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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그리고 희망 (12-31-2011)
또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온다. 내가 어떻게 살았든, 무엇을 하고 살았든, 지난 시간은 흐르는 강물이 되고 또 새로운 시간이 다가온다. 오늘과 오늘을 이어보니 어제와 내일이 되었듯이 묵은 해와 새해를 연결하니 어느듯 58년이라는 세월이 만들어진다. 오늘 하루가 감사하면 어제와 내일이 감사하고 그러면 묵은해와 새해가 감사하지 않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아도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별로 잘한 일도 없는 ‘나’라는 인간을 지금 이 순간까지 굶기지 않으시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 주시니 감사할 뿐이다. 얼마가 되었든 남에게 구걸하지 않고 마누라와 자식새끼들 모두 무사히 살게 해 주심도 감사할 일이다. 아직까지는 큰 병없이 살게 해 주심도 감사할 일이고, 아직은 남의 도움없이 내 두발로 걸어다닐 수 있게 해 주심도 감사하며, 내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게 해 주심도 감사하다. 아직까지는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심을 감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게 해 주심도 감사하다. 묵상하고 사색케 하여 아직도 잘못된 습관을 조금씩 고칠 수 있게 하심도 감사하다. 사시사철 해뜨고 해 지는 것을 보게 하시고, 철마다 꽃과 나무, 바람 냄새를 맡게 하시니 감사하다. 창조의 위대함과 피조물의 아름다움,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주심도 감사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게 해 주심도 감사하며, 매일 밤 편히 잠자리에 들게 해 주심도 감사하다. 사계절의 변화를 매주 느낄 수 있는 산책 공원을 주심도 감사하다.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주시어 감사하고 좋은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음도 감사하다. 주일예배, 수요예배, 토요새벽예배마다 좋은 말씀으로 양육시켜 주심도 감사하고, 교회내에서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직책을 주심도 감사하다. 일년내내 새로운 신간도서를 읽게 해 주심도 감사하고, 좋은 고전 속에서 깊은 묵상을 하게 해 주심도 감사하다. 칼럼같지 않은 칼럼을 5년동안 빠지지 않고 매주마다 쓰게 해 주심도 감사하고 그런 칼럼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에게는 더더욱 감사하며 변함없이 신문에 글을 실어주는 신문사 관계자 여러분에게도 감사하다. 좋은 건물주를 만나서 좋은 사무실에서 변함없이 일하게 하심도 감사하다. 저같은 사람을 믿고 사업체를 팔아달라고 맡기시는 Seller들께도 감사하고, 사업체를 사 달라고 부탁하시는 Buyer들께도 감사하다.
특히 2011년은 큰 딸아이가 시집을 가고, 훌륭한 사위를 새 식구로 맞이하게 하심을 감사하며, 둘재 딸아이는 원하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게 하심을 감사한다. 막내 아들놈은12학년의 청소년 시절을 무사히 지냄을 감사하고, 자식들 모두 자신의 목표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게 하심을 감사한다. 30년을 같이 산 아내가 헤어지자는 이혼 통보도 하지 않고 기간을 연장해 줌을 감사하며, 서로의 사랑이 점점 더 깊어짐을 감사한다. 한국의 가족 모두가 건강함을 감사하며,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다녀 올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한다.
한국의 어머니께서 건강을 다시 회복하심을 감사하고 어머니를 서로 잘 봉양하는 동생들과 제수들께도 감사하고, 특히 조카들 모두가 건강한 삶을 살게 해 주심을 감사한다. <색소폰>이라는 새로운 애인과 동호회원들을 소개시켜 주심도 감사하고, 새로운 식구인 <코코>라는 강아지를 주심도 감사하며, 그로인해 또 다른 영혼을 만나게 해 주심도 감사하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나 같은 부족한 사람을 남편으로, 아버지로, 형제로, 가족으로, 교인으로, 이웃으로 받아주신 여러분들께 감사하다. 나의 어리석음과 부족함을 사랑으로 감싸주고 기다려 주심을 감사한다.
이제 새로운 한해와 새날을 주심을 감사한다. 새로움이 좋은 것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희망은 아침과 같고 산소와 같다. 희망이 있으면 설령 사는 것이 힘들고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감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인생 시계는 몇시인가? 58년을 살았으니까 90세까지 산다고 보면 15시 46분이 막 지났다. 아직 오후 4시조차도 안된 것이다. 오후 4시면 아직도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도 많다. 푸짐한 저녁 만찬을 먹고 TV 연속극 보면서 잠자리에 들기에는 너무나 아쉬운게 많다. 아직 내 마음의 해가 중천에 걸려 있으니 나는 청춘이다. <희망>을 기다리지말고 <희망>을 찾아가 보자. 아직도 대낮이니 <희망>이 숨은 곳을 찾아나서자. 가난하면 어떻고 몸이 부실하면 어때? 사는 것이 좀 누추하고 입은 옷이 좀 남루하면 어때? 나에게는 함께 동행하시는 그 분이 계시고 건강한 마음과 희망이라는 빛이 있지 않은가?
지금도 암으로 투병중인 누나같은 이해인 수녀님의 시 <희망은 깨어있네>를 소개한다.
“나는 / 늘 작아서 / 힘이 없는데 / 믿음이 부족해서 / 두려운데 / 그래도 괜찮다고 / 당신은 내게 말하는군요. / /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희망이고 / 옆에 있는 사람들이 / 다 희망이라고 / 내게 다시 말해주는 / 나의 작은 희망인 당신 / 고맙습니다. / / 그래서 / 오늘도 / 나는 숨을 쉽니다. / 힘든 일이 있어도 / 노래를 부릅니다. / 자면서도 / 깨어 있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은 책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옷을 입는 것은 희망을 입는 것이고 살아서 신발을 신는 것은 희망을 신는 것임을 다시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전에는 그리 친숙하게 여겨지지 않던 희망이라는 단어가 퍽 새롭게 다가오는 날들입니다. 희망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불러야만 오는 것임을, 내가 조금씩 키워가는 것임을, 바로 곁에 있어도 살짝 깨워야만 신나게 일어나 달려오는 것임을 다시 배워 나가는 날들입니다.”
새해에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밝은 희망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소원합니다.
이 나이에 새해라고 새로운 결심을 한다는 것이 유별스러운지도 모른다. 특히나 이민사회의 대부분은 자영업이나 주급생활이므로 별다른 변화가 없는 단조로운 생활들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추구하는 변화는 만들어가는 과정이지 도달할 목적지는 아니지 않는가. 어제와 오늘이 똑같은 24시간이고, 지난해와 새해가 똑같은 365일이다. 하지만 성공한 어떤 이는 하루를 25시간으로 사용하고, 실패한 어떤 이는 하루를 23시간으로 사용하는 차이이다. 그 시간 속에서 오늘이라는 하루가 변하고 그 오늘 속의 내가 변하기 때문이다.
새해 결심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작심삼일>이다. 살면서 해마다 많은 결심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용두사미, 유야무야로 흐지부지 되어버렸으니 나이살이나 먹어 지키지 못할 결심은 애시당초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의저자인 김난도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 작심삼일은 당연하다. 삶의 방식이란 결심이 아니라 연습이기 때문이다. 결의를 실천하기 힘든 이유는 그 결심의 대부분이 우리의 <습관>을 바꾸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이시우라 쇼이치 교수는 ‘습관을 바꾸는 일은 뇌 구조가 변해야 가능하고, 그러기위해서는 최소한 한달의 반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작심, 즉 마음을 먹는다고 모두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삶의 방식은 결의가 아니라 연습이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결심하고 실천하려고 하면 안된다. 지키지 못했다고 좌절하면 안된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더딘 것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멈출 것을 염려하라. <오늘>이 중요하다. ‘오늘까지만 하고 내일부터 실천하겠다’고 한다. ‘내일부터’의 결의는 마음의 위안일 뿐이다. 지금 당장부터 연습을 시작하라.” 새해마다 애연가들이 실패하는 금연도 ‘내일부터 피우지 않겠다.’가 아니라 오늘만이라도 피우지 않겠다.’의 지금 당장의 실행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작심삼일이든, 삼십일이든, 이번 새해에는 무슨 결심을 할까? 뚜렷한 목표가 없으니 계획도 없는 것일까? 지금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적어보았다. 그리고 일주일 시간표를 적어 보았다. 나름대로 바쁘게 산다고 살았는데 너무 안일하게 시간을 사용한게 아닐까 ? 타성에 젖은 나의 시간들은 ‘미래의 나 자신’에게, 아니 ‘임종 직전의 나 자신’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 것 같다. 이곳 이민 생활은 <일주일살이> 이므로 일주일을 연결하면 일년이 지나간다. 나의 주요 생활은 누구나처럼 첫째가 돈버는 일이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9시부터 5시까지가 내 스스로 정한 <돈버는 업무 시간>이다. 혼자 운영하는 회사이니 누가 무어라 할 사람도 없지만 내 스스로 지킬려고 한다. 그 시간동안에는 가능한 한 돈버는 일만 할려고 한다. 굳이 토요일은 다를 수 있다. 일주일동안 읽은 책을 정리하고 칼럼쓰고, 광고 시안 수정하고, 색소폰 한시간 불고, Buyer 상담이 잡혀 있으면 상담하는 일로 보낸다. 평일 낮시간은 바쁘게 지내는 것으로 생각된다. 고객을 찾아 가기도 한다. 상담이 하루에 3건만 있어도 점심을 걸러야 할 정도이다. 하지만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너무 많다. 새해에는 많이 움직여야 하겠다. 현장을 좀더 방문하고, 걸으면서 생각하고 전화하고 상담할 생각이다.
두번째는 책 읽기와 글쓰기다. 나는 일주일에 책 한권 읽기가 벅차다. 읽는 것은 어찌어찌 읽겠는데 읽고 난 책을 기록정리하는 시간이 더 걸린다. 그리고 매주 칼럼을 쓰기 위해서는 새로운 글 내용을 생각해야 하는데, 토요일 한두시간 책상에 앉았다고 해서 글이 써지지가 않는다. 워낙 밑천이 짧고 부족한 사람인지라 일주일 내내 머리 한구석에서는 칼럼 내용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서 칼럼을 계속 쓰는 이유는 <가난한 아빠의 유산>이라는 대외적 명분을 제외하고라도 항상 쫓기는 듯한 긴장감이 좋아서이다. 한줄이라도 글다운 글을 써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즐기는 것이다.그럴려면 책읽기를 게을리 하면 안되는데, 스스로가 게으르다. 내가 읽는 책들은 사무실, 화장실, 침실, 거실소파 등에 서너권이 흩어져 있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중압감만 있지, 자신과 안일한 타협을 하는 것이다. 새해에는 정독할 책과 습독할 책을 구분하여 자신에게 좀더 엄격해야 하겠다.
세째는 건강관리인데 전혀 내팽겨친 상태다. 한때는 퇴근후 곧바로 헬스클럽을 갔었는데 저녁 시간들이 꽉 차 있다는 핑계로 작년 가을부터 안가는 것이다. 월요일 저녁은 색소폰 배우는 시간이고, 화요일, 금요일 저녁은 아내 가게를 도와주어야 하고, 수요일은 수요 예배와 교회 도서실 당번이고, 목요일은 야간상담 하는 날이고, 토요일 저녁은 일주일치 시장도 봐야 하고, 대부분의 이웃들 모임들이 모여있는 날이다. 일요일은 안식일이라 산책과 교회일 이외에는 온전히 쉬어야 한다는 이유같지 않는 핑계를 댄다. 그러면 저녁먹고 운동하러 가면 될텐데, 밥 먹고는 운동하지 않는다는 양반습성(?)으로 둘러댄다. 사실은 저녁먹고 설거지를 마친 다음 한국 오락프로를 보는 즐거움 때문이다. TV를 보지 않으려고 TV를 없앴는데, 요즈음은 컴퓨터로 모든 TV 프로그램과 영화를 볼 수 있으니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새해에는 일주일에 보는 TV 프로를4시간이하로 줄어야겠다.
마지막으로 색소폰 부는 시간인데 연습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고 게으름을 피운다. 집에서는 못부니까 늦은 가을날 공원에 나갔다가 감기가 심하게 걸려 2주일을 고생한 이후로 해가 길어지는 봄날까지는 공원에 안가기로 했다. 그러니 고작 일주일에 두시간 정도 연습을 하니 어느 세월에…. 하루에 한시간씩은 연습을 해야 할텐데 어디서 연습을 해야 하나 고민이다. 아내에게 색소폰을 들려주기로 한 날은 이제 석달도 채 안남았는데 말이다. 결론은 일주일의 조그만 변화들이 <작심삼일>이 되지 않으려면 많이 움직여야 하고, 시간도둑들을 잡아서 습관처럼 굳어진 시간들을 새롭게 사용해야 한다는 새해 결심이다.
강한 여자, 약한 남자 – 1편, 댁의 남편은 (1/13/2012)
댁의 남편은 기 좀 펴고 사십니까?
현대를 사는 같은 남자 입장에서 요즈음 남자들의 입장이 말이 아니다. 고개숙인 남자, 주눅든 남자, 눈치보는 남자, 기죽은 남자, 결정권이 없는 남자, 시키는대로 사는 남자, 밥만 축내는 남자, 힘도 못쓰는 남자, 성가신 남자, 귀찮은 남자, 왜 같이 사는지 모르는 남자 등등.. 남자가 남자같지 않는 세상이다. 불과 20여년 전부터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여자가 대세다. 비지니스 브로커라는 이 직업을 하다 보면 징크스가 있다. 사업체를 결정할 때 남자가 반대하고 여자가 찬성하면 매매가 가능하다. 반대로 남자가 찬성하고 여자가 반대하면 백전백패로 매매가 깨어진다. 한마디로 남자의 의견은 철저하게 무시되는 것이다. 이러니 나도 여자 손님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여자들이 무섭다.
또 다른 예를 보자. 언제부터인가 사법고시든, 국가고시든, 대학 졸업식이든, 수석 졸업이나 수석 입학을 여학생들이 차지하기 시작한다. 각종 고시 합격생도 여자가 더 많다. 만약 회사 승진도 시험을 본다면 여자들이 더 빨리 승진할 것 같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도 시험쳐서 당선된다면 여성들이 판을 칠지도 모른다. 카톨릭 교황이나 목사나 스님도 시험을 쳐서 뽑는다면 여자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른다. 왜 여자들이 더 똑똑해진걸까? 우리 세대만 해도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였다. 특히 전문직 분야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가뭄에 콩나는 격이다. 감히(?) 남자의 갈비뼈 한개로 만들어진 여자들이 언제부터 왜 이렇게 세력이 강해진걸까? 자식들도 딸 둘이면 ‘금메달’이고, 아들만 둘이면 ‘목메달’이라는 세상이다. 나에게도 대학 들어가는 아들놈이 하나 있는데 이놈의 앞날이 걱정이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반드시 아내의 최종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처음 이민와서 놀란 것은 이곳 여자들의 힘이 한국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후광처럼, 엄청나게 세다는 것이다. 이곳 여자들의 ‘기도빨’이 강해서 그런가. 남편이 장로든, 교수든, 구멍가게 사장이든, 쟝르를 가리지 않고 아내의 눈빛만 변하여도 남자들은 그자리에서 꼬랑지를 내리는 것이다.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나 뭐래나. 물론 개중의 남편들중에는 큰소리를 치는 남편도 있고 허세를 부리는 남편도 있다. 하지만 남편 본인만 큰소리를 칠 뿐, 아내나 자식들은 전혀 개의치 않으니 스파링 상대도 못되는 것이다. 아니면 아직은 남편이 사지육신 멀쩡하고 ‘달러벌이’에 효용가치가 있어서인지, ‘남편은 집안의 머리이시다’라며 뒤에서 원격조정하시는 고차원의 여자분들도 있다. 물론 지나친 비약이고 과장이며, 지레 겁먹은 나의 자격지심으로 웃자고 하는 이야기다. 어쨋거나 우리 아버지 세대에 비하면 지금의 남자들은 형편없는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반대로 여자들의 파워가 엄청 강해진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이 알고 싶었다.
나는 세가지로 요약하고 싶다. 조직이든, 권력이든, 승리자나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가지를 손아귀에 움켜쥐어야 한다. 첫째는 자금력(돈)이고 둘째는 정보력과 인맥이고 세째는 전문성이다. 만약 당신이 아내보다 큰소리를 치고 있다면 이 세가지 모두를, 아니면 적어도 두가지는 움켜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데도 큰소리를 치고 있다면 당신은 빛좋은 개살구이거나 봄날의 털갈이하는 개털 신세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게 여자들이 이 세가지를 쥐게 되었을까? 먼저 여자들이 돈을 번다는 현실이다. 즉 여성의 일자리 창출이다. 1969년도에 미국 주부의 일하는 사람은 38%였지만 1990년대 후반에는 이미 70%를 넘어섰다. 지금은 미국 주부들의 80% 이상이 일을 하고 있다. 즉 돈을 벌고 있다. 직업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은 집안에서 아무런 경제적 보상없이 가사일만 하는 여성들보다 성취감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어떤 일에 대하여 한 개인이 전심전력을 다 할 때, 혹은 그 보수와 관계없이 사람의 재능이나 활력을 끌어낸다면 그 일은 <소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
1970년대부터 미국가정에 커다란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여성평등이라는 사회적 운동과 함께 여성에게도 동등한 교육이 보장된 것이다. 민주주의 선두주자로 자부하는 미국도 여성과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못하도록 현실화된 것은 불과 50년밖에 되지 않는다. 오늘날의 미국은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대학교에 더 많이 가고있다. 따라서 교육 수준이 높은 여성의 수입과 기회가 급증하였다. 또 이런 전문 여성들의 남편은 대체로 수입이 상위 20%의 여유있는 사람들이며, 교육 수준도 높다. 젊은 여성의 70%가 대학에 진학하는 반면, 고등학교 남학생들의 64%만이 대학에 진학한다. 2007년 기준으로 여자대학생은 920만명인 반면에, 남자 대학생은 690만명에 그친다.
어느 역사에서나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억압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차별화했다. 지배자가 더 높은 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지금의 이슬람교도들처럼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여자들을 문맹자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한국도 불과 40년전만 해도 <큰아들> <큰오빠>를 대학보내기 위해서는 다른 자식들의 희생이 당연시 되던 시절이 있었다. 여자는 적당한 의무교육이나 마치고 일찍 시집가서 자식들 많이 놓는 일이 여자의 일생으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여자들의 교육수준이 남자들보다 떨어지게 되고 남편들이 큰소리를 치게 된 것이다. 그러던 것이 국가정책으로 자식을 한두명으로 제한하자 여자들에게도 동등한 교육여건이 제공되었으며, 결과는 여자들의 교육수준이 남자와 비슷하거나,더 잘하는 결과가 된 것이다. 신경제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빈부 격차가 날로 심해지고, 신분상승이나 계층변경이 거의 불가능해지며,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면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주된 요인이 <교육의 불평등> 때문이다. ‘개천에서 용났다’는 이야기는 점점 ‘가을의 전설’이 될 뿐이다.
강한 여자, 약한 남자 – 2편, 빠른 길과 느린 길 (1/20/2012)
미국의 교육은 평등한가?
아니다. 미국 교육은 기회는 평등하지만 능력별, 차별화 교육이다. 고등학교의 같은 학년이라고 해도 어떤 학생은 초등학교 과정의 사칙연산과 분수 계산도 못하고, 다른 학생은 대학교 과정인 다차원 미적분함수를 공부한다. 심지어 고등학생 중에 라틴어로 된 고전백서를 읽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영어책을 읽지 못하는 학생도 있다. 문제는 가난한 집 자녀들 교육은 부자 자녀들의 교육을 따라가기 점점 힘들다는 것이다.
