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 칼럼 2022

** 모든 저작권은 윌리칼럼 저자인 이위식 (Wi Sik, Lee)에게 있으므로 저자의 서면 동의 없는 무단 전재 및 복제를 금합니다. 모든 윌리 칼럼은 미국 Korea Phila Times (주간필라) 신문에 매주 해당 날짜에 출간된 것임을 밝힘니다. **





그럼에도 감사 (12-30-2022)

또 한해가 간다. 가는 세월 붙잡는다고 멈추지도 않으려니와, 빨리 가라고 등 떠민다 한들 건너 뛰어 빨리 가지도 않을 세월이다. 우리 나이 또래의 은퇴한 사람들에게는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세월이라 해도 어찌 무색무취 밋밋하기만 하였을까? 올 한해도 여느 해 못지않게 참 다사다난(多事多難)한 한해였던 것 같다.

세계 어느 나라를 불구하고 2022년도 세계인들의 가장 큰 불안요인 18개 항목 중 물가폭등, 인플레이션이 37%로 1위, 2위가 빈곤과 사회 불평등 31%, 실업이 28%, 범죄와 폭력이 27%, 정치, 금융 부패가 24%, 건강보험 불안 20%, 세금 18%, 기후변화 16%, 교육 15%, 코로나 바이러스 12%, 국가간 갈등 11%, 그 외 도덕성 쇠퇴, 환경 위협, 테러리즘, 극단주의 등등이다.

미국은 연방 기준금리가 2022년 6월 1.75%에서 12월 4.5%까지 급상승 하였으며, 2023년 5.0%에서 5.5%까지 오를 예상이다. 따라서 SBA Loan Prime 금리가 8.5%에서 10%까지 예상 되며 자영업자 대출 금리는 12% 이상 상회할 예정이다. 연방의 긴축 강화로 고금리, 물가상승, 인건비 상승, 소비 감소 등, 2023년 1년동안 경기 침체는 분명하지만 급락이 아닌 완만한 하강곡선이기를 희망할 뿐이다. 한국은 미국은 물론 유럽보다 더 힘들 것이다. 특히 한국은 최저 1%대 경제 성장률, 최대 무역적자, 고금리, 부동산 가격 폭락 등으로 인한 천문학적 가계부채와 이자 부담 등 경제위기 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무능, 무치, 무책임 검찰 독재공화국으로 정치, 노동, 부동산, 주식, 수출, 굴욕적 외교, 북한과의 극한 대립 등, 사회 전반의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2022년 2월에 발생한지 만 300여일이 지났지만, 러시아, 우크라이나, 미국, 유럽, 세계 어느 나라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하루 빨리 종식 되어야 한다. 1년도 안된 전쟁기간 동안 양측 모두 30만명의 군인 민간인 사상자들이 발생했으며, 3천여 개 도시와 마을이 초토화 되었고, 3천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미국은 12월 현재 183억달러(약 25조원)의 무기와 탄약을 지원했으며, 이는 30년동안 아프가니스탄에 지원한 금액보다 많다. 양국 전쟁 비용만 4천억 달러, 전후 복구 비용만 1조달러로 예상된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미친 러시아 푸틴 한 명으로 인해 세계인 모두가 피해자다. 미국 합참의장의 말대로 “협상의 기회가 있을 때, 평화를 이룰 수 있을 때, 그것을 잡아야 한다.” 어느 시대 전쟁이나 막론하고 전쟁은 미친 짓이다. 세계가 앞장서서 모든 전쟁을 막아야 하고 평화협상을 종용해야 한다.

올 겨울은 또 얼마나 추우려나? 겨울이 이제 시작일 뿐인데, 미국은 22일 <30년만에 가장 추운 날씨>로 생명을 위협하는 <냉한기 경보>를 내렸다. 북동부 뿐 만 아니라 텍사스,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까지 해당하며 동부는 여러 주가 이미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중북부 몬타나주는 영하 45도, 주말에는 영하 55도까지 곤두박질 치니 <지구 온난화의 위기>가 발등의 불이다. 미국인 60%인 2억명이 겨울 추위 경보 대상이다. 인류가 지구에 저지른 죄값이다. 우리 후세들이 걱정이다. 지구인 모두가 더 늦기 전에 힘을 합쳐 지구를 살려야 한다.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는 만성 질환처럼 걱정거리도 아니다. 먹고 사는게 힘드니 코로나와 독감, 변종 바이러스, 흔히들 3종 세트에 걸리면 할 수없이 걸리는 거고 <한끼 밥> 해결만이라도 불안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가난과 질병, 전쟁과 기아, 엄동설한 강추위와 코로나, 고물가와 고금리 등등.. 그럼에도 2022년 올 한해 모든 게 감사하다. 오늘 하루도 살아 있다는 게, 하루하루 견디며 살 수 있었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올 한해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나의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다. 부족한 나와 함께 살아준 아내가 고맙고, 자식들, 가족들 한 명 한 명 모두에게 고맙다. 올 한해도 일용한 양식을 주신 나의 고객 분들과 3천여명의 기존 고객 한 분 한 분들에게도 감사하다. 15년동안 부동산 비즈니스 컨설팅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부족하고 부끄러운 나의 칼럼을 응원해 주신 독자님들께도 고맙고, 만 15년동안 한 주도 빠짐없이 고정 칼럼으로 실어주는 <주간 필라> 신문사 임직원 여러분에게도 감사하다. 18년동안 섬기었던 기존 교회 교우 여러분들도 고맙고, 새로운 셋방살이 교회에서 함께 걸어가야 할 새로운 교우 여러분들도 감사하다. SNS에서 새로운 소식과 좋은 글을 올려주는 페친 여러분도 고맙다. 일일이 거론조차 할 수 없는, 곳곳에서 나를 도와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 어쨌거나 세계 제일 잘 사는 나라 미국에서 살 수 있게 해 주심도 고맙고, 아직은 아픈데 없이 먹는 약 없이 좋아하는 운동 할 수 있게 하심도 감사하다. 재롱 피우며 매일 함께 산책하게 하는 강아지를 년초에 보내 주심도 감사하다. 나는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이다. 이 모든 게 나의 노력이 아니라 대가 없이 주신 그분의 선물이어서 더욱 감사하다.

이제 또 다른 새로운 한해를 맞이해야 한다. 새해에도 하루하루 순간순간에 충실하며, 그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미워하는 마음 없이 선한 마음으로 더 많이 사랑하며 살아야겠다. 여러분과 여러분 가족 모두모두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지시길 소망하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작은 기쁨 (12-23-2022)

기쁘다! 구주 오셨네!! 온 세상에 울려 퍼지는 Merry Christmas!!

이번주 성탄절이 지나면 올 한해도 다 가고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어느 시대 어디에서 살았던 간에 사는 동안 언제는 만만한 세월이 있었겠냐 만은, 올해는 유달시레 엄혹한 시간들이었지 않았을까.

그래도 살아야 한다. 그리고 기뻐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때문이다. 예수는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들의 희망이자 소망이기 때문이다. 요즘 저녁 산책을 하면서 눈 호강을 한다.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30대 때는 미국에 여러 번 출장을 왔어도 연말 연시에 오지는 않기 때문에 몰랐는데, 이민 와서 깜짝 놀란 장면이 있다. 추가 감사절 이후, <대강절- 성탄절 4주 전부터 시작> 동안 집집마다 동네마다 형형색색 디즈니 궁전처럼 아름답게 꾸며 놓은 모습들을 둘러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미국 사람은 다 잘 사는 부자인 줄 알았다. 부자이어서가 아니라 예수가 오심을 기뻐서 표현을 그렇게 한 것이었다.

대강절(Advent)는 도착(Arrival) 혹은 오심(Coming)을 의미하는 라틴어 Adventus에서 유래한다. 즉 대강절의 첫 주일은 교회력의 시작이며 교회의 첫주일이다. 예수의 탄생을 기다림(대강절), 탄생(성탄절), 고난(주현절), 죽음(사순절), 부활(부활절), 재림(대강절)이 일년 동안의 기독교 주요 절기 행사다. 따라서 대강절은 2천여년 전의 예수 탄생을 기다림과 동시에 미래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의미도 있다.

기다림은 기도와 회개다. 대강절 4주를 상징하는 4개의 초는 소망, 사랑, 기쁨, 평화의 주제로 매주 한 개씩의 초에 불을 켠다. 첫째, 둘째, 넷째 주에는 자색 초를 밝히지만, 셋째 주일은 <기쁨의 주일>로 분홍색 초를 밝힌다. 카톨릭에서는 미사를 시작할 때 후렴구가 “Gaudete in Domino Semper(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이다. 우리 교회(UMC 감리교 잔류파, 셋방살이 중, 교인 60여명) 젊은(?) 목사님은 4개의 주제로 매주 설교 하시는데, 세번째 주는 <온전한 기쁨>으로 설교하셨다. 요즘 젊은 목사님 설교에 흠뻑 빠져 산다. 말씀을 과장하거나 과도한 자해석이 아니라,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는 노력이 좋기 때문이다. 과도한 자해석 설교는 듣기는 쉽지만 공감을 얻기 어려운 반면에, 말씀 그대로의 설교는 설교 준비가 어려운 반면에 공감과 감동을 가져다 준다. 설교는 목사 나이 순이 아닌가 보다.  

사람이 어찌 항상 기뻐할 수만 있을까. 주 안에 내가 있을 때만이 온전하게 항상 기뻐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은데.. 내 안의 가시나무새가 온통 내 마음에 상채기를 내는데.. <온전한 기쁨>은 내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조건없이 주는 선물이라 말씀하신다. <사랑, 소망, 평화>는 3개 모두 자색 초가 사용되는데 거기에는 신학적 의미가 있다. 기독교의 자색은 기도와 회개, 그리고 희생을 의미한다. 세가지 모두 인간이 노력하고 쟁취해야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분홍색(장미색은 전례에서 기쁨을 의미함) 초의 <기쁨>은 내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탄생, 고난, 죽음, 부활을 통해 전 인류가 얻을 수 있는 기쁨은 나의 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기쁨은 그분과 함께 할 때 느낄 수 있는 그분의 선물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 윤활유 내지는 촉진제 역할을 하는 것 또한 나의 <작은 기쁨>이다. 올 한해에도 힘든 일도 많았지만, 여러분과 여러분 가족이 함께 웃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었던 여러가지 <작은 기쁨>들이 있었기에 살만한 세상이 아니었을까? 지금 한번 종이를 꺼내어 기억나는 대로 올 한해 동안 즐거웠던, 그래서 기뻤던, 그래서 행복하고 감사했던 <작은 기쁨>들을 적어 보세요. 사소한 기쁨 꺼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실 것이다. 나도 작은 기쁨들이 참 많다. 나는 매일매일 일들을 노트에 기록해 두는데 감사할 일들이 참 많았다. 또 나는 매주 칼럼을 쓰므로 칼럼에 가끔 기뻤던 일들을 기록하기도 한다. 가족간의 일들은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나와 함께 살아준 아내, 두 딸들과 두 사위들, 아들, 두 손녀들, 새 식구가 된 강아지 모두 모두가 고맙고도 기뻤다. 자랑하고 싶어도 여러분이 시샘할까 봐 참는다. ㅎㅎ

이해인 수녀님의 <작은 기쁨>을 소개한다. “사랑의 먼 길을 가려면 / 작은 기쁨들과 친해야 하네 / 아침에 눈을 뜨면 작은 기쁨을 부르고 / 밤에 눈을 감으면 작은 기쁨을 부르고 / 자꾸만 부르다 보니 / 작은 기쁨들은 이제 큰 빛이 되어 / 나의 내면을 밝히고 / 커다란 강물이 되어 내 혼을 적시네 // 내 일생 동안 작은 기쁨을 지어준 / 비단 옷을 차려 입고 / 어디든지 가고 싶어 / 누구라도 만나고 싶어 / 고맙다고 말하면서 / 즐겁다고 말하면서 / 자꾸만 웃어야지.  

살맛 나는 세상은 내가 만들어야 한다. <작은 기쁨>이 넘치는 세상 역시 내가 만들어야 한다. 대수롭지 않는 일도 기쁘다고 생각하면 기쁜 일이고, 기쁜 일도 당연하다 생각하면 기쁠 일이 없는 것이다. 올 한해도 그분의 은혜와 사랑으로 무사히 마칠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함께 살아준 가족들과 고객 여러분, 독자 여러분과 기도해 주시는 많은 분들에게도 감사드린다. 온 천지에 집집마다 형형색색 불 밝혀 예수 탄생과 예수 재림을 기원하는, 우리 모든 인류의 가슴 속에 살아계시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도 <소망, 사랑, 기쁨, 평화>가 넘치시는 성탄절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재택근무와 현장근무 (12-16-2022)

바람이 차다.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숲 속의 기분 좋은 바람이다. 겨울이 가까이 오나 보다. 힘든 서민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겨울은 많이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덧 한해가 다간다. 2022년 한해를 정리하고 2023년 새로운 한해를 맞이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2021년 못지않게 2022년도 사업도 괜찮았다. 하지만 2023년 새해에는 우리 모두에게 상당한 고난과 인내가 필요한 한해가 될 것이다. 고금리, 고이자, 인플레이션, 임금 인상, 인력난, 원자재 인상 등등.. 미 정부가 너무 많이 풀어버린 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련의 민중들이 겪는 고통의 시간이 올 것이다. 매물은 넘치고 살 사람은 희소하다. 두려움이다. 견디어 내야 한다. 

COVID-19는 이제 일상 감기처럼 생활화 되었나 보다. 물론 고통받으신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나도 4차 감염 백신까지 맞았는데 11월에 코비드에 걸려서 2주일 동안 집에서 격리 생활을 했다. 이틀 정도 감기처럼 아프다가 1주일 뒤에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혹시나 해서 일주일 더 집에서 재택근무를 했다. 그 덕분에 새해부터는 이 참에 재택근무를 하면 어떨까 고민중이다.

재택근무? 평생(약 45년 동안, 군장교 시절 포함) 회사로 출퇴근하던 사람이 집에서 근무가 가능할까? 지금 다니는 사무실도 이 직업을 선택하고부터 지금까지 만 15년동안 10시 출근, 4시 퇴근, 주 5일(월~금요일) 근무하던 동일한 주소지의 동일한 장소다. 일이 없어도 출근한다. 비즈니스 컨설팅 및 매매 관련 직업은 손님을 만나서 매물들을 설명해야 하는 직업이다. 물론 <매물분석>은 현장을 방문하고 현장 실사(實査)를 하고 가게 사진을 찍고 해야 하니 <현장 방문>이 필수다. 이제 어느덧 매물도 500여개가 되고, 각 매물들의 분석자료와 사진들이 있으니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셀러로부터 원하면 자료들과 사진을 온라인 전송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Buyer는 직접 만나서 <Buyer 현상 분석>부터 해야 한다. 자금 상황, 희망 업종 경력, 신분 상황, 크레딧 점수, 융자 가능 여부, 도와줄 가족 현황 등등,, Buyer의 현황을 정확히 알아야 그에 맞는 정확한 컨설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Buyer 분석>은 꼭 사무실에서 만나지 않더라도 <Zoom Meeting>으로 가능할 것이다. 오히려 Buyer가 굳이 필라 사무실까지 오지 않고, 나의 근무시간(월~금, 10시~4시)에 맞출 필요도 없다. 휴일도 가능하고 야간 시간도 가능하기 때문에 업무 효율성 면에서 더 좋을 것 같다.

그 다음에 Buyer에 맞는 매물들을 선별해서 매물별 사업성 분석자료를 설명하고, 가게 내부 사진들과 외부 환경 분석, 경쟁업체 분석을 해 드린다. 그런 다음 관심이 있으시면 주소지를 공개해 드리고, 해당 매물은 우리 회사를 통해 매입한다는 서명날인을 받는다. 요즈음은 매입자에 비해 매물이 많기 때문에 통상 5개에서 심지어 10개 이상의 매물을 보여 드리는데도, 문제는 Buyer가 직접 가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심이 있다 하고서는 주소와 매물 정보만 받고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매물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가게를 사지 않는 이유는 천태만상, 각양각색이다. Buyer를 직접 모시고 다니지 않는 나의 잘못도 있다.

또한 Buyer 각자의 집이나 가게에서 나의 사무실까지의 거리도 문제였다. 나도 메일 집에서 사무실까지 편도 40분에서 45분, 거의 하루에 1시간 30분을 출퇴근 시간에 소비한다. 6,70대 우리 세대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태풍이 불어도 학교는 가야 하고, 회사는 꼭 가야 하는 걸로 머리에 인이 박힌 세대다. 심지어 휴일인 일요일에도 회사 나가서 책상에 앉아 있어야 안심이 되던 대기업 시절도 있었다. 놀아도 회사 부근에서 논다는 웃지 못할 세대들이다. 특히 우리가 사는 지역은 펜실베니아, 뉴저지, 델라웨어 3개 주가 모두 관할 지역이다. 대한민국 전체 면적보다 더 넓다. 오고 가는 길에서 소비하는 시간이 만만찮다.

새해부터는 Buyer를 사무실에서 만나지 않고 매물 현장에서 직접 만나서 매물을 직접 소개할 예정이다. 매물 주소도 만나는 장소마다 한 개씩 오픈할 계획이다.  매물을 많이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최적합 매물을 집중 선별하여 적중도를 높이도록 할 계획이다. 즉 <사무실 근무>가 아닌, <현장근무> 위주로 사업을 할 생각이다. 매물 분석자료도 현장에서 드릴 생각이다. 현장에서 토론하고 매물의 장단점 분석과 문제점 분석, 대책방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또한 매물로 나에게 맡기신 Seller분에게도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격이다. 나는 해당 매물을 여러 Buyer에게 자료와 주소를 드렸는데, 가게를 방문한 Buyer는 한 명도 없었다면 얼마나 실망할까. Seller분들 중에는 개인적 사정이 딱하신 분들이 참 많다. 오죽하면 적지않는 손해를 보면서 파실까?  나와 Buyer 모두의 시간과 노력이 훨씬 더 걸리겠지만, <현장에 답이 있다>는 소신에는 50여년 직장생활에 변함이 없는 원칙이다. 새해부터는 당분간 재택근무, 현장근무, 사무실 근무를 병행해서 진행해 보다가, 재택근무와 현장근무로 충분히 가능하다면 사무실 근무를 없애기로 잠정 결정하였다. 물론 재택근무라 하더라도 출근시간이 되면 정상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내 서재로 출근하거나, 현장으로 직접 출근할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 연장근무, 야간근무, 휴일근무가 가능하다. 어쩌면 COVID의 영향으로 새해에는 새롭게 도전해 보려 한다. 새해에는 사무실 없이 <재택근무>와 <현장근무>에 새롭게 도전해보려 한다. 아자아자 파이팅!!  





동업 매니저 구함 (12-09-2022)

세계가 온통 월드컵으로 하나가 되어 축제 한마당이다. 12월 2일 한국 대 포르투칼 전은 극적인 한판 드라마다. 12월6일 대 브라질 전 8강진출은 비록 실패했지만, 정말 한국 선수들이 자랑스럽고 세계인들이 자랑스럽다. 조그만 축구공 하나로 세계가 하나가 되고, 선의의 경쟁을 하고, 서로를 축하하고 위로하고, 서로 사랑하며 축제를 즐긴다. 함께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이다. 지구촌 모두가 서로 도우며 이렇게 선하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9월19일 <투자와 노동>이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내가 사는 미주 한인 지역의 맘엔팝 비즈니스의 –기성세대 문제점과 – MZ 신세대의 문제점, 그리고 –해결방안으로 투자자와 운영자를 투자와 노동의 동업 방식으로 제시한 적이 있다. 그 이후 계약이 진행되는 사례도 있고, 여러분들이 동업할 매니저를 찾아달라고 부탁을 하셔서 <매니저 동업자 구함>이라는 구인 칼럼을 쓰게 되었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 1970년대부터 이민 온 1세대들은 60대, 70대, 심지어 80대로 늙어가고 있다. 혼자 사는 노인들도 많다. 투자 자금은 어느정도(50만불~1백만불) 가지고 있다. 하지만 건강상 일을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주식이나 국채, 펀드에 투자하기에는 전문지식도 없고 위험도가 높아 거부한다. 한국에 아파트 투자하기에도 아파트 가격이 너무 올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아사리판이다. 그렇다고 건물 임대나 주택 임대를 하기에는 수익률(CAP rate 6% 전후)이 기대치보다 너무 낮다. 그래도 해당 업종의 맘엔팝 비즈니스는 이민 와서 죽기살기로 해 왔던 노인들의 전문 분야이므로 사기 당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해당 업종의 전문 매니저를 구해 동업하고 싶어한다. 자본 투자자의 공통된 요구는 <성실한 자>와 <정직한 자>다. 하지만 나와 같은 경영분석 전문가에게는 막연한 단어들이다. 투자자나 매니저나 사람은 누구나 악할 수 있고 죄를 저지를 수 있다. 시스템을 정직하고 성실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어느 회사나 가게나 모든 것은 자료로 제시, 분석, 예측 되어야 한다. 매상을 속이고 빼돌리고 자료를 숨기는 것은 절도 사기죄에 해당한다. 그래서 투자자와 매니저(운영자)는 <동업 계약서>를 만들어 상호 서명해야 한다. – 계약기간, – 계약연장 조건, – 수익금 배분 구조, – 근무 시간, – 종업원 채용 조건, -계약금, -해약 조건, – 위약금 조항, – 시스템 관리 및 자료 공개 의무, – 자금관리 및 회계 의무사항 등등이 기록되어야 한다.

매니저 동업의 기본 조건은 세금 공제 후 월 순 수익금 (monthly Net Income)의 50대 50 양분 구조이거나 월 1백만원 보장 조건이다. 부부가 일할 경우는 아내 임금은 별도다. 핵심은 매니저의 업무 능력이다. 매상을 더 올릴 수 있는 인센티브가 중요하다. 기존 인수 전 매상보다 매상을 떨어뜨리면 반대급부가 주어져야 한다. 경력(carrier)도 중요하다. 바닥이 좁으니 한 다리 건너면 별의별 소리가 다 들린다. 경력이 부족하다면 <기본급+능력별 성과급 수당>도 검토 가능하다. 코로나로 인해 종업원이 귀한 세상이 되었다. 동업은 윈-윈 게임이다. 이민 1세대들은 생각도 못한 일들이다. 종업원이 한달에 1만불을 받는다고??

투자자 입장에서도 종업원을 투자의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업종마다 주 매상 대비 월 순수익은 핸드폰으로 제 웹사이트 (www.willbusinessbroker.com)에 들어가셔서 빨간 단추를 누르고 <Listing index>에 들어가 해당 업종 매물 번호를 클릭하시거나, <Business Listings>에 들어가 <Defaulting sorting>에서 <sort by newness>를 클릭하시면 최신 매물 순서대로 주 매상, 월 순수익 등 간략한 정보를 알 수 있다. 건물 및 비즈니스 투자자 입장에서는 직접 일하지 않는 대신에 안정된 수입을 보장받으면 된다. 수익을 반으로 나누니 즐거움은 두배로 증가한다? 매월 사업 분석 자문이 필요하면 저 같은 경영 컨설턴트에게 의뢰하면 된다. 매상과 수익 분석, 사업전략을 저렴한 비용에 조언해 드릴 수 있다.

매니저로 동업하시는 분도 2,3년 열심히 일하시면 자신의 가게를 차릴 수 있는 Seed money를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분야의 새로운 전문 지식도 쌓을 수 있다. 혹은 투자자로부터 기존의 비즈니스를 좋은 조건으로 양도 받을 수도 있다.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나 장사는 신용이다. 성실 하지도, 정직하지도, 근면 하지도 않으면서, 남 놀 때 다 놀고, 흑인 동네에서는 일하지 않으려 하고, 밤에는 일하지 않으려 하고, 전문 지식도 없고, 사업할 밑천도 없으면서 무얼 어쩌자는 배짱인가? 소는 누가 키우는가?

요즘은 가게를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기회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기회는 기다리는 자가 아니라 만드는 자에게 온다. 내 비즈니스를 할 때까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고 하지 않던가. 남의 집 종업원 월급은 기꺼해야 월 3천불에서 5천불 사이다. 월1만불에 한번 도전해 보시지 않겠는가? 개인신상에 대한 비밀은 철저하게 보장된다. 이런 제안도 시대적 특수 상황에 해당한다. 기회라면 엄청난 기회일 수도 있다. 저에게 연락주세요 (267-902-6001)

지난주 칼럼 <노년의 고독>에서 <인종차별 반대 및 총기 규제법> 2만명 서명을 받으신 분은 <박두서(77세, 1945년생)>님으로 바로 잡습니다. 박두서 선생님,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노년의 고독 (12-02-2022)

11월27일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50세 이상(1973년 이전 출생자) 인구 중에서 혼자 사는 1인가구 비중이 36%에 달한다. 3가구 중 1가구 꼴이다. 2천5백만명에 해당한다. 미국 1인 가구는 전체 가구 대비 30%를 육박한다. 한국은 2021년 통계 기준 1인 가구 비중이 전체 가구의 31.2%로 미국을 앞질렀다. 20년 동안 1인가구 비중이 3배로 급증한 것이다. 미국은 혼자 사는 50세 이상 인구 중에서 여성이 60%를 차지한다. 50대 이상 여성 10명 중에서 4명 이상이 혼자 사는 여성이다. 미혼, 비혼, 이혼, 졸혼, 별거가 이에 해당한다. 이혼이나 별거 비율은 50년전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비혼(非婚) 즉 결혼하지 않는 비중은 전체의 12%로, 50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즉 현대 미국 중년 여성들은 전문적 직업 성취, 자기집 소유, 경제적 독립을 누리고 있다 할 수 있다. 주변을 둘러봐도 현대 여성들은 똑똑하고 현명하지, 자신을 잘 가꾸고 계발하지, 합리적이고 비폭력적이지, 경제적 기반이 튼튼하고 안정적이지, 노후 대책이 잘 준비되어 있지, 혼자 생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회 구조이지, 사회 인식도 편견이나 부당 대우가 없다. 오히려 남편이라고 거들먹거리며 능력은 안되지, 힘으로 강제하려 하고, 거기다 딸린 식구들까지 책임져야 한다면 왜 같이 살아야 하지?

미국 한인사회도 이제는 이혼이 낯설지 않다. 주마다 다르지만 미국은 별도의 재산분할 약정서를 맺지않는 한, 이혼하면 무조건 50%는 아내 몫이다. 1970년대부터 20대, 30대로 이민 오기 시작하여 죽기살기로 흑인동네에서 목숨 걸고 장사하며 자식 키우고 살았다. 집도 사고 가게도 두 세번 사고 팔다 보니 재산도 1백만불 이상 모은 것 같다. 건물도 한 두채 있어 월세가 들어오니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만 하다. 교회에서도 장로 권사로 행세하니 스스로 그럴 듯 하게 여겨진다. 그런데 부부간의 애정 전선에 문제가 있다면 심각하다. 대부분의 부부는 적당히 체념하고 묵인하고 양보하며 살지도 모른다. 대외 행사에만 부부 역할을 하는 서류상 부부도 있다. 방도 각방을 쓰고 TV도 각자 본다. 밥도 각자가 해서 먹는다. 사랑은 무슨 개뿔? 살아온 정이 있으니 의리로 산다고 한다. 만정(萬情)이 떨어졌다고 한다. 서로 의식하지 않고 무시하고 산다. 졸혼(卒婚)에 해당한다. 그것조차도 불편하면 이혼을 한다.           

하지만 현대 선진국들의 공통된 문제는 고령화, 노령화 사회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55세 이상의 인구 중에 6분의 1이 자식이 없다고 한다. 당연히 <노년의 고독>이 시대의 화두이자 과제가 된다. 부부 금실이 좋아 오랜 세월을 함께 살든, 이 꼴 저 꼴 보기 싫어 혼자 살든, 일찍 사별하여 혼자 살든, 언젠가는 우리 모두 혼자가 된다. 100세 시대라고 하면 30년 이상을 노년의 고독, 우울, 불면, 치매, 각종 질환, 경제적 빈곤 등과 싸워야 한다. 그런데 세상 천지 혼자서 이 모든 것과 싸워 견뎌 내어야 한다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닐 것이다. 참으로 힘들고 잔인한 세월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은퇴를 할 수도 없는 처지지만, 은퇴를 하고 나면 내가 할 수 있는 <봉사 활동>으로 여생을 보내고 싶다. 우리 주변에도 존경할 분들이 계신다. 그중 박두서(77세, 1945년생)라는 분을 소개한다. 며칠 전에 <인종차별 반대 및 총기 규제> 캠페인에 목표 2만명의 서명을 다 받으셨다고 기뻐하신다. 나는 그분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럴듯한 어느 유명 단체 소속도 아니시고, 그렇다고 흔한 종교 단체나 한인회 관련 지원도 일체없이, 오직 혼자서 버스 타고 전철 타고 걸어서 필라델피아 곳곳을 찾아 다니시며 서명을 받으셨다. 방문하는 곳곳마다 환대만 있었을까? 생명의 위험도 놀림도 무릅쓰고,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년 넘게 왜소한 동양의 늙은이 한 분이 곳곳을 걸어 다니면서 2만명의 서명을 받으신 거다. 그 중에는 앞장서서 함께 해 준 아시안 대학생들, 대학교수들, 지역 국회의원, 시장도 후원자로 나섰다고 하니 보람되고 자랑스럽다. 노인으로 잘 사시는 거다. 당연히 한인 사회에 기억되어야 할, 아니 존경받아야 할 분이 아니겠는가?

노인의 고독은 사회적 관계의 감소를 의미한다. 인간관계나 공동체에서의 소외감은 노인에게 당연할 수도 있다. 내가 할 일을 찾아서 하고 그래도 고독하면 고독을 즐겨야 한다. 노년의 내가 혼자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우선 자아정립(自我定立)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색하고 명상하여 자신을 흔들림 없이 바로 세워야 한다. 그 다음은 내가 <함께> 봉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선정해야 한다. 잠깐이 아닌, 내 스스로에게 명분과 보람이 있는,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는, 내 육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을 정해야 한다. 그리고 하루하루 실행하면 된다. 그리고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 중에서 글 쓰는 일, 아내와 함께 요리 하는 일, 산책과 산행, 여행, 내가 좋아하는 운동 계속하기, 색소폰 부는 일, 자연과 함께 책 읽기, 텃밭과 꽃밭 가꾸기, 강아지 고양이와 잘 지내기, 그리고 배우고 싶은 그림 그리기, 손녀들과 친구 하기 등등.. 이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즐겁게 하고 싶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아내와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럴려면 내가 아내의 말을 더 잘 들어야 하겠지 ^^ 인민의 이름으로 충성을 맹세합니다!!  





하루 하루의 기적 (11-25-2022)

이번 주는 미국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 주간이다. 각지에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풍성한 음식과 감사를 나누는 날이기도 하다. 또 한해를 돌아보게 된다.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고,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고, 간절히 소망했던 일들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기적처럼 일어나기도 하고, 바라지도 않던 일들이 선물처럼 우리 각자에게 주어지기도 한 한해였다.

반면에 아무리 열심히 발버둥 치며 살아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이 또 오늘 같은, 지겹도록 반복되는 일상 이었을 수도 있겠지. 기적은커녕 희망도 안보이는, 아니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고난의 세월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육신의 병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많다. 하루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가족은 모두 떠나고 대명천지 혼자 고독하게 사는 독거노인도 많다. 남들처럼 평범하게라도 살기 위해 하루에 투잡, 쓰리잡을 뛰는 젊은이도 많다. 어쩌면 대부분의 민중들은 하루하루 산다는 게 너무 힘들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길이다. 나만 길을 잃은 것 같다. 남들은 잘도 사는 것 같 같은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의 연속인지 좌절하고 분노한다. 이렇게 또 한해를 살면 뭐하나? 신이 원망스럽고 내가 미울 뿐이다.

성경 사전에 따르면 <기적>이란 “신성하거나 영적인 권능이 드러나는 현상”이다. 즉 기적은 신의 영역이다. 그러면 왜 신은 오늘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재난과 고난을 못본 채 외면 하시는가? 왜 신은 병들고 곤고한 자, 힘들고 어렵게 사는 인간들에게 매 순간순간 기적을 행하시지 않는 것인가? 신이 있기는 하는 것인가?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두가지 기본적인 이유, 즉 책임, 회개, 사랑의 신앙을 강화하고 선을 이루기 위해 기적을 행하신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인간은 천지창조와 같은, 물을 술로 만드는 것 같은, 오병이어(五餠二魚)로 모두를 먹이시는, 병든 자를 살리시는, 내가 할 수 없는 일만, 내가 믿을 수 없는 일만 기적이라고 믿는 것일까? 그분의 기적은 내가 아는 것 보다 내가 모른 것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나는 하루하루 사는게 기적이라 생각한다. 하루하루 살아있다는 게 기적이다. 나이를 먹은 탓일 게다. 간밤에 자다가 일순간에 숨을 멈추면 죽는다.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있다는 게 기적이다. 내 선친께서도 주무시다 돌아가셨다. 당신이 심혈관계 국내 유명 내과 의사이셨고 앓던 병 질환도 없으셨는데 주무시다가 64세 연세에 돌아가셨다. 매일 아침 눈을 뜰 수 있다는 게 기적이다. 눈을 뜨면 이 세상의 신이 창조하신 만물을 볼 수 있음도 기적이다. 내가 사는 곳은 한국과 위상이 같아 사시사철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신의 섭리를 바라보면 오늘도 내가 살아 있음이 기적이다.

거기다 40여년을 넘게 함께 잠자리를 해 온 변함없는 아내를 눈 뜨자마자 볼 수 있음도 기적이다. 같이 밥 해먹고, 차 마시고, 함께 산책 가고, 음악 듣고, 책보고 토론하고, TV 보고, 시장 가고, 정원 가꾸고, 교회 가고.. 뭐든지 함께 하는 이게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자식들은 자식들 삶을 스스로 잘 살아가니 이 또한 기적이다. 3명의 자식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공부를 자신들의 선택으로 전공해서 자기들이 원하는 길을 가고 있으니 그 또한 기적이다. 잘 살고 못살고, 부자로 살고 가난하게 살고는 자신들의 노력과 결정에 따른 것이다. 손주들도 하루가 다르게 건강하게 자라나니 그 또한 기적이다. 다만 부모로서 행복한 가정을 사는 모습을 솔선수범헤서 보여주길 소망할 뿐이다. 부모인 우리는 행복하지 못하지만, 자식들인 너희들 만은 행복해야 한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러기에 우리 부부는 잘 살아야 한다.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그것이 기적이다.

왜 내일의 불안이 없겠는가? 노후를 편안하게 살려면 노후대책을 잘 해 두어야 하는데 나는 오십이 다 된 나이에 빈손으로 이민 와서 자식 3명과 하루하루 먹고 사느라 노후대책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남은 세월도 별반 나아질 것 같지 않다. 불안하다 생각하면 불안하다. 그런다고 무엇이 달라지나?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진다는 게 내가 배운 생활철학이다. 그분이 허락하는 날까지 나는 일하면 된다. 노인이 먹어봐야 뭘 그리 많이 먹을 것이며 식탐까지 내겠는가? 우리 부부는 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 둘이서 함께 요리해서 먹을 메뉴만으로도 넘치고 벅차다. 부부 둘다 소식가(小食家)다. 하루에 두끼만 먹는 것도 벌써 10여년이 넘었다. 나의 몸무게는 68Kg, 150파운드로 거의 고정이다. 아직도 주 2회 테니스를 친다. 조깅도 한다. 옷도 30년전 옷을 아직도 입는다. 별도로 먹는 약도 없다. 큰 병에 걸리면 그냥 그대로 편안히 보내달라고 유언했다. 그러니 노후대책으로 무슨 돈이 그리 많이 필요할까? 자식들에게 큰 유산을 남기지 못하니 그건 미안한 마음이지만, 나처럼 사업한다고 많던 재산 다 날려 먹는 놈도 있는데, 돈 많으면 많은 대로 망가지는 놈들을 수도 없이 봐 왔으니 그리 아쉽지도 않다.

오늘 하루를 잘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기적이다. 하루하루 기적이 쌓이다 보면 그것이 신의 은총이다. 장영희 교수 책 제목처럼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그래서 하루하루 매 순간순간의 기적들이 감사하다. 그분의 기적은 하루하루 삶의 평범함이다. 내가 사는 동안 그분이 내 삶에 함께 하시니 그것 또한 기적이다. 오늘 이 순간 살아있음에, 그래서 감사의 이 글을 쓰고 있음에, 그분의 기적에 감사 드릴 뿐이다.





떠나간 자와 남겨진 자 (11-18-2022)

가을이 깊어간다. 매일 걷는 산책 길도, 매주 가는 산의 숲 속 길도 이제는 어느 정도 서로가 정리 되어간다. 단풍 지어 떨어진 낙엽은 낙엽 대로, 무성한 잎들을 떠나 보낸 나목은 나목 대로, 그 자리에 그렇게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구나. 마지막 가는 모습이 행여 초라할까 봐, 이 세상에 와서 사는 동안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단풍 지어 곱디고운 모습으로 기억되게 하더니, 어느 하룻날 온다 간다 작별의 인사도 없이, 천상의 옷으로 갈아입은 채 수줍은 버선발로 살포시 내려 앉는 너의 모습이 좀처럼 지워지지가 않는구나. 잘 살았다. 수고했다. 고생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이제 이세상 근심 걱정 모두 내려놓고 천상에서는 잘 살아야 한다.

가을은 기다림 보다는 그리움인 것 같다. 기다려도 다시는 만나지 못함을 서로가 잘 안다. 한 몸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다가 어느 날 더 이상 함께 산다는 것이 남겨진 자에게 조차 깊은 상처가 된다는 걸 안 다음에야 홀연히 떠나기로 한 것이다. 떠나간 자나 남겨진 자나 이별의 깊은 상처를 가슴에 문신으로 새긴 채 남은 세월을 그리워하며 서로 살아가야 한다.    

단풍과 낙엽의 원리는 처연하리 만큼 순리적이다. 즉 나무는 뿌리를 통해 물을 빨아올리고, 나뭇잎은 엽록소를 통해 공기중의 이산화탄소와 광합성 작용으로 주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을 만든다. 식물은 광합성 작용을 할 때 엄청난 양의 물을 대기 속으로 뿜어낸다. 예로 옥수수 1Kg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잎에서 600Kg의 물을 증발시키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이 인류의 유산인 식물들과 산림을 개발한다는 욕심으로 모두 불질러 태워버리니 오늘날 인류가 겪는 지구 온난화와 지구 생태계 파멸의 위기를 겪는 것이다.

