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 칼럼 2013 하반기

** 모든 저작권은 윌리칼럼 저자인 이위식에게 있으므로 저자의 서면 동의 없는 무단 전재 및 복제를 금합니다. 모든 윌리 칼럼은 미국 Korea Phila Times (주간필라) 신문에 매주 해당 날짜에 출간된 것임을 밝힘니다.  **

 

손님의  눈물 (7/11/2013)

가슴이 먹먹하다.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제 손님 (Seller) 가게를 지나가는 일이 있어 잠깐 들렀다. 가게를 팔아달라고 매물로 내 놓은지 일년이 지났다. 여름철에 특히나 어제처럼 더운날씨에 가게에서 고생하시는데다가, 빨리 가게를 팔아드리지 못하는 송구함도 있어 인사차 들렀다. 주인 내외가 반갑게 맞아 주면서 이것 저것 먹으라고 내 놓으신다. 한사코 거절해도 막무가내이시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번주를 마지막으로 가게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린가. 시설투자비라도 건지셔야지 문을 닫으면 어떡하냐고 반문했다. 얼굴에는 미소를 지으시지만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떨어진다. 그러고 보니 마음만큼이나 더욱더 까맣게 타 버린 얼굴이며, 더 쇠잔해진 어깨며, 팔과 손가락 마디에 불거져 나온 핏줄들이 내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내 가슴이 이런데 당사자들이야 오죽 하시겠는가. 내 손님이 이런 참담한 상황을 겪게 되면 정말 비지니스 브로커라는 직업이 한없이 싫어진다.

이분들은 신앙적으로나 생활적으로나 참으로 선하신 분들이다. 이분들은 불경기가 시작되는 3년전에 비어있는 가게를 사서 매상을 올려 보려고 무단히 애를 쓰셨다. 내부 인테리어도 고쳐보고, 장비도 바꾸어 보고, 영업시간도 늘려보고, 상품 아이템도 늘려 보고, 여러모로 애를 썼건만, 지난 몇해동안 이 지역에 경쟁업체들이 많이 생기고 가격덤핑까지 하면서 경쟁업체 서로가 힘든 싸움을 계속한 것이다. 이미 몇개 업체가 문을 닫았는데, 이분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신 것이다. 가게는 내가 보아도 좋았다. 가게 위치도 좋았고, 시설도 좋고, 사업 경험도 많으시기 때문에 곧 회복되리라 믿었다. 여러번 나에게 조언도 구하시고 나름대로 도움이 될 말씀도 해 드렸다. 가게가 곧 팔릴 것으로 나름 확신도 했다. 해서 십수명의 Buyer에게 가게를 소개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가게 매매가 되지 않는 것이다. 굳이 단점이라고 하면 동종 업종 가게들보다 랜트비가 조금 비싸다는 것이지만, 가게 평수가 넓고 쾌적할 뿐만 아니라, 위치가 좋은 번화한 곳이라 그 정도는 큰 무리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시간만 흐르고 가게는 매매되지 않았다. 물론 나만이 독점으로 가지고 있던 매물은 아니었다. 나는 나의 무능함으로 가게를 팔아드리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키 위하여 독점 계약을  원하지도 않는다. 단지 오픈으로 여러 부동산에 가게를 내놓다보면 단점이 그 가게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도 많아지고, 가게를 사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근거없는 악소문을 퍼뜨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팔기가 더욱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그분들의 딱한 사정을 잘 알기에 우선적으로 팔아드리려고 내심 노력을 했다. 내가 사업체 매매로 현재 진행 중인 고객들은 족히 이,삼백명은 되실 것이다. 그분들 중에서 열분정도를 선별하여 매일 아침 출근하면 그분들을 위해 기도한다. 대부분이 사정이 긴급하고 열악한 분들이다. 매상이 큰 가게 보다는 매상이 작은 가게다. 팔기 쉬운 가게들이 아니라 팔기 어려운 가게들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을 것이고, 그분들의 사정을 잘 알고 계시면서도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걸까?

어제서야 이분들께 들은 이야기다. 이분들은 더 이상의 여유 자금이 없었다. 건강은 날로 나빠지고 랜트비는 몇달씩 못내고  미루어지니까 건물 주인하고도 관계가 악화되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장사가 안되니까 랜트비를 낮추어 달라는 주장이고, 건물주 입장에서는 랜트비를 받아 생활을 하는 노인들이므로 낮추어줄 수 없는 입장이다. 결국은 법정까지 가서 싸우게 되니 이미 서로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만 것이다.그래서 이분들은 가게 가격을 시세보다 절반이나 낮추어서 다시 내놓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렴한 가격을 더욱 의심을 한다. 나도 왜 지금까지 그 가게가 그 매상에, 그 월 순수익에, 절반가격으로 내놓았는데도 팔지지 않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가게를 팔아드리지 못했으니 무조건 속상하고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법정은 대부분 건물주 손을 들어준다. 결국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내가 매일 한장씩 읽고 묵상하는 책이 있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이 쓴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다. <하나님의 비전> 편에 이런 문구가 있다. “인간이 겪는 수많은 시련과 역경은 사탄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러한 고통과 역경의 골짜기로 데리고 가시는 이유는 그 역경에서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게 하심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그분만이 그 이유를 아신다. 그 음침한 골짜기에서 그분의 비전에 맞게 우리를 빚기 시작하신다. 사탄의 유혹은 그 골짜기에서 실족하고 포기하도록 한다. 그분의 비전은 공중에 떠 있는 멋진 산성이 아니라, 당신이 어떠한 사람이 되는가에 있다. 그분으로 하여금, 그분이 원하시는대로, 당신의 삶을 빚으시도록 하라. 그때서야 비로소 당신은 그 비전에 잘 어울리는 사람으로 변화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용기를 잃어서는 안된다. 포기해서는 안된다. 당신이 낮은 차원에서 만족하려 할 때, 당신의 안일함을 그분은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나는… 그러나 그는> 편에는 “정말로 나의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주님께서는 바로 거기서부터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너,나 없이 대부분이 어려운 시기입니다. 주님께 온전히 맡기신채, 힘내시고, 용기 잃지 마시기를 소망합니다.

 

야영 캠핑 (7/18/2013)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가 보다. 실내온도가 120도가 넘는 뜨거운 세탁소에서, 혹은 뜨거운 그릴 불판 위에서 무더위와 싸우시는 여러분의 건강하시길 소망한다. 지난주 독립기념일 연휴를 맞이하여 포코노 캠핑장에서 몇가족이 어울려 2박3일을 함께 보내다 온 이야기를 할까 한다. 사실은 미국에 이민온지 12년이 지났지만 캠핑장에서 며칠을 야영하기는 처음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가족끼리 야영가서 텐트치고 며칠씩 밥지어 먹고 놀다온 기억은 아이들이 어릴때이니까,  20년이 훨씬 넘는 세월 저편에서 가물거린다.

어느 하루는 후배가 자기들 가족이 포코노 캠핑장을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고 한다. 깊은 숲 속에서 텐트치고 애들과 밥해 먹고 밤늦도록 불피워놓고 이런저런 이야기 하고, 새벽에는 부부가 함께 숲속 오솔길을 산책하는데 우리 부부 생각이 불현듯 났다나 어쨋다나, 하면서 꼭 한번 가 볼 것을 권하는 것이다. 그리고 몇달이 지났나 보다.

아내는 일년에 적어도 한, 두차례 부부 여행만은 꼭 가자고 성화다. 아내는 봄부터 독립기념일 연휴때 여행을 가자고 이런 저런 계획을 잡는다. 일주일의 시간과 돈을 준비하라고 나에게 일방통보를 해 놓은 상태다. 또 함께 여행갈 친구들을 포섭한다. 이번 여름은 해외 여행을 계획하여 거의 모든 준비가 끝났나 보다. 그런데 시간이 가까이 올수록 긴급하게 처리해야 할 회사일들이 많아져서 도저히 일주일씩 시간을 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친구마저 장기간 시간을 빼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걱정이다. 그래서 아내를 달래고 얼래고해서 수정한 계획이 후배가 권한 <야영 캠핑>이다. 막상 캠핑을 가기로 결정은 했지만 캠핑 장비가 있을리 만무했다. 젊은 시절에는 남대문 시장에 가면 캠핑 장비 일체를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어디 가서 무슨 제품을 사야 할지를 모른다. 애꿎은 후배가 시간을 내어 함께 가서 기본적인 캠핑 장비를 구입했다. 내친 김에 후배는 우리 가족들을 위해 캠핑장 예약도 모두 마치고 후배 가족들도 함께 가기로 했다.

캠핑장 하루 사용료는 5인 기준 25불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가격이 마음에 들었다. 드디어 출발날 (금요일)이 되었다. 회사일은 오전중에 대충 마치고 오후에 시장에 들러 먹을 음식재료 몇가지를 사서 오후 4시경에 출발을 했다. 집에서 자동차로 두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니 도착해서 텐트치고 저녁밥 해먹으면 8시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 방학중이라 집에 와 있는 아들놈도 컴퓨터를 할 수 있다고 꼬득여서 강아지와 함께 친구 가족들과 각자의 차로 출발을 했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항상 그 자체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음악을 들으며, 군것질을 하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막상 캠핑장 오피스에 들러 예약된 야영지에 들어갈려고 하니까 야영장 경찰이 몇가지 질문을 한다. 술과 강아지에 대한 질문이다. 술은 가져왔지만 없다고 거짓말을 하였는데, 강아지는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아 이실직고를 했다. 그런데 우리가 예약한 장소는 애완 동물을 데리고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되돌아가야 할 형편이다. 경찰이 딱하게 여겨서인지 동물을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야영지가 한군데 비어 있다는 것이다. 친구네가 떨어져 지내는 것이 안타까운지 같이 지내자고 한다. 마침 두집 식구가 5명이니 텐트를 하나만 치고 같이 지내기로 했다. 친구는 캠핑용 장비가 없는 것이 없었다. 별명도 맥가이버라 불리거니와 가만히 쉬는 성격이 아니니 궂은 일은 친구가 모두 했다. 또 여자들이 밥과 찌게와 음식을 모두 만드니 나는 입만 가지고 간 셈이다. 복이 터졌다. 친구 텐트는 8인용이고 방이 두칸이라 텐트 한개에 한지붕 두가족이 지내게 된 것이다. 저녁에 텐트를 치고 장작 나무에 불을 피우고 저녁을 준비했다. 가족들이 모여 음식을 나누며, 술을 마시며, 살아온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를 하느라 밤이 깊은 줄도 몰랐다. 밤하늘에 별들은 왜 그렇게도 많은지 숲 속의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여자는 여자들 끼리, 남자는 남자들 끼리, 그렇게 계획에도 없었던 동침(?)을 하였다. 나는 머리가 땅에 닿으면 자는 성격이라 어떻게 잤는지, 눈을 뜨니 새벽이었다.

캠핑장의 기상 시간은 생각보다 늦었다. 두 가족이 새벽 산책을 두시간여 다녀오니, 아들놈이 아침을 미국식으로 만들어 놓았다. 불과 일년동안 불쑥 커버린 아들놈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오후에는 다른 산책길을 찾아 산속을 걸어 다녔다. 그곳 야영지는 여러곳을 잘 개발하였으며, 이런 축복받은 땅에 살게 해 주심을 감사하게 된다. 이틀째 저녁에는 후배 식구들이 도착하여 함께 저녁을 먹었다. 집집마다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준비해 와서 매끼니마다 포식하는 풍요로움에 또 한번 감사한다. 먼 이국땅에서 가까운 친구 가족들과 모여 정을 나누고 자연의 위대함을 공감하는 감사의 시간들이다. 특히나 이번 야영 캠프는 게을러서 좋았다. 여행 스케줄이 짜여져 이리 저리 끌려 다니지 않아서 좋았다. 좋은 공기 마시며, 숲 속에 앉아 졸다가 책보다가, 지겨우면 산책가고 배고프면 맛있는 음식 해먹고, 장작 타는 냄새를 맡으며 친구들과 술 한잔 하며 수다 떨고, 여자들과 아들놈은 고스톱 삼매경에 빠진 모습까지 모두가 게으른 여유가 있어서 좋았다. 아주 가끔은 이런 산 속에 들어와 가족들과 가까운 친지들과 게으른 모습으로 며칠을 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거기다 샤워 시설까지 완벽하니 더 무엇을 바라랴.. 여러분도 바쁜 일상속에서 <야영 캠프>의 일탈을 계획해 보시길 권한다.          

 

삶의 의미를 찾아서 (7/25/2013)

가게를 찾는 Buyer손님들 중에는 이미 은퇴를 한 65세 이상의 분들이 제법 계신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신 분도 있고, 그렇치 못한 분도 있다. 막상 은퇴를 하고 보니 삶이 너무 무료하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손주들 픽업하고 똥귀저기 갈아주는 등, 뒷바라지도 어찌보면 자식들의 삶이지 내 삶이 아니다. 매일 먹고 놀고 골프치고 각종 모임에 감투를 쓰고 기웃거리지만 삶이 더 우울해지는 것은 왜 일까? 또 세계 곳곳을 여행다니는 것도 어설픈 우월감일 뿐, 내 삶에 회의감이 든다. 대부분이 나만의 안위를 위한 삶이다. 남은 여생을 어떻게 살아야 의미있는 삶일까?

현대인들은 재정적 독립을 삶의 자유로 가는 지름길이라 여기며, ‘55세 조기 은퇴’가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남녀 평균 수명이 90세 이상으로 증가하는 현시대에, 그러한 자유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노년의 행복조건은 돈이 전부가 아니다. 미국 통계자료에 의하면 베이버부머 세대 (1946년~1965년 사이 출생자들) 설문조사에서 80%이상이 은퇴 년령 65세를 넘어서도 일을 계속 하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의 핵심은 “바쁘게 살고 삶에 목표와 계획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일이 없으면 우울증 환자가 많다.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여생을 보낸다면 그런 낭비가 어디 있는가. 열심히 생활하고 일하는 것은 하나의 선택이며 태도이고 행동이다.” 진정한 자유는 단지 잃어버릴 것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선택할 자유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선택에 대한 책임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이나 생활에 대한 소망과 열정을 상자 속에 잠구어 놓고 언젠가 때가 될 때 찾으러 오겠다고 한다면, 아마도 그런 기회는 당신에게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노년에 어떤 사람은 은퇴자처럼 보이고 어떤이는 새롭고 의미있는 도전자처럼 보인다면 당신은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주어진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을 만들어 간다면 더 의미있지 않을까?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를 강하게 의식할수록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당신이 만약 지금 죽었다고 가정을 해보자. 당신의 친지들과 이웃들이 당신을 기억하며 추도사를 쓴다고 하면 무엇이라고 쓸 것 같은가?  당신이 이웃과 사회와 세상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어떤 영향력을 남겼는지 당신의 추도사를 직접 작성해보라. 나는 과연 몇줄이나 쓸 수 있을까?

현대인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생존 경쟁>이 시작된다. 특히나 이민자들에게는 먹고 살기 위한 <생존투쟁>이 삶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먹고 살만한 어느날부터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는지, 누구를 위해 이렇게 죽기살기로 살아야 하는지’ 회의감에 젖어든다. 즉 생존을 위한 투쟁이 해결되고 나면 ‘무엇을 위해 생존하는가’라는 본질성으로 갈등한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삶의 수단 (생계수단)은 갖고 있지만, 삶의 의미는 갖고 있지 않다. 현대인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 우울하다. 물질적 풍요 앞에서 느끼는 내면의 공허, 즉 <실존적 공허>가 심각하다.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가? 나는 왜 불안한가? 나는 왜 사랑할 수 없는가?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인간이 이런 실존적 공허감의 방에서 영원히 탈출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빅터 프랭크가 제시하는 로고테라피는 인간이 비극적 상황에서도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생활의 재발견과  일을 통해 삶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개개인의 새로운 존재와 행동양식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의 일부는 <죽음의 수용소>, <삶의 의미를 찾아서> 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진 빅터 프랭크 (1905년~1997년)에게서 인용한 것이다. 그는 1942년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3년동안 지내는 동안 아내와 부모, 형제를 모두 잃었다. 그곳에서 장티푸스로 사경을 헤매면서도 수용소에서 훔친 종이에 원고를 정리한 것이 유명한 인본주의적 심리 치료법인 <로고테라피>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지만, 의미있는 존재이며 변화할 수 있는 무궁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신과 및 신경과 의사인 동시에 교수이면서 92세로 숨지기까지 29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죽는 순간까지 창조적이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의 저서와 지혜를 기반으로 알렉스 파타코스는 <무엇이 내 인생을 만드는가>를 저술한다. 원저는  <생각의 포로 : Prisoners of our thoughts> 이다. 이들 저서의 주제는 삶의 <의미>와 일의 <의미>다.

빅터 프랭크의 <의미있는 인생의 7가지 지혜>를 소개한다. 왜냐하면 그동안의 세월을 잘 살았든, 못살았든 간에, 살아온 세월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살아갈 새로운 삶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첫째). 자신의 일에 의미를 부여하라. 우리에겐 삶의 자세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 (둘째).  습관적인 불평을 극복하라. 우리는 의미있는 가치와 목표에 전념하는 것으로 의지를 실천할 수 있다. (세째). 삶의 순간순간에 의미를 발견하라. 의미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네째). 과정을 소중히 여겨라. 우리는 자신을 방해하고 있는 ‘생각의 포로’가 되지 않으면 일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다섯째). 거리를 두고 자신을 바라보라. 그렇게 하면 통찰과 식견을 얻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보고 웃을 수 있다. (여섯째). 긍정적 경험으로 관심의 초점을 돌려라. (일곱번째). 자신을 넘어서라. 그래야 자신을 넘어서 세상을 위해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생각의 감옥 (8/1/2013)

혹자는 삶 자체를 감옥이나 수용소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아니면 우리 각자는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수용소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라고 할지라도 그 감옥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느냐, 없느냐의 결정은 전적으로 나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즉 삶이란 바꿀 수 없는 주어진 조건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선택하여 결정하는 것들의 결과물인 것이다.