미국의 초,중,고등학교 교육은 지역 중심의 교육이다. 지역중심은 소득 중심이다.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과 섞여 살지 않는다. 고등학교는 세분류로 나누어진다. 저소득층이 다니는, 주로 흑인의 가난한 동네 고등학교와 백인 중산층과 여러분 자녀들이 다니는 지역의 공립학교와 부자들이 다니는 사립학교다. 오바바 대통령도 자서전에서 밝혔듯이 흑인아이들이 다니는 중,고등학교는 부모들이 일하러 나간 동안 아이들을 가두어 두는 ‘감옥소’와 같다고 혹평한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나쁜 짓과 마약을 제일 먼저 배운다고 한다. 교육의 절박함을 포기한 그곳에서 명문대학에 몇명이나 들어갈까. 대부분의 가난한 아이들은 대학에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중산층이 다니는 공립학교에서는 직업을 갖기위한 기초교육과정을 가르칠뿐, 미국을 이끌어갈 지도자 교육을 가르치지 않는다. 인성교육이나 인격 양성은 기대할 수도 없고 미국의 지배자들도 원하지 않는다. 그런 중산층 공립 고등학교 한곳에서 아이비리그에 몇명이나 갈까. 일부의 극소수다. 자본주의 국가의 명문대학은 명문 사립고등학교 아이들이 독차지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가난한자들은 어릴 때부터 시작되는 그 비싼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다. 부유층 자녀들은 유아시절부터 차별화된 전문교육을 받고 자란다. 맨하턴의 어느 유대인 유치원은 등록금도 하버드 대학보다 비싸거니와 입학하기도 더 어렵다고 한다. 부자 자녀들은 비싼 교육비와 엄격한 교육제도하에서 청소년기를 성장한다. 사립 고등학교에서는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퇴학시키는 등, 엄격한 교육제도를 통해 지도자로 양성하는 것이다.
반면에 가난한 집이나 중산층 자녀들은 어렵게 명문대학에 입학하였다 하더라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빚갚는데 젊은 시절을 볼모로 붙잡혀 있어야 한다. 왜 미국의 대학 등록금은 이렇게 비싼 것일까? 지배자는 더 강력한 지배력을 갖기 원하며,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난한 자들에게 <노예의 족쇄>를 채우기 위해서일까. 실예로 미국의 대학생들 학자금 융자금액이 2010년 기준으로1조달러를 넘어섰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부자와 가난한 자의 교육은 출발부터 차별화가 된다. 가난한 자가 신분상승이나 계층별 상승을 하기 위해서는 명문대학을 졸업하는 방법이 가장 지름길인데, 초등학교 시작에서부터 출발점이 다른 것이다. 부자집 자녀는 고가의 교육비로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직종에서 고소득을 받는 반면에, 가난한 집 자녀는 고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쥐꼬리만한 임시직에 머물러 있거나, 거액의 학자금 융자 빚에 허덕이게 된다.
신경제에서는 좋은 대학을 졸업해서 창의적인 전문 직종에 종사해야 고소득을 받을 수 있다. 더구나 전문화된 고등 교육은 미래의 수입과 좋은 일자리, 좋은 인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런 전문 직종을 여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늘어난다는데 남자들의 심각성이 있다. 남편보다 수입이 더 많은 아내는 1980년대에는 20% 미만이었으나, 2000년초반에는 세명중에 한명꼴이 되었고 지금은 두명중 한명꼴이다. 고등 교육을 받은여성들은 거의 절반 이상이 남편보다 수입이 더 많았다. 최고 전문직의 여성 비율도 1970년대의 9.2%에서 1998년 25%이상이 차지한다. 또 이런 전문직 여성들의 남편들 또한 대체로 수입이 상위 20%의 여유있는 사람들이며, 교육 수준도 높다. 높은 수입의 전문직 여성일수록 부자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가난한 자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교육으로 저임금을 받으며, 가난한 사람을 만나 결혼한다. 끼리끼리 만나서 산다. 시간이 지날수록 빈부의 사다리 간격은 배수가 아니라 제곱으로 넓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곤란한 문제는 신경제에서 최고 전문직을 수행하려면 여자이거나 남자이거나 관계없이 거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일에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전부가 아니면 제로의 세계, 빠른 길 아니면 느린 길, 그 중간은 없다. 빠른 길에 계속 남기를 원하면 고객과 함께 밤 늦게까지 일하면서 항상 대기하여야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인맥을 다져야 하고 끊임없이 소개되는 신기술과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그러니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문제는 빠른길 과 느린 길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은 줄어들지 않고 집에서 일하는 시간은 늘어났다.
돈버는 일이 모든 <조화로운 삶>의 나머지 부분들, 출산, 자녀들과의 시간, 친구, 배우자, 부모, 자원봉사활동, 취미생활, 단순한 의무라고 생각한 일들이 모두 밀려났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들이 엄격히 통제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꽉 짜여진 일정에 맞춰 분주하고, 주말에는 일과 관련된 행사, 접대, 바쁜 만남 등으로 일정이 가득 차고, 머리 속은 항상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 아직 끝내지 못한 일, 아직 만나지 못한 고객, 다가오는 마감시간….. 마치 자동차 소음처럼 이 모든 것이 삶의 나머지를 충실하게 살아볼려는 당신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전문직에 종사하는 고소득 수입의 여자라면 빠른 길과 느린 길중에서 어떤 길을 택하겠는가? 아니 당신의 딸이라면 어떤 길을 가라고 할 것인가?
강한 여자, 약한 남자 – 3편, 혼자 사는 여자 (1/27/2012)
결혼과 출산은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유능한 젊은 여성 입장에서, 부자가 되고 성공하고 싶은 욕망을 가진 현대 여성의 입장에서는 다를 것이다.
선진 사회의 문제 중에 가장 심각한 과제는 고령화와 저출산이다. 그 밑바탕에는 결혼이 늦어지고 미혼과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반면에 이혼률은 급증하는 것이다. 물론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고령화 되는 인구 증가보다 신생아의 증가가 상대적으로 낮다면 심각하다. 신경제의 불안정한 국가들은 노인들의 사회보장을 약속할 수 없다. 반면에 현대의 결혼적령기의 여자들은 결혼을 기피하고, 설령 결혼을 한다고 해도 출산하기를 꺼린다.
왜 그럴까? 만약 당신이 전문직에 종사하는 고임금의 미혼여성이라면 결혼해서 자녀를 갖는 것을 쉽게 결정할 수 있을까? 신경제의 전문직 기술은 급속도로 변화한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시간단위로 변한다. 급변하는 변화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일에 올인해야한다. 보장되지 않는 불안정한 미래 때문이다. 변화의 속도만큼이나 도태의 속도도 빠르다. 그 경쟁에서 밀려나면 한단계 낮은 자리로 옮기는 것(Down Shift)이 아니라 제거(Cut Off)되는 것이다. 일예로 젊은이들에게 각광받는 컴퓨터 소프터웨어 엔지니어도 40세를 넘기면 퇴물로 눈치를 보아야 한다. 전문 직장인들의 회의는 시도 때도 없이 열린다. 각종회의나 모임에 빠지지 못하는 이유는 조금만 진행되는 상황을 모르거나 방심해도 그 대열에서 낙오되고 결국 도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갓난아기를 키우려고 하면 적어도 3,4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첨단분야에서 3년이라는 세월은 강산이 세번 변하는 것과 같다. 즉 3년이 30년인 것이다. 그렇게 엄청나게(?) 긴 세월을 쉰다음에 어느 조직에서 받아줄 것이며, 이미 엄청난 진화과정을 거친 그 조직에 다시 합류할 실력은 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리고 조직원들이 받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중간 이탈자>들은 무슨 이유이든지간에 <자연도태> 되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다 여성이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서 기른다면 그 여자는 그 바닥에서는 까마득히 잊혀진 존재가 되는 것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고 기른 죄로, 남편 뒷바라지하고 가정을 지킨 죄로, 임신을 여자만 하여야 한다는 조물주의 실수(?)로 여자는 자신을 위한 성공의 대열에서 자동 탈락하는 것이다. 아내보다 학력도 낮고, 직급도 낮고, 업무 수행능력도 떨어지고, 연봉도 낮은, 무엇 하나 잘난 것 없는 남편은 계속 회사를 다녔다는 공로로 승승장구 하고 집에서도 큰 소리친다. 아이 낳아서 기른 죄 밖에 없는 여자는 아무런 보상도 없이 사회에서 퇴출이라니… 어느 여자가 결혼하고 애를 낳겠는가? 그것도 둘씩이나?..
미국은 배후자 없이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의 수가 30년전에는 15%에서 지금은 3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여자들은 점점 고소득 직장인이 늘어나는 반면, 남성들은 경제적 기반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30년전의 여자들은 40% 이상이 교사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지금은 10%도 교사를 원하지 않는다. 교사보다 더 많은 수입을 보장받는 직업이 많기 때문이다. 여성 대졸자가 남성보다 더 많으며 급격히 증가한다. 여성 대졸자의 75% 이상이 취직해서 돈을 벌고 있다. 현대인들의 목표는 74% 이상이 <인생의 가치로운 삶>이 아니라, <경제적 풍요로움>을 위해 산다. 돈을 많이 벌어 부자로 여유있게 사는 것이 현대인의 꿈이자 목표이다.
DINS (double income, no sex )라는 용어를 아는가?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서 성관계를 갖지 않는 것을 뜻한다. 현대의 부부들은 집에 와서 잠자는 것 이외에는 일체 다른 것을 못할 정도로 항상 피곤에 절어 있다는 것이다. 이민 사회의 여러분들은 어떠할까? 여담이지만 전문 분야에서 근무할수록 스트레스와 과중한 업무로 일년에 거의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성관계를 못가지는 부부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불륜과 성문화가 발달하는 것일까? 그런 반면에 <흥부>가 그 가난속에서도 자식들을 주렁주렁 낳았다는 사실은 스트레스와 정신적 피로는 별로 없었다는 반증이다.
미국의 자녀 있는 부부는 70년대의 45%에서 1998년에는 26%룰 감소하고 지금은 더 떨어졌다. 즉 결혼하지만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이다. 그 원인은 크게 세가지다. 아이 한명을 키우는데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가는 반면에, 그 자식이 부모의 노후를 보장해 주지 않는 것이다. 다른 이유는 그 아이 한명으로 인해 엄마가 사회적 성공이라는 측면에서 잃어야 하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남자들의 수입이 불안하고 여자 수입보다 적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녀 없이 독신으로 사는 사람이 16%에서 32%이상으로 급격히 늘어났고 미혼여성 출산률이 1990년대에 이미 전체 출산률중 32%를 넘어섰다.
신경제의 여성들은 남편에 대한 예방책을 가지고 있다. <계속 있으려면 돈을 내라.>라는 규칙, 즉 ‘가계 지출에 공헌을 하면 같이 살고 공헌을 하지 못하면 나가라’는 규칙이다. 문제는 신경제에서는 이 규칙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신경제 여성들은 결혼하면 남자가 상당한 경제적 안정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자들은 더 이상 경제적 안정을 위해 결혼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 결혼하면 자신의 개인적 안정상태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편의 경제력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으면 출산과 육아는 물론, 함께 살지도 않겠다는 선포이다. 여성들은 여차하면 혼자 살 만반의 준비가 완료된 상태다. 불쌍한 남성동포들이여, 자력갱생하지 못하면 언제라도 토사구팽 당할 수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강한 여자, 약한 남자 – 4편, 정보력과 인맥관리 (2/3/2012)
신경제에서 돈관리는 아내들이 완전 장악했다고 보면 된다. 우리 어머니 세대에는 여자들이 돈을 벌 기회가 없었고 평생 자식 키우며 집안일 하느라 모든 경제권은 남자에게 있었다. 심지어 매일매일 남편에게 하루 시장비며, 애들 쓸 돈을 구걸하다시피 얻어 쓰는 집들이 많았다. 남편의 심기가 불편하면 눈치보기에 바쁘고 남편 비위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야말로 절대 권력의 왕권 시절이었다.하지만 신경제에서 모든 자금 지출은 아내의 최종 결재가 나야 하는 시대다. 이유는 단 하나. 여자가 돈을 벌기 때문이다.
경제권은 불가항력으로 아내에게 빼앗겼지만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두번째 요소인 정보력과 인맥관리가 있다. 옛날 아버지들은 개뿔(?)도 없으면서 왜 큰소리를 칠 수 있었을까? 어머니는 집에 감금(?)되어 있었기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아버지 이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한마디로 <무식한 여편네>였던 것이다. 그 시대의 아버지 상은 쥐꼬리만한 월급날이면 퇴근 길에 막걸리 한잔 걸치고 거나하게 취해서 한손에는 자반 고등어 한마리, 다른 한 손에는 아이들 줄 호떡 한 봉지를 들고 비틀비틀 골목길을 걸어올라가는 뒷모습이 연상된다. 그래도 아내며 자식들은 아버지를 하늘같이 존경했고 자랑스러워 했다. 심지어 허구한 날 밥상을 집어던지고 마누라를 두둘겨 패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다들 그렇게 사는줄 > 알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보력 부재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남편의 말씀이, 아버지의 말씀이 곧 법이었다. 하지만 그런 호시절은 지나갔다. 일단 여자들이 배울만큼 배웠다. 심지어 남자들보다 평균 학력이 더 높다. 거기다 더 좋은 직장을 다니므로 더 좋은 인맥을 가지고 있다. 잘난 사람도 더 많이 알고 있다. 결정적인 것은 인터넷의 발달이다. 힘이 세다거나 목소리가 크다고 우길 세상이 아니다. 남편의 주장은 즉석에서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진위여부와 남편의 지적 수준을 즉시 알 수 있다. 별로 유식하지도 않는남편에게 눈치보며 굳이 물어볼 필요 조차 없는 것이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무료로 상담해주는 친절하고 잘난 전문가들이 24시간 대기중이다. 또한 구조적으로 정보구매력이나 정보 궁금증은 여성들이 훨씬 강한 것 같다. 선천적으로 여성들은 궁금하면 못참는 체질인가보다. 이러니 자신의 전문분야는 물론 재태크, 부동산, 육아, 입시, 문화, 연예계 소식까지 모르는 정보가 없다. 상대적으로 정보 수집에 제한적이고 고집스러우며 관심분야에만 열을 올리는 남자들은 한정된 정보력으로 취약해지는 것이다. 잭웰치의 말대로 <정보의 편집광>만이 성공하는 세상이다.
신경제에서 정보력보다 중요한 것은 인맥관리일 수 있다. 어쩌면 일류 고등학교, 일류 대학교, 일류 대학원, 일류 기업, 전문 직종, 일류 집안 등 일류를 집약하면 인맥관리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흔히들 신경제의 성공 키워드를 <자신을 팔아라>로 규정한다. 이제는 집단에 잘 적응하거나 동료들의 인정을 받고 회사의 높은자리로 승진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회사 자체가 불안정하고 노사 서로가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종 업종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존재로 부각되고, 당신을 연결시켜 줄 사람들에게는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 목표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 자신을 믿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겸손의 미덕보다 자신감을 표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힘을 갖기 위해서는 힘을 느껴야 한다.
경영 컨설턴트 톰 피터스는 “오늘부터 당신 자신이 브랜드다. 당신이라는 이름의 브랜드를 관리하는 마케팅 책임자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그러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자세와 창조력과 전문성이 있어야 자신을 팔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신을 팔기 위해서는 어느때보다 훨씬 더 중요해진 것이 <인맥관리>다. 얼마나 좁은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지 일예를 들어보자. 인터넷 사이트에 www.sixdegrees.com이 있다. 당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의 명단을 입력하면 여섯단계의 인맥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설령 그가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단 인맥이라는<줄>은 연결되지만 <관리>는 내가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인터넷보다 더 강력한 것이 SNS (Social Network System)이다. 어지간한 여자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등을 할 것이다. 일촌으로 맺어진 사람만도 일백명을 훌쩍 넘긴다.
이런 관점에서 여자는 남자보다 우월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듯 하다. 첫째는 사람을 사귀는데 스스럼이 없는 것 같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금방 대화가 통한다. 몇번 만나지 않았는데도 서로가 반말을 한다. 대충 10살차이는 그냥 막 먹는 것 같다. 시장 바닥은 물론, 교회 주방에도 대부분이 반말이다. 어느 나라 족보인지 위도 아래도 없다. 만약 남자들 세계에서 몇살 어린 놈이 반말을 하면 삼대까지 의절을 하거나, 흰 장갑을 얼굴에 던지면서 권총 결투를 신청했을 것이다. 남자들은 사소한 자존심에도 목숨을 거는 별종들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희노애락의 다양한 표현력을 적재적소에 나타낸다. 웃음과 눈물처럼 상대방과의 공감대를 연결할 무기는 없다. 여자의 웃음과 눈물에 넘어가지 않는 남자가 있다면 그는 부처 반열에 들어갈 것이다. 세째는 엄청난 수다의 에너지다. 우리집 여자들도 수다를 떨 때는 피곤하거나 지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내와 딸들은 거의 매일 한시간 이상을 전화로 수다떤다. 여자들의 수다에 동원되는 풍부한 이야기꺼리와 인물들은 그녀들의 인맥관리에 상당한 정보원 구실도 한다. <인맥 관리>를 할려면 어떤 매체를 이용하든간에 먼저 만나야 하고 대화하여야하고 일회성이 아닌 연속성이어야 하는데 이 모든 조건을 남성보다 여성들이 더 많이 갖추고 있는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인맥관리의 격차는 더 심해진다. 그러고 보면 정보력과 인맥관리도 여성들의 압승이 아닐까?
강한 여자, 약한 남자 – 마지막편, 내가 살아가는 이유 (2/10/2012)
아무리 여자가 강하고 남자가 약하다고 한들, 세상이 바뀌고 누가 무어라 한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며, 나는 나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고 싶다. 세상의 남자들이 어떻게 살든, 나는 나만의 아버지이자 남편이고 싶다. 나는 내 자신을 사랑하는 <혼자 사는 남자>이고 싶다.
결혼과 성공이 서로 상반관계에 있다 할지라도 이 세상에 신이 주신 선물 중에 <가족>이라는 단어만큼 소중한 것이 있을까. 내가 살아온 길을 되돌아 보면 굽이굽이 힘든 고비도 많았고 좌절하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 때 내 옆에 가족이 없었다면 지금 이자리에 내가 남아 있을까. <지금의 가족이 없었다면> 나의 즐거운 추억들이 그렇게 즐겁고 행복했을까.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었으면 행복했을까. 높은 지위와 명예를 얻어서 세상 사람들의 부드러움을 받는들 행복했을까.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어울린다고 행복했을까.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봉사하며 거룩한 성자로 대접받는다고 행복했을까… 나의 행복은 그렇게 거창한 것도 아니요, 거룩한 것도 아니다. 나는 소박한 나의 조그만 사랑을 계속 하고 싶을 뿐이다.
물론 어느 날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고 그 여자와 결혼하여 딸 둘과 아들 한명이 태어났다. 많은 세월동안 그 가족들 때문에 기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또 많은 세월이 그들 때문에 사는게 부담스럽고 힘들 때도 많았다. 특히나 이민의 삶에서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 그렇게 힘들줄은 미처 몰랐다. 사춘기 시절의 자식들은 내 마음같지 않았고 내 욕심대로 되지 않아 자식들을 원망하며 좌절하고 분노한 세월도 많았다.
김정운 교수의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라는 책 제목처럼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 적도 있었다. 세상의 많고 많은 여자들 중에서 더 좋은 조건의 다른 여자들을 만났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콩깍지가 씌워도 그렇지 이것 저것 따져보지도 않고 너무 성급히 결혼을 한 것은 아닐까. 막상 살아보니까 자라온 환경이며 성격이며 취미며 외형이며, 맞는것 보다 맞지 않는게 더 많으니 내가 잘못 판단한게 아닐까. 후회는 후회의 꼬리를 물고 밤을 꼴딱 세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정작 힘들어 쓰려져서 다시는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아니 쓰러진채 그대로 죽고 싶었을 때,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내곁을 떠나갔을 때, 내 아내와 내 자식들은 그렇게 허허벌판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내 손을 꼭 잡고 나를 일으켜 주었다. 그날 이후 가족들은 내가 살아야 하는 유일한 이유가 되었고 존재의 목적이 되었다.
흔히들 사람들은 나를 공처가라기도 하고 애처가라기도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돈은 누가 버는가? 내 돈은 내가 벌어서 아내에게 모두 준다. 재산 명의는 모두 아내 이름으로 한다. 아내도 돈을 벌지만 나는 아내가 얼마를 버는지 묻지도 않으며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밥은 누가 하는가? 내가 한다. 반찬이나 요리는 누가 하는가? 내가 한다. 설거지는 누가 하는가? 내가 한다. 청소나 빨래는 누가 하는가? 내가 한다. 생활하는데 필요한 일들은 누가 하는가? 내가 한다.