온대 지방에서는 가을에 밤 기온이 섭씨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공기가 건조해 지고 나무는 수분 부족 현상을 겪게 된다. 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광합성 활동을 멈추게 되고, 나뭇잎도 초록색 엽록소가 점점 사라지게 된다. 나뭇잎에는 녹색의 엽록소 이외에도 빛을 흡수하는 70여가지 카로티노이드가 있는데, 붉은색 단풍을 만드는 카로틴, 노란색을 띠는 색소 크산토필이 대표적이다. 단풍은 일교차가 심한 지역일수록 아름답다고 한다. 낮에는 햇볕이 들어 온도가 높아지고 광합성이 일어나 잎에 당분이 쌓인다. 반면에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져 당분을 소비하지 않아 당분이 축적된다. 븕은색 단풍의 색소인 안토시아닌은 당분이 있을수록 더 진한 붉은색을 만들어낸다. 열대지방이나 침엽수가 자라는 한대 지역에는 단풍이 없는 이유다.

나무는 나무 나름대로 살아야 한다. 차디찬 겨울을 제자리에 선채로 견뎌내야 한다. 나무는 인간이나 동물처럼 피난처로 옮길 수 없다. 나무의 뿌리는 빨아들이는 수분의 양을 급격히 줄인다. 나뭇잎에도 수분이 공급되지 않는다. 이때 가지와 잎사귀를 이어주는 잎자루에 <떨겨>라는 칸막이가 생긴다. 잎으로 수분이 공급되지 않게 관다발을 막는 것이다. 기온이 섭씨 5도 이하로 떨어지면 뿌리는 수분 흡수를 완전히 멈춘다. 가지와 줄기에 든 수분을 최대한 줄인다. 아름답던 단풍 잎은 떨어지고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

긴긴 겨울 동안 거친 바람 속에서도, 엄동설한의 혹한 속에서도, 나무는 수많은 어린 가지들이 부러져 날라가도 맥없이 보고만 서있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기에, 어느 곳으로도 스스로 갈 수 없기에, 오랜 세월 동안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이 모진 세월을 견뎌 내면 반드시 따뜻한 봄날이 온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굳게 믿는다. 새 봄이 오면 부러진 가지 사이로 수많은 곁눈에서 새 가지가 돋아나고, 가지마다 새 잎들이 돋아남을, 새 가지에 새 싹은 움트고 가지는 더욱 무성해지고 온갖 새들과 꽃들이 만발한다는 걸, 왜소한 겨울 나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하늘의 섭리에 순종하기에, 나무의 수명은 인간이나 동물 보다 더 긴 수 백년을 이어간다.       

떨어진 낙엽과 남겨진 앙상한 나무는 누가 산 자이고 누가 죽은 자인가? 누가 떠나간 자이고 누가 남겨진 자인가? 구차한 목숨이 붙어 있다고 산 자가 아니듯, 생명이 끊어져도 역사에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으면 죽어도 산 자이다. 예수가 죽어도 인류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계시듯, 우리 엄마는 내 가슴에 영원히 살아 계신다. 삶과 죽음은 두개가 아니라 하나다. 살아 있어도 죽은 자보다 못한 인간이 많듯이, 죽어도 살아있는 자가 많다. 자존(自存), 즉 자신의 존재는 자존(自尊), 즉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킬 때만이 가능하다. 자신의 자존감 마져 내팽개친 채 거리의 개처럼 살아서야 되겠는가?

이제 곧 기나긴 겨울이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안다. 언젠가는 저 모진 겨울도 끝나고 따뜻한 봄날이 온다는 것을.. 지금은 어렵고 힘들더라도 견디고 버텨야 한다. 함께 걸어가야 한다. 서로 등 기대며 살 맞대고 살다 보면 또 살아지더라.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칠까. 남들 보다 보기에 좀 부족하면 어때. 그분이 보시기에 차고 넘친다고 하시면 될 일이지. 어느 가을날의 그 아름답던 무수한 단풍잎들과 한점 부끄러움도 없이 미련도 없이 떨어지던 낙엽들의 결연한 모습들을 눈에 담아두자. 그리고 이 자리에 저 나목들 처럼 처연히 지키고 서 있자. 따뜻한 새봄이 올 때 까지..  





슬픔 속에 가려진 분노 (11-11-2022)

어떻게 이런 일이? 언제까지 이런 일이? 얼마나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고, 얼마나 많은 민중들의 슬픔이 계속 되어야 하는가?

어느 신부님의 말씀처럼 <고통에 중립은 없다>. 국가의 무능과 무지와 무책임으로 조선 반도에 얼마나 많은 민중들이 죽어갔는가? 일제 치하에서, 미군정 10월 항쟁으로, 반민특위(반민족행위 처벌법) 실패로, 제주 4.3 민주항쟁에서, 한국전쟁의 수많은 전쟁터에서, 보도연맹 양심수 무차별 학살로, 4.19 혁명으로, 명분 없는 월남전쟁 파병으로, 박정희 유신독재 항거로, 부마 항쟁으로, 이한열과 6월항쟁으로, 5.18 광주혁명으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세월호 참사로, 등등..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사건사고로 민중들은 죽어갔다. 참으로 야속한 조선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 일명 <10.29 참사> 사고는 명분도 항쟁도 아닌, 평범한 156명의 젊은이들이 국가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압사(壓死)당한 사건이다. 압사 사고는 말 그대로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눌려서 죽는 것이다. 물리학 분자 이론으로는 <군중 밀집도>에 의한 사고다. 1제곱미터에 6명의 인원이 한계인원이다. 6명까지는 물질로 치면 <액체 상태>여서 자체 흐름이 가능하다. 하지만 1제곱미터당 9명이 되면 <고체 상태>가 되어 움직이지 않는다. 하물며 사고 당일 사고 현장에는 1제곱미터당 16명이 밀집된 상태였으니 딱딱한 고체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한 두 사람이 민다고 밀릴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고체 상태로 무리가 고정된 상태에서 외부에서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하면 자체 물질이 파괴되는 현상이다. 사고 당일 13만명이 운집했다고 한다.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이 바보 멍청이가 아닌 다음에야 <군중 과밀집>에 의한 사고가 충분히 예상된 사고다. 본 사고는 어떤 이유(마약사범 집중단속?)이든, 누구인가의 지시에 의해 철저하게 방치된 참사다.

후안무치(厚顔無恥). 윤석열은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다. 윤석열과 그 일당의 무지, 무능, 무책임은 이미 대통령이 되기 전에 내가 여러 차례 칼럼에서 <왜 대통령이 되면 안되는가> <왜 독재 정권이 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어떻게 살았는지 살펴보면 그 사람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평생을 민중을 조사하고 겁박하고 회유하여, 없는 죄도 만들어 내고, 있는 죄도 덮어주며, 벌주고 심판하고, 권력과 재물을 찬탈한 자다. 이런 자가 국민을 보살피고 봉사하는 낮은 자가 될 수 있겠는가? 존 에프 케네디는 ‘국가는 국민을 통치하는 지배자가 아니라 국민을 받들고 봉사하는 하인이다”라고 했다. 윤석열은 <국민과 자유>를 앞세우면서 국민을 탄압하고, <법과 원칙>을 앞세우면서 법으로 탄압하고, <공정과 상식>을 앞세워 불공정과 몰상식으로 국민을 통치한다.

정치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일류대학의 초엘리트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민중과 아픔을 같이 한 자가 하는 것이다. 엘리트들은 국가의 해당 실무를 담당하면 된다. 그런데 윤석열 일당은 권력도 부귀도 명예도 모두 독식하려 하니 그것이 문제다. 가슴으로 정치하는 것은 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다. 민중과 함께 하며 배우고 실천하여 몸에 베이는 것이다. 지식이 아니라 양심이고, 언변이 아니라 행동이다. 인격자가 되어야 한다. 그게 하루 아침에 마음 먹는다고 되겠는가? 그래서 윤석열의 모든 언행에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공감 능력이 없다. 세계가 윤석열을 조롱한다. 누구 말대로 윤석열은 <인간 자체가 싫다>.

여느 국가적 사고처럼, 책임지지 않는다. 하부조직 몇 명을 희생양 제물로 처벌하고 시간이 지나면 또 흐지부지 될 것임을 저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온 국민이 치를 떨던 <세월호 참사>로 밝혀진 게 무엇인가? 조선의 위정자들은 스스로 책임지고 권력의 옷을 벗고, 초야에 묻혀 평생 참회하며 살지 않는다. 한번 기득권은 영원한 기득권이다. 민중을 어리석은 바보로 치부하는 것이다. 조선의 개혁과 천지개벽은 항상 <민중들의 피>로 이룩하였다. 또 얼마나 많은 민중들이 피를 흘려야 하며, 촛불을 들어야 하는가? 경제대국 7위로 선진국 반열의 대한민국이 왜 대통령 하나 제대로 뽑지 못해 이 지경이 되었는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국민 모두가 <내 탓이요, 내 탓이요>를 울부짖어야 한다.

생때같은(공을 많이 들여 매우 소중한) 자식들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은 무슨 말로 위로가 될까? 자식이 먼저 죽으면 부모는 그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애도도 위로도 슬픔도 분노가 가라앉아야 가능하다. 우리 주변에도 무슨 사고이든 자식을 먼저 보낸 분들이 계신다. 평생을 눈물로 아파하시고 슬퍼하신다. 하물며 사고도 아니고, 본인들의 잘못도 아니고, 축제날 이태원에 놀러 나갔다가, 국가의 무능과 방치로,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압사당해 주검으로 돌아 왔다면 그 국가에 대한 <분노>가 평생 지워지겠는가? 1개 중대 기동타격대만 배치 되었어도 막을 수 있었던 재난을 무슨 거짓말과 허위 진술과 증거 조작으로 막을 수 있을까?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가 나를 지켜준다는 믿음이 있기에 존재한다. 종교란 무엇인가? 신이 나를 지켜 주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참배객들 대부분이 <미안합니다>라는 위로의 쪽지를 남긴다. <미안하다>라는 말 이외에 동시대를 함께 사는 국민들로서 더 이상 무슨 말을 할까? 온 세계인인들이 애도(哀悼-죽음을 슬퍼함)한다. 하지만 민중 모두가 분노한다. <이게 국가인가?> 윤석열과 그 일당은 강제로 물러나게 해야 한다.





왜 살아야 하는가 (11-04-2022)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나는 왜 사는가? 삶의 목적은 우리 모두의 화두다. 미하엘 하우스겔스는 자신의 책 제목처럼 10명의 철학자들에게 <왜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19세기 실존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삶은 고통>이라고 한다. 누구나 이 지구별에 와서 사는 동안 삶은 고통이다. 산다는 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각자의 고통스런 인생길을 걸어가는 과정이다. 가족이든 친구든 동반자에게 조차 나눌 수도, 떠넘길 수도 없는 나만의 짐이다. 예수님도 예수님만의 고통의 짐을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걸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그 길이 죽음의 길이라는 걸 아시면서도 그렇게 벗어나려 몸부림 치시면서도 벗어날 수 없음을 아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이다.

또한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나에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 하셨다. 사는 동안 삶의 고통을 잠시 내려 놓고 쉬게 하실 수는 있어도 그 고통의 짐을 사는 동안에는 없게 해 주시지는 못함을 아신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인간 모두는 각자의 무거움 짐을 지고 가므로 그 고통 속에서 삶의 가치와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삶의 행복과 기쁨은 누가 찾는가? 내가 찾아야 한다. 언제 찾는가? 오늘 지금 이순간 현재에서 찾아야 한다.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내일 기쁨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지금 이 순간 찾아온다. 아니 내가 찾아야 한다. 나의 신념, 가치관, 의지, 노력으로 내가 찾지 않으면 행복이 옆에 있는지도 모르고 고통 속에 신음하다가 죽어야 하는 것이다.

삶의 고통은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 어떤 존재로 살았든지 간에 누구나 가지고 살았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본질이 <의지>에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의지는 <충동과 욕망>을 의미하는데,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심미적 해탈과 윤리적 해탈의 대안을 제시한다. 심미적 해탈은 일시적 기분 전환 용이다. 윤리적 해탈은 고통의 원인인 의지 자체를 억제함으로써 영속적인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고 말한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불가(佛家)에서는 삶을 고해(苦海), 즉 고통의 바다라고 한다. 바다가 물 몇 바가지 퍼낸다고 바닷물이 마르겠는가? 불교에서는 백팔번뇌라고 한다. 인간 삶의 모든 번뇌를 의미한다. 여기서 98결과 10전을 합하여 108번뇌라 하는데 이를 논할 생각은 없다. 염주 알도 108개, 부처님에게 절도 108번 한다. 그렇다고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날까? 석가모니 뿐만 아니라 수많은 고승들이 백팔번뇌에서 벗어나 해탈하기 위해 평생을 수행한다. 해탈했다고 해서 수행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돈오돈수, 돈오점수를 논할 생각도 없다. 그렇게 혼자 해탈하면 세상이 나아지나? 인간들이 행복해지는가?

나의 삶의 고통은 내가 안고 가야 한다. 고통에서 벗어나려 하지 말고 그 고통 속에서 나만의 행복과 삶의 기쁨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오늘 주일날 새로운 셋방살이 교회에서 미국교회를 시무하는 젊은 목사님의 설교가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의 본향(本鄕)으로, 각자의 별나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간다는 의미는 첫째, 돌아가야 한다는 나의 의지와 믿음이 있어야 한다. 둘째, 어떤 모습으로 돌아갈 것인가? 욕망에 쩌들어 처참하게 망가진 모습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비록 세파에 힘들게 살았어도 단정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갈 것인가? 셋째, 돌아가는 주체는 내 자신이다. 내 육신으로 내 발로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누가 대신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내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 안다는 것은 깨닫는 것이다. 깨닫는 것은 일회용이 아니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지고 깊이는 깊어진다. <지정의(知情意)>란 무엇인가? 지(知)는 이성적 지식을 말하며, 정(情)은 마음 속에 일어나는 감정이나 충동을 말하고, 의(意)는 감정 속에 일어나는 충동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의지를 말한다. 믿음은 이 지정의가 조화를 이루고 균형이 잡혀야 하며, 이를 인격자(人格者)라고 한다.”

쇼펜하우어는 삶을 <고통> 아니면 <권태>라고 한다. 세상 모든걸 다 가지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권태>로운 인간들을 보자. 대궐 같은 초호화판 큰 집에서 없는 것 없이 산다고 행복할까? 수많은 미녀들을 나체로 몸종으로 함께 살면 제명에 못산다. 매일 세상에 값비싼 음식을 먹으면 각종 질병과 비만으로 죽는다. 초호화판 여행으로 과시하면 삶의 질이 나아지나? 무엇을 한들 흥미로울까? 재미있을까? 행복할까? 마누라는 정상적인 삶을 살까? 자식들은 제대로의 삶을 살까? 종교가 필요할까? 모든 게 싫어지고 흥미를 잃게 된다. 허구한 날 술 마시고 마약에 쩌들어 <권태로운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한 수많은 역사 속 인간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나에게 없으니 귀한 것이고, 나에게 부족하니 소중한 것이다.      

누구나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고통이라면, 하루하루 그 고통 속에서 오늘을 감사하며 살자. 감사 속에서 행복을 찾자. 그 행복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자. 하나님은 행복을 고통 속에 숨겨 두셨다. 그 <행복의 나라>를 나의 의지로 나의 노력으로 나의 실천으로 찾아 나서자. ‘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문으로 이세상을 떠보자.’ 1970년대 학창시절에 참 많이 부르던 노래 가사다. 한번 들어보세요. <행복의 나라로>로 가 보세요.

이태원 참사로 작고하신 영혼들의 삼가 명복을 빌며, 유가족 분들께 하나님의 가없는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멀고도 좁은 길 (10-28-2022)

나는 지금 새로운 길 위에 서 있다. 오십이 다 된 나이에 이민 와서 18년동안 한 교회를 섬기면서 교인들과 한 가족이 되어 슬플 때 함께 울고, 기쁠 때 함께 웃으며, 서로 위로하며 살아온 세월들이 오늘로 막을 내리는 것 같아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프다.

어제(10/22/2022) 부로 우리 교회는 연합감리교회(UMC) 재단에서 탈퇴하기로 결정되었다. 교단 탈퇴 찬성 82%, 반대 17%, 무효 1%. 나는 교단 탈퇴를 반대하는 소수 쪽에 표를 던졌다. 아이러니 하게도 교단 탈퇴 찬성하는 쪽이 기존의 교회 본당 건물과 땅 8에이커(이 재산은 10년전 미국 UMC 교단으로부터 한국교회가 무상으로 기증받은 재산이다.)를 차지하고, 교단에 남겠다는 쪽은 기존 교회에서 쫓겨나 새로운 낯선 곳에서 셋방살이를 시작해야 한다.

가기로 마음 먹으면 어딘들 못가랴. 다락방이면 어떻고 초가삼간이면 어떠하리. 혼자이면 어떻고 외로우면 어떠리. 나는 70여생을 살아오면서 주변의 권고에 따르지 않고 나의 길을 걸어온 기억들이 있다. 의대에 가지 않고 공대를 선택한 일, 대학 4년동안 반독재 데모에 참가한 일, 유학 가지 않고 군대간 일, 장래가 보장된 대기업 생활을 그만두고 내 사업을 한 일, 내 재산을 다 팔아서 사업을 정리한 일, 동성동본인 아내와 결혼한 일, 일가친척 아무런 연고도 없는 미국땅에 빈손으로 이민 온 일 등등.. 되돌아보면 일말의 아쉬움과 가족들에게 미안함도 남지만, 나의 가치관과 신념에 따라 내가 선택한 길이고 내가 걸어 가야 할 <멀고도 좁은 길>이었다.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탈퇴 명분인 <동성애 성소수자 문제>가 200년 교단과 40년 이상의 한국교회를 분열시키고 수십년 친교를 맺어온 교인들을 적으로 갈라치기 해야 하는 문제인가? 부부 간에도 살면서 의견이 다를 수는 있다. 그렇다고 헤어지지는 않는다. 나와 의견이 다른 다수의 교인들이 있음을 안다. 나의 주변 교회 형제들은 나에게 충고했다. 이미 3년동안 판은 짜여져 있고 대세는 결정되었다고.. 한달 동안 판을 뒤집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고..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결국 자본의 힘이 이긴다고.. 못 본채 빠져 있으라고.. 그랬어야 했나?

먼저 탈퇴 명분인 <동성애자, 성소수자 세례 반대>는 나의 종교 가치관과 맞지 않았다. 나나 여러분은 교회를 시험 쳐서 입교하였는가? 우리는 서로의 과거를 잘 알고 교인이 되었는가? 우리 모두는 예수의 제자가 될 자격 시험에 통과 되어서 기독교인이 되었는가? 차라리 시험을 쳐서 엄선하여 교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 매년 시험을 쳐서 자격 여부를 심사 받았으면 좋겠다. 고도의 정예화된 교인! 신앙으로 무장된 교인! 재정 및 소득 분석가(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임)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십일조 제대로 내는 교인! 나는 내 양심을 속이는 십일조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몸으로 때웠다. 나는 60세 이전 10년 동안, 일반 성도 신분으로 교회 재정 감사 3년, 남선교회 회장 4년, 속장 인도자 7년, 도서실장 4년, 몇차례 교회 부흥 사업 계획서 제출 등,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나는 기독교 믿음이 약한 자다. 단지 예수께서 <서로 사랑하라, 모두를 사랑하라>라는 지키기도 어려운 계명 하나를 주셨기에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려 노력하며 살 뿐이다. 나와 여러분 중에 성경 말씀에 온전한 자가 누구인가? 상처받고, 어딘가 영혼이 부족하고, 아프고, 약한 자이고, 병든 자이고,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 아닌가? 사기꾼, 범죄자, 간음한 자, 창녀, 알코올 마약 중독자, 가난한 자, 권력의 가해자, 국가 폭력범, 친일파 등등 일일이 거론조차 할 수 없는 수많은 범죄자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 아닌가? 예수의 교회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고, 누구나 죄를 고백하면 사함 받고, 새 사람이 된다는 곳이 아닌가? 구약의 말씀이 예수께서 가르치신 말씀인가? 나는 구약은 유대인들의 언약이고 후대의 참고서일 뿐, 내가 목숨처럼 지켜야 할 계명은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다. 매일매일 참회하고 반성하여 죄 짓지 않는 하루하루의 삶을 살기를 노력할 뿐이다. 동성애자이든, 누구든, 교회에 와서 예수 믿겠다고 하면 받아줘야 하는게 아닌가? 누가 누구를 심판하고 배척하고 내친다는 말인가? 역지사지(易地思之), 황금률의 법칙이다. 만약 내 자식이, 여러분의 자식이 동성애자라면 그 자식을 집에서 내쫓을 것인가? 죽으라 할 것인가? 호적에서 파 버릴 것인가? 우리 모두가 죄인인 것처럼, 우리가 그들을 감싸 안아야 한다. 모두가 그들을 버린다 하여도 내가 아는 예수님 이라면 그들을 감싸 안았을 것이다. 그래야 내가 예수를 믿어야 하는 필요충분 조건이 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아내와 함께 자유의 몸으로 <멀고도 좁은 길>을 걸어갈 것이다. 나는 내 방식대로 예수를 사랑하고 내 가족과 내 이웃을 사랑할 것이다. 가다 보면 외롭고 힘들고 지칠 수도 있겠지. 그래도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 18년 동안 지금까지 섬겼던 교회와 형제 교우들로부터 많은 은혜와 사랑을 받았음에 감사한다. 남은 세월도 이웃으로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며 잘 지냈으면 좋겠다. 저로 인해 상처받은 교인과 독자들이 있다면 용서하세요. 모든 형제들 가정과 가족들 모두에게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길 소망합니다. 감사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가족 형제 자매 (10-21-2022)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닐 기르시니 두 분 곧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을까? 하늘 같은 은덕을 어디에다 갚을까?”<정철 시조, 시경(詩經) 육아 편에서 인용>처럼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으면 내가 존재할 수 없다. 부모님이 계시니 형제 자매도 있고 자식도 있다. 우리는 이를 혈연관계, 즉 피를 나눈 관계, 가족(家族, Family)라 칭한다. 싫다고 지울 수 있는, 끊는다고 끊을 수 있는 자의적 관계가 아니다.

<가족>은 누구나 삶의 근간이다. 가족처럼 나를 많이 알고 이해해 주는 사람도 없다. 때로는 상처도 주고 미워도 하지만, 내가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의 고향이다. 가족 관계가 부서지면 나의 근본이 부서진다. 그래서 사람은 외롭다. 

인간 예수님에게도 가족이 있다. 어머니 마리아. 예수님의 양부이자 성모 마리아의 남편 요셉,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 마리아의 아버지 요아킴, 예수의 형제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 그리고 누이들 (종파마다 직계, 혹은 사촌지간 등 해석이 다름). 야고보와 형제인 사도 요한, 성모 마리아의 사촌이자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 등이다. 신성 모독에 해당되겠지만, 내 개인적 의견으로는 적어도 예수의 유아기, 성장기에는 엄마, 아버지, 형제들 가족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관계가 좋든, 관계가 나쁘든, 자신들만의 가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넷플렉스 한국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tvN 드라마 16편짜리가 있다. 5명의 가족 구성원이 살아가는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대해서 얼마나 알까?> 라는 질문을 해 보았다. 나는 3남2녀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먼저 내가 가장 사랑했던 우리 엄마 아버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엄마, 아버지는 부모 형제들을 모두 이북에 남겨두고 남한으로 피난 온 청년들이었으니 얼마나 피맺힌 그리움과 한들이 많았을까? 아버지는 워낙 과묵하신 분이라 당신의 일기장을 작고하신 후에야 읽어본 것 이외에는 살아오신 세월에 대해 거의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 분명 여느 젊은이들처럼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을텐데 나는 착한 자식일 뿐, 가족으로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다.

4명의 동생들과도 많이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막상 서로의 마음 속 깊은 고민을 이야기 해 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형으로, 오빠로 역할에만 충실할 뿐, 친구가 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나도 내 고민을 친구에게는 이야기 해도 가족들에게는 거의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2남1녀의 내 자식들에 대해서도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자식들의 많고 많은 고민은 누가 들어 주었을까? 나의 경험으로는 친한 친구 한 두명 정도가 아닐까? 인디언의 속담에 “자신의 슬픔을 함께 짊어지고 가는 사람을 <친구>”라고 정의한다.

가족보다 더 많은 비밀을 알고 있는 인연들도 있다. 오래된 연인, 친구, 회사 동료, 단골집 주인 등이 있다. 나도 한국에서 회사원 시절부터 사업 망할 때까지 접대를 마치고 꼭 마지막에 들리는 동네 단골 포장마차 아줌마가 있었다. 그 아줌마는 나를 모르면서도 술에 취한 나의 이야기를, 나의 고민을 다 들어주었다. 그 아줌마가 내가 사업 실패로 죽으려고 하자 “죽지 마세요. 이사장님은 아주 조그만 것을 잃어버렸을 뿐 입니다. 당신은 아직도 누구보다 소중한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가족들, 능력들, 무형의 자산들을 일일이 거론하면서 위로해 주었다. 그래서 다시 살기로 한 계기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그 아줌마 이름도 모르지만 항상 감사하다. 어쩌면 그 아줌마가 이민사회의 교회 교인(형제님, 자매님)일수도 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알 수도 없고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가족은 항상 옆에 있어만 주면 된다. 내가 힘들 때, 외로울 때, 어려울 때, 언제라도 손을 내밀면 잡아줄 수 있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면 된다.

부부 간에도 대화와 이해가 필요하다. 드라마에서도 주인공 부부 간에 <졸혼(卒婚)> 문제가 거론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오해가 쌓이면 침묵과 증오의 골이 더 깊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소중하게 아낄 줄 알아야 한다. 가능한 한 부부간에는 대화를 많이 하고, 비밀이 없어야 신뢰가 깊어진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요구하지 말고 내가 하면 된다.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사람, 곁에 있어만 주어도 좋은 사람>이 당신의 부인이자 남편이다.

세상은 <가족 같은 타인>과 <타인 같은 가족>이 오해를 극복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민 사회에 가족을 빼면 <친구 같은 교인> 밖에 더 있는가? 나는 카톨릭 성당에서 성도를 서로 호칭하는 <형제님, 자매님> 단어를 참 좋아한다. 개신교의 장로, 권사, 안수 집사, 집사, 성도 구분 지어 <계급화, 서열화>를 싫어한다.

한인 감리교회가 탈퇴 분열의 시간이 성도들 간에는 깊은 상처로 남을 것이다. 살다 보면 가족 간에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들이 있다. 그래도 가족들은 함께 이겨내어 살아간다. 무지한 일개 장로가 편지로 성도들을 공갈 협박해서는 안된다. 성도 간에도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한다. 기다려 주어야 한다. 오랜 세월 서로가 한 가족이 되어 서로의 아픔을 함께 하며, 걱정을 덜어주고, 기쁨을 함께 나누던 형제 자매가 아니었던가? 다수의 의견이 모아지면 슬기로운 해결방안을 만들어 교인이 분리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적어도 <가족 같은 교인>이라면 말이다.





목사들의 반란 (10-14-2022)

연합감리교회(UMC- United Methodist Church)는 전세계 연대를 바탕으로 약 1천2백5십만명 성도가 속해 있고, 미국 연합감리교회는 미국 내애서 두번째로 큰 개신교 단체다. 1968년에 감리교회가 통합 탄생한 이 연합감리교회가 <동성애 성소수자> 문제로 200년 전통의 교단을 탈퇴, 분리하게 생겼다.

동성애자, 성소수자 문제는 연합감리교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종교마다, 종파 마다, 국가마다, 교회마다, 성도 개개인 마다 견해가 다를 뿐 아니라, 인정하는 범위도 다르다. 성소수자 그들은 범죄자들이 아니다. 아픈 자, 병든 자 일수도 있고,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성적 태생이 그러하니 국가 법률적으로도 차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게 이 시대의 사회통념이다. 주님이라면 그들을 내치시겠는가?

여기에 연합감리교회 <탈퇴 명분>이 존재한다. 탈퇴자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생육하고 번성하라”(창세기 1:27-28)에 어긋난다는 것이 탈퇴의 명분이자 변(辯)이다. 교단의 입장은 물론 다르게 해석한다. 여기서 양측의 의견이나 성경적 해석을 논하고자 함은 결코 아니다.

지금부터는 내 개인의 의견임을 전제한다. 나는 믿음이 극히 약한 자이며, 일반 성도이며, 지금 다니는 감리교회에만 18년째 다니고 있다. 가능한 한 목사님 존칭을 생략하고 교회적 단어는 사용치 않음을 양지해 주시기 바란다.

이 칼럼의 논조는 교단측 연회 임원들도 목사들이고 탈퇴 측도 목사들이다. 신도들의 헌금으로 평생 월급 받고 생활하는 목사가 직업인 자들이다. 시대마다 성경적 해석이 다를 수 있고, 교단의 장정(교단 법률)이 바뀔 수도 있다. 성소수자 문제는 2016년부터 거론되어 2019년 성소수자를 인정하는 않는 목사와 교회는 탈퇴해도 좋다(장정 2553)는 강령을 발표했다. 교단 탈퇴를 인정한 교단 자체가 일차적 책임이다. 그때부터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교리 해석이든, 강령이든, 장정이든, 교단 내부 싸움은 목사들끼리 내부에서 해결해야지 왜 성도들에게 무거운 짐을 씌우고, 적과 아군으로 편을 갈라치기 하고, 교회를 떠나게 하는가?   

교단 입장에서는 반란, 쿠테타 무리로 볼 수 있고, 탈퇴 목사들 입장에서는 개혁, 혁명으로 주장할 수도 있다. 성소수자 문제는 <반란의 명분>일 뿐, 실체적 본질은 -1. 교세 약화, 교인 수 감소 추세 지속 -2. 교단의 공룡화, 제도와 행정에 대한 목사들의 불만 급증, -3. 교단 운영과 목사 파송 문제, -4, 공룡화된 기관과 시설 축소의 필요성, – 5. 교단 행정 임원진에 대한 인사 불만이 누적된 것은 아닐까?

특히 감리교회 목사들은 5년 단위, 길어야 10년 단위로 교회를 옮겨야 한다. 교단 행정 임원들의 <인사권 횡포>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열과 성을 다해 부임한 교회를 부흥시켜 신도 수를 배로 증가시키고,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고, 신도들의 신임을 어렵게 쌓았는데, 속된 말로 이제 겨우 먹고 살만 해졌는데 다른 교회로 발령 나면, 그마저도 더 못한 교회로 발령 나면 성질 나겠지. 목사들 로망인 <감리사>승진은 계속 누락되고, 은퇴 연령(감리교는 목사 은퇴 연령이 정해짐)은 가까워 오면, 그렇다고 대형 장로 교회처럼 은퇴 자금으로 집 한 채 사주고, 수십, 수백만불 현찰로 주고, 원로목사로 죽을 때까지 평생 보장되는 것도 아니라면 성질 나겠지. 교단 탈퇴 쿠테타를 일으킬 만도 하겠다 인정한다.

하지만 교단 탈퇴를 개뿔도 없이 목사 혼자서만 나가면 무얼 하나? 개척교회를 만드나? 성도들을 끌고 나가야 한다. 성도들만 끌고 나가면 무얼 하나? 교회 건물과 부동산을 가지고 나가야지 생고생을 안할 것이 아닌가? 교단 탈퇴는 <부부 이혼 소송>과 똑같다. 재산을 한 푼이라도 더 가지려 안면 몰수 한다. 자식들도 엄마 편, 아빠 편 나뉘어서 원수처럼 싸운다. 교단에서 탈퇴를 인정받으려면 정교인 3분의 2 이상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투표는 기명 투표다. 누가 남는 자(목사 비주류파, 교단파)인지, 누가 탈퇴자(목사 추종세력, 주류파)인지 다 알 수가 있다. 이게 무슨 짓거리인가.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탈퇴 결정 사전에, 총 교인 워크샵이나 토론회를 1박2일로 몇 회에 걸쳐 난상토론을 하여 전교인 합의로 탈퇴 결정한 것도 아니고, 교인들 모르게 목사와 임원회(목사 추종세력) 결정만으로 우리 교회는 탈퇴 하겠다고 교단에 일방 통보한 행위는 별도로 책임 추궁해야만 한다. 교회는 교인 모두의 교회이지 5년 임기직 목사의 교회가 아니다.  

 대부분의 한인 이민 교인들은 종파가 아니라, 내 집에서 가까운 교회, 성도가 많은 교회, 시설이 좋은 교회, 목사 평판이 좋은 교회 순으로 교회를 정한다. 부모가 다니니 자녀들도 다니고 손주도 다닌다. 성도들과는 먼 친척보다 가깝게 지낸다. 타 주로 이사 가지 않는 다음에야, 그 교회를 다니다가 그 교회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민 생활은 집-가게-교회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사 보다는 신도들 친분이 더 소중한 까닭이다. 그런데 어제까지 20년, 30년 동안 한 형제로 친하게 지내던 교우들이 교단 탈퇴라는 반란으로 하루 아침에 서로 원수가 된다면 말이 되는가? 좁은 한인 사회에서 어딜 가도 만나게 되는데 서로 손가락질 하는 사이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아직 탈퇴 찬반 여부 투표(10월22일)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편싸움이 시작되었다. 누구의 책임인가? 교회와 성도는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생각이 다르다고 가족은 헤어지지 않는다. 나는 늙은 나이에 이제 어디로 가지? 주여, 어찌하오리까?  





일과 후회 없는 삶 (10-07-2022)

지난 주 <노인에게 길을 묻다>의 후편으로 <일과 후회 없는 삶과 행복>에 대하여 노인들에게 그 길을 물어본다.

<일에 대하여>: 일은 내적인 보상을 주는 직업을 찾아라. 일에 대한 목표의식과 열정, 즐거움이 월급보다 훨씬 크고 중요하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비결은 끈기다. 포기하지 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기가 말처럼 쉽기야 하겠는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을 하면서라도 최선을 다하고 배우고 겸손해야 한다. 일은 인간관계다. 성공하고 싶다면 인간관계 기술을 연마하라. 감성지능이 결핍된 사람은 직업에 상관없이 공격받기 쉽다.

나는 지금 15년동안 하고 있는 비즈니스 컨설팅 직업에 만족한다. 과거 25년동안 한국에서 해오던 직장생활과 사업과도 일맥 연관성을 갖는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함께 고민하고 최적의 솔루션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상호간의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직업이다. 한번 맺은 인연은 계속 이어진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잠정 75세까지로 목표 한계를 정한다. 남은 7여년 동안 할 수 있는 그 날까지 신의를 잃지 않고 선한 마음으로 고객의 참모로서 벗으로서 나의 최선을 다할 것이다.

<후회 없는 삶에 대하여>: 후회 없는 삶이 있을까? 살아온 흔적들 곳곳에 후회가 남는다. 나의 가치관과 상반되는, 해서는 안되는 줄 알면서 한 일들이 가장 후회된다. 특히 조직과 관련된, 상부의 지시에 의해,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빨리 출세하기 위해, 인간관계에 얽혀,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하지 못한 일들이 후회된다. 젊은 날 이성간의 만남과 헤어짐도 그러하다.

  1. 후회하는 대부분은 정직하지 못함에서 시작된다.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은 정직하지 못했던 행동들이다. – 사람은 살면서 자의든 타의든 거짓말을 한 경험이 있다. 이제 70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무슨 삶의 욕심이 많을까? 정직한 삶을 살고 싶다. 나와 만나는 맺어진 인연 들에게도 정직하고 싶다. 하고 있는 일도, 매주 쓰는 칼럼도, 부부간에도, 자식과 이웃 간에도 거짓 없이 정직하려 한다.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면 묵비권으로 침묵한다.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산다. 숨길 이유도, 거짓말 해야 할 구차함도 없다. 있는 모습 이대로 정직하게 살다 갈 것이다.
  2.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금 하라.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그 사람이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 뿐이다.
  3. 기회가 오면 즉시 ‘네’ 하고 대답하라. 기회는 언제나 찾아오는 선물이 아니다.
  4. 자신의 육신은 100년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몸을 아껴라. 잘못된 식습관, 운동부족, 흡연, 과로 등은 일찍 죽지 않는다. 만성 질환으로 시달리며 고통 받을 뿐이다. 병은 쾌락과 욕망의 이자다.
  5. 여행을 많이 하라. – 우리 부부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연애 시절부터 참 많은 곳을 다녔다. 하지만 사업 실패로 모든 재산을 잃은 이후로, 살아야 한다는 핑계로, 불안한 이민의 삶이 어느 한 순간 녹녹한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이제 자식들도 모두 장성하여 각자의 삶에 충실하니 짊어진 짐들을 하나 둘씩 내려놓으려 한다. 내년부터는 아내가 좋아하는 곳으로 일년에 봄 가을 두번은여행을 갈까 한다. 공수표가 되지 말아야 할텐데..

<행복에 대하여>: 1. 시간은 삶의 본질이다. 삶이 짧은 것처럼 살아라. 정말 짧기 때문이다. 중요한 일은 지금 당장 하라. – 살아보니 인생은 정말 짧다. 내일이라도 부르시면 가야 한다. 그러기에 오늘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2.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선택이다. 행복은 완벽하게 준비된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어려움이나 고통이 삶을 뒤흔들 때도 행복한 삶을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 행복은 삶의 어느 곳에나 숨어있다. 찾고 못 찾고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다.

3. 걱정은 시간을 독살한다. “걱정을 해서 걱정을 없앨 수만 있다면 걱정이 없겠네 –라임잼, 걱정 NO! 액션 GO!” 걱정이란 본질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는 헛수고일 뿐이다. – 걱정을 하지 말고 냉정하게 현상을 분석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해결방안을 수립한 후 한가지씩 실행하는 것이다. 인생이나 사업이나 경영전략의 기본이다. 실행하지 않는 삶은 허구일 뿐이다. 현실을 수용하라. 받아드려야 내려 놓는다. 내려 놓고 비우면 다시 채울 수 있다.