이 글의 일부는 알렉스 파타코스의 ‘생각의 죄수들’에서 인용함을 밝힌다. 사람은 스스로 만든 <생각의 감옥>에 갇혀 지낸다. 열등감, 좌절감, 공포감, 불안감, 질투심, 고독감, 공허감, 무력감, 등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우월감, 자만감, 지배감, 차별감, 동정심, 허영심, 과시욕, 위선 등에 갇혀 산다. 그 벽을 넘어서야 자유로울 수 있다. 그는 말하기를 “삶에 세가지 가치가 있다. 창조적 가치, 경험적 가치, 태도의 가치이다. 자신의 삶보다 더 큰 의미와 가치를 갈망하며, 다른 사람의 삶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만들어 놓은 <생각의 감옥>에서 벗어나, 타인과 세상으로 관심을 확대하길 원한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의미를 생각함으로써 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사람들은 인생의 대부분을 일하며 산다. 사람에 따라 각자 일의 목적도 다르고, 의미도 다르고, 만족도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일의 가치는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일의 목표와 결과에 대해 집착한다면, 다시 말해 ‘성공해야 해’ ‘잘 해야 해’ 등과 같이, 일에 대한 <과잉 의도>와 <과잉 반응>은 오히려 일에 대한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그 일은 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데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 그렇다면 그 일을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 길을 따라가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

어떠한 일도 나 혼자가 아니다. 사람 관계는 나의 일에 중요한 핵심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업문화 성공 공식은 “확신은 그 출발이고, 기쁨은 그 일부이며, 사랑은 그 중심이다.”라고 말한다. 그 중심에 사람이 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존재감이 있어야 한다. 일을 하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의미있는 순간을 가져야 한다. 인간 관계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며, 매일매일의 삶이어야 성공할 수 있다. 관계를 창조하는 개인의 능력이야말로 가치를 움직이는 엔진이다. 일을 하는 능력 자체는 의미있는 삶의 필요충분 조건이 아니다. 삶의 의미는 순간 순간의 이해와 감사, 의식과 관계 속에 있다. 현재를 이해하지 못하면 과정을 이해할 수 없다. 과정을 소중히 한다면 끝은 새로운 시작이 된다. 과정에 충실할 때, 결과에 상관없이 무한한 성취감을 경험하게 된다.

20세기 유대인 철학자 마틴 부버는 “인간이 사람을 대할 때 두가지 유형의 상반된 태도를 가진다. <나와 그것>의 관계에서는 상대방을 물건으로 취급하고 상대방에게서 뭔가를 되돌려받기를 기대한다. 한편 <나와 당신>의 관계는 다른 사람을 존경과 사랑으로 대한다.”라고 정의한다. 개인의 정체성은 다른 삶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된 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일도 사랑도 마찬가지다. 직원, 고객, 관련 업체 종사자, 지역사회, 국가등 전체가 연결되는 사회적 유기체이다. 관계학에서 <메아리 이론>이 자주 인용된다. 메아리는 자아초월의 대표적 예다. 자아초월은 나눔과 베품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산에서 ‘바보야’ 외치면 ‘바보야’로 되돌아 온다. ‘나는 살기 싫다’ ‘나는 위대하다’ ‘나는 잘났다’ 라고 말하면 그대로 돌아온다. 즉 <나는 ~>이라고 외치면 <나도~> 라고 되돌아 온다. 하지만 ‘너를 사랑해’ ‘너는 위대하다’ ‘너는 챔피온이다’라고 외치면 역시 그대로 되돌아 온다. 즉 <너는~>이라고 외치면 <너도 ~>라고 똑같이 되돌아온다. 내가 인내하고 기다리면 메아리도 인내하고 기다린다. 상대방을 사랑할 것인가, 미워할 것인가. 아니면 용서할 것인가, 복수할 것인가는 나의 선택이고 나의 의지다. 인생은 우리가 준 모든 것을 그대로 되돌려 준다. 인생은 우연이 아니다. 관계가 좋아질려고 하면 내가 잘 하면 된다. 우리는 삶에게 뭐라고 외칠 것이며, 삶은 우리에게 뭐라고 메아리칠 것인가?

삶의 <목적>은 연결되어 있지만 다르다. 그리스어인 <로고스>는 영어로 <의미>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목적은 결과를 위한 것이지만 의미는 과정을 위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목적지에는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순간순간 삶의 의미는 발견할 수가 있다. 누구나의 모든 삶에는 <의미의 씨앗>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1세기 화두는 <의미 추구>라고 한다. 스트빈 코비 박사는 <삶에서 의미 발견하기>를 이렇게 말한다. “배운 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것은 정말 아는 것이 아니다.” 삶에 의미를 불러오기 위해서는 배우고 깨닫고 행동해야 한다. 우리가 생각의 감옥에 갇혀 있는 한, 진정한 행동 지향적 학습과 이해는 불가능하다.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가진 것이 많은 21세기 현대인을 위협하는 것은 내면의 실존적 공허감이다. 그 공허함은 삶이 권태로운 상태에 있을 때다. 사랑과 용서와 인내로 이 감옥의 벽을 극복해야 한다. 적어도 나는 남은 세월을 그래야 한다. 

 

시지프스의 전설 (8/8/2013)

황금만능의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범죄 사건들을 직면한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의 근본적인 죄성을 알아야 그 죄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보다 참된 삶을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분석 심리학의 창시자 프로이드는 인간을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규정했다. 이를 <쾌락의지>라고도 하는데 인간은 쾌락적 존재, 즉 성적인 존재라고 본 것이다. 그는 성적인 쾌락의 욕구가 인간 본성의 욕구이며, 성적인 욕구를 충족하게 되면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성욕, 식욕, 수면욕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프로이드의 제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쾌락의지의 심층에는 <권력의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은 권력의지가 있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 업적을 이루고, 능력을 증명하려 하고, 더 높은 자리를 향하여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것이다. <권력의지>를 <우월성의 추구>라고도 한다. 따라서 인간이 행복해질려면 인간 본성인 쾌락욕구와 권력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하지만 빅터 플랭크는 인간의 원초적 욕구는 <의미 의지>라고 규정한다. 즉 쾌락의지와 권력의지가 충족되어도 <의미의지>가 충족되지 않으면 인간은 행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로고테라피’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쾌락이나 권력의 추구는 우리 삶 속에 존재하는 의미의 공허함을 채우지 못하며, 오히려 공허함을 감추기 위한 시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어떤 이유에서 좌절되었기 때문에 쾌락이나 권력으로 대신한다고 보았다. 빅터 프랭크는 인간 존재의 주요관심이 단지 욕망과 본능의 만족과 충족보다는 의미를 완성하고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권력과 쾌락의 추구는 끝이 없고 기쁨이 없는 노역이 될 뿐이다. 마치 그리스의 영웅 시지프스가 신들에게서 커다란 바위를 산 정상까지 밀어 올리라는 명령을 받고 끊임없이 반복해서 밀어 올리지만 마지막 순간마다 손에서 바위를 놓쳐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과 같다. 시지프스는 똑똑하지만 교활하고 속임수에 능하며 욕망이 가득찬 인간으로 묘사된다.

<시지프스의 신화>의 내용은 이러하다. 시지프스는 바람의 신인 아이올로스와 그리스인의 시조인 헬렌 사이에서 태어났다어느  시지프스는 제우스가 독수리로 둔갑해 요정 아이기나를 납치해 가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잠시 궁리한 끝에 시지프스는 아이기나의 아버지인 강신(降神아소포스를 찾아갔다 걱정에 천근같은 한숨을 내쉬고 있는 아소포스에게 시지프스는 자신의 부탁을 하나 들어 준다면 딸이 있는곳을 가르쳐 주겠노라 했다시지프스는   코린토스를 창건하여 다스리고 있었는데 물이 귀해 백성들이 몹시 고생을 하고 있었다그러니 코린토스에 있는 산에다 마르지 않는 샘을 하나 만들어 달라는  시지프스의 조건이었다아소포스는 시지프스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다시지프스는 그에게 제우스가 아이기나를 납치해  섬의 위치를 가르쳐 주었고 아소포스는  그곳으로 달려가 딸을 제우스의 손아귀에서 구해냈다.

자신의 떳떳찮은 비행을 엿보고 그것을 일러바친 자가 다름 아닌 시지프스임을 알아낸 제우스는 저승신 타나토스(죽음)에게 당장 그놈을 잡아오라고 명령했다그러나 제우스가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게 보복하리라는  미리 헤아리고 있던 시지프스는 타나토스가 당도하자 그를 쇠사슬로 꽁꽁 묶어 돌로 만든 감옥에다 가두어 버렸다명이 다한 사람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저승사자가 묶여 있으니 당연히 죽는 사람이 없어졌다명계(冥界)  하데스가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제우스에게 고했고 제우스는 전쟁신 아레스를 보내 타나토스를 구출하게 했다호전적이고 잔인하기 이를  없는 아레스에게 섣불리 맞섰다간  코린토스가 피바다가  것임을 알고 시지프스는 이번엔 순순히 항복했다그런데 타나토스의 손에 끌려가면서 시지프스는 아내 멜로페에게 자신의 시신을 화장도 매장도 하지 말고 광장에 내다 버릴 것이며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고 은밀히 일렀다저승에 당도한 시지프스는 하데스에게 청하기를 아내가 저의 시신을 광장에 내다 버리고 장례식도 치르지 않은 것은 죽은 자를 수습하여 무사히 저승에 이르게 하는 이제까지의 관습을 조롱한 것인즉 이는  명계의 지배자이신 대왕을 능멸하는 것이니 제가 다시 이승으로  아내의 죄를 단단히 물은  다시 오겠습니다저에게 사흘간만 말미를 주소서.” 시지프스의 꾀에 넘어간 하데스는 그를 다시 이승으로 보내 주었다그러나 시지프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영생불사하는 신이 아니라 한번 죽으면 그걸로 그만인 인간인 그로서는 이승에서의 삶이 너무도 소중했던 것이다하데스가  번이나 타나토스를 보내 경고하였지만 그때마다 시지프스는 갖가지 말재주와 임기응변으로 체포를 피했다그리하여 그는 그후로 오랫동안을 이승에서 삶을 누렸다그러나 인간이 어찌 신을 이길  있었으랴마침내는 시지프스도 타나토스의 손에 끌려 명계로  수밖에 없었다명계에선 가혹한 형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하데스는 명계에 있는 높은 바위산을 가리키며  기슭에 있는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라고 했다시지프스는  힘을 다해 바위를 꼭대기까지 밀어 올렸다그러나  산 정상에는 그 바위가 멈출 공간이 없었으니 바로  순간에 바위는  무게만큼의 속도로 굴러떨어져 버렸다시지프스는 다시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했다왜냐하면 하데스가 “바위가   산꼭대기에 있게 하라 명령했기 때문이었다그리하여 시지프스는 “하늘이 없는 공간측량할  없는 시간 싸우면서 영원히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했다.

우리의 삶도 시지푸스의 돌처럼 이루지 못할 헛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죽는 날까지 나머지 인생마저 소비하는 것은 아닐까?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8/15/2013)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건사고 소식을 접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건들이 가장 기본적 도덕성이라는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기에,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인간의 죄성은 영원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의 극단적인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간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시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테네시 윌리암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나 허영, 세속적 타락은 죽음과 고독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인간의 변명이라고 한다.

요즈음 근간에 세간의 지탄을 받는 대표적 욕망의4인방이 있다. <전두환 비자금 사건>과 <윤창중 성폭행 사건>, <조용기 목사의 공금횡령, 세금탈루, 그 자식의 혼음빙자 및 친자 확인소송> <김홍도목사의 법원문서 위조사건, 여자문제, 목사 세습, 정치 권력 개입>이다. 그 이외 수많은 한국교회의 각종 비리사건은 일반인들의 가쉽거리도 되지않는다. 나는 이 나이에 남을 비판하거나 평가하는 글을 쓰고 싶지 않다. 특히나 열악한 환경에서 사역하시는 <가난한 목회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더욱 송구할 수 있기에 조심스럽다. 우리가 사는 10만 인구, 3만세대의 한인 지역사회에만 200여개 종교 기관이 있다. 그 절반인 1만5천세대가 교회를 다닌다고 가정하고 몇군데 대형교회가 교인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하면 나머지 교회의 신도수는 어림잡아 고작 수십세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 작은 교회에서 사역하는 목회자의 연봉은 얼마나 될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열악하다.

 나는 위에 거론된 4인방중에 전두환이라는 사람은 천성이 비열하고 악한 자다. 인간의 본성은 바뀌지 않으니 그는 비판의 대상도 안된다. 또 윤창중이라는 사람은 기자라는 특권과 한국 사회의 성퇴폐문화가 만들어 놓은 사회적 기형아이니 활복자살을 하든, 빌어먹고 살든 알바가 아니다. 하지만 명색히 세계 최대 교회의 목사라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예수를 팔아 호위호식을 하고 재산을 축적하고 그 자손들마저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릴려고 했다면 과연 그들의 죽음이 온전할까? 예수께서 재림하시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때 이 네사람 중에 누구를 가장 극형에 처할 것인가? 예수께서는 가장 낮은 자들과 생활하시다가 생을 마감하셨고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부랑자, 창녀, 정신병자, 신체 장애자, 가난한 자, 버림받은 자들이 그들이다. 심지어 예수를 창으로 찌른 로마 병사도, 살인자도 모두 용서해 주셨다. 하지만 예수께서 용서안되는 인간들이 대제사장, 종교지도자, 랍비, 바리세파 인들이었다. 한국 대형교회의 문제 목사들은 가롯 유다보다 더 죄질이 나쁘다. 예수를 팔아 사리사욕을 취했으니 예수께서 용서를 하시겠는가?

한국교회는 이미 뇌사상태의 중환자라고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몇가지 기사만 거론해보자. 요즘 한국의 최고 인기 일순위 신랑감은 시아버지가 부자이며, 신랑이 목사라고 한다. 한국 부자가 재산을 자식에게 가장 안전하게 물려주고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아들을 목사로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한국 대형교회의 당회장 목사는 대기업 회장과 동급이며, 교회 재정을 독단적으로 결정한다. 그러니 그 목사 자리가 세습되면 그야말로 로얄 페밀리가 되는 것이다. 한국의 신학대학이 전국의 수재들이 들어가는 엘리트 집단인가? 대형교회 목사가 되기위해 박사학위와 스팩쌓기를 한다면 온당한가? 목사들이 출신 신학대학교 동창회를 하면 성공한 목사별로 후배들의 파벌이 생긴다고 한다. 목회활동 20년이 지났는데 연봉 1억원을 받지 못하면 엘리트 그룹에서 제외당한다고 한다. 물론 사택비, 차량유지비, 품위유지비, 자녀 교육비, 출장비, 세금을 제외한 순수 년봉이다. 은퇴시 퇴직금은 20억원을 기본으로 요구한다고 한다. 대기업 중역들 년봉을 넘어서는 금액이다. 한국교회는 <전문 경영인 시대>다. 그리고 20대 사회초년병부터 죽는 날까지 <~님>으로 불리우는 직업도 목회자뿐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가난하고도 의로운 길이기에 <님>이라고 불리운다. 과연 그런 자격이 될까?

한국은 1960년이후 국가 경제와 교회는 동시에 초고속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한국의 고성장 시대는 끝났다. 이미 교회 건물들의 경매물건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교회경매 물건이 2008년에는 181건이었지만, 2012년에는 312건이다. 2013년 상반기는 이미 작년보다 20% 증가한 매물들이 나왔다고 한다. 한국교회의 양적 팽창 정책으로 교회 숫자는 많고, 젊은 목사들은 넘쳐나는데 신도 숫자는 줄어드니 수입과 지출의 불균형은 당연한 현상이다. 목회자의 길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를 따라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길이기에 험하고도 어려운 가시밭길이다. 그런데 너도나도 잘 살기 위해 목사가 되겠다고 한다면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교회처럼 돈과 권력, 부와 명예, 군림과 지배, 생활안정과 노후보장, 성역과 신성불가침이 보장된다면 누가 목사라는 직업을 마다하겠는가?

16세기 마르틴 루터와 칼빈에 의한 종교 개혁의 사회적 배경은 놀랍게도 현시대와 너무 흡사하다. 첫째, 양적 팽창과 성적 부패, 둘째, 세습의 문제, 세째, 돈 중심의 물질주의, 면죄부와 주교직 매매, 네째, 힘과 권력의 횡포, 다섯째, 성경 중심이 아닌 자신들의 미신행위 양산 등이다. 교회문화는 시대적으로 변한다. 예수를 닮아가는 기독교 문화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희생과 봉사, 가난과 청빈, 버림받은 자들과의 공동체 생활, 나눔과 베품. 이러한 단어들은 오지의 선교사들에게서나 찾을 것이 아니라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성공한 목사는 많아도 존경받는 목사는 더물다고 한다면 오늘도 음지에서 예수의 길을 따라가시는 선한 목자들에게 너무 가혹한 넋두리인가? 이글을 읽는 모든 분들은 저를 용서하세요. 

 

오래된 행복 (8/22/2013)

오늘은 무슨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이미 작고한 유명 여류 작가의 말이 머리에 맴돈다. “만약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느 순박하고 건강한 사내를 만나 깊은 산 속에 들어가 화전밭을 일구며 평생을 살고 싶다.” 삶의 목적은 행복추구이다. 그런데 현대인은 행복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행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역의문이 든다. 지금보다 더 행복하기 위해 물질적으로도 더 많이 있어야 하고, 지식적으로도 더 많이 알아야 하고 생각한다. 아니 거두절미하고 현대인의 행복은 <돈>이면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바쁘게 일해야 하고 금융지식도 쌓으며,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들을 수집한다. 머릿속은 온통 쓰레기 정보와 지식 투성이다. 그런데 과연 내가 알고 있는 이러한 잡다한 지식과 정보들이 실질적인 <행복의 본질>과 얼마나 연관되어 있을까? 60년 가까운 세월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내 아내와 내 자식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많이 알수록 많이 가질수록 <생계의 수단>은 될지언정, 행복에서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두려움이다.