그러면 댁의 아내는 무엇을 하는가? 아내는 아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고 아내가 선택한 일들이다.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물론 아내도 돈을 벌기 위해 일도 하고 반찬도 하고 내 도시락도 매일 만들고 자식들 뒷바라지도 어느 어머니 못지않게 한다. 하지만 아내의 일은 아내의 일이고,나의 일은 나의 일일 뿐이다. 아내는 무슨 일을 하든 내 옆에 있어만 주면 된다. 물론 어느 날 홀연히 헤어지자는 말도 없이 떠나가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떠나가는 여자에게 치사스러운 남자는 되기 싫다. 그러기에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지금 모두 주어야 한다. 나는 빈털털이가 되어도 혼자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오랜 세월동안 <혼자 사는 연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별 연습>은 남은 세월동안의 <사랑 연습>이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의 가사처럼 “창 밖에 앉은 바람 한점에도 / 사랑은 가득한 걸 / 널 만난 세상 / 더는 소원없어 / 바램은 죄가 될테니까// 살아갈 이유 / 꿈을 꾸는 이유 / 모두가 너라는 걸 / 네가 있는 세상 / 살아가는 동안 / 더 좋은 것은 없을거야” 나는 그렇게 소망하며 살고 싶다.
나는 나의 인생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았다. 부자로도 살았고 가난하게도 살아보았다. 한 시대의 주목을 받는 유명인이 되어 보기도 했고 아무도 모르는 들풀처럼 살기도 했다. 모든 선택은 내가 했고 내가 결정한 일이다. 그 중에는 성공한 일도 있고 실패한 일도 있다. 누구를 원망하며 무엇을 후회하겠는가?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만하면 잘 산 세월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으며 내가 선택한 길을 걷고 있다. 이 나이에 혁명을 할 것도 아니고 죽기살기로 돈을 벌 것도 아니며, 남을 복수거나 미워할만큼 한가한 세월도 아니다. 지금처럼 내 자신을 사랑하고 내 혼자만의 삶을 즐기면서 살고 싶다. 내면의 울림을 들으며 내 영혼의 소리에 귀기울리는 삶을 살고 싶다. 가족들을 사랑하며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살고 싶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며 나만의 오솔길을 조용히 걸어가고 싶다…
아굴의 두가지 소원 (2/17/2012)
아굴은 죽기전까지 두가지를 달라고 평생을 소원했다. 첫번째는 정직한 삶이고 두번째는 심한 가난도, 분에 넘치는 부자도 싫으니 필요한 재물만 달라고 했다. 잠언 30장 7~ 9절의 이 말씀은 이민 초기에 교회 원로 목사님이 우리집 심방을 오셔서 봉독해 주신 말씀인데 지금까지도 틈이 나면 내가 즐겨 묵상하는 말씀중의 하나이다. 나는 과연 정직한 삶을 살았는가? 아니다. 정직하지 못했다. 그러면 남은 세월을 정직하게 살 자신이 있는가? 아니다. 노력할 뿐이다. 그러면 가난하게도 부유롭게도 살게 하지 마옵시고 일용한 양식만 달라고 간구하는 것은 나의 진심일까? 아니다. 이민 초기의 가난한 시절에는 하루빨리 이가난에서 벗어나기만을 소원했지만, 지금 내면의 진심은 다시 과거의 부자로 살고 싶은 마음이다.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일순간에 모두 빼앗아 가신 내 재산을 다시 돌려주십사, 아니 10배, 100배로 뻥튀기를 해서 되돌려 주십사” 라고 기도하고 싶다.
하지만 아굴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진정으로 간구한 것이 무엇일까를 내 좁은 소견으로 되씹어 보며 그렇게 살기를 소망한다. 아굴은 솔로몬왕의 곁에서 국사를 조언하고 후손들이 필요로 하는 교훈을 가르치고 문서화한 사람이다. 그는 무명의 기도인이지만 겸손한 사람이다. 그는 돈의 위력을 시인한 솔직한 사람이다. 돈은 영적인 삶과 긴밀하고도 긍정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생활의 필수조건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신경제에서는 가난한 자만이 도둑질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난한 자는 작은 도둑질을 하지만 부자는 더 큰 도둑질을 한다. 또 부자라고 모두 하나님을 잊고 살지는 않는다. 가난해서 먹고 살기 힘드니까 하나님을 멀리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벌고 못벌고 하는 문제는 하나님께 ‘돈 달라’고 기도하는 강도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돈을 버는 것은 현대판 <게임의 법칙>에 따라 달라진다. 지상의 수많은 책들과 부자들이 부자가 되는 방법을 설파한다. 물론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대학을 나오고 전문 직종에 근무하며 고임금을 받는다면 부자가 되기 훨씬 유리한 출발점에 설 것이다. 그렇다고 공부하기 싫어하고 학벌이 낮다고 부자가 못되는 것은 아니다. 또 죽어라고 열심히 일하고 구두쇠처럼 돈을 안쓴다고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돈의 게임>은 돈의 실체와 돈의 흐름과 돈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가난한 자는 돈에 관한 <게임의 법칙>을 공부하지 않는다. 그리고 실천하지 않는다. 돈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께 돈 달라고 바락바락 악을 쓰지말고 <게임의 법칙>을 공부하여야 한다. 예수께서 목수로 일하실 때 구부러진 못을 펴는데 성령의 능력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부자가 되는 게임에는 정당한 게임과 불공정한 게임이 있다. 정직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불공정한 게임을 해서 돈을 벌지는 않는다. 남의 돈을 훔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굴은 정당한 게임의 법칙으로 필요한만큼의 돈을 벌고자 한 것이다.
하나님은 계급상의 적을 두지 않으신다.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 똑같이 구원하신다. 가난이 완전한 불행은 아니지만 분명 우리가 삼아야 할 목표는 아니다. 부귀가 경건의 결과가 아닌 것 처럼, 가난이 경건의 증표는 아니다. 재물이 비록 허영과 악에 노출되어 있고 종속되어 있을지라도, 돈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면 그 분께 감사하고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옳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결국 사람은 빵도 필요하고 말씀도 필요하다. 하나님는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물질을 구하는 기도를 거절하지 않으신다. 부자가 정죄받는 경우는 자신의 부를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일에 사용하지 않는 것과 (약 5:2-3), 마지막 날에 재물을 쌓는 것 (약 5:3), 일꾼의 품삯을 착취하는 것 (약 5:4), 돈 때문에 다투고 심지어 살인까지 하는 것 (약4 :1-5)이라고 말씀하신다. 부자가 되면 교만하게 되고 동정심과 긍휼히 여기는 선한 마음을 잃을까 염려하시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탐욕이다. 조금만 더 가지려는 욕망, 다른 사람을 희생하면서까지 차지하려는 욕망을 염려하는 것이다.
그러면 필요한 만큼의 돈(양식)은 얼마가 적당한가? 헤르만 몰데즈는 이렇게 규정한다. “첫째는 <자족>이다. 물질적인 것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야 하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나누어 가지는 법을 배워야한다. 둘째는 <절제>이다. 간소함은 경건이라는 만족에서 나온다. 만족이란 기본적인 필요만으로 충분해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이 가진 자는 남지 않게 하고, 적게 가진 자는 모자라지 않아야 균등한 세상이 된다. 세째는 <의존>이다. 물질에 대한 염려를 하나님의 돌보심에 맡기는 사람만이 재물의 탐욕에서 자유하여 현재의 소유에 만족할 수 있다. 사람들은 현재의 좌절과 미래에 대한 염려때문에 소유에 집착하며 베풀지 못한다.”
결론은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돈을 사용할 것인지, 돈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이용할 것인지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필요한 것은 가지되, 그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삶. 소유하되 소유에 얽매이지 않는 능력, 가지되 움켜쥐지 않는 너그러움, 너무 가난하지도 너무 부유하지도 않는 삶, 이것이 참된 부요에 이르는 길이아닐까… 우리 모두는 과연 시지프스의 후예들인가. 참으로 쉽고도 어렵다….
아름다운 작별 (2/24/2012)
시각장애인 강영우 박사가 6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췌장암 말기로 수술을 거부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아름다운 작별을 하고 떠났다. 그는 미국 한인 이민사 1백년에서 가장 고위직을 지낸 공직자로 알려지기도 했고, 한인 이민사의 최초 장애자 유학생으로도 유명하다. 또 두 아들을 유명한 안과 의사와 미국 백악관 선임 법률고문으로 훌륭히 키워낸 장한 아버지로도 알려져 있다. 나는 몇년전 그분의 저서 <빛은 내 가슴에>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 <아버지와 아들의 꿈>등을 통해 그분의 살아온 여정과 인생관을 미리 접한 기억이 있다. 나는 그분을 미국 상류층으로 출세한 사람이거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를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고 <아름다운 신앙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상한 아버지> <이민자의 멘토> <불굴의 의지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교회에도 8년전에 와서 간증한적이 있었듯이, 수많은 간증과 저서와 실천을 통해,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 처해진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을 비춰준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다.
그의 성장 배경을 보면 1944년 경기도 양평군의 넉넉치 못한 집안에서 태어난다. 13세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4세때 중학교 재학 중에 축구공에 맞아 망막 박리에 의한 두눈을 실명하게 된다. 같은 해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졸지에 장애인 소년 가장이 된다. 온갖 시련을 겪다가 서울 맹아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운명적인 여대생을 만나게 된다. 당시 숙명여대 재학생이던 두살 연상의 누나는 이 맹아학교에 자원봉사를 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그를 만나게 되고 그때부터 오늘까지 그의 <하얀 지팡이>가 된 것이다. 어찌보면 강영우 박사가 있기까지 그녀(석은옥 : 아름답고 은혜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그가 지어준 이름)가 없었다면, 그녀가 그의 눈이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는 평범한 맹인 안마사가 되었을거라고 그는 고백한다. 나는 지금도 그녀가 신비롭기만 하고 그런 사랑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되지 않는다. 진정 사랑의 위대함인가.
그녀의 도움으로 연세대학교 교육과에 입학하게 되고 1972년 문과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하게 된다. 당시 군부정권 시절 장애인은 유학을 갈 수 없다는 법이 있었는데 각방의 노력 끝에 장애인 최초로 국제 로타리 컬럽 장학생으로 미국 피츠버그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그랬기에 그는 세상과 작별하면서 국제로타리 재단 평화센터에 25만불을 기증하고 모교 연세대학에도 3억원을 기증했다고 한다.그곳에서 교육학 석사, 심리학 석사, 교육전공 철학 박사학위를 받는다. 물론 한국의 맹인 최초 박사가 된것이다. 이 시절에 길을 방황하던 그에게 차를 태워준 인연이 된 사람이 향후 법무장관이 되고 그가 다시 부시정부에 추천을 하여 국가 장애 위원회 차관보까지 오르게 된다. 이민 초기시절에 생활을 위해 그로서리 가게를 하던 이야기, 장애인 아버지가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겪는 설움과 보람등, 그의 저서는 구구절절이 한편의 드라마다. 실제로 강영우 박사를 세상에 알리게 된 것은 그를 소재로 한 한국의 TV 다큐멘타리 한편이 방송되면서부터였다.
그가 여러편의 저서에서 강조하는 <인생 지침 10계명>은 다음과 같다. : 1) 역경을 도전하는 기회로 삼아라! – 역경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보고 도전하는 것이 승리로 향하는 첫 번째 단계다. 2). 인생의 장기적인 목적을 설정하라! – 무엇이 되어 어떻게 사느냐가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3). 자신의 존재가치를 발견하라! – 위기를 해결해 가는 자신의 능력을 인식하면 삶의 새로운 의미와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 4). 분명한 VISION을 가슴 속에 품어라! – VISION은 분명할수록 성취도가 높으므로 구체적이며 세부적으로 세워라. 5). 역할모델을 가져라! – 위인 중에 역할모델을 가져라. 또한, 훗날 당신이 부모가 되었을 때에는 당신이 자녀의 역할모델이 되어야만 한다. 6). 세계화 시대에 알맞은 가치관을 적립하라! – 세계화 시대에 보편적인 가치는 빨리 배워야한다. 7).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는 집단에 소속하라! – 남은 생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분명한 목적아래 신앙으로 맺어진 의도적인 친구를 만들어라. 8).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 최악의 상황에도 가슴에 간직한 희망과 꿈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9). 타고난 능력을 개발하라! – 당신이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가능하면 희귀한 꽃을 피워라. 10). 최선의 것을 주어라! –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자신이 가진 최선의 것을 나누어 주어라.
그는 분명 자랑스런 한국인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비록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모리 노교수나 <마지막 강의>의 저자 랜디 포시교수와는 다른 작별 방법이었지만, 그는 그의 인생자체가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 떠나기전 40년이상을 함께 한 그의 아내에게 쓴 편지에는 “당신은 나의 지팡이가 돼서 나보다 항상 한발짝씩 앞서 걸어줬다“며 “함께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순간에 감사함과 미안함이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운다“고 전했다. 그리고 두 아들들에게 쓴 편지에는 “나를 아버지로 만들어 준 너희들, 손주들과 오붓한 낮잠을 즐길 기회를 준 두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한다“며 지난날을 회고 했다. 그리고 두 눈을 실명함으로써 아름다운 만남을 갖게 해준 하나님과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장애보다 무서운 것은 <포기하는 것>이다.”라는 메세지는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과연 나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발짝 앞서 걸어준 <하얀 지팡이>로 기억될 수 있을까?
혼자 사는 즐거움 (3/2/2012)
현대인의 삶 속에서 혼자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되며, 그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방법은 없을까? 특히 이민의 삶은 대부분의 부부가 가게에 같이 출근했다가 같이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같이 시간을 보내며 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외식을 하거나 모임이 있어도 부부동반을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지내야 한다. 그러니 부부 서로간의 일상과 결점들이 더 노출되기 쉽고 삶이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두권의 책을 소개하는데 이 책들 속에서도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한권은 사라 밴 브레스낙이 쓴 <혼자 사는 즐거움>인데 뉴욕타임즈 120주 연속 베스트셀러였으며, 세계 7백만부가 인쇄된 밀리언 셀러이다. 그녀는 25년간 여러 일간지 기자생활과 칼럼리스트로 활동하였는데, 어느날 혼자 산책을 하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인생의 부름을 받고 전업작가가 된다. 그렇게 해서 집필한 책이 이 베스트셀러이다. 이 책은 혼자 독신으로 살라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부부 생활 속에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 즐기라는 것이다. 그녀는 책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인생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문득문득 외롭고 쓸쓸하다. 오직 당신만을 위해 살아도 짧은 인생이거늘, 당신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당신 삶 앞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그 ‘누군가’를 위하여 당신의 인생을 미뤄놓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 조 루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 인생은 단 한번이다. 하지만 제대로 산다면야 한번으로도 충분하다.” 제대로 사는 삶이란 당신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리는 삶이다. 당신 영혼의 속삭임을 따라가는 삶이다.어떤 삶이어야 하는지는 당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복잡한 관계 속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갈수록 당신은 ‘혼자만의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모든 인생은 결국 혼자다. 혼자 용기있게 걸어갈 수 있어야만 외로움과 쓸쓸함을 당당하게 견디어 나갈 수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마음의 아득한 밑바닥에서 부름을 받고 있는 당신 자신을 사랑하려고 노력하십시오, 그와 함께 살아보십시오.”라고 조언한다.
이 책은 일상 속에서 혼자만의 여러가지 즐거움을 찾는 방법을 제시한다. 몇가지 제목만 소개하면, 묘원 산책하기/ 소중한 추억 수집하기 / 정지하는 법 배우기 / 넋을 잃고 아름다움 바라보기 / 불평하고 잊어버리기 / 발견일지 만들기 / 거울 앞에서 명상하기 / 창조적인 유람 떠나기 / 하루에 하나씩 모험하기 / 최고의 것만 받아들이기 / 두려움 없애기 / 빛났던 시절 발굴하기 / 성서러운 공간 만들기 / 나만의 안식일 정하기 / 희망상자 만들기 / 몸에대한 예의 갖추기 / 달란트 얻기 / 열정적인 조언 얻기 / 좋아하는 색깔 만들기 / 적절한 몸무게 찾기 / 걸으면서 명상하기 / 완벽하고 싶은 충동 버리기 / 무소유의 의미 깨닫기 / 벼룩시장 구경하기 / 수수함 예찬하기 / 자족하기 / 굶주림의 실체 파악하기 / 꿈꾸고 실행하고 초연하기 /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하기 / 소올 푸드 찾기 / 마음과 연결된 길 걷기 / 바보상자에 매달리지 않기 / 신성한 게으름의 선물 받기 / 위안을 주는 동물과 살기 / 결단의 즐거움 알기 / 무지의 가능성 발견하기 / 옛날 책 고르기 / 치료를 주는 음악찾기 / 내 인생의 주인공 되기 / 내일을 준비하기 / 케세라세라 외치기 / 소원 이루기 / 부름에 응답하기 / 나 자신을 마음껏 축하하기 / 실패 껴안기 / 내 역할 모델과 대화하기 / 정신과 동행하기 / 집에서 일해보기 / ‘안돼요’라고 말하기 / 내 그림자 찾기 / 누군가를 대신해 살기 / 돈에 대해 사유하기 / 지는 해를 받아들이기.
또 다른 한권의 책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법정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이다.
첫째는 <걷기 예찬>이다. 다비드 르 브르통은 이렇게 말한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 놓는 것이다. 걸으면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걷는다는 것은 곧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걷는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반드시 혼자여야 한다.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횡단하는 것이다.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세상 밖으로 외출하는 것이다. 걸으면서 끊임없는 근본적인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순례자는 무엇보다 발로 걷는 사람, 즉 나그네를 뜻한다.”
또 <혼자>라는 의미를 이렇게도 설명한다.불교의 초기 경전 <숫타니파타>에서는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의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만났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내리니 기쁜 마음으로 그와 함께 가라 . 만약 그런 동반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마치 왕이 정복한 나라를 버리고 가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크리슈나무르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홀로>라는 낱말 자체는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며 부서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당신이 홀로 있을 때 비로서 세상에 살면서 늘 아웃사이더로 있으리라. 홀로 있을 때 완벽한 생산과 협동이 존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 전체적이기 때문이다.” 법정스님은 “고독과 고립은 다르다. 고독은 옆구리를 스쳐 지나가는 시장기 같은 것, 그리고 고립은 수인처럼 갇혀 있는 것이다.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으려면 먼저 ‘자기관리’가 철저해야 한다. 긍정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일상적인 사소한 일에 고마움과 기쁨을 누릴 줄 알아야 한다.”라고 하신다.
나의 내면 깊은 곳 영혼의 소리를 들어보자.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 내 자신을 사랑하자. 그리고 감사하며 즐거워하자.
명품 국민 – 전편 (3/9/2012)
언제부터인가 한국 뉴스를 접하면 거북한 기사들이 있다. 전적으로 내 개인적 열등감일지 모르지만 한국인들의 <명품 열풍>이다. 아무리 일등을 좋아하는 민족이라 하지만 명품 소비율이 세계에서 제일 높다라든가, 작년 명품 구입금액이 일본을 앞지르고 아시아 최고라든가, 명품세일로 온 나라가 들썩거린다거나, 아이나 어른이나 명품 중독증에 빠져 있다는둥, 아무튼 나의 뇌구조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얼마전 큰 딸과의 이메일에서도 요즈음 신종어에 <백테크>라는 말이 있단다. 명품백을 닥치는대로 사서 모았다가 자식들에게 물려주거나 돈이 궁할때 팔아쓴다는 것이다.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 그렇게도 없나?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하니 명품가방 한두개 갖고 있다고 잔소리할 소인배는 아니다. 하지만 언제부터 온 국민이 가방이며, 시계, 안경, 구두, 옷, 심지어 얼굴 성형까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명품으로 온몸을 감쌀려고 하니 이 백성이 어쩔려고 이러나.
