, 몇학년때 어느 여학생과 연애를 하던 풋풋한 기억도 나고, 친구들과 시국을 비판하고 인생을 논하던 젖비린내나는 젊음도 기억난다. 음악은 사랑의 빛깔에 따라 변하는 것 같다. 그 음악은 그 시절에, 그 여인에게, 그 사랑에, 그 슬픔에, 그 고난에 함께 해 준 음악들이다. 그러니 그 노래들이 없다면 그 시절은 무성영화처럼 민밋하게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20대 중반에 만나 연애를 했으니 세시봉 음악이나 흘러간 팝송의 시절과는 엄격히 말해 서로 다른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아내는 나와 연애할 때 내가 어느 카페에서 <Let it be me>라는 노래를 자기 귓가에 불러주었는데 그 때 뻑(?) 갔다고 한다. 그때 입은 옷, 음식, 대화 내용, 카페 위치, 분위기 등 30년이 훨씬 지난 그 순간의 일을 마치 사진을 찍어놓은 것 처럼 모두 기억을 하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줄 기억하는체 할 뿐이다. 남자라는 동물은 본질이 야성이니까..
우리 나이때의 흘러간 음악들을 지금도 즐겨 듣는 이유는 세월은 잊혀짐이 아니라 이어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흘러간 한국 가요는 제법 아는 편이다. 오랜 화류계 (?) 생활을 한 덕이기도 하지만 노래 부르는 걸 꽤나 좋아한다. 특히 접대를 받는 ‘갑’쪽이 아니라 접대를 하는 ‘을’의 입장이었으므로 뽕짝, 트로토는 기본이고, 사랑, 이별, 고향, 친구 등 테마별 선수곡, 가곡 한두곡, 팝송 한 두곡, 일본 가요 한 두곡은 필수로 알고 있어야 했다. 한국사람들 처럼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마이크만 잡으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가수다. 그래서 사람마다 18번이 있고, 그 노래만 흘러 나와도 잊혀져간 그 사람이 생각나는 것이다. 여러분 주변 사람들의 18번 애창곡을 생각해 보아라, 흥얼거리다 보면 잊혀진 그리움도 눈가에 맴돌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흘러간 옛 노래>에는 한국 가요 (트로토, 뽕짝, 포크송) 뿐만 아니라 파퓰러 송(팝송), 발라드, 블루스, 흑인 영가, 가스펠 송, 재즈, 솔 음악, 칸쵸네(칸소네), 샹송 등등 가리지않는다. 다시 말해 잡식성이며, 역으로 전문성이 없다. 고전음악 (클래식), 가곡, 오페라, 경음악, 영화음악, 복음성가도 가리지 않는다. 지금도 ‘폴 모리’ 악단이나 ‘프랑시스 레이’ 악단의 음악들은 꿈 속처럼 감미롭다. 피아노를 전공하고 지금은 한국에 나가 관련 학업을 마침과 동시에 결혼을 앞두고 있는 큰 딸아이의 피아노 연주가 그리워진다. 이민 초기에 서로가 힘들어 할 때였다. 답답하여 아파트 베란다에 나가 달빛을 보면서 술을 마시고 있으면 큰 딸아이는 내가 좋아하는 <달빛소나타>와 관련된 피아노 곡들을 말없이 연주해 주었다. 그 중에서도 ‘베에토벤의 월광’과 ‘유키 구라모토’의 ‘Lake Louise’ 등을 무척 좋아했다. 못내 아쉬우면 딸아이에게 $20불을 팁으로 주면서 한번 더 연주해 달라고 애원하던 기억들이 이제는 정말 저 호수가의 달빛처럼 아스라히 퍼져간다. 보고싶다..
선한 사람들 (04-29-2011)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스스로 어떤 모습의 사람이 되길 원할까? 아니 나는 이미 틀린 몸이라 생각된다면 우리 자식들은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할까? 돈이 많은 부자? 높은 지위의 명예로운 사람? 믿음이 강한 신앙인? 존경받는 지역유지? 공부 많이 한 박사나 교수? 큰 교회의 목사? 대기업의 CEO? 선한 사람? 아마도 한가지만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선한 사람>을 택할 것이다. 내 스스로가 선하기를 원하고 함께 사는 아내와 자식들도 선하기를 원하며, 만나는 이웃들도 선한 사람들이기를 원한다. 선하게 살면서 선한 일들을 하고 선한 기억들을 남기고 떠나기를 원한다. 선한 인상과 선한 마음씨를 갖기 원한다. 하지만 내 스스로가 결코 선한 사람이 되지 못함을 알고 있다. 이런저런 핑계로 선한 사람이 되기를 한 구석에 미루어 둔다. 스스로의 목표,꿈, 야망 등 거창한 경계이거나, 아니면 최소한의 애절한 생존 조건이라는 선을 그어 놓은 다음에 그 선을 넘어서면 그때부터 선한 사람이 될 것이라 다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그어 놓은 선 자체를 넘지 못하고 죽거나, 설령 넘었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목표의 선을 그어 놓고 새롭게 달리기 시작함을 알고 있다. 우리는 가끔 책이나 방송을 통해 선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의 신선함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결코 특별하다고 할 수 없으며 누구나 알고 있고, 교회가면 귀에 딱지가 앉을만큼 듣는 지극히 <평범한 선함>인데 세상의 큰 이슈가 되고 우리의 마음에 깊은 잔영을 남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선함>을 <행>하였고, 나와 같은 많은 사람은 <행하지 않음>의 차이이다. 그 <선한 사람>중의 한 사람이 이 태석 신부님이다.
나는 그의 저서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와 <울지마 톤즈>라는 다큐를 보면서 그가 신부님이라는 생각에 앞서 <선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 같은 고향 사람이고, 내 막내 동생과 같은 나이이고, 비슷한 시절을 살아서 그런지 인상이 선한 <동생 친구> 같았다. 87년도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의 뜻하심으로 97년에 로마 유학을 가서 2000년에 신부로 종신서원을 한다. 2001년에 우연하게 아프리카 남수단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봉사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8년이상을 수단에서 사제로서, 선한 사람으로서, 봉사하던 중, 2008년 대장암 3기 판정을 받고 2010년 선종한다.
그의 저서중에 몇가지말씀을 요약해 본다. “수단에는 콜레라로 많은 목숨들이 죽는데, 그 원인은 오염된 강물과 식수때문이다. 콜레라에 걸리면 지독한 설사와 구토로 몸의 수분이 순식간에 빠져 나가게 되어 죽는다. 어쩌면 현대인들은 ‘영적 콜레라’에 걸린 것이 아닐까. 현대인들은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의 진리가 영혼에서 급속히 빠져나가 영혼이 탈진된 위급한 상황인지 모른다. 탈진된 영혼에 다량의 링거액이 급히 필요하다.”
신부님이 신부가 되어 낯설은 아프리카의 수단에서 사역을 하게 된 동기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주님의 간단한 말씀이다. “ ‘가장 보잘 것 없는 형제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예수의 말씀도 그러했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곳 주민들과 평생을 다한 슈바이쳐 박사도 그러하다. 우리는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야 한다.향의 종류와 세기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사람마다 누구나 나름대로의 향기를 갖고 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의 향기가 서로 얽혀서 알게 모르게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삶에 향기를 만들어야 한다. 후각만 자극하는 향기가 아닌 사람들의 존재에 그리고 그들 삶의 원소적 배열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는 자석같은 향기말이다.” 신부님은 현지의 원주민들 뿐 아니라 선한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는 많은 지구인들에게 자석같은 향기를 남겨 주었다.
또한 신부님은 그 가난한 원주민들 속에서 예수님을 본다고 했다. “모두가 가난한 곳이지만, 그 중에서도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이 나환자들이다. <빈>만 있고 <부>가 없는 이곳이 말 그대로 빈부의 차이가 없는 곳이었다. 그들의 삶은 처참하기 이를데 없고 가장 버림받은 삶이 분명하지만, 그 안에서 그들을 위로하며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 우리에게 뜻밖의 큰 은총의 선물을 주는 그들에게 우리가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에게 오신 작은 예수님일수도 있고, 마지막 심판 때 우리가 주님 오른편에 설 수 있도록 미리 파견된 천사일수도 있으며, 천국의 문을 열게 해 줄 천국의 열쇠일지도 모른다.”
우리 교회 전도사님도 신부님과 똑같은 말씀을 한 적이 있다. “전도란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 되어지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주님을 믿으라고 말씀을 전하는 것보다 예수 믿는 나의 삶을 보여주면 됩니다. 나의 행동과 나의 생활이 그들에게 올바르게 비춰지면 예수 믿으라 전도하지 않아도 예수 믿습니다.” 지극히 소중한 정의이다.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복음을 전파함에 있어 교리나 성경의 내용을 주입함을 넘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을 통하여 주위 사람들의 영혼을 움직이게 하고 감동하게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완벽하고 빠른 복음화가 있을까. 예수를 믿으라 권유한 적도 없는데 스스로 열심히 믿는 것을 보면 그리스도인의 언어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세상을 살면서 나와 너의 만남은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엄숙한 순간이라는 것을 왜 일찍 깨닫지 못했을까.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만나고 최선을 다해 대화하고,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다 보면 언젠가 우리도 영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한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셨던가…
어머니 (05-07-2011)
어머니는 내가 원하는 그곳에 항상 계신줄 알았다. 어머니는 항상 웃는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시는 줄 알았다. 어머니는 내가 언제라도 돌아가면 나를 반가이 안아주실 것으로 알았다. 나는 나이 먹어 늙어도 어머니는 늙지 않으시는 줄 알았다. 나는 조금만 아파도 큰 병원에 가야 하고, 어머니가 아프시면 동네 약국의 약 한봉지면 낳으시는 줄 알았다. 나는 사는게 힘들고 외롭다고 몸부림치면서 어머니는 외롭지도 않고 고독하지도 않으시는 줄 알았다. 나는 혼자 사는게 두려워 마누라와 자식새끼 줄줄이 끼고 살면서 어머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모르시고 혼자 산다는 외로움도 없으신줄 알았다. 어머니를 미국으로 모시고 와서 살겠다고 몇번 건성으로 말하고, 어머니가 괜찮다고 하시니까 기다렸다는듯이 포기해 버렸다. 영어도 안되시고, 운전도 못하시고, 친구도 없으시고, 아프시면 간호할 사람도 없고, 영주권도 없으시고, 의료보험도 안되고, 기꺼해야 미국 양로원에서 늙고 아프시다가 결국 타국에서 돌아가셔야 하니 미국에 모시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단정해 버렸다.
어머니는 별다른 돈도 필요없고 비싼 음식도 드실줄 모르시고 고급스러운 옷도 싫어하시는 줄 알았다. 모처럼 비싼(사실은 별로 비싸지도 않음) 곳으로 모시고 가면 어렵게 번 돈을 쓴다고 역정을 내시니 검소함이 자연스레 몸에 베이신줄 알았다. 어머니는 나처럼 큰 꿈도 없었고 야망도 없으신줄 알았다. 함흥약전 2학년 재학중에 중공군과 소련군이 쳐내려오면 젊은 처녀들은 모두 끌려간다는 소문때문에 흥남부두에서 미군 LSD 군함을 타고 피난내려 오셨다. 그것이 역사적인 ‘흥남 1.4후퇴’이었다. 22살 처녀 나이로 피난 내려 와서 역시 같은 피난민인 군의관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단칸방에서 5남매 낳고 기르시는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어머니에게는 첫사랑도, 처녀시절의 짝사랑도, 꿈같은 사랑도 없는줄 알았다. 이북에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다는 것도, 그리워 하신다는 것도, 뼈저리게 한번이라도 보고 싶어하신다는 것도 그냥 세월이 가면서 잊고 사시는 줄 알았다. 시댁 제사는 그렇게 빠지지 않고 지내면서 친정 식구들을 위해서는 정한수 한그릇 떠놓고 기도하시는 것 조차 부담스러워 하셨다. 모두들 힘들게 사는 시절이었으니 아끼고 절약하시는게 당연한 줄 알았다. 아버지가 화내시면 묵묵히 듣고만 계시고, 심지어 자식들이 짜증내고 화내어도 싫은 내색 한번 안하시니 한국 어머니는 다 그런줄 알았다. 아버지 밥상에는 매끼마다 달걀 후라이가 올라가면서도 어머니는 달걀 노린내 때문에 안드신다는 말을 한참동안 믿고 살았다. 소고기도, 돼지고기도, 생선도 모두 싫어하시는 줄 알았다. 감자와 잡곡밥만 좋아하시는 줄 알았다. 생신이나 무슨 날이면 자식들이 돈 몇푼 모아서 용돈드리고 별로 비싸지 않는 음식점에서 외식시켜드리고 그렇고 그런 선물 해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시니 그게 효도인줄 알았다. 별달리 요구하시는 게 없으시니 노인들은 다 그렇게 늙어가는거라 생각했다. 텔레비젼을 하루종일 보고 계시면 건강에 안좋으니 매일 산책을 하시라고 빈말만 하면서도 노인이 달리 할 일이 없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직장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간 일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면서 아내와 자식들과의 여행은 해를 거르지 않을려고 했다.
지난 날을 되돌아보면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는 가족 사진에서 자주 빠져 있었다. 자식이 하는 말은 거짓말이라도 모두 믿어주셨다. 매주 토요일 한번 안부 전화 드리는 것으로 미국에 떨어져 사니 할 수 없다는 위안을 삼았다. 전화상으로도 항상 “잘 있다. 괜찮다. 아픈 곳 없다. 걱정하지마라. 다른 자식들이 잘 해주니 염려하지마라. 한국에는 언제 오느냐, 전화비 많이 나온다. 빨리 끊어라.” 그 이외에는 모든 말씀이 내 걱정, 아내 안부, 손주들 안부, 축원 등으로 끝난다. 매주 통화는 거의 같은 내용이 반복된다.어머니는 항상 양보하시니, 항상 괜찮다고 하시니, 항상 좋다고 하시니, 나는 그렇게 어머니를 지능적으로 외면하였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 때에도, 어머니와 떨어져 살 때에도 나는 항상 내 중심이었으며 이기적이었다. 나는 정말 몹쓸 아들이다. 나는 정말 나쁜 놈이다. 나는 비겁한 놈이다. 그러면서도 어머니가 보고 싶어 운다. 달을 보고도 울고 술을 마시다가도 운다. “타박 타박 타박네야, ~우리 엄마 무덤가에 젖먹으러 찾아간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오늘은 어머니의 날( Mother’s Day)이다. 일년 365일 중에 어머니 날이 아닌 날이 언제인가. 하루 하루, 순간 순간, 어머니가 보고 싶지 않는 날이 언제인가. 어머니날은 죄 많은 자식이 하루라도 불효를 면하기 위해 만든 날인가…이 세상에 ‘어머니’라는 말처럼 나의 영혼을 위로해 줄 단어가 있을까. 어머니는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주신 유일한 ‘수호천사’이시다.
도종환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를 되뇌어본다. “엄마는 /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하루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 엄마는 /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찬밥 한덩어리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 엄마는 /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 엄마는 /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 엄마는 /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 엄마는 /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손톱이 깍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 엄마는 /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 엄마는 /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외할머니 보고 싶다 /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줄만.. / 한밤중에 자다 깨어 방 구석에 한없이 소리죽여 울던 / 엄마를 본 후론 / 아! 엄마는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세잎 클로버 (05-14-2011)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네잎 클로버>를 선물로 받거나 직접 찾아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도 고등학교 시절에 동네 여학생에게 참고서를 빌려 준 적이 있는데 돌려 받고보니 책갈피에는 조그만 카드와 네잎 클로버가 곱게 포장되어 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네잎 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고, 풀밭에서 찾기가 여간 어렵다는걸 처음 알았다. 하지만 미국은 온 사방천지에 세잎 클로버들이 널려있고 네잎 클로버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니 희소성이 떨어지겠지만, 세잎 클로버는 <행복>의 상징이고 네잎 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라고 한다. 잎 하나는 <희망 혹은 소망>을, 다른 잎 하나는 <믿음>을, 또 다른 잎 하나는 <사랑>을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사람이 희망과 믿음을 갖고 서로 사랑하면 행복해진다는 가르침을 주시는 것이다. 또 사람들은 누구나 <행운>을 원하지만, 그 행운도 소망, 믿음, 사랑으로 행복해야만 가능하다는 전제가 붙는다. 그래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로또에 당첨되거나 카지노에서 대박을 터뜨리는 행운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행복한 삶으로 계속 유지하기 어려운 이유인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발에 차이는 것이 세잎 클로버인 것 처럼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행복>을 주셨으며, 그 행복의 크기는 똑같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평하시니까. 그런데 그 행복을 소유할려는 인간의 욕망이 생기면서 부터 개인 각자가 느끼는 행복의 크기와 무게가 다르게 느낀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산 정상에 서기 위하여 혹은 산을 정복하기 위하여 산을 오르지만, 진정한 행복은 산을 올라가는 그 과정에 있는 것이다. 산을 올라온 길을 되돌아보면 올라온 길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면서 너무나 쉽고도 뻔한데, 산을 오를 때는 왜 그리 죽기살기로 발 밑만 보고 힘들게 올라왔는지. 왜 사람들은 그렇게 복잡하고 어렵게 살아야 할까.
차동엽 신부의 <행복선언>에 보면 <행복 공식>이라는 말이 나온다. 누구나 “성공하면 행복할 것이다.”라는 공식을 세워 놓고 살다가 말년에 이르면 ‘이게 아닌가보네’ 하는 회의감과 절망감까지 겪게 된다. 성공했다는 사회 지도층이나 상류층의 사람일수록 말년의 공허감은 더 크다고 한다. 성공의 추구가 ‘끝없는 달리기’라는 공식을 망각한 채 쫓아 가다보면, 손에 잡힐듯 잡히지 않는 성공이라는 신기루는 늘 저만치 도망쳐 버린다는 것이다. 성공을 향한 질주는 부질없다는 것을 말년에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공식>은 ‘성공하면 행복하다’가 아니라, ‘행복하면 성공한 것이다.’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과 성공의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유일한 길이다. 이어령 교수의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읽어보면 그 분의 딸과 그 손주에게 일어나는 질병들과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여러번의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이교수는 딸아이의 병을 고쳐주시면 하나님을 믿겠다는 고백을 하고 그 기적으로 믿음을 택하였다고 하지만, 그 저변에는 <지성>의 오만함과 허망함과 한계를 깨닫고 인간의 성공이라는 허울을 내려놓음으로서 <영성>의 밑바닥부터 한걸음씩 올라감을 느낄 수 있었다. 믿음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행복도 흥정의 대상이 아닐 것이다. <Happiness>의 어원은 <happen>이라고 한다. 즉 행복은 발생하는 것이지 쟁취하는 것이 아니다. 내 행복의 주체는 나 자신이다. ‘그 무엇도 내 허락없이는 나를 불행하게 만들 수 없다.’ 내가 불행하다고 인정하지 않으면 나는 행복할 수있다..
학창시절, 월남전이 막바지에 달할 때, 사랑하는 남자를 전쟁터에 보내고 월남 여대생이 울면서 말하는 행복을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외딴 오두막집의 호롱불 아래서라도, 배고픔을 참으며 논밭을 일구는 때약볕 아래서라도, 그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세가지 질문’을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가 언제인가? 가장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가 ?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고,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결국 행복의 열쇠는 자기 실현이며, 자아만족이다. 우리가 기다리던 위대한 순간은 우리가 하찮게 생각하는 순간들 속에 숨어 있는지 모른다. 예수님이 다시 세상에 오신다면 저 많은 군중들 속의 그저 그런 평범한 얼굴로 오시듯이, 스치듯 지은 작은 미소 속에 위대한 순간이 지나갈 수도 있다.
차동엽 신부님는 이렇게 말한다. “매일의 행복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첫째 비결은 ‘소유하지말고 그냥 누리라’는 것이다. 모든 것은 소유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의 것이다. 꽃을 꺾어서 화분에 담을 수는 있지만, 봄을 화분에 담을수는 없다. 소유는 자유를 속박한다. ‘누린다’는 것은 하늘의 은혜를 훔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유지향의 삶을 살면 샹들리에가 걸려 있는 천장만 보고 살지만, 존재지향의 삶을 살면 별이 빛나는 하늘을 보며 살 수 있다. 소유는 자신이 소유한 집 정원만 보고 살지만 존재지향은 지구를 정원으로 즐길 수 있다. 즉 진정한 부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다. 이 깨달음은 진정한 자유와 해방감을 준다. 둘째는 ‘만족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개미>를 쓴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가장 똑똑한 뇌는 지금, 현재, 여기서 만족하는 뇌다.’ 이는 소크라테스의 ‘자족’과 일맥상통한다. 세번째 비결은 ‘감사하라.’이다. 서양의 속담에 ‘행복은 언제나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 지금 행복은 나의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우리 모두 행복하기로 하자. 행복하면 됐지 행운까지야.…
수많은 처음 (05-21-2011)
오늘 아침 산책길에 아내가 들려준 이야기다. “사춘기의 아들과 혼자 사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지하철 어두운 구석의 성냥갑만한 가게에서 하루종일 복권을 팔아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그 가게는 지하에 있기 때문에 365일 일년내내 하루종일 햇빛 구경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십수년을 햇빛 한줄기 없는 가게로 새벽에 나갔다 밤 늦게 들어오시는 엄마는 감기에도 잘 걸리고, 잔병치레도 많은 것 같았다. 어린 아들 마음에 엄마가 햇볕이 드는 곳에서라도 장사를 하셨으면 하는 소망으로 방송국에 편지를 쓰게 된다. 방송 관련 프로그램에서 대형 거울들을 제작하여 외부의 햇빛을 굴절시켜 엄마의 가게에 비추게 한다. 물론 엄마 모르게 비밀로 작업하였으니 갑작스런 눈부신 햇빛으로 엄마는 깜짝 놀란다. 그 햇빛 뒤에 서있는 아들의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 그래, 힘들고 지친 우리의 삶에도 언젠가 ‘소망의 한줄기 빛’이 내리비추어 우리를 위로할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어쩌면 그 소망의 빛은 미래의 막연한 기다림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지나온 <처음>들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하여, 극심한 경쟁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좀 더 잘 살기 위하여, 앞만 보고 달린다.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다. 눈앞의 저고지까지만 도달하면 멈추자고 다짐한다. 그러나 고지에 도착하면 또 다른 고지가 있음을 몇번의 경험으로 안다. 멈추기 어렵다는 것도 안다. 쉴 수가 없다고 생각하니 달리면서도 힘이 든다. 이렇게 달리다가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는 계속 달릴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한다. 나의 욕심이다. 지금 겪고 있는 이 고통이 <처음처럼> 느껴진다. 처음이라 생각하니 두렵고 더욱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살아온 길을 되돌아 보면 우리의 삶은 <수많은 처음>으로 점철되어 있음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때의 <초심>을 잊어서는 안된다. <초심>을 잃으면 <감사>도 잊는다. <감사>를 잊으면 <욕망의 굴레>도 잃게 된다. 굴레없는 욕망은 산산조각 부서진 삶으로 끝남을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역경에서 헤메일 때 누구나 십자가 아래에 엎드려서 그 분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그렇게 눈물흘리며 애원한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그 때 흘린 눈물이 <첫 구속의 눈물>이다. 그래서 죽을 힘을 다해 살아 보자고 한 발자욱을 내딛던 그 발자욱이 <첫 발자욱>이다. 그 때 내 옆에 계셨던 분이 나의 <첫사랑> 그 님이다. 그때 나에게 먹을 음식을 주고 위로하던 사람들이 나의 <첫 이웃>이다. 캄캄한 밤하늘 아래 어디가 어딘줄 모르던 장님시절에 나에게 등불이 되어 주신 말씀이 나의 <첫 계명>이다. 그때는 그 역경을 어떻게 벗어날지 아무런 생각조차 없던 시절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던 그 시절을 무사히 지나오지 않았는가. 되돌아 보면 그런 시절도 잘 지나왔는데 지금의 역경이 무슨 대수인가. 지금도 내 옆에는 그 님이 동행하고 계시고, 나를 위로하고 안아줄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시 힘차게 한 발자욱을 내디딜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열심히 기도하면 분명 세세한 음성으로 나의 갈 길을 알려 주실텐데 무엇이 걱정인가. 연약한 내가 두려워 한다고 달라질게 무엇인가. 지금 이 역경도 세월이 지나면 그 <수많은 처음>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결국 <수많은 처음>은 끊임없는 <나의 성찰>인 것이다.