얼마 전에 읽은 <히말라야의 선물>이라는 책이 있다. 김영미 PD와 황정현 작가, 사진작가 2명, 조연출 1명이 각자의 <재능기부>를 하여, 히말라야 오지마을  말레에서 3개월동안 이곳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쓴 다큐이다. 말레마을은 네팔 카트만두에서 4륜구동 지프로 한나절 걸려 올라가야 하는 험난한 외길의 산속에 위치해 있다. 곳곳이 낭떠러지인 그곳은 찻길이 끊어지는 곳에서 내려 두발로 한시간 이상을 더 올라가야 되는 오지다. 마치 깊은 산 속 하나의 작은 섬이 떠있는 형상이다. 해발 2천미터에 자리잡은 이곳은 하늘이 내려준 천연커피 재배지다. 고지대 커피일수록 향이 풍부하고 맛이 깊다. 새벽이면 마을 전체가 자욱한 안개에 덮히는데, 이 안개와 깊은 산속의 그늘이 커피 재배를 위한 적당한 습도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곳은 타지와의 왕래가 거의 없다. 오로지 밭을 갈고 가축을 기르며, 히말라야 자연에서 모든 것을 구하고 만들며 살아간다. 마을 주민은 열한가구가 전부다. 히말라야 만년설로 키운 작은 커피마을,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농부의 정성으로 키운 커피, 편하고 빠른 방법 대신, 느리지만 자연과 공생할 수 있는 유기농법으로 키운 커피, 현지 농부들에게 공정한 대가를 나눠주는 공정무역 커피, 아이들의 꿈이 되고 엄마 아빠의 희망이 되며, 마을의 미래가 되는 커피, 세상을 바꾸는 커피 한잔의 기적이 이곳에서 펼쳐진다.

이곳 사람들은 커피라는 단어 조차 생소한, 커피를 구경조차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어느날 우연히 몇그루의 커피나무 묘목이 들어오면서 이곳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다. 작가는 열한세대 집집마다의 아픔과 희망을 소개한다. 부모들은 문맹자이지만 자식들은 교육을 제대로 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아버지나 오빠들은 가족을 위해 타지로 이주노동을 떠난다. 남겨진 아내와 아이들이 맨손으로 이 커피나무 밭을 일구어낸다. 커피 작농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성공하는 눈물겨운 실화다. 커피나무는 아이들과 함께 자라나고 희망도 자라난다. 부부는 서로가 그리워하고 자식과 부모는 서로를 아끼고 미안해 한다. 비록 가진 것은 우리보다 못하지만 그들이 행복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마치 우리 세대의 50년전 어린 시절을 생각케 한다. 참으로 가난했지만 가족 모두는 행복할 수 있었다. 오늘의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풍요속의 빈곤>이다.

헬레나 호지의 <오래된 미래>도 같은 맥락이다. 이 책의 배경은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우는 ‘라타크’지역이다. 이 지역은 워낙 오지마을이라 천년동안 외부 접촉 없이 자급자족과 마을 공동체 운영으로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았다. 히말라야 산맥의 중앙에 위치하여 ‘겨울은 무려 8개월이나 지속되며 영하 40도의 기온이 유지되어 작물을 키울  있는 기간은  4개월에 불과한‘ 지역에서 자급자족으로 천년간 지속했으며 외지에서 들어오는  소금밖에 없었다. 이 책은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많이 그렸다그런데 인도와 파키스탄과의 영토분쟁에서  지역은 전략적 요충지가 되어 인도영역이 되고, 1970년대 중반부터 관광업을 중심으로 개방하게 되면서 주민들의 행복이 무너져 가는 과정을 묘사한 책이다. 행복지수 (HPI)는 국가 경제력이나 GDP와 전혀 무관하다. 2012년 영국 싱크탱크는 세계 151개국 행복지수를 발표했는데, 한국은 63위, 미국은 하위권인 105위였다. 반면에 1위는 중남미 조그만 나라 코스타리카였으며, 2위는 베트남이었다. OECD 36개국중에 한국은 27위에 지나지 않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거니와 부자순도 아니다. 오래된 가치와 전통을 잊어버리면 새로운 것을 만족할 수 없다. 오래된 행복은 부부와 가족으로 시작한다. 내 주변의 조그만 만족과 감사가 어떠한  물질적 풍요와 지식, 사회적 지위와 성공보다 행복지수를 높히는 키포인트다.

그나자나 깊은 산속에 여자 한명만을 데리고 들어가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어떤 타입의 여자를 선택해야 하나. 평생 오직 한 여자만 보고 살아야 하니 섹시하고 몸은 쭉쭉빵빵 건강미 넘치고, 얼굴은 청순가련, 성격은 지고지순, 머리는 지혜롭고 아는 것이 많아 대화는 조근조근, 요리는 필히 잘하고, 여필종부, 남편을 하늘같이 모시는 여자여야 하는데…. 그런 여자를 지구 어디 가서 찾으며, 그런 여자가 깊은 산속에 들어가 나와 평생 살겠느냐는 것이 문제로다. 아,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네..복에 겨워서? 

 

이별 연습 (8/29/2013)

여러분이 이 글을 읽을 쯤이면 나는 <혼자 사는 연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내가 큰 딸아이 출산을 도와주기 위해 9월, 10월 두달간 한국에 나가 있기 때문이다. 내일이면 육십인 남자가, 특히나 이국만리 먼 타국 땅에서 남자 혼자 산다는 것은 별로 유쾌하지도 않거니와 청승맞기 조차 할지 모른다. <혼자 사는 남자>라고 하면 어떤 그림이 연상될까? 수염은 덥수룩하고 입고 다니는 의 복은 꾀재재하고 식사는 제대로 하지 않아 얼굴은 휑한 모습? 술, 담배에 쩔어있어 입과 몸에서는 냄새나고 머리칼은 덥수룩하고 코털은 삐져 나와있고 손톱 밑에 때가 까맣게 끼여 있는 모습? 집안은 치우지 않아 설거지 그릇들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청소는 하지 않아 쓰레기더미에서 사는 것 같은 모습?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대학교 2학년부터 29살에 장가갈 때까지 10여년을 혼자 자취하면서 살았던 남자다. 또 결혼 후에도 2년간 혼자 산 경험이 있다. 일년은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셔서 어머니의 충격이 너무 크신 것 같아 아내와 자식들을 어머니가 계신 부산 집에 남겨두고 서울에서 혼자 산 적이 있다. 또 다른 일년은 사업실패로 한국에서 월급쟁이 사장 노릇을 할 때, 아내가 자식들을 데리고 먼저 미국에 이민을 떠났기에 한국에서 혼자 남아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경우가 어떻든간에 오랜 세월을 혼자 사는 남자는 깔끔하게 정리정돈을 하고 제대로 산다. 외딴 산사에 혼자 사시는 스님을 방문해 보아도 방안의 흔적이 간소하면서도 한점 흐트르짐 없이 깔끔함을 알 수 있다. 혼자 살아야 하는 사람은 자기관리가 철저해야 오랜 세월을 혼자 살 자격이 주어진다.  밥도 잘해 먹고 요리 솜씨도 일품이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랜 세월을 혼자 살아갈 수가 없다.

하지만 남자가 혼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아내가 없다는 것은 생활이 불편하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밥해먹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집안 일들이야 아내와 같이 살아도 내가 하는 일들이다. 혼자 사는게 가장 힘든 이유는 <사람이 그리운 것>이다. <밤이 무서운 것>이다. 낮동안의 생활은 <일>때문에 많은 사람을 만나고 함께 일을 하므로 금방 지나간다. 하지만 붉은 해가 서산에 떨어지고 놀던 아이들이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듯이, 일하던 사람들과 헤어지고 나면 그때부터가 괴로운 것이다. 밤거리를 배회하고 술집을 기웃거리는 것도 한두번이지 금방 싫증이 난다. 그곳에는 <그리움>이 없다. 그렇다고 혼자 밥해 먹는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나의 젊은 시절 기억에는 여느날처럼 맛있는 저녁을 준비하고 테이블 세팅을 멋있게 하고, 이쁜 그릇을 꺼내어 음식을 정성스레 담고,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분위기를 만든 다음, 멋있는 옷을 입고 혼자 앉아서 식사를 하였다. 그러다가 웬지 모를 그리움에 목이 메어 큰소리로 울어본 적이 있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홀로됨>의 트라우마가 있다.

하물며 몇십년을 살을 맞대고 함께 산 부부가 한쪽을 잃었을 때의 고통은 얼마나 클까? 부부가 둘이 함께 살다가 언젠가는 누가 먼저 세상을 떠나가겠지. 만남이 있기에 이별이 있고 태어남이 있기에 죽음이 있음은 그 두가지가 별개가  아니라 하나임을 누군들 모를까. 삼라만상의 생명체라면 너무나도 당연한  자연의 섭리인걸 잘 안다. 그렇다고 그렇게 남겨진 사람인들 어쩌겠나. 그래도 살아야지. 살기는 살겠지만 견디기 어려운 것은 뼈에 져리도록 그리운 보고픔이다. 잊는다고 잊혀질까. 함께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치매나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는다음에야 잊혀질 수 있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뚜렷한 과거들이 암실의 사진처럼 점점 더 선명해질텐데 그 일을 어찌할거나. 두달이 아니라 몇년뒤라도 만날 수 있다는 기약만 있다면 어떻게라도 견디어 볼텐데 그럴수도 없으니 남은 세월을 어찌할거나. 그리워도 만날 수가 없으니 호주머니 속에 꼬기꼬기 감추어 둔 아름다웠던 추억을 한장씩 한장씩 꺼내어 소리죽여 울수 밖에..힘든 것은 보고싶은 <그리움>이다.

“있을 때 잘 하라”라는 농담같은 진담을 우리는 알고 있다. 부부는 함께 살고 있을 때 하루 하루 잘해야 한다. 그리고 매일 매일 <이별 연습>을 해야 한다. 목숨이 다해 헤어지든, 사랑이 식어 헤어지든,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면 남은 세월이라도 사랑을 아낌없이 주어야 한다. 사랑하는 자식과도 헤어져야 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언젠가는 모두 이별을 해야 한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이별 연습>을 해야 한다. 이별이나 죽음은 피할  없기에  아픔을 미리 준비하여야 한다이별이나 죽음이 너무 싫기에 나는 오늘 사랑해야 하고 열심히 가치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그래서 오늘  순간을 감사하며살아있음을 감사한다내일 사랑할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으므로 나는 지금 푼수같은 남자이어도 좋다이별과 만남은 별개가 아니고 하나이니, 만나는 동안은 사랑을 해야 한다. 그러니 <이별 연습>은 <사랑 연습>이다.

그나저나 두달을 혼자서 어떻게 살지? 내 경험으로는 바쁘게 사는게 최선인 것 같다. 6일동안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월요일은 색소폰, 화요일은 베트민턴, 수요일은 수요예배, 목요일은 탁구, 금요일은 헬스클럽, 토요일은 친선모임, 일요일은 장보기, 빨래, 청소, 칼럼쓰기, 매일 밤 두시간 독서, 매일 저녁 맛있는 요리하기. 이렇게 혼자 살다 보면 <집나간 아내>가 돌아오겠지..    

 

별들의 딸 (9/5/2013)

지난 주에는 노동절 연휴라 여자 셋, 남자 둘이서 버지니아주에 있는 쉐난도 (Shenandoah) 국립공원의 블루릿지 마운틴 (靑山)에 1박2일로 산행을 다녀왔다. 그 청산의 기(氣)가 대단하다고 대장은 귀띰을 해준다. 산정상 가까이에 텐트를 치고 첫날은 3시간코스를, 둘째날은 5시간 코스로 산행을 했다. 아침 일찍 모여 5시간을 운전해 갔다. 특히 쉐난도 국립공원의 스카이라인 (Sky Line)은 로드트립 (Road Trip : 자동차 여행)의 별미다. 105마일의 꼬불꼬불한 스카이라인은 1931년부터 8년에 걸쳐 만들어진 산악 자동차 길이며, 70여개의 전망대가 절경인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굳이 산행을 하지 않더라도 절경을 감상할 수 있게 배려하였다. 일행은 짐을 푼 다음에,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사람의 흔적이 별로 없는 산길은 자연의 신비 그 자체다. 나무 뿌리가 하늘에 박힌듯, 쭉쭉 뻗은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부채살처럼 대지를 적신다. 산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는 수목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나를 자극한다. 이름모를 야생화들은 누구 하나 반겨주는 이 없고, 알아주는 이 없어도 그 고고함은 감히 다가설 수 없는 귀태를 지녔다. 시중의 꽃들과는 품격이 다르다고나 할까, 저 야생화들은 하나님과 직접 대화하듯 의연하기만 하다. 또한 그곳은 버섯들 천지였다. 산을 많이 다니는 우리 등산대장은 여자이어서 그런지 각종 버섯에 환호성을 지르기 바쁘다. 상황버섯, 영지버섯, 돌의 이끼와 이슬을 먹고 산다는 석이 버섯, 싸리버섯, 느타리버섯 등, 대장은 신이 났다. 산행 중에 국지성 소나기를 만났는데 일행은 모두 비옷을 거부한채 비를 맞으며 걸었다. 깊은 산 속에서 산천초목과 함께 비를 맞으며 자연과 교감하는 운치도 새롭다. 산행을 마친 다음, 텐트로 돌아와서 불을 피우고 저녁을 해 먹었다. 비가 오락가락 해서인지 밤하늘에 별 구경은 할 수가 없었다.

<쉐난도>라는 의미는 <별들의 딸>이라고 한다. 아마도 인디언들은 영혼의 품격이 물질에 찌든 현대인들보다 훨씬 높았을 것 같다. 날씨가 맑았으면 산정상의 밤하늘은 수많은 별들이 내려다 보고 있었을 것이다. 마치 이 산을 별들의 귀한 딸로 여겨 선물로 하사한 것 같다. 별도 없는 밤에 맨정신으로 무슨 이야기들이 그렇게도 많은지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간밤에 텐트 지붕위로 빗방물이 떨어지는가 했는데 바로  깊은 잠에 들었다. 새벽녁에 텐트 밖에 누군가가 뒤적거리는 움직임이 있어 남자 둘이 화들짝 놀라서 뛰쳐 나가니 산짐승이 왔다가 갔나보다. 이곳은 흑곰 출연이 많으며, 그날도 10여차례 곰이 출연했다는 산악 경찰의 충고 때문인지 무의식 속에 긴장했나보다. 아침에 일어나니 깊은 산 속은 온통 안개로 뒤덮혀 있었다. 안개와 함께 마시는 새벽 커피맛은 잊지못할 기억이다. 아침 산행은 전날과는 달리 수다스러움 보다는 침묵의 산행을 했다고나 할까. 풀 한포기, 꽃잎 하나, 나무들의 향연을 교감하며 열심히 걸었다. 5시간 예정이던 산행은 4시간으로 단축하는 강행군(?)이었는지 아내는 발에 여러군데 물집이 생겼다. 산과 산이 이어지는 산허리에 피어오른 산안개는 무량도원을 연상케 한다.

산정상에서 산아래를 내려다 보면 말 위에 탄 인디언이 생각난다. 위대한 대자연에서 더불어 살았던 인디언들은 무슨 욕망이나 집착이 있었을까. 대인으로써 호연지기를 가지고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는 인간다운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유럽에서 건너온 가난한 자 (우리는 이들을 ‘청교도인’라고 한다.)들에게 무상으로 땅을 주고 곡식 종자를주어 먹고 살게 해주었는데 보상으로 돌아온 것은 인종말살정책과 오지에 보호구역을 설정해 폐인들로 만들어 버렸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소설’이라고 존 에프 케네디는 말한다. 인디언들에게는 <눈물의 여로>라는 역사가 있다체로키들은 울지 않았다어떤 표정도 밖으로 들어내지 않았다백인들에게 자신들의 마음을 내비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사람들은  행렬을 눈물의 여로라고 했다쳐다보지도.. 말하지도… 울지도고향산천을 떠올리지도 않는 이들을 소재로 노래할  있겠는가. 1838년에서1893년에 걸쳐55년동안 1 3천명 정도의 체로키들이 오클라호마의 보호 구역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1,300킬로미터의 이동중에 추위와 굶주림질병사고등으로 무려 4,000 이상이 죽었다인디언들은 토지나 재산을 탐내지 않았다그들이 원한 것은 오직  속에서의 자유로운 생활뿐이었다.

오는 길에 <루레이 동굴> 들렸다나에게는 루레이 동굴에 대한 기억이 가슴앓이로 남아있다이민온지 3년차인가 하던 시기에 한국에 계신 어머니를 초청했다누구보다 사랑하던 큰아들이 사업실패로 거의 빈몸으로  미국에 왔으니 한순간이나마 마음 편하실 날이 있었겠는가나의 어리석은 마음에 비록 흑인동네지만 정육점 가게도 하나 하고월세 단칸방 아파트지만 비를 피할 집도 있고아이들도 공립학교를  다니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초청을  것이다나는 이정도면 사는 것이 괜찮다고 보여 드렸는데어머니는 계시는 동안  깊은 충격을 받으셨나 보다하기야 흑인 동네에서 하루종일 고기 자르고무거운 물건 나르고 늦게까지 암흑천지인 흑인동네에 고기 배달 다니고 집에 돌아오면  11시가 되기 일쑤였다그것도 아파트에 어머니 혼자 계시면 적적할까 싶어 가게에 모시고 나왔으니지금 생각하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불효를  셈이다그때 어머니를 위한답시고 어렵게 휴가를 내어 다녀온 곳이 <루레이 동굴>이다어머니의 마음에  동굴이 아름답게 보였을까 여행이 즐거우셨을까어머니에게는 그때의 미국 여행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같다어머니불효자를 용서하십시오죄송합니다부디 오래 오래 사세요…  

 

꽃보다  할배 (9/12/2013)

나는 어제 (2013년 9월 13일)부로 <할배>가 되었다. 어제 한국에서 외손녀가 태어난 것이다. 갓 태어난 아기 사진이 여간 똘망똘망한게 아니다. 어서 만나보고 싶고 만져보고도 싶다. 할아버지와 손녀딸. 참으로 정감가는 단어이며 관계다. 나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아버지, 어머니 두분 모두 이북에서 대학생 신분으로 1.4후퇴때 홀홀단신 피난내려 오셔서 부산에서 만나 결혼하셨다. 그래서 나에게는 친척도 거의 없거니와 친가나 외가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무한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나는 어릴 때 친척이 많은 친구들이 항상 부러웠다.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는 친구들이 더욱 그랬다. 나에게는 할아버지에 대한 사진 한장이 없었으니 부모님들이 들려주시는 말씀으로만으로 내 머리 속에서 할아버지 형상을 그리곤 했다. 부모님께 혼나면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가서 응석을 부리는 친구들이 그렇게도 부러웠다. <할배>는 경상도에서는 할아버지를 부르는 낮춤형 방언이다. “할배요, 밥 묵으소.” 하는 말이 쌍놈(?)같은 말투라고 거부감을 가지면서도 나도 그렇게 불러 볼 할아버지가 계셨으면 하는 마음앓이를 하던 어린시절이 기억난다.