4. 오늘 하루에만 집중하라. 삶을 충만하게 만들고 싶다면 작게 생각하라. 단순한 일상의 작은 즐거움에 적응하고 그것을 음미하는 법을 배워라.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면 일이 크게 잘못되고 있는 순간조차 기쁨을 누릴 수 있다네. – 감사를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다. 내가 어느 곳에, 어느 위치에, 무엇이 되어 살든 간에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살아있는데 무엇인들 못하며 어디인들 못가랴. 이 세상에 공짜는 없듯이 당연한 것도 없다. 남들과 비교하지 마라. 나는 나일 뿐이다.

5. 믿음을 가져라. 믿음이 있는 삶은 행복하다. 특정 종교를 말함이 아니다. 내가 믿는 종교 단체의 위로도 받을 수 있다. – 하지만 믿는 종교에 종속되어서는 안된다. 종속된 신앙은 맹신이 되고 광신이 된다. 믿음은 나와 그분과의 은밀한 내적 교류다. 힘들고 지칠 때 나를 위로해줄 유일한 분이기 때문이다. 내 안에 살아 계시고 존재하시는 의로운 분이시니 그분과 자주 대화하고 의논하면 그보다 더 좋은 벗이 어디 있겠는가? 믿음은 나와 그분이 함께 하는 것이다.





노인에게 길을 묻다 (09-30-2022)

아, 가을이다. 가을 볕이 따사롭다. 가을 바람은 엄마의 냄새가 나서 좋다. 먼지 쌓인 CD들 중에 가을 가곡을 꺼내어 듣고 또 듣는다. 많은 길을 걸어 왔던 것 같은데 뒤돌아보니 멀지도 않은 길 위에 그리움이 곳곳에 서 있구나. 가을은 지는 해거름에 서있는 노인의 기다림인가보다. 가을 배추 두 박스로 나와 함께 김치 담그고 코골며 졸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사랑스런 어느 가을의 오후이구나. 나는 졸고 있는 아내 옆에서 이 글을 쓰고 있음에 감사한다.

누구나 하나의 길에 서 있게 된다네. 그 길에서 만약 빨리 뛸 수 없다면 더 천천히 달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절대 멈춰서는 안돼. 물론 한계를 인정해야 할지도 몰라. 그럴 때는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야.’ 하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고는 한계의 끝을 아주 조금 늘리는거지. 그래야 계속 달릴 수 있거든.” 코넬대학교 세계적 사회학자 칼 필레머 교수의 저서 <내가 알고 있는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의 5장 <하강의 미학: 지는 해를 즐기는 법>에서 인용한다.

10여년만에 이 책을 다시 꺼내어 읽는다. 70세 이상의 현자 노인 1천명에게 8만년의 삶, 5만년의 직장생활, 3만년의 결혼 생활을 <그들에게 길을 묻습니다>로 <왜 우리는 불행한가>의 답을 얻기 위해 이 책을 쓴다. 총 6개의 주제별(결혼, 일, 육아, 노후, 삶, 행복)로 30개의 항목에 대한 답을 노인(현자)들에게서 구한다. 나도 이제 그 노인들 중 한사람이지만 그 누구의 삶도 소중하기에 여러분 각자가 노인들의 충고를 잘 갈고 다듬으면 소중한 보석이 될 것이다. 6개 주제를 간단히 살펴보자.

<결혼에 대하여>; 1. 성격과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과 결혼하라. 다른 사람으로 만났더라도 서로의 가치관을 인정하고 공유하라. 개그 코드가 맞으면 더 즐거운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 –나는 아내와 가치관과 성격도 비슷하다. MBTI 성격 유형 검사를 해도 우리 부부는 옹호자(INFJ)로 똑같다. 그런데 개그 코드는 안 맞다. 아내는 나의 개그, 유머를 이해하지 못한다. 놀린다고 싫어한다. 경상도 억양을 싫어한다. 할 수 없지. 내가 맞추어야 한다.

2.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상대가 변하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내 스스로 변하는 것이 쉽다. – 100% 동감한다. 40년을 살아도 안 바뀌는 건 안 바뀐다. 내가 변하면 된다.

3. 설렘보다 우정을 믿어라. 설렘과 열정은 변하고 식기 마련이다. 한평생 한사람과 살아야 한다면 변치 않는 친구 같은 우정이 더 좋다. 친구 같은 사람을 사랑하여 결혼하라. – 아내와 나는 한 살 차이인데 아내가 7살에 학교에 들어가 학번이 나와 같다. 한마디로 나와 맞먹는다. 동성동본이지만 여행을 다니면서 친구가 되어 결혼을 했다. 지금도 친구 사이다. 그래서 하늘 같은 남편 알기를 우습게(?) 안다.

4, 결혼은 반반씩 내놓는 것이 아니다. 부부관계가 늘 50대 50으로 공평해야 한다는 태도를 버려라. 늘 얻는 것보다 내가 더 많이 주려고 노력하라. – 내가 칼럼에서 늘상 하는 얘기다. 나에게 아내는 <사랑방 손님>이다. 손님에게 돈 벌어 오라고 하나? 밥 하라고 하나? 설거지 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라고 하나? 누구나 혼자 살면 자기 스스로 다 해야 할 일이다. 당연하다. 돈 벌고 밥하고 설거지 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다 하면 된다. 아내는 내가 초대한 소중한 손님이다. 함께 나누고 즐거워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내가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자식 낳는 일, 돈 번다고 육아에 신경 못쓰는 일, 부모님 모시는 일, 형제 조카들 관계 좋게 하는 일, 나를 사랑해 주는 일, 나의 말 동무 되어 주는 일, 내가 외로워 할 때 나를 위로하고 나의 술 친구 되어 주는 일, 신앙 공동체 일원이 함께 되는 일, 내가 걸어가는 길이 어디든 손잡고 함께 가 주는 일 등등 중요하고도 소중한 일들이 많고도 많다. 아니 모든걸 떠나 그냥 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내는 아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나에게는 너무도 귀한 <사랑방 손님>이다.

5. 대화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길이다. 고집 세고 과묵한 것은 관계에 치명적이다. 오랫동안 부부로 지낸 이들을 모두 수다쟁이다. – 내 아내는 말이 별로 없다. 내 주변 사람들도 아내가 말하는 걸 별 들어본 사람이 없다. 처음 만나 연애할 때도 북한에서 남파된 일본 간첩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그때 나는 군사 1급비밀 취급 공군 장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수다쟁이로 변신했다. 아니 잔소리꾼이다. 특히 자식들, 손녀들 하고는 수다를 넘어 뺑덕 어멈 수준이다. 주여, 저 입을 좀 다물게 하소서.

6. 배우자와 만이 아니라 결혼 과도 결혼한 것이다. 결혼관에 충실하고 그 개념을 진지하게 생각하라. – 검은 머리 파 뿌리 될 때까지 번식하고 양육하라. 그분의 명령이다. 결혼은 책임이다. 나 혼자만의 삶의 무게가 아니라, 아내의 짐, 자식의 짐까지 울러 메고 세상 끝나는 날까지 걸어가야 한다. 인간의 삶은 고통 그 자체다. 그 고통 하나 하나 속에 각각의 행복이 있다. 고통이 하나이면 행복도 하나일 뿐이다. 고독이라는 병은 늙어갈수록 깊어만 간다. 결혼은 사랑하는 가족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 세상에 온 이상 나를 이어가는 사랑하는 가족을 만드는게 가장 큰 소임이다. 아버지께서 주신 나의 사랑을 가족에게 남김없이 모두 주고 가게 하소서.





투자와 노동 (09-23-2022)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을 운영하든, 맘엔팝 구멍가게를 운영하든, 경영 구조는 동일하다. <사업 투자>라고 하면 부동산 투자, 설비 투자, R&B 투자, 권리금 투자, 재고 투자, 기술 투자, 인력 투자 등등이 있을 것이고, <노동>이라고 하면 내가 직접 일하는 경우와 전문 경영인, 지점장 위탁 경영 노동, 근로자 노동, 하청 노동 등으로 구분될 것이다.

미주 한인 지역 특히 우리 지역 <맘엔팝 소규모 비즈니스>에 국한하여 문제점과 대책을 찾아보자. 우리지역 자영업은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선 기성세대(베이비붐 세대, X세대)의 문제점 분석부터 해보자.

<기성세대 문제점>: 1. 이민 민족 별로 전문 업종이 한정되어 있다. 이민 한인의 대표 업종은 – <세탁 업종>: 세탁소, Drop Store, -<Food 업종>: Breakfast, Convenience $ Deli, Seafood, 튀김, Sushi to go, Japanese Restaurant, Pizza to go, <Beer 업종>: Beer & Deli, Beer Distributor, <특수 서비스 업종>: Nail & Spa, <장치 투자 업종>: Car Wash, Coin Laundromat, <Stock 업종>: Beauty Supply, Dollar, Discount 등..에 한정됨.

2. 60대 70대로 대부분 은퇴 하였거나 10년 이내 은퇴 예정자들 임. 노동력의 한계. 대부분의 한인 자영업은 고강도의 노동력을 필요로 함. (특히 세탁소, Breakfast 등 음식 관련 사업 일체, 네일 등 서비스 업), 본인은 직접 노동 할 수 없고, 종업원은 고임금 시대지만 구하기도 어려움. 소자본 자영업자는 대규모 투자 사업(임대 주택 건설업, 건물 포함한 대형 카워시, 빨래방 등)은 할 능력이나 용기가 없음.

3. 은퇴 준비가 충분하지 못함. 100세 시대에 65세 은퇴 후 살아갈 남은 세월이 너무 김. 그렇다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할 엄두도 나지 않음. 대부분이 50만불 내외, 1백만불 미만의 건물 투자를 원하나, 월 순수익 (CAP rate 6% 전후)은 월 3,4천불(~8천불) 전후 수익 임, 실질 소득은 더 낮음. 특히 은행 융자를 받을 경우 위험도가 너무 크고, 은퇴 후 안전 수익이라 볼 수 없음. 경기 불황 시 임대 사업은 가게가 문을 닫을 경우 세입자 찾기가 어려워 위험요소가 큼.

4. 영어 세대가 아니며, 인터넷 정보화 세대가 아님. 마켓 추세에 대응능력이 부족. 시설 투자에 인색하고, 신세대에 대한 이해도가 낮음. 경영 분석 능력이 비전문적 임.

<MZ 신세대 문제점>; 1. 자본력이 약함. – SBA은행융자, 오너 융자, 동업 등으로 추진 가능

2.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 함. 특히 이민 1.5세, 2세들은 부모들이 하고 있는 업종에 대해서는 이유 없는 거부감이 강함.

3.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함. 주7일 영업, 밤(야간)장사를 싫어함.

4. 부부가 각자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음. 전문 기술과 경영 능력이 부족함. 맘엔팝 비즈니스가 성립되지 않음. 특히 도와줄 가족이 없음. 독신 아니면 부부 각자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상황임.

5. 이민 1세대처럼 먹고 살기 위해 죽기 살기로 일하지 않음. 하지만 돈은 많이 벌기를 원하는 모순이 있음. 체류 신분이 불투명한 경우도 있음. 언어 소통과 정보화에 익숙함.

<해결방안>: <기성세대>: 1. 기성세대는 자금 투자와 사업체를 선정한다. 개인 혼자 자금으로 투자하거나, 2. <투자펀드>를 만든다. 기본 1구좌에 5만불로 하고, 일인당 상한 투자금액을 산정한다.(예, 한 개인이 전체 투자의 25%이하). 주식은 타인 양도 가능함. 주식회사 투자 법안, 고문 변호사 등을 선정, 분기별 사업 투자 분석, 일년 단위 주주총회에서 해당 년도 사업평가 및 사업계획 발표, 사업체 근로자 평가 및 수당 결정. 3. 투자 대비 이익 배분 (분기별), 4. 투자자, 매니저 모집부터 사업체 선정, 분기별 경영 분석과 심사, 회계감사 등 일체는 경영관리회사(예, 윌리 컨설팅)를 두며, 순이익금의 5%(혹은 1개 구좌 지분)를 지급함. 법인 사업 융자 가능함.

<MZ 세대>: 1. 투자자로 가입할 수도 있지만, 2. 소자본가일 경우 기본 급여 (주급, 월급)은 동종업종 상급으로 지불. 3. 매니저(지점장)로 육성, 기본 급여(예, 월5천불)+성과급 급여(예, 월5천불 이하)= 총 급여 월 1만불 지급, 성과급 급여는 경영 평가에 따라 달라짐. 4. 승진제도, 우리 사주 제도 도입. 주주로 승격 가능. 등등.

투자와 노동은 정비례한다. 노동의 가치는 자본의 가치와 정비례한다. 경영성과를 낸 만큼 이익은 공동 분배한다는 원칙이 전제되어야 한다. 현명한 경영자에게서 현명한 노동자가 만들어진다. 한사람의 생각보다 다수의 생각이 성공할 확률이 높고 위험은 분산된다. 첫 발자국 내딛기가 어려울 뿐, 성공 사례 하나가 만들어지면 차기 투자자 모집은 쉽다. 분산투자가 가능하다. 즉 사업 위험도를 분산시킨다. 직원들에게 단순 노동이 아닌, 성과급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영주권 스폰서가 되어 양질의 고급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저는 15년전 윌리 비즈니스 컨설팅 사업을 시작할 때, 이미 이와 관련된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두었습니다. 우리 한인들도 유대인이나 중국인들처럼 투자펀드를 만들어 투자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투자할 의사가 있으신 분, 매니저(지점장)으로 일하실 분은 저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267-902-6001), 일체 개인정보는 보안 유지 됩니다.





흙수저 미국 이민 (09-16-2022)

민족의 최대 명절 한가위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에 모든 의미가 함축되어 있을 것이다. 한해 수확에 대한 감사, 모처럼 부모 형제 자손들 가족 모두의 만남. 건강과 안부, 덕담과 나눔, 추억과 그리움, 다시 만날 기약과 이별 등.. 이 모든 것이 한가위에 누릴 수 있는 <가족 사랑>이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 이민 왔기에 매년 추석 차례를 내 자식들과만 보내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 또한 감사할 뿐이다. 독자 여러분도 가족 모두 풍성한 한가위, 사랑과 감사가 넘치는 한가위 보내세요.

미국 이민의 삶은 참 고달프다. 요즘 하도 비즈니스 Buyer가 희귀해서 <요즘은 왜 한국의 흙수저 MZ세대들이 미국 이민을 오지 않나?>를 생각해 본다. 미국 이민의 역사를 보면 대다수가 <흙수저 이민>이다. 그 시대 해당국가의 극심한 기근과 흉년, 전염병, 전쟁, 내란, 정치적 종교적 혼란 등등으로 그 국가 사회의 빈곤층, 서민층들, 흔히 말하는 흙수저들이 먹고 살기 위해 죽기 살기로 미국 이민을 왔다. 예나 지금이나 대단한 소수 엘리트 부유층들이 미국 이민의 주류가 아니다.

이민 시대별로 간단히 나누면 – <1세대, 식민지 시대(1600년~1775년 미국 독립전쟁)>: 영국인과 네덜란드인, 청교도, 흑인 노예들, – <2 세대, 1790~1849년> 미국 독립과 남북전쟁, – <3세대, 1850년~1930년>, – 유럽 대기근, 흉년, – 제1차 세계대전, – 1820년~1860년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으로 대규모 미국이민, 아일랜드인들의 정치세력화 (태머니홀), – 유대인, 독일계 이민 (중서부 밀워키, 신시내티, 세인트루이스 중심 양조업, 1차대전 전범이라는 이유로 독일어, 독일 문화 등 철저하게 숨김,), – 이탈리안의 대기근으로 대거 이민 (뉴욕 중심, 마피아 세력), 언어장벽, 카톨릭 종교 갈등, 유럽인들 멸시 등으로 자치 세력화 함, 금주법으로 마피아 세력 확장 – 국가별 이민 쿼터제 발효(기존 이민자 수의 2%이내로 신규 이민 한정), 아시아계에 극히 불리한 제도. – <4세대, 1939년~2000년, 2차 대전 후 이념 양극화, 미국 산업화 번성, 달러 기축통화, 세계 일등 국가 확립, – 2차세계대전 후 동유럽, 소련 이민인구 급증, – 1959년 쿠바 난민 플로리다 입국, – 멕시칸 이민인구 급증, -1965년 존슨 대통령, <이민 쿼터제> 폐지, – 1970년대 한국 등 개발 도상국, 빈민국 아시안 이민 인구 급증, 실제적 한국 이민 시대 개막, – 2022년 현재 이민 1위 국가는 중국, 2위는 인도인데 이들 학력 수준은 현대 이민 국가 중 최고다. 특히 2021년 기준 세계인구가 79억 5천만명, 중국 14억 5천만명, 인도 14억7백만명, 인도네시아 2억8천먼명, 파키스탄 2억3천만명 등 세계 절반 이상이 아시안 임. 반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인구가 감소하는 심각한 국가다.

<미국 이민의 이유>는 <아메리카 드림>이 아니다. 아메리카 드림은 꿈 속에서만 존재할 뿐, 흙수저가 사는 세상은 어디에서 사나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흙수저가 미국 이민을 올 수 있는 방법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 첫째, <직계가족 초청 이민(F1~F4)>, 즉 미국 시민권자, 영주권자의 직계가족, 형제자매일 경우 해당, 쿼터 제한, 대기 기한이 모두 다름. 둘째, <전문직 취업이민>, 석,박사 특수 전문직 취업(EB-1, EB-2, NIW)은 흙수저에 해당 안됨, <3순위 비숙련직 H 취업비자> -흔히들 말하는 닭공장 비자, 일식집 요리사 등 특수직, 혹은 한국인 기업체(일명 스폰서)에 특별채용, 스폰서를 돈 주고 사는 경우도 있음. 셋째 <E-2 투자비자> – 통상 20만불 이상 비즈니스 매입, 종업원 3명이상 고용 창출, 미국 경제에 수익 창출, 2년마다 갱신, 영주권자와 동일한 혜택, 배우자 취업 자격획득, 취업이민으로 신분 변경 가능의 장점. 넷째 <학생비자> – 학업 마친 후 취업비자로 변경 가능, 즉 영주권 취득이 가능한 학위를 취득해야 함. -<투자이민>은 1백만불, 대도시 2백만불, 군소 지역은 5십만불 이상 투자, 10인 이상 고용 창출하는 경우이지만 사업 위험부담이 큼. 흙수저에 해당 안됨.

결국 흙수저가 미국 이민을 올 수 있는 방법은 <취업비자>와 <E-2 소액 투자비자>, 아니면 <학생비자>뿐이다. 불법 체류는 국가가 사면하지 않는 한 발각되면 추방 뿐이다. 불법 신분이 되면 안된다. 그래도 굳이 미국에 이민을 와야 할 기회요소는 무엇인가? 먼저 자신의 <문제점 분석>부터 하라. <단점>: – 대학은 졸업했으나 학벌이 별로다. 흔히 말하는 일류대학, 인기 학과가 아니다. – 취업이 잘 안된다. – 가진 돈이 별로 없고, 물려 받을 재산도 별로 없다. – 내 힘으로 집한 채 사기는 불가능하다. – 직장이 불안정하다. 특수직, 전문직이 아니다. – 결혼할 배우자를 구할 자신이 없다. – 현재 받는 월급으로는 미래가 불투명하다. – 영어를 잘 못한다. <장점>: – 성실하다. – 건강하다. – 착하다. – 대인관계가 원만하다. –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 – 가정을 소중히 생각한다. –범사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 법을 결코 어기지 않는다. – 더 이상 한국에서는 희망이 없다. 이런 흙수저 MZ세대라면, 부자는 아니더라도, 미국에 이민 와서 열심히 일하고, 영주권 받고, 집 사고, 원하는 가정을 꾸미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자녀들과 행복하게 사람답게 살고 싶은 소망이 전부라면 미국에 이민을 와도 좋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도움의 손길은 어디에나 있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한국의 MZ 세대 (09-09-2022)

한국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 흔히 말하는 MZ 세대는 한국의 신조어이다. 즉 1981년부터~1996년까지 출생한 밀레니얼(M)세대와 1990년대 중반 ~2000년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나이로는 20대에서 30대 청년층, 즉 2030 세대를 지칭한다. 휴대폰, 인터넷, 소셜 미디어 등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대다. 디지털 원주민이라 불리운다. 밀레니얼(M) 세대는 베이붐 세대와 X세대 부모에게서 태어나, 유년기 때 IMF 외환위기를 겪고, 성장기 때 금융위기, 세계경제 불황과 10년 뒤 COVID-19 대유행으로 직장생활, 정규직 취업과 저임금 노동에 많은 어려움을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 정규 월급으로는 집 한 채 장만이 불가능한 세대, 사상 최초로 부모 세대보다 더 가난할 것이 예상되는 세대이기도 하다. 우리 자식 세대이지만 우리 꼰대들은 그들을 잘 알지 못한다.

MZ 세대의 특징은 변화에 유연하고 새롭고 이색적인 것을 추구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 세대, 재미와 간편함을 추구하는 세대, 2,3년마다 직장을 바꾸는 세대,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극히 낮으며, 어느 한 곳에 예속되기 싫어하는 세대, 금융산업의 판을 뒤흔드는 세대다.

구체적 특징은 -1. 메타버스 가상세계에서 아바타로 활동. -2. 2020년 온라인 쇼핑몰에서 1위는 네이버 쇼핑이다. 간편 결재, 경쟁제품 간편 비교, 쉽게 구매 등이다. -3. SNS(사회관계망 서비스) 활용, 공간감, 색채감 중요하게 여김, 통화,텍스트 사용하지 않음, -4. 여가 생활은 유튜브 감상(72.8%), -5. 유료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는 넷플릭스 선택(43.1%), -6. 배송 문화의 변화, 패스트푸드 음식물 배달에서 모든 물품 당일 배달로 확장. 로켓배송이 대표적. -7. 구독 경제 선호, 일시불 제품 구매가 아니라, 매달 일정 사용료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형태. -8. 미닝아웃(Meaning Out): 제품 구매시 제품 품질 가격 이외에 기업의 도덕적 윤리성, 사회적 책임 등 가치도 함께 평가하여 구매함. -9. 플렉스(Flexing): 명품이나 비싼 물건을 투자하여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용어. 서비스 복리후생도 주요하게 여김. -10. 중고거래 증가.

– 11. 워라벨 추구: 수입을 위해 일하기 보다 여가시간을 더 갖고 싶어함. 더 좋은 직장이 나오면 언제라도 이직함. -12. 스포츠케이션(Sports+Vacation): 운동과 레저활동을 목적으로 여행을 떠남. 특히 수상레저 스포츠가 인기를 끔. -13. MBTI 성격유형 검사: MZ 세대 프로필 필수항목으로 자리매김. 기업 사원 채용 자기소개서에도 활용. 자신의 정체성 공유, 같은 유형 공감.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 외향형(E), 내향형(I), 감각형(S), 직관형(N), 사고형(T), 감정형(F), 판단형(J), 인식형(P)으로 나눠 총 16개 유형의 성격을 알려준다. 여러분 가족도 해 보시면 재미있을 것이다.       

흔히들 MZ세대를 N포 세대라고 한다. 연애, 결혼, 출산, 집, 경력 등등을 포기한 세대, 왜 그들은 포기하고 체념해야 하는가? 그들은 왜 금융 도박에 중독되어 가는가? 동학 개미,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으는) 세대로 암호화폐 시장, 주식시장, 부동산 시장에 자신의 자산과 소득에 개의치 않고 과감하고도 무모하리 만큼의 레버리지 대출(빚)로 <투자 도박>을 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그 영끌 세대들이 무너지고 있다. 코로나 비상사태로 세계 통화량 과다 발행으로 시중에 돈은 흘러 넘치고 대출금리는 바닥을 치고 있을 때인 만큼, 부동산도 뛰고, 주식도 뛰고 암호 화폐도 뛰니 주위에 벼락부자가 된 MZ세대들이 속출하는 것은 예상 가능 한 일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서 시중 자금을 회수하고 소비자 물가는 상승하고 기준금리가 오르니 대출금리는 급등하고, 가상화폐 시장이 제일 먼저 폭락하고, 주식 시장이 뒤따라서 폭락하고, 부동산 시장도 폭락 장세에 접어든다. 곳곳이 신용불량자, 개인파산자들로 폭증한다. 한국의 아파트 가격은 상식과 정도를 벗어난지 이미 오래다. 조그만 30평 아파트(조그만 방 2,3개, 조그만 거실, 주방, 손바닥 만한 베란다가 전부)가 20억 이상(2백만불)이면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과연 납득이 되겠는가? 한국의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능가하는 대혼란의 시대가 올 것이다.

MZ세대들의 <투자 도박> 심리는 지극히 단순 무지하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양극화, 계급 서열화, 신분의 세습화와 고착화, 불안하고 불투명한 미래, 빠른 변화와 다양한 신상품의 욕구 등등에 대한 자신의 불안 심리의 발로다. 한마디로 <어느 세월에~~> 죽도록 열심히 일해서, 온갖 설움 견디며 10년 20년 한 직장에서 승진해서, 쥐꼬리만한 월급 받아서, 안쓰고 아끼고 얼마를 저축해서, 언제 조그만 아파트 20억짜리 살 수 있는가? 이다. 자명한 답은 <불가능>이다. 하지만 인정하기는 싫다.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환상이 <금융 도박>이다. 한방이면 해결된다는 환상이다. 도박이든, 마약이든, 한번 맛을 보면 빠져나올 수 없다.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중독>이 된다. 이 세상에 일확천금의 로또 복권은 존재하지만, 다수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평생을 도박으로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산이 높으면 골짜기는 더 깊다. 성공한 자가 1명이면 실패한 자는 100명이다. 투자는 도박이 아니다. 투자는 경험이고 노하우다. 투자도 실력이고 능력이다. 투자 분석과 예측에도 AI가 동원된다. 투자는 전문 분야다. 개나 소나 돈 놓고 돈 먹는 야바위 장터가 아니다. 정신 차려야 한다.





죄인이로소이다 (09-02-2022)

올해 들어 특히 2022년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 발발 이후부터 모든 경제지표가 어긋나기 시작한다. 소비자 물가는 계속 급등하고, 물가를 잡기 위해 미국 기준금리는 자이언트 스텝으로 계속 오르니 변동금리로 융자 받은 소상공인들은 멍하니 앉아서 강도 당하는 기분이다. 인건비는 시간당 15불은 기본으로 급등하지만 사람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다.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은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문제는 이 난국이 언제 끝나느냐는 것이다. 아직은 바닥도 아니며 올 겨울의 혹한기를 거쳐 내년 상반기를 지나봐야 알 수 있다는 설이 유력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우리 같은 서민들은 한숨만 늘고 불안한 마음에 잠 못 이루는 밤은 깊어만 간다.

우리지역 한인 맘엔팝 비즈니스 시장 가격도 동일 매상 기준으로 작년대비 파격적으로 인하되었다. 좋은 매물, 파격 매물들이 쌓여만 가지만, 가게를 사겠다는 Buyer는 가뭄에 콩 나듯이 귀하기만 하다. 소비 심리가 얼어 붙은 것이다. 가게를 급매물로 내어 놓는 Seller들의 타 들어가는 가슴 속을 어떻게 알까? 사연 없는 가게가 없다. 어떤 분은 전화할 때마다 우신다. 듣는 나의 가슴도 미어진다. 가게를 급하게 파시는 분들은 부부 둘 중에 몸이 아프신 분들이 많다. 나이 드신 노령층이 많다. 손해인 줄 알면서도 가격을 인하한다. 그래도 안 팔리니 또 가격을 인하한다. 그래도 안 팔리니 전화로 우신다. 요즘은 Buyer 한 명에게 매물을 한 두개 보여주는게 아니다. 기본이 10개 이상을 보여줘도 안 산다. 가게를 안 사시는 분들의 이유는 내가 이 비즈니스 컨설팅 사업을 시작한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수십 가지도 더 될 것이다. 뭐가 안좋고, 뭐가 마음에 안들고, 뭐가 불안하고, 과거 소문이 안좋고, 흑인 동네이고, 집에서 멀고, 시설이 낡았고, 종업원이 어떻고, 렌트비가 비싸고, 기도 응답이 없어서 등등..

나는 한국의 대기업 초년병 시절부터 지금까지 40여년을 경영분석, 진단, 전략, 평가와 관련된 일만 하던 사람이다. 최선을 추구하다 보면 장고 끝에 악수가 나온다. 차선을 선택해 개선하는 것이 최선일 경우가 많다. Seller에게만 강점과 약점이 있는게 아니다. Buyer에게도 강점 뿐만 아니라 치명적 약점도 있기 마련이다. 기회 요소와 위협 요소는 시장 환경적 평가 뿐만 아니라 Buyer 자신에게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평가 요소들이다.

그런데 모든 평가를 상대방에게서만 잘못을 찾으려고 하고 Buyer 자신 스스로의 개선과 개혁은 간과 내지 무시하는 것이다. 조직 내부 평가에서도 이런 인간들은 모두 경질 혹은 파직 대상이다. 멀쩡한 가게를 사서 죽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어가는 가게를 사서 살리는 사람도 있다. 사업 평가는 숫자로 하지만 각고의 노력은 당사자가 해야 하는 것이다. 적은 돈으로 힘 안들고 고생 안하고 돈 잘 버는 맘엔팝 비지니스가 어디 있나? 돈이 많으면 임대 사업을 하면 된다. 하지만 고수익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투자대비 수익은 엄청난 차이고 위험요소도 상존한다. 모든 인간사는 반대급부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작용과 반작용, 인과응보(因果應報), 뿌린 대로 거둔다 등등..

하루라도 빨리 가게를 팔아달라는 Seller들의 딱한 사정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보고 있다. 한인 사회의 대부분 분들이 나에게 가게를 팔아달라고 맡기신다고 자부한다. 매물은 거의 대부분 내가 가지고 있다. 나의 컴퓨터에 등록된 고객 명단 수는 약 3천명이 된다. 그분들에게 모두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핸드폰으로 www.willbusinessbroker.com에 들어가시면 업종별 매물, 최신 매물 등, 총 500여개 매물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좋은 가격, 좋은 조건에 가게를 매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은퇴 하신 분, 타주로 이사 가신 분, 이미 세상을 떠나신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 현업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가게를 빨리 팔아드리지 못한 나는 Seller분들에게 죄인 아닌 죄인이다. 그래서 나도 시몬 베드로처럼 기도에 의지해 볼려고 한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누가복음 5:1-11), 보스톤 한인교회 설교 원고에서 인용한다.

게나사렛 호숫가에 서서 예수가 하나님 말씀을 전할새, 말씀을 듣고자 모여든 그룹과, 전날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 한 마리도 건지지 못한 채 다시 출어 준비를 하는, 생업에 찌든 베드로 어부 그룹으로 나뉜다.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평생 어부인 베드로에게 목수인 젊은 선생 예수가 충고를 하니 속으로는 비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시키는 대로 <순종>하였더니 그물이 터질 정도로 잡히니 베드로와 일행 모두는 놀란다. 하지만 다른 일행들은 <놀람>에 그치지만, 베드로는 <감동>을 하여 <고백>한 것이다.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마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베드로는 처음부터 예수를 따른 자가 아니었다. 한순간 예수께 <감동>받은 사람이다. 감동 받은 자는 목숨 걸고 올인 한다. 베드로가 예수의 수제자가 된 첫번째 덕목이다.

우리 스스로 생업에 힘쓰고 조그만 일에도 놀라고 감동받으며, 스스로 죄인임을 자백하고 감사하면 그분의 은총이 어느 날 가을 밤하늘의 별처럼 쏟아 지리라 믿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여러분 모두 힘내세요. 제가 죄인입니다.





할머니와 손녀 (08-26-2022)

늦은 여름 밤이다. 가을 손님이 오나 보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어놓고 잠자리를 청한다. 가을 풀벌레 소리에 별이 흐르는 밤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많은 선물 중에서도 늦은 황혼 녘에 주신 귀한 선물은 손자 손녀들이 아닐까?

첫째 손녀가 여덟살 초둥학교 2학년이다. 다음달에 3학년이 된다. 여름방학이라 두 달여를 할머니 집에서 보내고 있는 중이다. 엄마 아빠가 모두 직장생활을 하므로 학원 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집에 혼자 있게 된다.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컴퓨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기 때문에 집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들을 컴퓨터와 함께 산다. 엄마 마음이 불편하다. 마침 할머니(내 아내)는 작년에 은퇴를 하여 집에 있기에 할머니 집에서 여름방학 2개월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손녀가 있을 방을 꾸미고 생활계획표를 짜고 노인 부부는 설레는 마음으로 손녀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나는 아버지 엄마 모두 이북에서 홀홀 단신 피난을 내려온 실향민 자식이라 방학 때면 할머니 집에 가는 친구들이 마냥 부러웠다. 나는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외할아버지 얼굴도 본 적이 없다. 사진으로도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서울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 생활을 시작할 즈음 6.25 전쟁이 터져서 고향(함경남도 함흥)집에 다시는 가 보시지 못하셨고, 엄마는 함흥 약학 대학교 재학시절에 중공군의 침략으로 1.4 후퇴 때 흥남 부두에서 홀홀 단신 피난 내려오신 것이다. 외할머니는 이제 막 스물살인 막내딸이 피난 내려간다고 하니 먹을 양식을 만들어 딸에게 건네 주려 흥남 부두에 오셨다가 그 길로 함께 미군 함정을 타고 피난 내려 오신 거였다. 모두가 전쟁이 곧 끝날 것으로 믿었지 평생을 가족과 떨어져 살거라 상상도 못하셨다. 이산가족의 고통은 누구보다 잘 안다. 혼자서 먼 산을 바라보며 눈물 지으시던 외할머니, 아버지, 엄마 모습이 가슴에 파편처럼 박혀있다.

그래서 나는 손녀가 할머니 집에서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 가기를 소망한다. 가족이 가까운데 함께 살면서 자주 만나기를 고집하는 것이다. 할아버지인 내가 맡은 임무는 수학 4학년 과정 선행학습, 매일 수영 하기, 야구이다. 할머니는 배드민턴, 세계사, 한국역사, 엄마가 짜 놓은 온라인 자율학습 지도로 정했다. 그런데 엄마(딸)가 짜놓은 온라인 학습 계획표가 장난이 아니다.

-4학년 수학 선행 학습, – 독서 Book Club (책을 정하여 독서 후 독후감 쓰기, 독서 토론)인데 학년은 2학년 대상이 아니다. 자격 심사를 거쳐 고학년 학생들과 함께 한다. – Mine Craft Summer Camp (친구 여러 명이 해리포터 테마로 마을을 만들어가는 과정), – Singing Class (온라인으로 노래 배우기), – 피아노 매일 다섯 번씩 연습하고 테스트, – 그림 그리기 등이다. 요즘 엄마들 극성이 대단하다.

그런데 할머니와 손녀의 궁합이 장난이 아니다. 친한 친구다. 수다 수다 그런 수다쟁이들이 따로 없다. 아내가 수다쟁이라는 사실을 결혼 40년만에 처음 알았다. 손녀는 자기 방에서 이틀 자고 나서는 무서워서 할머니와 같이 자야 하겠다고 고집이니 할 수 없이 내가 손녀 방으로 쫓겨났다. 그렇게 두 달 동안 할머니와 손녀는 24시간 붙어 지낸다. 오전에 함께 공부하고, 손녀가 먹고 싶은 음식을 정해서, 함께 시장 가고 함께 요리해서 먹는다. 각종 스파게티, 수제 햄버거, 델리, 스테이크, 비스코토 등등.. 덕분에 나도 호강한다. 저녁에는 매일 강아지를 데리고 3,40분 함께 산책을 가는데 두 사람의 수다는 끝나지 않는다. 대화의 수준이 할머니와 초등학교 2학년 손녀의 대화가 아니다. 사뭇 진지하고 심각하다. 정치, 경제, 과학, 종교, 철학, 역사, 시사 등 다방면의 대화다. 설마? 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할머니의 답변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나에게 다시 질문한다. 독서량이 많다. 요즈음 첨단 정보화 시대의 초등학생들은 우리 때와는 확실히 다름을 깨닫는다.

저녁에는 할머니와 함께 TV보고, 씨름하고, 깔깔거리고, 고스톱 치면서 서로 한치 양보도 없다. 누가 어른이고 누가 어린애인지 구분이 없다. 고스톱이 안되면 카드 게임으로 바뀐다. 그렇게 밤 10시가 되면 두 사람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같이 누워서 책을 보다가 잠이 든다. 잠든 모습을 보면 할머니와 손녀 두 사람은 전생에 단짝 친구 이었음이 분명하다.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주말과 주일에는 나와 함께 바다며, 산이며, 야외 수영장에서 살다시피 한다.

나도 외할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내가 대학교 1학년때 돌아가셨다. 나를 참 많이 예뻐 해 주셨는데 사랑을 받기만 하고 되돌려드리지 못함이 평생 마음의 빚으로 남아 죄스러울 뿐이다. 꼭 내 아내 될 사람을 만나보고 세상 떠나시겠다 하셨는데.. 손자 며느리를 엄청 사랑해 주셨을텐데.. 사랑은 내리사랑이다. 사랑은 주는 자의 몫이다. 사랑을 받는 자는 항상 뒤늦게 쫓아오지만 사랑을 주는 자는 기다리지 않는다. 사랑은 아낄 필요가 없다. 때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줄 수 있을 때 모두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랑을 받은 자는 또 내리사랑을 자손들에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많이 받아본 사람이 더 많은 사랑을 준다고 하지 않던가. 할머니와 손녀 두 사람의 한여름 밤의 사랑은 맑은 가을 햇살 되어 먼 훗날 좋은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공정의 착각 (08-19-2022)

우리 세대 꼰대들은 초면에 묻는 질문이 있다. 대학교는? 전공이 뭐꼬? 고등학교는? 아버지는 뭐 하시노? 거기다 요즘 시대는 어데 사노? 아파트 몇 평? 자가? 전세? 까지 묻는다고 한다. 대단한 민족이다. 이게 무슨??

미국식 자유시장 경제에서는 <능력주의>이며, 이는 곧 <학벌주의>로, 이는 <승자와 패자>로 나뉘어지고, <승자독식>으로 귀결된다.     