다음의 글들은 신영복교수의 <처음처럼> 책에서 인용한다. “ “처음처럼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또 이런 내용도 있다. “슬픔과 기쁨의 크기 —-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작은 기쁨 하나로 엄청난 슬픔을 견디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 작은 기쁨의 소중함을 깨닫고, 작은 기쁨의 그 위대한 증폭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우리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것 처럼 ‘기독교는 관계 신앙’이다. 내가 사는 목적은 홀로 독야청청하여 산꼭대기의 낙락장송이 되기 위함이 아니라, 숲 속의 수많은 나무들과 더불어 숲을 이루면서 이름없는 나무로 살다가 가기 위함이라면, 혼자 이 고통을 짊어지고 혼자만의 길을 떠난다고 부산떨지 말자. 신영복 교수는 말한다. “고통이 견디기 어려운 까닭은 그것을 혼자서 짐 져야 한다는 외로움 때문입니다. 남이 대신 할 수 없는 일인칭의 고독이 고통의 본질입니다. 여럿이 겪는 고통은 훨씬 가볍고, 여럿이 맞는 벌은 놀이와 같습니다. 어려움을 견디는 방법도 놀이와 같아야 합니다.” 그래, 이 역경이, 이 고통이 지금은 힘들고 이겨낼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처음처럼> 의 <초심>을 잊지말고 지금까지 살게 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나와 비슷하게 못난 나의 이웃들과 어깨동무하고 걸어가 보자. 푸념도 하고 위로도 하고 넋두리도 하면서 쉬엄쉬엄 재미있게 걸어가자. 가다가 힘들면 막걸리 한잔과 풋고추 한개 씹으면서 걸어 가자. 그러다보면 어느듯 이 어려운 길도 지나치겠지..
끝으로 이 글을 소개한다. “네 손과 내 손 – 네 손이 따뜻하면 내 손이 차고, 내 손이 따뜻하면 네 손이 차다. 우리 서로 손 맞잡을 때, 손잡는다는 것은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것입니다. 물이 높은 것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체온도 따뜻한 손에서 찬 손으로 옮아 갑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다닙시다…
파도에 몸을 싣고 (05-28-2011)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고향이 부산이라 그런지 바다를 바라보며 산 세월이 많다. 지금도 가끔씩 꿈 속에서 고향 바다를 본다. 청소년 시절에도 마음이 답답하면 무조건 309번 버스를 타고 해운대 바다로 갔다. 동백섬 절벽의 후미진 곳에 내가 즐겨 앉던 자리가 있었다. 특히 겨울 밤바다는 무서웠다. 절벽 사이로 성난 파도가 삼킬듯이 달려오다가 천둥같은 소리를 내면서 발 아래에 부서진다. 사방은 온통 캄캄하고 저 멀리 제철소의 불빛만 눈에 들어온다. 지평선은 고요히 말이 없다. 하지만 한발자욱 발만 헛디디어도 살아남을 수 없는 그 자리가 왜 좋았는지 모른다. 절벽 아래 집채만큼 솟아 올랐다가 수척 낭떠러지로 꺼져가는 파도를 보면 내 자신이 얼마나 겁쟁이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깨닫는다. 아무리 화가 나서 고함을 지르고 울고 불고 난리를 쳐도 파도소리에 묻혀 전혀 들리지 않는다.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도 없고 위로해 줄 사람도 없다. 내가 결정하면 된다. 저 파도에 몸을 던지면 그것으로 끝난다는 것을 알기에 허풍으로 세상을 살 수는 없다. 괜한 약한 사람 겁주면서 살지 못한다. 그 죽음에 어떤 의미도 부여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화가 난다고, 살기가 힘든다고, 자신이 싫다고, 남들보다 잘나지 못하다고, 가난하다고 저 파도에 몸을 던진다는 것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채 도망가는 비겁한 짓이라는 것을 파도는 가르쳐 주었다. 그곳의 파도는 불평과 불만을 용납하지 않았다. 비겁함과 비굴함과 허풍을 용납하지 않았다. 잘난체와 있는체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좌절과 포기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렇게 살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뛰어내리라고 준엄하게 꾸짖고 있었다.
결혼을 한 후에도 유일하게 나 혼자 도망가는 곳은 바다였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바다와 마주 앉으면 마음이 편하다. 한 여름날 이름없는 백사장에 텐트를 치고 혼자서 며칠간 바다만 쳐다본 적도 있다. 더우면 바다에 들어가 헤엄치고 잠수하고 파도타면서 놀다가 배 고프면 밥 해먹고, 책 보다가 잠 오면 자고, 눈 뜨면 멍하니 바다 보고 그렇게 지내다 온다. 술 생각나면 어구에 가서 싱싱한 생선회를 사다가 바다 한잔하고 나 한잔하고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취해서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자기도 한다. 바다는 어떨 때는 미친듯이 무섭지만 어떨 떄는 사랑하는 여인의 젖가슴처럼 편안하다. 하지만 변함없는 사실은 바다에 몸을 맡겨야지 이길려고 깝죽대지 말라는 것이다. 바다에서 수영을 할 때에도 파도에 몸을 맡겨야지, 파도를 헤치면서폼나게 헤엄쳐서 바다를 이길려고 하면 죽는다. 배를 타고 먼 바다에 나가면 파도에 몸을 맡겨야 배멀미를 덜한다.
파도는 인생의 삶과도 같지 않을까. 파도라는 <역경>이 어떨 때는 감당하지 못할만큼의 큰 집채와도 같다가 곧 사그러들어 잔잔한 파도가 되듯이, 인간의 역경도 지금은 감당하지 못하게 보일지라도 곧 잠잠해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지금의 역경이 미친 파도라면 그 역경을 부인하거나 거부하려 하지말고 역경에 몸을 맡겨라. 파도라는 역경에 몸을 싣고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자.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역경(adversity)> 의 사전적 의미는 ‘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이며, 심리적 상태는 ‘참담함, 실망감, 당혹스러움, 낙담’등으로 표현된다. 미래 예측 기능에 ‘지하철 형’과 ‘코코넛 형’이 있다. 미 국방부 장관이었던 ‘도널드 럼스펠드’가 세운 세가지 기준, 즉 ‘지의 지(known known —은행의 정기 예금처럼 미래의 수익률을 예측가능함), 무지의 지 (known unknown—동전 던지기처럼 확률을 측정할 수 있고 미래를 모형화할 수있거나 혹은 미래 금융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거품, 즉 거품은 예측할 수 있지만 얼마만큼의 거품인지 예측할 수 없음), 무지의 무지 (unknown unknown—1987년 10월 19일 주식 대폭락 사건, 일명 검은 백조(블랙 스완)로 불리우는데, 사전에는 전혀 예측 불가능하며 오직 사후에만 분석가능한 사건, 엄청난 횡재와 같은 긍정적 상황도 마찬가지임.역경의 대부분이 이 경우에 해당함.)으로 불확실성 세계를 구분한다. 지하철형 불확실은 지하철 시간을 알 수 있듯이 인간이 얼마든지 통제가능한 영역에 속한다. 코코넛형 불확실성은 야자수 밑을 지나가던 사람이 머리에 떨어지는 코코넛 열매를 맞아 사망할 가능성으로 극히 낮은 경우다.이처럼 역경이 발생할 가능성은 작지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역경을 말한다. 역경의 의미는 극단값(일반 기대 영역 밖에 있는 관측값)을 말한다. 증세는 극심한 충격을 안겨준다. 그리고 검은 백조의 존재가 사실로 드러나면 인간은 설명과 예견이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역경이 발생하여 혼란과 혼돈을 겪고 난 후 그 역경의 실체, 그것이 자신에게 일어 났다는 현실을 서서히 인정하게 된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의 심리학 교수 소냐 류보머스키의 <How to be Happy>라는 책에서 ‘행복 결정 메커니즘’은 “행복의 총량을 100이라고 가정하면, 50%는 유전적 요인, 40%는 의도적 활동즉 우리의 행동과 사고에 의해, 나머지 10%는 환경이 결정한다. 즉 인간이 상황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40% 정도의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 낼수 있다. 인간이 상황에 압도되는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즉 ‘역경 극복’은 선천적 유전적 요인을 타고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후천적 교육과 노력을 통해 얼마든지 행복의 총량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행복감 창조’이다.” 이글은 공병호씨의 ‘인생강독’에서 인용하였음을 밝힌다. 여러분도 자신에게 주어진 90%의 역량으로 이 역경이라는 파도를 잘 넘기 바란다.
나는 가난한가? <가난 1편> (06-04-2011)
나는 진정으로 가난한가? 당신은 지금 가난하다고 생각하는가? 가난의 기준은 무엇이며 평가의 척도는 무엇인가? 우리는 가난이 수반하는 처절한 고통과 절망을 벗어날 수 없어 죽음을 생각한 적이 있는가? 요즈음 이민사회나 미국사회나 서민들의 삶은 죽을 맛이다. 2조 6천억 달러라는 돈이 어느 정도의 돈인지는 감도 안잡히지만 1백달러짜리 지폐로 밤하늘에 뿌려도 2백6십억장이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돈이다. 미국 국민들을 빚보증 세운채 그 많은 돈을 단 2년동안 모두 풀었다는데 어찌 사는 것이 나아지기는 커녕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일까. 이것은 <신경제 자유주의>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 하지만 사는게 힘들다고, 못살겠다고, 죽고 싶다고 아우성쳐도 그래도 밥은 굶은적이 없지 않는가.
나는 1960년 보리고개 때도, IMF떄 사업을 하다가 쫄딱 망하였을 때도, 거의 빈손으로 미국 땅에 쫓겨오다시피 이민 왔을 때도, 달랑 연필 한자루로 이 사업을 시작했을 때도 굶어본 적은 없다. 아니 스스로 굶은 적은 두세번 있구나. 한번은 군대 생존 훈련때 1박2일 굶으면서 훈련받은 적이 있고, 다른 한번은 대기업 생활을 정리하고 내 사업을 시작한 후 건강관리를 위하여 10일동안 물만 마시면서 단식을 한 적은 두번 있다. 그 배고픔의 고통도 3,4일이 지나면 견딜만하다. 그 이유는 언제라도 내가 원하면 실컷 먹을 수 있다는 배부른 자의 오만한 여유 때문이다. 또 내 스스로 가난하다고 자학한 적은 있어도 배고파서 못살것 같다는 기억은 없다. 내 생애 돈이 가장 많던 시절과 비교하여 지금은 가난하다거나, 주위의 성공했다는 사람들과 비교하여 스스로 가난하다는 자기비하일뿐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나는 무슨 복이 많아서, 무슨 하나님의 은혜로 한국이라는 좋은 나라의 좋은 시대에 태어나서, 훌륭하신 부모님을 만나고, 좋은 환경 속에서 건강한 몸으로 평생을 살고, 좋은 교육 받고 좋은 직업을 가지면서 돈도 많이 벌어보고, 원도 한도 없이 내가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살 수 있었을까. 그것도 모자라서 세계에서 가장 부자라는 나라에 빈손으로 이민와서 지금은 공기좋고 물 좋은 곳에 살면서 사시사철 호강하고, 성직자 만큼이나 깨끗한(?) 생활을 하면서 죄 안짓고 살며, 먹을 것이 지천에 깔려 있으니 이 무슨 팔자가 이렇게 좋은 것일까. 이곳에 잘 사는 이웃들과 비교해서 고급차 못타고, 호화로운 주택에서 못살고, 못사는 것이 아니라 안사는 것이라 할지라도, 가진 재산이 별로 없다고 가난하다 투정하면 벌 받을 것 같다. 어쨋던 너,나없이 이 곳 미국땅에 사는 사람들은 복터진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게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닌것 같아 세계의 진짜 가난한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나의 이 모든 행복이 내가 잘나서 내가 만든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다. 내가 만약 기아와 질병과 전쟁속에 죽어가는 아프리카에 태어났더라면 ,아니 멀리도 말고 부모님들이 모두 이북 분들이시니 피난길에 붙잡혀서 브루지아로 몰려 북한 땅 함경도 어느 산간 수용소에서 태어났더라면 지금처럼 배부르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그러면 왜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은 상상할 수도 없는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서, 길지도 않은 짧은 생애를 굶주림과 질병과 에이즈와 문둥병과 전쟁 속에서 고통받다가 죽어가야 하는 것일까.
내가 아는 불교에서는 부자로 태어나는 것과 가난하게 태어나는 차이는 전생의 업과 복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즉 인생은 윤회사상과 자업자득, 인과응보 사상이다. 이승에서 중생을 위하여 복을 많이 지으면 다음 생에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으며, 전생의 지은 복을 가지고 이승에 태어난다는 윤회 사상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가난한 부모를 만나 못사는 것은 전생 탓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다음 생에 잘 살려고 하면 이승에서 좋은일을 많이 해야한다는 명확한 논리가 되니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기독교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고, 똑같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창조물인데, 왜 세계 인구의 절반은 굶주리고 지독하게 가난하고 철저하게 버림받아야 하는 것인가. 무슨 뜻하신 바가 계신 것일까. 누구의 잘못인가. 이 지구상의 어떤 집단들이 저들을 이토록 짓밟는 것일까. 진정 가난한 저들에게 희망은 없는 것인가. 요즈음 한국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는 이태석 신부의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 와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라는 책과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와 <탐욕의 시대>, 그리고 <희망의 밥상>, <오래된 미래>등, 몇권의 책을 통하여 몇회에 걸쳐 내 자신과 내가 함께 살고 있는 이 지구촌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행여 단기선교를 간다거나, 월드비젼, 유니세프, 혹은 여러 기관을 통하여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고 있다는 선한 자비심이나, 그들을 긍휼히 생각하는 측은지심이 오만과 우월의 자기만족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또 혹은 잔인한 국제 금융세력과 제국주의 강대국의 약육강식이라는 찬탈의 역사로 인해 부유해진 나라에 얹혀서 잘 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 책들을 통해 나의 무지를 부끄러워 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가난한 그들을 도와줄 때, 정작 그들이 위로받는 것이 아니라 이구동성으로 우리가 위로받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않아도, 가난하고 고통 속에 살면서도 행복해 하며, 우리는 예수믿고 잘 사는데 왜 행복하지 못한 것일까. 왜 이태석 신부는 그들 속에서 예수를 보았을까.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한다. 의식이 깨어 있어야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다. <행동하는 지성>이어야 하고 <겸손한 양심>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에게 상처주지 않고 도울 수 있으며, 친구가 되어 진정한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굶주림의 세계 <가난 2편> (06-11-2011)
장 지글러의 책 제목처럼 세계의 인구 절반이 굶주리고 있다면 그 실태가 어느정도인지 현상 분석을 먼저 해 보자. 그런 다음 왜 세계인구의 절반이 굶주리는지 그 원인을 찾아보고 그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런 다음 그 문제점에 대한 해결방안과 희망이 없는지 찾아보기로 하자. 먼저 가장 큰 의문은 세계 인구의 절반이상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데, 세계 식량은 세계 인구가 필요로 하는 양보다 2배이상 과잉생산된다는 것이다. 극단적 모순이며,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식량이 남아도는 나라가 식량이 모자라서 굶어죽는 나라를 도와주면 되는데, 왜 이런 문제가 역사의 긴세월동안 해결되지 않는 것인가. 여기 기록된 자료들은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인용함을 밝힌다.
8억 5천만명의 굶주리는 사람들 – 유엔 식량농업기구 (FAO)의 보고에 따르면 1999년 한해동안 3천만명이 ‘심각한 기아상태’에 있으며, ‘만성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삶까지 합하면 세계 기아 인구는 8억 2천8백만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이들은 영양부족으로 인해 서서히 죽음을 맞거나 또는 평생 시각장애, 구루병, 뇌기능 장애 들 중증장애에 시달린다. 시각 장애를 예로 들면 1980년 이후 영양실조로 매년 평균 700만명이 실명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어린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에는 맹인 수가 5천만명에 달하고, 1억 4천6백만명이 트라코마(안구 결막 질환)에 감염되어 있다. 그런데 시력손상의 80%는 간단하게 피할 수 있으며, 비타민 A만 규칙적으로 복용해도 회복된다는 것이다. 1990년에는 8억 2,200만명, 1999년에는 8억 2,800만명, 2005년에는 8억 5,000만명이 기아상태에 있으며, 이 수치는 매년 증가한다는 것이다. 굶주리고 있는 인구 비율은 동남아시아가 인구의 18%, 아프리카가 인구의 35%,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가 14% 이다. 그중에 4분의 3이 농촌지역 사람들이고, 4분의 1이 대도시와 그 주변 빈민촌 사람들이다. 숫자로 따지면 아시아가 아프리카보다 더 많다. 아시아는 5억5천만명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1억 7천만명이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
동유럽도 안전하지는 못하다. 대표적 국가가 러시아다. 소련이 무너진 1999년이전까지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평균 수명이 비슷했는데, 지금은 아시아 국가들보다 낮고, 스웨덴보다 17년, 미국인보다 13년이 수명이 짧다. 군사력 세계 2위, 금, 우라늄, 석유, 천연가스 등 세계적인 천연자원 생산국가이면서도 굶어 죽는 사람이 많으며, 이런 유사 국가는 세계적인 지하자원을 모두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의 콩고, 곡물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브라질을 예로 들 수 있다. 그 이유는 살인적인 금융과두제 (금융 소수지배제 : 소수의 거대한 금융자본이 한 나라의 경제와 정치를 지배하는 제도임. 레닌은 이것을 제국주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자본주의 징후라고 정의함.)가 모든 주요물품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 무덤 —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어린이들이 사회구조적 부조리에 제일 먼저 희생당하는 사건을 <기아>라고 한다. 이러한 부조리의 병폐는 국가 내부의 이유, 국제적 관계, 식민지 유산, 국제기구들의 권력관계에 의해 재생산된다.지글러는 ‘어린이 무덤은 가장 약한 사람에게 가해진 구조적 폭력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1분에 250명의 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데, 그 중 197명(약 79%)이 제 3의 세계라 불리는 122개 나라에서 태어나며, 그 중 많은 수가 ‘이름없는 작은 무덤’에 묻힐 운명인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레지 드브레는 이들을 가르켜 “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박힌 아이들”이라고 표현한다. 미국의 생산 가능한 곡물 잠재량만으로도 전 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고, 프랑스 곡물 생산만으로 유럽 전체가 먹고 살 수있는 식량 과잉공급시대에 ‘어린이 무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유엔 식량 농업 기구 (FAO) 의 2006년 10월 로마 보고서에 따르면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가고, 비타민 A부족으로 3분에 1명씩 시력을 상실, 세계 인구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8억 5천만명이 심각한 만성 영양 실조상태이다.매년 기아 사망자가 증가한다. 아프리카는 전 인구의 36%가 기아에 무방비 상태이며, 북한의 2천3백만명이 영양소 결핍이니까 거의 대부분의 북한 주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북한 15세 미만의 어린이 37%가 만성적 영양 실조상태이다.
지구의 허파 아마존은 다국적 기업의 콩 경작으로 계속 파괴되고 있으며, 다국적 기업의 식량 과잉 생산과 가격덤핑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06년 유럽 연합은 자국 농민들에게 식량생산 및 수출 보조금으로 3,490억달러를 지출했으며, 그 결과 육류, 우유, 감자, 곡물등은 과잉 생산되고, 반면에 지구 남반부로 가격 덤핑하여 싼 가격으로 수출된다. 이 결과 아프리카는 자국 농산물 가격이 유럽 농산물 가격보다 3배나 비싸며, 따라서 뜨거운 태양아래 15시간 씩 죽도록 일해도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아프리카는 53개국중 37개국이 순수한 농업국가이다. 그들의 농업은 유럽 연합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이러한 수억명의 영양실조와 굶주림은 피할 수 없는 아프리카의 숙명으로 여겼지만 현재는 세계인들이 불합리한 세계 경제 질서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2005년 9월 뉴욕의 유엔 회의에서 기아와의 전쟁이 환경보호, 에이즈보다 최우선시 되어야한다고 ‘밀레니엄 목표’로 선포되었다. 풍요가 넘치는 지구에서 매일 10만명이 기아나 영양실조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간다. 기아로 인한 떼죽음은 반인도적 범죄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변화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나는 부끄러울 뿐이다..
부자들의 외면 <가난 3편> (06-18-2011)
선진국 사람들은 세계의 절반 이상이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을 진정 모르고 있을까? 여러분은 지구의 이런 현상을 언제부터 어디서 알았는가? 모르긴해도 최근에서야 방송의 다큐나 , 한비야씨, 이태석 신부등 봉사자들의 책들을 통해 알았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 기껏해야 위인전에서 본 슈바이쳐 박사정도를 기억할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세계 기아실태를 가르치지 않는다. 왜일까. 선진국의 정규 수업 시간에 전쟁보다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기아에 대하여 가르치는 학교는 없다. 기아 상황을 파악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고 어떤 수단으로 극복할 것인지 토론조차 하는 학교는 없다.학교는 침묵할 뿐이다. 그런 탓에 학생들은 모호한 이상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인간애를 가지고 졸업할 뿐, 기아에 대한 구체적인 원인과 그 끔찍한 결과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심지어 기아의 실태를 아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기 조차 한다는 것이다. 이를 ‘지식위에 침묵의 외투를 걸친다.’라는 표현을 한다.
여러분도 <자연도태설>이라는 이론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기아는 인류 역사가 시작되면서 부터 지금까지 해소되지 않는다. 근본 원인은 사회적 구조이다. 식량은 풍부하게 있는데 가난한 사람은 식량을 구입할 경제적 수단, 즉 돈이 없는 것이다. 지구는 현재 인구보다 두배나 많은 인구도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한다.
그런데 왜 굶어죽는가? 한가지는 선진국 국민들이 믿는 신화가 있는데 그것이 ‘자연 도태설’이다. 대부분의 선진국 사람들은 세계인구의 6분의 1이 기아로 죽어가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면서도, 반면에 장점도 있다는 상반된 믿음을 갖고 있다. 만약 그렇게라도 기아로 인구밀도가 조절되지 않으면 지구는 인구 과밀로 질식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기아는 적당히 인구를 조절하게 하는 <자연의 지혜>라 믿는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유럽적, 백인 우월주의적 ‘정당화’>이다. 그러니까 기아는 산아제안의 수단이며, 인구 조절을 위한 자연 법칙이며,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는다는 자연 도태설은 무의식적 <인종 차별주의>이다. 이 이론의 창시자는 18세기 말 영국 국교회 성직자 토머스 맬서스가 1798년 발표한 ‘인구 법칙에 대한 논문’에 기인한다. 세계 인구는 기하 급수적으로 증가하여 25년 단위로 인구 수가 2배로 증가 하지만, 식량 증가는 산술적 증가에 그친다. 따라서 가난한 삶은 강제적 산아 제한을 해야하며, 그들에 대한 사회보조나 지원은 중단되어야 한다는 이론이다. 맬서스는 기아와 질병과 굶주림은 <사회 필수 기능>이라고 주장한다. 이이론은 지금까지 유효하여 많은 선진국 국민들이 양심의 가책을 은폐시키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사태를 외면하며 무관심하게 만드는 사이비 이론으로 신봉하고 있다. 섬찍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왜 세계의 식량이 남아돈다면서 부유국들은 그 곡물들을 어떻게 하는가. 선진국들은 잉여 농산물을 대량으로 폐기 처분하거나, 생산을 크게 제한한다. 그러면서 생산자에게는 최저가격을 보장하는 식이다. 예로 유럽의 목축업자들은 젖소의 착유량이 제한되어 있음으로 초과해서 우유를 짜면 많은 벌금을 물어야 한다. 또 가격보장을 위해 40만마리의 건강한 소를 도살한 적도 있다. 유럽연합 농업 장관회의에서는 적어도 200만마리의 건강한 동물들을 대량 도살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사례들이 세계 식량의 불합리성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광우병 위기와 크로이츠펠트야코프 병에 대한 소비자의 공포를 유발시켜 유럽전역에서 소비를 대량 위축시키는 사태도 발생시키는 것이다. 결국 남아도는 농산물, 축산물을 기아에 허덕이는 제 3의 세계로 보내지 않고 대량 으로 땅에 묻어버리거나 불로 태워버려 폐기처분하는 이유는 자국 농민들을 살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농산물 가격을 국내에서는 높게, 수출할 때는 낮은 덤핑 가격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좀더 잘 살려고 가난한 자들을 의도적으로 굶겨 죽이는 것이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인가.