그런 내가 이제 <할배>가 되었다. 나는 손자, 손녀들에게 어떤 <할배>가 되어야 할까? 무엇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가야 할까? 한때 잘 살던 시절처럼 부자였더라면 이것 저것 해줄 것도 많고, 해 줄 수 있는 것도 많았을텐데 내 한몸 건사하기도 녹녹치 않으니 막상 손녀딸에게 미안할 뿐이다. 금전적으로는 해 줄게 미흡하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물려줄 수 있는게 있지 않을까? 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를 그리워 했던 것은 할아버지의 막대한 재산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그 많은 재산을 단 한푼도 물려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피난민들이 그러하듯이 전쟁은 곧 끝날 것으로 생각하고 잠시 피난을 내려오신 것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날 이후로 한번도 할아버지를 뵙지 못하고 평생을 그리워하다가 아버지 먼저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손녀딸과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을까?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을 손녀의 나이는 5세에서 부터 20세 사이가 아닐까? 그러면 내나이가 65세에서 80세까지가 된다. 그 나이동안 어떤 삶을 살아야 손녀에게 좋은 기억을 남길까?  인자한 할아버지, 고향과 같은 따스한 할아버지, 인생의 길잡이 같은 멘토 역할의 할아버지, 좋은 추억들을 남겨준 할아버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친구 같은 할아버지가 아닐까?  <할아버지의 오래된 시계>라는 음악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오래된 벽시계처럼 변함없은 인자함, 편안함이 아닐까?  어찌보면 내가 내 자식들에게는 이런 저런 핑계로 제대로 해 주지 못한 아버지의 역할을 손녀딸에게 대신해 주어야 하는게 아닐까? 그래서 일부나마 자식들에게 미안해 하던 마음의 빚을 덜고 가야 하지 않을까?

나는 영화 <대부>의 마지막 장면이 기억난다. <대부>역의 말론 브란도가 집 마당에서 손주와 놀다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의자에 앉은채 죽는 모습. 마지막 가는 길에 손주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갈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큰 축복일 것이다.  <할배>는 늙어가는 노인이다. 이제 생의 마감을 준비해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늙음이란 점점 쇄약해 가는 과정이 아니라 점점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다. 한평생 살다 가는 삶은 <생의 수레바퀴>가 한바퀴를 구르는 완성과 같다. 수레바퀴의 어느 바퀴살도 다른 바퀴살에 비해 못한 것도, 더 나은 것도 없다. 그 바퀴의 중심축은 <하나님의 의지>다. 그분의 의지에 의해 세상에 왔다가 한바퀴만 돌고 가는 것이다. 각각의 바퀴살은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사랑과 미움, 용서와 분노 등이 골고루 각각의 바퀴살로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다. 각자의 <생의 수레바퀴>가 어떤 자국을 남겼을지는 후손들이 평가할 것이다. <할배>는 한평생을 살면서 이 모든 것을 골고루 겪은 사람이다. 그러기에 <할배>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삶의 지혜>를 손주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손주들에게 존경받는 할배가 되기 위해서는 의로운 길을 가야 한다. “노인의 영광은 백발이다. (잠언 20:20), 백발은 영화로운 면류관이니의로운 길을 걸어야 그것을 얻는다. (잠언 16:31)” 말씀처럼 살아야 한다사리사욕과 탐욕으로 늙어간다면 아무리 많은 재산을 물려준들  손주가 <할배> 존경할까요즈음 한창 인기 프로인 <꽃보다 할배> <> 재산이나  세상의 성공  <외적 자산>이라고 한다면, <할배> 삶의 지혜나눔사랑긍휼믿음   할배 자신의 <내적 자산> 것이다유대인 속담에 <소중함> 무엇인지 가르치는 대목이 있다. “ 하루는  어린 아이가 기르던   죽자, ‘ 하나님은 모든 생명은 죽게 만드셨나요?’ 라고 부모에게 묻자유대인 부모가 말하기를 ‘ 그래야 생명이 소중하게 되기 때문이란다무엇이든 영원히  것인 것은 결코 소중하지 않을  아니냐?”

 손녀에게 무엇을 남겨 주어야 <멋있는 할배> 기억될까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현주 목사님의 저서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에서 처럼 손녀의 예리한 질문들에 대해 지혜로운 대답을 들려주려면 지금부터라도  많은 책을 읽고  깊이 묵상하여 <성숙한 할배> 되어야   같다. <손녀딸> 내가  살아야 하는 <존재의 이유>이자  인생의 <새로운 도전>이며 샘물같은 <신선함>이다이쯤되면 나도 영락없는 팔불출인가그나저나 이억만리 멀리 떨어져 사는 손녀딸을 언제나 만나볼  있지

 

산다는 것이 (9/19/2013)

나는 직업상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잘 사는 사람도 만나고 가난한 사람도 만난다. 팔려는 가게의 사업성 분석을 하다보면 그 사람의 수입이 얼마정도인지 담당 회계사나 국세청 (I.R.S)보다 더 정확하다고 장담할 수 있다. 이 직업을 선택한지도 어느듯 8년이다. 하지만 해마다 더 살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지금도 만나는 사람마다 언제쯤 경기가 나아지겠느냐는 물음이시다. 글쎄? 미국 경기가 당장 나아질까? 아니 대부분의 한인들이 상대로 하는 서민 경제가 미국 경제지표가 나아진다고 나아질까? 무슨 경제대책으로? 연준의 <양적 완화>정책이든, <양적 완화 출구전략>이든, 통화량 조절 정책으로는 미국 경제 이익의 45%이상을 가져가는 미국의 1% 부자들만 살찌울 뿐, 99%인 서민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흑인동네 장사가 날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이유이다. 못사는 서민들은 정부가 도와주어야 한다. 서민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복지정책을 강화해서 서민들에게 돈을 풀어야 한다. 하지만 미국 연방정부나 주정부가 돈이 없다. 정부 자체가 부도가 나느냐, 마느냐 하는 판국에 서민들에게 주었던 약간의 돈마저 줄여버리니 어느 세월에 과거의 잘 살던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미국사회도, 한인 사회도 부익부, 빈익빈의 시대로 접어든지 오래다. 그래도 20년, 30년전에 이민와서 무슨 장사를 해도 돈을 벌 수 있었던 시절에 돈을 모은 사람들은 <여유로운 자>들이다. 하지만 한국의 IMF이후, 특히 2007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한국에서 살기 어려워 빈손으로 이민온 사람들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가진 약간의 돈을 몽땅 투자해서 흑인 동네에 작은 가게를 사고, 열심히 일하지만 살림살이가 크게 나아지지가 않는다. 나아질 수가 없는 구조다. 지금도 미국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백인 동네나 다운타운에 규모가 큰 가게를 하는 사람들은 별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항상 없는 사람들이 문제다. 정말 산다는게 만만치가 않다. 손님들은 내게 어떡하면 좋으냐고 물으신다. 나라고 무슨 묘책이 있겠는가? “견디는 수 밖에 없다. 버티는 수 밖에 없다.”고 말씀드린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손님이 있다. 몇년 전에 가게를 샀는데 매상이 줄었다. 젊은 부부이니 쫄망쫄망한 아이들이 셋이나 있다. 아이들에게 들어갈 돈은 자꾸 늘어나는데 수입은 줄어든다.그렇다고 여유돈이 없으니 달리 방법이 없다. 하루하루가 그날 벌어서 그날 쓰기에 빠듯하다. “5천불만 여유돈이 있어도 사는데 숨은 쉴 수 있을 것 같다.”는 남자의 말이 내뿜는 담배연기처럼 허공에 흩어진다. 하지만 <희망>이라는 끈을 놓아버려서는 안된다. 그날이 올때까지 버티고 견뎌야 한다. 그리고 <그날>은 반드시 온다는 강한 믿음이다.

60년이라는 세월을 살아보니까 <산다는게> 나만 대단히 힘든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고, 열심히 살 뿐이다. 이민온 10년전의 삶이나 지금이나 별반 경제적으로 나아진 것은 없다. 나이들수록 굳이 나아진 것이 있다면 마음의 여유일 것이다. 삶의 편안함일 것이다. 나와 내 가족만 보이던 시야가 주변과 이웃을 둘러보는, 해서 함께 위로하고 위로받는 여유가 생긴 것일 것이다. 사는 동안 성공했다고 우쭐될 때도 있었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 죽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고비고비 어려울 때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다. 그리고 나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그분>과 나의 <이웃>이 있었다. 그들이 나의 위로가 되어 주었고, 나의 노래가 되어 주었다. 그러기에 <오늘>이 있고, 또 다른 <내일>을 꿈꿀 수 있는 것이다.

고 장영희 교수의 저서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되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이렇게 넘어지기를 수십번, 남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고 가기에 좀더 자주 넘어졌고, 그래서 어쩌면 넘어지기 전에 넘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그렇게 많이 넘어져 봤기 때문에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또 다른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생명>을 생각하면 끝없이 마음이 선해지는 것을 느낀다. 행복, 사랑, 성공 – 삶에서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이 단어들도 생명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한낱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살아있음>의 축복을 생각하면 한없이 착해지면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가슴 벅차다.”

내가 많은 사람을 만나봐서 <느낌 아니까 ~> 하는 말인데, 부자로 살던, 가난하게 살던지 간에, 집집마다 문제 없는 집 없고, 고민없는 집 없다. 아니 부자일수록 문제가 더 많고 복잡하다. 당신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종이 가면>에 불과하다. 사는게 뭐 대수인가? 죽는 날까지 사랑하며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인생의 승리자다. 오늘 저녁은 싱싱한 생선 두마리를 사다가 무를 얄팍하게 쓸어 냄비 바닥에 깔고 물이 팔팔 끊으면 생선과 다진 마늘 약간, 소금 약간을 집어넣고 한소큼 끊인다. 그런 다음 파는 손가락 크기로 2뿌리, 양파 1개, 두부 반모를 먹기 좋게 쓸어 넣고, 고추가루로 양념해서 생선매운탕이나, 생선지리탕을 아빠가 직접 만들어 가족들과 함께 맛있게 먹자. 기름진 생선이면 된장 한숟갈과 고추장 한숟갈도 괜찮다. 푸짐한 저녁을 먹었으면 커피 한잔과 함께 읽고 싶은 <좋은 책> 한권을 들고 베란다에 나와 깊어가는 가을 밤과 함께 나의 영혼을 맡겨보자. 당신의 <살아있음>에 감사할 것이다. 이렇게 살면 되지, 더 이상 뭘 바랄까? 

 

만약  내가 (9/26/2013)

가을은 성숙된 계절이며, 완성되어 가는 계절이다. 봄(청년기)과 여름(장년기)을 잘 살았던, 못살았던 간에, 이제 가을 들녁(5,60대)에 서 있는 나는 내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햇살이 고저녁히 드는 책상에 앉아 묶은 서류철을 정리하듯이 살아온 세월을 뒤적이다 보면 아쉬운 그리움들이 마음 한켠에서 아직도 떠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오늘은 해저무는 가을 저녁 노을에 서서 <만약 내가 ~했더라면>, 혹은 <만약 내가 ~이었더라면>, <만약 내가 ~을 할 수 있다면>을 생각하며 이 가을과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

에밀리 디킨슨의 <만약 내가>라는 시가 있다. “만약 내가 한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 나 헛되이 사는 것이 아니리. / 내가 만약 누군가의 아픔을 덜어줄 수 있다면, / 만약 내가 누군가의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 혹은 기진맥진 지쳐있는 한마리 울새를 /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그녀는 19세기 미국의 대표적 시인으로 명성이 높은데, 정작 그녀는 1830년에 태어나 55년 5개월 5일을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30대 후반부터는 흰색 옷만을 입기를 고집하고, 집에서 한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가 죽기 전까지는 그녀가 시를 쓰는줄 몰랐다. 그녀가 죽고나서 그녀의 서랍장에는 2천편의 시가 채곡채곡 보관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녀가 죽고난 뒤 그 누군가가 자신의 시를 읽고 단 한사람이라도 마음의 위안을 받기를 소망했는지도 모른다. 최인호씨도 얼마전에 침샘암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났다. 내가 좋아하는 많은 글쓰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지만, 내가 사는 동안의 내 기억 속에는 늘 함께 할 것이다.

어느 작가는 죽기 전에 “만약 내가 일년을 더 살 수 있다면, 아니 몇달이라도 더 살 수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정직한 삶>을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참으로 가슴저미는 말이다. <정직한 삶>은 마음이 가난한 자의 삶이다. 더 높힘도 낮힘도 없는, 들어오고 나감도 없는, 비교도 위선도 없는, 지나침도 부족함도 없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평화로운 삶일 것이다. 나 자신과 이웃에게 충실한 삶, 즉 말씀대로 사는 삶일 것이다. 또 장영희 교수는 이런 말을 한다. “살아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진 적이 없었다. 다른 투자는 모두 실패했어도 내가 무심히 또는 의도적으로 한 작은 선행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에 고마움으로 남아 있었다. 소중한 삶을 만나는데는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데는 1시간이 걸리고 그와 사랑하는데는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데는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남의 마음 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만큼의 보장된 투자도 없다.” 언젠부터인가 나도 매매 계약을 한건이라도 더 하기 위해 안달하지 않는다. 매매는 성사가 안되어도 상관없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은 관계를 맺기 원하며, 행여 한사람에게라도 상처로 남지 않키 위하여 애쓴다. 혹여 나의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면 기꺼이 돕기를 자청한다. 감정을 자제할려고 노력하며,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본다. 지금 하는 나의 일을 그분이 허락하는 날까지 계속 하려 함은 나를 필요로 하는 분들이 있고 나의 칼럼이나 상담을 통해 조금의 위안이라도 된다는 격려 때문이다. 또 나 자신도 이를 통해 스스로 위안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과 같이 늙어가고 싶은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함없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음이다. 매주 쓰는 글의 내용도 그러하다. 한때는 비지니스 칼럼이라  <성공전략>이니 <부자되는 법>, <투자전략> 등, 이런 글들을 많이 썼다. 하지만 평범한 소시민들은 성공이나 부자되는 방법을 몰라서 안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을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다. 또 이런 글들을 이 나이에 쓰기에는 무언가 쓸쓸함과 공허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인간>의 이야기가 아닌 <나>와 <우리>들의 이야기를, <세계>가 아닌 <생활>의 이야기를, <훌륭한> 사상이나 철학이 아닌<감사>와 <은혜>의 이야기를 씀으로써, 한사람이게라도 위로와 용기가 되는 글을 쓰고 싶다.

<나는 내 나이가 좋다.>의 작가 이기옥 할머니(?)는 88세에 이 책을 출간했다. 나의 어머니와 동년배이시다. 이분의 글을 읽고 있으면 편안함을 느낀다. 글이 쉽고도 간결하다. 깨끗한 시냇물이 막힘없이 조용하게 흘러내려가는 느낌이다. 글에 꾸밈과 과장이 없다. 나도 저 연세가 되도록 글을 쓸 수 있을까, 저 분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이 할머니는 1994년(69세)부터 수채화를 배우기 시작하여 짬만 나면 화구통을 메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길을 나선다고 한다. 젊은 작가가 천재 시인이나 천재 소설가는 될 수 있어도 천재 수필가는 될 수 없다고 한다. 수필은 연륜이 글 속에 묻어나야 한다. 수필은 그 사람이 살아온 길이며, 삶이며, 사상이다. 그래서 나는 사정이 허락한다면 나이가 들어 좋은 수필과 이를 바탕으로 좋은 시를 써보고 싶다. 이 책에서 친구 할머니들은 기억력이 감퇴되고 치매가 되기 싫어서 서로에게 전화해 학창시절에 불렀던 <옛날의 금잔디>를 함께 부른다고 한다. 본문중에 “오늘 나는 내 발로 걸어서 장을 보러 가고 산책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아직 간을 맞출 수 있어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줄 수 있어 행복하다. 오늘 나는 눈이 보여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바느질을 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행복한가?” 나도 몸 여기저기가 약해지고 병들어감을 느낀다. 그래서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조그만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나이는 내 한몸 간수할 수 있는 이 가을의 나이가 아닐까?

 

신발 속  돌멩이 (10/03/2013)

나의 인생에 <신발 속 돌멩이>는 무엇일까? 하루는 공원 산책을 하기 위해 기분좋게 길을 나서는데 신발 속의 작은 돌멩이에 온통 신경을 빼앗긴다. 처음 길을 걸을 때는 아름답게 물든 가을 풍경을 즐기느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되었다. 하지만 길을 걸을수록 발을 콕콕 찌르는 것이 아프기도 하고 시간이 갈수록 온통 그 작은 <신발 속 돌멩이>에 신경이 곤두선다. 방법은 간단하다. 가는 길을 멈추고 신발을 벗어 돌멩이를 털어버리면 된다. 우리 세대는 <고무신 세대>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몇몇 부자집 자식이 아니면 대부분 고무신을 신고 놀았다. 해서 고무신을 이용한 놀이 종류도 많았다. 고무신을 신고 놀다보면 왜그리도 신발 안에 작은 돌멩이나 모래가 많이 들어가던지 길을 가다가도 몇번씩 고무신을 털던 기억이 난다. 어느 70대 고령의 마라토너 이야기다. 그는 전문 마라토너가 아니다. 마라톤 대회가 있을 때마다 성적은 꼴찌이지만 그는 항상 완주를 하는 것이다. 어느날 기자가 인터뷰를 했다. “할아버지는 마라톤을 완주하시면서 가장 고통스러운게 무엇입니까? 갈증입니까? 70세라는 체력적 한계입니까? 호흡입니까? 그리고 완주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 할아버지가 말하길 “내 신발 속의 모래알 같은 작은 돌멩입니다. 나는 마라톤을 할 때면 신발에 작은 돌멩이를 집어 넣습니다. 그 돌멩이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동안 나를 가장 힘들게 합니다. 나는 마라톤을 완주하는 동안 한순간이라도 그 돌멩이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 작은 돌멩이 때문에 완주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돌멩이에게 감사합니다”

한편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이 이 돌멩이를 벗어버릴 수가 없다면, 평생 나와 함께 가야 한다면 나는 이 <신발 속 돌멩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만약 이 작은 돌멩이가 신발이 아닌, 내 심장 깊은 곳에 박혀있다면? <내 심장에 박혀있는 돌멩이>를 꺼내기 위해 수술을 할 경우 내가 죽을 수도 있다면? 그래서 수술하지도 못하고 평생을 고통받으면서 살아야 한다면? 이 돌멩이는 내가 평생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나의 평생의 짐이며, 고통이고 상처다. 나의 업보라고 할 수도 있고 나의 팔자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 나의 십자가라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쩌면 누구에게나 이런 <심장에 박혀 있는 돌멩이>가 있을 것이다. 있다면 한개? 두개? 아니면 여러개?