한국이 언제부터 명품국가였나? 한국인이 언제부터 명품 국민이었나? 한국이 세계 최대의 명품 소비국일만큼 잘 사는 나라인가? 한국은 단군조선 이후부터 이날까지 반만년 역사동안 <밥>이 주제였던 나라였다. 5천년 역사속에 최근 20년처럼 잘 먹고 잘 산 세월은 없었다. 항상 먹고 사는 문제가 최우선이었고 밥을 위해서라면 누이를 팔아야 했고 동족끼리도 죽여야 했던 나라였다. 지금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같은 형제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한국이다. 세계가 웃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허영과 사치가 한국인들의 주제가 되고 밥은 부제가 되었다. 오늘날 자랑스런 한국이 되기까지는 한국인 혼자만이 잘나서 된 것이 아니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을 핵우산 아래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6.25 전쟁이후, 중국과 일본과 러시아가 감히 찝적거리지도 못한 세월이다.
하지만 세계 힘의 균형은 변하고 있다. 이미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다. 러시아도 푸틴의 당선으로 강성대국을 꿈꾼다. 일본도 잃어버린 10년? 20년? 하지만, 일본은 잃어버린 것이 없다. 그렇게 따지면 미국과 유럽은 일본보다 몇배나 많은 재산을 잃어버렸다. 아직도 일본은 세계 2위의 달러와 해외채권 보유국이다. 일본이 발행한 채권의 대부분은 일본 국민들이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구조학상 발 편히 뻗고 잘 수 없는 나라다. 항상 날선 잠을 자야 하는데 온 나라가 명품에 취해 곤드레 만드레하니 문제다. 한국은 한국의 역사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학습해야 하고 되새김질 해야 한다. 몇권의 역사 소설을 통해 불과 수백년전의 한국 실체를 보자.
김훈씨가 쓴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 그리고 권비영씨의 <덕혜옹주>이다.
<칼의 노래>는‘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했으며 조정의 기동출격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삼도 수군 통제사의 소임을 원균에게 넘겨 주고 의금부로 압송되었던 이순신이 정유년(1597년) 4월 초하룻날 풀려나 백의종군을 하는 대목에서 시작된다. 원균의 함대가 칠천해전에서 전멸함으로써 삼도 수군의 지휘권을 다시 잡은 이순신은 외로이 싸우다가 무술년(1598)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전사한다. 작가는그 2년동안의 적군과의 싸움, 아군과의 싸움, 주군과의 싸움, 자신과의 싸우는과정에서 사무쳐 있는 칼의 고뇌와 울음을 표현했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이순신이 조선을 살리고 왜국(일본)의 거대 함대를 무찌른 영웅으로만 기억한다. 한국의 일개 속국이었던 일본이 언제부터 그렇게 강건대국이 되었으며, 그동안 조선은 무엇을 했는가. 왜 백성들은 그렇게 못살았고 왜군은 제집 드나듯이 허구한 날 침략질을 해도 조선 조정은 속수무책이었나. 왜 이순신 혼자서 열두척의 작은 어선으로 승리한 것이 국가의 자랑이 되는가? 그가 조선의 영웅이었다면 조선은 정신차리고 변화되었는가, 조선이 부끄럽다.
이 책에서는 그가 한 나라의 신하로서, 장수로서, 한 인간으로서, 백성으로서, 아버지로서, 남자로서 겪는 삶의 무의미와 죽음의 현존 앞에서 고뇌하는 고독한 실존주의자로 그려진다. 이 책의 곳곳에서 조선의 비린내가 나는 것은 여느 때의 한국 역사처럼 왕과 신하들이다. 왕(선조)은 적군이 가까이 몰려오면 도망가면서 울고, 왕의 부하 장군이 적군을 무찔러 승리하면 그가 왕을 헤치려 할까 두려워 운다. 신하들은 오직 당파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모함하고 왕을 팔고 충신을 팔고 백성을 팔아먹는다. 북쪽 국경에 사는 백성은 백성대로, 남쪽 국경에 사는 백성은 백성대로 적이 되었다 아군이 되었다 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밥이 시키는대로 한다. 왜놈의 군함을 노젓는 백성도 조선의 백성이요, 적선의 배에 갖혀서 꼼짝없이 불 타 죽는 백성도 조선의 백성이요, 왜놈 장수의 몸수발 드는 여인들도 조선의 여인이다. 전쟁에 동원되는 보급물자도 조선의 백성들 것이요, 전장의 노획물로 적군의 코를 베거나 귀를 짤라도 그 귀와 코의 국적이 조선인의 것인지, 왜놈의 것인지 불명확하다. 백성을 살리기 위해, 나라를 살리기 위해 이길 수 없는 전장에 나가 목숨을 걸고 승리를 거두었건만, 왕과 신하들은 그를 두려워하고 모함한다. 왜 이순신은 마지막 전투에서 갑옷을 입지 않았을까? 그의 죽음은 의도된 자살일까, 타살일까? 누가 그를 죽게 만들었을까? 그래서 그는 길고 긴 밤들을 식은 땀을 흘리며 악몽에 뒤척이다가 잠이 깨곤 했는지도 모른다.
불과 500년전의 우리나라 이야기다. 조선의 백성들은 밥을 위해 목숨을 구걸하며 살았다. 조선의 이념은 역사의 허구이고 밥만이 실상이라고 작가는 반복한다. 그 밥을 구걸하기 위해 조선의 백성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명품 후손>들은 배우고 기억해야 한다.
명품 국민 – 후편 (3/16/2012)
나는 이민오기 전까지 남한산성을 가벼운 마음으로 몇번 놀러 간 기억들이 있다. 하지만 그 수려한 계곡사이로 우리 민초들의 통곡과 피울음이 사무쳐 맴돌고 있음을 예전에는 미쳐 몰랐었다. 나의 무지스러움이다.
소설 <남한산성>은 인조 14년 1636년 12월부터 1673년 2월,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두달여 사이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보자. 1616년(광해 8년)에 누르하치가 여진의 부족을 합쳐 후금을 세우고 칸의 자리에 오른다. 1618년 명나라가 후금을 치기위해 신하의 나라인 조선에 파병을 요청하고 후금은 파병을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 1619년 강홍립이 일만 병력을 이끌고 명을 위해 출병하나, 후금에 투항하고 만다. 1623년에 능양군(인조)이 광해를 폐하고 왕위를 빼앗으니 이것이 인조반정이다. 1624년 이괄이 난을 일으키메 이를 진압하면서 남한산성을 축성하게 된다. 1627년 (인조5년)에 후금이 삼만의 병력으로 조선을 침공하니 인조는 강화로 피난을 간다. 이것이 정묘호란이다.
1636년 (인조14년)에 누르하치의 아들 홍타이지가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용골대가 청의 사신으로 조선에 왔으나, 조선은 청의 국서를 거부한다. 이에 청나라는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공하니 왕과 세자는 남한산성으로, 빈궁과 세자들은 강화로 피난을 간다. 이것이 병자호란이다.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다.”라는 주화론의 최명길과, “싸우고 지키지 않으면 화친할 기회도 없다.”라는 척화론의 김상헌의 주장은 풍전등화인 국가 운명을 47일간 지연시킨다. 마침내 1637년 (인조 15년)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의 왕에게 세번 절하고 아홉번 무릎을 꿇어 엎드려 신하의 예를 깆춘다. 그 댓가로 세자 일행은 심양으로 끌려가고, 조선의 여자 수만명과 말 수천필과 엄청난 조공품을 바쳐야 했다. 이때부터 청의 국호를 쓰면서 청과 군신관계를 맺는다. 1644년 (인조22년)에 청이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대륙을 지배한다.
김훈씨의 간결하고도 메마른 문체는 이렇게 표현한다. “반드시 죽을 무기를 쥔 군사들은 반드시 죽을 싸움에 나아가 적의 말발굽 아래서 죽고, 신하는 임금의 몸을 막아 서서 죽고, 임금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 앉고 죽어도, 들에 살아남은 백성들이 농장기를 들고 일어서서 아비는 아들을 죽인 적을 베고, 아들은 누이를 간음한 적들을 찢어서 마침내 사직을 회복하리라는 말은 크고 높았다.” 청나라가 두려웠던 것은 조선의 백성들이다. 조선 민초들의 전투력은 싸움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지만 백성들의 생존본능은 무서울 정도로 처절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이렇게 말한다. “그해 겨울,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할 길은 포개져 있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옛터가 먼 병자년의 겨울을 흔들어 깨워, 나는 세계악에 짓밟히는 내 약소한 조국의 운명 앞에 무참하였다. 그 갇힌 성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덩어리로 엉켜 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
또 권비영의 장편소설 <덕혜옹주>를 보자. 나의 무지는 조선에 이런 이름의 옹주가 있었는지 조차 몰랐다.한국은 숨겨진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 무엇이 그렇게 창피하고 못난 일들이 많았는지 우리의 역사는 겉만 포장되어 감추기 급급하다. 그러니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 후손들은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게 되고 또 부끄러운지 조차 모르는 것인가. <덕혜옹주>는 1912년 5월 25일 고종의 막내딸로 덕수궁에서 출생한다. 1910년 일본의 식민정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이다. 1925년 13세의 나이에 일본 학습원으로 볼모로 강제 연행된다. 1929년 어머니 양귀인이 사망하고 1931년 일본 대마도 백작과 강제로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외동딸은 두나라 사이의 정체성 혼란으로 자살하게 되고 그녀는 정신병동에 감금된 채 일본과 조국 모두에게서 외면을 당한다.
1962년 김을환이라는 신문기자의 도움으로 대한민국에 귀환을 하지만 누구 하나 관심을 갖지 않고 외로이 죽음을 맞이한다. 심지어 아버지 고종의 죽음도 뇌출혈로 사망했다고 일본은 발표하지만, 그의 시신은 흑자색으로 변해 있었고 수랏간 궁녀 두명이 행방불명 된다.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소문만 무성한 채 고종의 장례조차 일본식으로 치루어야 했다. 이를 계기로 삼일운동이 일어난다. 비단 덕혜옹주 뿐인가. 순종과 의친왕, 영친왕, 조선의 왕손들 모두가 조국의 버림을 받고 죽어가야 했다. 그녀는 말한다. “모든 일이 봄날의 꿈처럼 흔적없이 사라지는구나. 모든 것은 사라짐으로써 덧없나니.. 나의 마지막 소망은 오로지 자유롭고 싶었을 뿐이었느니라..”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 태어났지만 한번도 황녀로 살지 못했던 여인, 누구보다 귀한 존재였지만 모두가 외면했던 그 여인은 ‘조국에 있던 순간에도 조국이 그리웠다’고 한탄하며 영원한 자유를 위해 먼길을 떠났다.
5천년의 세월동안 버림받은 한민족의 아픔이 비단 이것뿐이겠는가. 죄없는 백성들이 눈물로 만들어 온 조국이다. 어찌 박해받고 버림받은 민족이라면 유대민족만 할까. 하지만 그들이 지금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용서는 하지만 잊지는 말자”라는 역사 소명의식이다. 그런데 한국은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하고 대학 입시과목에서 빼자는 발상을 하니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려는 것인가. 내 자신을 가문도 없고 전통도 없고 사상도 없는 헛껍데기로 치부하고 <명품 민족>임을 자포자기 하는 것인가. 자본주의의 사생아가 되어 과거도 기억하고 싶지 않고 오로지 현재의 외형만에만 허영과 <명품>으로 눈속임 하겠다는 것인가. 집안의 어른들과 국가의 어른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인가. 민족의 선구자들과 선조들이 지하에서 통곡하는도다.
내 마음의 봄 (3/23/2012)
지난 겨울이 추위와 엄동설한의 고통이 없어서일까. 고통없는 기다림은 애닳지 않아서일까. 봄 햇살은 소리 소문도 없이 내 마음의 툇마루에 길게 드리워지고, 봄은 어김없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이미 들어와 있었는데 나는 그가 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겨울과 작별의 인사도 하지 못했으니 봄을 맞이할 준비도 못했으리라. 그렇게 봄이 다가옴을 느낄 여유조차 없이 허둥대며 살았단 말인가. 한달여 동안 별 아픈 곳도 없는데 몸은 바쁘고 마음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한달 전만 해도나무가지에 아직 파란 잎들이 돋아나지 않았기에 봄을 너무 멀리서 기다렸나 보다. 길가에는 어느듯 개나리가 만개하고 자목련이 흐드려지게 피었다. 이름모를 야생화들도 피어나고 나무가지에도 잎몽우리들이 기지개를 핀다. 온통 연두색 물결이다.
무엇이 그렇게 바쁘기에 항상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사는걸까. 그러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아쉬워하며 미안해 한다.언제나 그렇듯이 사랑을 미리 맞이할 준비도 못한체 사랑이 떠난 후에 그리워하는 것일까. 변명은 변명처럼 똑같이 반복된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그때 잘 할께.” 그러다가 “먹고 살기 바쁘다보니 남긴 것도 없이 세월은 가고 나이만 먹었다”고…삶의 소망은 허망한 바람일뿐, 삶의 본질이 되지 못했다. 이것 저것 주워들은 잡동사니 지식들은 스스로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통절한 깨달음이 없으니 스스로의 생각은 뿌연 유리창의 먼지처럼 투명하지 못하고 소리만 번잡하다. 토막잠처럼 생각은 이어지지 않으니 망상은 커지고 삶의 변화는 없다. 어제가 오늘 같고 또 오늘이 내일 같으니 길을 걷는 것도 아니요 멈춘 것도 아니다.
요즘 교회에서 사순절기간동안 <내생애 마지막 30일>이라는 캠페인으로 책자와 DVD를 통해 매주 토론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마음이 무력하니 책의 내용들은 어딘선가 보거나 들었던 내용들로 여기며 특별히 색다르거나 참신함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내게 남은 시간이 30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내 생활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 그것이 두렵고 서글플 뿐이다. 나이를 먹으니 감각은 무디어지고 뇌세포는 극히 줄어들어 생활의 타성만 늘고 긴장감이 없어지는 것일까.. 변화를 싫어하고 안전한 길로만 갈려고 한다.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데 현실에 다가서지 않는다.
고도원씨는 <꿈너머 꿈>이란 책자에서 “<꿈>이 있으면 행복해지고, <꿈너머 꿈>이 있으면 위대해진다. 꿈을 이룬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을 생각하며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가는 것이 <꿈너머 꿈>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다.”라고 한다. 하지만 꿈너머의 꿈은 커녕 알량한 꿈자체도 흔들거린다. 무력함의 원인은 한달여 전에 막내 아들 놈을 심하게 야단을 치고나서 부터인 것 같다. 아들놈은 크게 잘못한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시간을 아껴 쓰지 않는다는 불만이 단초였다. 아들놈은 전액 장학금으로 갈 대학이 결정되었으니 좀 나태해지는 것도 당연지사인데 아비는 그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아비가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한 것이 불만으로 잠재되어 있다가 괜한 시비를 걸어 언성이 높아지고 아들놈 가슴에 상처를 남긴 꼴이 되어 미안하고 허탈해진 것이다. 물론 다음날 아들과 아비는 서로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웃으며 여느날처럼 편안하게 지내지만, 내 마음 깊은 곳은 섭섭함과 걱정이 앙금처럼 사라지지가 않는다. ‘좀 더 열심히 공부했더라면, 좀 더 시간 관리를 철저히 했더라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 텐데, 그렇게도 수없이 잔소리를 했건만, 알아서 한다고 큰소리치더니만… ’ 등의 넉두리다. 이 나이에 무슨 옹졸한 짓인가.
도종환씨는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에서 이렇게 말한다. “달라이 라마 는 ‘내마음이 어떻게 달라져서 괴로움이 생긴 것입니까? 내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생긴 것입니다. 내 것이라는 생각은 자아 때문이며 자아가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내 것이라는 그 생각을 벗는 일을 득도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자아가 집착하고 있는 것을 벗는 것, 그래서 무아가 되는 것 그것을 해탈이라고 합니다. <제법무아>라고 했습니다. 욥이 말하기를 ‘아훼께서 주셨던 것, 야훼께서 도로 가져 가시니’ 심한 병에 걸려 고통받으면서도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았는데 나쁜 것이라 하여 어찌 거절할 수 있단 말이요?’ 우리가 그렇게 달라고 매달리던 분, 주시는 분도 그분이라면 거두어 가시는 분도 그분이므로 모든걸 맡길 때 영원한 것을 얻습니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특히 자식문제는 더욱 그러하다. 시험 문제지에 정답을 쓰라고 하면 아마도 우등생은 문제 없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동일한 고민을 상담해 오면 청산유수처럼 명쾌하게 해결방안을 제시했을 것이다. 막상 내가 문제에 부딪치면 스스로는 전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 생애 마지막 30일>에 나오는 지시를 따라해 보기로 했다. <작은 변화>가 <큰 변화>를 가져온 다는 것이다. 마침 오늘은 토요일이라 아들놈과 <작은 변화>를 가져보기 위해 둘이서 사무실에 나와 이런 저런이야기도하고 같이 점심 사먹고 저녁에는 아내와 함께 소주 한잔을 겸한 외식도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도 했다. 내일은 아들놈과 테니스를 같이 치기로 했다. 초등학생 때 테니스를 가르쳐 준다고 코트에 데리고 나가 잔소리만 한 이후로는 오래간만에 처음 치는 것이다. 그래, 내가 문제인 것 같다. 내가 내려놓고 아들에게 가까이 다가서자. 그러면 내 마음의 봄도 오지 않을까….
결혼 기념일 (3/30/2012)
오늘은 아내를 만나서 결혼한지 30년이 되는 날이다. 처음 만나 연애한 날로 부터 하면 3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막상 결혼기념일이라고 계산해 보니 30년이 지났을 뿐, 아내는 불과 몇년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한다.
우리 결혼 생활은 공교롭게도 10년 단위로 나뉘어진다. 결혼 초기의 10년동안은 봉급생활자 시절이었다. 대기업에 입사해서 고속으로 승진하게 되고 더욱 더 조직에 인정받기 위해 회사에 미쳐서 산 세월이다. 그동안 아내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다가 익숙치 않는 시집살이 한다고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을지 모르지만 마음 고생을 많이 한 시절이었다. 지금도 그 시절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할 정도이니까. 그 다음 10년은 내 사업을 한 세월이다. 사업이 잘 되어 승승장구 할 때에는 곧 여러개 회사를 이끄는 중견 기업체 사장이 될 것 같아서 회사와 직원들과 일에 미쳐 살았다. 잘 나가던 회사는 IMF로 회사가 기울고 마침내 회사를 정리할때 까지는 오로지 회사를 살려보려고 미쳐서 몸부림친 세월이었다. 모든 재산은 날라가고 혼자 빈털터리가 되어 죽음을 생각할때 주위를 돌아보니 아내만이 내 곁에 있었다. 지금도 나는 가끔 꾸는 꿈이 있다. 비바람 몰아치는 허허벌판에 아내는 어린 시절의 흑백사진 모습으로 홀로 서서 내 곁을 떠나지 않는 꿈이다. 나는 그런 아내에게 옆에 있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당신은 바보’라고 말한다. 그때 나를 버리고 떠났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모진 남자다.
그리고 10년은 미국으로 이민온 세월이다. 빈털털이로 왔으니 나는 당장 먹고 사느라 미쳐서 산 세월이었다. 여행 비자로 왔으니 신분 문제가 해결이 안되고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해도 수중에 돈 만불 만들기가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가장 아빠의 도움을 필요로 한 자식들에게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던 시절이었다. 감정은 통제 안되고 버럭 화내기 일쑤고 매사 독선적이니 가족들과도 마찰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이민 10년동안 나는 가족들에게 해 준 것이 없는데, 가족들 신분은 미국 시민권자가 되었고, 큰 딸은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해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고, 둘째 딸아이는 전공을 살려서 원하는 대학을 졸업하고 유명 기업에서 인정받으며 일하고 있다. 막내 아들놈은 나의 도움없이 전액 장학금으로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만약 그분과 아내가 없었다면 이런 행복이 가능했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아내를 위해 해 준 것이 없다.나는 처절히 이기적이었다.