에디오피아를 예로 들어보자. 기아의 종류는 원인에 따라 천재지변에 의한 ‘경제적 기아’와 만성적인 ‘구조적 기아’로 구분한다. 구조적 기아는 ‘장기간에 걸쳐 식량공급이 지체되는 경우, 즉 경제력 악화에 따른 생산력 저조, 인프라 미정비, 국민 다수의 극도 빈곤등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기아’를 말한다. 에디오피아 인구는 약 4,200만명인데, 그 중 85%가 고원에 거주하고 있다. 그런데 그 고원은 5년째 극심한 가뭄으로 땅은 먼지뿐이다. 주민들은 물을 구하기 위해 맨손으로 땅을 파고 있고 오래전에 가축을 모두 잃은 농민들은 먹을 풀뿌리를 찾아 헤맨다. 2천년이 넘는 장구한 역사를 가진 광대한 나라 이디오피아는 국민소득 128달러로 지구상의 최빈국에 해당한다. 사람들은 난민캠프까지 오기 위해 몇주일에 걸쳐 걸어오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는 도중에 죽는다. 이렇게 피난길에 굶어 죽는 숫자만도 1년에 1백만명 이상이라고 한다. 난민 캠프에 도착한다고 굶주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일명 ‘선별작업’에서 통과되어야 한다. 이곳 의료진들은 난민들의 상태를 보고, 살아 날 가망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무자비(?)한 작업을 시행한다. 의료진으로서는 모든 식량과 의료물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몸과 뇌가 아직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통과된 사람의 팔목에는 ‘고무 밴드’가 착용된다. 생명줄인 셈이다. 이렇게 세계 곳곳의 굶어죽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러니 위선적인 부자의 천국가기가 낙타의 바늘구멍 들어가기 보다 힘들다고 그러시지…
부자들의 밥상 <가난 4편> (06-25-2011)
소는 배를 채우고, 사람은 굶는다? 세계에서 수확되는 옥수수의 4분의 1을 부유한 나라의 소들이 먹고 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70%는 가축 사료로 소비된다. 미국은 미국답게 과학적 이론을 근거로 소들을 비육한다. 그래서 미국의 소들이 먹어치우는 곡물이 연간 50만톤에 달한다. 미국의 소들은 ‘피드 롯’이라는 시설에서 비육되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곡물사료가 주어지는 시스템이다. 물론 소들은 움직일 수 없다. 정해진 공간 내에서 그저 질서정연하게 서 있을 뿐이다. 이런 비육 축사 1곳에만 1만마리 이상의 소들이 갇혀 있는 것이다. 비정상적인 사육 방법으로 소들은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당연히 항생제를 과다투여하게 된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구달 제인 박사의 <희망의 밥상>에서 몇가지를 인용한다. ‘유전자 변형’ 곡물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먹고 있는 식품중에 인간이 재배하는 대부분의 곡물들은 유전자 변형으로 이루어졌다. 또 대부분의 육류, 어류, 조류들은 비정상적 사육방법과 항생제 과다남용으로 기형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서 재배되는 콩의 81%, 옥수수의 41%, 캐롤라의 73%, 면화의 73%가 유전자 변형 식물이다. 또 이 지구상에는 매년 300만톤의 농약이 뿌려지는데, 그 뿌려진 농약의 0.1%로만 해충에게 닿고 나머지 대부분의 농약은 그 주변의 죄없는 생명체를 죽인다. 미국에서는 매년 6천700만마리의 새들이 농약으로 죽어간다.
우리가 즐겨먹는 모든 육류 고기들은 비슷한 환경에서 비육된다. 육류 고기 1 Kg를 얻기위해 곡물 7Kg이 소비되어야 한다. 비육 동물들은 모두 거세당한다. 자연적 교미와 임신, 출산이 불가능하다. 모두가 몸도 비틀수없는 비좁은 공간에서 따닥따닥 붙어서 생존한다. 먹는 먹이의 종류와 양은 인간이 조정한다. 항상 억지로 배 터지게 강제로 쑤셔 넣는다. 돼지는 태어나면 이빨을 모두 뽑아버리고 서로의 꼬리를 물어뜯지 못하게 꼬리를 모두 자른다. 축사안에는 24시간 불을 밝게 켜둔다. 밤이 없는 세상이다. 그 동물들은 오직 살찌기 위해 살아있는 것이다. 부자들이 좋아하는 마블링 (연한 육질)을 만들기 위해서다. 평생 움직이지도 못하고 서 있는 채로 배가 부른데도 또 배터지게 먹어야 한다면 그들이 미치지 않고 견디겠는가. 그 스트레스들이 신종 인프렌저, 신종 바이러스로 발전한다.
비근한 예로 부자들이 즐겨 먹는 <거위 간>요리가 있다. ‘파테 푸아그라 (고기와 간을 짓이겨 만든 요리)를 만들기 위해 거위의 간을 비대하게 키우는 사육법을 알아보자. 모든 거위들의 주둥이를 자른다. 거위의 목에 금속 파이프를 꼿고 자동 펌프로 엄청난 양의 옥수수를 식도로 곧장 집어 넣는다. 그런 식으로 반복해서 몇주만 지나면 거위는 비대해지고 거위의 간은 정상 크기의 10배까지 커진다. 자기 힘으로 걷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며, 숨도 제대로 못쉰다. 강제로 옥수수를 집어넣기 때문에 목이 찧어져 고통받고 식도 윗부분은 박테리아와 곰팡이까지 생긴다. <거위의 꿈>을 노래하던 거위들은 그렇게 처절하게 죽어가며, 그 거위간을 부자들이 먹는다.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는 칠면조나 닭도 마찬가지다. 암놈은 알을 낳을 수 없게 살찌운다. 꼭 괴물과 같이 비대하게 먹인다. 숫병아리들은 거세 당하여 비닐 봉투에 넣는다. 쌓여서 질식하여 죽으면 산채로 분쇄되어 다른 가축들의 사료로 쓰인다. 식용 수닭이 될 녀석들은 비좁은 우리에 넣어져 밀고 밀치다가 약한 놈은 산 놈들의 발아래 짓뭉개져 죽어간다.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중 하나가 무엇인지 아는가. 영주권을 받기 위해 우리 이민자에게는 익숙한 닭 가공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한다. 영혼이 미쳐버린 닭들이 내뿜는 무명의 독소들, 닭들로 입은 상처, 폐기물에서 품어나오는 독소등으로 인체에 엄청난 피해를 남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정기적으로 <항생제 내성검사>를 받는다고 한다.
양식용 어류도 모두 위험에 과대노출되어 있다. 양식용 연어에는 사람의 몸에 좋지 않은 지방이 50%더 많다. 사람 몸에 좋은 <오메가 -3>는 상대적으로 아주 적다. 양식용 왕새우 사육사례만 살펴보자. 후진국의 논이나 밭을 헐 값에 사들여 땅을 판다. 양식장 연못 사방 벽에 플라스틱 Seat를 댄 다음 여러 화학물질의 혼합물로 코팅을 한다. 육식성인 새우를 빨리 키우려면 물고기를 갈아 만든 단백질 사료를 준다. 항생제를 대량 풀어 넣는다. 그래도 새우들이 병에 걸린다. 더 많은 항생제를 푼다. 새우의 형태가 뒤틀리고 검은색 반점이 뒤덮힌다. 더 많은 항생제를 투입한다. 새우들의 폐사량이 많으면 방치한채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사육한다.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시아는 새우 양식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베트남 메콩강 서부지역과 태국의 양식업자 절반 이상이 파산한다고 한다. 양식장을 만들기 위한 자금은 IBRD (세계은행)에서 융자를 받으며, 양식장 대부분의 땅은 농사를 짓던 논과 밭이라고 하는데, 한번 새우 양식장을 쓴 땅은 반영구적으로 재생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가난한 농민들은 땅을 잃고 쫓겨나고, 양식업자들은 빚만 진채 쫓겨난다. 전 세계에서 사라져 간 맹그로브 숲(수많은 어종들의 서식지) 의 40% 는 왕새우 양식장으로 사용되었다가 황폐해져 버렸다.
결국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부자들의 세치 입맛을 만족시켜서 굶주림을 벗어나고자 하지만, 대대손손 살아야 할 땅은 땅대로 훼손되고 가난은 깊은 수렁에 빠지듯 더 가난해진다. 가난한 자들의 피눈물로 차려진 부자들의 밥상은 부자들에게 무엇으로 저주할까…
풍요의 저주, 비만 <가난 5편> (07-02-2011)
재미있는 가설이 있다. 신은 <노아의 홍수>라는 벌을 내리신 이후에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문장을 보면 두가지 전제가 있다. 하나는 ‘사람은 악하다’는 대전제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 스스로는 ‘땅과 자연의 섭리를 바꾸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러시면서 “살아 있고 움직이는 모든 것이 너희의 먹을 것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미 한정된 ‘식량전쟁’을 예상하신 것이다.
이 말씀을 다시 정리하면 인간은 태생이 악하여 서로 많이 먹겠다고 한정된 식량을 가지고 싸울 것이며, 그러다 보면 이 땅은 인간 스스로가 파괴할 것이라고 예언하신 것인가. 실질적 사례로 노아홍수 이전에는 120세 이상을 살던 채식주의 인간들이, 노아홍수 이후부터는 육식을 겸한 잡식성으로 바뀌면서 60세 이하로 인간 수명이 급격히 줄어 들게 된다. 신은 아담과 그 자손들에게 <선악과 사건>이후 인간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시면서 “잘난 너희들 마음대로 해 보아라”고 방치하신 이유가 무얼까. 뒤끝(?)이 강하신 신은 화가 나도 많이 나셨는가 보다. 지구 절반은 굶어서 죽고, 지구 절반은 비만으로 배터져서 죽으니 말이다. 지구상의 식량문제는 신 또 다른 노아의 방주이며, 인간에 대한 또 다른 심판인가?
<비만>을 <풍요의 저주>라고도 한다. 물질만능주의가 생활의 풍요를 낳고, 풍요가 편안함을 추구하고, 편안함이 게으름과 과식을 조장한다. 과식은 비만을 만들고 비만은 각종 성인병의 주범이 된다. 세계 최대 비만국은 미국이다. 미국 성인의 66%가 과체중이며, 34%가 <비만 환자>이다.여자는 3명중 한명이, 남자는 4명중 한명꼴이다. 비만으로 인한 의료비는 연간 1천억 달러이상이며, 매년 비만으로 인한 사망자는 30만명을 넘는다. 미국인의 25%가 Fast Food로 식사를 하며, 비만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비만은 인류의 역사를 50년 후퇴시킨다고 한다. 현대인의 비만은 운동 부족이 주원인이 아니라 가공된 Fast Food와 과식때문이라고 한다. 신이 만든 창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과식하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세계 인구의 16억명이 과체중이며, 4억명 이상이 비만 환자라고 한다.
미국에 이민와서 처음 놀란 것중 하나가 뚱뚱한 사람들이었다. 한국은 지금도 난리이지만 10년전에도 한국은 다이어트 바람이 불어 결코 비만이라고 할 수 없는 체형인데도 불구하고 여자라는 여자는 온통 난리법석을 떤다. 뚱뚱한 미국 사람들을 직접 봐야 비만의 정수를 알텐데 말이다. 미국 만화에 나오는 인물들이 엉덩이, 배가 가슴둘레 2배를 차지하고 팔 다리가 일본 스무 선수같아서 참 코믹하게 만화를 그린다고 생각했는데 미국 와서 보니 진짜 그렇게 생긴 것이다.
처음 이민와서 3개월만에 시작한 장사가 흑인동네의 정육점이었는데, 고상하게 말해 Meat Store였다. 그때는 지금처럼 무료로 비지니스 컨설팅을 해 주는 업체도 없었다. 가진 돈이 별로 없고, 많은 식구가 먹고 살아야 하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다른 Grocery 상품에 비해 마진이 많았기 때문에 단순히 결정한 것이다. Food Stamp가 나오는 매월1일부터 15일까지는 전화로 주문배달이 많은데 주요 고객들이 비만 환자들이었다. 통상 가게 문을 닫고 퇴근길에 배달을 하는데 , 밤에 흑인동네 배달은 목숨걸고 하는 일이다. 배달은 고객의 현관 문앞에서 포장된 고기들을 확인시키고 들여다 놓으면 된다. 그런데 몇명의 손님은 침대에 누워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신발벗고 집안에 들어가 냉장고 안에 고기들을 들여 놓아야 한다. 얼마나 살이 찌면 일어나지 못할까 , 여러분은 보지 않으면 상상도 못할 것이다. 언젠가 비만 환자가 주인공인 영화도 있었지만, 병원의 응급실로 실려가기 위해 집 벽을 뜯는 장면이 나오는 정도이다. 이제는 한국사람들도 육류를 엄청 좋아한다. 특히 삼겹살과 꽃등심은 누구에게나 환상이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두번 먹는 우리와는 달리, 선진국 사람들의 육류 선호도는 매끼마다 탐욕에 가까울 정도의 과소비라고 한다. 르네상스 시대 귀족들의 그림을 보면 옆구리에 자루 같은것을 차고 앉아 식사를 하는데 그 자루의 용도가 먹은 음식을 토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먹고 토하고, 마시고 토하고, 그룹섹스하고, 그런 파티를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달씩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성에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이나 소각할 시설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마시고 먹고 토한 음식들이 쌓이고 악취가 나면 다른 성으로 옮겨서 똑같은 짓거리(?)를 하는 것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부자들이 먹다 버린 음식 쓰레기 통을 뒤져서 하루하루 목숨을 이어가는 수백만명의 빈민자들이 부자들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굶어서 죽거나, 썩은 음식물을 먹어 질병으로 죽는다. 한국 사람들도 미군부대 음식쓰레기 뒤져서 <꿀꿀이 죽>이라고 맛있게 먹던 시절이 불과 반세기도 지나지 않았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부끄럽지만 나도 요즘 반성하고 있다. 지난 주 퇴근길에 집문앞에서 쫓겨난 것이다. 내 허리 사이즈는 결혼해서 지금까지 32에서 34범위에 있었다. 그런데 작년 가을부터 바쁘다는 핑계로 계속 앉아만 있었더니 34 바지를 입으면 빵빵한 것이다. 그런대로 잘 숨겼는데 얼마전에 똥배가 나온 것이 들통이 난 것이다. 몸무게도 3킬로나 늘어났다. 아내의 준엄한 몇번의 경고에도 살 빼겠다는 노력이 보이지 않으니 문밖으로 쫓아낸 것이다. 할 수 없이 고픈 배를 움켜쥔채로 운동하고 집에 들어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식사 배급량도 거의 절반으로 깎여 버렸다. 우리 집은 인간미가 너무 없다. 비만이 뭔지… 제가 이렇게 삽니다…
왜 그들은 가난한가 ? <가난 6편> (07-09-2011)
부자나라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지구의 절반이 굶어 죽어가는 그들에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국민 모두가 한국의 ‘새마을 운동’처럼 똘똘 뭉쳐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면 될텐데.. 한국처럼 부모는 굶더라도 자식들을 열심히 공부시켜서 국민 교육수준이 높으면 가난에서 벗어날텐데..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청렴한 지도자가 민주 정부를 만들어 통치하면 될텐데.. 유엔이나 국제 지원단체가 도와주면 될텐데.. 인건비가 싸니까 세계은행이나 IMF 등에 장기자금을 융자받아 제조 생산을 하면 될텐데.. 등등 많은 제안을 할 수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 나라 국민들은 너무 게을러.. 교육수준이 너무 낮아 무식해.. 두뇌가 명석한 혈통이 아니야.. 허구한 날 내부적으로 전쟁이나 하고 독재 정권이 장기집권을 하는 한 희망이 없어.. 부정부패 때문에 안돼. 국토가 점점 사막화가 되고 식물조차 살 수 없으니 가망이 없어.. 심지어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벌받는거야 등등.., 별의 별 이유로 그들을 외면할려고 한다. 더 나아가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굶주리고 가난한 이유를 한두가지로 대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핵심적인 원인은 악랄한 국제 금융자본의 횡포, 세계 곡물가격의 조작, 독재정권의 장기집권과 멈추지 않는 내부 전쟁, 선진국의 곡물지원의 함정, 자본과 권력의 소수집중화, 금융 과두제, 무차별한 대량 생산과 자연의 황폐화, 미국과 서유럽의 지속적인 식민 정책, 식량생산의 자국민 보호주의, 유엔 기구들의 구조적 지원 한계, 강대국들의 원자재 소유권 전쟁, 신자유 경제주의에 따른 빈부의 양극화 등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가난의 이유에는 앞뒤가 없으며, 원인과 과정을 따질 여유가 없다. 그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현상이 모든 원인의 총체이다. 빈곤의 악순환은 깊은 수렁과 같고, 서로가 고리로 연결되어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게 빠져 들며, 갈수록 빈곤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여러 악성 고리중에서 한가지 시나리오를 연상해 보자. 이제 막 소녀의 나이에 접어든 여자 아이는 또래의 10대 어린 반란 군인에게 겁탈을 당한다. 강간과 겁탈에 정부군과 반란군의 구별이 없다.임신을 한다. 매일 굶다시피 하는 생활이다. 산모는 영양결핍인 상태에서 아기를 출산한다. 태어날 때 부터 건강하지 못한 비정상아로 태어나서 하루하루를 굶주림 속에서 커간다. 시력을 거의 잃는다. 열살이 겨우 넘을 때 부터 금 채석장에서 노동 착취를 당한다. 하루 두끼의 주먹밥으로 15시간씩 노예처럼 일한다.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채찍으로 죽도록 맞는다. 견디다 못해 도망을쳐 어린 나이에 반란군이 된다. 매일 전쟁터로 끌려다닌다. 같은 민족인 민간인은 적도 아군도 아니다. 닥치는 대로 죽이고 빼앗고 강간을 한다. 마약과 에이즈와 질병에 무방비 상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제대로 교육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다. 굶주림은 군인이 되어서도 별반 다를 바 없다. 굶주림을 면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한다.
거기에 무슨 종교가 있고 선악이 있으며 도덕과 윤리가 있겠는가. 각종 질병에 노출되어도 제대로 치료받지도 못하고 질병은 확산된다. 전기가 없으니 약이 있어도 냉장고에 보관할 수가 없다. 그렇게 굶어서 죽고 아파서 죽는다. 만약 당신이 이 아이들이었다면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정부군의 지배층이라는 소수의 가진자와 권력자들은 국제 금융자본과 선진국의 개가 되어 시키는대로 자국민의 피를 짜서 바치고, 비굴한 거래를 통해 자신의 재산을 축적한다. 그들을 독재자라고 부른다. 그들을 영웅이라고 한 시절도 있었고, 지식인이나 사회 지도층이라 한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반란군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이념과 명분만 다를 뿐, 종국은 자신들의 부귀 영화다. 권력을 가진자는 대등소이하다. 그래서 역사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그럼 각 원인별로 간단하게 알아보자. 첫째, 국제 곡물가격의 조작이다. 국제 금융 자본가들의 목적은 오직 이윤추구뿐이다. 예외는 존재하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럼 왜 유엔산하의 주요 기관들, 특히 ‘세계식량 계획기구’ 는 남아도는 식량을 저렴한 가격에 마음대로 확보하지 못하는가. 그 주된 원인은 세계 식량 가격이 특정 세력들에 의해 종종 인위적으로 조작되고 부풀려진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농산품 가격이 ‘국제 투기자본’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 곳이 바로 세계 주요 농산물이 거래되는 ‘시카고 곡물 거래소’이다. 이곳의 곡물 가격은 불과 몇몇의 소수 금융자본가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앙드레 S.A (스위스), 컨티넨탈 그레인(미국), 카길 인터내셔널(미국), 루이 드레퓌스(프랑스)가 주요 곡물 메이저들이며, 일명 이들을 ‘화이트칼라 강도’라고 칭한다.
세계 투기시장은 크게 금융시장과 곡물 시장과 원자재 (석유등 지하 자원) 시장으로 장악된다. 그들은 비록 소수이지만 이미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그들은 국가 위의 국가이고, 유엔 위의 유엔이며, 지구의 무소불능한 초능력자들인 동시에, 인류의 통치자이자, 지배자임을 알아야 한다. 세계는 그들이 움직인다. 마치 조지 오웰이 <동물 농장>을 통해 예견한 <돼지>와 같은 존재들이다.
곡물가격은 아주 복잡한 경로로 결정되는데, 수확량, 수송 경비, 투기적 거래, 세계 시장의 수요량에 따라 결정된다. 곡물 가격이 폭등을 하면 결국 제 3 세계의 가난한 국민들과 유엔 산하 세계 식량기구 등은 비싼 가격의 곡물을 수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국제 자원 자재 가격에는 원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법이고, 그들이 결정하면 지구인들은 따라야 할 뿐이다.
왜, 왜? 굶주리는가 ? <가난7편> (07-16-2011)
‘구조적 가난’은 ‘경제적 가난’과는 달리 여러 가난의 고리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 어느 한가지가 해결된다고 해서 쉽게 그 가난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간단하게 맥만 짚어보자.
한가지 고리는 <선한 조직의 한계>이다. 유엔의 산하에 있는 <세계 식량기구, FAO> <세계보건기구, WHO>도 결국은 정치적 조직이다. 현재 세계 191개국이 이 기구에 가입되어 있지만, 선진국의 자금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이 25%, 일본이 18%, 프랑스와 독일이 각각 10%,스페인과 캐나다가 각각 3%, 스위스, 호주, 브라질이 각각 2%를 부담하고 있다.
따라서 WTO는 세계 식량 문제를 미화시키며, 덜 심각하게 각종 자료를 보도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1974년 보고에서 “10년뒤면 지구 상의 어떤 사람도 배고픈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96년에는 “2015년까지는 지구상의 기아 인구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식이다. 현실은 갈수록 굶주리는 사람이 늘어나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세계는 커다란 두개의 세력이 존재하는데 한개는 악의 세력인 <국제 금융 자본>이고, 다른 하나는 ‘선한 세력’인 <유엔과 유엔 산하 지원단체>이다. 그런데 그 선한 세력 조차도 악의 세력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그러니 미국, 아니 미국을 조정하는 국제 금융세력이 유엔의 결정을 따르겠는가. NEVER.
또 다른 고리는 <전쟁>이다. 아프리카의 인구는 세계인구의 15%에 불과하지만, 기아 인구는 25%이상을 차지한다. 아프리카에서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인종간의 갈등, 천연자원 즉 석유, 금, 다이아몬드 등을 독점하기위한 욕망 때문에 국제 금융 세력과 다국적 기업등의 외부 세력들이 그 지역의 전쟁 지도자에게 무기와 자금을 대어주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외부의 식량 원조가 필요한 정치난민 2천5백만명중에 절반 이상이 아프리카 난민 캠프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1970년부터 1999년 사이에 아프리카에서만 43차례 전쟁이 발생했고, 이 전쟁의 결과로 기아는 더욱 심각해져 갔다. 또한 그 전쟁들은 하나같이 잔인하고 끔찍한 살육전쟁들이었다.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수백만명이 굶어 죽었고, 또 수백만명이 만성적인 영양실조 상태에 있으며, 계속되는 가뭄과 홍수로 농사와 관련된 농수로 시설들이 거의 파괴되었으며, 국제 지원 식량의 절반 가까이는 군인들 식량으로 배급되고 있다. 그래서 굶주린 시민들은 인육까지 먹는 사태에 이르고 있다. 불과 한치 눈앞에 있는 내 동포 형제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명품타령이나 하고 흥청망청 퇴폐문화에 빠져 산다는 것은 세계인들 보기에도 부끄러운 노릇아닌가. 언제부터 잘 살았다고, 언제까지 잘 살거라는 보장은 전혀 없는데 말이다.