인간의 신체 구조상으로는 심장에는 <결석>이 생길 수 없다. 안구, 치아, 귀, 위, 간, 췌장, 신장, 요로, 요도 등 신체 곳곳에서 결석이 생긴다. 잘못된 생활습관이나 식생활, 정신적 스트레스로 이런 결석이 생긴다. 하지만 심장에는 결석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심장을 <마음>으로 단어를 바꾸어보자. 내 <마음 속 돌멩이>는 무엇인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내 삶의 주요한 사건일 수도 있고, 실패와 시련일수도 있다. 또는 가난이거나 질병일 수도 있다. 내 평생 지울 수 없을 것 같은, 내 가슴을 천근 만근 내려 누르는 그 돌멩이는 누가 만들었는가? 왜 수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나만 이런 시련과 고통의 돌멩이를 안고 살아야 하는가? 그 돌멩이의 원인제공자가 원망스럽고 하나님이 원망스럽다. 가뜩이나 삶의 무게에 짓눌려 가는 길이 힘들고 벅찬데 이런 돌멩이까지 나에게 짊어지게 하다니 세상이 원망스럽다. 그 돌멩이 때문에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나를 아프게 한다. 이제는 사는게 정말 싫고 너무 지친다. 아침이 오면 이대로 눈을 감은채 데려가셨으면 좋겠다. 아니 나홀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 하지만 이 돌멩이로 인해 내가 지칠대로 지쳤을 때 어렴풋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이 돌멩이는 나로 인해 생긴 것이다. 내 몸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외부에서 누가 만들어 내 몸 속에 집어 넣은 것이 아니라 내 몸안에서 스스로 만들어 진 것이다. 누가 내 심장에 돌을 박아 넣겠는가? 내 심장의 돌멩이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내가 만든 나의  잘못이요, 나의 죄인 것이다. 그러니 그 십자가가 천근이든, 만근이든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는 길이 이제 어느듯 석양이 뉘웃 뉘웃 기우는 황혼의 나이인데, 내 심장에 박힌 이 돌멩이를 어떻게 빼낼 방법이 없을까? 그 세월이 일년이 걸릴지, 죽는 날까지가 될지 기약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빼낼 수만 있다면 빼어 내고 싶다. 그러던 어느날 나에게 희미한 음성이 들린다. “녹여버려라!! <사랑의 눈물>로 녹여 버려라!!. 네 나이에 무엇이 두렵고 창피하냐. 무엇을 더 가질려고 하며 무엇을 더남길려고 하느냐. 그분의 은혜로 그만하면 지금까지 잘 살아온 삶이다. 이제 시간이야 걸리겠지만 그 돌멩이는 <사랑의 눈물>로 반드시 녹는다. 그러니 그 돌멩이가 녹고 녹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너에게 달려있다.” 그래, 녹여보자. 나의 모든 에너지와 사랑을 모아 그 돌멩이를 한번 녹여보자.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장의 돌멩이가  없을 수도 있겠지. 이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성공이라는 가치 기준을 무시하자. 설령 죽는 날까지 그 돌멩이가 없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충분히 가치있는 삶이고, 의미있는 삶이 될 것이다. 비록 내 가슴을 짓누르는 그 돌멩이들이 힘겨워, 가는 길이 느리고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서서 걸으면 된다. “아버지, 오로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돌멩이가?

 

만추 (晩秋) (10/10/2013)

가을이 깊어간다. 갈바람 소리에 낙엽은 흩날리고 하늘은 더없이 청명한데 내 마음은 갈 곳을 잃어 방황한다. ‘중년의 가을 남자는 외로움이 반, 그리움이 반’이라고 했던가. 무엇이 그들을 가을의 끝자락에서 지나간 세월을 못내 아쉬워 하는가. 가을은 두가지 모습으로 지나간다. 수확과 감사의 계절이 그 하나다. 만곡이 무르익고 한해의 노력이 열매맺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함께 지내온 가족과 이웃에게 감사하다. 그런 가을은 아름답기만 하다. 푸른 창공도, 가을산의 낙엽도, 황금들녘의 저녁 노을도 모든게 감사와 아름다움이다.

하지만 그런 뒷면에는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서민들의 애환과 눈물이 있다면, 나이는 점점 저물어 가는데 터널 끝은 보이지 않는다면, 육신은 나이를 이기지 못하고 하루하루의 삶은 지치고 무겁기만 하다면, 이제는 그만 가는 길을 멈추고 주저앉고 싶다면, 그런 가을은 얼씨년스럽고 우울하기만 하다. 가을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이대로 먼 곳으로 떠나고 싶다. 부질없는 일인지 알면서도 지난 세월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그리운 사람들이 눈에 아련하다. 특히나 나에게 상처준 사람들은 이미 기억에서 퇴색된지 오래지만, 내가 아픔을 준 사람들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만날 수만 있다면 만나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할 수 있어도 좋으련만.. 떠나보내야 했던 첫사랑과 헤어진 사람들이 그러하고, 고생하던 시절의 부하 직원들이 그러하고, 도와주지 못한 가난했던 친구가 그러하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주변도 돌아보지 못한 세월들이 바보스럽고 한심스럽다. 이억만리 낯선 곳까지 와서 고작 이런 모습으로 살려고 그랬나 싶다. 깊어가는 가을 들녘에 홀로 서 있으면 점점 외톨이가 되어감이다. 하나씩, 둘씩, 모두가 떠나감이다. 그래서 중년의 가을남자는 그리움과 외로움이 반반인지도 모른다. 그리워도 만날 수 없으니 더욱 그리운 것이다. 만나면 무얼 하겠는가. 미안하다는 그 말을 하기 위해 만난다면 또 하나의 아픔만 더 남길 것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으니 그리우면 그리운대로, 외로우면 외로운대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중년의 쓸쓸한 뒷모습이다.

가을비는 우울함이다. 떨어지는 낙엽은 쓸쓸함이다. 중년의 인생은 낙엽처럼 낙장불입이다. 프로이드는 분노가 억압되어 제대로 표출하지 못할 때 <우울증>이 생긴다고 했다. 돌아오지 않는 사랑,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슬픔의 감정이라는 것이다. 중년의 남자들은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명예도, 성공도 그 잃어버린 감정을 채워주지 못한다. 어떤 정신분석학자들은 인간은 그 태생에서부터 근본적인 결함, 선천적인 결여로 인해 평생 고독의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다. 우울증은 너무나 흔하고 보편적이서 현대인의 감기 증세와도 같다고 한다. 하지만 우울증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모르듯이 해결책도 없다. 그래서 암, 비만과 함께 현대인의 가장 무서운 3대 질병으로 꼽히는 이유다. 정신과 의사들은 우울증과 같은 정서적 장애에 대해 <인지 요법>이라는 처방을 한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부정적 기분은 우리의 인지, 즉 우리의 생각에 의해 만들어지므로 그 왜곡된 생각들을 가려내고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년의 왜곡되고 뒤틀린 생각은 무엇인가. 데이비드 번즈박사는 <인지 왜곡>을 열가지로 정의한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태도, 하나의 부정적 사건을 총체적인 패배로, 긍정성보다는 부정성에 치우치는 태도, 점쟁이처럼 마음대로 결론짓는 태도, 현상을 지나치게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태도 등이다. 예를 들어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자신이 초라하고 보잘 것 없다는 자기 비하감, 근거없는 죄의식,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무력감, 이제 모든게 끝났다는 좌절감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중년의 남자는 <삐돌이>가 되어가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늙어간다는 것은 이제부터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고, 새로운 만남보다는 떠나감이 더 많고,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종교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신은 불변이시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해결방법은 운동과 햇볕이라고 한다. 실천하고 하지 않고는 여러분의 몫이다.

깊어가는 가을 밤에 영화 한편을 추천한다. 2011년 탕웨이와 현빈이 주연하고 김태용 감독이 리메이커한, <만추>라는 영화다. 비와 안개의 가을도시 시애틀이 배경이다. 민족도,문화도, 살아온 배경도 모두 다른 두 남녀의 사랑이다.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7년 감옥생활을 하다가 어머니의 부고 소식에 3일간의 특별 휴가를 받고 출소한 중국 여자. 이민온지 2년 밖에 되지 않아 이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자들의 성노리개 역할을 하는 한국남자가 버스 안에서 우연히 만나 하루동안 사랑에 빠지는 영화다. 두사람 모두 사회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한, 그래서 왜곡된 인지상태로 좀처럼 자신의 마음을 열지 않고 살아온 두 사람이 우연한 만남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사랑에 빠진다. 입소하는 날 약속한 장소에 만나기로 하지만, 남자는 쫓아오는 일당들에게 목숨을 잃게 되어 그 약속 장소에 오지 못하고 여자는 쓸쓸히 떠난다. 한국에서도 1970년대부터 세번 영화로 리메이커된 영화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할 수 있는 우연적 사랑이다. 그 어떠한 외로움도, 쓸쓸함도 내가 마음을 열면 순식간에 깊은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한다. 이런 비슷한 영화가 <깊고 푸른밤>이라는 것도 있었던 기억이다. 이곳 미국 땅에서는 밤이 깊고 외롭다고 불쑥 외투 하나 걸치고 며칠간 무작정 여행을 떠나기도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외간 여자와 영화속의 상상을 한다면 그분께서 당신의 눈을 뽑을지도 모른다. 설마하니 그분께서(?)..그러니 마음 비우고 땀에 젖어 운동하는 것이 최선이라니까..  

 

생각 버리기 (10/17/2013)

퇴근길이다. 늦가을이라 해가 일찍 떨어진다. 사무실에서 집까지는 4,50분이 소요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수많은 차량의 불빛들이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것일게다. 7년동안 다니던 길이니 오늘도 습관처럼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텅빈 집을 가야 한다는 것이 웬지 나를 우울하게 한다. 만약 이렇게 혼자 살아야 한다면 내 삶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 왜 나는 여기 있어야 하나? 나는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잃었는가? 과연 나는 행복한가? 이 황량한 낯선 곳에 홀로 남아 무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차량의 불빛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듯, 생각은 생각으로 이어진다.

흔히들 망상 (妄想)이라고 한다. 속된 말로 쓰잘데 없는 잡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망상장애는 집착증에 해당하는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7가지로 분류되는데 색정망상, 질투망상, 신체망상, 과대망상, 피해망상, 혼합형, 블특정형이며, 피해망상이 주류를 이룬다.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으나 주로 생물학적, 정신적, 문화적 요인으로 나누는데, 특히한 사례는 <이민장애>가 이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민이라는 새로운 문화에 대한 부담감, 고독감, 고립감,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겪게 되는 것이다. 비단 이민자들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은 너무 많은 생각과 갈등으로 살아간다. 하루에도 엄청나게 쏟아지는 정보 홍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고 결정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민생활의 선택과 결정이 말처럼 손쉬운 것이 아니다. 믿을 사람이 없고 믿을 사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내 자신이 이민사회에 대한 충분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하기도 하다. 잘못하면 피해를 보고 사기를 당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망설이고 또 망설인다. 생각만 늘어난다. 생각(망상)이 많으면 행복지수는 낮아진다. 원주민들이 가난하지만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일상이 단순하기 때문이며, 생각이 단순하기 때문이다. 사냥할 때는 사냥에 대한 생각만, 먹을 때는 먹는 생각만, 춤추며 놀때는 노는 생각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경대 출신의 일본 스님인 코이케 류노스케가 쓴 <생각버리기 연습>이 있다. 이 책은 현대인들이 불필요하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이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방법을 말한 책이다. 내용이 너무 보편적이고, 머리로는 알고 있는 내용들이지만, 실천하기는 무척이나 어렵다는 점이다. 근간은 불교의 <팔정도八正道 > 내용이다.  ‘사람이 바르게 살기 위해 실천해야  여덟가지의 이다 1단계가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이다 1단계에는 <정사유,正思惟 — 바르게 생각하기>, <정어正語— 바르게 말하기>, <정업正業 — 바르게 행동하기>, <정명正命 — 바르게 생명을 유지하기> 그것이다 2단계는 집중력을 기르는 이다. <정정진正精進 — 마음을 정화시키기>, <정정正定 — 마음을 집중하기> 그것이다 3단계가 깨닫는 이다. <정념正念 — 마음의 센서를 닦는 과정>, <정견定見 — 깨닫기> 그것이다 여덟가지 과정에서 가장 첫단계이면서도 중요한 단계가 <바르게 생각하기>이다쓸데없는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지금  순간 가장 적절하고 필요한 일만을 생각하는 쓸데없는 사고와  헛된 사고를 버리는  나아가 백팔번뇌를 극복하는 것이<팔정도> 시작이자 목표이기도  것이다실천하기가 어렵지만 조금씩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바꾸어 나간다면마치 콩나물 시루에 물을 부으면 모두 빠져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콩나물은 자라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본문중에 <뇌속의 연인>이라는 단어가 나온다내가 좋아하는하지만   없는 일이나 고민을 말하는데  뇌속의 연인 때문에 일념(一念) 방해받고 헤매이는 것이다이것을 <생각병>이라고도 하는데 일종의 <생각 과식>이며이로 인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책에서 인간은 세가지 기본 번뇌를 가지고 있는데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일념 혹은 일심(一心 ) 있다여러분도 중학교 시절  붓글씨를 처음 배울떄 책상에 붙여놓은 문구가 생각날 것이다. “정신일도 하사불성 (精神一到 何事不成)” 참으로 귀엽게만 기억되는 까까머리 시절이다 일심은 목표와 목적이 분명한 한마음을 굳게 지킨다라는 의미다하기야 조폭도 팔뚝에 일심을 새기고 다니지만..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살아야 한다성공해야 한다행복해야 한다자녀를  키워야 한다그분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등등 여러가지가 있을  있다하지만  일심을 놓아버리는 것이 무심(無心)이다흔히들 사용하는 무념무상 (無念無想 ) 마음과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망념이 없고 망상이 없는 경지를 말한다 생각을 버린다는 것은 망상을 버리는 것이다참으로 어려운 이야기다.

어쩌면 혜민스님의 저서 <멈추면 비로서 보이는 것들중에서 세상엔 완벽한 준비란 없습니다삶은 어차피 모험이고  모험을 통해  영혼이 성숙해지는 학교입니다물론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하겠지만백퍼센트 확신이  때까지 기다렸다가 길을 나서겠다고 하면 너무 늦어요설사 실패를 한다해도 실패만큼 좋은 삶의 선생님은 없습니다.” 라는 문구가   현실적이다하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가 두려워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그러면서 나이만 먹어가고  기회가 지나가면 반성도 그때 뿐이다사업을 할까 말까가게를 살까 말까가게를 팔까 말까그렇게 가을 밤만 깊어가고  한해도 저물어 간다..

 

노동의 가치 <전편> (10/24/2013)

현대 사회의 성인이라면 누구나 일 (노동)을 한다. 일을 해야 먹고 산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먹는다고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는 당면적이고도 엄중하다. 인간의 조상이 아담과 이브 이든, 진화론의 호모 사피엔스든, 인간은 먹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하며, 그래야 살 수 있다는 명제 앞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다. 육체적 노동을 하든, 정신적 노동을 하든, 사람을 고용하든, 자본을 활용하든, 누구나 노동을 한다. 그래서 노동은 신성하다고도 하고 신의 형벌이라고도 한다.

반면에 인간은 자체로서 존엄성이 보장되어야 하며 어느 나라나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또 하나님은 인간을 그토록 사랑하사 죽도록 일을 하게 하시고, 각자의 노동(일, 직업, 직장)에 숭고한 사명감과 존엄성을 부여하셨다. 또한 각자의 노동을 통해 그분의 뜻을 실현하고자 하신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의 생존권 앞에서 맥없이 유린당하고 짓밟히기 일쑤다. 세계인구의 25%가 기아에 허덕이며 굶어죽어가도 우리는 우리의 생존권을 핑계로 그들을 외면한다. 자유, 평등, 박애를 국가 이념으로 삼는 프랑스도 자국내 집시들을 국외로 추방한다. 이탈리아는 자국으로 들어온 난민선을 공해상으로 내쫓아 그들을 모두 몰살시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가난한 자들의 수많은 인권과 존엄성이 가진자의 노동가치 앞에서 무참히 말살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최소한 그들 앞에서 부끄러워 해야 하고 미안해 해야 한다.