공정과 상식, 정의와 평등, 법과 원칙을 주장하는 윤석열과 검찰 공화국은 왜 오만한가? 모든 가치 기준은 <승자>인 자신들의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는 걸 보여 주고 있다. 그들 스스로 불공정과 비상식, 불의와 불평등, 편법과 무분별한 원칙 등, 승자의 오만으로 점철되어 있다. 승자는 자신의 승리를 당연시하고 오만해 지며, 패자는 스스로에 대한 굴욕과 분노로 좌절하며, 이러한 도덕 감정은 엘리트들에 대한 포퓰리스트적 반항의 핵심이 된다. 정치는 <공부 잘 한 사람>, 즉 <기술 관료>적 전문인사들이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덕이 있는 사람>, 즉 <도덕성과 공공선>이 높은 자가 잘하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한국 민주주의에서 입증되었다.

미국 백인 저소득층 중심의 포퓰리즘 열풍은 올해 미국 중간선거부터 다시 시작될 것이다. 유색인종, 이민자에 대한 열등의식과 혐오, 그에 따른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차별, 시장 자유화와 세계화와 기술변화, 아웃소싱, 자유무역에 따른 불안과 패배의식, 엘리트 정치의 <기술관료화(테크노클라시)>에 따른 정치적 소외, 저학력 비전문성 등등이 그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마이클 샌델은 승자들의 오만, 즉 ‘나는 나의 능력만으로 성공했으니 지금의 보상과 명예는 당연하다’는 인식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성공에 대한 보상은 기회가 공평 하지도, 과정과 제도가 공정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현 자본주의 사회의 <공정>은 많은 <운(運, Luck)>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노력이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외부적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부유한 국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도, 출생에서 성장과정, 명문대학, 인기학과에 입학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강남에서 살면서 서울대학교 인기학과 혹은 미국의 아이비리그 명문대학에 입학시키려 애를 쓴 학부모라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많은 돈과 많은 노력을 쏟아 붓는지, 왜 승자는 오만할 수밖에 없는지 서민들은 짐작도 하지 못한다. 한국의 유명 드라마 <스카이 캐슬>은 과장되거나 허위가 아니다. 한동훈 법무장관이나 나경원 자식들 허위 스펙 쌓기가 대표적 사례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승자와 패자는 <학벌주의>가 지배한다. <명문대 능력주의>는 1940년대 하버드대학 총장인 제임스 브라이언트 코넌트에 의해 시작된다. “가장 재능 있는 학생을 배경 불문 모집하고 훈련시켜 사회지도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명문대학은 세습 상류층들이 독차지 하고 있다. 그래서 코넌트는 능력주의 쿠데타라 할 수 있는 SAT(수학능력 평가시험) 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코넌트는 SAT를 통해 <무계급 사회>를 꿈꾸며,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를 주장한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SAT는 응시자 집안의 부와 매우 연관성이 높아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부의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SAT 점수의 편중은 부자 쪽으로 더욱 기울게 된다. 가난한 자에 대한 기회 균등은 거짓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개천에서 용이 결코 나올 수 없는 시대다. 설령 용이 나왔다 한들, 미국 명문대학의 천문학적 학비는 평생의 족쇄가 된다. 미국식 학벌주의는 <엘리트주의>, <명문대 학벌주의>, <승자 독식 주의>다. 한국은 미국의 학습 제도를 그대로 모방한다. 과거 봉건주의 영주 시대는 귀족과 평민, 노예 계급을 운명으로 받아드렸다. <계급 세습> 시대였다면, 현대는 부의 세습으로 불평등은 심화되고 승자와 패자가 계급으로 나누어진다. 중세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샌델 교수는 명문대학교 <제비뽑기> 제도를 제안한다. 어차피 운(재수)으로 합격되었으니 승자라 할 수 없고 오만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실현가능성은 글쎄 별로? 미국은 중국식 교육제도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미국은 유럽식 교육제도로 바뀌어야 한다. 덴마크나 독일이나 대학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학비 무료로, 오히려 생활비까지 지원받으며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도 일류, 이류, 삼류 구분을 두어서는 안된다. 미국은 유럽처럼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소득 고상위 층은 소득의 50~60%이상을 세금으로 환수하고, 소득 순으로 점차 낮추어서 저소득층은 세금 면제가 이루어져서 사회 전체 수익이 재분배 재순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노동의 가치>가 존중 받는 것이다. 첨단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의 노동이 중요한 것처럼, 새벽 길거리 청소하는 청소부의 노동도 소중한 것이다.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면 굳이 모든 사람이 명문대학 최고학부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특히 앞으로의 미래 세상은 지금의 명문대학의 대량 암기가 필요했던 인기 직업들은 AI 인공지능으로 대체가 된다. 각자의 노동이 존중 받는 사회야 말로 공정한 세상, 기회가 균등한 세상, 정의로운 세상이 되리라 믿는다. 어느 세월에..               





능력주의 폭정 (08-12-2022)

세계 어느 나라나 민중들은 분노하고 있다. 양극화의 계층별 빈부 격차가 더욱 가속화 되기 때문이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한계와 실패를 방증한다. 민중은 엘리트들에 대해 분노한다. 높은 고학력자 일수록 턱없이 많은 공동사회의 이익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1:50> 법칙? 미국 상위1% 소득이 하위 50% 소득보다 많다. 현대사회는 기회의 공정, 조건의 평등이 구현되는 사회인가?

우리는 너나 없이 왜 자녀들에게 일류 대학과 최고의 학부를 마치기를 원하는가? 가난한 자는 가난을 탈출할 지름길이기에, 부자는 부를 지킬 가장 안전한 길이기에 그러지 않을까? 나의 직계가족 중에도 의학박사 1명, 공학박사 2명이 있다. 모두 한국 사회에서는 성공한 상류층들이다. 나 자신도 한때는 성공한 부유층에 속했지만, 사업실패로 이민 와서 지금까지 개뿔도 없지만, 딸들 모두 일류대학 석사 학위까지 마치게 했다. 좋은 회사에서 직장생활 잘 하고 있는 막내 아들놈도 Ph. Doctor 과정을 마치기를 강압한다. 가난한 아빠의 자격지심이다. 왜? 나의 논지는 단순 무식하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성공 방식은 부잣집 자식으로 태어나 평생 돈 걱정 없이 살던가, 아니면 뼈 빠지게 자기 비즈니스해서 가난에서 벗어나던가, 아니면 가난한 집 자식은 일류대학 인기학과를 졸업해서 전문직으로 일류 기업에 들어가면 고액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단순한 체험학습의 경험 때문이다.

윤석열은 왜 저리도 무식 무지한데다가 안하무인인가? 자신과 주변 검찰 집단이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라 착각하고 집단 체면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 집단들은 만18세에 서울법대를 합격하고 20대 초 중반에 사법고시 패스 되면 그는 집안의 영웅일 뿐만 아니라 그 마을의 영웅이다. 20대 중반 검사로 시작하면서 모든 사회적 대우는 갑 중의 갑이다. 그렇게 30여년을 타인을 추궁하고 조사하고 타인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들면서 살았다고 상상해 보아라. 평범한 대중들이 자신들과 평등하고 동등하다 생각할까? 내 주변에도 사법고시 행정고시 출신의 고위직들이 여럿 있지만, 적어도 그런 엘리트광들은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 정치는 우월의식으로 민중을 제압하고 탄압하고 협박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는 민중과 함께 해야 한다. 윤석열 검찰 공화국이 독재정치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 차례 칼럼에서 쓴 적이 있다. 현대 정치는 엘리트주의가 아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오십 보 백 보다. 최고 학부의 엘리트주의자들은 능력주의 시대의 공정한 결과라고 확신한다. 과연 그럴까? 중국만큼이나 미국은 이미 불평등한 사회가 되었다. 몇차례에 걸쳐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 원제 <능력주의의 폭정: 무엇이 공공선인가? (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를 수박 겉핥기로 살펴보자. 이 책은 공정한 사회, 능력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파헤치며 공정을 위한 화두를 제시하는 철학 인문 서적이지 대안과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경제 서적은 아니다.

아메리카 드림은 무엇인가? 미국인이 불평등을 오랫동안 참아온 것은 “누구나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즉 기회가 평등하면 재능과 노력에 따라 누구나 신분 상승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능력주의자들은 다 똑같은 출발선에서 동등한 기회로 자신의 피나는 노력과 재능으로 일류대학을 나왔고 그래서 고액의 연봉을 받고 성공했기 때문에 성공의 결과는 당연하고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반면에 실패한 자들은 남들과 동등한 기회가 주어졌지만, 자신들의 노력 부족과 자질 재능 부족으로 가난하게 되었으므로 그 결과 또한 당연하다는 논리다. 능력주의에 성공한 자들은 <엘리트주의>로 우월 의식에 사로잡혀 있고, 실패한 자들은 <패배주의>로 스스로에 분노하고 좌절하며 죄의식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다.

하지만 능력주의 현대사회에서의 <신분상승(계층 이동)>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통계다.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미국인은 대개가 가난한 성인이 된다. 소득 기준 하위 5분위 가정 출신자 중 단 5%만이 상위 5분위에 이르렀고, 대부분은 중산층에도 이르지 못했다. 하버드, 스탠포드 대학생 2/3가 소득 상위 5분위 가정 출신들이다. 아이비리그 대학생 중 하위 5분위 출신자는 4%도 되지 않는다. 소득 상위 1% 출신 학생이 하위 50% 출신 학생보다 많다. 따라서 자신만의 노력과 재능만으로 누구나 상류층이 될 수 있다는 <능력주의 희망>은 헛소리다.

신자유주의와 시장 자본주의는 인기 직종에 따라 보상 격차가 엄청나다. 그 시대 그 시장이 요구하는 재능과 능력의 유무로 상류층에 올라가느냐 못 가느냐를 결정한다. 인문학 교수 연봉과 첨단 공학 교수 연봉은 적게는 몇배, 많게는 몇 십배 차이가 난다. 즉 능력주의 사회에서의 재능 보상은 시장원리에 의해 결정됨에도 불구하고, 승자는 자신의 승리를, 패자는 자신의 패배를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하면 된다>라는 능력주의 윤리는 <승자의 오만>으로, 패자에게는 <굴욕과 분노>로 몰아간다. 이러한 도덕 감정은 엘리트들에 대한 포퓰리스트(Populist)적 반항의 핵심이 된다. 트럼프가 지난 대선에서 중산층, 저소득층 백인들 중심의 7천만표 이상을 획득한 것도 양극화 심화, 미국 자본주의 실패, 엘리트들에 대한 분노의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우영우 신드롬 (08-05-2022)

한국의 수목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16회분 중 10회분까지 방영되었는데, 시청률이 첫회 방영 시 0.9%였는데 9회 현재 방영 시 16%로 대박 난 드라마가 되었다. 주인공 우영우 역을 맡고 있는 박은빈 배우는 스타 인기순위 1위로 손흥민과 김연아를 제쳤다. 넷플릭스에서도 20개국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왜일까?

스토리는 천재적인 기억력과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가 홀애비의 손에서 자라 서울법대 수석 졸업, 서울법대 로스쿨 수석 졸업하여 대형 로펌에 신입변호사로 입사하여 방영 매회 사건마다 신선하고도 새로운 법리해석으로 사회의 모순을 파헤친다. 그러면서 직장 동료와 사랑에 빠지고 사회의 일원으로 대견하게 생활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대견하니 인기가 높음은 당연하다. 문지원 작가의 탄탄한 대본 실력이 한층 돋보이는 원인이기도 하다.

물리학자 김상욱교수는 “장애는 잘못도, 차별과 혐오의 대상도 아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단지 다수와 조금 다를 뿐이다. 드라마에서 우영우의 장애를 배려해 주기로 마음먹는 순간, 장애는 오히려 매력이 된다.”라고 한다.

장애인은 내 주변에도, 나의 친척 중에서도, 여러분 주변에도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이웃들이다.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동정이나 연민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평범하고도 다정한 이웃으로 똑같이 대하면 된다. 한국은 자폐 유병률이 세계 2위이지만 사회 분위기로 점점 고립되어 간다. 장애인 학교를 설립하고자 하니 주민들 반대로, 장애인 학교가 설립되면 아파트 가격이 떨어진다는 이유 하나로 학교 설립을 반대하고, 장애인 엄마들은 무릎 꿇고 울며 애원해야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동성애자가 자신의 동네에 사는 것을 반대하는 나라 2위 (1위는 터키)가 한국이고, 에이즈 환자가 이웃에 사는 것을 반대하는 나라 1위가 한국이다. 망명자 입국을 거부하고 유색인종 이민을 거부하고, 피를 나눈 내 형제 같은 민족도 빨갱이로 몰고 철천지원수로 분단된 채 70년을 싸우는 민족이 한국인이다. 우리편이 아니면 모두가 적이다. 장애인도 성 소수자도 우리편이 될 수가 없는 민족이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장애인이 아닌 사람이 있을까? 우리 모두는 장애를 앓고 있다. <장애인(Persons with Disabilities)>의 법률적 정의는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를 말한다. 장애우(障碍友), 장애자, 핸디캡(Handicapped)이라는 표현 모두가 잘못된 표현이다. 장애인의 반대말은 정상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이다. 장애인 복지법에 정한 장애의 종류는 정신적 장애와 신체적 장애로 나눈다. 정신적 장애는 지적 장애(정신 박약, 정신 지체- 지능지수 70이하), 자폐성 장애(발달 장애- 자폐증, 고기능 자폐증, 아스퍼거 증후군, 레트 증후군, 아동기 붕괴성 장애), 드라마 우영우는 레트 증후군에 속한다. 그리고 정신장애(정신분열증, 분열형 정동장애, 양극성 정동장애, 반복성 우울장애, 투렛 증후군 등이다.

신체적 장애는 지체장애, 뇌병변 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안면 장애, 신장 장애, 심장장애, 간 장애, 호흡기 장애, 장루, 요루 장애, 뇌전증 장애(간질), 알츠하이머(치매) 장애, 암수술 장애 등이 있다.

유엔은 전 세계인구의 10%를 장애인으로 보고 있으며, 유럽은 총인구의 20%를 장애인으로 본다. 장애인 기준이 까다로운 한국은 2015년 총인구의 5%인 249만명이 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 선천성 장애인은 전체 장애인의 10~20% 가량이며, 80~90%는 후천성 장애인으로 여러 사건 사고, 질병 등으로 장애인이 된 경우다. 즉 우리 누구나 어쩌면 모두가 살다 보면 장애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직은 내가 장애인이 아니지만, 언젠가는 장애인이 될 거라는 자의식이 있다면 장애인을 차별해서는 당연히 안된다. 그러기에 장애인을 위한 각종 복지시설과 사회보장 제도는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내가 내 가족이 내 이웃이 언제라도 장애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다. 고대, 중세까지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심하지 않았는데, 근대 산업혁명 이후부터 자본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노동력이 없다는 이유로 장애인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다. 일제 강점기 시대는 전쟁과 질병 가난으로 장애인의 편견과 차별은 극에 달한다. 서양도 근대 이후 각종 전쟁, 1차, 2차 세계대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이 되어 차별 받고, 히틀러는 인종청소라는 명분으로 장애인 대량학살 사건도 발생한다. 한국도 불과 21세기 접어들면서 장애인 사회인식이 많이 개선 되었다.  

우리가 무심결에 내뱉는 욕설, 악담, 비속어에 보면 이루 셀 수 없는 장애인 비하 언어들이 많다. 특히 60, 70대 우리 세대는 욕지거리 세상에 치어 살았다. 집, 동네, 학교, 군대, 직장, 가리지 않고 갑은 을에게 장애인 비하 욕을 퍼붓던 욕쟁이 시대에 살았다. 셀 수도 없는 장애인 비하 발언들을 하나님이 당신에게 퍼붓는다면 당신의 영혼은 온전 하겠는가? 이승에서 산다는 것은 <함께> <더불어> 배려하며 사는 것이다. 잘난 것도 못난 것도 도토리 키 재기로 부질없는 일이다. 얼마나 스스로 자랑할 게 없는, 보잘 것 없는, 자존감이 낮으면 상대방을 비하하며 살까?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차별없이 구별없이, 함께 더불어 사랑하며 선한 마음으로 죽는 날까지 살기를 소망할 뿐이다. 우리 지역에도 장애인 사역을 위해 평생을 봉사하시는 밀알 선교단 단장 이재철 목사님과 봉사단체 봉사원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영광 있으라.





상한 영혼 (07-29-2022)

살다 보면 상처 받지 않은 영혼이 있을까? 사는게 너무 힘들고 지친 어느 날 물끄러미 들여다 본 내 영혼의 곳곳은 상처투성이구나. 무엇을 이루려고 무엇을 얻으려고 이렇게나 기를 쓰며 이렇게 많은 상처를 내며 살았을까? 내 영혼아 미안하구나.

살다 보면 얼룩 없는 인생이 있을까? 그때는 왜 그랬을까? 왜 좀더 참지 못했을까? 왜 좀더 기다리지 못했을까? 왜 좀더 견디지를 못했을까? 그 순간들의 한숨과 눈물들이 짙게 얼룩이 져 이제는 지워지지도 않는구나. 나와의 모든 인연들아 미안하구나.

마당의 잔디가 타 들어간다. 매일 한 시간씩 물을 주어도 별반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비가 오고 바람 불고 시간이 가면 언제 그랬다는 듯이 새파랗게 살아 나리라는 걸 나는 안다. 그렇기에 오늘 내가 너에게 할 수 있는 나의 몫을 할 뿐이다. 내가 목말라 죽어갈 때 너는 뭐 했니? 라는 쪽팔림이 싫어서다.   

세상 어디라 할 것도 없이 하루하루 사는게 힘들다. 세계 절반이 굶어 죽어간다.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기아로 죽어간다. 먹이지 못해 죽어가는 아이들을 멍하니 쳐다보는 에미의 눈빛을 바로 볼 수가 없다. 나는 그 나라에 태어나지 않아서 그 시대에 살지 않아서 다행인가, 행운인가, 신의 축복인가. 동시대 지구에 살고 있는 모두의 고통이자 아픔이다.

신이 주신 삶은 고통 자체이다. 왜 전지전능하신 신이면서 사는걸 고통스럽게 만들었을까. 그의 심오한 뜻을 헤아릴 길 없지만, 아마도 행복을 기쁨을 감사를 가르쳐 주려 하심은 아닐까? 당신은 아프리카 최저 빈국이 아닌, 남들이 부러워(?) 하는 최고 부유한 미국에 태어나서, 미국에서 살고 있어서 행복한가? 당신은 남들보다 높은 연봉과 출세를 해서 행복한가? 주변의 남들보다 조금 더 좋은 집, 조금 더 좋은 차, 조금 더 많은 재산, 조금 더 좋은 비즈니스를 해서 행복한가. 당신은 자신을 자랑할 수는 있어도 행복한 사람은 아니다. 당신이 어느 시대 어느 국가, 어느 집안에서 태어나 어떻게 살았어도 사는 건 고통이다.

세상에 잘난 사람은 많고도 많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들이 부러운 사람은 아니다. 역사의 어느 시대에 살았든,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세상 어디에 살든, 삶의 고통에 맞서서, 고통을 견디며, 고통을 이겨내며, 자신의 사랑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나의 벗이자 등불이다. 들판에 서 있는 나무를 보라. 들판의 이름없는 꽃들을 보라. 들짐승이나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 얼마나 의연한가. 그들이 누구를 원망하는가, 누구를 시기하고 부러워하는가, 그들이 진정한 초인이요 하나님의 생명이다.

신은 인간 세상에 <영원>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 하셨다. 영원한 행복이 없듯이 영원한 고통도 없다. 행복 속에 고통이 있고, 고통 속에 행복이 있다. 따뜻한 햇살이든, 비바람이 불어 치든, 주어진 오늘 하루를 치열하게 선하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 걸어가다 넘어지면 어때, 실패하면 어때, 살아보니 성공과 실패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던 것이 아니더라. 행복은 비교 하지도 비교 당하지도 않는다.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 행복하면 행복한 거더라. 행복은 전염병이다. 주변에 행복한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빨리 멀리 행복은 퍼져나간다.     

내가 좋아하는 고정희 시인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 중에서도 수시로 중얼거리는 구절이 있다.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가랴 /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둣 /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그래, 나에게는 거친 세상 어디라도 함께 갈, 마주 잡을 손이 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나의 부친께서 생전에 자식들에게 하신 말씀 중에 “가족은 삼거리에 선 사람들이다. 부모는 먼저 갈 사람이고, 자식은 뒤에 올 사람이다. 너희들 평생을 함께 갈 사람은 너희 배우자다. 그러니 부모에게 하는 것 보다, 자식들에게 하는 것 보다 더욱 더 배우자에게 잘 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잘 해야 한다. 함께 가야 할 사람이므로..

오늘은 우리 엄마 제삿날이다. 나는 일년에 제사를 여섯 번 지낸다. 아버지, 엄마, 장인어른, 장모님, 그리고 새해 신정, 추석 조상님 제사 이렇게 6번 지낸다. 내가 사랑했던, 아내가 사랑했던, 그래서 그리워하고 보고 싶은, 아쉽고 미안한 시간들을 되새김질하며 남은 가족들에게 더욱더 사랑하기 위함이다. 방학이라 할머니 집에 와있는 손녀딸과 함께 제사 음식을 만드느라 아침부터 정신이 없다. 텃밭에 채소를 따고, 생선전, 동그랑땡, 각종 나물, 생선구이, 떡, 각종 과일, LA 갈비 구이, 소 갈비찜 등이다. 그 중에 우리 집 갈비찜은 일품이다. 아내가 고마울 뿐이다. 한국에서 살았으면 형제들과 조카들이 모두 모여 30여명은 족히 넘었을 텐데 그것이 제일 아쉽다. 나의 제사 관(?)은 사랑하는 죽은 자와 산 자들의 만남이며, 산 자들의 사랑을 화합하기 위함이다. 또한 상한 내 영혼을 치유 받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은 제사 중에 엄마 보고싶다고 울지 말아야 할텐데..





마녀 사냥 (07-22-2022)

국가든, 기업이든, 종교든,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에 “협력하여 선(善)을 이루어야 한다”.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종합하여 가장 최선의 방법을 찾음을 말한다. 현장에 답이 있다. 현장의 민중들을 만나고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결정권자가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눈 가리고 아옹, 언론에 자갈을 물리고, 민중을 현혹하는 여론몰이를 해서는 안된다. 중요한 정책일수록 사전에 미리 여러 차례 <공개 토론의 장>을 마련해서 이해관계가 다른 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결정해야 집단 지성의 이해를 얻을 수 있다.

독재란 무엇인가? 동일성과 규격화를 강요하며 반대자는 마녀(악마, 적, 이단, 빨갱이..)로 몰아 마녀사냥을 한다. <마녀사냥(witch hunt, witch purge)>을 정치학에서는 전체주의 산물로, 심리학에서는 집단 히스테리 산물로, 사회학에서는 집단이 절대적 신조를 내세워 개인에게 무차별 탄압을 행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인터넷과 SNS발달로 인격살인하는 무차별, 무분별, 비인격적 행위들이 더욱 기승한다.

<그대가 조국> 영화를 보기를 권한다. 서울대 법학 대학 교수이자 평범한 서생이었던, 반면에 많은 대중들의 모든 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조국은 검찰개혁을 해야 한다는 순수한 사명 하나로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하지만 윤석열 검찰 권력에 의해 집안과 아내와 자식들 모두가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고, 지금은 산산조각 난 그 상처들을 하나씩 둘씩 주워 모아 살아가려 버티는 조국의 일상을 보면 가슴이 저려온다. 나도 그 당시 2019년 지역 신문 칼럼에 <사람이 싫다(9월6일자)>, <빼앗긴 자유(9월13일)>, <조선아, 이 사나운 곳아 (10월25일자)> 등, 여러차례 쓴 적이 있다. 거의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온 언론이 수십만 건의 기사로 조국을 <마녀재판> 했으며, 그 마녀사냥의 주범이 조국을 재물 삼아 지금의 한국 대통령이 된 윤석열이다. 결국은 이름없는 지방대학 봉사활동 상장 위조라는 죄목 하나로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 <마녀사냥>현장에 공조, 방조, 방관 하는 민중은 아니었을까?

미국의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마녀재판은 14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에 걸쳐 일어났으며, 5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마녀로 처형되었다” 마녀사냥은 <백년전쟁>(1337년~1453년, 영국과 프랑스 왕국 사이에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놓고 벌어진 전쟁)이 끝난 다음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대표적 사례가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구한 영웅 잔 다르크 마녀 처형이다.

마녀가 악의 화신이 된 건 1487년 도미니크 수도회 성직자 두 명이 <마녀의 망치>라는 마녀 사냥 지침서를 내면서 본격화 되었다. 그때가 중세 십자군 전쟁 이후 카톨릭 교회가 세력이 가장 약했을 때이며, 이 책은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활자 인쇄술로 대량 인쇄되어 대중에서 급속 확산된 원인이기도 하다. 왕권과 세속 권력에 대한 불만, 불신, <십자군 전쟁(1095년~1291년)> 패배에 의한 혼란과 분열, <종교개혁>(1517년10월31일 마르틴 루터의 교회개혁 내부 운동으로 시작) 열풍으로 구교와 신교의 극심한 갈등, <30년 전쟁>(1618년~1648년, 신성로마제국과 프로테스탄트 신교 간의 독일 중부 유럽을 무대로 벌어진 전쟁)간의 권력 싸움, 흑사병(1346년~1353년, 유럽 전역 1억명의 인명피해, 당시 세계인구가 4억5천만명)과 극심한 대기근 등, 모든 사회 혼란 원인이 종교 왕권 권력자들과 분노한 민중들에게 탈출구가 필요 헸던 것이다. 그것이 <마녀사냥>이다.

<마녀재판>의 잔인한 방법과 악랄함은 거론치 않겠다. 사회적 약자(과부, 노약자, 산파, 약초 업자, 유대인, 소외된 자, 가난한 자) 누구든 마녀로 지목되면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하여 결국 마녀로 낙인 찍어 민중들 앞에서 화형 시키는 것이다. 무려 50만명의 유럽인들을 집단학살도 아닌, 개별 학살로 종교 재판관에 의해 마녀 재판을 통해 화형 시켰다면? 인간의 무차별 반지성적 집단 광기다.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마녀사냥을 포함하여 과거 교회가 하느님의 뜻이라는 핑계로 인류에게 저지른 각종 잘못을 최초로 공식 인정하고 사죄했다.”

히틀러 나치의 <우생학>과 홀로 코스트, 일본제국의 <불령선인: 일제 강점기 시 조선인을 불온 불량한 인간으로 낙인 차별함>, 미국의 KKK, 매카시즘(1950~1954년, 미국내 공산주의자 블랙리스트로 낙인, 격리시킴), 북한의 인민재판, 소련과 아프리카의 인종청소 등 인간의 잔인함은 끝이 없다. 나와 사상과 종교가 다르다는, 인종과 성분이 다르다는 <정상이 아닌 것들>, 여성, 장애인, 노약자, 흑인, 무슬림, 이단 교인, 저소득층, 걸인, 동성애자,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불법이민자, 난민 등등.. 그 누구라도 우리편이 아닌 자는, 나의 영역을 침범하는 자는, 나의 이익을 침해하는 자는 <마녀사냥>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글들과 사진들이 플렛폼(Platform)에 올라온다. 또 익명의 수많은 댓글이 달린다. <우리>라는, <같은 편>이라는 미명 아래 거침없는 인격 살인이 인터넷 상에서 자행된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이것을 악용한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목사의 일방적 결정에 침묵하거나 동조하지 않으면 왕따, 배신자로 낙인 찍힌다. 거짓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버텨내기 힘든 구조다. 자아 성찰하고 자아 노력하여 자아 위로하고 자아 정립하여 무소의 뿔처럼 흔들림없이 살아가야 한다. 나는 나니까!!





정신 승리 (07-15-2022)

사람은 어떤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자신의 유리한 입장에서 생각하고 결론을 지으려 한다. 정신분석학의 자기방어기제 중에 하나인 <자기 합리화(rationalization)> 라고도 하고, <아전인수>(我田引水 –자기 논에 물 대기 라는 뜻으로 자기에게만 이롭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함), <견강부회>(牽强附會 –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함), 요즘 유행어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등도 이와 유사하게 사용되는 문구다. 요즘 한국의 대통령인 윤석열이라는 자가 언론에 떠드는 자기 변명들을 듣자 하면 한심하기 그지 없으며 <정신 승리>의 달인이라 여겨진다. 정신분석학으로 <정신 승리>는 행동을 한 후에 초자아(superego)에 의해 발생하는 죄책감이나 불안을 억누르기 위해, 자아(ego)가 자신의 행동을 포장하고 합리화 하는 것을 말한다. <영적 승리>도 이 범주에 속한다.

<정신 승리(Spiritual Victory, Mental Gymnastics)>는 본인에게 불리하거나 나쁜 상황을 좋은 상황이라고 왜곡하여 정신적 자기 위안을 하는 행위를 말하며, 실상은 자신의 망상으로 이기고 있다고 여기는 상황을 말한다. 이는 중국의 대문호 루쉰(魯迅)의 걸작 <아Q정전(阿Q正傳)>에서 나온 <정신 승리법>에서 유래한다.

<아Q정전>의 대충 줄거리는 <재봉틀의 국어방>에서 인용한다.

아큐는 마을의 성황당에서 지내며 막벌이로 살아가는 하찮은 인간이다. 이름도 고향도 알려지지 않았으며,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자존심만은 강하여 누군가 자기를 업신여기면 화를 냈고 상대가 약하다고 생각하면 곧잘 싸움을 걸었다. 그러나 도리어 얻어맞는 경우가 더 많았으며, 당하고 나면 일부러 져 준 것처럼 생각하여 자신을 위로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업신여기던 황 털보에게 싸움을 걸었다가 지고, 지주인 전씨의 아들을 ‘가짜 외국놈’이라고 놀리다 얻어맞는다. 그리곤 지나가는 비구니에게 화풀이를 한다. 비구니의 볼을 꼬집은 그는 감촉을 잊을 수가 없어 지주 집 하녀에게 수작을 건다. 그 사실이 퍼지자 아무도 그에게 일거리를 주지 않는다. 생활이 곤란해지자 그는 마을을 떠난다.

반년쯤 후에 아큐는 부자가 되어 마을로 돌아온다. 사람들은 그와 사귀고 싶어 하지만, 그가 도둑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그의 처지는 난처해진다. 1911년 신해혁명의 소식이 날아들어 마을 사람들은 불안에 떨게 된다. 아큐는 마치 자신이 혁명 당원인 것처럼 떠벌린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지주 집이 습격을 당하고 아큐는 습격의 범인으로 몰려 경찰에 끌려간다. 그리곤 아유도 모른 채 자백서에 서명을 한다. 형장으로 가는 도중 에야 아큐는 자기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잠시 후 그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사형을 당한다.”

이 작품은 <신해혁명>(1911년~1915년, 쑨원의 삼민주의- 민족주의, 민권주의, 민생주의를 바탕으로 중화민국이 탄생하게 된 중국의 최초 민주주의 혁명) 전후의 무기력한 중국인을 희화화한 작품으로 루쉰의 작가적 지위를 문학사에 자리잡게 해 준 대표작이다. 

신해혁명의 쓰디 쓴 좌절을 맛본 중국인들은 아무리 모욕을 당해도 저항할 줄 모르고 오히려 머릿속에서 자신의 정신적 승리로 소화해 버리는 주인공 아큐를 보고, 모두 자기 자신을 모델로 한 얘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청조 말기의 침체된 봉건사회를 아큐라는 날품팔이 노무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려내고 있는 이 소설은 아큐가 살고 있는 지방의 권력가와 그 가족. 연고자들의 권세를 둘러싸고 있는 이면에 대한 문제까지 희극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여기서 루쉰은 등장인물들의 혁명에 대한 불안한 모습과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희생되는 아큐의 허무한 인생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여기에서 아큐에게서 볼 수 있는 공허한 영웅주의와, 그것과 표리를 이루는 불쌍한 패배주의의 민족적인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즉, 자신의 현실적인 모습을 직시하지 못한 채 항상 자기기만으로 현실을 호도하면서 살아가는 아큐의 이른바 ‘정신 승리법’을, 민족적인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대국의식을 버리지 못하는 낡은 지식인과 중국민들에게서 발견하고 이를 형상화한 작품인 것이다.

주인공 아큐는 3천여년의 중국 왕조시대의 오랜 전통사회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사대(事大)적이고 노예근성에 쪄 들어 인습적이고 반성할 줄 모르며 의지도 없고, 주어진 목숨을 그저 맹목적으로 이어가는, 그래서 슬퍼해야 하고 미워해야 하는 당시의 중국인들을 대변한다. 루쉰이 입버릇처럼 내뱉던 푸념이 아직도 메아리 치는 여운으로 남아 있다. “중국인은 누군가가 나서서 말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인에 국한되는 말인가?

역사의 강물은 도도히 흐른다. 강물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도전한다. 강물의 주체는 민중이다. 민중 스스로 깨우치고 새로워지지 않으면 강물은 고이게 되고 결국 썩어버린다. 자기 변명, 자기 기만, 자아 도취, 자아 만족은 자기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어느 시대, 어느 국가, 어느 사회에 살든, 나 스스로 계발(啓發)하고 공부하고 사색하고 토론하며 죽는 그날까지 치열하게 살아야 제대로 살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죽는 그날까지 자신에 의한, 자신을 위한, 스스로를 혁명하자!!   





가족 여행 (07-08-2022)

미국 독립기념일 연휴를 맞아 모처럼 온 가족이 여행을 다녀왔다. 자식들 중에서 두 딸들은 이미 출가하여 손녀 한 명씩 있으니 나의 직계 가족 숫자는 모두 9명인 셈이다. 딸, 사위, 아들 모두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각자 전문 분야가 다르니 휴가를 동시에 내기도 쉽지가 않다. 큰 손녀는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엄마의 극성으로 스케줄이 꽉 짜여져 있는 상태인지라, 온 가족이 각자 시간을 내어 함께 여행가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대학시절에도 방학이 시작되면 배낭 하나 울러 메고는 전국 방방곡곡 혼자서 여행을 다녔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발길 닿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다닌다. 전국 유명 여행지 어디를 가 보았다에 방점을 두지 않는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새로운 곳과 나와 삶의 방식이 다른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만나 소주잔 기울이며 이야기 듣는 것이 좋다. 여행 장소와 사람이 좋으면 몇 날 며칠이건 간에 그곳에 머물곤 했다. 참 많은 곳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시절이었다.

우리 부부는 연애 시절부터 서로가 여행을 참 좋아해 여행으로 사랑을 키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성동본으로 결혼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행을 통해 함께 평생을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회사일로 해외 출장을 갈 때도 아내를 데리고 다녔다. 아내는 혼자 일본에서 대학 공부할 때도 안 다녀 본 곳이 없다 할 정도로 여행 매니아 였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역마살(驛馬煞)이 단단히 끼였다 보다.

여행은 <추억 만들기>다. 어느 나라 어디를 가고 무슨 음식을 먹고 무엇을 했다가 중요한 게 아니다. 평생을 살면서 힘들고 외로울 때 그 여행지에서의 <Photo in Memory> 한 장이 나의 뇌세포에 박혀 있으면 된다. 그 <기억 속의 사진> 한 장이 때로는 다시 나의 삶을 재충전 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행의 추억은 삶의 위로제다.

나는 지금도 우리 엄마가 보고 싶은 날이면 시도 때도 없이 운다. 한국에서 살 때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모시고 살았는데, 미국에 이민 오면서는 모시지를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이민 신분이 불명확하고 빈손으로 쫓겨 오다시피 했으니, 아파도 병원 한번 가보질 못하고 약 한번 제대로 처방 받지 못하는 신세는 엄마를 모실 형편이 못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수술해야 할 큰 병에 걸리면 그냥 죽게 해 달라고 가족들에게 이미 유언을 했다. 그래도 우리 엄마에게 일말의 위안을 받는 것은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엄마와 단둘이 여러 번 여행을 갔다 온 추억 때문이다. 엄마와의 여행 추억 때문에 자살하고 싶었을 떄나, 삶을 포기 하고 싶었을 때나, 엄마가 싫어하실 일은 지금도 하지를 않는다. 아내와도 마찬가지다. 아내가 싫어할 일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 한다. 아내와의 여행 추억 때문이다.

이제 나에게 얼마의 시간이 남았을까? 그리 길지 않으리란 걸 나도 안다. 내가 가족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무얼까? 될수록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 주는게 아닐까? 손녀들이 나를 어떤 할아버지로 기억할까? 좋은 <기억 속 사진>에 여행은 좋은 매개체가 된다. 나는 일정에 쫓기는 허둥대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은 느린 게 좋다. 게으른 게 좋다. 느긋한 게 좋다. 특히 가족 여행은 서둘지 말아야 한다. 대화가 중요하다. 느낌이 중요하다. <가족 사진>은 좋은 기억으로 저장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힘들고 지칠 때, 외롭고 무서울 때, 추억 속 할아버지 사진 한 장을 꺼내 들고 위로 받고 힘이 되는 재생 에너지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인이 나대서는 안된다. 여행 장소, 여행 일정, 여행 용품, 여행 경비 등을 일체 자식들이 결정하도록 일임해야 한다. 노인이 할 일은 여행 경비, 여행 용품 등을 노인 몫만큼은 노인이 분담하고 손녀들 선물 비용 정도를 마련하는 것일 게다. 여행 중에도 일체 잔소리나 언짢은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당연히 특별 대우를 받길 원해서도 안된다. 그래야 자식들이 노인 부모와 가족여행을 계속 가자고 할 것이다. 과연 남은 세월 동안 가족 여행을 몇 번이나 갈 수 있을까? 많아야 열 번? 스무 번? 글쎄다. 내일이라도 그분이 오라고 하면 군소리 말고 가야 하는데..

나는 아내와 연애 시절 가 보았던 여행지들을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 사실은 이번 달에 한국 비행기표까지 예약 해 두었는데 사정상 내년 이맘때로 연기 했다. 왜냐 하면 나의 한국 여행의 목적은 형제 가족들 얼굴 한번 보는 것 말고는, 바다 보고 생선회를 실컷 먹기 위함이다. 아내와 함께 산행했던 설악산 대청봉과 지리산 천왕봉은 갈 수 없을지라도 그 둘레길과 산촌 마을들은 가 볼 수 있을 것 같다. 본래 남북 왕래가 자유로워지면, 부산에서 출발해서 동해안을 거쳐 설악산과 금강산, 명사십리 해금강을 거쳐, 우리 엄마 고향인 흥남과 아버지 고향인 함흥을 거쳐, 개마고원과 백두산 천지 못에 발 한번 담그고, 사할린과 블라디보스톡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러시아 모스코바까지 가 보는게 소원이었는데, 아무래도 남북한 하는 짓이 날 센 것 같다. 그래도 꿈을 갖고 오늘도 아내와 함께 산책길을 걷는다.