또 다른 고리는 선진국의 <무기로 변한 기아>이다. 예를 들어 이집트인의 주식은 ‘에이시’라는 밀과 조로 만든 빵인데, 이중 6분의 1이 미국과 맺은 식량 원조 협정 ‘PL-480 프로그램’에 의해 지원되는 식량이다. 이 협정으로 인해 미국은 자국의 잉여 농산물을 팔아넘기게 된다. 미국의 말을 듣지 않으면 당연히 식량 원조는 중지된다. 그러면 폭동이 일어나고 독재자는 물러나야 하는 것이 자명하다. 이에 따라 이집트의 무바르크는 미국의 손에 놀아나는 미국의 꼭각시에 불과한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 미국은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경제 봉쇄정책>을 펼쳤는데, 유엔의 보고에 의하면 1994년 이후 매년 6만명의 이라크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와 의약품 부족으로 죽어갔다고 한다. 상황은 계속 나빠져 5세 미만의 아이들이 매달 5,000~6,000명이나 생명을 잃었다고 한다. 매일 200명의 아이들이 미국으로 인해 굶어죽어 간 것이다. <리베라시옹>지는 “이라크에서는 유엔이 민족살인의 주범이 되고 있다.”라는 기사를 썼다고 한다.
또 다른 고리는 <지구촌의 삼림파괴>이다. 지구 원시림의 대규모 벌채는 기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거대한 플랜테이션 (대규모 농장에서 면화나 차, 커피, 코코아 등, 상품 작물을 집중적으로 재배시키는 것) 농장이 들어서거나, 목재 판매회사들의 불법 체벌로 매년 수백만 헥타르의 원시림이 파괴되고 있다. 많은 독재정부나 군사 정권들은 다국적 기업들에게 원시림을 싼 가격에 팔아 넘긴다. 원주민들은 살던 땅을 빼앗기고, 문명국의 질병을 얻어 죽거나 도시로 쫓겨 나게 된다.
이러한 난민을 ‘환경 난민’이라고 하는데, 세계적으로 환경 난민의 수는 2억 5천만명 이상인것으로 유엔 환경계획은 추정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사이에 10억명으로 늘어 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생기는 것이 ‘도시 빈민촌’이다. 19세기 초반만 해도 인구 백만명 이상의 도시는 영국 런던이 유일했다. 세계 인구 증가율은 1.6%인데 반해 도시 인구 증가율은 4.7%이다. 이런 추세면 2015년에는 세계인구 71억명 중에 약 60% 이상이 도시에 살게 된다.라틴 아메리카는 이미 인구 70%이상이 도시에 사는데 대부분이 판자집 등 극빈자촌에 거주하고 있다. 도시 인구가 빠르게 급증하는 원인은 농토의 피폐화와 사막화, 각국의 농산물 수출 확대 정책과, 농업의 기계화, 집중화, 공업화의 영향 등을 들 수 있다.
유엔에서는 도시의 슬럼가 주민들을 ‘비공식부문’이라 일컫는데, 정해진 일자리나 거주지가 없고, 정규적인 수입이 없고, 의료혜택이나 교육을 받지 못하며, 사회보장 자격이 없는 ‘무산계급’ 사람들을 말한다. 2000년 라틴 아메리카의 ‘비공식 부문’ 인구는 총 인구의 45%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들은 만연 영양실조, 전염병, 만성 실업, 자연재해, 매춘, 마약, 각종 범죄조직 등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여행가등 외지인들이 이들을 접촉하기는 쉽지가 않다. 정부가 도시의 빈민촌을 철저히 통제하기 때문이다…<후편으로 이어짐.>
왜? 왜? 왜? <가난 8편> (07-23-2011)
또 다른 고리는 < 지구 사막화>로 인한 환경난민이다. 통계에 의하면 36억 헥타르의 땅이 사막화로 진행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전체 육지의 4분의 1, 경작이 가능한 건조지대의 70%나 된다. 진행 속도는 급속히 빨라 매년 600만 헥타르가 사막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대륙의 3분의 2는 건조지대이며, 그중 73%가 사막화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인들은 나무를 때서 식사 준비를 하고, 아시안들은 나무 젓가락을 사용하기 때문에 엄청난 삼림 벌채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결국 무차별한 산림벌채로 사막화된 농촌은 다시 복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또 다른 고리는 치유되지 않는 <식민지 정책의 상혼>이다. 20세기 중반까지 유럽 각국들은 각국 대륙을 강제해 온 식민지 약탈자들이었다. 아메리카로 건너가서는 칼, 총, 대포, 무기, 그리고 각종 질병 등으로 원주민들을 몰아내 버리고, 아프리카에서는 많은 토지를 약탈하고, 주민들을 강제노동에 동원했다. <신식민주의>란 독립후에도 정치적, 경제적으로 구종주국이 구식민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식민지 아래 성장한 식민지 엘리트들은 자국이 독립이 된 후, 핵심 세력으로 권력을 독점 행사하면서도 종주국의 눈치를 살핀다.
한국도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해방되었지만 결국은 매국 친일파들이 기득권 세력으로 주축이 되었으며, 그 자손들이 새로운 종주국인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지금까지도 한국을 지배하는 주도 세력이 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예를 들어 세네갈은 프랑스 식민지였는데 수출만을 위한 단일경작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로지 땅콩농사에만 매달리도록 강요를 받았다. 기생적인 관료들과 지배계급은 농민들의 피땀흘린 노동을 착취하여 농민들에게는 낮은 가격으로 땅콩 농작물을 매입하여 지배 세력과 종주국 프랑스 서로의 이익만 채우는 것이다. 또한 땅콩만으로 단일 경작을 하므로 나머지 농산물들은 비싼 가격에 수입하여야 한다. 그 이유는 수입 농산물은 정부의 허가가 필요한데, 고위관리들이 식량 수입의 독점권을 가지고 있어 막대한 재산을 모으는 것이다. 따라서 세네갈은 전통적으로 매우 근면한 농민들과 비옥한 토지를 갖고 있었지만 식량 부족 사태가 반복 확산되는 것이다.
세계를 지배하는 <금융자본>에 대해 말해보자. 27개국과 6억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거느린 유럽연합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경제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지금은 금융 위기로 극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윤 극대화 법칙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금융 자본이 산업, 무역, 서비스 자본을 물리치고 강력한 세계 주자본으로 지구를 정복한 원인은 무엇일까.
계속된 정보화의 기술과 첨단 컴퓨터 기술과 네트워크 망이 확산되면서이다. 즉 복잡한 ‘세계 경제 제국’의 <동시 관리>가 가능해진 것이다. 글로벌화된 금융 자본은 세계적으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 가치보다 1백배 이상 많았다. 이제 만성적인 실업난, 사회 양극화, 영양실조 등의 사회문제는 못사는 남반부 뿐 아니라 북반부의 문제이기도 하다. 부의 편중 현상은 세계 225명의 대 재산가 총 자산 은 전 세계 가난한 자들의 47% (25억명)의 연간 수입과도 맞먹는다. 빌 게이츠의 재산은 가난한 미국인 1억600만명의 총자산과 맞먹는다. 세계 100대 글로벌 기업들의 매출은 가난한 나라 120개국의 수출 총액보다 많으며, 상위 200대 기업이 세계무역수지의 23%를 차지한다.
브레히트는 “분노하는 것은 고통이다.”라고 했다. 금융 세력과 그의 협조 세력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르기가 바로 <신자유주의>다. 이 이데올로기는 극히 위험한 것으로서 “규범, 규제, 국민, 국가, 선거, 정권교체, 민족주체성, 도덕성, 정의 등 그 어느 것도 성가시게 여긴다.. 오직 자본을 위한 자유, 서비스를 위한 자유, 특허만을 위한 자유만 인정한다.” 시장 자유주의, 시장 원리주의만 남게 되는데, 그러면 이윤이 많은 쪽으로 자본은 몰리게 된다. 그래서 돈만이 모든 가치를 우선하는 황금만능주의 세상이 된 것이다.
이런 잘못된 가치관 속에서의 지원은 한계를 극명하게 들어낸다. 원조보다는 <구조적 개혁>이 먼저이어야 한다. 유엔이나 국제기구들은 빈민국의 사회적 구조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주로 가난한 나라들은 기득권 세력을 강화하고 , 부당한 사회구조를 고착시키고,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함과 약탈에 대하여 수십년간 이상 방치된 나라들이다. 원조 자금들은 독재정권을 더욱 살찌우게 한다. 브라질은 세계 주요 식량 수출국가다. 하지만 매일 아이들이 굶주려 죽어가는 이유는 지주의 1%가 경작지의 43%를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의 경우 1억 5,300만 헥타르의 땅이 경작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으며, 반면으로 500만 농민들은 경작할 땅이 없어 전국을 배회하고 있다. 인도도 영양실조로 고생하는 아이들이 7천만명이 넘는데 이 숫자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2.5배에 이른다. 인프라 정비도 긴급하다. 자본, 도로, 우량 종자, 비축식량, 농경 전문지식 이 모든 것이 필요하다. 선진국에 비해 단위당 생산량은 3분의 1에 불과하다.
“잘못된 것 안에 올바른 삶은 없다.”고 했던 아도르노 (독일 철학자)의 말처럼 고통으로 가득 찬 세계에 행복의 영토는 없다. 우리는 세계 인류의 절반을 굶주림의 죽음으로 몰아넣는 세계질서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 지구상에 굶주림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누가 인간성, 진정성, 인류애를 논할 수 있겠는가. 소수의 부유한 자가 누리는 자유와 복지의 대가로 다수가 절망하고 굶주리는 세계는 더 이상의 희망과 의미가 없는 불합리한 세상이다. 모든 사람의 자유와 정의를 위하여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책임을 다하지 않는 한 인간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함정 <가난 -9편 마지막회> (07-30-2011)
요즈음 미국이 부도가 나느냐, 마느냐 , 유럽 연합이 붕괴되느냐, 마느냐 , 등등.. 세계 경제는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시계 제로>상태이다. 세계 최강의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상상할 수도 없는 그 많은 돈을 풀었는데 왜 계속 빚더미에서 허덕일까. 누구한테 빚을 진 것일까. <신자유주의> 때문이다.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을 한 것이다. 결국 제조와 생산에 돈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노름판 (금융시장)에서 노름하고 서로가 빚보증 섰다가 판돈을 빌려준 노름판 주인에게 대부분의 이자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서민들은 무슨 죄가 있나. 소비한 죄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고 나니 집값이 올라 있고, 오른 집값만큼 대출(빚)을 해 주니, 자동차 사고 명품 사고 맛있는 거 사먹고 집 수리하고 여행가고 결국 소비하는데 몽땅 써 버렸다. <지렛대 이론>으로 집 몇채 가지고 있으니 스스로가 투자의 귀재인줄 알았다. 현대의 소시민들은 너나 없이 빚쟁이들이다. 집값, 건물값, 가게 값이 떨어지면 당신에게 남는 재산은 얼마나 될까.
특히 요즘 아이들을 보면 우리와는 또 다른 빚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명문 사립대학교 일년 등록금이 5만불이라면 부모와 학생중에 한사람은 빚쟁이가 되어야 한다. 4년이면 20만불이 된다. 거기다 4년제 대학만 졸업하면 어디가서 명함도 못내미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 대학원 과정이 필수가 되다시피한다. 아무리 장학금이라는 제도로 눈속임을 한다 하더라도 아직 사회에 첫발도 내딛지 않은 아이들의 빚이 30만불이라면 말이 되는 소리인가. 학생시절부터 학력의 차이와 빈부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월급쟁이 20년동안 저축할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는 단순 계산으로도 가능하다. 대학 교육비 투자 액수와 비례하여 직장 연봉이 달라진다면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로 등골이 휘도록 아이들 뒷바라지를 할 것이다. 국제 금융 자본이라는 거대한 악마가 우리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빚쟁이로 만들어서 자신들이 필요한 부속품으로 만드는 것인가. 부모도 없고, 선생도 없고, 신앙도 없고, 존경의 대상은 오로지 돈과 일만 아는 인조인간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아닌가.
<신자유주의>는 사방이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격투기장을 생각할 수도 있다. 20세기 중반까지는 격투기장이 체급에 맞게 여러개가 만들어져 있어서 체급별 경기가 이루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신자유주의>라는 게임 규칙이 생기면서 모든 격투기 선수들은 커다란 한 울타리안에 들어가서 <자유롭게> 싸우라는 규칙이 정해진다. 거인처럼 덩치가 산 만한 헤비급 선수부터 조폭, 늙은이, 어린이, 여자 구분없이 모두 한 울타리의 경기장에 들어가 죽을 때까지 싸우라는 것이다. 이런 경기를 결코 공정하다거나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이것은 자유경쟁이 아니다.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경기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빈부의 격차는 커지는 것이다. 지금의 경제위기도 가진자에게는 절호의 기회이다. 가난한 자만 죽도록 힘든 것이다. 국가는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기초는 시카고 학파의 <신자유주의 이론>이다. <규제완화>, <세금 축소>, <공기업의 민영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복지정책 축소>, 등의 신자유주의 조치들은 국제 자본가와 금융세력들의 열열한 지지를 받았다. 이것이 세계화(글로벌화)의 물결에 합세를 한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 성취 욕망과 집단 팽창 욕망이 있다. 고대부터 국가들은 제국주의가 되기를 희망했고,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무역 확대를 요구하였다. 이것이 20세기 에 탄생한 GATT 협정이었으며, 강대국들의 기대에 못미치자 수정하여 만든 협정이 <WTO 협정>이다. WTO와 함께 세계화를 독려하는 기구가 IBRD, OECD, ASEM, APEC, FTA 등 기구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는 “모든 국경을 허물고 전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하여 오직 시장 기능만이 모든 경제활동과 삶을 밑받침하게 한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이론을 조정하고 움직이며, 가장 큰 혜택을 누리는 것은 <국제금융 자본>이다. 온 세상을 하나의 시장으로 삼아 언제 어디서나 돈벌이를 쉽게 하자는 마수이다.
<신 자유주의> 배경에는 <워싱턴 합의>가 존재한다. 워싱턴 합의는 1970년부터1990년사이에 월스트리트 은행가들과 미국 재무부, 국제 금융조직 사이에 맺어진 비공식 신사협정이다. 이 협정에는 4가지 원칙이 있다. <공기업의 민영화>, < 규제철폐>, <거시경제 안정>, <정부 예산 감축>이다. 이 합의는 자본시장의 완전한 자유화를 방해하는 모든 규범적, 국가적, 혹은 비국가적 장애를 제거하고자 한다. 이 네가지 원칙은 머니터리즘의 독트린이며, 세계은행(IBRD),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의 행동강령이기도 하다.이 3 기구는 극단적인 자유주의와 국가, 공동체에 대한 독재적인 민영화와 규제철폐정책으로 가뜩이나 약한 제 3 세계 나라들의 경제 구조를 황폐화시켰다.
그러므로 희망은 새롭게 탄생할 <세계 민간 단체>에 있다. 다국적 자본과 금융세력과 제국주의에 맞설 세계인의 연대만이 ‘워싱턴 합의’에 종지부를 찍고 세계인의 기아에서 구해낼 수 있다. 장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약자와 강자 사이에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 라고 썼다. 시장의 완전한 자유는 억압과 착취와 죽음을 의미한다. 법칙은 사회정의를 보장하며, 세계시장은 규범을 필요로 한다. 이윤지상주의는 유토피아의 허구성이다. 시카고의 곡물거래소는 문을 닫아야 하며, 세계의 합의로 제 3세계에 대한 식량 공급로가 확보되어야 한다. 서구 정치가들을 눈 멀게 한 시카고 학파의 어리석은 <신자유주의> 이데오르기는 폐지되어야 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을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다. 지구인들여, 뭉쳐야 산다.!!
고물 자동차 (08-06-2011)
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에 관한 이야기다. 너를 <중고자동차>라고 해도 되는데 굳이 <고물자동차>라고 하는 이유는 단골 정비소 사장님이 너를 팔아도 돈 한푼 받을수 없다고 혹평을 하기 때문이다. 너는 한마디로 아무 쓸모없는 개털인 셈이다. 너의 나이는 2001년출생이니까, 만 10살이 지났다. 마일리지는 거의 20만 마일을 달렸으니 70살쯤 된 노인이라고나 할까. 지금은 너의 몸 구석구석 성한 곳이 별로 없다. 물도 조금씩 새고 엔진 오일도 조금씩 샌다. 어디서 새는지도 모르겠다. 엔진 소리도 소음이 심하고 머플러 (마후라)도 삭아서 구멍이 났다. 달릴때는 오토바이 굉음 소리처럼 들린다. 운전석 게이지 판도 고장이 났고 윈도우 브라쉬도 말을 듣지 않는다.
언젠가 한밤중에 경찰관 두명이 집을 들이닥쳤다. 무슨 일인가 깜짝 놀라 이유를 물어보니 자동차의 윈도 브라쉬가 혼자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잠옷바람으로 경찰관들과 함께 나가보니 윈도우 브라쉬는 저만치 날아가 있고 브라쉬 버팀대인 강철대만 유리창을 끄윽끄윽 갉고 있는 것이다. 소리가 너무 소름끼치니 순찰 중이던 경찰들이 들어닥친 것이다. 전자장치에 이상이 있어 아무때나 움직이는 인공지능(?) 자동차다. 그 뒤로는 평소에 연결 플러그를 뽑아 놓는다. 그러다가 비가 오면 본네트를 들고 수동으로 연결시켜 작동한다. 문제는 나 혼자 차를 타고 다닐때는 그런대로 괜찮다. 그런데 손님을 모시고 매물을 보러가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질 때가 문제다. 차를 길 옆에 세워두고 비를 맞으면서 수동으로 플러그를 연결시켜야 하므로 괜시리 얼굴이 화끈거린다. 여러분들은 차가 고장이 나면 정비공장에 맡기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실 것이다. 당연하다.다만 지금은 너무 잔잔한 고장이 많키 때문에 자동차 운행에 직접적 문제가 되지 않으면 ‘타는 날까지 대충(?) 타고 다니라’는 정비소 사장님 말씀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이 고물 자동차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성격적 결함이다. 나는 나와 인연맺은 사람이나 물건이나 그 어떠한 것도 이별하는 것이 서툴다. 아니 헤어지는 것이 싫다. 내가 회사를 경영할 때에도 간부 직원들은 나의 가장 큰 약점을 인정이라고 지적한다. 경영자나 최고 책임자는 위치만큼이나 얼음처럼 냉정해야 한다. ‘대’를 위해서는 ‘소’를 희생시킬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나를 배신하지 않는 사람을 내가 먼저 배신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야꾸자(?) 행동강령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내가 입던 옷이나 소지품들도 못버리게 한다. 닳고 헤어져도 꿔메어 입기를 좋아한다. 구두도 물만 세지 않으면 밑창을 갈아서 신고 다닌다. 지금 입고 있는 옷 중에는 젊은 시절에 입던 옷도 있다. 하지만 아내는 아연질색을 한다. 나와 성격이 정반대이다. 아내는 항상 갖다 버린다. 그래서 우리 부부가 아주 가끔 다투는 이유중의 하나가 내가 쓰던 물건을 최후 통보도 없이 버리는 경우이다. 물론 아내도 할 말은 있다. 버리자고 하면 절대 안버릴 것이라는 단정이다.
이 고물 자동차는 우리가족이 이민와서 처음 산 자동차다. 그때는 아내와 아이들만 미국에서 살고, 나는 한국에서 기러기 아빠로 살 계획이었으므로 아내에게 선물로 사 준 괜찮은(?) 자동차다. 그때는 나의 미제 자동차가 이렇게 잔고장이 많은 똥차인지 꿈에도 몰랐다. 색상도, 디자인도 모든 것이 멋있게 보였다. 그당시 7인승 밴이라는 것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미국생활이 이런 수용소 생활인지도 모르고 아이들과 여행을 많이 다니라는 나름대로의 넉넉한 배려였다. 또 미제는 세상에서 가장 튼튼하고 고장나지 않는 최고의 제품이라는 어린시절의 환상이 ‘묻지마 구매’로 이어졌다. 하지만 1년이 채 지나지도 않아 고장나기 시작하는데 이제는 아마도 내 생전에 미제 자동차를 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고물 자동차에게는 너무도 감사한 일들이 많다. 너는 우리의 이민 생활과 함께 한 자동차다. 눈덮힌 흑인동네를 늦은 밤까지 배달하고 도매상에 가서 한 차 가득히 그로서리 물건들을 셀 수도 없이 실어 날라 주었다. 또 해마다 가족들이나 이웃들을 싣고 바다며 강이며 산을 두루두루 관광시켜 주기도 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너는 나의 ‘움직이는 사무실’이다. 5년전 이 사업을 시작할 때 딸이 쓰던 중고 노트북 컴퓨터 한대와 이 고물 자동차와 연필 한자루가 나의 전 재산이었다. 이 차 안에서 식사도 하고 책도 보고 누워 자기도 했다. 아내와 다투거나 아이들 때문에 속이 답답하여도 갈 곳이 없으니 내가 갈 곳은 이 자동차 뿐이었다. 언제나 항상 나를 감싸주고 따독거리며 격려해 주던 너였다.
자동차 안에는 나의 물건들이 모두 있다. 테니스 라켓 2개, 배트민턴 라켓 4개, 야구 글로브 2개, 골프채 1세트, 운동화 두컬레, 골프화 한컬레, 운동복2벌, 조깅 팬티 2벌,수영복 2벌, 타올 2장, 세면도구, 고객 파일 가방 1개, 음악 CD들, 성경책과 목사님 설교 노트, 기도 묵상집,읽고 있는 책 두세권 등이다. 이것이 어쩌면 내 재산의 전부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항상 마음만 먹으면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고 아내에게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마운 일은 한번도 큰 사고없이 나와 우리 가족들 건강을 지켜주었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고물 자동차 너에게 안식년을 줄려고 한다. 가까운 곳만 가끔 데려다 주는 것으로 네 부담을 덜어주려고 한다. 도저히 움직이지 못할 때 그 때 헤어지더라도 사는 날까지 함께 살아보자. 10년이라는 세월동안 너를 너무 혹사시켜서 미안하고 그리고 고맙다.
딸의 손을 잡고 (09-10-2011)
8월 27일은 큰 딸아이의 결혼식이었다. 딸을 가진 아버지라면 누구나 한번은 딸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을 걸어들어 갈 것이다. 딸과 함께 걸어 가는 그 길이 얼마나 될까. 열다섯에서 스물 걸음쯤 될까. 어쩌면 더 짧은지도 모른다. 그 짧은 거리를 걸으면서 세상의 아버지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내 딸아이에게 평생 가장 소중하고 가장 아름다운 그 날에 아버지는 마음 속으로 무슨 말을 할까. 딸을 위하여 그 짧은 시간에 하나님께 무슨 기도를 할까. 나도막상 그것이 궁금했다. 어떤 아버지는 눈물을 흘린다고도 했다. 어떤 아버지는 하얀 백지상태로 멍해지는 기분이라고도 했다. 어떤 아버지는 도둑맞는 기분으로 섭섭하다고도 했다. 어떤 아버지는 날아갈듯이 기쁜 마음이라고도 했다. 어쩌면 그 짧은 거리를 짧은 시간동안 몇발짝 걸어가면서 생각을 하면 무얼 그리 대단한 생각을 할까. 세상의 아버지면 누구나 하는 ‘딸아이 손잡고 결혼식장 걸어 들어가는 일이 무어그래 대단하다고 야단일까’ 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세상의 수많은 아버지들은 그 길을 걸으면서 수많은 소원을 했을 것이다. 나도 결혼을 승낙하고서는 결혼식날 딸아이를 위해 목사님의 성혼선언이 있고나서 ‘딸아이를 위한 아빠의 기도’ 형식으로 글을 낭독할려고 했다. 하지만 어떠한 문장도 나의 마음을 모두 표현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고 아쉬웠다. 쓰고 지우다가를 반복하다가 결혼식 행사에는 빼기로 했다. 그 대신 결혼식 전날밤 아내와 나는 결혼축하 카드에 몇자 적는 것으로 대신했다.