그러면 미국에 살고 있는 당신은 어떠한가?  만약 ‘당신은 얼마짜리인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황당하고도 불쾌할 것이다. 질문 자체가 천박하고 장사치같다.하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사람을 그렇게 선택하고, 또 평가받는지도 모른다. 당신의 년봉은? 월급은? 주급은 얼마인가? 이민자의 노동은 대부분 <생계형 노동>이다. 우리지역 한인 가게에서 일한다면 평균 급여는 Full Time 하루 10시간, 주 6일을 일하고, 시간당 $10이라고 가정하면 (10시간/일) x (6일/주) x ($10/시간당) x 4.3= 월$2,580 이 된다. 그러니 남의 가게에서 일하는 한국 종업원들 평균 임금은 월 2천불에서 3천불 사이라고 보면 된다. 매니저급이나 고급 기술자는 1천불을 더 받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게 주인 입장에서는 불황이 장기화되다 보니 이 임금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져,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임금이 저렴한 타민족 사람을 쓴다. 그러니 종업원으로 일하는 한국사람은 하루 하루가 부담스럽다. 가게를 직접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부 2명이 일할 경우 부부2명의 최소 인건비는 월 $5,000인 셈이다. 그런데 모든 지출 비용을 제외하고 월 순수익이 $5,000이라면 주인의 최소 인건비를 가져가는 셈이니 부가 수익을 창출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신이 월 $2,500불 짜리라면 당신의 노동 가치에 당신의 인격과 존엄성이 포함되어 있는가? 당신이 과거 한국에서 학력과 전공이 무엇이며, 회사 직책, 사회 경력이 무엇이며, 년봉을 얼마 받았는지 일부라도 참작이 되는가? 아니다. 이민온 당신의 이전 과거는 공상영화처럼 기억제거방에서 말끔히 삭제된 상태다. 현대 자본주의는 이분법적 사고다. 당신의 우선적 가치는 가정, 조직, 지역사회, 종교 단체에서 년봉 얼마짜리로 평가받느냐는 것이다. 만약 각자의 년봉을 계급장처럼 가슴에 달고 다닌다면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최근 영국인들의 설문조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손꼽은 사람이 칼 마르크스다.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노동을 철학으로 불러들인 자다. 새들은 들판의 곡식을 쪼아 먹지만, 인간은 곡식을 가루로 만들고, 가루를 반죽하여 빵으로 만든다. 인간의 진화론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의식적 활동, 두뇌와 손의 통합적 행동, 이것이 인간 노동의 시초다. 인간이 다른 동물을 지배하게 된 신의 선물은  직립한다는 것과, 두 손을 사용한다는 것,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 불을 사용한다는 것,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 무리를 지어 산다는 것으로 시작된다. 인간이 벌꿀이나 거미보다 더 뛰어난 건축미를 갖는 것은 인간은 본능적인 행동이 아니라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어떻게 해야겠다는 의식적인 행동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먹을 거리를 위하여 노동하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인간이다. 노동은 인간의 가장 인간적인 속성이며, 오늘날의 인간으로 진화하는 초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노동은 경원시 되어 왔다. 구약에서도 아담과 아브의 원죄를 대신하여, 여성에게는 아이를 낳는 출산의 고통을, 남성에게는 평생 땅을 가는 노동의 고통을 대리 형벌로 각인시킨다. 이는 아마도 구약을 작성한 자가 육체 노동자가 아닌 정신 노동자였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프라톤의 <국가>에서도 노동하는 생산자 계급을 천시한다. 노동자에게는 절제와 복종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다. “정신과 육체, 존재와 의식, 물질과 정신과 같은 이분법적 논리, 즉 아폴론적 인간을 중시하고 디오니소스적 인간을 경시하면서 서양 문명은 볼모의 운명을 겪게 되었다”고 니체는 비판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이렇게 시작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적 부는 방대한 <상품>이며, 이는 부의 기본단위다. 상품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해 주는 물건이며, 이 상품의 유용성은 <사용가치 (use value)>를 갖게 한다. 사용가치는 소비에 의해서만 실현되며, 모든 부의 실체이다. <사용가치>는 동시에 <교환가치>가 있어야 한다.” 상품에는 사용가치와 교환 가치로 구분되듯이, 노동에는 <유용 노동>과 <추상적 노동>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노동의 가치 <후편> (10/31/2013)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보는가?  <동물농장>의 메이저는 예언자이고, 농장의 주인 존스씨는 자본가이다. 동물의 스승 메이저가 하는 마지막 연설이다. “삶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삶은 비참하고 고되며 짧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간신히 목숨을 유지할 정도의 식량만 받고, 일할 수 있는 자들은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노동을 강요당합니다. 그리하여 쓸모가 없게 되면 우리는 가차없이 잔인하게 학살당합니다. 어떤 동물이든 행복이나 여가라는 말뜻을 아는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동물은 자유가 없습니다. 동물의 생활은 비참함과 노예상태 그 자체입니다.” 여기서 동물은 당연히 <노동자>, 즉 소시민을 뜻한다. “우리가 일해서 생산하는 것 대부분을 인간에게 약탈당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자본가)은 생산을 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그들은 젖을 만들지도 못하고 알을 낳지도 못합니다. 힘이 약해서 쟁기를 끌지도 못하며, 걸음이 빠르지도 못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동물의 왕입니다. 그들은 폭력과 힘(자본,무기)에 의해 동물들을 지배합니다.”

2천년전의 농노나 노예와 현대 노동자들은 동일한 피지배 계급이다. 폭력이나 힘에 의한 지배를 <경제외적 강제>라고 한다. 영주와 농노, 중세시대의 성직자와 세속인, 자본가와 노동자는 이런 <강제적 관계>에서 수탈당하는 것이다. 인두세, 최저 생계비, 십일조, 각종 세금 등이 이에 해당한다. 혹자는 현대 자본주의는 이를 <자유로운 계약 관계>라고 할지 모른다. 아무런 구속이 없으며, 싫으면 떠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 자본가는 노동자(닭)가 낳은 알의 일부를, 노동자(소)가 짠 우유의 일부를 임금이라는 명목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다. 이 매체가 화폐다. 즉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고 자본가는 그 댓가로 화폐를 받아 축적한다. 임금은 정당한 노력의 대가가 아니다. 결론적으로 임금의 정의는 노동자가 목숨을 유지하는데 소요되는 최소한의 생존 비용일 뿐이다. 따라서 임금은 어느 시대나 먹고 살 정도의 생계비 정도일 뿐이다. 사원, 과장, 부장의 년봉도 가족의 증가와 그에 상응하는 생계 수준일 뿐이다. 이러한 수탈관계는 직장을 떠나거나 옮긴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노동자 계급에서 자본가 계급으로 바뀌지 않는 한 지속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의 사용권은 자본가에게 있다. 생산돤 상품은 자본가의 소유물이지 노동자에게 분배되는 공유물이 아니다. 자본가에게 노동자는 노동력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자본가는 자본의 가치 증식을 위해 바쳐질 노동자의 노동시간에만 관심이 있다. 자본가는 잉여노동에 대한 무제한적 충동으로 노동자의 도덕적, 육체적 한계까지도 넘어서 노동자의 모든 것(사생활, 여가, 심지어 식사시간까지)을 강요한다. 이를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으로 구분한다. 필요노동은 노동자의 생존에 필요한 필수품을 생산하는데 사용된다면, <잉여노동>은 자본가의 가치증식을 위해 사용된다. 헤겔의 <소외 (alienation)>라는 정의처럼 “노동의 산물인 자본이 노동자의 손을 떠나 독립적인 세력이 되어 거꾸로 노동자를 지배한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노동의 소외이론>을 완성한다. “첫째, 노동자는 노동의 결과물을 소유하지 못한다. 둘째, 노동자는 자신의 의지에 의해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명령에 의해서 노동을 한다. 세째, 노동의 결과물로 부터 소외당하고, 노동 과정 속에서 소외된 노동자에게 노동 그 자체는 모두 소외된 노동이다.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빼앗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노동의 상실>이라고 한다. 네째, 노동이 소외되면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멀어진다. 자연과의 단절은 인간의 의식성을 마비시킨다. 다섯째, 노동이 소외되면 인간은 사회로부터 분리된다. 노동에서 소외된 인간은 사회에 내놓을 생산물이 없다. 창의성을 박탈당하고, 사회에 기여할 열정이 없어진다. 남는 것은 생존과 동물적 쾌락이다. 정신을 타락시키고 마침내 사회로부터 단절시킨다. 여섯째, 자연과 사회부터 소외된 인간은 인간성 자체를 상실하게 된다. 일곱번째 인간의 소외는 노동의 소외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따라서 노동 소외에 의한 <노동해방>과  자연과 사회 소외에 의한 <인간 해방>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의 공동체는 계급으로 분열되어 갔다. 종족간의 전쟁은 계급사회의 형성을 가속화했다. 종족 내부의 빚진 자 (채무자)와  종족 외부의 포로는 노예로 전락했다. 역사는 고대의 노예적 생산 관계와 중세의 농노적 생산관계를 보여준다. 따라서 현대에 태어난 우리들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주인과 종>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이데오르기>나 <이념>은 생산관계와 지배구조를 포장하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중세 유럽의 귀족은 기독교로부터 종교적 지원을 받았고, 현대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로부터 지원받았다. 현대 자본주의는 모순이 심화되고 몰락하여 가는 과정이다. 그렇다고 <역사의 종말>은 오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새로운 이데오르기로 진화되고 변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보화와 자동화는 앨빈 토플러의 예언처럼 자본주의의 소멸을 예견한다. 새로운 과제일 뿐이다. 인간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만을 자기에게 제기한다고 아담스미스는 말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정되고 통제된다. 

로버트 기요사키는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총 7권의 저서에서 일관되게 주장한다. “하루빨리 노동자 (주급생활, 피고용인) 신분에서 벗어나, 자신의 비지니스를 시작하라.” 당신의 <노동 가치>는 당신이 창출해야 한다. 주는대로 받는 주급이 아니라, 당신의 자본과 당신의 능력이 부가된 새로운 노동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무슨 말인지???

 

내 나이 스물일 즈음에 (11/07/2013)

이 글은 내 아내가 나에게 쓴 글이다.

나에게는  미혼인 스물여섯의 딸과  결혼한 서른살의 딸이 있다. 내 딸들이 사랑을 만나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할 나이인 것 처럼, 나도 그 나이에 한 남자를 만났고 그 남자에게서 사랑을 배웠고, 그리고 그 남자를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중이다.

릴케는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부과된 가장 어려운 일이다사랑은 궁극적인 마지막 시련이고 시험이며 과제이기 때문이다.  사랑도 배워야 한다모든 노력을 기울려 고독하고 긴장하며 하늘을 향한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승화되고 심화된 홀로됨이다.”  그래서 사랑은 마지막 날까지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나와 딸들은 지금은 비록 멀리 떨어져 살지만딸들이 스무살이 되고부터는 모녀 사이라기 보다는 서로에게 가교역활을 하는 친구사이가  적절한 수식어같다거의 매일  딸들과 통화를 한다 딸들이 이국만리 미국이라는 땅에서 이십대의 꽃잎들을 외롭게 만개시켰다면나는 일본이라는 곳에서 8년가까운 청춘시절을 외롭게 보냈다.

누구나의 젊음이 그러하듯나도 가슴에 청운의 꿈을 안고개나리 노랗게 피고목련이 하얀 속살을 드러내던 어느 봄날일본이라는 낯선 나라로 유학을 갔다.  일본 학기는 4월부터이다같은 피부색의 낯선 얼굴들,  머리카락이 꼿꼿하게 설만큼의 차디찬 다다미방식욕을 떨어뜨리는 낯선 음식들서툰 일본어낯선 생활 양식등 모든 것이 앞으로 겪어야  이방인의 조건들이었다낮은 언덕 위에 있던 기숙사는 언제나 잿빛 하늘을 드리우고까맣게 수놓은듯한 까마귀 떼는   그리 울어대든지 나의 마음을 항상 우울하게 만든 기억들이 선연하다하지만 일본인들은 매우 친절했다또한 사람들 앞에서 절대로 불평 불만을 말하지 않으며매우 겸손하고 검소하며 예의가 발랐다대학생활 동안에 한일 감정같은 것은 대학 친구들 사이에서 전혀 발견할  없었으며내가  적응할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대부분의 시간들을 학교 수업과 아르바이트로 학창시절을 보낸  같다 딸들처럼 정말 치열하게 그리고 열심히 살았던 기억이다그래서인지 개인적인 낭만이나 학창시절의 애틋한 기억들은 별로 없다그래서 지금도 가끔은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여자분들의 미팅한 이야기나 동아리 모임이나  봉사활동데모활동 등을 이야기하면 괜히 멀쑥해진다.

하지만 나는 예나 지금이나 여행을 무척 좋아한다여행을 하면 나는  영혼의 무게를 느낀다.무엇을 하고 살았는지어떻게 살았는지앞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것인지 속에 있는 나의 얼굴을 들여다 볼수 있어서 좋다방학때는 친구들과 팀을 만들어 북해도에서부터 큐슈까지젊음이라는 특권을 만끽했다하지만 힘든 시기도 있었다대학교 2학년때 크게 아파 두달동안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한국의 부모님들은 무조건 공부를 접고 한국으로 귀국하라고 성화셨다그때  기억으로는 처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퇴원하고 대학 생활을 무사히 마칠  있었다나는 그때까지 교회에   적이 없다 일본에는 교회를 찾기가 아주 어렵다당연히 교회 건물이나 교회 십자가를  적도 없다그들은 자신의 신앙을 겉으로 드러내지를 않는다졸업후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할까 고민하던 중에  이상 일본에 있는다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다일본의 엄청난 경제 성장으로 무분별한 서구문명과 그에 갈등하는 미성숙한 사회구조사회적 모순물질 과잉에 노출된 부작용 등이 나를 한국에 돌아오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작년에 결혼한 큰딸이 일본 교회 사역을 하고 있다니 놀랍고도 놀랄 뿐이다혼자서 일본어 독학을 하여 일본어 강사 자격증을 따고 지난 여름에는 일본의 몇몇 교회에 초대를 받아 일본말로 신앙간증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전하면서 그곳의 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다고 하니 이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있는 <타력>이다일본에서의 교회 사역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그들은 폐쇄적인 종교관을 갖고 있는 민족이다요즈음 딸과 국제전화로 일본 사역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나는 딸아이가 공부한 피아노와 무대 예술그리고 앞으로 공부할 음악치료와 교회 사역그리고 그동안의  영어와 일본어와  다른  무엇들이 합하여져 언젠가는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는 도구로 사용될 것임을 확신한다.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딸들과 일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엄마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한다일본에서도 이방인으로한국에서도 이방인으로미국에서도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했던 나에게어느날 하나님이 나와  가족을 선택하셨다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선택받은 자만이눈물로 간구한 자만이 영혼의 거룩함에 감사할  있다고 한다늦은 나이의 이민에서 그분과의  첫만남이었지만나는 이제  이상의 이방인이 아니다나와  가족은  이제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녀이기 때문이다.  

 

꿈꾸는 아버지 <전편> (11/14/2013)

아버지란 누구인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 <남자>로서의 삶과 <아버지>로서의 삶으로 나누어진다. 남자로 성장해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져 자식을 얻으니 어느날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자식들이 성장하여 홀로서기를 하고 각자 가정을 가지면서 아버지는 혼자가 되어간다. 홀로된 아버지들은 상처난 자국들을 핧으며, 어둠 속에 움크린다. 기러기 아빠들이 자살을 한다. 독거 노인들이 자살을 한다. 황혼의 나이에 이혼을 당한다. 가족들에게 버림을 당한다. 아버지란 존재는 무엇을 먹고 살아온 것일까?

<꿈꾸는 아버지>.. 아버지란 존재는 꿈이 있었기에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다. 그들은 항상 꿈을 꾼다. 아버지는 두가지 꿈으로 시작한다. 하나는 <내 자신의 꿈>이고, 두번째는 <자식에 대한 꿈>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의 꿈>은 점점 작아지다가 어느날 연기처럼 사라진다. 먹고 사는게 만만치 않고 성공이라는 단어가 나와는 거리가 멀다는걸 깨닫는 순간부터 <나의 꿈>은 사라진다. 하지만 <자식에 대한 꿈>은 포기할 수가 없으니, 죽는 날까지 가느다란 소망의 끈을 놓치 못한다.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자식들은 성공하기를 바란다. 내가 못한 꿈을 자식들은 그 꿈이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그래서 아버지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일을 한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아버지를 <일중독자>라고 한다. 하지만 나 혼자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죽기 살기로 일할 필요가 있었을까? 나 혼자 사는데 그런 성공과 출세가 필요할까? 그런 단어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주변도 돌아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식에 대한 꿈>때문은 아닐까? 주변을 둘러봐도, 내가 살아온 세월을 되돌아 봐도 아버지가 가장 의기양양하고 콧대가 높은 나이가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이었던 것 같다. <나의 꿈>과 <자식에 대한 꿈>이 최고조일 때이다. 자식들이 초등학생일때, 무슨 대회에 나가서 대수롭지 않은 상을 받아만 와도, 반에서 일등만 해도, 어떤 과목을 A학점만 받아와도  내 자식이 천재나 수재가 아닐까 하는 착각들을 한다. 내 자식만은 항상 모범생이고 올바르고 성실하게 성장해 주리라 믿는다. 무슨 직업인들 꿈꾸지 못할까? 무슨 명문대학은 못들어갈까?  무슨 성공인들 못할까? 아버지가 꿈꾸는대로 내 자식의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 같다. 한세상 와서 살면서 나는 비록 구질구질하게 살았지만 자식들은 남보라는듯이 성공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삶이 아닐까? <꿈>이 있었기에 아버지는 미친듯이 일만 하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노동을 두가지로 구분한다. <유용노동>은 내가 상품을 만들기 위해 몇시간을 일하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의 구체적 노동이다. 노동의 댓가이며, 임금으로 보상받는다. 반면에 <추상적 노동>은 유용노동을 제외한, 즉 열심히 일했다는 추상적 기억만 남는 것을 말한다. <추상적 노동>의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를 사는 아버지들, 특히 이민온 우리 세대의 아버지들이 아닐까. 평생의 기억은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 내세울 자랑거리도 열심히 살았다는 죄(?)밖에 없다. 이민의 아버지에게 <나의 꿈>이 과연 있을까? 가게를 해서 돈을 많이 번다? 미국회사에 취직을 해서 중역이 된다? 가게를 여러개 운영하고 건물을 산다? 큰집을 산다? 교회 장로가 된다? 그 무엇도 <나의 꿈>이 되기에는 어줍잖고 초라하다. 그래서 이민자들은 <나의 꿈>을 접고 <자식에 대한 꿈>을 먹으며 사는 것이다. 나는 비록 이억만리 낯선 땅에서 이런 모습으로 일만 하다가 죽지만, 내 자식들은 나를 밟고 일어나 성공해서 잘 살기를 꿈꾼다. 아버지는 자신이 번 돈으로 사치를 할 줄도 모르고, 자신을 위해 즐길 줄도 모른다.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 줄도 모르고, 철철이 새 옷이나 새 구두를 살 줄도 모른다. 계절마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다닐 줄도 모르고, 여가 생활도 할 줄 모른다. 일을 핑계로 가족들과 여행간 기억도 손꼽을 정도이고, 취미도 없고 잘 하는 운동도 없다. 마음을 터놓고 지낼 친구도 없다. 유머도 없고 멋도 없다. 일요일도 쉬지를 못한다. 기껏 자랑한다는 것이 일용한 양식을 구하기 위해 새벽에 일하러 나갔다가 밤늦게 집에 들어오는 반복된 일상뿐이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꿈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자식들이 잘 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자 꿈이다.