잘못된 만남 (07-01-2022)

사람의 인생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지을 수 있다. 삶은 관계의 연속이다. 깊은 산 속의 수도승이 아닌 다음에야 우리는 매일 매순간 누군가를 만나고, 그 관계 속에서 기뻐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스승, 지도자, 직장 상사와 동료, 친구, 선후배, 배우자, 가족 형제, 이웃, 공동체 식구, 등등에 <좋은>과 <나쁜> 형용사를 붙이면 나의 살아온 과거가 보인다. 친구 따라 강남 갈 수도 있고, 지옥 갈 수도 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가시밭길이 될 수도 있고 꽃 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팔자 타령이 된다. 하물며 황제이든, 대통령이든, 국가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백성들은 3대가 고생이다.  

러시아 제국의 멸망은 요승 <그리고리 라스푸틴>이라는 비선실세와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은 알렉산드라 황후와 연애결혼(당시에는 파격적 사례임)으로 서로간의 사랑은 좋았다. 하지만 계속 공주 4명만 출산 하다가 어렵사리 막내 아들인 알렉사이 황태자를 얻게 된다. 하지만 황태자는 그 당시 불치병에 해당하는 선천성 혈우병 환자로 태어난다. 이 사실은 황실의 극비 사항 이었으며, 황제 부부에게는 족쇄가 된다. 1905년 11월, 이때 요승 라스푸틴은 사경에 빠져있는 황태자 병을 극적으로 호전시켜 <신의 사람>으로 황제 부부로부터 극진한 대접과 신뢰를 받게 된다.

특히 황후 알렉산드리아는 요승에 대해 무조건적 신뢰와 사모로 이어진다. 역사의 비선실세들이 그러하듯이 처음 시작은 특정사건으로 시작하였으나 갈수록 외교, 인사, 내정 간섭 등 모든 분야를 장악하게 되니 그 끝이 실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더라. 결국은 황제를 1차세계대전 전쟁터 일선으로 몰아내고, 황후와 요승이 러시아 내정을 좌지우지 하게 되니 나라 꼴이 정상일 수 있겠는가? 사이비 종교지도자들의 가장 흔한 말이 <신의 계시>, <신의 미세한 음성>이다. 자신만이 신과의 중계자 이므로 접신(接神, 신과의 만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신을 팔아 밥 먹고 사는 한심한 족속들의 속임수다.

요승 라스푸틴은 1869년 시베리아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학교는 다녔으나 문맹이었다. 1887년 결혼하여 7명의 자식을 나았으며, 동네 말을 훔친 죄목으로 마을에서 쫓겨난다. 1897년부터 15년 동안 수도승을 자처하며 러시아 전역을 떠돌았다. 그리스, 예루살렘, 터키 등을 순례하며 영적 스승을 만나 깨달음을 얻었다고 자처한다. 정식 신학을 배운 바는 없으며, <흘리스트파>에 심취한다. 흘리스트파는 죄를 지어 그 죄를 사함 받음으로서 천국에 도달한다는 교리다. 본래는 금욕주의 이었으나, 그 교파들은 일부러 죄를 지어야 했으므로 교인들 간에 난교를 하고 채찍질을 함으로써 죄를 짓고 죄를 사함 받는다는 해괴한 교리다. 그는 한마디로 난봉꾼 에다가 술꾼이었다. 그 나름대로의 사이비 교리와 특유의 카르스마로 러시아 귀족들 귀부인들에게 큰 추앙을 받았으며, 결국 러시아 황제 부부의 전폭적 신뢰와 총애로 비선실세 반열에 오르게 된 인물이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자들의 공통점은 주변의 충고를 무시하고, 오히려 몸과 마음과 물질을 모두 바쳐 추앙한다는 것이다. 황후도 결국 몸과 마음과 러시아 제국을 통째로 요승에게 바친 결과이며, 남편 황제는 민중과 국가 현실을 회피하고 황후와 요승의 말에 맹종한 결과, 300여년 르마노프 왕조의 러시아 제국은 민중들의 러시아 혁명으로 멸망하게 된다.

비선실세는 중국의 십상시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전제 왕권시대나 독재시대에는 언제나 존재했다. 민중이나 언론, 사법 등 감시 체제와 통제 기능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이승만 독재, 박정희, 전두환 군사 독재 시절, 무능한 박근혜-최순실 시대가 불과 얼마나 되었는가? 그런데 불과 취임한지 두 달도 되지 않은 윤석열 정부가 하는 짓이 독재 시대로 진입하는 일련의 절차들을 밟고 있다. 국가 4대 사정 기관인 검찰과 경찰을 장악하고, 국가정보원, 국세청, 금융감독원을 자신의 검찰 부하들로 장악하고 있다. 전두환 시절의 군부 <하나회>들이 하던 짓이다. 70여년동안 적폐청산이 되지 않은 부패공화국인 대한민국에 털면 죄가 없는 기득권 세력이 어느 누가 있는가? 기득권의 모든 개인 정보는 국정원과 국군 정보사와 검찰과 경찰이 쥐고 있다. 다음은 언론과 군부 장악이다. 독재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이 마련되면, 부정한 돈은 거대 기업들을 겁주면 알아서 상납하게 되어있다.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시대를 반면교사하면 된다.

거기다 평생 남의 뒤만 조사하며 세상 물정 모르고 대통령 준비가 전혀 안된, 무지 무식한 윤석열은 니콜라아 2세와 너무 닮아 있다. 거기다 윤석열(니콜라이 2세)뒤에는 김건희(알렉산드리아 황후)가 버티고 있다. 윤석열과 김건희는 동업관계다. 서로의 필요 충분조건으로 만난 사이다. 두 사람의 관계에 자식이 있나 뭐가 있나. 돈과 권력 뿐이다. 김건희는 평생을 <목적을 이루는 삶>을 산 여자다. 목적을 위해서는 몸을 팔든, 영혼을 팔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당연히 김건희에게도 대통령 지분이 있다고 지분을 요구할 것이다. 김건희(알렉산드리아 황후) 뒤에는 누가 있나. 그녀의 비선 실세들이 윤석열을 왕으로 만들었다면? 특히 요승들(라스푸틴)이 김건희를 조정한다면? 그들의 지시와 충고를 김건희는 신앙으로 추앙한다면? 러시아 제국의 멸망과 너무 유사하지 않는가? 취임한지 불과 두 달 동안 하루도 바람 잘날 없는데, 민중들은 앞으로 남은 5년을 어떻게 견디어야 하나? 어이 할거나?





제국의 멸망 (06-24-2022)

지난 주에 이어 러시아 마지막 황제(차르) 니콜라이 2세가 즉위 후 어떻게 불과 22여년(1894년 11월 1일~1917년 3월 19일)만에 세계 최대의 영토를 가진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자신과 일가족 모두가 총살 당했는지 살펴보자.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먼저 황제인 니콜라이 2세 본인은 첫째, 황제가 되기 위한 준비(황제 수업)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 둘째, 성격이 유약하고 무지하며, 감성적이고 독선적이어서 참모들을 공평하게 고루 기용하지 못했으며, 민중들 현장의 울부짖음을 외면했고, 셋째, 황후인 아내의 내정 간섭에 휘둘리고, 국정 지휘권을 빼앗겼으며, 넷째, 아내가 신봉하는 요승의 요설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국정은 농단 되고 패전, 패망, 패국으로 제국은 망하고, 일가족은 총살 당하고, 민중은 혁명으로 나라를 되찾음.

<재임시 주요 사건>: – <크림 전쟁(1853년~1856년)>에서 농업국인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 프랑스 제국, 영국, 아일랜드 연합국 간의 전쟁에서 러시아의 참패, 러시아만 최대 50만명 사상자 발생, 부친 알렉산드르 3세는 1861년 러시아 농노 해방령 선포 사건으로 이어짐. 러시아 개혁의 시발점이 됨,

– <러일 전쟁(1904년 2월8일~1905년 9월5일)>: 청일전쟁(1894년~1895년, 전쟁 장소: 한반도, 만주)으로 청나라 참패, 요동반도 이양을 러시아(독일, 프랑스 삼국 간섭)가 반대, – 1896년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친러 내각 수립, 1900년 의화단 운동으로 러시아 대군 15만명이 만주 점령, 시베리아 횡단 철도 건설 중이었으나 단선으로 보급과 군사력 수송에 한계 노출, -1904년 2월8일 일본은 선전포고 없이 인천 제물포와 뤼순, 마산과 원산 기습 공격 점령함. 제반 전투에서 러시아 패전. 러시아 내부에서는 <피의 일요일 사건>이 발생, 민중 대학살. 내우외환(內憂外患)격 임. 미국의 중재로 포츠머스 조약 체결, 1905년 을사조약 체결로 한반도 조선은 일본의 보호국으로 점령 당함. 1910년, 조선은 일본에 강제 합병, 피맺힌 35년간의 <조선 식민지 시대>가 시작됨.

– <피의 일요일 사건(1905년1월22일)>: 하나님의 대리자로 섬김을 받던 차르 니콜라이 2세가 비무장 민중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사살 명령을 내리고 본인과 황제 가족은 별장으로 휴가를 감. 민심을 잃는 결정적 사건이 됨. -<사건 배경>: 1861년 러시아 농노해방으로 가족이 많을수록 농민은 더 많은 땅을 분배 받게 됨. 출산율 급증, 고액의 토지 상환금 제도로 다수의 농민들은 반강제적으로 도시로 내몰림. 도시 인구 급증, 저임금, 과도한 노동 시간으로 불만 누적 폭증함. 공업화와 철도 건설 자본금 마련을 위해 농산물을 외국으로 과다 수출하게 됨. 물가 폭등, 굶주림 등으로 불만이 극에 달함. 공산주의 이념과 결합하여 반정부 주의 세력이 확산됨,

상트페르부르크 황제 겨울 궁전으로 향하는 민중들의 비무장 평화 행진 대열은 30만명을 넘어섬. 행진하는 민중들은 황제를 찬양하며 애국심과 황제에 대한 충성심을 보임, 하지만 황제는 민중들을 일체 만나지도 않고, 어떠한 협상도 없이, 러시아 황제 군대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고, 민중 사살 명령을 내림. 군인들은 민중에게 총을 쏘고 대포를 쏘고 칼로 찔러 민중들을 죽임. 니콜라이 2세는 민중을 사랑하지도 않았고, 사살을 권고한 최측근 숙부의 말만 듣고 실행에 옮긴, 무지하고도 어리석고 악랄한 황제로 기록됨. 이 사건을 계기로 노동자 파업이 전국적으로 확산, 연일 시위로 이어져 전국 66개 도시 44만명이 시위하며, 작업 중단, 10월에는 대규모 파업으로 이어져 러시아 경제는 파탄하고,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조기 패전하는 계기가 됨. 만약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 했다면 조선의 식민지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 <제1차 세계대전(1914년 7월~1918년 11월11일): 동맹국(독일, 오스트리아,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와 괴뢰국(폴란드,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발트 연합, 리투아니아 -1918년 1차세계대전 이후 독일제국 지원을 받는 괴뢰 국가로 지칭함), 그리고 연합국(영국, 프랑스, 러시아 제국의 삼국 협상국)과 지원국(미국, 이탈리아, 일본)간의 열강들의 오래된 갈등과 민족주의 충돌에 의한 전쟁임. 1차세계대전 결과는 패전한 동맹국 국가들이 해체되고, 중동과 유럽국가들이 독립되고, 전제군주제가 몰락하고 공화제가 등장함. 국제연맹이 창설되지만, 패전국들의 막대한 전쟁보상금으로 인해 결국 2차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되었음.

니콜라이 2세는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민심을 잃은 상태에서, 비선 실세인 요승 라스푸틴의 간교한 계략에 따라 모든 정권은 아내 알렉산드리아(독일 헤센 대공국 공주 출신)와 요승 라스푸틴에게 맡기고, 직접 러시아 제국군 총사령관으로 출전하지만, 모든 전투에서 참패하고, 러시아 군인들마저 황제에게 등을 돌리게 됨. 러시아 내정은 내정 대로 요승의 막대한 권력과 연이은 정책 실패로 귀족들 조차 황제에게 들을 돌림. 주변의 충신들과 황족들은 요승(비선실세)에 대한 만행을 황제에게 진언하지만, 무력한 황제는 아내와의 논쟁을 회피하고, 절대권력의 황후와 요승의 말만 믿음. 결국 1차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러시아 민심은 황제를 떠나고 <러시아 혁명(1917년 3월8일~1917년 11월8일)>으로 이어짐.





맹목적 믿음 (06-17-2022)

인간의 삶에는 그가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 살았든, 정치와 종교가 상존한다. 그것이 이념이든 사상이든 교리이든, 장점과 약점이 있고, 허구와 실상이 있다. 인간은 자체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고통과 슬픔이 늘 함께 하며, 불안하다. 그래서 완전체인 절대자 신을 믿고 의지하려 한다. 그 중간 매개체가 성직자이다. 성직자와 신도는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되, 늘 상호 감시 감독해야 한다.

그런데 성직자에 대해서만 유독 관대하며 맹목적 믿음을 갖는다. 어쩌면 가스라이팅 처럼 지배 받는데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성직자는 말씀을 전달하는 자이지,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자가 아니다. 예수를 믿는다면 예수의 말씀만 그대로 믿으면 된다. 목사의 해석이 필요할 정도의 난해한 말씀들이 아니다. 목사가 자기 주장을 고집하고, 자신의 교리를 정당화 하여 신도들을 현혹시키고, 수백 년 이어져 온 교단을 분열시키고, 동조 무리들을 만들어 수십년 된 교회를 문닫게 만들고, 나가서 교회를 새로이 만들고, 신도들을 적과 아군으로 나누어 싸우게 한다면 살아계신 예수님은 무어라 하실까? 그 목사는 자신의 교단을 만들고, 자신이 그 교단의 <교주>가 되어야 한다.

<서로 사랑하라> 하시면 서로 사랑하면 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아닐 것이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 약자, 불량자, 성 소수자, 동성애자, 죄 지은 자, 걸인, 창녀 등등, 모두를 사랑하라 하신 것일 게다. 설령 사랑하지는 못 할지언정, 미워하고 박해하지는 말아야 하는게 아닐까? 세계 근대, 현대사 전쟁은 대부분 기독교 국가들이 주도로 일으킨 것이며, 죄 없는 수많은 민중들을 살해했다. 성 프란체스코 교황께서는 “그 누구도 잘못한 사람이 없다면, 우리 모두가 잘못한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스님도 절이 싫으면 스님이 절을 떠나야지, 왜 신도들을 내쫓고 절을 불질러 버리는가? 대표적으로 <신천지>를 예로 들 수 있다. 흔히들 <이단>이라는 것은 교리의 맞고 틀림의 쟁점이 아니다. 이단 신자들은 그 교리가 맞다고 맹목적으로 믿는 자들이며, 믿는 자들이 있으니 교회라는 단체가 성립되고, 교리를 무조건 믿는 사람들을 <광신도>라 부르며,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을 <맹신도>라 부르는 것이다. 맹목적 믿음의 결론은 자기자신의 모순이며 파멸이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유해야 한다.

맹목적 믿음(盲信)의 대표적 영화로 넷플릭스의 <마지막 차르> 6편을 보길 권한다. 어떻게 세계 최강의 전제 군주국이었던 러시아가 허무하게 몰락하였는지 흥미진지하게 보여준다. 러시아 패망의 결정적 3인은 마지막 황제(차르) 니콜라이 2세, 황제를 막후에서 조정했던 황후 알랙산드라 표도르브나, 그 황후를 정신적으로 지배했던 요승(妖僧) 그레고리 라스푸틴을 꼽을 수 있다. 어느 국가든, 단체든, 집안이든, 맹신에 따른 패망은 허망하고도 순식간이다. 이 3인으로 인해 거대 러시아 왕국이 불과 20여년만에 무너졌다면 믿어지는가? 어쩌면 대통령 준비가 전혀 안된 윤석열과 욕망의 화신인 근본도 없는 그의 처 김건희와 김건희를 둘러싼 요승들은 일단의 시작 배경이 너무 유사하다. 그래서 끝없는 민중의 감시와 견제가 필요한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러시아 혁명사>를 공부할 겸, 몇 회에 걸쳐 연도별로 간단히 기술해 보자.

  •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1868년~1918년, 50세, 가족 모두 살해됨)>: 300년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시대 막내림.

<황제의 즉위 시 문제점>: <니콜라이 2세는 러시아 황제가 될 준비가 전혀 안됨>. -1868년 알렉산드로 3세의 적장자로 태어남, – 1881년 부친의 즉위와 동시에 황태자로 책봉, – 1894년 부친 알렉산드로 3세(49세) 갑자기 사망, 평소 건강을 과신한 나머지, 아들 황제 후계수업을 전혀 시키지 않음 (황태자가 30세부터 후계수업을 시작하려 함), 조선시대는 6세부터 세자 책봉하여 왕위 교육을 받음. (숙종 13세 즉위, 수렴청정 하지 않음), 니콜라이 스스로가 자신의 즉위식 때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라고 고백할 정도임. 준비되지 않은 황제,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 준비되지 않는 무능한 자에게 권력이라는 칼을 쥐어주면 망나니가 되는 것은 자명할 일이다.

<1896년 즉위식 대참사>: 러시아 황제 차르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신성시 되었음. (러시아정교회), – 1896년 5월 니콜라이 2세(28세) 즉위식 겸 대관식에 참가한 인민들에게 줄 선물인 빵, 소시지 등등의 40만개 자루와 맥주 3만통, 벌꿀 1만통 등이 준비되었는데, 선물 받으러 참석한 민중이 1백만명을 넘게 되어 아수라장이 됨. 1,389명이 압사해 죽고 1,300여명이 부상당함. 황제는 오전 10시에 보고 받았는데, 황제는 프랑스 대사 무도회 참석 등 핑계로 참사 현장에 나타나지 않음. 이 사건은 러시아 혁명으로 이어지는 시발점이 됨.

<1917년 러시아 혁명 이전의 19세기 시대적 배경>: 영국의 일차 산업혁명, 프랑스 대혁명 등의 영향으로 러시아 자본주의도 급성장 하게 됨. – 1860년~1900년까지 공업 생산량은 7배 이상 성장, 특히 중공업, 대규모 공장들이 급속 발전함, – 1865년 도시 노동자 70만명, 20세기 초 200만명 이상 증가함. 노동자 생활 극도로 비참함, 노동시간 제한 한도 없음, 최저 임금제 없음, – 1870년대 지역별 노동 파업 발생 및 시위 – 1840년대 공산주의 사상 유입, 1869년 공산당 선언, – 1883년 러시아 최초 혁명 조직 <노동자 해방단> 결성, – <2단계 혁명론>; 자본주의를 거쳐 사회주의로 발전한다는 이론, 마르크스와 엥겔스 책들을 번역 보급함.





기다림의 미학 (06-10-2022)

삶이란 기다림의 연속이다. 기다림은 <희망>이다. 희망은 목적이 있고 바램이 있다. 목적에는 목표가 있다. 이루고자 하는 소망이 있다. 목표가 구체적일 수도 있고, 막연할 수도 있다. 애간장을 태우며 분초를 다투는 기다림도 있고,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허망한 기다림도 있다. 인간은 태어남부터가 기다림 이었다. 엄마 배 속에서 열 달을 기다리다 세상에 태어난다. 태어나서부터 유아기, 유소년기, 청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거치면서 그 나이와 시대에 맞는 기다림도 있다. 시대를 건너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간 앞에 장사 없다.

기다림에는 <때>와 <기회>가 있다. 모든 기다림에는 때가 되어야 이루어질 수 있고, 기회가 와야 잡을 수 있다. 때가 되지 않았는데, 기회가 오지 않았는데 빨리빨리 마음만 조급하게 서둔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기다림은 <느림의 미학>이다. 다만 기다림은 철저한 준비와 바램이 전제되어야 한다. 준비되지 않는 자에게 때가 오면 뭐하며 기회가 오면 뭐하나. 준비되지 않은, 막연한 기다림은 <상실의 고통>이다. 내일을 준비하고 때를 기다면서 <오늘>에 충실히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당신은 누구를 기다리는가? 무엇을 기다리는가? 왜 기다리는가? <막연한 기다림>의 상징인 망부석(望夫石)에 대한 설화가 있다. 신라시대 18대 내물왕(390년 AD)은 고구려와 일본의 잦은 침략에 왕자 둘을 각각 인질로 보냈으나, 되돌려 주지 않자, 19대 눌지왕(419년 AD)때 충신 박제상은 왕자들을 구출하지만 본인은 왜국의 신하가 되기를 거부해 결국 화형을 당하여 죽는다. 박제상의 아내는 남편을 사모하여 치술령에 올라가 왜국을 바라보며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다 죽어 돌이 되었다. 그 돌을 망부석이라 칭한다. 무한정, 무작정 막연한 기다림의 대표 설화다. 과연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막연한 기다림이 올바르다 할 수 있을까? 살아남아서 남편을 위해, 남겨진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위해, 사회를 위해 구체적인 목표와 소망을 갖고 주어진 여생을 보냈다면 그녀의 기다림은 보다 나은 결실을 맺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좋아하는 포르투갈의 노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부른 <검은 돛배> 역시 바다로 나간 남편을 흠모하며 기다리는 아내의 애잔한 노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은 그리움과 기다림의 연속이다.

기다림에 대한 여러 명언들이 있다. “가만히 앉아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려서는 안된다. 기회는 곳곳에 열려있다. 가장 큰 손실은 뒤로 미루는 일과 기다리는 일이다. 미래의 불확실한 미래를 얻기 위해 확실한 현재를 포기하지 마라. 그 어떠한 운명과도 맞부딪힐 심장을 지니고, 자꾸 이루고자 노력하며 기다리길 배우자. – 롱펠로우” “승자는 새벽을 깨우지만, 패자는 새벽을 기다린다. 승자는 눈을 밟아 길을 만들지만, 패자는 눈이 녹기를 기다린다. –탈무드”, “기회를 기다려라. 그러나 때를 기다려서는 안된다. –처칠”, “할 수 있을 때 하라. 시간과 기회는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인간의 지혜는 기다림과 희망 두 단어로 집약된다. – 알렉산더 뒤마” 등등.. 요약하면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미래에 대한 목적과 목표를 정확히 세우고 기회를 기다리면 때가 와서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구체적인 기다림>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칼럼을 주저리주저리 쓰는 이유는 2022년 올 한해 뿐만 아니라, 2023년 내년 경제상황이 더 나빠질 거라는 각종 지표들 때문이다. 가게를 팔겠다는 매물들은 흘러 넘치지만, 사겠다는 Buyer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가게를 급하게 팔아야 하는 Seller들의 사정도 각양각색이다 보니 매물 가격이나 조건들도 2021년 작년 대비 가히 파격적이다. 그래도 Buyer는 망설이며 매입하지를 않는다. 대부분의 이유가 좀 더 지켜보자는 막연한 기다림이다. 모든 매매가격은 현재형 기준이다. 현재 매상, 현재 순이익, 현재 지출을 기준으로 분석하여 책정된다. 거기다 단기 미래 시장 예측 자료들이 참고 된다. 부동산이나 주식이나 비즈니스나 가게나 마찬가지다. 당연히 돈을 벌려고 하면 가장 가격대가 저점인 시기에 매입해서 가장 고점인 시기에 매각해야 한다. 적극적인 기다림이 요구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장이 활성화되어 가장 고점인 시기에 덩달아 매입해서, 너도나도 힘들다고 할 저점인 시기 때 매각한다. 돈을 벌 수가 없는 구조다. 2020년, 2021년, 2년 Covid-19 기간 동안 가장 고점이었던 업종은 <Breakfast, Food Business- to go> 업종이었다면, 가장 저점인 업종은 <세탁소, Drop Store> 관련 업종이었다. 시장은 자체 정화기능이 있다. 호황 업종은 개체수가 증가하는 반면, 불황 업종은 개체수가 감소하여 고객의 자동 분배 기능이 상존한다.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세탁 업종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불경기 혹은 침체기에 접어들면 주민들의 생활 필수 업종만 생존하게 된다. 장담하기 어려운 시국이다.매물로 내놓은 Seller들도 망부석처럼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다 보면 좋은 소식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가게를 살려는 Buyer들은 시장의 활성화가 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나의 목표와 희망에 부합되는 좋은 조건의 가게를 지금 매입하는 것도 최적의 기회인지 모른다. 막연히 기다린다고 삶이 달라질 것은 없다. 목표가 정해졌으면 끊임없이 두드리고 찾고 행동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아도 바쁘신 하나님께 막연히 기도 응답만 기다리지 말고.. 직접 적극적으로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선녀와 나무꾼 (06-03-2022)

만약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은 결혼을 할 것인가? 우리 세대처럼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일부일처(一夫一妻), 일부종사(一夫從事)로 한 남자 한 여자 와만 평생을 살 것인가? 만약에 국가가 완벽한 사회보장 제도로 자식들을 20세 성인이 될 때까지 모든 양육을 책임지고, 성인들에게도 동등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여 무슨 직업을 갖든, 무슨 노동을 하든, 노동에 대한 동등한 가치를 인정하여 노동 대가를 지불하고, 만약 노동을 하지 않고 백수로 놀고 있다고 하더라도 최소 생계비를 보장한다면, 근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져온 결혼제도가 성립될까?

현대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으려 하고, 결혼을 해도 자식을 여러 명 낳아 양육하지 않으려는 사회적 문제는 곧 다가올 인류의 심각한 재앙이 될 것이다. <위대한 수업> 강사 중 독일 현대 철학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인간의 낭만적 사랑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의 낭만적 사랑은 육체적 사랑이 에로스, 정신적 애정과 헌신인 아가페, 베푸는 마음인 카리따스를 모두 포함한다. 본래 인간의 조상인 영장류가 400여종이 있는데, 긴팔원숭이만 일부일처이고, 나머지는 모두 집단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다부다처제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야 유전적으로도 우수한 종자를 번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은 배고픔이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감정이 아니다. 사랑은 상황에 따른 감정에 종속되거나 오락가락 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 상태로 변함없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현대판 일부일처 결혼관은 18세기 이후 서구 문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만약 우리 사회가 일부일처 제도에 종속되지 않고, 서구 스웨덴 등과 같이 <함께 살기-동거 (Live Together)> 개념으로 바뀌면 현대 젊은이들의 <나 홀로>족은 줄어들지 않을까? 자녀 양육비와 양육 시스템을 국가가 책임진다면 자식들도 많이 낳지 않을까? 동거하는 상대방의 자식들도 내 자식처럼 사랑하지 않을까?

한국, 중국, 몽골, 인도, 일본, 심지어 북한에도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널리 알려져 있는 <선녀와 나무꾼> 전례 동화 혹은 설화를 누구나가 알고 있다. 한국 줄거리의 <도입부>는 서른이 넘도록 홀어미를 모시고 노총각으로 살아가는 나무꾼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냥꾼에 쫓기는 사슴을 숨겨준 대가로 사슴은 나무꾼 소원 하나(아내를 원함)를 들어준다. 선녀들이 목욕하러 내려오는 장소, 시기, 목욕하는 동안(관음증 성 문란죄에 해당) 선녀의 날개 옷을 훔치면(절도죄에 해당) 선녀가 하늘로 못 올라간다고 알려준다. 기밀정보 보호법과 일급 기밀 누설죄에 해당한다.

<제1결말부>는 자식 3명을 낳을 때까지 선녀옷을 돌려주면 안된다고 사슴이 경고 했는데, 자식 둘을 낳았을 때 선녀의 애원으로 옷을 돌려준다. 즉시 선녀는 자식들을 껴안고 승천해 버린다. 그 당시에도 자식 셋을 낳으면 여자 인생 종치고 막 내린다는 걸 사슴이 경고한 것이다. 거기다 직업이 나무꾼이다. 전문 기술직이나 재산이 많은 갑부 집안의 금수저도 아니지 않는가? 홀어머니에 나무꾼이라는 막노동의 남편에게 속아서 강제결혼 (결혼 빙자 사기죄에 해당)을 하게 되고, 자식을 세명까지 낳아서 그 자식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운다면, 그것도 강남 일학군도 아니고 산골마을에서 고액 과외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언감생심(焉敢生心) 어떻게 일류 대학 근처라도 갈 수 있을까? 선녀는 천국이 아니라 서울이라도 도망가는게 상책이다. 미국 이민도 마다치 않았을 것이다.

<제2결말>은 아내와 자식을 잃고 좌절한 나무꾼은 다시 사슴의 도움으로 홀어머니를 내팽개치고 (독거노인 방치죄), 두레박을 타고 천국에 올라가서 선녀와 자식들과 재회하여 다시 부부가 되어 잘 사는 것으로 해피엔딩이 된다. 다른 버전은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모셔와서 함께 행복하게 산다는 버전도 있다.

<제3결말>은 지상에 남겨둔 어머니가 그리워서 천마를 타고 땅에 내려온다. 오랜만에 아들을 만난 어머니가 뜨거운 호박죽이라도 먹고 가라고 주는데, 뜨거운 죽을 말의 등에다 흘리는 바람에 천마가 날뛰어 낙마하여 천국에 가지도 못하고 상사병에 걸려 늙은 어머니보다 먼저 죽어 훗날 뻐꾸기가 되어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다는 설화도 있다. 각 나라마다 대부분의 버전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는게 고해(苦海)다. 성인 남녀가 만나 결혼하고, 자식 낳고 자식들이 잘 성장하여 훌륭한 사회의 일원이 되고, 부모님 잘 모시고 화목하게 잘 사는게 모든 인류의 꿈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과정이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과정이다. 혼자 산다고 고통과 슬픔과 분노와 외로움이 없을까? 고독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려본 사람은 다시는 고독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는 일부일처제를 반드시 찬성하지는 않는다. 정 싫으면 헤어져야지, 죽고 싶을 만큼 싫은데 어떻게 같이 사나? 다만 헤어지는 그날까지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을 모두 주고 나서 헤어지면 미련없이 떠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내 아내를 42년전 처음 만나는 날부터 이별을 전제로 만났다. 첫날 동성동본(同姓同本)인걸 알았기에 언제 헤어져도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다만 헤어지는 그날까지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모든걸 사랑하기로 스스로 다짐하고 살고 있다. 매일매일 하루하루가 사랑하고 헤어지는 연습을 하다 보니 어느덧 4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지금도 나는 아내가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산다. 이런 사람도 있는데 뭘..





세계인 절반의 굶주림 (05-27-2022)

지금 이순간에도 세계 인구 76억명의 절반이 굶주린다면 믿어지는가? 세계 인구의 10% 가량이, 2019년 6억9천만명 대비, 2020년 기준 8억1천만명이 <기아 상태>라고 유엔식량농업기구(UNFAO)는 발표했다. 지금은 더 늘어났을 것이다. 대부분이 아프가니스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일부 중남미 국가들이다. 세계 발육 부진 기아 어린이는 전세계 어린이의 21.4%를 차지하는데, 매일 250명의 아동들이 영양실조로 사망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와 기후 온난화, 내전과 전쟁으로 인해 식료품 가격은 빈민국일수록 급등하고, 소득 수준은 급격히 낮아졌다. 지난해 소득이 2달러 이하인 <빈곤층>은 약 1억 3천만명이 늘어났고, 하루 2~10달러 저소득층은 약 3천1백만명 증가했다. 토지는 황폐화 되고, 수입에 의존하는 농산물은 폭등하고, 소득은 줄어드니, 아이들은 영양실조로 굶어 죽고, 평생 동안 교육의 혜택조차 받을 수 없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빈곤과 기아는 다르다. <빈곤(Poverty)>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물적 자원이 부족한 상태를 말하고, <기아(Hunger)>는 장시간 지속된 식량부족으로 인해 굶주림으로 사망에 이르는 현상이다. <굶어 죽는다> 함은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말살하는 현상이다. 2021년 기준 기아 위험국가 1위는 소말리아, 이어 예멘 (8년간 이슬람 수니파와 반군 시아파가 전쟁 중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차드, 콩고, 다마가스카르 이며, 아프가니스탄 14위, 북한은 21위, 앙골라, 르완다, 수단 순이다. 기아 위험 상위 10개국중 8개국이 분쟁 중이다. 즉 기아의 제1원인은 코로나19가 아니라, 분쟁인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가 가져올 가장 큰 문제는 국가 봉쇄정책이다. 아프리카에서 하루 최소 생활비는 평균 $1.75달러다. 국가가 봉쇄되고 독재 정부는 부정부패를 일삼으니, 민중은 기아에 허덕이다 굶어 죽어야 하는 것이다. 스미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장은 “식량안보 없이 평화가 정착될 수 없고, 평화유지 없이 기아가 종식될 수 없다”고 했다.

현재 세계식량 생산량은 전세계인들이 모두 먹을 양의 1.5배~2배가 과잉생산되고 있다. 식량은 흘러 넘치고, 엄청난 양의 음식쓰레기가 버려지는데, 지구촌 한편에서는 사람이 굶어 죽고 있다. 농업생태학자 에릭 홀트-히메네스의 저서 <우리는 세계를 파괴하지 않고 세계를 먹여 살릴 수 있는가>에서 글로벌 식량 구조적 문제를 말한다. 어떻게 기아를 재생산하고 환경을 파괴하는지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역사적으로 불공평한 먹을거리 규칙(Regime)은 첫번째 단계가 1870년~1930년대이다. 자유무역 제국주의 체계하에서 식민지의 값싼 먹을거리가 유럽 산업화를 지원했던 시기다. 2단계 레짐은 1950년~1970년대다. 미국의 농업 잉여생산물이 식량원조의 형태로 지구촌 남부로 이전되었다. 즉 첫번째 단계 지구촌 남부에서 북부로 식량이 이전된 형태에서 역전된 것이다. 이른바 <녹색혁명>이다. 개발도상국 농민들에게 비료, 농약, 다수확 곡물 품종을 보급한다는 캠페인이다. 이로 인해 제3세계는 막대한 부채위기, 지구촌 북부의 미국과 유럽의 잉여농산물 덤핑 판매로 남부는 식량 적자국이 되고, 북반부에 먹을거리를 의존하는 식량 식민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3단계 레짐(Regime)은 1980년~현재다. <기업의 먹거리 시대>다. 식품시장의 거인들의 급속한 성장, 종자 시장과 곡물시장의 독점 통제 체제로의 통합, 바이오 연료와 산업적 곡물과 오일 시드(Oil Seed –기름을 짤 수 있는 농산물)와 축산 복합체의 출현으로 특징 지어진다. 세계인구의 굶주리는 절반은 상당수가 농부들이다. 현시대의 먹거리 체제의 특징은 <생산량 부족>이 아니라, <과잉생산>이다. 과잉생산되면 시장 가격이 낮아지고, 농부들은 생산비용보다 낮으니 손해를 보고, 더 생산을 늘리면 시장 포화로 또 가격은 낮아지니 빚은 늘어나고, 더 많은 농약과 비료를 투입하게 된다. 빈곤과 기아, 환경파괴(세계 경작지 3분의 1이상이 황폐화로 경작 불가능한 상태로 파손됨)가 빈곤의 악순환 고리를 만들게 된다.

세계 500대 국제화 대기업들이 세계 금융시장, 세계 농수산물 시장, 세계 자원 시장(석유, 개스, 철, 석탄, 특수광물 등)을 석권하고 있다. 나는 2011년 6월부터 9회에 걸쳐 지구촌의 가난에 대해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얼마전 <위대한 수업>에서도 방송된, 내가 존경하는 장 지글러 교수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는가?>와 <탐욕의 시대>, 그리고 제인 구글 박사의 <희망의 밥상>, 이태석 신부님의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등을 기반으로 2개월여 동안 칼럼을 썼다. 지금 읽어봐도 그때나 지금이나 민중의 가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www.willbusinessbroker.com에 들어가셔서 <윌리 칼럼 2011년>을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다.

실천적 사회학자 장 지글러의 2016년 작 <인간의 길을 가다>를 읽어볼 생각이다. “우리의 삶에 공동의 연대감을 부여할 수 없는 걸까? 우리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그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18세기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의 “악이 승리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은 선한 인간들의 침묵이다.”를 인용하면서 “선한 사람이라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사람들의 손에 새로운 희망의 철학이라는 무기를 쥐어 주어야 한다. 우리는 부조리한 세계질서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각자는 어떤 사회에 속하든 간에 그 질서와 싸우고 극복하는데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불안한 미래 (05-20-2022)

한치 앞을 못보는 게 사람이고, 하루 앞을 모르는 게 인간사다. 불확실성 시대에 사는 현대인은 예측 가능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미리 대비하고 손실을 최소화 하려 하며,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역이용하는 난세의 인재들도 등장한다. 그래도 사는게 불안하니 신을 찾고 종교를 믿는 것은 아닐까?

우리 지역의 한인 맘엔팝 비즈니스도 갈피를 잡지 못한다. 원자재값과 식료품값이 너무 오르니 소비자 판매 가격도 덩달아 올릴 수 밖에 없다. 과연 언제까지 얼마를 올려야 할지 갈피 조차 못 잡는다. <Food Business> 상품 매입비 구성 원가는 대체로 판매가격 대비 25%~35% 이내에 들어와야 한다. 원자재 값이 전년 대비 소비자 물가 상승률에 따라 8% 상승하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비율로 올라야 한다. 그런데 원자재 값만 상승하는 것이 아니다. 연방 금리가 인상되면 모든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도 인상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 물가 상승에 따른 인건비도 덩달아 인상하게 된다. 전기 개스 등 모든 지출 내역들도 인상하게 된다. 할 수 없이 맘엔팝 소비자 판매가격을 인상할 수 밖에 없는데, 당연히 소비자 수요가 억제될 수 밖에 없다. 경기 침체기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이제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우크라 침공이 장기화됨에 따라 세계 에너지 값과 곡물값 등이 폭등하여 인플레이션 위기 국면에 접어 들었다. 코로나 사태로 천문학적인 달러를 풀어버린 미국 경제는 미 GDP 성장률이 2021년 1분기 6.3%, 2분기 6.7% 였으나, 2022년 1분기 1.7%, 2분기 1.3%, 하반기 역시 1%대 성장률에 그칠 것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실질 GDP성장률은 0.5% 수준에 그칠 것”이며, 2022년 올해 미국인 실질 가처분 소득은 0.7%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금융시장 전문가를 대상으로 CNBC가 자체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2023년 내년에 경기 침체가 올 확률은 미국은 33%, 유럽은 50% 이상이 가능한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제로 코로나> 전면 봉쇄 정책을 고수하는 세계의 공장 중국의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고, 러시아에 대한 전방위 경제 제재와 가스 공급이 전면 차단되고, 밀 생산 세계 2위 국가인 인도의 밀 수출이 중단되고, 지구 온난화 기후 악재까지 겹치면 전 세계 공급망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것이다. 또한 미국 연준이 올해 4~7차례 더 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전 세계 달러 강세로 인플레이션은 기름에 물을 껴 얹는 형국이 될 것이다. 이미 가상화폐 시장이 폭락하고 주식 시장에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미국은 2022년 11월 대통령 중간선거가 있다. 지금도 지지율이 낮은 바이든 정부는 중간 선거 결과에 따라 경제적, 정치적 장악력이 약화될 수 밖에 없다. 과연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얼마까지 계속 올릴지, 국민들의 이자 부담을 얼마나 가중시킬지가 관건이다.