막상 결혼식날은 대부분의 한국 결혼식이 그러하듯이 정신이 없었다. 주어진 짧은 시간에 결혼식을 마쳐야 하는데다가 처음 치루는 행사이므로 더더욱 경황이 없었다. 결혼 축하객을 맞이하고 인사하느라 정신이 없던차에 결혼식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 음성이 들려 왔다. 결혼 예식은 교회 예배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에서도 다섯손가락에 들어가는 대형교회이며, 신랑 신부 두사람 모두 같은 교회를 섬기면서 딸아이는 그 교회의 피아노 반주를 하고 신랑은 청년부 순장(속장, 목장이라고도 함)을 맡고이서인지 목사님 두분이 주례와 축복기도를 맡아주셨고 교회 축하객만으로도 만원이어서 그야말로 축제분위기였다. 축가도 청년부 사람들이 두팀으로 나뉘어져 소규모 합창단을 방불케 하였다. 양가집안이 같은 종교 같은 믿음이어서인지 결혼준비부터 예식까지 모든 절차를 신부측 우리에게 양보하는 배려도 해 주셨고 조금의 마찰이나 서운함도 없었다. 모든 일련의 행사가 감사와 축복 그 자체였다.
신부 입장의 순서가 되었다. 신부는 정말 아름다웠다. 내 아내가 결혼할 때의 신부 모습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결혼할 때에는 신부의 입장이나 장인어른의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나의 즐거운 마음이 우선이었다. 딸 아이의 손을 잡으니 딸 아이의 조그만한 떨림이 느껴왔다. 사회자의 입장 소리를 기다리는 일분도 안될 것 같은 시간동안 만감이 교차되었다.
사실 나는 이번 결혼을 반대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딸아이는 4년전에 하고 싶은 공부를 더 하고 그 곳에서 직장을 찾기 위하여나의 반대를 무릎쓰고 한국으로 나갔다. 그런데 2년전에 딸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혼자 입원한 적이 있는데 교회 청년부 사람들이 병문안을 왔던 모양이다. 그때 딸아이를 지극정성으로 병 간호하던 사람과 사랑을 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지금의 사위다. 나는 큰 딸아이에게 유독 미안함이 병적으로 강하다. 내가 IMF시절 사업실패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이 큰 딸아이기 때문이다. 그때 예술고등학교 재학시절이었는데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고 가장 많은 지원을 해 주어야 할 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미국으로 데려왔고, 미국의 이민생활은 그 아이를 더 고생만 시키고 마음에 상처만 남긴 꼴이 되었다.
그래서 몇년이 지난 이후 어느정도 안정이 되었을 때 딸아이에게 약속을 했다. 아니 부담을 주었다. “네가 원한다면 미국, 유럽, 일본 어디서든지 공부를 해라. 마흔살까지는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그런데 딸아이는 한국을 택했고 내 도움없이 자력으로 공부를 마쳤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은 공부를 외국에서 하기를 바랬다. 그래야 내가 그 아이에게 진 마음의 빚을 벗어던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다고 아내를 통하여 듣게 된다. 나는 그 남자가 무슨 직장에 다니고, 직책, 학력,재산정도, 집안 등 어떤 것도 알고 싶지도 않았고 내가 반대하면 곧 헤어지리라 믿었다. 그리고나서 2년이라는 세월동안 딸아이와 사위는 나의 허락만 기다리면서 더욱더 사랑을 키워나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내 동생들과 제수씨들도 그 사위를 만나보고 면접시험을 내 대신 치룬 것이다. 또 까탈스럽기로 소문난 나의 둘째딸도 회사일로 한국 출장을 가서 형부될 사람을 만나서 면접을 본 것이다. 아내도 남편 모르게 사위와 여러차례 통화를 하면서 면접을 보았다. 모두가 찬성이었다. 사위의 경력은 나의 젊은 시절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나만 모르게 내 주변의 모두가 만나서 면접 시험을 보고 합격이라는 결정을 내리고 나의 승낙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만 외톨이로 반대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올해 봄날 새벽기도에서 나즈막한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저희 둘이 죽도록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다는데 왜 너 혼자만 반대하냐. 그냥 맡겨 두어라” 라는 음성이었다. 그날 이후 딸아이에게 세번의 약속을 받았다. “정말 사랑하느냐, 꼭 결혼해야 하겠느냐, 절대로 후회하지 않겠느냐” 세번의 동일한 질문과 답변을 듣고나서 결혼을 승락했다. 나는 고집스럽고 이기적인 아버지다. 그러니 그 결혼식장의 그 짧은 길을 걸으면서 다른 문귀는 생각나지 않고 오직 한마디만 반복해서 주문하는 주술사가 되어버렸다. “사랑하는 내 딸아, 잘 살아야 한다. 잘 살아야 한다. 잘 살아야 한다….”
가족 여행 (09-17-2011)
큰 딸의 결혼식을 계기로 제주도에 일주일간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그동안 살면서 가족들이 여행을 다녀온 적은 몇차례 있었지만 한명도 빠지지 않고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은 별로 기억에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이 한창 클 무렵에는 학교 공부 때문에 한두명은 빠지게 되고, 사업이 잘 될 때에는 시간이 없어서 못가고, 사업이 잘 안될 때에는 자금 사정이 넉넉치 않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못가고, 자식들이 크니까 각자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못가고, 이런 저런 이유로 가족 모두가 함께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행을 간다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젠가 대우 그룹 창업자 김우중씨가 세상의 지탄을 받고 영어의 몸이 되었을 때 언론에 그동안의 심정을 피력한 적이 있다. 그 중에 애잔하게 남는 말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족이 함께 여행 한번 다녀 온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의 우상이었고 한국 경제의 큰 족적을 남긴 그 분이 무엇이 부족해서 평생에 가족여행 한번 못갔을까. 결국 그 많은 재산 잃고 자식 잃고 명예잃고 그야말로 모든 것을 잃고나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 살아 간다. 아니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신경제 시대에 살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반대급부로 내 놓아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특히 이민 생활은 더욱 더 처절하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소규모 자영업을 하거나 주급 생활을 하여야 하므로 마음 편안하게 가게나 일자리를 비우고 여행을 다녀올 수가 없다. 그것도 가족 모두가 함께 여행을 다녀온다는 것이 여간 마뜩치가 않다. 이민온지 20년이 지나도록 한국에 한번도 다녀오지 못한 분들이 많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여간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내가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또 다른 소중한 것을 내 놓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거래가 아닐까.
사실 이번 큰 딸아이 결혼식때 가족여행은 여행 일정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신입가족이 된 큰 사위가 가족여행을 제안한 것이다. 큰 딸아이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은 결혼식이 끝나면 모두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므로 가족이 함께 할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승낙만 하면 자기들의 해외 신혼여행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제주도에서 함께 가족여행을 하자는 배려에서였다. 회사에서의 신혼 휴가 기간이 빤하여 그 자체만으로도 둘만의 신혼여행을 즐기기가 빠듯할텐데 가족을 배려하는 마음이 고맙기만 하여 승낙하였다. 승낙이 떨어지자 모든 준비는 사위가 하였다. 결과는 가족 모두에게 대만족이었다. 아내는 30년전 신혼여행때 제주도를 3박4일로 다녀오고는 처음이었다. 그때는 신부라는 긴장감과 까탈스러운 남편 눈치보랴, 신혼살림 걱정하랴, 맏며느리로 시집살이 할 두려움 등으로 즐거운 여행이라고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주일 제주도 여행은 여왕마마 그 자체였다. 더구나 자기를 제일 좋아하는 맏사위까지 옆에 있지, 자식들은 모두 엄마편이니 천하제일의 여인이었을 것이다. 둘째 딸도 제주도는 처음이었고, 특히 막내 아들놈은 한국여행이 두번째이지만 이렇게 제주도 구석구석을 구경하며 한국 풍습과 문화와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었으니 모두가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신입 가족에 대한 서로의 이해와 대화를 충분히 할 시간을 갖게 됨을 감사한다. 세상에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가 있을까. 하지만 살면서 그 가까운 가족과 대화할 시간은 생각처럼 많지가 않다. 6명의 가족이 아름다운 조국의 풍경을 즐기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서로의 꿈과 속마음을 이야기 한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추억이 되었을 것으로 기대한다. 술을 안마시는 사위는 장인 기분 맞춘다고 함께 술마신 고역을 제외하면 말이다.
제주도는 한국의 여느곳만큼이나 많이 변해 있었다. 세계 유네스코 3관왕이라는 찬사가 어색하지 않는 제주도는 세계 어디를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30년전보다 구석구석을 관광개발하여 일주일이 짧을 정도였다. 5성급 호텔은 규모나 시설뿐만 아니라 해변가 산책로를 비롯하여 음식도 일품이었고 서비스도 손색이 없었다. 18여곳을 ‘올레길’이라고 산책길을 만들어 30분에서 3시간정도를 가족들이 걷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생각하는 정원’이라는 분재공원도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한 개인이 50여년의 평생을 바쳐 가꾼 분재들은 아름답다는 표현보다는 한 사람의 희노애락 인생 드라마를 느끼게 해 주었다. 해변가마다 내가 좋아하는 광어회, 갈치회, 전어회를 마음껏 음미할 수 있어 더없이 좋았다. 물론 소주가 빠질수는 없었지만. 제주도는 기생화산이 아닌 ‘오름’이라는 독립 화산이 80여개 존재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 처음 가보는 화산구도 장관이었다. 무엇보다 말이 통하고 내 나라라는 안도감이 여행을 더욱 편하게 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산재되어 있는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고 애머럴드 파란 바다와 자연의 숲속에서 가족 여행이라는 선물을 마음껏 즐겼다.
또다시 온 가족이 함께하는 가족여행이 언제 있을지 알 수는 없다. 엄밀히 이번 가족여행에 온 가족이 함께 한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여행에 참가하지 못하셨다. 2년전에 한국 나가서 뵐 때보다 기력이 훨씬 쇠잔하셔서 거동이 불편하실 정도였다. 어쩌면 향후 어떠한 가족 여행에도 참석하시지 못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새로운 식구들이 가족으로 늘어나겠지만 또 언젠가는 어머니가 가족의 울타리에서 떠나실 것이다. 또 언젠가 나도 내 아내도 그 울타리에서 떠나겠지만 그렇게 해서 가족도 진화되어 가는 것이리라. 가족여행을 통해 신입가족인 맏사위를 정말 좋은 사람으로 주신 은혜에 감사드린다.
이민온 남자 (09-24-2011)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 얼마전 한국에 한달여 체류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있었다. 가족들이 모두 쇼핑을 하러 나갈 때는 본의 아니게 혼자가 된다. 요즘 우리 나이 때가 되면 노후에 어디서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게 된다. 이제는 한국의 생활 수준이 미국보다 결코 뒤지지 않으며, 오히려 편리함은 한국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 조국이고 내 고향이고 내가 자라난 곳이다. 말이 통하고 문화가 같고 어디를 가더라도 낯설지가 않다. 다시 연락하고자 마음 먹으면 옛 친구들을 만날 수 있고 다시 옛정을 느끼며 우정을 키울 수도 있을 것이다. 먹거리도 미국과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전국 곳곳이 유명 음식점 천지다. 친척도 모두 한국에 있으니 어려운 일을 당하여도 위로받기가 훨씬 나을 것이다. 의료수가도 훨씬 저렴하고 치료받기도 용이하다. 경기도 변두리나 지방으로 내려가면 공기좋고 전망좋고 노부부가 살기 적당한 아파트나 단독주택이 2억원 안팎이거나 그 이하로도 구입할 수 있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전세로 살 수도 있다. 집 있고 차 있으면 나갈 돈이 많지 않으니 일, 이백만원이면 그럭저럭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24시간 한국방송이 나오니 지겹지도 않을 것 같다. 새벽까지 밤거리를 배회해도 총맞아 죽을 염려도 없을 것이다. 거기다 딸아이가 결혼을 하고 직장도 한국에 있으니 한국에서 살 수 있는 분명한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격이다. 아내는 벌써 마음의 절반이 한국쪽으로 향하고 있으니 가볍게 지나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여유로운 자금과 소비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내가 한국에서 나머지 인생을 산다면 유일하게 할 수 없는 것이 <일>이다. 한국에서는 육십이 넘는 부부가 할 일은 거의 없다. 그 나이에 한국가서 장사를 한다는 것은 더더욱 무리다. 설령 내가 미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 한국에서 여생을 먹고사는 걱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일>이 없다면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힘들 것 같다. 그것도 9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30년이라는 세월을, 인생의 삼분의 일이라는 긴 시간을 그냥 놀면서 소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물론 봉사활동도 할 수 있고, 취미 생활도 할 수 있고, 벗들과 한 세월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족함이 없는 생활은 삶의 가치 본질을 흐리게 한다. 삶은 돈이거나 시간이거나 가난해야 한다. 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에 돈을 더 벌고 싶고, 출세해 본적이 없으니까 출세하고 싶고, 그리우니까 더 사랑하고 싶고, 못만나니까 만나고 싶은 것이다. 쉬지도 못하고 일하니까 휴가를 내어 쉬고 싶고, 살기 힘드니까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내가 부족해야 남 부족한 것도 알고, 내 마음이 아파야 남의 아픔도 알며, 내가 가난해야 남의 가난도 이해하게 된다. 미국에서 <일>을 하니까 돈을 버는 것은 물론이지만, 사람도 만나게 되고 책도 읽게 되고 글도 쓰게 된다. 어느듯 5년이라는 세월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고 신문칼럼을 썼는데, 이번에는 딸의 결혼식 등을 핑계로 4회를 빼먹었다. 아니 5년동안 칼럼을 쓰니 쓰기도 싫고 쓸 내용도 바닥이 난 것 같고 게으름도 나서 의도적으로 빼 먹은 것이 솔직한 마음일 것이다. 그 대신 책은 많이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한달동안 단 한권도 읽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놀기 바빴기 때문이다. 여유 시간이 많다고 책을 많이 보고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일>때문에 여유가 없으니까 나머지 시간을 귀중하게 쪼개어 쓴다. 하루 24시간중에 일하는 시간을 빼고나면 나에게 남는 짜투리 시간은 길어야 두,세시간에 불과하다. 그 짜투리 시간에 해야 할 일은 많고, 하고 싶은 일은 더 많다. 그래서 일주일이, 한달이 , 일년이 정말 정신없이 지나가는가 보다.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아내와의 사랑도 더 열심히 하게 되고 믿음 생활도 더 열심히 할려고 하고 이웃도 한번 더 만날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사람은 항상 가난하고 배고파야 하는지도 모른다. 부족하고 아쉬워야 한다. 특히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한다. 부족함 속에 감사가 있고 도전이 있고 꿈이 있고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청춘이다. 그래서 죽는 날까지 일을 할 수 있다면 내 인생은 항상 청춘이며 꿈이 있고 부족함이 있고 감사함이 있을 것 같다. 그러므로 나는 <일>이 없는 한국에서 살지 못한다.
그러면 미국에서 일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 있는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살자.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궁상 떨지말고 만족하며 살자. 십자가 바라보고 참회하고 기도하며 살자. 책 읽고 묵상하고 사색하고 글 쓰면서 살자. 죽기살기로 일하지말고 내 건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열심히 살자. 떼돈을 벌겠다고 악악거리며 살지말고 그날 그날 주시는대로 검소하게 살자. 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고 인기 얻으려고 냄새나는 이곳, 저곳 기웃거리지도 말자. 주변 사람 모두 감싸 앉으려 하지말고, 잘 모르는 사람 아는 채도 하지말자. 내려놓는다는 거짓도 하지말고, 남을 섬긴다는 위선도 떨지말자. 예수가 너무 좋아 미치겠다는 허풍도 떨지말고 우리 목사님 사랑한다는 아첨도 하지말자. 겸손하라는 것은 내 자신이 겸손하지 않다는 것이며, 내 자신을 낮춘다는 것은 내 자신이 높다고 착각하는 오만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던 말던, 내가 그 사람을 사랑만 하자. 짝사랑만큼 완벽한 사랑이 있을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말자. 아프게 하지말자. 그들을 죽도록 사랑하다가 죽자. 일하다가 죽자. 나에게 일을 주는 이 땅의 고객들에게 감사하며, 한인사회를 사랑하고, 나를 살게 해 준 이 미국을 좋아하기로 하자. 이 땅에서 <일>이 없을 때 그 때 한국으로 돌아 가자. 그때까지도 빈손이면 그냥 이 땅에 눌러 앉자. 마치 한그루의 노목처럼 내 모습 있는 그대로 살자.. 나는 이민 온 남자니까….
울림 (09-30-2011)
사람들은 살면서 가끔은 의지할 곳을 찾는다. 그 중 하나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다큐먼터리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인데 각각 다를 것이다. 비극적인 스토리는 주인공이 겪는 아픔과 고통을 함께 느끼면서 내 자신의 불안요소를 날려버리고, 스스로 위안받으며 통찰력과 시야를 넓히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또다른 하나는 감명적인 스토리를 경험하면서 감동을 받고 스스로 더욱 분발하여야겠다는 도전도 받는다.
요즈음 항간을 떠들석하게 하는 한국 기독교의 지도자라는 목회자들 비리 사건이다.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심심찮게 터지는 종교계의 비리사건들은 가뜩이나 살기 힘들어하는 작금의 소시민과 가난한 자들의 심령에 실의와 배신감을 안겨준다. 물론 세계 최대 교회의 목회자거나 언론에 유명한 목사라고 해서 그들이 우리들의 영적 지도자이거나 선한자이며 한국 기독교를 대표한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종교계의 수많은 비리들이 목회자를 불신하도록 만든 것이다.
비단 비리는 종교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리는 맘몬(돈)주의와 물적 팽창주의와 성공 지향주의의 현대 자본주의 병패이며 찌꺼기이다. 그 발로는 <이기적인 유전자>를 갖고 있는 인간의 원초적 죄성이며 욕망이다. 물론 한국의 수많은 목회자들 중 극히 일부가 그렇다고 간과할 수도 있지만 교계의 전반적 분위기가 내지는 목회자들이 추구하는 개인목표가 그들과 다를바 없다면 서글픈 일이다. 부자 목사가 못되서 못하는 것과 부자목사가 될 수 있어도 하지 않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다. 기업체에도 기업윤리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목회자가 자신의 재산증식을 목적으로 하고 가족들을 부유롭게하고 부자교회, 대형교회 목사라는 명예를 목적으로 한다면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이다. 십자가를 앞장 세우고 예수를 팔고 말씀을 도용하여 신도들을 모으고 신도들의 돈으로 나 혼자 배불리 잘 살겠다면 참으로 치졸한 짓이다. 한국의 현대 기독교는 엄청난 권력이다. 누가 감히 교회 지도자(?)들의 명령을 가볍게 여길까. 예수 없는 교회에서 수많은 성도들의 호위를 받는 그들은 왕이로소이다.
목회자를 평범한 이웃으로 생각하면 이해못할 것도 없다. 평범한 대학교 나와서 결혼하고 자식들이 있으니 아내와 자식들만은 고생 안시키고 호강시켜 주고 싶은 마음은 여느 아버지와 같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잘 살기위해서 하는 목회는 예수의 길이 아니지 않는가. 결국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이다. 돈을 벌려면 사업을 하거나 장사를 해야 한다. 비리를 저지른 지탄의 목회자들은 교회를 통해 자기사업을 한 것이다. 이런 추잡한 이야기를 계속한다는 것은 힘들게 목회하시는 목사님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돌을 던지는 격이 되어 송구할 뿐이다. 하지만 목회자들 스스로 낮아짐과 섬김과 나눔의 의미를 자성하고 행함이 없다면 이 역시 공염불이다. 성도가 침묵하는 이유는 목사나 교회가 아닌 십자가만 바라보기 때문임을 무서워 해야 한다.
한권의 책을 권한다. 이 땅에 살다 간 작은 예수들의 이야기인데, 조현씨가 쓴 <울림>이다. 세파에 시달려 입으로 시인하면서도 행동하지 못하는 우리들은 그 작은 예수들이 몸소 행함으로써 이룩한, 거룩한 울림을 느끼게 될 것이다. 조만식, 안창호, 서재필, 이상재, 길선주, 주기철, 함석헌, 안병무, 서넘동, 한경직, 문익환 목사와 같이 많이 알려진 저명한 그리스도인 이야기가 아니라 잘 알려지 않은 작은 예수들의 이야기다. 권전생, 채희동, 장기려, 유영모, 김교신, 변선환, 이 신, 김약연, 김재준, 최용신, 이승훈, 이찬갑, 유일한, 이세종, 손임순, 이현필, 최흥종, 강순명, 이보한, 방애인, 김익두, 이용도, 김현봉, 대천덕. 나는 다시 태어나도 이 분들처럼 살 자신이 없다. 하지만 이 분들의 걸어온 길을 보면서 상당한 도전을 받는다.
이 책의 화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 땅의 선각자들은 왜 기독교를 이 민족을 살릴 대안으로 선택한 것일까. 선교사들은 한국 뿐만 아니라 아시아 모든 나라에 파송되었지만 왜 한국처럼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가장 유,불,선,의 기존 종교 사상이 확고히 뿌리내린 조선에서만 유일하게 기독교가 착근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한국의 선각자 대부분은 유학자 출신들이었다. ‘기독교의 우월성’이나 타 국가들이 받은 ‘기독교 박해’만으로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 설명할 설득력이 없다.
구한말 선각자들이 기독교를 선택한 이유는 기독교 자체보다 그 시대와 사회, 기존 종교의 실상에서 찾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가 외세에 나라를 잃지 않았고, 전쟁의 참화에 빠지지 않았다면, 기존 종교들이 제 구실을 감당했다면 이리도 빨리 이 땅에 기독교가 착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선각자들은 무엇보다 국민의식을 바로 세워줄 새로운 정신과 사상이 절실히 필요했다. 삼국시대에 이 땅에 들어 온 불교는 고려시대에 귀족불교와 왕족불교로 변했다. 조선시대에 국가이념으로 자리잡았던 유교 역시 왕족과 양반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변해 여성과 상민을 핍박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이때 들어온 기독교의 가장 큰 특성은 기득권으로부터 소외된 지역, 소외된 지역민과 상민, 중인, 여성등 사회적 약자 계층을 통해 스며든다. 약자에게 기독교 사상은 그야말로 ‘개벽’이었다.
현대의 한국 기독교는 맘몬(돈)과 권력이 <예수의 사랑>을 앞서고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자본주의 교회들로 변질한다. 세계로 나간 한국 선교사들은 약소국의 국민들 마음도 헤아리지 못한채 배타적이고 근본주의적 기독교리만 전파한다. 로마에서 제국의 종교가 되어버린 기독교는 약자와 함께 하는 시간을 잃어버렸다. 한국의 기독교는 물신주의와 성공주의에서 벗어나 화해와 나눔의 영성주의로 발전하여야 한다 .