엘리자베스 퀴블로스는 <인생수업>에서 이렇게 말한다. “삶의 여행동안 당신의 임무는 사랑을 찾는 일이 아니라, 당신 마음속에 스스로 만들어 놓은 사랑의 방해물을 찾아내는 일이다.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은 사랑에서, 삶에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어느 곳에 있든지 항상 그분이 내 곁에 계신다.”라는 믿음이다. 나는 아내가 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의 소원은 없다. 아내에게 요구하는 것이 없으니 내가 원하는 이상형이 되길 소원하지도 않고 무엇을 해 달라고 원하지도 않는다. 꽃은 그 홀로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내가 아름다운 꽃이라 불러 줄때 아름답다고 하지 않는가. 아내는 내 옆에 있기만 하여도 아름다운 여인이다.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데 불필요한 방해물은 없다. 있다면 나의 독선과 아집과 거친 습성뿐이다. 앞으로의 10년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두려움은 갖지 말기로 하자. 앞으로도 갈 길은 멀게 보일 수 있고 <여유로운 삶>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조화로운 삶>을 살도록 하자. 그래서 결혼 40주년 때는 더욱 멋있는 아내의 남자가 되도록 하자.
어제 저녁은 뉴욕에 사는 둘째 딸이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하여서 가족 모두가 우리 결혼 30주년을 축하해 주었다. 오늘 아침에는 호수가 있는 공원에 가서 아내에게 색소폰 독주를 들려주려고 했다. 봄의 꽃들과 함께 호숫가 벤취에 아내를 모셔 놓고 그동안 준비한 20여곡을 불러 줄 계획이었다. 그런데 비가 세차게 내려 도저히 독주회를 할 수가 없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생크림 케익과 커피를 준비하고 아내 앞에서10여곡을 불렀다. 이웃에게 피해를 주기 않기 위해 당초의 예정곡보다 절반으로 줄였다. 마침 주일날 아침이라 평소 아내가 좋아하는 찬송가 5곡과 상송, 팝송, 한국가요를 선곡해서 불렀다. 마지막 곡을 부를 때는 아내의 눈에 약간의 이슬이 맺히기도 했다. 작년 가을부터 처음으로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하여 짬짬이 연습한다고 했는데 충분히 연습하지 못한 것이 여간 아쉬웠지만 대체로 무난한 연주였다고 자평한다. 아내는 내가 색소폰 부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그동안 연습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고물밴을 끌고 공원에 나가 혼자서 연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겨울이 되고 해가 짧아 연습할 장소도 마땅치 않고 겨울에 추운 차 안에서 연습하다가 2주일 정도 호되게 감기를 앓은 적도 있다. 결국 바쁘다는 핑계삼아 연습을 게을리 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색소폰을 배운 이유가 아내 한사람에게 들려 주기 위함이었고 그 아내가 나의 색소폰 연주를 만족해 하고 행복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알프레드 디 수지는 말한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는 것처럼. /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아내에게 결혼 30주년이 의미있는 하루였기를, 부디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길 소망한다.
내 생애 마지막 한달 (4/6/2012)
누구에게나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한달 밖에 살지 못한다는 <최종 선고>를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한달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해야 가장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을까? 우리 교회는 사순절 기간동안 케리슉 목사 부부가 쓴 <내 생애 마지막 한달>이라는 책자와 DVD로6주간의 캠페인을 통해 많은 은혜 가운데서 마쳤다.나의 결론은 가장 아름다운 마무리는 마지막 한달동안 무엇인가를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과 마지막 30일 동안의 삶이 크게 변함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먼저 ‘내가 누구인가?’ 라는 정체성부터 시작한다. 그런 다음 ‘무엇이 가장 소중한가? 즉 영원한 가치, 불변의 가치, 핵심적 가치는 무엇인가?’ 를 찾는 것이다. 그것이 삶의 목적이고 그 목표가 정해져야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네가지 방법이 정해진다. 첫째가 열정적으로 살아라 (Live Passionately), 두번째가 온전히 사랑하라 (Love Completely), 세번째가 겸손히 배우라 (Learn Humble), 네번째가 담대히 떠나라 (Leave Boldly) 이다. 이 책 속의 핵심 단어들은 시간, 꿈, 우선순위, 감사, 용서, 사랑, 믿음, 소망, 인내와 고통, 용기, 나눔, 관계, 소통, 영적 가치, 영적 에너지, 영적 의사 소통, 달란트, 두려움, 고통, 상실, 실패, 죄책감, 내려놓음, 희생, 정직, 진실과 신뢰, 내적 변화, 영원한 유산, 영향력, 영적 재료, 영적 도구, 영적 토양,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실 한권의 책에 담기에는 핵심 주제들이 너무 광범위하고 산만하다. 또 나는 이 책의 내용들이 엘리자베스 퀘벌로스의 몇권의 책들에서 나오는 그녀의 사상과 많은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해결방안도 그녀의 4L (Live, Love, Learn, Laugh)의 내용들이 종교적 해석을 제외하면 많은 부분이 흡사하다. 하지만 케리 슉 목사가 성경을 인용하는 것 처럼, 다른 전문가들의 글을 인용하던, 그가 깨닫고 하는 이야기던, 그가 마음을 거치지 않고 입으로 옮기는 이야기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특히 팔다리가 없는 닉 부이치치의 간증중에 <하나님은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신다>라는 그의 믿음과 다시 태어나도 이 몸으로 태어나겠다는 고백은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하였다. 현대인의 문제는 책의 내용이나 핵심단어들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다 막상 내 삶이 한달 밖에 남지 않았다면 그때서야 모든 걸 내려놓으며, 심지어 죽음의 두려움도 담담하게 받아드린다는 것이다. 물론 때늦은 후회를 한들 무엇이 크게 달라질까…
우리 주변에도 나눔과 봉사의 선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평소에 열정적으로 살고,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후회없이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조그만 나눔을 실천하고, 건강한 믿음 생활과 주위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라면 남은 시간이 한달이든, 일년이든 무엇이 크게 달라질까? 평소에 그렇게 살지 못했으니까 상실감도 더 클 것이다. 한달밖에 남지 않은 시간동안 <상실의 다섯단계>로 시간을 모두 소비할 수도 있다. 즉 그럴리가 없다고 <부정>하다가,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느냐고 <분노>하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으러 다니고, 몇달만이라도 더 살게 해 달라고 <타협>하다가, 좋다는 것은 다 해보게 되고, 의학이나 과학이나 종교의 힘으로도 안되니까 <절망>하고, 그러다가 마지막 순간에야 삶을 포기하고 죽음을 <수용>한다면 마지막 한달이 너무 아쉬운 것 아닌가. 그렇다고 평소에 하지 않던 선한 일들, 사랑, 믿음, 소망, 나눔, 용서 등을 한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한다든 것도 너무 버거운 일 아닌가.
현대를 사는 소시민들은 마지막 한달이 남았다면 함께 할 대상은 대부분이 <가족>이다. 용서할 사람도 그들이고, 용서받을 사람도 그들이다. 미워한 사람도 그들이고 사랑하지 못한 사람들도 그들이니, 사랑할 사람도 그들이다. 나의 지혜와 재산을 물려 줄 사람도 그들이고, 영향력을 남길 사람도 그들이다. 누구 말대로 내가 태어 날 때 나는 울고 그들은 웃었듯이, 내가 죽을 때 나는 웃고 그들은 울어야 하지 않겠는가? 멋있게 죽는 것은 명성이나 재산, 조문객의 숫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같이 산 세월들이 행복했었다’는 한마디가 아닐까? 천국가면 그분의 <수고했다>라는 그 한마디를 듣기위함이 아닐까? 그럴려면 한달로 되겠는가. 지금부터라도 우선순위를 정하고 내 인생의 최고 가치를 두,세개만 남겨두고 내 인생의 창고부터 정리하자. 한달이든, 백년이든 인생의 짧음은 유한하고, ‘나중에’라는 허상은 막연하다. 나의 대상은 인류도 아니고 민족도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불과 몇사람이다. 그들을 사랑하는데 많은 재산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인생의 성공한 자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나를 사랑하게 함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요, 내가 좋은 영향을 남겨주려 함이다. 누구처럼 대학에서 마지막 강의로 남기거나, 간증이나 베스트셀러로 남기거나, 일기나 회고록 등 여러 형태로 나의 살아온 흔적을 남길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사랑하는 가족들의 기억은 삶 속의 빛바랜 사진 몇장인 것처럼 나와의 아름다운 흔적일 것이다.
결국 죽은 후에라도 처자식들에게 욕 안듣고 제사밥이라도 얻어 먹으려면 어느 책이나 결론은 마찬가지다. 톨스토이의 질문처럼 < 어디서? 지금 있는 곳에서 잘 하라. 언제? 지금 있을때 잘 해라. 누구에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 해라. 무엇으로? 지금 가지고 있는 것 모두로 잘 해라. 어떻게? 내일이 없는 것처럼 아낌없이 잘 해라.>
용서받지 못한 자 (4/13/2012)
올해도 <성삼일>을 은혜로 보내게 하심을 감사한다. <성금요일날> 그분을 내 마음의 십자가에 매달고 그분의 피값으로 나의 용서를 구한다. 토요일 새벽기도 때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신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 23장34절”라는 그 분의 애절한 구원이 내 마음에 눈물되어 한없이 흘렀다.
저들은 나 자신이다. 저들은 그분을 판 유다이고 그분을 세번 부정한 베드로요, 정치적 야심을 가진 제사장이요, 종교 지도자들이다. 십자가에 못박고 창으로 찌른 로마 병사들이며, 그분을 야유한 관리들이요,우매한 민중들이며 그분을 부인하고 도망간 제자들이다. 내가 그들이다. 그런데 토요 새벽에 나를 더욱 슬프게 한 것은 내가 스스로 지은 죄를 알지 못하는 부분이다. 가롯 유다는 “내가 죄없는 그분을 배반하여 그의 피를 흘리게 하였으니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자신의 죄를 알았기에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지 않고 스스로 죄를 판결하여 자살을 선택하는 두번의 잘못을 저질렀기에 지금까지도 용서받지 못한 자가 되었다.
용서에는 두가지로 나눌수 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그 하나요, 다른 사람이 나를 용서하는 것이 다른 하나다. 전자는 내가 상대방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억울하고 분노하여 복수하고 싶은 대부분의 경우이다. 즉 내가 피해를 본 경우이다. 이 경우는 그분께서 이미 정답을 주셨다. 베드로가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 묻자 예수께서 “ 일곱번씩 일흔번 용서해 주어라” 라고 말씀하셨는데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벽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완전히 용서함을 70번 더 완벽하게 용서하라는 뜻이다. 이는<영원히 용서하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영원히> 라는 절대적 가치의 언어를 사용할수 없으므로 결국 용서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고유 권한인 셈이다. 상대방을 용서하고 못하고는, 그 기준을 내가 만들었기에 용서의 판단도 내가 하게 된다. 그 판단은 극히 주관적이고 공정하지 못하다. <정의>란, 정의 기준 자체가 시대성이나 역사성으로 다수의 의견이 일치한다고 해서 그 <정의>가 올바르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정의>는 단답형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께 용서를 일임하고 상대방을 잊고 살려고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겟세마니 동산에서 세번 반복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신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사오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옵소서.”
“아버지, 이 잔이 제가 마시지 않고는 치워질 수 없는 잔이라면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아버지, 이 잔을 제가 마시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을 제가 이루겠나이다.”
이 잔속에 무엇이 들었길래 예수는 세번이나 갈등하고 번민한 것일까? 이 땅에 사는 모든 인간은 원수를 스스로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용서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으로 부터 이미 용서받은 존재이자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발견하는 것이다. 인간의 용서는 행위가 아니라 발견인 것이다. 인간의 용서는 ‘내가 너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부터 이미 용서받은 너를 인정하는 것이다.’ 악마가 예수께 유혹한 마지막 말은 ‘무죄한 너를 죽인 저 자들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이었을 것이며, 하나님의 마지막 질문은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이었을 것이다. 나의 단골 정비공장 사장님이 권면한 인천지역의 개척교회 목사님이 계신다. 그분은 사회에서 철저히 버림받은 사람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시는데 그분의 목회자론도 그러하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어야 참 기독교인입니다.” 라는 잔상이 내 가슴에 있다. 즉 예수의 그 잔 속에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랑과 용서할 수 없는 용서>가 들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상대방을 용서하는 것은 미흡하나마 가능하다. 이제 나이도 먹어가고, 원수가 될 일은 피하며, 내가 손해본다고 생각하고 양보하면 어느정도 가능하다. 또 원수질만큼 그런 에너지도 그럴 객기도, 시간도 여유롭지 않다. 그 무엇보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진작 나는 모른다는거다. 내가 상대방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있다면 내가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하든지, 또 하나님께 속죄와 참회의 기도로 용서를 구할 것이다. 하지만 나로 인해 그들은 상처받고 나를 용서할 수가 없는데, 나는 전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그래서 주님께서 아무런 용서도 해 주실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 슬프게 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남남들이겠는가. 분명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나를 사랑한 사람들일 것이다. 나의 아내고 나의 자식들이고 나의 형제들이고 나의 친척들일 것이다. 나의 친구들이고 나의 직장 동료들이고 나의 고객들이었을 것이다. 결코 적지 않은 그들속에서 사랑받고 사랑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연히 나의 일방적인 결론으로 모두 만족하고 상처가 없는 것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나로인해 상처받고 한을 가진채 살아간다면 나는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는가? 나는 그들에게 너무 미안하여 새벽의 십자가 아래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나는 나의 잘못을 모르기에 <용서받지 못한 자>가 되는 것이다. 무심한 사람이다..
“주여, 저로 인해 상처받은 모든 영혼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저를 용서하여 주시고 그들의 마음을 치유하여 주옵소서. 저는 제가 한 일을 모르고 있나이다.”
꽃가루 알러지 (4/20/2012)
하루밤새에 검정색 자동차 색깔이 노오란색으로 변했다. 꽃가루가 온 천지를 뒤덮은 것 같다. 봄이 소리 소문없이 오는가 했더니 벌써 여름으로 자리바꿈을 할려나..이미 마음이 떠난 여자에게 무슨 말을 해야 되돌아설까마는 아직 내 사랑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떠날 채비를 하는 것 같아 그런 봄이 얄밉다. 하지만 떠날 님은 떠나더라도 남아있는 나는 반팔 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시원한 메밀국수로 저녁 한끼를 해결한다.
나는 해마다 봄철이면 꽃가루 알러지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다가도 두세번 깨기가 다반사고 시도 때도 없이 콧물이 흐르고 눈물도 흐르니 바보가 따로 없다. 고객과의 상담이 주업무인데 목소리는 코맹맹이 소리에다가 느닷없이 재치기를 하기 일쑤고, 콧물을 훌쩍거리다가 견디지 못하면 코를 풀어야 한다. 아무리 고객에게 사전 양해를 구한다지만 지저분하게 보이기는 매 한가지이다. 견디다 못해 약을 먹으니 머리는 띵하고 잠을 충분히 못자서 눈은 충혈되어 있고 코를 하도 풀어 코 끝이 빨갛게 헐었다. 한국에서 살 때에는 알러지라는 병을 알지도 못했다. 이민와서 2년이 막 지난 봄날로 기억된다. 하루는 감기에 걸린 것같았다. 갑자기 콧물이 흐르고 재치기를 하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 몸은 자기가 제일 잘 안다. 나는 일년에 한두번은 심한 감기 몸살을 앓곤 했다. 그러면 약국에서 지어준 감기 몸살 약을 한봉지 먹고 이불 뒤집어 쓰고 땀을 흠뻑 흘리면 아침에 가뿐히 낳곤했다. 그런데 이번 감기는 한국에서 가져온 약을 먹어도 낳지 않고 점점 심해지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교회를 나가지도 않았고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었기에 어디다가 병 증세를 물어 볼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달을 고생 고생하다가 도저히 견디지 못해 한국 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을 찾아갔다. 본래 나는 병원가는 것을 무진장 싫어한다. 미국에 와서도 10년 넘게 병원에 간 적이 없다. 정녕 불안해서 종합 검사를 받아야 하거나 치료를 요하면 한국에 나가서 병원 치료를 받는게 마음 편하다고 생각하는 반푼수다.
그런데 그 봄날에 감기약을 먹어도 먹어도 났지를 않으니 할수 없어서 처음으로 병원을 찾은 것이다. 의사는 나의 증세를 듣자마자 샘플약 같은 것을 주면서 크게 걱정하지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주사도 놓치 않고 약 몇알만 주고 $80불을 받는 것이다. 그 당시의 내 처지에 $80불은 큰 돈이었다. 미국 병원비가 비싼 줄은 미리 짐작은 했지만 아무리 의료보험이 없어도 그렇지, 샘플 약 몇알에 $80불은 너무 비싸다는 생각으로 집에 오는 차 안에서 화김에 약 한알을 먹었다. 그런데 이게 웬 기적이냐. 갑자기 콧물이 멈추고 코가 뻥 뚫리더니 재치기도 멈추는 것이었다. 나는 그 분을 한참동안 존경하는 명의로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해도 똑같은 증세가 발생하여 주변에 물어보니 그게 <꽃가루 알러지>라는 것이다. 미국에 이민와서 10년쯤 살다보면 생기는 병인데 이민 3년차에 걸렸으니 미국 체질이라나 뭐라나. 그 때부터 지금까지 봄만 되면 알러지를 달고 산다. 가까운 지인은 어디에 유명한 한의사가 있는데 침 한방이면 고생 끝난다고 강력 추천한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침을 무서워한다. 태어나서 한번도 침을 맞아본 적이 없다. 버틸 때까지 버티어 볼 심산이다.
알러지는 내 몸의 면역체계가 무너져서 생긴 것이라면 식생활이나 생활습관을 바꾸어 적응해 보는 것이 순리라고 변명을 한다. 더 사족을 달아 말의 잔치를 하자면, 고통은 안고 사는 것이지 고통을 극복하거나 이기려 하지말아야 한다고. 함께 살다보면 고통은 자연스럽게 잊혀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사실 봄이 잘못을 한 것은 없지 않은가. 봄에 꽃가루가 날리는 것은 당연하고 그 꽃가루로 인해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고 새로운 생명들이 소생하고 번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봄을 그리워하고 기다렸던 것이 아닌가. 모든 사물에는 강점과 약점, 기회요소와 위협요소가 상존한다. 이 지구상에 신이 창조한 창조물은 조화로움으로 완벽을 이룬다. 하물며 완벽한 사업체는 없다. 사람들은 꿈의 사업체를 찾는다. 하지만 약점과 위협요소가 없는 사업체는 없다. 약점을 모르거나 없다고 착각할 뿐이다. 사업은 많은 불확실한 가변요소들이 결합되어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러니 똑같은 사업체라고 하더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언제 했느냐, 또 주변 환경적 변화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추운 겨울이면 빨리 봄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한다. 하지만 봄은 꽃가루 알러지와 함께 오는데도 항상 고통스런 알러지는 까맣게 잊고 봄만을 기다린다. 그렇게 따지면 여름은 약점이 없고 가을은 약점이 없을까. 겨울은 약점만 있을까. 아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약점은 있지만 살면서 감사하고 즐겁게 보완하고 인내로 견디어 내는 것이다. 이민사회의 사업은 대부분이 먹고 사는 일이 주업인 소규모 장사일 뿐이다. 경기가 좋아질 때까지 기다린다면 언제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인지, 일하지 않고 매니저가 관리하면서 수익이 좋은 사업체라는 것이 있기나 한건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힘들게 일해야 먹고 사는 다른 사람들은 정녕 바보들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번 망가진 경기는 빨리 회복되지 않는다. 서민들이 경기가 좋아졌다고 피부에 느낄 정도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더 나빠지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은행 융자도 조건이 많이 완화되었고 좋은 매물도 많다. 사업체마다 약점은 있지만 장사는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유리하다.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실패보다 못한 것이라 하지 않는가. 발전도 변화도 없는 무능함이다. 꽃가루 알러지가 있으면 어때. 이제 그만 뜸드리시고 봄나들이 하심은 어떠하실런지…
유대인 생활 철학 1편 – 미국 유대인 (4/27/2012)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민족이라고 하면 유대인이고, 가장 질투의 대상도 유대인이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이며, 나의 구주 예수도 유대인이다. 모든 국가와 민족의 비교와 연구 대상이지만 그들의 세력은 점점 커져가고 세계의 지배력은 점점 강화된다. 4년전에 나는 유대인에 대한 칼럼을 2개월여에 걸쳐 쓴 적이 있다. 유대인 탐구, 유대인의 힘, 유대인의 교육열 등을 주제로 썼는데, 이번에 쓸려고 하는 내용들은 유대인들의 생활 철학이나 사고 방식에 대해 알아볼까 한다. 왜냐하면 요즈음 같은 불황이 장기화된다면 우리같이 힘들게 사는 서민들은 살아 남을 방법이 있다면 모방을 해서라도 따라하고 싶기 때문이다. 괜한 경영철학이나 성공전략, 대박난다는 투자전략 등은 경기가 좋을 때나 좀더 많이 벌기 위한 대안이 될 수는 있지만 불경기에의 생존전략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구박과 시련을 많이 받은 그들이 왜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지, 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지 그들의 뇌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아두면 어려운 살림살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몇회에 걸쳐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이 글의 자료는 김욱씨가 쓴 <탈무드에서 마크 저커버까지>와 육동욱씨가 쓴 <유대인처럼 성공하라>에서 인용함을 밝힌다. 먼저 유대인에 대한 기초상식을 위해 미국 유대인 역사부터 시작해보자. 4년전 나의 칼럼 서문이다.