중국은 20차 공산당 전당대회(2022년 10월)에서 시진핑 연임 장기 집권을 위해 코로나 통제와 <공동 부유론> 슬로건에 따른 내수 시장 활성화가 관건이다.

거기다 북한은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었는데, 의료 체제나 사회 구조가 최빈민국 수준으로 확산을 막을 방도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중국도 민중 반란이 일어나는 판에, 북한이라고 민란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내부의 반란은 외부의 전쟁이나 도발로 전환시키는 것이 역사적 증거들이다. 윤석열 검찰 공화국의 젖비린내 나는 일당들이 한순간 잘못 대체하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한국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봉착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의 현재는 <인플레이션 쇼크 악화, 금리 쇼크 시작, 경기 침체 쇼크 도래 예고>라고 뱅크오브아메리카 수석 투자 전략가는 진단했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부 장관은 “현재의 경제상황은 경기 침체기 진입 직전 상태” 라고 진단했다. “지난 75년간 인플레이션이 4% 이상 넘고, 실업률이 5% 미만으로 떨어지면 2년 안에 경기 침체가 왔다. 2022년 3월에 미국 인플레이션은 7.9%, 실업률은 3.6%를 기록했다. 2023년도 경기 침체기를 맞을 확률은 80%이다. 미국의 장단기 국채금리 역전 현상도 경기 침체가능성을 예고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큰 폭으로 기준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되어, 2년물 국채금리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아, 어쩌란 말인가? 남은 것이라곤 낡은 육신 뿐인데, 몸으로 열심히만 하면 먹고 살 수 있는 미국이라 믿었는데, 몰아치는 소용돌이를 벗어날 재간이 없네. 이럴수록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검소하게? 평소에도 검소하게 살았지만, 더 검소하게 살아내는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제발 세계가 전쟁놀이 그만하고 네 편 내 편 가르지 말고, 어려운 이웃 국가 도와가면서 좀 오손도손 살 수가 없나? 하나님을 믿으면 뭐하고 예수를 믿으면 뭐하나? 무슨 어려운 고차원적 계명이라도 말씀 하셨나? <서로 사랑하라> 그 한마디도 못 지키면서 카톨릭이면 뭐하고 정교회이면 뭐하고 개신교이면 뭐하며 이슬람교이면 뭐하나? 지금도 세계 굶어 죽는 어린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헛되고도 헛되도다. 노자의 <도덕경>에 “우울한 사람은 과거에 살고, 불안한 사람은 미래에 살고, 평안한 사람은 현재에 산다”는 말씀이 첫 단락에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우리 같은 가난한 민중들은 하루하루 오늘에 감사하며 살아갈 뿐이다. 부디 건강하세요..





가스라이팅 (05-13-2022)

얼마전 한국 뉴스를 뜨겁게 달구었던 <가평 계곡 살인사건>으로 <가스라이팅 효과(Gaslighting Effect)>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명문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 중견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극히 사회 모범생이던 피해자가 이은해 라는 가해자를 만나 결혼하고 모든 재산을 가해자에게 빼앗기고 심지어 온갖 빚더미에 앉아 있을 뿐만 아니라, 8억원 생명보험에 들고, 본인은 단칸방에서 살면서 자신의 집에는 가해자와 내연남이 동거하고, 그 내연남과 공모하여 수영도 못하는 피해자를 계곡에서 빠뜨려 죽게 한, 말도 안되는 사건이다. 피해자는 오로지 가해자에게 <인정 받고 싶은 욕구>로 가스라이팅 당한 것이다.

가스라이팅은 상대방의 자존감, 자주성을 교묘히 무너뜨려 피해자가 가해자 자신(Gasligter)에게만 의존하게 만드는 행위이다. 유래는 1938년 패트릭 해밀턴이 연출한 <가스등(Gaslight)>라는 연극과 1944년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영화로 유명하다. 인터넷으로 흑백 영화로 감상할 수 있다. 잭(남편)은 윗집의 보석을 훔치기 위해 윗집 부인을 살해한다. 보석을 찾기 위해 불을 켜야 하는데, 당시에는 지역 건물들이 공동 가스등을 사용했기 때문에 다른 집에서 가스등을 켜면 가스등 불빛이 약해지기나 깜빡여서 들킬 우려가 있다. 이에 남편은 아내가 의심하지 못하게 아내를 망각증 환자로 몰아간다. 물건을 숨기고는 아내가 잃어버렸다고 타박하거나, 이런 유사한 사례들을 만들어 과민반응이나 망각으로 몰아간다. 처음에 아내는 반신반의 하지만, 점점 무기력과 공허에 빠지게 되고 결국은 남편에게만 의존하게 된다. 내 기억으로는 대학생 시절에 본 영화 페이 다너웨이 주연의 <파리는 안개에 젖어>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이 영화도 다시 봐야겠다.

즉 가스라이팅 효과는 피해자에게 정서적인 학대, 교묘한 궤변, 날조, 선동 등을 반복 지속하여 피해자 자신의 판단력이 매우 낮다고 스스로 믿게 만들고, 가해자에게만 의존하게 만들어 가해자가 이득을 취하는, 일종의 세뇌 범죄다.

가스라이팅의 세뇌 단계를 살펴보자.

첫번째는 <관계형성>이다. 주로 가깝고 친밀한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부모와 자식, 부부, 연인, 친구, 직장 상하관계, 군대 직속 상하관계, 종교 사이비 지도자(목사, 전도사. 스님, 무당)와 신도 등,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일어난다. 힘을 가진 강자와 약자의 관계일 수도 있다. 주로 둘만의 시간에 이루어진다. 동정심이나 위로로 시작한다. 주로 서두에 시작되는 문장이 <다 너를 위하여> <너를 사랑하니까>, <너 잘 되라고> 등이다. 많이 익숙한 문장 아닌가?

두번째 단계는 <기억의 왜곡>이다. 피해자가 실수를 저지를 때마다 하나하나 상기 시키고 자신을 의심하고 불신하게 만든다. 사소한 실수도 침소봉대하고 가해자의 주장을 확고히 해서 피해자의 기억을 의심 시킨다.

세번째 단계가 <미니마이징>이다. 2단계까지 피해자는 강한 반발을 하지만, 3단계가 되면 피해자는 주변인들로부터 비논리적인 착각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4번째 단계가 <무시>다. 피해자를 별 것 아닌 일로 예민하거나 유난을 떠는 별종 취급을 한다. 가해자가 행한 각종 폭력은 정당화 한다. 피해자의 기억, 판단력, 감정까지도 스스로 의심하게 되는데, 이 단계가 되면 피해자의 모든 것, 심지어 재산까지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가스라이팅 극복법>은 첫째, <자존감 키우기>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크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잘 걸려들지 않는다. 자기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도 본인이고, 자신을 가장 잘 챙기고 사랑하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고, 역경을 이겨내야 할 사람도 자기 자신이고,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할 사람도 자기자신이다.

둘쩨가 <맹신은 금물>이다. 종교도 맹신은 광신이 된다. 니체의 말처럼 <의심하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하라. 인간이 만든 어떠한 것도 <절대성>은 없다. 객관적인 자료와 근거가 없다면 일단 보류하라.

셋째, <조력자를 찾아라>,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인터넷에서 찾아봐라. 행동이 멈추면 생각이 멈춘다. 가해자와 맞부딪치지 말라.

넷째, <논리적으로 생각하라>, 무턱대고 의심하지말고 논리적 사고를 키워라. 고난과 역경은 누구에게나 있다. 감성적, 정치적으로 판단을 잘못할 수 있다. 나를 설득하지 못하면서 타인을 설득할까?

다섯째, 결단을 내렸으면 <용기 있게 대처하라>.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인연이 아니면 과감하게 끊을 용기도 필요하다. 가스라이팅의 가해자(Gaslighter)들은 대부분 당신이 믿고 의지하는 당신과 가까운 사람들이다. 믿을 놈이 없는게 아니라, 자기자신을 믿어라. 그리고 인간관계 확장에 노력하라.

스톡홀름 징후군(Stockholm syndrome)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행위에 동조하거나 변호하는 비이성적인 심리현상이다. 가정폭력 피해자인 아내가 가해자인 남편을 옹호하며 “그이가 때리긴 해도 착한 사람이예요”라는 대표적 사례다. 가정내 가족간의 가스라이터는 외부 사회가 간섭할 수 없는 한계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 부모가 답을 정해 놓고 자식이 스스로 굴복할 때까지 반복 학대한다. 가정폭력 사례는 끝도 없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힘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누구보다 더 따뜻한 공감과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가족들에게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준 가해자(가스라이터)일까? 부디 용서하세요..





잊혀진 노인의 하루 (05-06-2022)

문재인 대통령님, 5년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마웠습니다. 다음주부터는 <잊혀진 사람>으로 평범한 범부의 삶을 살기를 원하셨지요. 모든 일에는 공과 실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제 모두 내려 놓으시고 시골 노인처럼 편히 사세요. 같은 연배에 같은 고향에 비슷한 성장 배경에 추구하는 사상과 철학도 비슷했기에 일방적으로 친구로 연모했습니다. 나의 <친구 같은 대통령>이셨기에 앞으로 남은 여생도 건강하시고 평안한 삶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여러분은 하루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나요? 칠십을 바라보는 나는 싫든 좋든 노인이다. 나는 잊혀진 노인이다. 나는 오십이 다 되어 무작정 미국 이민을 왔으니 그때까지 나와 인연을 맺었던 형제, 친구, 동창, 선후배, 고객들 등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가난한 이민자에게는 살아온 과거들이 부질없고 사는 방식이 다르고 생각도 다를 것은 당연하니 일체 소식을 끊고 살았다. 이제 나의 늙은 육신을 끌어안고 남은 나의 여생을 살아가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의 하루 일과를 점검해 보았다. 먼저 지금은 평일 낮 시간 동안 <비즈니스 컨설팅> 이라는 부동산 일을 하고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일한다. 횟수로 14년 동안 조그만 사무실 한 칸에서 변화도 없이 그 책상에 앉아 일한다. 언제까지 할지도 모르지만, 75세까지, 혹은 80세까지? 앞으로 5년 더 혹은 10년 더? 모아둔 노후 재산이 많지 않으니 일은 나의 유일한 밥벌이 이기도 하지만, 나의 의지만으로도 할 수 없는 직업이다. 고객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 허망할 뿐 접어야 한다. 다행히도 내 컴퓨터에 3천5백 세대 한인 고객 정보가 있고, 나에게 매물을 맡기시는 셀러와 매물을 찾으시는 바이어가 있으시니, 고객과의 약속이 있든 없든 매일 사무실에 출근을 하여 최선을 다해 일을 한다.

퇴근 이후 시간은 거의 동일하다. 5시 퇴근하면 아내와 강아지와 함께 30분 이상 산책을 한다. 돌아와서 저녁 해먹고 (요즘은 아내가 은퇴를 하여 거의 아내가 요리함), 설거지 마치고 씻으면 저녁 8시다. 그때부터 TV앞에 앉으면 밤 11시까지 3시간 가량 시청한다. 정리하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11시 30분 전후다. TV시청 시간이 너무 길다는 걸 알면서도 아내와 내가 보고 싶은 프로나 영화가 너무 많고 취향이 다르다. 그렇다고 각자 방에서 각자 TV를 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내는 주로 시사 프로, 교양 인문학, 드라마 프로이면, 나는 주로 음악, 예능 프로 위주다.

우리 노인네가 보는 프로를 한번 적어보았다. <시사프로> – 그것이 알고 싶다. 스트레이트, PD 수첩, 시사기획 창, 시사 직격,  <교양 프로> – 위대한 수업, 차이나는 클라스, 벌거벗은 세계사, 걸어서 세계 속으로, 세계 테마 기행, 세계는 지금, <음악 프로> – 복면가왕, 불후의 명곡, 싱어게인, 팬덤싱어, <예능프로> – 놀면 뭐하니, 톡파원 25시, 강철부대, 등이다. 나머지 대부분은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거나 인터넷에서 나의 <추억의 명화 100편> 중에서 본다. 볼게 너무 많다. 하루 평균 3시간이 TV 보는 시간이다. 그래도 재미있는 프로그램과 영화가 흘러 넘치니 라디오 세대인 선배 노인들에 비하면 이 또한 감사할 노릇이다.

토요일 주말 낮 시간은 잔디 깎고 텃밭 가꾸고 아내와 함께 시장 3군데 들러 장보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주말 특별 요리 해 먹으면 하루 해가 다 간다. 일요일은 딸들과 손녀들과 함께 이벤트 장소에서 만나 구경하고 맛있는 지역 음식 사먹고 헤어져 돌아오면 오후부터는 신문 칼럼을 써야 한다. 15년째 매주 쓰는 칼럼이지만, 매번 새롭고 낯설다. 오늘은 무얼 써야 하나? 일주일 내내 미루어 두었던 숙제를 하는 기분이다.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 독자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테니스 운동이 시작되었다. 코비드로 거의 3년만에 맴버들 얼굴들을 보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2시간여 운동하고 나니 몸도 마음도 날아갈 것 같았다. 아직은 늙은 나의 육신이 쓸 만 하게 느껴져 나 자신에게 고마웠다. 어쩌면 배드민턴, 탁구도 시작할지 모른다. 골프는 주중에 쳐야 하는데, 목이 빠져라 매매가 성사되기를 기다리는 고객들을 생각하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나와의 약속 때문에 은퇴하는 그날까지 골프는 못 칠 것 같다. 그동안 코비드 핑계로 교회도 나가지 않았는데 조만간 교회도 다시 나가야 할 것 같으니 일요일 오전 시간도 비워야 할 것 같다.

아내는 평일에는 화단 가꾸기와 철학 공부에 열심이다. 요즈음은 도올 선생의 동학 사상을 다룬 <동경대전> 상하, <노자가 옳았다>, <맹자>, <논어>, <코스모스> 등등, 책 한권 두께가 5~6백 페이지에 달하는 장서를 무슨 고시 공부하듯이 밑줄 긋고 기록하고, 그동안 적어놓은 대학 노트가 수십 권이다. 우리 집안에 인재 나셨어요. 솔직히 너무 부럽다. 나도 은퇴하면 낮 시간 동안은 독서 삼매경에 빠져볼 생각이다. 서재에서, 도서관에서, 야외 정원에서, 야외 수영장에서, 바닷가 모래 사장에서 시도 때도 없이 책을 읽고 싶다. 그리고 꽃이며 텃밭 채소 가꾸고, 강아지, 고양이와도 함께 잘 지내고 싶다. 그리고 유화 그림도 배우고 싶다. 운동도 꾸준히 하고, 봉사 활동도 하고, 산에도 가고 들에도 가고 바다도 가고, 여행도 가고..  그렇게 아내와 함께 <잊혀진 사람>처럼 조용히 살다 가고 싶다. 잊혀진 <노인의 꿈>이기도 하다.





젊은 날의 초상 (04-29-2022)

고단한 하루 끝에 떨구는 눈물 / 난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 아플 만큼 아팠다 생각했는데 / 아직도 한참 남은 건가 봐 / 이 넓은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 아무도 내 맘을 보려 하지 않고 아무도 //

눈을 감아 보면 내게 보이는 내 모습 / 지치지 말고 잠시 멈추라고 / 갤 것 같지 않던 짙은 나의 어둠은 / 나를 버리면 모두 갤 거라고 // 웃는 사람들 틈에 이방방인처럼 / 혼자만 모든 걸 잃은 표정 / 정신없이 한참을 뛰었던 걸까 / 이제는 너무 멀어진 꿈들 // 이 오랜 슬픔이 그치기는 할까 / 언젠가 한번쯤 따스한 햇살이 내릴까 //

나는 내가 되고 별은 영원히 빛나고 / 잠들지 않는 꿈을 꾸고 있어 / 바보 같은 나는 내가 될 수 없다는 걸 / 눈을 뜨고야 그걸 알게 됐죠 // 나는 내가 되고 별은 영원히 빛나고 // 잠들지 않는 꿈을 꾸고 있어 / 바보 같은 나는 내가 될 수 없다는 걸 / 눈을 뜨고야 그걸 알게 됐죠 // 어떤 날 어떤 시간 어떤 곳에서 / 나의 작은 세상은 웃어줄까 //”

손디아(Sondia, 예명 아이유)가 부른 <어른>이라는 노래 가사다.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 OST로 유명하기도 하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또 요즘 방영되고 있는 <나의 해방일지>를 보면서도 마찬가지 느낌이다. 나는 요즘 운전 중에 <싱어게인 2>에 나온 <김소연>이라는 가수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

이 모두의 공통점은 현대를 사는 젊은이들에 대한 <먹먹함>이다.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하며, 무슨 글로 격려가 될까? 그냥 그들의 옆에서 함께 있어줄 뿐이다. 어느 시대를 살던, 젊음의 시대는 고뇌의 시대다. 성장에서 성숙으로, 불안정에서 안정으로, 미완성에서 완숙으로, 혼자에서 가족으로, 청년에서 어른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산다. 나만의 인생관, 철학관, 종교관들이 정립되어 가고 완성되어 간다.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고 모두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같이 나이만 먹었지, 타성에 젖어 고착화 되어버린 관습과 관념에 쪄 들어 생각없이 사는 어른(?)들이 태반이니 무어라 위로하기도 주제 넘는다. 그래서 위의 노래 가사로 대신한다.

참 사는게 아프다. 마음 먹은 대로 생각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더구나 지금 현대를 사는 젊은이들과 우리 노인들이 살았던 젊은 시대와는 너무 다른 것 같다. 그때 보다 살기 더 힘든 것 같다. 그때는 지금처럼 이렇게까지 비교 하지도 비교 당하지도 않고 살았던 것 같다. 잘 살고 못 살고, 잘 나고 못 나고, 성공하고 못 하고의 차이가 이렇게 크지도 심각 하지도 않았다. 부모가 가난해도, 학력이나 출신 성분이 약해도 이렇게 차별 받고 살지는 않았다. 열심이만 살면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세상이었고 드림(꿈)이 현실이 될 수 있는 세상이었다.

그래서 입에 달고 살던 말들이 “안되면 되게 하라. 불가능은 없다. 시작이 반이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야망을 가져라. 정신일도(精神一到) 하사불성(何事不成)” 등등 밑도 끝도 없는 수많은 말들로 독려하고 앞만 보고 달려온 세대들이다. 그래도 찢어지게 가난했던 세월에 비해 자위하던 세대들이다. 그러니 지금 젊은 세대들과 무슨 대화가 되겠으며 공감이 되겠는가? 없는 것이 없이 모든걸 누리며 사는 복 받은 세대라고 일축하니 <우리 때는 말이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비교할 수 밖에 없고 비교 당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내 힘으로는 내 노력만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불가능한 시대에 우리 젊은이들이 살고 있다면, 꿈조차 사치라면, 하루하루 사는 것 조차 힘들고 벅차다면 그들에게 무슨 위로로 힘이 되어야 하나?

우리 이민 가정의 자녀들은 예외일까? 영어도 못하는 엄마 아빠 손에 이끌려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미국 땅에 와서, 먹고 살기 위해 새벽에 가게 일하러 나갔다가 파김치가 되어 저녁에 돌아온 엄마 아빠에게 아이는 무슨 불만이나 고민을 이야기 할 수 있었을까? 홀로 방치된 채 혼자 학교 갔다가 혼자 밥 먹고 혼자 숙제 하고 자면 잘 크는 줄 알았을 것이다. 학교에서 무슨 인종차별을 당하고 무슨 따돌림을 당하고 무슨 꿈을 갖고 있으며 무얼 하고 싶은지 말 할 수나 있었을까? 이 아이들 마음 속 깊게 새겨진 상처는 누가 치료해 주었는가? 스스로 눈물로 상처 난 자국들을 핥고 곪아 터져 스스로 아문 상처를 우리 부모들은 알기나 할까? 어떤 넋두리로 이민의 아이들에게 위로가 될까? 아이는 그렇게 혼자 커버렸다. 그래서 너무 미안하고 너무 부끄럽다.

늘상 하는 주술이다. 이제는 너희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라. 남들과 비교하지마라. <비교>는 <much more than>의 끝없는 욕망의 화신이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라. 그리고 하루하루 살아 있음에 감사해라. 혼자서 걸어가기에는 살아갈 날이 멀고도 험하다. 혼자 살지 마라. 나보다 조건이 나은 배후자를 찾으려 하지 말고 나를 사랑해 주는 선한 배후자를 만나 함께 걸어가라. 살다 보면 길가의 이름 없는 꽃들처럼 작은 행복들에 감사해라. 잘 살아야 한다. 살다 보면 다 살아진다. 아프지 말고..  





상실의 시대 (04-22-2022)

산다는 것은 상실의 연속 과정 인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많은 것들, 꿈, 기회, 사랑, 물질, 돈, 관계, 지위, 명예 등등 셀 수도 없는, 나의 것이라 믿었던, 그래서 잃은 후에 깊은 상처가 된, 잊혀지지도 잊지도 못할 많은 것들을 우리는 잃어버리며 산다. 그래서 다시 기도가 되고 소망이 되고 바램이 되어 다시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3년째를 이어가는 <코로나 팬데믹 시대> 기간 동안 전세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는가? 가게를 비즈니스를 잃고, 직장을 잃고, 가족을 잃고 생활의 터전을 잃어버렸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코로나와의 기나긴 전쟁에서 우리가 다시 소망하고 이루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더군다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죽고 다치고 모든 삶이 부서져버리는 저 민중들의 상실은 무엇으로 보상받고 위로 받는단 말인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남녀노소 상관없이 상실의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첨단 현대 문명 시대라고 하면서, 전세계 누구 하나 이 전쟁을 막지 못한단 말인가?

이로 인해 전세계 소비자 물가들은 치솟고 먹고 사는 것조차 어려워 전세계 가난한 민중들은 거리로 뛰쳐나온다. 동남아시아의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과 페루,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 대부분과 아프리카 국가, 스페인 등 유럽국가, 전세계 어느 한곳이라도 평안한 곳이 없다.

가난한 민중의 염려는 틀린 적이 없다 <혹시나>가 <역시나>다. <혹시나>의 작은 촛불 같은 기대와 희망은 <역시나>로 무너져 내리고 절망하고 좌절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는 점점 멀어져 이제는 완전 다른 세상에서 산다. <부패 공화국> 대한민국은 무지하고 무례하고 야비한 윤석열이 대통령 취임도 하기 전에 이미 <혹시나>가 <역시나>로 무너져 내렸다. 시작도 하기 전에 살 집과 근무처를 기존의 청와대를 거부하고 수 천억원의 돈을 들여 새로 마련한다고 야단법석이다. 내각 인사도 기존의 소수 기득권(서울대, 사법고시 행정고시 출신, 부의 상류층)들로 구성되었다.

윤석열 일당은 공정과 정의를 앞세우고는 불공정과 불의를 일삼는 자들이다. 검찰 독재와 폭정으로 민중들을 기만하고 억압할 것이다. 그들은 이때까지도 잘 살았고, 앞으로도 잘 살 것이다. 그들은 가난한 민중을 대변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똑똑하고 잘 낫기 때문에 능력에 따라 잘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능력주의자>들이다. 한국의 내 주변도 대부분 이 부류에 속한다. 한마디로 성공한 자들이다. 부자들이다. <혹시나>로 윤석열을 뽑은 어리석은 민중들로 인해 <역시나> <상실의 고통>을 5년 내내 견디고 인내할 수 있을까? 무엇이 중한디?

허버트 앤더슨과 케네스 미첼 교수는 <상실과 슬픔의 치유>에서 상실을 여섯 가지로 소개한다. 첫째 <물질적인 상실>, 즉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상실이다. 돈, 재산, 부동산, 회사, 비즈니스, 주식, 애장품 등 많고도 많다. 둘째 <관계의 상실>이다. 누구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죽음, 병, 은퇴, 실직, 이민, 이혼, 단교, 거부, 실연, 버림받음 등이다. 셋째, <내적 심리적 상실>이다. 즉 <꿈과 기대의 상실>이다. 넷째 <기능적 상실>, 즉 노화, 질병, 사고 등으로 육체적 정신적 기능 상실이다. 다섯째, <역할 상실>이다. 퇴직, 실직 등 사회적 역할이 상실되면 우울, 수치심, 죄책감, 두려움, 무력감 등에 빠질 수 있다. 여섯째, <체제의 상실>이다. 가족이나 공동체에서 자신 혹은 정신적 멘토가 버림 받거나 떠날 때 생기는 공백과 허무감이다.

잃어버리는 것과 잊어버리는 것은 다르다. 잃어버리면 잊혀지지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 남자 주인공처럼 떠나간, 더구나 죽은 사랑했던 여인은 잊을 수가 없다. 내 칼럼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한 <생의 수레바퀴> 저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유고작 <상실 수업>에서 상실의 치유 다섯 단계를 다시 소개한다. 그녀는 중풍으로 9년간 마비된 몸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유작이다.

누구나 상실을 당하면 첫 단계가 <부정(Denial)>한다. 받아드릴 수 가 없는 것이다. 자신이 피할 수 없이 걸어야 하는 길을 받아드리지 못하는 쇼크 상태이다.  설마? 왜 나에게만? 왜 지금? 내가 무엇을 잘못 했길래? 그럴리가 없어. 두번째 단계가 <분노(Anger)>한다. 현 체제를, 사회를, 주변을, 공동체를, 자기 자신을, 심지어 하나님을 분노한다. 세번째가 <타협(Bargaining)>단계다. 상실을 마주하며 자신의 문제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죽게만 하지 말아달라고, 살게만 하여 달라고, 모두 잃어버리지는 않게 해 달라고, 내가 무엇을 어떻게라도 할 테니까 이 상실의 고통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심지어 고통없이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애원한다. 네번째 단계가 <절망(Depression)>이다. 자포자기 상태다. 다섯번째 <수용(Acceptance)> 단계이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이다.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며, 남은 조각들도 소중히 간직하게 된다. 가장 낮은 자세, 본연의 겸허한 내 모습이다. <주여, 나를 버리시나이까>에서 <주여, 뜻대로 하소서>로 변하는 단계다.

무슨 말로 위로가 될까? 그래도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위로자들이 오늘도 상실한 여러분들 옆에서 기도하며 봉사하고 계신다. 그분들께 축복하시고 늘 함께 하소서. 누구나 잃어버리고 잃어가고 잃어버리려 한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상실의 시대>가 <공감의 시대>로 <위로의 시대>로, 그래서 <치유의 시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세상 끝나는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아버지,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시 일어설 힘과 용기를 주소서.





내 마음의 천국 (04-15-2022)

이번 주말에 손녀들과 북부 뉴저지와 남부 뉴저지 각자 중간 지점인 와이너리 농장에서 만나 Egg Hunt 등을 하며 즐겁게 보내다 왔다. 해피 이스터(Happy Easter)라고 딸들이 유명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한턱 쏜다 하길래 예수님 부활을 핑계로 잘 대접 받았다. 나는 누가 맛있는 것 사준다면 유괴당하기 십상인 인간이다.

이번 주가 기독교에서는 가장 성스러운 기간일 것이다. 예수님께서 성금요일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후 3일 후 안식일 다음날인 일요일 부활하신 것이다. <예수의 부활(Resurrection of Jesus)>은 기독교 종교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활>은 다른 종교에는 없는 전무후무한 핵심 교리인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성육신 하여 처녀(성모 마리아)의 몸을 빌어 이 세상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 <서로 사랑하라>, <원수 마져도 사랑하라>라는 가르침과 십자가의 보혈로 인간의 죄값을 대속하시고 죽으셨다. 여기까지는 다른 종교와 비교해 덜 충격적이다. 그런데 인간의 몸으로 죽었는데 3일 후에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 물적 증거를 보이시고 천국으로 승천하셨다? 이것은 현대 의학이나 현대 과학으로도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믿음이 극히 약한 자인 나는 지옥에 떨어질 이런 망상을 해 본다. 여러분은 물론 이런 악마(?)의 망상에 현혹되시지 않으리라 믿는다. 모든 과학이나 종교나 철학의 가장 꼭대기는 <가설(if)>이 존재한다. 우주 삼라만상을 과학의 논리가 아닌, 절대자인 누군가가 창조하였다면, 그 창조주를 하나님이라 부르자. 하나님이 우주의 수많은 별 중에서 각기 다른 생명체를 지구별에 보냈다고 가정하자. 특히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컫는다. 즉 지구별이 멸망하는 그 날까지 지구별에 살다가 자기 별로 돌아 간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다. 이 진리를 가르쳐준 사람이 예수가 아닐까? 예수님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모두는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지구별에 모든 인간들을 내려 보내시면서 주신 계명이 있는데, 그것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서로 사랑하라>가 아닐까? 그런데 서로 사랑 하기는커녕, 죄라는 죄는 두루 섭렵하고 온갖 상처를 준 인간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을 지구별로 특파하신 것은 아닐까? 그렇게 예수께서 강림하사 민중들에게 <사랑>에 대해 설파를 하셔도 우매한 백성이 그 뜻을 깨닫지 못하니, 심지어 제자라는 놈들도 모두 그 모양이니, 십자가의 보혈로 모든 죄값을 사하려 하심이 아닐까? 그래도 계속 죄를 지으면 <최후의 심판>날, 모두 작살을 내겠다고 엄포하신 것은 아닐까?

그런데도 누구나 지구별에서 죽으면 <각자의 별나라>로 귀향한다는 사실, 즉 육신은 지구별에서 죽어도 영혼은 <부활>하여 자기 별나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예수께서 직접 입증하신 것은 아닐까? 각자의 별나라가 <각자의 천국>이라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내가 사랑했던 내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지금도 보고 싶어 눈물 흘리는 우리 엄마 돌아가신 것도, 이 지구별에서는 육신만 죽었을 뿐, 영혼은 부활하시어 아버지 별, 엄마 별인 천국에서 살아 계신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이미 자기 별나라로 돌아가신 나의 사랑하는 부모님, 장인, 장모님, 조상님 제사를 지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제사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영적 교감 시간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天國), 하늘나라>, 불교에서 말하는 <극낙(極樂)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로, 괴로움이 전혀 없으며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 인간 세계에서 서쪽으로 10만억 불토를 지난 곳>은 각자가 살다가 지구별에 온 본향(本鄕)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지구상에 사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스런(?) 아들 딸들이고, 각자에게 주어진 선한 가르침을 전파하러 파송 되었는데 <목적을 이루는 삶>이긴커녕, 지구 모든 생태계 중 가장 말종 짓거리만 하다 오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말씀을 잊었는가? <최후의 심판>, 단테의 <신곡>, <천국과 지옥> 등 수많은 작품에서 보여 주었는데, 이놈의 현대인들은, 특히 기독교인라는 일부 간 큰 자들이 창조주를 비웃으며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이 일을 어찌할꼬?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부활(resurrection)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설령 죽는다 해도 살 것이요,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은 것이다”

나의 결론은 천국은 <내 마음의 천국>이다. 내가 죽어 돌아갈 나의 본향, 나의 별나라는 나의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마음은 영혼이다. 나의 부활은 나의 믿음이며, 내가 살아가야 하는 영혼의 지침서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몇 광년이나 떨어진 머나먼 하늘나라에 계신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계신 것이다. 만약 천국이 우주 어느 한곳에 지정되어 있다면, 부활해서 그곳에 간다면 지구별에서 만난 온갖 웬수(?)들을 천국에서 다시 만나야 하는 불상사를 겪게 된다. 그러니 나의 천국은 내 마음이니 내가 만드는 것이다. 죽어서 천국 갈지 지옥 갈지도 결국 내 마음 속에 계시는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부활도 2022년 전의 인간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에게 영생토록 각자의 마음 속에 부활하여 계시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살아서 예수를 믿으며, 죽는 날까지 <내 마음의 천국>을 만들어 부활해야 한다. 여러분은 나의 부활에 대한 망상을 용서하소서.





기대와 편견 (04-08-2022)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김상헌 1570~1652년, 조선 인조 예조판서, 병자호란 때 싸우길 주장하다 척화신(斥和臣)으로 몰려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가며 지은 시조,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져 하랴마난,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중에서)

시절, 시국, 경제, 나라가 하 수상하다. 불안하다.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한다. 서민에게 민중에게 언제는 편안하고 안전한 시절이 있었던가? 식솔들을 책임지는 가장이면 그 책임감은 더 막중하다. 가게를 팔아야 하나? 가게를 사야 하나?

무슨 일을 결정하던 간에 결정하는 사람에게는 <기대심리>와 <불안심리>가 동시에 작용한다. <희망>이라고도 하고 <소망>이라고도 한다. 잘 되어야 할텐데.. 잘 되었으면 좋겠다. 안되면 어떡하나? 또 실패하면 어떡하나? 등등.. 며칠 날밤을 세워도 뾰족한 답이 없다. 그래서 결심한다. 하자. 잘 될꺼야. 잘 할 수 있어. 시작이 반이다. 중도에 포기하면 아니 한만 못하다. 그리고 기도한다.

<기대와 편견>에는 다섯 가지 심리 효과가 작용한다.

첫째,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 혹은 로젠탈 효과>; 간절히 원하고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으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긍정의 힘>을 의미한다. 또한 타인으로부터 긍정적 기대나 칭찬을 받게 될 때 능률이 오르거나 높은 성과를 이루는 경우를 말하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프로스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직접 조각한 여인상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진정한 사랑에 감동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그 여인상 조각에게 생명을 주어 두 사람은 사랑하게 된다는 신화에서 유래한다. <꿈은 이루어진다>라고나 할까? 자신에게 긍정의 힘과 에너지, 나는 잘 될꺼라는 자기 최면을 반복하여 거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둘째,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플라시보는 <가짜약>이라는 뜻이다. 실제로는 어떤 효과도 기대할 수 없는 가짜약이지만, 그 약을 먹으면 증세가 호전된다고 느끼거나 처방한 의사를 믿으면 실제로 증세가 호전된다는 심리 용어다. <엄마 손은 약손>과 같다. 부적을 소지하거나 누구처럼 손바닥에 왕(王)자를 써 다니는 꼴이다. 면죄부나 묵주나 십자가를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이비 목사들이나 무당들이 행하는 이적 주술 행위도 마찬가지다. 믿는대로 될지어다. 그래야 신을 팔아서 그들도 먹고 살지.

셋째, <스티그마 효과(Stigma Effect) =낙인효과>; 스티그마(Stigma)는 불에 달군 인두를 가축의 몸에 찍음으로써 소유 여부를 구분하는 <낙인>에서 유래된 심리 용어다. 조직이나 사회에서 부정적 이미지로 낙인 찍히면 본인의 정체성을 혼동하여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정 조직원을 범죄자, 배신자, 무능력자, 부정직한 자 등으로 낙인 찍을 경우 실제로 그러한 행위를 할 확률도 높거니와 조직을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엘리트 조직 문화일수록 <끼리끼리>의 배타적 심리는 더 강하다. 교회라는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살아남으려면 낙인이 찍히면 안된다. 나대면 왕따 따돌림 이쯔메가 된다. 다른 조직으로 옮겨도 낙인은 따라온다. 그러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비즈니스를 하는게 최고고, 나의 정체성을 확고히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후광효과(Halo Effect)>; 후광(後光, Halo)은 사람이나 사물을 더욱 빛나게 하는 배경이다. 예수나 부처나 성인의 뒤에 그려진 밝은 빛만이 아니라, 학벌, 외모, 집안 배경, 경력, 지위, 업무 능력 등도 모두 이에 해당한다. 후광효과는 무시할 수 없는 긍정적 판단 요소도 되지만, 편견의 결정적 요인도 된다. 서울대 출신, 사법고시 출신, 검찰총장 출신이면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단정할 수 있나? 사람은 살아온 흔적을 지울 수 없다. 자신과 주변이 시정잡배보다 못한 윤석열과 부패 기득권을 일절 믿지도 기대하지도 않으니 편견을 가질 것도 없다. 서로 믿고 가게를 팔고 산다는 말 자체를 나 같은 컨설턴트(Consultant)에게는 용납되지 않는다. 모든 결정에는 정량화된 수치와 자료를 분석하고 확인하고 평가해야 한다. 나는 목사도 믿지 못하는데 장로라고 믿을까?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편견>이 존재하는가? 장로, 권사, 안수 집사 등의 직분을 주고 받으며 계급화, 서열화 한다. 한국 개신교의 한계다. 모든 판단은 내 스스로 해야 한다.

다섯째, <악마 뿔효과(Horns Effect)>; 후광효과의 반대다. 악마의 뿔을 가진 존재는 나쁜 존재라는 선입견 혹은 고정 관념이다. 사람은 변한다. 죄 없는 자가 누구이고 상처 없는 자가 누구인가? 지금 가난한 게, 이혼한 게, 고졸 출신인 게, 자녀가 루저인 게, 외모가 못생긴 게, 종교가 다른 게 그 사람의 죄인가? 가게를 사고 파는데 왜 결격사유가 되어야 하는가?