하지만 성장한 자식들은 그런 아버지를 외면한다. 자식들이 사회적으로 성공을 했던, 못했던 간에 아버지는 평생 일 밖에 모르는 늙은이, 돈밖에 모르는 늙은이로 매도당한다. 무식하고, 영어도 못하고, 고집만 세고, 버럭 고함만 질러대는, 대화도 통하지 않는 아버지로 매도하기 일쑤다. 대부분의 자식들은 그런 아버지를 내버려두고 떠난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이나 <효도>라는 단어는 이민올 때 태평양에 모두 버리고 왔는지, 미국 학교를 다니면서 모두 지워버리라고 교육받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자식이 초등학생일 때 문제는 문제거리도 아니다. 사춘기, 고등학생으로 접어들면 자식은 걷잡을 수 없는 골치덩어리로 변한다. <착한 자식>이 아니다. 하지만 내 품안의 자식일 때는 그래도 통제 속에 보호관찰이 가능하다. 대학 생활부터 문제가 심각하다. 아버지는 자식이 대학을 다니면서 무슨 일들을 겪었는지, 무슨 문제를 일으켰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면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한다. 내 자식이라 하기에는 너무 변해버린 낯설은 자식을 만나게 되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집집마다 자식때문에 힘들지 않는 집이 얼마나 될까? 자식의 일이며 가족의 문제이니 어디에다 선뜻 내놓고 이야기도 하지 못한다. 세월이 지날수록 이민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꿈>은 점점 작아지고 초라해져 간다.. 

 

꿈꾸는 아버지 <후편>   (11/21/2013)

아버지의 비극에 대한 대표적 소설이  아서 밀러가 쓴 <세일즈맨의 죽음>이다. <가족의 소외와 붕괴>를 그린 이 소설은 그 당시나 현대 가정에서나 흔히들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이다. 예순셋이 된, 평생 자동차 세일즈맨으로 열심히 일하며, 아들 둘을 희망으로 삼아 자신의 꿈도 버리고 산 남자의 이야기다. 시대적 배경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기부터 시작한다. 그 시대에는 자동차 방문판매가 각광받는 인기 직종이었다. 그도 한때는 번쩍이는 자동차와 좋은 집, 장래가 촉망되는 아들 둘을 가진, 남 부럽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는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성실하게 일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신념으로 자식들에게도 성공하기를 기대하였다. 하지만 대공황을 맞이하면서 살기가 어려워지고, 자동차 산업은 대량 생산체제를 도입하면서 30년 근무한 직장에서는 해고를 당한다. 경쟁과 도태의 비정한 조직사회는 현 시대와 마찬가지다. 거기다 큰 기대를 걸었던 34살의 큰 아들이 무위도식하는 건달처럼 사는 것은 아버지를 더욱 힘들게 한다. 그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현실도피자가 된다. 결국 자식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아버지에게 등을 돌리 때, 끝까지 깊은 연민과 이해로 남편을 지킨 아내 린다가 이렇게 말한다. “너희 아버지가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야. 윌리 로우맨은 큰 돈을 번 일도 없고, 신문에 이름이 난 적도 없어. 하지만 그도 인간이야. 그러니까 소중히 대해 드려야 해. 늙은 개처럼 객사를 시켜서는 안돼.” 그래도 그는 이해심 많은 아내 덕분에 늙은 개 취급을 당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남자라고 해야 하나?  소설의 마지막에는 부자가 내심으로 서로 이해할려고 애쓰고 있으며 가족간의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큰아들에게 재기할 사업자금을 마련해 주기 위해 자신의 생명보험금을 물려주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그는 자동차 질주로 자살을 선택한다. 아내는 장례식날 “집의 할부금도 끝나고 모든 것이 해결된 지금, 이 집에는 아무도 살 사람이 없다”고 그의 무덤에서 울부짖는다.

내 나이 또래의 어느 남자 손님의 이야기다. 자식들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는데 취직이 되지 않는다는 핑계로 독립할 생각도 하지 않고 일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부모는 할 수 없이 자식들과 함께 살지만, 하루에도 몇번씩 속이 뒤집힌다. 미국 경제가 장기 불황이다 보니 이제는 흔한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 그런데 서글픈 사실은 밥을 아버지 혼자 따로 먹는다고 한다. 아내와 자식들이 자기와는 밥을 같이 먹지 않는다고 한다. 같이 먹자고 하면 각자 방으로 밥을 들고 들어가 버린다고 한다. 자신의 밥은 항상 식탁 구석에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그것조차 없는 날도 많아 라면으로 저녁 끼니를 떼운다고 한다. 분명 자기가 벌어온 돈으로 가족들이 생활하는데 아내와 자식들은 철저히 아버지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물론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아버지의 잘못도 있었을 것이고 자식들에게 상처도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이 집에는 대화가 단절되고 서로를 원망하며 소외되었을 것이다. 한지붕 세가족이다. 누가 잘못했던 간에 이 집에는 이해와 용서와 배려가 없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민 가정의 많은 아버지와 자식들이 서로 등을 돌리고 사는지도 모른다.  다만 부모는 믿고 싶지 않을 뿐이고,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특히 인터넷과 사이버 문화가 발달하면서 자식들은 사이버 세계로 숨어버린다. 과연 남의 일일까? 가족의 행복을 책임지느라 항상 바깥으로 맴돌았고, 이제는 자식과 아내에게 조차 선뜻 다가서지도 못하고 외톨이가 된 이민의 아버지들… 그러다 나이먹고 병들어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나의 꿈은 산산히 박살나 버린 <유리병>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이민온 아버지와 지금도 <꿈꾸고 있는 아버지>, 그리고 <사이버 공간에 갇혀버린 자식들>..아버지의 육신이 늙어가고 병들어 가듯이, 아버지의 꿈도 병들고 늙어간다. 아버지는 꼭 죽어야만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자식들에게 알릴 수 있는걸까?

이제 한국도 젊은 부부의 이혼률보다 황혼 부부의 이혼률이 더 높다고 한다. 아마도 그들 부부에게는 <꿈>이 깨어져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노래 가사처럼 “깨어질 꿈이라면 차리리 꿈꾸지나 말 것을..” 그 <꿈>은 처음부터 <잘못된 꿈>이 아닐까? 아버지가 꾸는 <자식에 대한 꿈>은 <자식의 꿈>이 아니라 <아버지의 꿈>이다. 자식이 요구한 것도 아니고 자식이 원한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환상>이라고 한다. 아름답게 생겼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무지개>처럼 말이다. 우리 세대의 아버지들이 대부분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하는 것은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책임이자 의무인줄 알았고, 그래야 <자식에 대한 꿈>이 실현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드리는 자식들 세대가 <전혀 아니올씨다!>이라면… 아버지에 대해 감사하지도, 존경하지도, 효도하지도 않는다면, 더 늦기 전에 <꿈에 대한 가치>의 기준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자식의 성공>이 어떻게 <내 꿈의 전부>가 되어야 하는가? 그분께서 <자식에게 올인>하라고, <아내에게 올인>하라고 어디에 그런 말씀이 있는가? 나의 <인생>과 <꿈>과 <일>에 대한 <가치>는 <저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걸어갈 때 나는 외롭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막상 내 자식의 문제이니까 내 생각대로 되지 않고,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아버지의 <꿈>을 누가 알까?

 

단.사.리 (斷.捨.離) (11/28/2013)

<50대가 흔들린다.> KBS다큐에서 일본과 한국의 오육십대 중년층을 다룬 주제다. 지금 일본의 5,60대들은 힘들다. 평생 직장에서 쫓겨난 그들은 자신의 입이라도 하나 줄이기 위해 거리로 내몰린다. 노숙을 하거나 PC방(넷 카페라고 함) 같은 쪽방에서 하루하루를 버틴다. 이런 오,육십대를 <노인 빈곤층>, 혹은 <노인 난민>이라고 부른다. 일본경제의 잃어버린 20년에 대한 후유증이다. 이는 부의 양극화 현상으로 인한 중산층의 붕괴가 결정적인 이유다. 또 장기간의 경제 침체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임금이 줄어들고 금융제도가 무너지니 각종 연금제도가 무너지고 연이어 사회 보장제도가 붕괴되는 도미노 현상이기도 하다. 과연 이들만의 사회문제일까? 한국의 5,60대는? 미국의 5,60대는 안전할까?

지금 한국의 오,육십대는 일본이 어떤 나라였는가를 잘 알고 있다. 내 나이가 30대 때 일본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나라, 세계2위의 막강대국이었다. 일본과 한국의 기술력 차이는 30년이라고 했으며, 일본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정지었다. 한마디로 대단한 나라였다. 나는 대기업에 근무할 때나, 내 회사를 경영할 때 사업관계로 일본을 여러차례 출장을 갔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소니, 파나소닉, 히다찌, 산요 같은 전자회사들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선망의 기업이었다. 그런데 일본 기업체 간부들의 가정을 초대받아 가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보통 15평에서 20평 규모의 사택이나 아파트에서 사는데 그 좁은 집 구석구석 마다 물건과 책들이 겹겹이 쌓여 있어 사람 몸하나 움직이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미국식으로 계산하면 540 에서 700 Square feet 에 해당하니 여러분이 지금 사는 집과 비교를 해보면 짐작할 것이다. 화장실도, 욕실도, 부엌도 정말 작다. 그런 작은 공간에 모든 생필품을 수납하여야 하니 여유 공간이라곤 생각도 할 수 없다. 그야말로 정리정돈의 귀재라고 할까, 축소지향인 일본인이라 할까.. 하지만 풍요한 물질문명 사회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불필요한 물건들 속에 파묻혀 산다. 너나없이 집이나 가게를 방문해 보면 온통 정신이 없다. 여러분의 집에도 보지않는 서적이며, 운동기구, 그릇, 전자제품, 장식용품, 의류, 각종 잡동사니 등등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무엇이 부족한지 계속 사 들인다. 해마다 Black Friday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취미가 쇼핑인 사람들도 많다. 물건 A를 사러 갔다가 물건 B,C,D를 덩달아 산다. 기본 사양만 있으면 되는데 option 사양까지 모두 사는 바람에 비싼 가격을 지불한다. 이렇게 쌓여진 물건이나 가구들을 머리에 이고 산다고나 할까, 물건이 주인이고 주인은 손님이다. 대부분이 고작 몇번 사용하였거나, 당장 필요없는 물건들이다. 남 주기는 아깝고 버리자니 멀쩡하다. 일년에 한두번, 어쩌면 언제 사용할지도 모르는 막연함으로 물건들을 장식용으로, 마음의 대리 위안으로 <소장>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구매욕구는 <want>인가, <need>인가?

이런 상태에 대해 <··!>라고 외친다. “끊고(), 버리고(), 떠나라()”라고 권하는 말이다 말은 일본 2009년말 NHK 방송 신년 특집 <단사리인생 대청소를 하는 사람들> 베스트셀러인 <>이에서 나온 단어이며, 국내에는 <버림의 행복론>으로 번역되었다.  책은 일본에서 이른바 ‘단사리 열풍 불러일으키고 단기간에 30만부 이상이 팔려나갔다. ‘단사리(斷捨離)’ 집착을 버리고 심적 평온 상태를 유지하는 요가의 수행법의 하나인 ‘단행(斷行), 사행(捨行), 이행(離行)’에서 유래했다 다른 의미로, ‘단사리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고 정리함으로써 자연스레 마음의 평온을 얻을  있는 정리 정돈 기술이자 생활 철학이기도 하다평범한 주부였던 저자 야마시타 히데코 씨는 대학 시절 심취했던 요가 철학을 물건 수납과 정리 정돈에 적용시켜 ‘단사리라는 새로운 원칙과 기술로 발전시켰다물건 중심이 아닌 자신과 물건 사이의 ‘관계성 초점을 맞춰 자신과 관련성이 낮은(불필요한물건을 과감하게 줄여나가는 정리법이다소유욕과 집착에서 벗어나 적게 소비하고 최소한의 것만 취하자는 ‘단사리’ 사상은 소비가 미덕인 대중 소비 사회에 경종을 울리며 하나의 행동 철학이자 삶의 지침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의 어느 단사리 회원은 경영 컨설턴트로 일했는데 집이 서적과 각종 물건들로 가득차, 한사람 눕기도 비좁은 공간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단사리로 대부분을 버리고 나누어주니 집은 <열린 공간>이 되었고, 비로서 내 자신과 가족들의 얼굴이 보이더라는 증언은 인상깊었다. 저자는 “각종 물건들로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 필요한 곳에 필요한 물건이 필요한 만큼만 자연스럽게 소비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한다 사상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과도 유사하다. <무소유>는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것이다. 버리지 못하는 인간 유형에는 <현실도피형>, <과거 집착형>, <미래불안형> 세가지 타입이 있다고 한다. 당신은 어느 유형인가?

 또 다른 <단사리 마음혁명>의 저자 김병완씨는 단사리 마음 정리법을 이렇게 말한다. “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모든 집착과 중독을 끊고(, 끊을 단), 모든 욕심과 욕망과 시기와 질투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버리고(, 버릴 사), 거짓된 삶과 성공과 부의 망상으로부터 떠날 수 있다면(, 떠날 리), 우리는 반드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결국은 산다는 것이 <Good Enough>다. 자제하고 검소하여 이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면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강남  미인 (12/5/2013)

요즈음 한국에는 <강남 성형 미인>이라는 유행어가 있다고 한다. 첨단 성형 수술을 받은 인조 미인들. 강남에는 이런 미인들이 많은데 모두가 비슷비슷한 얼굴들이라고 한다. 한국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것 10가지 중에 스마트폰 사용과 성형 수술이 단연 세계 으뜸이다. 여고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졸업선물 일순위가 성형수술이라고도 한다. 얼굴성형에는 앞트임, 옆트임, 이마 지방이식, 볼턱, 양악, 돌려깎기, 치아, 코 성형, 입술 성형, 눈밑 애교살 까지 고치지 않는 부위가 없으니 쌍거풀 수술 정도는 기본이다. 거기다 남자애들까지 성형에 가세하니 가히 <성형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요즈음은 얼굴성형만으로는 성형 축에도 못끼이는데, 이는 <가슴 성형>이 대세이기 때문이다. 한국 여자들은 <A컵>이 표준이라고 하는데, 요즈음은 성형 수술을 받아 <C컵>은 기본이고 <D컵>까지 유행이라고 한다. 사실 우리 세대의 대부분 남자들은 아내 속옷을 살 일이 없으니 기껏해야 크다, 작다로만 구분하는 정도(?).. 도무지 느낌(?)이 와 닿지 않는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나 신문 기사를 볼려고 하면 온통 낯뜨거운 사진들이 화면에 도배를 하고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여느 신문이라 할 것도 없이 화면 전체가 나이 어린 여자애들을 내세워 벗기기 경쟁을 한다. 언제부터 한국 사회가 사람의 가치 기준을, 인격의 가치 기준을 오직 외모로 성적 호기심으로 우지좌지했단 말인가. 우리세대 때 성형 수술은 화상이나 선천적 기형을 감추기 위해 한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성형에 대해 <절대 반대>는 하지 않는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얼굴에 콤플랙스가 있어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다면, 그래서 약간의 성형으로 자신감을 가질수 있다면 어쩌겠는가. 하지만 한국 성형의 도는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다. 인터넷과 방송의 역작용이다.

얼굴 성형은 자기애(自己愛)의 발로라 할 수 있으며, 자기애의 대표적 인물은 그리스 신화의 나르키소스다. 그는 강의 신 케피소스와 님프 리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나르키소스의 아름다운 용모에 반하여 숱한 처녀들과 님프들이 구애하였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메이니아스는 사랑을 거절당하자 나르키소스가 준 칼로 자살하였다. 숲과 샘의 님프인 에코도 그를 사랑하였는데, 헤라로부터 귀로 들은 마지막 음절만 되풀이하고 말은 할 수 없는 형벌을 받아 마음을 전할 수가 없었다. 결국 에코는 나르키소스로부터 무시당하자 실의에 잠겨 여위어 가다가 형체는 사라지고 메아리만 남게 되었다. 나르키소스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에코가 나르키소스 역시 똑같은 사랑의 고통을 겪게 해 달라고 빌자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가 이를 들어 주었다. 헬리콘산에서 사냥을 하던 나르키소스는 목이 말라 샘으로 다가갔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랑하게 되어 한 발짝도 떠나지 못하고 샘만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탈진하여 죽었다. 또는 샘물에 빠져 죽었다고도 한다. 그가 죽은 자리에는 시신 대신 한송이 꽃이 피어났는데, 그의 이름을 따서 나르키소스(수선화)라고 부르게 되었다. 정신분석에서 자기애(自己愛)를 뜻하는 나르시시즘도 나르키소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아르테 안티카 국립 박물관에는 카라바조가 그린 유명한 그림 ‘나르시스’가 있다. 한 미소년이 한 팔로 호숫가를 짚고 상체를 호수 위로 깊이 숙인 채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있다. 그러나 카라바조는 호수 속에 비친 소년의 얼굴을 실물보다 어둡고 칙칙하며 우울하게 보이도록 그렸다고 한다. 거울속의 비친 모습을 자기 내면이라고 한다면 그 내면에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다. 나르시시즘의 가장 큰 특징은 과장되게 혹은 근거없이 자신이 선하다, 옳다, 정당하다고 느끼는 의식이며, 때로는 자신은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전능감, 더 나아가 과대망상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한편 나르시시트들은 자신이 대단한 존재라는 생각과 동시에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생각 사이를 오간다고 한다. 데이비드 버스는 나르시스트들의 행동 특성을 이렇게 규정한다. “신체를 드러내는 <노출증>, 권력있는 지위에 스스로를 천거하는 <자기과신>, 음식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을 먹는 <자기중심>,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으면서 특별한 호의를 구하는 <특별대우>, 친구의 어려움을 보면서도 웃는 <공감결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이용하는 <대인 착취> 등이 있다”고 한다. 미국의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래시는 1970년대 미국을 <나르시시즘의 사회>라고 규정한다. 사회적으로 유명인을 숭배하고 자수성가한 개인을 우상화하며, 정치나 스포츠가 오락 사업처럼 변질된 것은 대중들의 나르시즘 때문이라고 한다. 현대 한국 사회의 <성형 열풍>도, 지나친 웰빙 열풍도 나르시즘과 욕망, 질투, 의존성이 결합된 사회적 병폐 현상이다.