애인이 생겼어요 (10-07-2011)
애인!!! 생각만 해도 가슴앓이를 하는 단어이다. 요즘 아이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지만 우리 세대에게는 아주 은밀한 단어였다. 중학교 일학년때 짝사랑하는 동네 누나가 있었다. 동네 병원집 딸이었는데 처음으로 이성에 눈을 뜬 여자가 아니었나 기억된다. 우연히 마주치기만 해도 그런 날은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짝사랑은 짝사랑으로 끝났지만 그 때 가장 많이 종이에 썼던 단어가 <애인>이라는 한자어였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나에게 애인이 생겼다. 이 나이에 애인이 생겼다면 패가망신할 첩경이겠지만 아내도 그 애인을 만나러 나간다면 반가워하는 눈치다. 애인의 종류도 숨겨놓은 애인이 있고 공개된 애인이 있는걸까. 남자들은 대부분 이런 공상(?), 아니 망상을 해 본다. 쥐도 새도 모르게 애인 한명 만들어 바람 한번 피워 보고 싶은 욕망말이다. 들키지만 않으면 로맨스이고, 들키면 바람이라던가. 한국이라면 모르지. 자의든, 타의든, 워낙 음주 문화가 생활화되어 있으니 외간 여자들이 가만히 두겠는가. 아무리 얌생이고, 범생이고간에 술집에서나 은밀한 장소에서 몇번의 만남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남편들은 죄도 없는 직장상사를 방패삼아,집에 들어와 상사 욕을 그렇게 많이 하고, 무슨 초상집이 그렇게도 많은지 오래전에 죽은 친구 아버지는 영문도 모른채 무덤에서 몇번을 더 죽어야 했다. 하지만 이민 사회에서는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대부분 부부가 함께 일하거나 따로 떨어져 일한다고 하더라도 오차범위 10분이내에 귀가하지 않으면 밤새 취조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바람>에는 다섯가지 자격요건이 갖추어져야 가능할 것같다. 풍부한 자금, 여유 시간, 강인한 체력, 치밀한 두뇌와 강심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범죄에 요구되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럴만한 핑계거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미국에 이민온 남자들을 <성직자>로 존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기야 이런 열악한 이민환경 속에서도 바람을 피우는 남자들은 <신의 아들>임이 분명하다.
이런 나에게도 3주전에 애인이 생겼다. 그녀 이름은 <색소폰>이다. 나는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예술방면으로 나를 위해 투자한 적이 없다. 어렸을 때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 소망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언젠가 내 나이 칠십을 바라볼 때 바람피울 여유가 생긴다면 그 여력으로 그림을 배우고 싶다. 특히 수채화와 묵화를 배웠으면 한다. 그리고 음악 실력은 학창시절의 음악시간과 성인 되어 노래방에서 노래부른 것 뿐이다. 이민와서 언젠가 큰 딸아이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기초부터 배울 생각은 없고 오직 한곡만을 집중적으로 배워서 아내에게 특별한 날 들려주고 싶었다. 그 곡은 베오토벤의 <월광>이다. 말이 나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딸아이는 한국으로 가벼려서 생각만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런데 지난달에 교회 권사님이 색소폰 동우회를 만들려고 하는데 색소폰 배울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을 한다. 악보 볼줄도 모른다고 하자 초급반과 중급반으로 나눌 계획이므로 초급반에서 시작하면 된다고 한다. 나는 그 자리에서 망설임없이 승낙했다. 그리고 이민와서 처음으로 나를 위하여 색소폰 구입비로 거금 $630불을 투자했다. 임대해서 빌려 쓸까도 생각했지만 혹시나 중도에 포기할지도 모르기에 큰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본래는 클라리넷을 배우고 싶었는데 공짜로 가르쳐 줄 사람이 없어 배우지 못하고 있던 차였기에 망설임이 없었을 것이다.
나의 취미생활은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 돈을 주고 배운 기억이 없다. 테니스, 야구, 탁구, 배구, 축구, 수영, 베트민트, 당구 등등 몇가지 종목은 선수로 출전한 적도 하고 입상도 한적이 있지만 정식으로 돈주고 배우지를 못했다. 골프도 이민와서 색소폰 권사님에게 처음으로 배웠다. 골프채가 없다고 하니까 골프장에 몸만 나오라고 해서 가니까 본인이 쓰던 골프채 한 세트를 선물로 주는 것이다. 그렇게 몇개월을 골프에 미쳐 지내다가 지금의 비지니스 컨설팅 사업을 하면서 중지해 버렸다. 골프가 싫어서가 아니라 하루가 급한 고객들 사정을 아는 다음에야 마음 편히 골프장에서 골프를 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색소폰을 애인으로 선택한 이유는 어디서나 나 혼자서 불 수가 있고 스스로 배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쫓겨나도 혼자 멍하니 끊었던 담배나 피울 것이 아니라 색소폰을 애인삼아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이제 내 나이 육십을 바라보니 20년쯤 불다보면 가족들 행사나 손주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러나 색소폰을 배우는 진짜 이유는 아내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다. 이 나이에 교회 성가대에 설 것도 아니고 행사장에 불려 나갈 마음도 전혀 없다.나는 한사람에게만 들려주기 위해 배운다. 나는 아내에게 <바람>과 같은 남자로 기억되고 싶다. 가능하다면 봄바람같이 훈훈한 남자로 기억되고 싶다. 바람은 만질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다고 했던가. 언젠가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아내 혼자 남게 되어, 그때 어디선가 불어오는 봄바람에 실려 색소폰소리를 듣게 된다면 그 때 나를 괜찮은 남자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그래서 지금은 집에서 절대 연습하지 않는다. 초보자의 삑삑거리는 소리를 아내의 기억에 남겨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색소폰을 연습할 장소가 문제다. 교회에서 연습은 일주일에 두번밖에 할 수 없으니 다른 장소를 물색해야 한다. 생각 끝에 고물 밴을 끌고 공원에 갔는데 가을이라 해가 일찍 떨어지니 깜깜한 차 안에서 연습할 수밖에 없다. 당분간은 이쪽, 저쪽 눈치보며 아무 장소에서나 연습해야 할 것 같다. 아무쪼록 죽는 날까지 새로 만난 애인과 헤어지지 말고 잘 지내야 할테데.. 혹시 알겠는가. 클라리넷이라는 작은 애인까지 생길지…말년에 복이 터지는구만.
아내에게도 애인이? (10-14-2011)
나에게 색소폰이라는 애인이 생긴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아내에게도 애인이 생겼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권사님과 삼겹살이나 구워먹으려고 집에 초대했는데 권사님이 강아지 한마리와 강아지 살림살이를 한보따리 선물로 가지고 온 것이다. 심지어 기저귀까지 챙겨왔다. 집안은 난리가 났다. 사연은 이러하다.
막내 아들놈은 몇년 전부터 강아지 타령이다. 자기 밑으로는 동생이 없으니 너무 외롭다는 논지를 주장하며 강아지 있는 집에 가면 강아지에 정신이 모두 팔려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애원에 승낙할 내가 아니다. “자기 방과 책상 정리, 화장실 청소, 집안 청소, 빨래 (이 모든 것은 아들놈의 몫이다.거기다 아들놈은 가끔은 밥도 하고 설겆이도 하고 여러종류의 빵도 만든다. 빵 솜씨는 이미 동네에 소문이 날 정도다.)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놈이 강아지를 키운다면 누가 강아지 뒷치닥거리를 할 것인가? 네가 네 주변부터 항상 깨끗하게 정리정돈을 하고 네 할 일을 스스로 잘 하면 그때 생각해 보겠다.” 하지만 12학년인 남자놈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알기에 유야무야로 끝나는 줄 알았다. 사실은 그것보다 애완동물에 대한 나의 선입관부터가 부정적이다. 양반가문(?)에 반상의 법도가 지엄하거늘, 밖에서 기르는 동물을 집안으로 끌어들인다는 자체가 못마땅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주인과 식사를 겸상한다는 것도 못마땅하다. 또한 집안에 여기저기 용변을 품위없이 싸질러 놓는 것은 더더욱 가관이다. 또 인류애(?)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지구촌 절반의 사람들이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데 애완동물의 식사 내용을 보면 주인인 나보다 부족하지 않는 것도 불만이다. 나는 아내의 잔소리에 온갖 재롱을 떨어야만 일주일에 한두번정도 삼겹살이나 쇠고기 몇점 구워 먹는데 이 놈은 아예 고기 통조림을 입에 달고 살지 않는가. 그리고 개의 본분이 무엇인가? 주인과 집안을 지키기 위해 분골쇄신하여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목숨 바쳐 충성을 다 하여야 하지 않는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더우나 추우나 오로지 주인을 위해서 집 밖에서 본연의 의무를 다하여야 하거늘, 주인과 같이 자고 같은 밥상에서 식사하고 외부 사람이 와도 꼬랑지는 감춘채 제대로 짖지도 못한다면 그것은 개의 목적지침서에 한참 위배하는 것이다.
또 믿는 구석은 아내도 개를 좋아하지 않을거라는 단정이다. 결혼초에 부산 지사장으로 발령이 나서 시댁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아내는 본의아니게 계획에 없던 시집살이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내를 끔찍이도 사랑해 주시던 시아버님이 개를 무척 좋아 하셨다. 앞마당에는 진도개, 뒷마당에는 세퍼드를 키우셨는데 이놈들을 이만저만 애지중지하는 것이 아니셨다. 시아버지가 그렇게 사랑하는 개들이니 이놈들 먹는 음식을 소홀히 할 수있겠는가. 아침 저녁으로 개밥을 만들어 푹 끊인 다음에 그것을 또 식혀서 갖다 바쳐야 한다. 그런데 겨울이 문제다. 개 밥그릇들이 꽁꽁 얼어 있으니까 그것을 연탄불에 녹혀서 씻어야 한다. 또한 개들이 사나우니까 동네 산책을 시키지도 못하니 마당에 용번을 퍼질러 놓을 수 밖에 없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왕년에 내가 시집살이 할 때에는..’으로 하소연을 하는데, 개밥과 잔디깎기, 분재 키우기 등의 이야기만 나오면 치를 떤다. 그러니 당연히 개를 키우지 않을 것이라 짐작했는데, 이번 사건은 아내와 권사님간에 사전의 밀약이 있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우리집은 항상 그렇듯이 내가 맨 마지막에 알게 된다. 막상 강아지가 집에 오니 아내, 아이들 모두가 환영 일색이다. 또 권사님의 깜짝 선물을 거절하기도 어렵고해서 강아지는 그 날부터 우리집 식구가 되었다. 며칠을 같이 지내다 보니 이놈이 보통 영특하지가 않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서 이놈의 혈통과 족보를 알아보니 명문집안의 놈이다. 종류는 포메라니언 (Pomeranian)이며 독일산이고 갈색이다. 크기는 30센티정도의 밤톨같이 작은 놈인데 조상은 양치기 개였다고 한다. 두뇌는 아이비리그 출신은 아니더라도 명문대학 출신급 정도는 되는 모양이다. 걷는 폼이 아주 품위있고 부지런하며 애교가 많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무적함대 영국을 만든 19세기 빅토리아 여왕이 이 개를 너무 사랑해서 그녀가 죽을 때 무덤에 함께 묻었다는 일화도 있다. 나도 속물인 것이 별 탐탁치 않게 생각한 이 놈의 혈통이 괜찮다는 기사를 읽고 나서는 이놈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래서 친히(?) 내가 이름을 <코코>라고 작명을 해 주고 가족으로 공식 승인하였다.
사실 이놈에게도 아픈 상처가 있다. 본래 주인은 젊은 처녀였는데 어렵게 분양받아 애지중지 키웠다. 시집을 가고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때문에 이놈을 더이상 키우기가 어렵게 되자, 이놈을 잘 키워줄 주인을 찾게 된 것이다. 과거가 어쨌던 한 가족이 되었으니 끝까지 사랑해야 한다. 벌써부터 이놈과 겸상을 하고 같이 드라마도 보고 같이 빈둥거린다. 아침 저녁으로 산책시키고 용변을 해결해 준다. 아직은 이놈이 아내와 아이들을 더 좋아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를 진정한 주인으로 모실 것이라 믿는다. 왜냐하면 삼라만상의 모든 동물들은 자신의 먹을 것과 배설, 즉 위와 아래를 책임져 주는 사람을 주인으로 모시게 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놈이 처음 왔을 때는 이놈에게 아내의 사랑을 빼앗기지 않을까 상당한 경계심을 가졌다. 이놈을 경쟁자로 여길 것인가, 나의 편으로 만들어 아내보다 나를 더 좋아하게 만들 것인가 고민하다가 후자를 택했다. 일예로 나는 이놈에게 일체 잔소리를 하지 않지만, 아내는 벌써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훈육을 잘 시켜야 예의바른 놈이 된다나? 아내는 자식들에게는 일체 잔소리나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면서 왜 말 못하는 강아지에게는 엄격한 예절교육을 시키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쨌거나 누가 이놈의 주인이 될지는 자명한 일이 아닐까. 코코야, 우리 잘 지내보자. 내가 너의 주인이니라…
나비의 환생 (10-21-2011)
죽음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인가? 누구나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태어나고 또 죽어야 한다. 하지만 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며, 무엇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가? 얼마전에 작고한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이런 말을 한다. 그는 이미 일년전인 2004년에 췌장암선고를 받았으니 어쩌면 하루하루가 더 열심이었고 더 처절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일벌레였고 괴팍한 CEO로 정평이 났었다. “제가 열일곱살 때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매일을 삶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대부분 옳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저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일을 하여야 될까?’ 그리고 여러날 동안 그 답이 ‘아니오’ 라고 나온다면 저는 어떤 것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제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제가 인생에서 큰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을 준 가장 큰 도구입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들, 자부심, 좌절과 실패의 두려움, 그런 것들은 죽음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가장 중요한 것만을 남기게 됩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당신이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인생의 후반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분명하게라도 죽음을 수시로 생각할 것이다. 내가 이 칼럼을 쓰게 된 동기도 이민온 아빠가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유일한 유언이자, 유산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내일 당장 그 분이 부르신다 하더라도 당황하지 않토록 항상 주변을 정리해 놓은 상태이다. 어찌보면 죽는 자체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재산상속과 분배, 장례 방법과 처리, 아이들에게 남길 유언, 작별인사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죽은 후에 천국 간다고 믿는 사람이라도 천국에 가기 위해 빨리 죽기를 소원하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죽느냐, 즉 죽는 날까지 어떻게 사느냐 가 더욱 중요하고도 힘든 일이다. 스티브 잡스처럼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자학하듯이 처절하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오늘의 내 삶에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 우선순위를 정해 놓고 가장 중요한 일부터 한다면 사소한 것들에 화내고 분노하며 목숨거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는 삶이 무의미하다고, 혹은 고통스럽다고 ‘죽어야지, 죽어야지’ 한탄하며 무기력하게 오늘의 소중한 시간들을 낭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 보아도 인생의 가치 없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 것을 인정하게 된다.
죽음학의 대가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신의학자이며, 내 칼럼에서도 몇차례 소개한 <인생 수업>, <죽음의 순간>의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가 쓴 <생의 수레바퀴>는 그녀의 일생을 다룬 자서전 형식이다. 그녀의 일생 또한 한편의 영화와 같다.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한 1991년 시점은 이미 그녀가 암을 선고받고 투병중이었으며 육신은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일을 더 많이 했으면, 돈을 더 모았으면, 높은 자리에 올랐으면’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미루었던 소망들이다.”
그녀는 암에 걸린 어린 소녀에게 <꿈꾸는 고치>라는 제목의 편지를 쓴다. “우리가 지구에 보내져 수업을 다 마치고 나면 몸은 벗어 버려도 좋아. 우리의 몸은 나비가 되어 날라오를 누에처럼 아름다운 영혼을 감싸고 있는 허물이란다. 때가 되면 우리는 몸을 놓아버리고 영혼을 해방시켜 걱정과 두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 신의 정원으로 돌아간단다. 아름다운 한마리의 자유로운 나비처럼 말이다.” 그런데 나비처럼 육신의 고치를 벗어버리고 천국에 들어갔다가 다시 살아서 돌아온 사람들이 있다. 그녀는 이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천국에 들어가는 네가지 단계를 설명한다. 마지막 단계가 신, 즉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단계이다. 그녀의 글을 인용하면 “최고의 근원 앞에 서게 된다. 사람들은 신이라고도 부른다. 사람이 태어나기 전에 그랬던 것 같은 형태의 에너지이다. 거기서 전체성, 존재의 완전성을 경험한다. 이 단계에서 생애의 회고 (Life Review)가 일어난다. 주마등처럼 지나온 삶 전체를 되돌아 보는 과정이다.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자유의지에 의한 자유 선택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책임이 따른다. 올바른 선택, 사려깊은 최선의 선택, 부끄럽지 않는 선택, 세상을 이롭게 하는 선택, 인류를 향상시키는 선택을 하는 책임이다. 이때 받는 질문이 ‘너는 어떤 봉사를 해 왔는가?’ 이다. 이 질문에 교훈은 궁극적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암으로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에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금 인내와 순종을 배우고 있다. 그 교훈이 아무리 어렵다더라도 창조주에게는 계획이 있다는걸 알고 있다. 나비가 고치에서 벗어나 날아오르듯, 내가 몸에서 떠날 때를 정해 놓은 분은 창조주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삶의 유일한 목적은 성장하는 것에 있다. 우연은 없다.”
죽는날 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해답이다. 경제가 어렵다보니 많은 이민자들이 고통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며, 절망은 곧 자기 상실이다. 그것은 자기를 존재하게 한 신과의 관계를 상실하는 것이므로, 절망은 죄이다.”라고 했다.하지만 이 절망과 고통조차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왜냐하면 빛은 어둠에서 나오고, 아름다움은 슬픔에서 나오며, 모든 행복은 고통뒤에서 나오기 때문이다.인내하며 이 시대의 고통을 견뎌야 한다. “눈물의 강에서 늘 축복을 세는구나. 시간을 친구삼아라.” 라는 멋진 말을 가슴에 간직한채 너와 내가 손잡고 이 눈물의 강을 건너보자꾸나…..
그날 이후 (10-29-2011)
소리소문도 없이 한 계절이 가고 또 한 계절이 온다. 10월에 함박눈이 오다니 별일은 별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는 동안에 여러번의 기회라는 것을 만나게 된다. 그 기회를 인생의 전환점, 혹은 터닝 포인트, 이정표라고도 한다. 때로는 그 변화가 상상을 초월할 경우에는 기적이라고도 한다. 비지니스에도 변곡점 혹은 B.E.P (Break Even Point)가 있다. 물도 두번의 변곡점이 있다.얼음에서 물로 변하는 과정, 물에서 수증기로 변하는 과정으로 예를 들 수 있다. 여러분은 이때까지 살면서 어떤 인생의 기회 혹은 기적이 있었으며, 누구로 인해 그 순간을 맞았는가. 그 사람으로 인해 지금 당신이 잘 되었으면 그 사람은 당신의 은인이고 천사가 되겠지만, 잘못된 만남이었다고 원망되면 원수가 되고 악연으로 되었을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쓴 <그날 이후>라는 글이 있다. 그 글에는 예수님이 직접 고쳐주셨던 병자들을 만나는 가상의 장면이 나온다 . 예수님은 폐인이 되어 손발을 떨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난다. “ 형제여, 어떻게 이런 모습이 되었소?” 예수님이 물었다. 그는 “ 앉은뱅이였던 나를 예수님이 정상인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건강하게 되니 먹고 살 일이 걱정이었습니다. 다리를 절 때처럼 구걸하기에는 부끄럽고 창피해 구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마음에 딱 맞는 일자리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이처럼 폐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피투성이가 된 한 불량배를 만났다. 예수님은 그에게 “젊은이, 한낮에 이게 무슨 짓이요?” 그가 예수를 알아보고는 “아, 맹인이었던 나를 고쳐 주신 예수시군요. 당신이 진흙을 발라 눈을 뜨게 해 주셨을 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온 세상이 내 것 같았죠. 그러나 그때부터 세상 돌아가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세상 꼴을 보니 가관이더이다. 차라리맹인이 되어 보지 못할 때가 더 낫겠다 싶을 지경이었죠. 그래서 온 세상에 화풀이를 하며 살다 보니 결국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면서 흐느껴 울었다. 기적을 체험하는 것도 중요하다.그러나 날마다 감사 속에서 참된 안식을 얻고, 변화된 인생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리라.
이 세상은 쉼이 없다. 인간에게 죄가 들어 온 이후에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사, 십자가 아래서는 쉴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얻으려고만 했다. 병든 사람은 낫기를 원했고 굶주린 사람은 먹기를 원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셨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들 중에는 인생을 평탄하게 산 사람도 있고, 나처럼 굴곡이 심한 삶을 산 사람도 있다. 지금 누가 더 행복한지는 논할 수 없다. 행복은 스스로가 만들고 스스로가 느낄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고통과 고난의 세월은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하고 삶을 내팽겨쳐 버리거나 자포자기의 세월을 살았을 수도 있다. 세상 천지를 둘러봐도 누구 하나 손내미는 사람이 없어 허허벌판에 망연자실한 채로 몇날 몇밤을 소리내어 울었을 수도 있다. 그런 세월을 되돌아보면 누군가에게 살려달라고, 딱 한번만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기억들도 있을 것이다. 이래서인지 저래서인지 아무튼 살아남았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 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번만 살려주면 앞으로는 개과천선해서 사람답게 살겠다는 맹세는 까맣게 잊어버린다. 지금의 삶은 덤으로 살고 있다는 걸 잊어버린다. 은혜도 잊어버리고 감사도 잊어버린다. 죽이든, 밥이든 굶어죽지만 말게 해달라며, 자식들 공부만 할 수 있다면 주시는대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도 잊어버린다. 조그만 욕심이 꿈틀대고 삐져 나오더니 욕망이라는 큰 괴물로 변해버린다.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세상을 불평하고 원망한다. 허허벌판에 홀로 남아 우두커니 서서 울고 있을 때 떠나지 않고 나를 따뜻하게 감싸 주었던 사랑하는 가족들과 사람들마저 잊고 산다. 점점 다시 외톨이가 되어간다. 십자가 앞에 서면 달라는 것만 자꾸 늘어간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서 살려주었더니 내 보따리 내 놓으라는 격이다. 모든 것은 주님의 뜻이라면서 오만과 편견만 높아진다. 자신의 실수나 어리석음은 십자가의 용서라는 거룩한 뜻으로 포장해 버린다. 내 자신의 잘못은 모두 용서가 되고, 타인의 잘못은 용서가 안된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자유의지와 자유선택의 권리를 주셨다. 그러기에 나의 모든 삶은 내가 선택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부자로 살거나 가난하게 살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건강하거나 아프거나, 다복하거나 고독하거나,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임을 망각한다. 설상가상으로 주님을 원망하고 더 잘 살게 해달고 어거지를 부린다. 삶의 가치와 행복의 기준은 이미 돈이라는 맘몬으로 몸뚱아리와 영혼마저 전체가 도배 되어버렸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시기와 질투만 늘어간다. 나는 위험을 감수하는 도전도 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지도 않으며, 열심히 살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부자로 살게 해 달라고 우격다짐을 한다. 가난한 자와 병든 자, 소외당한 자들은 나의 울타리 밖으로 소외시킨다. 겉으로는 동정하지만 속으로는 업신여김으로 자기 위안과 대리 만족을 느낀다. 참으로 개걸스럽게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눈물>이라는 거울에서만 볼 수 있다. 어디 가서 무엇을 보면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주님이 보시기에 <그날 이후> 나는 무엇이 달라졌단 말인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주님의 비서가 말한다. “주님은 지금 바쁘시거든요…”
영혼의 동반자 (11-05-2011)
여러분은 당신의 <영혼의 동반자>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부부로 함께 살고 있는 지금의 아내를 영혼의 동반자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지금의 아내보다는 몇차원 수준이 높은, 지구 어느 한편에 살고 있을 것같은,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살고 있는가? 천년의 사랑처럼 내 사랑은 지금 이승에서 만날 수가 없다면 몇십번의 윤회를 거쳐서라도 언젠가는 만나기를 희망하며 기다리는가? 그럼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아내는 육신의 동반자인가, 아니면 이승의 동거인인가?