결론,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 언더독은 개싸움에서 유래된다. 두마리 개가 뒤엉켜 싸울 때 위에 있는 개(Top Dog)를 강자, 밑에 있는 개(Under Dog)를 약자라고 한다. 분명히 언더독이 싸움에서 질 것으로 예상 되지만, 약자인 언더독을 응원하는 것이다. 신화나 설화에도 언더독 효과를 알 수 있다. 고아로 태어난 주인공이 온갖 역경을 견디고 이겨내어 성공한다는 스토리다. 첫 시작은 미약하나, 열정과 꿈을 가지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또 도전하여 결국 성공하는 스토리다. 저는 언더독 여러분을 적극 돕고 응원합니다. 당신의 꿈과 열정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꿈을 시작 하십시오!!





인생살이 (04-01-2022)

누구나 잘 살기를 원한다. 행복하길 원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피조물에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각자에게 잘 살 수 있는 시간을 주신다. 어느 시대, 어느 국가, 어느 환경에서 태어나고 살았던 간에,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았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살이>다. 살이는 삶이다. 삶은 흔적이다. 각자 인생의 흔적을 평가하는 것은 극히 주관적이며, 누구도 갑론을박 할 사항이 아니다. 행복과 불행, 만족과 불만족, 자족과 후회는 본인만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지구상에 어느 인간의 삶도 만만한 적이 있었을까?

아내의 철학 스승인 도올 김용옥 선생이 강력하게 권하는 영화 <인생(人生, Lifetimes)>을 주말에 아내와 함께 감상하게 되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세계 명화 수천 편을 인터넷으로 그것도 한글 자막으로 시도 때도 없이 볼 수 있는 세상이라 나 같은 영화광 노인(?)에게는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위화의 소설 <인생>을 장예모 감독, 갈우(칸 영화 남우 주연상), 공리 주연으로 1994년작 중국 영화다. 원제는 <살아간다는 것, Lifetimes>다. 영화는 1940년대 국공내전 시대, 1950년대 반혁명진압운동(1950~1951년), 대약진운동(1959~1961년), 1960년대 문화대혁명 시대에 남자 주인공 가족들이 겪는 인생살이 이야기다.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남자(갈우 역)는 아름다운 아내(공리 역)와 두 자녀를 둔 남 부럽지 않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도박장에서 세월을 보내고 결국 모든 재산을 도박으로 잃는다. 도박 상대는 <그림자극>을 공연하던 자 이었는데 타짜로 아버지의 고가 대저택을 노름빚 댓가로 빼앗는다. 아내는 자식들과 떠나고, 결국 충격으로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다. 호구지책으로 <그림자극>으로 생활을 연명한다. <그림자극>은 항상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또 다른 이상적인 인생이다.

국공내전 (장개석의 중국 국민당과 모택동의 중국 공산당 1차, 2차내전)이 시작되자, 국민혁명군(국민당)에 징집된다. 결국 국민당은 참패하고 인민해방군(공산당)에 붙잡히지만, 가지고 있던 그림자극 인형 때문에 해방군 병사들을 위해 <그림자극>을 하면서 인민해방군에 종군하게 된다. 전쟁이 끝나자 혁명에 참여한 제대군인 증명서를 받아 집으로 돌아간다.

10여년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자식 둘과 시어머니를 모시고 생계를 위해 <물배달>을 하는 아내를 만나게 된다. 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리다 돌아가시고, 딸은 열병으로 농아가 되어 있었다. 1950년부터 시작된 <반혁명진압운동>으로 국민당 잔당, 악덕 지주, 자본가 등 70만명이 처형된다. 주인공 남자도 노름빚으로 대저택을 빼앗기지 않았다면 악덕 지주 자본가로 처형 되었을 것이다. 오히려 인민해방군 제대 증명서 덕분에 혁명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인생의 아이러니다.

1959년부터 1961년 사이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이 시작된다. 이민 모두 농업집단화로 공동 경작을 하고 <공동 식사>를 하게 되어 누구나 배불리 먹지만, 곧 이은 대기근으로 인민들은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대약진운동이 지속되면서 어른부터 어린아이까지 밤낮으로 혹사당한다. 막내 아들이 너무 피곤해 학교 가기 싫다고 하는데 주인공 남자는 아들을 업고 학교까지 데려다 준다. 하지만 학교 담벼락에서 졸다가 당서기가 몰든 트럭이 담벼락을 들이받아 아들이 깔려 죽는다. 당서기는 자기와 <그림자극>을 같이 하던 후배였다. 결국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아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중국의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은 어린 학생들을 홍위병으로 만들어 지식인층, 당 간부, 지주계급, 착취계급들의 낡은 사상, 낡은 문화, 풍속, 습관을 대규모 숙청 폐쇄시킨 대인민혁명 운동이었다. 병원 의사들도 모두 청소 등 잡부가 되고, 홍위병 학생들이 의사 간호사 역할을 했다. 그때 농아인 자신의 딸이 인성과 당성 좋은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임신하게 되어, 출산 하는데 난산을 하게 된다. 숙청된 늙은 의사를 겨우 구하지만 의사가 일주일을 굶어 아사 직전이라, 주인공은 빵을 급히 사다가 먹이는데 급체가 되어 죽게 되고, 결국 딸은 손자만 출산한 채 죽게 된다. 영화는 손자와 행복하게 사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한 남자의 인생살이다.

영화 <인생>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물론 급변하는 중국 대 혼란기가 배경이었지만, 어느 누구의 인생도 순탄 하기만 한 삶은 없다. 살아가는 순간순간 나의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나의 삶만 망가지고 엉망이 되는게 아니라, 나로 인해 맺어진 가족들 (부모, 아내, 자식들, 형제들) 삶에도 결정적인 피해를 입히게 된다면 나의 인생은 힘들고 죄스러울 것이다. 나도 70년이 다 되어가는 삶 중에 나로 인해, 나의 순간적 결정 착오로 사업이 실패하고 (물론 IMF라는 예측불가능하고 천재지변 이었다고 하더라도) 나의 모든 가족을 지금까지도 힘들게 하고 있다는 나의 죄책감은 내가 죽는 날까지 짊어지고 가야할 나의 업보다.

이제 나의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 사는 순간순간이 하루하루가 엄중하다. 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선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심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검소하게 근검절약 하는 마음으로, 미안한 마음으로, 낮은 자세의 겸손한 마음으로, 나누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배우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나에게 나의 인생이라는 시간과 삶의 기회를 주신 나의 아버지께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울 것이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돌고 도는 세상 (03-25-2022)

세상은 돌고 돌아야 한다. 인생도 돌고 돌아야 한다. 돈도 돌고 돌아야 한다. 비지니스도 마켓도 돌고 돌아야 한다. 가게가 팔려야 사고, 사야 또 판다. 멈추면 고이고, 고이면 썩는다. 한쪽으로만 돌면 기울게 되고 불공정 하니 불안하다. 높다가 낮아지고, 낮다가 높아지고,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있는게 인생의 묘미다. 물레방아 같은 세상이다.

미국 경제가 어렵다. 40여년만의 최고 인플레이션 이란다. 모든 물가가 너무 올라 비싸다고 난리다. 기름값도 너무 올랐다. 게다가 종업원 인건비도 너무 올랐는데도 사람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다. 장사가 안되는 업종은 죽으라고 안된다. 문을 닫자 하니 비싸게 주고 산 권리금이 아깝고, 계속 문을 열자 하니 임대료 내기도 빠듯하다. 진퇴양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우리 지역의 맘엔팝 비즈니스 현황만 살펴보자. 시장의 공통 사항은 재택근무가 보편화 되고, 온라인 주문 배달 문화도 더욱 일반화 되고 있다. 다운타운과 대학가 사업, 임대료 사업은 당분간 계속 고전할 것이다. 사회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고, 금리 인상은 계속 될 것이며, 인플레이션은 더욱 가중될 것이고, 소비자 소비 문화는 억제될 것이다. 스테그플레이션 우려도 있다.    

<Food Business>: 2020년, 2021년 코로나 기간 동안 최고의 수혜를 입은 업종이다. 정부 지원금으로 흥청망청한 탓이 크다. 2022년은 작년처럼 그렇게 호황을 누리지는 못하겠지만 앱 배달이 또다른 매출 상승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Breakfast> 사업은 한국인의 특화 사업 중 하나다. 빨리빨리 문화, 난리 버거지 북세통 장사, 고강도 체력 집중을 요하는 이 사업은 한국인 만큼 할 민족이 없다. 또한 한국인은 욕심이 많다. 투자대비 고수익을 얻을 수 있고, 저녁이 있는 삶이 보장된다. 요즘은 형편이 살만 하니 주6일 영업으로 되돌아가는 추세다. 코로나 기간 동안에도 많은 계약이 되었지만, 올해도 매매는 호황을 누릴 것이다. 단 매물은 많고 매수자가 적으니 매출 대비 매매가격은 일정 하향 추세이다.

그 외 <Seafood>, <튀김>, <Cold Deli>, <Beer & Deli>, <Pizza & Deli> 사업도 충분히 투자 대비 수익을 올릴 수 있으나, 야간 장사를 해야 하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영업 시간이 긴 업종은 2교대로 야간은 매니저 운영 방식으로 혹은 능력별 수당 제도로 보완 가능하니 하기 나름이다. <Food Business>의 가장 큰 강점은 시설투자 비용이 작고, 악성 재고가 없으며, 투자 대비 수익이 높은 반면에, 부부가 하는게 가장 좋고 도와줄 자식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레스토랑> 비즈니스는 한국인의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다. 물론 <한식, 일식> 레스토랑은 특화되어 있지만, 이 또한 <앱 배달>사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Dry Cleaning Business>: 세탁소와 Drop Store는 한인 사회의 역사와 같다. 한인 비즈니스 시장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무작정 이민 와서 영어 서툴고 특별한 기술 없이 할 수 있는 사업이다. 빨래는 기계가 하고, 바느질은 2주일 정도 배우면 어지간한 것은 다 한다. 영어를 못해도 상냥하고 친절하면 된다. 또 한민족만큼 깔끔 떠는 민족도 없다. 주6일 영업하지, <7 to 7>으로 저녁이 있는 삶이지, 일요일은 쉬니 교회 신앙 생활 할 수 있다. <Breakfast>와 달리 2,3일의 시간적 여유가 있지, 대부분의 지역과 손님이 백인이니 총 맞아 죽을 염려 없지, 주변에 세탁소 하는 한인도 많으니 궁하면 도움도 받을 수 있지, 한인 비지니스로는 최고 였다. 종업원 구하기도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고, 결근해도 당장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Drop Store>는 한국 여자 혼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업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종의 보관소다. 손님이 직접 찾아와서 옷을 맡기면 세탁소에서 와서 가져가 빨래하고 포장까지 해서 가져오면 손님이 찾아가는 것이다.

다만 단점은 대부분 백인 동네 쇼핑몰에 위치하고, 그 면적도 2,000sf 내외이므로 임대료가 비싸고, 주변의 한인 경쟁이 너무 심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규모가 작은 세탁소나 Drop Store들이 많이 문을 닫아 자체 정리가 된 상태다. 다만 재택근무의 보편화, 파티 문화의 감소, 의류 패션의 편리성, 가정용 세탁기의 발달 등으로 과거처럼 최고의 인기는 물 건너 갔다. Food Business는 적성에 맞지 않고, 큰 자본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세탁 업종>을 권한다. 지금이 가장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권하면 뭘 하나? 지나 봐야 아! 할텐데..

<Stock Business>, <장치 Business>: 아마존 등에서 온라인 주문 배달되는 모든 비즈니스는 대형화 하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 가게를 살 수는 있지만, 팔기가 어렵다. Beauty Supply, Discount, Dollar, Laundry Mat, Beer Distributer 등등, 서비스로 차별화하지 않고 시설이나 규모로 차별하는 것은 돈 많은 자, 가진 자가 이긴다. 어설픈 싸움은 아니한 만 못하다. 흥청망청 잘 살던 미국이 아니다. 소비가 미덕이던 시절이 아니다. 맘엔팝은 서비스가 차별화된 사업만 생존한다.

<Nail>업종: 사람 싸움이다. 종업원 싸움이다. 못살던 시대의 한국 여성들이 아니다. 낮은 인건비의 동남아시아, 남미 계통의 여자들을 이길 수 없다. 그 나라들은 이민이 계속 증가하는 반면, 한국은 이민이 감소한다. 네일 사업은 종업원 전쟁이다. 종업원 전쟁이 가장 피곤한 전쟁이다. 무슨 장사를 하든, 우리 지역 한인 모두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전쟁 없는 세상 (03-18-2022)

푸틴의 러시아 군대가 인구 4천4백만명의 우크라이나 민주 국가를 2022년 2월24일 침공했으니 벌써 3주일이 되어간다. 수많은 군인과 시민들, 아이들이 사망하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이웃나라로 피난 가고, 수많은 건물들과 기간 산업들이 파괴된다. 언제 이 전쟁은 끝날 것인가?

이 세상의 그 어떠한 전쟁도 목적과 당위성을 정당화 할 수 없다. 이제는 전 세계인들이 하나가 되어 전쟁을 일으킨 그 어떠한 나라라도 맞서서 항쟁해야 한다.  전쟁은 민중의 행복과는 무관하다. 민중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행복하게 살아간다. 미국도 러시아도 그 어떤 강대국도 독립국가의 내정에 간섭하고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국가 내부의 분쟁은 자국민 스스로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막상 전쟁이 나니 미국도, NATO도, 유럽 연합(EU)도, 무력으로 우크라이나를 도와서 러시아와의 전쟁을 종전 시킬 수 없다. 이는 곧 3차세계대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경제제재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얼마나 많은 자국민들이 죽어야 하나?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어도 러시아가 침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국의 안보는 자국이 지켜야 한다. 영원한 혈맹도 우방도 없다. 북한도 핵무기를 포기하는 순간,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의 공격 대상이 될 뿐이다. 한국은 전시작전권도 미국에 있을 뿐, 아무런 권한이 없다. 남한도 북한이 존재해야 안전하다.

푸틴의 러시아 <전쟁 명분>은 이러하다. 1997년 구 소련이 붕괴된 후, NATO에 가입된 동유럽 국가는 14개 국가나 된다. 모두가 러시아를 둘러싼 동유럽국가다. 에스토니, 라트비아, 리투아니.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북마케도니아, 불가리아다. 이제 NATO 가입국은 30개국이 되었으며, 항상 <열린 문>정책을 펼친다. 그런데 러시아에게 흑해는 해상 무역과 해전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그래서 2014년 러시아는 동부지역의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DPR)과 루간스키 인민 공화국(LPR)을 독립국가로 강제 인정하고 크림 반도를 러시아로 강제 합병했다. 이제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만 남았다. 이들 국가마저 NATO에 가입하면 러시아는 유럽 모든 국경이 모두 NATO 가입국들과 대치하는 상태에 들어가므로 <푸틴의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우크라이나 역사>는 한반도 남북한 역사와 유사하다. 서유럽과 러시아 중간 지대에 위치한 지정학적 특수성과 러시아와의 태생적 연관성이다. – 1991년 소련 붕괴로 독립하기 이전까지 1100년 세월 동안 수난의 역사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에 전역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면적이 넓은 나라다. – 서기 882년 수도 키예프를 중심으로 루스인(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거주)들이 키예프 공국을 건립했다. – 1240년 몽골의 침략으로 주민들이 대거 동북부 지역으로 이주 한 곳이 지금의 모스크바다. 서로가 키예프 공국의 <정통 후계자>라고 주장한다. 같은 슬라브 민족인 셈이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곡창 지대다. 밀, 옥수수, 보리 등의 최적 조건인 흑토 지대여서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리운다. 또 철광석, 석탄, 니켈, 흑연 등, 핵심 원자재 매장량도 세계적 규모이므로 모두가 탐내는 지역이다. 또한 흑해를 중심으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만나는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 1700년대 발트해 주도권을 놓고 러시아와 스웨덴이 맞붙은 대북방 전쟁, – 18세기부터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120년 동안 영토가 둘로 쪼개져 80%가 러시아 제국에, 20%가 오스트리아 제국에 분할되어 두개의 문화권을 유지했다. 크림전쟁(1853~1856년)은 러시아 제국의 지중해 진출과 그걸 막기 위한 오스만 제국 (영국, 프랑스 연합군 지원)간의 전쟁이었다. – 1917년: 1차 세계대전 중 독립 선포, 러시아 진압에 무산. – 1922년; 소비에트 연방 편입, – 1932~1933년; 스탈린 탄압에 350만명 굶어 죽음, – 1941~1944년; 나치 독일 우크라이나 점령, – 1991년 8월; 구 소련 해체 독립 선언, – 1994년 12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체결 (강대국 안전 보장 조건으로 우크라이나 핵무기 5천여기 폐기), – 2013년; 친러 야누코비치 대통령 러시아 관계 강화 선언, – 2013년 11월; 유로마이단 시민혁명 발발, – 2014년 2월; 친서방 과도 정부 수립, – 2014년 3월; 러시아, 크림반도 합병, – 2014년 5월; 우크라이나 동부 2개주 분리 독립 선언, – 2014년 9월; 유럽안보협력기구 중재로 민스크 휴전협정 체결. 이후에도 반군 무장 투쟁과 정부군과의 교전은 계속된다.

이제 더 이상 지구상에 전쟁은 없어야 한다. 1968년 <68혁명>으로 전 유럽과 세계로 울려 퍼진 <반전 운동>은  <히피 문화>로도 이어졌다. 1971년 존 레논이 불러 우리 세대(나는 73학번)의 가슴에 새겨진 <Imagine> 노래 가사다. 목이 터져라 참 많이도 불렀다.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봐 / 한번 생각해보면 쉬울 거야 / 우리 발 아래 지옥은 없고 / 위에는 오직 하늘 뿐인 / 오늘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 모든 사람들을 상상해봐, 아하 //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봐 / 어려운 일이 아냐 / 살인도 희생도 없고 / 종교 조차 없는 그런 곳 / 평화 속에서 살아가는 / 모든 사람들을 상상해봐, 당신 // 날 몽상가라고 말할 수도 있어 / 하지만 난 혼자가 아니야 / 너도 언젠가 우리와 함께 하길 바래 / 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될 거야 // 소유물이 없는 삶을 상상해봐 / 잘 그려지지 않겠지 / 탐욕과 굶주림이 필요치 않고 / 오직 인류애만이 존재하는 삶 / 온 세상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 모든 사람들을 상상해봐, 당신 // (반복)





미국 이민 신세대 (03-11-2022)

우리 지역의 사업체 매매 현황을 보면 좋은 매물은 어느때 보다 많은데, 해당 조건에 맞는 Buyer를 구하기 어렵다. Buyer도 양극화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어진다. 자금력이 약하거나, 은행 융자를 받을 수 있는 크레딧이 되지 않거나, 기타 대출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 경우다.

우리지역 한인 사회도 고령화 되어간다. 이민 1세들은 육십, 칠십 대로 은퇴하여야 할 시기이니 사업체를 팔고자 한다. 이민 2세들은 부모가 하고 있는 맘엔팝 비즈니스를 물려 받으려 하지 않는다. <팔고 사고>의 선순환 구조가 깨어진다.      

제일 큰 문제가 한국인들이 미국 이민을 예전처럼 오지 않는다. 비영리 이민 연구 센터(CIS)에 따르면 2010년 이후 매년 한국 태생의 미국 이민 인구가 6%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80년 90년대의 미국 이민 열기는 사라졌고, 이민 대상 국가도 중국, 호주, 유럽, 동남아시아로 다변화 된 원인도 있다. 반면 동아시아인들의 미국 이민은 15%이상 증가 했으며, 감소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특히 트럼프 정권시절 반이민 정책으로 70%나 급감했다.

2022년 기준 미국이민 총 대기자는 414만명으로 1년만에 4% 늘어 적체가 악화되고 있다. 한국인은 가족이민 대기자가 5만명 이하 (10위권 밖)이고, 취업이민 대기자가 6,300명으로 3~4위(전체 취업이민 17만명)에 해당한다. 특히 석사학위 이상의 취업이민 2순위는 3천명으로 인도 중국에 이어 3위, 박사학위 취업이민 1순위는 909명으로 중국, 인도, 캐나다에 이어 4위를 차지한다. 취업이민 3순위 (흔히들 먹고 살기 위한 기능직) 이민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셈이다.

물론 한국이 이제는 세계 경제 10위권, 인구 5천만명 이상 국가 중 6위국 등등, 세계 위상이 잘사는 선진 국가로 인정받는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인 모두가 잘 살지는 않을 것이고, 많은 젊은 청춘들은 좌절하고 많은 걸 포기하며 사는, 양극화 시대에 살고 있는 현실이다. 죽는 날까지 죽도록 일을 해도 서울의 30평 아파트 한채 (20억원 이상, 2백만불) 구입할 수 없고, 학력은 일반 대졸 출신이고, 물려 받은 재산 없고, 가진 재산이 없으니 결혼할 수 없고, 전세를 얻으려 해도 수 억원(수십 만불)이 있어야 하고, 결혼해도 자녀 양육비가 너무 많이 들어 자녀 계획은 엄두도 내지못한다면, 그래서 혼자 늙어가야 한다면 미국 이민을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미국 이민의 종류는 시민권 가족 초청 비자, 학생비자, 소액투자 비자(E-2 Visa), 취업비자, 고액 투자 비자 등으로 나뉜다. 자세한 이민 절차는 이민 전문 변호사와 상담하기 바란다. 각자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대응 절차도 다르지만, 어떤 경우에도 불법 신분이 되면 안된다.

물론 독신으로 소액의 돈만으로 무작정 이민을 와서 좋은 스폰서를 만나 취업비자를 받고 종업원 생활이나 직장생활 하다가 시민권자와 결혼해서 자립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과정이 너무 험난하다. 혼자 보다는 부부가 이민 오는 것이 더 좋다. 외로운 이민 생활에 서로 의지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세 돈 2십만불 (2억원 가량) 가지고 있는 신혼 부부라면 우리 지역 기준으로 먼저 20만불(월 순수익 1만불) 가게나, 혹은 오너 융자 약간으로 30만불(월 순수익 1만5천불) 가게를 E-2 비자로 매입하면 된다. 그 다음은 스폰서를 찾아서 취업비자 3순위를 신청하여 영주권을 기다리면 된다. 미국은 부부가 사이가 좋고 열심히만 하면 아직은 승산이 크다. 비즈니스가 안정이 되면 그때 집을 사면 된다. 6만불 다운 하면 30만불 괜찮은 집을 살 수 있다. 영주권이 나오면 5십만불 이상의 가게를 살 수 있다. 물론 돈이 작아도 이민 방법은 있다.

미국에 이민 와서 적응 못하는 세대도 있다.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면 한국에서 살아야 한다. 미국은 <밤의 문화>가 없다. 물론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잘못하면 총 맞아 죽는다. 유흥과 환락 문화는 한국이 최고다. 또한 미국은 부부 사이가 좋지 않으면 사는게 지옥이다. 대부분이 맘엔팝 비즈니스 이므로 일거수 일투족이 24시간 서로의 사정거리 안에 있다. 비밀이 없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미국 이민 생활은 성직자와 동일한 생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 뜨면 일터로 나갔다가 해지면 집으로 돌아와 함께 저녁 해먹고 TV 보다가 잔다. 좋아하는 운동 있으면 일행들과 운동하고, 주일이면 교회 나가서 말씀 듣고 함께 봉사하고, 교인들 교제하며 수다 떨다 헤어진다. 일년에 한 두번 휴가 계획 잡아서 국내나 해외 여행 다녀오면 그걸로 족하다. 자녀들은 비싼 사립학교 보내지 않아도 좋은 학군의 공립 고등학교에 들어가 본인만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 서민층 자녀의 앞날을 위해서라면 미국 이민이 답이다.

미국이 좋은 점은 공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다. 비교 하지도 당하지도 않는다. 남의 눈치 볼 필요 없고 모든 게 안정되어 있다. 과시할 것도 없고 기 죽을 것도 없다. 부부가 사이만 좋으면 되고 열심히 살면 된다. 정 한국에 나가서 살고 싶으면 은퇴 후 한국에 나가서 살면 된다. 모든 복지 혜택은 다 볼 수 있다. 좁아터진 한국 땅에서 눈치 보며 빈곤한 자로 살지 말고 젊었을 때 미국 이민에 도전해 보기 바란다. 언제라도 제 도움이 필요하면 진심을 다해 도와 드리겠습니다. www.willbusinessbroker.com (267-902-6001).


새 봄날 새 식구 (03-04-2022)

언제나 새 봄을 맞이하는 나의 모습은 진중하지 못하고 허둥대며 당황스럽다. 일년 24절기 중에 첫번째인 입춘(立春)이 2월 4일이라, 입춘대길(立春大吉 –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며)하며, 건양다경(建陽多慶 – 경사스런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길 기원합니다) 하시길 축원합니다. 두번째 절기인 우수(雨水)가 2월 19일이라 대동강 눈이 녹아 비가 되고, 세번째 절기인 경칩(경칩)은 3월5일이라 개구리도 잠에서 깨어나니 삼라만상의 만물들이 기나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새롭게 시작하려 함이다. 우리 지역 한인 여러분들도 코비드 & 오미크론으로 움추렸던 사업들이 새로운 봄날을 맞아 더욱 번창하시길 소망합니다.

우리 집에도 새 봄날 <새 식구>가 들어왔다. <모모>라는 <골든 콜리>종의 강아지 한 마리와 열대어 4쌍 8마리와 달팽이 두 마리다. 아내가 작년 6월부로 은퇴를 하여 집에 혼자 있어서 적적할 수 있다며, 세명의 자식들이 나와 상의도 없이 새 식구들과 함께 어느 봄날에 들이닥친 것이다. 자식들이 결혼을 하고서부터 나의 의견은 별 중요하지 않고 모든게 아내 중심으로 결정된다.

사실 강아지를 키우자는 제안은 내가 먼저 했다. 은퇴한 아내를 언제나 가까이서 지키고 보호해줄 중견 강아지가 한 마리 있으면 좋겠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아내는 2016년에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낸 <코코>라는 포모라니언(Pomeranian) 종의 강아지에 대한 아픔이 트라우마로 자리잡고 있어서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10여년을 함께 살다가 말년에 병에 걸려 매일 가방에 강아지를 안고 출퇴근 하며 정성을 다 했는데 결국 떠나 보내야 했던 아픔이다. 아프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그래서 이번에 입양하는 강아지는 적어도 함께 10년에서 15년을 함께 살게 되니 우리 부부 나이가 80세 이상 함께 살게 되므로 아내를 보디가드 할 수 있는 흰색 진돗개나 풍산개를 한국에서 입양하여 키우자고 제안했다. 하기야 나는 강아지에 대한 기본 지식이 거의 없다. 나의 아버지는 반평생을 독일산 세퍼드 개만을 고집하며 키우셨다. 나는 중대장 시절 부대 사병이 진도 사람이라 진돗개를 선물하여 본의 아니게 키운 적이 있어서 진돗개에 대한 애증이 각별하다. 그렇다고 살아온 세월이 항상 바쁘니 애견인 자격은 아니다. 그래도 그렇지 아버지의 의견은 묵살한 채, <나쁜 개는 없다>며, 개에게 족보가 무슨 소용이냐며, 개는 키우기 나름이라며, 6개월 된 유기견을 엄마와 자식들이 작당하여 데리고 온 것이다.

입양되고 나서야 어떤 집안의 여식인지 조사해 보았다. 이왕이면 뼈대 있는 집안이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5남매중 셋째 딸인데, 견주(犬主)가 도저히 키울 형편이 못되어서 유기한 것이라 한다. 알고보니 이 종류의 개는 하도 유별나서 키우기 까다롭고, 함께 다섯 마리를 키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혈통은 <골든 콜리>인데 <보더콜리>와 <골든 리트리버> 혼혈인 셈이다. <보더콜리 (Boerder Collie)>는 보더(Border, 경계)와 양치기 강아지 라는 스코틀랜드 방언 콜리가 합성어인 셈이다.

성격은 <지능견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어 마약 감시견, 폭탄 감지견, 경찰견으로도 투입된다. 성격은 온순하고 비전투적이다. 하지만 활발하고 에너지가 넘쳐 일명 <두개의 심장>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운동량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실외 용이지, 실내 용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인지 입양 면접 볼 때 굉장히 까다롭게 질문을 한 기억이 있다. 사는 집이 아파트인지 정원이 있는지, 개를 키운 경험이 있는지, 견주 직업이 무엇인지, 아픈 환자는 없는지 등등.. 한마디로 우리 부부가 까탈스런 임자를 잘못 만난 것이다.

잠자는 시간, 저녁시간 이외에는 거의 정원에 나가 있는 셈이다. 최소 30분 산책을 하루 두번은 해야 한다. 기선을 제압하려고 함께 조깅을 하다가 그날 나는 죽는 줄 알았다. 20Kg인 조그만 강아지가 70Kg인 주인을 끌고 간다. 그렇다고 사납지는 않다. 호기심이 많고 가르쳐 주면 금방 습득한다. 학습 탐구 능력이 뛰어나다. 다리는 길고 몸매는 날씬하며, 노란 황금색과 흰색이 섞여 있고, 털은 짧으며, 두상은 사슴과 닮았다. 밥과 특식은 아내의 고유 권한이다. 누구도 마음대로 강아지에게 밥을 줄 수 없다. 내가 먹이를 주고 싶어도 아내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강아지나 나나 생사여탈권은 아내가 쥐고 있다. 밥을 안주면 굶는 거고, 밥을 주면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 단 말 못하는 열대어 밥은 나보고 주라 한다. 그나마 목숨이라도 붙어 있으려면 아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지. 열대어는 말못하고 자족해야만 하는 나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강아지나 나나 서로의 만남은 우연일 뿐, 원하는 만남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친구가 되고 동거인이 되며 식구가 되어 함께 잘 살아야 한다. 앞으로 10년에서 15년 뒤면, 내 나이 80에서 85세 사이에 자네가 먼저 갈지 내가 먼저 갈지 모르겠지만, 우리 서로 의지하면서 하늘 같은 마나님 잘 모시고 온갖 설움 다 견디면서 남은 세상 잘 살아 봅시다 그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네 맘이 족 할까. 세상만사 일장춘몽이니,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세상, 이렇게라도 자네를 만났으니 그것만으로 족 하고도 족 하도다. 막걸리 한잔 받아놓고 자네와 함께 우리 희망가(希望歌)나 한번 노래 하세나. 젊은 자네 덕분에 나도 회춘하면 이 노릇을 또한 어떡하지?





선택의 자유 (02-25-2022)

약 10여일 이후인 3월9일은 20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국민들이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물론 나는 투표권이 없지만 나의 조국이니 지극히 나의 사견임을 전제로 나의 생각을 피력하고자 한다.

만약 이재명과 윤석열 둘 중에 선택하라면 나는 이재명을 선택한다. 이재명은 한줌의 기득 세력도 없고 오직 국민뿐 이며, 윤석열은 기득권의 막강 지원이 있다. 한국의 기득권 사회는 무지한 윤석열을 꼭두각시로 내세웠다. 한국 기득권은 한국 정치 70년 중 50년 이상을 정치, 사법, 경제, 언론, 학계, 문화 전반에 걸쳐 부와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보수가 되면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쉽게 부와 권력을 차지할 뿐, 진보나 중도가 되면 조금 귀찮은 정도다. 그 거대한 기득권 세력이 윤석열을 밀고 있으니 민중의 강력한 저항이 없으면 무난히 당선될 것이다. 윤석열이 당선되면 안되는 이유는 50가지 이상을 열거할 수 있다.

  1. 대통령이 되기 위한 준비 수련 기간과 검증 기간이 전혀 없음. 정치, 경제, 군사, 외교, 과학, 교육, 사회, 통일 등, 국가 정책 전반에 무지함. 즉 정책 결정의 오판과 시행착오로 국론이 분열되고 국가위상이 추락할 것임.  
  2. 현재 윤석열 관련 재판 진행중인 사건들, 검사 시절 잘못된 수사, 기소들, 검사 시절 윤석열의 비리, 묵인, 불기소한 사건들이 부메랑으로 돌아옴.
  3. 윤석열은 현직 검사 시절 이명박, 박근혜를 탄핵하고 감옥에 투옥 시켰으며, 조국, 추미애, 심지어 문재인 청와대까지 수사하면서 원칙주의자, 공정의 아이콘으로 인식을 심어 주었지만, 막상 자신의 주변은 더 추잡스러움. 처와 장모의 재판 진행 중인 사건도 여러 개임. 아내 김건희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자들과의 인연 줄>로 성공 하려 했으니 무어라 언급할 가치도 없지만, 최소한의 <수신제가>도 안된 자가 <치국 평천하>를 외치는 꼴이다.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는가?
  4. 친박, 친이 기존 보수 진영에게도 외면 받고, 윤핵관이라는 세력들도 보수 내부에서는 퇴출 유기에 놓인 자들로 윤석열 자체세력은 검찰 세력 뿐임. 현 야당은 국회의원 정족수도 부족하고, 본인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세력이 취약함. 연공서열과 이익 분배과정에서 내부 분열이 예상됨. 결국 기득권의 꼭두각시가 되거나, 독재자가 되거나 양자택일을 해야 함.
  5. 윤석열의 성격적 결함. 사법고시 9수를 하고, 평생을 검사로 살다가 기적으로 검찰총장 했다 함은 강한 자에게는 납작 무릎을 꿇고, 약한 자에게는 무자비하게 강한, 극도의 야누스의 얼굴이다. 평생을 갑으로 살면서 을이 되어보지 않는 자가 가난한 자, 없는 자, 약한 자의 편에서 함께 눈물을 흘린다? 국가 지도자는 국민과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진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결론 : <윤석열은 독재자가 되기 쉽다>. 그래서 무소불위의 <검찰 공화국>을 만들려 하는 것이다.

사법고시를 9번 연속 낙방을 했다는 의미는 집요하고도 포기를 하지 않는다는 성격도 된다. 유복한 집안, 서울 법대. 사법고시 9수, 검사 임명. 철저한 한국의 <엘리트주의>이며, 이는 <능력주의>를 의미한다. 그 사회의 최고 엘리트 과정을 밟아 능력을 인정 받아 성공했으니 그에 해당하는 막강한 부와 제반 혜택을 누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정의와 공정>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부와 혜택이 <권력화>되면 <공정의 폭정>이 된다.

그래서 한국의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쥐고 성역없이 누구라도 수사하고 공소할 수 있다면 이 자체가 절대 권력이다. 그런데 누구의 통제나 제재도 받지 않고 대통령 직속으로 두겠다 함은 그야말로 <검찰 공화국>으로 만들겠다는 노골적 독재의 발로다.

나는 권력에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한다”라는 괴변은 검찰 권력을 대변한다. 서울법대 몇 학번, 사법고시 몇 기수는 죽는 날까지 평생을 따라간다. 판사가 되든, 검사가 되든, 변호사가 되든, 결국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조직>을 배신할 수 없는 구조다. 그들이 말하는 지방 대학 삼류(?) 인권 변호사가 끼일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 한번 맺어진 조직 관계는 평생을 가며, 배신자는 용서치 않는다. 김기춘의 <우리가 남이가?> 한마디로 모든걸 대변한다.

거기다 윤석열에게는 <열등감>과 <분노>가 있다. 검찰 조직은 철저한 기수 조직이며, 상명하복 조직이다. 9수를 한 선배는 인간 취급을 하지 않는다. 즉 경쟁대상이 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굴욕의 세월을 눈물과 복수로 이를 갈았겠는가? 이명박과 박근혜를 갈갈이 찢어서 감옥에 보내고 자신을 검찰총장 시켜준 문재인에게 칼을 들이댄다. 배신의 양아치다. 한국의 검사라는 직업은 무엇인가? 창의적이고 생산적이고 미래 지향적인가? 평생을 타자의 비리나 유죄 여부를 조사하고, 조작하고, 협박하고, 없는 죄도 만들어 구속시키고, 있는 죄도 뇌물 받고 덮어주고, 권력과 야합하고 하던 그런 자들이 아닌가? 박정희와 전두환은 <군사 무기>를 앞세워 쿠데타를 일으키고 독재를 했지만, 윤석열의 검찰 공화국은 <법>을 앞세워 모든 국민들을 <법의 공포>에 몰아 넣을 것이다. 대한민국 공직사회에서 검찰만큼 큰 권력을 가진 세력은 없다. 그런 검찰 권력이 대통령과 행정 권력을 모두 장악한다면 그게 곧 독재 국가다. 윤석열은 <독재자>가 될 충분한 성격의 소유자다.
대한민국 여러분에게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며, 그에 대한 <책임과 의무>도 함께 감당해야 한다.  





푸른 호수 (02-18-2022)

 <나는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닙니다>

가슴이 먹먹하다. 재미교포 2세 저스틴 전 감독이 직접 9명의 추방 위기의 사람들과 인터뷰하고, 시나리오 각본, 연출, 주연 배우 연기를 맡은 2021년 영화 <푸른 호수 (Blue Bayou)>를 적어도 재미한국인이라면 꼭 시청하시기를 권한다.

한국에서 1985년 태어나 세 살 때 미국 가정으로 입양된 한국 남자 아이, 국적 불명의 안토니오 르블랑 이라는 이름으로 위탁 가정을 전진하다, 12살 때 양아버지의 학대와 가정 폭력으로 혼자 살아온 한국 남자, 겉모습은 한국인이지만 한국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30여년을 미국인으로 살아온 남자. 제대로 교육 받지도 못했고 일가 친척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남자 주인공, 거리 불량아들과 어울리다가 어린 시절 잘못으로 전과 2범 기록마저 있는, 타투 가게에서 일하는, 미국 사회의 저소득층 아시안 계 30대 입양인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사랑하는 아내 캐시(간호사, 전 남편은 현직 경찰관으로 가족과 가정을 등한시 하여 이혼함)와 자신을 누구보다 믿고 의지하는 딸 제시(전 남편의 딸), 곧 태어날 자신의 아기까지 처음으로 느껴보는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아시안계라는, 전과 기록은 그의 발목을 계속 잡는다.