미국에 이민 오면 유독 유대인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듣는다. 유대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부터 그들의 교육열, 종교관, 사업관련 정보 등 일관성 없는 단편적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세익스피어의 베니스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을 연상하여 피도 눈물도 없는 수전노, 고리대금업자, 악덕 건물주 등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미국에 와서 가장 의아한 것이 유대인 명절날들은 국경일도 아닌데 학교와 금융기관, 법률회사 등 주요기관들이 모두 쉰다는 것이다. 하루도 아니고 일년의 여러날을 말이다. 그리고 미국의 정책은 친 이스라엘 정책이며 유대인의 선거자금 없이는 미국의 어떤 선거도 치르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2008년 미 대통령 양당 후보인 오바마와 메케인 두 명이 유대인 집회에 모두 불려(호출)나가 그들의 이스라엘 정책과 미국 금융정책, 경제관, 안보관 등을 주저리 주저리 보고 하는 것이 언론에 회자되었다. 또 2012년 이란 핵무기 개발을 탄핵하고 핵 기지 공격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워싱톤에서 유대 민족 단합대회가 있었는데 그자리에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옵저버로 불려나가 종전의 신중론을 뒤집고 이스라엘 정책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하였다. 미국 대통령을 마음대로 호출할 수 있는 민족, 누가 상전이고 상왕인지, 마치 야쿠자 전국 조직 집회에 제일 힘센 행동대장이 불려나가 충성 서약을 하는 것 같았다면 너무 비약한건가. 미국의 유대민족은 누구인가?
지구상의 유대인은 약 1,500만 명으로 전세계 인구 60억 기준으로 볼 때 0.25%에 불과하지만 노벨 수상자의 25%가 유대인이다. 그 중에 700만 명이 미국에 살고 있으며 그 중에 1/3이 넘는 250만 명이 메트로뉴욕(뉴욕, 뉴저지, 코네티컷 등 3개 주)에 거주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세계의 수도인 뉴욕의 심장인 맨하튼은 유대인 거리이다. 미국 전체 인구중 유태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불과 2% 남짓하지만 소득 수준 400위에 포함되는 유대인의 비율은 24%를 웃돈다. 그 중에서도 상위 40%를 다시 추려보면 절반에 가까운 40%이상이 유대인이다. 미국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유대인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미국으로 이민온 유대인들은 남북전쟁을 기회로 아메리칸 드림의 초석을 닦았다. 세계 자본시장과 그림자 정부의 좌장인 로스 차일드 가문이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몇번의 전쟁과 혁명을 통해 양국 정부의 금융시장과 화폐 발행권을 장악했듯이 미국의 남북 전쟁은 미국 유대인들에게 먹잇감이 되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영화 대사처럼 나열하자면 유대인들은 자금난에 시달리는 남군으로부터 헐값에 총을 사들여 유럽으로 가져가서 상표만 바꾸어 최신 특제총으로 둔갑시킨 뒤 북군에게 되판다. 그런 다음 군용물자를 더 빨리 운송해 주겠다며 철도를 건설하고, 철도를 건설하라고 내준 땅에서 금광과 석유를 채굴한다. 이렇게 번 돈으로 미국 전역에 전신회사를 설립하는데 대표적 기업이 웨스턴 유니온이다.
유대인들은 그레이엄 벨이 발명한 전화를 시작으로 에디슨이 발명한 전기 혁명에 이른다. 전신 전화 사업은 그후 언론사업을 장악한다. 더 나아가 영화사업과 미디어 사업을 장악한다. 현 시대에 이르러서는 델, 마이크로 소프트, 인텔, 구글, 페이스북 등등, 수많은 컴퓨터 관련 사업과 인터넷 사업, 정보 통신 사업들이 유대인들 소유물이다. 전신 전화사업을 관리하기 위해 탄생한 기업이 제너럴 일렉트릭이다. 전신전화의 발달로 도시가 넓어지고 철도를 깔고 전신주를 건설하면서 철강 수요가 급증한다. 그러자 유태계 부호인 카네기 제철소와 기존의 광산들을 묶어 US스틸이라는 세계 최대 철강기업을 출현시킨다. US스틸의 대주주들은 유대계 대부들인 로스차일드, 밴드빌트, 모건재벌등이다. 여기서 생산되는 철근, 콘크리트, 시멘트 등으로 철도를 건설하고 남은 자재들을 활용하여 백화점, 고층빌딩등을 건설하고, 주요 도시의 빌딩 주인들이 된다. 캐딜락과 포드를 인수하여 자동차 뿐만 아니라, 군함, 탱크, 비행기 등 각종 군사장비까지 생산하게 된다. 그밖에도 파이프라인, 발전소, 대학교 등 닥치는 대로 세운다. 이렇게 엄청나게 벌어들인 돈을 관리하기 위해 월스트리트에 자금관리 은행들을 집결시킨다. JP 모건, 체이스, 아메리카은행, 체이스 맨하탄 은행, 메릴린치, 모건 스탠리, 시티은행, 골드만 삭스, 리먼 브라더스등의 모든 유대계 은행들이 이 당시 설립된다. 이로 인해 1880년대부터 미국 대공항 직전까지 유대인은 미국 산업계의 95%를 잠식하였다고 한다.
유대인 생활 철학 2편 – 유대인의 역사 (5/4/2012)
여러분이 인정하거나 무시하거나 간에 작금의 세계 자본과 세계경제를 주무르고 미국의 정치를 움직이는 민족이 극소수 민족인 유대인들이라고 가정하면, 그들의 생활 철학과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대민족의 역사를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유대인은 천지창조 시대를 기원전 3760년으로 기준한다. 그러니까 지금이 서기 2012년이니까 2012년+3760년 = 5772년 전에 천지가 창조되었으며, 기원전 16~17세기가 최초의 유대인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성서시대로 하고, 13세기를 출애굽기 시대로 400년 동안의 이집트 노예생활을 모세가 탈출시킨 유대인의 자유와 독립의 상징으로 유월절을 명절로 기념한다. 기원전 10세기부터 사울의 초대 왕 등극으로 군주제가 성립되고 다윗과 솔로몬으로 이어진 군주시대는 유대왕국과 북이스라엘 왕국으로 분열 되었다가 7세기에 앗시리아에 의해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고 10개 지파가 흩어지며, 5세기 바빌론에 의해 유대왕국이 멸망하고 이스라엘 땅을 벗어난 유랑생활이 시작된다. 페르시아와 그리스 지배를 지나 3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으로 그리스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63년부터 로마제국의 지배와 헤롯왕의 통치를 받게 되며 이때 예수가 탄생하는 것이다.
기원 후 1세기 동안 유대인의 여러 차례 항전은 실패로 돌아가 예루살렘 지역 내 유대인 거주가 로마에 의해 금지된다. AC 313년에 비잔틴의 지배가 시작되고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기독교가 국교로 선포됨과 동시에 유대인의 기독교인과의 결혼을 금지하며 유대인을 억압하는 법률 등이 제정된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민족 중에 유대민족을 독점 선택하시고 하나님과 직접 계약을 맺었다고 믿는 선민사상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독교로부터 공식적으로 억압받기 시작하는 것이다. 기독교 국가와 국민들에 의한 폭압과 유랑의 역사가 20세기 중반까지 계속된다. 이러니 유대인들이 기독교를 하나님의 종교로, 그리고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하겠는가. 당연히 예수는 많은 선지자중의 한사람일 뿐이고, 구세주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믿는 것이다. 서기 390년 탈무드가 완성되고 6세기경 페르시아 침입과 아랍의 지배를 받지만 아랍은 유대인에게 관용을 베풀어 300년간 유대인의 활동이 활발하여진다.
그러나 11세기부터 십자군 통치를 받음으로써 대부분의 유대인 거주지가 파괴되고 영국은 유대인을 추방한다. 13세기부터 16세기 초반까지 무슬렘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그 기간 동안 유럽인구의 3분의 일이 흑사병으로 사망한다. 그런데 유대인이 흑사병을 퍼뜨렸다는 의심을 받아 엄청난 박해를 받고 스페인도 유대인 추방령을 선포한다. 이 때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함에 따라 유대인들의 미국 이민은 시작된다. 16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며, 칼 마르크스(유대인) 공산주의 이론이 이 때 탄생한다. 1881년부터 1917년 러시아의 유대인 대박해가 시작되어 제1차 알리야 (대규모이민)가 미국이민으로 이어진다. 또한 프랑스가 드레퓌스 대위 사건으로 대대적인 유대인 탄압을 시작한다. 1904년부터 1914년 러시아와 폴란드로부터 제2차 알리야가 시작되며 1918~1948년 동안 영국의 통치를 받게 된다.
1933~1939년 독일로부터 제5차 알리야가 시작되며 제2차세계대전 중에 홀로 코스트 등 유럽에서 600만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당하게 된다. 인류역사상 전대미문의 민족말살 사건이다. 2차세계대전 이전까지도 히틀러에게 유대인들의 대규모 자금이 흘러들어 갔다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대학살을 견디다 못한 유대인들은 로스 차일드 가문를 위시한 유대인 금융거부들의 막대한 전쟁 자금으로 미국과 영국 연합군에 퍼붓는다. 그 결과 연합군의 승리로 전쟁을 마감한다. 전쟁 종식의 일등공신인 원자폭탄도 유대인들의 결정체다. 그 공로로 1947년 UN으로부터 이스라엘 독립을 승인 받고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하게 되며 바로 그들은 제 1차 중동전쟁을 일으킨다. 1948~1952년 유럽과 아랍에서 대규모 이민이 시작되며 1956년 시나이 분쟁으로 제2차 중동전쟁을 일으킨다. 1967년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으로 예루살렘을 재통합하게 되며 제2차 걸프전쟁이 1991년 일어나고, 1994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인정하게 된다.
유대인의 5천8백 년 역사를 대충 훑어보아도 천지창조와 성서시대를 제외하고는 수난과 유랑의 역사였다. 전세계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들의 영토가 없었다. 농경시대에는 그들에게 농사지을 땅을 주지 않았으며 산업화 시대에는 국가와 산업체가 없었다. 그들은 어느 곳에도 정착할 수 없었으며 「게토」라는 유대인 집단 거주지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역사가 바뀔 때마다 학살과 강간의 버림을 받아야 했다. 현재까지도 유대인들이 안심하고 거주할 수 있는 유일한 땅이 이스라엘과 미국 뿐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유대인에게 관대했던 것 만은 아니다. 1960년대 까지만 해도 미국의 극장, 공원, 식당 등 상점은 「개와 유대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붙였다고 한다. 개와 동일한 취급을 받았던 그들은 가슴속에 어떠한 아픔을 새겼을 것이며 매주 토요일마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을까? 수난의 역사로 보면 한국도 만만치 않다. 역사의 대부분이 수난 당하고 침략 당하면서도 한국이라는 땅에서 쫓겨나 유랑의 세월을 살지는 않았다. 강대국의 눈치와 비위를 맞추어가며 버티며 살아온 타협의 역사다. 유대인들과 유사한 수난의 역사를 살았음에도 왜 우리는 쉽게 과거 역사를 망각하며 살까? 유대인 그들 나름대로 세계 최강의 민족이 된 핵심포인트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유랑의 역사이었으므로 그들만의 생활 철학과 이동하기 쉬운 금융산업(돈놀이 사업)에 귀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유대인 생활 철학 3편 – 그 누구도 믿지마라 (5/11/2012)
유대인은 권력에 세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첫번째가 국가가 지닌 권력, 두번째가 민중이 행사하는 권력, 세번째가 정보의 흐름을 조정하는 권력이다. 다른 표현으로 <혀의 권력>이다. 유대인들은 첫번째와 두번째 권력을 가질 수도 없었고 믿지도 않았다.
유대인들은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권위를 인정한다는 것은 <복종>을 의미한다. 그들은 선택받은 선민의식으로 다른 사람의 권위나 권력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대신 그것을 이용한다. 유대인은 유랑민족이었으므로 수천년동안 <정착>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따라서 <경계>라는 개념도 없었다. <환경>이란 늘 변하는 것이므로 한가지 분야와 목표를 고집할 필요도 없었다. 직장이나 자신의 사업체에 집착하지 않았다. 전 세계가 사업체였고 전세계가 생활권이었다. 그들은 <매매의 귀재>들이다. 유대인들은 사업체를 매입할 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3개의 비상카드를 준비한다고 한다. 사업체를 매입하여 위기가 닥쳤을 때 이 3개의 카드를 모두 사용해도 회생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되면 미련없이 팔아버린다고 한다. 손해를 보더라도 팔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유대인의 삶은 계약의 삶이고, 계약이란 당사자끼리 조건을 맞춰보고 맺은 거래다. 계약서에 실린 조건을 글자 한자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도록 훈련받았으므로 권력과 권위를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권력은 환경이 변해도 자신만의 독선으로 <권위>를 지키려는 습성이 있다. 권력의 속성은 인간의 본능이 아닌 의무로 받아들여주길 바라고 그에 대한 책임과 두려움으로 움직여 주길 바란다. 따라서 권력을 유지하는 최대의 무기는 <독선>이다.국가나 기업이나 종교단체도 권력이 커질수록 <독선>도 커진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권력과 권위에 도전한다. 현대 기업과 조직관리에 필수요소인 <싱크탱크>개념도 유대인들이 만들었는데, <싱크탱크>는 기존의 모든 권위를 부정하는데서 출발한다.
그들은 전세계를 유랑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틈새를 발견하는 지혜를 터득한다. 위기를 기회로, 실패를 성공으로, 인내는 성공의 필수조건이며, 인내를 기르기 위해서는 고통이 따른다는 삶의 지혜를 얻었다. “인간의 세포는 시시각각 변한다. 어제 우리와 싸운 적들의 세포는 오늘 아침 다른 새 것으로 바뀐다. 때를 기다려라. 인간의 세포가 바뀌면 인간이 변하고 그러면 사회가 바뀐다. 그러면 우리는 살아남는다.” 여기에 한가지 생존 명제가 있다. 유태인 가정에서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이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말라.> 강한자가 승리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은 자가 승리한다. 만일 너와 내가 동시에 위험해진다면 네 힘으로 살아남을 방법을 찾거라. 아무리 찾아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아빠를 밟고 지나가거라. 아빠도 필요하면 너를 밟고 지나갈 것이다.” 유태인에게 가장 치욕스러울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노년에 자식의 도움이 필요해졌을 때”라고 대답한다.
유대인들은 <누구도 믿지 않는다>. 사업상의 신용은 반드시 지키되 그 외에는 누구도 절대로 신뢰하지 않는다. <사사기>에서 기드온은 민족의 생사가 걸린 전쟁을 치루기 위해 1만명의 군사를 모집한다. 그는 병사들을 시험하기 위해서 시냇가에 데려가 물을 마시게 한다. 7700명은 엎드려서 입으로 물을 핥아 마셨고, 300명만 손으로 물으 떠서 조금씩 마셨다. 그는 이 300명만 데리고 전쟁에 나가 승리를 이끈다. 의심할 줄 모르는 병사, 긴장하지 않는 병사, 만약을 대비하지 않는 병사는 전쟁에 데리고 나가도 시체가 될 뿐이라는 판단이다. 로스차일드도 그렇고 유대 금융업자들은 한쪽에만 전쟁 자금을 대지 않는다. 전쟁에서 한쪽은 반드시 패배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승리자도 패배자도 모두 빚더미에 앉는 것은 마찬가지다. 18세기 이후의 세계적인 전쟁에 유대인의 자금이 투입되지 않은 적이 없을거라고 한다. 19세기 나폴레옹 시절, 유럽 황실에서는 “로스 차일드는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고, 전쟁을 중지시킬 수도 있다.”라는 말이 유행된 적도 있다. 미국 남북전쟁,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중동전쟁, 월남전쟁 때도 그러하다.
유대인들이 <누구도 믿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부정한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인간은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으로 판단을 거르칠 때가 많다. 또는 여론이나 대중심리에 이끌려서 의사결정을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 이외에는 모든 것이 변하므로 믿지말고, 여러가지 상황을 가정하여 미리 여러가지 대안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기존의 결정에 의문을 가질 때 창의력이 생긴다. 유럽 시트로엥 자동차 의 설립자인, 앙드레 시트로엥의 경영철학은 “뛰어난 장사꾼은 비가 오는 날에 우산을 팔지 않는다. 뛰어난 장사꾼은 화창한날 우산을 파는 사람이다. 비는 언젠가는 내리며 하나님만이 아시기 때문이다. 지금은 필요하지 않지만 우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좋다. 갑자기 비가 내리면 당신에게 우산을 주고 비를 맞으며 집에 까지 걸어갈 어리석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속담에 <돈을 벌고 싶다면 혼란을 틈타라> 라는 말이 있다. 이번 세계적 금융위기의 혼란기 때 누가 돈을 벌었는가. 미국이 2조달러의 막대한 돈을 찍어내어서 누구에게 주었는가. 대부분의 돈을 월스트리트의 금융 부자들과 그림자 정부에게 주었다. 그들이 누구인가. 유대인들이다. 그러면 평범한 서민들은 이 혼란의 시기에 무엇을 하는가. 공포와 두려움에 갖혀 이불 뒤집어 쓰고 이 혼란의 태풍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경기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린다. 시대가 혼란할수록 돈이 돈을 벌고, 부자가 돈을 벌며,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짐을 나같은 업종에 종사하다보면 현장에서 절감한다.
유대인 생활 철학 4편 – 혀를 지배하는자 (5/11/2012)
유대인의 사업 원칙 중에서 첫번째가 먹는 장사를 하라는 것과 여자를 상대하라는 것인데, 여자들은 음식을 먹으면서 말을 많이 하기 때문이란다. 작금의 금융위기로 장기 불황에 빠져 있는 한인 자영업들도 이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많은 업체들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도 수익을 창출하는 업체들은 동종 부류의 장사들이다. 그리고 재고 부담이 없는 사업들, 랜트비용 등 고정지출 비용이 적은 사업들, 시설투자, 사업 융자금, 재고 비용 등의 감가상각이 적은 사업들이 살아남는다. 즉 몸이 가벼운 사업들이다. 그리고 여성들 특히 중,상류층이 주고객인 사업들이다. 아니면 동일지역의 중소 경쟁업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과감한 투자사업이다. 나의 직업은 수백개의 사업체를 매물로 가지고 있으며 각각을 분석 비교하여 고객이 최상의 선택을 하도록 돕는 일이다. 물론 불황에 잘 되는 업종이라고 해도 천차만별이며 모두 잘되는 것은 아니다. 사업체의 성공과 실패에는 반드시 가게 자체에 원인이 있다. 지면에 그 원인들을 공개하지 못함은 그로 인해 피해보는 사업주들이 있을까 하는 노파심이다. 불경기가 장기화 될수록 빈부의 격차는 점점 심해진다. 따라서 불경기 동안은 지금 잘 되는 사업은 계속 잘 되고, 지금 안되는 사업은 점점 더 안될 것이다. 원인을 찾아 해결할 수 없다면 다른 배로 갈아타야 한다.