살기가 팍팍하고 긴 한숨이 이어질수록 함께 사는 부부간에 언쟁의 회수는 늘어나고 서운함은 더 깊어질 것이다. 서로가 언성을 높이고 삶이 짜증날수록 대화의 장벽은 높아지고 결국은 대화의 단절에 이어 각 방을 쓰는 지경까지 갈 수도 있다. ‘이 여자는 아닌거 같아. 구제불능이야, 내 발등 내가 찍었어’ 등등으로 <영혼의 원수>가 되어버린다면 함께 산다는 자체가 고욕이리라. 그렇다고 내일이라도 누군가를 만나 첫눈에 반하여 말 몇마디 나누어 보고는 저 사람이 나의 소올 메이트라고 확신할 수 있으며, 그 확신에는 완전성과 불변성을 보장할 수 있을까.
리차드 바크가 쓴 <영혼의 동반자, Soul Mates>는그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는 우리에게 <갈매기 꿈, 조나단 리빙스턴 시갈>의 저자로서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로 더 알려져 있다. 그는 1936년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출생하여 대학교를 중퇴하고 공군에 입대하여 공군 조종사가 된다. 퇴역후 전국을 순회하며 경비행기로 관광 돈벌이를 하게 된다. 그러던 중 <갈매기 꿈>을 발표하지만 출판사들의 거절로 좌절을 겪는다. 하지만 히피들과 정신적 갈등이 심했던 그 시대 젊은이들 사이에 아름아름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일약 베스트셀러가 된다.
곧 이어 제 2작품 <환상>을 발표하는데 , ‘만일 이 시대에 예수나 석가같은 메시아가 온다면 그는 과연 무엇이라 할까?’ 로 시작되는 이 책은 <어린 왕자>의 쌩 텍쥐베리와 <예언자>의 칼린 지브란과 함꼐 전세계 젊은들에게 새로운 삶의 철학과 의미를 심어주는 작가로 우뚝 서게 된다. 그는 일약 백만장자가 된다. 커다란 저택과 아홉대의 비행기와 엄청난 재산이 있었지만, 그는 무능한 돈 관리와 악랄한 동업자를 만나 빈털터리가 된다. 그동안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고 사귀지만 모두가 조건적이며 일시적 사랑에 지나지 않음을 알았다. 그는 이 책에서 “지난 수세기 동안 우리를 가르쳐 온 숱한 선각자들, 그들은 왜 한결같이 혼자 살았을까. 왜 그들 곁에는 모험과 사랑을 함께 나누는 지성적인 아내가 없었을까. 병을 고치거나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들만 그들 곁에 있었다. 그들 곁에 영혼의 동반자, 신비한 여인이 단 한명이라도 있는걸 보았는가. 깨달았다는 그들이야말로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깨달음을 얻은 선각자들이 어떤 길을 제시해 줄 수는 있어도, 결국 무엇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어째든 난 혼자 살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다. 자신의 영혼의 동반자를 찾기 위해 순례를 계속 하다가 드디어 자신의 영혼의 동반자인 영화배우 레슬리 패리쉬를 만나 홀딱 반한다. 그는 비록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현재 미국의 어느 작은 섬에서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집을 지어 살고 있으며, 전국 강연회를 다니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책의 서두에는 “갈수록 낭만과 희망과 감동이 상실해 가는 이 암흑의 시대에 그래도 아직 산등성이에선 찬란한 태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우리는 죄인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의 기적’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우리 주변에 자신의 진정한 사랑, 영혼의 동반자를 만나 함께 삶을 엮어 가지 못하는 이유는 이 힘겹고 험난한 세상 속에서 진실하고 순수한 부분을 많이 다치고 잃어버리고 죽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그 사랑을 찾으려는 노력을 쉽사리 포기하고 세상이 원하고 강요하는 쪽으로 용기없이 끌려 가기 때문이 아닐까. 가슴은 없고 머리만 발달한 괴물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사랑을 표현하는 말 중에 <맹목적인 사랑. Blindness of Love, 사랑에 눈이 멀었다>이 있다. 세상의 재산과 명예에 눈이 멀어 참사랑에는 눈 멀기를 두려워 하고 회피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로 시작한다.
<Soul Mates>라는 어원은 스코트랜드 지역의 <켈트 족>의 <아남 카라>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인간은 훨씬 그 이전의 자연과 대지에 근본을 두며 두개의 흙으로 구성된 인간의 영혼이 지구에 올 때 반쪽만 육신에 감싸여져 왔다는 것이다. 육체에 공기가 필요하듯이 영혼에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육신의 영혼은 가슴(혹은 마음)이라고 한다. 가슴은 삶의 모든 경험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성장한다. 가슴은 사람 속에 있는 얼굴이다. 인생의 삶이란 그 가슴 속의 얼굴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여행이다. 시간은 사라지고 시간 속의 사건들은 기억 속에 저장된다. 시간은 불안한 영원이며, 가슴은 완전하지 않다. 그래서 자신의 반쪽 거울인 <영혼의 동반자>를 찾아야 영원하다는 것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도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 미국인의 4,500만 가구중 가장 많은 <영원한 동반자>로 누구를 지목했는지 아는가. 바로 자신이 키우는 <개>님이시다. 아니 내 마누라가 개보다 못하다고 하여서야 되겠는가.. 영혼은 <신의 메아리>다. 내가 아내의 영혼을 귀하게 여기면 나의 영혼도 귀하고, 내가 아내의 영혼을 업신여기면 내 영혼도 쓰레기다. 메아리는 언제나 ‘Same to You’ 라고 대답한다. 천년을 기다려서 못만날지도 모르는 환상 속의 <소올 메이트>를 찾느라 가뜩이나 작은 새가슴 다치지 말고 지금 나를 믿고 천진하게 자고 있는 아내와 남은 세월을 <소올 메이트>로 맞추어 가는게 더욱 아름답지 않을까…
불안 심리 <Seller편> (11-12-2011)
어느듯 낙엽들은 지고 찬바람이 불어오면, 달력의 마지막달 한장은 마지막 잎새처럼 악착같이 매달린다. 올 한해도 이리 저리 다 지나가는 것 같다. 특히 나와 같은 업종은 매매 계약을 해서 클로징을 할 때까지 이, 삼개월은 족히 걸리므로 올해 사업 실적은 거의 마감된 거나 마찬가지다. 사업실적은 여러분들 덕분에 재작년, 작년 수준과 비교해 별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가게를 팔려고 하는 Seller 고객들에게는 유독 송구스럽고 면목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다른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별난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남들처럼 골프나 특별한 취미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하루 일과가 밥만 먹고 비지니스 브로커 일만 하는데도 Seller 입장에서는 가게를 빨리 팔아주지 못하니 먹고 노는 무능한 백수로 오해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유구무언이다. 하지만 내년에도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나아질 것 같지 않다. 미국의 경제 시스템이 일거에 바뀌지도 않을 것이며, 고용시스템이 소비 중심에 맞추어져 있으므로 IT광풍 같은 산업폭풍이 불지 않는 한, 별반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대학 졸업을 해도 취직은 되지 않고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마져도 해고당하여 집에서 놀고 있는 자식들은 늘어나게 된다. 유럽 각국들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빚쟁이 나라이니 이자는 기아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어디 빌려준 돈 받을 곳이 있는 나라도 아니니 결국 달러를 더 찍어내어 빚만 더 늘어 날 것이다. 그렇다고 철없는 대중들이 길거리에서 데모한다고 10%의 부자들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많이 내어 90%의 미국 서민들을 구제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기적보다 어려울 것이다.
결국 서민들의 살림이 나아질려면 서민들의 부동산 집값이 올라야 목돈을 만질 수 있고 급한 불도 끌 수가 있는데, 부동산 투자 매력이 없고 구매심리가 꽁꽁 얼어붙어 있으니 이게 생각처럼 쉬운 일인가. 향후 집값이 수년간 바닥에서 헤매고 있으면 서민들이 살 수 있는 길은 작던, 크던 간에 자기장사를 해야 한다. 돈없는 서민들이 장사를 쉽게 할려고 하면 은행에서 대출을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은행도 코가 석자다. 기존에 잡은 부동산 담보물건들만 해도 담보가치가 하락되어 경매처분을 해도 원금상환조차 어렵다. 또 서로 빚보증을 선 각종 펀드들은 무메랑으로 돌아와 자기자본비율을 높일 수밖에 없다. 은행도 돈은 있으되 서민들에게 빌려줄 돈이 없는 것이다. 정부도 절약해야 하는 입장이니 SBA 융자와 같은 정부 보증 대출이 쉬울리가 없다. 결국 집값이 오르지 않고 은행 대출이 풀리지 않으면 내년에도 가게 팔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왜 그럴까?
소문대로 매물은 작년보다 많다. 누적된 매물도 많지만 새로 나온 매물도 많다. 경기가 어려우니까, 살림살이가 어려우니까, 집값은 계속 떨어지고 집은 팔리지는 않으니까, 돈을 만들 구멍이 없다. 지출해야 할 돈은 목에 칼을 들이대듯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몰아부치니 유일한 돈줄인 가게를 팔 수 밖에 없다. 매상은 너나 내가 없이 거의 모두 떨어졌으니 이, 삼년전의 매매가격은 엄두도 못낸다. 현재 매상을 기준으로 하여도 정상 가격보다 낮아야 매매가 된다. 급매물로 내 놓은 사정들을 보면 가슴 아픈 사연들도 많다. 또 몸이 아픈 사람들은 왜 그리도 많은지, 가슴이 미어진다. 대부분의 Seller들이 가게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파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사생활 때문에 급매물로 내놓는다. 정말 좋은 조건의 매물로 나온 가게들이 많다. 많으면 뭘 하나, 당사자인 Buyer가 좋은줄 모르니.. 또 정상적으로 가게를 파는 가장 큰 이유는 지금 하고 있는 가게를 팔고 더 좋은 조건의 가게를 사기 위해서 판다. 매상이 더 높은 가게, 임대료 등 고정 지출이 적게 나가는 가게, 종업원이 작거나 관리하기 쉬운 가게, 일하는 시간이 작은 가게, 부부 두사람중 한 사람이 몸이 아프므로 혼자서 운영할 수 있는 가게 등을 사기 위하여, 아니면 ‘위기는 기회다’를 믿고 좋은 조건의 가게를 저럼한 가격으로 투자 매입하기위해 가게를 판다. 그런데 막상 팔려고 하면 불안하다.
Seller들의 가장 큰 불안심리는 ‘지금의 가게를 팔고나서 이만한 가게조차 못사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이다. 언젠가도 칼럼에서 설명했듯이 <지하철형 불안 심리>가 아니라 <코코낫 형 불안심리>다. 지금의 지하철을 놓쳐도 일정 시간 간격으로 지하철은 오기 때문에 기다리면 언젠가는 된다는 불확실성은 덜 불안하다. 하지만 지나가는 행인의 머리위로 코코낫 열매가 떨어지는 불확실성처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특정 대상과 불확실한 사건으로 전혀 예상치 못하는 결과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면 설령 그 확률이 극히 낮다고 하더라도 불안 심리는 더욱 가중되는 것이다. 지금의 경제상황이 그러하다. 어느 학자, 어느 국가, 어느 기업체도 향후 이,삼년간의 경제 상황을 자신있게 예언할 수가 없다. 특히 지금의 세계경제는 다중 먹이사슬처럼 연결고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니 간단한 경제 공식이나 이론으로는 예측 불가능한 것이다. 더구나 소규모 자영업자인 한인들은 더욱 더 불안하다. 시장 자체는 공정하다. 가게를 싸게 파는 시장이면 가게를 싸게 살 수도 있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게를 팔고 가게를 사는 공백 기간이 아무리 짧아야 삼개월, 길게는 일,이년이 소요된다. 그동안 고정 지출되는 기본 생활비는 물론, 가게를 싸게 팔고 일년뒤의 경제 상황이 바뀌어 비싸게 가게를 사면 어떡하나, 가게를 팔 때에는 할 수 없어서 오너융자를 해 주었는데, 살 때에는 오너융자나 은행융자를 해 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별도의 여유자금이 없는 다음에야 융자가 되지 않으면 지금보다 매상이 더 작은 가게를 사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유때문에 Seller는 가게가 팔려도 걱정이고 팔리지 않아도 걱정이다. 그래서 Seller는 불안하다.
불안 심리 < Buyer 편> (11-19-2011)
매물은 작년보다 더 늘어나고 급매물은 쏟아지는데 왜 가게는 팔리지 않을까? 매물은 많은데 Buyer가 적다면 당연히 가게 팔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나의 고객분석표를 보면 Buyer가 줄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의 컴퓨터에는 가게를 사기 위해 나의 사무실을 직접 방문하여 나와 매물 상담을 하고 서명한 사람들, 즉 Buyer Prospector 가 오늘 기준으로 526명이 등록되어 있다. 전화로 문의하거나 상담한 사람들은 이 기록에 포함되지 않는다. 내가 이 사업을 시작한지 만 5년이 되었고, 작년과 재작년의 Buyer Prospector 숫자는 거의 비슷한데, 올해는 작년보다 20% 가량 많았다. 한국간다고 1개월을 휴가낸 것을 감안하면, 올해 나의 예비 Buyer 숫자를 대략 산술적으로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Buyer 1명당 최소 3회 이상의 미팅을 한다고 가정하고, 한명의 Buyer에게 적어도 5개에서 10개의 매물을 보여준다면 작년보다 훨씬 많은 계약을 해야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따라서 매물도 더 많고 매물 조건도 더 좋고, 예비 Buyer 도 훨씬 더 늘어났는데 매매 건수는 겨우 작년 수준이라면 사업 성과는 <불만족>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당연히 해고자 명단에 올려야 하지만,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회사이니 내 자신을 해고시킬 수는 없고…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 중에 내 자신의 업무수행능력은 동일인이므로 자사분석은 배제하자. 특출한 브로커가 나타난 것도 아니니 경쟁업체 분석도 배제하자. 또 한국에서 목돈들고 미국으로 이민오는 이민자의 숫자가 급격히 줄었다는 것도 배제하자. 환경 외적 요인으로는 은행에서 대출이 안된다는 것인데, 이것은 재작년, 작년 모두 동일한 상황이었다. 간혹 은행에서 대출이 가능한 경우는 은행의 대출 문턱이 낮아진 것이 아니라 Buyer 자체가 대출을 해 줄수 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은행은 기생집이라고 하지 않는가. 전쟁통에도 기생집에서 외상으로 술마시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돈 떼일 우려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런 사람인가. 꼭 융자로 가게를 살려고 하면 은행에 가서 자신의 대출 가능여부를 확인하기 바란다. 삼,사년전에 다운 20%하면 80% 융자해 주던 시절의 전설을 지금도 믿고 있으면 어떡하는가. 요즈음 가게 사기 위해 상담하는 첫번째 질문이 “Down Payment 할 수 있는 금액이 정확히 얼마인가” 이다. 여느 때처럼 호기롭게 돈 걱정 하지 말고 매물을 있는 대로 보여달라고 하면 상담도 하지 않고 되돌려 보낸다. 적어도 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을 것인지, 잔술집에서 소주를 마실 것인지, 기생집에서 기생들 불러놓고 마실 것이지 손님 스스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Buyer의 심리적 불안 요소이다. 사업적 요인은 지금 현재 매상으로 그것도 시세보다 저렴하게 사니 좋기는 하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언제 좋아질지 모르니 불안한 것이다. 작년에 주매상이 1만불 하던가게가 지금은 주 8천불이어서 8천불 가격에 가게를 살려고 한다. 그런데 내년에 주 5천불로 떨어지면 누가 책임질 거냐는 것이다. 누가 책임을 지기는, 본인이 책임을 져야지. 하늘이 무너질까 하늘을 등에 지고 사는게 났지 불안해서 길은 어떻게 걸을까. 실제로 내일 일을 누가 장담하겠는가. 이론적으로는 모두가 알고 있다. <최저점에서 사들이고 최고점에서 팔아라.> 문제는 그 최저점과 최고점이 언제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 돈 버는 부자들은 이 원칙대로 하고, 돈 잃은 가난한 자들은 거꾸로 하기 때문이다. 집, 가게, 주식, 무엇이나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너나 없이 살때에는 이미 고점이어서 살 시기가 늦었고, 너나 없이 팔 때에는 이미 저점이어서 팔 시기가 늦은 것이다. 또한 자본이 열악할수록 불안감이 크다는 게임의 법칙이다. 5만불이 전 재산인데 이것마저 날리면 어떡하느냐 하는 불안감이다.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 재산이 5만불인데 은행 융자를 얻어 20만불 짜리 가게를 할 수 있다면, 이왕 하는 고생이니 빚을 얻어서라도 몇배 더 큰 가게를 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욕망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더 큰 위험요소가 있다. 경기불황이 지속되고 더 침체가 되면 가장 내 목을 조이는 결정적 요소들은 부채와 고정 지출이다. 미국에서 빚을 안 갚을 방법이 있는가. 야반 도주나 파산선고 밖에 없다. 둘째는 임대료 등 고정 지출비용이다. 가게가 좋은 동네이고 번듯할수록 고정지출 비용은 크다. 경기가 더 나빠지더라도 상관없이 지출해야 하는 것이 <이자와 원금, 그리고 고정지출>임을 명심해야 한다.
다른 요인은 가게를 안사는 것이 아니라 못사는 것이다. 가게를 못사는 사람들의 이유들을 이 지면에 적으면 어렵지 않게 100가지 이상을 적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이민자들이 하는 대부분의 Mom & Pop Business중에서 작게 투자하고 많이 벌며, 적게 일하고 고생 덜하며, 부자동네이면서 좋은 시설과 랜트비 저렴한 사업체는 결단코 없다. 그런 가게가 있다면 Seller는 왜 팔겠는가?
또 다른 이유는 주변사람들의 진심어린(?) 충고이다. 여러분이 가게를 살려고 매물을 보고있다고 교회나 주변사람들에게 입밖으로 말이 나가는 순간, 여러분이 좋은 가게를 살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여러분은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라 질투와 왕따의 대상이며 공공의 적이 된다. 이 불경기에 누구 염장 지를 일이 있는가. 충고나 자문을 해 주는 사람은 Buyer처럼 희망에 부풀어 있는 사람도 아니며, 결단코 전문가도 아니다. 그러니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말하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른 것이다. 아니 공통적으로 일치하는 말이 있다. “이 불경기에 정신 나갔구먼. 신중해야지. 이럴때는 가만히 있는게 돈 버는거여…” 과연 진심일까. 전형적인 물귀신 작전이며 훈련소의 연대의식은 아닐까. Buyer는 가게를 사지도 못하고, 기다리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불안한 것이다..…
공간 공감 (11-26-2011)
왜 현대인은 살기가 훨씬 나아졌는데도 항상 살기 힘들다고 하는 걸까? 얼마전 우리 목사님 설교에 “공간이 있어야 공감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씀이 있었다. 머리 속에서 유독 이 말씀이 맴돌기에 혼자 묵상한 느낌을 글로 옮겨본다. <공간>이라는 단어는 철학적일 뿐만 아니라 물리학적, 수학적, 공학적 다양한 의미와 깊이를 가지고 있다. 공간은 입체이며 상대성이고 부피와 거리, 속도와 시간이 존재한다.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이라는 사전적 의미도 있지만, <비어 있다는 것>은 어떤 물질이나 무형의 가치가 채워질 수 있다는 <미래형 채움>도 의미한다. <비운다>라는 말은 처음부터 <모자란다> 라는 의미보다 <채워진 것>을 비워낸다는 의미이기에 더욱 힘들다. 역으로 우리는 바쁜 현대사회에서 비우기는 커녕 채우기도 바쁜 시대에 살고 있지 않는가. 무슨 개뿔이나 있어야 비울게 아니냐고 역정낸다. 항상 부족하다. 현대교육이 가르쳐 준 지식의 기준으로는 나는 항상 죄인이고 부족하고 못났고 성공하지 못한 떨거지 같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채우고 또 채워야 하는 것이다. 특히남들과 비교하면 나의 빈 부분이 더욱 휑하니 커져 보이므로 악을 쓰며 더 많이 채우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점은 우리들은 왜 가득 채우고나서 비울 생각을 할까. 시간이 흐를수록 가득 채울 수 없음을 알기에, 그것이 나의 욕심임을 알기에, 그러니 비울 마음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움의 큰 공간이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조그만 공간이 아닐까. <공감>은 ‘상대방의 생각과 상태를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느끼는 감정적 공유 상태’라고 정의한다.그 공감할 수 있는 조그만 공간은 한개의 공간이 아니라 여러개의 조그만 공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먼저 <내 스스로의 공간>이 필요하다. 현대인은 자신을 너무 혹독하게 다룬다. 항상 넘치는 정보홍수에 휩싸여 우선순위가 결여된 혼란 속에서 헤매인다. 알아야 할 지식은 많고 접촉하는 정보매체는 넘친다. 인터넷, 신문, 텔레비젼, 서적, 각종 모임등을 통해 아는 것은 많지만 그렇다고 전문가도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은 많고, 해야 할 일은 더 많다. 반대로 안정된 일은 없고, 미래가 보장된 일은 시간이 갈수록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현대인들은 내 속에 내가 너무나 많다. 그러니 가시나무새 처럼 가시덤불에 얽혀서 울며 죽어가는 것이다. 내가 내 자신을 받아주지를 않는다. 토마스 머튼 신학자는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의 참된 기쁨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고, ‘자기’라는 감옥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다.”라고 했다.
무엇보다 먼저 내 자신을 다독거리며 위로하고 포근히 감싸 줄 공간이 필요하다. 현대인의 생활이 일에 쫓기고 일에 중독되어 일밖에 몰라야 하는 사회 구조 속에 갖혀 있다 할지라도 <야생초 편지>처럼 나의 감옥에서라도 꽃을 키우고, 꽃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두번째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너무 붙어있지 말고 <한발짝> 떨어져서 바라 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실락원>의 저자는 사랑은 ‘춤출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장영희 교수는 <세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첫째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나에게 다섯 걸음쯤 떨어져 있다. 서로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서 서로의 실수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둘째는 사랑하는 사람들인데 나에게서 한걸음쯤 떨어져 있다.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기위해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지만, 내가 넘어질 때 함께 넘어질 수 있다. 나 때문에 자신도 다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넘어질 때 기꺼이 손을 내민다. 아니 함께 넘어지고 서로 부축해 함께 일어난다. 세째 미워하는 사람들인데 나와 등을 맞대고 밀착되어 있다. 숨소리 하나까지 민감하여 여차하면 나를 밀어버리기 위해 꼭 붙어 있다. 내 실수를 기다리고 있다가 교묘히 이용하기도 하고, 넘어지는 나를 보고 손뼉을 치거나 더 많이 다치는 쪽으로 밀치기도 한다. 이 험한 세상에는 한발짝 떨어진 사람보다 등을 맞대고 서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너무 밀착하여 서로를 질식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사랑은 받기보다 주는 것이라면 사랑은 기다릴줄도 알아야 한다. 내가 강제로 내 기분대로 상대방에게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지 않는가. 지켜볼 수 있어야 하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하고 손을 내밀면 잡아 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정도의 작은 공간만 있어도 된다. 가까운 사람들과는 그들의 말을 경청할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의 흐느끼는 울음을 볼 수 있고 함께 느낄 수 있는 <다섯발짝 떨어진 공간>이어야 한다. 상대방의 일거수 일투족까지, 심지어 숨소리까지 알아야 하는 것은 친한 것이아니라, 스토커에 가까운 시기와 질투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신>과 <나>사이에도 공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신이 나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인간인 내가 신을 이해할 수는 없다. 알 수도 없고 항상 교감을 나눌 수도 없다. 신과 나 사이에 공간이 있어야 내가 신을 생각할 수 있다. “왜 그러실까,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걸까, 무슨 의미일까” 인간은 신께 끊임없이 머리로 질문하고 생각하고 가슴으로 감사해야 한다. 적어도 내 안의 머리와 가슴사이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신을 경외할 수 있다.
그러고보면 <공간>에 대한 <공감>은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배려>이며, <기다림>이고, <낮아짐>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성공>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행복>한 사람은 되어가겠지. 우리 모두 여러개의 조그만 <공간 공감>을 만들어보자.