그러던 어느 날, 전직 남편(경찰관)의 동료 경찰관의 농간으로 자신이 미국 시민권자가 아님을 알게 된다.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3살 때 미국으로 입양되어, 30년을 살았는데, 서류 하나가 부족하다고 이민단속국에 의해 불법체류자로 전락한다. 법원의 강제 추방 조치로 전혀 연고도 없는 출생국 한국으로 추방되어야 한다. 법원에 항소하여 재심으로 받을 수도 있지만, 만약 패소하면 영원히 미국으로 입국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강제 추방을 받아드린다. 아내와 딸은 세계 어디든 함께 가겠다고 하지만, 가진 것도 없이 언어도 통하지 않는 전혀 낯선 한국 땅에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선택한 가족입니다>

우리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첫번째 가족은 <혈연 가족>이다. 피로 맺어진 관계다. 부모와 자식, 형제지간이다. 그래서 한국에는 가족간의 촌수가 있다. 하지만 아내는 <선택된 가족>이다. 그래서 촌수도 무촌(無寸), 즉 촌수가 없다. 헤어지면 남남이다. 족보에서도 지워진다. 피를 나눈 혈연이지만 책임을 져버린 가족과, 피는 나누지 않았지만 내가 선택하고 내가 목숨만큼 사랑하는 아내와 그녀의 의붓딸. 둘 중에서 누가 진정한 가족인가? 인류 가족의 확산은 내가 선택한 아내로 시작하고, 혈연이든 선택이든 결정된 나의 자식으로 번창한다. 그러니 죽기살기로 아내와 자식들에게 사랑과 모든걸 다 주어야 한다.

영화에서 월남 가족이 등장하는데, 가족은 수련 뿌리와 같다는 대사가 나온다. 월남 패망 시 월남을 탈출하는데 가족을 모두 한배에 태울 수 없자 두배에 나누어 태운다. 결국 한 가족은 잃게 된다. 그 아버지는 잃어버린 가족으로 인해 평생의 한으로 남아 있지만, 남은 가족을 살려야 하니 그 길을 선택한 것이다.

가족은 함께 만나고 나누고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가족은 식구(食口)다. 나의 피를 이어받은 혈연관계 이상이다. 내가 선택하였기에 내가 죽는 날 까지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영화 배경의 미국 뉴올리언스의 푸른 호수(Bayou)는 강물들이 모여 늪을 이룬 호수를 의미한다. 주인공에게는 기억도 없는 엄마의 자궁과 같은 곳이다. 꿈 속에 나타나는 한복 입은 한 소녀의 자장가, 쪽배와 잔잔한 물결, 꿈결 같은 바람소리, 펑안과 안식처인 푸른 호수는 남자 주인공이 힘들고 슬프면 찾는 유일한 피난처다.  

<불법 체류자>, 미국에 사는 재외 외국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누구나 미국 이민법에 두려움과 불만과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나도 나의 이민사를 글로 적으면 책이 한권은 될 정도이다. 미국 이민법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이며, 반인륜적인지 겪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나도 22년전 미국에 무작정 이민 온 케이스다. IMF때 사업실패로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세명의 자식과 착하기만 한 철없는 아내와 5만불이 전부였다. 미국 이민이 무엇인지 사전 정보도 전혀 없었다. 나는 미국에 친인척이 한 명도 없다. 아내의 언니가 한 분 계셨는데 20년 이상 살아온 세월이 다르니 서로의 생각도 달라 미국에 오자마자 관계가 멀어졌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여행 비자, 소액 투자 비자(E-2), 취업비자, 영주권, 시민권, 체류 신분 해결에만 12년 이상의 기간과 돈이 소요되었다. 미국에서 가족 모두가 혹은 한명이라도 불법신분으로 산다는 것이 하루하루 얼마나 불안하고 고통스럽고 불공정 한지 겪어보지 않으면 상상도 하지 못한다. 자식 모두 고난을 겪으며 최고 학부 나오고 각자 미국 시민권자로 생활함에 감사한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다.

본 영화의 <입양인 시민권법>도 2000년에 비로소 <아동시민권법>으로 통과된 법이지만, 조건이 2000년 이후에 입양된 이민자에게 해당하므로, 2000년 이전에 입양된 입양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무슨 개떡 같은 법안인지? 하지만 <2021 입양인 시민권 법안>이 발의되어, 2022년 2월4일 <2022 아메리카 COMPETES 법안>에 수정안으로 붙어져 미국 연방하원을 통과했다. 이제 연방 상원과 대통령 재가만 남게 됨으로써 수 만명의 미국 입양인들이 추방당하지 않고 미국 시민권을 얻게 될 것 같다. 그동안 수고하신 <미주한인 봉사 교육 단체 협의회(NAKASEC)>와 <입양인 정의 연맹(Adoptees for Justice)>에게도 노고를 감사드린다.





탈무드의 지혜 –마지막 회 (02-14-2022)

<탈무드에서 배우는 68가지 지혜>를 6회에 걸쳐 이번 주로 마친다. 항복 별 제목을 제외하고는 별개로 나의 사견임을 또다시 밝힌다.

57. 모든 법칙에는 예외가 있다. – 인간사에 절대적 진리란 없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물어야 한다. 나의 가치관은 내가 정립한다. 나의 기준도 내가 설정한다. 나의 삶은 절망할 필요가 없으니 당연히 포기 해서도 안된다. 예외는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며, 과학의 최종 정점은 가설이다. 동종 업종이라 해도 매물 마다 경우의 수는 다르다.

58. 재무와 상법을 배워라. – 우리 세대는 중학교 때부터 정규 수업에 <상업>이라는 과목이 있었으며, 그때 지식이 지금까지 도움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흐름과 규칙을 모르고 돈을 벌겠다는 자체가 모순이다. 전공에 관계없이 재무와 상법은 필수 기초 지식이다.

59. 모든 발전의 원천은 혁신이다. – 발전은 변화이며, 새로움 이며 앞으로 나아감 이다. 크게 새로워지고 나아질려면 실패의 위험을 무릎 쓴 도전과 변화가 필요하다. 혁신은 혁명과 같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혁명은 할 수 없다. 자신의 인생을 혁명하라. 사업도 정기적으로 새롭게 바꾸어라.

60. 편견을 버리면 친구를 얻는다. – 편견은 게으름이며 무지함이다. 상대를 타인의 말에 의존하거나 판단하지마라. 악의에 찬 소문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제일 먼저 시험 받는 것도 교인들에 대한 거짓 소문으로 시작된다. 좋은 친구는 나의 경험과 판단으로 내가 결정되는 것이다.

61. 먼저 인사하는 사람이 축복도 먼저 받는다. – 먼저 인사하는 사람, 먼저 웃는 사람, 먼저 선의를 베푸는 사람,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 예절 바른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내가 먼저 하면 된다. 축복은 나의 언행에 따라오는 선물이다.

62. 물건을 사지 않겠다면 가격을 묻지 말라. – 가게를 사지도 않을 사람이 구매 자격도 되지 않는 사람이 여러 타인의 매물 비밀정보를 알려고 한다. 그리고는 온 동네방네 소문을 낸다. 모자라는 사람인지, 할 일이 없는 사람인지, 열등한 사람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나의 경거망동이 상대방 모두에게 상처가 된다.

63. 창조적인 지혜는 무(無)에서 나온다. – 모든 숫자는 제로에서 시작한다. 창조는 기존의 틀을 깨트릴 때 가능하다. 기존의 법칙, 관습, 습관, 사고를 부수어 버리지 않으면 무(無)가 되지 않는다. 무(無)의 경지가 해탈의 경지이며 달관의 경지다. 인생은 무(無)에서 시작해서 무(無)로 끝난다. 삶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공부하고 시도해야 한다. 무(無)는 없음이 아니라 채움의 시작이며, 우주 창조의 본연이다.

64. 기적이나 이변을 기대하지 말라. – 기적이나 이변은 신만이 결정한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의 삶이 불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적은 반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오늘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산 사람만이 행복할 권리가 주어진다. 그 행복은 내가 만드는 것이며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65.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하라. – 매번 그럴 수는 없다 하더라도, 매사 언행에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는 경고일 것이다. 말이 행동을 만들고, 행동이 인격을 만든다. 모든 화(재앙)의 근원은 세치 혓바닥에서 시작된다. 헛소리, 미친 소리, 악의에 찬 소리, 괴변, 음담패설, 잡언, 욕설, 망언, 실언 등등, 말 많은 세상에 사는 사람이 말 많으니 말 많을까 하노라.

66.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 – 자업자득(自業自得), 인과응보(因果應報). 과거 선악의 인연에 따라 훗날 길흉화복(吉凶禍福)의 결과를 얻게 된다. 뿌린 대로 거둔다. 인생사에 저절로 우연히 기적처럼 얻어지는 것은 없다. 심지어 내 세대에서 심판 받지 못하여 후세대로 이어진다면 얼마나 엄중한 문책인가? 윤리와 도덕이 무너지는 세상이다. 언제 어디서나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특히나 신을 믿는 사람이라면 신을 두려워해야 한다. 용서도 신이 결정하는 것이지 내가 용서를 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신을 인간과 동급으로 우습게 알지 마라.

67. 질책은 엄하게, 칭찬은 흡족하게 하라. – 회초리 세대인 우리에게는 어려운 말이다. 현대의 어른은 질책을 엄하게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질책을 받아드리지 못하는 젊은 세대다. 걸핏하면 꼰대라고 한다. 학교 선생님도 엄하게 훈육하지 못하는 세상이다. 듣고 싶은 소리만 들으려 한다. 생긴대로 살 수 밖에 없다. 칭찬에 인색하지 마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는가?

68. 번뜩이는 직감이 발명을 낳는다. – 번뜩이는 직감은 99%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실패와 재시도를 반복해야 한다. 행하지 않음은 모르는 것 보다 못하다. 육신은 유한하나 생각은 무한하다. 읽고 깨우치고 사유하고 실행하라.6회에 걸쳐 탈무드의 68가지 지혜를 살펴 보았다. 선인들의 가르침에 <탈무드의 지혜>만 있을까? 가르침을 읽고 사유하는 자도 나 자신이고, 가르침을 몸소 행하는 자도 나 자신이다. 지혜를 얻는 자도, 꺠우치는 자도 나 자신이다. 살아온 세월을 되돌아 보면 흐르는 강물과 같아서 결코 길지도, 그렇다고 짧다고도 할 수 없다. 남은 세월 하루를 살아도 온전한 하루의 삶이 될 수 있도록 너와 나 모두가 열심으로 살아야겠다. 

 

탈무드의 지혜 -5편 (02-04-2022)

<탈무드에서 배우는 68가지 지혜>를 지난 주에 이어 이어간다. 항복 별 제목을 제외하고는 별개로 나의 사견임을 또다시 밝힌다.

<최악을 대비한 후 최선을 기대하라>

45. 여유 있을 때 배우겠다고 변명하지 말라. – 삶에 여유 란 무엇인가? 나의 주관이다. 내가 여유롭다 생각하면 여유가 있고, 바쁘다고 생각하면 나는 항상 바쁜 사람이다. 바쁜 사람은 죽는 날까지 바쁘다. 여유로울 때 무얼 배우겠다 함은 내 자신에 대한 속임수다. 배움은 죽는 날까지 내 마음속의 영원한 목마름 이자 간구 이어야 한다.

46. 비전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다. – 비전은 목표와 다르다. 비전은 꿈이자 이상이다. 땅은 현재이며, 하늘은 미래다.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날개가 비전이다.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할 수 있다. 어쩌면 땅에 머물다 마감할 수 있다. 그래도 꿈과 비전을 가져야 살맛 나는 세상을 살 수 있다.

47.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인생을 지배한다. –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지는 시간이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을 나를 위해 사용하지 못하는데, 내일과 미래로 이어지는 나의 인생을 내가 지배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오늘이라는 내 삶의 시간에 충실하자.

48. 비즈니스의 최종 목적은 고객 만족이다. – 비즈니스는 나와 상대 간의 거래다. 상대가 불만족이고 나만 만족 하다면 비즈니스 거래는 깨어짐이 당연하다. 비지니스의 최종 상대는 고객이다. 100% 고객 만족은 없다. 고객 만족은 나의 마음가짐이다.

49. 지혜를 활용해 부를 쌓으라. – 지혜는 지식이 아니다. 지혜는 절대 불변이 아니다. 지혜는 각자 시대를 사는 현명 함이다. 지혜는 융합이고 공감이며 선함이다. 악과 부정으로 쌓아 올린 부는 바벨탑과 같이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다.

50. 최악을 대비한 후 최선을 기대하라. – 당신의 최악은 무엇인가? 죽음? 경제적 파산? 홀로 됨? 육체적 파멸? 치매? 암? 불치병?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내일의 죽음을 미리 준비 하면 두려울 게 없다. 살아있는 한, 산 입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 무엇을 하든, 빌어먹어도 살 수는 있다. 삶에 바닥은 없다.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부터 최선을 다 하면 된다. 별난 놈 없고 별난 세상 없다. 사는게 별 대수인가? 순명을 다해 잘 살면 된다.

<지혜로운 사람 앞에서는 말을 아껴라>

51. 배워서 깨달았으면 즉각 실천에 옮겨라. – 배움의 길은 험난하고, 배워서 깨닫기는 더욱 힘들며, 그 깨달음을 즉각 실천함을 더욱 어려울 것이다. 예수의 열두 제자가 되면 무얼 하며, 석가모니의 수백 제자가 되면 무얼 하나? 제 그릇만큼 살다 가는 것이다. 아무리 많이 배워 지식이 많아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헛 지식이요, 깨달은 지식을 몸소 실천하지 않으면 언행 불일치, 인격 장애, 위선자가 될 뿐이다.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참으로 힘든 가르침이다.

52.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정보가 고급 정보다. –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고급 정보가 있다면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대박이 날 것이다. 미래를 예측할 정보는 내가 찾아야 하며 그 책임은 나에게 있다. 우리 시대는 정보 홍수 시대다. 정보 수집과 분석은 나의 노력과 투자이며, 그에 상응하는 대가도 지불해야 한다. 미래 예측 정보를 위해 누구처럼 무속인을 찾아간다면?

53. 충분히 이해될 때까지 의문을 제기하라. – 충분히 이해가 되려면 암기가 아니라 토론을 해야 한다. 토론은 의문의 연속 제기다. 유대인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이라기 보다 토론의 장이다. 노예는 왜? 라고 묻지 않는다. 노예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 종교가 왜? 를 묻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샤마니즘이다. 침묵은 금이 아니다. 이해가 충분히 되어야 실행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할 것이 아닌가?

54. 지혜로운 사람 앞에서는 말을 아껴라. – 지혜로운 사람 앞에서는 간단히 질문하고 그의 의견을 경청하라. 듣기를 반복하다가 의문이 생기면 질문하고 또 경청하라. 지혜로운 사람이 항상 내 곁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귀인(貴人)이 찾아오면 융숭히 대접하라. 귀인의 한마디 가르침이 열 권의 책을 읽는 것 보다 더 소중할 수도 있다.

55. 기계를 과신하지 말라. – 설령 AI 인공지능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인간이 만든 기계에 불과하다. 기계는 유한 하기에 한계와 오류가 있다. 기계를 과신하면 기계에 잡아 먹히게 될 수 있다. AI 인공지능에 인간의 감정까지 넣을 수는 없다. 유한한 지식과 데이터로는 인공지능 AI를 이길 수 없다. 인간은 인간끼리 서로 믿고 의지해야 한다.

56.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 이 사실을 모르는 바보가 있을까? 먹고 살아야 하니까, 좀더 잘 살아보려고,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고, 위험한 일도 해야 하고, 남들보다 더 많이 일해야 하고, 남들 눈치 보며 비굴 하게도 살아야 한다. 아파도 병원 가지 못하고, 지금 당장 수술해야 할 병이 아니면 약국의 약 몇 봉지로 버틴다. 가난한 현대인은 몸이 전 재산이다. 건강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는 걸 알면서도 죽기 살기로 건강을 잃을 짓거리만 하고 산다. 빌어먹을 세상에 살아도 우리 모두 건강하도록 애쓰자.


탈무드의 지혜 -4편 (01-28-2022)

<탈무드에서 배우는 68가지 지혜>를 지난 년말에 이어 이어간다. 항복 별 제목을 제외하고는 별개로 나의 사견임을 또다시 밝힌다.

<어설픈 프로보다 진취적인 아마추어가 낫다>

33. 한번의 거래라도 최선을 다하라. – 한 명의 고객에게도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장사가 잘 되는 가게는 주인과 종업원들이 모두 친절하고 최선을 다한다. 어디나 진상 손님은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손님과 싸우면 안된다. 가게 매입과 매각 과정도 별의별 변수가 많다. 계약 케이스 마다 과정과 성격이 다르다. Buyer, Seller, Broker 모두 최선을 다 해야 서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34. 비용 절약이 이익을 내는 지름길이다. – 비용 절약 면에서는 한국 사람을 따라올 민족이 없다. 너나 없이 지독하다. 그렇다고 종업원 인건비나 복리 후생을 비용이라 생각하면 안된다. 종업원은 관리 대상이며 투자이다. 시설이나 인테리어도 투자이다. 인건비를 조심하라. 주인 스스로 근검 절약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35. 노하우가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 노하우는 정체되는 것이 아니라 계승 발전하는 것이다. 한인들이 세탁 업종이나 뷰티, 네일, Breakfast 등 몇가지 업종을 석권하는 것은 협회 등을 통해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인력 충원이 용이하고 가게 매매도 활발해지고, 사업 영역도 확장할 수 있다.

36. 소비자의 상품 지식이 시장을 발전시킨다. – 소비자의 소비 성향이나 트랜드를 항상 주시해야 한다. 신상품에 민감한 사업일수록 더욱 그렇다. 소비자를 선도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도태된다. 장사나 사업이나 합리적인 사람이 성공한다.

37. 권한을 부여했으면 책임도 함께 져라. – 직책이 올라 갈수록 책임도 무거워진다. 사장이면 사장 노릇을 해야 한다. 매니저를 운영할 때도 권한 뿐만 아니라, 목표와 책임도 부여해야 하고, 그에 따른 성과급도 제시해야 한다. 당근과 채찍이다.

38. 위기가 없을 때 미리 대책을 세워라. – 항상 잘 되는 사업은 없다. 위기가 기회로 전환되려면 미리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차지할 수 있다. <위기관리>는 평소에 해야 한다. 평소에 생각도 없이,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준비도 없이, 사전 정보나 계획이나 전략도 없이 남들 뒤따라 가는 경영자는 남들 보다 성공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가늘고 길게>는 경영에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가늘고 길면 끊어진다. 끊어지면 죽는다.

39. 어설픈 프로보다 진취적인 아마추어가 낫다. – 프로나 전문가는 대부분이 피고용인이다. 전문지식을 팔아서 월급을 받아 먹고 산다. 월급쟁이는 부자 되기 쉽지 않다. 진취적인 아마추어는 계속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찾아 헤맨다. 그 속에서 남들이 보지 않는 새로운 길을 찾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 나도 30여년 전에, 기존 사업들이 잘 되어서, 그 당시로는 아주 생소한 <컴퓨터 온라인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현직 초등학교 교사 30여명이 문제 출제 위원으로 참가하고, 문제를 재미있게 풀기 위해 게임 개발 회사, 검색 엔진 개발을 위해 유명 대학교 개발 연구소가 참여하고, 전국 온라인 공부방 대리점도 200여곳이 모집 되었다. 개발 진행 도중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IMF를 맞는 바람에 사업이 파산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후회는 없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고 모두가 최선을 다 했기 때문이다.

40. 컨설턴트에게 묻지 말고 고객에게 물어라. – 컨설턴트에게 자문 받을 내용이 있고, 고객의 말을 청취할 내용이 있다. 내 상품에 대한 최종 소비자의 의견이 가장 정확하다. 소비자의 의견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니다.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

41. 답을 가르치지 말고 질문을 하게 하라. – 인간은 사유하는 동물이다. 사유는 의심에서 시작된다. 수학이나 과학도 공식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원리를 이해하는 학문이다. 질문은 대화로 시작된다. 삶과 종교는 질문의 연속 과정이다. 답은 언제라도 변할 수 있다. 답을 외워서 행하면 맹신이 되고 종속이 된다.

<최악을 대비한 후 최선을 기대하라>

42. 젊은 사람부터 발언하게 하라. – 늙은이는 타성과 관성에 젖기 쉽다. 관념은 습관이 되고 아집이 된다. 완고하고 고집스럽기에 자기 주장이 맞다고만 우기 쉽다. 늙은이는 듣는 습관부터 연습해야 한다. 젊은이는 아직까지 형식이나 관습에 덜 익숙하고 상대적으로 창의적이다. 맞고 틀리고 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게 된다. 젊은이와의 대화가 가능해진다.

43. 물건을 빌릴 때는 용도를 분명히 밝혀라. – 빌릴다 함은 빌려주는 상대가 있기 마련이다. 물건이든 돈이든 부동산이든, 빌릴 때는 정직해야 하고 상황을 이해 시켜야 하며 신의를 지켜야 한다. 빌려준 사람의 선의를 왜곡하면 안된다.





탈무드의 지혜 -3편 (01-21-2022)

44. 저비용, 저위험을 지향하라. – 인간은 욕망의 화신이다. 자본주의는 부의 경쟁이다. 모두가 최단 시일내 부자가 되려 한다. “High Risk, High Return”, 영끌- 영혼까지 끌어 모아 투자하려 한다. 투자가 아니라 투기다. 나도 사업할 때 더 많이, 더 빨리 부자 되려 하다가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다. 물론 IMF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사업 부채 대비 소유 부동산 값들이 폭락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가난할수록, 사업 기반이 약할수록 사업 위험도는 높다. 최대 공약수와 최소 공배수를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고객이 가게를 매입할 때에도 나는 사업의 위험 요소를 꼭 조언한다.

<탈무드에서 배우는 68가지 지혜>를 지난 년말에 이어 이어간다. 항복 별 제목을 제외하고는 별개로 나의 사견임을 또다시 밝힌다.

<일관된 사람만이 성공한다>

25. 빌려주는 것도 좋은 사업이다. – 흔히들 말하면 부동산 임대 사업, 금융 사채업 등이 해당한다. 건물주는 조물주와 동급이라 한다. 즉 갑과 을의 일방적 관계다. 나의 고객들도 건물 매입 문의가 많다. 하지만 모든 건물주(Landlord)가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좋은 건물이란 세입자(Tenant)의 비지니스가 잘 되어야 한다. 특히나 요즈음 같은 코비드 비상 상황에서는 문을 닫거나 렌트비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세입자들도 많다. 장사 안되는 건물을 매입해서 시설이며 인테리어를 개보수 한 다음 매상을 올려서 비즈니스만 되파는 건물주도 있다. 건물 수익구조를 꼼꼼히 점검하라.

금융 사채업도 유대인의 주요 투자 수단이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속담도 있다. 은행 융자도 받을 수 없는 가난한 세입자는 고금리 사채 인줄 알면서도 먹고 살아야 되니 급전을 끌어다 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오너 융자나 전세를 놓는 것도 투자 방법의 하나다. 모든 법과 제도는 <갑>의 편이다. 을은 가능하면 사채를 쓰지 말라. 크레딧 점수와 세금 보고를 꾸준히 3년간 관리하면 SBA 융자(영세 자영업자 정부 보증 융자)가 가능하며, 최선이다.

26. 일관된 사람만이 성공한다. –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을 통칭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지역 영세 자영업자에게 동종업종만을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자영업은 전문 직종도 아니고 대단한 업종도 아니다. 한인 업종도 시대별 트랜드가 있다. 모든 업종이 항상 잘되는 것도 아니고, 항상 힘든 것도 아니다. 물론 동일 업종을 하다 보면 기술이나 운영 노하우는 축적되겠지만, 그것이 반드시 성공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시대별 환경에 맞게, 나의 특성에 맞게, 돈이 되는 장사, 내가 잘 할 수 있는 장사를 해야 한다. <일관된 사람>은 성실하고 검소한 사람이다. 동종 업종의 성공 사례들을 지속 분석하고 변화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변화하지 않는 자는 도태된다. 한 가게를 20년 이상 했다는 게 결코 자랑이 아니다.

27.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는 쉬어라. – 인간이 에덴 동산에서 죄를 짓고 쫓겨나면서, 누구나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못하는 평생의 형벌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일하는 목적은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함이다. 인간의 모든 구조는 휴식이 필요하다. 자신도, 부부도, 가족도, 공동체도 모두 휴식이 있어야 맺어지는 관계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듯이 <행복 총량의 법칙>이 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반드시 있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 것인지는 각자의 결정 사항이다. 주7일을 일하든, 주5일을 일하든, 하루에 몇시간을 일하든, 나머지 휴식시간에 나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해야 나 자신과 가족 모두가 행복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28. 계약할 때는 해약도 생각하라. – 계약은 <IF>다. <IF>는 <계약조건>이다. 비즈니스 계약에서는 1. 매상이 맞으면, 2. 리스 조건이 맞으면, 3. 융자 조건이 맞으면, 4. 수익구조 분석, 4. 시설, 종업원 등 부대 조건 등등이 맞으면 매입하겠다는 것이다. 계약 당사자마다의 여러가지 계약 조건을 제시하고 각 항의 조건이 맞으면 계약 완료(Settlement, Closing)하고, 아니면 계약을 해약 하는 것이다. 해약은 <If not>이다. 계약조건이 맞는데 일방 해약하면 계약위반 Penalty로 계약금을 위약금으로 물어내야 한다. 친분이 있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계약 단계별 절차는 반드시 지켜야 하고, 그래서 쌍방 변호사가 필요하고, 중개인이 필요하고, 각 항목별로 점검하고 확인해야 한다. 매입자의 권리다. 가게를 속아서 샀다는 말은 매입자의 권리를 포기한, 자신이 바보라는 고백일 뿐이다.

29. 적어도 세 방향에서 관찰하라. – 사물의 형태는 X, Y, Z, 3차원 입체로 구성되어야 제 모습을 알 수 있다. 거기다 T의 시간 개념까지 포함하면 4차원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사람의 의식에는 <착시효과>가 있다. 사기꾼은 인간의 착시 현상을 노리는 것이다. 즉 인간은 보고 싶은 거만 보고, 듣고 싶은 거만 듣고, 말하고 싶은 거만 말하는 존재다. 가장 심한 분야가 종교 분야다. 자신의 종교 이외의 다른 종교는 보지 않고 사탄으로 규정한다. 모든 사업에는 장점과 약점, 기회 요소와 위협 요소가 있다. 한 가게를 오래 했다고 해서 전문가는 아니다. 오히려 편협된 사고로 자기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전문 컨설턴트를 만나 함께 분석하고 고민해야 실패를 줄일 수 있다.

30. 스스로의 노력만이 소유권을 보장한다. –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공개된 숫자 뒤에 숨어있는 숫자를 모를 뿐이다. 누구도 내 자신을 대신하지 않는다. 직접 스스로 여러 전문가를 만나고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결정해야 한다. 한인사회의 아이러니는 컨설팅 비용이 공짜라는 것이다.

31. 네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 – 역지사지(易地思之), 황금률의 법칙이다. 종업원을 돈을 지불한 노예로 생각하면 안된다. 인격적으로 대하라. 함께 하라. 차별하지 마라. 많은 한인 자영업자들의 언행이 너무 거칠고 폭력적이다. 내가 베푼 만큼 복은 되돌아 온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32. 만장일치가 더 위험하다. – 만장일치는 독재다. 사고의 편협과 사각의 위험이 상존한다. 소수의 의견을 경청하는 조직이 건강하고 안정하다. 상급자일수록 입을 닫고 귀를 열라.





노인의 꿈 (01-14-2022)

노인의 꿈은 무엇일까? 노인에게도 꿈이라는 게 있는 걸까?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2020년 15.7% (815만명), 2025년 20% (1,000만명), 2035년 30%, 2050년 40% (1,901만명) 이라는 통계치가 있다. 나도 내일이면 70을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노인 누구나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꿈도 없고 죽을 날만 받아놓은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노인에게도 <꿈>이 있고,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을 것이다.

지난 주에 이어 <어느 한 세대의 이야기-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를 이어간다. 교황께서는 “꿈이 없는 사람은 무언가 결핍된 사람입니다. 꿈이 없는 삶은 무균 상태로 사는 것입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꿈을 꿀 수 없는 사람은 인생에 시(詩)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생의 활기도, 반짝이는 눈빛도 없습니다. 꿈을 꾸는 노인은 여러분을 상상하지 못한 미래로 안내 할 수 있습니다.”

교황께서는 어린 시절 꿈은 몽상가나 시인이 되고 싶기도 했다. “사람은 희망이 있어야 씨앗을 뿌립니다. 씨앗을 뿌린다는 것은 미래에 열매가 맺는다는 희망 때문입니다. 씨앗을 갖고만 있지 말고 매일 파종하듯이 나의 지식과 기술을 갖고만 있지 말고, 함께 공유하고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노인들은 꿈을 가져야 합니다. 안 그러면 향수에 빠집니다. 물론 향수는 긍정적인 면도 있고, 애정 어린 기억으로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노인의 기억은 딱딱하게 굳어져 버리고 완고해 집니다.”

노인을 격려하고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청년들입니다. 그래야 노인들이 자극 받아 앞으로 나아갑니다. 노인이 가진 꿈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요. 그런 풍요로움은 인생의 새로운 경험을 주기도 합니다. 젊은이의 꿈은 예언과 같고 인류를 앞으로 나가게 하는 원동력과 같습니다. 그래서 젊은이와 노인이 함께 하는 게 중요합니다. 노인은 젊은이에게 자신의 꿈을 나누어주고, 젊은이는 노인의 꿈을 받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노인의 꿈은 미래를 찾는 젊은이에게 전해줄 수 있는 보물 이예요.”

노인의 꿈은 미래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이자 소망이다. 누구나 고령(?)의 나이가 될 때까지 살다 보면 잊어버리고 싶은 수많은 상처와 슬픔을 겪게 된다. 노인의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은 삶의 의지를 갖고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내 삶에 대한 사랑을 젊은이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아프지 않고 백세까지 오래 사는 것이 노인의 꿈은 아니다. 배 곯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노인의 꿈은 아니다. 노인의 기도는 누구를 위한 기도인가? 노인의 꿈은 젊은이와 나눌 수 있어야 하고, 젊은이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고, 젊은이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농장 주인의 자손과 농장 노예의 자손이 함께 <형제애>라는 테이블에 마주 앉는 꿈”과 같은, 인종차별과 빈부의 차별이 없는 그런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꿈이라면 너무 거창한가?

나는 2007년부터 지금까지 14년동안 매주 신문 칼럼을 쓰고 있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한 분의 영혼에게라도 밀알이 될 수 있다면, 무엇보다 상처 많은 내 영혼이 조금씩이라도 정화 된다면, 더욱 공부하고 사색하고 갈고 다듬어, 계속해서 매주 칼럼을 쓸 것이다. 또 내가 하고 있는 일도 먹고 살기 위한 생계 수단일 뿐만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이웃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꿈도 있기에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할 것이다. 그리고 지역 한인 커뮤니티도 만들고 싶다. 15년전 <뉴저지 한국 통합 한국학교 기본 사업 계획안>을 만들 때 중장기 계획에 들어 있던 사업들이었다. 젊은 세대들과 함께 한국어 교육, 역사뿐만 아니라, 운동 클럽 (탁구, 배드민턴, 배구, 테니스, 골프 등), 요가, 그림, 독서클럽, 색소폰 등 음악 교실, 산악회, 사교댄스 등 취미 클럽, 그리고 방과후 어머니 교실, 유아 데이케어 등을 운영하는 것이다. 일부는 진행되다가 중단되었다. 이런 공익 사업들의 생명은 지속성과 공익성과 사업재원 마련이다. 지역 교회들의 협조로 <은퇴 노인>들이 주축이 되어 젊은 세대를 위해 함께 봉사해야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가수가 부른 <어떤 이의 꿈>이라는 노래가 있다. 나도 즐겨 부르는 노래다. 그 노래 가사에서 <어떤 이>를 <어떤 노인>으로 바꾸면 <어떤 노인의 꿈>이 된다. “어떤 노인은 꿈을 간직하고 살고 / 어떤 노인은 꿈을 나눠 주고 살며 / 다른 노인은 꿈을 이루려고 사네 / 어떤 노인은 꿈을 잊은 채로 살고 / 어떤 노인은 남의 꿈을 뺏고 살며 / 다른 노인은 꿈은 없는 거라 하네 / 세상에 이처럼 많은 노인들과 / 세상에 이처럼 많은 개성들 / 저마다 자기가 옳다 말을 하고 / 꿈이란 이런 거라 말하지만 / 나는 누굴까 내일을 꿈꾸는가 / 나는 누굴까 아무런 꿈 없질 않나 / 나는 어떤 노인일까 내일을 꿈꾸는가 / 나는 어떤 노인일까 혹 아무 꿈.”

우리 모두 각자의 새해 꿈을 꾸자.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투쟁>해야 하고 <노력>해야 한다. 내가 <왕년에 말이야~>는 이제 그만하시고.





새해의 화두 (01-07-2022)

새해 첫눈이 내린다. 새해 첫날 첫 바닷가를 아내와 함께 2시간 가량 걷다가 바다 보다가 걷다가를 반복했다. 나에게 바다는 새해가 오면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 같은 곳이다. 올 한해도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고, 많은 도움과 신세를 질 것이다. 나로 인한 모든 인연들이 모두 잘 되었으면 좋겠고 건강했으면 좋겠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런 바램과 희망을 바다에 소원하는 것이다.

새해 화두는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어느 한 세대의 이야기 – 프란체스코 교황과 함께>라는 넷플릭스 기획물을 보고 그것으로 정하기로 했다. 4회에 걸쳐,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황님을 중심으로, 세계 각계각층의 70대 이상의 노인 세대들을 대상으로 꾸며진 기획물이다. 주제는 첫째 <사랑>, 둘째 <꿈>, 셋째 <투쟁>, 넷째 <노력>으로 구성된다. <사랑>편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첫째: <사랑> – 교황께서는 “사랑은 공기와 같습니다. 사랑은 감정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체 속의 전류 같은 거고요. 사랑은 부모가 아이들과 대가없이 놀아주는 놀이와 같습니다. 사랑은 아버지가 자신의 모든 것을 자식에게 아낌없이 주는 것과 같습니다. 끊임없는 헌신입니다.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보통 아버지들의 후회는 살기 위해 개인(가족)의 삶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공감과 존중이 결합하여 공존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감정을 느끼는 것입니다. 아픈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성직자(신부)입니다. 병상에 와서는 신이 함께 하신다는 정해진 설교만 하고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병자가 원하는 것은 손은 잡아주되, 입은 다무는 것입니다. 친밀감을 표해야 합니다. 사랑은 친밀함 입니다.

알프스 어느 노래 가사에 “산을 오를 때 중요한 건 추락을 피하는게 아니라, 계속 추락하지 않는 것이다. 언제나 누군가 손을 잡아주지 않던가요?”가 있지요? 내가 누군가를 도와줬다고 해서 그를 자신과 다르게 본다면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사랑하고 싶다면 무관심 해서는 안됩니다. 더 가까이 다가가세요. 인간이 겪는 고통의 극한까지 들여다 보세요.”

미국 뉴욕 출신의 유명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79세)는 24년전 지금의 아내와 재혼을 하고 딸 아이를 얻는다. 아내는 지금 병환 중이며 아내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다. “부부는 영혼의 유대감이 힘입니다. 나는 언제나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나의 성공보다 아내가 더 중요하고 우선입니다. 사랑이 없는 상황이라면 당신의 사랑을 모두 주세요. 당신 안에 있는 사랑을 몽땅 꺼내어 주세요.”

아르헨티나 에스텔라 카를로프(90세) 할머니는 아르헨티나 ‘5월 광장 어머니회’ 44년된 단체 회장이다. 1970년대 군사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3만명 이상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할머니의 큰딸도 임신 6개월이었는데 독재정권과 싸우다 투옥되고 감옥에서 아들을 출산하고 감옥에서 죽었는데, 손자의 행방은 알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딸의 무덤 앞에서 맹세한다. “단 하루도 멈추지 않고, 딸과 그 동지들을 위해 정의를 구현하고 손자를 찾겠다”고. 수많은 사라진 아이들을 찾기 위해 오늘도 ‘5월 어머니회’는 투쟁하는 것이다. 할머니는 36년뒤 기적처럼 손자를 찾게 된다. “여자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큰 사랑이 생긴다. 해가 갈수록 그 사랑은 커진다. 어머니의 사랑만큼 큰 사랑이 또 있을까?”

교황님의 할머니 사랑에 대한 추억은 <침묵>으로 표현하신다. 늘 별 말씀없이 변함없이 옆에서 보살펴 주시던, 수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인내심이 강한 할머니로 기억하신다.

영국의 제인 구달 박사는 “지구상의 모든 동물은 성격, 정신, 감정, 사랑이 있다. 과학은 모든걸 수치화 한다. 과학자는 연구 대상에게 감정이입 하지 말고 냉철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침팬지에게도 번호로 숫자를 메긴다. 하지만 침팬지도 감정, 성격, 문제 해결 능력이 있다. 유독 엄마를 좋아하던 어느 침팬지는 엄마가 죽고 나니 일체 곡기를 끊고 엄마 곁을 떠나지 않다가 3주 뒤에 굶어 죽었다. 우리 모두가 사랑과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면 세상은 달라질 겁니다.”

이탈리아 람페두사에 사는 비토 피오리노(72세)는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다. 오래전에 아내와 이혼했고, 자식들도 모두 성장했지만,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못 받았듯이 자신도 자식들에게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혼자 산다. 2013년 10월 3일 운명의 날을 맞는다. 친구들과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소말리아 난민선이 난파되어 죽어가는 수백명의 난민들을 목격한다. 자신의 배로 47명을 구조한다. 눈앞에서 구조받지 못해 죽어가는 난민들을 목격한다. 그 뒤로 바다에 나가지 못한다. 하지만 구해준 난민 아이들이 성장하고, 힘든 순간을 함께 극복하고, 그들과 친아버지 이상의 관계를 유지한다. 사랑은 서로에게 소중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우루과이 카를로스 솔리스(84세)는 안과 의사다. 결혼 55년차, 4딸과 손주 6명의 전형적인 노인이다. 그런데 어느날 아내가 탱고를 배우자고 한다. 처음에는 단번에 거절하지만 결국 주 2회 탱고를 배운다. 할배 왈 “함께 살려면 서로에게 양보해야 한다. 좋은 가정을 꾸리고, 즐겁게 일하고 아내와 함께 탱고를 추니 나는 행복하다.” 교황께서 탱고는 ‘추억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 좋아하신다. 탱고가 되었든, 브루스 지루박이 되었든, 사랑은 함께 하는 것이다.

우리도 언젠가는 죽겠지, 하지만 나머지 날들은 살아 있잖아요!” 새해 함께 사랑하세요.