유대인들은 <혀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믿는다. 태초부터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해와 달이 생기고 우주 만물이 창조되었다고 믿는다. 로스 차일드 가문이 유럽의 금융 시장을 장악한 계기도 워터루 전투의 한발 앞선 정보 때문이었다. 이 가문의 경영 방침은 “그 나라의 혀를 지배하는 것은 머리를 지배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머리를 달라고 하면 화를 내지만, 혀를 달라고 하면 쉽게 내준다.”라고 한다. 유대인들이 19세기 철도와 전신 사업을 장악한 이유도, 세계 정보 통신 부분을 장악한 이유도, 컴퓨터와 인터넷 시장을 장악한 이유도, 세계 미디어 사업과 언론 사업을 장악한 이유도, 세계 식량을 장악한 이유도 모두 <혀의 권력>을 믿기 때문이다.
세계 5대 곡물회사가 지배하는 곡물 유통 시장은 전 세계 유통량의 80%이상을 차지한다. 세계 곡물의 80% 이상이라는 의미는 세계 인구들이 매일 먹어야만 하는 음식의 대부분을 의미한다. 세계 5대 메이저 곡물회사의 세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기업주가 모두 유대인이라는 것, 둘째는 철저한 가족 경영이라는 것, 셋째가 비상장 기업이라는 것이다. 이원칙은 유대인 금융회사들도 마찬가지다. 결혼도 사촌간, 친척간에 이루어진다. 집안에서 정해준 친척과 결혼을 해야 하며 거부할 경우 재산 상속권을 포기해야 한다. 또 모두가 비상장 회사들이므로 재무구조가 외부에 드러난 곳이 단 한 곳도 없다는 것이다. 얼마에 거래하고 얼마의 이익이 발생하는지, 얼마의 돈을 벌어서 어디에 투자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지구상의 모든 현대인들이 매일 아침 일어나서 먹고 마시고,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일하고 채팅하고, 신문과 TV를 통해 정보를 얻고 휴식을 취하고, 쇼핑하는 대부분의 사업들이 유대인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면 그들의 <혀의 권력>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여러분의 고객도 <혀의 권력>이다.
또 유대인들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토론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두개의 눈으로 결정하는 것 보다 여러개의 눈으로 결정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철학은 <성벽을 거부함으로 성공한다.>는 것이다. 동양사에서 유일하게 모든 유럽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13세기 말 몽골제국의 징기스칸은 “성을 축조하는 민족은 망할 수 밖에 없다.”고 일갈했다. 성을 높이 쌓을수록 성안에 갇힌다는 것이다. 몽골민족은 기동성이 뛰어난 기마력으로 유럽의 성들을 무너뜨렸다면, 유대인들은 끊임없이 권위를 부정하고 의심하고 대항한 덕분에 기존시장의 벽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어 성공한 민족이다. 아이러니칼하게도 몽고족들은 <원>이라는 제국을 세우고 성을 만들고 권위를 높이다가 망하고 만다. 이점은 한국의 기독교도 반성할 문제다. 적게는 수십억원, 많게는 수천억원을 투자한 그 교회의 성벽은 누구를 위한 성벽이며 권위인가. 과연 예수가 기뻐할까. 결국은 그들의 권위요 욕망이요 교만이다.
또 다른 철학은 <인생의 마지막 한수를 마련하라.>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뒤쳐진 자들을 위한 완충지대가 없다. 위기의 순간을 낙관적으로 보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낙관은 무의미한 비관보다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낙관했다가 결과가 잘못되면 그때의 좌절은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스스로 삶의 마지막 한 수를 준비하여 인생의 완충지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희망과 유머>다. 살면서 어떠한 위기가 닥치더라도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그것은 마음가짐이다.위기를 기회로 만들 것이냐, 위기를 실패로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는 내가 결정하기 나름이다. 유대인들은 거창하게 미래를 꿈꾸고 계획하는 것을 희망이라고 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 그것만으로도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유머도 상황을 반전시키는 히든카드가 아니다. 어차피 시련은 사람을 눈물나게 한다. 탈무드에 “울어도 눈물이 나고 웃어도 눈물이 난다. 이왕 흘릴 눈물이라면 웃다가 흘리는 눈물이 낫다.”라는 것이 유대인의 숨겨놓은 마지막 한수다. 유명 코메디언 중에는 유대인들이 많은 이유다. 나도 혼자 낄낄대며 코메디 프로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아내는 나이값도 못한다고 핀잔이다. 남편의 깊은 뜻도 모르면서…
유대인 생활 철학 5편 –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5/18/2012)
유대인 역사에서 최고의 현자로 꼽히는 사람은 기원전 930년경에 왕위에 오른 솔로몬 왕이다. 이스라엘을 통일한 다윗의 아들이며, 구약의 <아가서>, <잠언>, <전도서>를 쓴 사람이다. 솔로몬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10킬로미터가 떨어진 가드온에 찾아가 매일 양 한마리를 제단에 바치며 천일을 기도하니 하나님이 그에게 한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을 하신다. 솔로몬은 하나님으로 부터 단 한가지 <지혜>를 구했다. <잠언>은 히브리어로 ‘솔로몬 왕이 가르치는 슬기로운 삶의 지혜’라는 뜻이고, <전도서>는 ‘백성에게 지혜를 전파한다’라는 뜻이다. 유대인들의 첫번째 삶의 목적은 <지혜를 얻는 것>이라 단언한다.
솔로몬의 인생 결론은 <전도서>에서 인간의 삶이 한마디로 <헛되도다>라고 정의했다. 그는 후손들에게 인생은 헛된 것이며, 이땅의 주인은 결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한 시대의 새로운 변화도 우리가 알지 못할 뿐, 이미 옛 선인들이 체험한 변화이므로 <이 세상에는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라는 것이다. 솔로몬의 주장은 허무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세상은 급격히 변해도 변화의 본질인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벌어지는 마찰음이며 이것을 <관계의 조화>라고도 말하는데, 이것이 삶의 본질이다. 삶의 본질인 인간은 5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없으니 <온고지신 :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라는 지혜는 우리네 조상들의 가르침과 다를바 없다.
우리가 말하는 <탈무드>는 어떤 종교적 가르침이 아니라, <탈무드>자체가 인생이며 인간의 본질과 삶을 이야기한 것이다. 유대인에게 생명과 같은 세가지 책이 있다. 첫째가 <토라>다. 구약 1권에서 부터 5권까지, 즉 이집트에서 탈출한 모세가 40년동안 집필한 5권의 경전이다. 유대인들이 이것을 성서럽게 여기는 이유는 하나님과 유대 민족간의 계약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토라>는 그들의 <계약서>다. 구두로 한 계약이니 <언약서>다. 두번째는 <토라>를 제외한 나머지 <구약>이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어느 유대인 집안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어떻게 민족을 이루고 번영을 누리다가 디아스포라 (뿔뿔히 흩어짐, 이산)되었는지, 시대별로 유대 민족이 걸어온 발자취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즉 <구약>은 유대인이 작성한 유대인 그들의 역사책이다. 방랑의 세월을 산 유대인들에게는 이정표요 나침반인 셈이다. 그러니 유대인이 말하는 <구약>의 하나님과 예수가 말씀하신 <신약>의 하나님과 마호메드가 말하는 <코란>의 하나님은 동일한 하나님인 동시에 서로 다른 하나님인 것이다. 자기가 믿는 하나님이 맞다고 생각하니 긴 역사 속에 허구헌 날 서로 싸우고 죽이는 것이다. 종파주의나 율법주의나 근본주의 등 모든 종교분쟁도 여기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유대인들은 어떠한 지도자라도 그를 추종하지도, 믿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뱀에게는 머리와 꼬리가 모두 필요하며 지도자는 뱀의 머리일 뿐이라는 것이다.
세번째가 인생 가르침인 <탈무드>다. 총 63권으로 1만 2천장이 넘는 분량과 250만개 이상의 단어를 포함한 거대한 지침서이다. 무게만 75킬로그램에 달한다. 수천년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유대민족의 지혜와 지식을 기원전 500년부터 서기 500년까지 1천년에 걸쳐 약 2천명의 랍비들이 집대성한 책이다. 탈무드의 맨 마지막장은 백지로 되어 있는데 삶이 계속되는 한, 탈무드의 지혜도 계속 된다는 믿음이다. 유대인들이 <탈무드>와 <지혜>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이유는 그들의 유랑 경험에서도 깨달은 것이다. 타 민족들은 땅과 물질을 소유할 수 있었지만 유대인들은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으므로 머릿 속에 삶의 지혜와 고유한 생활을 담는 것으로 그들만의 뿌리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그리스 신전이나 로마의 웅장한 건축물들은 과거의 유산으로 남아 있을 뿐이지만 지혜를 이어온 유대인들은 현재의 삶에서 영광을 되찾은 것이다. 아무것도 가질 수없었던 유대 민족들은 머릿속에 삶의 지혜와 고유생활을 담는 것으로 그들의 뿌리를 유지해 왔다. 디아스포라 이후 유대인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앉혀놓고 묻는 질문이 있다. “만약 사람들이 우리집을 불태우고 우리가 가진 것을 모두 빼앗아 간다면 너는 무엇을 가지고 도망쳐야 할까?” 힌트는 “모양도 빛깔도 냄새도 없어야 들키지 않고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정답은 “이 세상에 그런 것은 <지혜>밖에 없다” 유대인 은 지식보다 지혜를 더욱 값지게 여겼는데, 지식은 형태가 있지만 지혜는 형태가 없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도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무소유>가 아니라 필요 없는 것을 버리는 것이 무소유”라고 말씀하신다. 결국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갖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으니 무엇보다 먼저 <인간을 이해하라>고 한다.유대인은 세상에 일어나는 변화는 망상에 불과하다라고 말한다. 변화를 추종하는 것은 망상을 추구하는 것이며, 변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니 인간의 본질을 관찰하라는 것이다. 성공한 인생은 변화하는 시대에 얼마나 잘 적응했는지, 변화의 시대를 얼마나 잘 활용했는지가 아니라, 본질인 인간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했는지로 결정된다고 한다. 인간은 오감본능과 욕망의 화신인 동시에 고독과 두려움의 결정체이기에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한다. 사업을 성공할려면 고객의 트랜드와 심리 변화를 읽어야 하듯이, 결국은 인간 경영학이 키워드다. 유행가 가사처럼 “유행따라 사는 것도 제멋이지만, 님과 함께 지혜롭게 산다면 나는 좋아…”
유대인 생활 철학 6편 – 부끄럽지 않는 삶 (5/25/2012)
유대인들은 어떤 삶을 살기 원할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스스로를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기 원한다고 한다. 사람이면 누구나 부끄러운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타 종교간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먼저 기독교의 예배는 <Pray>로 ‘신께 부탁드린다’ ‘신을 의지한다’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에게 내 삶의 일부를 바치는 성격이 강하다. 기독교의 <기도>를 두단계로 나누면 잘못한 죄를 반성하고 용서받는 종교적 특성과 나의 힘으로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의 절대적 권능에 도움받아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성격이 담겨있다. 또 흔히들 기도의 순서를 다섯단계로 나누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나의 죄를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며, 내 자신과 이웃과 힘든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전지전능으로 도와달라고 소망하는 중보와 간구를 하고, 그래도 어려운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해 주심을 감사하는 형식을 갖춘다. 하지만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일단 하루 3번씩 정해진 시간에 예루살렘과 성지를 향해 무릎 꿇고 기도와 예배를 드리는 유별스럼은 익히 알고들 있다.
특히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세계 수많은 민족 중에서 자기들 이스라엘 민족만을 선택하셨다는 <선민 의식>이 믿음의 핵심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유대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쌍방간에 서로 계약을 했다는 것이다. 계약은 서로에게 조건이 있다. 하나님의 조건은 유대인들에게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약속을 미리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조건은 선택받은 신의 동반자로서 하나님을 대신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대로 살았는지 스스로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즉 유대인의 예배와 기도는 배움의 연장이다.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내가 속한 세계를 관찰하는 것이다. ‘기도한다’의 히브리어는 <히트파렐>인데 그 의미는 ‘스스로를 평가한다’ ‘나 자신을 저울에 달아본다’라는 의미다. 유대인의 종교라는 의미는 ‘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대신해 인간이 무언가를 실천해야 한다’는 신념에 사로잡혀 있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인식 차이는 인간들의 입지를 하늘과 땅 차이로 만든다. 하나님을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절대자로 보느냐, 아니면 “갑”과 “을”관계의 계약 당사자로 보느냐는 주종관계냐, 동반관계냐를 의미한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그들의 역사인 <구약>에 목숨을 거는 것은 이해하지만, 현대 기독교가 <신약>을 멀리하고 <구약>에 매달리는 것은 왜일까? 살만 하니까 <예수>가 귀찮고 <예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짜증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점점 <예수없는 교회>가 많아진다고 한다. 또한 기독교가 유대교에 비해 훨씬 더 권위적이고 형식적이며 강제적이고 배타적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유대인들이 현 시대에 와서 세계를 장악할 수 있는 또 다른 큰 요인은 유대인 엄마들의 교육열 때문이라고 한다. 일명 <헬리콥터 엄마>들인데 이 점은 <한국 엄마>들도 못지 않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는 아이들을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나만의 개성을 살린다> 라는 주관이다. <개성이 없는 획일화>는 현대 자본주의 교육의 숨은 함정 때문이기도 하다. 기회가 되면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가 저술한 <부자들의 음모>, 장하준 교수가 저술한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나쁜 사마리아인> 들에서도 지적한 현대 교육의 함정을 말할 것이다. 그림자 정부는 세계인들이 짜여진 틀 속에서 정규화된 교육을 받고 졸업하면 정해진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월급을 받기를 원한다. 그들은 우리가 부자 되기를 허용하지 않으며 부자 되는 방법을 알기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계 어느 학교도 부자가 되는 교육은 시키지 않는다. <한국 엄마>들이 원하는 목표는 짜여진 틀 속에서 일등하기를 원한다. 일류 고등학교와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일류 기업에서 일하기를 원한다. 인기학과를 원한다. 우리 기성 세대도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면 모두가 동일한 교육을 받음을 인정한다. 평범한 삶으로 살아가는데 전혀 필요도 없고, 한번도 사용해 본 적도 없는 어려운 과목들을 기억할 것이다. 사회생활하는데 거의 사용된 적이 없는 <죽은 지식>이었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유대인 엄마들은 자식이 남들과 다르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개성이 강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현대 정보화 시대의 주역들은 대부분이 유대인들이다. 그들 중에서 대학원은 커녕 대학교 조차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유대인들이 의외로 많다. 대표적 인물이 빌 게이츠다. 하지만 빌 게이츠가 컴퓨터 분야의 천재가 되기까지 그의 엄마가 쏟아붓는 열정과 돈은 <일만시간의 법칙>의 대표 사례가 된다. 즉 누가 무엇이라 하던지간에 내 아이만의 개성을 살리는데 총력을 다하는 것이다.
<탈무드>의 이야기 한편이다. “사람들이 바보라고 놀려대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하루는 랍비를 찾아가서 묻기를 “랍비님, 제가 어리석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왜 저를 바보라고 놀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정말 바보입니까?” 랍비가 대답하기를 “자신이 바보라고 아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그러니 자네는 바보가 아니야.” 그 사람은 랍비에게 다시 묻기를 “제가 바보가 아니라면 사람들이 왜 저를 바보라고 놀릴까요?” 랍비가 다시 대답하기를 “그러고보니 자네가 바보인게 맞는 것 같네. 남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자신이 바보라고 생각했다면 자네는 바보가 맞네.” 그러면 나는 누구인가? 정녕 바보인가, 아니면 나름대로 개성이 뚜렷한 지성인인가 ? 묻는 자체가 바보인게지…
유대인 생활 철학 마지막편 – 신의 한수 (6/1/2012)
장기에 ‘신의 한수’라는 용어가 있다. 상대방보다 ‘한수 앞을 내다 보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당신에게 <신의 한수>라는 능력이 있다면, 경쟁자들보다 한수를 앞서 내다볼 수 있으니 백전백승, 불패신화를 만들 것이다. 당연히 당신의 인생은 성공할 것이고 엄청난 부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신의 한수>는 신이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몇편의 칼럼을 통해 유대인들의 문화와 생활 철학을 논할 수는 없겠지만 전체적 흐름에 공통분모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사람>이다. 비단 탈무드 뿐만 아니라 현대 경영학도, 기독교도, 불교도, 선각자들도, 현자의 가르침도 키워드는 <사람>이다.
남이 갖지 못한 <신의 한수>를 갖기 위해서는 첫번째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느 사회학자는 현대사회의 가장 기본요소를 <다양성>이라고 한다. 개개인의 창조적 개성이 중요해진 시대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에게 ‘개성이 없다’라는 말은 ‘창조성이 없다. 능력이 없다’라는 말과 직결된다. 한국사회에 ‘개성이 강하다.’라는 표현은 ‘튄다’라는 통용어로 비난의 대상이었다. 지금의 40대이후 기성세대들에게는 ‘모난 돌이 얻어맞는다. 흐름에 따라가야지, 튈려고 하지마라. 좋은게 좋다. 둥글둥글 살아라. 대세를 역류하지마라. 강하면 부러진다. 눈치껏 살아라. 적을 만들지마라. 설치지마라. 나대지마라….’ 등등의 생활 신조어가 몸에 베어있다. 개인보다는 가족이 우선이고 단체가 우선이고 조직이 우선이었다. 개인의 의견은 무시되고 개성은 억눌러야 했다. 사회가 세분화될수록 타인의 눈을 빌려 자신을 관찰하고 타인의 입맛에 맞게끔 자신을 포장할려고 했다. 하지만 시류란 언제 변할지 모른다. 여자의 마음처럼, 한번 바뀐 유행이 두번 바뀌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어야 하며 그것이 현대 사회의 경쟁력이다. 남과 같아서는 이길 수 없다.
사람들은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결국 <설득>을 할려고 한다. 설득은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의견을 강요하는 것이다. 강한자가 약한자를 억누른다. 한때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상대방과 나의 차이점을 미리 파악해서 내게 유리한 결론을 상대방에게 주입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설득>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대다수 유대인들은 상대방의 논리에 설득당하지도, 또는 자신의 의견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려고 하지도 않는다. <탈무드>에서는 “타인의 말에 흔들리지도 말고, 흔들지도 말라. 모든 인간이 같은 방향으로만 걸어간다면 지구는 금방 기울어질 것이다.”라고 한다. 유대인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자의가 아닌 타의로 설득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을 양보를 모르는 이기주의자, 자기 주장만 고집하는 독선주의자로 보일 수 있다. 유대인의 도서관에 가면 두세명 단위로 모여 주제별로 토론하는 광경을 목격한다고 한다. 유대인이 토론에 강하고 유명 변호사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어떠한 문제라도 해답은 한가지가 아니라 여러개가 될 수도 있는 다양성과 개연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 의견도 맞고 상대방의 의견도 맞을 수 있다. 그러니 내 의견을 위해서는 더욱더 내 개성을 살려 발전시켜야 한다는 역설 논리다.
따라서 나의 개성을 살리기 위한 두번째 해답은 <자기 연마>이다. 유대인은 평생을 배움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남조시대의 문인 <강엄>은 “묵묵히 자신의 정신을 가다듬는 자만이 훗날에 유일하게 남과 구별된다.”라고 했다. 자기 자신을 연마하는 것만이 남과 나를 구별하는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 유대인에게 지혜는 묵묵히 자신을 가다듬는 행위이며 그 지혜를 남의 요구가 아닌 자신의 요구에 맞게 실천하는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믿는 것이다. 삶의 전반에 걸쳐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지혜를 연마해 온 강한 개성이 현대사회를 장악한 민족의 원천이 된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신의 한수>를 준비하기 위해 5천년동안 탈무드라는 인간의 보고서를 써 왔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시간이다. 탈무드에 “몇십년을 더 산다고 하다라도 오늘 손에 쥘수 있는 것은 오늘 하루 밖에 없다.” 유대인은 ‘know how’ 보다 ‘know what’을 중시하는 민족이다. <how>는 <what>을 위한 출구일 뿐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how>에 모든 시간을 허비한다. <what>이라는 목적과 목표가 불안한데 <how>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나 불교의 ‘자아 성찰’도 같은 맥락이다.