신빈곤층 <현대인의 삶 1부> (12-03-2011)
요즈음 현대인들은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과거에 비하여 왜 이렇게 바빠야 하고, 일을 많이 하여야만 하는가? 몇회에 걸쳐 현대인들의 생활에 대한 문제점을 다루어보고자 한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신조어에 <신빈곤층>이라는 말이 있다. ‘신빈곤층’이란 용어가 처음 한국사회에 쓰인 것은 외환위기(IMF) 이후인 지난 1998년부터였다고 한다. 몰락한 중산층이 새로운 빈곤층으로 등장했다. 2008년 이후 신빈곤층의 범위는 더욱 넓어지고 있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워킹푸어’, 내집을 갖고 있지만 삶은 더욱 팍팍해진 ‘하우스푸어’, 한평생 일하고도 가난하기만 한 ‘실버푸어’, 출산으로 더욱 힘들어진 ‘베이비푸어’, 수많은 스펙을 쌓고도 취업이 안돼 고시원을 전전하는 젊은이들의 ‘스펙푸어’ 등 신빈곤층은 자꾸만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문제는 비단 한국의 문제만이 아니다. 금융위기 이후부터 세계 각국의 몰락한 중산층들이 겪고 있는 공통의 문제이다. 또한 미국 이민사회의 많은 한인들이 겪고 있는 너와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얼마전 기사에 한국의 최고기업이라는 대기업 부장의 죽음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컴퓨터 개발부서에서 근무했는데 암에 걸려 죽기 하루 전까지 <회사 일>을 하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회사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직책과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 남편은 <일>에 미쳐 살다가 <가정이 아닌 회사>를 걱정하며 죽은 것이다. 막상 죽고나니 회사는 책임이 없다하고 아내는 그런 회사를 믿고 목숨을 잃은 남편이 불쌍해서 회사 앞에서 일인 피켓 시위라도 하는 것이다. 소위 잘 나간다는 이름값 하는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자신의 몸에 어떤 이상 징후가 느껴져도 건강 진단을 받을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흔히들 <워커홀릭, workaholic, 혹은 일 중독자, 일벌레>라는 표현을 한다. 하지만 신경제 체제하에서는 일 중독자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일 중독자가 아닌 사람이 이상한 것이다. <일>과 <조직>에 미쳐 있지 않으면 일순간에 도태되어 버리는데 일에 미치지 않을 재간이 있는가? 일순간 나의 삼, 사십대 모습을 보는 것 같고 내 과거를 재현한 것 같아 섬찍했다.나도 그 당시 밥먹듯이 철야 근무나 야근을 하였다.하루는 밤 늦은 시간에 일을 하다가 순간적인 패닉상태가 되었는데 ‘이러다가 죽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또 공교롭게도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시던 임원 2명이 근무 중에 사망했다. 책상에서 일을 하다가 죽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실감한 것이다.
급변하는 신기술 분야나 첨단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일수록 일 중독자가 더 많고 죽을 확률도 더 많다. 경쟁이 치열한 조직일수록 그 대열에서 잠깐만 방심해도 탈락된다. 아직도 나의 나쁜 버릇이 남아 있는데, 간부 시절이나 회사를 경영하던 시절에 부하직원이 하는 말 중에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있다. ‘너무 바빠서 죽을 지경입니다.’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런 말들은 성공하기 위한 조직에서는 필요가 없는 말이며, 해서도 안되는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 성공할려는 야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을만큼 열심히 일하고, 바빠서 죽을 지경이고, 자나 깨나 어떻게 해야 최선인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최고 기업이고 최고 조직이다. 결과는 실적일 뿐이다. 실적이 좋으면 돈을 더 받고 승진하며, 실적이 나쁘면 도태되는 것이다. 실적이 나쁘면 대안을 제시하여야 하고 약속한 기일 내에 그 대안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니 죽을지, 살지 모르고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부자가 되기 위하여? 성공하기 위하여?. 아니다. 처자식과 먹고 살기 위하여, 생존하기 위하여, 생계를 위하여가 우선이다. 그런데 요즘 미국 기업에 다니는 작은 딸이나, 한국 기업에서 근무하는 사위나 일의 강도가 우리 때보다 더 하면 더 했지 장난이 아니다. 거기다 미국 기업은 소수 민족인 마이너리티가 계속 승진할 확률은 한국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바늘구멍이다.
여담으로 내가 몰락한 <신빈곤층>으로 미국에 이민와서 10년동안 겨우 먹고 사는 것을 가장 좋아 하는 사람이 누구일까? 유행가 가사대로 <철없는 아내>다. 얼마전 내 작은 매부가 한국의 대기업체 사장으로 승진을 했다. 집안의 경사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같은 회사에 입사해서 비슷한 부서에 친구처럼 근무하면서 비슷하게 승진했다. 그는 입사한지 31년만에 ‘하늘의 별’을 딴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대기업 사장 마누라가 된 여동생과 조그만 가게를 혼자 꾸려나가며 겨우 겨우 살아가는 아내의 처지가 비교될 것 같아 괜히 눈치가 보였다. 현재 살고 있는 처지가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20년전에 사업한답시고 퇴사하지 말고 대기업에 그대로 남아 있었더라면 사장까지는 몰라도 높은 자리의 임원까지는 승진했을 것이고, 가진 재산 몽땅 털어먹는 어리석음도 없었을 것이며, 마누라와 자식들은 이 고생 안시켰을텐데 하는 자괴감 같은 것일게다.
그러나 아내 생각은 다르다. 아내는 내가 대기업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라면, 아니면 10년동안 운영했던 내 회사가 지금까지 더 잘 되고 번창하였다면 아마도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거라는, 즉 일찍 죽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 것이다. 죽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회사에, 바깥 세상에 남편을 통째로 빼앗겼을 거라는 믿음에는 나도 동의한다. 나도 <일중독자> 였으니까. 그러니 돈을 못벌어도 지금처럼 이렇게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위로하는 철없는 여자다. 가난하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니 이 또한 아내의 팔자거니 하며 살고 있다. 과거의 한국 회사 생활에 비하면 지금의 이민 생활은 신선 놀음이다. 신빈곤층이면 어때? 아내가 가늘고 길게 사는게 소원이라는데 공기좋고 물좋은 미국에서 가늘고 길게 한번 살아보지 뭐, 까지껏….
과거의 종말 <현대인의 삶 2부> (12-10-2011)
여러분 주변에 속칭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을 살펴보자. 그들 중에 놀면서 성공한 사람을 보았는가. 학창 시절 놀면서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기업체든, 정부 기관이든, 어느 조직이든 놀면서 높은 자리까지 승진하고 출세한 사람이 있는가. 놀면서 부자된 사람이 있는가. 아니다. 아무리 부모를 잘 만나고 아무리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고, 엄청난 로또에 당첨거나, 돈벼락을 맞은 기적이 있었다 하더라도 놀면서 계속 부자가 될 수 없다. 남들보다 몇배의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부자가 가난한 자보다 더 일을 많이 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이 세상은 인생의 대부분 시간을 일해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일에 미쳐야 성공하는 세상이다. 왜 이렇게 너와 내가 없이 열심히 일해야 하고 미쳐야 사는 세상이 되었을까?
먼저 이 글은 <부유한 노예>에서 인용함을 밝히며, 대부분의 데이타는 2005년 이전을 기준으로 한다. 이 책의 저자인 로버트 라이시는 클린턴 대통령과는 오랜 친구이며 같이 로즈 장학금을 받고 옥스포드 대학원에서 공부한 미국의 전형적인 지도층 엘리트 군단이다. 클린턴 당선과 함께 경제 정책 인수팀을 맡았고 이어 노동부 장관으로 입각을 한다. 그 때는 하루 15시간을 일했다고 한다. 그러다 돌연 장관직을 사퇴하고 대학교로 돌아가 학생을 가르치는 평범한 교수가 된다. <부유한 노예>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성공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 몇년전 장관직에 있을 때 일이 내 삶의 전부였다. <생계>를 꾸려 나가는 것과 <삶>을 꾸려 나가는 것, 이 두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왜 점점 더 어려워 지는가를 이책에 담았다. 우리는 현재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가족의 붕괴와 지역사회의 분화, 그리고 올바른 인간의 모습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를 걱정한다. 신경제는 부와 혁신, 새로운 기회와 선택등 엄청난 혜택을 우리에게 주지만, 이런 걱정도 함께 주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과거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에 매달려 있으며, 일이 아닌 삶을 위해 쓰는 시간과 에너지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왜일까? 돈을 더 많이 벌어 더 잘 살게 되었는데, 왜 개인적인 삶은 더 빈곤해 지는 것일까? 부자가 되면 될수록 오랜 시간 일을하며, 또 일을 하지 않을 때 조차도 잠시도 일에 대한 생각에서 해방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대졸자는 고졸자보다 70 ~ 80% 더 많은 돈을 번다. 25년전의 두배다. 그러면 누가 더 일을 많이 하는가? 일을 더 오래 하는 사람은 대졸자다. 일반적인 미국인들 1년 근무시간은 유럽인들에 비해 350시간 더 길다. 일을 많이 하기로 유명한 일본인보다 일을 더 많이 한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8%만이 돈을 덜 벌더라도 일을 덜 하길 원한다. 독일의 38%, 일본의 30%, 영국의 30%와 비교된다. 왜 미국인은 이렇게 일을 많이 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먼저 신경제의 시대적 변화를 인식해야 한다. 가내 공업시대에는 임금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자급자족의 시대였고 마을 공동 생활 시대였다. 칼럼에서 한번 소개하겠지만, <준비된 미래>와 <월튼>이라는 책에서도 거론한 개인의 자립 생활이 가능한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산업혁명을 맞이하면서 세계는 ‘대량 생산 체제’로 돌입한다. 대도시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대도시로 모여든다. 150년동안 선진국에서 꽃을 피웠지만 이제는 종말을 고하면서, 개발도상국인 중국과 인도등으로 대량 생산시대는 옮겨가고, 향후에는 지금의 후진국들에게 넘어갈 것이다. 우리 세대는 한국에서 대량 생산시대에 젊은 시절을 살았다. 아직도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는 <평생 직장>이었다. 그 시대에는 생산과 소비가 <계획>이 가능한 시대였다. 고용주는 대량 생산을 위해 대량 인원이 필요하였고 계획 생산을 하기 위해서는 임금을 보장하여야 근로자를 붙들어 둘 수 있었다. 고용주는 근로조건을 보장하여야 하고 근로조건 협상을 위해 노조가 필요했다.
한번 입사하면 거의 평생을 한 직장에서 마감을 하던 시절이 불과 30년전의 이야기다. 미국의 경우도 직장인 2/3 이상이 20년 이상 동일 직장에서 근무하여 임원이 되던 시절이었다. 일본 같은 경우는 직장을 다니던 남자가 회사를 그만 두고 집에서 놀고 있으면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정도의 시절이기도 했다. 그만큼 회사도 근로자를 보호하고 믿음을 준 것이다. 평생 직장의 개념이 무사안일 주의로 흐를 수 있어서 그래서 나온 구호가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이었다. 회사와 근로자는 같은 배를 타고 있었다. 그래서 근로자도 인생의 평생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교육 수준과 학벌에 따라 입사할 회사의 등급과 초봉이 어느정도 결정되던 시대였다. 몇년 뒤면 직책이 어느 단계로 승진을 하고 예상 급여는 얼마를 받을 것이며, 그에 따른 지출과 저축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자녀에 대한 출산 계획과 자녀들 교육 계획까지 예상할 수 있었다. 집을 살 수 있었고 단계별로 집을 늘려 나갈 수 있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도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었고 자녀들 스스로가 자신의 학업결과에 따라 사회에 순응하던 시대였다. 그러기에 중산층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그들이 국가와 사회의 중심축이 되었다. 국가도 사회보장과 연기금을 만들고 의료 보험을 만들 수 있었다. 퇴직 후 노인 복지가 가능했고 부자와 가난한 자의 격차가 지금처럼 극심하지 않았다. 지역사회도 부자와 가난한 자가 같은 지역에 섞여 살았으며, 부자의 세금으로 가난한 자들의 복지 후생을 지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경제시대를 맞이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계획>, <예상>, <보장>, <신뢰>, <가족>, <지역사회>, <중산층> 등, 이 모든 사회 통념들이 무너져 버렸다. 왜 무너졌을까?
빈부의 격차 <현대인의 삶 3부> (12-17-2011)
그런데 왜 과거보다 더 열심히 일하여도 빈부의 격차는 더 심해지는가? 과거에도 빈부의 사다리는 있었다. 하지만 사다리 한칸의 간격이 점점 더 넓어진다는데 문제가 있다. 왜 그럴까?
먼저 신경제의 눈부신 기술 발전으로 모든 것이 빨라졌다. 정보처리, 통신, 운송, 인터넷, 전자 장비 등 첨단 기술들이 하루 단위로 급격히 발전한다. 따라서 현대인은 <구매자 천국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생필품 가격이 얼마나 저렴한지는 한국가서 시장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또 오늘의 생활 수준이 불과 10년전과 비교해도 얼마나 풍요로운지 쉽게 알 수 있다. 고품질이면서도 가장 저렴한 가격의 상품을 안방에 앉아서 세계 시장으로부터 구매할 수 있는 세상이다. 과거에는 더 좋은 조건의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에 <비교 구매>가 유행이었다. 월마트의 슬로건이 무엇인가? 자체 인공위성을 띄우고 세계를 구매처로 삼아 최저가격에 구매하고, 운송 시스템을 최단 시간으로 단축하여 ‘가장 저렴한 가격에 팝니다.’가 월마트의 성공전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원하는 바로 그것을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가장 유리한 가격에 원하는 즉시 얻을 수 있다.’ 따라서 판매자는 최상의 구매 조건을 제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문제는 대부분의 우리가 <구매자 천국> 환경에서 구매자인 동시에, 생계를 위한 판매자의 입장으로도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 가공스러운 것은 <오늘의 구매고객>이 <내일의 가망 고객>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경제의 구매자는 언제라도 좋은 조건의 상품이 나오면 안방에 앉아서 클릭 한번으로 판매자를 바꾸는 것이다. 그러니 판매자는 생존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모든 조직의 비용 절감, 부가가치 창조, 신상품 개발 등 생산성 증가와 경쟁력 확보가 판매자의 생존전략이다. 가격을 저렴하게 하기 위해서는 생산 공장을 인건비가 싼 개발 도상국으로 이전하여야 한다. 또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로 대체한다. 선진국 본사에 있던 단순 근로직들을 최소화하고 나머지는 모두 해고한다. GE 잭 웰치 회장의 “레몬 스퀴즈”를 기억할 것이다. ‘쥐어 짤 수 있는데 까지 쥐어 짜도 또 짤 것이 남아있다’ 라는 것이 현대 조직관리의 기본이다.. 선진 기업의 최고 경영자는 이제는 현장의 의사결정권자가 아니다. 투자자가 빠져 나가지 않게 붙들어 두어야 하고, 신규투자자를 유치해야 하며, 주식 가치를 높이는 것이 지상 미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부가가치의 고급인력은 더 많은 급여를 주더라도 스카웃해야 하고, 단순 근로자의 일은 해외로 이송하여야 한다. 대기업의 인원 감축 발표만 있으면 그 회사 주식 값이 뛰는 맥락이다. 아주 간단한 논리의 흐름이다. 미국(선진국)에 사는 우리는 구매자인 동시에 판매자다. 최상의 구매조건, 즉 더 좋고, 더 빠르고, 더 싼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당신은 구매자로서 더 좋은 조건이 있으면 언제라도 쉽게 판매자를 바꾼다. 그럴수록 다른 한편의 판매자인 당신은 더 많은 구매 고객을 유지하고 계약하기 위해 더욱 더 힘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당신이 창조적이고 생산성이 높은 조직의 일원이면 더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하고, 단순한 분야의 근로자라면 임금은 더 낮아지고 그나마 언제든지 해고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이로 인해 사회의 양극화와 분화현상은 더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지금 미국은 부자 1%가 미국 총소득의 23.5%를 차지한다.
<부유한 노예>에서는 기크 (geeks)와 슈링크(shrinks)라는 두 부류가 혁신의 핵심이라고 한다. 기크 (geeks)는 예술가나 발명가, 디자이너, 엔지니어, 금융전문가, 과학자, 작가, 음악가 등과 같이 특정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볼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다. 이들은 자기의 관심분야에만 전력을 다하는 사람, 흔히들 독불장군이다. 기크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기쁨을 느낀다. 기크는 자신이 설계하는 소프트웨어와 자신을 하나로 합친다. 또 다른 부류는 슈링크(shrinks)다. 마케팅 전문가, 재능을 발굴해 내는 사람, 유행을 감지해 내는 사람, 제작자, 컨설턴트, 즉 사람들이 시장에서 가지고 싶어하는 새로운 가능성이 무엇인지 밝혀내고 그 기회를 어떻게 하면 잘 살릴지 아는 사람을 말한다. 기크처럼 자신의 한 분야에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는데 몰두해 있다. 이들이 해야 할 일은 고객에게 어떤 상품을 사라고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하고 어떻게 이것을 만들어 판매에 나설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향후 신경제는 두개의 절반이 함께 이루어내는 전체, 즉 ‘무엇이 가능할까’ 와 ‘소비자는 무엇을 원할까’ 가 모든 기업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두가지 질문이다. 어느 한 분야의 지식과 그 시장에 대한 지식이 결합될 때 돈을 벌 수가 있다. 신경제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멋진 아이디어>이며, <창조적 근로자>가 필요한 것이다.
결국 우리는 구매와 판매를 안정적으로 예상할 수 없고, 고용주는 시장을 예측할 수 없다. 따라서 근로자에게 근무조건을 보장해 줄 수 없고, 근로자는 고용주를 믿을 수 없으므로 더 좋은 직장을 찾아 평균 2년마다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미 신뢰가 깨어진 <상실의 시대>에 서로가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기크와 슈링크인 고액 연봉자들은 단순 노동의 저임금자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은 왜일까? “햇볕이 좋을 때 미리 짚단을 말려 둔다”는 속담이다. 즉 ‘오늘의 고액 일자리’가 ‘내일의 고액 일자리’가 된다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으므로, 돈을 벌 수 있을때 더 많이 벌어둔다는 것이다. 이러니 부자와 가난한 자가 같은 시간 일을 해도 시간이 갈수록 빈부의 격차가 더 심해지는 이유이다.
나는 내일 울리라 (12-25-2011)
‘나는 내일 울리라 (I’ll Cry Tomorrow.)’ 는 내 추억 속의 영화제목이다. 내가 20대 초반일때, 그러니까 70년대 초반에는 ‘명화극장’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당시는 비디오가 없던 시절이었고 TV도 귀한 시절이었다. 영화를 볼려면 영화관에 가는 것 이외에는 유일한 방법이 주말 늦은 시간에 방송되는 명화극장 프로를 보는거였다.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하던 대학생 시절이었으므로 주말이면 TV가 있는 주인집 안방에 건너가서 보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정이 많으신 분들이었다. 본인들은 정작 주무시면서 자취생들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신다. 각자 베개를 들고 와서 고구마를 쪄 먹으면서 영화에 심취했다. 그 당시 보았던 주옥같은 명화들은 오늘처럼 눈내리는 겨울 밤의 풋풋한 추억으로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다. 이 영화도 40년 가까운 세월이전에 딱 한번 보았으므로 기억에는 가물가물하지만, 수잔 헤잔 헤이워드가 주연이었는데, <나는 살고 싶다>와 함께 그녀의 대표적 영화다.
스토리가 비비안 리의 ‘애수’와 더불어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꿈많은 젊은 여자가 겪는 시대적 고통과 힘든 역경을 참고 이겨내는 아픔의 스토리였던 것 같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이 나면 패전국가의 여성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랑하던 애인은 전쟁터로 나가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연락도 없고, 그러다가 죽은 것으로 잘못된 사망 통지서를 받아들면서 여자의 인생은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처녀 시절의 꿈많은 재주와 아름다운 젊음은 점령군의 군화에 짓밟히고 하루의 빵을 구하기 위해 몸을 팔아야 한다. 전쟁은 한 여자의 모든 것을 산산조각 부셔버린다. 역사의 수많은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꿈과 희망과 사랑이 부서져 물거품이 되었는가. 술과 약물 중독, 사랑의 좌절, 주검같은 절망에서 다시 살아난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찾았기 때문이죠.”의 유명한 대사로 이 여인은 살고, ‘애수’에서는 자살을 한다. 그래서 어떤 이유라도 전쟁은 용서받을 수 없다. 그래도 그녀는 견디어 냈으며 살아 남았기에 오늘의 이 순간이 있고 지금의 역사가 이어져 오는 것이 아닐까. 그녀들이 우리들의 어머니요, 누이인것이다. 한국역사도 침략한 정복자의 역사가 아니라, 대부분의 수많은 세월이 침략당하고 강간당하고 망가지고 부서진 역사였다. 왕과 간신들은 도망가고 남자들은 전쟁터에서 죽거나 병신이 되어 돌아오고, 결국 남겨진 이 땅을 지킨 자들은 부서지고 망가진 연약한 어머니요, 누이들이었다. 흐르는 눈물을 참으며, 눈물 젖은 빵을 목이 메이는 줄 알면서도 먹고 살아 남았기에 지금의 잘난 자식들이 호강하는 것이다. 오늘 이 순간을 살아남아야 하기에 내일 울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모두가 살기 어렵다고 하지만 어느 시대에나 <역경>은 있어왔다. 모질고 힘든 세월이었을 것이다. 그 역경의 세월을 살아 남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중에 한사람을 소개한다.
<살아야 한다. 나는 살아야 한다.>의 저자인 마르틴 그레이의 이야기다. 그는’운명의 가혹함을 이겨내고 결국 승리자가 된 사람’이다. 1922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유대인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낸다. 폴란드는 독일, 오스트리아와 더불어 반유대주의 분위기가 가장 심한 나라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7개월 동안에만 반유대주의로 인한 살인사건이 350건이나 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절대로 잡히지마라. 탈출하라. 탈출하면 늘 희망이란게 있는 법이다. 절대로 기다리지마라. 첫번째 기회가 언제나, 예외없이 최고의 기회이다.”라고 한다. 그는 삶이란 것이 얼마나 가혹해질 수 있는지를 절절히 체험했다. “인생이란 장애물 경기이다. 처음 장애물을 뛰어넘더라도 그 너머에는 더 높은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을 넘으면 더 어려운 장애물이 더 빨리 다가온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생존에 대한 희망의 끈을 결코 놓지 않는다. “나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는 살아야 한다.”고 계속 다짐한다.
1946년 유일한 외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미국 뉴욕에 도착한다. “뉴욕의 많은 직장인들은 삶의 시작부터 끝까지 남들이 자기들을 이끌도록 내버려두었으며, 시간표와 장소에 얽매여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을 작정이다. 나만의 법을 만들고 나만의 지도를 만들 작정이다. 나는 내가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한 구속만을 받으며 자유로운 상태로만 살아갈 것이다.” 즉 타인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겨서는 안된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자신의 체험을 통해 깨닫게 된다. 그는 미국에서 월급쟁이를 거부하면서, 온갖 힘든 직업을 거치다가 유럽의 골동품을 사고 파는 일을 하게 되면서 자유를 갖게 됨과 동시에 많은 돈을 벌게 된다. 1960년 프랑스로 이주하여, 네명의 자식을 갖게된다. 긴 고생을 마감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1970년 10월 화재사건으로 자신을 제외한 가족 모두를 잃게 된다. 심한 좌절 속에 몇달이 지난 후 봉사재단을 세우고 열두권의 책을 쓰며, 세계 곳곳에 초빙되어 강연을 하면서 실의와 역경에서 많은 사람들을 구해내는 ‘삶의 의미’를 찾게된다.그는 “내가 말하는 것들은 기적을 일어나게 하는 방법이 아니다. 인생은 그 자체로 내게 있어 유일한 기적이기 때문이다.”.
기적은 성공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행복은 많이 소유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기적과 행복은 내일의 그 무엇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