자기애(自己愛)에도 정상적 자기애와 병리적 자기애로 나뉜다. 건강한 자기애는 병리적 자기애, 즉 자신에 대한 거짓 이미지를 깨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나약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인정하고, 그런 모습 자체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건강하고 진정한 자기애다. 모든 종교적 수행은 영적 성장으로 가기 위해서 자신의 추악하고 보잘 것 없음을 인식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자신이 먼지나 티끌처럼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 잘난 존재라면 절대자 앞에 납짝 엎드리겠는가?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들, 분노, 불안, 질투, 욕망 등을 내려놓고, 자기 우월, 타인 경멸 감정을 내려놓아야 진정한 자기애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내 모습 이대로 주께 가오니~>의 이대로 모습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인정과 겸손과 감사가 선행되어야 할텐데….그분 만나는 날, 그분께서 “가가 야가?”라고 몰라보시면 어쩌나? 유전자 감시반을 동원해야 하나?? (가가 야가 ; ‘그 아이가 이 아이인가’의 경상도 방언임).^^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12/12/2013)

어김없이 또 한해가 저문다. 한해의 끝자락에 서면 웬지 습관처럼 지나온 뒷모습들을 되돌아 보아야 할 것 같다. 하루하루가 맨날 그렇고 그런 삶이니 되돌아 본다한들 특별할 것도 없고 유별스러울 것도 없으련만, 그래도 괜히 스스로에게 미안한 마음만은 감추기가 쉽지 않다. 내 삶이고 내 인생이니 누가 간섭하지도 지적질 하지도 않겠지만, 내 주인에게는 앞가슴 풀어헤친 술집 작부처럼 넋두리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어떻게 사는게 해마다 더 힘든지, 나만 힘든건지, 생각을 갖고 사는건지, 희망은 있기나 한 것인지, 지나온 길들이 뿌연 먼지에 뒤덮혀 잘 보이지가 않는다. 많이 걸었던 기억은 나고, 나름대로 열심히 걸었던 기억들도 난다. 걷는 순간 순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즐겁기도 했고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다. 적지 않은 일들을 하면서 나름대로 바쁘게 살았으며, 먹고 사는 일도 여느해 못지 않게 잘한 것 같다. 상담도 열심을 다하고 매주 칼럼도 쓰면서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조그만 역할도 하고 나름대로 선한 영향력을 나누었다고 위로하고 싶다. 하지만 마음 한켠이 허전하고 우울함은 단순히 한해를 마감하는 아쉬움때문은 아닐 것이다.

유달스레 올 한해는 나의 고객들 중 많은 분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가게 문을 닫은 분들이 유독 많았다. 대부분의 고객들이 자신의 가게를 팔지 않으면 안되는 딱한 사정들을 누구보다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매일 아침마다 기도하고 간구하고 매달렸지만 가게는 팔리지 않았다. 그 매상에 그 조건에 그 가격이라면 팔려도 몇번이고 팔려야 하는데도 팔리지 않는 것이다. 가게가 팔릴 때까지만 힘을 내어 견디어 보자고 서로를 위로하며 애를 써 보지만 가게를 살 사람이 없으니 결국은 가게 문을 닫고 만다. 이론이나 상식적으로 이해되지가 않는다. 지금은 한인사회가 마치 인적이 끊어진 유령도시 같다고나 할까. 가게를 사겠다는 고객들 중에는 마치 다른 별에서 살다온 사람들도 있다. 작금의 미국 한인사회는 흥청망청 잘사는(?) 한국과는 완전히 다르다. 30년전의 미국과 한국, 그리고 2013년의 미국과 한국은 완전히 뒤바뀐 상황이다. 30년전 못살던 한국에서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 미국에 이민온 한인들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꿈의 실현 가능성이 있었다. 이민자들은 너나 없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흑인동네도 마다하지 않았다. 밤 늦은 시간도 마다하지 않았고, 위험도 감내하고 일했다. 내 가게를 갖는 것과 자식들 미국 대학에서 공부시키는 것이 꿈이고 목표였다. 꿈이 단순하고도 분명했다. 그런 각오로 부부가, 가족들이 똘똘 뭉쳐 무지막지하게 일했으니 빈손으로 이민왔어도 어느정도 살만큼의 돈을 벌수 있었고 나름대로 성공할 수도 있었다. 무슨 게임이든지 간에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상대를 이길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지역 한인사회는 전의를 상실해 가는 느낌이다. 한국의 잘 사는 친지들과 비교하면 안된다. 한국의 중,상류층 재산은 여러분 생각보다 훨씬 많다. 이제 한국의 부자들은 미국으로 이민오지 않는다. 투자는 할지언정, 먹고 살기 위해 오지 않는다. 미국의 살인적인 학비때문에 자녀들 유학도 시들해져 간다. 유학생 수도 줄어든다. 게다가 우리가 사는 지역은 텍사스나 조지아의 신흥지역에 비해 집값도 비싸고, 가게 권리금도 비싸다. 세금도 비싸고 물가도 비싸다. 아틀랜타시의 한인 숫자만 이미 12만명을 넘어섰다. 우리가 사는 지역 한인 수를 합한 것보다 더 많다. 미국사회에서 자본이 열악한  이민자의 경우에는 오직 한가지 생존전략 밖에 없다. <죽기 살기로 일하는 것 뿐이다.> 자본은 열악한데, 힘든 일은 안하고, 편하고 쉬운 일만 찾는다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제는 상담하는 나도 지친다. 하늘에 별을 따오는 자격증을 취득하든지 해야지..

오늘은 무슨 칼럼을 쓸까 고민중인데 어느 손님이 카톡을 보내왔다. 나의 손님들은 카톡으로 여러 재미있는 내용들을 보내주시는데, 나는 답장을 하지 않는 못된(?) 버릇이 있다. 이 기회에 사과드리며, 답장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보내 주시는 손님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오늘 카톡은  40살의 김창옥 이라는 인기 강사의 인터넷 방송이었다. 세바시 (세상을 바꾸는 시간)라는 프로에 15분 나와서 강의하는 것인데, 강의 내용을 평가하기는 그렇고, 강의를 젊은이들 취향에 맞게 재미있고 맛깔스럽게 하는 재주를 가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용은 “자신의 직업적 스트레스로 우울증 증세가 있어 프랑스 수도원에 2주일 동안 들어가 생활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대화가 금지되어 있고, 침묵과 기도, 사색과 명상만이 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에게 들리는 음성이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라는 말씀이었다”고 한다. 어찌보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 남았다는 것이 아닐까. 성공했다, 실패했다 라는 평가는 지금까지의 과거에 대한 결과일 뿐, 내일의 결과는 아니다. 내일의 결과는 아무도 모르며, 내가 포기하고 실패했다고 인정하지 않는 한,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 나는 살아 남았다는 실존감이다. 실존은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변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런 내 자신에게 그분의 이름으로 칭찬하고 위로해 주면 어떨까..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험하고 힘들었지만 잘 견디고 인내하며 살아 남은 나 자신을 따독거리고 안아 주어야 한다. 더 밝은 내 자신의 내일을 위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모두 오늘, 여기까지 잘 오신 분들이고 살아남은 분들입니다. 이제 2014년 새로운 날들이 밝아옵니다.  우리 모두 힘내시고 다시 시작합시다.!!

 

빚진자의  죄송함 (12/19/2013)

이 칼럼이 출간되는 날이면 올해의 마지막 주일일 것이다. 만 7년동안 쓴 칼럼이니 년말 년시가 되면 으례 칼럼 제목이 정해져 있다. 년말이면 감사의 내용이, 새해면 새해의 희망과 새로운 결심에 관한 내용들이다. 올 한해도 무척이나 다사다난한 한해였음이, 세월의 빠름과 무상함이 교차되는 반복이다. 해마다 감사한 내용들만 나열해도 칼럼 하나로는 부족한 지경이다. 올 한해동안도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도움을 받았다. 특히나 비지니스 브로커라는 직업은 <나의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팔려고 내놓은 가게는 Seller의 소유이고, 가게를 살려고 하는 사람의 돈은 당연히 Buyer의 소유다. 나는 오직 연결시켜서 매매가 성사되게끔 도와주는 역할이니 나의 소유는 하나도 없다. 그러니 내가 먹고 사는 수입의 전부는 전적으로Seller와 Buyer의 도움에 의한 것이며 그분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나는 빈털털이 신세일 것은 자명하다. 그러니 그분들에게 큰 <빚>을 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새벽기도때 목사님 설교 중에 “이 세상에 자수성가한 사람은 없습니다.”라는 말씀이 가슴에 박힌다. 누구나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니 먹고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관계>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 관계가 사람과의 관계든, 하나님과의 관계든,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잊고 산다. 나 자신도 <관계의 미학>에서 보면 관계능력이 낙제점이다. 말투는 투박하고, 대화는 내가 필요로 하는 말만 하고, 질문에는 거의 단답형이다. 다분히 업무적이고 논리적이다. 친절하지도 않고 나긋나긋하지도 않다. 아마도 손님들이나 교인들 중에는 이런 나를 건방지고 오만하다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이 그 분과 의논하는 법이 없다. 내 잘난 맛에 내가 모든 걸 처리할려고 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해결방법을 찾지못해 눈물을 찔끔거려야 그때서야 십자가에 엎드리고 그분께 도와달라고 매달린다. 한마디로 싸가지가 없는 놈이다. 60년동안 살아온 습성이 그래서인지, 해 왔던 일들이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의 진심은 오만하지도, 건방지지도, 교만하지도 않으려고 노력하며, 내심 그런 부류를 경멸하기까지 하는데도 내가 그런 오해를 받는다면 전적으로 나의 문제다. 하기야 30년을 넘게 산 아내도 나의 이런 태도에 어떨 때는 정내미가 싹 떨어진다고 한다. 이제 나이살도 어느정도 먹었으면 오뉴월의 엿가락처럼 말랑말랑한 맛도 있으련만 걱정은 걱정이다.

나는 올 한해에도 내가 <큰 빚>을 진, 잊지 못할 손님들이 몇분 계신다. 김선생님 내외분은 공원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분이다. 칼럼을 잘 읽고 있다고 눈인사만 나누었을 뿐, 무슨 사업을 하시는지, 성함이 누구신지, 전혀 생면부지의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분께서 전화가 왔다. 가게를 팔려고 하는데 살 사람과 가격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변호사를 통해 매매를 하시면 커미션도 안들고 간단히 해결될 일을 꼭 나를 통해서 파시고 싶다는 것이다. 나에게 내놓은 매물도 아니고 내가 소개한 Buyer도 아니니 나는 아무런 권리도 없는데도 말이다. 맡기신 일이니 최선을 다해 Settlement를 했다. 커미션을 깎지도 않으시고 전액 지불해 주신다. 말이 커미션이지 일반 주급생활자들의 일년 년봉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아마도 나는 평생 김선생님 내외께 <빚>을 진 것이다. 이런 사례는 여러번 있다. 어떤 분은 내가 가지고 있던 매물도 아니고, 내가 소개한 매물도 아닌데, 나를 통해서 가게를 사지 않으면 계약하지 않겠다고 해서, 상대방 브로커는 눈물을 머금고 나에게 커미션의 절반을 지불한 사례도 있다. 또 어떤 분은 매물 정보만 드리고 연락이 없어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느날 수표가 든 봉투가 사무실로 배달되어 왔다. 알고보니 가게를 팔려는 Seller분과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이라 두분이서 계약을 무사히 완료하고 커미션을 전액 보내온 것이다. 사실 나는 그분을 한번 밖에 만나지 않았으므로 그분의 얼굴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또 어떤 분은 다른 브로커에게는 한번도 찾아가지 않고 3년을 기다리다가 가게를 사신 분도 있다. 이런 사례가 한두건이 아니니, 나는 이 사회에 <빚진 자>임에 분명하다.

또 하나님께 진 빚은 말로 다 어떻게 하나. 나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면서,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라고 했는데, 하나도 실천하는 것이 없다. 내려놓기는 커녕 더 움켜쥘려고 하고, 아니 더 가질려고 한다. 좁은 문을 향해 가시밭길을 걸으라고 하셨는데 편하고 넒은 길만 다닐려고 한다. 깨끗한 흰옷으로 갈아입혀 놓으니 온통 더러운 오물을 다 묻혀 다니니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그분께 누만 끼치는 꼴이다. 언제 이 <빚>을 다 갚으려나. <빚>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점점 늘어나는 느낌이다. 아니 죽는 날까지 빙산의 일각이라도 갚을수나 있으려나.

또 여러분이나 나나  <우리들>은 미국에 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선택받은 자들이고, 배운 자들이고, 가진 자들이다. 세계 인구의 20%가 기아에 허덕이고, 세계 인구의 절반이 가난과 질병에 시달린다. <우리>가 아무리 불경기어서 힘들다고 하고 죽겠다고 아우성이지만, <그들>과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잘난 <우리>들은 소외된 <그들>에게 <빚진 자>들이다. 채무자인 <빚진 자>는 채권자인 <그들>에게 반드시 빚을 갚아야 하며, 빚을 갚는 날까지는 적어도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빚진 마음>으로 그렇게 새해를 맞이해야 한다. 제가 <빚진> 김선생님 내외분, 그리고 고객 여러분 모두, 제가 <빚 갚는 그날>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행복하세요?  (12/23/2014)

<행복>이라는 주제는 새해 칼럼으로는 너무 거창하고 무거울 수 도있다. 하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도 행복하세요.” 라는 새해 덕담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하며,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happiness> 어원은 <happen>이다 행복은 발생되는 것이지 쟁취되는 것이 아니다또한 내가 주체가 되어 발생시킬  있는  행복이다행복은  무엇도  허락없이는 나를 불행하게 만들  없다.’ 요약된다예수님은 산상수훈의 <여덟가지 행복선언을 통해 행복의 진수를 가르쳐 주셨다차동엽 신부님은 그의 저서 <행복 선언> 통해 예수님의 여덟가지 행복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다 내용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오늘은 달라이 라마의 <당신은 행복한가>라는 저서에서 내용을 간추려본다 책은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이후 10년만에 출간된 책인데, <행복론> <대한 행복론이라면 책은 <> <우리>, 그리고 <그들> 대한 행복 관계론에 해당하는 책이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는 같은 존재다.>라는 명제로 시작되어야 한다모든 인간은 행복하길 갈망하고 고통을 피하길 원한다. 하지만 <나>와 다른 <우리>, 우리와 다른 <그들>, 심지어 <적>들까지도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유대감을 가질 수 있을까? <우리>가 있으면 <그들>도 있다. 우리와 맞서는 그들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 방식, 고정된 편견, 의심, 무관심, 차별, 갈등, 폭력, 잔인성등이 <우리>가 <그들>을 대하는 태도이다. 심지어 같은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도 <우리>와 <그들>로 나뉘어진다.

먼저 현대인의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대표적 이유는 <공동체 의식의 결여>를 꼽을 수 있다. 오늘날 세상은 연결감과 결속감이 없는 공동체나 사회를 발견하게 된다. 공동체 의식이 없다면 당신이 아플 때, 당신이 고독할 때, 당신이 힘들 때,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사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가 줄어든다. 미국인구의 25%가 친한 친구나 믿을만한 벗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개나 고양이를 많이 키우나? 또한 1985년 미국 통계에는 친한 친구가 3명이라고 한 반면, 2005년에는 단지 2명뿐이라고 답한다. 즉 우리를 공동체와 이웃으로 연결해 주는 끈이 매우 약해졌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 이유는 일하는 시간과 출퇴근 시간이 길어졌으며, 돈을 벌기 위해 당사자와 전혀 연관이 없는 타지역으로 <이동>하는 확률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과 사이버 네트워크의 발달로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는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굴을 맞댄 직접적인 소통과 만남이 인터넷 등의 간접적 만남보다 훨씬 관계의 밀접성이 높고 강하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옥스포드 대학의 진화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인간의 뇌로 유지할 수 있는 친구의 수는 최대 150명이라고 한다.

현대인의 행복에 대한 조건들 중에는 타인과의 연결감과 공동체 의식이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 요소라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동체가 가져다 주는 이점을 자각해야 한다. 고독과 고립과 소외로 부터 벗어나는 길은 <연결성>이다. 연구에 의하면 인간이 한 단체에 가입하면 이듬해에 사망할 확률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두개의 단체에 가입하면 4분의 1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또한 타인들과의 관계맺는 방식에 대한 자각이다.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있는 특성, 공통된 관심사와 배경, 함께 나눈 경험들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타인을 만나는 횟수를 늘려나가는 것이다.

또 다른 관점은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공감해야 하는 것이다. 행복한 세상은 행복한 개인들로 이루어진다. 행복한 개인들은 <다양성>으로 구성된다. 아름다운 정원은 다양한 꽃들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에 대한 인정과 공감이 필요하다. <하나는 모두를, 모두는 하나를> 이라는 원칙이다. 인간의 문제는 인간이 정한 특정범주에 넣어 판단할 수가 없다. 특히 서양인들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나. 흑백논리는 <우리>와 <그들>을 더욱 멀어지게 한다. <우리>는 <그들>에 비해 우월하다는 잘못된 믿음이다. 배웠든, 못배웠던, 부유하든, 가난하든, 잘 생겼든, 못생겼든, 이 모든 차이는 <다름>일뿐, 모두가 존엄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그들에 대한  선입견이나 부정적 고정관념은 <발견적 학습법 : 어떤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모든 경우를 고려하지 않고, 편리한 기준에 따라 그중 일부만 고려해 해결하는 방식이다. 어림 계산법이라고도 한다.>에 의존한다. 이는 점차 차별과 편견으로 확산된다. 일종의 주홍글씨다. 우리 안에 있는 신이 그들 안에도 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도 된다. 관계는 영구적이 아니며, 순간적이다. 좋은 관계는 좋은 순간들을 부단한 노력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행복의 그물망>이라는 설명도 있다. 당신이 행복하면 옆사람이 행복해질 가능성은 34% 더 높다. 1킬로미터 이내의 친구가 행복해질 가능성도 25%까지 높힌다. 행복의 영향은 1년까지 지속된다. 당신 주변의 행복한 사람 한명마다 당신의 행복 기회를 9%까지 높여준다. 그러니 당신이 행복하고, 당신의 주변의 행복한 사람이 많을수록 서로가 점점 더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의 시너지 효과라고 할까. 당신의 그물망에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 많은가, 불행한 사람들이 많은가?

새해에는 더욱 열심히 공동체 생활을 하시고, 주변에 더욱 행복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행복한 하루 하루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