마지막편 팁으로 <부자가 되는 열가지 지혜>를 열거한다. 첫째, 돈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버린다. “돈은 악도 저주도 아니다. 돈은 인간을 축복해 주는 고마운 친구다. 돈을 빌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자랑하지 마라.” 둘째,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세째,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부자가 되는 유일한 길은 내일 해야 할 일을 오늘 하고, 오늘 먹을 음식을 내일 먹는 것이다. 네째, 일확천금을 꿈꾸지마라. 100억원도 1원에서 시작한다. 다섯째, 늘 저축하라. 가난한 사람이 돈을 버는 유일한 방법은 쓰지않고 저축하는 것이다. 여섯째, 빚을 지지 마라. 가난해서 빚을 지는 경우보다 빚 때문에 가난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일곱째, 보증을 서지 마라. <잠언>에 “너는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지말며, 남의 빚에 보증을 서지마라.” 여덟째, 거짓말을 일삼지마라. 거짓말로 인한 실패는 신뢰를 잃은 것이므로 재기할 방법이 없다. 아홉째, 남에게 인색하게 굴지마라. “남을 구제한 자가 윤택해지고, 베푸는 자가 부유해진다.” 타인의 도움없이 이 세상에 부자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열번째는 무엇일까?
외로운 사람들 (6/8/2012)
오늘도 상담 중에 여자 손님 한분이 한참을 울다가 가셨다. 내 마음은 물에 젖은 창호지처럼 맥없이 내려 앉는다. 나의 손님들은 6년동안 쓰고 있는 나의 칼럼 때문인지 나를 오랜 친구처럼 살갑게 대해 주신다. 그리고 나에게 그들의 살아온 많은 이야기들을 하신다. 나도 이민 생활을 힘들게 고생하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다. 가난한 이민자들 대부분은 자식들 이야기를 하실 때 우신다. 남편 이야기를 할 때는 분노와 증오로 시작하여 ,애증과 팔자 소관으로 체념하기도 하지만,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자식들, 심지어 30대 미혼 자식 이야기를 할 때에는 목이 메어 우신다.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흔히들 팔자 고치기 위해 조국을 등지지는 않는다. 당장 먹고 살기가 어려우니 자식들만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성공시키기 위해 이민을 온다. 이민와서 이날까지 열심히 일했지만 깨어진 쪽박에 물붓기처럼, 좀처럼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여 바닥까지 떨어졌던 사람들은 화병까지 안고 사니 자신의 몸도 영혼도 너덜너덜한 휴지 조각처럼 느껴진다. 지금처럼 불황이 장기화되고, 하는 일마다 안되면 불안감은 더욱 가중되어 가족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힌다. 자식은 다니던 대학을 중단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으며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다. 부모들은 싸우기 일쑤다. 엄마는 신경질로 악을 쓰고 아버지는 고함과 술기운으로 화를 낸다. 아이들은 각자 자기 방에 들어가서는 문을 잠그고 부모와의 대화를 거부한다. 이날까지 이민와서 자식들에게 제대로 해 준게 없다는 엄마의 자조는 우울증으로 변한다. 우울증 약이나 수면제가 없으면 잠자리에 들 수가 없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낯선 도시의 타인들 처럼 느껴진다. 교회도 자신의 영혼을 위로하지 못한다고 거부한다. 나는 말없이 듣고 있지만 나도 마음 속으로 함께 울고 있다. 누가 이들을 외롭게 하는가.
어쩌면 <외로움>은 내가 평생 끌어앉고 살아야 하는 애물단지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세상 모든 삶들이 외로움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홀로 선 나무들>이다. 하나님 이외에는 나의 외로움을 치유할 수 없다. 한국에서 살면 덜 외롭고 이민와서 살면 더 외로운 것은 아닐 것이다. 내 주위의 이민자들을 둘러보면 내 눈에는 모두가 외롭게 보인다. 내 자신도, 내 아내도, 내 아이들도, 목사님도, 가까운 지인들도, 가진 자들의 어설픈 여유에도, 수다스러운 여자들의 웃음 소리에도, 황혼의 나이에 새출발하는 신랑 신부의 얼굴에도, 모두의 얼굴에는 외로움이 스친다. 나는 혼자서 운전을 하거나, 사무실 내 방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보면서 문득 외로움을 느낀다. 30년을 살 맞대고 산 아내도 무심한 남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자식도 이방세계의 우주인과 이야기 하는 것 같을 때 외로움을 느낀다.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그 때 그 시절 그 선택을 다시 한번 할 수 있다면..등등의 후회는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든다. 아내도 많은 나날을 내가 없는 곳에서, 혹은 화장실에서 수도물을 틀어놓고 외로워서 울었는지 모른다.
작년 가을쯤인가 잠이 오지 않아 책을 보다가 아들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 같아 아들 방문 앞에 다가갔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 아이는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목을 쥐어짜는듯한 외로움의 울음이었다. 나는 아들의 방문을 열지 못했다. 그 아들을 위로하지 못했다. 그 아이의 울음은 내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성공에 대한 압박, 부모가 거는 기대, 명문대학에 입학해야 한다는 중압감, 남자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 등, 나는 끊임없이 내가 하지 못한 꿈들을 그 아이에게 강요한 것이다. 내가 그 아이를 울린 것이다. 이민 온 아들은 방안에서, 이민 온 아버지는 방 밖에서 그렇게 서로가 모르게 울어야만 했다. 그날 이후로 그 아이에게 나의 꿈을 강요하지 않키로 했다. 그리고 대학가면 사 주겠다던 노트북과 핸드폰을 다음날 사 주었다. 특히나 이민자들은 외로운 사람들이다. 황혼의 남남이 만나 결혼을 하는 것은 <훼드라..죽어도 좋아>의 영화 제목처럼 죽고 못살정도의 사랑 때문은 아닐 것이다. 외로움이 죽기보다 더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미리 다짐을한다. “당신이 나보다 먼저 죽으면 <49제>를 정성껏 지내주고, 돌아서는 즉시 나는 다른 여자와 재혼한다.” 라는 공표다.
외로움은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외로움은 반복되는 <시장끼>와 같다고 했을까. 시장끼가 있어야 밥이 맛있듯이, 외로워야 더욱 사랑하고 싶어지는 것이 아닐까. 외로움은 목마름이다. 상대에 대한 욕구와 희망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상대를 의지하고 원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바램>이 충족되지 않을 때 토라지고 삐지고 등을 돌리고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다. 그렇다고 외로움을 내려 놓아서는 안된다. 외로움을 체념해서는 안된다. 외로움을 지워버리면 <거식증 환자>가 된다. 외로움은 없앨려고 할수록 더욱 더 커지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시장끼>정도로 옆구리에 끼고 살자. 배가 고프면 좋은 음식 재료를 찾아서 내가 직접 요리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게 먹으면 된다. 하지만 외로움이 깊은 사람은 사랑의 재료를 찾아 나서지 않는다. 나의 입맛에 맞게 요리해서 먹지를 않는다. 외로움은 새롭고 신선한 재료를 지속적으로 찾게 하는 동기부여다. 또한 외로움이 없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사시사철 된장찌개만 먹는 사람과 같다. 아무리 내가 된장찌개를 좋아한다지만 계속 먹는다는 것은 참으로 멋이 없는 인생이다. 또 상대방을 질리게 하는 이기심이다. 외로움은 사랑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사랑은 외로움을 시장끼로 내가 만든 셀프 요리다.> 라고도 정의할 수 있을까.. 오늘 저녁은 무슨 요리를 만들어 아내를 즐겁게 할까…
나그네 본향 (6/15/2012)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고 한다.. 우리는 낭만시의 최고봉인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를 기억한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 술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기가 막히는 시다. 단어들의 연결이 한점 군더더기가 없다. 언젠가 이런 시를 쓰고 싶다.
누구나 우리 스스로를 나그네라고 인정한다. 왜냐하면 두가지 불변의 진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죽는다는 것과 죽을 때는 누구나 빈손이라는 것이다. <나그네>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 고장을 떠나 다른 곳에 임시로 머무르고 있거나 여행 중에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면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어디인가. 여행지인가 종착지인가. 본향인가 타향인가. 내가 나그네이며, 여행자라면 나는 어디서 왔으며, 또 어디로 가는가. 태어난 곳과 자라난 곳이 있을 것이고 떠나온 곳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곳을 <고향>이라고 하자. 그 고향은 내가 다시 돌아갈 곳인가. 아니다. 고향은 나의 육신이 태어나서 자란 곳이지, 나의 영혼이 태어나고 또 돌아가야만 하는 곳은 아니다. 육신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짧은 인생을 살면서 고생 고생 하다가 그냥 흙으로 돌아간다면 너무 허무한 일 아닌가.
육신의 고향이 아닌, 나의 <본향>은 어디인가. 태초에 내가 살던 그곳,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곳, 하나님으로 부터 이 땅에 내려가 <사랑하라>는 사명을 받고 떠나온 곳, 사명을 완수하고 돌아오라는 그곳, 죄사함 받고 구원받아서 가야 할 그 곳, 그곳을 우리는 <본향>이라고 부른다. 불교에서는 본향을 극락이라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본향을 <하늘나라>라고 한다. 어쩌면 <하늘나라>로 가는 길은 <좁은 문>이므로 들어가기에 어려울 수 있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본향>이 아니라 이 땅일 수 있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우리를 이 땅에서 만들었을 수 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하늘나라>로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신학적으로 <본향>을 논하고 싶지는 않다. 하나님과 하늘나라를 인간의 <조건부적 한계성>에 한정시키고 싶지 않다. 절대자는 인간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위대함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나 <본향>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싶다. 다만 어떤 모습으로 <본향>으로 돌아갈지 그것만 다를 뿐, 그것은 각자의 몫일 것이다..
올봄에 아내가 미국 시민권 선서식을 하였기에 기념사진도 찍어줄겸 해서 동행을 했다. 나는 아내보다 몇달 전에 혼자서 미국 시민 선서식을 했는데 그때는 별 감정이 없었다. 그런데 아내의 선서식을 지켜 보면서 마음이 뭉클했다. 이민자의 삶이 그러하듯이 내 의지와는 별 상관없이 이미 짜여진 좁은 통로를 무조건 지나가야만 하는 세월이었다. 통로가 좁으니 몸을 되돌려 돌아 갈 수도 없는, 내가 몸을 되돌려 나가면 나를 믿고 뒤따라 오는 가족들을 밟고 지나가야 하는, 그래서 선택의 여지가 없이 무조건 앞으로만 가야하는, 그런 갑갑함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별 연고도 없이, 가진 돈도 없이, ‘어떻게 되겠지. 굶지는 않겠지, 애들 학교는 보낼 수있겠지’라는 막연함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은지 만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별 한 것도 없이 먹고 사는데만 10년이 흐른 것 같다.
여행비자로 도착한 미국은 시작부터 모든게 생소하였으며, 내가 몇차례 출장와서 느끼던 미국과도 완전히 다른 나라였다. 적응할 여유도 없이 사전 정보도 없이, 신분 유지를 하기 위해 가진 돈을 모두 털어 구멍가게를 샀다. 변호사는 투자 금액이 너무 작아 E-2 비자가 나올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내가 책임진다며 강제로 접수시켰다. 그런데 E-2 비자가 승인되었다. 영주권 신청도 수많은 우여곡절과 고비들을 넘겨야 했다. 자식들 나이가 성인이 될 나이인데 오늘 내일 풀린다는 이민정책은 애간장만 태우고 여러해를 넘기던 세월이었다. 지금까지 거쳐온 과정에서 나의 자존심은 용납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미국시민이라고 하니까 기쁘기는 커녕 착잡한 기분이었다. 어쩌다가 내가 미국 시민까지 되었는가. 미국은 내 인생에서 지나가는 여행지였는데, 이제 이 곳이 종착지란 말인가. 나의 고향과 본적지는 부산이다. 나는 48년을 한국에서 산 한국 사람이다. 그런데 이 나이에 미국인이라니. 궤도를 벗어난 우주선을 탄 기분이다. 물론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일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죽는 날까지 고향인 부산에서 살 일이 있을까. 굳이 여행이라면 몰라도 그곳 부산에 누가 있어 나를 반겨줄 것인가. 태어나서 자라난 20여년의 고향은 이미 빛바랜 기억들 뿐이다. 또 한국에는 나를 반겨줄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형제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빈 몸뚱아리만 가지고 한국에 돌아가서 살 수 있을까. 이미 나에게는 한국도 타국이고, 미국도 타국이 되어버렸다. 어디에서 살던지 모든 곳이 타향이다. 어디에서 사나 타향을 떠도는 신세니 나는 <나그네>인 것이다. 정든 님과 정들어 살면 그곳이 제2의 고향이 아닐까. 살다가 살다가 모든 것 훌훌 털어버리고 아버지가 계신 <본향>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미국 시민으로 살아보자. 사는 그날까지 아무리 나그네 신세라고 하지만 공짜밥을 얻어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기좋고 물 좋은 곳에서 나를 미국시민으로 보호까지 해 주니 밥값은 하고 가야지..
황주경 시인의 <나그네>의 마지막 소절을 음미하면서… “~ 사랑을 안고 가는 행복한 나그네 / 빈 가슴 왔다가 사랑 채워 가져가니 / 받은 사랑 빚으로 남기지는 말아야지 / 간곡한 기도마다 눈물로 거름삼고 / 머문 자리 뒤돌아 추함은 없는지 / 그것도 상관 말고 진실 되게 가야지.”
지역 한인 실물 경제 (6/22/2012)
요즈음 우리 지역의 한인 사업체를 다니다 보면 문제가 심각하다. 문을 닫는 가게도 많고 언제 문을 닫을지 오늘 내일 하는 가게도 많다. 매상은 점점 줄어들고 건물 임대료는 주매상보다 더 많아진다. 인건비 이외에는 줄일 것이 없으니 종업원을 내보내고 가족들이 열심히 일을 하지만, 온 육신은 아프고 영혼은 고달프다. 주 6일영업을 주 7일 영업으로 연장하고 쉬는 날도 없이 문을 열어보지만 매상은 더 떨어진다.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니 마지막 수단으로 소비자 가격을 대폭 낮추어 보지만 상황은 더 악화된다. 가격을 종전대로 올릴 수도 없다. 가게를 팔려고 내놓아도 이런 저런 문의만 있을뿐, 브로커는 함흥차사고 Buyer는 감감 무소식이다. 야반 도주하는 사람도 많고 빌려간 돈을 갚지 못해 도망다니는 사람도 많다. 밀린 모게지는 언제 차압당할지 모르고 집은 팔려고 내 놓아도 팔리지 않는다. 버틸 때까지 버텨보지만 빚만 늘어난다. 일자리는 구하기 힘들고 그동안 피땀흘려 모아 놓은 돈은 곶감 빼먹듯이 빼먹어 남은 돈이 얼마 되지 않는다. 남은 돈이라도 없어지기 전에 가게를 살까하고 매물을 보러 다니지만, 이상과 현실은 멀기만 하다. 그나마 빚이 없고 나가는 돈이 적은 사람들은 견딜만 하다. 매상이 큰 가게들은 장사가 안된다고 해도 수입이 조금 줄었을 뿐 견딜만 하다. 잘 되는 가게는 그래도 잘 된다. 감사하고 자중해야 한다.
자본주의에서는 항상 못사는 사람이 문제다. 불경기일수록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심해진다. 하늘에 기우제라도 드리는 심정으로 미국 서민 경제가 나아지기를 기다리지만 요망사항일 뿐이다. 미국 경제는 대량 생산 산업에 기반을 둔 실물 경제가 아니다. 돈 놓고 돈 먹기식의 금융 산업과 지식정보 산업과 첨단산업, 그리고 소비산업으로 익숙해진 사회다. 양극화 구조다. 2008년 금융 위기로 2조달러나 되는 막대한 빚을 내어 달러를 풀었지만 서민들에게 지급된 돈은 한푼도 없다. 부도 위기의 대형 금융회사들 빚 갚는데 대부분이 지출되었지만 실제로 그 돈들은 세계 금융자본을 쥐고 있는 그림자 정부의 입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달러 발행권과 유로 발행권을 모두 쥐고 있다. 세계 모든 나라가 위태로워도 미국만이 유일하게 버틸 수 있는 힘은 달러다. 달러가 세계 유일의 기축통화인 기간 동안에는 망해도 미국이 가장 늦게 망한다. 그동안 미국은 어느놈을 밟고 일어서든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그런면에서는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행운아이지만, 국민 각자는 각성해야 한다. 이번 유럽 사태때도 미국이 검토한 가장 강력한 대안이 연방 준비이사회에게 미국 채권을 맡기고 엄청난 달러를 또 찍어내자는 것이다.또 그들에게 빚을 지자는 것이다. 연방 준비 이사회가 미국 정부 기관이 아닌 그림자 정부의 소유라는 것을 이제는 알 것이다. 그림자 정부에게 빚이 많을수록 미국은 그들의 나라가 되어간다. 미국 시민들은 그림자 정부의 빚을 갚기 위해 볼모로 잡혀있는 인질인 셈이다. 유럽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작금의 유럽 사태 해결도 빚을 얻어 수명만 연장할 뿐 근본 해결방안이 되지 못한다.
한인 사업체들은 대부분 소규모 사업체다. 먹는 음식 사업들은 대부분 흑인 동네가 아니면 다운타운에 밀집되어 있다. 뷰티 사업이나 디스카운트 사업등 스탁사업도 대부분 흑인 대상이다. 라운드리 장치사업도 일용직이 모여 사는 흑인 동네이거나 스페니쉬 동네다. 한인들의 과일가게, 생선가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불경기에는 주 고객인 흑인들과 소수인종들의 실직률이 가장 높다. 그들을 위한 정부 지원금마저 줄어들었다. 한인들의 주고객들은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미국에는 그들이 일할 생산 공장이 없다. 생산 공장은 이미 신흥 개발국에 하청준지 오래다. 가난한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은 단순 노동직과 일용직, 그리고 소비사업체뿐이다. 그들이 돈이 없으니 먹고 마시고 입고 소비하는 사업들이 부진할 수 밖에 없다. 유일하게 백인들을 상대하는 한인 사업이 세탁업인데 우리 지역은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즉 고객에 비해 세탁소가 너무 많다. 그런데다가 대부분이 비싼 쇼핑몰에 들어가 있다. 세탁소 평균 면적이 2,000 SF 라고 하면 임대료가 $4,000을 훌쩍 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러면 임대료보다 낮은 주매상의 세탁소들은 분석을 해보지 않아도 얼마를 가져갈 수 있는지 쉽게 계산할 수 있다. 유지가 안되니 소비자 가격을 낮추어 가격경쟁을 해야 하고 홀세일을 해야 먹고 산다. 어려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거기다 환경규제 강화로 장비 교체 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 먹고 사는 일차사업이 힘들면 카워시나 런드리업과 주유소 사업등 장치사업은 더 어렵다. 또 네일가게는 사람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키워 놓으면 도망간다. 그리고 옆에 새로 차린다. 건물을 포함한 사업은 사업체가 망하면 건물 가치도 급락한다. 주변 가게들이 모두 문닫는 판에 건물 임대 사업이라고 잘 되겠는가. 또 한인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외식사업들 대부분이 어렵다. 한국사람들은 생존력이 거의 본능적이다. 어려우면 먹는 것 부터 줄인다. 어려우면 허리띠를 졸라메는 민족이다. 당장 수입이 줄어들면 외식비를 줄인다. 먹는 업체가 어려워진다면 옷가게, 신발가게등 2차소비업체들은 말해 무얼 하겠는가. 하물며 교회 살림도 어렵다.
이리저리 모두가 어렵다. 쉽게 끝날 게임이 아니다. 결국 불경기가 장기화 될수록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아니 살아남는 자만이 강한 자다. 한국인에게는 들풀 정신이 있다. 잡초 근성이 있다. 야생화의 강인함이 있다. 불경기에는 허황된 꿈의 사업체을 찾지마라. 각자의 형편에 맞고 위험도가 낮은 사업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견디어야 한다. 불경기에는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모두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